조국·민족 의미 되새겨본 뜻깊은 시간(TV주평)
◎sbs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수난시대…」를 보고
구소련땅에 거주하는 50만의 한국동포들.그들은 과연 우리에게 잊혀진 존재인가.
지난 17,18일 이틀간 방영된 SBSTV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수난시대,중앙아시아의 한인들」은 조국과 민족의 진정한 의미를 새삼 되새겨 보게 한 뜻깊은 프로였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불모의 유형지 중앙아시아로 쫓겨온 한인동포들의 실상을 고발하듯 낱낱이 소개한 이 프로는 우리의 「잠든」민족의식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숙청과 추방,죽음의 모진 세월속에서도 타고난 근면함으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터전을 이룩한 중앙아시아의 한인들.소연방의 붕괴와 함께 몰아친 민족주의의 열풍은 이들에게 정처없는 엑소더스를 강요하고 있다.꼴밭과 진펄위에 일궈놓은 고려인들의 콜호즈(집단농장)는 어느새 토박이들의 손에 모두 넘어갔으며 수많은 동포들은 그들의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과 박해로 독일인,유태인등은 저마다 제땅을 찾아 떠나가건만 정작 우리 동포들에겐 갈곳이 없다.그들에게 조국이란 멀고 먼 「피안의 땅」일뿐.「장차 우리 어드메 살겠는가」그들의 「소리없는 절규」가 들려오는 듯하다.
모스크바에서 극동 연해주까지 구소련땅 곳곳을 돌며 인고의 나날을 이어가고 있는 동포들의 삶을 비교적 충실히 조명한 이 다큐는 그 기록적 의의와 함께 우리의 조부세대에 대한 이해의 심화라는 측면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지금도 스스로를 「고려인」또는 「조선사람」이란 세월지난 호칭으로 불리길 원하는 한인동포들.그들에게 조국은 하나의 「신앙」이다.이제는 까마득히 잊혀져 가는 조선의 법도를 되살려 망자를 보내는 부하린지방의 장례식,우리의 얼과 숨결이 서린 타슈켄트 쿠일륙시장의 풍물들,밀양아리랑 가락이 구성진 어느 콜호즈 한인마을의 잔치장면등….이 모든 것들은 바로 「우리의 것」이기에 한층 여운있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소수민족이란 질시속에 「부지런함이 죄」가 되는 현실에서 「제2의 수난시대」를 맞고 있는 중앙아시아 한인동포들을 안고 살아갈 방도는 없을까.LA흑인폭동의 악몽이 채 가시지않은 지금,다시 한번 우리민족의 「뿌리」를 생각케 한 의미있는 기획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