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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진단 사업자부담/평균 5.9% 인상

    신규채용근로자와 재직중인 근로자의 건강진단시 사업주가 부담해야 하는 검진비용이 지난해보다 평균 5·9% 인상된다. 노동부는 2일 경제기획원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근로자가 1년에 1차례이상 받아야 하는 일반 및 특수건강진단에 대한 검진비용을 5.5∼6.6% 올리기로 했다. 또 일반건강진단의 경우 35세미만일때는 현행 1만80원에서 1만7백10원으로 6.2%,35세이상일때는 1만2천8백20원에서 1만3천5백40원으로 5.6% 상향조정된다.
  • 의사면허 빌려 불법진료/경기 68개 사업장 건강진단

    ◎전문의 등 3명 구속 【수원=김병철기자】 수원지검 수사과는 24일 의사면허증을빌려 불법의료행위를 한 수원시 팔달구지동 재단법인 한국의학연구소 수원분사무소 부속의원 사업부장 최운기(37) 직원 김은성씨(37.여)와 이들에게 의사면허증을 빌려준 대전중앙병원 보건관리센터소장 오장균씨(35.예방의학전문의)등 3명을 의료법위반혐의로 구속하고 한국의학연구소 수원분사무소지사장 서윤식씨(44)를 수배했다. 최씨등은 지난해9월부터 12월까지 오씨의 예방의학전문의명의를 빌려 경기도내 68개사업장 유해물질취급자 1천3백26명의 특수건강진단을 실시,진단서를 발급해주고 2천5백만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다. 또 오씨는 지난해6월 3년계약으로 한국의학연구소 수원분사무소 부속의원에 예방의학전문의로 근무하기로 계약했다가 같은해 9월 대전중앙병원으로 자리를 옮기게되자 전문의명의를 최씨등에게 빌려준 혐의다.
  • 호스피스 활동 김리호할머니(봉사하는 삶:6)

    ◎말기암 등 임종앞둔 환자들에 말 벗/아름답게 세상마감 하도록 위로/무의탁 환자 수발·끼니마련까지/“좌절·고통 극복하는 이들 모습서 성스러움 느껴” 『죽음을 목전에 둔 말기 암환자들이 형언 할수 없는 고통과 좌절을 극복해내는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합니다』 올해 일흔셋의 김리호(호 소전)할머니.여교장1호로 지난 86년 40여년의 교직생활에서 은퇴한 그는 호스피스활동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있다.그 자신 기관지천식과 퇴행성백내장등으로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은 상태지만 『늘그막에 이정도의 건강함을 주신것은 봉사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면서 매주 한두번 각종 말기암과 노환등으로 임종을 맞이한 환자의 가정을 방문,이들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곁에서 위로해준다. 갑작스런 죽음선고를 받고 극도의 분노와 불안,좌절상태에 빠진 환자들에게 그들이 가족에게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살아온 삶이 얼마나 긍지로운 삶인지를 알게하고,가족과 친구사이의 묵혔던 미운감정과 아쉬움을 풀도록 해 아름답게 세상을 마감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가족이 없는 환자들의 경우엔 간호봉사자와 함께 배변을 치우는등 그들의 수발노릇도 함께 하며 호주머니돈을 털어 끼니와 간식을 마련해준다. 환자들이 온몸에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빨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해달라』며 울부짖을 때는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김할머니.몇년을 해왔어도 이들의 집을 방문하기 전에『성모님 나,울지 않도록 해주세요』하고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처음엔 세상의 모든 것에 마음을 닫고선 제가 찾아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요.그러던 이들이 나중에는 몇시간전부터 방문을 열어놓고 저를 기다릴때는 보람을 느낍니다』 김할머니가 호스피스봉사를 하게 된것은 강원도 용평군 용원중학교의 교장직을 지난 86년 정년퇴직하고 3년뒤인 89년 「자원봉사자 능력개발원」에서 호스피스교육을 받고 부터. 그러나 사실 김할머니와 환자들과의 인연은 지난 19 3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경기여고와 경성여자사범대학에 다니던 시절,당시 카톨릭 대학의 이재현신부님을 따라 다니며 늙고 연고자 없는 불치환자를 돌봐주는 일을 했던것이 일생동안 떨칠수 없었던 환자에 대한 연민의 시작이었다. 김할머니의 호스피스봉사자세는 카톨릭 회관 사회복지관(명동성당옆)에서 함께 일하는 87명의 젊은 가정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에게 항상 청량한 자극제가 된다. 『환자들에겐 제가 교장선생이었다거나 좀더 배웠다는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습니다.그냥 그들이 토해내는 괴로움을 들어줄 뿐이죠』 환자들에겐 그냥 「루시아 할머니」로 통하는 김할머니는 얼마전 장암을 앓다 세상을 떠난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낸다.『제가 가면 배를 쓸어달라고 자신의 불룩한 배에다 내손을 올리곤 했죠.간호사 출신인 며느리가 자신의 이불을 자주 크레졸로 소독한다며 전염병도 아닌데 그런다고 그토록 섭섭해했습니다.임종시에는 며느리에게 고마웠고 사랑한다는 말을 남긴채 아름다운 죽음을 맞았죠』 좀더 밝고 손쉬운 봉사일을 찾아보라는 자식들의 권유에도 불구,김할머니는 자신이 아파 더이상 거동을 못할 때 까지 이일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다른 이들을 위한 거창한 봉사가 아닙니다.나 자신의 죽음을 대비하는 「나를 위한 봉사」일 뿐입니다』 여러차례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다 「가정호스피스일이 홍보가 돼 환자의 보호자들이 자원봉사자들을 찾는 기회가 될것같다」는 주위의 설득에 마지못해 인터뷰에 응해준 김할머니가 하는 겸손의 말이다.
  • 영 전통춤 모리스댄스 복원

    ◎15세기 풍요기원 의식… 소멸 백년만에 재현 유럽의 섬나라 영국에서는 요즘 약 1세기 전에 거의 자취를 감춘뒤 관광포스터에서나 찾아볼수 있었던 모리스 댄스라는 전통춤의 복원운동이 활발히 일고있다. 꽃과 리본으로 장식된 화려한 중절모,깨끗한 와이셔츠에 십자반도를 두르고 다리에는 스타킹 위에 방울을 주렁주렁 매단 일단의 신사들이 야외풍경을 배경으로 펼치는 경쾌한 율동.아코디언,바이올린,콘서티나(아코디언과 비슷한 악기의 일종)가 어우러져 내는 포크음악에 맞춰 서로 빠르게 교차하면서 발뒤꿈치를 두드리기도 하고 나무막대기를 맞닥뜨리기도 하며 이따금씩 손수건을 꺼내 머리위로 흔들기도 한다.마치 어떤 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리스 댄스 춤꾼들의 모습이 클레이게이트,헤딩튼,애더베리,셔본 등의 작은 마을들에서 자주 목격되고 있다. 모리스 댄스는 그 기록이 1458년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깊은 뿌리를 갖고있지만 시대상황이 변하고 춤의 유래에 관한 해석이 달라짐에 따라 혹독한 수난을 당하다가 끝내 종적을 감췄던 이 나라비운의 전통춤이다. 이 춤의 유래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초기에는 영국에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 풍요를 기원하던 전통의식에서 파생된 고유의 춤으로 이해됐다.그 결과 이 춤의 장려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헨리7세 등 국왕들이었다.이들은 댄서들에게 재정보조를 해주고 왕궁에서 공연을 갖도록 배려했으며 상류층들의 후원을 적극 독려했다.이에 힘입어 모리스 댄스는 쉽게 대중화되어갔다. 그러나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댄서들은 시련을 맞기 시작했다.성직자들은 왕궁을 누비는 호화스런 차림의 이 춤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겼다.그리고 이에 맞물려 춤의 유래에 관한 해석도 명칭(Morris)에서 나타나듯 아프리카 북서부의 무어인들(Moorish)의 전통에서 파생된 외래춤이라는 쪽으로 바뀌었다.당시 댄서들은 얼굴을 검게 분장했는데 이는 모리스 댄스가 무어인의 춤이라는 해석의 유력한 근거가 되었다. 17세기 청교도혁명을 계기로 모리스 댄스는 마침내 불법화되고 댄서들은 음주,신성모독,춤의 난잡성 등을 이유로 재판까지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그 이후로는 음성적으로 명맥만 유지되다 그나마 세기말에 들면서 거의 사라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모리스 댄스가 부활의 기회를 갖게된 것은 작고한 음악사가인 세실 샤프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그는 1899년 이 춤을 목격하고는 복원을 결심,어린시절 이 춤을 추었거나 본적이 있는 80∼90대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증언과 자료를 수집했으며 이를 토대로 나중 포크댄스협회를 창설했다.요즘 이곳저곳에서 재현되고 있는 모리스 댄스는 이 협회의 고증과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들이다. 모리스 댄스는 아직은 다양한 직업과 연령층으로 구성된 소규모 마을사람들이 아마추어수준에서 재현해내는 동호인활동차원에 머물고 있다.그러나 일반적으로 남성춤으로 인식돼온 이 춤이 여성들에게도 급속히 확산되고있고 최근에는 국내뿐 아니라 홍콩,캐나다에서도 모리스 댄스 클럽이 결성되는 등 사라질뻔한 한때의 위기를 딛고 귀중한 전통 문화유산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 눈·빙판길 출발은 2단기어로(자동차백과)

    ◎급제동 위험… 엔진브레이크 활용을/체인감기 전륜구동형은 앞바퀴에 겨울철의 차량운행은 다른 계절보다 악조건이 많아 운전자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우선 체인과 스노타이어는 네바퀴 모두에 장착하는 것이 원칙이다.그러나 경제사정상 부득이 두개만 달아야한다면 전륜구동형(FF)은 앞바퀴,후륜구동형(FR)차는 뒷바퀴에 장착하는 것이 눈길이나 빙판길에서 그 효과가 뛰어나다.오르막길에서는 앞차의 미끄럼으로 인한 후진에 대비키위해 안전거리를 평상시보다 2배로 유지하고 저속(2단기어)운행을 해야한다. 또 겨울철의 교량과 터널은 일반 도로보다 얼음이 많이 얼고 옆바람이 매우 심한 곳.특히 다리의 시작과 끝부분의 요철부위,터널통과 직후의 노면등은 얼어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여기서는 심한 옆바람의 영향때문에 차량이 미끌어지기 쉬우므로 핸들을 놓치지않도록 꽉잡아야한다. 만약 체인과 스노타이어가 준비안된 상태에서 눈길이나 빙판길을 통과해야할 경우,타이어의 공기압을 평소보다 15∼20%정도 낮추어 노면과의 접지력을 높인다음저속으로 운행해야한다.눈길,빙판길에서는 2단기어로 출발해야 타이어가 헛도는 일을 예방할수 있다.2단출발도 힘들정도로 노면상태가 나쁠경우 흙,나무판자,수건등을 타이어 밑에 밀어넣어 미끄럼을 막는 방법이 있다. 겨울철이 노면은 어느 곳이 빙판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따라서 주행시에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평소보다 멀리 떼어 미끄럼으로 인한 제동거리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눈길,빙판길에서의 급제동은 매우 위험한 방법이다.푸트브레이크보다 저단기어로 감속하는 엔진 브레이크의 신속한 활용이 가장 올바른 제동방법이다. 도로상태등 모든 운행 여건들이 혹독한 겨울엔 무엇보다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일이 가장 위험하다.음주운전을 하면 본인은 물론 타인에게 더 큰 피해를 끼치므로 절대 피해야한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5)

    ◎매신의 수난과 저항/배설 상해투옥에도 항일필봉 건재/일제,영국과 손잡고 공작… 유죄 판결/양기택 등 민족언론투사들이 맥이어/정간 2회·압수 45회 맞서 고종퇴위 기도 등 폭로 일제의 탄압은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더욱 가속화 되었다.신문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민족지를 짓밟기 위한 술책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그것은 바로 대한제국으로 하여금 신문조례를 만들도록 하는 외교적 강압으로 나타났다.특히 을사보호조약 체결뒤의 언론탄압은 더욱 심한 양상을 띠었다.한반도 침략정책에 방해가되는 기사나 그 부당성을 비판하는 글을 결코 방관하지 않았다.그래서 신문을 압수하거나 정간시키는 동시에 편집인 문책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편집인 문책 일쑤 이 시기에 일제의 민족지에 대한 탄압은 황성신문의 정간및 주필 장지연의 구속사건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수 있다.그러나 민족언론탄압에 서슬 퍼런 칼을 갈았던 일제도 배설이 발행하는 대한매일신보에 대해서는 손을 쓸수가 없었다.치외법권의 보호가 늘 걸리적 거렸던 것이다.따라서 일제의 사전검열없이 발행되기는 대한매일신보가 유일한 신문으로 남게 되었다.그 논조는 말할나위도 없이 반일로 일관된 예봉이기도 했다. 핍박과 강압을 외면한채 강경한 논조를 굽히지 않는 신보.그 존재는 마침내 통감부의 집요한 탄압의 대상이 되고만다.신보를 무력화 시키려는 일제의 탄압은 외교경로를 통한 배설의 추방공작으로부터 시작 되었다.배설에 대한 추방공작은 이미 1905년 9월에 제기 되었으나 통감부가 본국정부에 정식으로 요청하기는 이듬해 7월부터이다.이에따라 일제는 본국외무성을 통해 동경주재 영국대사에게 배설을 추방하거나 신보를 폐간토록 요구하고 나섰다. 일제의 끈질긴 요구에 따라 영국측은 1904년에 제정된 「청국및 한국에 대한 추밀원령」을 적용키로 했다.그러나 배설을 제재하기에는 그 근거가 미약했다.그래서 제5조를 개정하여 1907년 2월1일 이를 공포하기에 이른다.개정된 내용의 골자는 『영국국민과 본령시행구역내에 있는 영국과 친선국의 소요 혹은 그 국민과의 사이,그리고 청국정부와 그 국민 또는 한국정부와 그 국민 사이에 불화를 도발하려하는 사항은 본조에 규정하는 선동적인 사항으로 간주한다』는 것이었다. 배설과 신보를 제재하려는 일제의 책동에 영국이 동조한 것이다.그러나 배설은 일제의 억압에 결코 굴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일제에 대한 비판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그의 선언은 신보의 한글판 7월17일자 1면 머리에 『일본이 황제를 퇴위시키고 황제를 일본으로 건너가 사죄케 하려한다』는 폭로기사로 반영됐다. 이어서 이튿날짜 신보는 논설을 통해 『일본이 한국의 황실을 강핍하고 대신을 종으로 부리며 백성을 짐승으로 여기는 행동이 극도에 달했다』고 통렬히 비난하고 나섰다.날이 갈수록 강도 높은 논조로 맞서는 신보의 자세에 통감부는 급기야 1907년 10월 서울주제 영국총영사 헨리 코번에게 배설의 처벌을 요구하는 소장을 제출,외교적 탄압을 본격화 한다. 배설은 10월14일 서울주재 영국총영사관에 설치된 영사 재판정에 출두하지 않을 수 없었다.재판이 열린 다음날 코번은 배설의 유죄판결을 선고했다.신보의 논설이 추밀원령 제83조 공안을 해칠 우려가 있는 사항에 해당된다 하여 6개월간의 근신에 처한 것이다. 배설에 대한 일제의 책동은 이같은 결과를 가져왔으나 사태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특히 배설의 근신기간이 만료된 직후부터 신보는 더욱 강경한 논조로 돌아섰다.민족주의운동을 탄압했던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를 이등박문에 비유한 「백매특날이 불족이압 일이태리」며 「정부당국자의 기량」등의 글로 일제를 규탄하고 통감부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 대한제국의 내각을 신랄히 비판했다. 이렇게 되자 통감부는 또 다른 탄압의 칼을 빼어들었다.1908년 4월29일 이완용내각으로 하여금 신문지법을 개정하여 한국에서 발행되는 외국인의 신문까지도 발매·반포금지 또는 압수할수 있도록 한것이다.광무신문지법이라고도 불리는 신문지법(1907년 7월제정)은 신문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벌칙이 골자로서 민족지를 탄압하는데 적용된 악법이라 할수 있다.법이 처음 제정 공포된 때에는 한국에서 외국인들이 발행하는 신문과 해외에서 교포들이 발행하는신문에 대한 규제조항이 없어 이를 새롭게 보완한 것이다. 신문지법을 이처럼 개정토록 한데에는 신보탄압이 근본목적이었으나 반일논조의 해외교포신문들이 국내에 유입되는것을 막자는 계략도 포함됐다. ○이완용내각 통박 통감부는 신문지법이 개정된 직후 곧바로 행동을 개시,신보를 압수하기 시작했다.5월1일자 논설 「불필랑경」을 비롯,5월13일자「한국내의 일본」,5월16일자「학계의화」가 통감부 기휘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신보는 잇따라 압수됐다.당시 일제가 집계한 신보압수건수를 보면 1908년 한해동안만도 국한문판 8회,국문판 7회에 이른다.일제는 이같은 신문압수방법외 신보의 구독을 방해하는 행적적 탄압도 병행했다. 뿐만 아니라 통감부 기관지 서울프레스를 동원하여 신보의 기사와 논설을 비난하는등 다각적인 탄압을 자행했다. 그러나 신보의 논조는 좀체 수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일제는 배설에 대해 어욱 강력한 제재를 가하기 위해 치밀한 사전공작을 벌였다.그리고 영국에 대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외교공세를 펴기 시작했다.이른바 양동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영국은 마침내 배설로 인해 야기된 문제들을 해결키로 하고 배설을 재판에 회부한다는데 동의했다.이렇게 해서 배설의 2차재판은 1908년6월15일부터 3일동안 서울의 영국총영사관에서 열리게 됐다.재판을 진행하기위해 상해고등법원의 판사 본과 검사 윌킨슨이 서울에까지 왔다.이는 한·영·일 3국이 관련된 동양역사상 처음 있는 특이한 재판이었다. 이 재판에서 판사는 배설에게 3주일간의 금고형과 6개월간의 근신을 언도했다.유죄판결을 받은 배설은 잠시 한국을 떠나 상해에서 복역하게 됐다. 그러나 배설이 신보를 떠나 옥고를 치르고 있는 동안에도 이 신문의 항일논조는 변함없이 이어졌다.양기탁을 비롯한 민족언론 투사들이 본래부터 신보의 제작을 주도해온 때문이었다. 배설의 재판직후 통감부의 신보에 대한 감시와 탄압 또한 집요하게 지속됐다.7월2일자 논설 「확실한 언론」을 치안방해로 규정,이날자 신보를 발매금지 처분하는 한편 또 다른 탄압계획을 실행했다.신보사의 총무 양기탁을 국채보상의연금 횡령혐의로 전격 구속한 것이다. 신보의 제작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던 양기탁을 구속함으로써 신보의 제작에 타격을 가하는 동시에 전국 규모의 민족운동이던 국제보상운동의 중심기관을 와해시키려는 2중효과의 탄압책략이었다.궁국적으로는 신보를 중심으로한 항일민족세력에 대한 탄압이었다.일제의 신보에 대한 탄압은 이 신문이 한일합방 직후 통감부에 매수되기까지 줄곧 이어져 국한문판 24차례,국문판 21차례의 압수와 2차례의 정간처분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있다 항일구국지 대한매일신보는 이처럼 끝없는 수난과 저항으로 점철된 역사를 살았다. 정진석저)
  • 일 새달 발표 정신대 2차보고서/「강제징용」 입증자료 제외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 정부는 내달중 종군위안부에 관한 제2차 보고서를 발표할 방침이지만 이 보고서에도 『구일본군이 종군위안부를 강제 연행 했다』는 부분은 포함되어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요미우리(독매)신문은 24일 일본 정부가 오는 2월까지 종군 위안부에 관한 2차 조사 보고서를 발표할 방침을 굳혔다고 보도하고 이번 조사에서도 화란인 위안부에 관한 자료 등은 처음으로 발견됐으나 구일본군이 강제 연행 등 종군 위안부에 관여했다는 사실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 일본 정부는 오는 2월 하순에 발족하는 김영삼차기정부와 종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실무 협의를 벌일 예정이지만 『구일본군이 종군 위안부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진상 규명은 불충분하다』는 것이 한국측 입장이어서 교섭은 난항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종군 위안부에 관한 제 2차 조사에서는 외무성 2건,방위청 16건을 비롯 법무성,국립 공문서관 수건씩 등 30건에가까운 새로운 자료가 발견됐으며 이 가운데는 인도네시아에서의 화란인 위안부 재판 자료를 포함한 민간 위안소에서 구일본군이 성병검사를 실시한 자료 등이 들어 있으나 「강제징용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는 나타나지 않았다.
  • 내구소비재 품질 보증제 정비 시급

    ◎소보원,90·91년 피해구제신고 5,322건 분석/품질불만이 73%… 80%가 구입 1년내 발생 품질보증제도의 정비가 시급하다.최근 국민소득수준의 향상과 제조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자동차와 세탁기등 내구소비재의 보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품질과 관련된 소비자들의 불만 또한 높아가는 추세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90,91년 2년간 접수된 주요내구소비재 17개품목의 소비자피해 구제신고를 청구이유별로 통계낸 결과에 따르면 품질과 관련한 소비자피해 건수가 전체 접수건수 5천3백22건중 72.9%인 4천29건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또 제품구입일로부터 피해구제접수일까지의 기간현황(91년도 품질관련현황)분석에서는 전체 소비자피해 2천1건중 80.4%인 1천6백9건이 상품구입후 1년이내에 집중되어 있었다. 따라서 소비자보호원 관계자는 시중 유통제품의 통상적인 품질보증 기간이 1년이라는 점을 감안할때 국내 제조업체의 품질관리에 문제점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접수건수가 총4백59건으로 가장 많았던 자동차의 경우 1년내에 고발된 것이 3백89건으로 84.8%나 차지했??.죈갯? P PAp 씸C ?? 019 ????????)은 처음 구입한지 7일도 안돼서 품질에 결함이 발견됐다. 이밖에 1년내 피해구제 접수율이 높았던 품목은 ▲전기팬히터 1백%(14건) ▲전기장판 91.7%(11건) ▲카세트라디오 91.6%(44건) ▲전기밥솥 90.7%(79건) ▲무선전화기 90.3%(1백3건) ▲진공청소기 87.5%(7건) ▲에어콘 86.4%(83건) ▲전축 84%(21건) ▲전자가스레인지 83.3%(35건) ▲VTR 82.9%(1백12건) ▲TV 80.2%(89건)등이다. 이는 국내 제조업자들의 품질보증이 상품의 내구성과 품질수준을 사전에 확보하지 않은채 실시하고 있어 야기되는 결과라는 설명이다.1년이내에 고장이 발생하는 것은 설계기술로부터 유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4년이내는 생산기술,그 이후가 제품의 마모및 노후화에 따른 고장이라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
  • 미리 준비한듯 검사 질문에 즉시 답변/정주영대표 검찰조사 이모저모

    ◎정 대표 취재카메라에 받혀 이마 상처/예상밖 장시간신문에 당직자들 초조/검찰서 나와 병원치료후 자정쯤 귀가 국민당 정주영대표가 재소환 예정 소환일을 하루 앞당겨 검찰에 자진출두한 15일 담당검사들이 정대표를 상대로 하오10시40분까지 조사하는 동안 청사주변에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함께 나온 국민당소속의원들과 당직자들은 예상보다 조사시간이 훨씬 더 길어지자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앞서 정대표는 이날 상오 10시쯤 최고위원·당직자 연석회의를 끝내고 막바로 검찰로 출발,상오10시24분쯤 성둘4초7782호 검은색 쏘나타승용차편으로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에 도착. ○…정대표는 곧바로 904호로 올라가려 했으나 도착직후부터 취재·카메라기자들의 질문과 플래시세례를 받자 몹시 당황하는 모습. 정대표는 이 과정에서 현관 계단에서 발을 헛디딘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이마를 부딪쳐 이마가 2∼3㎝가량 찢어지면서 피가 흐르자 『이게 뭐야…. 피까지…』라며 역정을 냈으며 비서진이 건네준 손수건으로 상처부위를 감싼채 난감해했다. ○…서울지검은 이날 상오9시20분쯤 국민당 정대표의 자진출두소식이 전해지자 당초 검찰이 예상한 날짜가 빗나간 탓인지 몹시 허둥대는 모습. 검찰관계자는 정대표에게 「16일 상오 검찰에 출두토록」 2차 소환장을 발부한지 하룻만인 이날 상오 10시쯤 『정대표가 오는 살오중 자진출두한다』는 소식을 기자들로부터 전해듣고는 『정대표가 특유의 허허실실 전법을 쓴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지난 89년1월 일해재단사건과 이후 검찰에 두번째 나온 정대표는 12시간여에 걸친 조사를 마치고 이날 하오 10시40분쯤 12층 특수1부 김종인검사방을 나와 현관로비에서 잠시 사진기자들의 촬영에 응한 뒤 곧바로 서울잠실의 아산재단 서울중앙병원으로 직행. 정대표는 하오11시쯤 병원에 도착해 간단한 물리치료와 병원측이 마련한 저녁식사를 마친뒤 하오11시40분쯤 청운동자택으로 갔다. 정대표는 상오에 다친 상처를 1회용반창고로 댄채 다소 피곤한 모습이었으나 조사를 끝냈다는 홀가분한 표정이 역력했으며 간혹 웃음을 띠는 여유를 보이기도. 정대표는 식사를 마친뒤 밤 11시37분 병원을 떠나 청운동 자택으로 갔다. ○…정대표가 상오에 출두과정에서 벌어진 취재진들과의 몸싸움과정에서 상처가 나 항의를 받은 검찰은 정대표가 나오기전 현관에 붉은색 노끈으로 임시가드레일을 설치하고 직원을 배치하는등 비난의 빌미를 없애려는 모습. 정대표가 나가기 1시간30분전인 하오9시쯤에 담당 특수1부 이종찬부장검사는 직접 기자실로 내려와 대기중인 사진기자들에게 『취재중 질서유지를 부탁한다』며 당부하기도. ○…하오10시45분쯤 정대표가 출발한 뒤 변정일대변인은 검찰의 수사내용과 정대표의 답변요지를 설명,검찰정보와의 차이를 없애려고 애쓰기도. 변대변인은 비자금 국민당유입문제에 초점을 맞춰 『검찰이 최수일현대중공업사장의 진술을 토대로,모두 6백64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그중 5백5억원이 국민당에 유입됐는데 그 돈의 출처와 금액에 대해 주로 물었다』면서 『정대표는 이 질문에 대해 『내 주식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라고 이병규특보에 지시한 적은 있으나 그 돈이선박판매대금이었다면 그것은 최사장이 과잉충성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언. ○…검찰은 정대표가 이날 혐의사실을 대부분 부인하자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다소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 표정.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정대표가 주식매각대금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선거기간중이던 당시 현대계열사의 주식을 살 사람이 어디 있었겠느냐』며 『정대표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없는 것』이라고 반박. ○…정대표를 상대로 조사가 진행된 검찰청사 9층과 12층 검사실 주변을 오가며 촉각을 곤두세운 국민당의원들은 기자들에게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묻는가 하면 정대표의 검찰진술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을 곁들여 일일이 설명하는등 분주한 모습. ○…대통령선거법위반 혐의로 정대표를 조사한 서울지검 공안1부 김수민검사는 정중한 예의를 갖추면서도 정대표에게 「대표」또는 「회장님」등의 호칭을 아예 사용하지 않았다는 후문. ○…공안1부 임휘윤부장검사는 보도진이 정대표의 조사태도에 대해서 묻자 『공안부에서 조사를 끝낸 뒤 다시 특수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정대표가 수사관계자들에게 친절하게 조사해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더라』고 전언,조사 분위기가 비교적 좋았음을 암시. ○…정대표는 김수민검사실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 특유의 언변으로 검찰측 신문에 응했다고 검찰관계자가 귀띔. 이 관계자는 『정대표가 검사의 묻는 말에 평소답게 시원시원한 어조로 숨김없이 답변을 했다』면서 『미심쩍은 부분을 검사가 추궁할 때는 다소 막힐 때도 있었지만 미리 대답을 준비해온 듯 대체로 신문이 빨리 진행됐다』고 부연. ○…공안1부 김수민검사실에서 대통령선거법 위반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은 정대표는 이날 하오5시5분쯤 현대중공업비자금 유출사건에 관해 조사를 받기 위해 귀빈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청사 12층 1210호 서울지검 특수1부 김종인검사실로 이동. 이와관련 검찰 관계자는 『정대표가 김수민검사실에서 받은 조사는 하오4시30분쯤 사실상 끝났으나 정대표가 진술서에 서명하는 작업이 30여분 이상이나 걸리는바람에 하오5시가 넘어서야 12층으로 이동하게 됐다』고 전언. ○…변정일대변인은 이날 밤늦게 국민당사에 들러 『검찰의 조사를 받고나니 속이 시원하다는 것이 모두의 느낌』이라며 『2차소환은 없다고 검찰측으로부터 확약받았다』고 오랜만에 환한 웃음. 변대변인은 또 『내일(16일)정대표의 미국행에 지장은 없을 것』이라며 출국예정에 변함없음을 강조한뒤 『아마 정대표가 내일 당에 출근,부재중 당무를 총괄할 사람을 지정할 것』이라며 정대표의 정치의욕이 여전함을 시사.
  •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요덕15호 북한정치범수용소:8)

    ◎생과 사의 경계선:다/배급 「강냉이쌀」엔 쌀한톨 없어/옥수수알 빻은것… 하루 3백50g씩/입자 굵어 설사병 일쑤/부식은 시커먼 소금뿐 우리들이 남한에 귀순하여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일은 끼니마다 「흰쌀밥」을 실컷 머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북한주민들의 최대 소원이 「이팝(흰쌀밥」에 고깃국 먹으며 좋은 옷 입고 기와집에 한 번 살아 보는 것」이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고 언제나 굶주려야 하는 곳.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흰쌀밥과 고기는 물론 갖가지 음식을 마음껏 골라먹을 수 있는 남한의 생활상을 보고 놀란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바깥의 주민들의 생활이 그렇다면 「정치범 수용소」의 실정은 어떠하겠는가. 귀순한뒤 여러번 국내외 기자들과 회견을 가졌다.그때마다 우리들은 답답했다.기자선생들이 북한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수용소의 「강냉이 쌀」 이야기만해도 그렇다.어떤 기자는 『강냉이 가루와 쌀의 혼합비율이 얼마 쯤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그 질문을 받았을때 오히려 무슨 말인지 몰라어리둥절했다. 「강냉이쌀」이란 옥수수 가루와 쌀을 섞은 것이 아니라 강냉이 알맹이만을 굵게 빻은 것을 말한다.「쌀」에 대한 그리움탓에 북한주민들은 밥을 지어먹는 어떤 곡식에도 「∼쌀」이라고 이름 붙인다.남한서 말하는 쌀은 「입쌀」이라고 구분 지어부른다. 요덕 정치범수용소측이 죄수들에게 주는 주식은 하루 1인당 3백50g의 강냉이쌀이 전부이다.부식은 시커먼 천일염과 밀기울로 만든 된장 뿐이다. 이 강냉이 쌀은 입자가 굵은데다 겉부분에 있는 딱딱하고 끈매끈한 멜라민 성분때문에 잘 익지도 않고 소화도 잘 안된다.수용소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이 거의 모두 목숨까지 잃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용소 사람들은 설사병을 피하고 소화를 돕기위해 쑥·씀바귀·두릅·가죽나무잎을 비롯한 먹을 수 있는 풀잎은 모두 뜯어와 강냉이 쌀과 함께 섞어 죽을 쑤어 먹는다.그러나 봄부터 가을까지는 풀을 뜯어 먹을 수 있지만 겨울철 5개월여동안은 그나마 구할 수 없다.수용소 사람들은 가을철 무·배추밭 노역을 서로 맡으려고 혈안이 된다.무·배추를다듬을 때 버리는 잎파리를 확보,시래기로 말려 겨울철에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미처 시래기를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남의 집 처마에 걸린 시래기를 밤에 훔쳐다 먹는다.들키는 날엔 주인 가족들로부터 뭇매를 맞거나 보위원에게 넘겨져 심한 구타를 당하거나 강냉이쌀 급식량이 한 달씩 절반으로 줄어드는 벌을 받는다. 일년 열 두 달 풀잎을 넣고 끓인 시퍼런 강냉이쌀 죽을 짠 된장 반찬과 함께 먹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끼친다. 수용소 사람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도룡용·개구리·개구리알·뱀·쥐등을 닥치는대로 잡아먹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일년 내내 고기 한점 목먹는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펠라그라병에 걸려 죽지 않기 위해서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본능만이 있을 뿐이다. 독신자세대들에게 제일 난감한 일은 강냉이 알곡이 통째로 삶아져 나오는 때였다.특히 애벌로 적당히 삶은 설익은 강냉이 알이란 정말 먹기 힘들었다.때문에 독신자세대는 식사하러 갈때 손수건같은 헝겊을 반드시 갖고 갔다.강냉이 알이나 갱냉이쌀밥을 이헝겊에 싼뒤 바닥에 놓고 발로 짓눌러 으깨어 먹기위해서였다. 남한에서는 우리가 먹던 종류의 강냉이를 사료로만 쓰고 식용 강냉이는 따로 있다고 한다. □특별취재반 김만오(정치부차장) 양승현(정치부) 최철호(사회1부) 문호영(정치부) 송태섭(사회1부)
  • 대형건물 17% 소방시설 미비

    청주 우암상가아파트의 대형참사로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전국 대도시의 특수건물중 17%가 방재시설이 불량하거나 이를 아예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한국화재보험협회에 따르면 최근 서울 등 전국 7대도시의 6층이상이고 연면적 1천㎡ 이상인 특수건물 1만5천8백35건을 대상으로 화재 안전점검을 실시한 결과 방재시설을 설치한 건물은 전체의 96.2%였으나 상태가 양호한 건물은 82.8%로 집계됐다.
  • 정치인과 돈(외언내언)

    민자당의 김영삼대통령후보는 1일밤 관훈클럽토론회에서 흥미로운 신변 이야기 한토막을 털어놓았다.자신은 지금까지 예금을 해본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집칸 마련이나 재산증식을 위해 예금통장 2,3개쯤 갖고있기는 예사인 도시민들에겐 다소 기이하게조차 들리는 이 얘기를 그는 두차례나 거듭했다.한번은 정치자금에 관한 대목에서고,다른 한번은 재산공개에 관한 언급에서다.둘 다 자신의 청렴과 도덕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정치자금 수수와 관련,『그동안 동지들로부터 여러 도움을 받은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한뒤 『그러나 돈이 생길때마다 당과 수고하는 동지들에게 전달했다.오늘 이 시간까지 예금 한번 한적이 없다』고 밝혔다.자신은 정치자금이 지나가는 정거장 역할만을 했을뿐이지,그 과정에서 「떡고물」을 챙기거나 축재한 일이 결코 없다는 얘기다. 그는 또 자신의 재산내역에 관해 언급하는 가운데 『골동품과 유가증권은 관심도 소유해본적도 없고 예금 역시 해본적이 없다』고 말했다.이 경우의 예금은 현금재산을 뜻하는 것으로,상도동 자택등 최근 공개한 수건의 부동산 이외에 다른 재산이라곤 없다는 얘기였다. 사실 40년이란 긴 정치역정을 가진 정치인치고 YS처럼 돈과 관련된 스캔들이 없는 사람도 드문것 같다.그러한 덕목이 없었더라면 아마 그는 그동안의 모진 시련과 역경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국민들의 뇌리에서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이점은 DJ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깨끗한 정치의 구현에 있어 지도자의 청빈은 아주 중요한 요소다.그러나 그것만으로 깨끗한 정치가 구현된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정치와 돈의 관계는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래야만 정경유착과 의혹의 소지를 줄일수 있기 때문이다.두김씨의 재산공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돈줄은 아직 베일에 싸여있다.두김씨가 돈줄의 얼굴까지 떳떳이 드러낼때 진정으로 깨끗한 정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조순환의원 소환/경찰,선심관광 조사

    서울경찰청은 27일 선거법위반혐의로 출석요구서가 발부된 국민당 서울시지부장 조순환의원이 자진출두함에 따라 조사를 벌였다. 조의원은 이날 조사에서 『국민당 서울시지부 산하 각지구당들이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13일까지 1백30차례에 걸쳐 유권자 4만여명을 울산·서산등지로 산업시찰을 시키고 수건등을 제공한 것은 서울시지부 사무처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당시 나는 국회가 열리고 있어 관여치 않았다』고 혐의사실을 부인했다. 한편 서울강서경찰서는 27일 민자당 강서을 지구당 남재희위원장을 대통령선거법위반혐의로 입건,조사하고 있다.
  • 환경마크 품목 확대/재생비누 등 8종 추가지정

    환경마크대상품목이 내년부터 12종으로 늘어난다. 환경처는 25일 환경에 대한 품질인정제도인 환경마크제를 확대,내년 1월1일부터 현재 4종에서 8종을 추가지정해 시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새로지정되는 품목 8종은 ▲천기저귀 ▲석면을 사용하지 않는 브레이크라이닝 ▲마개가 붙은 알루미늄 캔제품 ▲부엌싱크대용 거름망 ▲무표백 무염색수건 ▲물절약형수도꼭지 ▲폐면을 이용한 포장재 ▲폐식용유를 사용한 재생비누등이다.
  • 손해율 낮은 건물/화재보험료 할인

    내년부터 화재보험에 가입한 건물 가운데 손해율이 낮은 「우량물건」은 보험료가 할인된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손해보험회사들은 최근 화재보험 풀(POOL)제도의 해체로 특수건물의 화재보험 가입실적이 낮은데다 시장개방으로 외국사의 화재보험시장 참여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우량물건의 보험료를 내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화재보험 가입대상 건물중 보험가입금액이 20억원이상이고 과거 5년동안의 손해율이 40%미만인 공장등에 대한 화재보험료를 내년초부터 인하키로 했다.
  • 고속성장 30년… 「구조조정터널」도 통과/우리경제 위상과 과제

    ◎세계11위 교역국… 1인GNP도 80배로/정확한 현상진단·노사협력이 미래 좌우 세계가 놀라워할 정도의 고속성장을 계속해 왔던 우리경제가 최근 수년동안 주춤거리고 있다.경쟁력상실로 국제수지가 적자이며 국민들도 활기를 잃고 일하기 보다는 소비를 즐기고 있다.성장은 둔화되고 기업들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서울신문창간47주년을 맞아 우리경제의 성장과정과 현재의 위상을 점검하고 재도약을 위한 처방을 알아본다. 30대이상의 세대가 갖는 유년의 회상은 배고픔으로 요약된다.쑥밥이나 보리·나물죽,그것도 안되면 굶었다. 성장환경에 따른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90%이상의 그 세대의 유년은 먹을 것이 없었던 경험을 갖고 있다.이들이 장년이 된 지금 통계청은 한국인이 5가구당 1대꼴로 승용차를 갖고 있다는 통계를 내놓고 있다. 한국의 성공은 그러나 89년이후 전국을 휩쓸었던 과소비열풍과 근로의욕 감퇴,높은 인플레,국제수지악화에서 광채를 잃기 시작한다.한국경제는 계속해 순항할 수 있는가.정부는 현재의 어려움은 구조조정의 여파이며 우리가 근면과 성실함을 되찾는다면 시간은 우리편이라는 입장에 있다.일부 외국언론을 비롯,비관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한국이 성장잠재력을 상실한 것으로 간주한다. 우리의 30년에 걸친 성공담은 시장경제를 시작하는 구공산권국가,오랜 실험에도 저개발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나라들에 동경의 대상으로 남아있다.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에 실제비중이상의 큰 관심을 기울이는 배경중의 하나도 개발경험을 배우자는데 있을 것이다. ○승용차 5가구당 1대 해방전해인 44년 한국인 기술자수는 1천6백32명으로 기록돼 있다.총기술자는 8천4백명쯤됐지만 80%가 일본인이었다.남북한의 분단으로 연간 98만8천㎾였던 전력생산량은 남한에 불과 8%만이 남겨졌다.그런속에서 한국경제는 일제로부터 독립해 자립의 길을 시작했었다. 이른바 절대빈곤의 시대.절대빈곤은 70년대까지 계속돼왔다.납작한 초가집,절량농가,우글거리는 실업자,사회상을 묘사하는 이런 단어들은 배고픔이란 말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시대의 실업률통계는 의미가 없다.농촌에는 장정들이몰려있었지만 자체식량을 해결치 못했다. 62년 1차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하면서 정부와 국민은 배고픔을 해소하려는 구체적 노력을 시작한다.그해 1인당 국민소득은 87달러로 나타나 있다.국민소득통계가 시작된 53년은 67달러,55년은 65달러,60년은 79달러다. 60∼70년대 국민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일했다.일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했다.그 시대를 일관했던 정치형태가 어떤 것이었던 정부와 국민이 땀흘려 일한시대이며 그 결과는 「한강의 기적」으로 묘사됐다.배고픔에서 탈출하려는 의지로 충만했으며 농촌에서 입을 해결하지 못한채 빈둥대던 장정들은 산업역군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탈바꿈한다.추석같은 명절에 도시의 공장으로 나간 아들·딸들이 정종병을 안고 고향들길을 걸어오던 풍경은 60년대와 70년대 한국농촌을 묘사할때 뺄 수없는 주요한 구성요소다. ○88년부터 침체 국면에 월남참전,중동특수건설경기에의 참여,수출입국의 구호와 이의 구체화를 통해 70년대 후반들어 마침내 우리경제는 배고픔과의 오랜 싸움을 끝냈다.국민모두의 피와땀으로 일군 「자랑할만한값진 성과」였다.75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5백94달러,80년에는 1천5백92달러로 높아졌다. 91년현재 1인당 국민소득은 6천4백98달러,61년대비 꼭 80배가 늘어났다.교역규모면에서 세계11위가 됐다.정부관리들이 『대단한 나라가 됐다.그런데도 아직 우리국민들은 자신들이 약한나라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불평할만큼 큰 나라로 바뀌어있다. 문제는 우리경제의 성공이 계속될 것이라는 징후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데 있다.한 외국언론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비꼰 적이 있었다.88년이후 확실히 우리경제는 웃음거리였다.국민과 기업 모두가 흔들렸다. 88년이후 근로자임금이 1백7%가 오르는동안 노동생산성은 46%밖에 늘지않았다.과소비확산으로 물가는 4년동안 34·5%가 상승했다.같은 기간동안 민간소비는 매년 10%이상씩 폭발적인 증가세를 나타냈다. 높은 임금과 물가상승,낮은 노동생산성은 당연히 수출부진을 가져오게 돼있다.한국제품은 가격과 기술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다.그러나 과소비는 수입을폭발시켰다.당연한 결과로 국제수지는 적자의 늪으로 깊숙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국민들은 근면과 검소,지난 30년간 한국경제의 성공기반이자 한국인의 주요한 덕목들을 일시에 상실했다.샴페인을 들먹이며 외국언론들이 한국경제에 대한 비관적 견해들을 내놓은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최근 수출회복세 보여 한국경제는 지난해말부터 이른바 안정화정책을 통해 물가를 잡고 수입을 억제하며,임금안정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수출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수출은 10월말현재 지난해대비 9·6%,수입은 1·6%증가의 바람직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대신 성장률은 6%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성장잠재력의 기준인 설비투자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않는 상태다. 침몰의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만한 징후는 여전히 약하다. 현상의 정확한 진단과 바람직한 정책의 선택은 정부의 책임일 것이다.그러나 그보다 더 큰 역할이 주어진 것은 근로자와 기업이다.이들은 아직 우리경제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지않고 있다.구조조정의 진통을 겪고 있는 한국경제는 지금 재도약이냐,이대로 주저앉을 것이냐는 기로에 서있다. ◎“질적 내실화로 재도약을”/경제회복위한 전문가 처방/“일관성있는 안정화정책 펴가야”/장승우 기획원경제 기획국장 지난 수년간의 우리경제의 흐름을 돌이켜보면 우리경제의 재도약은 종래와 같은 양적인 팽창보다는 질적 내실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그동안 약화되어 온 경쟁력과 체질을 회복·개선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민주화와 국제화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선진경제질서 발전이라는 미래지향적 과제를 염두에 둘때 더욱 그러하다. 질적 내실화를 통한 재도약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무엇보다도 일관성있는 안정화노력의 지속을 통하여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안정기조를 굳게 다져야 한다.이로써만 경제체질이 강화되고 재도약을 위한 힘이 축적될 수 있다. 전세계적인 기술경쟁에 대비하여 기술혁신을 통한 산업경쟁력 강화에 범국민적인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또한 경제전반에 걸친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줄이고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경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해야한다. ◎“정책기조 안정에서 성장위주로”/구석모 한국경제연 부원장 수출감퇴,그리고 장기화되는 경기침체와 매일 늘어가는 기업도산은 우리경제가 성장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무한한 성장잠재력(우수한 인적자원)을 가진 우리경제를 침몰의 위기로 몰아넣은 주인은 잘못된 정책의 운용과 인식에 있다. 경제를 살리는 길은 정책기조를 성장지지정책으로 전환하는 일이다.1인당 소득 2만불이 넘는 미국에서도 대통령당선자 클린턴은 미국경제를 「성장하는 경제」로 만들겠다고 선언하였다.5천달러수준의 우리경제에서 왜 성장을 지지하는 정책을 부정적으로 백안시하는가? 성장정책의 핵심은 인력,자금,기술등 경제자원을 기업과 산업현장에 몰아주는 일이다.이를 위해 모든 정책수단이 동원되어야 하고 이를 가로 막는 장애물,특히 기업활동에 대한 정부규제와 개입이 철폐되어야 한다.이러한 정책과제가 꾸준히 추진되면 우리경제의 활력과 경쟁력은 되살아 날 것이다. ◎“획기적인 경제체질개선책 필요/곽상경 고려대교수 1인당 GNP가 7천달러를 넘고 인력난과 고임금이 팽배한 우리나라의 경제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첫째,경제의 체질개선이 획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생산양식이 노동절약형·자본집약형·기술집약형 그리고 지식집약형으로 바뀌어야 한다.체질개선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산자가 도태되어도 감수해야 한다.둘째,개방이 좀더 과감히 실행되어야 한다. 셋째,기술진보가 가속되어야 한다.기술이 급진적으로 향상되기 위해서는 기술투자·기술교육·기술도입·기초과학연구·산학협동 등을 위한 지속적인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넷째,국민의식이 새로워져야 한다.편협한 자기중심의 정체감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개혁과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다섯째,합리적이고 일관된 경제정책이 강력하게 시행되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졸렬한 여론에 좌우되는 정책이 아니라 경제원리에 입각한 정책이라야 한다. ◎“각자 맡은분야 경쟁력을 키워야”/이필곤 삼성물산 부회장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실제로 수출을 하고 있는 기업가라면 우리제품의 경쟁력에 문제가 있음을 절감할 것이다.자원이 없고 국내시장이 협소한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발전의 주된 원동력인 수출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국제경쟁에서 밀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내 시장개방까지 확대되어 우리의 경제는 더욱 어려워 지고 있다. 우리경제가 어려움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해결이 잘 안되는 것은 아마도 다같이 어렵다고 이야기는 하면서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앞장서려고 하지 않은데 있는 것같다.과거 우리경제가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잘 살아보자는 국민의식과 왕성한 기업가 의욕,그리고 근로자의 근면성 때문이었으며 모든 원리에 앞서 경제 원리가 통용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는 것은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자각이 필요하다.정책의 결정도 기업가의 경영도 근로자의 사고도 각자가 맡은 분야의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 소비심리학(외언내언)

    한 백화점이 실험을 했다.두대의 계획상품 판매대를 설치하고 한대에는 『레이스 손수건 기말 할인판매.1장에 1천원』이라고 소개한 전단을 붙이고,다른 한대에는 『스위스에서 수입한 아름다운 레이스 손수건 1백장 한정판매 1장당 5천원』이라고 전단을 써붙인 뒤에 각각 손수건을 진열했다.물론 양쪽의 물건이 같은 레이스 손수건임은 말할 것도 없다.그러자 「기말세일」인 1천원짜리는 그냥 쌓여 있는데 「스위스 수입상품」이라는 선전이 붙은 손수건은 눈깜짝할 사이에 팔려나갔다. 이것은 흔히 인용되는 마케팅 이론의 예문이다.수입이라면 뭔가 좋은 물건일 것이라는 기대심리 때문에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값은 되도록 비싸야 믿고,물건이 달린다고 해야 허겁지겁 달려든다.우리에게도 그런 현상이 너무 많다.가능한 한 값을 높이고 바가지를 왕창 씌우는 것이 수입품의 상술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실례가 나왔다.사치품의 수입가격을 조작한 20개 회사가 적발되었는데 대개가 10%이상을,개중에는 3·6배까지 부풀려서 신고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이수입가를 기준으로 5∼6배의 판매가격으로 팔아 온 것이다.그러니 「수입」이라는 딱지만 붙이면 다섯배쯤을 주고라도 허겁지겁하는 소비자가 아직도 얼마든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철없고 소견없는 소비자를 위해서는 바가지라도 씌워 손해를 보게 하는 것도 괜찮겠다.그렇기는 하지만 우리도 이제 국제시장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모든 상품의 가치 기준인 가격체계를 상인의 이기적 속성으로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소비자로 하여금 정당한 안목으로 품질을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어 값과 품질에서 우리 것이 떳떳이 경쟁력을 지닐 수 있게 해야한다.악덕 상업주의는 극복되어야 한다. 허영때문에 수입품에 빠져드는 소비자의 천박성은 일종의 병과 같아서 낫기도 힘들다.계속 속으며 불이익을 많이 보는 것도 자신들의 탓일 뿐이다.
  • LPG통/반납때 1만7천원 돌려받는다

    ◎충전­판매업자간 수수료분쟁 해결/용기 설치할때는 2만6천원 내야/위반없 시·구청 신고… 보상 가능 가스충전업자와 판매업자간의 수수료분쟁으로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전가되던 LPG(액화석유가스)용기관리 문제가 해결될 전망이다.관련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판매업소에서 임의로 해온 폐용기의 교체와 용기재검사및 수리,신규용기판매,반납용기매입등의 용기관리 업무일체를 최근 LPG충전소가 전담키로 했다. 이에따라 용기의 공급과 반납은 판매소가 계속 맡게되나 소비자가 처음 용기를 설치할때는 공장도 가격의 110%수준인 2만6천원(20㎏용기)에 공급받고 반납시는 1만7천원을 되돌려받을수 있게 됐다.지금까지는 충전업자와 판매업자가 용기관리에 드는 비용을 서로 떠넘기던 탓에 지역에따라 용기대금을 3만∼4만원까지 받았으며 반납시는 5천∼6천원만 지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한국가스안전공사 관계자는 『아직 일부 판매업소에서 고시가격이상으로 용기대금을 요구하거나 반납을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해당 판매소를 시,군,구청 지역경제과나 산업과에 신고하면 즉각 보상받을수 있다』고 밝혔다. 취사용과 난방용 연료로 LPG를 사용하는 가정은 총가구의 79.3%(91년 기준)에 달하며 그동안 용기관련 소비자고발이 계속 늘어나던 추세였다.한국소비자보호원에 지난 한햇동안 접수된 LPG에 관련된 소비자불만및 피해건수 총6백37건중 용기로 인한 피해는 총접수건의 51.2%(3백26건).그 주된 피해내용은 ▲LPG용기의 사용 유효기간이 넘었을때 소비자에게 재구입을 강요한 경우 ▲LPG용기를 구입처에 반환할 때 20㎏용기를 사용기간에 관계없이 5천∼7천원만 반환해 주는 것등이다. 따라서 동력자원부는 소비자피해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지난 83년 「액화석유가스의 안전및 사업관리법」제정시 용기소유·관리일원화제도(87년 용기보증금제로 변경)를 도입했으나 업계의 반발로 전혀 시행을 못하고 있다.「용기보증금」제란 용기의 소유와 관리를 충전사업자가 전담케하는 것으로 소비자는 가스용기를 직접 구입하지 않고 용기보증금을 충전사업자에게 예치한 후 보증금증서를 받고 용기를 빌려 사용하면 된다.만약 이사등의 사유로 용기를 반납할 경우에는 예치한 보증금을 환급받을수있다.그러나 이번 시행되는 「용기관리 일원화」제는 소비자가 여전히 일정액의 용기대금을 지불해야 하는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 일부 손보/부문별 모집경쟁/화보풀제 해제틈타 계약만료전 변칙유지

    동양화재와 안국화재등 일부 손해보험회사들이 계약이 끝나지 않은 특수건물에 대한 화재보험을 변칙적인 방법으로 인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14일 한국화재보험협회에 따르면 화보협회는 동양화재 등 일부 손보사들이 지난달 1일자로 4층이상 및 인구밀집건물(특수건물)에 대한 화재보험 풀(POOL)제가 해체되자 계약이 만료되지 않은 장기계약 물건을 경쟁적으로 변칙유치하고 있는 사실을 적발,이를 보험감독원에 통보했다. 손보사들은 10월1일자로 특수건물에 대한 화재보험 풀제가 해체되더라도 계약기간이 3년인 장기계약 물건은 화보협회에서 계속 공동 관리하기로 협정을 맺었으며 이 규모는 3백77건에 보험료가 90억여원이다.
  • 국민당 해남지구당/위원장 등 3명 영장/선심관광·금품살포

    【광주=최치봉기자】 전남경찰청은 11일 선거구 주민들에게 선심관광을 시켜주고 금품을 돌린 국민당 해남·진도지구당 위원장 김봉옥씨(46)와 전사무국장 김영재씨(46),조직부장 정영남씨(46)등 3명을 대통령선거법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지난 9월30일과 10월1일등 2차례에 걸쳐 당원과 주민등 1백65명에게 울산 현대조선소등지를 관광시켜주면서 버스안에서 개인당 1만원과 수건 1장씩을 건네준 혐의를 받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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