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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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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의동행」 24시간까지 연장/고지의무도 삭제

    ◎총기사용 범위는 확대/치안본부,관련법 개정키로 치안본부는 노태우대통령의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선포」선언에 따라 경찰관직무집행법과 화염병사용 등 처벌에 관한 법률,조직폭력배 특별관리를 위한 법 등을 개정,치안역량을 극대화하기로 했다. 치안본부는 이에따라 경찰관직무집행법 3조4항에 규정한 임의동행요건을 완화,경찰관이 임의동행을 하려할 때 당사자에게 이를 고지해야할 의무를 삭제하기로 했다. 경찰은 또 현재 총기ㆍ수갑ㆍ경찰봉ㆍ가스총 등 경찰장비의 사용은 3년이하의 징역에 처할수 있는 범죄를 저지른 범인에게만 사용토록 규제한 10조를 개정,1년 이하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인에게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경찰은 이와함께 임의동행자를 3시간이상 머무를 수 없게한 조항을 「24시간 이내」로 늘려 범죄단서확보와 검거 등 수사활동의 어려움을 없애기로 했다.
  • 구속 피의자 호송중 도주

    【군산연합】 16일 하오2시15분쯤 전북 군산경찰서 유치장에 수감중이던 구속 피의자 김모군(17ㆍ군산시 중동 268)이 호송도중 경찰의 감시소홀을 틈타 달아났다. 김군은 지나12일 특수절도혐의로 구속,군산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후 16일 1시쯤 공범인 김모군(18)과 함께 보안과에서 조서를 받은 후 유치장으로 호송도중 경무과앞 복도에서 경찰의 감시소홀을 틈타 수갑을 풀고 달아났다.
  • 달아나던 소매치기 총맞고 절명/어제 영등포서

    ◎출동경관 “정지경고”무시에 발포/가슴ㆍ엉덩이 관통… 행인도 유탄에 부상 6일 하오1시30분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6가 76 「김안당」안경점앞 버스정류장에서 김성우씨(23ㆍ전과3범ㆍ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1367) 등 4명이 소매치기를 하려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울 영등포경찰서 양평파출소 이진훈경장(36)이 쏜 총2발에 김씨가 맞아 숨졌다. 이 과정에서 아기를 업고 버스를 기다리던 김선씨(27ㆍ주부ㆍ강서구 마곡동 334)가 오른쪽 무릎에 유탄을 맞아 5바늘을 꿰매는 상처를 입었으며 이웃주민과 노점상 1백여명 등이 총소리에 놀라 대피하는 소동을 벌였다. 경찰은 이날 현장에서 공범 김용환씨(23ㆍ전과5범ㆍ양천구 신정5동 929)만 붙잡고 다른 2명은 놓쳤다. 이경장은 이날 하오1시20분쯤 『「김안당」안경점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을 상대로 남자 4명이 소매치기를 하고 있다』는 이창수군(가명ㆍ19)의 신고를 받고 오토바이로 현장에 출동했다. 이경장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정류장에서 10여m쯤 떨어진 공중전화부스에들어가 이군이 지목한 범인들이 버스를 타려는 여자를 상대로 소매치기를 하려는 것을 감시하고 있다가 이를 이상하게 여긴 숨진 김씨가 다가오자 김씨를 붙잡으려 했다. 이경장이 김씨에게 다가가 수갑을 채우려 하자 김씨는 이경장의 왼쪽 뺨을 주먹으로 치고 영등포로터리 쪽으로 달아났으며 이경장은 38구경 리벌버권총을 뽑아들고 김씨를 뒤쫓았다. 이경장은 김씨의 5m쯤 뒤에서 땅을 향해 공포1발을 쏘며 『달아나면 쏜다』고 4차례나 경고했으나 범인이 이를 무시하고 계속 달아나자 10m쯤 뒤에서 다시 한발을 발사,김씨의 왼쪽 엉덩이를 관통시켰다. 그러나 범인은 총을 맞고도 다시 15m쯤 달아나 골목길로 접어들었고 이경장은 범인을 놓칠세라 또 권총 1발을 쏘았다. 이 총알은 범인의 왼쪽어깨와 가슴을 관통시켜 절명의 원인이 됐다. 김씨는 곧바로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도중에서 이미 숨져있었다. 경찰조사결과 붙잡힌 김씨 등은 영등포 일대에서 개별적으로 소매치기 행각을 벌여오다 5일 숨진 김씨의 소개로 함께 만나 이날 조직범행을 하려다 적발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현장검증 나서 검찰은 이날 즉시 사고현장에 나가 현장검증을 벌이는 한편 파편을 맞아 부상을 입은 가정주부 김선씨 등 이 사건참고인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7일 이경장을 소환,조사한 뒤 입건여부를 가릴 방침이다.
  • 「증인살해」 공범1명 검거/어제 포천 은신처서

    ◎도주 주범등 2명 계속 추적/「동화파」 총책ㆍ자금제공 화교조사 법정증인 피살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과 경찰은 15일하오 달아난 범인 3명 가운데 선계형씨(26ㆍ가명 김계영ㆍ전남 장성군 서삼면 송현리 6)를 검거하고 나머지 2명을 추적하고 있다. 선씨는 이날 하오2시30분쯤 경기도 포천군 포천읍 설운리 481 보량식품공장 옥상에 숨어있다가 서울지검 의정부지청 수사팀이 범인들의 도주경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손을 들고 나와 자수했다. 선씨는 검찰에서 『14일 하오5시30분쯤 검찰수사팀이 들이닥치는 순간 공장 뒷산으로 달아났다가 밤11시쯤 다시 내려와 공장 옥상에 숨어 있었다』면서 『함께 달아났던 주범 변운연(25)과 공범 김대현(25ㆍ전남 광산군 삼도면 송산리 915)은 달아날때 뿔뿔이 흩어져 다시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선씨는 『강대련으로 알려진 범인의 본명은 김대현이고 나와 전남 장성군 J중학교 동기동창인 변의 1년 후배』라고 말했다. 선씨는 『범인 3명이 사건 현장에서 인천 임시번호 95821호 슈퍼살롱 승용차를 타고 달아났다』는 목격자들의 진술과는 달리 3명이 택시를 타고 13일 하오6시쯤 보량식품에 도착해 숨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선씨는 『사건당일 서울지법 동부지원앞 길 건너편에서 택시를 기다리다 변이 「평소 아는 사람과 싸움을 했다」면서 뛰어와 함께 택시를 탔다』고 주장,자신의 범행관련 사실을 부인하고 변씨가 갖고 있던 식칼 2개는 포천으로 오는 길에 주택가와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날 낮 「동화파」의 서울지역책이자 보량식품설립자로 밝혀진 이동형씨(50ㆍ가명)와 이씨에게 조직운영 및 회사설립자금을 제공해온 화교 곡국경씨(31ㆍ서울 성동구 응봉동 현대아파트 101동206호) 등 5∼6명을 연행,이 사건과의 관련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14일연행 조유근씨 조사받다 투신기도 한편 14일하오 보량식품에서 연행돼 조사를 받던 「동화파」의 중간보스 조유근씨(26)가 16일 0시쯤 서울지검 동부지청 4층 조사실에서 수갑을 차고 창문밖으로 투신을 기도,유리창이 깨지면서 오른쪽 손목이 동맥이 끊겨 이웃 방지거병원으로 옮겨졌다. 조씨는 이날 수사관인 진영배계장(32)에게 곡씨 관련 부분에 대해 추궁을 받자 『곡씨얘기는 묻지 말아달라』고 말한뒤 갑자기 창문쪽으로 달려들었으나 진계장 등 수사관들로부터 제지당했다. 검찰은 이 사건의 범인들이 소속돼 있는 「동화파」가,지난 70년대 중반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동아파」의 분파인 「계남파」의 중간보스였던 송시룡씨(25)가 붙잡힌 화교 곡씨와 함께 결성한 조직인 것으로 밝혀내고 송씨의 검거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찰은 연행된 조씨로부터 이번사건이 송씨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는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 경관6명 한때 감금/계명대생,잠입 항의

    【대구】 11일 하오8시40분쯤 대구시 남구 대명동 계명대 캠퍼스에 들어갔던 경찰관 6명이 학내문제로 농성중이던 계명대 대학생 2백여명에게 붙잡혀 본관 학생과 사무실에 감금돼 무전기1대와 수갑2개 등을 빼앗기고 2시간20분만에 풀려났다.
  • 출동의경 각목폭행/여고생 추행 고교생 7명 영장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7일 강모군(15ㆍ서울Y공고 1년ㆍ영등포구 당산동) 등 고교생 7명을 강간치상 및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서울 D중학교동창생으로 지난3일 하오11시20분쯤 영등포구 당산동 6가96 한강시민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강군의 국민학교동창 김모양(15ㆍH여상 1년) 자매 등 3명을 『말을 듣지않으면 강물에 던져버리겠다』고 위협,번갈아 폭행한 혐의를 받고있다. 이들은 이어 영등포서 방범순찰대 소속 최용영의경(22)이 범행현장을 보고 달려와 강군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순간 주위에 있던 각목과 쇠파이프로 최의경을 마구 때려 전치3주의 상처를 입혔다.
  • 여관투숙객 인질강도/3인조/남녀 수갑채워… 수표 1천여만원 강탈

    ◎흉기든 30대 가정집 털어/70대 노파는 안방서 피살 【광주】 29일 상오5시쯤 경기도 광주군 광주읍 역리 영빈장여관 305호실에 20대 3명이 침입,투숙객 박창규씨(34ㆍ부동산소개업ㆍ광주군 오포면 양벌리 249)와 문모씨(23ㆍ여)에게 수갑을 채우고 광주 경안단위농협 발행 1백만원권 수표 13장등 1천7백만원치의 수표를 빼앗은뒤 4시간동안 머물다 인근 농협에서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 달아났다. 이들 2명은 4시간동안 흉기로 박씨 등을 위협하며,방안에 머물다 이날 상오9시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1명에게 박씨의 경기2너9279호 소나타 승용차열쇠와 빼앗은 수표를 건네줬고,여관에서 1백여m 떨어진 경안농협에서 1백만원권 수표6장을 현금으로 바꿔오자 수갑을 풀어주고 이불을 덮어씌운 채 박씨차를 타고 달아났다. 【부천】 29일 상오9시45분쯤 경기도 부천시 심곡3동 293의4 이기옥씨(27ㆍ여) 집에 30대 1명이 침입,흉기로 이씨를 위협해 현금 35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이씨는 『안방에서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있을때 범인이 열린 현관문으로 들어와 흉기를 들이대고 돈을 내놓으라고 해 장롱에서 현금 35만원을 꺼내주자 부천 상공회의소 쪽으로 달아났다』고 말했다. 【보은】 29일 낮12시쯤 충북 보은군 외곡리면 구인리 242 정삼녀씨(70ㆍ여ㆍ농업) 집 안방에서 정씨가 흉기에 찔려 숨져있는 것을 이웃마을의 박병국씨(30ㆍ농업ㆍ보은군 보은읍 장신리 113)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박씨는 『모내기 논에 점심을 갖고 오기로 전날 약속한 정씨가 한낮이 됐는데도 오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겨 집에 가보니 정씨가 머리를 둔기에 맞고 흉기에 찔려 피를 흘린채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 검문의경 살해 30대피의자/병원서 감시소홀 틈타 도주

    검문중인 의경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뒤 자해,중태에 빠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피의자가 경찰의 감시소홀을 틈타 도주했다. 27일 상오9시30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11동 권광택의원 202호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이 사건 피의자 양동환씨(30ㆍ전과3범ㆍ용산구 서부이촌동 192의4 한남아파트 2동311호)가 자신을 감시하던 경찰관들이 조는 틈을 이용,달아났다. 양씨는 이날 상오8시쯤 병실을 감시하던 하상기경장(37)에게 『손이 아프다』고 수갑을 풀어줄 것을 애원,하경장이 수갑과 족갑을 풀어주고 경찰서로 돌아간뒤 김영식순경(29)과 의경등 3명이 계속 감시를 하다 잠시 조는 것을 보고 병실을 빠져나와 화장실에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도주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서울시경 산하 4백20개 검문소에 경찰관 1천6백여명을 배치,검문검색을 강화하는 한편,양씨가 시외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경기도경에도 도주사실을 통보,양씨의 행방을 뒤쫓고 있다.
  • 이상옥의원(평민) 구속/수뢰혐의/김영선 민자국제2부장 오늘 구속

    평민당 이상옥의원(40·진안 무주 장수)의 뇌물수수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수원지검 특수부는 20일 자진출두한 이의원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혐의로 구속,하오 8시30분쯤 수원교도소에 수감했다. 검찰은 이날밤 이의원의 뇌물수수혐의에 대해 보충조사를 벌일 예정이었으나 이의원이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거부,곧바로 영장을 집행,구속수감시켰다. 검찰은 21일중으로 이의원이 지난 88년 7월 건축업자 함실학(51)로부터 부산 북구 주례산 8의1 국유지 7만평을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산169의 4 사유림 1백20만평과 바꿀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중간 브로커를 통해 2천만원을 받은 혐의사실에 대해 보충조사를 할 예정이다. 이의원은 이날 하오 6시5분쯤 변호사인 박병일 평민당인권위원장과 함께 당사를 나와 승용차로 수원지검으로 향했으며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5∼6명의 수사관들이 이의원이 타고 있는 차를 뒤따랐다. 이의원은 하오 7시5분쯤 수원지검에 도착,미리 발부돼 있던 구속영장 집행절차를 거친뒤 하오 8시쯤 수갑을 차지 않은채검찰청사를 나와 수사관들에 의해 수원교도소에 수감됐다. 검찰은 이와함께 이번 사건과 관련,5백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민자당 국제협력2부장 김영선씨(60)를 21일중 소환,변호사법 위반혐의로 구속할 방침이다. 이날 당사에는 이의원의 지역구 당원 1백여명이 올라왔으며 이의원이 검찰에 출두하려하자 이를 저지,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 처음 공개된 마쓰시로 「제2대본영」

    ◎한인원혼 떠도는 「일제」발악의 현장/지하호 13㎞… 「본토결전」위해 극비공사/한인노무자 7천명 강제동원… 천여명 사망/맨발ㆍ맨손으로 발파작업… 하루3∼5명 희생당해 【마쓰시로 연합】 일본이 패망 직전 일왕의 임시 거처와 전시최고사령부(대본영) 구축을 위해 한국인 노무자들을 강제 동원,극비리에 건설하던 「마쓰시로 대본영」 내부가 22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일본군의 「제2대본영」으로 불리는 마쓰시로 대본영은 일본의 패색이 짙어가던 1944년 11월11일 상오 11시 대규모 발파작업을 시발로 도쿄 북서쪽 6백㎞지점의 나가노(장야)현 나가노시 마쓰시로읍 일대 3개 야산의 땅밑에 구축하던 지하호로 당시 현지 경찰과 헌병들조차도 공사사실을 모를만큼 철저히 은폐돼 왔던 곳이다. ○3개 야산에 구축 태평양전쟁말기 사이판섬 함락(44년 7월) 등으로 일본 본토에 대한 공습이 본격화되면서 일본군 수뇌부가 도쿄 대본영을 폐쇄,이른바 「본토결전」태세를 갖추기 위한 배수진으로 마련됐던 이 대본영에는 최소한 한국인 노무자 7천여명이 지하갱도굴착,발파작업 등에 강제 동원돼 1천여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이 패망하기 하루전인 45년 8월 14일까지 9개월동안 계속된 대본영 건설공사에는 당시 돈으로 2억엔이라는 엄청난 예산과 연인원 3백만명이 투입돼 패전으로 공사가 중단될 때까지 총연장 13㎞의 지하호가 완성(공정률75%)됐으며 발파등 가장 위험하고 힘든 막장작업에는 강제징용된 한국인들이 동원돼 하루 3∼5명씩 목숨을 잃은 것으로 생존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요미우리(독매),아사히(조일)등 일본 취재진 50여명과 함께 이날 처음으로 한국탐사팀과 취재진에 공개된 대본영지하갱도 안에는 당시 한국인 노무자들의 참혹했던 상황을 짐작케 하는 낙서,유류품 등이 곳곳에서 발견됐으며 지상에 세운 소위 일왕침실은 완공된 상태로 보존돼 있었다. 무학산,상산 등 해발 1백∼2백50m 높이의 3개 야산 지하에 파들어가던 대본영에는 왕궁,참모본부,왕족학습원,군사령부,정부행정기관 및 언론사가 들어설 수 있도록 돼 있다. ○곳곳에 한인 유류품 총연장 13km의 지하호는높이 3m,폭 3m의 통로가 바둑판처럼 뚫려 있었으며 지질이 단단한 암반이어서 어떠한 공습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 이곳을 공개한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현재 대본영의 지상건물과 갱도 일부는 지진관측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완공된 상태의 일왕 침실은 10평 크기의 일본 고유 다다미방으로 공습위험이 있을 경우 대피하도록 별도의 지하궁전이 마련돼 있었으나 이곳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본영 부근 시노노이 아시히 고교 지하호 연구회가 펴낸 조사서와 와다 노보루(화전등)의 저서 「송대 대본영」에 따르면 한국인 노무자들은 무학산지하호 부근에 78동,상산 지하호 부근에 1백29동등 모두 2백40여개동의 급조막사(반장)에 20∼30명씩 나뉘어 기거하면서 거의 유폐된 상태에서 기계ㆍ노예처럼 혹사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당시의 증언자나 자료가 거의 없어 사망자 숫자 등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노예처럼 혹사당해 다만 하루 3∼5명씩의 한국인 노무자들이 발파사고,갱붕괴사고 등으로 실려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으며 일왕침실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은 특정공사가 끝나면 20∼30명씩 집단으로 한밤중에 끌려나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극소수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최소한 1천여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일본신주대 학생들이 최근 작성한 보고서 등 마쓰시로 대본영에 관한 조사서들은 『특히 일왕의 임시거처에 동원된 한국인의 경우 등 뒤로 수갑이 채워져 어딘가로 끌려갔으며 이들이 산중에서 총살돼 매장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건설현장에 동원됐다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대본영 부근에 살고있는 유일한 한국인 생존자인 최태소씨(68ㆍ본적 경남 합천군 가야면 이천리)는 이날 현지 취재에 동행,자신이 직접 굴착했던 곳을 일일이 기억해내며 참담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최씨는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침목이 깔려있던 흔적과 천장,벽에 무수히 뚫려 있는 다이너마이트 발파용구멍 등을 가리키며 45년전의 공사현장을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해냈다. ○사담땐 죽도로 구타 최씨가 규수지방에서 거주하다 건설현장에 끌려온 것은 24살 때인 1944년 10월말쯤. 지금은 논ㆍ밭으로 변해버린 상산지하터널앞 광장에는 수백채의 조선인 숙소가 빽빽히 들어찼고 그때부터 최씨는 줄곧 인근 마을에서 건설공사 현장 잡역부로 일하면서 거주해왔다고 회상했다. 최씨등 한국인 노무자들이 주로 맡았던 일은 하루 12시간씩 맨발 맨손으로 낙반 가능성이 있는 곳이나 막장 등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가장 위험한 것이었다. 『한창 나이였던 덕분에 죽을 고비를 겪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최씨는 『50∼60대 한국인 노무자들이 상당수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중노동이나 사고로 숨졌다』고 말했다. 최씨는 또 『일본인 작업반장들은 1개조 4명으로 점조직처럼 구성된 작업반원들이 다른 조 사람들과는 물론 반원들끼리도 사담하는 것을 일체 금지시키고 이를 어겼을 경우 몽둥이 죽도 등으로 무참히 구타했다』며 『지금 징용자수나 사망자 수가 유곽도 잡히지 않는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인력 더 많을듯 지난 87년 8ㆍ15해방 42주년을기념해 한국인 강제징용 사실을 다룬 「머나먼 여행」이라는 책을 발간했던 하루카 나루타비씨(50ㆍ여)는 마쓰시로 대본영 건설현장에 동원됐던 한국인 징용자수와 사망자수을 좀더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이날 현지취재에 동행했던 하루카씨는 『4살때인 1944년 10월초 부모를 따라 마쓰시로로 이사했다』며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바로는 하루 평균 한국인 노무자 5∼6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하루카씨는 『현재 알려진 7천∼1만명의 한국인노무자 투입은 실제보다 훨씬 축소된 것』이라며 암반 굴착작업이 하루에 1∼5m씩 진행된 것으로 미루어 볼때 9개월동안 동원된 인력은 이보다 훨씬 많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하루카씨는 『현재 일본정부는 강제연행자에 대한 공식적인 문서가 다 소각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어디엔가 명부가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일본정부의 정확한 기록을 찾아내는 것이 마쓰시로 대본영 건설의 진상을 파헤치는 요체』라고 강조했다.
  • 합법성 논쟁에 휘말린 「노리에가 재판」(특파원리포트)

    ◎김호준 워싱턴특파원 미 법률전문가,“선례없는 불법” 대정부 비난 파나마의 전실권자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에 대한 미국의 재판은 미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지도자를 국외에서 체포,국내재판에 회부한 전례없는 처사라는 점에서 법적 정당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많은 국제법 학자들은 미 정부의 처사에 대해 『역사상 선례가 거의 없으며 사후 법적논거만을 가진 거친 정치행위』라고 말한다. 일부 학자는 『그런 선례를 찾으려면 2천년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꼬집으면서 『노리에가 장군이 미국으로 압송도중 C­130 수송기내 유치장에서 수갑에 채는 모습은 고대로마를 연상케 했다』고 말했다. 고대로마인들은 사로잡은 정복지의 통치자들을 사슬에 묶은 채 로마로 데려와 원형경기장에 모인 시민들에게 내보였다. 노리에가는 체포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투항했다는 것이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미 정부 관리들은 노리에가의 투항이 강요된 것이 아니었다고 역설하지는 않지만 노리에가는 미군 비행기에탑승하기 전까지 체포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 변호사협회의 국제형법분과위원장인 브루스 자가리스는 『노리에가가 구금되고 자유를 박탈당했을때 그의 체포는 이뤄진 것』이라고 정부측 주장을 반박하면서 『미국의 노리에가 체포는 법적 근거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미 정부의 이번 행위는 미국에 비우호적인 외국정부로하여금 해외여행중인 전직 미 관리의 체포를 정당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지적했다. 플래처 법률ㆍ외교학교의 국제법 교수 알프레드 레빈은 『노리에가 체포는 아야툴라 호메이니가 「악마의 시」 저자인 살만 루시디를 회교모독 혐의로 영국 영토에서 체포해 이란으로 데려오라고 명령했던 것과 다를바 없다』고 말했다. 노리에가는 지난 4일 마이애미 법정에서 개시된 자신에 대한 심리에서 자신은 정치범이므로 미국 법원은 자신을 마약밀매혐의로 재판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그의 법정대리인 프랭크 루비노 변호사는 『미국의 파나마 침공은 불법이며 노리에가는 국가원수로서 미국내 기소에 대해면책특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리에가 재판을 둘러싼 법률논쟁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의 하나는 노리에가가 실제로 파나마의 통치자였느냐는 점이다. 부시정부는 지난해 5월 파나마 선거에서 길레르모 엔다라가 대통령으로 당선됐기 때문에 노리에가는 파나마의 진짜 정부수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시카고 대학의 국제법교수인 기돈 고틀리에브는 『미국정부가 노리에가를 합법적인 지도자로 간주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는 국가수반에게 전통적으로 주어지는 소추면책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미 연방법원 판사들은 외국인 피고가 법정에 어떻게 불려나왔는지에 관해서는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노리에가를 외국영토에서 끌어왔다는 이유로 소송을 기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틀리에브 교수는 아돌프 아이히만 사건을 예로 들면서 미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면 그건 파나마 주권에 대한 것이지 노리에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아이히만 사건에서 아르헨티나가 했던 것 처럼 파나마만이 항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60년 이스라에 정보원들은 나치 독일의 유태인 학살원흉인 아이히만을 피신중이던 아르헨티나에서 납치했다. 이스라엘은 아르헨티나의 국권 침해를 인정했지만 그것이 아이히만을 돕지는 못했다. 그는 전범으로 재판에 회부돼 결국 처형됐기 때문. 플레처학교의 레빈교수는 나치전범의 경우와 노리에가는 다르다고 말한다. 그는 『국제법에는 문명질서에 반하는 범죄로서 어느나라가 기소해도 무방한 보편적 범죄의 개념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그러나 마약거래와 자금 「세탁」은 그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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