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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취업제한’ 이재용 출근은 특혜, 충분히 제재해야”

    이재명 “‘취업제한’ 이재용 출근은 특혜, 충분히 제재해야”

    가석방 후 출근한 데 “문제 있다, 편법”“이재용 ‘사면 안 된다’ 입장 똑같다”“돈 많고 힘 세단 이유로 특혜 줘선 안돼”박범계 “국민 법감정엔 백신·반도체 기대”이재명, 검찰개혁엔 수사·기소 분리 강조“목표 정해 조국처럼 탈탈 못 털게 할 것”더불어민주당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25일 가석방으로 출소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취업제한 논란’과 관련해 “일종의 특혜일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제재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이날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모임인 ‘더민초’의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이 부회장이 취업제한 상태에서도 사실상 경영활동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는 질문에 “취업제한 관련해서는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편법”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 13일 가석방 후 서울 서초사옥과 수원 본사 등으로 번갈아 출근하며 사장들로부터 경영 현안에 대한 보고를 받고 주요 사업 현황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억원 이상 횡령 배임죄가 확정되면 5년간 취업이 제한된다는 점을 들어 이 부회장에 대한 취업제한 위반 논란이 불거졌다.박범계 “이재용, 무보수·비상근 경영참여는 취업제한 위반 아냐” 다만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 부회장의 경영참여는 취업제한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박 장관은 이날 “가석방에 반영된 국민의 법감정은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듯 백신 문제, 반도체 문제에 대한 기대라고 볼 수 있다”면서 “비상근, 무보수, 미등기란 점이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무보수·비상근 상태로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취업제한의 범위 내에 있다”며 이 부회장이 현재 신분을 유지하는 이상, 경영참여가 취업제한 위반은 아니라는 취지를 밝혔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이 부회장의) 사면은 안 된다는 입장은 지금도 똑같다”면서 “다만 가석방은 하나의 제도이기 때문에 다른 수용자와 동일한 조건으로 합리적으로 심사해 기준에 부합하면 일부러 뺄 필요는 없다는게 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저는 법치주의자라고 저 자신을 규정한다”면서 “돈이 많다, 힘이 세다는 이유로 특혜를 주면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돼 재수감돼 복역하다 광복절 가석방으로 지난 13일 출소했다.이재명 “검사 개인 권한 축소해야”“수사권 다주면 안돼, 경찰도 위험” 이 지사는 검찰개혁과 관련, “조국 (전 법무부) 장관님처럼 검찰이 기소하기로 딱 목표를 정해서 나올 때까지 탈탈 털고, 허접한 것까지 다 걸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는 “어떻게 수사와 기소를 분리할지는 논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수사권을) 경찰에 다 주면 안 된다. 경찰도 위험하다. 우리가 권력을 잃었을 때를 생각해야 한다”고 경계했다. 그는 “검사 개개인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 죄가 되는 데도 검사 마음대로 기소 안 할 수 있는 나라는 별로 없다”면서 “기소 여부는 검사가 아니라 배심원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성평등 배운 아프간 2030… 총구 앞에서도 여성 인권을 외치다

    성평등 배운 아프간 2030… 총구 앞에서도 여성 인권을 외치다

    탈레반, 평화협상 중에도 여성 대거 살해일자리 뺏고 부르카 강요 등 억압 현실화아프간, 20년 전보다 평등·권리 의식 신장 여성 군수 마자리 탈레반에 대항하다 체포수도 카불서 여성들 목숨 건 거리시위도 유엔 “여성 인권 보호해야 합법 정부 인정”美·EU “여성 인도주의적 지원 이어갈 것”중남미도 국제기구 직원 등 피난처 제공 아프가니스탄에서 다시 정권을 잡은 탈레반을 향해 여성들의 저항의 물결이 이어진다. 탈레반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이슬람법 안에서 여성 권리를 존중한다”며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겠다고 했지만, 20년 전보다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여성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극단적 무장단체를 불신하는 아프간 여성들은 당당히 거리 시위에 나서고, 서방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 직접 목소리를 내고 있다.●최연소 여성 시장 “싸움은 이제 시작” 아프간의 360여개 지역에서 단 3명뿐인 여성 군수 중 한 명인 살리마 마자리는 “지금 우리가 극단주의 이념, 그리고 이를 강요하는 집단과 싸우지 않는다면 이들을 물리칠 기회를 잃게 된다”며 “결국 그들은 사회를 세뇌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접 군사적 리더십을 발휘하며 두터운 신망을 얻었던 마자리는 계속 탈레반에 대항해 싸워 왔지만, 최근 결국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탈레반이 통제하는 지역에는 더이상 여성이 없을 것”이라며 “심지어 여성들은 도심에도 없다. 모두 집에 수감되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2018년 마이단샤르 시장으로 임명되며 최연소 여성 시장 기록을 세운 인물인 자리야 가파리는 탈레반의 공격이 두렵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저항 정신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을 준비가 돼 있다”며 “조국과 평화, 국민, 심지어 고난과 고통까지 모두 사랑한다”고 썼다. 그는 오랫동안 아프간에서 여성의 권리를 옹호해 왔으며, 특히 여성의 경제권을 보장하는 데 힘써 왔다. 가파리는 특히 여성들의 싸움이 이제 시작이라고 밝혔다. 그는 “젊은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들은 전 세계와 의사소통한다”며 “나는 그들이 우리의 권리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의회 최초 여성 부의장이자 아프간 정부의 평화협상단에도 참여한 파지아 쿠피 역시 자신과 다른 여성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인권 침해에 대해 계속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수도 카불에서 6~7명의 여성이 ‘용감한’ 거리 시위를 연 데 대해 “여성은 아프간에서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평등한 권리와 존중을 원할 뿐”이라며 “여전히 이 나라의 여성에게서 희망을 느낀다”고 전했다.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파키스탄의 말랄라 유사프자이도 앞서 아프간 여성들의 안전에 대해 우려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자매들이 걱정된다”며 “아프간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여성 권리를 폭력적으로 억압한 탈레반의 지난 역사를 볼 때 이들의 공포는 현실”이라며 전 세계의 관심을 촉구했다. ●탈레반 “여성 존중”발표했지만 불신 탈레반 대변인은 앞서 그들의 통치하에서 여학생들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이후 실제로 탈레반 장악 이후 잠깐 문을 닫았던 여학교가 일부 개교했고, 비정부기구(NGO) 등도 정부와 지역사회의 학교에서 여전히 여학생들에 대한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2001년 미국의 공습 이후 ‘성평등’이 당연한 가치였던 아프간에서 교육받고 자란 2030세대 여성들일수록 탈레반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1996년부터 2001년 탈레반 집권 당시 벌어진 잔혹한 억압과 압박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는 걱정에 사로잡혀 있다. 2019년 현재 아프간 의회는 미국보다 비율이 더 높을 정도로 여성 참여가 활발했고, 많은 여성들은 부르카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착용했기에 이들은 20년 전의 양상이 펼쳐질 수 있다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여성 교육 활동가인 파쉬타나 두라니는 “탈레반은 여성의 권리에 대해 얘기할 때 모호한 말을 사용한다”며 “이들이 허용하겠다고 하는 게 여성의 이동권, 정치적 권리, 투표권, 교육권 등 전부인지, 일부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불확실한 상황을 전했다. CNN은 “탈레반의 과거 집권 기간 소녀들의 등교가 금지된 만큼 이들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있다”며 “탈레반이 여성 강사나 교수를 구할 때까지 모든 학교를 폐쇄하고, 결국 고등교육에서 여학생들을 배제할까 봐 우려하는 반응도 있다”고 전했다. 탈레반이 천명한 대로 이슬람법을 따른다고 해도 남녀 둘만 따로 한 공간에 있을 수 없다는 점 등은 여전히 여성을 많은 직책에서 배제할 것이란 전망이다. 지도부의 ‘약속’과 다르게 현실에서는 이미 여성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태가 보인다는 것도 걱정스러운 점이다.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와 평화 협상을 하던 지난 1년 동안에도 여성 기자 3명 등이 목숨을 잃는 등 일하는 여성들은 대거 살해됐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이들이 칸다하르 남부 도시 아지지의 은행에 진군해 여성 직원 9명에게 자리를 비울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은행 창구원으로 일하는 여성 대신 남자 친척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부 지역에서는 탈레반이 빠르게 여성을 억압하면서 남성 보호자 없이 집을 나가는 것을 금지하고, 부르카를 입도록 강요했다”며 “일부 지휘관들은 미혼 여성들을 탈레반 대원들과 결혼시킬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여성 기자들이 최근 며칠 동안 탈레반으로부터 그만두라는 식의 협박 전화를 받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은 탈레반의 장악 며칠 만에 아프간 내 인권과 성평등을 진전시키려는 수십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아프간 내 대부분의 여성들이 20년 전과 같은 권리 침해를 경험하고 있다”며 “여기엔 부르카 강제 착용, 강제 결혼, 이동의 자유 제한, 마흐람(남편, 아들, 남자 친척 등 남성 보호자) 강제가 포함된다”고 밝혔다. 미 외교안보 전문지 더 디플로맷에 따르면 최근 미 국가정보원(NIC) 역시 탈레반 장악 이후 이제껏 진보한 여성의 인권이 “많이 후퇴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국제사회, 난민 수용 등 여성 인권 지원 나서 국제사회는 이들의 목소리에 응답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탈레반이 합법적인 정부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테러리스트 조직에 대한 지원을 거부하고, 여성과 소녀들을 위한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아프간 난민 수용 계획을 밝히며 특히 여성들을 위한 피난처를 제공하겠다고 나서는 국가도 늘고 있다. 미국은 유럽연합(EU) 등과 함께 아프간 여성의 권리 보호를 요구하며 “여성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인도주의적 지원을 이어 갈 것”이라고 약속했고, 중남미 국가들도 여성 활동가와 국제기구 직원들을 위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코스타리카의 경우 우선 아프간 내 유엔 기구 등에서 근무한 여성 48명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칠레는 국제 인권단체 프런트라인 디펜더스와 함께 아프간 출신 가족들과 여권 운동가를 맞이한다고 했다. 기예르모 라소 에콰도르 대통령도 트위터에 “인도주의 재앙 위기에 지리적 상황을 떠나 국제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이번 위기로 인해 자국을 떠난 가족들에게 보호와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아이들과 함께 탈출한 여성들을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미국 주재 아프간 대사를 지낸 로야 라흐마니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여성들의 미래가 곧 아프간의 미래”라며 “여성들에 대한 대우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국가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지만, 여성 인권이 억압되거나 침해받는다면 아프간도 마찬가지 국가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이철희 “文, ‘드루킹 댓글공작’ 알았다고 생각 안 해”

    이철희 “文, ‘드루킹 댓글공작’ 알았다고 생각 안 해”

    “드루킹 존재 알았는지에 대해선 말 못한다”김경수, 댓글 조작 혐의 징역 2년 확정·수감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23일 “문재인 대통령은 (드루킹의) 댓글공작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드루킹을 알았느냐’는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대통령께서 드루킹의 존재를 알았는지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을 못 드리겠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이 수석은 지난달 29일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과 만난 것을 거론하며 “제가 대통령이 드루킹을 모르고 계실 거라고 했더니 본인도 그 점에 동의한다고 했다”면서 “정 의원이 그것도 모르고 와서 시위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경수 “외면 당한 진실, 언젠가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 앞서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대표 친문 적자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지난달 26일 오후 창원교도소에 재수감됐다. 지난 21일 대법원이 징역 2년 형을 최종 선고한 이후 5일 만이다. 김 전 지사는 이날 정오를 조금 넘겨 경남지사 관사를 나와 창원교도소에 12시 50분쯤 도착했다. 김 전 지사는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고 해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바뀔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말씀드린다”면서 “외면 당한 진실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은 가시밭길도 차근차근 헤쳐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전 지사는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후 77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대법원이 확정한 징역 2년에서 구속기간 77일을 제외한 남은 형기를 마쳐야 한다.
  • ‘을왕리 참변’ 음주운전자 보석청구 기각…법원 “도주 우려”

    ‘을왕리 참변’ 음주운전자 보석청구 기각…법원 “도주 우려”

    인천 을왕리해수욕장 인근에서 만취 상태로 차량을 몰다 역주행해 치킨 배달을 가던 50대 가장을 치어 숨지게 한 30대 운전자가 항소심 재판 중 청구한 보석이 기각됐다. 인천지법 형사항소2부(부장 이현석)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사(윤창호법) 및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로 구속기소된 A(35·여)씨의 보석 청구를 기각했다고 23일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근 2차 공판에 앞서 보석 심문을 별도로 진행한 뒤 “피고인은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지난해 10월 기소된 A씨는 1심 재판이 진행되던 올해 2월과 4월 두 차 구속기간이 갱신돼 10개월째 구치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앞서 인천지법 형사3단독 김지희 판사는 올해 4월 A씨에게 징역 5년을, 동승자인 B(48·남)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9월 9일 0시 55분쯤 인천시 중구 을왕리해수욕장 인근 도로에서 술에 취해 벤츠 승용차를 400m가량 몰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치킨을 배달하러 가던 C(사망 당시 54세·남)씨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당시 A씨가 운전한 벤츠 차량은 제한속도(시속 60㎞)를 22㎞ 초과한 상태에서 중앙선을 침범해 역주행했다.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94%로 면허취소 수치(0.08%)를 훨씬 넘었다. B씨는 사고가 나기 전 함께 술을 마신 A씨가 운전석에 탈 수 있게 리모트컨트롤러로 자신의 회사 법인 소유인 벤츠 차량의 문을 열어주는 등 사실상 음주운전을 시킨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B씨가 A씨의 음주운전을 단순히 방조한 수준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부추긴 것으로 판단하고 둘 모두에게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을 적용했다. 그러나 1심은 운전 중 주의의무는 운전자와 동승자 사이에 지휘·계약 관계가 없다면 원칙적으로 운전자에게만 부여된다면서 B씨의 윤창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음주운전 방조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 이웃집 10대에 ‘여보’ 성추행… 블랙아웃 핑계 ‘실형’

    이웃집 10대에 ‘여보’ 성추행… 블랙아웃 핑계 ‘실형’

    폭행죄로 수감됐다가 출소한 지 4일 만에 이웃집에 침입해 미성년자를 강제추행한 2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남성은 자신이 ‘블랙아웃’ 상태여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22일 광주고법 형사1부(부장 이승철)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상해)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항소심에서 원심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는 A씨에 대해 징역 4년을 선고하고,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복지시설 3년간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A씨는 지난해 8월 22일 새벽 광주의 자신의 집과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이웃집에 침입해 미성년자인 B양을 강제추행하고 상해를 가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당시 B양이 거주하는 주거지의 현관문을 수차례 두드렸고, 잠결에 지인으로 착각한 B양이 문을 열어주자 그대로 집안에 침입해 B양을 강제로 성추행하고 안방에 나체상태로 드러누웠다. A씨는 10분 뒤쯤 B양과 함께 거주하는 지인이 집에 도착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A씨는 해당 사건 직전에는 길을 가던 시민을 폭행했고, 만취 상태였다. 재판부는 A씨가 피해자를 반복해서 ‘여보’라고 부른 점,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수차례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포착된 폐쇄회로(CCTV) 등을 근거로 주거침입 고의는 단정하기 어렵다면서도 10대인 B양의 외모와 체격, 말투 등을 볼 때 A씨가 자신의 아내와 혼동할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으로 피해자는 극심한 두려움과 성적 수치심, 정신적 충격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며, 피해자는 현재까지도 수면장애 등 정신적 후유증을 겪고 있다”며 “피고인은 과거에도 충동적 행동으로 수차례 범행을 저질렀고, 특히 출소 4일 만에 다시 범행을 저지르는 등 죄질이 나쁘다”고 밝혔다.
  • 러시아, 애플·구글에 ‘나발니 관련 앱’ 삭제 명령

    러시아, 애플·구글에 ‘나발니 관련 앱’ 삭제 명령

    나발니 독살 시도 1년 만에 반체제 인사 탄압시도 정점러시아가 반체제 인사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조직, 운영해 온 반부패재단(FBK) 관련 앱을 제거해달라고 미국 회사인 알파벳과 애플에 요구했다고 인사이더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8월 20일 독극물에 중독됐다 독일에서 가까스로 회복, 지난 1월 러시아로 스스로 돌아와 수감된 나발니를 옥죄려는 러시아의 시도가 기업에까지 미치는 모습이다. 러시아의 통신·정보기술·미디어 감독청인 로스콤나드조르는 이날 개인화 기기 운영체제(OS) 운영사인 애플과 구글 측에 ‘나발니에 대한 이야기를 게시하는 전용 앱을 앱스토어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명령했다고 밝혔다. 로드콤나드조르는 지난 6월 러시아 모스크바 법원이 FBK를 극단주의 단체로 규정했다며 관련 앱 제거를 명령했다. 애플과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은 아직 관련 대응을 내놓지 않았다. 2008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이 설립한 연방 행정기관인 로드콤나드조르는 미디어 관리·감독 업무부터 개인정보 보호 관련 업무를 총괄한다. 앱이 삭제되면 나발니는 대중과의 소통채널을 잃게 되며, 이는 러시아가 공권력을 다각적으로 활용해 나발니 세력을 무력화 시키는 과정의 정점이 될 전망이다. 러시아는 2014년의 사기 혐의를 적용해 나발니에게 선고했던 집행유예형을 실형으로 전환해 그를 구금하고 있다. 이어 6월엔 러시아 법원이 수감된 나발니 대신 반체제 운동을 펴 온 FBK를 극단주의 단체로 규정, 활동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두 달 뒤 러시아 수사위원회는 FBK를 조직한 혐의를 물어 나발니를 추가기소했다. 추가기소 혐의가 법원에서 유죄 판단을 받는다면 당초 2023년 말쯤 형기를 마칠 예정이던 나발니는 러시아 대선이 열리는 2024년 이후인 2026년까지 감옥에 있게 된다. 나발니는 지난 19일 가디언 기고를 통해 “전 세계가 러시아 부패와의 싸움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호소했다. 다음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직접 나발니 석방을 촉구하고, 미국 재무부가 러시아인과 기업에 대한 추가 제재에 나섰지만 푸틴은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 안젤리나 졸리, 아프간 10대 소녀 편지 공개 “피흘린 실패”

    안젤리나 졸리, 아프간 10대 소녀 편지 공개 “피흘린 실패”

    미국 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인스타그램을 개설하고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점령당한 아프가니스탄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호소했다. 졸리는 20일(현지시간) 인스타그램 가입 후 아프간 현지 10대 소녀로부터 받은 편지를 올렸다. 이름과 사는 곳이 공개되지 않은 소녀는 편지에서 탈레반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며 “우리는 다시 수감됐다”라고 썼다. 소녀는 또 “탈레반이 오기 전 우리 모두는 권리를 갖고 있었고 이를 자유롭게 옹호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그들이 왔을 때 우리의 모든 꿈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고 호소했다. 유엔난민기구 특사인 졸리는 “9·11 테러 발생 2주 전 아프간 국경을 방문했을 당시 탈레반에서 도망쳐 나온 아프간 난민들을 만났다”며 “20년이 지나 아프간인들이 또다시 공포와 불확실에 사로잡힌 나라를 떠나야 하는 것을 지켜보려니 끔찍하다”고 밝혔다. 졸리는 현재 아프간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잃고 있다면서, 수많은 돈과 시간, 피와 생명을 희생해서 이런 실패를 맞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또 자신이 수십년간 지켜본 아프간 난민들을 세계인들이 부담스럽다는 느낌으로 대하는 것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아프간 여성들은 교육을 원할 뿐 아니라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싸웠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본 인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 세계와 공유할 것”이란 계획도 밝혔다. 졸리는 소녀의 편지와 함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부르카를 뒤집어쓴 이슬람 여성의 사진도 전했다. 탈레반은 20년 만의 미군 철수를 틈타 지난 15일 아프간 수도 카불을 장악한 후 포용과 변화를 내세웠지만, 약속과 달리 잔혹 행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부르카를 쓰지 않은 여성을 총살하거나, 여성 사진에 검정 스프레이를 뿌리는 등의 테러 행위가 자행됐다.
  • “까바리 광대를 아시나요”…고아 소년은 반평생 수용소를 떠돌았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까바리 광대를 아시나요”…고아 소년은 반평생 수용소를 떠돌았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들은 지난 5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수용시설 ‘뺑뺑이’ 끝엔 형제원…탈출해도 못 지운 폭행 그림자 ‘형제원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양재영(54)씨는 지난 날을 생각하면 억울함이 사무친다. 보육시설을 전전한 7년, 형제복제원에서 지낸 5년, 교도소에 수감된 9년…. 그의 어린 시절엔 가족의 울타리도 배움의 기회도 없었다. 양씨는 6살 때 시장에서 발견됐다. 이름 석 자도 누가 지어줬는지 알 수 없었다. 경찰은 그를 곧장 대구 희망원으로 보냈다. 이후 시설을 돌고 돈 끝에 그가 닿은 곳은 형제원이었다. 형제원에선 매일 맞았지만, ‘까바리 광대’ 기합은 특히 고통스러웠다. 기합을 받다 다쳐서 의무실에 가면 상처에 소독약을 적신 신문지를 박아넣는 ‘심 박기’ 처치를 했다. 더럽다고 때리면서도 씻을 물을 주지 않아, 고무신에 오줌을 받아 손발을 씻어야 했다. 탈출 계획을 짠 적도 있지만 시도조차 못 했다. 굶주린 친구가 빵 한 덩어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계획을 밀고했기 때문이다. 이후 가혹행위는 더 심해졌다. “대운동장 끝 낭떠러지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 실제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수용자들도 여럿 있었다. 13살에 입소한 소년은 18살이 돼서야 그곳을 벗어났다. 공장으로 팔아넘겨진 뒤 가까스로 도망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오랜 형제원 생활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양씨의 방황은 계속됐다. 조직폭력배 밑에서 일하다 교도소에서 20대를 보냈다. 신체적 후유증도 짙게 남았다. 폭행에 고름을 달고 살았던 귀는 지금도 잘 들리지 않는다. 쇠 파이프로 맞아 함몰된 두개골 탓인지 때때로 길을 걷다가도 순간적으로 ‘여기가 어딘지, 무얼 하고 있었는지’ 까먹는 기억상실 증상을 겪는다. 양씨는 법원의 판결로 고통의 시간을 만회할 수 있게 되기만을 기다린다. 아래는 양씨의 진술서 전문. 진술서는 양씨가 구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주변의 도움을 받아 작성됐다.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양재영 진술내용: 저는 1973년 대구 서문시장에서 미아로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5~6살로 추정하는데 제 이름 양재영도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시장통에서 울고 있던 저는 근처 비산 파출소로 보내졌고 경찰은 저의 부모를 찾아주지 않고 곧바로 대구 화원에 있는 희망원으로 보내버렸습니다. 희망원에는 유아 시설이 없어 부산 마리아 수녀원으로 보내졌고 여덟 살쯤 될 때까지 그곳에서 지내다가 이후 부산 소년의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열 살쯤 되어서는 서울아동보호소로 보내졌고 79년에 다시 대구 희망원으로 보내졌다가 80년에 형제복지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 뒤 85년 4월경, 서울 고척동 라이터 제조공장인 S물산으로 보내지기 전까지 5년간 형제복지원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형제복지원은 돈을 받고 사람을 공장에 팔아먹었다고 합니다. 곪은 상처엔 ‘심 박기’…오줌 받아 손발 씻어 형제복지원에서의 생활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먹는 것도 부실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맞아야 했습니다. 너무 많이 맞아서 다 이야기하기도 어렵습니다. 운동장에서 원상폭격(머리박기)은 너무 흔한 일상이어서 머리를 박은 채 졸기도 했습니다. 원상폭격을 심하게 시킬 때는 얼굴을 땅바닥에 박게 했습니다. 얼굴을 바닥에 댄 상태에서 발로 차여서 얼굴이 다 긁히기도 했습니다. ‘까바리 광대’라는 기합은 케첩 깡통을 땅에 세워두고 다리를 잡아 머리를 아래로 가게 해서 손을 놓아버립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히로시마’는 2층 침대에 다리를 걸고 거꾸로 받는 벌인데, 히로시마를 타다가 발등에 심한 상처가 났고 바로 상처를 치료하지 않아서 덧났습니다. 상처가 곪아서 발이 열 배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형제원에서는 죽을 만큼 맞아야 외부 병원으로 보내집니다. 곪은 상처로 병원은 꿈도 못 꾸지요. 신문을 가늘고 길게 말아서 소독약을 묻힌 뒤 퉁퉁 곪은 상처에 박아 놓았습니다. 그것을 ‘심 박는다’고 합니다. 의무실이란 곳에서 그런 처치를 해줍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내무사열을 하는데 청소가 안 되어 있거나 손톱, 발톱에 때가 있으면 기합을 받습니다. 씻어야 하는데 물을 언제나 쓸 수는 없었고 따뜻한 물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무신에 오줌을 받아서 손과 발을 씻었습니다. 저는 발보다 작은 고무신을 신어야 했는데 고무신에 덮이지 못하는 발등은 늘 봉긋하게 솟아 있었습니다. 그때 작은 고무신 때문에 발이 자라지 못한 것인지 지금 제 발은 몸에 비해 많이 작습니다. 탈출 계획은 ‘빵 하나’에 수포로…죽어나간 사람도 여럿 같은 방에 있던 친구 열 명과 함께 탈출을 계획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명이 빵 하나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를 고발해 버려서 중대장실과 원장실에 끌려가 죽을 만큼 맞았습니다. 고자질하면 같은 방에서 지내던 친구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줄 알면서도 빵 하나에 친구를 넘길 만큼 우리는 굶주려 있었습니다. 탈출을 시도해보지도 못했지만 도모했다는 이유만으로 중대장실에 끌려갔을 때 정신봉이라고 하는 빨갛게 칠해진 나무 몽둥이로 맞았습니다. 그러다 정신봉이 부러지자 쇠 파이프로 맞았는데 그때 머리를 맞는 바람에 두개골이 함몰된 상태입니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고생하고 있습니다. 귀도 너무 많이 맞아서 피가 엄청 났고 형제원에 있는 내내 고름으로 고생했고 지금도 한쪽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늘 귀에 고름을 달고 살아서 ‘귀꼴레’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중대장실에서 맞고 다음은 원장실에 끌려가 목검으로 맞았습니다. 박인근(형제복지원 원장) 목검에 맞으면 기절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 당시 원장실에 끌려가서 죽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탈출을 도모했던 우리 열 명은 그 뒤 몇 달간 밧줄에 엮어서 화장실 갈 때도 잠잘 때도 밥 먹을 때도 제식훈련을 받을 때도 기합을 받을 때도 다 같이 해야만 했습니다. 대운동장 끝은 낭떠러지였는데 그리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꼈습니다.형제원은 찬송가 교육, 군가교육을 심하게 시켰는데 주기도문, 사도신경, 교육헌장 등을 외우는 일도 무척 힘들었습니다. 만약 외우지 못하면 기합 받고 무지하게 두드려 맞았습니다. 교회에서 졸다가 맞은 적도 많습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안 맞은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누구 하나 실수하면 120명이 전부 빠따를 맞습니다. 크리스마스 특사 때 원장이 줄 서 있는 원생들을 숫자로 끊어서 다른 수용시설로 보냈는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형제원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야할 줄 알았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습니다. 뛰어내린 사람의 머리가 땅에 부딪혀 두개골이 깨어지는 소리는 끔찍할 만큼 컸습니다. 죽는 사람도 여러 명 보았습니다. 악대 선생한테 맞아 의무과로 갔던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공장 팔려갔다 ‘탈출’했지만…한 때 조폭 생활로 교도소 수감 85년 공장으로 팔려 갔을 때 저는 더 갇혀 있고 싶지 않아 공장을 뛰쳐나왔습니다. 공장 탈의실에 걸려 있던 작업복 주머니에 있던 500원짜리 동전을 훔쳐 나와 무조건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으니 다른 직장을 구하기도 어렵고 해서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먹을 거라도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엄마가 면회를 왔었습니다. 다른 말은 없고 미안하다고만 했습니다. 꿈결에 어찌나 울었는지 같은 방 사람들이 자고있는 저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 꿈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을 찾으려고 ‘아침마당’, ‘그 사람이 보고 싶다’ 등 텔레비전 방송에도 여러 번 나갔습니다. 그러나 끝내 부모님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는 제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포기했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는 힘든 시절을 보내다 조직폭력배 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21살에서 30살, 참 아까운 시절을 교도소에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수용시설을 전전하며 크는 동안 윤리, 도덕, 올바른 가치관, 이런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사랑보다는 폭력을 늘 당하며 살다 보니 사람들과 갈등을 대화로 푸는 것도 어렵습니다. 교도소를 나온 뒤 갈 데도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폭행 후유증으로 병든 몸…“합리적 판결로 보상받길” 그렇게 저는 반평생을 갇혀 살아야 했습니다. 어떤 무속인이 저에게 엉뚱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참 맞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참 고맙게도 2010년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더 이상 교도소에 가지 않으며 살고 있습니다.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고 지금은 착실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고있는 집이 잘못되어 몇 개월 뒤에는 이사를 가야 하는 형편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일자리를 찾아보지만 써주는 데가 별로 없습니다. 물류센터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일을 해봤지만 한 직장에서 오래 있지는 못했습니다. 기초수급자였는데 체격이 건장하다며 기초수급자에서도 잘렸습니다. 형제원에서 맞아 고름으로 고생한 귀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고혈압과 고지혈증이 있어 기압이 낮아지는 높은 작업 현장에서 일하기는 힘듭니다. 두개골 함몰 때문으로 추측되는데 순간적으로 기억이 끊어지는 일이 자주 있어서 일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길을 걷다가, 일을 하다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갑자기 기억이 끊어집니다.순간적인 기억상실 증상이 오면 저는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여기가 어딘지, 내가 무얼 하고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길을 걷다가 사람을 붙잡고 여기가 어딘지 물어서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또 형제원에서 기합 받을 때 허리뼈를 맞아서 다친 뒤로는 무거운 물건을 들 수가 없으니 몸을 쓰는 거친 일은 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형제원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생각하면 억울해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부디 합리적인 판결로 저의 아픈 기억, 배우지 못한 시간을 만회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추가 소송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전자발찌 찬 채 대낯에 행인 성폭행 40대 구속

    성범죄 전과자인 40대 남성이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찬 상태로 성폭행을 저질러 경찰에 구속됐다. 경기 김포경찰서는 강간 혐의 등으로 40대 A씨를 구속하고 검찰에 송치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지난 12일 오후 2시쯤 김포시 고촌읍 한 마을 인근 풀숲에서 중국 국적의 B씨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길을 가던 B씨를 뒤쫓다가 이 풀숲으로 끌고 가 범행한 뒤 도주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사건 현장 주변에서 A씨를 발견하고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그는 성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3개월 전 출소했으며 최근 김포로 이주했다. 이어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차고 법무부 관리를 받던 중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 당시 전자발찌 장치 신호가 수신돼 경찰서에 출동 지시가 내려진 정황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경찰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동기 등 세부 내용은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우려돼 밝힐 수 없다”며 “피해자에게는 전문기관의 보호조치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금수저가 왜 마약 밀매를.. 미모 인플루언서의 이중 생활

    금수저가 왜 마약 밀매를.. 미모 인플루언서의 이중 생활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 왜 그런 짓을 하게 된 것일까.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무는 사건이 브라질에서 발생했다. 왕성한 SNS(사회관계망서비스) 활동으로 10만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린 브라질의 인플루언서가 마약밀매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됐다고 현지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브라질 경찰에 따르면 로렌 로메이루라는 이름의 19살 인플루언서는 상파울로의 마약중심지 크라콜란디아를 무대로 활동했다. 개인이나 조직에게 마약을 도소매로 공급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브라질 언론은 "워낙 적극적으로 SNS 활동을 전개해 누구나 그를 전업 인플루언서로 알고 있었지만 그의 본업은 마약 판매였다"며 충격적인 소식에 사회가 깜짝 놀랐다고 보도했다. 게다가 로메이루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생 돈 걱정을 해본 적이 없는, 이른바 '금수저'였다. 현지 언론은 "그의 부모가 이름만 대면 아는 사람이 많을 정도의 백만장자"라며 "그런 집안의 딸이 마약거래에 손을 대게 된 이유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첩보로 시작된 수사 끝에 로메이루가 잡힌 곳은 브라질의 지방도시 바루에리였다. 로메이루는 버려진 호텔을 마약창고로 사용하며 본격적으로 마약장사를 했다. 경찰이 압수수색한 문제의 호텔에는 코카인, 마리화나, 엑스타시스 등 400회 투약이 가능한 마약이 숨겨져 있었다. 그는 철저한 이중생활을 했다. 낮에는 팔로워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인플루언서였지만 밤에는 코카인을 공급하는 마약사범이었다. 경찰은 "워낙 팔로워들이 많고, 얼굴이 알려져 있다 보니 신분을 감추기 위해 마약거래를 위해 밤에 외출할 때는 꼭 후드티를 입고 얼굴을 가린 채 집을 나서곤 했다"고 설명했다. 로메이루에겐 1살 된 딸이 있다. 중대한 마약사범이지만 사법부가 구속을 결정하면서 교도소 수감 대신 가택연금을 허락한 것도 아이를 돌봐야 하는 그의 사정을 감안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가택연금 5일 만에 무단으로 가택연금지에서 빠져나갔다가 덜미를 잡혔다. 그가 무단으로 이탈한 건 주문을 받은 마약을 배달하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로메이루에게 마약을 산 사람들이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었다면 그녀는 마약판매에 중독된 사람 같았다"고 말했다. 가택연금 중에도 마약을 팔려던 로메이루는 결국 교도소에 수감됐다. 재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 그는 교도소에서 자신의 엄마에게 "딸을 볼 수도, 엄마에게 그 어떤 부탁도 할 수 없게 됐어요. 엄마 사랑해요"라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 박근혜 전 대통령, 한 달 만에 퇴원…서울구치소 복귀

    박근혜 전 대통령, 한 달 만에 퇴원…서울구치소 복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병 치료를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복귀했다. 병원에 입원한지 한 달 만이다. 20일 법무부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성모병원에서 퇴원해 서울구치소에 다시 수감됐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어깨 수술 경과를 살피고 허리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했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2019년 9월 왼쪽 어깨 회전근개 파열 수술을 받고 두 달 동안 입원치료를 받았다. 지난 2월에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서울구치소 직원의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한 바 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징역 20년에 벌금 180억원, 추징금 35억원이 확정됐다.
  • 물류센터 특수감지기 의무화…“소방시설 차단시 사업장 폐쇄”

    앞으로는 물류센터에 공기흡입형 감지기와 같은 특수감지기와 스프링클러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정부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에서 물류센터 화재안전 종합대책을 확정했다. 우선 정부는 물류센터 내 화재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화재안전과 관련한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물류센터의 화재안전기준’을 제정해 특수감지기와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한 것도 그 일환이다. 소방시설을 폐쇄·차단한 사업장은 경우에 따라 사용금지 내지 폐쇄 조처를 하고, 대형물류센터와 물류센터 밀집지역 관리도 강화하기로 했다. 건물 규모에 따라 특급·1급 소방안전관리대상물에는 소방안전관리자를 의무고용하도록 하고, 물류센터에 전기지게차 충전설비를 설치할 때 전기안전관리자 입회와 상시점검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강화된 안전 기준이 적용되는 특급 소방안전관리대상물을 현재 연면적 20만㎡ 이상에서 10만㎡ 이상으로 확대한다. 소방용수 부족으로 화재진압이 늦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규모 물류센터 입주지역을 상수도 소화전 설치가 가능한 급수구역에 포함하도록 관련 지침 개정에도 나설 계획이다.
  • 박범계 “이재용, 무보수·비상임·미등기 경영…취업 아냐”

    박범계 “이재용, 무보수·비상임·미등기 경영…취업 아냐”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활동 재개가 ‘취업 제한’을 위반한다는 비판에 대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 부회장이 무보수와 비상근, 미등기임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취업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말했다. 박 장관은 19일 법무부 정부과천청사에 출근하면서 이 부회장의 취업 제한 위반 여부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 부회장은 무보수에 비상임, 미등기 임원”이라며 “주식회사는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통해서 최종 의사 결정을 하는데, 이 부회장은 참여할 수 없어 취업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다만 자신은 “제한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O, X’로 답할 순 없다”는 전제를 달았다. 박 장관은 또 과거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취업 제한 논란이 있었지만 ‘무보수, 미등기 임원’이라는 이유로 회장직을 유지한 사례도 언급했다. 과거 국민권익위원회가 비위 면직 공무원의 재취업을 판단할 때 ‘무보수’에 초점을 둔 사례도 같이 들었다. 그러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전날 성명을 내고 “보수를 받지 않고 미등기 임원이라서 법 위반이 아니라는 논리는 타당하지 않다”면서 이 부회장을 취업제한 규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앞서 청와대는 지난 13일 이 부회장 가석방과 관련해 “국익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이며, 국민들께서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냈다. 박 장관도 지난 9일 가석방 심사 결과 브리핑에서 “국가적 경제상황과 글로벌 경제환경을 고려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재수감됐다가 광복절 가석방 대상에 포함돼 지난 13일 출소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유죄가 확정된 시점부터 5년간 취업이 제한된다.
  • ‘가석방 이재용’ 취업제한 위반 고발…박범계 “국민 법감정”

    ‘가석방 이재용’ 취업제한 위반 고발…박범계 “국민 법감정”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은 가석방 이후 본격적으로 경영 행보를 시작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취업 제한’ 규정을 위배하고 있다며 고발을 예고했다. 경실련은 18일 성명을 내고 “이 부회장이 지난 13일 풀려나자마자 서초사옥으로 가서 사장들을 만나 경영 현안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며 “이 부회장은 가석방 이후 5년간 취업이 제한됨에도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재수감됐으나 이달 광복절 가석방 대상에 포함돼 지난 13일 출소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5억원 이상 횡령·배임 등의 범행을 저지르면 징역형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날부터 5년간 취업이 제한된다. 경실련은 “(취업 제한 규정은) 경제윤리에 반하는 특정경제범죄 행위자에게 형사벌 이외의 또 다른 제재를 가함으로써 범죄의 동기를 제거하기 위함”이라며 “이 부회장의 지금까지의 행보는 취업 제한 규정에 위배되므로 시민사회단체들과 논의하여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이 무보수 미등기 임원 신분이기 때문에 취업 제한 상태로도 경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부회장은 출소한 당일 곧바로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출근해 경영 현안을 보고받고 귀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이날 이 부회장의 취업 제한 논란과 관련해 “국민적인 법감정에 부응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가석방에 반영된 국민의 법감정은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듯 백신 문제, 반도체 문제에 대한 기대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부회장에 적용된) 무보수·비상근·미등기 임원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취업 여부 판단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이 조건으로 경영 활동을 하려면 현실적·제도적인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고, 사실상 취업제한 범위 내에 있어 위반이 아니라는 취지로 말했다. 다만 이 회장의 취업 제한을 해제할지에 대해서는 “고려한 바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 탈레반 ‘진짜 지도자’ 칸다하르에, “내가 트럼프와 직접 통화한 사람”

    탈레반 ‘진짜 지도자’ 칸다하르에, “내가 트럼프와 직접 통화한 사람”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53)가 대미 봉기의 중심지인 칸다하르에 돌아왔다.  카타르 도하에 있는 탈레반 정치국을 이끌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시를 받든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을 비롯해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정부 인사들과 철군 협상을 이끌었던 바라다르가 17일(이하 현지시간) 칸다하르 공항에 도착해 열렬한 환영 인파에 휩싸였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미군 철군 이후 갑자기 탈레반의 수중에 떨어져 탈출 행렬이 이어지는 카불의 풍경과 사뭇 다르다. 칸다하르는 탈레반의 정신적 고향이자 성지로 20년 대미 항쟁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바라다르는 다음날이나 19일 수도 카불로 이동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칸다하르는 오래 전부터 아시아와 인도를 잇는 통로 역할을 해 전략적 요충지로 침탈이 잦았던 곳이다. 기원전 4세기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도시를 세운 뒤, 중앙아시아의 많은 부족들이 차례로 이곳을 점령했다. 7세기에는 아랍인, 9세기에는 사파르 왕조, 10세기에는 가즈나 왕조의 지배를 받았으며, 몽골 침략자 칭기즈칸과 투르크 정복자 티무르에 의해 파괴됐다. 그 뒤 16세기 무굴 제국의 통치를 받았고 17세기 페르시아에 넘어갔다가 1747년에 통일 아프가니스탄의 첫 수도가 됐다. 우리가 헬레니즘과 동양 문명이 섞였다고 얘기하는 간다라 문명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칸다하르는 양과 양모, 목화, 비단, 모피, 곡식, 과일, 담배 등의 교역 중심지로 석류와 포도의 주산지로 유명하다. 파슈툰족의 땅이라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와 인연이 아주 깊은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1979년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뒤 이 일대에 자동소총 사단이 배치됐고, 이듬해 중반에는 사령부가 설치됐다. 1981년에는 파키스탄 국경을 넘나들던 아프가니스탄 게릴라들이 한때 이 도시를 점령한 일도 있었다.  바라다르는 1994년 대소 봉기를 목적으로 탈레반을 창설한 네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2001년 9·11 테러 한 달 뒤에 미군이 침공하자 반미 봉기의 중심 인물로 떠올랐다. 하지만 2010년 2월 파키스탄 남부 카라치에서 미국과 파키스탄의 합동작전에 의해 검거됐다.  8년 동안 수감됐다가 평화협상을 원활히 한다는 명분으로 풀려났다. 2019년 1월부터 도하의 탈레반 정치국을 이끌었다. 지난해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갖고 미국 정부 최고 책임자와 직접 협상을 벌인 첫 탈레반 지도자가 됐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탈레반을 이끄는 정치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아래 체계도로는 탈레반 최고 지도자인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에 이어 2인자이지만 실질적으로 조직을 이끄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환국하기 전 도하에서 미리 녹화한 성명을 통해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승리를 달성했다. 이제는 우리 국민들에 어떻게 봉사하고 보호할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과거 베일 뒤에 숨어 있던 탈레반 지도자들이 속속 전면에 나서면서 새 통치 체제 발표가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에 반(反) 탈레반 전선이 구축되고 이슬람 국가(IS) 등 과격 단체도 본격 행보를 시작하는 등 아프간이 또 다른 혼란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탈레반 공동 창설자 중 한 명인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의 아들 물라 무하마드 야쿠브도 카불 장악 다음날(16일) 카불에 들어갔다고 인도 일간 더힌두가 보도했다. 야쿠브는 탈레반 군사 작전을 총괄하며, 여러 차례 최고 지도자 후보로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대변인 자비훌라 무자히드도 전날 기자회견을 열어 얼굴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는 “우리는 복수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면령을 발표했다.  탈레반의 고위 간부는 이날 로이터 통신에 “세계는 느리면서 점진적으로 우리 지도자들을 모두 보게 될 것”이라며 “비밀의 그림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고 지도자 아쿤드자다의 소재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내전과 극단주의 부활 조짐도 감지된다. 타스 통신은 이날 이란 알-알람 TV를 인용해 카불 북동부 판지시르 주에서 암룰라 살레 아프간 제1부통령을 지지하는 부대가 탈레반과 충돌했다고 보도했다. 살레 부통령은 전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합법적 대통령 대행이라며 탈레반에 대한 저항에 동참해달라고 촉구했다. 더불어 우즈베크족 군벌 출신 압둘 라시드 도스툼 전 부통령도 판지시르로 1만명의 부대를 출동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친미 정부 붕괴와 함께 아프간이 테러리스트의 ‘성지(聖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친알카에다 매체의 계정에는 탈레반을 “형제들”이라고 부르며 이번 승리를 축하하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더힌두에 따르면 IS, 자이시-에-무함마드(JeM), 라슈카르-에-타이바(LeT) 등 이슬람 과격 단체의 많은 대원이 지난 며칠새 카불에 들어섰다.
  • 아프간 대통령궁 점령 탈레반, 악명높은 관타나모에 6년 갇혔다

    아프간 대통령궁 점령 탈레반, 악명높은 관타나모에 6년 갇혔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점령하고 지난 15일 기념사진을 찍은 탈레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 악명높은 미 해군 기지인 관타나모의 수용소에서 6년간 수감되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17일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도피한 대통령궁에서 자축 점령 사진을 찍은 탈레반 무장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인 골람 루하니가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수감됐다 2007년 풀려났다고 보도했다. 관타나모 수용소 기록에 따르면 루하니는 보초병에게 “우리가 밖에 나가면 너를 잡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승리 연설에서 루하니는 자신이 관타나모에서 거의 8년간 있었다고 말했지만, 정확하게는 6년간 수감됐다. 쿠바 영토에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는 9·11 테러가 일어나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 중에 생포한 테러리스트를 수용하기 위해 설립됐고, 인권 침해로 악명높은 곳이다. 루하니는 9·11이후 미국이 처음으로 체포한 탈레반 가운데 한 명이었다. 2002년 1월 관타나모 수용소가 문을 연 첫날 루하니는 이 곳에 갇혔다. 그는 2007년 12월 조지 W 부시 정권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추방됐다. 미 당국은 루하니가 풀려나면 미국에 보복할 것이라 협박했다고 전했다. 그가 풀려나기 전 미 국방부 관리는 루하니가 민병대에 가족이 있다면서 여기에 합류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국에 반격하는데 가담할 것이라 말했다고 했다. 하지만 루하니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의 수감 기간 내내 보초병과 교도관들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다고 한다. 2005년 4월 보초병에게 수용소에서 풀려나면 너를 잡겠다고 협박한 적은 있다.루하니는 탈레반의 정보부에서 일했으며, 2001년 12월 탈레반과 미국인과의 만남 도중에 체포됐다. 관타나모에서의 수감 기간 내내 루하니는 자신의 탈레반에서의 역할이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고, 미국이 그에 대해 수집한 증거를 부인했다. 루하니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1990년대에 군 복무를 해야만 했으며, 전투가 두려웠고 전쟁터에서 죽기 싫어 행정병을 자원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미 국방부에 자신이 정보국 소속이 아니라, 지역 경찰에 있었으며 풀뽑기나 청소와 같은 잡일을 했다고 말했다. 루하니는 자신이 탈레반에서 중요한 일을 하지 않았으며, 고향에서 가족들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했다고 강조했다. 9·11 전에는 알 카에다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으며,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에 전쟁을 몰고 왔다며 비난했다고 미 국방부 수감 기록에는 되어 있다. 루하니는 또 9·11 테러가 일어나자 탈레반을 그만두고 어울리지도 않았지만, 아는 사람이 탈레반과 미국인과의 만남에서 통역을 해달라고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체포된 탈레반과 미국인의 회담에 대해 “나는 우호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해 통역하러 나갔을 뿐이며 내가 미국편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관타나모에서 루하니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 아픈 아버지 대신 가게를 돌보고 싶다고 호소했다. 미 언론은 루하니 외에도 관타나모에 초기 수감됐던 탈레반들의 행적을 좇고 있다. 루하니의 전직 변호사는 그가 아프간으로 돌아가자마자 연락을 끊었다고 털어놓았다.
  • 제주 4·3 일반재판 수형 피해자 첫 형사보상 결정

    제주 4·3 일반재판 수형 피해자 첫 형사보상 결정

    제주 4·3 당시 일반재판에 회부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김두황(93) 할아버지가 형사보상금을 받게 됐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제주지법은 지난 9일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수감생활을 한 김 할아버지에게 1억5462만원의 형사보상 지급 결정을 내렸다. 일반재판을 통해 억울한 옥살이를 한 4·3 수형인에 대한 법원의 형사보상 결정은 이번이 첫 사례다. 형사보상은 억울하게 구금 또는 형의 집행을 받거나 재판을 받느라 비용을 지출한 사람에게 국가가 그 손해를 보장해 주는 제도다. 법원은 김 할아버지 측이 재심 청구한 내용을 인용해 법이 허용하는 최대치의 형사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김 할아버지의 무죄가 확정된 지난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한 최저 일급(8시간 근무)은 6만8720원이다. 법원은 형사보상법이 정한 상한은 최저 일급의 5배이므로, 1일 보상금 상한 34만3600원(6만8720원×5)에 구금 일수 450일을 곱해 형사보상금 규모를 산정했다. 제주 남제주군 성산면 출신인 김 할아버지는 1948년 11월 경찰에 끌려가 남로당 가입을 자백하라는 강요와 모진 폭행을 당한 뒤 목포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 1950년 2월 출소했다. 김 할아버지는 자신이 폭도들을 지원했다는 날조된 근거로 국방경비법 위반이 적용돼 옥살이하게 됐음을 알게 됐고, 명예 회복을 위해 2019년 10월 제주지법에 재심을 청구, 2020년 12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 1심 법정구속된 윤석열 장모, 법원에 ‘보석’ 청구

    1심 법정구속된 윤석열 장모, 법원에 ‘보석’ 청구

    불법으로 요양병원을 개설해 요양급여를 부정 수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모(75)씨가 항소심 재판부에 보석을 청구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 13일 자신의 항소심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윤강열)에 보석청구서를 냈다. 앞서 최씨 측 변호인은 지난달 2일 최씨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자 “75세 노인이 무슨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최씨는 의료기관 개설 자격이 없음에도 동업자들과 요양병원을 개설해 운영하면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요양급여 22억 9000여만원을 편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최씨 측은 혐의를 부인했으나 1심 재판부는 최씨에게 검찰이 구형한 대로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최씨 측이 항소함에 따라 사건은 서울고법에 오게 됐고, 항소심 재판부는 오는 26일 오후 최씨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 출석의무가 없어 최씨가 출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최씨는 당초 의정부교도소 내 구치소에 수감됐다가 지난 9일 서울구치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 [씨줄날줄] 1945년 8월 16일/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1945년 8월 16일/임병선 논설위원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풀려난 1945년 8월 15일 그날 광복의 감격을 오롯이 누리지 못했다. 고(故) 함석헌 선생의 말마따나 “해방이 도둑처럼 찾아왔”다. 이날 아침 경성 시내에 ‘낮 12시 천황의 중대 발표가 있다’는 벽보가 나붙었다. 일왕의 연설을 라디오로 들을 경성 시민은 많지 않았다. 일왕이 한 연설은 황족어라 웬만한 일본 지식인도 알아듣기 어려웠고, 일왕은 항복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무자비한 공격 때문에 많은 일본인이 희생돼 어쩔 수 없이 저들의 조치(포츠담 선언)를 정부가 받아들이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달라”는 취지였다. 패전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도 피해자”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제 야스쿠니신사를 찾아 공물을 바친 아베 신조 전 총리 등 극우 진영의 논리와 판박이임은 물론이다. 조선총독부는 일왕의 연설을 공표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에 대한 공격과 약탈이 벌어질까 두려워서였다. 일본의 항복을 5일 전쯤 미리 알았던 사람들도 섣불리 행동에 나설 수 없었다. 총독부 2인자인 엔도 류사쿠 정무총감은 오전 6시 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이끄는 여운형을 만나 전국 형무소 등에 수감된 정치범 등을 풀어 주겠다고 약속하고, 여운형에게 일본인 보호를 약속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난 정치범들이 환영 인파와 어울려 만세를 부른 것이 8월 16일 점심 무렵이었다. 교과서에 소개돼 우리가 늘 광복을 맞은 날의 감격이라고 기억하는 사진이다. 서울 계동 여운형의 집에 군중이 몰려와 민족의 앞날을 어떻게 그리는지 연설해 달라고 했다. 휘문중(현 현대 사옥)으로 옮겨 연설도 했다. 그 무렵 소련군이 경성에 들어온다는 뜬소문이 퍼져 10만 군중이 경성역(현 서울역)에 운집해 만세를 부르게 됐다. 건준 세력은 이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현 서울신문)와 경성방송국(현 KBS)을 접수했다. 우리가 진정 광복의 기쁨을 만끽한 날은 8월 16일이었다. 그 기쁨도 잠시, 임시정부가 미처 환국하지 못한 상태에서 종전에 맞닥뜨린 우리 민족은 해방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다음달 2일 미국과 일본이 미주리호 함상에서 항복문에 조인한 뒤 같은 달 9일 조선총독의 식민 통치권을 미군사령관에게 넘겨주는 문서가 체결됐다. 총독부에 일장기가 대신 성조기가 올라갔다. 건준은 와해됐고 이승만 정부가 1948년 광복절에 단독 정부를 수립했다. 올해 일요일에 맞이한 광복절부터 대체공휴일법이 적용돼 8월 16일은 대체공휴일이 됐다. 자력으로 맞이하지 못한 해방, 좌우로 분열된 지도자의 미흡한 준비, 미군정에 거부된 임시정부 등을 돌아보는 날이 됐기를.
  • 은둔형 리더·군사 작전의 명수… 탈레반 이끈 투톱

    은둔형 리더·군사 작전의 명수… 탈레반 이끈 투톱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장악하면서 이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들의 면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이 앞으로 내정과 외치에 있어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지역 정세는 물론이고 세계 안보 지형이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16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현재 탈레반의 최고 종교 지도자인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60세 추정)와 정치 수장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53)가 향후 아프간을 이끌어 갈 ‘투톱’으로 꼽히고 있다. 이슬람 법학자 출신으로 정치·종교·군사 등을 관장하는 아쿤드자다는 전사보다는 학자에 가까운 인물로 ‘신도들의 지도자’, ‘은둔의 지도자’ 등으로 불려 왔다. 1994년 탈레반을 창설한 1대 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2013년 사망 추정), 2대 아크타르 만수르(2016년 미군 폭격으로 사망)의 뒤를 이은 그는 최고 지도자가 되기 전 이슬람 모스크 성직자, 탈레반 종교법정 재판관 등을 지냈다. 뉴욕타임스(NYT)는 “아쿤드자다는 교육과 원칙을 중시하며 탈레반의 내부 통합을 우선시하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난 5월에는 그가 코로나19 감염으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탈레반은 이를 부인했으나 그의 소재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정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바라다르는 탈레반 지도자 가운데 외부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무하마드 오마르와 함께 탈레반을 세운 핵심 인물로 군사 작전의 명수로 통한다. 영국 가디언은 그를 “탈레반이 거둬 온 군사적 승리의 핵심 설계자”라고 평가했다. 2010년 미 중앙정보국(CIA)의 작전으로 파키스탄에서 체포돼 수감 생활을 해 오다 2018년 풀려났다. 지난해 2월 미국과 탈레반이 카타르 도하에서 평화협상을 할 때 탈레반을 대표했으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전화 회담을 갖기도 했다. 미 대통령과 탈레반 지도자의 첫 직접 대화였다. 바라다르는 지난달에는 중국 톈진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자국 유입을 우려하는 중국 정부가 그를 콕 집어 초대한 것은 외부에서 그를 사실상의 ‘탈레반 대통령’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번에 카불 함락 후 TV를 통해 공식 성명을 발표한 사람도 바라다르였다. 두 사람 외에 1대 지도자인 무하마드 오마르의 아들 무하마드 야쿠브(31세 추정)도 아버지의 후광으로 탈레반 내 커다란 지분을 갖고 있다. 2000년 군 사령관에 임명됐으며 평화협상을 지지한 온건파로 알려져 있다. 2016년 아쿤드자다가 최고 지도자가 될 때 야쿠브를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20대 중반이라는 어린 나이 때문에 불발됐던 만큼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과거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맞서 게릴라전과 테러전을 이끌었던 잘랄루딘 하카니(2018년 사망)의 아들 시라주딘 하카니(50세 전후)도 탈레반의 재정과 군수를 책임지며 지도자 그룹에 포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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