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살해위협 재개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인질을 납치한 탈레반이 5일 인질들에 대한 살해 위협을 재개했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이날 아프간 이슬라믹 프레스(AIP)와 전화통화에서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이 불만족스럽다.”면서 “만약 오늘도 한국 정부의 노력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인질들을 살해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마디는 이날 한국정부측과의 접촉 사실을 밝히면서 “한국정부는 유엔의 안전보장도 받아내지 못했고, 유엔에 공식 요청도 하지 못했다.”며 언제든 인질들을 살해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한국정부와 대면 접촉을 위해 장소 등에 대해 협의해온 탈레반은 지난 3일 유엔이 한국정부와의 접촉과 관련한 안전을 보장하라고 요구했으나 유엔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같은 살해 위협 재개는 6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와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정부 당국자는 “아프간 피랍자 중 한 명과 주아프간 한국대사관 관계자가 4일 직접 전화 통화를 했다.”고 5일 전했다. 이 당국자는 “우리측과 납치단체 간 전화접촉을 하는 과정에서 4일 오후 피랍자 중 한 명과 짧은 시간동안 전화통화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전화통화에서 피랍자 21명의 안전과 건강 등이 이야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알리 샤 아마드자이 가즈니주 경찰서장도 4일 로이터통신에 “협상장소를 둘러싼 협의가 계속되고 있다.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면 무력이 동원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정부는 아프간 피랍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외교와 군사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창의적 해법’을 추진하고 나섰다.
정부는 이를 위해 하나의 조건이 아니라 2∼3개 이상 복수의 조건을 묶은 패키지 형식의 협상을 검토 중이다.
이라크 자이툰 부대 주둔 연장이나 아프간 현지 동의·다산 부대의 즉각 철군, 아프간 대규모 경제 원조, 탈레반 수감자와 피랍자의 교환 노력 등 다양한 방안이 고려 대상에 포함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탈레반측과 다양한 경로로 접촉하고 있다.”면서 “‘피랍자-탈레반 수감자 맞교환’ 카드는 미국과 아프간 정부의 몫으로 우리 정부로서는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이미 전달했다.”고 밝혔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한국 정부가 탈레반과의 전화협상에서 “한국정부가 수감자 석방을 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정부는 탈레반과 직접 협상을 위한 접촉장소가 정해지더라도 접촉 자체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등 현 시점에서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피랍자들의 건강과 관련, 정부 당국자는 “의약품이 피랍자들에게 전달된 듯한 정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도 “항생제와 진통제, 비타민제, 심장약 등 한국인들을 위한 의약품을 가즈니 주 카라바그 사막지역에 두고 왔다.”는 와하지 병원의 모하마드 하심 와하지 원장의 말을 인용, 의약품이 탈레반에 전달됐다고 보도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탈레반 대변인 아마디가 “인질들은 1명씩, 적어도 500m 떨어진 가옥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앞서 인질 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여성은 4일 AFP통신과의 통화에서 “저들(탈레반)이 우리를 죽이겠다고 협박한다.”고 울먹이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교황 베네딕토 16세 등에게 구명을 호소했다.
이춘규 박찬구 김미경기자 ckpark@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