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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시경검사 부작용 설명의무 소홀 김할머니 유족에 4000만원 배상”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부장 이종언)는 연명치료를 거부한 고(故) ‘김 할머니’의 유족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병원 측이 위자료 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기관지 내시경 검사가 쇼크와 출혈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인의 딸에게만 설명해 ‘의사가 직접 환자에게 문제점을 알려줘야 한다’는 설명의무 원칙을 어겼다.”고 밝혔다. 이어 “고인이 부작용에 관한 검사 안내문을 간호사를 통해 받기는 했지만 병원 측이 설명의무를 이행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점에 대해 배상 의무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병원의 잘못된 시술로 뇌손상이 일어났다는 유족 측의 주장에 대해 “다발성 골수종 때문에 대량 출혈이 생겼을 개연성이 인정되고 의료진이 치료 과정에서 과실을 저지른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할머니는 2008년 2월 세브란스 병원에서 폐암 여부를 확인하려고 기관지 내시경 검사를 받다가 과다 출혈로 뇌손상을 입어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가족들은 평소 할머니 뜻에 따라 국내 최초로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소송을 벌여 승소했고, 할머니는 산소마스크가 제거된 지 201일 만인 지난해 1월 10일 사망했다. 가족들은 뇌손상 사고가 일어나자 2008년 3월 세브란스 병원에 의료과실과 오진 등의 책임을 물어 위자료 1억 4000여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와 별도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의사 2명을 고소했으나 서울서부지검은 지난해 9월 “치료에 문제가 없었다.”며 의사들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희곡 당선작] 아빠들의 소꿉놀이/오세혁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희곡 당선작] 아빠들의 소꿉놀이/오세혁

    ●등장인물 꾸부정 지금 막 해고된 초보 해고자. 40대 후반. 키 크고 꾸부정하다. 대머리 해고된 지 1년이 넘은 베테랑 해고자. 40대 후반. 키 작고 대머리다. 단발 꾸부정의 아내. 40대 초반 파마 대머리의 아내. 40대 중반 *연출에 따라 남편들이 부인들의 역할을 겸하는 2인극이 가능하다. ●시 간 현대 ●무 대 놀이터. 놀이터를 구체적으로 꾸밀 필요는 없다. 그네 두 개만으로도 연출이 가능하다. 바닥에 모래가 깔려 있으면 좋다. #1 해가 질 무렵의 저녁, 놀이터. 양복 차림의 남자가 힘없이 놀이터로 걸어 들어온다. 고개를 푹 숙이고 꾸부정한 모습으로 보아 무언가 고민이 있는 듯하다. 꾸부정한 이 남자, 그네에 주저앉는다.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벌떡 일어난다. 꾸부정 (어색하게) 여…… 여보… … 나 오늘, 해, 해, 해고……. 고개를 흔들며 그네에 주저앉는다. 그러다가, 다시 벌떡 일어난다. 꾸부정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여보, 훌쩍, 나 오늘 해고당했어. 머리통을 때리며 그네에 주저앉는다. 그러다가, 다시 벌떡 일어난다. 꾸부정 (호탕하게 웃으며) 사랑하는 여보! 나! 오늘 짤렸어! 멋지지? 하하하! 머리를 쥐어뜯으며 주저앉는다. 한참을 그렇게 쥐어뜯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결연히 일어나 열정적인 독백을 시작한다. 꾸부정이 열심히 말하는 동안, 양복 차림의 대머리가 천천히 걸어 들어와 옆에 있는 그네에 앉아 시계를 들여다본다. 자기 상상에 빠진 꾸부정은 대머리를 눈치채지 못한다. 꾸부정 여보. 우리가 결혼한 지 이십 년이 넘었구나. 단칸방으로 시작해서 전세를 거쳐서 우리 집을 갖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어. 비록 평수는 작지만 우리 집이라는 게 중요하지. 애들도 건강하게 잘 컸어. 얼마 안 있으면 큰애는 대학에, 작은애는 고등학교에 가겠지. 이 정도면 우린 잘 산 거야 그렇지? 당신,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아니? 뭐라고? 내가 제일 고생 많았다고? 십오 년을 변함없이 회사에 다녀주어서 고맙다고? 때론 가기 싫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했을 텐데 가족을 위해서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고? 아이, 당신도 참 부끄럽게…… 뭐라고? 이제 나이도 먹고 간도 안 좋을 텐데 생각 같아서는 한 몇 년 푹 쉬었으면 좋겠다고? 이럴 수가, 당신이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다니! 정말 고마워 여보! 하하하하……말이 나와서 말인데 여보……사실……내가……오늘……회사에서. 대머리 (불쑥) 소용없을 겁니다. 꾸부정 (화들짝)네 넷? (돌아본다) 아니, 언제부터 거기? 대머리 죄송하군요.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닙니다만. 꾸부정 괘 괜찮습니다. 그런데 방금……소용없다고……. 대머리 (단호) 네, 소용없습니다. 불쌍하게 말하든 호탕하게 말하든 부드럽게 말하든 소용없습니다. 해고라는 단어가 입에서 나오는 순간 부인께서는 엄청난 쇼크를 받으실 겁니다. 부인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휘청거리거나 털썩 주저앉거나 뒤로 넘어가게 될 겁니다. 부인이 건강하신가요? 꾸부정 아……아니요, 혈압이 조금. 대머리 혈압이라, 뒤로 넘어가겠군. 꾸부정 새……생각해보니 골다공증도. 대머리 뒤로 넘어져서 뼈가 부러지겠군. 꾸부정 얼마 전부턴 심장이 답답하다고. 대머리 뒤로 넘어져서 뼈가 부러진 다음 호흡 곤란을 일으키겠군. 꾸부정 뭐……뭐라구요! 대머리 집이 몇 층이죠? 꾸부정 시……십오층인데? 대머리 완벽하군요. 해고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선생의 부인은 혈압이 높아져서 뒤로 넘어지고 골다공증으로 뼈가 부러진 다음, 심장 이상으로 호흡 곤란을 일으킬 겁니다. 놀란 선생은 어떻게든 해보려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혈압과 뼈와 심장이 동시에 문제를 일으켰거든요. 우물쭈물하다가 선생님은 119에 전화를 하겠죠. 119 요원들은 잽싸게 아파트에 도착하지만 선생님의 집은 십오층입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맨 꼭대기 층에 있군요. 요원들이 계단을 뛰어올라 옵니다. 일층 이층 삼층 사층 선생의 부인은 점점 호흡이 가빠집니다. 오층 육층 칠층 더더욱 가빠집니다. 팔층 구층 부인의 의식이 점점 없어집니다. 십층 십일층 선생이 말합니다. 여보, 조금만 참아. 십이층 십삼층 선생이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여보, 제발 조금만 더 참아. 그렇게 십사층을 지나고 십오층에 도착해 마침내 선생의 집으로 왔을 때 선생의 부인은 이미……. 꾸부정 (이야기에 몰입해 있다가)아……안 돼! 안 돼! 여보오! 꾸부정, 털썩 쓰러진다. 대머리 그렇다고 말을 안 할 수는 없겠죠. 해고는 해고니까요. 이왕이면 부인의 컨디션이 최상일 때, 119가 바로 올 수 있는, 뒤로 넘어가도 뼈가 부러지지 않을만한 장소에서 하시죠. 부드러운 모래라든가……이 놀이터가 딱이로군요. (다시 그네에 앉아 시계를 들여다본다) 한참의 정적. 꾸부정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죠? 대머리 사실 저도 해고잡니다. 꾸부정 동업자…… 아니…… 동반자셨군요. 대머리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꾸부정 고참…… 이시네요. 혹시……선생님 부인께서도 뒤로? 대머리 아니요. 꾸부정 뼈가? 대머리 전혀. 꾸부정 호흡 곤란이라든가. 대머리 천만에요. 멀쩡합니다. 멀쩡함을 넘어 건강하죠. 김치찌개에다 밥을 두 그릇이나 비운 다음, 남은 찌개를 밥통에 넣고 비벼먹으니까요. 꾸부정 ……대단하군요. 대체……비결이……. 대머리 간단합니다. 해고됐단 얘기를 안했으니까요. 꾸부정 그, 그럼? 대머리 계속 다니는 줄 압니다. 꾸부정 아니 그게 일 년 넘게 가능한가요? 대머리 보통 사람은 불가능합니다. 꾸부정 하지만 선생님은? 대머리 전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영특, 기특,똑똑, 비범이란 말을 달고 다녔으니까요. 한마디로 머리가 좋았죠. 꾸부정 (대머리의 머리를 한참 쳐다본다) 대머리 지금, 대머리 주제에 머리가 좋아봤자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셨죠? 꾸부정 그……그럴 리가. 대머리 어쨌든, 저 정도의 두뇌라면 충분히 속이는 게 가능합니다. 분명한 원칙 규칙 법칙만 확립한다면 말이죠. (시계를 가리키며) 이 시계도 그런 원칙 중의 하납니다. 퇴근시간 여섯시, 전철 타고 내리면 여섯시 삼십분, 역 앞에서 버스 타고 동네까지 오면 여섯시 오십분, 동네에서 아파트까지 오는 데 여섯시 오십오분, 아파트에서 우리 집까지 오면 딱 일곱시, 그렇지만 시간을 너무 딱 맞춰 오면 이상하니까 적당하게 일곱시 삼분 정도……마침 지금이 일곱시 삼분이군요. 더 늦으면 어색합니다. 그럼 이만. 대머리, 일어나서 가려고 한다. 꾸부정 (벌떡 일어나며) 자……잠시만요. 대머리 ……. 꾸부정 저한테도 그……원칙 규칙 법칙을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대머리 (위아래로 훑어보며) 딱 보니 보통 사람이시군요. 불가능합니다. 꾸부정 (앞을 막아서며) 부탁드립니다. 대머리 일반인이 범접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꾸부정 스승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대머리 미안합니다. 늦으면 의심합니다. (가려고 한다) 꾸부정 (바짓가랑이에 매달리며) 제발요, 제발. 이렇게 빕니다. 우리 집사람이 뒤로 넘어가고 뼈가 부러지고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 사람은 저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랑……결혼을 해준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그렇게 되는 건 절대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일분일초라도 더 웃게 해주고 싶습니다. (무릎 꿇으며) 허락하실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겠습니다. 무릎 꿇은 꾸부정을 계속해서 지켜보는 대머리. 꾸부정, 점점 다리가 저려온다. 대머리 다리 저리죠? 꾸부정 ……조금. 대머리 이쯤 되면 좀 봐주지 저 대머리 진짜 독한 놈이다,라고 생각하셨죠? 꾸부정 그……그럴 리가요? 대머리 다리 저리면, 꼼지락하세요. 꾸부정 아……아닙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대머리 괜찮습니다. 꼼지락하세요. 꾸부정 그럼……조금만 꼼지락을. 꾸부정, 슬며시 꼼지락거린다. 대머리 (시계를 들여다본다) 시간이 꽤 지났군요. 어중간한 시간입니다. 지금 들어가면 뭔가 부조리합니다. 이럴 때는 회식을 한 것처럼 아예 늦게 들어가는 게 좋은 방법이죠. (전화를 건다) 나야, 별일 없지? 부장님이 딱 한잔만 하자고 하시네. 당신도 알잖아 부장님이 회사일 힘들면 나한테 털어놓는 거. 일찍 갈 테니까 밥은 먼저 먹어. (전화 끊자마자 가방에서 반병 정도 남은 소주를 꺼내 한 모금 마신다) 회식이라고 했기 때문에 입에서 술 냄새가 나야 됩니다. (오징어 다리를 꺼내 우물우물 씹는다) 술 냄새만 나면 이상하니까요. 자, 그럼, 훈련을 시작해 볼까요? 꾸부정 (기쁨) 저……정말이십니까? 대머리 시간이 없으니까 3단계로 요약 학습을 하죠.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꾸부정 (차렷 자세로) 옛! 대머리 가장 중요한 1단계는, 변화입니다. 꾸부정 변화? 대머리 많은 해고자들이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만 대부분 들킵니다. 왜일까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떠한 행동의 변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한숨을 쉰다든가, 소파에 푹 주저앉는다든가, 밥 먹다가 숟가락을 멈추고 한참을 멍하니 있는다든가, 밤이 깊도록 식탁에서 소주를 마신다든가, 아들한테 사립대 말고 국립대로 가는 건 어떠냐고 한다든가, 잠자리에서 등을 돌린 후 웅크리고 잔다든가, 자다가 자기도 모르게 흐느낀다든가. 이런 변화들이 해고를 들키는 가장 큰 이유죠. 꾸부정 (감탄) 그렇군요. 대머리 변화되지 않는 것. 일상적인 평범함을 유지하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꾸부정 (감탄의 연속) 으음……. 대머리 이론만 가지고는 감이 안 옵니다. 실전훈련을 해보죠. 이 놀이터가 집이고 제가 부인이라고 설정을 해봅시다. 선생은 회사 일을 마치고 막 퇴근한 상탭니다. 바깥에서 벨을 눌러보세요. (꾸부정이 멍하니 있자) 시간 없습니다. 빨리. 꾸부정 (얼떨결에) 예…… 옛! (바깥으로 달려 나가) 띵동! 대머리 (부인 흉내) 당신 왔어? 밥은? 꾸부정 (대머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풉……. 대머리 ……. 꾸부정 그게……집사람이 대머리라고 생각을 하니까 너무 웃겨서……. 대머리 ……. 꾸부정 죄……죄송합니다. 제대로 하겠습니다. 띵동! 대머리 당신 왔어? 밥은? 꾸부정 아, 먹었어. 대머리 (손을 잡으며) 고생 많았지? 꾸부정 …… 흐흑. (흐느낀다) 대머리 뭡니까? 왜 울죠? 꾸부정 (흐느끼며) 집사람이 손을 잡아주니까 갑자기 미안하고, 고생만 시킨 것 같고, 젖은 손이 애처롭고……. 대머리 어허, 이러니까 들키는 겁니다. 마음을 강하게 먹으세요. 돌부처처럼! 꾸부정 네……넷! 돌부처! 다시 하겠습니다. 띵동! 대머리 당신 왔어? 밥은? 꾸부정 (과장되게) 밥? 먹었지! 아주 많이! 대머리 (손을 잡으며) 별일은 없었어? 꾸부정 (더더욱 과장되게) 별일은 무슨, 평소랑 또오오옥 같았어 하하하하! 대머리 잠깐, 왜 이렇게 들떠 있죠? 회사에서 좋은 일이 있었나요? 꾸부정 아니요. 대머리 월급날입니까? 꾸부정 아니요. 대머리 부인 생일인가요? 꾸부정 아니요……별일 없었는데 대머리 그런데 왜 그렇게 오버를 합니까? 별일 없었는데 그렇게 오버 하면서 별일 없었다고 하니까 마치 별일이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꾸부정 아……거기까지는 차마. 대머리 자, 눈을 감으세요. 상상을 해봅시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고 반복적인 회사의 하루, 위에서 눌리고 밑에서 치이고 정리해고의 소문이 뒤숭숭하게 들려오고, 선생은 그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하루를 버티고 퇴근을 합니다. 지하철이 붐빕니다. 버스가 막힙니다. 심신이 지쳐있습니다. 터덜터덜 걸어옵니다. 그 상황에서 초인종을 누릅니다. 띵동! (부인 목소리) 당신 왔어? 별일 없었지? 꾸부정 (상상하다가 정말 지친 듯, 무심하게) 뭐, 똑같지 뭐. 대머리 나이스! 그겁니다! 하니까 되잖아요? 꾸부정 아? 정말? 정말 되네? 환호하는 꾸부정. 대견한 듯 지켜보는 대머리. 대머리 (느닷없이) 당신 왔어? 별일은? 꾸부정 (재빨리) 뭐, 똑같지 뭐. 하이파이브 대머리 당신 왔어? 별일은? 꾸부정 (능숙하게) 뭐, 똑같지 뭐. 하이파이브 대머리 당신 왔어? 별일은? 꾸부정 (완전 능숙) 뭐, 똑같지 뭐.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대머리. 대머리를 부둥켜 안는 꾸부정. 암전. 암전을 감싸는 작은 멜로디. #2 불이 켜지면 꾸부정이 초조한 듯 그네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상하게도 잠옷 차림. 그의 발밑에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들. 대머리가 체육복 가방을 들고 놀이터로 들어온다. 그네에 타고 있는 꾸부정을 의식 못한 채 양복바지와 윗도리를 벗는다. 아아, 그 속에 입고 있는 축구 유니폼. 대머리 (부인에게 전화하는 듯) 나야. 사내 축구대회가 이제 끝났어. 오늘은 두골밖에 못 넣었어. 부장님은 후보였지 뭐. 밥?……부장님이 같이 먹자고는 했는데…… 정 그렇다면 집에서 먹지 뭐. 금방 갈게. 전화를 끊고, 곧바로 모래밭에 뒹굴며 유니폼을 더럽히는 대머리. 만족한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꾸부정을 발견하고는 놀란다. 대머리 뭐……뭡니까? 꾸부정 오랜만……입니다 스승님. 대머리가 꾸부정을 잡아채어 그네 밑으로 숨는다.(숨어질 리가 없으니 웃기다) 대머리 오랜만? 헤어진 지 하루 만에 만났는데 오랜만이라구요? 꾸부정 오랜만은……아니네요. 대머리 이 놀이터는 제가 찜했으니까 다른 놀이터에서 시간을 때우라고 몇 번을 말했습니까? 꾸부정 그건……알지만. 대머리 대체, 40대의 못생긴 남자 둘이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다는 게 주민들이 봤을 때 얼마나 평범하지 않은 일인지 모르시는 겁니까? 꾸부정 ……. 대머리 방금, 솔직히 이 대머리보다는 내가 더 잘생겼는데 라고 생각하셨죠? 꾸부정 그……그럴 리가. 대머리 (쌓여있는 담배를 본다) 맙소사, 이 아까운 담배. 이 담배값이면 김밥이 두 줄이거늘…… 왜 이런 비행을 일삼는 겁니까? 혹시…… 걸린 겁니까? 꾸부정 ……. 대머리 세상에, 하루 만에 걸리다니……시키는 대로 안 했죠? 꾸부정 아…… 아닙니다. 배운 그대로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변수가 있었어요. 대머리 변수라니요? 꾸부정 스승님께 배운 1단계를 계속 되뇌면서, 심호흡을 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대머리 순간? 꾸부정 첫째 둘째가 쪼르륵 달려오더라구요. 그러고는 갑자기……. 대머리 갑자기? 꾸부정 아빠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첫째 놈이 어깨를 주무르고 둘째 놈이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이러면서 .(갑자기 목이 멘다) 대머리 세상에……본인 생일인지도 몰랐나요? 꾸부정 저는 집사람이랑 애들이랑 부모님이랑 장인 장모랑 부장님 상무님 전무님 사장님 생일밖에 모릅니다. 대머리 ……. 꾸부정 자식들이 생일노래를 불러주는데 어떤 아빠가 목이 안 멥니까. (흐느낀다) 대머리 잠깐, 이상하군요. 선생 말대로 대한민국의 모든 아빠들은 자녀들이 생일을 챙겨줄 때 웁니다. 자녀들의 생일 축하에 감동한 아버지가 고개를 돌리고 조용히 운다. 이건 튀는 게 아닌데? 평범한 건데? 꾸부정 조용히 운 게 아니라……. (갑자기 바닥에 뒹굴며 통곡한다) 대머리 음 ……그렇게 울었군요. 꾸부정 (끄덕이며 계속 통곡) 대머리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나 할 법한 울음을 생일 축하를 받는 자리에서. 꾸부정 (더 크게 통곡) 대머리 가족들은 가장의 뜬금없는 대성통곡에 당황했을 테고. 꾸부정 (그야말로 대성통곡) 대머리 그래서……그 다음 행동은? 꾸부정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도망치듯 안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대머리 도망치듯 이라, 이런. 꾸부정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안방 문을 잠그고. 대머리 맙소사. 꾸부정 밖에서 두들겨도 열어주지 않다가 . 대머리 하느님. 꾸부정 눈을 떠보니 아침이더군요. 대머리 ……부인은? 꾸부정 ……거실에서. 대머리 ……. 꾸부정 눈을 뜨자마자 너무 당황스러워서……몰래 집을 나왔습니다. 대머리 씻지도 않고, 드라이도 안 하고, 더군다나……잠옷 차림. 꾸부정 공원에 계속 숨어 있다가 시간 맞춰서 나온 겁니다. 스승님…… 저 어쩌죠? 대머리 일반인이 범접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고 그렇게 얘기했거늘. 꾸부정, 흐느낀다. 대머리, 눈을 감은 채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천천히 축구 유니폼을 벗는다. 속옷 차림으로, 꾸부정에게 축구 유니폼을 건네는 대머리. 대머리 회사원인 남자가, 씻지도 않고 드라이도 안 하고 나왔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러나 체육대회를 했다면 알리바이가 생기죠. 입으세요. 꾸부정 ……하지만……스승님도……. 대머리 저는…… 심판 봤다고 하겠습니다. (가방에서 호루라기를 꺼내 목에 걸며) 이건……다음 달에 쓸 거였는데……. 꾸부정 이 은혜……잊지 않겠습니다. 스승님. 대머리 들어가자마자 아버님 사진을 꺼내세요. 꺼내자마자 사진 부여잡고 우세요. 어제 선생은, 돌아가신 아버님 때문에 울었던 겁니다. 꾸부정 (경이로움) 과연……스승님은……. 대머리 이제, 뒹구세요! 꾸부정, 열심히 모래바닥에 몸을 뒹군다. 암전. 암전을 감싸는 작은 멜로디. #3 불이 켜지면 단발머리를 한 여성이 놀이터에 서 있다. 그녀는 양손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있다. 단발 (냉랭하게) 여보, 솔직히 말 안 하면 나, 집 나갈 거야…… 짤렸지? 그네 위에 주저앉는다. 다시 벌떡 일어난다. 단발 (울먹이며) 당신 나 죽는 꼴 보고 싶어? 빨리 말해? 짤렸지? 그네 위에 주저앉는다. 다시 벌떡 일어난다. 단발 (화통하게) 호호호호! 괜찮아 여보! 딱 보니까, 짤렸네? 호호호호!! 힘없이 주저앉는 단발머리.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 차분하게 독백을 시작한다. 단발머리가 독백을 하는 동안 파마머리를 한 여성이 조용히 들어온다. 그러고는 옆 그네에 앉아 벼룩신문을 보기 시작한다. 단발 (이성적으로) 여보, 나 당신과 지금까지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할 거야. 당신도 알겠지만 우린 부부야. 부부가 뭔데? 비밀이 없는 게 부부야. 내가 열을 셀 동안 당신이 끝까지 비밀을 말 안 해준다면 나……집 나갈 거야. 이게 당신의 마지막 기회야. (눈을 감고) 하나, 둘, 셋, 넷……. 파마 (불쑥) 대답 안 할 거예요. 단발 (화들짝) 네 넷? 파마 그쪽 아저씨한테 짤렸냐고 추궁해도 대답 안 할거라구요. 단발 ……. 파마 오히려 추궁하면 추궁할수록 그쪽 아저씨는 위험해질 거예요. 단발 위험해……진다구요? 파마 남편 성격이? 단발 조금……소심해요. 파마 소심하다라……열을 세자마자 바로 집을 뛰쳐나가겠네. 단발 약간 다혈질이기도. 파마 다혈질이라……바로 옥상으로 올라가서 뛰어내릴 수도 있겠네. 단발 조금 고전적인 면도. 파마 고전적이라……고전적으로 약국마다 돌면서 수면제를 살 수도 있겠네. 단발머리, 비틀거리다가 그네에 주저앉는다. 파마 너무 걱정하진 말아요. 뛰쳐나가면 잡으면 되고 옥상 문은 잠가놓으면 되고 약 먹어도 응급실이 있으니까. 그래도……상처는 남겠죠. 돈 없어도 살지만 자존심 없으면 못사는 게 남자니까. (일어나며)그럼 이만. 단발 저……저기……. 파마 ……. 단발 어떻게……그렇게……잘……. 파마 우리 아저씨도 짤렸거든요. 그것도 1년째. 단발 그쪽 아저씨가 혹시……뛰쳐나가셨나요? 파마 전혀. 단발 혹시 옥상에서? 파마 전혀. 단발 혹시 약을? 파마 전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건조하고, 재미없고, 대머리고. 단발 그게 어떻게 …… 가능하죠? 파마 모르는 척 했거든요, 해고당한 걸. 단발 모르는 척……그게……그렇게 쉽게……. 파마 평범한 주부들은 안 돼요. 어느 정도 비범해야만 가능하죠.(시계 본다)늦었네요. 잠시 후면 우리 아저씨가 이 놀이터로 올 거예요. 항상 여기 들렀다가 시간을 맞춰서 퇴근한 척하거든요. 파마머리, 벼룩시장을 챙겨서 집으로 걸어가는데. 단발 사모님! 파마 ……. 단발 저도……저도 비범하게 만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파마 일반 주부가 범접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에요.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단발 (무릎 꿇으며) 부탁이에요, 사모님. 저희 남편이 때때로 소심하고 때때로 한심하고 때때로 답답하기는 하지만……좋은 사람이에요. 오로지 집이랑 애들이랑 저밖에 모르는……그 사람이 옥상으로 올라가거나 약을 사러 돌아다니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그 사람이 계속해서 맘 편히 집으로 오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무릎 꿇으며) 부탁드려요! 한동안의 정적. 파마 제자로 받아주면……가끔 소금 설탕 간장 같은 거 빌려줄 수 있어요? 단발 그럼요! 파마 맛있는 반찬 하면 나눠줄 수도 있고? 단발 그럼요! 파마 그쪽 애들 통닭이나 피자 시켜주면 우리 애들도 불러 먹일 수 있고? 단발 그럼요! 파마 좋은 마음가짐이에요. 제자님이 그렇게 해주면 나도 제자님한테 그렇게 해주겠어요. 서로 서로 나눔으로써 감소된 경제력을 최대한 이겨내는 거예요. 단발 방금, 제자라고? 파마 그래요. 제자로 받아주겠어요. 단발 (큰절) 스승님! 파마 (대머리에게 전화하는 것일까) 여보, 퇴근하는 중이지? 미안한데 올 때 계란 좀 사다줘요. 동네 슈퍼 말고 꼭 유기농 파는 데로 가서, 그래 큰길가에 있는, 고마워요. (전화 끊는다) 우리 아저씨가 놀이터로 오는 시간을 지연시킨 거예요. 수업을 해야 하니까 단발 그런 깊은 뜻이! 그럼 저도 전화할까요? 파마 비싼 거 말고, 계란이나 당근처럼, 싸면서도 깐깐하게 골라야 하는 걸로, 그래야 남편에게 부담이 안 가면서 시간도 벌어지니까. 단발, 꾸부정에게 열심히 전화한다. 파마, 대견하게 지켜본다. 통화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수업에 들어가는 두 사람. 파마 상태 체크부터 해보죠. 그쪽 아저씨가 해고당했을 거라는 판단을 하게 된 이유는? 단발 그게……집에 왔을 때만 해도 평소랑 똑같았어요. 별일 없었냐고 물어보니까. 파마 “뭐, 똑같지 뭐.” 라고 했죠? 단발 (놀란다) 그걸 어떻게? 파마 그게 1단계니까요. 단발 그런데 그날이……남편 생일이었거든요. 그래서 애들이 노래를 불러줬어요. 그런데. 파마 그쪽 아저씨가 한참을 가만있다가 대성통곡을 한 거죠? 단발 맞아요! 파마 그러다 울먹이면서 안방으로 뛰쳐들어갔을 테고. 단발 맞아요! 파마 문을 잠가놓고 밤새 안 열어주다가 다음 날 아침에 잠옷 바람으로 나갔는데 들어올 때는 축구 유니폼을 입고 들어오더니 아버님 사진을 꺼내놓고 울지는 않던가요? 단발 맞아요! 그것도 멀쩡히 살아계신 아버님을……. (흐느낀다) 파마 분석을 해보니, 짤린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나오는 증상이네요. 지금이 가장 위험할 때에요. 걸릴까 말까 말할까 말까 집에 들어올까 말까를 가장 고민할 때죠. 단발 그……그러면……어떻게? 파마 제자님이 실력을 발휘할 때인 거예요 일명 ‘모른 척’의 실력을. 단발 모른 척의 실력? 파마 생각해봐요. 남편들이 “아, 걸릴지도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을 언제 하게 될까요? 단발 글쎄……. 파마 바로 ‘눈빛’이에요. 단발 눈빛? 파마 가장들이 고달프고 괴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힘이 뭘까요? 그건 바로 가족들의 눈빛이에요. 힘들게 일을 마치고 돌아 왔을 때,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가족들의 애정 어린 눈빛. 그럴 때 가장들은 힘을 얻는 거예요. 단발 아! 그렇다면, 앞으로 그 눈빛을 더 열심히 보내주면 되겠네요? 파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요. 그건 그 사람들이 ‘일’을 할 때잖아요. 단발 ……. 파마 지금은 일을 못 하고 있는 상태죠. 일을 못 구해서 미안하고 돈을 못 버니까 미안하고, 그런 가슴 아픈 상태에서 집에 들어왔는데 가족들이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낸다고 생각해봐요. 어떻겠어요? 단발 (서서히 깨달음을 얻는다) 아아……. 파마 애들이 노래를 불렀을 때 그쪽 아저씨가 왜 대성통곡을 했는지 알겠죠? 단발 (깨달음) 이제야 알겠습니다. 스승님. 파마 그렇기 때문에 그 1단계가 바로 ‘눈빛 돌리기’ 인 거예요. 단발 눈빛 돌리기! 파마 시간이 없으니 바로 실전으로 들어가 봐요. 남편이 퇴근한 척하고 집에 들어왔어요. 대꾸를 해 보세요. “여보, 나 왔어.” 단발 (눈빛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으……응……별일 없었어? 파마 그렇게 어색하게 눈빛을 돌리면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느낌이 바로 오잖아요. 단발 그렇네요. 파마 다시 한 번 해봐요. “여보, 나 왔어.” 단발 (처음부터 딴 데를 보며) 응, 별일 없었지? 파마 그렇게 처음부터 딴 데를 보면서 얘기하면 냉랭해져 있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단발 아아…… 어렵네요. 파마 눈빛을 피하되, 의도적이지도 냉랭하지도 않게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피해야 되는 거예요. 상상을 해봐요. 남편이 집에 왔을 때 눈빛을 돌리고 있을만한 자연스러운 무엇. 단발 자연스러운 무엇이라……. 파마 시범을 보여주죠. 역할을 바꿔 봐요. 단발 (남편 흉내) 여보, 나 왔어. 파마 (뒤돌아 요리하는 척) 왔어? 계란 사왔어? 단발 (계란 건네주는 척) 응, 여기. 파마 (계란 받자마자, 다른 곳으로 가며) 빨래가 다 됐나? 당신은 빨리 씻어. 단발 (씻으러 가는 척) 응, 그래. (씻으러 들어갔다 나온 듯) 다 씻었는데? 파마 (식탁을 가리키는 듯) 밥 차려놨어. 단발 당신은? 파마 당신 기다리다 배고파서 먹었어. 아이고, 내 정신? 드라마 녹화해 놨는데. (거실로 달려가는 시늉) 단발 (껄껄 웃는다) 허허 당신도 참! (편하게 밥을 먹는 시늉을 하다가) ……어머? 한 번도 안 마주쳤어요! 파마 그리고 자연스럽죠? 단발 남편 입장에서도 정말 자연스럽고 편하겠어요! 파마 이 1단계를 여러 가지로 조합해서 써먹으세요. 요리-빨래-드라마, 드라마-요리-빨래 같은 식으로. 여기서 중요한 건, 요리가 맨 마지막에 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밥을 같이 먹게 되고, 같이 먹게 되면 눈이 마주치게 되니까. 단발 (경이로움) 스승님……. 파마 통닭 시키면, 꼭 우리 애들 불러줘요. 단발이 파마를 껴안는다. 암전. 암전을 감싸는 작은 멜로디. #4 불이 켜지면, 꾸부정이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대머리를 기다리고 있다. 대머리가 생일 때 쓰는 고깔모자를 쓰고 천천히 걸어온다. 꾸부정 스승님! 대머리 (고깔모자가 부끄러운 듯) 오늘, 생일이거든요. 오늘 컨셉은 직원들이 해준 생일파티 컨셉입니다. 1년에 한번밖에 못 써먹는 게 아쉽긴 하지만…… (꾸부정의 상태를 보고) 좋아 보이는군요. 꾸부정 그럼요! 집사람이 완전히 속아 넘어갔습니다. 우연의 일치이긴 하지만 집에 갈 때마다 빨래를 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드라마를 보고 있더라구요. 눈이 안 마주치니까 더더욱 마음이 편합니다. 하하하하! 대머리 참으로……대단한 우연의 일치로군요. 꾸부정 네? 대머리 아닙니다. 그런 우연이 겹칠 때가 있죠……저도 그랬으니까. 어쨌든 다행입니다. 꾸부정 (비닐봉지를 내밀며) 저어……이거……. 대머리 이건? 꾸부정 스승님 생신 선물입니다. 대머리 ……해고자들끼리는……경조사를 모른 척 하는 게 불문율인데……. 꾸부정 그건 알지만, 스승님의 생신이니까요. 자판기 커피를 서울역에서 영등포 쪽으로 옮기니까 50원이 절약되더라구요. 그걸 두 달 동안 모아서 산 겁니다. 대머리, 천천히 봉지를 열어본다. 그 안에는 소주 한 병이 들어있다. 꾸부정 한 달 치 회식 아이템입니다. 대머리 ……직원들도……챙겨준 적 없었는데……선물……. 꾸부정 ……약소합니다. 한동안 말없이, 소주병을 만지작거리는 대머리. 대머리 (분위기 전환) 흠흠, 두 달이 지났으니 2단계로 들어갈 차례로군요. 꾸부정 그 생각을 하니까 두근거려서 잠이 안 왔습니다. 대머리 배우고 익히면 때때로 즐겁지 아니하죠. (선물 받은 소주를 따서 권하며) 일단, 한 모금 하시죠. 꾸부정 하지만……이건 스승님의 대머리 오늘은 제 생일이니까 특별히 보름치만 마시죠 (오징어 다리 네 개를 꺼내며) 안주도 사치스럽게 1인당 무려 두 개씩. 소주병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맛있게 소주를 마시는 두 남자. 대머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꾸부정 글쎄요, 명함? 대머리 (고개 흔든다) 꾸부정 그럼, 양복이나 작업복? 대머리 이렇게 물어보죠. 직장에 다니는 이유가 뭡니까? 자아실현 같은 뻔한 답 말고. 꾸부정 돈을 벌기 위해서죠. 돈을 벌어야 가족들 먹여 살리고 집도 사고. 대머리 그렇습니다. 돈, 바로 월급이죠. 직장을 다닌다는 가장 큰 증거는 바로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입니다. 꾸부정 (이마를 치며) 아아 그렇구나. 대머리 선생이 그 어떤 실수나 튀는 행동을 하더라도 월급을 꼬박꼬박 가져다주는 한 쉽게 의심받지 않습니다. 1단계보다 더 강력한 2단계는 바로 ‘월급’입니다. 꾸부정 월급이라……무슨 수로 월급을……. 대머리 퇴직금과 저축과 비자금을 포함하면 얼마나 됩니까? 꾸부정 한……삼천 정도……. 대머리 적군요. 꾸부정 당겨쓰는 바람에……. 대머리 월급은? 꾸부정 이백이 조금……. 대머리 적군요. 꾸부정 성과급제 인지라……. 대머리 봅시다, 재취업의 목표를 일 년으로 잡았을 때, 총자본 삼천에서 하루 용돈 만원 곱하기 365해서 빼면 2635만원. 중간 중간 부인과 아이들 생일 선물 챙겨주고, 가끔 부모님 외식도 시켜드리고, 아프면 병원 가야되고, 친구 만나면 술 한잔도 해야 되니까 100만원 빼면 2535만원. 이걸 열두 달로 나누면 211. 25만원. 딱 맞아떨어지는군요. 꾸부정 이럴 수가! 이토록 맞아 떨어지다니! 대머리 아직 감탄은 일러요. 변수를 따져봅시다. 올해 안에 큰돈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 뭐가 있죠? 꾸부정 음……올해 봄에 어머니 금니를 해드리기로. 대머리 돈 더 모아서 내년에 임플란트 해드린다고 하세요. 꾸부정 음……올해 여름에 가족들하고 제주도를. 대머리 돈 더 모아서 내년에 하와이 가자고 하세요. 꾸부정 처제가 연애를 하는데 가을쯤 결혼하고 싶다고. 대머리 어떻게든 둘이 깨지게 만드세요. 꾸부정 겨울에 큰애가 수능을 보는데 그럼 대학 등록금을. 대머리 어떻게든 재수하게 만드세요. 꾸부정 이럴 수가! 이토록 쉽게 해결되다니! 선생님은 천재예요! 대머리 지금 당장, 은행으로 가서, 입금 하세요. 꾸부정, 대머리를 부둥켜안는다. 암전. 암전을 감싸는 작은 멜로디. #5 불이 켜지면, 단발과 파마가 그네에 앉아있다. 단발은 통닭을, 파마는 장조림 통을 들고 있다. 그들의 발밑에는 반쯤 남은 소주병(남자들이 마신)이 남아있다. 단발 다 먹으면 살찐다고 애들한테 강제로 뺏어 온 통닭이에요. 파마 우리 애들 좋아하겠네. 이건 우리 엄마가 보내준 장조림이야. 단발 이 귀한 걸. 파마 미국산일 거야. 단발 찬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죠. 두 여자, 웃는다. 단발 (소주병을 내려다보며) 회식을 보름치나 빠뜨려놓고 갔네요. 불쌍한 그이. 파마 남은 보름은 축구대회로 때우겠지. 모래판에 뒹굴고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파. 단발 이번 달엔 월급을 두 번이나 입금했더라구요. 파마 우리 아저씨는 실수로 우리 딸한테 입금한 적도 있어. 두 여자, 웃는다. 파마 월급날이니까 당당하게 들어오겠네. 오랜만에……하자고 할지도 몰라. 단발 어머, 스승님도. 파마 안 좋아도……좋은 척해 줘야지 뭐. 단발 난 그냥……좋은데. 파마 역시, 젊구나. 두 여자, 웃는다. 파마 (소주병 집으며) 이 회식 보름치는, 우리가 마시자구. 곗날이었다고 하지 뭐. 단발 곗날이라……짤린 지 1년 넘은 곗날. 파마 난 2년. 두 여자, 한참을 웃다가, 사이좋게 소주를 나눠 마신다. 파마 그 아저씨들…… 앞으로 1년 버티기도 간당간당할 거야. 퇴직금은 한계가 있지. 단발 우리 남편은…… 당겨썼을 텐데. 파마 중간에 큰돈 들어갈 일 있으면 알아서 짤라줘. 어머니 금니라든가 제주도로 떠나는 가족 여행이라든가 자식들 학자금이라든가 동생 결혼식 같은 것들 있잖아. 단발 어머?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파마 사는 게 비슷비슷하니까 돈 들어가는 것도 비슷비슷하겠지 뭐. 단발 정말이지……스승님은. 파마 대놓고 짜르면 의심하니까 자연스러워야 돼. 나 같은 경우는 뉴스를 많이 활용해. 요즘 뉴스에 경제 어렵다는 얘기 많이 나오잖아. 등록금에 목숨 끊고 효도 못 해 목숨 끊고 결혼 못 시켜줘서 목숨 끊고……그런 뉴스 나올 때마다 호들갑을 떠는 거야. “어머머머, 저걸 어떡해? 우리라고 안심하면 안 되겠네. 여보, 경제도 어려운데 당분간 허리띠 좀 졸라맵시다.” 그럼 남편이 그러겠지. “그래도……할 건 해야 되잖아?” 그럼 이러는 거지. “그거 안 한다고 당장 죽어? 다 내년에 합시다. 금니는 임플란트로, 제주도는 하와이로, 그리고 첫째 너는 조금만 더 공부하면 ‘인 서울’ 가능해. 그냥 재수해. 그리고 동생 결혼식은……으이그 나 그 남자 맘에 안 들어!” 두 여자, 배꼽을 잡다가, 다시 기분 좋게 마시는 소주. 파마 자기도…… 빨리 일을 구해야 돼. 단발 ……그래야죠. 파마 일을 구할 때도 튀지 말아야 돼. 집에만 있으니까 갑갑하다, 옆집 엄마들이 마트에 가서 일하니까 돈도 벌어 좋고 심심하지도 않아서 좋지 않느냐, 일도 엄청 편하다더라…… 물론 편하지는 않지……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단발 ……. 파마 그래도 마트를 구하면 다행이야. 술집을 돌면서 전병을 파는 아줌마들도 있어. 단발 ……. 파마 더 심하면……도우미로 나서는 거지. 단발 ……. 파마 남자들도 마찬가지야……일을 도저히 못 구하면 아빠방 같은 데로 가기도 하거든. 알지? 그, 남자 도우미 같은……. 단발 ……. 파마 대단한 거야……그렇게 해서 가족이 유지되니까. 단발 대단하네요……저로서는 엄두도 못 낼……. 파마 더 지나면……엄두가 날 거야……. 단발 ……. 파마 ‘뭐든’이라는 단어가 중요해. 뭐든. 단발 ……뭐든. 파마 2단계가 바로 그 ‘뭐든’ 이야. 단발 ……. 파마 (벼룩시장을 건넨다) 생일 축하해. 선물이야. 단발 ……고마워요. 파마 꼼꼼히 읽어 보면 일을 구할 수 있을 거야. (소주병을 들고) 마시자고……곗날인데 말없이, 소주를 마시는 여자들. 암전. 암전을 감싸는 작은 멜로디. #6 불이 켜지면, 꾸부정이 축구 유니폼 차림으로 모래판에 열심히 뒹굴고 있다. 잠시 후,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대머리. 그러나, 대머리가 아니다. 윤기 흐르는 리젠트 헤어스타일에 삐까번쩍한 양복, 광나는 구두. 그러나, 왠지 어색한.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운. 꾸부정 스승님! …… 머리가? 대머리 가발입니다. 꾸부정 결혼식이라도? 대머리 (대답 없는 미소) ……이제, 완벽하게 홀로서기를 하셨군요. 꾸부정 스승님 덕분이죠……덕분에 집사람이 뒤로 자빠지지 않을 수 있게 되었네요.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어머니 금니도 가족들 여행도 다 내년으로 미뤄졌어요. 처제는 결혼 상대가 갑자기 마음에 안 들고 아들놈은 갑자기 ‘인 서울’을 노리겠다더군요. 4년제도 힘든 놈이……. 대머리 그건 정말로……완벽한 행운이군요. 꾸부정 예……그야말로 완벽한……. 대머리 ……. 꾸부정 집사람이 일을 시작했어요. 집에만 있으니까 심심하다면서. 대머리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겠군요. 꾸부정 전병을 팔고 있더라구요……술집을 돌아다니면서. 대머리 ……. 꾸부정 심심하다고 할 만할 일일까요……전병을 파는 게……. 대머리 ……. 꾸부정 ……심심해서겠죠……분명……. 좋은 건지, 씁쓸한 건지 모를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네를 타는 두 남자. 대머리 마지막 3단계를 배울 차례로군요. (양주를 꺼낸다) 양주 한잔 하시죠. 꾸부정 양주가……어디서? 대머리 (대답 없는 미소) 졸업 선물입니다. 어떠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양주를 받아 마시는 꾸부정. 대머리 3단계는 ……시간입니다. 꾸부정 ……시간. 대머리, 그네에서 일어나 놀이터를 천천히 거닌다. 대머리 어릴 때 놀이터에서 소꿉놀이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꾸부정 ……. 대머리 의사도 됐다가 선생님도 됐다가 과학자, 대통령, 경찰관, 소방관, 백화점 사장, 옷가게 사장, 슈퍼마켓 사장……그렇게 소꿉놀이를 하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시간이 더 많으면 나는 더 많이 놀 수 있을 텐데, 이렇게 생각했죠. 시간이 많다는 게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는 걸……이제야 깨닫게 되는군요. 꾸부정 ……. 대머리 선생님이 해고된 순간부터 선생님에게는 엄청난 시간이 생겼습니다. 이제 선생님은 직장을 구할 때까지 평범함을 연기하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시간과 싸워야 합니다. 늦잠을 잘 수 없습니다. 출근 하는 척해야 되니까요. 밖에서 시간을 때워야 합니다. 퇴근 시간이 되어야 집에 갈 수 있으니까요. 밥도 혼자 먹어야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직장에서 먹으니까요. 비싼 걸 먹으면 안 됩니다. 돈이 없으니까요. 꾸부정 ……. 대머리 동네 주변에 있으면 안 됩니다.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극장도 있고 피씨방도 있고 커피숍도 있지만 갈 수 없습니다. 돈이 드니까요. 아침이 되면 꾸역꾸역 밖으로 나가서 저녁이 될 때까지 아는 사람 없는 곳에서 돈 안 드는 방법을 택해서 시간을 죽여야 됩니다. 시간이 많다고 책을 읽어서도 안 됩니다. 취직을 위해서 교차로 벼룩시장 가로수만 죽어라 읽고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매일매일 그런 시간과 싸워야 됩니다. 그게……마지막 3단계입니다. 꾸부정 ……. 대머리 (놀이터를 둘러 본 후) 어릴 때는 이 놀이터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습니다. 놀이터에서 대머리의 어른이 미끄럼틀을 타고 있으면 웃기잖아요……어른이니까……. 꾸부정 ……. 대머리 (시계를 본다) 이제 가야겠군요. 저도 오늘은 축구대회라고 한지라 ……. 대머리, 가발을 벗고, 비까번쩍한 양복을 벗으면, 그 안에 입혀져 있는 유니폼. 그 상태로 모래바닥에 사정없이 뒹굴고, 꾸부정도 말없이 뒹굴고. 꾸부정 (뒹굴면서) 스승님……우리…… 소꿉놀이 한다고 생각하면 되겠죠? 어릴 때처럼? 대머리 (역시 뒹굴면서) 우리 같은 중년의 가장에겐……조금은 괴로운 소꿉놀이군요. 그런데……어릴 때 소꿉놀이 할 때는 왜 한번도……회사원 역할을 안 했을까요. 꾸부정 ……. 대머리 시시해서였을까요? 꾸부정, 말없이 더욱 열심히 뒹굴고, 대머리도 그런 꾸부정을 보며 더더욱 열심히 뒹굴고……. 암전. 잠시 후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 그리고, 동시에 들려오는 두 남자의 목소리. 목소리 나 왔어…… 별일은 무슨…… (심호흡을 한번 하고) 뭐, 똑같지 뭐. 작은 멜로디. -막-
  • “여자가 되고파”…스스로 성전환 청년 ‘발칵’

    성정체성 혼란으로 고민해온 영국의 20대 남성이 집에서 스스로를 ‘거세’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 영국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 영국 대중지 데일리메일은 “더비셔 체스터필드에 사는 보안상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22세 청년이 스스로 집에서 성전환수술을 했다.”고 지난 2일(현지시간) 전했다. 성전환술은 숙련된 전문의가 환자를 전신마취 시킨 뒤 진행하는 정밀한 수술이지만 이 남성은 성정체성으로 고민하다가 우발적으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놀라운 건 이 남성은 ‘거세’한 지 24시간이 지난 그 다음날에서야 응급실을 찾았다는 사실. 차를 몰고 홀로 병원에 온 청년은 “여자가 되고 싶어서 집에서 성기를 잘랐다.”고 담담히 고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남성은 자른 성기를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공원 주차장에 버렸다고 고백했으며 “끔찍한 고통을 마취도 없이 어떻게 버텼냐.”는 질문에 “예상할 만큼 까무러치게 아프진 않았다.”고 태연하게 대답해 주위를 한번 더 놀라게 했다.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이 남성은 현재 퇴원한 상태다. 의료진은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라면서 “감염이나 출혈로 인한 쇼크 위험이 있기 때문에 거세는 절대 시도하면 안된다.”고 경고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Weekly Health Issue](44) 슈퍼박테리아

    [Weekly Health Issue](44) 슈퍼박테리아

    최근 국내의 한 대형병원 중환자실에서 4명의 환자가 잇따라 다제내성균에 감염됐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다. ‘슈퍼박테리아’로 불리는 다제내성균은 그동안 의학자들 사이에서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실체’로 인식돼 왔다. 이 때문에 국민들이 받은 충격 역시 컸다. 보건 당국이 치료할 항생제가 있으니 동요하지 말라고 했지만 의학자들은 가볍게 봐 넘길 사안이 아니라며 우려감을 표하고 있다. 이런 슈퍼박테리아의 위협에 대해 서울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의종 교수를 통해 듣는다. ●먼저, 슈퍼박테리아란 무엇인가. 슈퍼박테리아는 의학적으로 ‘다제내성균’이라고 한다. 여러 종류의 항생제에 대한 내성(耐性)을 동시에 가져 감염되더라도 치료할 항생제가 거의 없는 세균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지정전염병으로 정한 다제내성균은 6종으로,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반코마이신 내성 황색포도알균·반코마이신 내성 장알균·다제내성 녹농균·다제내성 아시네토박터와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 등이 그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NDM-1’ 장내세균은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의 일종으로, 2009년 연세대의대 용동은 교수가 세계 최초로 학계에 보고한 이후 여러 나라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다제내성균은 어떻게 생성되는가. 항생제에 오래 노출된 세균은 항생제에 대항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유발한다. 이 내성유전자가 플라스미드라는 유전자 전달체에 끼어들어가면 내성플라스미드가 만들어지게 되고, 이 상태에서 여러 세균들로 전파되어 내성 세균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다제내성균이 왜 문제가 되는가. 먼저, 적절한 치료제가 거의 없으며, 있더라도 독성 때문에 환자에 따라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또 일단 다제내성균에 감염되면 병이 잘 낫지 않아 입원 기간이 길어지고, 덩달아 의료비도 크게 늘어난다. 격리치료가 필요한 데다 항생제가 고가이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환자 치사율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다제내성균은 치료할 항생제가 없어 환자들은 결국 패혈증과 쇼크 등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다제내성균이 발생하는 원인을 짚어 달라. 한마디로 항생제의 과다사용이 문제다. 항생제가 없으면 내성세균도 없다. 내성세균은 항생제가 없는 자연상태에서는 생존하지 못하지만 항생제가 존재하는 상태에서는 일반 세균보다 훨씬 빠르게 증식한다. 오랫동안 항생제 치료를 받는 환자에게서 다제내성세균이 쉽게 발생하는 건 이 때문이다. ●임상적 측면에서 다제내성균은 일반 박테리아와 어떻게 구별되는가. 일반 세균 감염증은 적절한 항생제로 치료하면 쉽게 낫는다. 또 치료할 수 있는 항생제의 종류가 많아 저렴한 항생제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제내성균에 감염되면 선택할 수 있는 항생제의 종류가 제한되기 때문에 치료가 어렵고, 치료하더라도 증상이 악화되거나 사망에 이르기 쉽다. ●최근 발생한 다제내성균 감염 사례에서 드러난 의료적 문제는 무엇인가. NDM-1 장내세균은 2년 전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처음 발생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올해 중반부터 국내에서도 조만간 NDM-1 장내세균이 상륙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이에 따라 질병관리본부는 대책위원회를 설치, 계속 감시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런 준비 덕분에 최근 NDM-1 장내세균 감염 사례를 찾아낼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선 의료기관에서 자체적으로 NDM-1 장내세균을 검사할 수 없어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최근의 사례는 NDM-1 장내세균 감염증이 중환자실 입원 환자에게서 발생했다. 따라서 각급 병원의 중환자실은 체계적인 감염관리 감시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한 정책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다제내성균 감염증의 관리를 위해 전문적인 자문은 물론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한감염학회·대한진단검사의학회·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대한화학요법학회·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등이 참여하는 다제내성균 대책위원회나 자문위원회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보다 체계적으로 다제내성균을 관리·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다제내성균 감염증은 어떤 치료과정을 거치는가. 보통의 세균 감염증에는 일반 항생제를 사용한다. 진단검사의학과에서 세균을 배양해 효과를 보이는 항생제를 찾아내면 그 항생제로 치료하면 된다. 그러나 다제내성균의 경우는 효과를 보이는 항생제가 한두 개뿐이다. 예컨대 NDM-1 장내세균 감염증을 치료할 수 있는 항생제는 콜리스틴과 티게사이클린이다. 콜리스틴은 신장 독성이 강해 신장 기능이 나쁜 환자에게는 사용할 수 없고, 티게사이클린은 균종에 따라 효과가 없을 수 있다. 결국 신종 다제내성균이 출현하면 내성 기전을 규명한 다음 이에 대응하는 항생제를 개발해 사용해야 한다. ●다제내성균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우선, 행정적으로는 각급 의료기관들이 감염관리 전문가를 채용해 감염관리를 강화하고, 필요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 감염관리 시설과 환경위생을 개선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 지원과 함께 정책 수립 과정에서도 감염관리의 심각성을 반영해야 한다. 전문가 교육도 중요하다. 손씻기 캠페인은 물론 항생제 처방교육과 감시 결과의 공유를 통해 의료인들에게 다제내성균의 심각성을 충분히 이해시켜야 한다. 의료인들이 감염관리 주의지침을 준수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와 함께 제한프로그램을 가동하는 등 항생제 과다처방 방지를 체계화해야 하며, 세균의 내성 양상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감염증이 없는 환자라도 적극적인 감시배양을 하여 다제내성균 보균자를 찾아내는 등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할 수도 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쌍꺼풀수술 사망자 보험금 못 받는다

    상해보험 가입자가 쌍꺼풀 수술을 받다 사망했더라도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 이승호)는 쌍꺼풀 수술을 받다 숨진 김모(62)씨 유족이 S해상보험 등 3곳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금지급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21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보험자가 외과적 수술이나 의료처치 과정에서 의사의 과실 등 외부적 요인이 개재돼 상해를 입은 경우, 이는 피보험자의 동의하에 이루어진 의료행위인 만큼 ‘우연한 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이 사건은 김씨의 동의에 따라 이뤄진 의료행위가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온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보험사고 범주에 포함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김씨의 사망 사고는 보험계약에서 정한 면책 대상에 해당하고, 보험사가 면책 약관에 대해 명시·설명하지 않았더라도 보험계약자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지난 3월 인천의 한 병원에서 쌍꺼풀 수술을 받기 위해 마취를 했다가 쇼크상태에 빠졌고, 1주일 뒤 숨졌다. 김씨는 2004~2009년 S해상보험 등 3곳에 각각 월 4만 3000~6만 2000원씩을 납부하는 상해보험에 가입한 상태였으며, 유족들은 사고가 의료진 과실로 발생한 만큼 보험사가 총 275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하지만 수술 도중 감염으로 사망한 경우 ‘우연한 사고’에 해당한다는 판례도 있다. 대법원 2부는 A보험사가 김모(47)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상해보험 가입자가 수술 도중 감염으로 사망한 경우 보험금 지급대상인 ‘우연한 사고’에 해당하고, 보험사는 보험금지급을 무조건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지난 8월 내렸다. 재판부는 “피보험자가 외과적 수술에 동의했더라도 의료과실로 인해 상해를 입는 결과까지 동의하고 예견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의사 출신인 김성수 변호사(법무법인 지평지성)는 “보통의 재판부는 사망 원인이 의료과실이라는 게 입증돼야 보험금 지급도 인정한다.”면서 “수술 사망 사고를 당한 유족은 먼저 의료사고 소송에서 승소한 뒤 보험금 지급소송을 내는 게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은행세 쇼크?

    정부의 은행부과금(은행세) 도입 방안 발표를 앞두고 금융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3일째 1150원대를 기록했다.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채권 보유 규모는 이달 들어 10일 만에 3조원 이상 줄었다. 은행세 도입으로 외환시장은 장기적으로 안정되겠지만 채권 금리가 상승하고 외국인 자금이 유출되면서 증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금융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17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0.3원 오른 1152.9원으로 마감했다. 지난 7일 1131.4원을 기록한 이후 10일 만에 20원 이상 올랐다. 15일(현지시간) 무디스가 스페인의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하는 등 유럽 금융불안이 재현되는 상황에 은행세 문제까지 덮친 격이다. 은행세 소식은 채권시장의 외국인 자금 유출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고채 5년물 금리는 지난 7일 3.86%에서 지난 16일 4.11%로 상승했다. 지난달 말 77조 605억원이었던 외국인 채권 보유 규모는 지난 10일 3조 1204억원이 줄었다. 채권 시장에서는 ‘외국인 잔치’가 끝났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온다. 채권 금리와 환율이 지속적으로 동반 상승하는 경우 코스피지수의 추가 상승도 어렵다는 분석이 있다. 박성훈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07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금리와 환율이 동반 상승하는 경우 코스피지수는 1.3% 하락했으며, 상승할 확률은 20%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그럼에도 이번 은행세 발표는 정부의 외환 유동성 규제가 단발성이 아닌 정책기조로 시장에 인식됐다는 점에서 예상보다 지속적이고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정부는 투자 위축 우려 정도에 따라 은행세율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7.06포인트 오른 2026.30으로 마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코스피 ‘만기일 쇼크’ 두 번은 없었다

    코스피 ‘만기일 쇼크’ 두 번은 없었다

    코스피지수가 지난달 동시만기일의 악몽을 떨치고 2000선에 바짝 다가섰다. 9일 코스피는 전일보다 33.24포인트(1.70%) 오른 1988.96으로 마감하며 지난달 10일 연중 최고치(1976.46) 기록을 한달 만에 깼다. 이는 2007년 11월 9일(1990.47) 이후 3년 1개월 만에 최고치다. 시가총액도 1105조 493억원에 달해 지난달 10일(1091조 7140억원)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스피는 오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동결로 투자심리가 호전된 데다 오후 들어 선물·옵션 동시만기일을 맞아 외국인들의 현·선물, 프로그램 순매수세가 집중되면서 강하게 상승했다. 삼성전자가 전일보다 3.27% 상승하면서 91만 7000원으로 최고가를 기록하는 등 전기·전자(IT)주의 강세도 지수 상승에 힘을 보탰다. 코스닥지수도 전일보다 3.65포인트(0.73%) 상승한 506.45로 장을 마쳤다. 곽중보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지난달 만기일 충격에 반대급부적인 현상으로 외국인 순매수가 몰렸다.”면서 “이미 3대 악재를 이겨냈고 기업이익과 유동성 등이 우호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2000선 돌파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기고] 미국만큼 중국과도 협력하자/우수근 중국 상하이 동화대학 교수

    [기고] 미국만큼 중국과도 협력하자/우수근 중국 상하이 동화대학 교수

    북한이 이번에는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마저 아랑곳하지 않는 극악함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신속하게 미국과 협의하는 가운데, 사태의 추이 및 향후를 대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대북 영향력이 가장 큰 중국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바라보는 중국 정부는 여전히 “사태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겠다.”는 정도의 간략한 논평만 피력하고 있을 뿐 이렇다 할 다른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포격 이후 지금까지의 중국 관련 당국자 및 한반도 전문가들의 반응, 즉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 국내의 반응은 ‘쇼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한 중국 관련 당국자는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너무 충격적이다. 정말이지 북한은 알다가도 모를 집단”이라고 했으며, 중국 국내의 한 한반도 전문가도 “아니, 도대체, 너무 하지 않은가.”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에서 살펴본 중국 국내의 반응은 대부분 이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면서 중국 당국자나 한반도 전문가 가운데는 “이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한국의 대응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중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등에 대해 오히려 문의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반응을 고려할 때 중국 정부는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북한에 대해 상당히 격노한 상태에 놓여 있지 않나 여겨진다. 이번 사태를 둘러싼 향후 추이와 관련, 우리 정부의 대응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중국 당국자의 “한국의 향후 대응은 어떨 것 같은가.”, “중국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라는 질문만으로도 잘 알 수 있다. 즉 현재 중국은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아직 이렇다 할 대응전략을 수립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그 대응전략은 한국 등의 반응을 고려하는 가운데 정해져 나갈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우리가 이번에도 미국과의 대화와 해결책 모색 등 오로지 미국 위주로만 사태를 풀어나가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우리는 단호한 자세를 취하면서도 국제사회와의 협력과 관련해서는, 이번만큼은 미국과의 접촉과 협력 등에 견줘 중국과도 ‘동시에’ 그리고 ‘동등하게’ 취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설령 중국이 못 미덥고 또 ‘아무래도 미국밖에 없다.’고 생각되더라도, 미국만큼 중국도 중시한다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중국을 사태 초기부터 우리 편에 가까이 두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무리 중국이라도 이번 사태에서만큼은 그리고 대북 문제와 관련해 지금부터는 우리와 좀 더 협력하는 구도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고려하더라도 사태 초기인 현재, 우리 정부의 신중하고 사려 깊은 외교 행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사태도 결국은 한국은 미국 품으로 더 안기고, 북한은 중국 품으로 더 안기는 식이 되어 남북 문제가 또다시 미·중 간의 국익 쟁탈전에 파묻히고 마는, 한민족의 또 다른 비극으로 전개될 우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 [女談餘談] 고3 남 동생의 수능, 그리고 부모의 마음/김정은 정치부 기자

    [女談餘談] 고3 남 동생의 수능, 그리고 부모의 마음/김정은 정치부 기자

    2001년 11월 7일. 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었다. 그해 수능은 언론에서 ‘널뛰기 수능’, ‘난이도 쇼크’라 평가할 정도로 전년도에 비해 어렵게 출제됐다. 수능 날 아침, 집안 식구들의 신경은 오롯이 내게 집중됐다. 아버지 승용차에 다섯 식구들이 모두 몸을 싣고 고사장으로 향했다. 당시 10살,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막내 남동생은 졸린 눈을 비비며 “큰누나, 시험 잘봐.”라고 응원했다. 용돈을 모아 전날 미리 사 놓은 찹쌀떡과 합격엿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차에서 내리려는 내게 선물했다. 교문을 들어서는데 가족들이 더 긴장한 것이 역력히 느껴졌다. 어머니는 1교시 언어영역 시험이 치러진 뒤 방송에서 ‘올해 언어영역이 예년에 비해 어려웠다.’는 뉴스를 듣자마자 차를 몰고 시험장 앞으로 달려오셨다. 수험생인 딸보다 본인이 더 긴장하셨던 어머니는 제2외국어영역이 끝날 때까지 시험장 앞에서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6시간 내내 큰딸을 기다렸다. 어머니는 오후 7시쯤 시험을 보고 나오는 딸의 모습이 시야에 보이자 저 멀리서 손을 흔드셨다. 이후 딸을 부둥켜 안고 연신 “우리 딸, 너무 고생했어”라고 말씀하시며 쓰다듬어 주셨다. 9년의 시간이 지났다. 10살 코흘리개 남동생은 어느덧 고3 수험생이 됐다. 어머니는 지난 9년 동안 큰딸, 작은딸 수능을 치렀다. 그래서일까. 올해 어머니는 베테랑 고3 학부모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초보처럼 긴장하지 않으셨고, 침착하게 동생의 수험 생활을 도왔다. 하지만 수능 당일이었던 지난 18일, 막내를 시험장에 보낸 뒤 조용히 근처 1567m 높이의 태백산에 올라 기도를 드리고 오셨다. 수능 당일만큼은 많이 긴장하셨던 것 같다. 수능 이후부턴 온·오프라인 입시 박사를 자처하고 계신다. 각 대학의 홈페이지를 찾아 입시전형을 살피고, 입시 설명회가 있다고 하면 지역을 막론하고 찾아다니신다. 분명 과거보다 진화한 모습이다. 어머니뿐이랴. 전국의 고 3학부모 모두가 같은 마음과 행동일 것이다.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이름 앞에 ‘부모’가 붙는 순간, 그들은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해 산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 주는 입시철이다. kimje@seoul.co.kr
  • 美·유럽증시 1~2.5% 하락 ‘쇼크’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금융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북한의 도발 사실이 알려진 뒤 개장한 미국 증시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전일보다 142.21포인트(1.27%) 하락한 1만 1036.37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17.11포인트(1.43%) 내린 1180.73에 마감됐다. 나스닥 종합지수도 37.07포인트(1.46%) 떨어진 2494.95를 기록했다. 또한 영국 FTSE100 지수가 1.8%, 독일 DAX30 지수가 1.7%, 프랑스 CAC40 지수가 2.5% 하락하는 등 유럽 증시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아일랜드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과 이에 따른 정정 불안, 재정 위기의 포르투갈·스페인 전이 가능성, 물가를 잡기 위한 중국의 추가적 긴축조치설 등이 맞물리면서 한국 발 불안변수의 효과가 한층 증폭됐다.”면서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 등 과거 사례를 보면 이번 사건이 독립변수였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충격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과거와 달리 한국이 국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급격히 커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경우 곧바로 핵 위기와 연결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 중국, 일본 등 강대국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면서 해외 투자자들의 한국 안보에 대한 민감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세계 15위 수준인 데다 세계 최대의 파생상품 거래와 대규모의 단기 레버리지 투자가 국내 시장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문제가 생기면 국제 신용경색이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재훈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아시아에서 금융시장 개장 때 간밤의 서구 시장 결과가 반영되는 것처럼 미국·유럽에서도 일본, 중국, 한국, 타이완 등 아시아 상황은 중요한 시장변수”라면서 “한반도의 직접적인 군사충돌은 심리적으로 매우 큰 불안감을 줄 수 있는 사건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11·11 옵션만기 쇼크 대량매도 주문자 추적”

    금융당국이 ‘11월 11일 옵션만기 쇼크’와 관련해 시세조종 행위와 선행매매 등 각종 자본시장법 위반행위의 개연성에 대해 정밀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조인강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은 22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특정회사 창구 등을 중심으로 집중 대량매도된 물량에 대한 불공정 여부를 조사 중이며 주가급락으로 파생상품 운용과정에서 대규모 손실을 입은 와이즈에셋 자산운용의 위법성 등도 검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사결과가 나오기까지 3~4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했다. 조 국장은 조사에 필요한 경우,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와 체결한 양해각서에 따라 외국 금융당국에 금융거래정보 제공 등 조사협력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11일 외국인들이 장 마감 직전 10분간 2조 4000억원의 주식을 대량매도하면서 코스피지수가 48포인트 급락했다. 이 중 2조 3000억원은 도이치증권 서울지점을 통해 매도주문이 이루어졌다. 금융당국은 이를 토대로 대량매도 주문을 낸 주체를 찾는 한편 이들이 먼저 풋옵션을 매수한 후 주식을 하락시키는 불공정거래를 한 것은 아닌지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풋옵션 매수는 주식을 일정가격에 팔 권리를 사는 것으로, 주가가 떨어질수록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어 큰 이익을 얻게 된다. 또 이 와중에 풋옵션과 콜옵션을 양매도하는 전략으로 904억원의 손실을 발생시킨 자산운용사인 와이즈에셋자산운용에 대해서는 리스크관리실태 등에 대해 조사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중개회사인 하나대투증권이 와이즈에셋 대신에 736억원을 대지급한 후 다른 펀드 상품에 대해서도 환매가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소비자 피해는 아직 없다.”면서 “다음 옵션만기일(12월9일)까지 증거금 부과방식 개선과 위험관리 가이드라인 마련 등 단기 대책을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옵션만기일 쇼크’ 재발 막을 방법이…

    지난 11일 코스피지수를 50포인트 이상을 끌어내린 ‘옵션만기일 쇼크’ 이후 15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0.69포인트 상승한 1913.81을 기록하면서 3거래일째 제자리걸음이다. 증시에는 배후를 놓고 각종 설(說)들이 난무하고 있다. 확인된 사실은 한국 도이치증권 창구로 대규모 매도주문이 나왔다는 것뿐이지만 미국계 펀드, 외국계 투자은행, 도이체방크 런던법인 등이 배후로 거론되고 있다. 그만큼 투자자들의 불안이 크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 등 관계기관은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한국거래소 고위 관계자는 “현재 옵션만기일 쇼크에 대해 조사하는 한편 미국의 사례 등을 연구하면서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이 있는지 검토 중”이라면서 “하지만 외국인 매매물량 및 금액 제한이나 동시호가제도 자체의 변화 등은 시장여건상 채택하기 힘들 것”이라고 15일 밝혔다. 금융위원회와 금융당국 관계자도 “원인규명 작업이 끝나는 대로 본격적 논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여러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종가를 마지막 거래량으로 정하는 것을 막기 위한 동시호가제는 가격완충 장치라는 측면에서 이를 없애거나 전면적으로 손질하는 방안은 성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외국인 매매물량이나 금액을 제한하는 방안도 파급효과와 비용을 따져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간 전문가들은 외국 투자자를 뮤추얼 펀드 같은 장기투자자와 헤지펀드, 차익거래를 노리는 단기투자자로 구분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단기 투자를 하는 투자자에 대해서는 성향별로 구분해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희진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결국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각해 외화로 바꿔 국외로 반출하면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 함께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서 “외환시장에서 외환변동성이 심한 투자자에 대해 세금 부과 방안을 논의하듯이 일정 금액 이상을 단기 투자하는 투자자에 대해 페널티성 비용을 부과하는 방법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재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과세를 풀어주면 국내 투자자가 많아지면서 외국인 주도로 시장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주·정서린기자 kdlrudwn@seoul.co.kr
  • ‘쇼크’ 코스피 반등 실패

    유동성의 힘으로 ‘2000 고지’를 향하던 코스피지수가 지난 11일 50포인트 넘게 폭락한 데 이어 12일에도 반등에 실패하자 외국인 자금의 ‘서든 스톱’(자금의 급격한 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는 이와 관련, 공동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12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1.61포인트(0.08%) 내린 1913.12로 거래를 마쳤다. 외국인과 개인이 각각 4200억원, 1800억원가량 샀지만 외국인의 투기성 자금에 의구심을 갖게 된 개인들의 펀드 환매가 후폭풍으로 작용하면서 이날 기관 순매도 규모는 6300억원에 이르렀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 자본 유출입 규제가 발표될 것이라는 소식과 지급준비율 추가 인상 우려로 중국 증시가 급락한 것도 지수 회복의 발목을 잡았다. 원·달러 환율도 전날보다 19.90원 급등한 1127.8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 때문에 환차익 기대감이 떨어진 외국인 투자자들의 ‘바이 코리아’ 기조가 전환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금감원은 “전날 도이치 증권 창구에서 대량 매물이 쏟아진 경위와 적절한 절차에 따라 매매가 이뤄졌는지, 불공정거래 혐의가 있는지 등에 대해 거래소와 함께 공동 조사에 나섰다.”고 말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현재 정확한 진위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일시적인 투자심리 위축이 조정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라면서 수급 여건은 훼손되지 않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전날 사건은 올해 마지막 대형 이벤트인 G20 회의와 옵션 만기일이 공교롭게 겹친 데다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은 오는 16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앞서 자본 유출입 규제가 발표될 것이라는 예상에서 나온 선제적 대응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날의 ‘쇼크’로 자산운용사와 증권사, 연기금 등의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금감원은 이날 자산운용사 와이즈에셋이 옵션거래에서 889억원의 손실을 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국내 42개 증권사의 손실액이 1100억원에 이른다고 잠정 집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차익거래와 차익거래잔고를 사전에 정확히 파악하고 매매 한도를 정하는 방법 등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경주·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中 물가 4.4%↑ 쇼크… 인플레 우려 현실화

    中 물가 4.4%↑ 쇼크… 인플레 우려 현실화

    중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4.4%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9월 4.6%에 이어 25개월 만의 최고치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현실화됨에 따라 금융 당국은 긴축의 고삐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15일부터 단행되는 올 4번째 지급 준비율 인상에 이어 조만간 두 번째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11일 발표한 10월 경제지표에 따르면 중국의 물가 상승 추세가 예사롭지 않다. 10월에 4.4% 상승한 것은 시장의 예측치인 4%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7월 3.3%, 8월 3.5%, 9월 3.6%와 비교하면 과도한 상승폭이다. 이에 따라 1~10월까지의 CPI 평균 상승률은 중국 정부가 내세웠던 ‘마지노선’인 3%에 이미 도달했다. CPI의 선행지수인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이 10월에 5.0%라는 점에서 CPI의 추가 상승을 예고하고 있는 데다 미국의 대규모 양적완화 조치로 더욱 많은 유동성이 중국으로 흘러들어올 가능성이 있어 CPI 상승 추세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정책 당국도 3% 마지노선을 포기한 상태이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장핑(張平) 주임은 지난 9일 “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며 정책 당국자로서는 처음으로 3% 초과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장 주임의 이 발언 다음 날인 10일 밤에는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이 전격적으로 “15일부터 시중은행의 지급준비율을 0.5% 포인트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CPI 상승은 대두, 면화 등 치솟고 있는 농산물 가격이 주도하고 있지만 지난 2년간 뿌려진 4조 위안의 경기 부양 자금 및 금융권의 부동산 관련 대출 자금 등 시중의 과도한 유동성과도 맞물려 있다는 점이 중국 정부의 고민이다. 국가통계국 성라이윈(盛來運) 대변인은 “물가 상승 압력과 함께 거시조정 압력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 “특히 일부 국가의 양적완화 조치로 유동성이 대거 풀려 통화 팽창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중국 금융 당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유동성 회수에 나설 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수단을 택할지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르면 다음 달, 늦어도 내년 1분기부터 본격적인 금리 인상 사이클에 돌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핫머니 유입 등의 우려로 지준율 인상 같은 수단을 사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광열 주중 한국대사관 재경관은 “중국이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면 외국과의 금리 차이가 확대돼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로 풀린 자금이 중국으로 몰려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신음하는 중소기업] 中企 ‘환차손 쇼크’… 직원 80% 줄이고 공장은 해외매각

    [신음하는 중소기업] 中企 ‘환차손 쇼크’… 직원 80% 줄이고 공장은 해외매각

    전체 고용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계에 ‘저환율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 특히 2008년 키코(KIKO) 사태에 따라 ‘흑자 도산’의 악몽에 시달린 중소기업계는 이후 환헤지(환위험 회피) 상품 가입을 꺼린 터라 원화 강세에 따른 ‘제2의 키코 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협력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소기업계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셈이다. “환율 하락으로 매출이 예년의 30%는 날아갔죠. 직원들 임금만은 ‘달러빚’을 내서라도 제때 주려 하고 있지만 키코(KIKO) 사태로 쌓였던 부채 잔치에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솔직히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환란극복 잠시 환율암초에 좌초 직전” 서울 이화동에서 의류 수출업체 S사를 운영하는 김영환(가명·47) 사장은 1일 담담한 목소리로 최근의 회사 사정을 설명했지만 허공을 향한 눈동자는 한없이 흔들리고 있다. 20년 넘게 피땀으로 일군,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도 극복했던 회사가 최근 환율이라는 암초에 걸려 넘어지기 일보직전이라는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키코 때문에 2008년 이후 120억여원의 피해를 봤다. 그 이후 환헤지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를 친다. 앞으로도 은행들의 환헤지상품은 쳐다보지도 않을 작정이다. 그는 “환헤지 상품 하나 때문에 중소기업이 여기저기서 망하는데 누가 금융기관을 통해 환헤지를 하려고 하겠느냐.”며 되물었다. 물론 김 사장이 수출기업에 환헤지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환헤지 상품에 가입하지 않다 보니 경영난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요즘 중소기업들은 달러당 1000원 정도로 환율 하락 예상치를 미리 반영해 주문 계약을 합니다. 하지만 미리 가격경쟁력을 낮춰서 계약을 하는 바람에 채산성은 더욱 떨어지죠. 또 유동성 압박 때문에 원자재 투입 여력이 없어 한달에 200만 달러가 넘는 수주가 들어와도 생산이 원활하지 못합니다. 납기일을 제때 못 맞추다 보니 주문이 감소하는 악순환만 계속되는 셈이죠.” ●“은행·中企 상생 거론안돼 정부 불신” 이런 상황이니 회사가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하다. 사무실 임대료도 6개월째 밀려 있는 상태다. 김 사장은 “직원들 사기가 떨어진 것도 문제지만 신제품 개발은 엄두도 못 내고 있어 내년 상황은 더 어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정부의 중소기업 상생정책과 은행에 대해서도 깊은 불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정작 필요한 은행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면서 “환율 문제로 중소기업들이 망하면 은행 역시 신뢰와 고객을 잃으면서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어느 中企사장의 하소연 “매출 30% 뚝… 얼마나 버틸지”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월 매출 10억원 정도인 회사는 매월 1000만원씩, 200만원짜리 월급 일자리 5개가 사라지게 됩니다.” 1일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은 키코(KIKO) 사태 이후 텅 빈 공장들이 아직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식당 급처분’이라고 쓰인 전단이 발 아래에서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한때 유압파쇄기로 세계 시장을 주름잡았던 코막중공업은 키코의 직격탄을 맞고 현재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중이다. 100여명이던 직원을 20명으로 줄이고, 국내 공장과 함께 유럽·미국 공장 등을 팔았지만 환율의 망령은 여전히 주위를 맴돌고 있다. 조봉구 사장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키코에 가입했지만 환율이 오를 땐 엄청난 리스크를 지우고, 정작 헤지가 필요한 환율 급락기에는 헤지가 안 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의 환율 수난사가 계속되고 있다. 2008년 키코 사태로 뿌리째 흔들렸던 중소기업계가 환차손 상품을 외면하면서 최근 급격한 환율 하락에 따른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제2의 키코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일 원·달러 환율은 1116.6원. 지난 5월 25일 1272.0원보다 155원 이상이나 떨어졌다. 지난달 14일에는 1110.9원까지 하락했다. 문제는 환율 하락이 대세라는 점. 최근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은 자국 경기부양 등을 위해 확장적인 재정정책 등을 펴면서 자국 통화의 가치 하락을 유도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경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환율 분쟁’이 어느 정도 봉합됐지만 여진은 남아 있는 상태. G20 정상회의 개최를 전후해 국내 통화당국의 외환시장 개입도 더욱 껄끄러워졌다. 향후 원·달러 환율이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뜻이다. 국내 주요 경제연구소들은 내년 원·달러 평균 환율이 1050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키코 사태를 계기로 환헤지 상품을 외면하고 있다. 한국무역보험공사에 따르면 대표적인 환헤지 상품인 환변동 보험에 가입한 기업은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597곳에 불과하다. 2007년 1579곳, 2008년 1248곳보다 크게 줄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최근 환율 불안정으로 수출 채산성이 악화됐다.’는 기업은 전체의 81.2%에 달했다. 심지어 77.4%는 ‘이미 이익이 감소했지만 그대로 수출을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키코 피해를 본 기업들을 위해 정부가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패스트 트랙)을 운영하고 있지만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향후 고환율 국면에서 중소기업들의 연쇄 도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두걸·신진호기자 douzirl@seoul.co.kr
  • [영화리뷰] ‘대지진’ 가족 울린 32년 대륙 흔든 23초

    [영화리뷰] ‘대지진’ 가족 울린 32년 대륙 흔든 23초

    탕산(唐山)은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 톈진(天津)과 광역경제권을 이루는 도시다. 우리는 아마 리샤오룽(李小龍)의 영화 ‘당산대형’(1971)으로 그 이름이 익숙할 법하다. 중국인에게 탕산은 가슴 아픈 기억의 도시이기도 하다. 1976년 7월 28일 강도 7.8의 대지진이 탕산을 덮쳤다. 당시 80~90%에 달하는 탕산의 건물이 무너져 내렸고, 탕산 시민 절반에 달하는 27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4일 개봉하는 ‘대지진’은 20세기 인류 역사의 비극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탕산 대지진을 다루고 있다. 제목을 보면 재난 블록버스터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나 결코 스펙터클을 강조한 작품은 아니다. 영어 제목인 ‘애프터 쇼크’(After Shock)가 외려 영화 내용을 충실히 드러내고 있는 편. 카메라는 대지진이 일어난 순간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대지진 이후 사람들의 삶을 좇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지진의 순간이 영화 초반을 장식해 4분 정도 관객들을 압도한다. 이후 이야기는 잔잔하게 전개되며 눈물샘을 쉴새 없이 자극한다. 23초의 대지진 때문에 32년 동안 헤어져 살아왔던 가족의 이야기가 중심축이다. 뤼안위니(쉬판)는 남편 팡치앙(장궈치앙)과 쌍둥이 남매 팡텅(성인역 장징추)·팡타(성인역 리천)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어느날 밤 무시무시한 지진이 덮치고, 남편은 아내를 구하고 숨진다. 뤼안위니는 더욱 더 가혹한 운명에 몰린다. 건물 잔해에 깔린 상태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쌍둥이 가운데 한명만 구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 뤼안위니는 결국 아들을 선택하고 평생 마음속 폐허에 갇혀 살아가게 된다. 뒤늦게 기적적으로 소생한 팡텅은 인민 해방군 왕더칭(천타오밍) 부부의 양녀가 되지만 역시 마음의 상처를 쉽게 떨쳐버릴 수 없다. 영화는 1976년 9월 마오쩌둥의 사망을 시작으로 탕산 재건 등 중국 현대화 과정을 보여주며 2008년 5월까지 굴러간다. 그 때문에 이 작품은 휴먼 드라마이면서도 중국인을 위한 계몽 영화로 느껴지기도 한다. 폐허에서 일어서는 탕산의 모습과 30여년 전 대지진 때 구조를 받았던 탕산 시민들이 쓰촨성 대지진 때 구조에 뛰어드는 장면 등에서는 중국인의 자부심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지난 7월 중국 전역에서 일제히 개봉했던 이 작품은 첫날 3620만 위안(60억 7600만원)을 벌어들인 것을 비롯해 모두 6억 6000만 위안(1107억원)의 흥행 수입을 기록해 중국 영화사를 고쳐 썼다. ‘집결호’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펑샤오강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평샤오강 감독은 원래 시나리오 작가였다. 이따금 연기를 하기도 한다. 저우싱츠(周星馳) 주연의 ‘쿵푸 허슬’에 나오는 악어파 두목이 바로 그다. ‘대지진’의 여주인공 쉬판은 펑샤오강 감독의 부인이다. 128분. 전체관람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中 인플레 막고 부동산 연착륙… 위안화 절상 효과까지

    中 인플레 막고 부동산 연착륙… 위안화 절상 효과까지

    중국발(發) ‘금리 쇼크’가 20일 국내 금융시장에는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했다. 한때 출렁거렸던 국내 증시는 사흘 만에 반등에 성공하며 1870선을 유지했고, 원·달러 환율도 전날보다 3.6원 내린 1126.9원에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글로벌 증시의 경우 다우지수, 일본 닛케이평균주가 등이 큰 폭으로 떨어진 반면 상하이종합지수와 타이완 가권지수는 소폭 오르는 등 혼조세를 보였다. 국내 금융시장이 중국 쇼크에 충격을 덜 받은 것은 중국의 물가안정과 위안화 절상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향후 시장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다만 국제통화기금(IMF)의 존 립스키 부총재가 중국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추가 금리 인상과 함께 다른 경제 정책을 추진할 수도 있다고 밝혀 향후 중국의 금리 정책이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전격적으로 금리인상 조치를 단행한 것은 대내적으로는 인플레이션 억제와 부동산 거품 해소에 목적이 있다. 그렇지만 ‘절묘한 시점’에서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에 간접적으로 호응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금리인상이 단행된 20일 중국외환거래센터가 고시한 달러·위안 환율은 6.6754위안이다. 전 거래일보다 0.0201위안 올랐다. 중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인 데 따른 결과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금리인상으로 해외 유동자금의 유입이 촉진돼 위안화 가치가 추가로 올라갈 여지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훙위안(宏遠)증권 애널리스트 판웨이(範爲)는 “해외 유동자금의 유입을 가속화시켜 위안화 상승 속도를 높이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미국과 일본이 추가적으로 양적 금융완화 정책을 실시, 돈을 더 풀게 되면 이들 국가들로부터 유동자금의 유입이 더욱 가속화돼 위안화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물론 중국이 가파른 위안화 가치 상승을 방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위안화 환율의 안정을 강조해온 만큼 해외 유입자금 규제를 강화하면서 위안화 절상 속도를 중국 입맛에 맞게 완만하게 조절할 것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볼때 이번 금리인상은 미국, 유럽연합 등의 위안화 절상 압력을 상당부분 완화시키기 위한 의도도 포함됐다는 것에 힘이 실린다. 금리인상은 수출기업들의 금융조달 비용을 증가시켜 수출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이런 수출가격경쟁력 하락은 간접적으로 위안화 평가절상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소극적이나마 미국 등의 위안화 절상 요구에 호응했다는 것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중국이 선제적 대응을 했다는 얘기다. 코트라 베이징비즈니스센터의 박한진 부장은 “미국 재무부가 최근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을 유보하자 이에 대한 보답으로 금리인상 카드를 낸 것으로 보인다.”면서 “비록 소폭이지만 최근 지속적으로 위안화를 절상시킨 것과 연결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위안화 절상이 진행된 상태에서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춰 금리를 인상, 추가절상 압력을 완화시킬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15일 밤 중국의 왕치산(王岐山) 부총리와 미국의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전화통화를 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곧이어 미국은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을 보류했고, 중국은 금리를 인상했다. 양국 간에 위안화 환율 문제에 대한 의견접근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환율전쟁’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G20 정상회의 환율전쟁터] 日 “¥ 풀어 ₩ 사들이자” 강경론

    [G20 정상회의 환율전쟁터] 日 “¥ 풀어 ₩ 사들이자” 강경론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한 환율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간 나오토 총리,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이 한국의 환율 정책을 문제 삼은 데 이어 이번에는 엔화를 풀어 한국 원화를 사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일본의 자동차나 전자산업을 위협하고 있는 한국의 원화 동향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정·재계를 망라한 전방위 공세인 셈이다. 이는 엔 시세가 지난 1995년 4월에 기록한 사상 최고치(1달러 79.75엔) 목전까지 상승하고 있는 반면 한국 통화당국은 환율 개입을 통해 자국 통화 상승을 억제하고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원화의 달러에 대한 시세는 1100원대로 지난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쇼크 직후와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엔의 달러에 대한 시세는 2008년 9월 110엔대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해 큰 폭으로 절상됐다. 재계단체인 경제동우회의 마에하라 긴이치 부대표간사는 “일본 메이커가 엔고로 고전하고 있는 한편 한국의 자동차와 가전 제품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며 “일본 기업의 경쟁력을 회복시기키 위해 정부와 일본은행은 원화를 매수하고 엔화를 매도하는 환율개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원화 매수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요미우리신문은 “한국이 자본거래 규제를 하고 있어 엔화와 원화를 대규모로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이 없다.”면서 “달러·엔 시장과 달러·원 시장을 우회하는 변칙적 방법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화 매수 등 강경론이 쏟아지는 것은 엔고로 일본 기업이 한국과의 경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엔고 저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에 대한 불만의 표시라는 해석도 많다. 실제로 일본 기업들의 엔고에 대한 공포는 현실화되고 있다. 일본 자동차 대기업이 해외로 생산 거점을 옮기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 자동차는 최근 주력 승용차인 ‘캐롤라’의 수출을 2013년까지 중지키로 결정했다. 수출물량의 생산을 모두 해외 공장에 이관한다는 방침이다. 엔고로 일본에서의 수출채산성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쓰비시 자동차도 개발중인 주력 소형자동차를 2012년초부터 태국에서 생산해 일본에 판매키로 했다. 가격 경쟁이 심한 소형차의 생산을 일본 국내에서 지속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고 소형차의 생산공장을 단계적으로 해외로 옮길 방침이다. 하지만 일본의 환율공세에 대한 비판 여론도 잇따르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15일자 ‘타국 환율정책에 대한 언급은 부적절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도 지난달 약 2조엔의 대규모 환율시장에 개입해 한국과 같은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현대건설 인수 가치 충분하다”

    현대자동차 우리사주조합이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나선 것과 관련해 “현대건설은 투자가치가 충분한 기업이고 현대차 시너지효과에도 도움될 것”이라면서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우리사주조합은 11일 ‘현대건설 인수, 조합원에게 독인가, 약인가’라는 제목으로 낸 소식지에서 “고유가시대, 자동차 산업을 보완할 수 있는 신성장동력을 찾는 회사의 노력을 인정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조합은 “기업은 수익성이 있으면 투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며 “과거 오일쇼크 당시 중동개발로 오일머니를 공략한 사례와 같이 고유가 시대 자동차 산업의 취약점을 해외건설 등 향후 주목받는 고부가 가치사업으로 보완하겠다는 회사 경영 전략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합은 “투자 측면에서 현대건설은 순이익 4566억원을 기록한 국내 1위의 건설기업이고 최근 7년간 신규 수주량이 연평균 15% 성장을 달성하고 있다.”면서 “타 건설사 대비 주택비중이 낮고 전력, 플랜트 사업 등 전 부문에 걸쳐 높은 기술력을 가졌다. 이런 강점에도 기업이 저평가 받고 있다는 점에서 투자가치가 있는 기업임에 틀림없다.”고 설명했다. 조합은 그러나 “회사는 조합원에게 돌아오는 불이익은 없도록 해야 한다.”면서 “조합원의 땀과 노력으로 번 돈을 투자해 기업을 인수한다면 투자에 대한 실질적인 이익이 조합원에게 되돌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라응찬 쇼크

    코스피지수가 이틀째 조정을 받으며 1900선에서 밀려났다. 원·달러 환율은 증시 약세에 더해 외국인들이 18거래일 만에 팔자로 돌아서면서 사흘 만에 반등했다. 8일 코스피지수는 전일보다 3.78포인트(0.20%) 내린 1897.07로 장을 마쳤다. 전 거래일보다 0.01포인트 오른 1900.86으로 출발했으나 외국인과 개인, 기관의 동반 순매도로 1900선을 지키지 못했다. 단기 급등에 따른 부담과 함께 전일 미국 뉴욕 증시가 일부 경제지표가 호전에도 불구하고 9월 비(非) 농업 고용지표 발표와 3분기 어닝(실적) 시즌을 앞두고 혼조세로 마감하면서 기를 펴지 못했다. 특히 신한지주 주가는 라응찬 회장의 중징계 소식이 악재로 작용하면서 전 거래일보다 1.8% 하락했다. 코스닥지수는 전일보다 0.94포인트(0.19%) 오른 497.08에 마감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일보다 5.80원 오른 1120.30원으로 마감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미 고용지표 발표를 앞두고 금융시장이 전반적으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면서 “그동안 달러를 과매도 했던 투자자들도 달러를 다시 사들였다.”고 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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