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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열사 열전:15/前 서울대생 朴鍾哲(정직한 역사 되찾기)

    ◎5공 정권연장 야욕 꺾은 ‘民主불씨’/‘체육관선거’ 잡음 없애려 시국사범 검거령/‘남영동’으로 연행당해 물고문 도중 질식사/6·10항쟁 도화선… 4개월후 전모 밝혀져 1987년 1월14일 만 21세의 대학생 朴鍾哲이 물고문으로 사망했다. 5공 독재정권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고문살인이었다. 철권통치로 국민을 억압해온 5공은 여느 때처럼 국민을 속이려 했으나 1987년 역사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정권의 안위와 관련된 시국사건에서 반체제 인사에 대한 가혹한 고문을 자행했다. 그런 군사정권에게도 박종철의 죽음은 예기치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한층 더 예기치 않았던 것은 박종철의 죽음이 일으킨 역사적 파장이었다. 내각제 및 직선제 개헌론이 심각하게 대두되는 가운데 5공은 87년 연말의 대통령선거를 ‘체육관’ 선거로 치뤄 정권을 연장하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86년 말 경찰 수뇌들은 운동권 수배자들을 전원 검거하라고 강력 지시했다. 치안본부 대공수사 2단 5과 2계는 87년 1월초 서울대 언어학과 3년생인 박종철이 서울대 민민투위원으로서 서울대 민추위 사건의 중요 수배자인 朴鍾雲을 은닉하고 연계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보고 박종철을 연행 수사하여 박종운 등 민민투 지하 중앙조직원들을 검거할 계획을 세운다. 1월14일 아침 7시20분경 조한경 강진규 황정웅 반금곤 이정호 등 대공 소속 경찰들은 신림동 하숙집을 급습해 박종철을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조사실로 연행,신문했다. 10시40분경 신문장소를 옮겨 박종운의 소재를 대라고 박종철을 닥달하였으나 모른다고 하자 조한경 등은 박종철의 가슴과 다리를 때리고 옷을 모두 벗게 한 뒤 물이 가득 채워진 조사실 안의 욕조 앞으로 데리고 갔다. 이들은 조사실 안의 수건으로 박종철의 양손과 발목을 결박하고 나서 반금곤 황정웅이 각각 겨드랑이를 잡고 등을 누른 상태에서 강진규가 욕조안에 들어가 양손으로 박종철의 머리를 잡아 물 속으로 집어넣고 한참 후에 끌어내는 물고문을 반복했다. 이때도 박종철이 박종운의 소재를 모른다고 하자 더 혼내주라는 조한경의 지시에 이정호가 가세,결박된 박종철의 다리를 들어 올린 채 물 속에 머리를 집어넣는 고문을 가했다. 이때 박종철은 목부분이 욕조의 턱에 눌려 숨을 쉬지 못하게 되어 11시20분경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으로 사망했다. 30,40분 만에 저질러진 이 물고문 살인으로 결국 5공의 정권연장 야욕은 물건너가게 된다. 박종철의 물고문 질식사는 4개월 후에야 그 잔혹한 진상 전반이 파악되었지만 그의 죽음은 우여곡절 끝에 당시로선 극히 이례적으로 처음부터 일반에 알려졌다. 그간 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시국사건으로 죽어갔으나 의문사란 말만 남기고 그대로 묻혀 버렸다. 그러나 박종철의 죽음은 경찰과 정권이 몇겹으로 세운 두꺼운 벽을 뚫고나와 ‘양지’로 향하는 묘한 힘을 발휘했다. 이 힘은 정통성없는 5공 정권의 취약한 근저를 흔들었다. 2월7일의 박종철 열사 국민추도회와 3월3일의 고문추방 대행진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5공은 각각 3만명,6만명의 전경들을 동원해야 했다. 결국 박종철의 죽음은 6·10 민주항쟁을 끌어내는 도화선이 되었고 궁지에 몰린 군사정권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할 수 밖에없었다. ‘제2의 김주열’로 불리기도 하는 박종철은 앳된 얼굴의 젊은이였지만 민주화에 대한 신념과 의지는 남달리 강했다. 그는 결코 다른 사람 때문에 재수없게 경찰에 불려가 조사받다가 고문사함으로써 우연히 역사의 무대에 떠오른 인물이 아니다. 대공 3부의 고문경찰들이 연행 직전 작성한 수사계획서는 박종철을 민민투의 중요 지도자로 지목하고 각종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검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산에서 말단 공무원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박종철은 84년 서울대 언어학과에 들어온 직후부터 동아리 가입과 농촌활동참여 등을 통해 현실 인식을 깊게 했다. 2학년 때 미국 문화원농성 지원 가두시위로 구류 5일을 살았으며 여름방학에는 안양공단 근처의 ‘닭장집’에 살면서 노동자로 취직하기도 했다. 86년 3학년때 언어학과 과회장에 뽑힌 박종철은 4월 ‘청계피복노조 합법성 쟁취대회’ 가두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붙잡혀 과거 전과 때문에 구속됐다. 그는 재판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7월15일 출소했다. 86년11월23일 81학번 사회학과의 동아리 선배로 민추위 사건에 지명수배된 박종운이 박종철의 하숙방에 찾아와 하룻밤을 묵은 뒤 떠난다. 87년 1월8일 박종운이 다른 동료와의 연락을 부탁하기 위해 다시 박종철 하숙방을 찾았다. 6일 뒤 박종철은 발가벗기고 손발이 묶인 채 박종운의 거처를 추궁하는 경찰들에게 물고문당하다 죽었다. □朴鍾哲 연보 1965년 4월:부산 출생 83년 2월:혜광고 졸업 84년 3월:서울대 언어학과 입학 86년 4월:청계피복노조 합법성 쟁취대회 참가,구속 86년 7월:징역 10월·집행유예 2년으로 출소 87년 1월: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사 ◎구속 경찰관·유족들 지금은/5명 실형선고… 형기 마치고 출소/경찰청 산하단체 근무하다 해임도/유족들 배상금 2억여원 수령 고문 경찰관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박종철 고문치사 혐의로 구속된 경찰관 5명은 징역 3∼10년형을 선고받고 3년 만기에서 최고 7년3개월의 수형 후 가석방 등으로 현재 모두 출소했다. 올 6월 이들 중 3명이 규정을 어기고 경찰청 산하 단체에 근무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곧 해임됐다. 이정호씨와 강진규씨는 감옥에서 나온 뒤 경찰공제회에 들어가 일반직 4급으로,조한경씨는 총포화약안전기술협회 과장으로 근무했다. 이들과는 달리 범인도피 및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던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박처원 전 치안감 등 4명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 유죄취지 파기환송,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한편 박종철의 유족은 89년 9명의 경찰관과 국가를 상대로 1억2,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95년 11월 “국가와 조씨 등 고문 경찰관 5명은 연대해 1억4,700만원을 배상하고 강씨 등 경찰수뇌 4명은 직무유기 및 범인도피의 책임을 지고 2,4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유족은 국가로부터 이자를 포함한 손해배상금 2억4,000만원을 수령했다. 국가가 배상금 전액을 지급한 만큼 검찰은 직접적 책임이 있는 조씨 등에게 구상금청구 소송을 통해 배상금 일부를 받아내야 하나 최근 이들에 대한 재산 자력조사 결과 배상금 지급 능력이 없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부인이 공장에 다니며 생계를 꾸리거나 노점상으로 생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고문 밝혀지기까지/모든 수단 동원해 은폐 시도/3차 수사후 고문치사 확인/치안총수 등 경차 9명 구속/‘탁치니 억 쓰러져’ 유행어로 경찰과 5공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박종철의 고문치사를 은폐하려 했지만 결국 3차의 수사 끝에 치안총수를 포함 9명의 경찰이 구속됐다. 1월14일 물고문하던 경찰들은 박종철의 상태가 이상하자 즉시 인근 중앙대 용산병원 응급실에서 의사 오연상씨를 불러 응급처치를 간청했으나 이미 박종철은 숨진 뒤였다. 다급해진 경찰은 이날 오후 보호자와 이미 합의를 했다며 서울지검에 시신의 화장을 요청한다. 증거인멸을 위한 경찰의 이 요청은 거부됐다. 15일 석간신문에 조사받던 학생이 쇼크사했다는 기사가 나간다. 오후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변사사실을 공식 시인했으나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발표했으며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쓰러졌다“고 부연설명했다. 이날 밤 9시 안상수 검사 입회하에 행해진 부검에서 황적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1과장은 물고문 도중 욕조 턱에 목이 눌려 질식사한 것 같다는 부검소견을 피력한다. 강 치안본부장 등은 황 과장에게 심장마비사로 부검감정서를 써줄 것을 협박 회유하기 시작한다. 16일 가족들이 벽제에서 화장한 유골을 임진강에 뿌렸다. 이때 아버지 박정기씨는 “잘 가그레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라고 해 국민들을 울렸다. 17일 사체를 첫 검안한 의사 오씨의 “조사실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는 등 고문 시사 증언이 신문이 보도됐다. 결국 치안본부 특수대는 17일 수사에 착수 19일 고문사를 공식인정하면서 조한경 강진규 2인을 고문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5월18일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이 사실을 폭로하자 5월20일 황정웅 반금곤 이정호 등이 즉시 구속된다. 5월29일에는 범인 축소조작에 나선 박처원 치안감,유정방 경정,박원택 경정 등 3명이 범인도피죄로 구속됐다. 88년 1월15일 황적준 국과수 과장의 경찰 회유 메모가 보도되면서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이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된다.
  • 연길 기아간부 사인 심장쇼크사로 확인/중국 최종통보

    【북경=이석우 특파원】 지난 16일 중국 연길서 발생한 연길 기아연수원장 박병현씨의 사인에 대해 중국 공안당국은 심장쇼크사이며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사실상 최종통보했다고 중국을 방문중인 이기주 차관이 26일 밝혔다.
  • 김일성 별장 관리인·주방장 자살설/김 사망 의혹 캘 “열쇠”

    ◎정부,최근 방북 일 소식통서 첩보 인수/김정일과 격론중 쇼크사 가능성 높아/「부자간 알력」 목격자 제거 타살일수도 지난 94년 북한 김일성의 돌연사의 원인은 아직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있다.그의 2주기가 지나도록 생전에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가 지연되고 있는 것도 미스터리다. 이처럼 북한권부의 깊숙한 속사정을 파악하기는 「숨은 그림찾기」보다 어렵다.하지만 이같은 수수께끼를 풀 열쇠가 될 의미있는 첩보가 최근 정부당국에 입수됐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26일 『김일성별장인 묘향산 특각의 관리책임자와 주방장등이 집단자살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북한을 방문하고 온 일본측의 한 유력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한 충격적인 첩보다.이 소식통은 이에 앞서 북한당국은 김일성사망직후 묘향산별장의 기쁨조·호위병 등을 포함한 근무자 전원을 교체했다고 귀띔했다. 김일성별장을 무대로 한 일련의 특이동향들은 김일성의 돌연사와 모종의 연관성이 있다는 게 이 소식통의 추론이다.그가 죽기 전해인 93년부터 북한권부에 형성된 몇갈래 심상찮은 기류가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우선 김일성의 실제 김영주가 18년만인 93년 하반기 일약 부주석으로 재기한 사실이 그 하나다.그는 70년대 중반 김정일과의 후계경쟁에서 밀려난 이후 장기 은둔중이었다. 또 김정일에게 권한을 대부분 이양했던 김일성도 94년 봄부터 죽기 직전까지 경제문제는 물론 핵문제까지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그가 정상회담 준비를 직접 진두지휘하는 동안 김정일은 이례적으로 활동이 뜸했었다. 더욱이 핀란드대사로 나가 있던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이 김일성사망직전 돌연 평양에 들어왔다.이로 인해 김일성이 김정일의 국정수행 및 정권장악능력에 회의를 품고 전면에 재등장했다는 일부 관측이 제기됐었다. 김일성사후 북한당국은 그의 사인을 심근경색에 의한 쇼크사로 발표한 바 있다.물론 일각에선 타살설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근거가 희박했다. 정부의 다른 한 당국자는 이와 관련,『김일성은 평양의 주석궁(금수산 의사당)이 아닌 묘향산 특각에서 죽은 게 확실한 것 같다』고 밝혔다.당시김일성은 이 별장에서 당정치국회의를 소집,남북정상회담 등 현안을 논의중이었다고 한다. 바로 이 자리에는 김정일도 참석했고 「격론」을 벌이던 중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게 지금까지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한 당국자가 재구성한 시나리오다.이같은 시나리오는 김일성사망직후에도 한때 나돌았으나 이번에 묘향산 별장 관리인과 주방장의 자살이 전해짐으로써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이들이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에 자살했는지 아니면 자살을 위장한 타살인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구본영 기자〉
  • 부산 오폐수 낙동강 방류/장림하수처리장서 하루 30만t씩

    ◎공단서 독성물질 유입 정화기능 마비 【부산=이기철 기자】 부산 사하구 신평동 장림하수처리장으로 공장폐수가 일시적으로 다량 유입되는 바람에 미생물 활성오니의 정화기능이 미비돼 하루 오·폐수 30만t이 낙동강 하류로 흘러들고 있다.유독성 폐수가 바다로 흘러들 경우 양식어민들의 피해도 우려된다. 부산시는 『지난 13일 새벽 2∼3시쯤 공장등에서 무단방류된 것으로 보이는 벤젠 톨루엔 등 유기용제가 다량 함유된 폐수가 흘러들어 오염물질을 분해하는 미생물 덩어리인 활성오니가 사멸(쇼크사 또는 질식사)했다』고 15일 발표했다. 이날 방류수 수질검사 결과 COD(화학적산소요구량)가 한때 평소보다 40ppm이상 높은 73.8ppm(기준치 40ppm)을 기록했으며 SS(부유물질)는 88ppm(기준치 20ppm)까지 올라갔다.또 DO(용존산소)는 평소 2.0ppm보다 악화된 0.5ppm을 기록했다. 사고가 나자 부산시는 하수처리장의 유입수로와 침전지 폭기조(공기를 불어넣어 미생물을 배양하는 곳)등에 오일펜스를 설치하고 유화제 등을 살포해 기름성분을 제거하는 한편금곡·다대아파트등의 생활하수를 최대한 유입시켜 오염물질을 희석시키고 있다.
  • 구난체계 재정비 시급/「삼풍」계기로 본 문제점과 과제

    ◎지휘체계 확립… 인력·장비 보완해야/일관성 없는 구조… 실종자 파악도 미흡/대형참사 효율적 대처위한 예산 뒷받침 절실 6·25전쟁이후 최악의 사고로 기록된 삼풍백화점 붕괴는 성수대교붕괴·대구가스폭발사고 등 수많은 재난을 겪고도 우리의 구난체계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일이 터지면 우왕좌왕하다 시간이 지나면 망각하는 전철의 연속이었다. 사고발생 24일째를 맞아 사고현장의 사체수습 및 잔해제거작업이 최종 마무리단계에 접어든 23일 지휘체계 및 구난체제의 부재,허술한 실종자관리,부족한 인력·장비 등 구난체제의 문제점을 중간점검해 보고 과제와 교훈을 도출해 본다. ▷지휘체계의 분산◁ 서울시대책본부는 사고발생 5일이상이 지난뒤에야 현장을 어느정도 일괄해 통제할 수 있었다. 현장에 나간 소방본부·경찰·군 등은 초기에 자체 지휘체계에 따라서만 움직였고 서울시는 무능했다.특히 이들 사이에서는 정보교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대책본부에서는 소방본부·경찰등에서 파견한 병력·장비등의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였다.그만큼 인명구조도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민·관 협조체계부재◁ 사고초기 적극적으로 인명구조와 사고수습에 나섰던 자원봉사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대책본부와 잦은 마찰을 빚었다.처음에 자원봉사자들을 아무런 제한없이 구조현장에 투입했던 대책본부가 자원봉사자를 가장한 절도범 등으로 인한 문제점이 불거지자 비표를 발급하고 구조현장접근을 막는등 통제를 했기 때문이었다. 현장관계자들은 신속한 민·관 공조가 이뤄졌다면 부족한 인원과 장비속에서도 보다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허술한 실종자관리◁ 사체발굴이 한창 진행되던 13일,그때까지 실종자수가 2백여명이라고 발표해왔던 서울시는 하루아침에 실종자수를 4백9명으로 두배이상 늘려 발표,실종자가족의 분노를 샀다. 실종자 신고접수창구가 서울시와 서초구청 두 곳으로 이분화돼 일어났던 이같은 어이 없는 착오는 대책본부가 얼마나 안이하고 무성의한 자세로 사고수습에 임했는가를 보여줬다. ▷부족한 인력·장비◁ 사고현장에는 소방대원 1만2천여명,경찰 3만4천명,군 1만1천여명 등 엄청난 인력이 투입됐다.그러나 정작 매몰지역에서 구조작업을 펼칠 수 있는 119구조대와 같은 전문인력은 태부족이었다. 전국의 22개 119구조대원 1백27명이 상경해 구조활동을 펴야 했다.서울의 구조대원은 1백65명에 불과했기때문이다. 복구장비역시 현대·대우·삼성등 7개 민간기업이 제공한 중장비 1천7백여대(연동원대수)가 이용됐으며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장비는 전무했다.가장 중요한 인명구조장비 역시 대부분 민간기업이 제공했다. 대책본부는 또 구조반원 및 실종자가족들에게 제공하는 음식까지 민간기업과 자원봉사자 등 외부 지원에만 의존했다.심지어 중장비 가동을 위한 기름도 민간기업으로부터 무상공급받았다. ▷응급구조체계 미비◁ 사고초기 현장에서 후송된 사체를 검안한 의사들은 아깝게 사망한 희생자가 많았다고 한결같이 지적했다.낙후된 응급의료체계때문이었다. 현장에서 응급조치를 하지 않았거나 환자의 등급 분류없이 무조건 아무 병원으로 옮기는 바람에 구조된후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었다.실제로 사고초기에 나온 많은 사체들은 조기에 응급조치를 받으면 생명을 건질 수 있었던 과다출혈에 의한 쇼크사·압사증후군·화상등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관성없는 구조작업◁ 대책본부는 사고후 5일이 지난 4일부터 포클레인등 중장비를 건물잔해제거에 대거 투입했다. 초기 사체발굴보다는 생존자구출에 주력하겠다며 수작업에 의존하던 방침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지난 9일 최명석(20)군이 콘크리트건물더미에서 10일만에 극적으로 구조되자 대책본부는 다시 생존자구조쪽에 치중한다며 처음 방법으로 돌아갔다. 많은 구조요원들은 『대책본부나 소방지휘본부가 처음부터 중장비를 대거 투입,건물잔해를 과감하게 들어내고 생존자를 수색해나가는 방법을 썼더라면 더 많은 생존자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대책본부측의 일관성없고 즉흥적인 조치에 불만을 표시했다. ▷과제와교훈◁ 재난의 효율적인 수습을 뒷받침하는 「재난관리법」이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삼풍사고에서 노출된 갖가지 구난·구조체계의 문제점을 교훈으로 삼아 자치단체장의 총책임아래 현장 구난활동을 소방관서의 최고 책임자가 총괄적으로 지휘토록 하는 것이 주내용이다. 그러나 대형 참사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구난·구조의 역량을 갖추기 위한 획기적인 예산지원등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이번 대책 역시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의 되풀이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 대입5수생 처녀 입시중압 쇼크사

    28일 하오 5시쯤 서울 성북구 장위동 나모씨(63·법무사)집 건넌방에서 5년째 대입시험을 준비중이던 나씨의 딸 임정씨(25)가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것을 가족들이 발견,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나씨는 『대입 5수생인 딸이 23일 실시된 수능시험을 앞두고 10여일전부터 미음과 물만 먹는등 보름동안 드러누워 있다가 하오에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능시험을 앞두고 중압감으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나씨가 몸이 쇠약해져 시험을 포기한뒤 고민해왔다는 가족의 말에 따라 나씨가 이를 비관하다 쇼크로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 폭행 고대생 6명 긴급구속/30대 감금 치사혐의

    ◎“프락치로 오인 구타” 진술 고려대생들의 전귀희씨(39)치사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성북경찰서는 8일 전날 자진출두한 고려대 학생복지위원장 정연철씨(26·심리학과 3년)등 6명이 지난 4일 학내에서 전씨를 감금하고 프락치여부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전씨를 폭행한 사실을 일부 시인함에 따라 이들을 감금및 폭행치사혐의로 긴급구속했다. 경찰은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전씨의 사인을 「외력에 의한 피하과다출혈쇼크사」라고 밝혔고 정씨등이 몸싸움 과정에서 전씨를 밀쳐 책상모서리등에 부딪히게 했으며 머리에서 피가 나자 지혈을 시켜줬다고 진술함에 따라 이들을 긴급구속키로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특히 이들이 『전씨를 풀어주기 전에 전씨의 웃옷에 피가 묻어있고 몹시 지저분해 새옷으로 갈아입혔다』고 진술한 점을 중시,이 옷이 수사의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고 소재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경찰은 또 전씨 사체의 양팔등에 둔기로 맞은 듯한 상처가 있다는 국과수부검의의 진술에 따라 이들이 당초의 진술과는 달리 둔기등을 사용해전씨를 폭행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이 부분에 대해서도 집중수사하고 있다.
  • 경찰프락치로 몰린 30대 남자/대학생들에 구타당한뒤 숨져

    ◎고대생,자백 요구 감금 폭행/풀려난뒤 14시간만에 사망/경찰,“관련자 사법처리” 프락치혐의로 몰려 고려대생들에게 붙잡혀 4시간30분동안 감금·구타당한뒤 풀려난 30대 남자가 14시간만에 숨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경찰은 학생들의 폭력행사로 인한 사망여부와 이 남자의 활동범위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감금◁ 지난 4일 낮12시쯤 서울 고려대 학생회관앞에서 「김일성주의청년동맹」사건에 항의,농성을 벌이던 학생들이 이 곳을 배회하던 전귀희씨(39·행상·서울 도봉구 창3동 519의16)를 경찰의 프락치로 몰아 경제학과 학생회실로 끌고 갔다. 학생들은 하오4시30분까지 전씨를 감금,주민등록증과 전화번호수첩등 소지품을 빼앗고 『프락치사실을 실토하라』며 추궁하다 전씨가 이를 부인하자 주먹과 발등으로 전씨의 팔·다리·목등을 여러차례 구타했다. 전씨를 심문했던 정연철군(26·심리학과4년)은 처음 전씨를 경찰의 정보원으로 오인했으나 조사과정에서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아 자필진술서를 작성케한뒤 풀어줬다고 밝혔다. 그러나전씨는 진술서에서 『본인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뚜렷한 이유없이 학내를 배회하면서 주요 학생회간부의 거처와 연락처를 탐문한 사실이 있음을 인정하면 이에 대해 고대학생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합니다.죄송합니다.’94 8·4일 전귀희』라고 적었다. ▷사망◁ 전씨는 학생들로부터 풀려난지 40분뒤인 하오5시10분쯤 고려대 서문앞길에 쓰러져 신음하다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이어 전씨는 안암5가 파출소소속 순찰차로 하오5시40분쯤 동부시립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다 다음 날인 5일 상오6시30분쯤 숨졌다. 병원측은 『후송당시 전씨가 술에 취해 등·엉덩이·허벅지등 몸 뒷부분에 멍이 들고 머리에 각각 2㎝·5㎝크기의 찢어진 상처가 있었으나 이는 후송 10시간전에 생긴 것으로 보였다』고 밝혔다.치료를 맡았던 유운석씨(29·인턴)는 『전씨가 처음 의식도 있고 병실을 걸어다니며 말을 하는등 심각한 증세를 보이지 않다가 5일 상오6시쯤 혈압이 급격히 떨어져 심폐마사지를 했으나 30분쯤뒤 갑자기 숨졌다』고 말했다. ▷수사◁ 서울성북경찰서는 6일국립과학수사연구소 권인훈박사의 집도로 사체부검을 한 결과 「전씨의 몸이 워낙 약해 피하출혈 과다로 인해 쇼크사했으나 직접사인은 알 수 없다」고 밝혔다.또 전씨의 등(30㎝)과 뒷목·양쪽팔에는 외력으로 생긴 피하출혈이 각각 있었으며 머리 왼쪽부분이 5㎝쯤 함몰된 상태였다고 밝혀 전씨가 폭행을 당한 후유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또한 전씨가 간·콩팥질환과 빈혈증세를 앓고 있는 점이 사망의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중이다. 경찰은 또 정군등이 『전씨를 구타했다』고 간접시인함에 따라 학생들의 폭행이 전씨 사망의 원인으로 작용했는지 여부를 집중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정군이 소환에 응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관련학생들을 곧 소환,폭행혐의가 드러나면 모두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또한 경찰은 전씨가 학교를 빠져나온뒤 인근불량배나 주민들과 싸웠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중이다. ▷피해자주변◁ 전씨는 고향인 충남 청양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한뒤 상경,넷째형 귀복씨(50)집에 잠시 기거하다 10년전부터가족들과 연락이 끊겼다.어려서부터 후천성 소아마비를 앓아 전씨는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어왔다. 79년부터 형이 차려준 양화점을 3년동안 경영하다 자금난으로 도산한뒤 떠돌이 행상으로 전전했다. 특히 숨진 전씨의 바지주머니에서 발견된 열쇠가 청량리역내의 무인보관함 열쇠로 밝혀지고 이 곳에서 옷가지가 든 가방 2개와 예금통장등이 나온 점으로 미뤄 경찰은 전씨가 유랑생활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형 귀복씨는 『동생이 평소 과시욕이 강했으나 정신분열증세를 보여 경찰의 정보원노릇을 했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전씨로부터 빼앗은 전화번호수첩에 경찰·검찰·안기부·청와대과 주요대학 총학생회·홍모검사등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뇌염접종 사망 어린이 2명/백신의한 과민성 쇼크사”

    ◎국과수 부검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13일 지난달 23일 일본뇌염백신주사를 접종한뒤 부작용으로 숨진 신자영·이정하 어린이(5)의 사인은 『백신에 의한 과민성 쇼크사로 판단된다』는 부검결과를 경찰에 통보했다. 국과수는 이날 사체부검감정서를 통해 『뇌염백신에 의한 오염가능성은 없었다』고 밝히고 『드물기는 하지만 과거에도 일본뇌염백신에 의한 과민성쇼크사의 사례가 있는 점으로 미뤄 당시상황과 부검결과를 종합할 때 이 어린이들의 사인은 백신에 의한 과민성쇼크사로 보인다』는 최종부검결과를 내렸다. 국과수는 또 『투약당시 병원 냉장고에서 같이 보관된 다른 약물 27종에 대한 검토결과 대부분 급격한 사망을 일으킬만한 약물은 없었으나 다른 약물의 주입으로 인한 사망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마포경찰서는 사고가 난 P병원의 관계자들을 다시 불러 다른 약물을 투입했거나 숨진 어린이들이 주사맞은 위치등이 잘못됐을 가능성에 대해 재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 실탄발사 소총 1정 발견/예비군 사망사건

    ◎훈련당시 총기사용자 집중수사/실탄사격후 남은 탄두 공포탄 쏠때 발사된듯 예비군훈련장의 안전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지난 3일 경기도 미금시 이패동 예비군훈련장에서 동원훈련을 받던중 숨진 장덕수씨(24·세종대 경영학3)는 M16소총 실탄에 맞아 변을 당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사고직후 군이 「공포탄에 의한 쇼크사」라고 밝힌 사실과 전혀 다른 것으로 당초 군이 사고원인을 조작·축소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육군범죄수사단과 경기 남양주경찰서는 6일 중간수사결과를 발표,사고당시 장씨와 함께 조를 이루어 공격과 방어훈련을 펼친 동료 11명에게 지급된 소총 12정을 수거,발사된 뒤 탄두에 남게 되는 총열안쪽의 강선등을 조사한 결과 사고탄두의 강선과 같은 형태의 강선을 갖고 있는 소총 1정을 발견하고 이 총을 갖고 있던 김모씨(25)등을 대상으로 집중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김씨에 대한 조사에서 사고가 일어난 시가지전투훈련 전에 실시된 영점사격때 김씨에게 지급된 소총이 고장나 조교가 이 소총에 장전된 실탄6발을 빼냈으며 김씨는 부사수인 신모씨(25)의 소총을 빌려 사격을 한 사실을 새로 밝혀냈다. 군관계자에 따르면 소총의 총열에는 고유의 강선이 있으며 발사된 탄두에 이 강선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이다. 군과 경찰은 이에따라 일단 조교가 실탄을 제거하면서 실수로 한발을 남겨놓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군과 경찰은 이와 함께 영점사격등 실탄사격을 한 뒤 탄약의 분량이 적어 탄두가 총열안에 들어 있는 것을 미처 모르고 방어조가 공포탄을 장전,발사하자 탄두가 밀려나가 사고가 났을 가능성과 ▲훈련병이 영점조준과 실사격중 숨겨 갖고 온 실탄을 공포탄으로 착각해 장전,사격했을 가능성 ▲사격장에서 주운 탄두를 공포탄과 함께 넣어 쐈을 가능성등 다각적으로 수사중이다. 군과 경찰은 이에 앞서 지난 4일 하오 세종대학생등이 참가한 가운데 장씨의 사체를 부검한 결과 6∼7㎜크기의 상처를 내고 왼쪽 젖가슴부위를 관통,오른쪽 허리띠 아래 하복부에 박혀 있는 M16탄두를 찾아냈다.
  • 강민창씨 집유/박종철군 치사사건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김대환부장판사)는 2일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 은폐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으나 대법원에서 유죄취지로 파기환송된 전치안본부장 강민창피고인(60)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강씨에게 직무유기죄를 적용,징역 8월에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당시 치안본부장으로서 관련경찰관들에 대한 수사지휘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채 박군의 사인을 심장 쇼크사로 조작·은폐하려다가 신문보도 등으로 은폐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뒤에서야 수사를 지시하는등 직무를 유기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강피고인은 87년1월 서울대생 박종철군을 물고문으로 숨지게한 치안본부 대공수사2단 경찰관들이 사인을 단순히 심장쇼크사로 유도하는 변사사건 보고서를 작성한데 대해 「물고문에 의한 질식사」라는 부검의사의 소견을 무시하고 수사대신 감찰조사 차원에서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하려한 혐의등으로 기소됐었다.
  • 중년기 돌연사 주범은 과로/유태우(건강한 삶)

    요즈음 심심치 않게 과로사한 유명인사들의 기사가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것을 본다.회사나 사업을 활발하게 주도하던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망했다는 것이고,그 이전에 크게 아파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확한 사망원인을 모른다고 한다.그저 막연히 과로했기 때문에 이런 큰 불행이 오지않았나해서 과로사라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과로사는 돌연사의 한 형태로서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발생하는 사망을 말한다.보통 증세 발작 후 1시간 내에 사망하는 것으로 정의되는데,혹자에 따라서는 24시간내의 사망도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돌연사의 흔한 기존 질환으로서는 크게 뇌혈관질환과 심장질환을 들게 되는데,그 외에도 드물게 폐혈전증 등이 원인이 되는 수도 있다.40세 이후에서의 도련사는 뇌혈관질환이(특히,뇌출혈)훨씬 많은데,치료되지 않는 고혈압,흡연,조절되지 않는 당뇨병 등이 선행인자가 된다.두번째 흔한 이유로서의 심장질환은 관상동맥질환(협심증,심근경색)등이나,류마티성 심질환 등에 의한 부정맥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광범위한 심근경색에 의한 급성심부전인 경우도 있다.40세 이전에서의 돌연사는 심장질환이 그 원인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아지는데 위에서 열거한 부정맥,급성심부전외에도 순환성쇼크(소위 쇼크사)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더러가다 젊은나이에 정상 수면 중 사망하던가,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죽어있더라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돌연사를 일으키는 유발인자로서 여러가지를 들 수 있는데,그 중 가장 비중이 크고 심각한 것은 역시 과로이다.통계에 의하면 돌연사의 40%정도가 과로로 인한 것이다.직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과로성 돌연사는 넓게 생각하면 과로로 병이 생긴 경우와 기존 질환이 과로로 악화되어 사망한 경우를 모두 포함하나 좁게 볼 때는 후자만을 지칭한다.따라서 과로를 유발시키는 생체리듬 파괴,정신적 충격,과도한 정신적 긴장,불안,초조,불면 등이 계속되는 것을 금지해야만 과로성 돌연사(과로사)를 예방할 수 있다. 하루 흡연량이 20개비 이상,커피 4∼5잔 이상,수개월간 지속되는 음주,불규칙한 식사형태,늦은 귀가시간등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과로사의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다.특히 여기에 이미 고혈압이나 당뇨병,심장병 등의 지병을 갖고 있거나 몸이 무겁고 쉬이 피곤을 느끼며,체중의 급작스런 변동이나 심한 두통의 발작,가슴이 조어드는 통증 등을 경험한 사람들은 더욱 그 가능성이 높아진다.근무상 책임의 증가,늦은 근무시간,불규칙한 근무상태,잦은 출장 등의 직업상 위험인자가 있을 때는 당장 쓰려져도 할 말이 없는 것으로 반드시 의사의 진찰을 받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에서 돌연사가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40대 이후 직업적으로 바쁜 나머지 건강에 대한 경계를 늦췄기 때문이다.그러나 돌연사도 원인이 있는만큼 위에서 열거한 돌연사의 유인인자에 대해 주의를 기울인다면 얼마든지 예방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 「가라오케」 또 감전사/40대교사 반주기계 조작하다 참변

    【경주=이동구기자】 10일 하오3시40분쯤 경북 경주군 안강읍 옥산1리 1474 산장식당에서 최무식씨(44·안강중교사·대구시 동구 신평동 633)가 「가라오케」반주로 노래를 부른뒤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동료교사 진흥수씨(33)에 따르면 이날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마치고 숨진 최씨등 교사 6명이 학부모 12명과 함께 이 식당에서 음식을 먹은뒤 「가라오케」 기계를 틀고 노래를 부르다 하오3시40분쯤 최씨가 기계를 끄는 순간 갑자기 쓰러졌다는 것이다. 경찰은 전기감전에 의한 쇼크사로 보고 정확한 사인규명을 위해 사체를 부검키로 했다.지난 8일에도 서울에서 가라오케반주로 노래를 하던 대학생이 숨졌었다.
  • 가라오케 마이크에 감전사/대학 3년생

    ◎영상시설 연결전선 물에 젖어 참변 8일 하오11시40분쯤 서울 서초구 방배동 768「빅 가라오케」(주인 이정호·31)에서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던 표현석군(21·J대3년·강남구 대치2동 한보미도아파트 206동)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마이크를 잡는 순간 갑자기 쓰러져 그자리에서 숨졌다. 표군의 친구 조성준군(20)은 『이날 하오 9시30분부터 과친구 6명과 함께 맥주를 마시다 현석군이 노래를 부르러 무대에 나가 마이크를 잡는 순간 갑자기 「악」하며 쓰러졌다』고 말했다. 경찰은 영상시설에 이어진 전깃줄이 물에 젖은 바닥에 늘어져 있고 마이크에서 계속 전기가 통하는 것을 느꼈다는 친구들의 말에 따라 감전에 의한 쇼크사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가라오케 주인 이씨를 업무상과실치사혐의로 입건했다.
  • 운전면허시험 낙방/50대 현장서 쇼크사(조약돌)

    50대 남자가 운전면허 시험에서 낙방하자 충격으로 사망. 13일 상오10시10분쯤 부산시 북구 덕포동 북부운전면허시험장에서 기능시험에 응시한 한기현씨(58·사하구 다대동 37)가 시간초과로 불합격 판정을 받자 차에서 내린 뒤 비틀거리다 쓰러져 면허시험장 직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던중 사망.
  • “임산부 머리염색약 쓰면 위험”

    ◎보사부,354개품목 약효·안전성검사/전체의 96% 342개가 약화 우려/8월까지 「주의사항」 표시 명령/페니실린은 정맥주사 금지/암피실린등 87종 효능 삭제 시판의약품의 대부분이 약효와 부작용표시가 실제와 크게 달라 소비자들의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보사부가 머리염색약 페니실린제제와 설파제등 시판중인 의약품 16개 약효군 3백54개품목(수입25개품목 포함)에 대해 약효 및 안전성을 검사한 결과 이 가운데 87개 품목은 효능이 표시내용보다 떨어졌으며 3백42개 품목은 사용설명서에도 표시되어있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났다. 보사부가 7일 발표한 91년도 의약품재평가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항생물질제제복합제 45품목·화학요법제복합제 92품목·모발용약제 2백15품목등 3백54품목에 대한 약효재평가에서 ▲항생물질제제복합제중 11품목 ▲화학요법제복합제중 73품목 ▲모발용약제중 4품목이 당초 허가내용이나 표시내용과 달리 효능이 부분적으로 떨어지거나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보사부는 이에따라 오는 8월까지 부작용이 확인된 페니실린주사제와 머리염색약등 3백42품목에 대해서는 제품설명서에 주의사항을 추가토록 하는 한편 부작용이 생기거나 대체의약품이 개발된 암피실린등 87품목에 대해서는 일부 효능 및 효과를 삭제토록 했다. 보사부는 특히 그동안 약효가 빨라 정맥주사에 이용해 오던 페니실린주사제의 경우 쇼크사등 부작용이 많아 앞으로는 정맥주사용을 금지하고 근육주사용으로만 사용토록 했다. 또 시판중인 훼미닌 레브론 아모레헤어칼라 등 머리염색약은 파라페닐렌디아민이라는 성분이 국제적으로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아 임산부는 쓰지 말도록 했다. 양모제인 레이소겐,글루콘산클로로핵시린제제 등은 기존 효능가운데 발모촉진 효능을 삭제하고 발모제 가운데 염화카프로늄제제는 탈모증 등에 대한 예방효능을 빼도록 했다.
  • 발암등 유해약품 37종/국내업체 버젓이 시판/외국선 판매금지

    AIDS바이러스감염·쇼크사·발암성등 각종 치명적 부작용 때문에 미국등 각국에서 사용이 금지되거나 회수·판매규제를 받고 있는 37종의 약품성분을 함량한 제품이 국내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판매되고 있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 유엔에 의해 지난 6월 발간된 유엔통합자료(제4판)를 근거로 실시한 국내유통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1백24개 회사가 부작용을 일으키는 37종의 약품성분을 가지고 2백98개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 가운데는 심각한 부작용이 인정되어 외국에서는 아예 사용이 금지된 17약성분의 하나인 펙톨을 넣어 혈액제제류 옥타비주250단위(녹십자사)등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 “김양 사인 규명엔 부검이 필수”

    ◎법의학계 황적준·문국진 박사등 제기/“빨리 해야 「압사」·「질식사」 가려/「대책회의」측 거부 이해 안가”/현 정황으론 「압사」 가능성 높아 시위도중 숨진 김귀정양(25·성균관대 불문과 3년)의 사인에 대해 검찰 및 경찰과 재야·운동권의 이른바 「범국민대책회의」가 서로 다른 장을 펴고 있는 가운데 정확한 사인의 규명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사체부검이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이 같은 여론은 특히 이 분야를 전문으로 연구하고 있는 법의학계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법의학계의 권위자인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문국진 박사(66)와 지난 87년 박종철군의 고문치사 사실을 부검으로 가려냈던 고려대 법의학연구소장 황적준 교수(46) 등은 28일 『김양의 사인을 정확히 규명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사체부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박사 등은 김양사건을 놓고 「시위대에 깔려 발생한 단순압사 또는 쇼크사」라는 경찰의 입장과 「최루가스에 의한 질식사나 구타에 의한 사망」이라는 「대책회의」측 주장을 가리기 위해서는부검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문 박사 등은 『사건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부검인데도 「대책회의」측이 빨리 이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면서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이 밝혀져야 책임소재도 가려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황 교수는 『아직 부검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김양의 사인이 어느 쪽인지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압사일 가능성이 가장 높고 충격이나 통증에 의한 쇼크사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면서 『넘어지면서 코와 입이 막히거나 목 또는 가슴이 눌렸을 경우 산소가 들어가고 나오는 과정에서 흉부근육의 운동 때문에 흉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책회의」측이 주장하는 「최루가스에 의한 질식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최루가스에 질식돼 숨진 사례가 문헌으로 보고된 적이 한번도 없다』고 지적하고 『최루가스가 순간적으로 호흡반사운동을 억제하게 되면 호흡곤란을 야기시키긴 하나 최루가스로 인한 직접적인 질식사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직접폭력에 의한 사망은 검안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김양의 아래입술 가운데 부분에 1㎝ 정도의 상처와 왼쪽 무릎에 가로·세로 1㎝ 크기의 피멍 말고는 다른 외상이 없다는 검찰발표를 근거로 판단할 때 직접 구타에 의한 사망은 아닐 가능성이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까지 밝혀진 모든 정황으로 볼 때 김양이 압사했을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으나 부검을 실시하지 않고서는 압사·쇼크사·질식사 가운데 어느 하나를 단적으로 끄집어 단정지을 수 없다』고 거급 밝히면서 『따라서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부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선결과제』라고 강조했다. 지난 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때 직접 부검에 참가하기도 했던 황 교수는 『박군의 경우도 외상은 없었으나 부검결과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라는 사실을 밝혀냈었다』고 상기시키고 『김양사건의 경우도 부검을 실시하지 않으면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는 것은 물론 법의학의 발전도 20년 정도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 “달아나던 시위대,폭4m 골목서 뒤엉켜/여대생사망…현장목격자 증언

    ◎“경찰,양쪽서 최루탄으로 협공했다/넘어진 시위대에 전경들 폭행 안해” 성균관대학생 김귀정양(25)의 사망사건을 놓고 또다시 논란이 일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김양은 당초 가두시위를 벌이다 경찰의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던 길에 시위군중들에 떠밀려 넘어져 압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재야 쪽에서 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분신자살한 김기설씨의 「유서대필공방」에 이은 또 하나의 「사인공방사건」이 될 가능성까지 보이고 있다. 재야 쪽은 이번 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대책회의」를 구성하고 『김양은 경찰의 무자비한 시위진압과 폭력 또는 최루탄가스에 의해 숨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는 『시위대에 밀려 압사했거나 쇼크사한 것』이라는 경찰 쪽 견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수사에 나선 검찰은 김양 아래 입술 가운데 부분에 1㎝정도의 상처와 왼쪽 무릎에 가로 세로 1㎝ 크기의 피멍말고는 외상이 없다는 점과 밀폐된 공간이 아니고서는 최루가스에 의한 질식사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경찰 쪽과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대책회의」측은 그러나 『최소한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간접살인』이라고 경찰에 책임을 묻고 있다. 이같은 주장들은 김양의 사체가 부검되면 어느 쪽이든 진위가 가려지겠지만 「대책회의」측은 『부검에 앞서 경찰의 강경진압 진상조사 및 책임자의 처벌』이라는 선행조건을 내걸고 있어 한동안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경찰의 시위진압 상황일지와 검찰조사,목격자진술 등에 따르면 김양이 쓰러지기 30분 전쯤인 25일 하오 5시쯤 중구 퇴계로 대한극장 앞 일대에서는 1천여 명의 시위대가 명동성당이나 시내 중심가 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화염병을 던지며 삼일고가도로 입구 로터리에 있는 경찰 6백여 명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곳에서 진압경찰을 지휘하고 있던 성북경찰서 홍순원 경비과장은 시위대가 2천명 이상으로 늘고 바람이 경찰 쪽으로 불어 최루탄을 쏘아도 큰 효과가 없자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종로4가에서 구종태 서울 송파경찰서장이 지휘하던 6백여 명의 경찰이 5시10분쯤 퇴계로4가로 이동했고 종로3가에서 최인섭 서울시경 4기동대장의 지휘를 받던 6백여 명도 비슷한 시간에 스카라극장 앞으로 이동했다. 구 서장이 이끄는 경찰이 시위대를 밀어내기 시작하자 시위대는 5시30분쯤 김양이 사고를 당한 무랑루즈 스탠드바 앞 차도까지 밀려갔고 이곳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최 기동대장과 홍 경비과장이 지휘하는 경찰도 비슷한 시간 필동로터리 근처까지 전진해 시위대와 충돌했다. 쓰러진 김양을 차에 태워 병원에 보낸 김지훈군(20·공주대학 국민윤리학과 4년)은 당시 상황에 대해 무랑루즈스탠드바의 골목길 입구 차도에서 자신 등 1백50여 명이 경찰에 포위된 상태였으며 이때 경찰이 고개를 숙이라며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방패와 곤봉으로 머리 등을 때리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김군은 이어 『전경들이 무랑루즈 골목 쪽으로 길을 터주어 달아나다가 무랑루즈 맞은 편 미쉘경양식집 앞에 주차해 있는 승용차 옆에서 시위대 10여 명이 넘어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무랑루즈 앞 골목길은 입구의 너비가 4m 정도 되나 안쪽으로는 2.5m에 불과했다. 멈칫했던 김군은 다시 달아나려다가 한 남자 시위자가 얼굴을 땅으로 향해 엎어져 있는 김양을 등에 업으려는 모습을 보고 김양의 왼쪽 다리부분을 부축했으나 김양의 몸은 이곳에서 18m쯤 가다 축 늘어졌다고 말했다. 김군은 그러나 김양이 폭행당하는 모습을 목격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날 시위에서 경찰이 문제가 될 정도의 과잉진압은 하지 않았으며 김양은 단순히 달아나다 군중에 눌려 압사 또는 쇼크사한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아무튼 이번 사건을 놓고 서로 상반된 주장이 맞서고 있는만큼 김양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사체부검이 필수적이며 이번 사건이 사회에 미치는 긴장감을 고려할 때 그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 같다.
  • 뇌염예방주사 맞고 4세 남아 쇼크사

    29일 하오2시30분쯤 서울 성북구 정릉4동 새서울의원(원장 박강식ㆍ42)에서 이 동네 박철호씨(30ㆍ노동ㆍ정릉4동 36)의 맏아들 기열군(4)이 간호조무사 최모양(26)에게 뇌염예방주사를 맞은뒤 의식을 잃고 쓰러져 고려대 혜화병원으로 옮겼으나 16시간만인 30일 상오6시10분쯤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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