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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목욕신” 왜? 가슴골 드러내고 ‘아찔’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목욕신” 왜? 가슴골 드러내고 ‘아찔’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목욕신” 왜? 가슴골 드러내고 ‘아찔’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이 화제다. KBS 드라마 ‘장사의 신-객주 2015’에서 김민정은 젓갈장수 보부상으로 전국을 떠도는 ‘개똥이’이자 무녀 ‘매월’ 역으로 출연했다. 23일 ‘장사의 신 객주 2015’ 첫 방송에 앞서 공개된 스틸컷에서 김민정은 남장을 벗고 어깨를 드러낸 채 김이 피어오르는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김민정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우윳빛 피부와 쇄골을 드러내 아찔한 매력을 발산했다. 김민정의 ‘장사의 신 객주 2015’ 목욕신은 지난 11일 NG 없이 단 한 컷 만에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민정은 ‘장사의 신 객주 2015’ 제작발표회에서 “‘객주’를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잠는 장면은 목욕신이다. 통에 들어가 얼굴과 몸에 묻은 때를 벗겨내니 기분이 묘하더라”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23일 ‘장사의 신 객주 2015’ 첫 방송의 시청률은 6.9%를 기록했다. 첫 방송임을 감안하면 높은 시청률이다. 전작 ‘어셈블리’의 마지막회 시청률은 4.9%였다. 이날 ‘장사의 신 객주 2015’에서는 천오수(김승수)가 의형 길상문(이원종)과 함께 청나라로 무역을 떠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네티즌들은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아찔하네”,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목욕신 기대된다”,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우윳빛깔 피부 아름답다”,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볼륨 몸매 대박”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KBS(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목욕장면에서 드러나는 볼륨감 ‘대박 그 자체’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목욕장면에서 드러나는 볼륨감 ‘대박 그 자체’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목욕장면에서 드러나는 볼륨감 ‘대박 그 자체’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배우 김민정의 목욕신이 눈길을 끌고 있다. KBS 새 특별기획드라마 ‘장사의 신-객주 2015’에서 김민정은 젓갈장수 보부상으로 전국을 떠도는 개똥이이자 무녀 매월 역으로 출연한다. 23일 첫 방송에 앞서 공개된 스틸컷에서 김민정은 남장을 벗고, 어깨를 드러낸 채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우윳빛 피부와 아찔한 쇄골라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민정은 앞서 제작발표회 당시 “‘객주’를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목욕신이다. 통에 들어가 얼굴과 몸에 묻은 때를 벗겨내니 기분이 묘하더라”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편 23일 첫 방송된 ‘장사의 신-객주’의 시청률은 6.9%를 기록했다. 첫 방송임을 감안하면 높은 시청률이다. 전작인 ‘어셈블리’ 마지막 회는 4.9%였다. 이날 ‘장사의 신-객주’에서는 천오수(김승수)가 의형 길상문(이원종)과 함께 청나라와의 국경 무역을 떠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목욕장면에서 드러나는 볼륨감 ‘대박’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목욕장면에서 드러나는 볼륨감 ‘대박’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목욕장면에서 드러나는 볼륨감 ‘대박’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배우 김민정의 목욕신이 눈길을 끌고 있다. KBS 새 특별기획드라마 ‘장사의 신-객주 2015’에서 김민정은 젓갈장수 보부상으로 전국을 떠도는 개똥이이자 무녀 매월 역으로 출연한다. 23일 첫 방송에 앞서 공개된 스틸컷에서 김민정은 남장을 벗고, 어깨를 드러낸 채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우윳빛 피부와 아찔한 쇄골라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민정은 앞서 제작발표회 당시 “‘객주’를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목욕신이다. 통에 들어가 얼굴과 몸에 묻은 때를 벗겨내니 기분이 묘하더라”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편 23일 첫 방송된 ‘장사의 신-객주’의 시청률은 6.9%를 기록했다. 첫 방송임을 감안하면 높은 시청률이다. 전작인 ‘어셈블리’ 마지막 회는 4.9%였다. 이날 ‘장사의 신-객주’에서는 천오수(김승수)가 의형 길상문(이원종)과 함께 청나라와의 국경 무역을 떠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목욕장면 “통에 들어가 얼굴과 몸에 묻은 때 벗겨내”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목욕장면 “통에 들어가 얼굴과 몸에 묻은 때 벗겨내”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배우 김민정의 목욕신이 눈길을 끌고 있다. KBS 새 특별기획드라마 ‘장사의 신-객주 2015’에서 김민정은 젓갈장수 보부상으로 전국을 떠도는 개똥이이자 무녀 매월 역으로 출연한다. 23일 첫 방송에 앞서 공개된 스틸컷에서 김민정은 남장을 벗고, 어깨를 드러낸 채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우윳빛 피부와 아찔한 쇄골라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민정은 앞서 제작발표회 당시 “‘객주’를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목욕신이다. 통에 들어가 얼굴과 몸에 묻은 때를 벗겨내니 기분이 묘하더라”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편 23일 첫 방송된 ‘장사의 신-객주’의 시청률은 6.9%를 기록했다. 첫 방송임을 감안하면 높은 시청률이다. 전작인 ‘어셈블리’ 마지막 회는 4.9%였다. 이날 ‘장사의 신-객주’에서는 천오수(김승수)가 의형 길상문(이원종)과 함께 청나라와의 국경 무역을 떠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목욕장면 “가장 기억 남아”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목욕장면 “가장 기억 남아”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배우 김민정의 목욕신이 눈길을 끌고 있다. KBS 새 특별기획드라마 ‘장사의 신-객주 2015’에서 김민정은 젓갈장수 보부상으로 전국을 떠도는 개똥이이자 무녀 매월 역으로 출연한다. 23일 첫 방송에 앞서 공개된 스틸컷에서 김민정은 남장을 벗고, 어깨를 드러낸 채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우윳빛 피부와 아찔한 쇄골라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민정은 앞서 제작발표회 당시 “‘객주’를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목욕신이다. 통에 들어가 얼굴과 몸에 묻은 때를 벗겨내니 기분이 묘하더라”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편 23일 첫 방송된 ‘장사의 신-객주’의 시청률은 6.9%를 기록했다. 첫 방송임을 감안하면 높은 시청률이다. 전작인 ‘어셈블리’ 마지막 회는 4.9%였다. 이날 ‘장사의 신-객주’에서는 천오수(김승수)가 의형 길상문(이원종)과 함께 청나라와의 국경 무역을 떠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목욕장면에서 드러나는 볼륨감 ‘완전 대박’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목욕장면에서 드러나는 볼륨감 ‘완전 대박’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목욕장면에서 드러나는 볼륨감 ‘완전 대박’ 장사의 신 객주 2015 김민정 배우 김민정의 목욕신이 눈길을 끌고 있다. KBS 새 특별기획드라마 ‘장사의 신-객주 2015’에서 김민정은 젓갈장수 보부상으로 전국을 떠도는 개똥이이자 무녀 매월 역으로 출연한다. 23일 첫 방송에 앞서 공개된 스틸컷에서 김민정은 남장을 벗고, 어깨를 드러낸 채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우윳빛 피부와 아찔한 쇄골라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민정은 앞서 제작발표회 당시 “‘객주’를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목욕신이다. 통에 들어가 얼굴과 몸에 묻은 때를 벗겨내니 기분이 묘하더라”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편 23일 첫 방송된 ‘장사의 신-객주’의 시청률은 6.9%를 기록했다. 첫 방송임을 감안하면 높은 시청률이다. 전작인 ‘어셈블리’ 마지막 회는 4.9%였다. 이날 ‘장사의 신-객주’에서는 천오수(김승수)가 의형 길상문(이원종)과 함께 청나라와의 국경 무역을 떠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자로 된 한국속담 이야기] 사람의 혀는 뼈가 없어도 사람의 뼈를 부순다

    [한자로 된 한국속담 이야기] 사람의 혀는 뼈가 없어도 사람의 뼈를 부순다

    사람의 혀는 뼈가 없어도 사람의 뼈를 부순다 = 口舌碎骨(구설쇄골) 사람의 입(口) 안에 있는 혀(舌)는 뼈가 없어 부드러운 데도 혀를 놀려서 하는 말로 굳고 단단한 뼈(骨)를 부술수(碎)도 있다는 뜻으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르는 말. 口(입 구). 舌(혀 설). 碎(부술 쇄). 骨(뼈 골)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화 유랑기] ‘악정’ 연산군의 마지막 길 48번 국도...창경궁-마포-교동

    [문화 유랑기] ‘악정’ 연산군의 마지막 길 48번 국도...창경궁-마포-교동

    -4박 5일 동안 간 연산의 마지막 행로 연산군 하면 당장 떠오르는 단어 하나가 ‘폭군’이다. 조선조 27대 왕 중에서 반정으로 축출된 군왕은 광해군과 연산군 둘뿐이다. 특히 연산군은 광해군과는 달리 무엇 하나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이 없는 그야말로 ‘폭군’의 전형으로 취급된다. 말하자면 조선의 네로라고나 할까.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대로 믿을 것이 못되는지, 연산군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역사 동네에 일고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나이 열아홉에 보위에 오른 연산이 재위 12년 만에 중종반정으로 왕좌에서 축출되어 하루아침에 귀양길에 올랐는데, 창경궁에서 출발, 강화를 지나 교동도의 적소(謫所)로 들어가기까지 한 인간의 극적 반전의 전모를 보여주는 4박5일 마지막 행로를 따라가본다. 연산은 악정으로 인심을 잃었다. <조의제문> 사건과 연산의 생모인 폐비 윤씨 문제로 빚어진 무오, 갑자 두 차례의 사화에서 수많은 사림들이 죽어나갔고, 쇄골표풍 등 형벌 또한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뿐 아니었다. 자신을 꾸짖는 할머니 인수대비를 머리로 들이받아 죽게 하고, 자신은 팔도의 미녀들을 흥청이란 이름으로 뽑아올리게 하여 주지육림 속에 나날을 보냈다. 연산 12년(1506) 9월 초하루 밤, 성희안과 박원종의 반정군은 경복궁을 에워싸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이윽고 경복궁을 접수, 거사를 성공시켰다. 이후 거사의 마무리 수순이 진행되었다. 실록은 이렇게 전한다. “전왕을 폐위, 연산군으로 강봉하여 교동(喬桐)에 옮기고, 왕비 신씨를 폐하여 사저로 내쳤으며, 세자 이황 및 모든 왕자들을 각 고을에 안치시키고, 후궁 전비(田非)·녹수·백견(白犬)을 그날로 군기시(무기제조창. 현 프레스센터 자리) 앞에서 목을 베었다.” 폐위 당시 연산군의 나이는 31세였고, 자녀는 4남 2녀로, 폐세자 이황을 비롯, 장녹수의 딸인 영수옹주 등이었다. 아버지를 잘못 만난 죄밖에 없는 이들 앞에는 참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폐세자와 세 왕자는 연산이 폐위된 직후 뿔뿔이 나뉘어 각처로 귀양갔다가. 9월 24일 모두 사사되었다. 연산의 장남인 황의 나이가 10살이었고, 나머진 그보다 다 어렸다. 한 살짜리도 있었다. 이날 연산의 행적은 어떠했는가? 그는 먼저 박원종의 반정군에게 옥새를 빼앗기고 동궁에 연금당했다. 곧 강화 교동에 위리안치하라는 영이 떨어졌다. 위리안치란 가시울이 쳐진 집안에다 죄인을 가두고 밥만 구멍 안으로 넣어주는 형벌이다. 그런 연유로 위리안치처는 '산 자의 무덤'이라 했다. 폐주는 궁궐에 하룻밤도 머물 수 없는 법. 연산은 그날로 궁을 나서야 했다. 귀양길에 오르기 위해 연산은 갓을 쓰고 분홍 옷에 띠를 띠지 않은 모습으로 내전 문 앞으로 나와 땅에 엎드려 말했다. “내가 큰 죄를 지었는데도 특별히 임금의 은혜를 입어 무사히 가게 되었습니다.” 연산은 시인이었다. 모두 125편의 시를 남겼는데, 그중 무려 108편이 집권 마지막 3년 동안에 씌어졌다. 그만큼 그의 심사도 파국으로 치달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그가 남긴 시 중에는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쓴 것 같은 시도 있다. 바람 부는 강에 배 타고 건너길 좋아 마오(莫好風江乘浪渡)배 뒤집혀 위급할 때 그 누가 구해주리(飜舟當急救人唯) 아침만 해도 왕으로 눈을 뜬 연산이지만, 그날 오후에는 죄인의 몸으로 궁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도 언제 반정군의 칼날이 자기 목에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라, 얼굴은 백짓장이다. 그토록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자신의 생사관은 돌보지 못한 모양이다. 부인 신씨는 남편의 유뱃길에 따라나서려 울부짖으며 발버둥쳤지만, 반정세력은 허락하지 않았다. -백성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가시 집으로 해는 서녘으로 기울고 있다. 서산낙일이다. 교동이라면 나라땅의 서쪽 끝이다. 뱃길 험한 바다를 두 번이나 건너야 한다. 폐주는 하룻밤도 궁에서 머물 수 없다. 해가 설핏할 무렵, 연산이 어가가 아닌 평교자를 타고 창경궁 동남문인 선인문을 나올 때 갓을 숙여 쓰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거리에 몰려나온 백성들이 다투어 손가락질하며 폐주를 욕했다. 그날은 이미 저물어 먼 길을 떠날 수 없는 터라 서쪽 이궁인 신촌의 연희궁에서 하룻밤 유숙하기로 한다. 연산이 연회를 자주 열었던 장소다. 거기서 하룻밤 보내는 연산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하루아침에 왕좌에서 내쫓기고 어린 자식들을 다 사지로 몰아넣은 회한에 거의 실성하지 않았을까. 연산의 유배 행로를 추측해보면, 연희궁을 떠난 평교는 마포로 접어드는 길을 따라가 양화나루에서 한강을 건넜을 것으로 보인다. 이 일대의 한강은 서강(西江) 또는 서호(西湖)라고도 하며, 연산이 즐겨 찾던 놀이터였다. 연산으로서는 참 사연 많은 양화나루인 셈이다. 이 서강을 건너 그 다음 짚어갔을 노선은 김포, 통진, 강화, 교동으로 이어진다. 대체로 지금의 48번 국도를 따라갔을 것이다. 네 명의 교꾼이 메는 평교는 그리 속도를 못 내 이튿날 밤은 김포에서 유숙하고, 다음은 통진, 강화에서 각각 묵었다. 4박 5일의 여정이다. 통진에서는 관아에서 묵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통진에서 묵은 연산은 다시 길을 떠나 강화가 빤히 보이는 염하강 나루에 닿았을 것이다. 구 강화대교가 있는 자리다. 이름은 강이나 기실은 해협이다. 폭은 좁으나 물살이 세어, 고려를 침공했던 몽고군도 끝내 건너지 못했다는 해협이다. 이곳을 건너 다시 강화 관아에서 하룻밤 묵은 후 연산의 평교는 어느 길을 따라 교동도로 들어가는 배를 탔을까? 교동으로 건너가려면 창후리 선착장이 가장 빠른 길이다. 연산의 평교도 틀림없이 창후리 포구에서 배를 탔을 것이다. 2014년 교동대교가 놓이기 전 교동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모두 여기서 그룻배를 탔다. 그날은 특히 파도가 사나워 배가 뒤집힐 뻔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차라리 연산에겐 그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4박5일 동안 뭍길, 물길 합해 80km, 2백리 길을 짚어 교동 고을 관아 뜰에 들어선 연산은 장졸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땅에 엎드린 채 진땀을 흘리며 감히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이제 곧 죽임을 당하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대신 탱자나무 울타리가 처마 밑까지 바짝 쳐진 가옥 안에 갇혀졌다. 작은 문 하나로 음식만 들일 수 있을 뿐, 해를 구경할 수 없는 감옥이다. 적소에 안치되기까지 연산의 모습을 <중종실록>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안치한 곳에 이르니, 위리한 곳이 몹시 좁아 해를 볼 수 없었고, 다만 한 개의 조그마한 문이 있어서 겨우 음식을 들여보내고 말을 전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폐왕이 위리 안에 들어가자마자 시녀들이 모두 목놓아 울부짖으면서 호곡하였습니다. 신등이 작별을 고하니, 폐왕이 말을 전하기를, ‘나 때문에 멀리 오느라 수고하였다. 고맙고 고맙다’라고 하였습니다.” 교동도는 조선 초부터 왕족의 단골 유배지였다. 연산군을 비롯해 세종의 3남 안평대군, 선조의 첫째 서자 임해군, 인조의 동생 능창대군 등이 교동도로 유배당했다가 풀려나거나 사사되었다. 이처럼 왕족들을 주로 교동에 유배시킨 것은 도성에서 가까워 감시하기가 좋다는 점, 그러면서도 사나운 조류로 인해 완전한 격리가 가능하다는 이점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동도의 야트막한 화개산 기슭에 자리한 유배지는 그야말로 산속 적막한 곳이었다. 위치가 산의 서사면이어서 한양 쪽 하늘은 뵈지도 않는 곳이다. 묏자리로 쓰기에도 적막한 감이 드는 여기서 연산은 그 회한의 말년을 보냈던 것이다. 연산이 숨진 절기는 겨울이다. 적소의 산봉과 바위들은 아마 그때 시녀들의 호곡소리와 연산의 고음을 들었을 것이다. -유폐 두 달 만에 숨져 연산의 귀양살이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위리안치된 지 두 달 만인 11월 6일, 물도 못 마시고 눈도 뜰 수 없는 역질에 걸려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숨지기 전 연산이 시중드는 시녀에게 한마디 말을 남겼다. “중전이 보고 싶구나.” 연산이 역질로 죽었다는 데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도 없지 않다. 11월(음력)이면 겨울인데 무슨 역질인가, 필시 독살이다는 의혹이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왕좌와 처자식들을 모두 잃고 31살 나이에 가시울타리 집안에 갇힌다면 독을 먹지 않아도 죽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의 시신은 교동땅에 묻혔다가 몇 년 후 폐비 신씨의 탄원으로 경기도 양주(지금의 도봉구 방학동)로 이장되었다. 반정으로 남편과 두 아들, 두 오라비를 모두 잃어버린 신씨는 연산보다 31년을 더 살다가 연산 묘 옆에 나란히 묻혔다. 살아 있을 때 그토록 많은 여인들을 거느렸건만, 죽어서 끝까지 그의 곁에 남은 여인은 폐비 신씨 한 사람이었다. 숨지기 전 연산이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신씨가 마침내 자기 옆에 유택을 마련해 들어왔을 때, 지하의 연산은 생전의 부인 모습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은 자작시를 되뇌어 보지나 않았을까. 인생은 초로와 같아서​(人生如草露)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會合不多時)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문화 유랑기] 연산군의 마지막 길 48번 국도 ‘창경궁-신촌-마포-통진-강화-교동’

    [문화 유랑기] 연산군의 마지막 길 48번 국도 ‘창경궁-신촌-마포-통진-강화-교동’

    -4박 5일 동안 간 연산의 마지막 행로 연산군 하면 당장 떠오르는 단어 하나가 ‘폭군’이다. 조선조 27대 왕 중에서 반정으로 축출된 군왕은 광해군과 연산군 둘뿐이다. 특히 연산군은 광해군과는 달리 무엇 하나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이 없는 그야말로 ‘폭군’의 전형으로 취급된다. 말하자면 조선의 네로라고나 할까.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대로 믿을 것이 못되는지, 연산군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역사 동네에 일고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나이 열아홉에 보위에 오른 연산이 재위 12년 만에 중종반정으로 왕좌에서 축출되어 하루아침에 귀양길에 올랐는데, 창경궁에서 출발, 강화를 지나 교동도의 적소(謫所)로 들어가기까지 한 인간의 극적 반전의 전모를 보여주는 4박5일 마지막 행로를 따라가본다. 연산은 악정으로 인심을 잃었다. <조의제문> 사건과 연산의 생모인 폐비 윤씨 문제로 빚어진 무오, 갑자 두 차례의 사화에서 수많은 사림들이 죽어나갔고, 쇄골표풍 등 형벌 또한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뿐 아니었다. 자신을 꾸짖는 할머니 인수대비를 머리로 들이받아 죽게 하고, 자신은 팔도의 미녀들을 흥청이란 이름으로 뽑아올리게 하여 주지육림 속에 나날을 보냈다. 연산 12년(1506) 9월 초하루 밤, 성희안과 박원종의 반정군은 경복궁을 에워싸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이윽고 경복궁을 접수, 거사를 성공시켰다. 이후 거사의 마무리 수순이 진행되었다. 실록은 이렇게 전한다. “전왕을 폐위, 연산군으로 강봉하여 교동(喬桐)에 옮기고, 왕비 신씨를 폐하여 사저로 내쳤으며, 세자 이황 및 모든 왕자들을 각 고을에 안치시키고, 후궁 전비(田非)·녹수·백견(白犬)을 그날로 군기시(무기제조창. 현 프레스센터 자리) 앞에서 목을 베었다.” 폐위 당시 연산군의 나이는 31세였고, 자녀는 4남 2녀로, 폐세자 이황을 비롯, 장녹수의 딸인 영수옹주 등이었다. 아버지를 잘못 만난 죄밖에 없는 이들 앞에는 참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폐세자와 세 왕자는 연산이 폐위된 직후 뿔뿔이 나뉘어 각처로 귀양갔다가. 9월 24일 모두 사사되었다. 연산의 장남인 황의 나이가 10살이었고, 나머진 그보다 다 어렸다. 한 살짜리도 있었다. 이날 연산의 행적은 어떠했는가? 그는 먼저 박원종의 반정군에게 옥새를 빼앗기고 동궁에 연금당했다. 곧 강화 교동에 위리안치하라는 영이 떨어졌다. 위리안치란 가시울이 쳐진 집안에다 죄인을 가두고 밥만 구멍 안으로 넣어주는 형벌이다. 그런 연유로 위리안치처는 '산 자의 무덤'이라 했다. 폐주는 궁궐에 하룻밤도 머물 수 없는 법. 연산은 그날로 궁을 나서야 했다. 귀양길에 오르기 위해 연산은 갓을 쓰고 분홍 옷에 띠를 띠지 않은 모습으로 내전 문 앞으로 나와 땅에 엎드려 말했다. “내가 큰 죄를 지었는데도 특별히 임금의 은혜를 입어 무사히 가게 되었습니다.” 연산은 시인이었다. 모두 125편의 시를 남겼는데, 그중 무려 108편이 집권 마지막 3년 동안에 씌어졌다. 그만큼 그의 심사도 파국으로 치달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그가 남긴 시 중에는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쓴 것 같은 시도 있다. 바람 부는 강에 배 타고 건너길 좋아 마오(莫好風江乘浪渡)배 뒤집혀 위급할 때 그 누가 구해주리(飜舟當急救人唯) 아침만 해도 왕으로 눈을 뜬 연산이지만, 그날 오후에는 죄인의 몸으로 궁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도 언제 반정군의 칼날이 자기 목에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라, 얼굴은 백짓장이다. 그토록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자신의 생사관은 돌보지 못한 모양이다. 부인 신씨는 남편의 유뱃길에 따라나서려 울부짖으며 발버둥쳤지만, 반정세력은 허락하지 않았다. -백성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가시 집으로 해는 서녘으로 기울고 있다. 서산낙일이다. 교동이라면 나라땅의 서쪽 끝이다. 뱃길 험한 바다를 두 번이나 건너야 한다. 폐주는 하룻밤도 궁에서 머물 수 없다. 해가 설핏할 무렵, 연산이 어가가 아닌 평교자를 타고 창경궁 동남문인 선인문을 나올 때 갓을 숙여 쓰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거리에 몰려나온 백성들이 다투어 손가락질하며 폐주를 욕했다. 그날은 이미 저물어 먼 길을 떠날 수 없는 터라 서쪽 이궁인 신촌의 연희궁에서 하룻밤 유숙하기로 한다. 연산이 연회를 자주 열었던 장소다. 거기서 하룻밤 보내는 연산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하루아침에 왕좌에서 내쫓기고 어린 자식들을 다 사지로 몰아넣은 회한에 거의 실성하지 않았을까. 연산의 유배 행로를 추측해보면, 연희궁을 떠난 평교는 마포로 접어드는 길을 따라가 양화나루에서 한강을 건넜을 것으로 보인다. 이 일대의 한강은 서강(西江) 또는 서호(西湖)라고도 하며, 연산이 즐겨 찾던 놀이터였다. 연산으로서는 참 사연 많은 양화나루인 셈이다. 이 서강을 건너 그 다음 짚어갔을 노선은 김포, 통진, 강화, 교동으로 이어진다. 대체로 지금의 48번 국도를 따라갔을 것이다. 네 명의 교꾼이 메는 평교는 그리 속도를 못 내 이튿날 밤은 김포에서 유숙하고, 다음은 통진, 강화에서 각각 묵었다. 4박 5일의 여정이다. 통진에서는 관아에서 묵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통진에서 묵은 연산은 다시 길을 떠나 강화가 빤히 보이는 염하강 나루에 닿았을 것이다. 구 강화대교가 있는 자리다. 이름은 강이나 기실은 해협이다. 폭은 좁으나 물살이 세어, 고려를 침공했던 몽고군도 끝내 건너지 못했다는 해협이다. 이곳을 건너 다시 강화 관아에서 하룻밤 묵은 후 연산의 평교는 어느 길을 따라 교동도로 들어가는 배를 탔을까? 교동으로 건너가려면 창후리 선착장이 가장 빠른 길이다. 연산의 평교도 틀림없이 창후리 포구에서 배를 탔을 것이다. 2014년 교동대교가 놓이기 전 교동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모두 여기서 그룻배를 탔다. 그날은 특히 파도가 사나워 배가 뒤집힐 뻔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차라리 연산에겐 그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4박5일 동안 뭍길, 물길 합해 80km, 2백리 길을 짚어 교동 고을 관아 뜰에 들어선 연산은 장졸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땅에 엎드린 채 진땀을 흘리며 감히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이제 곧 죽임을 당하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대신 탱자나무 울타리가 처마 밑까지 바짝 쳐진 가옥 안에 갇혀졌다. 작은 문 하나로 음식만 들일 수 있을 뿐, 해를 구경할 수 없는 감옥이다. 적소에 안치되기까지 연산의 모습을 <중종실록>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안치한 곳에 이르니, 위리한 곳이 몹시 좁아 해를 볼 수 없었고, 다만 한 개의 조그마한 문이 있어서 겨우 음식을 들여보내고 말을 전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폐왕이 위리 안에 들어가자마자 시녀들이 모두 목놓아 울부짖으면서 호곡하였습니다. 신등이 작별을 고하니, 폐왕이 말을 전하기를, ‘나 때문에 멀리 오느라 수고하였다. 고맙고 고맙다’라고 하였습니다.” 교동도는 조선 초부터 왕족의 단골 유배지였다. 연산군을 비롯해 세종의 3남 안평대군, 선조의 첫째 서자 임해군, 인조의 동생 능창대군 등이 교동도로 유배당했다가 풀려나거나 사사되었다. 이처럼 왕족들을 주로 교동에 유배시킨 것은 도성에서 가까워 감시하기가 좋다는 점, 그러면서도 사나운 조류로 인해 완전한 격리가 가능하다는 이점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동도의 야트막한 화개산 기슭에 자리한 유배지는 그야말로 산속 적막한 곳이었다. 위치가 산의 서사면이어서 한양 쪽 하늘은 뵈지도 않는 곳이다. 묏자리로 쓰기에도 적막한 감이 드는 여기서 연산은 그 회한의 말년을 보냈던 것이다. 연산이 숨진 절기는 겨울이다. 적소의 산봉과 바위들은 아마 그때 시녀들의 호곡소리와 연산의 고음을 들었을 것이다. -유폐 두 달 만에 숨져 연산의 귀양살이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위리안치된 지 두 달 만인 11월 6일, 물도 못 마시고 눈도 뜰 수 없는 역질에 걸려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숨지기 전 연산이 시중드는 시녀에게 한마디 말을 남겼다. “중전이 보고 싶구나.” 연산이 역질로 죽었다는 데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도 없지 않다. 11월(음력)이면 겨울인데 무슨 역질인가, 필시 독살이다는 의혹이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왕좌와 처자식들을 모두 잃고 31살 나이에 가시울타리 집안에 갇힌다면 독을 먹지 않아도 죽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의 시신은 교동땅에 묻혔다가 몇 년 후 폐비 신씨의 탄원으로 경기도 양주(지금의 도봉구 방학동)로 이장되었다. 반정으로 남편과 두 아들, 두 오라비를 모두 잃어버린 신씨는 연산보다 31년을 더 살다가 연산 묘 옆에 나란히 묻혔다. 살아 있을 때 그토록 많은 여인들을 거느렸건만, 죽어서 끝까지 그의 곁에 남은 여인은 폐비 신씨 한 사람이었다. 숨지기 전 연산이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신씨가 마침내 자기 옆에 유택을 마련해 들어왔을 때, 지하의 연산은 생전의 부인 모습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은 자작시를 되뇌어 보지나 않았을까. 인생은 초로와 같아서​(人生如草露)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會合不多時)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휴먼다큐 안현수 , ‘나리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 진심담긴 문신

    휴먼다큐 안현수 , ‘나리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 진심담긴 문신

    11일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휴먼다큐 사랑’에는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와 아내 우나리가 출연했다. 이날 안현수는 자신의 쇄골 부근에 새긴 문신을 보이며 “‘나리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그녀는 날 완성시킨다’라고 새긴 문신이다”라고 설명했다. 안현수 아내 우나리도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다. 당신은 날 완성시킨다. 빅토르 안’이라고 문신을 새겼다”며 “우리가 제일 좋아했던 영화 ‘제리 맥과이어’ 한 장면의 대사다”고 전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나를 완성 시킨다” 로맨틱 부부 쇄골 문신..뭐라고 썼나보니?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나를 완성 시킨다” 로맨틱 부부 쇄골 문신..뭐라고 썼나보니?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휴먼다큐’에 출연한 안현수와 우나리의 쇄골 문신이 공개돼 화제다. 지난 11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 사랑’에서는 안현수와 우나리 부부가 출연해 결혼 생활을 공개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안현수는 자신의 쇄골 부근에 ‘나리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 그녀는 나를 완성시킨다’라는 문신을 공개했다. 우나리 역시 쇄골에 새긴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다. 당신은 날 완성시킨다. 빅토르 안’이라는 문신을 공개하며 “여기 와서 새긴 거다. 우리가 제일 좋아했던 영화 ‘제리 맥과이어’ 한 장면의 대사다”라고 말했다. 우나리는 “당연히 사람이 만나면 헤어질 수도 있는데 이름까지 새겨놓을 필요가 있는지 생각할 수도 있다. 여기에 이름이 빠져도 그 뜻은 완성이 되지만 근데 이 사람은 이게 중요했던 것이다”라며 “이름 새긴 걸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남편 안현수를 향한 애정을 자랑했다.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사진 = 서울신문DB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쇄골 문신..뭐라고 써있나봤더니?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쇄골 문신..뭐라고 써있나봤더니?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휴먼다큐’에 출연한 안현수와 우나리의 쇄골 문신이 공개돼 화제다. 지난 11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 사랑’에서는 안현수와 우나리 부부가 출연해 결혼 생활을 공개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안현수는 자신의 쇄골 부근에 ‘나리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 그녀는 나를 완성시킨다’라는 문신을 공개했다. 우나리 역시 쇄골에 새긴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다. 당신은 날 완성시킨다. 빅토르 안’이라는 문신을 공개하며 “여기 와서 새긴 거다. 우리가 제일 좋아했던 영화 ‘제리 맥과이어’ 한 장면의 대사다”라고 말했다.연예팀 seoulen@seoul.co.kr
  •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애정 돋보이는 문신 공개 ‘훈훈’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애정 돋보이는 문신 공개 ‘훈훈’

    11일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휴먼다큐 사랑’에는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와 아내 우나리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안현수 우나리 부부는 서로의 몸에 새긴 문신을 공개했다. 안현수는 자신의 쇄골 부근에 새긴 문신을 보이며 “‘나리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그녀는 날 완성시킨다’라고 새긴 문신이다”라고 설명했다. 안현수 아내 우나리도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다. 당신은 날 완성시킨다. 빅토르 안’이라고 문신을 새겼다”며 “우리가 제일 좋아했던 영화 ‘제리 맥과이어’ 한 장면의 대사다”고 전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포토] 안현수 우나리, 얼굴 맞댄 채 사랑 속삭이는 인증샷 공개 ‘수수한 매력’ 대박

    [포토] 안현수 우나리, 얼굴 맞댄 채 사랑 속삭이는 인증샷 공개 ‘수수한 매력’ 대박

    12일 러시아로 귀화해 ‘빅토르 안’으로 활약 중인 쇼트트랙 안현수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여유로운 일요일. 따사로운 햇살. 노을이 이쁘다. #사랑 #휴먼다큐사랑”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김현수와 아내 우나리가 얼굴을 맞대고 밝게 웃고 있다. 안현수의 쇄골 아래에는 우나리를 향한 사랑을 담은 문신이 보였고 손가락으로는 작은 하트를 그려 보였다. 수수하면서도 닮은 듯 한 두 사람의 외모가 눈길을 끌었다. 한편 11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 사랑 2015’ 두 번째 편 ‘안현수, 두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에서는 한국이 낳은 비운의 천재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의 삶이 공개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쇄골에 서로의 이름 새겨 ‘왜?’ 뭉클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쇄골에 서로의 이름 새겨 ‘왜?’ 뭉클

    11일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휴먼다큐 사랑’에는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와 아내 우나리가 출연했다. 이날 안현수는 자신의 쇄골 부근에 새긴 문신을 보이며 “‘나리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그녀는 날 완성시킨다’라고 새긴 문신이다”라며 “(우나리) 이름을 새겼다. 그래서 평생 못 헤어진다”고 설명했다. 안현수 아내 우나리도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다. 당신은 날 완성시킨다. 빅토르 안’이라고 문신을 새겼다”며 “우리가 제일 좋아했던 영화 ‘제리 맥과이어’ 한 장면의 대사다”고 전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문신공개 “평생 못 헤어진다”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문신공개 “평생 못 헤어진다”

    11일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휴먼다큐 사랑’에는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와 아내 우나리가 출연했다. 이날 안현수는 자신의 쇄골 부근에 새긴 문신을 보이며 “‘나리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그녀는 날 완성시킨다’라고 새긴 문신이다”라며 “(우나리) 이름을 새겼다. 그래서 평생 못 헤어진다”고 설명했다. 안현수 아내 우나리도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다. 당신은 날 완성시킨다. 빅토르 안’이라고 문신을 새겼다”며 남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서로의 이름 몸에 새긴 이유는? ‘울컥’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서로의 이름 몸에 새긴 이유는? ‘울컥’

    11일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휴먼다큐 사랑’에는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와 아내 우나리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안현수 우나리 부부는 서로의 몸에 새긴 문신을 공개했다. 안현수는 자신의 쇄골 부근에 새긴 문신을 보이며 “‘나리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그녀는 날 완성시킨다’라고 새긴 문신이다”라고 설명했다. 안현수 아내 우나리도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다. 당신은 날 완성시킨다. 빅토르 안’이라고 문신을 새겼다”며 “우리가 제일 좋아했던 영화 ‘제리 맥과이어’ 한 장면의 대사다”고 전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서로의 몸에 이름 새겨 ‘왜?’ 이유보니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서로의 몸에 이름 새겨 ‘왜?’ 이유보니

    11일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휴먼다큐 사랑’에는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와 아내 우나리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안현수 우나리 부부는 서로의 몸에 새긴 문신을 공개했다. 안현수는 자신의 쇄골 부근에 새긴 문신을 보이며 “‘나리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그녀는 날 완성시킨다’라고 새긴 문신이다”라고 설명했다. 안현수 아내 우나리도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다. 당신은 날 완성시킨다. 빅토르 안’이라고 문신을 새겼다”며 “우리가 제일 좋아했던 영화 ‘제리 맥과이어’ 한 장면의 대사다”고 전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쇄골에 이름문신+영화 명대사’ 어떤 뜻? 알고보니 ‘뭉클’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쇄골에 이름문신+영화 명대사’ 어떤 뜻? 알고보니 ‘뭉클’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서로의 몸에 문신+영화 명대사 ‘어떤 뜻?’ 알고보니 뭉클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러브스토리가 화제다. 11일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휴먼다큐 사랑’에는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와 아내 우나리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안현수 우나리 부부는 서로의 몸에 새긴 문신을 공개했다. 안현수는 자신의 쇄골 부근에 새긴 문신을 보이며 “‘나리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그녀는 날 완성시킨다’라고 새긴 문신이다”라며 “(우나리) 이름을 새겼다. 그래서 평생 못 헤어진다”고 설명했다. 안현수 아내 우나리도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다. 당신은 날 완성시킨다. 빅토르 안’이라고 문신을 새겼다”며 “우리가 제일 좋아했던 영화 ‘제리 맥과이어’ 한 장면의 대사다”고 전했다. 우나리는 “여기에 이름이 빠져도 그 뜻은 완성이 되지만 안현수에게는 (이름이) 중요했던 거다. 이름 새긴 걸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하며 남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사진=MBC 휴먼다큐 사랑(휴먼다큐 안현수 우나리)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민석 특파원 한·네팔 친선병원 르포] 끊어진 인대 열흘 버텼다 한국 수술팀 오기 전까진

    [김민석 특파원 한·네팔 친선병원 르포] 끊어진 인대 열흘 버텼다 한국 수술팀 오기 전까진

    지난달 25일 오전 11시 56분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북동쪽 사노 티미 지역에 사는 라제소리 수레스타(29·여)는 어머니(60)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땅이 요동치는 것을 느낀 순간, 굉음과 함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고 그것들은 모녀를 삼켜버렸다. 몇 시간 뒤 이웃들이 모녀를 건물 잔해에서 발견했다. 어머니는 왼쪽 팔이 부러지고 라제소리는 쇄골과 견갑골을 잇는 인대가 두 군데나 끊어졌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모녀는 집 근처 한국·네팔 친선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2009년 한국정부의 도움으로 지어진 사노 티미 지역의 유일한 종합병원에서 어머니는 깁스를 했다. 하지만 인대 접합수술을 받아야 하는 라제소리가 문제였다. 네팔에서는 병원도 개인약사에게 약품과 주사기 등 의료용품을 사서 수술 및 치료를 해야 한다.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다면 응급처치 외에 복잡한 수술은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진 직후 정부는 피해자 치료비 지원을 약속했지만, 카트만두의 대부분 병원에서는 정부 약속을 믿지 못해 생명이 걸린 응급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 수술을 미뤘다. 라제소리 가족은 어머니와 여동생 등 5명인데 온 가족이 공장에 다니는 남동생 라젠드라(25)의 월급 7000루피(약 7만 3900원)에 의지하는 형편이다. 최소 1만 5000루피 이상이 필요한 인대접합수술은 언감생심. 때문에 라제소리는 진통제로 열흘을 버텼다. 진통제 값 2000루피마저 버거웠다. 하지만 지난 1일 한국·네팔 친선병원에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 의료진이 도착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김동준 정형외과 전문의 등 KDRT 의료진은 라제소리의 끊어진 인대를 제대로 맞춰 핀으로 고정하는 수술을 했다. 5일 오전 회복실에서 만난 라제소리는 그간의 고통에 지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동생 라젠드라는 “병원에 수수료 명목으로 내는 돈 300루피 외에 모든 비용을 한국 의료진이 부담해준 덕에 수술을 받았다”며 활짝 웃었다. 진료 시작은 오전 10시부터이지만 한국·네팔 친선병원은 9시부터 북적거렸다. 50병상 규모의 기존 시설로는 부족해 전날 공수된 2차 물자로 이동식 병원 천막을 설치했다. 지진 발생 11일째라 생사를 다투는 환자는 없었지만, 여러 군데 깁스를 하거나 찢어진 상처가 감염돼 걷지 못할 정도로 염증이 악화된 환자도 눈에 띄었다. 현지에 파견된 KDRT 의료진은 국립중앙의료원과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 소속 응급의학과·정형외과·감염내과 전문의 등 5명 등 15명으로 구성됐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박태진(40) 의료팀장은 “현재 급박한 재난 상황은 벗어났다”면서 “곧 다가올 전염성 질병에 대비하는 한편 아직 병원에 올 형편이 안 되는 주민들을 치료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일 의료팀이 도착한 뒤 하루 평균 100여명이 외래진료를 받았다. 골절상을 입었지만 신속하게 치료받지 못해 뼈가 어긋난 채 조직 재생이 이뤄져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도 많았다. 한국의료진은 이미 10여건의 정형외과 수술을 집도했다. 박 팀장은 “KDRT가 해외 재난현장에서 수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수술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해외긴급구호대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라고 설명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원 7명은 접수대와 외래진료실, 응급실 등에서 부지런히 통역을 했다. 접수대에서 환자의 혈압과 체온 등을 확인하고 문진을 한 뒤 플라스틱 진료카드에 환자정보를 써 넣었다. 송지수(33·여) 간호사는 “국내 병원처럼 환자 기록을 저장할 차트를 일일이 가져올 수 없다. 2013년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 하이옌 당시의 경험으로 이번에 플라스틱 카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의료진과 코이카 단원들은 모두 이곳에 자원해서 왔다. “오고 싶다고 아무나 오는 게 아니에요. 봉사하고 싶어 평소 없는 시간 쪼개서 공부하고 준비한 사람들입니다.” 송 간호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김형주(26) 코이카 단원은 “단원들 모두 네팔 곳곳에서 일하다가 재난 발생 직후 ‘한국으로 돌아오겠느냐’는 본부의 의사 타진에 ‘남겠다’고 쿨하게 답한 사람들”이라며 웃었다. 글 사진 shi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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