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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DA로… 수교행사로… 美·中 거물 ‘줄방한’

    |워싱턴 이도운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세계 외교가의 눈길이 서울로 쏠리고 있다.‘2·13 북핵 합의 이행’ 시한이 오는 14일로 다가온 가운데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한·중, 한·미 사이의 주요 협의들이 이번주 서울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10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방한이 예정돼 있는 가운데 같은날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11일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주 지사 및 빅터 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보좌관 등 미국의 주요 대북 정책결정자들의 발길도 서울로 이어진다.●북핵 평화해결 의지에 무게 원 총리 방한의 주요 목적은 수교 1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한·중 교류의 해’의 개막식 참석 등도 방문의 주된 행사로 잡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재개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동북아 평화구상에 대한 논의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2·13 합의이행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과 한·중간 조율 내용이 관심거리다.●BDA 돌파 시도하는 힐 6자회담의 미국측 수석대표인 힐 차관보는 2·13 합의의 걸림돌을 치우기 위해 동북아 3개국 순방을 시작했다.8일부터 시작된 일본 방문에 이어 10일 서울에 도착하는 그는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동결됐던 북한 자금 2500만달러를 북측에 돌려 주는 문제를 떠안고 있다.BDA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초기단계 조치들이 이행되지 않은 채 60일이 지나고 회담이 공전되면 상황이 어렵게 된다.”는 워싱턴 정가의 부담을 힐 차관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6자회담 재개에 가장 적극적인 한국 방문에서 ‘재충전’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 BDA 문제의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메신저·감시인 역, 빅터 차 리처드슨 주지사와 함께 북한을 방문 중인 빅터 차 보좌관은 11일 방문단과 함께 서울에 온다. 그는 방북 기간에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공식 방문 목적은 리처드슨 주지사의 유해 송환 협상의 행정적 뒷받침. 그러나 북한 당국자들과 만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 협의도 그의 임무이다.BDA에 동결된 북한 자금 2500만달러의 송금을 둘러싸고 6자회담 재개가 진통을 겪는 상황에서 차 보좌관은 평양 현지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이를 서울과 워싱턴에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이다.dawn@seoul.co.kr
  • “부시 메시지 전달설 직접 말하기 힘들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군 유해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와 북·미관계 정상화 등 모든 문제가 전반적으로 논의될 것입니다.”오는 8일부터 11일까지 북한을 방문하는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를 수행하는 토니 남궁 박사는 4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방북에서 좋은 성과가 나올 것”이라면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면담 및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메시지 전달 가능성도 시사했다. 리처드슨 주지사의 고문인 남궁 박사는 이번 방북 대표단의 부대표이다. ▶방문 목적은 무엇인가. 백악관은 유해 송환이라는데. -방문의 주요 목적이 무엇이 될 것인지는 현장에 도착해 봐야 안다. 물론 백악관 발표대로 유해 송환도 중요하다. 그러나 핵 문제와 북·미관계 등 여러가지 문제가 다 나올 것이다. ▶방북 기간에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하나. -지금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가봐야 안다. 북한측은 미리 일정을 말해 주는 법이 없다. 현장에 도착해야 알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갖고 가나. -거기에 대해서는 직접 말하기 힘들다. ▶이번 방북에서 어떤 성과를 기대하나. -좋은 성과가 나올 것이다.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왜 가겠는가. ▶빅터 차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 -백악관 발표대로 지원 역할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백악관에서 리처드슨 주지사에게 방북과 관련해서 어떤 요청을 했나. -특별한 부탁은 없었다. 아마 방북하면서 같이 가는 차 보좌관이 전달할지도 모르겠다. 차 보좌관이 있기 때문에 방북 후에 별도로 백악관에 보고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방북 대표단의 성격은. -공식 반(半), 비공식 반(半)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 정부 대표로 가는 것은 아니다. ▶북한측이 초청한 시기와 이유는. -한, 두달 전이다. 목적을 정해서 초청한 것은 아니다. 리처드슨 주지사와 북한 당국은 오래전부터 관계가 잘 유지되고 있다. 방북도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다. 앞으로도 최소한 1년에 한번은 방북하게 될 것이다. ▶리처드슨 주지사와 이태식 주미대사가 3일 만났다. 무슨 얘기가 오갔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내가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북한 전문가로서 북핵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2·13 합의 이후 제대로 진행되는 것 같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도 곧 해결되는 것으로 안다. ▶부시 대통령의 임기 중에 북·미관계가 정상화될 수 있을까. -그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걱정스럽다. 그러나 일단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UC버클리 대학에서 역사학으로 학위를 받은 남궁 박사는 이 대학의 동아시아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했다. 남궁 박사는 스스로 만든 머레이 힐 컨설턴트를 통해 각국 정부와 기업의 지도자들에게 아시아 문제를 조언해 주고 있다. dawn@seoul.co.kr
  • “北인권개선 관계 정상화 전제조건”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미 국무부는 5일 발표한 2006년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국가 중 하나”라면서 “북한이 국제사회에 참여하고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하려면 인권문제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이날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지하는’이란 제목으로 된 보고서에서 “북한인권은 미국정부의 포괄적 의제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정부는 다른 나라 정부들에 대해서도 대북관계의 중요한 요소로 북한 주민의 구체적이고 검증할 수 있는 그리고 지속적인 인권개선을 요구하도록 촉구해왔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북한을 독재자인 김정일에 의해 통치되는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군사적인 사회중 하나라면서 현재 15만명에서 20만명이 정치적인 이유로 수용소에 갇혀 있다고 언급했다. 또 “중국에서의 탈북자 송환은 미국의 중대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면서 “중국에서 송환된 많은 탈북주민들이 몇몇 처형사례들을 포함, 가혹한 처벌을 받고 있다.”고 탈북주민들의 실황을 소개했다. 보고서는 이어 “북한은 노동자의 권리도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고 중국에서 북한여성들의 인신매매가 널리 이뤄지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며 탈북자들의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이에 따라 미국정부는 중국에서 피난처를 찾는 탈북주민들의 송환을 중단하고 유엔고등판무관실에서 이들을 접촉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중국측에 요청해왔다고 말했다. 국무부는 이와 관련,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말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시 탈북자 송환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국무부는 또 “미국은 탈북주민들과 난민수용소 신청자들의 어려움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2006년 9명의 탈북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고 덧붙였다.dawn@seoul.co.kr
  • [한·미 FTA 시대] 상품분야 관세 ‘10년내 철폐’ 비율 100% 육박

    [한·미 FTA 시대] 상품분야 관세 ‘10년내 철폐’ 비율 100% 육박

    외교통상부가 지난 2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분야별 최종 협상결과를 4일 국회에 보고했다. 모두 84쪽으로 분과별 협정 기본내용과 주요 쟁점별 타결내용이 기대효과와 함께 실려 있다.2일 발표 때 공개되지 않은 내용 위주로 협정의 세부 내용을 정리, 소개한다. 이와 함께 FTA 교수연구회가 발표한 ‘한·미 FTA 평가’ 내용을 분야별로 덧붙인다. ■ 車·섬유 - 친환경車 10년뒤-섬유 1387종 즉시 ‘관세0’ 하이브리드차와 수소전지차 등 친환경차의 국내 수입 관세(8%)는 10년 후 완전 철폐된다. 타이어에 대한 미국 관세(4%)는 5년 후에 없어진다. 서로의 취약 분야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원산지 판정 방식은 미국의 순원가법(판매관리비를 제외한 재료비·인건비 등 순수 원가만 계산)과 한국의 공제법(판매관리비도 포함)을 상호 인정하기로 했다. 수출업체가 각자에게 유리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미국산’ 독일차와 일본차도 관세 폐지 혜택을 누리게 됐다. 배기량 2000㏄ 초과 차량의 특별소비세(현행 10%)는 FTA 발효 직후 8%로 내린 뒤 3년 안에 단계적으로 5%까지 인하한다. 자동차 보유세도 내린다. 총 4000억원의 자동차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 스웨터·양말·화섬 단(短)섬유 등 1387개 항목의 미국 수입관세가 즉시 없어진다. 폴리에스터 장(長)섬유 직물, 남성 면셔츠는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없어진다.10년에 걸쳐 관세가 철폐되는 품목은 화섬 편직물 일부와 타이어코드 직물 등이다. 우리나라는 데님·폴리아미드 장섬유사 등을 즉시 또는 3,5,10년에 걸쳐 관세를 없애기로 했다. 금액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61%, 미국은 71%를 따냈다. 섬유 생산을 위한 원자재 공급이 부족할 경우 한쪽 당사국이 요청하면 원산지 기준 개정을 위한 협의에 들어가 60일 이내 개정하기로 했다. 관세 철폐로 피해가 급증하면 긴급 수입제한을 발동할 수 있는 세이프 가드도 품목별로 관세 철폐시점부터 10년까지 인정했다. ●평가 상품분야(제조업·임수산물)는 협상이 가장 잘된 분야다. 두 나라는 가급적 이른 시일내(대부분 즉시)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다. 보통 FTA 관세 철폐는 10년 내 철폐비율을 주로 비교해 시장개방 범위를 비교하게 된다. 한·미 FTA는 10년내 상품분야 관세철폐 비율이 100%에 이른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경우 상품분야는 100% 자유화됐으나 세라믹, 유리, 시계부품 등은 최장 15년까지 단계별 관세철폐를 허용했다. 두 나라는 예외 없이 100%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농산물 - 탈지·전지분유·천연꿀등 현행관세 유지 포도주, 냉동 오렌지주스, 화훼류, 옥수수 등 576개 품목은 관세가 즉시 없어진다. 쌀과 관련 제품은 관세 양허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됐다.‘뼈 있는 쇠고기’ 수입은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 판정 결과 이후 수입 재개 절차에 착수하기로 했다. 쇠고기와 감귤·고추·마늘·양파는 15년, 인삼은 18년, 배와 사과는 20년, 포도는 17년에 걸쳐 각각 관세가 단계적으로 없어진다. 돼지고기의 경우 냉장육은 10년에 걸쳐, 냉동육은 2014년 1월까지 관세를 없애기로 했다. 탈지·전지분유와 연유, 식용감자, 천연꿀 등의 경우 현행 관세가 유지된다. 그러나 무관세 쿼터를 제공하기로 했다. 사과 중에서 후지사과는 20년에 걸쳐 관세가 없어진다. 세이프가드는 23년간 적용된다. 나머지 사과 품목은 관세철폐 기간이 10년이다. 배 중에서 아시아 품종은 관세철폐 기간이 20년이며, 나머지는 10년이다. ●평가 교수연구회는 “미국측의 최대 목표가 쇠고기시장 개방임을 감안할 때 관세율 인하 시기를 15년간으로 설정한 것은 소기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또 미국이 과일을 포함한 농산품의 예외 없는 개방도 요구했던 점을 고려하면 식용 감자 등 5개 품목의 관세율을 현행으로 유지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협상 진행과정에서 농민단체 등 이해 당사자들과의 내부 협상과정이 생략돼 국회 비준 과정에서 진통을 예고한다고 지적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전자·통신 - 지배적 통신사업자 ‘교차보조행위’ 금지 유·무선 통신시장의 지배적 사업자에게 상호접속, 전용회선, 전주·관로·도관의 이용 등을 비차별적으로 제공할 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 다만 양측의 무선분야 지배적 사업자는 이같은 의무 적용에서 배제하되 상호접속 의무는 SK텔레콤에 적용하기로 했다. 통신사업자가 상대국의 사업자에게 상호접속, 번호 이동, 동등다이얼을 비차별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 또 지배적 사업자가 ‘교차보조 행위’ 등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교차보조(cross-subsidization)란 지배적 사업자가 자신의 독점력을 통해 획득한 초과이윤을 다른 통신시장에 종사하는 자회사·계열사 등에 보조하는 행위로, 이미 국내시장에서도 공정위 조사 등을 통해 확립된 관행이다. 가장 중요한 표준 정립 문제에서 양국간 기술표준정책 추진 권한을 인정함으로써 양국간 분쟁의 소지를 원천 차단하기로 했다. ●평가 두 나라 모두 통신사업자의 외자지분 확대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낮은 수준의 타협이다. 통신기술선택의 문제는 신기술에 대한 정부의 정책의지를 포함시키려는 우리측의 주장과 완전히 시장에 맡기자는 미국측의 주장이 대립했으나 정당한 목표의 범위를 한정하고 절차상의 투명성을 높이는 단서를 추가했지만 우리측의 의도가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전자상거래에 관한 협정은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요 이슈에 대한 결과를 보면 우리측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된 것을 알 수 있으나 크게 보면 어느 편이 유리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환경 - 환경이사회 공개세션등 대중참여 강화 한·미 FTA 협상 타결로 시민단체 등 일반대중이 정부에 환경협정문 이행에 관한 정보와 환경문제 관련 특정 현안의 해결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이번 협상에서 대중참여제도를 도입, 환경이사회의 공개세션 개최나 국가자문위원회 운영 등 다양한 대중 참여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기업 등이 환경법 관련 규정을 위반했을 때 피해를 당한 개인이나 경쟁 기업이 위반 기업 등을 제재하도록 요구하거나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는 사법적 절차를 보장한 것도 눈에 띈다. 아울러 높은 수준의 환경 보호 및 환경법의 효과적인 집행 의무를 준수하고 무역 및 투자 촉진을 위해 기존의 환경보호 수준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의무화했다. ●평가 일부 시민단체는 한·미 FTA가 환경법의 제·개정 등을 어렵게 해 우리나라 정책 주권을 침해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협정국의 의무사항을 규정하고 관련법 집행에서 당사국의 재량을 주권사항으로 인정하고 있는 점을 들어 문제가 될 소지는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무역구제 - ‘개성공단=역외가공지역’ 지정부속서 채택 개성공단 분야와 관련, 양국은 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위원회에서 한반도 비핵화 진전, 남북한 관계에 미치는 영향, 노동·환경 기준 충족 등 일정 기준 하에서 개성공단 등 특정 구역을 역외가공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는 별도 부속서를 채택했다. 또한 미국·한국 안에서 최종 생산과정을 거친 물품은 원산지를 인정하기로 했다. 다만 수입원료를 사용해 제품을 만들 경우 가공과정에서 45% 이상의 부가가치가 발생하거나 화학반응·정제공정 등을 거쳐 생산되면 원산지 인정을 하기로 하는 등 구체적인 판정기준도 만들었다. 역외산 원부자재의 가격 비율이 10% 이하일 경우에도 예외적으로 원산지를 인정하기로 했다. 무역구제 분야에서는 반덤핑 제소장을 접수한 뒤 접수 사실을 상대국에 서면 통지하고, 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자국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제소 내용에 대해 협의하도록 했다. 반덤핑이나 상계관세에 대한 가격이나 물량합의 제도도 강화된다. ●평가 FTA 교수연구회의 개성공단·무역구제 사안에 대한 평가는 사실상 ‘낙제점’에 가깝다. 비이민 취업비자 확보 등 한국의 초기 목표에 비해 많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총평이다. 그러나 무역구제의 경우 무역구제위원회를 통해 우리 수출품에 대한 특혜성 대우를 확보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했다는 점은 높이 사고 있다. 개성공단 문제 역시 북핵 위기 등에도 불구하고 역외가공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도 부분적인 성과로 꼽았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노동 - 공중의견 제출·분쟁해결심판제 도입 주요 합의 내용 가운데 핵심은 노동법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공중의견(Public Communication·PC) 제출제도 도입과 분쟁해결심판제도 등을 규정한 노동장(chapter)을 두기로 한 것이다.PC는 노동협정문을 위반했을 때 양국의 노동단체나 시민단체 등이 상대국에 시정요구 등 의견을 제출할 수 있게 한 것으로 노동부에 접촉 창구를 개설, 운영하게 된다. 위반 사실이 인정되면 양국 노동관련 부서 고위급 공무원으로 구성된 노동협의회 등에서 정부간 협의에 나서게 된다. 분쟁해결심판제는 협의에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3명의 중립적인 패널이 사실관계를 조사해 시정권고를 하는 등 분쟁 해결 절차를 밟는 것이다. 노동법 위반국이 시정권고를 이행하지 않으면 건당 최대 1500만달러의 벌과금이 부과된다. ●평가 전문가들은 이번 협정이 국내노동법을 더욱 충실히 집행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판단한다. 한·미 FTA로 인해 한국 정부는 노동 보호수준을 약화시키기 어려운 부담을 안게 됐다는 평가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의약품 - 신약 임상자료 5년간 개발원용 금지 의약분야 협상 결과는 신약의 특허권 강화로 요약된다. 지적재산권 보호라는 미국측 요구는 타당성을 갖지만 오리지널 약의 복제 약품과 일부 부속 성분을 달리한 개량 신약에 의존하는 국내 제약업계로선 큰 타격이다. 협상 타결로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품목허가 심사기간이 신약 특허기간에서 빠진다. 이는 심사에 걸리는 2년 정도의 시간만큼 복제약품의 출시를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 아울러 신약 품목허가 때 제출한 임상자료를 최소 5년간 국내 제약사가 개발에 원용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의약품 허가와 특허 연계도 무시할 수 없다. 의약품 허가 절차와 특허 소송이 별개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와는 달리 신약 개발회사는 특허소송과 복제약에 대한 품목 허가정지 가처분신청을 동시에 낼 수 있다. 그만큼 복제약품의 생산은 지연된다. ●평가 국내산업 및 소비자에 미치는 단기적 피해 효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국내 제도 개혁과 국내 제약산업의 올바른 방향 설정을 위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신약 최저가 보장 요구’ 등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피해를 주는 미국측 움직임을 막아냈다는 입장이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문화산업 - IPTV등 정부규제권한 포괄적 유보 한·미 FTA 타결로 방송, 영화, 지적재산권 등 문화산업계 전반에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방송 분야에서는 케이블TV 등 현재 성업중인 시장영역을 미국에 열어준 대신 향후 잠재가치가 큰 분야는 우리측 주도로 시장규칙을 만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IPTV 등 새로 출현하는 서비스인 방송통신융합서비스와 온라인 시청각 서비스에 대한 정부의 규제권한(내외국인 차별권한 포함)도 포괄적으로 유보했다. 온라인 시청각 콘텐츠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규제권한을 유보, 미래의 디지털 방송환경 속에서 국산 콘텐츠가 활발히 제작·유통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권한을 확보했다. 지적재산권의 경우 특히 온라인 저작권자의 권한이 대폭 강화됐다.‘크래킹’(사용자가 임의로 기존 프로그램을 해독하는 행위) 등을 통해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접근하는 것을 통제하는 ‘기술적 보호조치’를 우회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불법 해독된 위성 또는 케이블 신호를 수신·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정부의 정품 저작물 사용도 의무화됐다. 상표에서는 상표권의 배타적 효력이 미치는 범위를 지정상품과 ‘동일·유사’한 상품으로 한정했으며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권자 및 상표권자에게 선출원주의에 근거해 배타적 권리를 부여했다. 상표 사용권의 등록요건을 폐지하고 냄새나 소리도 상표로 인정토록 했으며 증명표장제도를 도입했다. 특허 분야에서는 심사지연 등 특허청의 귀책사유로 특허 출원 후 4년, 심사청구 후 3년이 모두 지나 등록된 경우 지연된 기간 만큼 존속기간을 연장해 주기로 했다. ●평가 최경수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연구실장은 “저작권자의 권리보호 문제는 상대적이어서 변화한 시장환경에 적극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화위원회 김혜준 사무국장은 “스크린쿼터가 당장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울 때 안전판 역할을 하던 것이 사라져 심리적 위축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유료방송업계는 “외국에 소유 지분을 100% 허용하는 것은 방송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금융 - 재보험등 4개 분야 해외금융거래 허용 금융 분야에선 국책금융기관과 우체국 보험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해외송금을 1년간 제한하는 세이프가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농어촌·중소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은 계속 가능하다. 재보험·항공보험·수출입적하·해상보험 등 4개 분야에서 국경간 금융거래를 허용했다. 하지만 개인간 소매금융은 제외, 온라인으로 개인이 미국에 있는 은행 등과 거래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투자 분야에선 외국 기업이 영업상 침해를 입은 ‘간접수용’의 판정기준을 명확히 하고 이를 토대로 국가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국가소송제(ISD)를 도입했다. 간접수용의 기준과 관련해선 ▲외국인 투자자의 권리침해가 재산권을 직접 박탈하거나 국유화하는 ‘직접수용’과 동등해야 하며 ▲정부 조치가 외국인 투자자의 합리적 기대를 벗어났거나 ▲특별한 희생을 강요했지는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했다. ●평가 교수연구회는 국경간 금융거래 개방은 미흡하다고 지적했으나 단기 세이프가드는 소비자 보호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했다. 또 “조세·부동산 정책이 배제된 것은 우리 입장이 관철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조세·부동산 정책도 100% 예외로 인정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는 간접수용이란 용어가 생소하지만 우리 헌법도 공익을 목적으로 한 과도한 재산권 침해에도 정당한 보상을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정부는 정책수립이나 규제 도입 때 투자협정의 합치 여부를 면밀히 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정부조달 - 年 3700억달러 美조달시장 진출 길 활짝 중앙정부의 물품과 서비스조달 개방 대상을 현재 19만달러 이상에서 10만달러(약 1억원) 이상으로 낮췄다. 미국내 조달 경험이 없는 국내 기업들이 국내 시장의 20배인 연간 3700억달러 규모의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미국은 입찰참가 및 낙찰자 결정 때 미국내 실적만을 요구해 왔으나 이번에 한국에서의 실적도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조달청은 연간 최대 6조원 정도의 시장 참여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명수 조달청 국제물자본부장은 “미국 기업의 한국내 진입보다 국내 기업들의 미국 진출이 더 유리해진 상황”이라며 “다만 첨단 의료, 영상장비와 광학장비 등 국내 생산업체가 없는 분야의 국내 진입은 증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평가 미국의 주정부 조달시장을 추가로 개방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우리의 지방정부와 공기업 개방도 막아 균형이 이뤄졌다. 정부 조달의 범위에 BOT(건설-운영-이전) 계약 등 민자유치 사업도 포함시킨 것도 우리에게 진출 기회가 더 크다는 점에서 불리하다고 볼 수 없다. 정부 예산으로 조달하는 학교급식은 예외를 인정받은 것도 우리가 요구한 사항으로 중요한 성과 중 하나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김경준사건’ 이명박검증 2라운드?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경선을 앞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이 전 시장에 대한 검증전이 또다시 재개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8일 정치권과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박 전 대표측으로 분류되는 A의원의 B보좌관이 최근 법무부에 ‘김경준 사건’ 관련 수사진행상황을 보고해 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전 대표측에서 김씨 관련 수사를 제2의 검증전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2000년 ‘옵셔널벤처코리아’라는 회사를 운영하다 회사돈 380억원을 횡령하고 미국으로 도주했다. 이에 이 회사 소액주주 27명은 김씨를 공금횡령 및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도 2004년 1월 미국 정부에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김씨의 국내송환을 요구했다. 이후 미국 연방검찰은 김씨를 긴급 체포해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며 이달 말이나 4월 초 선고가 내려질 전망이다. 문제는 김씨가 3심을 포기하고 조만간 국내에 송환될 경우 재판과정에서 회사경영실태가 공개되면서 한때 동업자였던 이 전 시장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힐 수도 있다는 개연성이다. 실제로 김씨는 미국 법정에서 “나는 하수인에 불과하고, 사실상 이 전시장이 직접 다 처리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씨는 이 전 시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국계 미국 변호사 에리카 김의 친동생이라는 점도 민감한 부분이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측에서도 김씨측과 접촉하며 ‘모종의 빅딜’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이 정치권에 파다하게 퍼져 있는 상태다. 이런 맥락에서 박 전 대표측과 가까운 A의원측이 김씨의 수사관련 자료를 요청했다는 점이 상당한 파장을 예고한다. 그러나 박 전 대표측은 수사자료 요청이 캠프와는 무관하다고 부인하고 있다.B보좌관도 “범죄인도협정에 따라 김씨가 언제 국내로 송환되는지와 수사상황에 대해 자료를 검찰에 요청했을 뿐”이라며 한발 뺐다. 이에 이 전 시장 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이 전 시장이 오히려 피해자여서 김씨를 서울지검에 직접 고소했다.”며 “김씨가 빨리 한국에 들어와 이 사건이 빨리 해결돼 루머가 아닌 제대로 된 진실이 공개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그야말로 헛소문이고, 전혀 근거없는 얘기들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이종락 홍희경기자 jrlee@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읽기] (11) 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Ⅲ

    [병자호란 다시읽기] (11) 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Ⅲ

    누르하치가 만주의 패자(覇者)로 등장하기 전까지, 명이 상대하기에 가장 버겁고 까다롭게 여긴 대상은 예허였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누르하치가 하다, 호이파, 울라를 멸망시킴으로써 예허는 고립되었다. 명은 이제 예허를 다독여 누르하치의 후금을 견제하려 했고, 위기에 처한 예허도 명에 의지하여 생존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었다. 흔히 누르하치를 청 태조(太祖)라고 부르지만, 그가 애초부터 명에게 도전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명과 후금 사이의 현저한 국력 차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명과 맞서는 것을 애써 피하려 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명, 예허와 결탁해 만주 견제 누르하치에게 복종과 배신을 거듭했던 부잔타이는 1613년 울라가 망하자 예허로 망명한다. 같은 해 9월, 누르하치는 예허에 세차례나 사자를 보내 부잔타이를 송환하라고 요구했다. 예허가 자신의 요구를 일축하자 누르하치는 4만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예허 정복에 나섰다. 다급해진 예허의 국주 긴타이시(錦台什)는 명에 사자를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누르하치가 예허를 정복하고 나면 랴오양(遼陽)을 쳐서 수도로 삼고 개원(開原)과 철령(鐵嶺)을 목초지로 만들 것’이라는 ‘경고’까지 곁들였다. 명은 누르하치에게 사자를 보내 예허를 공격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한편, 병력 1000명을 예허로 파견했다. 누르하치를 견제하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황제의 ‘명령’을 접한 누르하치는 명에 보내는 국서에서, 과거 예허가 주동이 된 해서(海西)연합군이 자신을 먼저 침략했던 것과 부잔타이가 배신을 거듭했던 사실을 적고 자신의 예허 공격은 정당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명이 예허만 편드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했다. 주목되는 것은 누르하치가 국서를 들고 명군 주둔지인 푸순성(撫順城)까지 직접 가서 전달했던 점이다. 당시 누르하치는 명에게 여전히 공손한 자세를 보였던 것이다. 명과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으려는 누르하치의 바람과는 달리 명의 견제와 압박은 갈수록 커져갔다. 1615년, 명의 광녕총병(廣寧總兵) 장승음(張承蔭)은 시하(柴河), 무안(撫安), 삼차(三 ) 등지에 대대로 살았던 만주의 농민들을 내쫓고, 수확을 금지하는 조처를 취했다. 허투알라와 푸순 사이에 위치한 세곳은 누르하치가 공들여 경작하고 있던 땅이었다. 명은 경작과 수확을 막아 경제적 기반을 차단함으로써 누르하치의 숨통을 조이려 했던 것이다. 누르하치는 격렬하게 반발했다. 사실 그는 격분할 만했다. 누르하치는 1608년 푸순 지역의 명군 지휘관들로부터 과거부터 대대로 살아온 자신의 거주영역을 존중해 준다는 약속을 받아낸 바 있다. 당시 백마를 잡아 하늘에 맹서하고,‘만일 약속한 경계를 침범하면 침입자를 죽일 수 있고, 침입자를 그대로 두면 묵인한 사람이 재앙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을 새긴 비석을 세웠다. 누르하치는 명의 사자를 만난 자리에서 장승음이 맹서를 어겼다고 성토하고,“대국이 소국이 될 수 있고, 소국이 대국이 될 수도 있는 것이 하늘의 이치”라며 ‘뼈 있는’ 말을 남겼다. 명과의 정면 대결을 암시하는 발언이었다. ●‘공격´ 주장 신료 말리며 역량 키워 1615년, 명이 일방적으로 예허의 편을 들고 경작까지 금지하는 조처를 취하자 누르하치의 신료들은 격앙됐다. 그들은 당장 명을 공격하자고 주장했다. 누르하치는 신중했다. 그는 신료들에게 ‘명을 치려면 하늘이 우리를 인정하여 도울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충분한 저축이 없기 때문에 명을 공격하여 약간의 승리를 얻어봤자, 백성들만 고달프게 될 뿐’이라고 공격론을 일축했다. 스스로에 대한 냉철한 진단이자 평가였다. 당시 아무리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명은 여전히 대국이자 강국이었다.‘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명의 인구는 만주보다 수백배나 많았고, 명의 대군은 만주가 갖추지 못한 화포(火砲)로 무장하고 있었다. 장승음의 ‘견제 조처’가 나온 직후의 ‘만주실록(滿洲實錄)’을 보면, 내실(內實)을 다지기 위해 애쓰는 누르하치의 모습이 부쩍 많이 나타난다. 만주의 각 니루(牛 )에서 장정 열명과 소 네 마리씩을 내게 하여 둔전(屯田)을 설치하고 경작에 힘쓰도록 한 것, 창고를 세워 식량을 저장하고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 전담관원을 임명한 것, 신료들에게 쓸 만한 인재를 추천하라고 강조한 것, 백성들이 소송(訴訟)을 제기한 사안을 공정하게 처리하여 억울함을 없애라고 강조한 것 등이 그것이다. 이 무렵 국가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누르하치가 보인 행보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몽골과의 동맹관계를 더욱 굳게 했던 점이다.1614년 4월부터 1615년 1월까지 10개월 남짓한 기간 만주는 몽골과 모두 다섯 차례나 혼인관계를 맺는다. 1614년에는 홍타이지를 비롯한 누르하치의 네 아들들이 몽골의 자루트( 特)와 코르친(科爾沁) 부족의 딸들을 아내로 맞았다.1615년에는 누르하치가 코르친 부족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1617년 1월, 누르하치의 장인인 코르친 부족의 밍간(明安) 국주가 자신을 찾아온다는 소식이 오자, 누르하치는 왕비와 모든 신료들을 대동하고 허투알라에서 100리나 떨어진 곳까지 마중을 나갔다. 밍간은 누르하치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허투알라에서 한달을 머물다가 돌아갔다. 이렇게 중첩된 사돈관계를 통해 우호를 유지했던 것은 만주에게 큰 힘이 되었다. 실제 1618년 누르하치가 명에게 선전포고하고 푸순을 공략할 때, 원정군 가운데는 그의 몽골인 사위들도 끼어 있었다. 당시 몽골은 남쪽으로 명, 동쪽으로 만주 사이에 위치한 전략 요충이었다. 누르하치가 명에 대한 섣부른 공격 대신 몽골을 회유하고 우대하는 정책을 취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7대 원한´ 내걸고 명에 선전포고 누르하치는 명과의 격돌을 피하면서 내실을 다지려 했지만 상황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가 후금(後金)의 건국을 선포하고, 칸(汗)으로 즉위했던 1616년. 명 조정은 광녕 순무(巡撫)로 이유한(李惟翰)이란 인물을 임명했다. 광녕 순무는 사실상 요동의 군사업무를 책임지는 자리이자, 누르하치 등 여진 부족들과 교섭하는 최고위급 ‘채널’이었다. 누르하치는 이유한이 새로 부임한다는 소식을 듣자 신료 강구리(綱古里)와 팡기나(方吉納)를 인사차 파견했다. 그런데 이유한은 강구리를 비롯한 후금의 사절 11명을 쇠사슬로 묶어 구금해 버렸다. 이어 사자를 보내, 누르하치가 경계를 넘어온 한인(漢人)들을 죽인 것을 질책하고 ‘한인 살해’에 가담한 자들을 넘기라고 협박했다. 누르하치는 과거 ‘월경한 자들을 죽이지 않으면 재앙이 자신에게 미친다.’고 비석에 새겼던 내용을 상기시키며 사자를 설득하려 했지만 되지 않았다. 누르하치는 결국 광녕에 억류된 강구리 등을 살리기 위해 편법을 쓴다. 후금이 구금하고 있던 예허의 포로 10명을 ‘한인 살해자’로 이유한에게 넘겼던 것이다. 강구리 등은 약속대로 풀려났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누르하치는 명을 공격할 결심을 굳히게 된다.1618년 4월13일. 누르하치는 신료와 장수들을 모아 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누르하치는 그 자리에서 명을 공격해야만 하는 ‘일곱가지 원한’, 이른바 칠대한을 제시했다.1583년, 이성량이 자신의 부조(父祖)를 살해했던 것이 첫 번째 원한이었다. 나머지 여섯 가지는 명이 예허를 편든 것, 맹서를 어기고 한인들의 월경을 방조한 것, 만주인들을 세 주거지에서 내쫓고 경작과 수확을 금지한 것 등이 골자였다. 명이 자신과 후금을 능멸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이윽고 제천의식이 끝나자 기병과 보병 2만명으로 편성된 원정군이 푸순성을 향해 진격했다. 바야흐로 동아시아 전체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던 명청교체(明淸交替)의 서막이 올랐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 누르하치,명(明)에 도전하다 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 누르하치,명(明)에 도전하다 Ⅱ

    건주여진을 통일하고, 해서여진과 몽골의 연합군마저 물리친 누르하치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누르하치는 하다, 호이파, 울라 등 해서의 여러 부족들을 강온(强穩), 양면으로 통제하여 가장 강한 예허부(葉赫部)를 고립시키는 정책을 취했다. 당시 해서여진이 누르하치에게 맞서려면 4부 사이의 단결이 절실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 사이의 알력 때문에 누르하치에 대해 연합전선을 펼 수 없었다. 하다, 호이파, 울라는 차례대로 누르하치에게 각개격파되었고, 혼자 남은 예허는 결국 명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누르하치는 예허의 그 같은 전략을 꿰뚫었다. 그는 해서여진을 공략하는 동안, 자신을 견제했던 명에 몸을 낮추었다. 명의 견제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여 명분을 축적하고, 내실을 다졌다. 결정적인 기회를 엿보기 위해 숨고르기를 했던 것이다. ●하다와 호이파를 멸망시키다 1599년 하다의 국주(國主) 멩게불루는 예허와의 갈등으로 전쟁을 하게 되자 누르하치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멩게불루가 셋째아들을 볼모로 보내자 누르하치는 2000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하다를 원조하려 했다. 다급해진 예허는 개원(開原)에 주둔한 명군 지휘부를 움직여 멩게불루를 질책했다. 누르하치와 동맹을 맺은 것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한편으로는 멩게불루에게 자신을 딸을 아내로 주었다. 멩게불루는 예허의 요구를 받아들여 누르하치와의 동맹을 철회했다. 누르하치와 예허, 명 사이에 끼여 있는 약소국의 ‘눈치보기’였다. 격분한 누르하치는 하다를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멩게불루를 사로잡았다. 그러자 명이 개입했다.1601년 명의 만력제(萬曆帝)는 사신을 보내 누르하치를 질책하고, 하다의 유민들을 멩게불루의 아들 우루구다이(武爾古岱)에게 반환하라고 강요했다. 누르하치는 명의 요구에 따라 유민들을 송환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예허가 하다를 공격하여 우루구다이를 자신의 세력권에 편입시켰다. 누르하치는 명에 서신을 보내 항의했다. 자신이 하다를 격파한 것은 문제삼고, 예허의 침략은 그냥 넘어가는 이중적 태도를 따졌다. 하지만 명에 대해 정면으로 반발하는 것은 삼갔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호이파를 정벌하는 과정도 하다의 경우와 유사했다.1607년 9월, 호이파의 신료들이 모반하여 예허로 귀순하자, 국주 바인다리는 누르하치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7명의 볼모를 보내왔다. 그러자 예허는 바인다리에게 “누르하치에게 볼모 보낸 것을 취소하면 귀순한 자들을 송환하겠다.”고 제의했다. 바인다리는 예허에게 속아 누르하치에게 다시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누르하치는 결국 정벌에 나서 바인다리 부자를 살해하고, 호이파를 병합했다. 예허의 고립은 더욱 심화되었다. ●울라 격파와 조선에 미친 파장 누르하치와 예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해서 부족 가운데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았던 것은 울라였다.1596년, 울라에서 내분이 일어났을 때 누르하치는 자신이 억류하고 있었던 부잔타이(布占泰)를 송환하여 국주로 즉위시킨 바 있다. 부잔타이는 누르하치의 은혜에 감사하여 혼인 관계를 맺고 동맹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는 수시로 향배를 바꾸어 배신과 복종을 반복했다. 부잔타이는 국주가 된 이후 모두 7차례나 누르하치에게 복종할 것을 맹세했다. 누르하치 또한 자신의 딸을 포함한 세 명의 여인들을 부잔타이에게 아내로 주어 다독였다. 부잔타이는 끝내 누르하치와 예허 사이에서 양단을 걸치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누르하치가 압박하여 곤경에 처하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조선에 손을 내민 것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1610년, 누르하치의 압박 때문에 위기에 처하자 부잔타이는 조선에 사신을 보내 직첩(職帖)을 하사해주고 교역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울라의 세력은 두만강 너머까지 미치고 있었는데 광해군(光海君)은 부잔타이의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 그에게 직첩을 주고, 관복을 하사했다. 광해군의 의도는 그들을 회유하여 두만강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던 상황을 탐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광해군의 의도는 맞아떨어졌다.‘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를 보면 당시 조선 조정은 누르하치와 해서 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던 격변의 추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1610년 2월14일의 경우,‘이 오랑캐가 겉으로는 누르하치와 화해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사이가 좋지 않은 형상이 있다. 예허와의 중간 길이 끊기고, 교역의 통로가 막혔기 때문에 우리나라 변방에서 교역하기 위해 우리의 의도를 떠보는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참으로 정확한 정세 판단이었다. 광해군과 조선 조정은 이 같은 정보를 기초로 누르하치의 실체를 명확히 인식했다. 나아가 곧 닥쳐올 ‘누르하치와 명의 대결’이라는 파장에 대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팔기제(八旗制)를 완성하다 누르하치는, 향배가 무상했던 부잔타이를 공격하여 1613년 마침내 울라부를 멸망시켰다. 예허만 빼놓고 해서여진을 통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누르하치는 이윽고 1616년, 국호를 아이신(金)으로 고치고, 칸(汗·한)으로 즉위했다. 바야흐로 12세기 한족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아구다(阿骨打)의 위업을 계승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제 지배하는 종족이 다양해지고,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새로운 통치 체제가 필요했다. 주목되는 것은 바로 팔기제(八旗制)였다. 팔기제는 니루(牛)라는 만주족 고유의 조직에서 기원했다. 만주인들은 수렵 등을 나갈 때 10명을 한 조로 삼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을 우두머리로 뽑아, 그를 니루라고 불렀다.‘니루’란 ‘큰 화살’을 뜻한다. 누르하치는 성년 남자 300명을 1니루로,5개의 니루를 1자란(甲喇)으로, 다시 5개의 자란을 1쿠사(固山)로 편제했다.1쿠사는 결국 7500명인 셈인데 그것을 한자로는 기(旗)라고 했다. ‘기’는 군사조직이자 정치, 사회조직으로 모든 만주인은 예외 없이 여기에 소속되었다. 각 기에는 고유한 깃발이 있는데 황색, 백색, 홍색, 남색만으로 제작된 것을 정기(正旗), 황색, 백색, 남색 깃발에 홍색의 테두리를 두른 것과 홍색 깃발에 백색의 테두리를 두른 것을 양기(旗)라고 한다. 1616년 누르하치는 본래 4기였던 것을 8기로 확충했다. 해서여진을 통합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귀순해 오는 한족과 몽골족이 늘어나면서 한군팔기, 몽골팔기가 등장했다.“나가면 병사가 되고 들어오면 인민이 되는(出則爲兵 入則爲民)” ‘군민일체’,‘군정일체’의 팔기제의 효용성은 엄청났다. 평소 일상 생활과 전쟁에 동시에 대비할 수 있게 편제된 팔기제 아래서 후금(後金)의 백성들에 대한 통제력과 전투 능력은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 당시 쇠망의 조짐이 뚜렷했던 명군이, 조직화된 팔기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실제 팔기는 1644년, 청이 베이징으로 입성한 뒤에도 중원(中原)을 제압하고 통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중원 장악 이후, 팔기에 소속된 사람들을 기인(旗人)이라 불렀는데 그들은 별도의 호적에 편입된 특수 신분이 되었다. 그들은 기지(旗地)라 불리는 토지를 하사 받고, 그들만을 위한 독자적인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중원 입성 이후 기인들은 오로지 만주어를 익히고 궁술(弓術)을 연마하여 관리나 군인으로 등용되었다. 다른 농공상의 직업을 갖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특권도 컸지만 의무도 명확했다. 기인들에게 만주어를 익히게 하고, 궁술을 연마시킨 것은 결국 만주족이 지닌 정체성과 야성(野性)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수십만에 불과한 만주족이 1억 이상의 한족을 270여년이나 통치할 수 있었던 비책이기도 하다. 요컨대 1616년, 팔기제를 완성하면서 누르하치는 명과 일전을 겨룰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마련했던 셈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병자호란 다시 읽기] (9) 누르하치,명(明)에 도전하다 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9) 누르하치,명(明)에 도전하다 Ⅰ

    앞에서 언급한 대로 명의 지배 아래 있던 여진족은 크게 건주, 해서, 야인의 세 종족으로 구분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강했던 종족은 해서여진이었다. 해서여진은 다시 예허부(葉赫部), 하다부(哈達部), 호이파부(輝發部), 울라부(烏拉部) 등 네개의 부족으로 나뉘어졌다. 임진왜란이 벌어지던 무렵까지 가장 강한 부족은 예허부였다. 이렇게 여진족이 서로 갈라져 있던 상황 아래서 명의 전통적인 대외정책인 ‘이이제이(以夷制夷)’가 가능할 수 있었다. 그것은 고만고만한 여진 부족들이 서로를 견제하게 만듦으로써 패자(覇者)의 출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시스템이었다. 1583년,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군대를 일으켰던 누르하치는 1589년 건주여진을 통일했다. 건주여진 내부에서 누르하치라는 ‘패자’가 등장하자 ‘견제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누르하치와 해서여진의 격돌로 나타났다. ●누르하치, 해서연합군을 물리치다 1593년 6월, 예허부의 지배자였던 부자이(布齊)와 나림불루(納林布祿)는 누르하치를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켰다. 누르하치가 불손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부자이는 하다부의 지배자 멩게불루(蒙格布祿), 울라부의 지배자 만타이(萬泰), 호이파부의 지배자 바인다리(拜音達 )를 끌어들였다. 누르하치를 치기 위한 원정군에는 해서여진 뿐 아니라 몽골의 코르친(科爾沁)부족 등도 가담했다. 모두 아홉개 나라, 대략 3만 가까운 병력이 누르하치를 치기 위해 연합군을 구성했다. 누르하치는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당시 한창 뻗어 오르고 있었던 그의 기세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자카( 喀)라는 험준한 요새에 진을 쳤던 누르하치의 건주군은 지형적인 이점을 이용하여 연합군을 효과적으로 요리했다. 이 전투에서, 누르하치는 부자이를 비롯하여 연합군 4000여명을 죽이고, 말 3000필, 갑주 1000개를 획득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울라부의 지배자 만타이의 동생 부잔타이(布占泰)를 생포했다. 아홉개 나라의 연합군으로도 누르하치를 제압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나자 상황은 급변했다. 여러 부족으로 분열되어 있던 몽골족 가운데서 누르하치에게 귀부(歸附)하는 종족이 나타났다. 연합군에 가담했던 코르친 부족과 다른 몽골부족 칼카부(喀爾喀部)가 누르하치에게 사신을 보내 복종을 다짐했다. 코르친과 칼카 몽골의 귀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후 몽골과 건주여진의 관계는 비록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건주여진이 더욱 성장하여 후금(後金), 청(淸)으로 변신하고, 중원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몽골과의 제휴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 훗날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가, 철옹성으로 여겨졌던 산하이관(山海關)을 우회하여 베이징의 명나라 황궁(皇宮)을 공략할 수 있었던 것은 몽골의 협조 덕분이었다. 곧 몽골 부족이 만리장성 외곽에서 베이징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이같은 인연 때문에 명을 멸망시킨 이후 청은 이번원(理藩院)을 설치하고, 열하(熱河)에 행궁(行宮)을 두어 몽골족을 우호적으로 통제하려고 시도하는데 그 단초는 바로 누르하치 시절에 마련되었던 것이다. ●해서여진, 누르하치에게 손을 내밀다 해서연합군의 공격을 물리친 뒤부터 누르하치는 만주 전체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자신감이 넘친 누르하치는 1595년 6월, 군대를 이끌고 호이파부를 공격했다. 뿐만 아니라 포로로 잡은 부잔타이를 주물러 울라부의 내정(內政)에까지 관여했다. 1596년 7월, 울라부에서는 내분이 일어나 만타이와 그의 아들이 피살되었다. 누르하치는 억류하고 있던 부잔타이를 송환했고, 부잔타이는 형의 뒤를 이어 울라국의 국주(國主)로 즉위했다. 누르하치에게 은혜를 입은 부잔타이는 누이 후나이를 건주여진으로 보냈고, 누르하치는 그녀를 동생 스르가치(舒爾哈齊)와 혼인시켰다. 당시 누르하치는 해서와 몽골의 여러 부족들을 공격하는 한편, 그들 부족과 혼인을 맺어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양면적인 전략을 폈다. 실제 누르하치의 첫째 부인인 나라씨(納喇氏)는 예허 출신이다. 누르하치는 16명의 부인들과의 사이에 모두 16남8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부인이 이렇게 많았던 것은 바로 혼인정책의 소산이었던 셈이다. 누르하치의 세력이 커지자 해서여진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1597년 예허, 울라, 하다, 호이파부는 일제히 누르하치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들이 부도했음을 사과한 뒤 우호를 다시 맺자고 요청했다. 누르하치는 느긋하게 이들과 화약(和約)을 맺었다. 바야흐로 누르하치가 만주의 패자로 떠오르려는 순간이었다. 명의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되고 있었다. 명은 개입하여 누르하치를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럴 처지가 못되었다. 바로 이 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다시 조선을 침략했기 때문이었다.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났던 것이다. 잠시 랴오양(遼陽), 광닝(廣寧) 등지로 물러나 있던 명군은 대거 조선으로 들어갔고, 명 조정의 관심은 온통 일본군에게 쏠렸다. 이나바 이와기치가 ‘누르하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떠벌렸던 데는 이런 까닭이 있었다. 해서여진과 화약을 맺어 여유를 얻은 누르하치는 1598년 1월,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몽골의 안출라쿠(安楚拉庫)를 공격하여 1만여에 이르는 인축(人畜)을 획득했다. 정복 전쟁을 통해 인구도 늘고, 재물도 늘었다. 임진왜란 시기 누르하치의 행보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누르하치, 내실을 다지고 정체성을 강조하다 이미 말했듯이 누르하치는 뛰어난 군사지휘관일 뿐 아니라 탁월한 상인이기도 했다. 그는 군사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모피와 인삼의 유통로를 장악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명나라라는 대시장(大市場)과 연결되었다. 처음에는 명 상인들을 통해 소금, 직물 등 생필품이 유입되다가 점차 은(銀)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은은 여진족 내부에서 화폐로 유통되었고, 유통경제에 눈을 떴던 누르하치는 1599년 만주 지역에서 금은 광산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수렵과 채집 위주의 여진족 경제에 변화가 일어났고, 화폐의 확보를 위해서 주변국과의 무역의 중요성은 점점 커져갔다. 어느 집단이나 국가든 규모가 커지고 힘이 강해지면 자의식도 따라서 커지게 마련이다. 임진왜란 무렵, 누르하치는 자신이 통일한 건주 부족을 만주(滿洲)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만주’의 어원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문수(文殊)’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즉 만주는 ‘문수보살의 도(徒)’를 의미한다. 누르하치는 이제 ‘만주’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해서나 야인여진은 물론 명에 대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내세우고 싶어했던 것이다. 정체성을 찾고 싶은 열망은 문자(文字)를 만들려는 노력으로도 나타났다.1599년 누르하치는 만주 문자 개발에 착수한다. 당시까지 만주는, 서신을 주고받는 등의 일상생활에서는 몽골 문자를 사용했다. 명이나 조선 등과 주고받는 외교문서에서는 한문을 사용했다. 누르하치는 이같은 현실에서 몽골 문자를 토대로 만주 문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날 석촌동에 남아 있는 삼전도비(三田渡碑)에 만주어, 한문, 몽골어 등 3개국 문자가 같이 쓰여져 있는 것은 이같은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1598년 임진왜란이 끝났다. 일본군이 조선에서 물러나자 명군 역시 철수를 시작했다. 명은 다시 만주로 감시의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누르하치로서는 ‘좋은 시절’이 끝난 것을 의미했다. 명의 압력이 누르하치에게 미칠 기미가 보이자 당장 세력판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화약을 맺은 이후 잠시 잠잠했던 하다와 예허가 누르하치에게 다시 싸움을 걸었다. 만주와 하다, 예허, 명 그리고 궁극에는 조선까지 얽힌 격변의 또 다른 막이 올랐던 것이다.
  • “北, 송환 탈북자 처벌 강화”

    세계적인 인권감시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는 5일 “국경을 넘다가 체포되거나 중국에 의해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에 대해 북한 정부가 처벌 수위를 높이고 있다.”며 탈북자에 대한 인권탄압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HRW가 이날 발표한 ‘북한 도강자(탈북자)들에 대한 가혹한 처벌 정책’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HRW가 지난해 7∼12월 탈북한 북한 주민 16명을 인터뷰한 결과, 북한 정부는 강제로 붙잡혔거나 송환된 탈북자들에 대해 교화소(교도소)에서 징역 1년에서 5년형을 처할 것이라고 주민들에게 발표한 것으로 밝혀졌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아프간 폭탄테러 한국군 1명 사망

    아프간 폭탄테러 한국군 1명 사망

    한국군 공병·의료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미 공군기지 앞에서 27일 오전 10시20분쯤(현지시간) 폭탄테러가 발생, 우리 병사 1명이 숨졌다. 해외파병된 한국군이 외부 저항세력의 공격을 받아 숨지기는 베트남전 종전 후 처음이다. 합참은 “바그람 기지 정문 쪽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임무를 수행중이던 공병 다산부대 윤장호(27) 병장이 사망했다.”면서 “당시 윤 병장은 부대 안에서 기술교육을 받으러 온 현지인들의 출입증을 발급받기 위해 위병소 앞에서 대기중이었다.”고 밝혔다. 탈레반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힌 이번 테러로 윤 병장과 미군 1명, 현지인 등 20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 작전부장 박정이 소장은 “한국군을 겨냥한 테러로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테러범들이 기지 정문을 노리고 자폭을 감행하던 당시 윤 병장이 불행히도 그곳에 있다가 변을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합참 관계자는 “테러에 이용된 폭탄은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s)로 불리는 급조폭발물이며, 현지인들 사이에 끼어 있던 테러범이 몸에 두른 폭발물을 직접 격발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합참은 “우리 군이 주둔중인 북부 바그람 지역은 최근 남부지역의 치안악화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양호한 치안상태를 보였다.”면서 “부대의 활동지역도 미군기지 영내에 국한돼 위해요소는 없다고 판단, 최근까지도 특별한 경계지시를 내리지는 않았었다.”고 밝혔다. 합참은 해외 파병부대에 부대 방호태세 강화를 지시하는 한편, 류홍규 인사부장 등 군 관계자 3명과 유가족 3명으로 구성된 영현인수단을 28일 현지에 보내 조속한 시일 안에 유해를 송환해 오기로 했다. 아프간 현지에는 다산부대 147명, 동의부대 58명 등 200여명의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다. 한편 참여연대, 경실련, 민주노총 등 35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파병반대국민행동은 28일 오전 긴급모임을 갖고 모든 해외파병 한국군의 즉각 철군과 레바논 파병계획 철회를 요구키로 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서동구 사장 “이제 성장동력 갖췄다”

    디지털 위송방송인 스카이라이프가 개국 5년 만에 200만 가입가구를 확보하고 흑자전환을 달성했다. 또 4월 중 최대주주인 KT와 중국·일본·대만 등이 참가하는 다국적 콘텐츠회사를 설립하는 등 2011년까지 가입가구 340만의 종합미디어 사업자로 도약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을 세웠다. 서동구 스카이라이프 사장은 “긴축 경영에 따른 직원들의 고통 분담과 고객관리 극대화를 통한 내실경영, 부실 가입자 정리 등으로 2006년에는 사업 개시 5년여 만에 약 36억원의 당기 흑자를 달성했다.”며 “이 같은 흑자 달성과 200만 가입자 확보로 이제 스카이라프는 성장동력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2002년 3월1일 서비스를 시작한 스카이라이프는 초기 3년간 지상파방송이 재송신되지 못하고 인기 채널이 이탈하는 어려움을 겪는 등 시련도 많았지만 현재 유료방송시장 점유율 13%를 차지하는 중요한 매체로 자리잡았다. 서 사장은 “고객의 50%가 농어촌과 도서산간 지역의 가구라는 점에서 난시청 해소를 비롯해 낙후된 방송환경을 가진 지역의 문화적 수준과 정보격차 해소에 기여했다.”고 자평하며 “지난 5년간 콘텐츠와 수신기,IT산업 등 국내 방송 유관산업 분야에 직접적으로 유발한 산업효과가 1조20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스카이라이프는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위해 4월 중 KT와 중국, 일본, 대만 등의 업체와 함께 자본금 200억원 규모의 콘텐츠 신디케이트 회사(CSC)도 설립키로 했다. 서 사장은 “앞으로 스카이라이프의 사활이 걸린 CSC에는 KT뿐 아니라 드라마제작사 등이 참여할 것”이라며 “앞으로 유료방송시장에서 VOD(주문형비디오) 등의 콘텐츠 경쟁력이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에 원천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내년 이후 TPS(트리플플레이서비스, 방송+인터넷+전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으로 현재 KT와 IPTV 사업의 윈윈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양사의 사장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가 구성돼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서 사장은 “이제 스카이라이프가 첫번째 산을 넘은 기분”이라며 “앞으로 더 높고 험한 산을 넘을 준비를 마치고 명실상부한 종합미디어 사업자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탈북 국군포로·납북자 中정부, 한국송환 입장”

    정부 고위 당국자는 26일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는 간단하고 명확하다.”며 “중국 정부는 탈북자의 신분이 국군포로나 납북자로 밝혀지면 한국으로 보낸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재외공관장 회의 참석차 방한한 이 당국자는 이날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국군포로 가족 북송사태와 관련,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탈북한) 북한 사람이 납북자나 국군포로로 확인되기 전에 중국 공안이 일반 탈북자로 간주하고 조치를 취하면 문제가 생기지만 우리가 납북자·국군포로라고 신분을 설명하면 중국 측은 반드시 조치를 취해서 문제를 해결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지난달 한·중 외교장관 회담서 합의한 주 선양 총영사관 영사 증원 문제와 관련,“중국측이 인원문제는 한국이 원하는 대로 최대한 돕겠다고 약속했다.”며 “중국 측과 마지막 교섭 중이니 조만간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산·관·학 합동 연구를 앞두고 있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전망에 대해 “중국이 정말로 희망하는 것은 한국과의 FTA 체결”이라며 “농산물 분야에 걱정할 문제가 있긴 하지만 총체적으로 중국과 FTA를 체결하는 것이 한국에도 이익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무공해 음식 같은 영화 느껴봐요”

    “무공해 음식 같은 영화 느껴봐요”

    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의 2차 시사회 때 무대에 선 민병훈 감독은 “마음이 무겁다.”는 말로 운을 뗐다. 데뷔작 ‘벌이 날다.’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지만 그의 표현대로 ‘폭삭 망했고´, 두번째 작품은 아직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기약도 없다. 그런 가운데 세번째 영화 ‘포도나무’가 가까스로 관객과 대면하게 됐으니 그가 겪었을 심적 고통이 어떨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시사회 이틀 뒤 만난 그는 할 말이 많았다. 공들여 만든 작품이 원천봉쇄당하는 현실에 대해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거대 제작사와 배급사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영화시장에서 작은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대기업·극장·유명감독·배우가 손잡고 만든 한국 영화의 지난해 흥행률이 1할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차라리 돈이라도 많이 벌라 이겁니다. 그러면 내가 잘못하고 있구나 하죠. 그러지도 못하면서 관객의 입맛은 버려놓을 대로 다 버려놓은 것 아닙니까.” 그는 거침없이 내뱉는다.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 때 관객의 환호를 받았던 ‘포도나무’는 서울 강변·상암 CGV를 비롯해 전국 7개관을 어렵사리 확보해 22일 드디어 개봉한다. 씨네큐브나 동숭아트센터 같은 곳이라면 더 쉬웠겠지만 일부러 복합상영관을 택한 이유는 일반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독립·저예산·예술영화라는 꼬리표를 달고 소수의 마니아들만 상대하는 그런 영화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습니다.” ‘포도나무’는 당초 기획했던 ‘두려움에 관한 3부작’에 종지부를 찍는 민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다. 세속적인 사랑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는 신학도 수현(서장원)을 통해 종교적 구원과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그렸다.‘벌이 날다(1998년)’는 가난에 대한 두려움, 두번째 작품 ‘괜찮아 울지마(2001년)’는 거짓말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현란하게 홱홱 돌아가는 영상과 말랑말랑한 이야기에 길들여져 있는 관객들에겐 상당한 인내심을 요할 듯하다. “음식으로 치자면 케이크와 감자튀김이 아닌 조미료 하나 안넣은 무공해 음식이죠.” 처음엔 거칠게 느껴질 수 있지만 몸에 좋은 음식 같은 영화라고 자부했다. 그에게 쉽고 가벼운 영화를 만들라는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답을 뻔히 알려주는 상업영화는 그의 취향이 아니다. “영화의 진정한 가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라는 그는 타코르프스키, 키에슬로프스키, 다르덴 형제 등 존경하는 거장 감독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눈빛을 반짝거렸다. 타르코프스키가 한 농부로부터 감동의 편지를 받은 것처럼 그도 그랬다. “영화가 끝나고 막내 수녀님이 ‘누가 전해 달래요.’라며 주머니에 찔러 넣고 가시더군요.” 편지 내용은 ‘너무나 충격을 받았고 기쁜 위안을 얻었다. 맥락은 모른다. 하지만 나 자신을 어떻게 용서해야 할지 깨달았다.’라는 것이다. “분명 내 영화는 불친절합니다. 그러나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기꺼이 즐겁게 받는 관객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는 10만 관객을 동원한 ‘메종 드 히미코’ ‘송환’ 등의 성공을 예로 들었다. 앞으로도 눈높이를 낮추는 “타협 같은 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포도나무’에서 “평이(!)하게 처리한 부분이 여전히 맘에 걸린다.”는 그는 향기에 관한 차기작에서는 더욱 깊숙이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 작정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사설] 남북대화, 북핵과 보조 맞추길

    남북이 7개월간 중단된 장관급회담을 오는 27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6자회담 2·13합의에 이어 날아든 한반도의 훈풍이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 실험으로 전면 중단된 남북관계를 정상궤도로 돌려놓는 회담이 돼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2·13합의든, 장관급회담이든 실질적 성과를 도출하는 일이다.6자회담 합의에 따라 60일 안에 북한의 영변 원자로가 폐쇄돼야 하며, 우선은 이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확인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남북관계 진전도 북핵 문제가 해결되는 정도와 보조를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 남북관계는 북핵을 둘러싼 북·미 관계에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다. 남북관계의 진전이 북핵 해결을 추동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실상은 정반대인 것이다. 이런 현실을 도외시한 채 추진되는 남북관계 발전은 사상누각일 뿐이며, 사실 성사될 수도 없다고 하겠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대북 쌀·비료 지원은 시기에 있어서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부 당국은 쌀·비료 지원이 인도적 차원의 일이며,2·13합의에 따른 대북지원과 별개라고 주장한다. 인도적 차원을 떠나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서라도 쌀 지원의 필요성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쌀 지원 중단이 미사일 발사라는 북의 도발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북핵 문제가 실질적 진전을 이뤄가는 정도에 따라 지원 시점과 규모를 맞춰 나가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남북간에는 쌀 못지않게 시급한 현안이 적지 않다. 이산가족 상봉과 납북자·국군포로 송환, 경의선·동해선 열차 시험운행 등도 조속히 풀어야 할 사안이다. 남북정상회담용 퍼주기라는 비난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장관급회담에서 이들 현안에 대한 북의 성의있는 자세를 끌어내야 할 것이다.
  • 15일 장관급회담 실무회의

    장관급 회담 재개를 위해 남북한 실무대표가 15일 개성에서 만난다. 통일부는 14일 “제20차 장관급회담 개최를 위한 대표접촉을 개성에서 갖기로 했다.”면서 “회담 개최 시기와 양측의 관심사가 폭넓게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이 번갈아 여는 회담 관례상 20차 회담은 실무회의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평양에서 열릴 것으로 보인다. 장관급 회담은 지난해 7월 부산 19차 회담을 마지막으로 7개월 넘게 열리지 않고 있다. 양창석 대변인은 “우리 측이 실무접촉을 제안한지 하루 만인 13일 북측이 전화통지문을 통해 전격적으로 동의를 표해왔다.”면서 “북측의 적극적인 의지가 확인된 만큼 기대를 가져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관급 회담에서 다뤄질 의제에 대해서는 “실무접촉에서 논의될 것”이라며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이와 관련, 통일부 고위 당국자를 지낸 남북관계 전문가는 “쌀·비료 지원문제를 포함, 지난 회담에서 논의되려다 만 남북 철도연결, 납북자·국군포로 송환, 이산가족 상봉재개 문제 등이 논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5일 실무접촉에는 이관세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과 유형호 본부장이 남측대표로, 맹경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과 전종수 조평통 서기국 부장이 북측 대표로 참석한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北 “HEU도 논의” 새 변수로 |베이징 김미경특파원|북한은 제5차 3단계 6자회담이 도출해낸 ‘2·13합의’에 명시된 플루토늄 외에 고농축우라늄(HEU) 등 핵물질도 핵프로그램 신고 과정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미국측에 전달한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그러나 기존에 만든 핵무기는 논의 대상에서 빠져 있어 이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복수의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베를린 북·미 회담은 물론 8∼13일 6자회담에서도 HEU의 존재를 시인하지는 않았지만, 핵프로그램의 목록에 플루토늄과 HEU 문제를 다루는 데는 반대하지 않았다. 합의문에 따르면 초기이행조치로 ‘북한은 9·19 공동성명에 따라 포기하도록 돼 있는 사용후 연료봉으로부터 추출된 플루토늄을 포함한 공동성명에 명기된 모든 핵프로그램의 목록을 여타 참가국들과 협의한다.’고 돼 있으며, 다음 단계로 ‘모든 핵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가 명시됐다. HEU 문제는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의 평양 방문 때 불거진 문제로, 이른바 제2차 핵위기 사태를 촉발시킨 현안이다. 이에 따라 초기조치 이행기간(60일)내 다뤄질 핵프로그램 목록 협의 과정에서 HEU 문제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북한은 그러나 핵 프로그램 목록 협의 대상에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는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북한이 핵프로그램 목록 협의와 이후 신고 과정에서 플루토늄과 HEU 존재를 인정하고 보유량을 신고할 경우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규모도 산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2·13합의 이후 미국과 북한 관계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여 이번 6자회담 합의 이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현지 외교소식통들은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간에 ‘상대국 교차방문’ 논의가 오고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앞서 힐 차관보는 13일 회담 폐막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미 실무그룹의 첫 단계로 김계관 부상을 뉴욕에 초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소식통은 “미측의 김 부상 초청 제의와 같은 것이 북측으로부터 미국에 제의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힐 차관보도 회담 전 북측이 초청하면 평양에 갈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달 내 개최될 ‘미·북 관계정상화 워킹그룹’ 논의 과정에서 양측이 수석대표를 상대국에 초청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 워킹그룹의 수석대표를 힐 차관보와 김계관 부상이 겸임하는 방안에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김 부상이 뉴욕을 방문한다면 이는 워킹그룹 회의를 뉴욕에서 개최하고 북한측 수석대표로 김 부상을 초청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나 적성국 교역법 해제 논의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을 경우 양국 수석대표뿐 아니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등 장관급 인사의 평양 또는 워싱턴 교차방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chaplin7@seoul.co.kr
  • [6자회담 타결 이후] 전문가들 “北, 다자간 합의 번복 어려울것”

    [6자회담 타결 이후] 전문가들 “北, 다자간 합의 번복 어려울것”

    ‘2·13’합의는 과연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2·13 합의 이후 국내·외 외교안보 전문가들로부터 북·미 및 남북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가능성 등 이번 합의가 갖는 정치적 의미와 남아 있는 이행과제의 실현가능성 등을 들어 봤다. ■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 이번 회담을 통해 ‘말 대 말’의 교환단계를 넘어서지 못했던 6자회담이 ‘행동 대 행동’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합의가 제대로 이행될지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번엔 북핵 폐기에 다자가 보상을 합의했기 때문에 제네바 양자합의처럼 뒤집히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핵무기와 핵물질 폐기가 논의되지 않았다지만 이 문제는 이후 마련될 한반도 비핵화 워킹그룹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핵물질 폐기 가능성과 시점은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가 얼마나 실질적으로 정착되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로선 우선 실무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게 급선무다. 북측 입장에서도 남북관계에서 챙길 수 있는 실리가 적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응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15일 실무접촉을 통해 장관급 회담 일정이 잡히면 남북한 철도 시험운행이나, 쌀·비료 지원, 납북자·국군포로 문제 등을 조속히 매듭짓고 정치·군사적 신뢰회복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보다 실질적인 논의 단계로 접어들어야 한다. ■ 서동만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 이번 5차 6자회담으로 막혔던 대화의 통로가 뚫렸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가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도 있었지만 지난달 베를린과 베이징에서의 북·미 양자접촉이 상당한 ‘진전의 신호’를 보내오면서 회담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문제는 돈이었다. 북한측의 초기 이행조치에 상응하는 대가로 에너지와 식량을 얼마나 제공할 것이며, 참가국들이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를 합의하는 문제만 남아 있었다는 얘기다. 구체적인 보상의 규모와 방법 등을 두고 북한을 제외한 참가국들이 치열한 밀고 당기기를 벌인 셈이다. 어쨌든 이번 합의로 한국 정부로선 쌀과 비료 등 인도적 지원을 재개할 근거가 마련됐다. 우리로선 줄 것은 주고 납북자 송환이나 남북 철도연결 등 정치·군사적 긴장완화에 필요한 조치들을 최대한 따내야 한다. 당국자간 실무회담까지는 원만하게 이뤄지겠지만 특사교환이나 최고위급 회담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남한 내부의 정치적 사정 때문이다. 첫술부터 배부를 수 없는 법이다. 우선 장관급 회담에서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 정욱식 美 조지워싱턴大 객원연구원 이번 베이징 합의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프로세스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했던 미국의 부시 행정부도 북한과의 양자대화를 수용하고 확실한 인센티브를 제시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줬다. 부시 대통령의 전향적 자세가 이번 합의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만은 분명하다. 북한도 일부 우려와 달리 핵보유국 지위를 요구하거나 핵군축을 의제로 고집하지 않았다. 핵에 의존한 생존보다 다른 방식을 통한 생존이 더 유리한 방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라늄 농축, 경수로, 핵 폐기 검증 문제 등 이번 합의의 완전한 이행을 어렵게 할 걸림돌은 여전하다. 미국이 테러지원국과 적성국 교역법에서 북한을 빼줄 것인지, 관계정상화의 조건으로 다른 요구들을 내놓지는 않을지도 불확실하다. 벌써부터 존 볼턴 등 미국 내 강경파들은 꼬투리 잡기에 여념이 없다. 일부 미국 언론들도 가세했다. 사안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거나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면, 어렵게 들어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언제든지 이탈될 수 있다. ■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실장 이번 합의서의 제목이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란 점에서도 드러나듯 이번 회담은 처음부터 북한 핵무기와 핵물질의 즉각적인 폐기를 목표로 했던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2단계 조치인 핵프로그램 신고와 핵시설 불능화가 달성된 뒤에야 추진될 수 있는 것들이다. 핵 불능화의 시한을 못박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오는데 이것은 회담의 성격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만약 참가국들이 원하는 모든 내용을 합의안에 담으려고 했다면 회담 자체가 깨졌을 것이다. 미국이 농축우라늄과 핵무기 문제를 꺼내지 않았듯이 북한도 한반도 비핵 지대화나 상호 핵군축 등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북한핵 불능화와 궁극적인 핵폐기는 결국 5개 실무그룹과 북·미간 노력의 결과에 달려 있다. 북·미간 협의와 별개로 우리 정부도 남북간의 실질적 긴장완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가온 장관급 회담에서 가시적 성과를 얻고 이번 6자 합의에 따라 북한에 대한 핵사찰이 이뤄지는 등 진전이 이뤄진다면 특사파견 등도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섣불리 정상회담을 시도하다가는 안팎의 역풍에 휘말릴 수 있다. 정리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北, 핵무기 공개 불투명… 경수로도 ‘변수’ |베이징 김미경특파원|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2·13합의’ 이후 북한의 핵폐기 행보가 관심이다. 특히 비핵화 조치 과정에서 플루토늄 등 핵물질과 이미 보유한 핵무기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될지가 관건이다. 우선 중유 5만t과 맞바꿀 영변 핵시설 폐쇄·봉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 감시 수용 등 북한의 초기조치가 60일내 이뤄지는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초기조치에 포함된 ‘플루토늄을 포함한 공동성명에 명기된 모든 핵프로그램의 목록 협의’과정부터 논란이 될 전망이다. 미국 등 참가국들은 합의문에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을 공약했다.’는 2005년 9·19 공동성명 1조를 명시하며, 플루토늄·고농축우라늄(HEU) 등 핵물질과 이로부터 나온 핵무기 등 모든 핵프로그램의 목록을 협의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초기조치는 영변 원자로 등 핵시설 폐쇄가 중심이며,HEU에 대해서는 “논의는 할 수 있다.”는 유보적 입장이다. 이에 따라 초기조치 다음 단계에서 95만t의 중유 등 에너지를 더 받기 위해 북한이 핵물질 등 핵프로그램을 어디까지 협의, 신고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북한이 핵물질 규모 등을 신고할 경우 이미 보유한 핵무기 추정치도 산출할 수 있지만 북한이 핵물질과 핵무기 보유 규모를 얼마나 공개할지는 불투명하다. 특히 합의문에 언급조차 되지 않은 핵무기에 대해서는 다음 단계 이행계획인 ‘핵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 및 핵시설 불능화’ 논의에도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핵물질 신고가 이뤄져도 논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북한이 1∼2개의 핵무기를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플루토늄 5∼6㎏이면 핵폭탄 1개를 만들 수 있어 북한이 보유한 플루토늄 40∼50㎏으로는 7∼10개의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다. 미국의 핵 감시기구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2004년 보고서에서 ‘북한은 이미 2∼9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북한이 확보한 무기급 플루토늄은 15∼38㎏ 수준’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HEU 등 핵물질 신고에 이어 핵무기 폐기까지 이뤄져야 진정한 핵폐기 과정이 끝난다는 점에서, 핵시설 불능화라는 이번 합의의 마지막 단계 이후 북 행보가 논란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chaplin7@seoul.co.kr ■ ‘경제·에너지 협력’ 한국이 주도적 역할 |베이징 김미경특파원|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른 5개국의 단계별 상응조치를 구체적으로 추진할 워킹그룹의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한달내 열릴 워킹그룹은 ▲한반도 비핵화 ▲북·미 관계정상화 ▲북·일 관계정상화 ▲경제·에너지 협력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 등 모두 5개 회의체로 되어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중국이, 경제·에너지 협력은 한국이,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는 러시아가 각각 의장국을 맡는다.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는 해당국들이 의장국이 된다. 경제·에너지 협력은 한국이 최대 당사국이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됐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워킹그룹은 이번 2·13 합의 및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협의, 수립하고 이를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에 보고한다. 각 워킹그룹이 언제까지 활동한다는 것은 명시되지 않았으나 한반도 비핵화는 핵폐기 완료까지 전 과정에 걸친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논의하는 만큼 핵폐기 단계별로 소집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경제·에너지 워킹그룹도 북한의 조치에 따른 구체적인 에너지 지원 방안 협의를 위해 수시로 모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5개국간 경제·에너지 상응조치의 균등 분담에 동참 의사를 밝히지 않은 일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경제·에너지 워킹그룹과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 등 북·일 관계정상화를 논의할 워킹그룹과의 긴밀한 공조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chaplin7@seoul.co.kr
  • [사설] 여수참사, 관리소홀이 부른 인재다

    전남 여수의 법무부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어제 불이 나 외국인 27명이 숨지거나 다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사상자는 불법체류나 밀입국 등의 혐의로 강제송환을 앞둔 사람들이었다. 새벽에 난 불은 바닥에 깔아 둔 우레탄 매트에 옮겨 붙어 유독가스를 내면서 인명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불이 나자 1층에서 당직근무하던 직원이 소화기를 들고 3층에 있는 유치장으로 올라갔으나 열쇠를 찾지 못해 허둥지둥하는 사이 불이 번졌다고 한다. 화재의 초동 진압에 실패해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이번 참사는 예고된 것이었다. 사고 당시 유치장을 감시하는 폐쇄회로 TV의 카메라가 중국인에 의해 화장지로 가려진 직후 천장에서 연기가 났다. 전날 밤부터 이 중국인은 같은 행동을 해 여러차례 제지당했다고 한다. 순간의 감시 소홀로 인한 방화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화재경보기를 눌렀으나 작동이 됐니 안됐니 말이 많다. 보온을 위해 깔아놓은 매트도 불이 나면 유독가스를 뿜는 우레탄 재질이었다. 이중 잠금장치였던 유치장의 화재시 대처요령을 직원들이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점도 인명피해를 키웠다고 할 수 있다. 경찰이 화재원인을 조사 중이지만 단순 화재에 그칠 수 있었던 사고가 어이없는 대형 참사로 커진 책임은 막중하다. 불법을 저지른 외국인을 수용한 시설이라고 해서 인권 침해는 물론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비슷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만반의 점검을 하고 사상자에 대한 배상 등 사후관리에 철저를 기해야 할 것이다.
  • [오늘의 눈] ‘탈북자정책’ 책임 떠넘기기/김미경 정치부 기자

    “일반 탈북자는 우리가 아니라 대북정책과 담당입니다.”(외교부 아태국 당국자) “중국에 있는 탈북자는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통일부 당국자) 지난해 말 북한을 탈출한 ‘납북어부’ 최욱일씨의 도움요청을 중국 선양 총영사관 직원이 박대한 사건에 이어 탈북한 국군포로 가족 9명을 선양 영사관이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강제 북송된 사건이 밝혀지면서 국군포로·납북자 등 탈북자 문제에 대한 정부의 부실한 대처가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받고 있다. 정부는 인력 부족과 중국과의 외교적 관계 등 때문에 이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며,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탈북자 재교육기관인 하나원의 중국 영사관내 탈북자 실태조사 보고서〈서울신문 1월22일자 1면 보도〉에 대해 담당부처인 외교부와 통일부에 문의하는 과정에서 기자는 우리 정부의 탈북자 정책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선양 영사관의 잇따른 물의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던 외교부 아태국 당국자는 “우리는 국군포로·납북자 등 특별한 케이스만 다룰 뿐, 탈북자 전반은 정책기구국 대북정책과에 물어 봐라.”고 말했다. 외교부내 탈북자 문제는 두개 부서로 나뉜다는 것인데, 정책기구국 당국자는 “하나원 관련은 통일부에서 더 잘 알 것”이라며 원론적 수준의 대책만 되풀이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더 가관이었다. 하나원이 중국내 탈북자들을 조사한 내용이지만 통일부는 하나원 자체만 담당할 뿐 중국에 있는 탈북자는 외교부 소관임을 강조하는데만 급급했다. 탈북자 관련 정부부처간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에서 중국측에 탈북자를 조속히 돌려보내 달라는 목소리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정부는 시민단체가 제안한 ‘탈북자 송환 전담부서 설치’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25∼27일 중국을 방문하는 송민순 외교부장관이 탈북자 문제를 협의한 뒤 ‘빈 손’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김미경 정치부 기자 chaplin7@seoul.co.kr
  • 탈북자 50% ‘정신적 장애’ 고통

    주중 영사관내에 머물렀던 탈북자의 절반 이상이 만성적 긴장·불안·우울감 등으로 신체적 통증을 호소하고 있으며, 전체 체류자의 30%는 우울증·대인기피증·자살충동 등 정신질환에 시달린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정부가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고도 영사관내 관리 인력 및 수용시설 부족과 중국 정부와의 외교적 마찰 가능성 등을 이유로 탈북자들의 정서적 관리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같은 사실은 21일 통일부 산하 새터민 재교육기관인 하나원이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에게 제출한 ‘베이징·선양 영사관 해외출장 결과 종합보고’ 자료에서 밝혀졌다. 권 의원은 “하나원이 지난 2005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중국 베이징·선양 주재 영사관내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심리검사를 실시한 뒤 이 보고서를 만들어 통일부 등 외교안보 당국에 보고된 것으로 안다.”면서 “그러나 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체류자 관리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정부 차원에서도 중국내 탈북자들의 실태조사를 통해 송환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지 인력 및 공간문제 등 부족한 점이 많다.”며 “중국측과 협의를 통해 탈북자들이 하루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체류하는 동안 정신적인 안정 및 향후 정착을 위한 지원 등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원이 지난해 3월 초 베이징 영사부내 탈북자 43명 가운데 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상담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0%인 15명이 심각한 수준의 정서적 문제를 보였고,6명(20%)은 심리적 고통에서 비롯된 신체적 통증을 호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선양 영사관에 체류중인 탈북자들의 경우도 베이징 체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나원이 지난 95년 11월 선양 영사관내 탈북자 41명 가운데 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리검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23%인 7명이 전쟁을 경험한 퇴역군인이 겪는 수준의 극심한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었다. 또 정신병리적 수준의 정서적 문제를 안고 있는 체류자가 6명이나 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영사관 체류 6개월 미만인 탈북자들은 심리적 고통에서 비롯된 신체적 고통(두통·위장장애·근육통 등)을 호소했고,1년 미만 탈북자는 극도의 불안감·무력감·우울증 등에 시달리고 있으며,1년 이상 체류자들은 실어증·대인기피·자살충동 등 정신병적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광삼 김미경기자 hisam@seoul.co.kr
  • 탈북자 신변보호 의무화 ‘北送금지노력’ 입법 추진

    국군포로 가족이 강제로 북송된 사건으로 정부의 북한 이탈주민 보호대책이 비판받고 있는 가운데 탈북자 강제송환 금지와 신변보호 등을 위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명문화하는 입법이 추진된다. 지난해 강제 북송된 탈북자가 5000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나라당 사무총장이자 ‘북한자유이주민의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 상임공동대표인 황우여 의원은 21일 ‘북한 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2월 임시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은 탈북자의 체류국 내에서의 강제송환 금지, 신변보호, 인권신장 및 국내입국 등을 위한 국가의 외교적 노력 의무를 규정하고, 외국에 체류하는 탈북자들이 직접 방문 외에 서신, 전화 또는 대리인을 통해서도 보호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미국 내 50여개 북한 인권 관련 운동의 연합체인 북한자유연대(NKFC)의 남신우 공동부회장은 19일(현지시간) 워싱턴 소재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올림픽 전에 탈북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탈북자를 색출해 강제북송하고 있는데 작년에 5000명 이상이 갔다(북송됐다).”고 주장했다. 이종락 김미경기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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