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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원 살인사건 패터슨, 무슨 말 했나보니..

    이태원 살인사건 패터슨, 무슨 말 했나보니..

    16년 만에 국내로 송환된 ‘이태원 살인사건’의 피의자 아더 존 패터슨(35·미국)이 혐의를 부인했다. 패터슨은 23일 오전 4시26분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됐다. 패터슨이 탄 비행기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발해 23일 오전 4시40분 인천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으나 약 14분 정도 앞당겨 도착했다. 이날 오전 5시9분께 입국장 B게이트에는 패턴슨을 취재하기 위해 50여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모습을 드러낸 패터슨은 흰 상·하의에 검은색 운동화 차림으로 턱수염을 기른 모습이었다. 패터슨은 ‘살인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니다”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에드워드 리가 살인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같은 사람, 나는 언제나 그 사람이 죽였다고 알고 있다”고 답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이태원 살인사건’ 피의자 패터슨, 미국으로 도주했지만..

    ‘이태원 살인사건’ 피의자 패터슨, 미국으로 도주했지만..

    ‘이태원 살인사건’의 피의자 아더 존 패터슨(35·미국)이 23일 오전 4시26분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됐다. 패터슨은 ‘살인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니다”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에드워드 리가 살인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같은 사람, 나는 언제나 그 사람이 죽였다고 알고 있다”고 답했다. 패터슨은 보안요원들의 경호 속에 A게이트 쪽으로 이동해 보안구역을 통해 인천공항을 빠져나갔다. 패터슨은 곧바로 서울구치소로 옮겨졌으며,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패터슨은 1997년 4월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한국인 대학생 조중필 씨(당시 22세)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수사당국은 범행 현장에 함께 있었던 패터슨의 친구 에드워드 리를 범인으로 보고 재판에 넘겼지만, 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곧바로 피해자의 부모가 패터슨을 범인으로 지목해 고소했고, 재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패터슨을 진범으로 판단해 2011년 12월 공소시효 5개월을 남겨두고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패터슨은 이미 1999년 8월 미국으로 도주한 뒤였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16년만에 국내 송환, ‘이태원 살인사건’ 피의자 패터슨 미국 도주했지만 현지 검거

    16년만에 국내 송환, ‘이태원 살인사건’ 피의자 패터슨 미국 도주했지만 현지 검거

    16년만에 국내 송환, ‘이태원 살인사건’ 피의자 패터슨 미국 도주했지만..“ ‘16년만에 국내 송환’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이 도주 16년 만에 국내로 송환된다. 22일 법무부는 이 사건의 피의자인 패터슨이 오는 2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부터 인천공항으로 송환된다고 밝혔다. 미국 도주 16년 만에 국내로 송환되는 것. 검찰은 법무부를 통해 미국에서 패터슨의 신병을 인계받아 현장에서 구속영장을 집행했다. 패터슨은 공항에서 서울구치소로 옮겨진 뒤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공소 유지는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이철희)가 맡는다. 16년 만에 국내 송환되는 패터슨은 주한 미군 군속의 아들로 한국에 머무르던 지난 1997년 4월 이태원에 있는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리(36)와 함께 대학생 조모 씨(당시 22세)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검찰은 패터슨과 함께 화장실에 있던 리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렸다. 검찰은 리와 패터슨에게 각각 살인죄, 증거인멸죄를 적용해 구속 기소했다. 법원은 패터슨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지만 리에 대해서는 1998년 9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했다. 이후 조 씨 부모는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고소했으나, 재수사를 받던 패터슨은 1999년 미국으로 도주했다. 검찰은 이후 수사를 통해 패터슨이 진범이라고 결론내리고 2011년 12월 그를 기소했다. 법무부는 미국 당국과 공조해 2011년 5월 패터슨을 현지에서 검거했다. 당국은 패터슨을 범죄인인도 재판에 넘겼고, 미국 LA연방법원은 패터슨에 대한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 16년 만에 국내 송환 소식에 조모씨의 어머니는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잘못을 했으면 들어와 죗값을 치러야 한다. 패터슨 재판에는 직접 나가 지켜보겠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사진=뉴스 캡처(16년만에 국내 송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이태원살인사건’ 패터슨 16년만에 국내 송환 “도대체 무슨 사건?”

    ‘이태원살인사건’ 패터슨 16년만에 국내 송환 “도대체 무슨 사건?”

    ‘이태원살인사건’ 패터슨 16년만에 국내 송환 “도대체 무슨 사건?” 이태원살인사건, 16년만에 국내 송환 1997년 4월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중필(당시 22세)씨가 흉기로 살해된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36)이 23일 도주 16년 만에 국내로 송환된다. 법무부는 패터슨이 오전 4시 40분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송환된다고 22일 밝혔다. 이에 따라 사건 발생 이후 20년 가까이 묻혀 있던 진실의 얼개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이태원 살인 사건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중필(당시 22세)씨가 흉기로 살해된 채 발견됐다. 당시 화장실에는 패터슨과 그의 친구인 재미동포 에드워드 리(36)가 함께 있었다. 이들은 범행 당시 각각 18세의 청소년들이었다. 검찰은 리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내리고 그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패터슨은 증거인멸 및 흉기소지 혐의 등만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1998년 9월 법원이 리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사건은 반전을 맞았다. 검찰은 뒤늦게 패터슨을 진범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재개했으나 패터슨이 1999년 8월 검찰이 출국금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미국으로 도주하면서 사건 해결의 기회를 놓쳤다. ‘범인 없는 살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 사건은 2009년 9월 영화로도 만들어져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진범을 찾아 처벌해야 한다’는 거센 여론 속에 법무부는 그해 10월 미국 당국에 범죄인인도 요청을 했고 패터슨은 2011년 5월 미국 수사당국에 체포돼 재판에 회부됐다. 검찰도 같은해 12월 패터슨을 다시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살인죄 공소시효(15년) 만료를 불과 4개월여 앞둔 때였다. 이듬해 10월 미국 법원이 범죄인 인도 허가를 결정하자 패터슨은 인신보호청원을 제기하는 등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었지만 1심과 항소심, 뒤이은 재심에서마저 패해 국내 송환이 성사됐다. 패터슨은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곧바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게 된다. 범죄인인도 요청 당시 법원에서 발부한 패터슨의 구속영장이 뒤늦게 집행되는 셈이다. 법무부 측은 “20년 가까이 미제로 남아있던 사건에 대한 국민적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면서 “피해자 부모의 가슴에 쌓인 한이 조금이나마 풀릴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태원살인사건’ 패터슨 16년만에 국내 송환 “대체 무슨 사건?”

    ‘이태원살인사건’ 패터슨 16년만에 국내 송환 “대체 무슨 사건?”

    ‘이태원살인사건’ 패터슨 16년만에 국내 송환 “대체 무슨 사건?” 이태원살인사건, 16년만에 국내 송환 1997년 4월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중필(당시 22세)씨가 흉기로 살해된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36)이 23일 도주 16년 만에 국내로 송환된다. 법무부는 패터슨이 오전 4시 40분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송환된다고 22일 밝혔다. 이에 따라 사건 발생 이후 20년 가까이 묻혀 있던 진실의 얼개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이태원 살인 사건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중필(당시 22세)씨가 흉기로 살해된 채 발견됐다. 당시 화장실에는 패터슨과 그의 친구인 재미동포 에드워드 리(36)가 함께 있었다. 이들은 범행 당시 각각 18세의 청소년들이었다. 검찰은 리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내리고 그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패터슨은 증거인멸 및 흉기소지 혐의 등만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1998년 9월 법원이 리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사건은 반전을 맞았다. 검찰은 뒤늦게 패터슨을 진범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재개했으나 패터슨이 1999년 8월 검찰이 출국금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미국으로 도주하면서 사건 해결의 기회를 놓쳤다. ‘범인 없는 살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 사건은 2009년 9월 영화로도 만들어져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진범을 찾아 처벌해야 한다’는 거센 여론 속에 법무부는 그해 10월 미국 당국에 범죄인인도 요청을 했고 패터슨은 2011년 5월 미국 수사당국에 체포돼 재판에 회부됐다. 검찰도 같은해 12월 패터슨을 다시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살인죄 공소시효(15년) 만료를 불과 4개월여 앞둔 때였다. 이듬해 10월 미국 법원이 범죄인 인도 허가를 결정하자 패터슨은 인신보호청원을 제기하는 등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었지만 1심과 항소심, 뒤이은 재심에서마저 패해 국내 송환이 성사됐다. 패터슨은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곧바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게 된다. 범죄인인도 요청 당시 법원에서 발부한 패터슨의 구속영장이 뒤늦게 집행되는 셈이다. 법무부 측은 “20년 가까이 미제로 남아있던 사건에 대한 국민적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면서 “피해자 부모의 가슴에 쌓인 한이 조금이나마 풀릴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6년만에 국내 송환, 미국 도주한 ‘이태원 살인사건’ 피의자 재판..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16년만에 국내 송환, 미국 도주한 ‘이태원 살인사건’ 피의자 재판..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16년만에 국내 송환, 미국 도주한 ‘이태원 살인사건’ 피의자 패터슨 재판..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16년만에 국내 송환’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이 도주 16년 만에 국내로 송환된다. 22일 법무부는 이 사건의 피의자인 패터슨이 미국 도주 16년 만에 오는 2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부터 인천공항으로 송환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법무부를 통해 미국에서 패터슨의 신병을 인계받아 현장에서 구속영장을 집행했다. 패터슨은 공항에서 서울구치소로 옮겨진 뒤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공소 유지는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이철희)가 맡는다. 16년 만에 국내 송환되는 패터슨은 주한 미군 군속의 아들로 한국에 머무르던 지난 1997년 4월 이태원의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모(당시 22세)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으나 1999년 검찰이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출국했고 범행 현장에 같이 있던 에드워드 리는 1999년 2년의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수사에 나선 서울중앙지검은 2011년 11월 패터슨이 진범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법무부는 미국 당국에 그의 송환을 요청했고 미국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여 2012년 10월 송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페티슨이 이에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해 송환이 지연돼 왔지만 미국 법원에서 패터슨이 최종 패소하면서 국내 송환이 성사됐다. 사진=뉴스 캡처(16년만에 국내 송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16년만에 국내 송환, ‘이태원 살인사건’ 피의자 재판한다

    16년만에 국내 송환, ‘이태원 살인사건’ 피의자 재판한다

    22일 법무부는 1997년 이태원 살인사건의 피의자인 패터슨이 오는 2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부터 인천공항으로 송환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법무부를 통해 미국에서 패터슨의 신병을 인계받아 현장에서 구속영장을 집행했다. 패터슨은 공항에서 서울구치소로 옮겨진 뒤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공소 유지는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이철희)가 맡는다. 패터슨은 주한 미군 군속의 아들로 한국에 머무르던 지난 1997년 4월 이태원에 있는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리(36)와 함께 대학생 조모 씨(당시 22세)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법원은 패터슨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지만 리에 대해서는 1998년 9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했다. 이후 조 씨 부모는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고소했으나, 재수사를 받던 패터슨은 1999년 미국으로 도주했다. 법무부는 미국 당국과 공조해 2011년 5월 패터슨을 현지에서 검거했다. 당국은 패터슨을 범죄인인도 재판에 넘겼고, 미국 LA연방법원은 패터슨에 대한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이태원살인사건’ 패터슨 16년만에 국내 송환 “1997년 무슨 일이?”

    ‘이태원살인사건’ 패터슨 16년만에 국내 송환 “1997년 무슨 일이?”

    ‘이태원살인사건’ 패터슨 16년만에 국내 송환 “1997년 무슨 일이?” 이태원살인사건, 16년만에 국내 송환 1997년 4월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중필(당시 22세)씨가 흉기로 살해된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36)이 23일 도주 16년 만에 국내로 송환된다. 법무부는 패터슨이 오전 4시 40분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송환된다고 22일 밝혔다. 이에 따라 사건 발생 이후 20년 가까이 묻혀 있던 진실의 얼개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이태원 살인 사건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중필(당시 22세)씨가 흉기로 살해된 채 발견됐다. 당시 화장실에는 패터슨과 그의 친구인 재미동포 에드워드 리(36)가 함께 있었다. 이들은 범행 당시 각각 18세의 청소년들이었다. 검찰은 리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내리고 그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패터슨은 증거인멸 및 흉기소지 혐의 등만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1998년 9월 법원이 리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사건은 반전을 맞았다. 검찰은 뒤늦게 패터슨을 진범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재개했으나 패터슨이 1999년 8월 검찰이 출국금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미국으로 도주하면서 사건 해결의 기회를 놓쳤다. ‘범인 없는 살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 사건은 2009년 9월 영화로도 만들어져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진범을 찾아 처벌해야 한다’는 거센 여론 속에 법무부는 그해 10월 미국 당국에 범죄인인도 요청을 했고 패터슨은 2011년 5월 미국 수사당국에 체포돼 재판에 회부됐다. 검찰도 같은해 12월 패터슨을 다시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살인죄 공소시효(15년) 만료를 불과 4개월여 앞둔 때였다. 이듬해 10월 미국 법원이 범죄인 인도 허가를 결정하자 패터슨은 인신보호청원을 제기하는 등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었지만 1심과 항소심, 뒤이은 재심에서마저 패해 국내 송환이 성사됐다. 패터슨은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곧바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게 된다. 범죄인인도 요청 당시 법원에서 발부한 패터슨의 구속영장이 뒤늦게 집행되는 셈이다. 법무부 측은 “20년 가까이 미제로 남아있던 사건에 대한 국민적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면서 “피해자 부모의 가슴에 쌓인 한이 조금이나마 풀릴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태원살인사건’ 패터슨 16년만에 국내 송환 “1997년 대체 무슨 일이?”

    ‘이태원살인사건’ 패터슨 16년만에 국내 송환 “1997년 대체 무슨 일이?”

    ‘이태원살인사건’ 패터슨 16년만에 국내 송환 “1997년 대체 무슨 일이?” 이태원살인사건, 16년만에 국내 송환 1997년 4월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중필(당시 22세)씨가 흉기로 살해된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36)이 23일 도주 16년 만에 국내로 송환된다. 법무부는 패터슨이 오전 4시 40분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송환된다고 22일 밝혔다. 이에 따라 사건 발생 이후 20년 가까이 묻혀 있던 진실의 얼개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이태원 살인 사건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중필(당시 22세)씨가 흉기로 살해된 채 발견됐다. 당시 화장실에는 패터슨과 그의 친구인 재미동포 에드워드 리(36)가 함께 있었다. 이들은 범행 당시 각각 18세의 청소년들이었다. 검찰은 리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내리고 그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패터슨은 증거인멸 및 흉기소지 혐의 등만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1998년 9월 법원이 리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사건은 반전을 맞았다. 검찰은 뒤늦게 패터슨을 진범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재개했으나 패터슨이 1999년 8월 검찰이 출국금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미국으로 도주하면서 사건 해결의 기회를 놓쳤다. ‘범인 없는 살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 사건은 2009년 9월 영화로도 만들어져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진범을 찾아 처벌해야 한다’는 거센 여론 속에 법무부는 그해 10월 미국 당국에 범죄인인도 요청을 했고 패터슨은 2011년 5월 미국 수사당국에 체포돼 재판에 회부됐다. 검찰도 같은해 12월 패터슨을 다시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살인죄 공소시효(15년) 만료를 불과 4개월여 앞둔 때였다. 이듬해 10월 미국 법원이 범죄인 인도 허가를 결정하자 패터슨은 인신보호청원을 제기하는 등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었지만 1심과 항소심, 뒤이은 재심에서마저 패해 국내 송환이 성사됐다. 패터슨은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곧바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게 된다. 범죄인인도 요청 당시 법원에서 발부한 패터슨의 구속영장이 뒤늦게 집행되는 셈이다. 법무부 측은 “20년 가까이 미제로 남아있던 사건에 대한 국민적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면서 “피해자 부모의 가슴에 쌓인 한이 조금이나마 풀릴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태원 살인사건’ 피의자 패터슨, 16년만에 국내 송환

    ‘이태원 살인사건’ 피의자 패터슨, 16년만에 국내 송환

    22일 법무부는 1997년 이태원 살인사건의 피의자인 패터슨이 오는 2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부터 인천공항으로 송환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법무부를 통해 미국에서 패터슨의 신병을 인계받아 현장에서 구속영장을 집행했다. 패터슨은 공항에서 서울구치소로 옮겨진 뒤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공소 유지는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이철희)가 맡는다. 패터슨은 주한 미군 군속의 아들로 한국에 머무르던 지난 1997년 4월 이태원에 있는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리(36)와 함께 대학생 조모 씨(당시 22세)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법원은 패터슨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지만 리에 대해서는 1998년 9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했다. 이후 조 씨 부모는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고소했으나, 재수사를 받던 패터슨은 1999년 미국으로 도주했다. 검찰은 이후 수사를 통해 패터슨이 진범이라고 결론내리고 2011년 12월 그를 기소했다. 법무부는 미국 당국과 공조해 2011년 5월 패터슨을 현지에서 검거했다. 당국은 패터슨을 범죄인인도 재판에 넘겼고, 미국 LA연방법원은 패터슨에 대한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이태원살인사건’ 패터슨 16년만에 국내 송환 “무슨 사건?”

    ‘이태원살인사건’ 패터슨 16년만에 국내 송환 “무슨 사건?”

    ‘이태원살인사건’ 패터슨 16년만에 국내 송환 “무슨 사건?” 이태원살인사건, 16년만에 국내 송환 1997년 4월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중필(당시 22세)씨가 흉기로 살해된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36)이 23일 도주 16년 만에 국내로 송환된다. 법무부는 패터슨이 오전 4시 40분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송환된다고 22일 밝혔다. 이에 따라 사건 발생 이후 20년 가까이 묻혀 있던 진실의 얼개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이태원 살인 사건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중필(당시 22세)씨가 흉기로 살해된 채 발견됐다. 당시 화장실에는 패터슨과 그의 친구인 재미동포 에드워드 리(36)가 함께 있었다. 이들은 범행 당시 각각 18세의 청소년들이었다. 검찰은 리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내리고 그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패터슨은 증거인멸 및 흉기소지 혐의 등만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1998년 9월 법원이 리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사건은 반전을 맞았다. 검찰은 뒤늦게 패터슨을 진범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재개했으나 패터슨이 1999년 8월 검찰이 출국금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미국으로 도주하면서 사건 해결의 기회를 놓쳤다. ‘범인 없는 살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 사건은 2009년 9월 영화로도 만들어져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진범을 찾아 처벌해야 한다’는 거센 여론 속에 법무부는 그해 10월 미국 당국에 범죄인인도 요청을 했고 패터슨은 2011년 5월 미국 수사당국에 체포돼 재판에 회부됐다. 검찰도 같은해 12월 패터슨을 다시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살인죄 공소시효(15년) 만료를 불과 4개월여 앞둔 때였다. 이듬해 10월 미국 법원이 범죄인 인도 허가를 결정하자 패터슨은 인신보호청원을 제기하는 등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었지만 1심과 항소심, 뒤이은 재심에서마저 패해 국내 송환이 성사됐다. 패터슨은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곧바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게 된다. 범죄인인도 요청 당시 법원에서 발부한 패터슨의 구속영장이 뒤늦게 집행되는 셈이다. 법무부 측은 “20년 가까이 미제로 남아있던 사건에 대한 국민적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면서 “피해자 부모의 가슴에 쌓인 한이 조금이나마 풀릴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日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봉환] “3000㎞ 대장정… 꼭 돌려 드려야만 했다”

    [日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봉환] “3000㎞ 대장정… 꼭 돌려 드려야만 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강제 징용 희생자들의 유골 115위(位)가 광복 70주년 추석을 앞둔 20일 경기 파주시 용미리 서울시립묘지에 안장돼 고국 산천에 비로소 몸을 뉘었다. 이번 유골 봉환 작업에는 일본 민주당 중의원(하원)을 지낸 고바야시 지요미(46·여)도 참여했다. 고바야시는 지난 11일 홋카이도에서 출발해 19일 서울광장에 유골이 도착하기까지 3000㎞에 달하는 봉환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했다. 고바야시는 이날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유골들을 돌려 드려야 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안전하게 유골을 고향까지 보내드리는 것, 그리고 (유골 봉환 작업에 나선) 참가자들의 몸 상태가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고 강조했다. 봉환 작업을 주도한 곳은 한·일 시민단체가 만든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 및 유골 귀향 추진위원회’. 고바야시는 추진위원회 일본 측 단체인 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 부대표를 맡고 있다. 2010년까지 홋카이도에서 중의원으로 활동한 그는 2003년부터 조선인 유골 발굴과 송환 문제에 관여한 ‘지한파’로 꼽힌다. 의원 시절 ‘전후 보상을 생각하는 의원 연맹’ 등의 활동을 통해 꾸준히 한·일 문제를 환기시켜 온 고바야시는 2013년 일본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과 함께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를 방문한 바 있다. 일본 전국에는 수많은 조선인 강제 동원 피해자의 유골이 있지만 정부는 현재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양국 정부는 2008년 1월~2010년 5월 일본 사찰에 보관돼 온 조선인 군인과 군무원 유골 423위의 한국 봉환을 이끌어낸 뒤로 손을 놓고 있다. 고바야시는 “정부와 시민사회 어느 한쪽만의 노력으로는 결코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면서 “민간과 정부 차원의 협력이 자동차의 두 바퀴처럼 잘 굴러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러 ‘미녀 스파이’ 안나 채프먼 출산…‘아버님이 누구니’

    러 ‘미녀 스파이’ 안나 채프먼 출산…‘아버님이 누구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러시아의 ‘미녀 스파이’ 안나 채프먼인 러시아 현지시간으로 지난 2일 남자아이를 출산했다는 소식이 알려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안나 채프먼은 2010년 러시아 스파이 9명과 함께 미국연방수사국(FBI)에 간첩 혐의를 받고 체포됐다가 러시아가 서방 스파이라는 명목으로 감금 중이던 4명과 맞교환 되면서 본국으로 송환됐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안나 채프먼은 유명세와 매력적인 외모를 앞세워 TV진행자, 모델, 배우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특히 그녀는 2013년 여름, 미국 전 중앙정보국(CIA)요원인 에드워드 스노든(32)에게 트위터를 통해 공식으로 청혼하면서 더욱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미국 뉴욕데일리뉴스, 영국 데일리메일 등 해외 언론의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안나 채프먼은 최근 남자아이를 출산했으며, 아이의 아버지 신원 및 태어난 아들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러시아 현지 언론은 그녀가 모스크바의 최고급 개인 병원에서 남자아이를 출산했으며, 아이와 산모의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고 보도했다. 안나 채프먼의 임신 소식은 모스크바의 한 카페에서 배가 부른 채 앉아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부터다. 당시 목격자들은 이미 만삭에 가까워진 그녀의 배를 본 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정작 본인은 어떤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나 채프먼은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모스크바 외곽에 있는 나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그녀가 나와 내 아들을 직접 돌봐줄 것”이라면서 “많은 사람들의 축하 인사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녀의 출산 소식이 알려진 뒤, ‘미녀 스파이’와 더불어 ‘엄마’의 타이틀까지 달게 된 안나 채프먼의 행보에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서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어 의문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게티이미지/멀티비츠 이미지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中, 경제 개발 ‘당근책’… 티베트·위구르인 안정 vs 저항 ‘갈림길’

    [글로벌 인사이트] 中, 경제 개발 ‘당근책’… 티베트·위구르인 안정 vs 저항 ‘갈림길’

    9월 1일은 티베트가 중국에 강제 편입돼 시짱(西藏) 자치구가 된 지 50주년 되는 날이었다. 10월 1일은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가 선포된 지 60주년을 맞는 날이다. 두 지역의 독립세력은 그동안 자치확대·분리·독립이라는 단계적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저항해 왔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응징이라는 채찍과 경제 성장이라는 당근으로 두 ‘화약고’를 집요하게 관리했다. 시짱과 신장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봤다. ●분신으로 저항해 온 시짱, 멀어지는 독립의 꿈 지난 1일 시짱의 성도 라싸에 있는 포탈라궁 광장. 자치구 선포 50주년을 기념하는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열병식에 나선 군인들은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등 전직 국가주석과 시진핑(習近平) 현 주석의 대형 초상화를 들고 행진했다. “나라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변경을 다스려야 하고, 변경을 다스리려면 먼저 시짱을 안정시켜야 한다”(治國必治邊, 治邊先穩藏)는 시 주석의 어록이 쓰인 대형 플래카드가 행사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 줬다. 기념식에 맞춰 저항의 목소리도 나왔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CTA)는 “지난 50년은 티베트 역사의 암흑기였다”는 성명서를 냈다. 쓰촨성의 한 라마교(티베트 불교) 스님은 달라이 라마 14세의 사진을 들고 시위를 하다가 공안에 끌려갔다. 13세기 이후 중국과 영국의 영향을 번갈아 받아 오던 티베트는 1911년 신해혁명 이후 독립의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신중국이 건설된 이듬해인 1950년 10월 인민해방군이 티베트를 점령했다. 1959년 티베트 곳곳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대규모 봉기가 분출했고 진압 과정에서 13만명이 사망했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이때 인도로 망명했다. 1965년 시짱 자치구로 공식 편입됐다. 2009년 이후에만 140여명이 분신하며 독립을 외쳤다. 중국의 시짱 관리는 치밀했다. 경제 개발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티베트 국내총생산(GDP)은 1965년 3억 2700만 위안에서 지난해 920억 8000만 위안으로 50년간 281배가 늘었다. 올해 티베트 관광 수입만 180억 위안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 시짱의 한족은 800만명으로 티베트족 6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소수민족을 전통적인 생활터전에 남겨둔 채 한족을 이주시켜 소수민족 구성 비율을 낮추는 중국 특유의 소수민족 관리 방식 탓이다. 중국은 소수민족에 대입 가산점 부여, 한 자녀 정책 예외 등과 같은 혜택도 주고 있다. 중국의 시짱 통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략이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 무력화이다. 최근 미국의 팝 밴드 본 조비와 마룬5의 중국 공연이 잇따라 취소됐는데, 밴드 멤버 중 일부가 달라이 라마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기념식을 맞아 달라이 라마가 1995년 선정한 ‘판첸 라마’ 게둔 초에키 니마의 근황을 공개했다. 판첸 라마는 티베트 불교의 2인자로 최고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면 그의 ‘환생자’를 찾아내는 임무를 맡는다. 중국 정부는 당시 6세였던 니마를 비밀 장소에 연금했다. 중국은 20년 전 니마를 감춘 대신 5세 소년이던 기알첸 노르부를 판첸 라마로 정했다. 시 주석은 지난 6월 ‘어용’ 판첸 라마를 만나 “티베트 불교와 중국 사회주의가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노르부는 시 주석에게 “민족 단결을 수호하겠다”며 충성을 맹세했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자기가 사망한 뒤 어용 판첸 라마가 달라이 라마를 낙점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우매한 달라이 라마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슬픈 일이지만 누대로 내려온 전통을 지금 끝내는 게 낫다”고 말했다. 지도자의 환생을 믿는 티베트 불교 고유의 ‘활불전세’(活佛轉世)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달라이 라마 14세는 위기에 처해 있다. ●신장 위구르 독립세력 10월 테러 감행 가능성 ‘일촉즉발’ 중국 입장에선 분신으로 항거하는 시짱보다 신장 위구르족의 테러가 훨씬 위협적이다. 특히 2009년 7월 한족과 위구르족이 충돌해 197명이 숨지고 1700여명이 다친 대참사 이후 중국은 위구르족을 강력히 통제하고 있다. 이슬람교 특유의 히잡을 쓰는 것과 수염을 기르는 것도 금지했다. 시진핑 체제 들어서도 톈안먼(天安門) 차량 테러, 쿤밍 철도역 흉기테러, 우루무치 기차역 폭탄 테러가 잇달아 발생했다. 10월 1일 신장 자치구 선포 60주년을 계기로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위구르 분리주의자들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쪽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어 중국 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IS는 그동안 중국을 향해 위구르족 탄압을 중지하라고 경고해 왔다. 지난 9일에는 중국인과 노르웨이인 인질을 ‘판매’하는 광고까지 냈다. 신장 출신 위구르인 300명 정도가 IS에 가담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관광객 20명이 사망한 최근의 방콕 테러도 위구르 무장독립단체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이 저지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검거된 용의자와 잠적한 핵심 용의자는 모두 신장 위구르인이다. 용의자들은 지난 7월 태국 정부가 위구르족 난민 109명을 중국으로 강제 송환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번 테러를 자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터키계 인종인 위구르족은 2차 대전 후 한때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세우고 독립했으나 중국은 1949년 신장 지역을 합병한 뒤 1955년에 자치구를 출범시켰다. 중국에 신장은 전략적·경제적 가치가 큰 지역이다. 고대 실크로드가 통과하던 이곳은 중앙아시아와 중동, 유럽을 잇는 대외 교역로이다. 특히 미국에 비해 해양력이 약한 중국으로서는 석유 등 필수 물자의 공급을 위한 전략 루트이다. 시 주석이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도 신장이다. 1992년에는 대유전이 발견되기도 했다. 시짱과 마찬가지로 중국이 신장을 관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경제 개발이다. 국가 통계국에 따르면 신장의 GDP는 지난 5년 동안 평균 11.1%씩 성장했다. 1인당 GDP도 지난해 7037달러로 5년 전보다 3배 이상 올랐다. 창업 기업들 사이에선 “상하이, 선전, 푸둥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다면 이젠 신장에서 기회를 잡으라”는 경구가 회자되기도 한다. 하지만 개발의 과실을 이주해 온 한족이 주로 차지해 위구르족의 분노는 더욱 치솟고 있다. 인민일보는 요즘 ‘신장 도약 60년’이란 제목으로 신장의 발전상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지난 10일자 르포 기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저녁 10시, 베이징의 상점은 영업을 끝내는 시간이지만 신장의 야시장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양꼬치를 파는 위구르족 아주머니의 호주머니는 점점 두둑해지고 있다.” 아랍인처럼 생겼고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60년 동안 멸시와 차별을 당한 위구르인들이 호주머니가 조금 두둑해졌다고 분노를 억누를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단독] [커버스토리] 올 국내 난민 신청자 2669명… 출입국장서 90명 신청

    우리나라는 유럽과 달리 대규모 난민이 몰려드는 일이 거의 없다. 3면이 바다라는 지리적 여건 때문이다. 2013년 7월부터 난민법(6조)을 만들어 공항이나 항만 등의 출입국장에서 긴급하게 발생하는 난민 신청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의 이용률은 매우 저조하다. 11일 법무부에 따르면 올 1~7월 출입국장에서 난민 신청을 한 이들은 90명으로 전체 난민 신청자(2669명)의 3.4%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일단 국내에 들어온 뒤 일반 출입국사무소에서 난민 신청을 한다. 법무부는 난민 신청자 대다수가 항공기를 이용해 입국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는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을 경유해서 온다. 우리나라 난민신청자의 특징은 ‘생계형’이 다수라는 점이다. 올해는 전체 신청자의 41.6%인 1111명이 불법체류 상태에서 난민 신청을 했다. 고용허가제로 국내에 들어왔다가 난민을 신청한 경우도 572명(27.4%)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법무부는 난민 심사를 좀더 엄격하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엔 이집트에서 한국 취업을 희망하는 12명을 모집해 1인당 5000~1만 달러를 챙긴 ‘난민 브로커’ 일당이 적발되기도 했다. 난민법은 난민 인정 사유를 국적·인종·종교·특정사회집단 구성원 신분·정치적 의견 등의 이유로 본국에서 박해를 받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1994년부터 올 7월 말까지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한 시리아인은 760여명이다. 이 중 85%가 내전 이후 3년간 집중됐다. 이 가운데 3명만 난민으로 인정받았고 570여명은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아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 인도적 체류 허가는 강제 송환도 되지 않고 취업도 가능하지만 난민과 달리 기초생활·교육·직업훈련 등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심사에 불복해 법원으로 가서 판단을 구하더라도 결정이 잘 바뀌지 않는다. 법원이 난민법상 ‘박해’를 ‘생명·신체 또는 자유에 대한 위협을 비롯하여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차별을 야기하는 행위’로 엄격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헝가리 조약 위반” “독일 난민 수용 탓”… 동서로 갈린 하나의 유럽

    “헝가리 조약 위반” “독일 난민 수용 탓”… 동서로 갈린 하나의 유럽

    사상 초유의 난민 위기가 급기야 유럽에서 동서 갈등까지 표출시키고 있다. 헝가리가 자국에 들어온 난민들의 타국 이동을 방조한 가운데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은 일제히 비난을 쏟아 냈다.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은 독일의 난민 정책이 사태 악화를 초래했다며 난민 문제를 분담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유럽은 오는 14일 유럽연합(EU) 차원의 긴급 내무장관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31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역사 주변에 머물던 난민 2000여명은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는 열차에 기습 탑승하는 데 성공했다. 헝가리 당국은 난민이 처음 발을 디딘 국가가 망명 신청을 처리해야 한다는 EU의 더블린조약을 무시하고 이들의 이동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다수가 시리아 출신인 이들은 앞서 독일 정부가 시리아 난민은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밝힌 후 대거 빈행 열차에 올랐다. 오스트리아 경찰은 일일이 열차를 세워 난민들의 망명 신청 여부를 조사하는 등 국경 지대 검문을 강화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불법적으로 이동한 난민들은 헝가리로 송환하겠다는 방침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유럽 각국이 난민 책임을 나눠지지 않으면 솅겐조약(회원국 간 자유로운 왕래 보장)이 위태롭게 된다”며 동유럽 국가의 소극적 대응을 비난했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도 “많은 나라가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것은 유럽 정신에 반하는 것”이라고 보탰다. 이에 체코는 “난민 부담을 나눠지는 시스템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헝가리 당국자는 “칼레항에 장벽을 쌓는 프랑스가 다른 나라를 비난하는 것은 야비하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난민을 둘러싸고 ‘핑퐁 게임’을 벌이는 사이 시민사회는 난민 수용에 팔을 걷어붙였다. 1일 부다페스트를 떠난 난민 열차가 빈을 거쳐 독일 뮌헨에 속속 도착했다. 독일 시민들이 환영 플래카드를 들고 음식을 나눠 주자 난민들은 “우리는 독일을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화답했다. 앞서 빈에서는 시위대 2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난민의 적극 수용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인구 30만명의 아이슬란드에서는 주민 1만명이 자발적으로 시리아 난민들에게 거주지를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정부의 난민 50명 수용에 반발한 한 여류 작가가 벌인 페이스북 캠페인을 통해 24시간 만에 1만명이 모인 것이다. 이들의 호소에 정부는 난민 수용 쿼터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방콕 도심 폭탄테러… “개인적 범행” vs “회색 늑대들 소행”

    방콕 도심 폭탄테러… “개인적 범행” vs “회색 늑대들 소행”

    태국 경찰이 29일 방콕 북부 외곽 농촉 지역의 4층 건물을 급습, 지난 17일 에라완 사원 폭탄 테러 용의자인 아뎀 카라다그(28)를 검거했다. 지난해 1월 태국에 입국한 용의자는 이 같은 이름으로 터키 여권을 지녔지만, 태국 경찰은 여권이 위조됐다며 정확한 신원 등을 함구한 채 공범을 쫓고 있다. 앞서 태국 경찰이 폐쇄회로(CC)TV 영상을 근거로 제작, 배포한 몽타주와 많이 닮지 않았지만 카라다그가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이유는 그의 아파트에서 위조 여권과 폭탄 제조용 물질이 발견되어서다. 솜욧 뿐빤모엉 태국 경찰청장은 “수색 결과 방 5칸짜리 용의자의 집에서 기폭 장치, 볼베어링, 파이프 등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단 솜욧 청장은 “용의자가 자신의 동료들을 위해 개인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엄밀한 의미에서) 테러리즘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솜욧 청장은 공범 검거를 위한 보안상 이유를 들며 용의자의 개인적 범행 동기가 무엇인지, 중국계 관광객 14명을 포함해 20여명의 사망자와 130여명의 부상자가 테러의 표적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다. 방콕 도심에서의 폭탄 테러로 관광업에 직격탄이 가해질 수 있다는 우려, 아직까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테러 단체가 등장하지 않은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중국계 관광객이 즐겨 찾는 사원에서 테러가 발생하고 무슬림 밀집 지역인 농촉에서 용의자가 잡힘에 따라,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들은 지난달 태국에 불법 체류하던 위구르인 109명을 중국으로 강제 송환한 여파로 테러가 일어났고 터키의 극우 이슬람 단체인 ‘회색 늑대들’이 배후일 것이란 심증을 거두지 않았다.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암살을 주도한 테러 단체인 ‘회색 늑대들’은 중국 정부의 신장위구르족 탄압 정책을 비난해 왔다. 지난달 이 단체 회원들이 터키 이스탄불에서 한국 관광객을 중국인으로 오인, 폭행한 사건도 발생한 바 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시론]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과 한국 외교/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시론]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과 한국 외교/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일본이 항복문서에 조인한 것을 기념해 9월 3일 중국에서 열리는 제2차 대전 전승기념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이견이 있다. 소극적인 견해는 주로 미국의 불편한 시선,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부정적 영향, 한·일 관계 악화, 중국군 열병식 참석에 따른 국내 보수 여론의 부담 등을 들고 있다. 주변국과 우리의 관계는 복잡하다. 10월에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에 대해서도 중국과는 달리 ‘절제 있는 비판’을 했다. 한국전쟁 때 사망한 중국군 유해를 인도적 차원에서 송환하면서 역사의 유산을 극복하기도 했다. 사실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를 동시에 발전시키는 것도 제로섬게임이 아니라 사안별로 신중하게 접근하면 한국 외교의 지평을 넓힐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은 우리의 외교 목표와 국가이익을 고려해 결정하면 될 일이다. 우선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의 의의는 행사 그 자체에 있다. 중국은 상하이 임시정부를 비롯한 항일운동의 종심(縱深)이었다.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의 팔로군, 신사군 등과 함께 중국 전역을 누비며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 역사상 최대의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은 전사자 2700만명, 민간인 희생자 2500만명이라는 엄청난 손실 속에 세계를 대립, 불신의 늪에 빠뜨렸다. 한반도도 이러한 냉전의 희생물이 돼 남북 분단의 비극을 강요당했다. 이런 점에서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이한 우리가 평화의 소중함을 공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둘째, 인류 보편적 가치와 평화를 발신하면서 한국 외교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전승을 기념하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자리는 지역의 평화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결의하는 장이다. 이것은 역사를 선택적으로 해석하면서 수정주의의 길을 걷는 일본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다면 자연스럽게 한·중 정상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교착상태인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 분위기를 만들고 중·일 간 중재자적 역할을 통해 동아시아 협력을 촉진할 수도 있으며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국제협력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한·중 관계의 내실화에 기여할 수 있다. 한·중 양국은 이미 양자 관계를 넘어 지역 문제와 국제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표현대로 한·중 관계는 공동 발전의 실현, 지역 평화에 대한 기여, 아시아 발전의 추진, 세계 번영의 촉진 동반자다. 그러나 한·중 정상의 깊은 신뢰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안보 구조에 근본적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 등 한·중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내실화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참여, 인문교류 확대에 이은 박 대통령의 전승기념식 참석은 양국 관계 내실화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더불어 초청을 받은 아베 총리도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여는 방향으로 양국 간에 막바지 조율이 이뤄지고 있어 이번 행사는 한·중·일 정상이 동북아 화해 협력을 위한 주요한 계기를 마련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왕 박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결정한다면 문화축제, 분열식, 열병식을 포함해 일련의 행사에 ‘화끈하게’ 참여해 한·중 관계를 고도화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한·중 관계는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참석 형식과 범위 등은 한·중 관계의 위상, 한국의 대중국 외교자산 그리고 국내 여론을 고려해 철저하게 우리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해도 중국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고 한·미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한·중 관계가 좋다고 해서 ‘유사 이래 최고의 관계’라는 메시지를 우리 스스로 발신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한·중 간 국가이익이 충돌할 경우 그 부담은 그대로 부메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중 관계가 고착화되기 전에 남북 관계 개선을 포함한 한국형 이니셔티브를 주도하는 일이다.
  • 美, 中 ‘여우사냥’ 급제동… 오바마-시진핑 틀어지나

    美, 中 ‘여우사냥’ 급제동… 오바마-시진핑 틀어지나

    9월 말 미국에서 열리는 시진핑(習近平·오른쪽 얼굴) 중국 국가주석과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관계에 암운이 감돌고 있다. 중국 해커의 미국 정부기관 해킹 의혹,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중국의 급격한 위안화 평가절하 등 악재가 쌓이는 와중에 미국이 중국의 해외 도피 부패사범 송환 작전인 ‘여우 사냥’에 급제동을 걸었다. ●中, 美서 링지화 동생 잡으려다 ‘발목’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이 여우 사냥 활동을 중단하라고 요구한 이유는 중국의 공안부 소속 요원들이 관광비자나 사업비자로 입국해 미국 법령을 무시한 채 검거 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그동안 미국이 수차례 부패사범 송환 작전에 협조하기로 약속한 것을 상기하며 다른 꿍꿍이속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은 18일 “미국은 지금 엉덩이를 탐관오리 쪽에 대고 앉는 것인가 아니면 정의 쪽에 대는 것인가”라면서 “하루아침에 말을 바꾸니 놀라울 따름”이라고 분개했다. ●링지화 동생 美 망명 땐 ‘中 아킬레스건’ 노출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시한폭탄’과 같은 인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비서실장을 지낸 링지화(令計劃) 전 정협 부주석의 동생 링완청(令完成)이 주인공이다. 링완청은 형의 해외 재산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 형이 빼돌렸던 시 주석 관련 기밀문서 2700여건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링완청은 그동안 형의 구명을 위해 중앙기율위원회와 협상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공산당이 지난달 링지화를 전격 사법처리했기 때문에 미국 망명을 서두를 것으로 예상된다. 링완청이 기밀문서를 갖고 미국의 품에 안기면 미국은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틀어쥘 수 있게 된다. ●“美, 시 주석과 협상서 우위 잡으려는 속셈” 2013년 링완청이 미국으로 도피한 이후 중국의 송환 작업은 끈질기게 진행됐다. 링완청은 망명을 위해 미국계 화교인 장리쥔과 위장결혼한 뒤 캘리포니아 호화저택에서 함께 살았으나 지난해 10월 이후 행적이 묘연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7일(현지시간) 중국의 비밀 요원들이 장리쥔의 전 남편 토미 위안에게 수차례 찾아와 “전 부인을 보호하고 싶으면 우리에게 협조하라”고 협박한 사실을 토미 위안과의 인터뷰를 통해 폭로했다. 비밀 요원들은 토미 위안과 장리쥔의 지인들까지 샅샅이 탐문하고 다녔다. 링완청이 기밀 문서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시 주석과 기싸움을 해야 할 오바마 대통령 입장에서는 링완청 자체가 좋은 카드가 될 수 있다. 중국 국가행정학원 리투어 교수는 “미국의 여우 사냥 중단 요구는 시 주석의 방미를 앞두고 긴장 분위기를 조성해 협상에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속셈”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내일 訪北 이희호 여사, 김정은 면담할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5일 저가항공인 이스타항공을 타고 북한을 3박 4일 일정으로 방문할 예정이어서 남북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색된 남북 관계를 풀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정부가 이 여사를 통해 대북 메시지를 전달할지도 관심거리다. 다만 현재까지 나타나는 정부의 태도로 볼 때 이 여사 방북을 적극 활용할 뜻은 없어 보인다. 이 여사의 방북 기간에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의 면담 여부다. 아직까지 이 여사와 김 제1위원장 간 면담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문 당시 사례로 미뤄 볼 때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면담이 성사되면 양측은 자연스럽게 남북 간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 여사가 김 제1위원장에게 북한에 억류된 남측 국민 4명의 송환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논의 진전 여부에 따라 이 여사가 돌아오는 비행기에 그들이 함께 올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관측도 있다. 이 여사가 억류자를 돌려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박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김 제1위원장에게 전달할 경우 이를 통해 양 지도자가 신뢰를 쌓고 남북 관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북측은 3일 김대중평화센터 측으로 방북단 18명을 초청하는 초청장을 보내왔다. 명단에는 이 여사를 포함해 김대중센터 이사인 김성재 전 복지부 장관, 장충식 단국대 이사장,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포함됐다. 이 여사는 5일 오전 10시 김포공항에서 이스타항공 비행기를 타고 출발해 서해 직항로를 이용해 북한으로 올라갈 예정이다. 당초 정부는 방북단에 정부 관계자를 포함시키려 했으나 북한이 이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동행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이날 휴가 중임에도 동교동에 있는 이 여사 사가를 예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홍 장관이 이 여사가 무사히 다녀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의례차 예방한 것”이라며 “특별히 정부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가지는 않았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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