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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남 기호학파 ‘巨儒’ 이우섭선생 유고 문집 봉정

    영남 기호학파 ‘巨儒’ 이우섭선생 유고 문집 봉정

    영남 기호학파 ‘거유’(巨儒)였던 화재(華齋) 이우섭(李雨燮·1931~2007) 선생의 유고 문집 봉정 고유제 및 발간 기념식이 10일 경남 김해시 장유면 월봉서원에서 열렸다. 행사는 전국의 유림과 성균관, 문생, 친척, 시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화재선생문집간행위원회 주최로 열려 이 선생이 평생 선비 정신을 잃지 않고 쓴 ‘화재속집’(華齋續集·전 17권)을 제사상에 봉정했다. 이 선생은 생전인 2000년 5월 초고로 화재문집(華齋文集·전 27권)을 냈다. 이번에 낸 유고집을 포함하면 총 44권이 간행됐다. 근대 문집으로는 유례가 드문 기록을 남긴 셈이다. 문집은 김해와 남도 향토에 대한 애정, 퇴폐해 가는 인륜 기강 확립에 대한 제언, 당대 귀감이 되는 인물 탐색, 불굴의 선비정신으로 삶을 헤쳐나가는 유학자로서의 기풍을 지킨 일대기 등을 담고 있다. 성백효 한국고전번역원 교수는 발간사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유학의 전통을 지키신 한학자 이 선생은 가셨지만 그 정신과 사상은 이 유집에 고이 간직돼 있음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율곡 이이, 우암 송시열, 간재 전우, 석농 오진영으로 이어지는 영남 기호학맥의 후예인 화재 선생은 평생 고향에서 월봉서원을 지키며 한학을 가르쳤다. 유족과 월봉서원, 유림 등은 화재 선생의 이런 업적과 정신을 기려 화재 선생의 장례를 학문과 덕망이 높은 유학자가 타계했을 때 행하는 유림장 형태의 유월장(踰月葬·장례기간 16일)으로 거행하고 3년상을 치러 2009년 탈상했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출발 드림팀 시즌2(KBS2 일요일 오전 10시 35분) 매회 웅장한 스케일과 스릴 넘치는 종합 장애물 5종 경기를 선보이고 있는 ‘출발드림팀2’가 이번에는 드림팀 종합장애물 경기 사상 최초로 남녀선수가 함께 도전하는 커플장애물 6종경기를 펼친다. 우여곡절 끝에 선정된 10팀의 커플 중 과연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커플 왕좌를 차지할 주인공은 어느 팀이 될까. ●학자의 고향(KBS1 일요일 오전 7시 20분) 송시열이 유배되었던 제주도 글씐바위에는 그의 한이 담긴 글이 아직도 남아 있다. 조선왕조 500년 중 가장 혼란했던 17세기에 살았던 우암 송시열. 그는 당쟁의 중심이자 18세기 조선 성리학의 초석이기도 했다. 그의 유배 흔적이 묻어 있는 그가 은거했던 화양동의 아름다운 절경과 그의 사상, 삶을 들여다본다. ●주말특별기획 드라마 욕망의 불꽃(MBC 토요일 밤 9시 50분) 태진이 있는 별장을 찾아온 나영은 민재를 설득해 데려가려 하지만 민재는 할아버지처럼 살겠다고 거절한다. 밤늦게 다시 태진의 별장으로 찾아온 나영은 어린 날 자신이 보았던 지옥 같은 장면들을 이야기하며 죗값을 치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 날, 나영은 태진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그것이 알고싶다(SBS 토요일 밤 11시) 1990년대 우리를 가슴 아프게 했던 아동범죄의 피해 아동들. 사건 후 부모 품으로 돌아갔던 그들은 잘 지냈을까. ‘추적 사건과 사람들’에서 방송돼 큰 화제를 모았던 서커스 소녀 심주희양과 아버지가 보험금 때문에 아들 손가락을 잘랐던 사건의 주인공들을 찾아가 현재 모습을 살펴본다. ●사랑을 믿어요(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윤희는 우진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셔츠를 선물로 사지만 우진이 아이들을 야간 업소에서 노래 부르게 한 줄로 착각하고 미사리 공연장까지 쳐들어간다. 우진은 자신을 오해한 윤희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윤희는 울음을 터트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한편 승우는 혜진의 재능과 일에 대한 기회들을 하나씩 마련해 준다. ●반짝반짝 빛나는(MBC 일요일 밤 8시 40분) 정원은 금란에게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자고 말한다. 그런 금란은 평창동 집에 가서 나희와 함께 자신이 살게 될 방을 꾸미고 정원의 가족들과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지웅처럼 편집일을 배우게 될 거라고 선언한다. 한편 금란은 승준에게 앞으로 연락해도 되느냐고 묻고, 정원은 승준과 함께 있는 금란의 모습을 보게 된다. ●SBS스페셜(SBS 일요일 밤 11시) 규모 9.0의 일본 역사상 최악의 대지진이 벌어졌다. 대형 쓰나미와 원전 폭발까지 이어졌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순식간에 누군가의 집과 학교와 회사가 사라졌다. 쓰나미가 몰려와 손써 볼 틈도 없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 둔 채 이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현장을 찾아가 본다.
  • [인사]

    ■서울신문 <기획사업국>△기획사업1부 부장 임철재△기획사업2부 〃 안창섭△기획마케팅부 〃 강두석△사업개발팀장 김철홍△기획마케팅부 차장 조원석 ■농림수산식품부 ◇고위공무원 전보 △국립식물검역원장 여인홍△국방대 파견 백종호△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장 오경태△중앙공무원교육원 파견 홍성재 ■환경부 ◇부이사관 승진 △물환경정책과장 나정균△자원순환정책〃 박미자△교통환경〃 이규만◇과장급 전보△국립생태원건립추진기획단 부단장 김용진△국립생물자원관 운영관리과장 김재석△한강유역환경청 유역관리국장 최병권△원주지방환경청 기획과장 이진용△전주지방환경청장 이윤택<과장>△운영지원 심무경△생활환경 주대영△기후대기정책 황석태△기후변화협력 이영기△유역총량 정선화△수생태보전 홍정섭△폐자원관리 정진섭<담당관>△기획재정 이민호△해외협력 김상훈<팀장>△환경산업 박연재△폐자원에너지 김종률◇과장급 승진△뉴미디어홍보팀장 배치호△국립환경과학원 연구지원과장 박광호△국립생물자원관 연구기획과장 김고응△4대강살리기사업추진본부 파견 김수찬△전라남도 환경협력관 이학구△환경부 조현수 박웅 ■여성가족부 ◇국장급 △가족정책관 이기순 ■국토해양부 ◇국장급 전보 △정책기획관 손태락◇국장급 교육훈련 파견△외교안보연구원 윤학배△국방대 서훈택◇과장급 교육훈련 파견△통일교육원 정선문△세종연구소 남광률 김영우 ■문화재청 △정보화기획팀장 김병기△유형문화재과장 류춘규△수리기술〃 박왕희△한국전통문화학교 교학처 교무과장 이향수△세종연구소 교육파견 최종덕△통일교육원 〃 김성배 ■산림청 ◇고위공무원 파견 △중앙공무원교육원 조병철◇과장급 파견△국제산림협력추진단장 이규태◇서기관 파견△국제산림협력추진단 박위자 ■대구시 △과학산업과장 곽영길△교통정책〃 최영호△기획관리실 정록환 ■울산시 ◇2급 승진 △의회사무처장 조기수◇3급 승진△기획관 이진벽△남구 부구청장 김광수◇3급 전출△울주군 부군수 허만영◇4급 승진△관광과장 전경술△의회사무처 전문위원 이채석 박재경△보건위생과장 이삭불△농업기술센터소장 박재운△태화강관리단장 윤영찬△울주군 국장 박희철◇4급 전보△법무통계담당관 김치진△투자지원단장 정호동△클린울산추진〃 김기학<과장>△경제정책 변종만△계약심사 오세곤△환경자원 황재영△사회복지 이형조△교통정책 장진호△하수관리 조한희△건축주택 김병걸◇4급 구군교류 <보건소장>△중구 이병희△남구 이윤구△북구 황병훈◇4급 전출 <국장>△중구 이상수 박용석△남구 이상욱△동구 정진택△북구 장영대 김재곤△울주군 이정헌<보건소장>△울주군 윤성일◇4급 전입△상수도사업본부 급수부장 김영태<과장>△세정 전병수△체육지원 장수래△건설도로 정지식△민방위재난관리 권성근△도시개발 이종환◇4급 교육파견△총무과 심순보 김해권 서창원 이정희 ■한국산업인력공단 ◇1급 승진 △전문자격출제실장 김세환△공단본부 이동언△목포지사장 허상철△충북〃 정희택<자격출제원>△응용공학팀장 한두교△정보통신〃 박계영△생활과학〃 유춘◇1급 전보△감사실장 구경회<국장>△총무 박재택△정보화지원 이종태△직업능력기획 정일성△직업능력지원 변무장△숙련기술지원 지인웅△외국인력 임경식△해외취업 김병주<원장>△글로벌HRD협력 노만진<실장>△직무능력표준 이호진△기술자격출제 이지영<지역본부장>△부산 이상환△경인 송시열<지사장>△경기 조영일△부산남부 김재복△울산 김강배△포항 이명희△부산지역본부 신재우△대전지역본부 김연식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연구본부장>△신재생에너지 윤왕래△기후변화 이창근<연구부장>△에너지효율 정대헌△융합소재 한성옥<센터장>△태양광 윤재호△연료전지 양태현△수소에너지 서용석△바이오에너지 이진석△태양열지열 이동원△풍력발전 김석우△온실가스 류호정△청정석탄 정헌△석유가스 한상섭△폐자원에너지 문승현△건물에너지 장철용△산업효율 전원표△에너지소재 한인섭△에너지저장 신경희 ■한국전기연구원 ◇본부장급 △대전력평가본부장 박병락△대전력설비 증설사업본부장 김맹현◇실장급△전기기기평가본부 대전력평가2실 나대열△기획부 성과확산실장 조현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경영혁신실장 한인탁△대경권연구센터장 김광수△호남권연구〃 김영선 ■한국환경공단 ◇전보 <처장>△재무관리 강희태△자원순환지원 김종엽△제도운영 조영수△폐기물관리 김해룡△상하수도시설 최근웅<영남지역본부>△환경관리처장 김웅선<충청지역본부>△자원순환처장 김유식<지사장>△경북지사장 권오종◇교육파견△서울대 김정근 염상욱 안충희 신현주△세종연구소 우해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사무국>△사무총장 김경윤△정책기획특보 정동섭△기획조정실장 박충서△대변인(홍보실장) 김동석△조직본부장 김종식△정책〃 백복순(겸임)△교권연수〃 강병구△종합교육연수원추진단장 이찬우(겸임)[국장]△조직 이서구△대외협력 이낙진△정책개발 이선영△정책추진 김무성△교권 신정기△교원연수 이헌구△총무 권영백<한국교육정책연구소>△소장 김경회△사무국장 이선영(겸임)<한국교육신문사>△사장 이찬우△복지관리본부장 백복순△편집출판〃 김항원△마케팅전략실장 신연숙[국장]△교원복지 신형수△사업 김종안△편집 정종찬△출판 박영옥 ■금융투자협회 ◇신규선임 △집합투자서비스본부장 김철배 ■전자신문 ◇승진 <편집국>△정보통신담당 부국장 홍승모[부장]△정책담당 김동석△국제담당 안수민△사진부 정동수◇전보△편집국 전자담당 부국장 주상돈△광고마케팅국장(기획팀장 겸임) 원유붕△광고마케팅국 기획팀 부장 김종윤 김태계△정보사업국장(전략사업팀장 겸임) 서현진△ET교육센터장(부국장·글로벌사업팀장 겸임) 임금순△고객서비스국장(이사·판매팀장 겸임) 박주용△지역총국장(이사·마케팅팀장 겸임) 박주용△마케팅팀 부국장(부경센터) 박광준 김성회 ■강원대 △부총장 최선도△대학원장 연규석△교학처장 임덕규△사회과학연구원장 김갑열 ■부경대 △대외부총장(대외사업본부장) 김태용 ■외환은행 ◇영업본부장 △경남 박정규△대구경북 박승철△부산 조강래△서부 장상열 ■신한은행 ◇부서장 전보 △성남지점장 정영식△경원대학교〃 김대열 ■LIG투자증권 ◇상무보 △WM1사업부장 정동원 ■한화증권 ◇임원급 전보 △캐피탈마켓 총괄 및 트레이딩사업부장 오희열△리스크관리본부장 권희백
  • [씨줄날줄] 사무사(思無邪)/노주석 논설위원

    종종 ‘사무사’(思無邪)를 접한다. 경기도 가평군 하면 대보리 조종암 바위에 새겨져 있다. 명나라 의종의 친필을 우암 송시열이 각자(刻字)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원병을 보내 준 명나라의 은공을 잊지 말자는 의미였다고 한다. 전남 곡성 성출산 입구 계곡 바위에 남아 있는 것은 조선 고종의 필체이다. 면암 최익현이 새긴 것이다. 면암은 이 글을 받들어 의병을 일으켰다. 김종필 전 총리는 1999년도 신년 휘호를 ‘일상사무사’(日常思無邪)로 정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공동정부를 형성했던 JP에게 이 휘호는 의원내각제 개헌을 바라는 복심이었다. 송태옥 시인은 “비둘기가 도덕 시간에 교실에 들어왔다/있음은 없음에서 나서/나도 너도 없는 듯 있고 있는 듯 없다며/노자 도덕경을 강의하는데…비둘기도 학생일 수 있고/학생도 비둘기일 수 있는 것이라고…학생들보다 노자를 먼저 깨달은 비둘기는/말 않고 가르치겠다며/말없이 교실을 떠난다/빈 책상자리가 있는 듯 없는 듯 휑하다.”라고 ‘사무사’를 읊었다. 윤동주는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고 사무사를 현대시어로 옮겼다. 공자는 기원전 11세기 주나라 초기부터 기원전 6세기 춘추전국시대 중기까지 전해 내려오던 노래 3000여편 중 자질구레한 것은 빼고 정리했다. 현재 311편이 전해지는데, 6편은 제목만 있으므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305편으로 편집한 셈이다. 논어 위정편에 ‘자왈시삼백(子曰詩三百)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 왈사무사(曰思無邪)’라고 했다. 공자 가라사대 “시 300편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생각함에 삿됨이 없다.”라고 정의한 것이다. ‘시삼백’은 시경의 그 시대 제목이다. 시 속에 담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사무사에 대한 해석이 구구하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듯 각자 취향에 따라 다르게 푼다. 조선왕조실록 단종 편에 “사무사란 무슨 뜻인가.”라는 단종의 질문을 받은 사육신 박팽년의 답이 명답이다. “생각하는 바에 사사로움이 없는 것이니, 마음이 바름을 일컫는 것입니다. 마음이 이미 바르면 모든 사물에서 모두 바름을 얻을 것입니다.” 또 한해를 접는 마지막 날이다. 생각 사(思), 없을 무(無), 간사할 사(邪) 세 글자의 의미가 무겁게 다가온다. 되새겨 보면 내뱉었던 말, 행동거지, 그리고 인터넷의 바다를 떠도는 기록물들이 두렵다. 삿됨이 없는 삶을 어찌 얻을 것인가. 사무사라, 사무사라….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도봉서원 복원 속도낸다

    도봉서원 복원 속도낸다

    서울시내 유일한 서원인 도봉서원 복원이 가속도를 내고 있다. 도봉구는 서울시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된 도봉서원과 각석군(刻石群) 복원을 위한 입찰신청을 마치고 곧 계약을 맺는다고 29일 밝혔다. 지난 20~21일 입찰참가등록 제안서를 받은 구는 30일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평가한 뒤 업체를 선정하기로 했다. 용역기간은 다음달 초 계약일로부터 4개월이다. 구가 선조6년(1573년) 건립된 도봉서원 복원에 팔을 걷어붙인 것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정암 조광조와 우암 송시열의 위패가 모셔진 사액서원으로 문화적 가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보존·관리가 안돼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백사 이항복 등 저명한 시인·묵객들의 시문이 남아 있으며 서원 터 앞 계곡에 다른 서원과 달리 사당의 기단과 옛 사료상의 도봉서원 유적으로 소개된 각석군이 원형대로 남아 있어 역사적 보존가치 또한 크다. 송시열이 ‘도봉동문(道峯洞門·도봉계곡)’이라고 글씨를 새긴 바위를 비롯해 당대 명필들이 글씨와 시문을 새긴 바위 11기가 흩어져 있다. 그러나 현재 도봉서원은 1971년 복원된 사우(祀宇·제사 지내는 곳)만 남아 있을 뿐이다. 구 관계자는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는 국립공원 내에 위치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것부터 푸는 것”이라면서 “법적 규정도 용역내역서에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또한 서원 터 2만 557㎡ 중 일부가 사유지로 돼 있어 보상문제도 걸림돌이라고 덧붙였다. 도봉서원을 서울시 기념물 28호로 지정하는 데 힘쓰는 등 보존·홍보를 위해 사단법인 ‘도봉서원’까지 만든 이병준(80) 원장은 “조광조가 젊었을 때 공무를 마치고 나면 수레를 몰고 찾아와 경치를 즐겼을 만큼 아름다운 명산인 도봉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어 문화관광코스로도 손색이 없다.”면서 “빨리 복원해 일반인들에게 개방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그는 “사당은 북쪽에, 오른편과 왼편에는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었고, 서원은 사당의 남쪽에 있었다.”면서 중간에 강당을 설치하고, 두 개의 협실로 강당의 날개를 삼았던 당시의 서원 배치를 설명했다. 이어 “동재와 서재가 복원돼 기숙사로 쓰고 강당을 설치해 관람객들에게 학술·교육·전시를 하는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충북 영동 황간 월류봉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충북 영동 황간 월류봉

    충북 영동 황간면 초강천(초강) 상류에는 월류봉(月留峯)이란 멋진 이름을 가진 산이 있다. 월류봉을 타고 오른 달이 서편으로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능선을 따라 강물처럼 흐르듯 사라진다고 한다. 그 모습에 반한 우암 송시열은 이곳에 한천정사를 짓고 아침마다 월류봉 중턱 샘까지 오르내렸다. 그래서 이곳 8개 명소를 한천팔경이라 부르는데, 으뜸은 월류봉이다. 아래에서 지긋이 올려보는 월류봉도 좋지만, 월류봉에 올라 내려다본 모습 또한 일품이다. ●한천팔경 중 으뜸인 월류봉 월류봉은 원촌리 주차장 앞에서 보는 모습이 가장 멋지다.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휘어져 나가는 초강천 뒤로 송곳처럼 우뚝한 봉우리 6개가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맨 왼쪽 봉우리 앞으로 월류정이란 정자가 날아갈 듯 앉아 있는 모습도 근사하다. 기막힌 자리에 화룡점정처럼 앉은 정자 덕분에 월류봉의 모습은 더욱 돋보인다. 이 정자는 예전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2006년에 세운 것이다. 후대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는 가히 돋보이는 역작이다. 한천팔경은 월류봉을 비롯해 화헌악·용연동·산양벽·청학굴·법존암·사군봉·냉천정의 여덟 경치를 말하는데, 대부분 월류봉의 여러 모습을 지칭한 것이다. 화헌악(花軒岳)은 봄에 진달래와 철쭉으로 붉어진 산을, 용연동(龍淵洞)은 월류봉 아래의 깊은 소를, 산양벽(山羊壁)은 월류봉의 깎아지른 절벽을, 청학굴(靑鶴窟)은 월류봉 중턱의 깊은 동굴을 이른 것이다. 월류봉 감상은 대개 주차장 앞에서 산을 올려다보며 감탄하다가 차를 타고 되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월류봉에 오르면 유장하게 흘러가는 초강천과 웅장하게 펼쳐진 백화산 조망이 기막히다. 산행에 앞서 주차장 앞에 세워진 월류봉 등산 안내판을 유심히 봐야 한다. 안내판에 따르면 초강천을 건너 산에 올랐다가 다시 강을 건너 원점회귀한다. 강변으로 내려가자 아저씨 한 분이 다슬기를 잡고 있다. “많이 잡으셨어요.” “뭘요, 물살이 세 많이 안 잡혀요?” 그의 바구니 안에는 다슬기가 가득했다. “돌이 물에 쓸려갔어요. 산에 가려면 신발 벗고 강을 건너오세요.” 징검다리가 물에 쓸려간 흔적이 보인다. 신발을 벗고 발을 물에 담그자 시원한 물살이 발가락을 어루만진다. 물의 촉감이 부드러워 기분이 좋아진다. 이 물을 예전에는 차다고 해서 한천으로 불렀다. 백두대간의 깊은 계곡인 물한계곡에서 내려오는 냇물이다. 강 중간쯤에 이르자 센 물살이 흐르는 곳에 물고기 몇 마리가 힘차게 지느러미를 흔들고 있다. 바닥이 미끄러워 발가락에 힘을 꽉 주고 건너는 맛이 제법 스릴 있다. 강을 건너면 미루나무들이 우뚝한 넓은 백사장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TV 드라마 ‘해신’을 찍었다. 산행에 앞서 월류정에 오르자 초강천의 유연한 곡선이 보기 좋다. 산길은 미루나무를 지나 백사장을 따라 이어진다. 월류봉 산신을 모신 서낭당을 지나면 길은 산비탈을 부드럽게 타고 돈다. 치솟은 산에 비해 길이 순한 것이 신기하다. ●초강천과 석천이 만나는 풍경 서늘한 공기가 밀려오는 큰 동굴을 지나면 길은 코가 땅에 닿을 듯한 급경사로 이어진다. 15분쯤 비지땀을 흘리면 점점 조망이 좋아지면서 5봉에 올라붙는다. 아래에서 보면 월류봉 5개 봉우리 중에서 왼쪽 봉우리인 월류봉(1봉)이 정상으로 보이지만, 위성항법장치(GPS)로 확인한 결과 의외로 5봉이 가장 높았다. 이제 휘파람 불며 봉우리를 타고 넘으면서 느긋하게 조망을 즐기면 된다. 4봉에 이르자 월류정 앞을 스쳐 U자를 그리며 흘러나가는 초강천 모습이 잘 보인다. 역시 강은 높은 곳에서 봐야 제맛이다.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풍경은 조금씩 바뀌고, 1봉에 이르자 기다렸다는 듯 시원한 조망이 열린다. 물한계곡에서 발원해 황간을 적시고 흘러온 초강천과 백화산에서 내려온 석천이 월류봉 앞에서 합류하는 장면이 감동적으로 펼쳐지고, 북쪽으로 주행산과 포성산으로 이어진 백화산맥의 흐름이 웅장하다. 하산은 1봉 오른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르면 곧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는 리본이 붙어 있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급경사를 10분쯤 내려서면 길이 순해지고 이어 물소리가 들리면서 초강천에 닿는다. 징검다리에서 탁족을 즐기고, 우암 송시열이 머물렀던 한천정사와 유허비를 둘러보면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글 사진 진우석 여행전문작가 mtswamp@naver.com ●산길 가이드 원촌리 월류봉 입구에서 5개 봉우리를 모두 돌고 내려오는 데 약 3.5㎞, 넉넉하게 2시간30분쯤 걸린다. 주차장에서 강을 건너고, 내려와 다시 강을 건넌다. 징검다리가 떠내려갔기 때문에 물살이 셀 때는 주의해야 한다. 스포츠 샌들을 가져가면 편리하다. ●가는 길과 맛집 월류봉은 황간면에서 4㎞쯤 떨어져 있다. 자가용은 경부고속도로 황간나들목으로 나오면 월류봉이 지척이다. 영동이나 황간에서 월류봉 가는 버스가 없다. 황간역에서 걸으면 월류봉까지 30분, 택시를 타면 5분도 안 걸린다. 월류봉 앞 한천가든(043-742-5056)은 민물 매운탕을 잘하고, 황간역 앞 동해식당(043-742-4024)은 30년 넘게 올갱이국을 내온 원조집이다. 칼칼한 국물에 수제비를 넣은 것이 특이하다. 올갱이국 5000원.
  • 공자의 철학이 페미니즘과 닿는다?

    ‘공자, 페미니즘을 상상하다’(김세서리아 지음, 성균관대 출판부 펴냄)는 유학과 페미니즘의 접합을 시도한 책이다. 척 봐도 그리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그래서 책 제목도 ‘주장’이나 ‘해석’이 아니라 ‘상상’이다. 사실 공자는 좋게 말해 ‘분별’, 노골적으로 말해 ‘차별’을 추구했다. 오늘날 ‘사농공상(士農工商)’ 하면, 선비가 제일 중요하고 장사치를 제일 하대했다는 4가지 계급 정도로 본다. 공자의 ‘사농공상’은 그보다 더 하다. 사농공상은 그냥 사민(四民·네 가지 백성 종류)일 뿐이다. 사농공상과 구분되는 것은 귀족계급 ‘공경대부(公卿大夫)’다. 공자를 숭배했던 우암 송시열을 비롯한 조선 후기 노론이 왕을 무시했던 이유도 ‘조선왕은 공경대부급에도 못 끼는 중국 황제의 신하(士)일 뿐이니, 같은 신하끼리 맞먹는 게 무슨 대수냐.’라는 논리 때문이다. 이런 엄격한 분별을 내세운 공자와 남녀 ‘평등’을 짝짓다니? 공자의 핵심 키워드 ‘인’(仁)을 다루는 첫 장에서부터 장벽에 부딪힌다. 여성학자이자 성신여대 교수인 저자 스스로도 인 개념은 “휴머니즘이긴 하지만 페미니즘일 수는 없다.”고 한다. 인은 엄격한 위계질서인 예(禮)로써 드러나는데, 페미니즘 입장에서 예란 쉽게 말해 여자는 부엌일이나 하라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 개념이 주체의 반성과 책임의식을 일깨우고 있다는 점에서 유학과 페미니즘을 잇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한다. 다음으로 검토하는 효(孝) 역시 마찬가지다. 단어 자체야 아름답지만, 실제 조선에서 권장된 효는 허벅다리 살점이나 간의 일부 정도는 잘라줘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것이 또 어딨을까. 그러나 저자는 이런 효를 어떻게든 페미니즘이 여성성의 특징으로 꼽는 ‘보살핌’으로 승화시키려 한다. 이런 식의 논의는 ‘대동(大同) 사회’, ‘화이부동(和而不同)’ 같은 유학의 대표적 키워드로 계속 이어진다. 쉽지 않은 작업임에도 저자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배척만 할게 아니라 동양적 전통에 뿌리내린 페미니즘을 구축해 보고 싶다는 욕망 덕이다. 그런데 이 욕망을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욕망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 고미숙은 연암 박지원에게 홀딱 반한 나머지 그를 포스트모더니즘을 선취한 인물로 추어올린다. 발랄한 해석이지만, 근대하고도 한참 거리가 먼 조선시대 집권노론층의 아웃사이더 한 명을 두고 ‘탈근대’ 운운하는 게 가능할까. 반면 저자는 ‘그냥 이렇게 한번 상상해 보는 것도 잘못인가요.’라고 끊임없이 반문한다. 고미숙이 무모한 걸까, 저자가 소심한 걸까. 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69〉괴산 화양계곡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69〉괴산 화양계곡

    화양계곡(화양동계곡)은 울창한 숲, 맑은 물과 너른 반석들이 어울린 별천지다. 백두대간 늘재에서 발원한 계류가 달천에 몸을 섞기 직전 빚어낸 곳이 화양계곡이다. 수량이 풍부하고 모래가 많아 물놀이하기 좋다. 하지만 물장구만 치고 돌아서기에는 좀 아쉽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손수 고르고 이름붙인 9곡을 찾아보며 숲, 물, 바위가 어울린 그윽한 산수미를 즐겨보자. ●송시열이 이름지어 아꼈던 아홉가지 풍광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대야산에 이르는 구간은 산세가 빼어나고 골이 깊어 구석구석 절경을 품고 있다. 그중에서 화양계곡은 호탕한 기운이 넘치고, 옛길을 따라 2~3시간쯤 풍경을 음미하며 걸을 수 있다. 화양계곡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우암 송시열이다. 성리학의 대가였던 우암은 화양계곡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아꼈다. 심지어 자신을 화양동주(華陽洞主)라고 부를 정도였다. 화양계곡의 대표 경치로 꼽히는 화양구곡(경천벽·운영담·읍궁암·금사담·첨성대·능운대·와룡암·학소대·파천)은 정계에서 은퇴하고 이곳에 은거하던 우암이 손수 고르고 이름도 지었다. 그래서 화양계곡 걷기는 9곡을 둘러보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화양동 버스정류장에 내려 주차장 쪽으로 걷다 보면 1곡 경천벽(擎天壁)이 자리잡고 있다. 기암이 가파르게 솟은 모습이 마치 하늘을 떠받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주차장을 지나면 자연학습관찰로가 시작되는데,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풍성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수백 년 묵은 나무들은 말년의 송시열이 노구를 이끌고 산책하는 모습을 지켜봤을지 모른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2곡인 운영담(雲影潭). 기암과 잔잔한 옥빛 물결이 일품인 곳으로 화양계곡 최고의 물놀이 장소다. MT 온 대학생들과 아이들이 신나게 물장구를 친다. 운영담을 지나면 길 양쪽으로 사람 키만 한 돌기둥 두 개가 보인다. 조선시대에 화양서원을 찾은 지체 높은 양반들이 말에서 내리던 하마비다. 조선 말기 한량으로 전국을 떠돌던 대원군 이하응도 말에서 내리지 않고 이곳을 지나가다가 묘지기에게 봉변을 당했다고 한다. 화양서원 안의 만동묘(萬東廟) 까지는 약 30개의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화양서원의 권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축 구조다. ●정치 건달의 소굴이 된 화양서원 화양서원은 조선 팔도에서도 가장 위세가 당당한 서원이었다. 서인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이 은거하던 곳에 세워진 사액서원으로 명나라 두 임금의 위패가 봉안된 만동묘를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위세는 ‘화양묵패(華陽墨牌)’를 발행하여 관리와 백성들을 수탈하기까지 이르렀다. 오죽했으면 매천 황현(1855~1910)이 화양서원의 정치 건달들을 일컬어 ‘서민들의 가죽을 뚫고 골수를 빨아먹는 남방의 좀’이라고 했을까. 서원 앞 물가엔 3곡 읍궁암(泣弓巖)이 있다. 북벌을 꿈꾸던 효종이 승하하자 우암이 새벽마다 올라가 활처럼 웅크려 절하며 울었다는 사연이 전한다. 금빛 모래가 펼쳐져 있는 4곡 금사담(沙潭)은 화양계곡 최고의 절경이다. 옥빛 청수 너머의 큼직한 바위엔 우암이 제자를 가르치던 아담한 암서재가 깃들어 있다. 암서재에 머물던 때가 우암에게는 ‘화양연화’(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와 같은 시기였을지 모른다. 불행하게도 우암은 당쟁에 휘말려 83세의 나이에 사약을 마시고 죽는다. ●인적 없는 숲길 따라 9곡 파천으로 별 보기 좋은 바위라는 5곡 첨성대(瞻星臺) 앞에서 다리를 건넌다. 뭉게구름처럼 생긴 6곡 능운대(雲臺)를 올려다보고 마지막 매점을 지나면 인적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물소리는 더욱 크게 울리지만 길에는 적막이 가득하다. 길게 누운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7곡 와룡암(臥龍巖)을 지나면 8곡 학소대(鶴巢臺). 학소대는 도명산의 입구인 철다리에서 잘 보인다. 옛날에는 백학이 이곳에 집을 짓고 새끼를 쳤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학소대부터는 인적이 뚝 끊긴다. 하지만 마지막 9곡인 파천(巴川)까지 이어진 호젓한 숲길을 빼놓을 수 없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진 숲길을 15분쯤 걸으면 새하얀 너럭바위가 깔린 파천이다. 옥빛을 담은 잔잔한 물결과 용의 비늘처럼 반질반질한 바위가 어울린 모습이 금사암 못지않은 비경이다. 너럭바위에 주저앉아 시원하게 세수를 했다. 잔잔한 수면으로 하늘이 바람이 구름이 내려와 앉는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언제일까.’ 불현듯 질문 하나가 맴돈다. ●산길 가이드 1곡 경천벽에서 9곡 파천까지 약 4㎞, 1시간 20분쯤 걸린다. 아이와 함께 천천히 걷는다 해도 왕복 3시간 정도면 넉넉하다. 차를 가져왔으면 파천에서 되돌아가야 하고, 대중교통으로 왔으면 파천을 지나 32번 도로와 만나는 학습원 버스정류장까지 15분쯤 더 걸을 수 있다. 화양계곡 입구에는 화양동오토캠핑장이 있다. 이곳에서 하룻밤 묵는 여정도 훌륭하다. 속리산국립공원 화양동 분소 (043)832-4347.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중부고속도로 증평 나들목으로 나와 증평 읍내~592번 지방도(청안 방면)~부흥사거리~금평삼거리(좌회전)~화양동. 청주시외버스터미널(가경동, 1688-4321))에서 화양계곡행 버스는 07:20 09:20 11:20 12:20 14:00 15:00 16:40 17:40. 화양계곡에서 청주행 버스는 07:00 08:50 10:40 13:00 15:20 16:40 18:10 19:30. 괴산의 대표 음식은 올갱이(다슬기의 사투리) 요리다. 화양계곡 안의 음식점보다는 청천면 근처의 신토불이가든(043-832-5376)과 괴산 시내의 기사식당(043-833-5794)의 올갱이 요리가 유명하다.
  • 속리산 국립공원 지정 40돌 사진전 열고 기념책자 발간

    충북 보은군에 위치한 속리산 국립공원이 24일 국립공원 지정 40돌을 맞는다. 속리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관리사무소 내에서 국립공원 사진전을 열고, 속리산 등산객들의 무사고를 기원하는 고사를 지낼 예정이다. 또 연말에는 속리산의 역사와 문화재, 변화된 모습 등을 담은 ‘속리산 국립공원 지정 40주년 기념책자’를 발간할 계획이다. 속리산은 1970년 3월24일 국내에서 여섯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연간 140만명이 찾는 대표 국립공원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최고봉은 천왕봉(1057m)이며 주변에 법주사, 정이품송과 송시열 선생이 은거한 것으로 알려진 화양서원 등이 있다. 2009년 11월15일에는 세계자연보전연맹으로부터 자연보전가치가 높은 세계적 국립공원으로 인증받았다. 보은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역사인물 18인 고정관념 뒤집기

    ‘숙주나물’이란 이름에서 보듯, 배반의 화신처럼 여겨지는 신숙주가 알고 보니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끈 탁월한 인재였다? 국정을 어지럽힌 외척 난신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인 윤원형이 사실은 서얼 등용을 추천하고 양반 기득권 세력의 이익 독점에 제동을 건 정치가였다? 이처럼 교과서나 역사서에 의해 형성된 고정관념을 깨는 도발적인 평가를 통해 18명의 역사인물들에 대한 뒤집어 보기를 시도한 책이 나왔다. ‘한국사 인물통찰’(김종성 지음, 역사의아침 펴냄)이다. ‘폄하와 찬사로 뒤바뀐 18인의 두 얼굴’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18명의 말과 행적, 활동 당시의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해 왜곡된 측면은 없는지 살폈다. 찬사의 이면을 되짚었고, 폄하의 밑바닥을 들쑤셨다. 결과는 놀라운 수준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면 이렇다. 저자는 고려시대 강감찬 장군이 귀주대첩을 거둔 ‘구국의 명장’쯤으로 평가받지만, 당시 세계의 패자였던 요나라의 남진을 꺾음으로써 동아시아 전역에 평화구도를 정착시킨 세계적인 영웅이었다고 주장한다. 꽉 막힌 강경 쇄국론자로 인식된 흥선대원군도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외려 마지막까지 국제친선에 매달린 인물이었다는 것. 찬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태종에게서 ‘양보’를 뜻하는 한자 ‘양(讓)’이 들어간 군호를 받은 양녕대군이 실제로는 충녕대군(세종)에게 경쟁심을 가졌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한 대학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퇴계 이황이 28세 때부터 69세까지 무려 42년씩이나 관계(官界)를 들락거린 ‘정치 9단’이었으며, 효종과 함께 북벌론의 기수로 알려진 송시열이 실제로는 북벌과 관련해 아무런 일도 추진하지 않았다는 등 ‘발칙한’ 주장도 여럿 내세웠다. 태조 이성계가 여진족의 후예일 수도 있다는 의혹, 고종황제를 막후에서 조종한 것으로 알려진 명성황후가 사실은 남편의 진정한 후원자였다는 평가도 내놓는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이들 18명 외에도 잘못 알려진 인물들이 수없이 많다.”며 “이 책을 통해 다른 역사인물들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1만 3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서울 도봉서원일대 문화재지정

    서울시는 경관이 빼어나고 유적이 비교적 잘 보존된 도봉구의 도봉서원 터와 주변 계곡, 글씨가 새겨진 바위들을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30일 밝혔다. 도봉서원은 조선시대 대표 성리학자 조광조와 송시열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사액서원(왕으로부터 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이다. 이항복 등 저명한 시인들이 시문을 남긴 서울의 대표적인 서원 중 하나다.1871년(고종 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유적 대부분이 사라져 현재는 1970년 원래의 기단 위에 복원한 사당만이 남아있다. 특히 이곳은 서울 지역의 다른 서원과 달리 사당의 기단과 14개의 글이 새겨진 바위 11개가 서원 터 앞 계곡에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유적의 경계를 비교적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씨줄날줄] 도봉서원/노주석 논설위원

    숭유억불을 내세운 조선은 고려의 사원(寺院)을 대신할 서원(書院)을 장려했다. 본래 유교의 선현에게 제사 지내는 사(詞)와 자제를 교육하는 재(齋)를 합한 사설기관이었다. 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1495~1554)이 경상도 순흥에 고려학자 안향(1243~1306)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백운동서원’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 공식적인 첫 서원이다. 1550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퇴계의 건의로 명종이 친필로 쓴 ‘소수서원’이라는 액자를 내렸다. 사액(賜額)서원의 시초다. 향촌의 문중 결집, 나아가 정치적 붕당으로 역기능이 생겼다. 명종 이전에 29곳에 불과하던 것이 선조대 124곳, 정조대에는 650곳에 이르렀다. 역사학자 이이화가 쓴 ‘왕의 나라 신하의 나라’(김영사 간)에는 서원의 세도가 실감 나게 그려져 있다. ‘제사를 지낼 때는 서원의 상징이 찍힌 묵패를 관아나 부호에게 돌렸다. 경비명세가 적혀 있었고, 경비를 내지 않으면 수령은 언제 모가지가 날아갈지 몰랐다. 부호는 부모 제사에 소홀하다, 자식교육을 제대로 못 시켰다, 관가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원 뜰에 무릎을 꿇렸다. 매를 때리거나 관아에 가두게 했다. 서원의 통보가 없으면 풀려날 수 없었다.’ 서원은 두고두고 왕권의 두통거리가 됐다. 영조·정조가 정비에 애썼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871년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려 1000여곳을 헐어 버리고 47곳만 남기면서 권세는 막을 내렸다. 서울시가 도봉구 도봉서원 터를 시 문화재로 지정예고했다. 도봉서원은 조선조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인 정암 조광조(1482~1519)와 우암 송시열(1607~1689)을 모신 서원이다. 도읍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대표적 사액서원으로 영조가 현판을 썼고, 정조가 찾아와 제문을 내렸다. 비록 서원철폐령의 된서리를 맞아 훼철됐지만 서원이 자리잡은 터와 도봉계곡은 시인 재사들이 ‘경치가 아름답기로 경기 안에서 으뜸’이라고 치켜세운 곳이다. 겸재 정선(1676~1759)의 ‘도봉서원도’와 우암이 쓴 ‘도봉동문(道峯洞門)’ 등 14개의 각석(刻石)이 운치를 더한다. 도봉서원 문화재 지정 소식이 짙어 가는 가을 향취를 전해 주는 듯하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효종때 북벌주도 이후원 묘역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

    효종때 북벌주도 이후원 묘역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

    조선 효종 때 우의정을 지내며 북벌(北伐) 계획을 주도한 완남부원군 이후원(1598∼1660년)의 묘역이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된다. 서울시는 원형이 잘 보존된 강남구 대모산 동남쪽 자락의 이후원 묘역 일대가 개발과정에서 훼손되지 않도록 시 기념물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이후원의 묘역은 그의 두 아내가 함께 묻혀 있는 무덤과 제물과 향 등을 올려놓는 상석, 무덤 양옆에 세운 망주석 등으로 이뤄졌다. 다른 사대부 묘역과는 달리 봉분을 돌(호석)로 두르고 해치상이 배치된 점이 특징이다. 조선 후기 대표적 성리학자 송준길과 송시열이 각각 비문과 추모의 글을 짓고 명필인 이정영이 비문의 글씨를 썼다. 이후원은 광평대군 이여(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5번째 아들)의 7세손으로 인조 때의 공신이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진실’ 잃어버린 한국史

    역사 기술이 객관성을 의심받을 때가 더러 있다. 당대의 권력자나 역사가의 자의적인 해석과 판단에 따라 쓰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론 역사를 바라볼 때 비판의식이 필요하다. 일제강점기를 거친 한국사를 볼 때는 더욱 그렇다. 이 시기에 우리 역사가 심각하게 왜곡된 데다 당시 역사학자-일제 식민사관에 근거한-의 줄기가 지금까지 질기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우리의 역사는 조선 후기 노론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철학으로 주류 역사학의 오류를 꼬집는다.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조선왕 독살사건’, ‘세상을 바꾼 여인들’ 등 30여권의 저서를 내면서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온 그는 신작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역사의아침 펴냄)에서 고대사, 삼국사기, 조선후기사, 항일투쟁사 등 4대 한국사의 왜곡을 집중 분석한다. ●한국 고대사 복원이 왜곡 시정의 출발 한국사 왜곡에는 일제 식민사관과 노론사관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두 사관의 뿌리는 하나다. 조선 후기 집권당이었던 노론의 상당수 인사는 일제의 대한제국 점령에 협력한 대가로 작위와 은사금을 받고, 지배층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했다. 이런 가문 출신의 일부가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 식민사관 전파에 일조했고, 해방 후에도 사학계 주류를 장악한 결과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이 한국사를 구성하는 주요 관점이 됐다는 설명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가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우선 역사가를 연구하라.”고 했던 것은 한국 주류 사학계에 가장 잘 들어맞는 말이다. 저자는 한국사의 4대 왜곡을 바로잡는 출발점을 본래 고조선의 역사적 위치를 복원하는 지점에 둔다. 보통 우리는 고조선에 대해 ‘청동기문화를 바탕으로 성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라고 배운다. 그러나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단군조선이 기원전 24세기에 건국됐다.’고 말한다. 청동기시대는 만주지역에서는 기원전 15~13세기에, 한반도에서 기원전 10세기에 전개됐다. 일연에 따르면 단군조선은 만주까지의 광대한 지역을 통치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식민사관에서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조선을 신화의 영역으로 치부하고,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사군(漢四郡)’도 논란거리다. 중국 고대 한나라 무제(BC 141~87)는 고조선 우거왕과 조한전쟁을 벌여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지역에 4개의 행정구역 ‘한사군’을 만들었다는 게 중국 동북공정의 핵심이다. 사마천은 ‘사기’의 조선열전에 조한전쟁을 적으면서도 ‘한사군’이 주둔했던 지역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는다. 후세에 ‘사기’ 본문 뒤에 덧붙인 주석에 구체적으로 한사군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사기’의 조선열전에는 ‘사군’으로, 흉노열전에서는 ‘이군’으로 나와 기록이 서로 맞지 않는다. 한사군의 명칭 자체가 수수께끼인 것이다. 그런데 동북공정에 맞서기 위해 정부가 세운 동북아역사재단(옛 고구려연구재단)의 ‘낙랑문화연구’에서 “제7차 교과 과정의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한사군의) 존재 자체와 의미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서술…삼한 등과 같은 주변 집단들의 역사적 변화 발전 양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적었다. 정부 연구기관이 존재여부가 불투명한 한사군의 존재를 옹호하고 있다는 비판했다. ●식민지배 정당화를 위한 역사가 한국사 주류? 저자는 고대사 왜곡의 원인을 일제 조선총독부 등이 1907년부터 한반도와 만주 전역을 점령하기 위해 진행한 연구에서 찾는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우키치와 이케우치 히로시, 도리이 류조, 세키노, 이마니시 류 등이 이 연구에 뛰어들어 조선 역사를 만주 역사의 한 부분으로 만들고, 고구려 유적을 한사군의 중심인 낙랑군 유적으로 재창조했다. 한국사를 식민지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도록 해 일제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다. ‘삼국사기’가 김부식이 조작한 가짜라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도 그무렵 나왔다. 쓰다는 ‘조선역사지리’ 등의 저서에서 고대 한반도 북부에는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이 있었고 한강 남쪽에 78개 소국들이 우글거렸다고 적었다. 그래야 소국들을 통합할 ‘임나일본부’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는 이 시기 한반도 남부에 신라와 백제라는 강한 고대 국가를 언급하고 있으니 삼국사기가 조작됐다고 주장해야만 하는 이유다. 주류역사학계의 고대사 인식체계가 일본 식민사관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면, 조선 후기사에는 노론사관이 있다. 저자는 노론사관은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조작해 내고, 효종의 북벌에 시종일관 발목을 잡은 송시열이 북벌의 화신이며 실학의 이용후생학파(중상학파)를 노론이 주도한 것처럼 서술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또 일제 식민사관에 경도된 역사학자들이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사까지 소멸되도록 한 이유 등을 조목조목 짚어 내며 흔히 알려진 역사의 정설을 뒤집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국가 연구기관의 실태도 샅샅이 파헤친다. ●한국사 바로잡기는 동북아 평화의 시작 이런 주장은 주류 사학계를 비난하거나 분열을 유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저자는 “한 세기 전 일제 식민사학에 의해 공격받았던 한국사는 지금 그 식민사학을 토대로 한 중화 패권주의 사학에 의해 다시 공격받고 있다.”면서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는 침략적 역사관을 상호 호혜적인 평화적 역사관으로 전환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제 식민사관을 극복하면 동북공정은 자연히 무력화되며, 이러기 위해서는 한국사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면 그의 역사관 역시 편향된 것이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다. 저자가 내놓은 광범위한 자료와 섬세한 분석은, 학창시절 무조건 외운 한국사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1만 5000원. 최여경기자 kids@seoul.co.kr
  • [씨줄날줄] 무관 노상추/함혜리 논설위원

    경자년(정조 4년·1780년) 4월1일 맑음. “아침 일찍 악공을 불러 가묘에서 제사를 지냈다.허서방네 논을 빌려 연회석을 마련했다. 아침밥이 끝나기도 전에 누가 정자나무 아래 와 앉으며 호신(呼新·막 급제한 사람을 부르는 예)하니 정좌랑이었다.…밤늦게 연회가 끝나고 선산부사는 돌아갔지만 다른 손님들은 모두 머물렀다. 내외 손님들로 온 방이 가득차 나는 잘 곳이 없었다. 오늘 다녀간 사람이 오,륙천에 이르는 듯하다.” 안강노씨 경암공파 12대 손인 조선 후기의 무관 노상추(尙樞·1746∼1829년)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노상추의 집안은 월파공 노이익이 영남 유학파를 대표해서 서인들의 횡포를 비난하는 상소문을 올렸다가 노론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의 노여움을 사 옥사한 이후 문과 응시가 봉쇄된 상황이었다. 증조부인 노계정이 병조판서까지 지냈지만 이후 급제한 후손이 없던 차에 그가 무과시험에 합격했으니 가문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그것도 10년 도전 끝이었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노상추는 무과 급제 후 변방의 진장(鎭將)을 거쳐 국왕 경호대인 금군, 궁궐 수비 책임자인 오위장 등 오랜 무관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삭주부사 등 지방관을 거쳐 66세이던 1811년 가덕첨사까지 역임했다. 노상추는 긴 일기를 남겼다. 장남이 일찍 세상을 떠난 데 충격을 받은 아버지가 차남 노상추에게 집안의 일기를 작성하도록 한 것은 1762년이다. 그의 나이 18세였다. 이후 82세까지 쓴 일기에는 자신과 가족의 하루 일과부터 30년 넘게 봉직한 군생활의 나날들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조상 제사를 잘 모시지 않는 종손 종옥에 대한 섭섭함, 첫 부임지인 갑산에서 알게 된 관기 석벽(惜壁)에 대한 애틋한 심정도 담았다. 2005년 영인본 출간으로 관심을 모았던 그의 일기를 소재로 ‘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문숙자 저·너머북스 펴냄)가 출간됐다. 노상추는 남인 계열로 서인들의 극심한 견제를 받아 큰 벼슬에 오르지 못했고 역사에 남을만한 공을 세우지도 못했다. 하지만 18세기 후반 조선 무반가의 일상을 현미경 들여다보듯이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남긴 일기 덕분이다. 어찌보면 그게 더 큰 업적일지 모른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윤증 선생 유물 1만여점 국민품으로

    윤증 선생 유물 1만여점 국민품으로

    우리나라 종가 가운데 문화재급 유물을 가장 많이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 후기 대학자 명재(明齋) 윤증(1629~1714) 선생의 유물과 유품 1만여점이 7일 충남도역사문화연구원에 영구 기탁됐다. 도역사문화연구원은 이날 회의실에서 윤증 선생의 12대 종손인 윤완식(53)씨가 참석한 가운데 윤증 집안 유물 영구 기탁식을 가졌다. 윤씨가 이날 기탁한 유물은 8999점으로 2007년부터 연차적으로 기탁한 1644점을 합치면 모두 1만 643점에 이른다. ●보물 1495호 ‘윤증 초상’ 6점 포함 윤씨는 2004년 국사편찬위원회에 위탁했던 것을 수탁기간이 끝나자 충남도역사문화연구원에 영구 기탁했다. 당초 이 유물들은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윤증고택 등에 있었다. 윤씨는 “국사편찬위원회에 위탁했던 것은 유물을 보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면서 “유물은 본래 있던 지역에 있어야 가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도역사문화연구원으로 옮겨 영구 기탁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탁한 유물 가운데 보물 제1495호인 ‘윤증 초상’ 6점이 가장 눈에 띈다. 윤증 초상은 1744년 어용화사인 장경주가 그린 것부터 일제 강점기 때까지 그려진 것으로 국내 초상화 변천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초상화 제작연대와 내용을 기록한 ‘영당기적(影堂紀蹟)’도 가치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도역사문화연구원 서흥석 연구원은 “누가, 언제, 얼마를 받고 초상화를 그렸는지 자세히 기록한 책자를 남긴 것은 국내에서 매우 드물어 사료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상투관·빗·합죽선 등 중요민속자료도 중요민속자료 제22호로 지정된 유품 54점도 기탁됐다. 윤증 선생 등이 쓰던 상투관, 빗, 신, 합죽선, 인장 등으로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초기 천문과학 형성과정과 우주관을 보여주는 해시계와 혼천의도 있다. 논산시 향토문화유적 제12호 ‘윤증가의 책판’ 1039점과 고문서 6000여점도 기탁됐다. 서흥석 연구원은 “고문서를 해독하면 윤증 선생 조상 때부터 교류해온 이율곡과 성혼, 김장생, 송시열 등 기호학파 거두들의 숨은 얘기나 학설, 인물평 등이 기록돼 있을 가능성이 커 새로운 역사적 사실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윤증 선생은 조선 숙종 때의 대학자로 관직을 포기하고 낙향해 평생 후학양성에 힘쓴 소론의 영수이다. 스승 송시열의 주자학적 조화론과 의리론을 비판한 진보세력으로 노론의 정국 전횡을 견제했다. 충남도역사문화연구원은 이번에 기탁받은 윤증 선생의 유물을 훈증처리한 뒤 수장고에 보관하고 훼손된 것은 보수할 계획이다. 도록을 발간하고 특별전시회와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다른 문중도 유물 기탁하는 계기됐으면” 종손 윤씨는 “문중의 유물이지만 지역 것이기도 하다. 집안에 남아 있는 유물 1000여점도 정리되는 대로 기탁할 계획”이라며 “이번 유물 기탁이 연구자료나 후손 교육에 쓰이고 다른 문중에서도 사회에 유물을 기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명재 윤증 고택 유물 1만점 영구기탁 윤완식 씨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명재 윤증 고택 유물 1만점 영구기탁 윤완식 씨

    사람들은 ‘백의정승’이라고 불렀다. 숙종임금이 대헌사, 우참찬, 좌의정 등의 벼슬을 내렸으나 효행과 학문에 열중하기 위해서 끝까지 사양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의 대학자 윤증(1629~1714년) 선생이다. 그는 우암 송시열의 사문(師門)에 들어갔으나 나중에 노론의 영수인 우암과 서로 첨예하게 맞서기도 했다. 이른바 회니시비(懷尼是非)의 발단이 된 것은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 회자된다. 당시 우암은 ‘회덕’에, 명재 윤증은 ‘니산’(노성) 지역에 살아 그렇게 유래됐다. ●“유물은 본래 있던 지역서 가장 가치” 지난 2일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위치한 명재 윤증의 고택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 대통령이 2008년 10월 이곳을 방문했다가 기념식수한 토종 ‘꽝꽝나무’가 눈에 띈다. 내국인은 물론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외국인도 많다. 연간 2만~3만명이 다녀간다고 하니 고택의 기치가 어떠한지 짐작이 간다. 그동안 많이 소개됐던 것처럼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행랑채 등으로 이루어진 상류층 양반가옥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고택 뒤에는 수령이 꽤 됐을 법한 낙락장송 수십그루가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했다. 고택 바로 옆에는 300여년 전수돼 왔다는 넓은 장독대가 입맛을 당기게 했다. 주변에는 산수유나무들로 봄냄새를 물씬 풍긴다. 이 고택에 살고 있는 명재의 13세손 윤완식(53)씨. 그는 최근 보물 1495호인 명재 영정 일괄 6점과 중요민속자료 22호 60여점을 포함, 모두 1만여점의 유물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 영구 기탁키로 해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는 ‘충무공 고택 터’가 경매로 나와 충격을 준 사례와는 대조적이어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동안 고택의 보물과 중요민속자료 등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소장해 왔으며 오는 6월 그 기간이 만료된다. 따라서 이후에는 이들 자료와 함께 윤씨 종가에서 대대로 사용해 왔던 민속품과 유물들이 충남문화연구원에 기탁, 관리되는 것. 연구원측은 앞으로 고택소유의 유물을 학문적으로 정리하는 한편 체험 및 답사 프로그램도 운영키로 했다. “이러한 유물들이 과학적이고 안전한 곳에서 보존되게 하는 것은 물론 우리 모두의 자산이기 때문에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계속 물려줘야 합니다. 어느 학자의 말처럼 역사의 유물은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고 미래를 내다보게 하는 것입니다. 유물은 본래 있던 그 지역에 있어야 가장 가치가 있지요.” ●“종가보존법 제정됐으면…” 명재 고택은 올해 11월이면 꼭 300년주년이 된다.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보존 및 관리가 잘됐다는 평가에 대해 그는 “집은 생물과 같아 사람이 함께 숨쉬고 살면서 보살펴야 한다. 아마 300년 동안 집을 비우지 않고 살아서 그런 것 같다.”면서 더 오래 갈 수 있도록 국민과 함께 하는 고택체험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충무공 고택 터 경매와 함께 충무공 종가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여 있다는 최근 신문보도에 대한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종가 고택을 지키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문화재는 우리 품격인데 종가보존법을 제정하든가 해서 다함께 관심을 갖고 지켜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또 저는 슬하에 1남1녀가 있지만 걱정입니다. 요즘에는 출산율이 저조하잖습니까.” 윤씨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0년 전부터 고택에서 91세 노모와 함께 지낸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고택문화재소유자협의회 부회장직을 맡아 전국 650여곳 고택문화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글 km@seoul.co.kr
  • 충남, 기호학파 문화유산 본격 개발

    충남, 기호학파 문화유산 본격 개발

    “영남학파만 문화유산이 있는 게 아니다.” 충남도와 논산시가 조선조 영남학파와 쌍벽을 이룬 기호학파 문화유산 개발에 나섰다. 논산은 사계 김장생과 아들 김집의 생거지 등이 있어 이이, 김장생, 송시열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본거지로 꼽힌다. 24일 두 자치단체에 따르면 오는 2020년까지 국비 2230억원, 도비 1115억원, 시비 1115억원 등 모두 5000억여원을 들여 논산을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 유교문화유산을 집중 개발한다. 도 관계자는 “내년에 백제문화권 개발이 끝나면 곧바로 사업을 착수할 계획”이라며 “내년까지 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5억원의 용역비를 세워놓았다.”고 밝혔다. 도와 시는 중요민속자료 190호인 노성면 교촌리 윤증고택(사진 위)과 기호학파 거유들을 기리기 위해 유림들이 세운 강경읍 황산리 죽림서원(충남도문화재자료 75호) 등을 보수, 정비한다. 논산은 서원 10개, 향교와 고택 각각 3개 등 기호학파 유산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하지만 경북 안동에 있는 이황의 도산서원과 하회마을 등으로 대변되는 영남학파 유산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논산시는 충남도 용역에 앞서 오는 4월 김장생 선생을 기리기 위해 1634년 지어진 연산면 임리 돈암서원(아래·국가사적 383호)의 시설보수 등에 착수한다. 6월에는 사계기념관과 사적공원 등 조성사업에 나선다. 충남도 관계자는 “이들 문화유적을 관광산업과 연계, 기호학파의 본거지임을 널리 알릴 계획”이라면서 “우암 송시열의 본거지인 대전 회덕 등을 포함해 개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논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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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그룹 달력 일본 전시회에서 특별상 수상

    SK그룹 달력 일본 전시회에서 특별상 수상

    SK그룹은 22일 자체 제작한 ‘2009년 VIP용 달력’이 제60회 일본 달력 전시회에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특별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일본 인쇄산업연합회가 주관한 달력 전시회는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서 제작된 달력을 대상으로 응모작을 모집해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의 심사를 거쳐 수상작을 선정한다. 올해 VIP용 달력은 우암 송시열의 서예작품, 광개토대왕 비문, 고려시대 탄연의 필적이 담긴 비석 등을 소재로 디자인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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