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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 존망 위기 어찌 몸 아끼랴”…육순 老시인 구국 순절의 칼[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국가 존망 위기 어찌 몸 아끼랴”…육순 老시인 구국 순절의 칼[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고경명은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의 시는 ‘바람을 읊고 이슬을 날리며 은하수를 뛰어넘고 안개를 올라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왜란이 일어나고 왜적이 도성을 점령하자 전라도관찰사 이광은 그에게 의병을 모으기 위한 격문(檄文)을 요청했다. 고경명은 그만큼 대(大)문장가인 동시에 호남을 대표하는 지성이었다. 고경명의 간절하면서 감동적인 격문은 이르는 곳마다 뜻있는 사람들의 궐기를 이끌었다. 60세 노(老)시인은 붓을 쥐던 손에 칼을 잡고 의병장이 됐다. ●간절하고 감동적인 마상격문 ‘임진년 6월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은 삼가 각 도 수령과 백성들과 군인들에게 급히 통고한다. 근자에 국운이 불길하여 섬 오랑캐가 불시에 침입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와 약속한 맹세를 저버리더니 나중에는 통째로 집어삼킬 야망을 품었다. 우리 국방이 튼튼치 못한 틈을 타 기어들어 하늘도 무서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북상하고 있다.…경명은 비록 늙은 선비지만 나라에 몸바치려는 일편단심만은 그대로 남아 있어 밤중에 닭의 소리를 듣고는 번민을 이기지 못하여 강 한복판 배의 노를 치면서 스스로 의로운 절개를 지키려 한다. 한갓 나라를 위하려는 성의만 품었을 뿐, 자기 힘이 너무나 보잘것없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제 의병을 규합하여 곧장 서울로 진군하려 한다.’ 마상격문(馬上檄文)의 한 대목이다. 고경명은 1592년 5월 29일 담양 추성관에서 전라도 21개 지역 61명의 사림 대표가 모인 가운데 전라좌도 의병장에 추대된다. 6월 1일 한양을 향해 출발한 6000명의 호남의병은 전주에 이르렀을 무렵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상황을 판단하고자 훈련을 하며 잠시 머무른다. 고경명이 다시 북상을 시작하면서 6월 24일 지은 것이 마상격문이다. 글자 그대로 ‘말 위에서 지은 격문’이라는 뜻이니 그만큼 급박한 위기상황이었다는 뜻이다. 고경명은 ‘국가존망의 위기에 어찌 감히 하찮은 제 몸만을 아끼려고 하겠느냐’고 마상격문에 적은 그대로 우리가 아는 것처럼 7월 10일 금산 전투에서 왜적을 공격하다 장렬하게 순절한다.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1533~1592)은 전라도 광주 제봉산 아래 압보촌에서 태어났다. 현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이다. 이곳에는 고경명과 두 아들 종후와 인후, 종사관 유팽로와 안영을 기리는 포충사(褒忠祠)가 있다. 1601년 세웠고, 1603년 사액됐다. 1865년 대원군의 서원·사우 철폐령에도 장성 필암서원과 함께 살아남았다.포충사는 지금 로제와인색 배롱나무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포충사가 자리잡은 제봉산은 해발고도 165.5m로 높지 않지만 나지막한 곡선이 아름답다. 짐작처럼 제봉이라는 고경명의 아호는 이 고향 마을의 뒷산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고경명의 무덤이 있는 전남 장성 영천리의 오동촌 뒷산 역시 제봉산이다. 장성 제봉산은 고경명의 무덤이 옮겨진 뒤 그를 기려 붙여진 이름이다. 광주 제봉의 정기가 고경명을 낳고 다시 그의 의기가 장성 제봉에 이식된 셈이다. ●“시 가운데 그림이” 明도 인정한 시인 고경명은 26세이던 1558년 식년문과에서 장원급제했다. 성균관 전적에 이어 홍문관 부교리, 부수찬, 교리에 이르는 5년 동안은 평탄하게 승진했다. 하지만 당대 대표적 외척의 한 사람인 이량이 사림의 탄핵으로 실각하는 과정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량의 전횡을 논죄하는 데 참여한 제봉은 관련 정보를 당사자에게 유출했다는 이유로 울산군수로 좌천되곤 곧 파직됐다. 이 사건으로 고경명은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을 조정에서 쓰임을 받지 못했다. 대신 낙향한 제봉은 호남의 문인들과 폭넓게 교유하며 산수를 유람하는 시간을 가졌으니 시인으로 크게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것도 역설적으로 향리에서 한가롭게 머물던 시절이 그만큼 길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봉은 1581년(선조 14) 영암군수로 다시 기용됐다. 곧바로 종계변무주청사 김계휘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서장관(書狀官)이란 외교 문서의 기록을 담당하는 직책이다. 당대 명나라 문신 장응회(莊應會)는 고경명의 시를 두고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는 것 같아서 원진(元)·백거이(白居易)·위응물(韋應物)·유우석(劉禹錫)과 비교해 명나라와 조선의 표준을 세울 수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제봉의 시가 명나라에서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고경명은 이후 서산군수와 종부시 첨정, 한산군수, 사복시 첨정, 순창군수 등을 역임하고 1591년 동래부사에 임명됐지만 곧 파직돼 고향으로 돌아갔다. 후임 동래부사 송상현은 이듬해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에 맞서 영웅적으로 수성전(守城戰)을 벌이다 전사한다. 천문에도 조예가 깊었던 제봉은 임진년 초 “올해는 장성(將星)이 분명히 보이지 않으니 장수(將帥)가 이롭지 못하겠다”며 국가의 환란을 예고했다. 장성은 북두칠성의 두 번째 별 천선(天璇)을 가리킨다. 고경명이 추성관 추대 직후 지은 격문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나는 경전의 장구(章句)나 따지는 우활한 선비로 병법에 어두우나 장수를 뽑는 이 자리를 위촉받아 망령되이 대장에 추대되었으니, 이미 흐트러진 사병들 마음을 수습하지 못해 동지들의 수치가 될까 두려워한다. 다만 신하의 의리로 마땅히 국난에 죽어야 하는 것이고, 군대는 의리상 곧은 것을 세다고 여기니 그 수효의 많고 적은 것에 달려 있지 않다.…무릇 우리 도내 사람들은 아비가 아들에게 일러 주고 형이 아우에게 권면하여 의로운 군대를 규합해서 함께 일어나, 용맹스럽게 결단을 내려 선(善)에 따를 것을 바라나니 미혹되어 자신을 그르치지 말게 하라.’신경(1613~1653)의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에는 ‘격문이 이르는 곳마다 사대부들이 감격해 울면서 분연히 궐기했다. 고경명이 개연히 의병장에 올라 늙고 병든 것을 사양치 않으니, 응모하는 자가 날로 모여들었다’고 했다. 고경명은 전라도 의병군의 결성 보고와 함께 왜적을 격퇴하겠다는 출사표를 서해 뱃길로 조정에 전달토록 한다. 의병군은 6월 22일 전주에서 여산으로 진을 옮긴 데 이어 27일 은진으로 북상해 왜적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는데 황간·영동의 왜적이 금산을 점령한 데 이어 장차 곡창 호남의 심장부인 전주를 침범할 계획이라는 정보를 입수한다. 휘하 장수들이 먼저 도내의 적을 토벌한 뒤에 북쪽을 정벌하자고 다투어 청하자 제봉은 당초 계획을 바꾸어 7월 1일 연산으로 군사를 돌린다. 의병은 9일 진산을 거쳐 금산성의 초입에서 전라도방어사 곽영의 관군과 좌·우익으로 진을 편성했다. 당시 금산의 왜군은 전주를 공격하려다 이치에서 황진 장군의 조선군에 크게 패하자 물러나 금산성에 웅크리고 있었다. 선조수정실록은 금산 전투의 전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때 왜적은 금산으로 퇴각하여 진을 두터이 치고 있었다. 경명이 방어사 곽영과 재를 넘어 험한 곳으로 들어가 곧장 금산성 밖에 육박하였는데 곽영이 먼저 날랜 장사 수백 명을 보내어 적을 시험하다가 물러나자 경명이 북을 울리며 전투를 독려하여 도로 적병을 성 밖에서 위축시키고 화포를 쏘아 적이 주둔하던 관사를 불태우니 적이 감히 나오지 못했다.’ 이튿날 동틀 무렵 고경명은 다시 곽영과 군사를 진격시켜 각각 북문과 서문을 공격했다. 왜적이 군사를 총동원해 약해 보이는 관군진영을 공격하니, 관군 선봉장인 영암군수 김성헌이 말을 채찍질해 먼저 도망치자 관군이 크게 패했고 의병도 대오가 무너지며 흩어졌다. 이때 제봉이 말에서 떨어졌는데 말이 달아나 버리자 종사관 안영이 자기 말을 타게 하고는 걸어서 따라갔다. 또 다른 종사관 유팽로는 대장이 나오지 못했다는 소식에 말을 채찍질해 어지러운 군사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수정실록은 이들의 최후를 이렇게 적었다. ‘이에 경명이 팽로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나는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그대는 말을 달려 빠져나가라’ 했다. 팽로가 ‘어떻게 차마 대장을 버리고 살기를 구하겠습니까’ 하고는 안영과 함께 경명을 에워싸고 있다가 모두 전사했다. 경명의 둘째아들 인후도 달려가 싸우다가 전사했다’. 큰아들 고종후는 복수군(復讐軍)을 조직해 제2차 진주성전투에 참전해 순절한다. 고경명의 시신은 40일 만에 찾아 금산 산중에 묻었다가 10월 화순 흑토평에 장사지냈고, 1609년 3월 임금이 내린 사패지(賜牌地)인 장성 오동촌 산 아래로 이장했다.
  • 양정역 역세권… 쾌적한 지상 조경 누려요

    양정역 역세권… 쾌적한 지상 조경 누려요

    GS건설·SK에코플랜트가 부산 부산진구 양정동에 ‘양정자이더샵SKVIEW’를 이달 분양한다. 3개 단지 22개 동, 총 2276가구 중 1162가구를 일반분양할 예정이다. 전용면적 46㎡, 59㎡, 72㎡, 84㎡로 구성된다. 1호선 양정역을 걸어서 이용할 수 있고 부산의 중심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하다. 이마트 연제점을 걸어서 갈 수 있다. 단지 인근에 황령산과 송상현광장, 부산시민공원이 있다. 양동초와 양정초가 근거리에 있고, 양동여중, 동의중, 양정고, 부산진여고, 부산여대, 동의대 양정캠퍼스 등이 가깝다. 모든 동이 판상형으로 설계됐으며 조망을 최대한 확보했다. 건폐율도 약 17%로 공원과 같은 지상 조경공간의 쾌적함을 누릴 수 있다. 입주는 2025년 3월 예정이다.
  • 대(大)시인, 붓대신 칼을 들어 국가를 보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대(大)시인, 붓대신 칼을 들어 국가를 보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고경명은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한사람이다. 그의 시는 ‘바람을 읊고 이슬을 날리며 은하수를 뛰어넘고 안개를 올라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왜란이 일어나고 왜적이 도성을 점령하자 전라도관찰사 이광은 그에게 의병을 모으기 위한 격문(檄文)을 요청했다. 고경명은 그만큼 대(大)문장가인 동시에 호남을 대표하는 지성이었다. 고경명의 간절하면서 감동적인 격문은 이르는 곳마다 뜻있는 사람들의 궐기를 이끌었다. 60세 노(老)시인은 붓을 쥐던 손에 칼을 잡고 의병장이 됐다. ‘임진년 6월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은 삼가 각 도 수령과 백성들과 군인들에게 급히 통고한다. 근자에 국운이 불길하여 섬 오랑캐가 불시에 침입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와 약속한 맹세를 저버리더니 나중에는 통째로 집어삼킬 야망을 품었다. 우리 국방이 튼튼치 못한 틈을 타 기어들어 하늘도 무서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북상하고 있다.…경명은 비록 늙은 선비지만 나라에 몸바치려는 일편단심만은 그대로 남아있어 밤중에 닭의 소리를 듣고는 번민을 이기지 못하여 강 한복판 배의 노를 치면서 스스로 의로운 절개를 지키려 한다. 한갓 나라를 위하려는 성의만 품었을 뿐, 자기 힘이 너무나 보잘 것 없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제 의병을 규합하여 곧장 서울로 진군하려 한다’  마상격문(馬上檄文)의 한 대목이다. 고경명은 1592년 5월 29일 담양 추성관에서 전라도 21개 지역 61명의 사림 대표가 모인 가운데 전라좌도 의병장에 추대된다. 6월 1일 한양을 향해 출발한 6000명의 호남의병은 전주에 이르렀을 무렵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상황을 판단하고자 훈련을 하며 잠시 머무른다. 고경명이 다시 북상을 시작하면서 6월 24일 지은 것이 마상격문이다. 글자 그대로 ‘말위에서 지은 격문’이라는 뜻이니 그만큼 급박한 위기상황이었다는 뜻이다. 고경명은 ‘국가존망의 위기에 어찌 감히 하찮은 제 몸만을 아끼려고 하겠느냐’고 마상격문에 적은 그대로 우리가 아는 것처럼 7월 10일 금산 전투에서 왜적을 공격하다 장렬하게 순절한다.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1533~1592)은 전라도 광주 제봉산 아래 압보촌에서 태어났다. 현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이다. 이곳에는 고경명과 두 아들 종후와 인후, 종사관 유팽로와 안영을 기리는 포충사(褒忠祠)가 있다. 1601년 세웠고, 1603년 사액됐다. 1865년 대원군의 서원·사우 철폐령에도 장성 필암서원과 함께 살아남았다. 포충사는 지금 로제와인색 배롱나무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포충사가 자리잡은 제봉산은 해발고도 165.5m로 높지 않지만 나지막한 곡선이 아름답다. 짐작처럼 제봉이라는 고경명의 아호는 이 고향마을의 뒷산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고경명의 무덤이 있는 전남 장성 영천리의 오동촌 뒷산 역시 제봉산이다. 장성 제봉산은 고경명의 무덤이 옮겨진 뒤 그를 기려 붙여진 이름이다. 광주 제봉의 정기가 고경명을 낳고 다시 그의 의기가 장성 제봉에 이식된 셈이다.  고경명은 26세이던 1558년 식년문과에서 장원급제했다. 성균관 전적에 이어 홍문관 부교리, 부수찬, 교리에 이르는 5년동안은 평탄하게 승진했다. 하지만 당대 대표적 외척의 한 사람인 이량이 사림의 탄핵으로 실각하는 과정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량의 전횡을 논죄하는 데 참여한 제봉은 관련 정보를 당사자에게 유출했다는 이유로 울산군수로 좌천되곤 곧 파직됐다. 이 사건으로 고경명은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을 조정에서 쓰임을 받지 못했다. 대신 낙향한 제봉은 호남의 문인들과 폭넓게 교유하며 산수를 유람하는 시간을 가졌으니 시인으로 크게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것도 역설적으로 향리에서 한가롭게 머물던 시절이 그만큼 길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봉은 1581년(선조 14) 영암군수로 다시 기용됐다. 곧바로 종계변무주청사 김계휘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서장관(書狀官)이란 외교 문서의 기록을 담당하는 직책이다. 당대 명나라 문신 장응회(莊應會)는 고경명의 시를 두고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는 것 같아서 원진(元稹)·백거이(白居易)·위응물(韋應物)·유우석(劉禹錫)과 비교해 명나라와 조선의 표준을 세울 수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제봉의 시가 명나라에서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고경명은 이후 서산군수와 종부시 첨정, 한산군수, 사복시 첨정, 순창군수 등을 역임하고 1591년 동래부사에 임명됐지만 곧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후임 동래부사 송상현은 이듬해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에 맞서 영웅적으로 수성전(守城戰)을 벌이다 전사한다. 천문에도 조예가 깊었던 제봉은 임진년 초 “올해는 장성(將星)이 분명히 보이지 않으니 장수(將帥)가 이롭지 못하겠다”며 국가의 환란을 예고했다고 한다. 장성은 북두칠성의 두번째 별 천선(天璇)을 가리킨다.고경명이 추성관 추대 직후 지은 격문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나는 경전의 장구(章句)나 따지는 우활한 선비로 병법에 어두우나 장수를 뽑는 이 자리를 위촉받아 망령되이 대장에 추대되었으니, 이미 흐트러진 사병들 마음을 수습하지 못해 동지들의 수치가 될까 두려워한다. 다만 신하의 의리로 마땅히 국난에 죽어야 하는 것이고, 군대는 의리상 곧은 것을 세다고 여기니 그 수효의 많고 적은 것에 달려 있지 않다.…무릇 우리 도내 사람들은 아비가 아들에게 일러 주고 형이 아우에게 권면하여 의로운 군대를 규합해서 함께 일어나, 용맹스럽게 결단을 내려 선(善)에 따를 것을 바라나니 미혹되어 자신을 그르치지 말게 하라’  신경(1613~1653)의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에는 ‘격문이 이르는 곳마다 사대부들이 감격해 울면서 분연히 궐기했다. 고경명이 개연히 의병장에 올라 늙고 병든 것을 사양치 않으니, 응모하는 자가 날로 모여들었다’고 했다. 고경명은 전라도 의병군의 결성 보고와 함께 왜적을 격퇴하겠다는 출사표를 서해 뱃길로 조정에 전달토록 한다. 의병군은 6월 22일 전주에서 여산으로 진을 옮긴 데 이어 27일 은진으로 북상해 왜적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는데 황간·영동의 왜적이 금산을 점령한 데 이어 장차 곡창 호남의 심장부인 전주를 침범할 계획이라는 정보를 입수한다. 휘하 장수들이 먼저 도내의 적을 토벌한 뒤에 북쪽을 정벌하자고 다투어 청하자 제봉은 당초 계획을 바꾸어 7월 1일 연산으로 군사를 돌린다. 의병은 9일 진산을 거쳐 금산성의 초입에서 전라도방어사 곽영의 관군과 좌·우익으로 진을 편성했다. 당시 금산의 왜군은 전주를 공격하려다 이치에서 황진 장군의 조선군에 크게 패하자 다시 물러나 금산성에 웅크리고 있었다.  선조수정실록은 금산 전투의 전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때 왜적은 금산으로 퇴각하여 진을 두터이 치고 있었다. 경명이 방어사 곽영과 재를 넘어 험한 곳으로 들어가 곧장 금산성 밖에 육박하였는데 곽영이 먼저 날랜 장사 수백 명을 보내어 적을 시험하다가 물러나자 경명이 북을 울리며 전투를 독려하여 도로 적병을 성 밖에서 위축시키고 화포를 쏘아 적이 주둔하던 관사를 불태우니 적이 감히 나오지 못했다’ 이튿날 동틀 무렵 고경명은 다시 곽영과 군사를 진격시켜 각각 북문과 서문을 공격했다. 왜적이 군사를 총동원해 약해 보이는 관군진영을 공격하니, 관군 선봉장인 영암군수 김성헌이 말을 채찍질해 먼저 도망치자 관군이 크게 패했고 의병도 대오가 무너지며 흩어졌다. 이때 제봉이 말에서 떨어졌는데 말이 달아나 버리자 종사관 안영이 자기 말을 타게 하고는 걸어서 따라갔다. 또다른 종사관 유팽로는 대장이 나오지 못했다는 소식에 말을 채찍질해 어지러운 군사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수정실록은 이들의 최후를 이렇게 적었다. ‘이에 경명이 팽로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나는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그대는 말을 달려 빠져나가라’ 했다. 팽로가 ‘어떻게 차마 대장을 버리고 살기를 구하겠습니까’ 하고는 안영과 함께 경명을 에워싸고 있다가 모두 전사했다. 경명의 둘째아들 인후도 달려가 싸우다가 전사했다’. 큰아들 고종후는 복수군(復讐軍)을 조직해 제2차 진주성전투에 참전해 순절한다. 고경명의 시신은 40일만에 찾아 금산 산중에 묻었다가 10월 화순 흑토평에 장사지냈고, 1609년 3월 임금이 내린 사패지(賜牌地)인 장성 오동촌 산 아래로 이장했다.
  • ‘코로나 털고 마음껏 뛰어보자’… 전국 어린이날 행사 풍성

    ‘코로나 털고 마음껏 뛰어보자’… 전국 어린이날 행사 풍성

    어린이날 100주년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풍성하게 열린다. 부산시는 오는 5월 5일 시내 곳곳에서 다채로운 어린이날 축하행사를 개최한다고 30일 밝혔다. 제49회 부산 어린이날 큰잔치는 이날 영화의전당 야외광장에서 열린다. ‘어린이가 그린 하늘’을 주제로 저글링맨쇼, 샌드아트, 가족이 함께하는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 등을 선보인다. 또 친환경 제품 만들기와 밸런스 바이크, 패들 보트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어린이가 그린 바다’, 캠핑을 체험할 수 있는 ‘어린이가 그린 땅’도 마련된다. 부산소방재난본부의 안전체험 및 인형극, 부산경찰청의 싸이카 포토존, 부산은행의 도서교환전, 부산교통공사의 방탈출게임 등도 즐길 수 있다. 부산시민공원과 송상현광장 일대에서도 ‘어린이 문화 한마당’이 열린다. 태권도 퍼포먼스, 마술, 서커스, 치어리딩, 커버댄스, 버블쇼 등 공연을 펼치고 다양한 캐릭터를 활용한 포토존도 운영한다. 울산시도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울산대공원 남문광장 일원에서 ‘2022 울산 어린이날 큰잔치’를 개최한다. 행사는 식전 공연, 아동권리헌장 낭독, 모범 어린이 표창, 축하 공연, 체험 행사 등으로 진행된다. 이날 행사에서는 어린이 4명이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15명이 시장 표창을 각각 받는다. 또 아동복지 유공자로 1명이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6명이 울산시장 표창을 각각 받는다. 식후 행사로는 마술쇼, 어린이 치어리딩, 태권도 시범단 등 축하 공연이 이어진다. 업사이클링 아트 전시·체험, 재활용 화분 만들기, 바람개비 만들기, 과학체험관, 가상현실(VR) 체험, 비눗방울 체험, 어린이 소방안전 체험, 어린이 안전체험 등 체험행사도 마련된다. 대구시교육청도 어린이날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연다. 시교육청 산하 16개 기관이 참여해 학생·가족단위로 참가할 수 있는 52개 행사를 마련한다. 교과연계 프로그램으로는 대구창의융합교육원이 기후 위기의식 향상 등을 위한 생태환경프로그램과 수학과학 소프트웨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민주시민교육센터에서는 모의국회 체험을, 세계시민교육센터에서는 세계의 다양한 문화체험을, 대구학생문화센터에서는 문화·예술과 관련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유아교육진흥원은 온 가족이 함께하는 골목 놀이와 실내체험 이벤트를, 팔공산수련원은 가족단위 체육체험을 마련했다. 이 밖에 9개 시립도서관도 책놀이와 연극, 인형만들기 체험 등을 하면서 어린이의 인문·예술적 소양을 키울 기회를 제공한다.
  • [씨줄날줄] 강경화 낙선 교훈/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강경화 낙선 교훈/박록삼 논설위원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의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직 도전이 실패로 끝났다. 지난 25일(현지시간) 열린 ILO 이사회에서 강 전 장관은 1차 투표를 통과했지만, 2차 투표에서 56표 중 단 2표를 얻는 데 그치며 낙선했다. 아프리카 토고 출신의 질베르 웅보 세계농업기구 사무총장이 당선됐다. 아시아, 여성 최초의 ILO 사무총장 꿈은 사라졌다. 강 전 장관 개인의 아쉬움을 떠나 한국의 안타까움이 크다. 한국은 지금까지 고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전 사무총장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국제형사재판소(ICC) 송상현 소장, 세계은행 김용 총재, 국제해사기구(IMO) 임기택 사무총장,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 이회성 의장,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김종양 총재 등 굵직한 국제기구 수장을 배출해 왔다. 그 배경에는 개인의 전문성 및 역량과 함께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외교력이 있었다. ILO 사무총장 도전은 사실상 처음부터 무모한 도전의 측면이 컸다. 전략과 전술 측면에서 정교한 준비와 노력 또한 부족했다. ILO는 국제기구 중 유일한 노·사·정 3자 기구다. 그에 맞게 28개국 정부 대표와 노사 대표 각 14명 등 총 56명의 이사가 참여한다. 노동 특성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함을 뜻한다. 지난해 10월 강 전 장관이 공식 도전 의사를 밝히던 당시 민주노총에서는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한국은 지난해 4월 기본협약 3개를 뒤늦게 비준했을 정도로 ‘노동 후진국’으로 꼽혀 왔다. 여기에 아프리카와 유럽 중심의 공고한 결속을 깨기 위한 어떠한 노동의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다. 고용노동부, 외교부 등이 범정부 TF를 꾸리며 지원에 나섰지만 국내 노동계의 외면 속에 국제 노동계의 지지를 받기는 쉽지 않음이 명백했다. 게다가 강 전 장관 개인이 노동과 관련해 내세울 어떠한 업무 이력도 갖지 못한 것은 또 다른 큰 취약점이었다. 하다못해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내지도 않았으니 ILO 사무총장으로서 경쟁력을 갖춘 후보가 아니었다. 전략도 부족했고, 전술도 없었고, 욕심은 과했다.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국제기구 수장 도전에 강 전 장관의 낙선은 교훈이 돼야 한다.
  • “길은 못 빌려준다”… 붉은 조복 입고 동래성과 함께 스러진 송상현

    “길은 못 빌려준다”… 붉은 조복 입고 동래성과 함께 스러진 송상현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빌려달라”동래성 에워싼 왜군의 목판 도발“싸워 죽긴 쉬워도 길은 못 터준다”목패에 써 던지고 치열한 수성전 친분 있던 왜장의 도움 마다하고백성과 함께 저항하다 끝내 순절‘군신의 의리는 무거우니’ 글 남겨훗날 가족 요청으로 청주로 이장 동인 이발에게 찍혀 동래부 좌천서인의 영수 정철과는 평생 교감너른 묘지터엔 기생·측실 무덤도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 광화문광장이 서울을 상징한다면 부산의 열린공간은 이제 송상현광장을 첫손가락에 꼽아야 한다. 과장을 보태지 않아도 부산지하철 1호선 부전역에서 양정역에 이르는 거리의 대부분이 송상현광장이다. 중앙대로와 거제대로가 합류하는 송공삼거리에는 ‘충렬공 송상현 선생상’이 높이 서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방어전을 지휘한 부사 송상현(1551~1592)은 전세가 기울자 당상관의 붉은색 관복인 조복(朝服)을 갑옷 위에 입고는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왜군에 희생된 동래부 관민은 5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학살의 흔적은 부산지하철 4호선 수안역에 있는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래성 성벽에서 50m 남짓 떨어진 수안역은 왜란 당시 해자 자리라고 한다. 2005~2007년 역사 예정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동래성 전투의 희생자 인골과 각종 무기류가 무더기로 나왔다. 수안역에서 7번 출구로 나선 다음 충렬대로를 따라 낙민역 방향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송상현이 왜군과 맞섰던 동래성 남문 터였음을 알리는 표석이 보인다.1592년 4월 14일 부산진성을 점령한 왜군 선봉대는 주력 부대를 당시 부산 지역의 중심인 동래성으로 투입한다. 왜적의 침입 소식에 경상좌병사 이각, 양산군수 조영규, 울산군수 이언함의 부대는 동래성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런데 방어전의 총책임자 역할을 해야 했을 이각이 부산성 함락 소식에 다시 주력 부대를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가 북쪽 소산역에 웅크리고 있었으니 남은 군사의 사기는 꺾일 수밖에 없었다. 왜군 병력이 동래성에 다다른 것은 4월 15일 오전 10시쯤이었다. 먼저 100명 남짓한 왜군이 송상현이 내려다보고 있는 남문 앞으로 다가가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빌려 달라’(戰則戰矣 不戰則假道)고 적은 목판을 세워 놓았다. 그러자 송상현은 고민하지도 않고 ‘싸우다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는 것은 어렵다’(戰死易 假道難)고 목패에 써서 적진에 던졌다. 16일 아침, 조선군은 포위한 왜군과 치열한 수성전(守城戰)을 벌였다. 왜군이 동래성의 동북쪽 경사진 성벽을 무너뜨리고 몰려들어 오자 군사는 물론 백성들까지 농기구를 들고 맞섰고, 부녀자들은 지붕에 올라가 기왓장을 왜군에 던지며 저항했다. 동래성이 왜적에 점령당하는 순간을 훗날 동래부사를 지낸 민정중(1628~1692)은 ‘왜군의 총성이 이어지고 칼날은 쉴 사이 없이 번뜩였다. 성은 협소하고 사람은 많은 데다 적병 수만이 일시에 들어오니 성중은 메워져 움직일 수 없었다’고 ‘임진동래유사’에 적었다.동래성은 폐허가 됐다. 오늘날 동래성은 1731년(영조 7) 동래부사 정언섭이 크게 넓혀서 다시 쌓은 것이다. 이때 최소 12명의 왜란 희생자 유골과 포환·화살촉 등이 나왔다. 정언섭은 유골을 6개의 무덤에 나누어 안치하고 임진전망유해지총비(壬辰戰亡遺骸之塚碑)를 세웠다. 1788년(정조 12)에는 동래부사 이경일이 우물을 파다가 다시 임란 희생자의 유골을 발견했고 무덤은 7개로 늘어났다. 정언섭은 비석에 ‘바라건대 충신 의사의 장지인 것을 알고 밟지도 말고 훼손하지도 말라’고 새겼다. 하지만 무덤군(群)은 일제강점기 복천동에 초라하게 합분(合墳)됐고, 1974년 다시 금강공원으로 옮겨졌다. 동래성에 침입한 왜장 가운데 한 사람인 다이라 시게마스는 왜란 이전 부산을 오가며 송상현으로부터 후하게 대접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다이라는 피할 곳을 눈짓으로 알려 주고 옷소매를 잡아끌기도 했지만 송상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앞서 송상현은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네 번 절하고 아버지에게 보낼 글을 썼다. ‘외로운 성에 달무리지고 / 다른 군진은 단잠에 빠져 있네 / 군신의 의리가 무거우니 /부모의 은혜는 오히려 가볍다’(孤城月暈 列鎭高枕 君臣義重 父子恩輕) 송공단은 송상현이 순절했다는 정원루 자리에 1742년(영조 18) 동래부사 김석일이 세운 제단이다. 정원(靖遠)이란 ‘멀리 있는 왜인들을 바로잡아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니 이곳에서의 죽음은 상징적이다. 송공단은 동래부사 이안눌이 1608년(선조 41) 동래성 남문 밖 농주산에 마련했던 전망제단(戰亡祭壇)을 넓혀서 옮긴 것이다. 동래부 관아는 남문 터 표석이 있는 골목 입구에서 동래시장 쪽으로 가면 오른쪽 골목에 나타난다. 송공단은 시장 언덕길을 따라 다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 골목에 보인다. 동래성 전투가 끝나자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와 종군승 겐소는 송상현과 첩 금섬(金蟾)의 시신을 동문 밖에 장사지내고 나무로 표식을 해 두었다. 1595년 송상현 집안이 장지를 옮기고 싶다고 상소하자 선조는 왜장 가토 기요마사와 회담한 적이 있는 경상도절도사 김응서에게 시신을 수습할 수 있게 주선하도록 명했다. 상촌 신흠(1566~1628)의 ‘송동래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부산 일대는 여전히 왜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금섬은 함흥기생 출신이었다. 송상현의 시신 곁에서 사흘 동안 왜군을 꾸짖다 살해됐다. 통천군수 한언성의 서녀라고 한다. 그러니 ‘김섬’이 아닌 ‘금두꺼비’라는 뜻의 ‘금섬’으로 부르는 것이 좋겠다. 기생 시절의 애칭이었을 것이다. 동래성에 머물던 또 한 사람의 측실 이양녀(李良女)는 송상현이 전투가 벌어지기 전 서울로 보냈으나 부산성 함락 소식에 ‘가군(家君) 곁에서 죽겠다’며 돌아갔다. 이양녀는 포로가 돼 일본에 끌려갔다가 훗날 송환됐다.송상현의 무덤은 충북 청주에 있다. 묫자리는 이여송과 함께 조선에 들어온 명나라 지관 두사총(杜師聰)이 고른 것이라고 한다. 경부고속도로 청주나들목으로 빠져나가 청주로 방향을 잡으면 곧바로 왼쪽에 송상현을 기리는 사당 충렬사가 나타난다. 무덤은 다시 동쪽으로 1㎞쯤 가야 한다. 부인 성주 이씨의 무덤은 남쪽으로 1㎞쯤 떨어진 황구산 기슭에 있다. 그러니 선조가 내린 땅은 송상현의 사당과 무덤, 그리고 부인의 무덤을 모두 아우르는 넓이였을 것이다. 송상현의 후손은 이곳에 터를 잡았다. 송상현의 무덤으로 오르는 초입에는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써서 1619년(효종 10) 세운 신도비가 있다. 송시열이 지은 행장에 ‘동래는 왜적이 침입할 첫머리가 되는 까닭에 공이 문무의 재략을 겸비했다는 핑계로 수령에 제수됐던 것이니 실로 이 처사는 선의가 아니었다’는 대목은 흥미롭다. 행장은 ‘공은 이발에게 미움을 샀기 때문이 조정에서 편안히 지낼 수 없어 내외직을 들락날락했다. 이발이 죽자 그 무리들로부터 더욱 심한 미움을 샀다’고도 했다. 송상현은 서인의 영수 정철과 돈독했던 듯하다. 정철의 ‘송덕구에게 주다’라는 시에는 ‘호산의 송씨가 없어지면 깊은 속 어디다 열어 보일꼬’라는 대목이 보인다. 나이 차는 있지만 두 사람이 깊은 교감을 나누는 사이였음을 짐작게 한다. 송상현의 본관은 여산이다. 호산은 오늘날 전북 익산에 속하는 여산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덕구는 송상현의 자(字)다. 이발은 정철의 처벌을 주도한 동인의 영수였다. 때문에 문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한 송상현이지만 오지의 무관직으로 밀려나곤 했고, 왜침의 분위기가 고조되던 1591년에는 위기의 동래부로 좌천됐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눈에 명당으로 느껴지는 송상현의 묘소에는 금섬과 이양녀의 무덤인 작은 봉분 두 개도 보인다. 정작 남편의 무덤을 옮겨 온 이후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했다는 성주 이씨의 묘소는 멀리 떨어져 있으니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안쓰러운 일이다. 성주 이씨 무덤은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부인의 무덤은 어떻게 가느냐고 물었을 뿐인 관광객 한 사람에게 먼 길을 직접 안내한 송상현충렬사관리소장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충렬사 문화유산해설사의 친절도 인상적이었다.
  • “피신은 없다, 죽음만 있을 뿐”… 임진왜란 첫 승리 이끈 무관 윤흥신

    “피신은 없다, 죽음만 있을 뿐”… 임진왜란 첫 승리 이끈 무관 윤흥신

    부산지하철 1호선은 전체 길이 40.6㎞에 역이 모두 40개에 이른다. 다대포진 수군첨절제사 윤흥신 장군의 흔적을 찾아가려면 서남쪽 종점인 다대포해수욕장역을 한 정거장 앞둔 다대포항역에서 내려야 한다. 이제 다대포항은 크고 작은 어선이 가득 들어차고, 대형 어시장과 줄지은 횟집이 손님을 부르는 부산 지역 대표 어항(漁港)의 하나가 됐다. 그럼에도 다대포진의 군선 정박지였을 다대포항 주변 지형은 임진왜란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개전 첫 전투에서 부산진성을 점령한 왜군 선봉대는 곧바로 일부 병력을 다대포진이 있는 낙동강 하구 방면으로 투입한다. 다대포진은 경상좌수영 서단의 수군기지로 다대포항 너머 몰운대에 오르면 낙동강 하구와 가덕도가 한눈에 보인다. 새로운 국제공항이 건설되고 있는 가덕도에는 경상우수영의 동단 기지인 가덕진이 있었다. 다대포진과 가덕진은 정3품 수군절도사 바로 아래 종3품 수군첨절제사를 배치했을 만큼 국방의 요지였다. 왜군은 다대포진에 앞서 서평포진을 넘어서야 했다. 종4품 수군만호가 지휘한 서평포진은 오늘날의 감천항 자리에 있었다. 첨사진인 부산진성의 전투 병력이 500~600명이었으니 만호진의 방어력은 당연히 훨씬 못 미쳤다. 왜군이 서평포진을 어떻게 점령했는지 기록은 없다. 왜군은 곧바로 다대포진 공략에 나섰다.다대포항 방파제에 서면 멀리 대마도로 이어지는 먼바다가 거침없이 바라보인다. 윤흥신 장군은 전날 영도 앞바다를 향해 새카맣게 몰려오는 왜군 선단을 보고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대포진의 보유 전선(戰船) 규모는 왜란 발발과 함께 3척의 군선을 스스로 침몰시킬 수밖에 없었던 부산진의 그것을 당연히 넘지 못했다. 수백척 적선 앞에서 해전(海戰)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윤흥신은 곧바로 다대진 성문을 걸어 잠그고 방어 준비에 들어갔을 것이다. 윤흥신 장군은 조선시대를 통틀어도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만큼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의 소유자다. 파평 윤씨는 4명의 왕비를 배출한 조선 전기의 대표적 외척 가문이다. 아버지 윤임이 중종 계비 장경왕후의 오빠이니 윤흥신은 왕비의 조카였다. 중종 말년이 되자 훗날 인종이 되는 세자를 지키려는 윤임의 대윤(大尹)과 이후 명종이 되는 경원대군을 보호하려는 윤원형의 소윤(小尹) 사이에서 정치적 긴장은 높아진다. 인종이 즉위한 지 8개월 만에 죽고 명종이 왕위에 오르자 소윤은 대윤에 역모 혐의를 씌워 대거 숙청하는데, 바로 을사사화(1545년)다. 윤임은 모두 여덟 명의 아들을 두었다. 정경부인 여흥 이씨 소생으로 사화 당시 장성했던 세 아들 흥인·흥의·흥례는 아버지와 함께 참형에 처해졌다. 정경부인 현풍 곽씨의 세 아들 흥지·흥신·흥충은 나이가 어려 죽음을 면했지만 공신의 노비로 떨어졌다. 흥신의 나이 다섯 살 안팎이었다고 한다. 첩실 소생의 두 아들 흥효와 흥제도 살아남았다. 흥제는 다대포 전투에서 형 흥신과 함께 전사한다. 훗날 윤임은 영의정에 특별증직됐는데, 아들 흥신의 순절에 따라 관작(官爵)을 높여 주는 추은(推恩)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당대의 문신 팔곡 구사맹(1531~1604)은 다대포성 전투를 이렇게 서술했다. ‘윤흥신은 왜적이 성을 포위하자 힘껏 싸워 격퇴시켰다. 그 부하가 이르기를 “명일에 적이 큰 세력으로 와서 공격한다면 상황이 반드시 지탱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성을 나가 피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하자 흥신이 이르기를 “죽음이 있을 뿐이다. 어찌 차마 간다는 것이냐” 하였다. (이튿날) 적이 크게 이르렀는데, 군졸이 모두 도망했고 홀로 종일토록 활을 쏘다가 성이 함락되면서 죽었다.’ 첫날 전투에서 윤흥신과 다대포 수군은 강력하게 저항해 왜군을 일단 물러서게 했다. 전사(戰史) 연구자들은 이날의 전투를 두고 ‘임진왜란 최초의 승리’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다음날 증원 병력이 가세한 왜적의 공격에 맞서다 다대포성은 결국 함락됐고, 윤흥신 장군도 분전 끝에 전사하고 말았다. 다대포항역에서 낫개역 방향으로 10분쯤 거슬러 올라가면 윤공단(尹公壇)이다. 당시 순절한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제단이다.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오기도 했던 조엄(1719~1777)은 ‘임진란 후 160년이 지난 정축(1757년)에 내가 동래부사가 되어 부임한 이튿날 충렬사를 참배하였는데 동래부사 송상현 공과 부산진첨사 정발 공만이 제향되고, 다대진첨사 윤공의 위패는 보이지 않았다. 같은 날 같이 부산 지역에서 전사했는데 어찌하여 송·정 두 공만 한 묘에 향사되고, 심지어 향리와 노비까지도 전사한 자는 함께 향사되었는데, 윤공만은 참여할 수 없었던가. 윤공의 의열(義烈)이 드러나지 않은 것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썼다.일본에서 고구마를 처음 들여온 것으로도 알려진 조엄은 이후 1761년(영조 37) 경상감사로 부임한 뒤 충렬사에 정발·송상현과 함께 윤흥신을 배향한다. 1765년(영조 41)에는 다대포첨사 이해문이 다대포동헌 동쪽에 윤공단을 세웠다. 1970년 동헌 터에 다대포초등학교가 들어서면서 윤공단은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이후 다대포초등학교도 다시 윤공단 앞으로 이전하면서 동헌 터는 지금 부산유아교육진흥원이 쓰고 있다. 윤공단 중앙의 가장 큰 비석 앞면에는 첨사윤공흥신순절비(僉使尹公興信殉節碑)라 새겨졌고, 뒷면에는 그의 전적이 실려 있다. 양쪽으로 의사윤흥제비(義士尹興悌碑)와 순절한 백성을 추모하는 순란사민비(殉亂士民碑)가 있다. 윤흥신이 늦어도 너무 늦게 충렬사에 배향된 것은 사림(士林)이 정치적 주도권을 잡은 시대 외척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게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게다가 무신에 대한 차별은 여전했으니 윤흥신은 물론 정발도 피해 갈 수 없었다. 동래 선비들은 1624년(인조 2) 정발을 충렬사에 송상현과 합향하는 과정에서 ‘송상현은 문신이고 정발은 무신으로 같은 사당에 배향할 수 없으니 두 사당으로 나누어 배향하도록 해 달라’는 상소를 내기도 했다. 국방을 소홀히 해 변란을 겪었음에도 무관을 가벼이 여기는 사회 분위기의 뿌리는 깊었다. 을사사화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된 것은 32년이 흐른 1577년(선조 10)의 일이다. 윤흥신은 신분을 되찾고 몰수당했던 재산도 돌려받았다. 아버지의 관작이 회복됨에 따라 음서로 관직 진출의 길도 열렸다. 그런데 1580년(선조 13) 선조실록에는 ‘진천 현감 윤흥신이 문자를 해득하지 못해 파직됐다’는 내용이 보인다. 글자를 전혀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문자 속이 조정 문신들이 요구하는 지방관 수준에 다소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로 봐야 할 것이다. 마흔이 다 되도록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을 노비 생활을 했던 윤흥신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윤흥신은 하지만 무관으로는 상당한 능력을 발휘했던 것 같다. 아버지 윤임도 무과에 급제한 무관 출신으로 1523년(중종 18) 충청수군절도사로 왜선과 싸우기도 했다. 윤흥신의 무관 경력과 관련해 1589년(선조 22) 어머니 현풍 곽씨가 그의 임지인 서산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기록이 있다. 서산군은 충청수영 11관의 하나였다. 윤흥신은 수군 지휘관으로 역량을 인정받았기에 왜란의 위기가 고조되던 시기 승진해 요충에 배치됐을 것이다. 윤흥신 장군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것은 없다. 그를 기리는 석상은 부산시가 1981년 동구 초량동 쌈지공원에 세웠다. 정발 장군의 동상이 있는 지하철 1호선 초량역과 그가 순절한 자리에 세워진 정공단이 있는 좌천역 사이 부산진역에서 내리면 윤흥신 석상이 보인다. 초량왜관 이전 두모포왜관이 있던 자리라고 해서 고관(古館)이라 불리는 동네다. 다대포항 주변에 윤흥신 장군 동상을 새로 건립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2022년 벽두에 들려왔다.
  • [서울광장] 장릉 아파트와 시대정신/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장릉 아파트와 시대정신/서동철 논설위원

    부산 여행길에 찾았던 동래부 관아에는 조선시대 지방행정기관 유적으로는 흔치 않게 제법 많은 건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내부 곳곳에 세워져 있는 이런저런 안내판을 모두 읽고 나니 10개가 넘는 관아 건물 가운데 조선시대 그대로 제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동래부 동헌인 충신당(忠信堂)과 부사의 생활공간으로 추정되는 연심당(燕深堂)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동래부 동헌은 부산지하철 4호선 수안역에서 내려 아직도 이름이 기억나는 ‘슬프도록아름다운의원’ 골목을 따라 동래시장 방향으로 가다 보면 나타난다. 가장 먼저 만난 망미루(望美樓)는 매우 당당했다. 관아의 정문 노릇을 하고 있는 동래독진대아문(東來獨鎭大衙門)은 건물 자체의 연륜은 느껴졌지만 계단과 석축은 석물대패로 깎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망미루가 독진대아문 앞 지금의 도로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두 건물은 일제강점기 금강공원으로 옮겨졌다가 2014년 지금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 두 건물이 뜯겨진 뒤 조선으로 몰려온 일본인들이 개발한 동래온천장으로 쫓겨나 일종의 액세서리 노릇을 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충신당, 연심당, 망미루, 독진대아문을 제외한 다른 건물을 모두 최근에 재현해 놓은 것이다. 동래부 관아는 지금도 동래시장에 둘러싸여 있다. 재래시장의 특성상 주변에 큰 건물이 들어서지 않았으니 아쉬우나마 이 정도 옛 모습도 되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동래부 관아는 임진왜란 당시 송상현 부사와 동래부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로 몰려든 왜군의 공격에 굴하지 않고 버티다 몰살당한 비극이 어려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그러니 일제의 동래부 관아 훼손은 ‘항일 역사의 무자비한 말살’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광복 이후 더 큰 역사의 말살을, 그것도 우리 손으로 전국 곳곳에서 저질렀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서울 한복판 광화문 앞 정부서울청사가 조선시대 삼군부 자리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곳에 1967년 당시 정부종합청사 건설 공사 착공 전까지 삼군부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욱 적을 것이다. 삼군부의 중심 건물인 총무당은 일찌감치 1930년대 서울 삼선교 지금의 한성대 곁으로 옮겨졌다. 삼군부 청사의 왼쪽 날개에 해당하는 청헌당은 종합청사 건립과 함께 서울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경내에 이건됐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에 앞선 중앙청사 앞 도로 발굴조사에서는 삼군부의 담장 석렬과 행랑 기단, 배수로가 나오기도 했다. 경기 김포 장릉의 문화재구역에서 고층 아파트를 문화재 심의도 받지 않고 지어 논란이 이어지고 있음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파트 공사가 중단되자 입주 예정자들은 “장릉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이유로 아파트를 헐어 내려면 경복궁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정부서울청사부터 헐어 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경복궁 앞 정부청사’는 매우 상징적인 개발시대의 오류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장릉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의 항변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야기다. 정부중앙청사를 지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시대정신은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당시 신문을 찾아봐도 삼군부 건물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중앙청사를 짓는 데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보이지 않았다. 정부는 물론 언론 역시 역사와 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매우 희박했음을 깨닫게 된다. 무지(無知)의 시대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중앙청사도 조선시대 삼군부만큼이나 중요한 우리 근현대사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았다. 근현대 문화유산에 적용하는 등록문화재 제도의 기준도 50년이다. 중앙청사의 연륜은 이미 이 기준도 훌쩍 뛰어넘었다. 정부청사를 이 자리에 지은 것이 잘했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은 2021년이다. 중앙청사가 무지의 소산이라면 장릉 아파트는 더 많은 이윤을 위해 국민, 특히 입주 대상자를 희생의 대상으로 삼은 일종의 폭력이다. 그러니 입주 예정자는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아야 한다.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공동책임이 있는 인천시와 건설회사들이 입주 예정자들에게 더 좋은 아파트를 주는 것이다. 입주가 늦어지는 만큼 추가될 수밖에 없는 주거 비용도 당연히 부담해야 한다. 장릉 아파트 사건의 교훈은 ‘개발 과정에 문화재를 외면하면 결국 더 큰 불이익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의 시대정신이어야 한다.
  • “부산 확진자 433명...첫 오미크론 확진자 발생

    “부산 확진자 433명...첫 오미크론 확진자 발생

    부산시는 코로나19 새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역대 하루 최다인 433명의 확진자가 나왔다고 23일 밝혔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는 지난 19일 확진된 해외입국자 1명에게서 확인됐다. 이 확진자는 지난 17일 아랍에미리트에서 인천공항으로 입국했고, 귀국 1일차 검사에서 확진됐다. 비행기 내 접촉자 등 23명이 격리됐으나 추가 확진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2차 백신 접종을 했으며 가래와 목 잠김 등 경미한 증상을 나타냈다.현재 안정적인 상태로 격리 치료 중이다. 부산의 하루 확진자는 21일 432명을 시작으로 사흘째 400명을 넘어서고 있다.누적 확진자는 2만 3029명이다.신규 집단감염이 발생한 기장군 한 초등학교에서는 학생 2명이 확진된 데 이어 학생 5명과 가족 3명이 추가 확진되는 등 현재까지 누적 확진자는 모두 10명으로 늘었다. 기존 집단감염 사례인 연제구 요양병원에서는 종사자 1명, 환자 65명이 추가 확진돼 관련 확진자 가 71명으로 늘었다. 현재 해당 병원 전체를 동일 집단격리하고 있다.사상구 종합병원,수영구 주점과 유치원 등에서도 추가 확진자가 나왔다. 23일 0시 기준 부산의 중환자 병상 가동률은 84.1%를 기록했고, 일반병상 가동률은 76.9%로 나타났다. 생활치료센터 병상 가동률은 60.4%다. 시는 23일부터 부산진구 송상현광장과 동래구 동래역 복합환승센터 인근 등 임시선별검사소 2개소를 추가해 임시선별검사소는 모두 6곳을 운영한다.
  • [씨줄날줄] 국제기구 수장 도전사(史)/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국제기구 수장 도전사(史)/박록삼 논설위원

    한국은 1948년 12월 유엔에서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됐다. 이듬해 곧바로 유엔 가입을 신청했다. 42년간 꾸준히 가입 신청서를 냈지만 번번이 소련의 반대에 부딪쳤다. 1991년 9월에야 비로소 유엔의 회원국이 됐다. 냉전시대를 사는 분단국가의 숙명이었다.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도 이리 힘든 일이었으니 국제기구의 수장 자리는 언감생심 꿈꾸기도 어려웠다. 이런 환경에서 고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전 사무총장은 별처럼 빛나는 인물이었다. 그는 1983년 WHO 남태평양 한센퇴치팀장으로 활동한 이후 WHO 예방백신사업국장, 세계아동백신운동 사무국장을 지내면서 전 세계 소아마비 퇴치에 앞장서 ‘백신의 황제’로 통했다. 또한 저개발국가 결핵 퇴치에도 큰 성과를 냈다. 2003년 5월 WHO 사무총장에 취임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검소하고 겸손한 품성으로 전 세계 낮은 곳을 돌며 보건과 의료 구호사업에 헌신적이었기에 ‘세계 보건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그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2006년 반기문 전 외교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올랐다. 2009년 국제형사재판소(ICC) 송상현 소장, 2012년 세계은행 김용 총재, 2015년 국제해사기구(IMO) 임기택 사무총장 등이 굵직한 국제기구를 책임졌고,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 이회성 의장과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김종양 총재가 각각 2015년과 2018년 취임해 현직에 있다. 한국이 세계 평화와 인류 공동 번영을 위한 정치와 외교, 경제 등 여러 분야의 중심에 우뚝 선 셈이다. 물론 실패와 좌절의 사례들도 적지 않다. 2005년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했던 홍석현 전 주미대사나 국제해상법 전문가로서 IMO 사무총장에 도전했던 채이식 고려대 교수도 있었다. 지난해에는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결선투표까지 진출했지만 미중 갈등의 격화 속 막판에 사퇴해야만 했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최근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출마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국제 노사정협의회’ 성격의 ILO 이사회는 28개국 대표와 노동자·사용자 대표 각 14인 등 56명으로 구성되며, 이사회 과반 득표로 사무총장을 뽑는다. 강 전 장관으로선 민주노총·한국노총의 협력을 통한 국제 노동계의 지지가 절실하다. 하지만 한국은 지난 4월에야 ILO 기본협약 3개를 비준해 기본협약 8개 중 7개 비준을 마쳤다. 아직도 우선협약·기술협약 중 미비준 협약이 많다. 민주노총 등의 반응이 떨떠름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국제기구 수장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야 크지만 그 전에 ‘노동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떨쳐 내는 게 우선인 듯하다.
  • 부산, 시민공원 등 음주 음식 섭취 제한 ...행정명령 발령

    부산, 시민공원 등 음주 음식 섭취 제한 ...행정명령 발령

    부산시는 9일 0시부로 공원 내 마스크 착용과 음주·음식 섭취 등 행위를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령한다고 밝혔다. 시는 최근 무더워진 날씨로 야간에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급증하면서 공원 내에서 음주 행위와 음식 섭취 등이 무질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특히, 음식 섭취로 인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등 방역수칙 미준수 사례가 잇따르자 강력 조치에 나섰다. 이에따라 지역 내 주요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원 내 마스크 착용, 음주 금지, 야간 시간대(오후10시~오전5시) 음식물 섭취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행정명령을 발령했다. 적용 공원은 부산시민공원, 어린이대공원,송상현광장,중앙공원,금강공원 등 5곳이다. 행정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감염병관리법에 따라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시는 이번 조치가 코로나19 감염확산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공원을 애용하는 일반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음주·고성방가 등을 뿌리 뽑아 건전한 공원문화를 조성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부산 서면 중심 풍부한 생활인프라의 소형 아파트 강세

    부산 서면 중심 풍부한 생활인프라의 소형 아파트 강세

    주요 상권과 생활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핵심 지역’은 다른 지역으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위치와 우수한 교통, 치안과 도심 어메니티를 갖췄다는 점에서 부동산 시장의 주목을 받곤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부산의 서면이다. 서면은 부산 내에서도 각종 관광 시설, 공원, 쇼핑 센터 등을 두루 갖춰 주거뿐 아니라, 투자 목적의 부동산 시장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는 곳이다. 대표적인 부산 분양예정아파트로는 ‘서면 동원시티비스타’가 있다. 6월 분양 예정인 서면 동원시티비스타는 더블 역세권을 자랑하는 부산신규분양 건으로 서면 중심의 입지적 가치를 누릴 수 있어 주목을 받는다.해당 아파트는 지하 3층, 지상 26층의 규모로, 49㎡ 소형 공동주택 176세대, 29㎡, 62㎡ 오피스텔 38실 총 214세대가 분양 대상이다. 쇼핑과 문화, 금융 등 원스톱 인프라가 모두 모인 서면 중에서도 부전역 바로 앞에 위치해 1호선 부전역까지 도보 1분, 1호선 과 2호선 환승역인 서면역까지는 도보 5분이면 이동할 수 있다. 여기에 중앙대로와 동서고가도로, 황령터널 연결하는 광역교통망을 갖춘 것은 물론, 부산 전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시내버스 노선 집결지에 위치해 있다. 단지 근처에는 롯데백화점, NC백화점, 농협하나로마트, 롯데마트, 이마트트레이더스, 부전시장 등 서면 중심상권이 인접한데다, 부산국제금융센터, 부산시청 행정타운 등 행정과 금융시설을 편리하게 방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단지 주변으로 약 14만평 부산 최대 규모의 시민공원을 비롯해 송상현광장, 라이온스 공원, 황령산 등이 있어 도심 속에서 쾌적하고 여유 있는 생활이 가능하다. 한편, 부산 신규분양 소형 공동주택인 서면 동원시티비스타의 시공사는 동원개발이며, 분양은 오는 6월 오픈 예정이다. 모델하우스는 부산진구 중앙대로에 마련되어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진중권 “윤석열은 형식적 공정, 그마저 文정권은 깨버렸다” 尹 지지포럼 참석[이슈픽]

    진중권 “윤석열은 형식적 공정, 그마저 文정권은 깨버렸다” 尹 지지포럼 참석[이슈픽]

    “尹 대권반열은 공정 무너뜨린 文정권 덕분”“文, ‘기회는 평등·과정은 공정’ 약속 못 지켜”“尹, 대권주자로서 분노에 제대로 응답해야”송상현 “극단주의자로부터 민주주의 보호해야”“개혁 내걸고 입맛대로 손보는 포퓰리즘 배격”김태규 “나라 제대로 됐다면 尹현상 없었다”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21일 차기 유력한 야권의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지지하는 포럼 창립식에서 ‘공정’을 화두로 꺼내며 “윤석열 전 총장은 법적 형식적 공정을 나타내는데 이 정권은 그것마저 깨버렸다”면서 “윤 전 총장이 주목 받는 이유”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권의 공정하지 않은 태도가 윤 전 총장을 대선주자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분석이다. 진중권 “민주화 세력, 기득권돼 특권을자기 자식에게 세습…이게 조국 사태” 진 전 교수는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 포럼 출범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가능성과 한계’ 토론회 기조 발제자로 나서 “공정은 시대의 화두가 됐는데 이 정권에 들어와서 공정이 깨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진 전 교수는 “이 정부가 법적, 형식적 공정마저 무너뜨린 덕분에 윤 전 총장이 대권후보로 반열에 올랐던 것이고,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면서 “대권주자로서 사회 전체가 느낀 분노에 대해 제대로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요조건은 이에 제대로 응답할 때 대선후보가 되는 것”라고도 했다. 진 전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다’고 말했지만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 것”이라며 윤 전 총장의 높은 지지율 배경으로 문재인 정부의 불공정과 민주주의 위기를 꼽았다. 그는 “민주화는 상징자본, 기득권의 토대가 됐다. 민주화 세력은 과거 저항 세력이었지만 이제 기득권이 됐고, 자신들의 특권을 자식에게 세습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면서 “이를 전적으로 보여준 게 조국 사태”라고 말했다. 2019년 발생한 조국 사태는 검찰개혁을 강하게 주장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장관 임명 전후 자녀입시비리와 사모펀드 투기 논란, 청와대 울산시장 하명수사 등 각종 가족 의혹들이 터져 나오면서 ‘내로남불’ ‘불공정’ 논란이 거세게 제기됐다. 당시 조 전 장관을 지지하는 친(親)조국 서초동 집회와 조 전 장관에 반대하는 반(反)조국 광화문 집회로 국론이 연일 분열되는 갈등을 빚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조 전 장관과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자녀입시비리와 관련해 사문서 위조,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고 정 교수는 실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진 “젊은 세대 ‘투쟁’ 대신 ‘경쟁’으로 해결”“게임의 규칙을 공정하게 해달라는 것” 진 전 교수는 “윤 전 총장을 통해 나타난 공정에 대한 욕망의 실체를 정치에 뜻이 있는 정치인들이 짚어 봐야 한다”면서 조국 사태에 반응한 청년 세대를 두고 “젊은 세대는 투쟁 대신 ‘경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또한 공정을 이야기한다. 게임의 규칙을 공정하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 전 교수는 ‘윤석열 현상’에 대해 “윤석열이란 구체적인 인물을 통해 표출하는 욕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윤 전 총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당하고 있는 것”면서 “윤 전 총장뿐만 아니라 모든 대권주자가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진 전 교수는 여권의 유력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거명하며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더니, 선심주의 정책이 먹히지 않았다”면서 “그러다보니 이 지사도 (공정 화두에) 숟가락을 올린 것”이라고 지적했다.‘尹지도’ 송상현 “포퓰리스트 정권 잡으면 ‘개혁’ 화두 내걸고 민주적 절차 왜곡” 윤 전 총장의 서울대 법학과 대학원 당시 석사논문을 지도했던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도 이날 강연에서 대의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포퓰리즘을 배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2차대전 이후 국제질서에 빗대어 “포퓰리스트가 정권을 잡으면 제일 먼저 개혁을 화두로 내걸고, 개혁이란 이름 아래 민주적 절차를 왜곡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취향이나 이상대로 국가를 개조하려고 한다. 검찰, 사법부, 정보기관을 입맛에 맞게 손을 본다”면서 “포퓰리즘은 대의민주주의에 위협”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민주주의를 빙자해 다수결로 밀어붙여 자신들만이 번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줄기차게 노력한다”면서 “(포퓰리스트는) 정치가 이뤄지는 근본방식에 대한 도전”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거대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여권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송 교수는 “한국의 포퓰리즘은 기존 민주주의 시스템을 위협할 만큼 영향력이 크지는 않지만, 인터넷을 중심으로 불안과 적대감이 확산하고 있다”면서 “정치가 문지기로서, 극단주의자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 명예교수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 등을 지냈다.김민전 “윤석열, 법치주의 부패에 가장 격렬하게 저항했던 분” 토론자로 참여한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윤 전 총장에 대해 “법치주의의 부패에 대해 가장 격렬하게 저항했던 분”, 김태규 전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정치적 공감이 탁월한 분이라는 평가에 대체로 공감한다”고 평가했다. 김 전 부장판사는 “윤 전 총장이 큰 지지를 받는 현상을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면서 “나라가 제대로 됐다면 나타나지 않았을 현상”이라고 말했다. 김 전 부장판사는 “윤석열이란 사람이 와서 모든 걸 제대로 만들어주길 기다리고 의존하는 건 아닐 것”이라면서 “자유민주주의는 국민 모두가 만들고 제도와 가치가 구현될 때 가능하다”고 했다. 또 “윤 전 총장은 관료로 인생 대부분을 보냈다”면서 “현실 정치를 맡으면 새로운 도전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김종인과 만남 피한 윤석열, 지지 포럼은 싱크탱크?

    김종인과 만남 피한 윤석열, 지지 포럼은 싱크탱크?

    야권 유력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지지하는 전문가 그룹이 21일 공식 출범했다. 최근 5·18 관련 메시지를 내놓고 반도체 공부에 나서는 등 조금씩 자기 관심사를 노출하고 있는 윤 전 총장의 등판 시점에 포럼 출범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은 이날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윤석열, 대통령 가능성과 한계’를 주제로 창립 기념 토론회를 열었다. 윤 전 총장의 대학 은사인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가 축하 강연을 했다. 윤 전 총장이 야권 지지율 1위를 달리면서 각종 지지 단체은 우후준순처럼 생겨나는 추세다. 팬클럽인 윤석열을사랑하는모임(윤사모) 등은 윤 전 총장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지만 회원 수가 2만 명을 넘어섰다. 다만 이날 출범한 국민연합은 대학교수와 법조인 등 전문가집단이 주축이 돼 결성된 만큼 잠재적인 대선 싱크탱크 역할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은 이 모임을 싱크탱크로 확대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윤 전 총장 측은 “윤 전 총장과 직접 상관이 없는 모임”이라면서 “포럼 참석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윤 전 총장은 최근 노동, 복지, 안보, 경제 분야 전문가들과 비공개 만남을 이어가며, 국정 운영에 대한 기본기를 다지는 중으로 알려졌다. 대외적으로는 사퇴 후 두 달 넘게 칩거 중이지만, 매주 한 차례 이상 교수들과 만나면서 나름의 ‘대선 수업’에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 윤 전 총장 측 사정을 잘 아는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정 운영 관련 공부를 하는 한편, 내부적으로 조직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은 윤 전 총장의 입당 분위기를 만드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윤 전 총장 등을 거명하며 “적절한 시점에 제1야당 통합 플랫폼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또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전 총장의 전화를 받고 만남을 추진했다가 불발된 사실을 이날 공개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내가 한 번 전화를 받았다. 한 달 전쯤 됐다”고 밝혔다. 그는 “4·7 재보궐선거 사흘 뒤인 지난달 10일 어떤 사람이 찾아와 몇 분 후 전화가 올 테니 좀 받아달라 해서 받았다”면서 “한번 시간이 되면 만나보자 했다”고 전했다. 이어 “(윤 전 총장이)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그다음에는 제3자를 통해 만남을 피해야겠다는 연락이 왔다”면서 “그래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김남국 “언론, 윤석열에 노골적 아부…국힘 홍보지냐, 尹 캠프나 가라”

    김남국 “언론, 윤석열에 노골적 아부…국힘 홍보지냐, 尹 캠프나 가라”

    ‘尹 서울대 반도체연구소 방문 보도’ 맹비난“우리가 질문했으면 ‘반도체 상식도 없어’‘중학생보다 못한 의원’이라고 내걸었을 것”“대부분 언론 ‘尹 대통령’ 만들기 동참한듯”‘윤석열 지지’ 21일 출범…진중권 기조발제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입시비리 논란 등을 둘러싼 ‘조국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친(親)조국 서초동 집회를 주도하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비난하는데 앞장섰던 ‘조국 백서’ 저자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언론들이 윤 전 총장에게 노골적으로 아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차기 유력한 야권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윤 전 총장의 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 방문 소식을 보도했다는 이유에서다. 김 의원은 여당 의원들이 윤 전 총장처럼 질문했으면 ‘반도체 기본 상식도 없다’고 혹평했을 것이라며 윤 전 총장을 우회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민주당이라면 없는 의혹도 만들어 보도”“차리리 윤석열 캠프 가서 일해” 김 의원은 19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윤 전 총장의 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 방문 소식을 보도한 기사를 링크한 뒤 “언론의 아부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정말 민망하다”고 비난했다. 그는 윤 전 총장이 ‘실리콘 웨이퍼와 기판은 어떻게 다른가’ 등의 질문을 소개한 언론 보도에 대해 “아마 민주당 의원 중에서 이런 질문 했으면 언론들이 ‘반도체 기본 상식도 없어’, ‘중학생 수준보다 못한 민주당 국회의원’ ‘질문할 가치가 없는 질문만 골라서 해’라는 제목을 포털 메인에 3박 4일 대문짝만하게 내걸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윤 전 총장이 웨이퍼가 기판이라는 기초적인 사실조차 모른다는 점을 비꼰 동시에 이를 지적하지 않은 언론의 편향성을 비난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김 의원은 “언론들이 민주당이라면 없는 의혹도 일부러 논란을 만들어서 보도하고, 윤석열과 야당에 대한 의혹은 녹취록과 증거가 명백히 있어도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대부분의 언론이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동참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연 이런 기사를 쓰는 곳이 언론인지 국민의힘 홍보지를 만드는 회사인지 아니면 (국민의힘) 선거캠프 관계자인지 헷갈린다”면서 “차라리 그냥 윤석열 캠프에 가서 일해라”고 언론사와 기자들을 향한 막말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이런 언론들은 부끄럽지 않나. 기본적인 직업 소양을 가지고 일하라”고 올렸다. 김 의원은 변호사 시절이던 2019년 조국 사태 때 ‘친 조국, 반 윤석열’ 태도를 명확히 취해 여권 지지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 총선에서 그는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그러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김 의원을 김용민 의원과 묶어 ‘조국 똘마니’라고 조소했다. 이에 김용민 의원은 진 전 교수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했다.윤석열, 17일 반도체 생산시설 돌아봐“나노 반도체 시대 뒤떨어진 장비 같다”尹, 신형 장비 교체 비용 등 묻기도 尹 “이게 바이든이 든 웨이퍼인가?” 교수에 “필요한 정책 있으면 알려 달라” 앞서 윤 전 총장은 지난 17일 오후 수행원 없이 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를 방문해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정덕균 석좌교수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인 이종호 교수 안내로 3시간가량 시설을 견학한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소 내 반도체 생산 시설인 팹(Fab) 투어는 윤 전 총장이 먼저 요청했고 그는 방진복을 착용하고 30분 넘게 장비를 살펴보며 반도체에 대한 많은 질문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윤 전 총장은 “포토레지스터에서 레지스터는 무슨 뜻인가” 등 반도체 생산기술에 대한 질문과 함께 팹에 있는 일부 장비를 가리켜 “나노 반도체 시대에 크게 뒤떨어진 노후 장비들 같다”며 신형 장비 교체 비용 등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다. 또 연구실에 있던 웨이퍼를 가리키며 “이것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반도체 회의에서 들어 보인 것인가”라고 묻고 권위자인 두 교수에게 “앞으로 필요한 정책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말했다. 반도체 수급대란으로 국내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는 등 국가 기간산업에 막대한 타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유력 대권주자인 그가 직접 연구·개발의 최전선 현장을 방문해 전문가들과 소통을 시도한 것은 정치권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윤 전 총장은 지난 3월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에 반대하며 총장직에서 사퇴한 이후 잠행 중이었는데 국내 주요 산업 분야와 접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두고 물밑에서 대선 출마를 위한 ‘내공 쌓기’에 주력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앞서 윤 전 총장은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에 이어 정승국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등을 차례로 만나 노동, 외교·안보, 경제 분야와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 윤 전 총장의 한 지인은 “아무리 일러도 6월말까지는 정치 행보를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지금은 국정 운영에 필요한 공부를 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는 1988년 설립 이후 30여년 동안 국내 반도체 연구 개발 인력인 석박사 1500명 이상을 배출해 온 ‘반도체 싱크탱크’로 불린다. 한편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전문가 포럼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공정과 상식)이 오는 21일 발족된다. 포럼이 개최하는 창립 기념 토론회에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윤 전 총장의 은사인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가 강연에 나선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몸 푸는 윤석열, 이번엔 ‘반도체 열공’… 몸값 뛰는 김동연, 여야 서로 러브콜

    몸 푸는 윤석열, 이번엔 ‘반도체 열공’… 몸값 뛰는 김동연, 여야 서로 러브콜

    유력 대권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공개 행보를 늘리고 있다. 조만간 지지 포럼 출범까지 예고되는 등 등판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대권 가능성을 거론하며 추켜세운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몸값도 빠르게 오르는 양상이다.윤 전 총장은 지난 3월 사퇴 이후 각계 전문가를 비공개로 만나는 식의 간접적 ‘메시지 정치’를 이어 가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를 찾아 정덕균 석좌교수 등을 만난 사실이 19일 알려졌다. 이 만남은 반도체 공부를 하고 싶다는 윤 전 총장의 연락으로 성사됐다. 최근 미중 반도체 전쟁이 격화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1일에는 지지 포럼인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이 출범한다. 한국법학교수회장을 지낸 정용상 동국대 명예교수 등 33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3·1운동 민족 대표 33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출범 토론회 주제도 ‘윤석열, 대통령 가능성과 한계’다. 윤 전 총장의 석사 논문을 지도한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가 축하 강연,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기조 발제를 맡는다. 윤 전 총장 측은 “윤 전 총장은 참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윤 전 총장의 공식 정계 진출 시기는 아직 안갯속이다. 지지율 1위 윤 전 총장이 굳이 조기 등판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과 함께 국민적 피로도 해소를 위해 일정을 당겨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지도부가 출범하는 6월 중순 이후 가시적 활동을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여야 모두 ‘우리 편’이라며 관리에 나선 김 전 부총리는 2018년 12월 사퇴 후 영입설이 끊이지 않는 인물이다. 흙수저 출신의 경제전문가, 충청 대망론 등 정치권에서 탐을 내는 이력을 가졌다. 특히 문재인 정부 초기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에 각을 세워 야권의 영입 대상에도 올랐다. 김 전 부총리는 지난 1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요청설에는 “세력 교체에 준하는 정도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며 새판 짜기와 독자세력화 뜻을 밝혔고, 18일에는 “단임 대통령제에서 성과를 내려는 성급한 마음이 만드는 ‘청와대 정부’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무소속 홍준표 의원의 복당과 그의 입당 시기를 연계하며 앞서 나가는 분위기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의 정략에 흔들리는 무게 없는 분이 아니며 야권의 불쏘시개로 쓰일 한가한 분도 아니다. 국민의힘으로 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김 전 부총리가 끝내 야권행을 택하면 민주당의 타격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손지은·이근아 기자 sson@seoul.co.kr
  • “반도체 알고 싶다” 윤석열, 서울대 반도체연구소 찾아가 질문세례 [이슈픽]

    “반도체 알고 싶다” 윤석열, 서울대 반도체연구소 찾아가 질문세례 [이슈픽]

    尹, 먼저 방문 요청…방진복 입고 반도체 ‘열공’“이게 바이든이 든 웨이퍼인가?” 질문 쏟아내3시간가량 반도체 생산시설 꼼꼼히 돌아봐3월 사퇴 후 국내 주요 산업 접촉은 처음尹, 잠행 중 ‘내공 쌓기’ 대선수업 한창‘윤석열 지지’ 반문 포럼 33인… 21일 출범차기 야권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최근 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를 찾아가 반도체에 대한 수십가지 질문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수급난으로 국내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는 등 국가 기간산업에 막대한 타격을 주는 가운데 직접 연구·개발의 최전선 현장을 방문해 전문가들과 소통을 시도한 것이다. 윤 전 총장이 지난 3월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에 반대하며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한 이후 국내 주요 산업 분야와 접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두고 물밑에서 대선 출마를 위한 ‘내공 쌓기’에 주력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나노 반도체 시대 뒤떨어진 장비 같다”윤석열, 신형 장비 교체 비용 등 묻기도 윤 전 총장은 지난 17일 오후 수행원 없이 연구소를 방문해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정덕균 석좌교수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인 이종호 교수 안내로 3시간가량 시설을 견학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는 1988년 설립 이후 30여년 동안 국내 반도체 연구 개발 인력인 석박사 1500명 이상을 배출해 온 ‘반도체 싱크탱크’로 불린다. 지난달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간담회를 열고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반도체 인력 양성 계획을 밝힌 곳이기도 하다. 윤 전 총장은 연구소를 둘러보는 동안 학계 권위자인 두 교수에게 수십 가지 질문을 쏟아냈다고 한다. 그의 궁금증은 “실리콘 웨이퍼와 기판은 어떻게 다른가”, “포토레지스터에서 레지스터는 무슨 뜻인가” 등 반도체 생산 기술과 관련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윤 전 총장은 연구소 내 반도체 생산 시설인 팹(Fab) 투어를 먼저 요청해 방진복을 착용하고 30분 넘게 장비를 살펴보는 열의를 보였다. 특히 팹에 있는 일부 장비를 가리켜 “나노 반도체 시대에 크게 뒤떨어진 노후 장비들 같다”며 신형 장비 교체 비용 등에 대해 질문했다.尹 “필요한 정책 있으면 알려 달라”반도체 연구자 선구자 흉상 앞서 촬영도 윤 전 총장은 반도체 연구 인력 양성에도 관심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대화 도중 교수들과 “중국은 반도체 인력 양성이 우리보다 다섯 배 많다는데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책에서 읽었습니다”라는 등의 문답을 주고받았다. 그러면서 “앞으로 필요한 정책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교수들에게 당부했다. 윤 전 총장은 연구실에 있던 웨이퍼를 가리키며 “이것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반도체 회의에서 들어 보인 것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반도체 연구의 선구자인 고(故) 강대원 박사의 흉상 앞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등 내내 호기심 가득한 모습을 보였다는 게 연구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정 교수는 일부 언론에 “윤 전 총장이 반도체에 대한 기술적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연구소를 방문한 것”이라면서 “자연과학에 대해서도 상당히 잘 알고 있고 캐치(습득)도 빨라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윤 전 총장이 반도체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고 미리 반도체 분야를 많이 공부하고 온 것 같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연구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만성적인 인력난 해소를 당부했다고 했다.이재용 사면 얘기는 거론 안해“尹, 6월까진 정치 행보 않고 국정 공부” 이날 만남에서 반도체 업계가 강하게 요구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 얘기는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윤 전 총장 측 지인은 “본인이 그동안 검사였을 때와 자연인이 됐을 때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무래도 조금 달라지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면서 “그런 맥락에서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도 인식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사퇴 후 잠행 중인 윤 전 총장은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 비공개로 교류하며 물밑 ‘대선 수업’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에 이어 정승국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등을 차례로 만나 노동, 외교·안보, 경제 분야와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 윤 전 총장의 한 지인은 “아무리 일러도 6월말까지는 정치 행보를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지금은 국정 운영에 필요한 공부를 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고 전했다.‘윤석열 지지’ 포럼 21일 출범진중권, 창립 토론회 기조발제 한편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전문가 포럼이 오는 21일 발족된다. 포럼이 개최하는 창립 기념 토론회에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윤 전 총장의 은사인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가 강연에 나선다.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공정과 상식)의 상임대표를 맡은 정용상 동국대 법학과 명예교수는 이날 “무너진 공정과 상식, 법치를 바로 세워 정상적인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각 분야 교수와 전문가 33명이 모여 포럼을 발족한다”면서 “반듯한 대한민국을 이루기 위해 훌륭한 지도자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모임을 출범했다”고 밝혔다. 1919년 민족 대표 33명이 3·1 독립선언에 참여한 것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포럼을 반문(문재인) 포럼으로 규정하는 분위기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전국법과대학학장협의회장을 지낸 정 교수는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 전 총장과 공석에서 몇 차례 만나며 인연이 있다고 밝혔다. 또 윤 전 총장의 서울대 은사인 송 교수가 협의회장으로 있을 때 사무총장을 지냈다. 정 교수는 “지금도 윤 전 총장과는 연락을 하고 있고 포럼 발족에 대해서도 알렸다”고 밝혔다. 윤 전 총장 측은 언론에 “전문가 지지 그룹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윤 전 총장과 직접 관련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선을 그었다. 포럼은 출범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 가능성과 한계’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다. 토론회 기조발제는 진 전 교수가 맡고 토론은 김민전 경희대 교수와 김태규 변호사가 한다. 송 교수는 ‘국제질서의 변동과 우리의 과제’란 주제로 강연한다. 정 교수는 “이 포럼은 공정과 상식이 통하고 바로서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것이 제1목적으로 윤 전 총장의 대권 과정에서 백그라운드 역할에 중점을 둔 것은 아니다”라면서 “내년 3월 대선까지는 포럼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진 전 교수는 SNS에서 “어느 모임에서 공정을 주제로 발제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수락한 것뿐”이라면서 “제 발제를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포럼 발기인으로는 김종욱 전 한국체육대학교 총장과 박상진 국악학원 이사장, 황희만 전 MBC 사장, 김탁 고려대 의대 교수, 윤정현 범사련 공동대표 등이 이름을 올렸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메시지 정치’로 등판 채비 윤석열…몸값 뛰는 김동연

    ‘메시지 정치’로 등판 채비 윤석열…몸값 뛰는 김동연

    각계 전문가 만나 공부하는 윤석열‘윤 전 총장 지지’ 전문가 포럼도 곧 발족김동연은 여야 모두 영입설 흘러나와유력 대권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공개 행보를 늘리고 있다. 조만간 지지 포럼 출범까지 예고되는 등 등판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대권 가능성을 거론하며 추켜세운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몸값도 빠르게 오르는 양상이다. 각계 전문가에 조언 듣는 윤석열…지지 전문가 포럼도 발족 윤 전 총장은 지난 3월 사퇴 이후 각계 전문가를 비공개로 만나는 식의 간접적 ‘메시지 정치’를 이어 가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를 찾아 정덕균 석좌교수 등을 만난 사실이 19일 알려졌다. 이 만남은 반도체 공부를 하고 싶다는 윤 전 총장의 연락으로 성사됐다. 최근 미중 반도체 전쟁이 격화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21일에는 지지 포럼인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이 출범한다. 한국법학교수회장을 지낸 정용상 동국대 명예교수 등 33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3·1운동 민족 대표 33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출범 토론회 주제도 ‘윤석열, 대통령 가능성과 한계’다. 윤 전 총장의 석사 논문을 지도한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가 축하 강연,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기조 발제를 맡는다. 윤 전 총장 측은 “윤 전 총장은 참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윤 전 총장의 공식 정계 진출 시기는 아직 안갯속이다. 지지율 1위 윤 전 총장이 굳이 조기 등판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과 함께 국민적 피로도 해소를 위해 일정을 당겨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지도부가 출범하는 6월 중순 이후 가시적 활동을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여야 모두 눈독 들이는 김동연 전 부총리도 주목여야 모두 ‘우리 편’이라며 관리에 나선 김 전 부총리는 2018년 12월 사퇴 후 영입설이 끊이지 않는 인물이다. 흙수저 출신의 경제전문가, 충청 대망론 등 정치권에서 탐을 내는 이력을 가졌다. 특히 문재인 정부 초기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에 각을 세워 야권의 영입 대상에도 올랐다. 김 전 부총리는 지난 1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요청설에는 “세력 교체에 준하는 정도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며 새판 짜기와 독자세력화 뜻을 밝혔고, 18일에는 “단임 대통령제에서 성과를 내려는 성급한 마음이 만드는 ‘청와대 정부’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무소속 홍준표 의원의 복당과 그의 입당 시기를 연계하며 앞서 나가는 분위기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의 정략에 흔들리는 무게 없는 분이 아니며 야권의 불쏘시개로 쓰일 한가한 분도 아니다. 국민의힘으로 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김 전 부총리가 끝내 야권행을 택하면 민주당의 타격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손지은·이근아 기자 sson@seoul.co.kr
  • [동정] 정갑영 前연대 총장, 유니세프한국위 회장 취임

    △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이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제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정 전 총장은 전임 회장이던 현승종 전 국무총리와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에 이어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으로 위원회 업무를 총괄하게 된다. 정 전 총장은 연세대 17대 총장, 감사원 감사혁신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 “정 많은 막내 아들이었는데”…컨테이너 사고 대학생 아버지의 절규

    “정 많은 막내 아들이었는데”…컨테이너 사고 대학생 아버지의 절규

    “대한민국이 알아야 합니다. 일하는 현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건 사람 잡는 도살장입니다.” 평택항에서 화물 컨테이너 적재 작업 도중 사고로 숨진 고 이선호군의 아버지 이재훈(58)씨는 7일 아들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 평택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서 격양된 목소리로 사고 당시를 설명했다. 이씨는 15일째 아들의 빈소를 지키고 있다. 그의 검지 손톱은 네모 반듯이 갈려진 상태다. 빈소를 찾아오는 정치인과 취재진에게 몇 번이고 손가락으로 사고 경위를 묘사하면서 손톱이 테이블과 부딪혔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도 빈소를 찾아온 취재진들에게 사고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해 달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지만…안전 지침 미흡” 이군은 지난달 22일 오후 4시쯤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상부의 지시에 따라 컨테이너 위 나무 조각을 줍다가 변을 당했다. 이씨가 세워져 있던 컨테이너 날개 아래쪽에서 일을 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지게차 운전기사 A씨는 이군의 반대편 날개를 쓰러뜨렸다. 그 반동으로 300㎏에 달하는 컨테이너 날개가 쓰러지며 그를 덮쳤다. 이군은 병원으로 호송됐으나 두개골 파열과 목뼈 골절, 폐 손상 등으로 사망했다. 유족들은 사고 당시 제대로 된 구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씨는 “그 무거운 철판에 사람이 깔려 숨이 터지고 머리가 터져서 피가 철철 나는데도 119 구조신고가 아니라 윗선에 보고를 했다”며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가면 일단 살리고 봐야 하는데 윗선에 보고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항변했다.이들은 현존하는 안전 지침도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아 무용지물이라고 설명한다. ‘고 이선호군 산재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경기평택항만공사의 ‘안전관리지침’을 살펴보면 안전 교육 실시, 안전 장비 구비, 안전관리위원 배치, 수신호 배치가 규정되어 있다”며 “아버지인 이씨도 해당 항만에서 8년간 일용직으로 일하며 안전 교육을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정 많던 우리 선호…친구같은 막내 아들” 초코 과자를 좋아하고 장난기 많던 평범한 23살 대학생 이군은 이씨에게 삶의 희망이었다. 또 아들보다는 절친한 친구에 가까웠다. 이씨는 “어릴 때부터 목욕탕을 함께 다니며 사우나 안에서 애국가를 4절까지 가르치곤 했다”며 “군대 훈련소에서 유일하게 애국가를 4절까지 불렀다더라”고 전했다. 이군의 영정사진 앞에는 초코파이 3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가 생전 초코 과자류를 유독 좋아해 이군의 누나가 영전에 바친 것이다. 정이 많은 성격 덕분인지 이군의 주변엔 친구들이 많았다. 아직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찾아 이군을 그리워하며 밤을 지새운다. 고등학교 동창 김벼리(23)씨는 “선호가 성격도 착하고 친구들한테 정말 잘했기 때문에 친구들도 15일째 선호가 해줬던 대로 똑같이 돌려주고 있는 것”이라며 “술을 마시면서도 친구들이 미래가 막막하다고 토로하면 위로를 건네주던 친구였다”고 회상했다.“산업재해 국민적 관심 가져 달라” 아들의 목숨을 한순간에 앗아간 재해였지만 사회적 관심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군의 유족과 친구들은 사회가 산업재해 사고에는 관심이 부족하다며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신문 취재진이 이날 오전 8시 40분쯤 찾은 이군의 빈소에는 아버지와 매형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후 2시 20분까지 빈소를 찾은 일반 시민은 단 1명으로 대책위 관계자만이 접객실을 채웠다. 서울에서 빈소를 찾았다는 대학생 송상현(22)씨는 “나도 전역한 지 얼마 안 된 대학생으로 건설 쪽 일용직에 종사한 적이 있어 이군의 사고에 공감이 된다”며 “사고가 사회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많이 조명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말했다. 유가족과 대책위는 이군을 고용한 원청회사 ‘(주)동방’과 정부 측이 정확한 사고 원인을 찾고 제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요구가 완벽히 이행될 때까지 이군의 빈소는 그대로 유지된다. 이씨는 “사업주가 내 마지막 삶의 희망까지 강탈해갔다”며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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