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송금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생산성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이학영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관측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한충희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409
  • 장윤정 동생“지출 73억 중 사업투자 5억뿐” 쾌도난마 출연해 밝혀

    장윤정 동생“지출 73억 중 사업투자 5억뿐” 쾌도난마 출연해 밝혀

    가수 장윤정의 어머니와 동생이 ‘쾌도난마’에 출연해 재산 탕진 논란에 대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지난 30일 오후 방송된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에는 장윤정의 어머니인 육흥복씨와 남동생 장경영씨가 출연했다. ‘쾌도난마’에 출연한 장경영씨는 지난 10년간 장윤정의 수입 지출 내역을 공개하며 자신의 사업 실패로 장윤정의 재산을 탕진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장경영씨는 “사건이 터진 뒤 내가 아는 데까지 누나(장윤정)의 지출 내역을 정리해봤다”면서 “사업 초기 누나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채무 이행을 성실히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역으로 재산 탕진이라 할 만한 행동을 내가 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장윤정이 지난 10년간 부동산 매입에 31억원, 운영경비에 17억원, 가족 생활비 18억 등 총 73억원을 사용했다는 내용이 담긴 표를 공개했다. 장경영씨는 “실제 내 사업에 들어간 돈은 5억원 정도다. 창업이 아닌 기존 회사에 투자하는 형태로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장경영씨는 자신이 장윤정에게 매달 300만원씩 송금한 내용이 담긴 통장도 공개했다. 앞서 장윤정은 지난 20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10년간 번 돈을 모두 잃고 억대 빚까지 진 사실을 알고 은행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놀라서 운 것이었다”면서 “돈이 없는 것은 괜찮다. 어느 정도 예상도 했다. 그런데 빚까지는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부모의 결별 소식 등을 전했다. 그러나 오는 6월 결혼을 앞둔 KBS 도경완 아나운서와의 러브 스토리를 공개하며 새로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가상화폐로 7조원 돈세탁 적발… 세계 최대 규모

    전 세계 돈세탁 사건 사상 최대 규모인 60억 달러(약 6조 8000억원)를 불법 세탁한 인터넷 가상통화 업체 ‘리버티 리저브’가 미국 사법 당국에 적발됐다. 28일(현지시간) 뉴욕 연방검찰은 각 나라 범죄조직의 불법자금 세탁을 도와준 혐의로 이 회사 창업자이자 대표인 아서 부도브스키(39) 등 전·현직 임직원 7명을 기소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미국인 20만명을 포함해 러시아·중국·스페인·키프로스 등 17개국 100만명의 이용자들은 2006년부터 7년 동안 리버티 리저브에서 5500만건의 불법거래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리버티 리저브는 이용자가 이름과 집 주소 등 간단한 정보만 제공하면 별도의 신원확인 절차 없이 계좌를 만들어 줬다. ‘LR’이라고 불리는 가상통화를 받은 이용자들은 1%가량의 수수료를 내고 이 돈을 현금으로 바꾸거나 전 세계 다른 계좌로 자유롭게 송금할 수 있었다. 검찰이 이날 공개한 자료에는 ‘러시안 해커’나 ‘해커 계좌’라는 가명과 ‘가짜 거리 123번지’라는 허위 주소로 된 계좌도 있었다. 이 때문에 세금이 부과되거나 신분 노출에 대한 부담이 없어진 마약 판매상이나 아동 포르노 업자, 해커 같은 범죄집단은 온라인상에서 검은돈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었다고 수사 당국이 전했다. 검찰은 지난 24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부도브스키를 체포하는 등 피고인 7명 가운데 5명의 신원을 확보했다. 그는 2006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사업차 코스타리카에 머물러 온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사법 당국의 이번 기소가 최근 온라인에서 확산 중인 비트코인이나 페이팔 같은 가상통화 시장에 대한 전방위 조사를 예고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팀 쿡, 탈세 청문회 서는 까닭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다음 주 열리는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기업의 역외수익에 대한 조세 부담(법인세)을 완화하는 내용의 세제 개편안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17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쿡 CEO는 오는 21일 미 상원 상임조사소위원회의 기업 역외 탈세 청문회에 출석해 이같이 증언할 계획이다. 쿡 CEO는 WP와의 인터뷰에서 기업들이 해외에서 얻은 수익을 국내로 가져와 일자리 창출이나 연구개발 등에 투자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은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미국으로 송금하려면 35%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데 세율이 너무 높다”면서 “세율을 0%로 하자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수준에 맞추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휼렛패커드(HP) 등 다국적 기업들이 역외로 소득을 빼돌려 탈세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는 가운데 청문회에 참석해 증언하는 기업은 애플이 유일하다고 WP는 전했다. 투자은행 JP모건 보고서에 따르면 1000개의 미국 기업이 1조 7000억 달러(약 1900조원)로 추정되는 자산을 해외의 조세 도피처에 보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가 총액 기준 세계 최대 기업인 애플이 1450억 달러(약 162조원)의 현금 가운데 1000억 달러를 해외에 쌓아 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달 애플이 대규모 채권을 발행한 것도 세금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분석이 있었다. 쿡은 “애플은 주정부와 연방정부에 국내 소득세로 시간당 1억 달러를 내고 있다”면서 “애플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법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현대 비자금 121억 전액 국고 귀속

    2003년 ‘대북 송금 사건’ 당시 검찰이 압수한 현대 비자금 121억여원이 결국 국고에 귀속됐다. 14일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지난 2월 공고한 ‘압수물 환부청구’의 공고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검찰이 보관 중인 121억여원은 오늘 중으로 안전행정부 계좌로 이체 할 예정이다. 검찰은 지난 2월 15일 자 관보에 현금 36억여원과 자기앞수표 43억 6000여만원, 주택채권 41억 2000여만원 등 총 121억 5000여만원에 달하는 압수물에 대한 환부청구 공고를 게재했다. 이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2003년 특가법상 뇌물 혐의로 대북 송금 특별검사팀과 대검찰청 중수부 수사를 받을 당시 압수된 돈이다. 돈을 돌려받을 이가 누군지 몰라 피환부인란에 ‘불상’으로 기재된 채 3개월간 주인을 기다렸으나 나타나지 않아 공판 3부 검사의 지휘에 따라 국고 계좌로 들어가게 됐다. 대북 송금 사건은 2003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박 의원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등이 금강산 관광사업 청탁 대가로 고(故)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 측으로부터 거액의 비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일었던 사건이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상)

    [명사가 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상)

    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반드시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 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 “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 “송금후 라면 값만 남아”… 기러기가구 115만 ‘우울증 빨간불’

    “송금후 라면 값만 남아”… 기러기가구 115만 ‘우울증 빨간불’

    기러기 아빠인 나길록(43·서울·가명)씨는 얄팍한 주머니 탓에 끼니를 숱하게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운다. 일터인 중소기업 연봉이 4000만원쯤 되지만 필리핀 마닐라에서 조기유학 중인 초등생 두 딸과 아내에게 다달이 300만원씩 부치고 나면 빈손이다. 혼자 오래 지내면서 우울증 낙인까지 찍혔다. 그는 “올해 초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필리핀에 갔더니 ‘비행기표값 있으면 차라리 돈을 더 부치지 그랬느냐’는 말만 비수처럼 되돌아왔다”고 말했다. 또 “밤늦게 집에 혼자 앉아 창 밖을 보다가 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가족을 해외로 보내고 홀로 사는 기러기 아빠들은 해마다 가정의 달인 5월이 도리어 가장 슬프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 가족 행사 때 다른 가족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노라면 외로움은 극에 달한다. 더욱이 요즘 TV·영화 등에서 부성애 코드의 작품이 쏟아지자 “가족 생각이 사무치게 간절해진다”는 기러기 아빠가 많아졌다. 예전엔 기러기 아빠의 고충은 이른바 ‘가진 사람’들의 얘기로만 들렸지만 이제 전 계층의 문제로 확산됐다. 동남아권이나 중국 유학이 대세(?)로 자리를 잡으면서 중산층·저소득층의 기러기 아빠가 덩달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통계청에 따르면 배우자와 떨어져 지내는 ‘기러기 가구’는 전국 115만 가구였다. 50만 가구 이상이 기러기 아빠만 사는 가구로 추정된다. 조기유학에 따른 기러기 아빠는 20만~30만명이다.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엄명용 교수는 “2000년대 들어 매년 2만명 안팎의 기러기 가족이 생겨 꾸준히 쌓이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퇴직을 앞두고 노후를 준비하려고 가족들을 먼저 동남아 등으로 보내 적응시키는 교육 이외 목적의 기러기 아빠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기러기 아빠들은 ‘홀로 살아간다며 슬프게 바라보는 연민의 눈초리를 받기 싫다’는 이유 등으로 사적 모임엔 거의 나가지 않는다. 이수연 한국워킹맘연구소 대표는 “이처럼 고립을 자초하면서 마음의 병은 커진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3월 대구에서는 10년째 기러기 아빠로 지내던 치과의사 A(50)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 대표는 “독거 생활을 성공적으로 해낸 기러기 아빠를 중심으로 자조 모임을 만들어 서로를 보듬는 게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한편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실은 오는 13일 기러기 아빠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한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더 어려운 학생·교수님 연구비에 도움됐으면”

    “더 어려운 학생·교수님 연구비에 도움됐으면”

    “중학생 때 인도로 유학을 갔는데 팔이나 다리가 잘린 아기를 안고 늘 같은 곳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구걸을 위해 자기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한 거라더군요. 당시엔 무섭고 징그럽다는 생각에 일부러 그 거리를 피해 다녔어요.” 동국대 법학과 2학년 김지예(21·여)씨는 그때부터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겠다고 결심했다. 그때의 다짐은 5년 후 장학금 반납이라는 작은 실천으로 이어졌다. 김씨는 지난달 장학금 100만원을 자신보다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양보했다. 작년 7월 성적우수 장학금으로 받은 104만 5000원을 학과 계좌로 다시 송금한 데 이어 두 번째다. ‘저희 집 상황에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더 어려운 학생을 위해 쓰거나 교수님들의 연구비용으로 쓰였으면 좋겠어요’라는 편지도 꾹꾹 눌러 썼다. 편지 끝엔 ‘더 열심히 공부해서 또 장학금을 받을 게요’라는 각오도 다졌다. 남부럽지 않은 부자여서 두 번이나 장학금을 반납한 것은 아니다. 그의 부모님은 6년여 전부터 동네에서 작은 마트를 운영 중이다. “아르바이트 생각도 했었는데 부모님께서 그럴 시간에 열심히 공부를 하라며 말리셨어요. 그래서 지금은 용돈을 최대한 절약해 쓰고 그만큼 학교생활에 집중하고 있어요.” 김씨는 봉사 일에도 열심이다. 대입 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직후 시작한 월드비전의 영문문서 번역 일을 1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는 미혼모들의 쉼터에서 아기들 돌보는 일을 했다. 김씨는 졸업하고 나서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전공을 살려 로스쿨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따 월드비전 같은 곳에서 일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무엇보다 부모님께 고마워요. 좋은 일에 쓴다니까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장학금을 양보하는 데 흔쾌히 동의해 주셨거든요. 돌려보낸 돈이 어떤 학생에게 돌아가든, 어디에 쓰이든 상관없어요. 좋은 일에 쓰일 거라 믿으니 다시 장학금을 타더라도 기부할 겁니다. 그런데 또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단칸방서 암과 싸워도… 기부는 내 운명

    단칸방서 암과 싸워도… 기부는 내 운명

    “기부는 거창한 게 아니라 그저 내 기분 좋자고 하는 거예요. 후원자를 50명까지 늘리는 게 목표입니다.” 윤순희(48·여)씨는 당연한 일을 한다는 듯이 말하며 방긋 웃었다. 윤씨 가족은 5년 전부터 국내외 아동 후원기구를 통해 제3세계 아이들에게 돈을 보내고 있다. 이것저것 합해 매월 20만원 정도가 꼬박꼬박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부자에겐 부담없는 돈일 수 있지만 사실 윤씨에겐 그렇지 않다. 경기 안성에서 음식재료 유통업을 하는 윤씨는 대기업까지 식자재 유통업에 손을 뻗치면서 된서리를 맞았다. 사업이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건축업을 하던 남편도 3년 전 위암 선고를 받고 어렵게 투병하고 있다. 졸지에 가장이 된 윤씨도 고질적인 허리디스크에 이어 얼마 전 위암 초기 소견서를 받아들었다. 위암으로 세상을 뜬 시부모에 이어 부부도 위암을 앓고 있지만 윤씨는 “잘 관리하면 된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가족은 요즘 안성의 한 임대사무실에 마련된 조립식 단칸방에 산다. 간이로 샤워실만 만들었을 뿐 외부 공중화장실을 써야할 만큼 열악한 환경이다. 변변한 방 한칸 없이 생활고에 시달리지만 윤씨는 기부가 곧 희망이라고 말한다. “한 번 기부를 하고 나니까 멈출 수가 없어요. 한 끼 외식비면 아이 한 명을 살리는 기쁨을 누릴 수 있잖아요. 우리보다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충분히 행복한 거죠.” 윤씨 가족은 2009년 한 방송을 통해 국제 아동구호단체 ‘플랜코리아’를 알게 되면서 기부 릴레이를 시작했다. 이후 국내 단체인 어린이재단에 쌈짓돈을 내놨고 불우이웃돕기 모금에도 열심히 참여한다. 사업이 반짝하고 번창했을 때 윤씨는 거래처가 한 곳 늘어날 때마다 후원 아동을 한 명씩 늘리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식구’가 된 아이들만 6명. ‘자식’이라고 부르는 후원아동 한 명당 3만원씩 아프리카 빈국으로 송금된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근로자의 날 문여는 은행 영업점은 어디

    근로자의 날(5월 1일)을 맞아 대부분의 주요 은행들이 문을 닫는 가운데 영업을 하는 지점은 어디 인가. 30일 은행권에 따르면 관공서 내 영업점과 환전센터 등 일부 점포는 정상영업을 한다. 우리은행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서울 시청과 25개의 구청지점 및 출장소는 영업을 한다고 밝혔다. 성남, 충주, 속초, 포항 법원 등 주요 법원 출장소와 동해지점도 문을 연다. 신한은행도 법원과 검찰청 그리고 시청과 구청 업무를 취급하는 점포 72곳은 영업을 한다. 우리·신한 두 은행 모두 법원공탁금업무와 각종 세공과금 수납업무 등 법원과 금고 관련 업무만 취급한다. 기업은행은 군산롯데마트 내 점포와 서울역환전센터, 이태원외환송금센터, 안산외환송금센터는 정상 운영한다.국민은행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구로와 오장동에 있는 외국인 고객 대상 특화 점포는 문을 연다. 온라인뉴스부iseoul@seoul.co.kr
  • 국민은행 도쿄지점, 자금세탁 혐의 조사받아

    국민은행 일본 도쿄지점이 자금세탁 혐의로 일본 금융청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대가가 오갔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2011년 상반기쯤 도쿄지점에 근무했던 A씨에게 일본인 여성 B씨가 상속자금이라며 4억 5000만엔(약 40억 9000만원)을 맡겼다. B씨는 일본 야쿠자 내연녀의 딸이었다. 일본 금융청은 B씨가 특별 관리 대상 명단(블랙 리스트)에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신분상 의심이 가고 거액의 자금을 맡겼다는 점에서 불법자금에 무게를 두고 지난달 말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2010년 2월부터 올 2월까지 3년간 도쿄지점에서 근무한 뒤 귀국, 국내 지점에서 근무 중이다. 국민은행 측은 “이달 초 감사팀 직원을 도쿄지점으로 보내 자체 검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자금세탁 과정에서 은행 직원과 현지 지점이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사례금을 받았는지 여부도 (일본 금융청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측은 “일본 금융청도 A씨가 처음부터 불법자금인 것을 알고 업무를 처리했다고 보진 않고 있다”면서 “대가 수수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앞서 일본 금융청은 2010년 1월 외환은행 오사카지점 등 2곳에 대해 3개월간 예금·대출·송금 등 신규 업무 정지 조치를 내렸다. 오사카지점이 자금 출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하는 등 자금세탁방지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 금융청의 조사 내용이 사실로 밝혀지면 외환은행에 내려진 처분보다 더 큰 영업정지 조치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코레일, 토지매매계약 해지 통보

    코레일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시행사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드림허브)에 토지매매계약 해지를 통보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는 코레일이 지난 11일 용산개발사업 부지를 돌려받기 위해 땅값 2조 4167억원 중 5470억원을 대주단에 반환한 것에 따른 후속 조치다. 코레일은 지난 3월 드림허브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진 뒤 민간출자사들의 기득권 포기를 전제로 한 정상화 방안을 마련했다가 출자사들이 거부한 이후 용산개발사업의 청산 절차를 밟고 있다. 코레일 관계자는 “이제 사업이 정상화되려면 코레일이 반납한 땅값 5470억원과 이에 따른 이자 40여억원을 드림허브가 돌려줘야 한다”면서 “드림허브와 민간출자사들이 더 이상 사업을 진행할 의지나 능력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코레일은 29일까지 사업협약을 해지하고 30일에 협약이행보증금 청구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일부 민간출자사는 지속적으로 사업 정상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코레일이 지난달 제안한 용산개발사업 정상화 방안 가운데 사업 관련 소송금지와 특별합의서 위반 시 30억원의 벌금 등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항”이라면서 “코레일이 이들 조항만 뺀다면 사업정상화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송득범 코레일 개발사업 본부장은 “민간출자사와 대화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초 제시한 정상화 방안을 변경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코레일이 땅값 5470억원을 납부하면서 사실상 정상화 가능성은 사라졌다. 일부 출자사가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은데 ‘민간 공모사업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국토부의 입장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경암학술상 수상자 25일 특강

    경암교육문화재단(이사장 송금조)은 25일 오후 3시 부산대학교 인덕관에서 2008년 제4회 ‘경암학술상’ 예술부문 수상자이자 분청사기의 대가인 도예가 윤광조씨를 초청해 ‘분청사기의 현대적 변용’을 주제로 학술강좌를 연다.
  • 은행들 “외국인 고객 모십니다”

    은행들 “외국인 고객 모십니다”

    시중은행들이 외국인 고객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전용 상품 출시 외에도 외국인 기업을 위한 전용 서비스도 나왔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인과 외국인 기업의 신규 금융거래 상담을 전담하는 ‘외국인 투자기업 전용 고객상담센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외국 기업을 위한 상담 콜센터를 연 것은 국민은행이 처음이다. 외국인 직접 투자 신고절차나 투자금 송금 절차, 법인 설립 후 금융거래에 대해 영어와 일본어로 상담해준다. 김광남 고객만족부 팀장은 “우량 외국인 투자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외환은행은 외국인 고객을 위한 종합 서비스 상품을 내놨다. ‘이지-원 패키지’는 외국인 전용 통장, 적금, 정기예금, 체크카드, 송금서비스, 전자금융 등 8개 상품으로 구성돼 있다. 평일 은행 방문이 어려운 외국인 고객을 위해 12개 지점에서는 일요일에도 영업한다. 김학중 개인상품부 차장은 “외국인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로 이해하기 쉽게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거제와 울산 지역 조선사에 파견돼 근무 중인 외국인 전용 상담창구를 운영하고, 8개 외국어를 지원하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설치할 예정이다. 해외 송금이 많은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송금 특화 서비스도 은행마다 내놨다. 농협은행은 국내 거주 베트남인들을 위해 송금 수수료를 할인해주고, 은행 계좌가 없어도 송금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하나은행은 해외송금 전문회사인 미국 웨스턴유니언과 업무협약을 맺어 하루 정도 걸리던 일반 해외송금 시간을 10분으로 단축시켰다. 은행들이 외국인 고객 모시기에 나선 이유는 외국인 근로자와 기업들의 금융 수요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송금, 체크·신용카드를 많이 이용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외국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해외 송금은 수수료 수익을 얻을 수 있어 은행들이 선호하는 분야”라고 귀띔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北의 대남 군사위협은 장기적 전략”

    북한의 대남·대미 군사 위협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전략이며, 출구전략을 찾지 못하면 만성적인 전쟁위기와 긴장상황을 감수해야 할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19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한반도 정세와 통일·안보 과제’를 주제로 경남 통영에서 연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한반도 정세를 이같이 진단하며 한국 주도의 출구전략 모색을 주문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의 군사 도발 위협 배경에 대해 “한반도 위기를 한껏 고조시켜 정전 체제의 불안정성을 과시하고 향후 협상 국면에서 평화체제 논의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한·미 공동의 군사적 대응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기 때문에 오히려 북한이 원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군사적 차원의 안보 논리만으로 이에 대응하는 것은 절반의 해법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최근 북한은행 출장소의 송금처리 업무를 중단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일시적인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석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북한의 도발적 태도가 중국의 지역안보 전략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북정책을 바꿀 정도의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며 “근본적인 대북정책의 변화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출구전략으로 전문가들은 위기의 개성공단을 활용하는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김수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을 역으로 활용한 경제분야 한반도 프로세스 추진 로드맵을 수립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개성공단 문제를 계기로 대화가 성사되면 북한이 경제발전을 원하고 있는 점을 파고들어 새로운 협상 전략을 수립, 대화 국면을 이어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美 다우지수 끝자리 홀짝 맞히기’ 6000억대 불법 스포츠토토 적발

    해외에 서버를 두고 스포츠 경기 결과는 물론 해외 주가지수까지 도박 종목으로 내걸어 600억원대의 이득을 챙긴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 운영자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18일 고모(46)씨 등 8명을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해외로 달아난 10명을 지명수배했다고 밝혔다. 고씨 등은 2010년 6월부터 최근까지 사설 스포츠토토 사이트 14개를 개설해 회원들로부터 6300여억원을 입금받아 이 가운데 약 10%인 600여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뽀빠이’, ‘페라리’ 등 이름으로 개설된 불법 사이트들의 도박 방식에는 온라인 게임 경기 결과는 물론 홍콩 항셍지수, 미국 다우지수 등 해외 주가지수의 당일 종가 끝자리가 홀수인지 짝수인지를 맞히는 것도 있었다. 각 사이트들은 한번에 최대 300만원까지 내기를 걸 수 있도록 했다. 이 중 한 곳은 회원 2700여명이 한달 동안 입금한 돈이 평균 35억원에 달했다. 이들은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일본에 서버를 뒀고 회원들의 배당금은 태국과 중국에 사무실을 개설해 현지 직원들이 인터넷으로 송금했다. 수사 과정에서 5600여명의 회원 명단을 입수한 경찰은 불법도박 금액이 1000만원이 넘는 사람들을 추려내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작년처럼 1000만원 부치려면 50만원 넘게 더 보태야 해요”

    “작년처럼 1000만원 부치려면 50만원 넘게 더 보태야 해요”

    위안화 가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조선족 노동자들의 송금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까지 오르면서 조선족들은 환율 이중고를 겪고 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서 똑같이 1000만원 보내면 50만원 넘게 손해를 봐요. 그러니 누가 돈을 부치려고 하겠어요.” 17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위치한 외환은행 대림역 지점에서 만난 이모(42·여)씨는 한숨부터 쉬었다. 공과금을 내러 은행에 온 김에 환율 고시표를 들여다보던 차였다. 이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생활비로 매달 100만원씩 보냈지만 올해 들어서는 보내지 않고 있다. 환율차로 인한 손해가 크기 때문이다. 위안화와 달러 가치가 점점 높아지면서 이씨처럼 중국에 돈을 보내던 조선족들이 송금을 미루고 있다. 이날 달러·위안 환율은 달러당 6.1752위안까지 떨어져 중국이 고정환율제를 실시한 1993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환율이 최저라는 것은 위안화 가치가 최고라는 의미다. 조선족 노동자가 중국으로 돈을 송금하려면 이중 환전을 해야 한다. 한국돈을 달러로 바꿔 중국으로 보낸 뒤 다시 중국에서 달러를 위안화로 바꾸는 방식이다. 위안·달러 환율과 원·달러 환율 모두에 영향을 받는 셈이다. 김미정 외환은행 차장은 “위안화는 이동폭이 좁아 크게 상관없지만, 달러는 폭이 넓어 조선족들이 민감해한다”면서 “매일 사람들이 환율을 전화로 묻고 고시판을 직접 보러 오기도 하지만 실제 송금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조선족들이 가장 많이 찾는 외환은행 대림역 지점 고객도 급감했다. 특히 송금은 절반 이상 줄었다. 하나은행, 국민은행 등 인근 조선족들이 많이 찾는 다른 은행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조선족 노동자들을 위해 오후 5시 30분까지 연장 근무를 하고, 일요일에도 문을 열지만 실제 이용하는 고객은 많이 줄었다. 조선족들 상당수는 매달 생활비를 보내기보다는 1000만~2000만원씩 목돈을 만들어 중국에 보내는데, 액수가 클수록 환율에 따른 손해액이 커 송금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이모(47)씨도 지난해 초 1000만원을 보낸 이후 중국에 돈을 보내지 않았다. 이씨는 “지난해 초 수준으로 환율이 떨어질 때까지는 보내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는 최모(50·여)씨도 “한 달치 넘는 월급을 손해 볼 수 있는데 굳이 지금 돈을 보낼 이유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해외 골프 여행 가자” 유인 10억 뜯어낸 카지노사기단

    국내 재력가를 해외 카지노로 유인해 도박 빚을 지게 한 뒤 감금, 협박해 거액의 돈을 뜯어낸 사기단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17일 해외 카지노 인질 사기단을 검거해 총책 박모(53)씨 등 2명을 인질강도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국내 유인책 김모(50)씨 등 5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박씨 등은 지난해 8월 초 캄보디아 국경도시 포이펫의 한 카지노에서 사업가 정모(55)씨를 부추겨 거액의 도박 빚을 지게 한 뒤 감금, 협박해 정씨 가족에게서 10억 2300만원을 송금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인천에서 웨딩홀 사업과 건물 임대업을 하는 정씨가 언제든지 거액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정보를 접한 박씨는 지난해 8월 ‘동남아 골프 여행’을 미끼로 정씨를 캄보디아로 끌어들였다. 박씨 일당은 귀국 후 돈을 나눠 가지며 경기 구리시의 한 식당에 모여 자축연을 벌이기도 했다. 경찰은 “카지노에서 음료에 약을 타 판단력을 흐리게 한 것 같다”는 정씨의 진술에 따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약물 검사를 의뢰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등록금 좀…” 누드사진으로 중년男 협박한 女

    “등록금 좀…” 누드사진으로 중년男 협박한 女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이라고 사칭한 여성이 누드사진을 미끼로 중년 남성들을 협박해 돈을 갈취한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미국 연방수사국 FBI는 플로리다 잭슨빌에 사는 올해 26세의 스테파니 스탈링을 협박 및 금품 갈취 혐의로 체포했다. 스탈링의 간 큰 행각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탈링은 한 ‘슈가 대디’(sugar daddy) 사이트에 접속해 범죄 대상을 물색했다. ‘슈가 대디’는 성관계를 대가로 젊은 여성에게 돈과 선물을 주는 돈많은 중년 남자를 의미한다.   스탈링은 자신을 치과의사가 꿈인 21살의 여대생이라고 사칭한 뒤 소위 ‘스폰서’를 찾았고 몇몇 돈 많은 중년 남성들이 걸려 들었다. 그녀는 이들에게 섹시한 포르노 스타의 누드사진을 전송해 환심을 산 뒤 만나자는 미끼로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 한 남성이 스탈링에게 7000달러(약 800만원)의 거금을 송금했으나 만나주기는 커녕 오히려 그녀는 본색을 드러내고 협박을 시작했다. 스탈링은 이 남성에게 가족과 직장에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하고 돈을 뜯어내기 시작했고 결국 계속된 요구에 지친 남성이 경찰에 신고해 그녀의 행각이 드러났다. 현지언론은 “조사 결과 5~6명의 남자가 스탈링의 범죄 대상이 됐다.” 면서 “혐의가 모두 유죄로 확정될 경우 최대 20년형을 받게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터넷뉴스팀 
  • “펀드출자 관여, 인출은 안했다” 말 바꾼 최태원

    “펀드출자 관여, 인출은 안했다” 말 바꾼 최태원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최태원(53) SK그룹 회장의 항소심 재판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전의 진술을 번복하고 다른 논리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문용선) 심리로 8일 열린 최 회장 형제 등 4명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에서 최 회장은 “앞선 재판에서 펀드 출자에 관여한 바 없다고 잘못 말씀드린 점 사죄드린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동생 최재원(50) SK그룹 수석부회장도 “법적 책임이 약할 것으로 판단해 제가 ‘방어막’이 되기로 하고 수사기관과 재판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밝혔다. 최 회장 측 변호인은 “최 회장이 펀드 출자금 조성에 관여한 사실은 있지만 인출 및 송금과는 무관하다”면서 “이 사건 범행은 김원홍(52) 전 SK해운 고문이나 김준홍(48)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기획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자신은 펀드 출자 조성에 관여한 바가 전혀 없다며 동생 최 부회장을 탓했던 1심과 완전히 달라진 주장이다. 하지만 항소심 승소를 위해 말을 바꾸며 또다시 ‘책임 떠넘기기’만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1심에서 무죄로 판단된 최 회장의 비자금 조성 혐의와 최 부회장의 범행 가담 사실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최 회장은 횡령, 비자금 조성, 감옥에 대신 갈 바지사장 고용 등 비리 백화점의 행태를 보이고도 여전히 범행을 부인하고 황당한 진술 변경을 하고 있다”면서 “재벌이란 점을 이용해 약자인 양 검찰이 표적수사를 하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온 국민이 그 진위를 알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늘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출석한 최 회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 검찰의 항소 요지를 들었다. 오히려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최 부회장은 초조한 얼굴로 변호인과 함께 서류를 검토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공판에는 최 회장의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김창근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비롯한 SK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들도 참관해 재판 과정을 지켜봤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재외국민용 주민증 발급 추진… 복수국적 허용 범위 확대하기로

    재외국민용 주민증 발급 추진… 복수국적 허용 범위 확대하기로

    여야는 복수 국적 허용 범위를 확대해 나가기로 2일 합의했다. 우수한 해외 인재들이 모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차원에서다. 이에 따라 한국 국적을 가진 해외 동포 수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복수 국적 취득 가능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몇 세까지로 낮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야 간 이견이 있어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새누리당 재외국민위원장인 원유철 의원과 민주통합당 세계한인민주회 수석부의장인 김성곤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동포 사회의 권익 신장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재외동포정책이 조속히 실현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라는 내용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해외 동포들이 ‘소중한 인적 자산’이라는 점에 여야가 인식을 같이한 것이 복수 국적 허용 확대에 합의한 배경이 됐다. 현행 국적법에 따르면 외국에서 거주하다 국내에서 영주할 목적으로 귀화한 사람 가운데 만 65세가 넘으면 복수 국적이 허용된다. 원 의원은 이 연령을 55세까지 하향 조정하는 안을 지난해 국회에 국회에 제출했고, 이는 새누리당 대선 공약으로도 제시됐다. 그러나 민주당은 복수 국적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연령을 55세로 낮추는 것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복수 국적자가 무분별하게 대량 양산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여야가 복수 국적 허용 확대에 속도를 내는 것은 복수 국적 논란 속에 사퇴한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사례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단, 국적 선택과 상실 연령은 기존 국적법을 따른다. 미국처럼 속지주의를 따르는 해외에서 태어난 복수 국적자는 만 22세가 되기 전까지 하나의 국적을 선택해야 한다. 병역의무 대상 가운데 제1국민역에 편입된 남성은 병역법에 따라 만 18세 때 국적을 결정해야 한다. 여야는 또 ‘재외국민용 주민등록증’ 발급도 추진하기로 했다. 국적 문제로 기본적인 사회적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없었던 재외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재외국민이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해외에 90일 이상 장기간 체류하는 ‘해외 거주 한국인’을 말한다. 이들은 투표권을 갖지만 주민등록이 말소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취업, 신용카드 발급, 송금 등에서 불이익을 받아 왔다. 이 밖에 여야는 ‘해외 한국학교 및 한글 교육 지원 강화’, ‘거주국에서의 지방참정권 부여’ 등도 합의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