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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준표 전 한나라당 의원 수상록 발간

    지난 해 3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직 사퇴 신상발언을 한 뒤 정치판을 떠났던 홍준표(洪準杓) 전 한나라당 의원이 5일 ‘이 시대는 그렇게 흘러 가는가’라는 수상록을 펴냈다. 홍 전 의원은 이 책을 통해 의원직 사퇴 후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가진 오찬,송파 보선을 둘러싸고 당시 후보였던 이회창(李會昌)총재측과의 갈등,김대중(金大中)정권에 대한 고언 등을 솔직 담백하게 쏟아냈다. 특히 이총재 측근들의 전횡(專橫)을 꼬집으로써 이총재에 대한 섭섭함을 나타냈다.“이른바 측근이라는 사람들이 관료출신인 총재를 모시느라고 몸에 익은 의전에만 신경을 썼지 당내 화합이라든지 정치적보좌기능이라든지 하는 것은 다음 문제였다”고 신랄히 비판했다. 에필로그에서는 “국가개조에 대한 새로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또다시 아수라도(阿修羅道)를 향해 갈 것”이라고 정치재개 의사를밝혔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인터뷰/ KBS 9시뉴스 주말앵커 정세진 아나운서

    차분하고 명료한 진행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KBS1 9시뉴스의 주말 앵커 정세진(26) 아나운서.코스모스처럼 하늘하늘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속이 당차고 주관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정세진은 97년 1월 공채로 입사,‘좋은 아침입니다’로 처음 TV 브라운관에 모습을 나타냈다.그뒤 ‘열려라 꿈동산’,‘비디오 챔피언’등을 거쳐 지금은 9시뉴스와 함께 ‘사랑의 가족’,‘클래식 오딧세이’,‘저녁의 클래식’(1FM)등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별로 인기 연예·오락프로을 맡은 적이 없는데도 인터넷 커뮤니티 ‘프리챌’,‘세이클럽’등에 팬클럽이 결성됐을 정도로 정세진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KBS 홈페이지 ‘앵커대화방’에 있는정세진의 게시판에 오른 400여편의 글 가운데에도 비판의 글보다는따뜻한 애정이 넘치는 글이 많다.하루에 받는 팬레터는 15∼20통 정도.그녀는 자신의 인기비결이 “인위적이지 않은 솔직담백한 모습을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요”라고 수줍게 웃으며 말한다. 평소에는 얌전하고 여성스러운 그녀지만 털털한 모습도 함께 갖고있다.정세진의 ‘터프’한 성격을 보여주는 이야기 하나.KBS공채 시험중 면접에 들어갔을 때 옆에 있던 응시생 한 명이 “지금 뭐하고싶냐”고 물었다.정세진은 무심코 “닭갈비에 소주나 한 잔 먹었으면 좋겠다”고 답변.이후 정세진의 별명은 ‘닭갈비에 소주’가 됐다. 평소 취미는 드라이브.귀가 얼얼할 정도로 소리를 높여 음악을 들으며 ‘고속운전’을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한다. 정세진은 번잡하고 화려한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그동안오락프로그램도 해봤지만 짙은 화장도 싫고 순간적인 애드립도 별로자신없어요.‘인사이드 에디션’같은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사회 문화적으로 소외된 부분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습니다”라고밝혔다. 앵커가 되고 싶어 아나운서를 지원했지만 막상 앵커가 되고 보니 힘든 점도 많다.그녀는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힘들다”면서 “항상 중립적인 입장이라는 느낌을 줘야 하고 단어의 강약을 조절해 가면서 말을 해야 한다는 점도 쉽지 않다”고토로했다.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은 ‘선하게 보인다’는 것.“앞으로 여건이닿으면 자선사업이나 환경관련 분야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것이 소망이다. 장택동기자 taecks@
  • 새 영화/ 개 달리다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로 알려진 재일교포 2세 최양일 감독의 ‘개 달리다’는 극중 캐릭터들의 이미지가 영화내용의 절반은 암시해준다.타락한 형사와 야쿠자에 창녀.제목이 은유하듯 영화는 ‘개같이’ 살아가는 바닥인생들의 이야기를 역설적일 만큼 코믹하게 얽어매고 있다. 무대는 도쿄 신주쿠.신주쿠경찰서의 형사 나카야마(기시타니 고로)는 야쿠자에게 마약단속 정보를 빼주고 뒷돈이나 받아먹는 파렴치한이며,히데요시(오스기 렌)는 그에게 빌붙어 사는 한국인 정보원이다. 나카야마와 한국계 야쿠자 조직 두목을 오가며 정부 노릇을 하는 모모는 상해 출신의 창녀.그런 모모를 나카야마 몰래 히데요시가 짝사랑한다. 형사와 야쿠자 정보원이 내내 함께 엉켜 이야기를 이어가는 버디 무비다.모모가 변사체로 발견되기까지는 키득키득 긴장없이 웃게 만들던 영화가, 히데요시와 모모의 내통관계가 탄로나면서 일순간 스릴러로 급반전하는 느낌이다. 신주쿠 골목골목을 돌며 히데요시와 나카야마 일행이 쫓고 쫓기는 후반부가박진감 넘친다. 비밀도박,폭력,사기,매춘,마약 등 일본사회의 구린 부분을 들쑤시며 길게 호흡하던 카메라는 질주하는 두 남자를 따라잡느라 정신없이 흔들린다. 하드보일드 소재의 영화가 관객을 흡인하는 힘은 따로 있다.알쏭달쏭 감독의자의식만 출렁대는 많은 영화들 틈바구니에서 근래 보기드물게 리얼리티를견지하고 있어서다. 비루한 사회와 음울한 삶에 대해 빙빙 둘러 말하지 않고 직선적으로 표현해낸 감독의 솔직담백함,그게 이 영화의 힘이다.김덕수 사물놀이 음악이 엔딩타이틀곡에 삽입됐고,인기 듀오 클론의 구준엽이 랩송을 했다.일본에서는 98년 개봉됐다. 10일 개봉.
  • 박태준총리 사퇴/ 韓光玉실장·南宮鎭수석 기자간담

    한광옥(韓光玉) 청와대비서실장은 19일 “박태준(朴泰俊) 전총리의 사의표명은 전날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면서 “박 전총리가 본의 아니게 총리를그만두게 돼 가슴아프다”고 강조했다.이어 후임 총리인선 과정에서 공동정권의 정신에 따라 자민련의 의견을 구할 뜻임을 분명히 했다. 한실장 및 남궁진(南宮鎭)정무수석이 이날 각각 가진 기자간담회 요지는 다음과 같다. ◆사의표명의 배경은. (한실장)공인으로서 일으킨 사회적 물의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누가되어서는 안된다고 얘기했다더라.오늘 아침 9시20분 김 대통령을 만나 사의를 표명했다.총리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솔직 담백하면서 분명하고 간결했는데 아쉬움이 크다.책임지는 태도는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후임총리 인선은 자민련과 협의하나. (한실장)여러 상황을 검토할 것이다. (남궁수석)할 것이다.공식적으로 공동정권을 출범시킨 정신을 훼절시킨 결정적인 상황이 없었다.따라서 공조정신이 내재적으로는 지속된 상태다.민주당을 창당할 때 자민련과의 공조정신과 공동정부의 권리와 의미를 승계한다고 했다.국정공조는 계속되어 왔으며,자민련과의 관계를 원만히 풀어갈 것이다.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는 언제 만날 것인가. (한실장)생각할 시간을 달라. (남궁수석)한 비서실장이 만날 것이다.김 명예총재가 김 대통령과의 회동을거부한 것은 이번 박 총리 사의표명 이전 상황이니 달라지지 않겠나. ◆개각 가능성은. (한실장)아직은 개각문제를 얘기할 시기가 아니다.남북정상회담에 심혈을기울이고 있고,그런 차원에서 봐야 한다. (남궁수석)임시국회 소집이 물리적으로 어렵다.남북정상회담 이후로 가지않을까 생각한다.국회개원 뒤에 총리임명동의를 받을 것이다. ◆이한동(李漢東)·김용환(金龍煥)의원이 후임으로 거론되는데. (한실장)김 명예총재와 김 의원은 오래된 사이다.이 총재는 본인이 그런 생각을 갖고있는지…,잘 모르겠다. 양승현기자 yangbak@
  • TJ,칼럼니스트 데뷔/자민련보에 고정 코너 마련

    ◎첫 칼럼서 ‘하면 된다’ 역설 자민련 朴泰俊 총재가 ‘펜’을 들었다.18일 당보인 자민련보에 ‘TJ칼럼’을 처음 실었다.계속 쓸 생각이다.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고정칼럼이 된다.칼럼니스트로 데뷔한 셈이다. 첫 칼럼 제목은 ‘다시 일어서는 한국’으로 했다.‘하면 된다는 정신(Can do spirit)’이 주제다.부드러운 필치에 신경을 쓴 눈치다.한 측근은 “朴총재는 당원이나 국민들에게 솔직 담백하게 하고 싶은 얘기를 전달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朴총재는 이 글에서 여성 프로골퍼 朴세리선수의 ‘프로정신’을 거듭 강조했다.‘포철신화’도 은근히 곁들였다.“위기 속에서 양말을 벗어던지고 물 속에 들어가 끝내 기적 같은 역전타를 날린 朴선수의 스토리는 포철신화와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우리들의 과거로부터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는 추억담”이라고 말했다.
  • 공정거래위원 9인 그들은 누구인가

    ◎부당 내부거래 등 단죄 ‘경제검찰’/매월 마지막주 수요일 전원회의/전 위원장 다혈질이며 솔직 담백/상임위원 선임에도 문제 소지 ‘경제계의 사법부’.경제계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일컫는 말이다. 공정거래위의 핵심기구는 전원회의이다.위장 계열사를 소유한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李健熙 삼성·金宇中 대우그룹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하거나 부당 내부거래를 한 혐의로 30대 재벌그룹에 엄청난 액수의 과징금을 물리는 등 굵직 굵직한 사안이 모두 전원회의에서 결정된다.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에 열리는 전원회의 멤버는 田允喆 위원장과 李南基 부위원장,金湧·申茂成·徐承一 상임위원과 비상임인 尹鎬一·鄭命澤 변호사, 徐在明 한국외대·李成舜 성균관대 교수 등 모두 9명. 5명 이상의 위원이 출석해야 성원이 되며 과반수 이상이 찬성해야 사건이 종결 처리된다.사안에 따라 무혐의,종결처리,경고,시정권고,시정명령,법위반 사실 신문공표,과징금 납부명령,고발 등의 조치를 내린다. 또 상임위원 1명을 포함,3명의 위원이 소위원회를 구성,매주화요일에 회의를 연다.전원회의에 상정하지 않아도 될 만한 사안이 대상이다. 공정거래법에는 상임위원의 자격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하여 경험이 있는 2급 이상 공무원의 직에 있던 자’로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는 최근 비상임위원 4명 중 2명을 상임위원화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법위반사건의 급증으로 소위원회 운영의 활성화가 필요하지만 변호사와 교수 등 비상임위원들의 잦은 결석으로 신속한 처리가 곤란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비상임위원의 상임위원화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만만찮다.상임위원 선임에도 문제의 소지가 엿보인다. 최근 선임된 徐承一 위원의 경우 옛 재무부 출신으로 금융,보험,자금,국고분야에서 오랜 경제관료 생활을 했지만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관련 근무는 처음이다.피심인들이 徐위원의 자격을 이유로 불복하는 등 자격시비가 불거질 우려도 있다. 또 지난 7월 5대 그룹에 대한 제1차 부당 내부거래 조사 당시 공정위 고문변호사였던 尹世利 변호사가 모 재벌의 변호사로 선임돼 물의를 일으킨 끝에 사임했었다.‘공정한’ 법적용을 위해서는 ‘공정한’ 인선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일깨워준 사례이다. 나머지 4명의 상임위원은 경제기획원과 공정위에서 잔뼈가 굵은 공정거래정책 전문가. 田允喆 위원장은 다혈질에 솔직담백한 성격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인기는 없지만 역대 위원장 중 누구보다도 공정위의 대외위상을 높였다는 평을 받는다. 다소 여린 성격에 튀는 발언을 자주 하는 李南基 부위원장은 공정위 업무를 꿰뚫고 있다.사무처장을 역임한 金湧 위원은 바깥에 나서기를 꺼려 하는 등 사무처장직에는 다소 부적합하지만 위원으로서는 안성맞춤이라는 평이다. 申茂成·徐承一 위원은 꼼꼼하면서 합리적인 성품이다. 비상임위원 4명도 법조계와 학계의 신망이 두터운 인물로 구성돼 있다.바쁜 일정 때문에 출석률이 낮은 것이 흠이라면 흠. 지역적으로는 호남 2명,서울 3명,충청 4명으로 각각 구성돼 있다.위원회의 하부조직인 6국 3관,22개과,4개 지방사무소를 총괄,지휘하는 趙彙甲 사무처장도 역시 충청도 출신이다.
  • 새정부 각료 17명의 프로필

    ◎이정무 건설­실물경제 해박… 여야 교류폭 넓어 원만하고 합리적 성품으로 여야를 초월,교류폭이 넓다.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13대 민정당 공천을 받아 정계에 첫 진출했으며 14대때 낙선,절치부심끝에 재기에 성공했다. 대구백화점 사장을 지내는 등 실물 경제에도 밝으며 자민련내 역학구도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T·K(대구·경북)출신이면서도 특정계파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 태도로 당지도부의 신임을 받고 있다.지난 15대 대선때 상당수 T·K의원들이 동요할때 좌고우면하지 않고 당을 고수,김종필 명예총재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는 후문.부인 구순모 여사(53)와 2남 1녀. ◎주양자 보건­보스기질 강한 의료계 여성대부 추진력이 강하며 솔직한 성품으로 대외관계도 원만하다는 평.구민자당 시절 여성으로서 제3사무부총장을 지낼정도로 보스기질도 강하다. 지난 92년 14대 총선때 구민자당 전국구 공천을 받아 원내 진입에 성공했으나 15대 총선에서는 공천을 받지못해 원외에 머물다 지난 96년 10월 자민련에 입당한 홍일점 여성 부총재. 지난 56년 서울시립병원 의사를 시작으로 의료계에 발을 들여놓은뒤 서울시의사회 고문 등을 역임하는 등 의료계의 여성대부로 불린다.남편 이태헌씨(75)와 1남 3녀. ◎최재욱 환경­언론인 출신 TJ측근… 소신·의리파 의리파로 불리우며 조용하면서도 맡은 일은 철저하게 챙기는 스타일.5·18특별법 제정때 구민자당 당론에 반대,국회에서 홀로 부표를 던지고 탈당한 소신파이기도 하다.언론인 출신으로 구민자당 시절부터 자민련 박태준 총재의 측근으로 활동해 왔으며,이번 조각에 박탈되는데도 박총재의 천거가 크게 작용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환경부를 소관부처로 두고 있던 사회문화분과위 간사를 맡아 원만한 일처리 솜씨를 보임으로써 김대중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는 후문이다.부인 박해경 여사(58)와 사이에 1남 1녀. ◎신낙균 문화­방송·문화계 인연 깊은 여권운동가 매사에 꼼꼼하고 빈틈없는 자세로 주위 사람들을 긴장시키지만,원만한 대인관계로 사람들을 모으는 처신 또한 뛰어나다.방송위원회 심의위원을 지내는 등 방송계와의 인연도많은 편.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시절 모금운동을 주로 음악회를 통해 벌여 문화계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청년부장부터 시작,지난 95년 국민회의 부총재로 정치입문할 때까지 줄곧 여성운동에 몸담아 왔다.국회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여성의 정치참여를 주장하면서 실천적인 정책추진에 앞장서 왔다.남편 김훈섭씨(63)와 1남2녀. ◎박태영 산업­보험사서 잔뼈 굵은 ‘에너지 박사’ 치밀한 성격과 추진력을 겸비한 전문경영인 출신. 지난 86년 어느 기업인모임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처음 만난뒤 동교동을 찾아가 정치입문 의사를 밝히고 14대때 원내에 진출했다. 14대 재경위의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한화그룹 계열사인 경인에너지의 외화도피 및 탈세의혹을 폭로하는 등 ‘에너지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발탁배경이라는 후문.대한교육보험 과장 시절 ‘종업원퇴직적립보험’을 최초로 입안,회사 자산을 매년 3백20억원씩 늘려 입사 2년만에 이사로 승진하는 진기록을 세웠다.부인 이숙희 여사(52)와 1남1녀. ◎김선길 해양­미서교수생활… 관·금융계 마당발 관료출신 답지않게 성격이 원만하고 대인관계가 부드럽다는 평을 듣고 있다.고향인 충북 충주에서 세번 출마끝에 지난 15대 총선에서 금배지를 다는 등 끈질긴 면도 있다. 상공차관과 기업은행장을 지내는 등 관계와 금융계에서 오랫동안 재직한 경험이 발탁 배경이 됐다는 후문. 미 아메리칸대학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은뒤 교수생활을 하다 해외두뇌 유치책에 따라 지난 71년 귀국,과학기술처 진흥국장으로 관계에 발을 들여놓았다.부인 윤병수 여사(63)와 사이에 2남 1녀. ◎강창희 과기­원만·합리적… 민정당 창당작업 참여 육사 출신이나 부친이 충남대총장을 지낸 학자집안 출신답게 원만하고 합리적 성품이라는 평을 듣는 4선의원. 육군대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80년 신군부 실세였던 허화평씨의 권유로 민정당 창당작업에 참여한뒤 11대에 전국구 예비후보 1번으로 의원직을 승계,정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5공시절에는 39세에 진의종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발탁되는 등 출세가도를 달리기도 했다. 13대때 낙선과3당합당으로 지구당위원장도 뺏기는 등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14대에 무소속으로 재기했다.부인 이재숙 여사(49)와 1남1녀. ◎이기호 노동­양노총서 신뢰… 행정능력 인정받아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에 뚝심도 갖추고 있으며 소재가 무궁무진할 정도로 달변이다.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관료로 노사정 위원회의 노동관계법 개정과정에서 중재·조정 능력을 발휘,이번 조각에서 유일하게 재임명됐다.당초부터 기획예산위원장 물망에도 오르는 등 발탁 대상자로 꼽혔었다. 실업종합대책 수립과정에서 조직적인 행정능력을 인정받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서도 무난하다는 평과 함께 후임 장관으로 추천했다는 후문이다.취미는 등산.부인 양인순 여사(47)와 1남1녀. ◎박정수 외통­학자출신의 매너 깨끗한 국제신사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매너가 깨끗한 ‘국제신사’.학자 출신의 5선의원으로 IPU집행위원을 맡고 있는 등 국회내 대표적 ‘외교통’. 특히 미조지타운대와 아메리칸대학원을 졸업,미국의회와 행정부에 지인이 많아 미국과의 통상외교를 주도하는데 적격이라는 점이 발탁배경.대선직후 김대중 대통령의 ASEM참가 및 미국방문 준비위원장을 맡아 일찌감치 외무장관후보 0순위에 올랐다. 지난 96년초 15대 총선전 민자당을 탈당, 국민회의 부총재로 영입됐다.유정회 의원을 지낸 이범준 여사(64)와 1남. ◎박상천 법무­다혈질 ‘법안제조기’… DJ 신임 각별 매사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하는 열성파.다소 다혈질이라는 평가도 받고있으나 업무추진에 열성을 다한다는 것은 장점. ‘법안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국회 각종 입법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오고 있다. 20여년간 판·검사를 지낸 법조인 출신의 3선의원.13대 총선에서 평민연 케이스로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정계에 입문했다.김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것을 바탕으로 어려운 ‘충언’도 서슴치않는 소신파로 알려져있다. 하루 흡연량이 2갑을 넘는 애연가.부인 김금자 여사(51)와 1남2녀. ◎강인덕 통일­합리적 보수주의… 중청 대북 정보통 통일문제에 있어 보수적 색채를 보이고 있으나 사고가 유연해서 ‘합리적 보수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성격이 활달하고 호탕한 편이지만 업무처리는 매우 치밀하다. 지난 71년부터 10년동안 중앙정보부에서 통일문제를 다룬 대북 정보통.중앙정보부 퇴직 이후 극동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공산주의 일반과 소련의 개방·개혁 정책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 학자로서의 명성도 쌓았다. 북한전문가로서 항상 바쁜 생활을 해와 취미도 독서 및 저술.부인배정숙 여사(61)와 2남1녀. ◎천용택 국방­군사전략가… 대선때 북풍 차단 공신 결단력 있는 업무처리가 돋보이며 국방업무 전반에 능한 군사 전략가.논리적인데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스타일로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 군내 핵심요직을 두루 거쳐 정책,전략,기획,군사교리 등의 분야에 밝지만출신 지역 탓에 93년 진급에서 밀려 전역한뒤 비상기획위원장을 맡았다.이후 국민회의 입당으로 정계에 입문,15대 국회에 전국구의원으로 진출했다.대선 과정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장남의 병역의혹을 제기하고 북풍을 잠재우는 등 김대중 대통령의 안보 분야 핵심참모로 맹활약했다. 부인 김아미 여사(55)와 3녀. ◎이해찬 교육­기획력 치밀… ‘민청학련’ 옥고 치러 모든 면에서 성실하며 날카로운 기획력과 업무파악 능력을 갖고 있어 각종 의정활동 여론조사에서 항상 선두를 지키는 국회의원.국회 상임위에서 정부당국자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의원중 하나다.88년 광주청문회 당시 ‘송곳질문’으로 청문회스타로 떠올랐다. 서울대 문리대 재학중인 지난 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제적,1년간 실형을 살면서부터 재야의 길을 걸어오다 13대때 평민당 공천을 받아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바둑과 늦게 배운 골프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부인 김정옥 여사(45)와 1녀. ◎이규성 재경­원리원칙 중시하는 정통 재무관료 원리원칙을 강조하고 공사가 분명하다.판단력이 뛰어나고 빈틈이 없어 ‘면도날’로 불리는 전형적인 재무관료.일을 많이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후배 관료들을 심하게 야단친 뒤에는 소주잔을 기울이는 인간미도 있다.겉으로는 차고 깐깐하게 보이지만 잔정이 많다.충남 강경중 2학년때 월반해 대전고와 서울대 상대를거치면서 줄곧 수석을 놓치지 않은 전형적인 수재형이다.역대 재무장관중 인기 1위에 뽑힐 정도로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그러나 재무장관 재임중인 지난 89년 12·12 증시 부양조치로 투신.증권사를 부실의 늪에 빠트린 장본인이라는 약점도 있다.부인 정수자씨와 1녀. ◎김성훈 농림­국제적 명성 높은 농업경제전문가 농업경제전문가로 개혁적 목소리를 많이 내왔다.북한의 식량난 실태를 학계에 보고,국제 농학계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95년 지방선거때는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 후원으로 전남지사 후보경선에 나섰다가 허경만 현 지사에게 고배를 마셨다.동교동계 경제브레인으로 지난 대선때에도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자문역을 했다.‘우리 쌀지키기 범국민대책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쌀시장 개방저지투쟁을 주도하기도 했다.온화하면서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한국농업,이길로 가야 한다’‘쌀,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등의 저서가 있다.부인 박인아씨(46)와 3남1녀. ◎배순훈 정통­MIT 출신 전문경영인 ‘탱크주의’ MIT 박사 출신으로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를 거쳐 대우그룹에 영입된 전문경영인.치밀하고 합리적이어서 ‘배박사’로 통한다.다기능 첨단제품을 중시하는 쪽과 내구성을 중요시하는 세계 가전업계의 양대 흐름 가운데 후자인 ‘탱크주의’를 채택,대우전자를 국내 가전3사의 반열에 올려놓으면서 탁월한 경영능력을 평가받았다.광고에 직접 출연,호평을 받은 스타 경영인이기도 하다.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등 첨단분야의 해외진출을 적극 주장해 왔다.국내보다 프랑스 사교계에서 더 유명하며 두 아들도 MIT동문이다.부인 신수희씨와 2남1녀. ◎김정길 행정­3당통합때 YS와 결별… 명분 중시 솔직담백한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거부감이 적다.언변도 뛰어나 정치적 절충이나 협상에는 제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서글서글한 인상도 친근감을 준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초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대표적인 ‘YS맨’이었으나 지난 90년 3당통합시 김전대통령의 동행권유를 고사하고 야권통합에 힘을 쏟은 소신파. 96년 말 이기택 총재의 민주당에서 이탈,김원기 전 의원 등과 함께 국민통합추진회의를 결성한뒤 지난 대선에 임박해 김대중 대통령 지원을 선택했다.부인 이은혜 여사(43)와 2남3녀.
  • 감사원­검경 등 사정기관과 연락가능/법무비서관 업무영역

    ◎내정 박주선 기획관은 특수부 수사통 새 정부 청와대의 법무비서관은 사정과 법률,공직기강을 다루는 핵심 요직이다.법무비서관은 비서실장 직속의 1급 보직이지만, 그역할은 운영여하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확대될 수도 있다.과거 정권에서는 사정수석을 따로 설치한 적도 있고,현 정부도 민정수석실에 사정비서관을 두고 있다. 검찰내 신망이 두터운 대검중수부 박주선 수사기획관이 신임법무비서관으로 내정된 것도 이같은 업무에 적임자라는 당선자측의 판단때문이다.솔직담백한 성격의 박수사기획관은 검찰내에서 특수부 수사통으로 잔뼈가 굵었고 현재 ‘DJ비자금의혹’ 수사의 실무 책임자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새 정부에서는 과거처럼 정권 차원의 ‘기획사정’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고 사정비서관직을 폐지함에 따라 사정기능이 법무비서관으로 넘겨진 것이다.법무비서관의 사정기능은 일단 감사원과 검찰,경찰,국세청 등 사정기관과의 업무 연락 기능 정도로 한정될 전망이다.또 복무감찰 차원보다는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방지하고 자발적인참여와 협조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공직기강의 업무가 추진될 전망이다.
  • DJ TV 대화 준비 마무리

    ◎“현실 솔직담백하게 설명… 국민 협조 구할 것”/외국 사례 들어 국민 재기 의지 부축에 역점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측은 18일 저녁에 열리는 ‘국민과의 TV대화’를 하루 앞둔 17일 경제위기 극복 등 주요 현안과제에 대한 답변 준비를 마무리했다. 김당선자는 16일 하오 2시간 동안 서대문 아·태평화재단 사무실에서 김원길 정책위의장과 이해찬 임채정 김한길 정동채 김영환 김상우 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리허설을 가졌으며 17일에는 시내 모처에 머물며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현안을 경제,정치,사회,문화 등 분야별로 나눠 집중점검했다.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방송협회에 보내온 국민들의 질문서는 모두 1만4천760건.이 가운데 76%가 경제분야에 집중돼 있다고 김한길 인수위대변인은 설명했다.경제분야에서도 물가와 정리해고,실업대책,외환위기 극복에 국민들이 특별한 관심을 보였고,정치와 사회분야에 대한 질문도 10% 정도가 됐다고 한다. 김당선자측은 이번 TV대화는 대통령선거 당시의 TV토론과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고 강조하고 있다.김한길대변인은 “국민과의 대화는 시험이나 재치문답이 아니다”면서 “김당선자가 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국민들의 협조를 당부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당선자는 특히 우리나라에 비해 2배의 실업자를 내고,심각한 물가고에 처했던 멕시코가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조기에 극복했던 예를 소개하고,“그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을 능력있고 저력있는 한민족이 왜 못하겠는가”라며 국민의 재기의지를 북돋울 복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당선자는 보다 설득력 있는 호소를 토로하기 위해 모두 발언과 마무리 발언의 준비를 공보팀에 맡기지 않고 직접 원고를 썼다고 한다.
  • 한국학 총서 「나랏말씀」 1차 7권 나와

    ◎솔출판사,삼국유사·다산문선·열하일기 등 6종류 실어 한국학 관련 고전 국역작업을 꾸준히 벌여온 솔출판사가 우리 조상들의 지적 유산을 압축한 한국학 총서 「나랏말씀」(전97권) 1차분 7권을 펴냈다.98년 완간 예정인 이 총서는 한글세대의 언어감각에 맞게 한문투와 고어체의 표현을 되도록 피했으며 여러 권의 책을 단권화한 것이 특징.이번에 선보인 것은 「삼국유사」(전2권)「다산문선」「열하일기」「성호사설」「용재총화」「산림경제」 등 6종이다. 그동안 한글판이 많이 나왔지만 정본이 없었던 「삼국유사」는 우리 문화유산의 원천적 보고로 평가되는 신화서이자 역사서.우리나라 최고의 국문학 연구자료로 꼽히는 「삼국유사」의 향가 14수와 「균여전」의 11수를 부록으로 실었다.「다산문선」은 기,전,원,소,기사 등 80편의 글이 담긴 다산문학의 결정체.다산의 문학사상이 무르녹아 있는 「다산문선」에는 특히 유배생활의 외로움과 가족을 기리는 애틋한 그리움이 배어 있으면서도 실학자적인 면모가 솔직담백하게 드러나 있다.기행문학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중국의 성경,북경,열하 등지를 살피고 돌아와 엮은 일종의 비교문화론이다.이번 국역본에서는 총 26편중에서 「압록강을 건너며」와 「성경잡지」「역마를 달리며 적은 수필」등 3편만 뽑아 수록했다.「성호사설」은 조선후기 경제적 빈곤과 정치적 모순에 대한 예리한 비판과 탁월한 정책대안이 담긴 성호 이익의 경세론.이밖에 「용재총화」는 조선초기 문신이자 학자인 성현의 필기잡록류이며,「산림경제」는 산림에 묻혀 살면서 지켜야할 생활규범과 농촌생활을 해나가는 지혜를 적은 책으로 홍만선의 「산림경제」를 증보해 엮은 유중림의 「증보산림경제」 가운데 「집안 건사하기」「대 잇기」「아이 키우기」 등 3편의 글이 실렸다.박찬수 민족문화추진회 사무국장,송기호 서울대 교수,신승운 성균관대 교수,정민 한양대 교수,한문학자 조수익씨 등 5명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 청와대 새 비서진 인터뷰·프로필

    ◎김용태 비서실장/“토론·논쟁은 허용… 불화·잡음 절대 불허”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 문제를 놓고 토론을 하고 의견대립도 있을수 있으며,또 그래야 발전이 있지만 불화와 잡음은 곤란합니다』 김용태 신임 청와대비서실장은 그동안 청와대 비서실내 갈등설을 의식한 듯 거듭 「화합」을 강조하며 「불화」는 용납치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그는 『강인섭 정무수석과는 언론계에서 같이 지내고 당에서도 같이 일해 호흡이 잘 맞는다』고 말했다.이어 『대단히 어려운 시기에 힘든 자리를 맡았다』면서 『대통령의 남은 임기 1년은 절대 짧다고 생각지 않으며 대통령이 뜻한바 성과를 이룰수 있도록 신명을 다바쳐 보필할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솔직담백한 성격과 친화력으로 상대를 금방 오랜 친구처럼 느끼게 하는 장기를 갖고 있다.특히 뛰어난 상황판단과 솔직한 표현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YT」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서울신문 정치부기자,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11대부터 14대까지 내리 4선을 했으나 15대 총선에서 아깝게 낙선했다. 5공시절에는 민정당 대변인을 3년 가까이 역임하면서 그때까지 최장수 대변인 기록을 남겼으며 원내총무,내무장관 등 당정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김영삼 대통령과는 일선 기자시절부터 친하게 지냈으며,3당합당후 맨먼저 YS계에 합류한 민정계의원으로 꼽힌다.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시절 재미교포들의 애환을 다룬 「코메리칸의 낮과 밤」이라는 베스트 셀러를 저술하기도 했다.부인 정난희씨(62)와 2남1녀. ◎강인섭 정무수석/“화합·단결 도모… 국민소리 귀 기울일터” 강인섭 신임 청와대정무수석은 28일 『지금까지 어떤 직책을 맡았어도 나름대로 화합과 단결의 역할을 잘해왔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언론이 (청와대비서실 내부에) 싸움을 붙여도 절대 안말려들 것』이라고 장담한뒤 『국민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낮은 자세로 언로를 여는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신임 강수석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시절부터 야당의 양맥의 하나였던 상도동을 출입하며 김영삼 대통령과 오랜 인연을 맺은 민주계 출신으로 지난 88년 4·26 총선직후 관훈클럽총무를 역임한 뒤 통일민주당 부총재로 정계에 입문했다.당시 공천을 바라고 총선전에 입당하는 관례를 깨고 원내 3당으로 전락한 통일민주당에 조건없이 합류해 김대통령으로부터 호감을 샀다는 후문이다. 이번에 정무수석으로 발탁된 것도 원만하고 합리적인 성품에다 오랜 기자생활등을 통해 얻은 정치 감각,그리고 김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도 잘 읽을수 있다는 점이 크게 고려됐을 것이라는 주위의 관측이다. 정계에 입문한 뒤에는 민자당 당무위원·민주산악회 부회장등을 역임하며 14대때는 전국구의원으로 김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지난 총선때 서울 은평갑에 출마했으나 석패,국회 재입성이 좌절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지난 5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으로 시집 「녹슨 경의선」,「녹슨 경의선과 그 이후」 등의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전북 고창출신으로 부인 서영자씨와의 사이에 1녀를 두고 있다. ◎김인호 경제수석/“경기회복 시장원리따라 풀어나가야” 김인호 신임 경제수석비서관은 28일경기회복을 위한 인위적인 부양책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경제가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소감은. ▲비서관은 얼굴없는 직책이다.정책입안.집행과정서 가교의 역할을 하겠다. ­경제운영방안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내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그러나 물가안정과 경상수지 적자 축소라는 전체적인 골격은 잘 잡힌 것으로 본다.구조개편노력이 강화됐으면 한다. ­경제주체의 사기가 떨어졌는데. ▲인위적으로 의욕을 북돋는 것은 한계가 있다.가계,기업,정부 등 각 경제주체의 역할을 분명히 정립하고 시장경제논리에 따라 풀어가면 회복될 것으로 본다. ­금융실명제 보완구상은 없나. ▲실명제도입으로 부작용이 크면 보완해야 겠지만 본질이 훼손되서는 안된다.금융소득종합과세는 실명제의 본질에 해당된다. ­금융개혁위원회가 발족했는데. ▲금융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적정한 스케쥴에 따라 진행되도록 하겠다. △경남 밀양(55세) △서울대 행정학과 졸 △행정고시(4회) △경제기획원물가정책·경제기획국장 △환경처 차관 △철도청장 △공정거래위원장 ◎유재호 총무수석/업부장악력 뛰어나 전문경영인 출신 대인관계의 폭이 넓고 추진력과 업무장악력이 뛰어나다는 평.그러나 사적으로는 온화한 성품이라는 것이 주위의 평가. 삼성물산에 공채로 입사한 뒤 풍산금속 이사로 옮겨 부사장을 지낸 전문경영인 출신.고려대 총학생회장 시절 대학을 찾은 김종필씨와 토론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92년 대선 당시 신한국당 최형우의원의 권유로 상도동 캠프에 합류했다. ▲충남 천안·57세 ▲(주)풍산 부사장 ▲나사본 조직관리처장 ▲국민체육공단 부이사장 ▲청와대 민정비서관 ▲조달청장.
  • 전 KGB 요원들 여행안내서 펴내

    ◎스파이활동중 얻은 각국도시 정보 소개/불 요리 맛에 반해 접선 못한 일화도 공개 7명의 전직 KGB(옛소련비밀경찰)요원들이 여행안내책자를 출간해 화제가 되고 있다.지난달말부터 판매에 들어간 이 책자는 판매시작 이틀만에 초판이 매진되는 등 침체된 러시아 출판계에 신선한 충격을 불어넣고 있다.이 여행안내서는 은퇴한 첩보요원들이 세계 7개 주요도시에서 활동한 경력을 바탕으로 도시들을 첩보원적 시각에서 해부한 여행개괄서.방콕·카이로·런던·멕시코시티·뉴욕·파리·로마가 바로 이들 요원들이 활동했던 주무대이자 여행안내 대상도시이기도 하다. 요원들은 자신의 여행담은 물론 스파이활동중 일화를 비교적 솔직하게 소개하거나 자기반성적인 문체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한 예로 파리에서 활동했던 미하일 브라젤로노프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맛있는 한 요리를 먹다 다음날 접선사실을 잃은 적이 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뉴욕에서 활동한 올레그 브리킨은 기차식당에서 음식을 사먹는 방법을 몰라 샌드위치를 갖고 시카고행 기차에 오르던 일 등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작자들은 비록 냉전초기 60년대의 해프닝을 소개하고는 있지만 자신들의 「행적과 죄과」를 비교적 솔직담백하게 그리고 있다는 평도 받고 있다. 여행책자가 비밀은 담고 있지 않지만 저자들은 「옛정」을 생각해서 초고를 KGB의 후신인 FSB(연방보안국)에 갖고 가 먼저 읽어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자신들이 적어도 직무상 비밀을 누설한 것이 없다는 확신에서였다.〈모스크바=유민 특파원〉
  • 남자유도 금 전기영/여자유도 금 조민선(영광의 얼굴)

    ◎남자유도 금 전기영/무릎부상 딛고 값진 승리/6개월새 두차례… 대표단에 겨우 합류/마취제 거부한채 자신과의 싸움 벌여 전기영의 금메달은 대표 선발전 참가조차 어려웠던 무릎부상을 딛고 거둬낸 값진 수확이었다.대표팀 김창호 감독은 『전기영의 금메달은 인간승리의 표본』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는 지난 2월 독일오픈에 나갔다가 1회전에서 탈락했다.오른쪽 무릎 부상 때문이었다.그 상대는 바로 22일 올림픽 2차전에서 힘겹게 판정승을 거두었던 네덜란드의 위징가였다.93년 가노컵에서 무명의 일본 선수에게 패한 뒤로 외국선수에게 당한 첫 패배여서 그 충격은 의외로 컸다. 무릎을 다친 전기영은 귀국해 곧바로 시작한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 나설 형편이 못되었다.김감독은 전기영이 확실한 금메달 후보인 만큼 선발전에 나서지 못하더라도 올림픽 티켓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형평의 원칙 앞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억지로 나선 국내 선발전에서 그는 5위에 그쳤다.부상 여파라고는 하지만 올림픽 전까지 부상이 완쾌되겠느냐는 의문이 꼬리를 이었고 일부서는 『이제 전기영 시대는 갔다』는 수군거림도 들렸다. 애틀랜타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보조운동에 전념하던 전기영은 부상이 회복될 즈음 다시 시작된 최종 선발전에서 부상을 딛고 우승,당당히 대표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또다시 악운이 찾아왔다.애틀랜타로 떠나기 불과 15일 전­이번에는 왼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그는 이때부터 고무줄 당기기 등 보조운동에만 매달렸다.업어치기 훈련이 부실한만큼 허리기술을 다듬는데 중점을 둘 따름이었다.무엇보다 애틀랜타 올림픽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확실한 금메달 감으로 추켜주는 언론의 집중 세례는 심적 부담을 더욱 안겨 주었다.팀닥터 이종하씨는 22일까지도 도핑과 무관한 호르몬제를 사용하든지 순간마취제를 맞고 매트에 나서는 게 어떠냐고 제의할 정도로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기영은 끝내 이를 거절했다.통증이 가시지 않은 상태라 긴장이 더 클 수 밖에 없었지만 약에 의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이를 눈치챈 안병근 코치가 경기 직전 몸싸움으로 부담을 덜어주려 애썼다.이런 어려움을 견디고 전기영은 기어코 꿈에 그리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상대에서 애국가를 듣는 동안 지난 6개월 동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며 전기영은 굳이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여자유도 금 조민선/4년전 좌절 끝내 이겨내/바르셀로나 대표 탈락… 한때 은퇴 생각/전 유도대표 이충석과 내년 결혼 계획 독하기로 소문난 그였지만 시상대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질때 흐르는 눈물을 감출수는 없었다. 세계선수권 2연패와 올림픽 금메달을 일궈낸 「학다리」 조민선(24·쌍용양회). 90년 초반부터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고도 바르셀로나올림픽때 대표 탈락으로 차라리 운동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던 그녀였기에,또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에 그쳤던 수모를 이제야 겨우 갚았다는 안도의 한숨이 기쁨의 눈물로 배어 나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녀는 지나간 고통을 털고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아직 우리나라 어느 누구도 해 내지 못한 세계선수권 3연패의 금자탑과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꾸밀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 조민선과 친분이 두터운 유도계의 한 관계자는 『조민선이 내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97세계선수권대회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해 웨딩마치를 울리는 것으로 알고있다』고 밝혔다. 아직 모든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고 있는 피앙세는 같은 유도선수로 전 국가대표 이충석(23·마사회). 조민선은 이에 대해 굳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지만 주변에서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로 되어 있다.조민선과 이충석은 92년 태릉선수촌에서 대표 마크를 달고 서로 만나 남몰래 사랑을 키워 왔다는 것. 당시 선수촌에서 함께 지내며 자연스럽게 만난 이들은 솔직담백한 서로의 성격에 마음이 이끌려 우정을 나눠왔으며 지난해 2월 대학졸업후 양가의 허락아래 결혼을 전제로 본격적인 교제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조민선은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해 결혼을 하기로 했으나 『기량에서 1∼2년은 더 현역으로 뛸 수 있다』는 주변의 충고를 받아들여 세계선수권 3연패 위업을 쌓고 난뒤로 결혼 시기를 미루었다. 새 인생의 출발점에 선 조민선­올림픽 금메달처럼 인생에서도 금메달을 기대해 본다.〈올림픽특별취재단〉
  • 보훈정책/황창평 처장 인터뷰(국정 어떻게 돼갑니까)

    ◎“유공자 실버타운 2천세대로 확대”/희생자 정당한 평가에 시책 중점/고엽제 후유의증환자 지원 확충 6월이 되면 가장 바쁜 국무위원이 보훈처장이다.해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기 때문이다.그러나 6월 6일 현충일이 갈수록 행락의 날로 변질되고 있는데 대해 누구보다 안타까워 하는 이가 황창평 국가보훈처장이다. 황처장은 31일 서울신문 이경형 정치부장과의 인터뷰에서 『국가유공자가 국민으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고,존경과 예우를 받으며 영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같은 보훈철학이 국민들에게 인식되고,정책적으로 실현되는데 힘을 쓰겠다고 강조했다. ­보훈이념이 국민들에게 널리 인식돼 있지 않다고 보는데요. ▲6월과 현충일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생각은 6·25전쟁 등 국난을 겪은 유공자의 기일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러나 이 나라를 이룩한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들에게 늘 감사하고 존경하며 예우하는 풍토가 이제는 자리잡아야 합니다.남북대치의 상황에서 보훈과 국가안보는 동전의 양면같은 것입니다.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호국·보훈의 달인 이달,국가 유공자와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특별한 계획은 있습니까. ○초중고 추념식 권장 ▲현충일 추념제전을 비롯,크고 작은 행사가 한달동안 치러질 것입니다.올해에는 특히 교육부의 협조를 얻어 전국 초·중·고교별로 자체 추념식을 갖도록 권장했습니다.국난을 치러보지 못한 국민이 70%를 넘어선 상태에서 자라나는 학생들이 한번쯤 6월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의미있는 일입니다. ­노년기에 접어든 국가유공자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여생을 지낼 수 있도록 할 대책은 있습니까. ▲보상금은 그동안 꾸준히 인상됐으나 국가 재정 형편상 공훈과 희생에 상응한 충분한 수준은 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점은 있지만 점차 개선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이밖에 취업,교육의료,주택자금 지원 등 부수적인 지원을 병행하여 생활 안정을 도모토록 하고 있습니다.보다 큰 문제는 이분들의 연령이 고령화,노인성 질환과 전상으로 인한 만성질환이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보훈처는 이달안에 4백52가구가입주할 수원 보훈복지타운 준공식을 가지는데 이어 노령화된 국가유공자들이 안락한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실버타운을 2천가구까지 늘릴 계획입니다.또 충주에도 미망인 휴양시설도 곧 개관하는 등 다양한 노후복지 증진사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민족정기 선양사업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요. ○취업·주택자금 지원 ▲해외 애국선열 22명을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독립유공자 1천8백54명을 추가로 발굴한데 이어 올해에도 숨은 독립유공자를 최대한 발굴,추가 포상할 계획입니다.해외에 안장된 선열의 유해봉안과 묘소의 현지단장 및 실태조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특히 보훈처를 중심으로 전개해온 민족정기선양사업을 지방화,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범정부 사업으로 확대,모든 국민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통한 민족자존의 회복과 「역사바로세우기」에 동참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한국전에 참전한 미국을 비롯,호주,에티오피아 등 참전국에 대해서도 보은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지난 4월 호주 한국전 참전 기념탑 건립 지원을 위해 호주 현지에서 한국대사 및 보훈처 관계관이 건립부지 헌납식에 참석했고 공사비도 정부에서 일부(1억2천만원)를 지원할 계획입니다.에티오피아에 대한 지원은 국제로터리클럽,한국선명회,기업체 등 민·관 지원협의회를 통해 참전용사 위주의 지원운동 활성화 및 지원방안을 협의했고 현재 도로 개·보수,보건소 건립,자활생산공장 건립,의약품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월남전 참전용사가운데 고엽제 후유증 환자에 대한 대책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유족 지원방안 마련 ▲현재 고엽제와 관련,지금까지 7천4백71명의 신청서를 접수받아 5천2백70여명에 대해 정밀검사를 실시했습니다.그 결과 10개 질병에 해당되는 고엽제 후유증 환자 1천26명에 대해서는 상이군경과 동일한 보상과 예우를 실시하고 있습니다.19개 질병에 해당되는 고엽제 후유의증환자 2천6명에 대해서는 올해부터 지원 방안을 확대,장애 정도에 따라 월 20만∼40만원의 수당을 지급하고,본인과 자녀에게 교육,취업보호를 실시하고 있습니다.이밖에 지원재단설립 기금조성과 고엽증 2세 환자 1백22명 및 이미 사망한 유족 1백68명에 대해서도 적절한 지원방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내년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제대군인연맹(WVF) 총회가 열리는데 준비는 잘 돼갑니까. ▲세계제대군인연맹은 세계 74개국 2백여개 단체로 구성된 국제 비정부 기구로서 우리나라는 56년에 가입했습니다.97년 총회에서는 전쟁희생자 재활,군비축소,세계평화운동추진 등의 의제를 갖고 국내외 인사 3천여명이 참석합니다.현재 정부지원위원회 및 실무준비단을 구성,회의개최에 차질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정리=황성기 기자〉 ◎황 처장 회견 언저리/“보훈정신 진정한 이해 필요” 거듭 강조/28년간 안기부 맨 경력… 추진력 돋보여 『장관이 휠체어를 탄 참전용사와 사진을 찍으면서 무릎을 꿇고 앉더군요.그 용사와 키높이를 나란히하기 위한 것이었지요.미국 「보훈정책」의 한 단면을 보았어요』 28년간 「음지의 인물(안기부 맨)」로 대공 정보·보안업무에 종사하다가 94년말부터국가보훈업무의 총책으로서 전력을 투구하고 있는 황창평 보훈처장.그는 지난해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거행됐던 미군의 한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우리도 이제 「보훈정신의 진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훈정책의 방향이 단순한 구제,원호차원을 벗어나 국민정신함양,민족의 정체성 확립으로 대전환해야한다고 강조했다.이런 말을 하는 그의 모습은 종교처럼 숙연하기까지 했다. 집무실에서 마주 앉기가 무섭게 『보훈업무에 대해 먼저 설명을 하겠다』며 그의 「보훈철학」을 강의했다.우선 언론이 보훈시책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단단히 교육을 시키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회견을 갖는 1시간여 동안 그의 「저돌적인 추진력」「좌고우면 않는 일벌레」의 체취를 곳곳에서 느낄수 있었다.『평소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대해 후회를 말자』는 것이 그의 생활신조라고 했다.늘 「음지」에서 일하면서 「양지」를 지향해야하는 「안기부 맨」의 절제가 몸에 배어있어 쉽게 나서거나 말수가 헤픈 것은 결코 아니었다.그러나 보훈업무홍보에만은 그렇지가 않았다.건국포장,대통령표창을 받은 독립유공자에 대한 연금혜택확대등 당면 현안과 문제점을 설명하는데는 솔직담백했고 고집마저 번득였다. 안기부에서의 공직봉사경험이 보훈업무수행에 보탬을 주고있느냐는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국가안보와 보훈업무는 동전의 양면』이라며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을 국가가 적극 보살피고 존경을 하면 그것이 바로 안보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죄도 많이 지었는데 국가를 위해 몸바친 분들과 그 가족들을 보살피고 그분들의 정신을 기리는데 일조함으로써 그 죄를 회개하는 심정으로 업무에 임하고있다』고 말했다.마치 보훈총책의 신앙고백처럼 들렸다.집무실을 나선후에도 계속 귓가에 쟁쟁했다.〈이경형 정치부장〉
  • 독신·결혼·이혼/여성의 소리 담은 책 화제

    ◎손주희·윤오복·홍미영씨 나란히 출간/자신의 체험 바탕… “행복한 권리” 주장 결혼해서 애낳고 살림살고….얼마전만해도 여성의 삶의 공식이란 뻔했다.「결혼은 선택」이란 생각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요즘들어.아직도 「공식」에서 벗어나면 「하자있는 여자」로 의심하는 눈이 더 많다. 최근 책세상의 「아름다운 삶」기획으로 나란히 나온 세권의 책은 이같은 통념에 적극 반기를 든 것.「혼자 살면 뭐가 좋은데」(손주희 지음)「우리 결혼하니 참 좋다」(윤오복 지음)「여보,우리 이혼하면 행복할까?」(홍미영 지음)는 차례로 독신·기혼·이혼여성의 소리를 담고 있다.각기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책을 쓴 이들은 『여자들도 살면서 여러 형태의 가정을 꾸릴 수 있고 이들은 모두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외친다. 지은이들은 평범한 한국여성이지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려 한다는게 공통점.손씨는 대학원을 나와 「미혼 박대」와 「노처녀」고충에 시달리는 번역프리랜서 독신녀이고 윤씨는 「그저 재미나게 혼자 살겠다」했다가 덜컥 결혼해 딸까지 둬버린 30대 아줌마.또한 홍씨는 이혼을 딛고 「홀로서기」한 환경전문 스크립터·기자다. 이처럼 실제 현실과 맞닥뜨린 이들의 기록이라 결코 추상적이지 않은 것이 이 책의 장점.지은이 자신의 솔직담백한 체험담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주변사람들의 인터뷰로 문제의 원인과 헤쳐나갈 요령을 차근차근 진단하고 있다.실제 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마음가짐도 구체적으로 실려있다.「왜 이런 일이 일어나며 이럴땐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물음에 실질적 길잡이가 되어줄 정도로 세밀하다. 「혼자…」는 독신자 증가의 이유,독신 매력진단 등 일반론부터 독신의 조건·함정,독신에 꼭 필요한 돈·공간·건강 문제까지 두루 살폈다.독신녀 뿐 아니라 독신남을 위한 별도의 페이지가 배려된 것이 특징. 「결혼…」에는 식 준비,살림살이,부부싸움,성,육아,맞벌이,시집문제 등 결혼의 세목에 대한 정보와 조언이 자세히 담겨있다. 한편 「여보…」는 터부시돼온 「이혼」도 하나의 「선택」으로 존중돼야 한다며 이혼자들을 돕기 위한 책.이혼증가 원인과 이혼하기까지의 준비·절차,이혼후 마음가짐,직업찾기,애인만들기,아이키우기 더 나아가 재혼까지 치밀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담았다.〈손정숙 기자〉
  • “피란때 김대통령이 보증서줘 인연”/이수성총리 KBS대담내용화제

    ◎「골프 취소」는 남부지방 가뭄 고려 결성/어제 소년소녀가장 사는 「벌집」 찾아 격려 이수성국무총리가 KBS­TV와의 대담프로그램에 출연,김영삼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인연과 국정운영의 소신,골프관(관) 등을 솔직담백하게 피력,화제가 되고있다. 이총리는 1일 밤 방영된 후배 박명진교수(서울대 신문학과)와의 TV대담에서 『피란시절 우리 8남매를 키우며 어렵게 살림을 꾸리시던 어머니께서 장사를 하기 위해 시민증이 필요했으나 보증인이 없어 애태우다 국무총리실(당시 장택상총리)을 찾아갔던 일이 있었다』고 소개하고 『그때 젊은 비서 한 분이 보증을 자청해 서주었는데 그분이 바로 김영삼대통령이었다』고 술회했다. 이총리는 『이후 그분이 의기있고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애정 비슷한 게 있었다』면서 『총리가 되는 과정에서 몇차례 만나 평소 몰랐던 면을 알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반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총리는 『과거 정권 때도 관직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해왔는데 이번에는 수락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상적인 권력체계를 거치지 않은 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오기가 있었다』면서 『존경하지 않는 분에게는 머리를 숙이고 싶지 않았으나 김영삼정부는 다르게 봤다』고 답했다. 이총리는 연초에 골프약속을 취소했던 에피소드에 대해 『대통령께도 말씀드리고 계획을 세웠으나,비서실에서 남부지방에 가뭄이 심하다고 만류해 취소한 것』이라면서 김대통령이 골프를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골프가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가진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총리는 광주 망월동묘역을 참배한 이유에 대해서는 『광주항쟁 당시 나는 컴컴한 지하감방안에 있었으며 제발 희생이 적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고 회고한뒤 『망월동에는 86년 조용히 가본적도 있으며,총리로서 참배를 알릴 상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총리는 대담 말미에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총리로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린아이들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히고 『이를 위해 총리실에 특별팀을 이미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이총리는 이같은 자신의 뜻을 실천하듯 2일 낮 기자들을 물리친채 서울역앞 언덕배기의 1평짜리 「벌집」에서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유진아양(18·고1)과 안국동 막다른 골목 셋집에서 외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안정규군(15·중2) 등 소년소녀가장을 찾아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달라』며 격려했다.
  • “국민마음 편하게 성심행정 펼터”/이수성 총리 취임 첫 기자간담

    ◎「어려운 일 회피」 도리 아니어서 “응낙”/출신지역 사랑 좋지만 이기심은 금물 이수성 국무총리는 18일 『대단히 큰 중압감을 느낀다』면서 『오직 성심으로 응하겠다는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고 취임소감을 밝혔다. 이총리는 이날 이·취임식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어려운 시기를 맞아 국민들의 마음을 편하게 할 행정적 묘안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 착잡한 심정』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총리는 이날 기자들의 질문에 시종 소신에 가득찬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솔직담백하게 피력했다. ­내각 제청권이 있는데. ▲솔직히 그 문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국회의 임명동의가 있기 전에는 내정자에 불과하지 않았나.오늘·내일 진지하게 생각해보겠다.훌륭한 분을 뽑자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취임사에서 개혁에 모자란 부분이 있다고 했는데. ▲사실 개혁이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행정의 신뢰성·일관성의 개선이라고 생각한다.공직자 스스로 개선·봉사할 것이 많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대통령의 역사바로잡기를 어떻게 생각하나. ▲권력을 이용한 축재는 공직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청빈이 자랑스러워야 국민의 면모가 바로선다.그런 점에서 역사바로잡기는 올바르다. ­덕망과 학식을 내세운 민심수습용·얼굴마담용 총리라는 비판도 있다. ▲솔직히 덕망도 그리 높다고 생각지 않는다.나같은 사람이 국면을 수습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다행이 없겠다. ­경북 출신인데. ▲출생은 함남 함흥이다.그곳에서 우리 어른(부친)을 따라 광주로 갔다.다시 평양에서 살다 5살 때 서울로 올라와 유치원부터 학교를 다녔다.칠곡은 아버지가 태어나신 곳으로 대단히 자랑스러운 나의 고향이다.고향을 단순히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이기심을 가져서는 안된다. ­(총리직을 5번 고사한 것을 두고)왜 6번째 고사하지 않았나. ▲자부심과 존경심으로 따지면 서울대총장만한 자리가 없다.어렵다고 생각해 회피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작은 힘이나마 필요하다면 따르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5·6공 인사들에 대한 생각은. ▲3공이든 4공이든 5공이든 6공이든 구별하지 않는다.다만 이익만을 쫓아다니던 사람은 좀 삼가야 하지 않겠는가.잘못이 있었으면 좀 부끄러워할줄도 아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재벌에 대한 생각은. ▲재벌은 과거 권력이 돈달라면 주고,때리면 맞았다.존중해주어야 한다.대기업 뿐 아니라 모든 기업을 배척하기보다는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5·18정국을 수습하려면. ▲궁극적으로 대통령이 판단할 일이다.어떤 생각이 있다면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것이 도리다.나도 80년5월에 고생을 좀 했다.그뒤 수사하던 사람의 아들 주례를 두번 섰다.조금만 더 젊었더라도 원수처럼 지냈을 지도 모른다. ◎이 총리 취임식 이모저모/김 대통령 임명장 수여뒤 20여분 밀담/“대통령에 기 꺾였습니다” 좌중 웃음꽃 이수성 국무총리는 18일 하오 4시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은뒤 하오 5시 정부종합청사 대회의실에서 이홍구 전임 국무총리와 이·취임식을 가졌다. 신·구총리는 이·취임식에 앞서 9층 총리 집무실에서 5분 환담을 나눈데 이어,이·취임사에서도 전·후임자에 대한 덕담을 아끼지 않는 등 친밀감을 과시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날 하오 국회 임명동의를 받은 이신임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뒤 배석자를 물리친채 이총리와 20여분간 밀담을 나눠 각별한 신임을 나타냈다. 윤여전 청와대대변인은 『김대통령이 각료들에게 임명장을 준뒤 배석자들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담소하는게 관례이나 오늘은 두분이 따로 하실 말씀이 있었던것 같다』면서 『개각 인선협의가 있었는지 여부는 두분외에는 알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이총리에게 임명장을 준뒤 『(이총리 임명을) 국민들도 다 좋아하고 국회 동의에서도 표가 많이 나왔더라』면서 『서울대 총장으로 모교 발전에 열심히 노력하다 도중에 그만두게된 것은 가슴 아프지만 이 시점에서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는 분명하지 않느냐』고 이총리 기용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이에 이총리는 『제가 대통령의 기에 꺾였습니다』라고 답변,좌중에 웃음이 터졌다고 윤대변인이 전했다. ○…이홍구 전총리는 이날 삼청동공관에 머무르다 하오 3시쯤 청사에 나온뒤 총리실 직원들과 시종 미소띤 얼굴로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등 이임인사를 했다.이전총리는 『앞으로 총리실의 역할이 중요해진 만큼 직원숫자는 적더라도 열심히 일해달라』는 당부로 인사를 마쳤다.이전총리는 일요일인 17일 삼청동공관에서 역삼동사저로 이사를 끝냈었다.
  • OB 개발주역 김희철 부장/“「카프리」로 맥주시장 재탈환”

    ◎투명 병·상쾌한 맛으로 젊은이에 어필 동양맥주가 「하이트」와 「카스」에 빼앗긴 시장에 대한 대탈환 작전을 시작했다.첨병은 「카프리」.마케팅 2팀 김희철 부장(42)의 작품이다.9년동안 신제품 개발에 매달려 온 그가 국내 최초로 투명한 병 속의 프리미엄급 맥주 「카프리」를 개발,한여름 맥주시장을 달궜다. 『예상했던 것보다 「카프리」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이 좋습니다.투명한 병과 상쾌한 맛이 대도시 젊은이,전문직업인들의 취향에 적중한 것 같습니다』 소비자들의 반응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그는 시장조사로 전해 오는 「예상을 뛰어 넘는 호의적」 반응들을 듣고서야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새 상품에 대한 시장조사를 토대로 컨셉트를 정하고 양조기술연구소에 이에 맞는 맛을 의뢰한 뒤 포장과 광고전략까지 세우는데 여섯달이 걸렸다.산고끝에 솔직담백하면서도 낭만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취향을 겨냥한 「카프리」맥주가 태어난 것.이름도 낭만의 섬 「카프리(CAPRI)에서 따왔다.광고카피는 「꿈의 맥주」. 그가 당초 세운 판매전략 가운데 차별화는 투명한 병으로 단번에 힘들이지 않고 성공한 인상이다.고급화는 아직 소비자들의 혀끝에 달려 있지만 최초의 프리미엄급이란 점에서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동양맥주측은 「카프리」가 예상보다 좋은 반응을 보이자 연말까지 2백만상자를 생산키로 했던 당초 목표를 바꿔 생산량을 늘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젊은이등 한정된 계층을 대상으로 했던 판매대상도 확대,오는 8월중순부터는 5백㎖짜리도 출시할 계획이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파유학중 귀순 동영준씨가 만난 김정일/수기

    ◎“상대하기 껄끄럽겠다” 첫인상/디스코 등 일부 서구유행 허용… 젊은충 따라/김일성보다 강경하지만 훨씬 현실·개방적 김일성 북한주석의 사망소식을 들은 것은 갓 돌이 지난 아들녀석이 아파 병원으로 가던 9일 점심 때이었다.라디오 뉴스를 함께 듣고 있던 아내가 대뜸 『이젠 시부모님을 뵐 수 있겠네요』라고 흥분했다.통일이 멀지않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웬지 착잡했다. 김주석의 사망소식을 듣는 순간 제일 먼저 지난 79년 박정희대통령 피격당시 수업까지 전폐하고 「통일됐다」고 기뻐했던 일이 생각났다. 50년동안 신처럼 우상화돼 왔던 김일성.그 김일성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정권을 이어받게 된 김정일.나는 지난 89년 6월 한국으로 귀순하기까지 김정일을 모두 세번 만났다. 내가 김정일을 처음 본 것은 평양기계대학 수산기계학과 1학년이던 지난 82년 5월이었다.내가 다니던 대학이 북한에서는 처음으로 「명태할복기」라는 기계를 개발했을 때였다.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명으로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직접 「현지지도」를 나올 정도였다. 생전 처음 「민족의 태양」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직접 가까이서 보는 자리였기 때문에 일거수 일투족도 놓치지 않으려고 긴장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김일성 뒤에 서 있던 김정일에 대한 첫인상은 「상대하기 껄끄럽겠다」는 한마디로 「간단치 않다」는 것이었다.김정일이 나중에 최은희·신상옥을 만났을때 자신을 「난장이 똥자루만하지요」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작달막한 키에 다부진 체격이었다.한쪽 머리카락이 모두 위로 치솟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그래서 당시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이런 모습을 두고 좋게는 김정일의 기상이 하늘로 솟았다고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릴때부터 부모사랑을 모르고 자라 사납고 괴팍하게 보인다는 말이 나돌았다. 어쨌든 상당히 호탕해보였고 솔직 담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특유의 헐렁한 바지에 굽높은 신발,잠바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됐다. 두번째로 김정일을 본 것은 1년뒤인 정권 창건일(9·9절)35주년 행사준비가 한창이던 83년 9월8일이었다.백만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로 김정일이 직접 총지휘를 맡고 있었다.김정일은 총연습이 한창이던 8일 낮과 밤 두번씩이나 직접 현장으로 나와 학생들과 당원들을 격려했다. 김일성이 신격화된 존재였다면 김정일은 「인민의 자애로운 지도자」로서 인간적인 면이 강조됐었다.특히 김정일은 서모아래에서 설움을 받으며 자랐다는 「흠집」이 오히려 인간적이라는 동정을 불러일으켰다.또 서구영화와 디스코·장발·통바지등 서구의 유행등을 어느 정도 허용하고 금강산과 남포·청진시등 4개 도시를 관광지대로 개방하자고 주장하는등 젊은층의 기호·취향을 어느 정도 알아줬기 때문에 김일성보다 가깝게 느껴졌었다. 그는 대학생과 청년단체,신진 엘리트,3대 소조를 자주 만나 「나와 함께 일할 동지들」이라고 신임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그래서 젊은층이 김정일을 미래의 지도자라는 생각에서 더 따랐던 것 같다.그리고 지금도 이런 정서가 북한의 젊은층 사이에 퍼져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북한주민,특히 테크노크라트들의 지지기반을 얕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물론 나의 김정일에 대한 생각은 폴란드 유학및 한국생활을 통해 73년이후 20여년동안 계속됐던 세뇌교육에 의해 왜곡·조작된 것임을 뒤늦게 알았다.속고 살았다는 배신감과 허탈감이 컸다. 그렇지만 최근 한국에서의 김정일에 대한 평가가 분분한 것을 보면서 북한체제의 경험자로서 한마디 하고 싶다. 김정일은 김일성보다 강경하고 즉흥적이어서 예측하기 어렵지만 훨씬 현실적이고 개방적이라고 생각한다.김일성과 비교해 친화력과 지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뒤집기 위해 무척 애쓸 것이다.또 「군사에 약하다」는 열등감을 갖고 있어 핵문제등 현안문제를 통해 그렇지 않음을 안팎에 과시하려 할 것이다. 또한 정권을 잡은 뒤에는 경제난과 피폐한 주민생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자신을 반대하는 혁명 1세대를 몰아내는 계기로 삼을 지도 모른다. 김일성 사후 북한사회를 정확하게 전망하기 위해서는 김일성보다 훨씬 인간적인 존재로 북한 주민들에게 각인된 김정일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동영준씨(28)는 지난 89년6월 폴란드 그다니스크종합대학에서 유학중 귀순,지난 92년 결혼해 아들을 두고 있으며 현재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중 기 자 입 력 가제목:내가 본 김정일 기자명:김정열 부서명:문화부 김정일은 과연 어떤 성품의 인물일까.그를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지켜 본 문화·예술계 사람은 아주 드물다. 영화계에서는 지난 78년 홍콩에서 납치된 뒤 86년 북한을 탈출한 영화배우 최은희씨와 신상옥감독이 거의 유일하다.이들 부부가 지켜본 김정일은 이렇다. 1백65㎝의 키에 85㎏으로 비만한 편이며 작은 키를 의식해 굽이 높은 구두를 즐겨 신는다.머리는 상당히 명석한 편이다.김은 외부 인사들과 접촉을 할 때는 사투리를 잘 쓰지 않지만 자기들끼리 얘기할 때는 「…하구래」 「…라요」라며 평안도 어미를 많이 붙인다.또 술과 담배,마작·블랙잭을 좋아하고 승부 근성이 강한 것으로 들었다. 연극·영화·음악 등 문화 예술 분야 전반에 걸쳐 상당한 조예를 갖고 있다.김일성대학을 졸업한 뒤 당 선전선동부장과 예술분야 전반을 관장하면서 능력을 발휘,아버지 김일성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특히 김정일이 주도한 가극 「피바다」는 김일성도 감명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에 대해서는 광적인 취미를 갖고 있다.「영화예술론」이라는 초보적인 영화이론서를 내기도 했으며 거의 매일 영화문헌고의 필름을 가져다 감상하기도 한다. 영화문헌고는 그의 광적인 관심 덕분에 1만5천여편의 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등 세계적인 수준이다. 남한의 대중가요도 상당히 알고 있다.패티김의 「이별」 최희준의 「하숙생」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등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연회석 상에서 흥이나면 자신이 직접 지휘봉을 잡기도 해 음악 전반에 꽤 지식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연회석상에서 자신을 찬양하는 행사가 진행되자 『신선생,저건 다 가짜야,거짓으로 하는 소리요』라고 말해 현실을 보는 눈이 있음을 보여주기도. 또 자신의 면전에서 아첨을 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훤히 알고 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당간부나 원로급 간부,그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인물의 생일이나 환갑에는 선물도 보내고 생일잔치도 그럴듯하게 차려주는 자상한 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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