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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탈리아 북부 이야기 Italy, eataly, italo③Emilia Romagna 에밀리아 로마냐주

    이탈리아 북부 이야기 Italy, eataly, italo③Emilia Romagna 에밀리아 로마냐주

    Emilia Romagna 에밀리아 로마냐주 우아한 유네스코 도시들 이탈리아처럼 많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는 없다. 그래서 그 타이틀마저 식상할 때가 있지만 막상 그 중요한 인류의 유산 앞에 서면 스스로가 얼마나 행운아인지를 알게 된다. 페라리보다 멋진 페라라에서, 손톱만한 유리조각들에 존경심을 품게 되었던 라벤나에서, 나는 무척 행운아였다. Unesco City 1 이상적인 르네상스 도시 페라라 Ferrara 포 강변에 자리한 페라라는 15~16세기에 막강한 세력을 자랑했던 에스테 공국의 보금자리로, 예술가들에 대한 활발한 후원으로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로 번성한 곳이다. 도시의 규모를 확대할 필요를 느낀 에스테 가문의 헤르쿨레스는 1492년 비아지오 로세티Biagio Rossetti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유럽 최초의 근대 도시’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5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 1995년 페라라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계획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구불구불 휘어진 골목이 복잡하게 중첩되어 있는 중심지구와 북쪽의 확장된 주거지역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도시의 삶을 유통하고 있었다. 헤르쿨레안 에디션Herculean Addition으로 불리는 확장된 주거지역에서 로세티가 세운 랜드마크는 디아만티궁Palazzo dei Diamanti은 벽면이 8,000개가 넘는 피라미드 모양의 대리석 포석으로 이뤄져 일명 다이아몬드궁으로도 불린다. 당시 유럽의 부자들이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던 이 주변은 지금도 모두 부유한 주택지구다. 넓은 해자 때문에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듯 보이는 에스텐성Castello Estense은 1385년부터 200년간 개축이 계속된 도시의 상징이었다.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이는 이 성은 원래 도시의 북쪽을 수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에스테 가문이 주거지를 이 성으로 옮기면서는 민중의 발란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어둡고 습한 지하 감옥이 아직도 남아있다. 거친 외관에 비해 내부는 점점 귀족의 화려한 생활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탈바꿈해 나갔다. 회랑을 세우고 대리석 발코니, 정원을 만들었다. 부속 건물에는 놀이와 유희를 테마로 한 카밀로 필리피의 프레스코화가 귀족의 호사스런 취미를 보여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산 조지오 페라라 대성당 앞에는 상인들과 장을 보러 온 사람들도 빈틈이 없었다. 아랫부분의 로마네스크 양식과 윗부분의 고딕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대성당의 파사드만 겨우 볼 수 있었다. 도시 중심과 확장된 주거 지역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가장 쉽게 확인하는 방법은 자전거 여행이다. 페라라는 인구당 자전거 보유 대수가 가장 많은 도시로도 유명하다. 평평한 지형 덕분이기도 하고, 자동차보다는 자전거가 더 편리한 도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자전거를 타고 9km 성벽 외곽을 따라 도시를 한 바퀴 도는 것이 페라라 사람들의 자전거 산책이다. 성 둘레에 커다란 나무를 심고 자전거 도로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Unesco City 2 살아있는 모자이크 라벤나Ravenna 라벤나의 전성기는 페라라보다 1,000여 년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 5세기부터 8세기 사이에 3번이나 수도(서로마 제국, 동고트, 비잔틴 제국)의 지휘를 누렸던 도시다. 그 영광의 흔적이 8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아 있고 그중에서 2개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초기 기독교시대의 보물로 꼽히는 바실리카 산 비탈레Basilica of San Vitale의 내부도 모자이크로 라벤나를 다시 탈환한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안과 그의 부인 테오도라가 그려져 있다. 빛이 바래지 않은 모자이크화 속에서 황제와 여왕은 여전히 화려했고 여자들의 컬러풀한 의상도 그대로였다. 빛이 잘 드는 날이면 더욱더 찬란하게 빛난다고 했다. 이 세계문화유산에 영감을 받은 샤넬의 디자이너는 라벤나 스타일의 쥬얼리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갈라 플라치디아의 원형무덤Mauseleum of Galla Placidia을 설명하는 한 단어는 보석상자다. 평범하고 둔해 보이기까지 하는 내부와 달리 어두운 내부에는 찬란한 보석처럼 알알히 생생한 모자이크 그림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금박 위에 반짝이는 유리들은 때론 별이고, 때론 꽃이고, 때론 사람이 된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라벤나로 신혼여행을 왔다가 이곳의 모자이크를 보고 ‘나이트 & 데이’라는 곳을 작곡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비잔틴 시대의 황실 판사들의 초상화를 비롯해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알 수 있는 모자이크들이 천장 전체를 덮고 있다. 물론 바닥도 돌 카펫, 즉 모자이크로 덮여 있었다. 라벤나 사람들이 가지는 모자이크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일주일 동안 40시간을 수료하면 되는 모자이크 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골목어귀마다 붙어 있는 도로명 표지판을 모두 모자이크로 바꾸는 작업은 안나 피에타씨Anna Fietta의 지휘아래 이루어졌다. 그녀의 공방 겸 숍에서는 다양한 모자이크 작품과 재료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라벤나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자부심은 중세 최고의 서사시인 <신곡>의 저자,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다. 정치적인 이유로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지 못하고 19년 동안 망명 생활을 했던 그는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가 죽은 후에야 베네치아는 유골을 되찾으려 했지만 라벤나는 유골을 빼돌려 가면서 지켜냈다. ▶travie info 꼬는 것이 실력, 빠네 페라라레제 맛에 대한 선입견을 줄 수 있으므로 이 빵의 모양을 다른 동물이나 곤충에 비교하는 일은 삼가겠다. 사진에서 보이는 대로 사지가 꼬인 빵이다. 제빵사가 실력을 한껏 뽐내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 빵은 1536년부터 귀족의 만찬 테이블에 오르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세계 최고의 빵’이라는 찬사를(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듣고 있다. 하지만 정말 맛있는 페라라 빵을 위해서는 이 지역의 물과 밀가루뿐 아니라 습도마저 필수라고 하니 본토에서만 그 맛을 느낄 수 있나 보다. 맛있는 빠네 페라라레제를 기본빵으로 제공하는 레스토랑 겸 식료품점 쿠시나 부테가Cusina Butega는 그릇의 소리만 듣고도 금이 간 것을 알아차리는 숙련된 종업원들만큼이나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에밀리야 로마냐 음식을 제공한다. Cusina Butega | 주소 Corso Porta Reno 26/28 Ferrara 문의 +39 0532 209174 www.cusinaebutega.com 이탈리안의 점심식사, 피아디나 이탈리안의 일상적인 점심메뉴가 된 피아디나Piadina는 라벤나의 자랑이기도 하다. 얇고 평평한 밀가루 빵 위에 재료를 넣고 말아먹는 피아디아는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샌드위치와 비슷하다. 하지만 라벤나의 카페 까데뱅Ca’ de’ Ven에서 맛본 ‘원조’ 피아디나는 샌드위치 재료가 아니라 그 자체로 맛있는 빵이었다. 밀가루에 라드돼지기름를 듬뿍 넣어 만든 반죽을 팬에 구워 만들기 때문에 적당히 기름지면서도 쫄깃했다. 라벤나 관광청 사람들이 선택한 이 레스토랑은 15세기에 세워진 유서 깊은 건물에 어울리는 앤티크 선반과 서가,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의 엄선된 와인 등으로 이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품위 있게 보여주는 곳이다. Ca’ de’ Ven | 주소 Via Corrado Ricci, 24-48100 Ravenna 문의 +39 0544 30163 www.cadeven.it ● 이탈리안 식탁의 기본 너무 흔해서 쉽게 먹는 김치가 사실은 상당한 정성의 산물이듯, 흔하게 먹었던 파스타가 사실은 상당한 인내심의 산물이었고, 빵이나 찍어 먹던 발사믹 식초에도 명품이 따로 있었다. 커피에도 역사가 있고, 치즈는 시간의 산물이다. 알고 먹으니 다른 맛. 더 진하고 고소하고 감사한 맛! Boun Giorno! Torino Caffe 토리노의 아침, 바로크 시대의 건축물이 많은 격자형 도시의 골목을 기웃거리다 110년 전부터 산 카를로 광장 귀퉁이에 자리잡은 카페 토리노에 들어갔다. 마롱 글라세Maron Glaces·설탕시럽을 입힌 밤와 잔두이야Ganduia·헤이즐넛초콜릿의 먹음직한 모양새에 넋을 잃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천장 모서리에 이런 말이 새겨져 있었다. “a little too much is just enough for me.조금 넘치는 것이 내게는 충분한 것이다.” 그 순간 내게 든 생각은 ‘커피 한잔을 더 마셔도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래, 결핍보다는 약간의 과잉을 ‘충분’의 기준으로 삼아 보자! 단테의 희곡에 나온다는 이 문장을 나는 이번 이탈리아 여행을 위한 계시로 받아들였다. 한결 죄책감 없는 마음으로 두 번째 커피를 위해 라바짜 카페Lavazza cafe 1호점을 찾아갔다. 110여 년 전 토리노에서 시작된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이고 감각적인 커피 광고로 유명한 커피 브랜드답게 내부의 인테리어도 강렬했다. 그러나 그 현란함 속에서도 이탈리아 할머니들은 색 바랜 느낌이 아니었다. 토리노의 명물 커피라는 비체린Bicerin(에스프레소, 초콜릿, 뜨거운 우유거품을 층층이 섞은 커피)을 영접할 기회는 없었지만 충분히 족한 마음이 들었다. 내 노년의 어느 날, 아침 9시의 풍경이 저러하길. 그것은 카페인보다 진한 각성이었다. Caffe Torino | 주소 Piazza San Carlo 204 10100 Torino 문의 +39 011-5451118 슬로시티, 슬로치즈 브라 소믈리에도 만났고 바리스타도 만나 봤지만, 치즈감별사는 처음 만났다. 그 장소는 브라Bra였다. 이 도시를 설명하는 두 단어는 ‘슬로푸드’와 ‘슬로시티’다. 패스트푸드에 대항하여 일어나기 시작한 슬로푸드 운동의 세계연맹(1989년 결성) 본부가 브라에 설치됐다. 그리고 슬로푸드 운동의 연장선에서 브라는 슬로시티 1호(1999년)로 지정됐다. 대표적인 슬로푸드 치즈. 브라는 2년에 한 번씩 세계치즈축제가 개회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 도시에서 1920년부터 3대째 치즈 숙성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지오리토Gilolto 가문의 피렌조Fiorenzo씨(사진 왼쪽)도 매번 이 축제에 참가해 엄성된 브라치즈를 내놓는다. 이 지역의 200여 가구가 생산하는 치즈를 감별하고, 특별한 치즈로 숙성해 내는 것이 그의 일. 서늘한 지하 저장고는 치즈 특유의 콤콤한 냄새가 진동했다. 최소한 6개월 이상 숙성시킨 치즈를 두로Duro라고 하고 1년 이상 주기적으로 올리브 오일을 덧발라가며 숙성시키는데 지오리토에서는 보통 3년 정도 숙성시킨 치즈를 유럽, 미국, 일본 등지에 수출하고 있다. 어떤 치즈들은 홍어로 치면 흑산도보다 진하다는 나주 홍어쯤 되는데, 그럴수록 마니아들은 더 환장하게 마련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지오리토만의 독창적인 치즈는 브라취크braciuk였다. 질 좋은 치즈를 네비올로Nebbiolo, 바르베라Barbera 등 피에몬테 지역 품종의 포도껍질에 파묻어 적어도 3개월 이상 숙성시킨, 말하자면 ‘취한’ 치즈다. 그래서 이름도 취한drunken을 뜻하는 지역 방언인 ‘취크ciuk’다. 와인 향기와 함께 톡 쏘는 듯한 맛은 지금도 입 안에서 맴돈다. 피오렌조 지오리토Fiorenzo Giolito | 주소 Via Monte Grappa, 6-12042-Bra(CN) 문의 +39 0172 412920 www.giolitocheese.it 내가 만든 파스타 볼로냐 요리학교 ‘요리의 수도’라고도 불리는 볼로네제를 대표하는 메뉴는 미트소스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볼로네제 소스 파스타’다. 소스의 비법까지야 배울 틈이 없었지만 파스타를 만들어 볼 기회는 있었다. 수많은 파스타 종류 중 도전할 종목은 토르텔리니Tortellini였다. 밀가루와 계란 30개만으로 치댄 반죽으로 피를 만들고 속을 채운 이 파스타는 그 생김새 때문에 비너스의 배꼽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손가락의 한마디만큼 작은 토르텔리니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렵다기보다는 흥미를 잃기 쉬운 노동집약적 요리였다. 체험자들의 얼굴에 지겨운 기색이 비치자 곧 응용코스로 대형 토르텔리니 만들기가 시작됐다. 같은 요령이지만 물만두만큼 사이즈가 커지자 다시 속도가 붙었고 그만큼 식욕도 빠르게 상승했다. 체험을 끝내고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갈증을 푸는 동안 드디어 고기 육수에 끊여 낸 토르텔리니가 냄비째 나왔다. 3가지 이상의 파스타 요리가 나온다는 말에 양을 조절하려 했으나 자제하기 어려울 만큼 토르텔리니는 맛있었다. 볼로냐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교실이자 레스토랑인 베키아Vecchia Scuola의 성공은 알레산드라 Alessandra Spisni씨의 명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생파스타 실습을 책임지는 유쾌한 남자, 알렉산드로씨(사진)는 그녀의 동생이다. 전문가 코스부터 일주일 코스, 점심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Vecchia Scuola Bolognese | 주소 via Galliera 11 40121 Bologna Italy 문의 +39 0516491576 www.lavecchiascuola.com 회장님의 식초 모데나 발사믹 모데나의 식초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 세상 모든 식초는 인스턴트다. 포도 외에 어떤 첨가물도 들어가지 않는 전통방식의 발사믹 식초를 만드는 과정은 순전히 시간의 응축이기 때문이다. 10월에 수확하여 깨끗하게 씻은 포도를 으깬 후 만 하루 동안 푹 끊여낸 포도액은 저장고로 옮겨서 배럴에 담긴다.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는 5~8개의 배럴들은 ‘가족’이라고 불린다. 그런 가족들이 한 서른 세트쯤 될까. 그리 넓지 않은 2층 저장고는 서늘하면서도 시큼한 공기로 채워져 있었다. 18세기부터 가족을 위해 만들기 시작한 식초는 이제 가문의 중요한 사업이 되었다. 같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초라고 해도 사용하는 저장통의 목재가 다르기 때문에 맛도 모두 다르다. 구멍이 뚫린 배럴에서 증발하고 숙성되면서 응축된 발사믹 식초가 한 단계씩 작은 통으로 옮겨지면서 증발을 계속하여 식탁에 오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12년, 길게는 수백년이다. 포도 원액들이 섞이므로 사실 아무도 그 정확한 연도를 알 수는 없다. 모 호텔 홍보담당자의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모데나의 식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그룹의 회장님이 먹는 식초다. 그러나 아무리 재벌이라고 해도 욕심껏 모데나의 식초를 구매할 수는 없다. 18세기부터 시작된 이 마을의 식초 담그기는 소규모의 가내 수공업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방문했던 곳에서도 연간 생산량은 500~600병 정도라고 했다. 시간이라는 것에 맛이 있다면 모데나의 발사믹 식초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시고, 달고, 진한 감칠맛. 마지막 몇 방울만 떨어뜨려도 샐러드를, 빵을, 치즈를 완전 다른 요리로 만드는 신의 한수 같은 맛 말이다. 품질인증(P.D.D)을 받은 모데나 전통 발사믹 식초의 가격은 100ml들이 한 병에 12년산 40유로, 25년산은 70유로다. 다른 식초와 비교하자면 고가지만, 그 오랜 시간으로 나누어 생각하자면 오히려 저렴하게 느껴진다. www.balsamico.it ●이방인처럼 쇼핑하고 이탈리안처럼 먹어라 할인과 세금 환급이라는 ‘이방인 쇼핑 특권’을 꼭 누려야 할 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이탈리아다. 아무래도 홈그라운드 브랜드들이 상대적으로 품목도 다양하고 사이즈 선택의 폭도 넓다. 디자이너 아웃렛 맥아더글렌의 장점이 두드러지는 곳도 이탈리아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살바토레 페라가모(피렌체), 프라다(밀라노), 불가리(로마), 돌체앤가바나(밀라노), 질샌더(밀라노), 베네통(트레비조) 등은 부연이 필요없는 브랜드다. 여행가방으로 유명한 브릭스(올지아테 코마스코), 여성 핸드백으로 유명한 코치넬리coccinelle(파르마), 남성복 브리오니(펜네)와 투스카니 스타일 패션 브랜드 고뗄리Gotelli(세라발레)는 이탈리아에서 꼭 노려야 하는 쇼핑리스트다. 의류와 보석뿐 아니라 향수, 화장품, 스포츠용품, 가정용품 브랜드들도 다양하게 입점해 있다. 동일 매장에서 154.94유로 이상을 지출하면 구입 금액에서 최대 15%를 다시 환급까지 받을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누려야 할 또 하나의 특권은 음식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방인처럼 말고 이탈리안처럼 먹기를 권한다. 버거킹을 대신해 선택할 수 있는 간단한 요리도 그리 비싸지 않고, 와인 한잔을 곁들이는 것도 이탈리아이기에 꼭 누려야 할 호사다. 노벤타 디 피아베 Noventa di Piave Designer Outlet 펜디Fendi, 아르마니Armani 등의 제품이 비교적 원활하게 공급된다는 소문이 있는 곳으로 뉴욕의 패션 블로거들, 베니스 비엔날레의 작가들이 놓치지 않는 매장이다. 베니스에서 30분, 파도바에서 1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여름마다 음악 페스티벌 등의 문화행사도 개최한다. 주소 Via Marco Polo 1 30020 Noventa di Piave 문의 +39 0421 5741 찾아가기 베니스 트론체토 광장 앞에서 매일 오전 10시에 셔틀버스(왕복 15유로)가 출발한다. 산 도나 디 피아베San Dona di Piave에서도 왕복 버스를 운행한다. 세라발레 디자이너 아웃렛 Serravalle Designer Outlet 이탈리아 북동쪽 리구리아 해안 지역의 건축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이 쇼핑몰은 이탈리안의 감성을 잘 전달하는 쇼핑 공간이다. 유일하게 불가리가 입점해 있다는 점에서 불가리 마니아에게는 필수방문지로 꼽히는 곳. 베네통 매장의 규모도 크다. 밀라노에서 1시간, 제노바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주소 Via Della Moda,1-15069 Serravalle Scrivia 문의 +39 0143 609000 www.mcarthurglen.it ●두 개의 시간이 만나다 일주일 동안 이탈리아 북부를 누볐다. 지도를 펼쳐 놓고 헤아려 보니 피에몬테, 베네토, 에밀리아 로마냐의 3개 주에 걸쳐 있는 11개의 도시와 마을이었다. 도시의 중심에서 중심부로, 재빠르게 우리를 이동시켜 준 이탈리아 열차 시스템을 충분히 활용한 덕택이다. 직접 타본 이딸로에는 두 가지 속도가 존재하고 있었다. 페라리를 닮았다는 명품 초고속 열차의 경쾌한 속도감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면, 그로 인해 한층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풍경을 즐기거나 맥주를 마시는 것이 기차 안의 풍경이다. 마치 빠르게 달리는 기차가 외부의 시간을 흡수하여 내부로 전달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은, SF적 상상을 해보게 된다. 창밖을 보며 이런 공상을 펼치는 것도 기차 여행이 주는 쏠쏠한 재미일 것이다 . 시간의 경계를 넘나들 정도로 미래적이어서 그런지 이딸로의 경쟁 상대는 기차가 아니라 비행기다. 물론 종목은 속도가 아니라 서비스 경쟁이다. ‘격의 없는 매너’로 유명한 유럽 항공사 승무원이 아니라 상냥하고 또 예쁘기도 한 우리나라의 승무원이 연상되는, 그런 친절함을 위해 철저하게 서비스 교육을 한 덕택이다. 영어구사 능력도 모두 수준급이다. 그들의 서비스를 듬뿍 받을 수 있는 곳이 ‘까사 이딸로Casa Italo’다. 이딸로 전용 대기실이자 안내데스크 겸 예약센터인 이곳은 이딸로 특유의 컬러인 벨벳 레드와 실버가 어우러지는 우주적인 공간이다. 심플한 픽토그램과 벽면에 내장된 키오스크 들은 디자인, 성능,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초고속 열차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려는 진보적인 이딸로의 노력이 시각화된 결과물이다. <월페이퍼>가 주관한 2013년 디자인 어워드에서 ‘올해의 생활 향상’부분을 수상하기도 했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이탈리아정부관광청 한국사무소 02-775-8806, 레일유럽 한국사무소 02-3789-6110, 맥아더글랜 한국사무소 02-553-0822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피에라 피지Piera Pizi 밀라노역 스페셜리스트 “여기 있는 서비스 직원들은 모두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밀라노에 있는 2개의 역을 오가면서 총괄업무를 담당했는데 좋은 피드백을 많이 들었어요. 저는 예전에 호텔에서 일했었는데 이딸로의 서비스는 호텔에 못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경쟁 상태는 항공사 승무의 수준의 친절과 서비스죠. 하지만 요금은 무척 합리적인 수준입니다. 시장 조사를 통해서 더 많은 승객들이 이딸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거든요. 참! 이딸로 열차에서 제공되는 슬로푸드 스낵도 잊지 말고 맛보세요.” ●mini interview 찾아가기 밀라노(오전 10시, 오후 1시30분)와 토리노(오전 9시)에서 세라발레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 [창조경제 소통의 창 SEC] (1) 중소기업 정책

    [창조경제 소통의 창 SEC] (1) 중소기업 정책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 기조는 창조경제다. 창조경제란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 기존 기술과 새로운 기술의 융·복합을 통해 창업이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성장이 선순환되는 경제다. 서울신문은 창조경제의 주역인 중소기업의 손톱 밑 가시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거하면서 중소기업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소통의 창’(SEC·Seoul-shinmun Economy Conference)을 마련했다. SEC에서는 새 정부가 제시한 경제민주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구조 전환, 3불(不) 해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등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과 해결 방안 등을 총 4회에 걸쳐 다룬다. 제1차 콘퍼런스는 15일 오전 10시 서울신문사 대회의실에서 ‘창조경제시대 중소기업정책’을 주제로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의 사회로 김순철 중소기업청 차장,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 성명기 이노비즈협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김기찬 교수(이하 사회자) 중소기업을 살리는 데 무엇이 필요할까? 너무 많은 대책은 기획만 하다 끝나 버릴 수 있다. 핵심 대책에 대한 집중 논의가 필요하다. 창업 생태계 조성과 글로벌 전문기업을 이어줄 수 있는 성장사다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불공정, 불합리, 불균형 등 ‘3불(不)’은 최근 대두된 갑을 문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3행(行)’의 핵심은 글로벌화다. 지난 10년간의 중소기업정책 중 가장 아쉬운 분야다. 글로벌화에 모든 게 담겨 있다고 본다. 일본에서 국내 시장에 매몰된 기업은 망했다. 자기 제품이 없으면 해외에 나갈 수 없다. -김순철 중기청 차장(이하 김 차장) 공감한다. 중기정책은 맞춤형 지원으로 가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글로벌화가 중요하다. 300만개 중소기업 중 수출기업은 8만 6000여개에 불과하다. 내수뿐 아니라 세계 시장도 국경 없는 무한 경쟁 상황이 됐기 때문에 창업 단계에서부터 글로벌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이하 이 교수) 중소기업의 스펙트럼이 넓다. 중소기업을 살리자는 논의도 지금보다 지평을 넓혀야 한다. 혁신 기업들이 잘되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한 이슈다. 소상공인 문제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접근 방식과 대책도 달라야 한다. -성명기 이노비즈협회장(이하 성 회장) 창업 후 5~10년간 흥망을 거듭한 뒤 안정기에 들어선 기업들의 성장 동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중견기업이 되면 성장 속도가 다시 빨라진다. 성장동력이 떨어진다면 창업 초기 벤처기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150억~300억원 매출의 중견기업들을 키울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사회자 논의를 정리하자면 ▲3불 문제 해결 없이 중소기업 문제는 해결 난망 ▲창조경제와 시장 메커니즘의 화합 ▲벤처기업과 장수기업 양대 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성장사다리를 통한 글로벌기업 육성이다. -이 교수 이제 대기업 중심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제는 한계에 부딪혔다. 대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이 중요하다. 중소기업에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3불 문제 해소가 관건이다. 성장과 고용 두 축을 달성하는 데는 창업 활성화가 우선이다. 신용 불량이 걸림돌이다. 창업 활성화 정책의 핵심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려는 성실한 사업가가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성 회장 2000년 벤처 붐이 일면서 사라졌던 도전정신이 되살아났다. 창업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현장에서의 3불, 갑을 관계도 심각하다. 대기업들은 중소기업 제품 가격 깎기뿐 아니라 하청 기업에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을 자신들의 업체에 해줄 것을 강요하더라. 도덕적인 문제다. 하청 기업이 오히려 드러나지 않게 해 달라고 호소한다. →사회자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해 벤처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벤처 버블, 모럴 해저드, 무늬만 벤처 등의 거부 반응이라고 할까? -이 교수 창조경제를 이끌어 갈 중소기업 활성화 논의가 자칫 과거 벤처기업 거품 붕괴처럼 될 수도 있다. 김대중 정부 때의 벤처 붐 붕괴가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벤처에 투자된 정부 지원금이 2조 2000억원인데 6000억원이 회수되지 못했다. 구조조정 지원금 165조원 중 미회수금이 65조원에 달한다. 벤처기업 매출액이 이스라엘 국내총생산(GDP)을 넘고 매년 평균 20% 성장하며 140만명의 고용을 창출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벤처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정부가 (벤처의 개념을) 정의하려는 순간 벤처는 무너졌다. 2001년 발생한 벤처 버블은 국내 문제가 아닌 글로벌 현상이다. 정부의 4대 벤처 건전화 대책은 정책 실패의 대표 사례다. 창업을 위축시켰고 묻지 마 투자를 없앤다고 엔젤투자를 축소했으며 코스닥을 통합했다. 초일류 벤처기업에 SKY 출신이 가지 않는다. 벤처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김 차장 오늘(15일) 발표된 ‘벤처·창업 자금 생태계 선순환 방안’은 융자에서 투자 중심으로 개선하고 엔젤을 중간에서 회수할 수 있는 인수·합병(M&A), 코스닥 시장의 독립성 강화, 재기할 수 있는 여건 조성 등을 담고 있다. 지금 벤처는 벤처 1세대가 대부분으로 이들이 재투자하고 후배 기업에 멘토링할 수 있도록 하겠다. 피인수 기업에 스톡옵션을 주고 행사 후 세금을 분할 납부하는 문제 등 포괄적인 내용도 담았다. 엔젤투자 활성화를 위한 세액공제 한도 예외를 인정하는 방안이 마련됐지만 창업자 연대보증은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 -성 회장 벤처정책은 성공한 정책이다. 벤처를 통해 한국이 세계적 정보기술(IT) 경쟁력 확보의 근간이 됐다. 코스닥시장 조작, 분식회계 등 스타 기업의 비도덕적 행위로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 줬다. 반성을 통한 새로운 시도가 이뤄져야 한다. 불합리, 불균형 문제에서 “중소기업 제품의 가격을 깎지 말자”고 얘기하는데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돼 가격 경쟁력 높은 기업들이 들어왔을 때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 보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력 불균형 등에 대한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꿈꾸는 기업가들도 M&A를 부담스러워한다. →사회자 벤처 기업 엔진 가동에 이어 성장사다리도 문제다. 지금까지 사다리 문제를 조세의 걸림돌로만 봤는데 기술 기업이 도약하려면 연구 개발 인재가 요구된다. 시급한 성장사다리는. -성 회장 중소기업에는 기술 인재 공급이 시급하다. 제도는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기업 입장에서 도움이 안 된다. 현실적으로 국책연구기관 같은 좋은 자리의 연구원이 되려면 의무적으로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파견 기업에서 평가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이 교수 성장사다리의 핵심은 인력과 자금, 시장이다. 이 중 시장과 인력 조달 문제가 우선한다. 중소·벤처기업 인력 조달은 주식옵션제도가 가장 효율적이다. 연구·개발(R&D) 기관을 통한 인력 지원은 궁여지책이다. 그렇게 온 사람들은 목숨 걸고 일하지 않는다. 주식옵션제도를 현실에 맞춰 강화해야 한다. 기술과 기업이 거래되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필요하다. 시장과 기술이 연계되는 선순환 구조다. 기술로 시장을 확보하고 이후 필요한 기술은 M&A를 통해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 지원이 ‘제로섬게임’이 돼서는 안 된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중견기업에 나눠 줘서는 안 된다. 중견기업에는 세액을 점진적으로 낮춰 주는 방향이 필요하다. -김 차장 인력 문제는 근본적으로 인력이 올 수 있는 스톡옵션제가 최선이다. 전문연구기관 및 출연연구소의 인력 파견도 좋은 대책이다. 현장감이나 기술 발전을 체험할 수 있다. 중소기업은 부족한 기술력을 보완할 수 있는 ‘윈윈책’이다. 출연연에 ‘테뉴어 제도’를 도입해서 중소기업 근무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대두된다. 성과 평가에 창업이나 중소기업 기술 지원을 반영하고도 있다. 중견기업의 성장사다리는 금융·세제 지원을 점진적으로 줄여 안착할 수 있도록 부담을 완화하는 동시에 역량을 강화하는 투 트랙으로 접근하고 있다. →사회자 글로벌 전문기업 육성을 위해 필요한 대책은. -성 회장 글로벌화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50년간 이뤄진 일본의 방식을 눈여겨볼 만하다. 현재도 핵심 부품은 일본에 매달려 있는 실정이다. 기술력에서 우리 기업들이 동남아 국가에 지원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계속 투자하고 성장한 기업의 해외 진출에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이 ‘마중물’ 역할을 해 주면 어떨까 한다. -사회자 열린 국제화정책이 필요하다. 우리의 글로벌 정책은 기관정책이지만 이스라엘은 1000만명의 디아스포라(유대인)가 세일즈맨으로 활약하고 있다. 마케팅도 결국 사람이 하는데 동포들이 나서 주면 더욱 효과적이다. 한류 열풍을 활용해야 한다. 경제는 결국 ‘기브 앤드 테이크’다. -김 차장 과거 수출 지원은 기업 간 거래(B2B), 오프라인이었지만 현재는 기업과 소비자(B2C), 홈쇼핑을 포함한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고 규모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전문기업 육성과 관련해 기업의 수출 역량과 방식 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을 통해 수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해외 진출 로드맵을 수립하겠다. 정리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사설] 지방 편견 깨뜨린 ‘제주대 산학협력’ 모델

    제주대학이 지난해 전국 대학 가운데 산학(産學)협력을 가장 잘한 곳으로 뽑혔다. 제주대는 지난해 초 ‘산학협력 선도대학(링크·LINK)사업’에 선정될 때만 해도 꼴찌로 간신히 합격했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전국 51개 대학 중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 지방대와 소규모 영세기업 중심인 지역의 취약한 환경 속에서 일궈낸 값진 성과로 평가된다. 제주대의 산학협력 모델이 다른 대학으로 확산돼 지역 발전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길 기대한다. 그동안 산학협력은 중소기업과 대학 간 원거리 네트워크로 인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더욱이 중소업체들은 기술 개발을 주도할 연구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호소하는 실정이다. 제주대는 산학협력을 추진하면서 다른 지역 대학에 비해 고충이 훨씬 더 컸다고 한다. 제주도 기업의 93%는 종업원이 9명 이하인 영세업체로 기업 환경이 취약하다. 제주대는 그러나 역발상을 통해 최우수 평가를 이끌어 낸 것으로 평가된다. 지역 규모가 작아 기업 사정을 파악하기 쉬운 점에 착안했다. 교수와 연구원 등 40여명이 회사를 직접 찾아다니며 가려운 데를 긁어주기도 하고, 연구실이 없는 기업에는 대학에 연구실을 만들어 줬다. 제품의 브랜드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면 학교에서 공모전을 열어주면서까지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했다. 대학들은 산학협력을 중소기업의 ‘손톱 밑 가시’를 뽑는 작업으로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링크 사업은 대학이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키우고 기업을 도와 지역을 발전시키도록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제주대는 지역 기업을 하나로 묶어 채용 공고를 내 홍보하거나, 신입 사원 교육을 대신해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덜어주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산학협력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하거나 기술을 사업화해 취업과 창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업 경험자나 최고경영자(CEO) 등 산업체 경력자를 대학 산학협력단의 전문 인력으로 대폭 확충해야 한다. 산학협력을 통한 공동 연구개발 중심으로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 감기 증세와 비슷… 5년마다 예방접종 받아야

    감기 증세와 비슷… 5년마다 예방접종 받아야

    김영삼 전 대통령이 폐렴 증세로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가벼운 감기증세로 입원했으나 폐렴으로 악화돼 상당 기간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고령자가 감기 증세를 보일 경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노인들의 폐렴은 초기 감기와 증세가 비슷해 식별이 어려울 뿐 아니라 진행 속도가 빨라 갑작스레 늑막염·뇌수막염·패혈증 등의 합병증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65세 이상의 노인이 폐렴에 걸릴 경우 10명 중 8명 이상은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며, 입원 기간도 일반 환자의 2배를 넘는다. 성인의 경우 폐렴으로 입원하더라도 7일 정도면 증세가 호전돼 대부분 외래치료로 전환되는 데 비해 노인은 15일에서 길게는 한달 이상 치료를 받아야 하며, 조기에 증상을 호전시키지 못하면 그만큼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높아져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노인성 폐렴의 특징은 ▲입맛이 떨어지고 기력이 없다 ▲밤에 식은땀을 흘리고 시름시름 앓는다 ▲불면증이 있고 생기가 없다 ▲탈수와 늘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대소변을 못 가리고, 헛소리를 하거나 호흡곤란이 온다는 것 등이다. 폐렴은 주로 세균과 바이러스 등 급성의 감염성 병원균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간혹 알레르기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 드물게는 가루약을 복용하거나 음식물을 먹다가 기도로 흡입해 흡인성 폐렴이 생기기도 한다. 이 가운데 세균성 폐렴은 항생제요법으로 치료하지만, 노인들의 경우 평생 다량의 약물을 사용한 탓에 항생제가 잘 듣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경우에는 치료가 한층 어렵다. 게다가 노인들은 면역력이 약해져 있을 뿐 아니라 당뇨병·고혈압 등 만성 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감염성 질환에 매우 취약하다. 고령자가 감기 증상과 함께 호흡이 분당 30회를 넘어서 숨을 헐떡거리거나, 38∼39도를 넘나드는 고열이 나면서 의식이 혼미한 경우, 입술이나 손톱이 파래지는 청색증, 해열제를 써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으며,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면 지체없이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노약자 등 면역기능이 떨어져 있는 사람이 폐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생활의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심신의 안정을 취해야 하며, 과로나 과음·흡연 등을 피함으로써 몸의 저항력을 높여줘야 한다. 고른 영양 섭취가 필요한 만큼 편식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이연 서울시 북부병원 내과 부장은 “특히 면역력이 취약한 노인이나 당뇨병·신장·심장·간질환 등 내과적 질환을 갖고 있는 노인이라면 5년마다 폐렴구균 예방접종을 받는 것이 예방에 도움이 된다”면서 “특히 노약자가 감기에 걸렸을 때는 증상이 가볍더라도 방심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中企 등 옥죄는 ‘손톱밑 가시’ 뽑는다…정부 개선과제 130건 확정

    中企 등 옥죄는 ‘손톱밑 가시’ 뽑는다…정부 개선과제 130건 확정

    프랜차이즈(가맹점) 본부가 가맹 사업자에게 과도한 계약이행 보증금을 요구하거나 무리하게 영업 비용을 떠넘길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계약서에 명시된다. 또 PC방, 만화방 등에서 별도의 휴게음식점 허가 없이 커피, 컵라면 등을 조리해 판매할 수 있도록 식품위생법 등 관계법령이 개정된다. 정부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중소기업과 영세 소상공인의 영업활동과 경영에 부담을 주는 현장 애로사항 130건을 향후 개선 과제로 확정했다. 프랜차이즈 본부와 가맹사업자 사이의 불공정 행위 해소 방안은 사회 쟁점으로 떠오른 ‘갑을 관계’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프랜차이즈 본부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판촉행사 등 각종 영업 비용을 사업자에게 함부로 전가하지 못하도록 판촉 관련 중요사항에 대해 다수 사업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표준가맹계약서에 명시하는 것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본부에서 과도한 계약이행 보증금을 요구하는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보증금 산정기준도 마련한다. 2011년 말 기준으로 프랜차이즈 본부는 2405개, 가맹점 수는 17만 926개에 이른다. 기존 이동통신 3사의 통신망을 빌린 알뜰폰(MVNO) 사업자들에게 LTE와 국제전화 로밍 서비스를 허용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기존 이동통신사들이 MVNO에 제공하는 의무서비스는 현재 2G와 3G를 통한 통화, 단문, 데이터 서비스로 한정돼 있지만 앞으로 LTE 등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건설엔지니어링 하도급 관리·보호규정이 미비해 적정한 대가를 지급받지 못하는 불공정한 거래관행이 만연해 있음을 인식해 관련 제도를 만들어 하도급 제도의 양성화 및 불공정 거래를 방지해 나가기로 했다. 또 산업디자인 전문업체 등록 요건을 완화해 우량 중소 디자인업체를 육성하고, 회생인가 등 재기를 위한 지원 필요성을 인정받은 기업에 대해서는 각종 정부지원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격 제한을 완화할 방침이다.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은 “이번 대책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상시적인 ‘손톱 밑 가시’ 뽑기로 이어질 수 있도록 중소기업청 등 관계 부처와 함께 지속적으로 현장 애로사항을 발굴해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회의에서 지방자치단체 보육예산 지원대책을 논의, 보육예산의 안정적 집행을 위해 국고보조율을 현행 20%에서 40%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정 총리는 “영유아보육에 관한 국민 불편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계 부처가 지방자치단체 추경예산 편성을 적극적으로 독려해 달라”고 말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사설] 과다 교육조례 ‘손톱 밑 가시’ 뽑듯 솎아내야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다. 온갖 데서 이러니 저러니 간섭을 하다 보면 될 일도 그르치기 십상이다. 교육계의 고질이 되다시피 한 교육조례 남발 현상이 꼭 그 짝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갖다 붙여도 정작 일선 교육현장에서 조례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하겠다고 아우성이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더구나 교육의 본질에 철저한 조례라기보다는 모종의 교육 외 목적이 내장된 ‘정치조례’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현재 발효 중인 교육조례만 세종시를 제외하고도 800개가 훨씬 넘는다. 그중 과연 얼마나 절실한 교육적 필요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교육감이나 시·도의회 의원들의 실적쌓기용 ‘묻지마’ 교육조례도 한둘이 아니라고 하니 이보다 더 반교육적이고 비교육적인 일이 따로 없다. 지방자치단체에는 물론 자치입법권이 있다. 우리 헌법 제117조는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조례에 위임한다는 명시적 조항이 없음에도 조례 제정을 강행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지난해 서울시의회를 통과한 교권조례에 대해 대법원이 집행정지 결정을 내린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위법과의 충돌을 무릅쓰고 조례 제정을 강행하는 것은 의회권력의 횡포다. 조례만능주의로 피해를 입는 것은 일선 교육현장이다. 서울학생인권조례로 교육현장이 얼마나 큰 혼란과 갈등을 겪었나. 일선 학교들은 서울시교육청의 지시대로 관련 학칙을 개정해야 할지 상위 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침을 따라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한번 제정된 조례를 바꾸거나 폐기하려면 시·도의회를 다시 통과해야 한다. 녹록한 일이 아니다. 잘못 만들어진 조례의 폐해는 그만큼 심각하다. 중소기업을 괴롭히는 ‘손톱 밑 가시’를 뽑는 일 못지않게 교육현장에 막중한 부담을 안기는 불요불급한 조례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우리 교육이 더 이상 포퓰리즘 조례로 멍들어 가도록 내버려 둬선 안 된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면 그 형식과 내용을 좌우하는 교육조례의 제·개정이야말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마땅하다.
  • [무역투자진흥회의] ‘의료 한류’ 활성화·그린벨트 내 공장 증축 때 부담금 50% 감면

    [무역투자진흥회의] ‘의료 한류’ 활성화·그린벨트 내 공장 증축 때 부담금 50% 감면

    강동경희대병원에는 해마다 350~400명의 러시아 의료관광객이 찾아온다. 그런데 숙박시설이 변변치 않아 환자들의 불편이 컸다. 그래서 고심 끝에 병원 앞 주상복합 오피스 건물 일부를 활용하기로 했다. 인허가를 받으려 했더니 생각지 않은 난관에 부딪혔다. 현행 관광진흥법상 호텔업 규정에는 의료관광객용 숙박시설이 없어 관광호텔로 신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피스 건물은 주거지역에 있어 관광호텔 인가를 받으려면 용도 변경 신청을 따로 내야 했다. 더 큰 걸림돌은 동네 주민들이 “관광호텔이 웬 말이냐”며 들고 일어선 데 있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고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차였다. 강동경희대병원 관계자는 1일 “정부의 규제 완화 조치로 메디텔(의료관광객용 호텔) 건립이 가능해졌다”면서 “이미 ‘큄스’(Kuims)라는 상표권도 등록한 상태인 만큼 메디텔 이점 등을 앞세워 외국 환자들을 대대적으로 유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의료원, 서울아산병원 등 재벌 계열 병원과 대학병원들도 메디텔에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투자 활성화 대책은 과거와 달리 특정 사안별로 규제를 풀어준 것이 특징이다. 한마디로 ‘손톱 밑 가시’를 하나하나 뽑아줬다. 따라서 그만큼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부의 기대 섞인 분석이다.공공기관의 산단부지 활용이나 지주회사 공동출자법인의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보유 지분율 완화 등에 따라 12조원의 투자 효과를 기대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기업의 투자는 극도로 부진한 상태다. 설비와 건설 등 투자액수를 뜻하는 총고정자본형성은 전년 대비 기준으로 2011년 1.0% 감소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1.7% 줄었다. 재정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이탈리아와 더불어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유일하게 2년 연속 투자가 감소했다. 그렇다고 기업들이 투자할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10대 그룹의 내부잉여금은 지난해 말 기준 405조 2484억원이다. 4년 전보다 170조원 정도 늘었다. 유보율은 무려 1441.7%다. 자본금의 14배가 넘는 돈을 곳간에 쌓아두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메디텔을 통한 ‘의료 한류’확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은 “동남아 지역 등의 부유층은 국내 병원을 이용할 때 가족들이 함께 움직이는 만큼 메디텔 수요가 상당할 것”이라면서 “기존 병원 말고도 병원과 호텔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메디텔도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린벨트 내 공장 증축 시 부담금을 50% 감면해 주고 승인절차에 따른 이행기간도 단축시켜 준다. 산업단지 및 경제자유구역 내 사업시행자 요건 등도 완화해 준다.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설비투자펀드는 3조원에서 5조원으로 늘려 준다. 회의적인 목소리도 있다. 규제를 풀어줬다고 해서 기업들이 반드시 투자에 나선다는 보장은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도 초기에 규제를 풀었지만 기업 투자가 증가하지 않았다”면서 “기술력 부족이나 노사 문제 등의 요인은 제쳐 둔 채 ‘규제만 풀면 투자가 늘 것’이라는 환상은 경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도 “투자를 늘리기 위해 마구잡이로 규제를 풀면 자칫 전체 규제의 틀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종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사설] 파격적 규제 타파로 경기침체 국면 뒤집길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첫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무역과 투자 진흥은 특정 부처나 정파를 넘어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면서 수출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지원 확대와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수출과 투자 확대를 통해 경제 회복의 활로를 찾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들이 현장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수출과 기술 투자에 대한 걸림돌을 없애는 데 주력하기 바란다. 박 대통령은 수출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지원 확대에 이어 집중해야 할 과제로 규제 완화를 꼽았다. 이명박 정부의 ‘전봇대 뽑기’ 등 역대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이 가시적 성과를 올리지 못한 원인이 무엇인지 잘 따져봐야 한다. 탁상 행정의 영향이 적잖을 게다. 박 대통령도 “과거 정부에서도 의욕적으로 규제 완화를 실행했지만, 현장에 가 보면 체감이 되지 않는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새 정부의 ‘손톱 밑 가시 뽑기’도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철저히 민생과 현장 중심의 규제 완화를 추진해야 한다. 현장에 대기 중인 6개 대규모 기업 프로젝트를 가동, 12조원 이상의 투자 효과를 올린다는 정부의 복안이 성사되길 기대한다. 10대 그룹 상장사들은 지난해 말 현재 405조 2500억원의 유보금을 갖고 있다. 유보율이 1441.7%로, 자본금의 14배가 넘는 돈을 투자하지 않고 곳간에 보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경기가 위축되고 결과적으로 기업들의 이익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대기업들은 규제로 인해 수도권 공장 신·증설에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수도권 규제 완화는 사회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지역 균형발전을 해친다는 지방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출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때마침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속속 국회를 통과하고 있는 시점과 맞물리면서 대기업들의 반발이 커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부는 ‘네거티브 규제’, 즉 안 되는 것을 열거하고 나머지는 다 푸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수도권에는 왜 규제를 유지해야 하는지, 대기업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도 규제 완화 못지않게 중요하다. 업종 간 융합을 가로막는 칸막이를 없애는 것도 신경써야 한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다. 외국인 의료관광객용 메디텔을 호텔업으로 인정한 것처럼, 서비스업 분야에서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과도한 규제도 과감하게 정비해야 한다. 5년 뒤 규제 완화가 일시적 이벤트에 그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도록 중장기 이행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 [무역투자진흥회의] 기업 애로사항 250건 보고… 50여건 즉석 해결

    [무역투자진흥회의] 기업 애로사항 250건 보고… 50여건 즉석 해결

    “모든 중소기업이 119에 전화를 걸듯이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 제1차 무역투자진흥회의는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풀어주고 이를 어떻게 투자와 수출로 연결시키느냐에 대한 민관 합동의 대책 회의였다. 부총리와 11개 부처 장관, 대한상의 회장을 비롯한 경제계 인사 등 참석자만도 180여명으로 매머드급이었다. 회의는 수출 확대 방안과 규제 완화를 통한 투자 활성화 등 두 가지 주제에 대해 참석자가 발언하면 소관 부처 장관이 답변해 회의 현장에서 곧바로 애로를 해결하는 ‘트러블 슈팅’ 방식으로 진행됐다. 기업들이 현장에서 겪는 불편함과 애로사항 250건이 그 자리에서 보고됐고 바로 해결된 과제도 50건 정도였다고 조원동 경제수석이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기업과 정부를 연결시키는 중재자이자 사회자였다. 박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위해 두 가지 방향에서 규제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새 정부의 경제 기조인 창조경제가 살아날 수 있도록 융·복합을 막는 규제를 걷어내야 하며 다음으로 손톱 밑 가시를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무역투자진흥회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 2월 이후 매월 정기적으로 주재하던 ‘수출진흥회의’와 비슷한 회의체다. 1980년대에는 부정기적으로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무역흑자가 나기 시작한 1986년 이후에 중단됐다. 1998년 외환위기 사태 때는 수출대책회의로 부활하기도 했다.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는 출범 초기 한두 차례 열리는 데 그쳤다. 박근혜 정부는 무역투자진흥회의를 분기별로 정례화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측은 “무역·투자 관련 회의를 정기적인 회의체로 만든 것은 박 전 대통령 이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부친인 박 전 대통령이 다진 ‘수출입국’의 기초를 더욱 확대시키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캐나다 교수 “‘코딱지’ 파 먹으면 건강에 좋다”

    캐나다 교수 “‘코딱지’ 파 먹으면 건강에 좋다”

    ’코딱지’를 파 먹으면 건강에 좋다는 다소 지저분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근 캐나다의 한 교수가 ‘코딱지’를 먹으면 면역력이 증가해 건강에 이롭다는 주장을 펼쳐 화제에 올랐다. 이같은 연구결과는 불쌍한(?)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결과 나타났다. 서스캐처원 대학 생화학과 스콧 네퍼 교수는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코를 파게한 뒤 나온 ‘물질’을 먹게 했으며 나머지 한 그룹은 버리게 했다. 이후 신체 반응을 측정한 결과 ‘코딱지’를 먹은 그룹의 면역력이 증가한 것. 네퍼 교수는 “코딱지는 거의 자연 백신과도 같으며 신체로 다시 돌아가도 무해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혁신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더럽다고 터부시 하는 행동들이 사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이점을 뺏는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네퍼 교수의 이같은 연구와 맥을 잇는 주장은 또 있다. 영국 국가의료서비스기관(NHS Trust)의 면역학자 힐러리 롱허스트 박사는 입으로 손톱 뜯는 버릇이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롱허스트 박사는 “손이 아주 지저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손톱을 입으로 뜯게 되면 소량의 세균들이 입 속으로 들어온다.” 면서 “이때 우리의 면역시스템이 작동해 이들 세균과 싸우고 ‘기억’하면 다음 번에는 쉽게 세균을 물리치게 된다.”고 말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인조 손톱으로 만든 독도·태극기

    인조 손톱으로 만든 독도·태극기

    28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2013 인터내셔널 네일쇼에서 네일아트 참가자들이 인조 손톱으로 독도와 태극기를 만든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지역건보료 부담 상한액 조정… 저소득층 내리고 부유층 올려

    지역가입 건강보험료를 저소득자는 덜 내고, 고소득자는 더 내는 방향으로 조정된다. 저소득층의 부담 상한액은 20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낮춰지고, 부유층의 상한액은 4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높아진다. 건강보험의 본인부담 상한을 현행 200만원·300만원·400만원의 3단계에서 120만원에서 최대 500만원까지 7단계로 세분화하는 데 따른 것이다. 또 산업단지 내 산업시설 구역 입주 업종을 제조업에서 유지보수, 가스 및 증기 등 에너지 공급업 등으로까지 확대하고 식량작물 종자업 시설기준을 완화·폐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학교 주변 반경 200m 이내를 ‘학생안전지역’으로 통합해 폭력행위 등에 대한 처벌 및 학생안전을 강화하기로 했다. 국무조정실은 18일 이 같은 내용의 852건의 규제개선 방안을 담은 ‘2013년 규제정비 종합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올해 종합계획은 140개 국정과제 가운데 93개를 대상으로 관련 규제를 정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건보료 부담을 재산과 소득에 따라 더욱 차등화하기 위해 가입자의 소득, 재산, 자동차를 점수나 등급으로 환산하는 지역보험료 산정 방식을 올해 말까지 조정할 예정이다. 개별적으로 운영 중인 토지이용 인허가 절차는 내년까지 특별법을 제정해 마무리하기로 했다. 식량작물 종자업의 경우 육종포장 면적은 100a 이상에서 30a 이상으로, 장비 기준은 발아시험기 3대에서 1대 임차장비로 각각 완화되고 실험실 면적 규제는 없어진다. 이번 대책에는 ‘손톱밑 가시’ 제거를 위한 규제 폐지·완화와 더불어 서민·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강화 계획도 포함됐다. 대형 유통업체가 납품업체에 부담시키는 판매장려금 등의 추가 비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고, 업체 자율로 운영 중인 식품이력 추적제를 영유아 식품부터 시작해 단계별로 의무화하기로 했다. 또 고의로 불량식품을 만들어 파는 업자에게는 소매가격의 최고 10배까지 부당이득을 환수하고, 도시개발계획을 수립할 때는 반드시 범죄예방계획을 포함하도록 규정하기로 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상)

    [명사가 걸어온 길] 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상)

    백기완(80)은 거리에 있었다. 1973년 유신헌법 개정 투쟁 때도,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때도 그는 늘 대오의 맨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지금도 거리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서울 중구청이 대한문 앞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분향소를 철거할 때도 백발의 백기완은 새벽같이 나와 천막을 지켰다. “피눈물 흘리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있는 곳이 나의 삶터”라고 말하는 백기완. 스스로 “늙었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에 호통치고 노래 부르기를 멈추지 않는 그는 여전히 젊다. 백기완의 삶과 예술을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백기완을 거리로 이끈 것은 가난과 분단이었다. 1933년 황해도 은율 산자락에서 태어났다. 땅 한 뼘 갖지 못한 아버지는 돈이 없었다. 배가 고팠다. “돼지기름 덩어리 한 조박(조각의 황해도 사투리)을 날로 먹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다. 일제의 잔학한 수탈이 계속되던 때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왜놈들이 집에 와서 놋그릇을 뺏어갔어요. 쌀도 뺏고 밥그릇도 뺏고, 나도 울고 엄마도 울고. 그런데 엄마가 그만 울래요. ‘사내 새끼가 자꾸 울면 키가 안 큰다. 어서 커서 엄마 원수를 꼭 갚아 달라’고. 그때부터 민족의식이 싹 텄던 것 같아요.” 1946년 백기완은 아버지를 따라 맨발로 서울에 왔다. 도시는 냉정했다. 설렁탕 집에서 일을 하다가 “식은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그에게 서울은 “주먹으로도 안 되고 참아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는 곳”이었다. 가진 게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저항심리가 그에게 민중 의식을 심어줬다고 했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학교는 꿈도 못 꿨다. 충무로 책방에서 주인 몰래 영어 사전을 외우다 쫓겨나기를 거듭했다. 그의 할아버지(백태주)에게서 항일투쟁 때 도움을 받았던 백범 김구(1876~1949)와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을 지낸 조소앙(1887~1958) 선생이 학교에 보내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마다했다. 아버지는 “백범에게 밥을 얻어먹으면 백범 같은 사람밖에 안 된다. 깡패가 되든 거지가 되든 혁명가가 되든 혼자서 크라”고 했다. 1950년 전쟁으로 나라가 찢어졌다. 어머니는 여전히 은율에 있었다. 남쪽에서 참전한 작은형은 “북쪽에 계시는 어머니를 겨냥해서는 단 한 방도 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늘에 대고만 빵빵 쏜다”는 편지를 남기고 전장에서 숨졌다. 형의 유해를 찾으러 강원도에 갔다가 사격을 당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 뛰면서 다짐했다. 언젠가 나라의 허리를 내 손으로 잇겠다고. 전쟁이 끝났다. 국토는 폐허였다. 백기완은 ‘나라가 온통 퇴폐와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고 여겼다. “우리 생명을 심자”며 젊은 날을 나무심기와 농민운동에 바치기로 했다. 1953년부터 꼬박 7년. 그때는 불덩어리 같았다고 했다. 젊은이들의 주머니를 털어 1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다. 뜨거운 청춘이 되살아나는 듯 백기완은 인터뷰를 멈추고 거친 목소리로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불렀다. “바라보라 붉은 산 햇빛에 탄다/ 저 산을 푸르게 마음도 푸르게/ 저 산을 푸르게 조국도 푸르게/ 영치기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차차 우리는 선봉이다 자진녹화대” 100만 그루의 나무는 이 땅에 생명이 되었을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승만 독재가 강화되면서 그는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했다. 싸움은 반 세기 넘게 이어졌다. 그는 ‘가대기 형(兄)’ 이야기를 했다. “가대기 형은 서울역에서 막일하던 지게꾼이었어요.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그냥 가대기 형이라고 불렀어요. 싸움을 잘했지만 주먹쟁이는 아니었어요. 내가 가난한 친구들이랑 주먹다짐을 하고 나면 이렇게 얘기했죠. ‘싸움은 있는 놈, 나쁜 놈들이랑 하는 거야. 없는 놈들끼리 싸워봤자 서로 코만 터져’ 그 말이 내 인생의 길라잡이가 됐어요.”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백기완에게 ‘나라를 반으로 가른 미국의 앞잡이’였다. 정권을 바꿔가며 30년 넘게 이어진 독재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새 길을 내자”며 4·19 혁명에 참여했다. 이승만 정권은 무너졌다. 그러나 이듬해 5·16 군사 반란이 터졌다. 그가 “독재자의 야욕과 자본주의의 폭악이 결합된 극악한 체제”라고 부르는 ‘박정희 18년’의 시작이었다. 1972년 유신헌법이 나왔다. 1974년 1월에는 긴급조치 1호가 나왔다. 1973년부터 ‘유신헌법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 운동’을 벌이던 백기완과 고 장준하(1918~1975) 선생은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2년 뒤 풀려났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그때를 꼽았다. 유신은 그에게 ‘반통일, 반평화, 반균등, 반자유, 반문화, 반예술, 반역사, 반진보’였다. “유신 타파 운동을 하다 집에 들어와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어요. 탕탕탕, 누가 현관문을 부수고 구둣발로 들어와 이불을 확 베끼더라고. ‘너희 집 안방에 강도가 구두를 신고 들어와서 이불을 벗기면 좋겠어. 빗자루로 쓸어 이 새끼야’ 그랬더니 나를 짓이기며 질질 끌고 가요. 기가 막혔습니다. 내 생각대로 목숨을 걸고 떳떳하게 살았는데 그렇게 끌고 가면 되겠어요. 온몸이 노여움으로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그는 끌려가면서 아내에게 “여보, 나 기다리지 마. 훗날 내 무덤에 이름 모를 꽃이 피면 그게 해방 통일의 꽃일 거야”라고 외쳤다. “지금 들으면 어쭙잖은 얘기처럼 생각되기도 하는데, 그때는 죽기 살기로 싸울 때였으니 진지했어요. 거의 반 죽어서 감옥에 있는데 아내에게 편지가 왔어요. 새벽녘 추위가 더 매서운 법이니 견디어 내시라고.” 그러나 1975년 기다리던 아침이 오는 대신 믿고 따르던 장준하가 죽었다. 장준하는 그에게 “모든 통일은 좋다. 제국주의와 독점자본주의의 틀을 뒤집는 첫 걸음이 통일이다”고 알려준 스승이었다. 그는 “야비한 학살”이라고 했다. 여섯 달을 내리 울었다. 지난달 26일 장준하 선생 사인 진상조사 공동위원회가 “머리에 둔기를 맞고 숨졌다”는 사인을 발표할 때 백기완은 다시 울었다. 1979년 유신 체제가 끝난 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또 다른 군사 정권이었다. ‘반동분자’ 백기완은 다시 끌려갔다. 모질게 맞았다. 손톱이 뽑혔다. 정신을 잃으면 물바가지가 날아왔다. 독재는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죽기 살기로 시를 쓰며 버텼다. 그때 쓴 ‘묏비나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작곡돼 대표적인 민중가요가 됐다. 맨 첫발/ 딱 한발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중략)/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백기완은 민중후보로 대통령 후보에 추대됐다. 야권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백기완이 단일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민주화는 눈앞의 신기루였다. 백기완이 선거 이틀 전 단일화를 외치며 후보를 포기했지만 ‘양김’은 끝내 각자의 길을 갔다.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민중을 위해 싸운 100여년을 승리로 매듭지을 기회를 날렸다. 피눈물이 그치지 않았다”고 했다. 1992년 말 다시 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문민’(文民)의 간판을 내걸고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총칼을 앞세운 독재는 사라졌지만 백기완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를 거치는 사이 독재의 폭력은 신자유주의로 횡포로 바뀌고 있었다. 노동 현장을 찾아다녔다. 자본의 낯은 겉으로만 번지르르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가장 극악하게 노동을 탄압한 정권”이라고 했다. 정도는 달랐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상품으로 만들어 돈으로 환산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없애야 한다. 신자유주의에서 민중이 해방되는 것이 역사적 과제”라고 했다.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비바람과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여름 한때 없이 떨어지는 가랑잎을 ‘개죽’이라고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깨뜨릴 생각은 않고 그 속에서 출세, 돈벌이, 명예, 행복만 좇다가 개죽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젊은이들이여, 개죽이 되지는 마시오. 개죽으로 사느니 마음껏 자라다가 거름이라도 되는 게 나아요.” 그가 이번 정부에 가장 우선해 요구하는 것이 노동 문제다. “지난해 한진중공업 노조에서 최강서라는 젊은이가 서른넷에 목숨을 끊었어요. 유서에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5년을 더 기다릴 수 없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고 적었어요. 사실상 학살이나 다름없었어요. 장례식에 갔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들이 ‘아빠 왜 안 오냐’면서 사탕을 먹고 있어요. 울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데 앞이 안 보입디다. 하지만 나는 앞이 안 보인다고 주저앉지는 않아요. 그대로 주저앉는 건 자본주의에 져서 인간성을 포기하는 겁니다.” 백기완은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유신 잔재’라는 거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유신에 대한 거부와 비판이 한마디도 없다”고도 했다. 그는 다시 ‘장산곶매’ 이야기를 했다. “장산곶매는 일찍이 애미 애비를 잃고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올빼미와 까마귀를 찾아가 밥 한 술을 빌다가 부리와 발톱을 빼앗겼죠. 땅 속으로 가면 쥐들이 쫓아오고, 바깥으로 가면 사람들이 보약이라며 달려들고. 그렇게 벼랑까지 쫓기다 보니 앞에는 끝도 없는 바다, 뒤에는 사람과 쥐새끼예요. 장산곶매는 벼랑 끝에서 넓은 바다와 하늘을 보며 깨친 바가 있어 힘이 약한 짐승은 잡아먹지 않고 일년에 두 번 나쁜 놈 하고만 싸우기로 합니다. 장산곶매가 싸움을 떠나는 날 밤이면 숲에서 ‘딱, 딱’ 하는 소리가 나요. 부리질로 제 둥지를 ‘딱, 딱’ 까부수는 소리. 집에 집착하면 온몸으로 싸울 수가 없어요. 싸움을 할 때는 목숨을 걸어야 돼요.” 2009년 백기완은 “한평생 하는 일들이 죄다 실패였다. 다시 실패의 어두움 속으로 반딧불이를 찾아 뛰어드는 느낌”이라고 했다. 어둠 속에 뛰어드는 그는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다. 백기완은 둥지가 없다. 백기완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하편에 계속).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백기완은 ▲1933년 황해도 은율 출생 ▲1953년 농민운동 시작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운동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으로 징역형, 1981년 3·1절 특사로 석방 ▲1987년 민중후보로 대선 출마 뒤 단일화 주장하며 사퇴 ▲1988년 통일문제연구소 개소 ▲1992년 민중후보로 다시 대선 출마, 낙선 ▲1999년 계간 ‘노나메기’ 창간 ▲2002년 대한축구협회 요청으로 월드컵대표팀에게 강연, 히딩크 감독과 인연 ■주요 저서 항일 민족론(1986) 장산곶매 이야기(1994)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2009) 시집 이제 때는 왔다(1985), 젊은 날(1990) 극본 대륙(1998)
  • 살아난 ‘김영란법’

    박근혜 대통령은 8일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공직의 부정부패를 없애고 공정한 법질서 확립으로 법치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국민권익위원회와 법제처의 업무보고를 받고 “정부가 제도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 속으로 들어가서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귄익위는 업무보고에서 고위공직자의 전직금지와 부정청탁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법’을 오는 6월까지 국회에 정부입법으로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법제처는 ‘손톱 밑 가시’ 역할을 하는 하위법령을 올해 82건 정비하겠다고 보고했다. 일명 ‘김영란법’으로도 불리는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법은 새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제정안은 ▲부정청탁 금지 ▲금품수수 금지 ▲이해충돌 방지 등 3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공직자가 1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을 경우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하도록 하고, 사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했다. 금품을 수수하거나 받기로 약속해도 대가성이 없으면 처벌이 어려웠던 현행 형법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이다. 또 전직금지 조항을 엄격하게 해 관료가 민간에서 근무하다 고위공직자 등으로 재임용될 때 이해관계를 신고하고, 관련 직무에 일정 기간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른바 ‘전관예우’와 부정부패를 근절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법무부 등 법안의 핵심 이해부처가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입법이 지연됐다. 박 대통령은 특히 법제처에 각종 법령을 이해하기 쉽고 찾기 쉽게 만들 것을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상대방과 통정(通情)한 허위의 의사표시는 무효로 한다’, 이 얼마나 거리감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인가. ‘상대방과 서로 짜고 거짓으로 하는 의사표시는 무효로 한다’로 고치면 쉽고 이해하기가 빠르다”고 말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가족기업’ 욕하지 마라!?

    ‘가족기업’ 욕하지 마라!?

    세습, 족벌, 재벌! 이러면 인상부터 찌푸려진다. “재벌가의 이윤 독식, 경영권 세습을 위한 불법·탈세 행위가 워낙 만연”되어 있는 세태 때문이다. 그간 기업 승계를 두고 논란을 빚었던 기업들을 정리해 둔 표를 보니 금호, 두산, 대림, 동아제약, 대성, 롯데, 삼성, 한라, 한진, 한화, 현대 등 어지간한 회사들은 다 들어가 있다. 아니, 솔직히 이런 기업들은 덩치 때문에 보는 눈들이 많아 눈에 띄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관점을 바꿔 이리 보면 어떨까. “우리나라 상장기업과 코스닥 기업의 약 70%가 가족기업”이다. 정확하게 파악하긴 어렵지만, 중소기업이나 비상장기업들은 90% 이상이 가족기업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렇게 많았던가. 혹시 핏줄, 집안 이런 거 유달리 따지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인가. 통계를 내보니 미국의 가족기업 비중은 92%, 프랑스·영국·독일은 60% 이상, 이탈리아는 90% 이상이다. 그러니까 모든 아이들이 태어나는 순간 부모를 모르도록 키운 뒤 경영을 지망하는 아이들에게 각종 테스트를 치르게 해서 그 성적에 따라 대기업 회장에서 중견기업, 중소기업, 하청업체 사장 순으로 직위를 부여하는 엄청난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에 모두가 승복하기로 결정하지 않는 한, 누구나 자신이 땀 흘려 일군 회사를 이왕이면 자식들에게 넘겨주고 싶어 한다. 보편적 욕망이라는 것이다. 조금 논의를 높여 보자. 고상한 표현을 쓴다면 ‘기업지배구조’의 문제이고, 동시에 ‘대리인 비용’의 문제다. 원래 영국 중심의 1차 산업혁명 이후 초창기 기업들은 모두 가족기업이었다. 자본주의의 최첨단에서 시대의 진보를 이끌어 나간다는, 모험가이자 탐험가로서의 기업가다. 그런데 독일 중심의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주력 업종이 화학, 철강 같은 것으로 바뀌자 엄청난 설비와 자본이 투입되어야 했다. 그 설비와 자본을 한 개인이나 가문이 감당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투자자들, 그러니까 주주들이 등장했다. 이런 추세가 굳어지면서 우리 귀에 익은 구호가 등장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이 개념은 1932년 하버드대 교수 아돌프 돌리와 가드너 민스가 제기했다. 창업자 가문이 가문의 명예와 영광을 걸고 건곤일척의 한판 승부를 겨루는 자본주의 시대에서, 기술적 문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거대 조직을 운영해 나갈 관료적 경험이 풍부한 전문 경영인이 기업을 이끌어 나가는 ‘관리자본주의’ 시대로 바뀐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곧이어 전문경영인이 자기 이익을 챙겼다. 열심히 해봤자 오너그룹의 영광만 드높아질 뿐 자신에게 떨어질 몫은 한정적이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전문경영인에게 일한 만큼 보상을 주기 위해 스톡옵션제도가 생겨나고, 전문경영인 감시를 위해 독립적 사외이사를 포함한 이사회 진용을 갖추도록 했다. 어, 가만 들어보니 이건 그토록 말 많던 그 ‘주주자본주의’ 아니던가. 이런 멘트까지 곁들이면 어떨까. “주주자본주의는 주주들에게도 이롭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주주들은 주주자본주의 도입 전인 1933년부터 1976년까지 7.6%의 수익을 거두었지만 1977년부터 2008년까지 주주자본주의 시기에는 연 5.7%의 수익을 거두는 데 그쳤다.” 적의 적은 친구인 셈이니, 결국 가족기업이 우리의 최종 해결책이 되는 건가. 사실 어떤 지배구조가 정말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많다. 한국에서야 워낙 눈에 띄는 폐해가 크다 보니 재벌, 족벌, 세습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지만, 기업의 장기적 영속성을 생각하면서 투자하고 고용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는 차라리 가족기업이 더 낫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장하준 같은 사람이 이런 그룹에 속한다. 그래서 ‘100년 기업을 위한 승계전략’(김선화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기업 승계는 보편적이다. 욕망에 관한 것이어서다. 욕망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승계 과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지분 다툼 같은 불상사도 보편적이다. ‘가족끼리 어떻게’라고 하지만 그거야 큰돈 만져볼 일 없는 장삼이사의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그 와중에 기업이 망가지는 경우도 보편적이다. 한국에 “부자는 3대를 못간다”는 말이 있다면, 중국에는 “논마지기도 3대를 못간다”, 미국에는 “셔츠바람에 시작해서 3대 만에 셔츠바람으로”, 독일에는 “아버지는 재산을 모으고, 아들은 탕진하고, 손자는 파산한다”는 말이 있다. 저자는 보편적 현상이라면, 현상이 보편적인 만큼이나 해결책도 보편적일 수 있다고 보는 쪽에 선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서양은 수백 년의 기업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많이 다뤄봤지만, 한국 기업의 역사는 100년 안팎이니 많이 나가봤자 3~4세대 수준이다. 서툴 수밖에 없다. 한국의 기업 승계 문화에 대한 직접적 비판은 삼가지만 장수기업 연구자인 윌리엄 오하라의 입을 빌려 삼성에 대해 “기업 규모를 보면 성공한 기업일 수 있지만, 가족경영에는 실패한 대표적 기업”이라고 해둘 정도로 저자 역시 부정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저자는 일단 선을 하나 그어 뒀다. 2008년 중소기업계를 발칵 뒤집은 쓰리세븐 사례다. 손톱깎이 하나로 세계를 제패한 튼실한 기업이었는데, 창업주 회장이 갑작스레 사망하자 상속세를 감당할 수 없어 회사를 매각했던 사건이다. “언론에서는 상속세를 내지 못해 문을 닫는 기업의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세금 문제를 가장 크게 부각”했지만, 저자가 보기에 그건 기업 승계 전체 과정 속의 일부, 그것도 테크닉적인 문제일 뿐이다. 저자는 몇 세대를 이어서 수십~ 수백 명의 후손들의 협력으로 회사가 매끄럽게 굴러가는 맥주회사 인베브, 금융회사 로스차일드, 보석기업 스와로브스키, 종 제조기업 마리넬리, 화장품기업 에스티로더, 여관업 호시료칸, 간장회사 깃코만, 가위 회사 장쇼우췐, 오토바이 제조사 할리 데이비슨, 명품기업 에르메스 등의 사례를 쭉 훑어본다. 이를 통해 모든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는 가족위원회 구성, 위원회에 실질적 권능을 부여할 가족헌장 제정, 가족을 회사에서 일하게 할 때의 기준과 절차를 규정한 가족고용정책의 실시, 그리고 가족을 뛰어넘는 자선네트워크 구성 등을 바람직한 제도적 대안으로 제안했다. 2만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부부싸움 많이 하면 자녀 우울증 확률 높다

    부부싸움 많이 하면 자녀 우울증 확률 높다

      부모의 불화가 자녀들의 우울증 발병률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정호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아동 및 청소년기에 부모의 싸움을 체험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증에 노출될 가능성이 유의하게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같은 유형의 우울증 발병은 부모의 불화가 중요한 ‘생애초기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연구팀은 항우울제를 복용 중인 30대 초반의 여성 19명 등 우울증 환자 26명과 같은 연령대 및 성별의 정상인을 비교 조사한 결과, 우울증 환자군에서 정서적 학대 신체적 학대 방임 성적 학대 부모 싸움 노출 등 5가지 주요 생애초기 스트레스 요소가 확인됐으나 특히 부모의 싸움을 경험한 환자에서 이런 요인이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성장기에 신체 및 성적학대, 방임 등이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는 있었지만 부모의 불화가 우울증 발병과의 관련성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첫 실증적 연구다.  석 교수는 “부부싸움은 부부의 문제여서 자녀들에게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인식과 달리 실제로는 매우 큰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면서 “아이가 주의력 부족이나 학습부진, 심한 투정, 야뇨증, 손가락 빨기, 손톱 물어뜯기, 틱(Tic)장애,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등 정서불안과 관련한 행동을 보이면 부모들의 다툼 때문은 아닌지 되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부부간의 불화에서 비롯된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회복탄력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회복탄력성이란 외부적 상황이나 내면의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하고, 조기에 평정심을 회복하는 능력으로, 여기에는 자기조절 능력, 대인관계능력, 심리적 긍정성 등이 포함된다. 석 교수는 “오랫동안 부모의 불화를 체험한 자녀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왜곡된 결혼관이나 남녀관을 가져 정상적인 가정생활에 어려움이 따를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런 유형의 우울증 환자에게는 필요한 약물 및 상담치료와 함께 회복탄력성 향상을 위한 치료프로그램을 병행하면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베트남서 시집 온 김영미씨 8년차 결혼생활 ‘봄·여름·가을·겨울’

    [주말 인사이드] 베트남서 시집 온 김영미씨 8년차 결혼생활 ‘봄·여름·가을·겨울’

    충남 금산군 금성면 하신리 김영미(31·본명 레 티후에)씨는 아이가 셋이다. 딸 둘(8살, 6살)에 막내아들(5)이 있다. 영미씨는 “손아랫동서가 아들을 낳았는데 시부모가 얼마나 좋아하는지”라며 한국의 남아선호 사상을 놀라워했다. “그랬는데 둘째도 딸을 낳은 거예요.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몰라요.” 영미씨는 “그래서 하나를 더 낳아 아들을 얻었다. 너무 좋았다”고 웃었다. 영미씨가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것은 2005년 3월이다. 베트남 남부 호찌민에서 멀지 않은 따이닌에서 농부의 1남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지 한국인 회사에 취직했다. 사장 딸과 어울리면서 한국어를 배웠다. 2년 후 그 회사를 그만두고 국제결혼 통역으로 일했다. 그때 남편 이병일(45)씨를 만났다. “국제결혼을 하려고 베트남에 온 신랑이 ‘저 여자가 아니면 결혼 안 하겠다’는 거예요.” 영미씨는 “그래서 얼떨결에 결혼했다”고 하더니 “신랑 첫인상이 좋았다”고 빙긋 웃었다. “한국 남자와 결혼은 꿈도 안 꿨다”는 그는 “(이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남편 이씨는 7동의 비닐하우스에서 깻잎을 기른다. 논도 있고, 밭농사도 한다. 한국에 오니 베트남과 비슷하거나 다른 점이 있어 신기했다고 한다. 먼저 ‘12간지’다. 영미씨는 “베트남에도 띠가 있는데 한국과 순서가 같다”며 “다만 소는 ‘물소’, 양은 ‘염소’, 토끼는 ‘고양이’ 띠로 세 개만 다르다”고 재미있어했다. 사촌끼리 나이로 따져 ‘누나’나 ‘오빠’라고 부르는 것도 생소했다. 베트남에서는 부모형제 간 서열이 사촌 간 서열까지 결정한다. 영미씨는 “베트남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 누나인 고모의 네 살배기 아들에게 ‘오빠’라고 불렀다”며 함박웃음을 터뜨린 뒤 “사촌 간 서열은 한국이 맞는 것 같다”고 촌평했다. 영미씨는 남녀 학교가 따로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베트남은 모두 남녀공학이다. 베트남도 추석·설 명절과 제사가 있지만 보고 싶은 사람을 불러 음식을 나눠먹으며 정담을 나누는 게 다르다고 영미씨는 전했다. 하지만 한국의 농사는 녹록지 않았다. 영미씨는 “베트남에서는 물을 빼낸 논에 새싹이 돋은 나락을 뿌려놓고 잡초 몇 번 뽑아주면 수확하는데, 한국은 모를 길러 일일이 손으로 심고…”라며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베트남 농사는 10월 말에서 12월 말 사이를 제외하고 3모작을 해도 크게 어렵지 않다고 했다. 영미씨는 “40도까지 올라가는 베트남에서는 아침 일찍 논에 나가 오전 10시쯤 집에 들어오고, 오후 2~3시에 다시 나가 저녁 때 모기가 들끓면 귀가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사시사철 깻잎 농사까지 지어야 해 더욱 힘들다고 했다. 영미씨는 “처음에는 임신한 상태에서 갓난아기를 업고 농사를 지으려니 여간 힘이 들지 않았다. ‘베트남으로 도망갈까’하고 수없이 결혼을 후회했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면서 행복해졌다”고 귀띔했다. 아이들이 희망이라고 자랑한다. 큰딸 나영이는 금계초등학교 2학년이다. 같은 학년 6명 중 2명이 다문화가정 자녀다. 둘째 딸 규리와 아들 봉규는 금계초 병설 유치원에 다닌다. 셋이 집에서 200m쯤 떨어진 학교에 같이 등교한다. 영미씨는 “아이들이 친구들한테 ‘너희 엄마 베트남 사람이지’라는 놀림을 당할까 봐 요즘도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다”면서 “어려서인지 아직 따돌림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어대회에서 수차례 상을 받을 정도로 한국말을 잘한다. 그는 아이들이 오히려 친구들한테 엄마 자랑을 늘어놓는다고 전했다. ‘우리 엄마 베트남 사람인데 한국말 잘해. 이름도 한국 이름으로 바꿨어’, ‘너희들 베트남 가 봤어’, ‘베트남말 할 줄 알아’와 같은 것들이라고 했다. 영미씨는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베트남 과자를 만들어 들려보내기도 한다. 그녀는 “아이들이 집에 돌아와 ‘친구들이 베트남 과자 되게 맛있다고 해’라고 말하면 마음이 놓인다”고 조심스러운 심정을 내비쳤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이 셋만 의사놀이 등을 하며 논다. 마을에 아이들이 없어서다. 영미씨는 “다른 마을에서 친구나 친척 또래들이 놀러 오면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형편도 넉넉지 않아 여행 한 번 가지 못했다”고 미안해했다. 피아노나 영어 학원을 못 보내는 것도 늘 마음에 걸린다. 사실 한국에 시집 온 뒤 친정나들이도 딱 한 번뿐이었다. 3년 전 중매를 서 베트남에 갈 때 아이들까지 데리고 갔다. 영미씨는 “베트남에서는 한국에 딸을 시집보내면 ‘딸 덕에 비행기 탄다’고도 하지만 ‘딸을 팔았다’는 말도 많아 친정 부모를 생각하면 안쓰럽다”고 말했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녀는 “친정 부모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바로 달려가려고 돈을 모으는데 잘 안 된다”며 “돌아가신 다음에 가면 뭐 하겠느냐”고 가슴 아파했다. 고향을 못 가는 그리움은 한국에 시집을 온 막내 여동생을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며 달랜다. 막냇동생은 영미씨가 셋째를 임신했을 때 하신리에서 여덟 달 동안 언니를 몸조리해주다 마을 청년과 눈이 맞아 결혼했다. 막내가 ‘농사짓기는 싫다’고 해 회사원을 골랐다. 막내도 네 살배기 딸 하나를 두고 대전 아파트에서 산다. 영미씨는 “한국 남자들이 처자식 먹여 살리려는 책임감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남편 이씨도 자상하고 아이들과 잘 놀아준다. 그는 “사람들은 만난 지 얼마 안 돼 결혼하고 나이 차가 많아 사랑 없이 산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살다 보니 참사랑을 느낀다. 내 몫은 이만큼이다고 해야 행복해진다”고 나름의 생각도 전했다. 부부싸움이나 고부갈등도 거의 없다. 그래도 남편은 “저녁에 마실을 못 가게 한다”고 살짝 불평을 늘어놓았다. 동네 주민들이 만나면 “외국인 새댁이 많이 도망가는데 위암 걸린 시어머니 모시고 애들 셋 키우느라 고생한다. 장하고 고맙다”고 다독여 주는 것도 위로가 된다. 반면 한국에 시집 온 외국인 새댁이 살해됐다는 뉴스에 “돈 보고 왔으니 죽어도 할 말이 없지”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무척 아리다고 영미씨는 찌푸렸다. 영미씨는 아침 6시 30분쯤 일어난다. 아이들에게 밥을 해 먹여 등교시킨다. 된장찌개 등 못하는 한국 음식이 없다. 오전 8시 30분쯤부터 저녁 때까지 깻잎을 딴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해먹고, 빨래와 집 안 청소를 하다 보면 밤 10시가 넘어 잠에 든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다. 토요일만 시아버지(80)를 따라 교회에 잠깐 다녀올 뿐 쉴 틈이 없다. 그는 지난해 3월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 이름을 지었다. ‘영미’라는 이름은 가장 듣기 좋아서고, 성은 이름과 제일 잘 어울려 붙였다고 했다. 사시사철 더운 나라에서 자란 그는 “겨울이 너무 춥다. 옷을 다섯 겹이나 껴입어도 그렇다”면서 “찬물에 손을 담그면 손톱이 빠지는 것 같다”고 했다. 봄을 가장 좋아한단다. 봄에 새싹이 돋는 것처럼 영미씨는 아이들에서 희망을 보면서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중고교나 대학교에 가면 다문화가정 자녀라고 무시당하지 않을까, 취직할 때 또는 입사해서도 차별을 받지 않을까 하는 것들이다. 그는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지만 한국인 부부 자녀들을 계속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게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소망이 거창하지 않다. 영미씨는 “큰딸은 가수, 둘째 딸은 간호사, 아들은 소방수가 꿈이라고 엄마에게 말하곤 하는데 다른 거 없다. 그저 건강하고 자기 힘으로 살 수 있을 만큼만 자라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글 사진 금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의정 포커스] ‘자원봉사 특별구’ 중구의회

    [의정 포커스] ‘자원봉사 특별구’ 중구의회

    ‘자원봉사 특별구’인 서울 중구의회가 바쁜 의정활동 시간을 쪼개 어려운 주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27일 중구의회에 따르면 박기재 의장 등 8명의 모든 구의원들은 지역의 복지단체와 어려운 이웃을 찾아다니며 자원봉사 활동을 펴고 있다. 구의원들은 개인적인 자원봉사와는 별도로 지난해 4월부터는 분기별로 의원 모두가 참여하는 의회 차원의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구의원들은 지난 22일 중림동 중림종합사회복지관을 방문해 저소득층 어르신들을 위한 점심도시락 포장과 설거지 등을 하고, 경로식당을 찾은 어르신들에게 점심 배식을 했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복지사와 함께 도시락을 직접 집으로 배달하고,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며 고충과 애로사항을 듣기도 했다. 이날 자원봉사에는 박 의장과 황용헌 부의장, 허수덕 운영위원장, 김영선 행정보건위원장, 이혜경 복지건설위원장 등이 참여했다. 앞서 지난해 4월에는 신당동 유락종합사회복지관에서 무료배식과 도시락 배달 봉사를 했으며, 같은 해 6월에는 신당동 남산실버복지센터를 찾아가 뇌졸중과 치매로 고생하시는 어르신들을 위한 족욕과 마사지 봉사를 했다. 특히 지난해 9월에는 자매결연 도시인 경기 포천시 과수 농가를 방문해 사과 따기 등 농촌 봉사활동을 펴기도 했다. 구의원 개별적인 봉사활동도 활발하다. 박 의장은 매달 첫째 주 토요일마다 은빛사랑 복지관에서 목욕과 족욕, 손톱정리 등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허 위원장과 김 위원장은 지난겨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사랑의 연탄 배달 등 적십자 활동을 통해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적십자 활동과 함께 지역 내 지적장애인 어머니들과 정기적인 모임도 갖고 있다. 김수안 의원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리더스클럽 창립회원으로 의정비 환원 등 기부문화 형성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박 의장은 “봉사활동을 통해 주변에 어려운 이웃들을 직접 만나고 대화를 하다 보면 보다 깊이 있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면서 “어려운 주민들의 고충을 의정 활동에 반영해 모두가 따뜻한 사회,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 ‘12조짜리 손톱가시’ 중구난방 中企 지원

    ‘12조짜리 손톱가시’ 중구난방 中企 지원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12조원의 정책예산이 투입되지만 효과는 제대로 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러 공기관이 전문성도 없이 중복 지원을 반복하고 있고, 그 실효성 검증도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 관련 지원은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기업청 등 정부 13개 부처와 16개 광역자치단체 등 총 29곳에서 1123개 정책이 진행되고 있다. 관련 예산만 총 12조 2979억원에 이른다. 정부 부처의 중소기업 지원 비중이 30% 이상인 사업은 203개로, 예산은 10조 867억원이다. 지방자치단체는 920개 사업에 2조 2112억원을 쓰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전체 수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8.7%에 그쳤다. 2011년(18.3%)보다 불과 0.4% 포인트 늘었지만, 12조여원이 투입된 것에 비춰 보면 효과가 거의 없는 셈이다. 이런 추세라면 5년 안에 수출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린다는 새 정부의 목표 달성이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중기 업계 관계자는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중구난방식, 보여주기식 사업 탓에 기술과 능력은 있지만 자금이나 판로를 못 찾는 중기들은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나온다”고 말했다. 국회예산처에 따르면 2008년 중소기업청의 창업기업지원 융자사업 지원을 받은 1612개 업체 중 50.4%인 813곳은 2009~2012년 중소기법진흥공단에서도 융자를 받았다. 긴급 경영안정지원 융자사업 혜택을 받은 중기 가운데 2008년부터 5년간 4차례 이상 혜택을 받은 업체도 86곳이나 됐다. 중진공에서 직접 대출을 받은 업체 5450곳 중 다른 정책금융기관에서도 보증·대출을 받은 업체가 51.3%, 2794곳이었다. 대표적인 중복지원 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관련업계에서는 “중기 지원에 관한 컨트롤타워가 비슷한 정책과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강소기업 발굴과 국내 지원은 중진공 ▲수출 가능 중기의 홍보와 수출 판로 정보 취합 등은 한국무역협회 ▲해외 현지의 수출 지원과 진출은 코트라 등으로 역할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기 지원기관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 영역을 구분하고,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만 ‘중기 수출 30%’를 달성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길섶에서] 진정한 호강/최광숙 논설위원

    몇 달 전 쉬는 날을 이용해 잠시 회사에 다녀갔던 초등학교 3학년 조카가 일기장에 “이모는 회사에서 호강하고 있었다”고 쓴 것을 보고 한참을 웃었던 적이 있다. 웬 호강? 학교 교실 자신의 작은 책상과 비교해 책꽂이, 노트북이 놓여진 나의 큰(?) 책상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것이다. 커피에 초코파이, 사탕과 같은 간식거리까지 봤으니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얼마 전 그 조카가 나의 손톱을 ‘꽃단장’해 줬다. 은빛 바탕에 황금빛의 크고 작은 물방울이 알알이 박힌 매니큐어 스티커를 내 손톱에 붙여준 적이 있다. 요즘 손톱에 매뉴큐어를 예쁘게 칠한 뒤 다양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행인데 그 네일 아트의 ‘짝퉁’인 셈이었지만 그런대로 예뻤다. 주말 집에 놀러온 조카가 알로에를 사 왔다. 호기심이 많은지라, 책에서 알로에를 갈아서 마사지를 한다는 내용을 읽고 직접 실행에 옮기겠다고 나선 것이다. 덕분에 마사지 혜택을 받아보지 못한 푸석푸석한 얼굴이 조카 덕분에 뽀송뽀송해졌다. 호강이 뭐 별건가. 요즘 조카 덕분에 ‘호강’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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