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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사, 신체 콤플렉스 질문에 “이효리 선배님이 예쁜 곳”

    화사, 신체 콤플렉스 질문에 “이효리 선배님이 예쁜 곳”

    마마무 화사가 강력한 입담으로 예능감을 과시한다. 오는 13일 방송되는 SBS ‘미운우리새끼’에서 화사는 등장하자마자 무대 위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을 선보이며, 母벤져스의 맘심을 저격했다. 이어 데뷔 후부터 파격적인 의상과 강한 이미지 때문에 오해를 받았던 사연을 털어놓아 모두의 안타까움을 샀다. 뿐만 아니라 트레이드 마크인 화려하고 긴 손톱 때문에 생긴 웃지 못할 고민도 공개한다. 건강미 넘치는 몸매를 자랑하는 화사는 가장 자신 있는 신체로 ‘이곳’을 뽑았는데, 허경환 모친은 “여기 약하면 돈도 안 빌려준다”라고 맞장구친다. 반면 콤플렉스로는 ‘이효리 선배님이 예쁜 곳’이라고 밝혀 모두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미운 우리 새끼’는 13일 오후 9시 5분 방송된다.
  • “주부 아내, 3년간 배달음식만 줘서 내쫓았습니다”

    “주부 아내, 3년간 배달음식만 줘서 내쫓았습니다”

    결혼 직후 직장을 그만 둔 아내가 3년간 배달음식만 시키는 등 집안일은 하지 않고 사치만 해 이혼을 고민 중이라는 남성의 사연이 전해졌다. 9일 YTN라디오 ‘양소영 변호사의 상담소(양담소)’에서는 남성 A씨가 배우자의 불성실을 이유로 이혼 시 위자료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왔다. 사연에 따르면 A씨는 “아내를 집에서 내쫓았다”며 “제 월급 500만원 중 한 달에 300만원씩 아내에게 생활비로 줬다. 학원 강사였던 아내는 결혼하자마자 일을 그만 두고 집에서 놀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A씨는 “결혼생활 3년 동안 아내는 제게 밥 한 끼 차려준 적 없다”면서 “오히려 아내가 배달시켜 먹은 음식들을 제가 퇴근 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청소도 주말에 제가 했다. 아내는 제가 번 돈으로 배달음식 시켜먹고 인터넷 쇼핑하고 매주 손톱, 머리 손질을 했다. 한 달에 며칠씩 처제까지 와서 함께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티비를 보고 있더라”고 밝혔다. “다 그런 줄 알고 참고 버텼다”는 A씨는 아내가 A씨의 용돈을 줄이고 생활비를 더 달라고 말하자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A씨는 “그동안 내가 벌어온 돈으로 뭐 했냐, 그동안 얼마나 모았냐, 전업주부면서 하는 게 뭐냐”고 아내에게 따졌고 듣고만 있던 아내는 집을 나갔다. 이에 A씨는 그 즉시 집의 비밀번호를 바꾸고 다음 날 아내의 짐을 싸서 처가댁으로 보냈다. 아내의 전화도 받지 않고 찾아와도 문도 안 열어줬다고. A씨는 “더이상 내 집에 아내가 오는 걸 참을 수 없다”면서 “이 집은 제가 총각 때부터 살던 제 집이고 아내는 시집 올 때 화장대 하나 가지고 왔다”고 했다. A씨는 “아내가 전화가 차단 당하자 다른 사람 전화로 연락을 해와서 ‘이혼하겠다. 내 집에 발도 못 붙이게 하겠다’고 하니, 아내는 ‘그 집은 부부 공동생활공간’이라면서 저를 고소하겠다고 적반하장으로 나온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아내를 집에 못 들어오게 하는 게 문제가 되느냐. 그동안 남편 취급 한번 받지 못했는데, 이혼할 때 위자료도 가능하냐”고 조언을 구했다. ‘양담소’ 변호사 “위자료 받으려면 명백한 증거 있어야”“집은 부부공동재산으로 재산분할 대상” 이에 강효원 변호사는 “집에서 아내 분을 내쫓고 ‘못 들어오게 하겠다’ 이런 말은 협박죄 정도로 아내 분이 고소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이혼 소송을 생각하신다면 사유를 주장해야 한다”며 “사연을 보면 민법 840조의 2호의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나 아니면 3호에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은 때로 주장해 볼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6호에 더이상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된 때도 주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혼 소송을 하게 되면 주장에 대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며 “결혼 3년 동안 밥을 한 번도 차린 적 없고 집안일을 아무것도 안 했다는 부분을 어떻게 입증할지가 어려운 문제”라고 덧붙였다. 위자료에 대해서는 “남편분이 정말 많이 참은 것 같지만 시원하게 답하기 어렵다”며 “위자료를 인정을 받으려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명백한 어떤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이에 양소영 변호사는 “처음으로 답변하는 변호사님에게 반대 의견을 내고 싶다”며 “배달음식 시켜 먹고 쇼핑하고 자기 관리 등 남편이 준 생활비를 어떻게 썼는지 살펴보면 충분히 위자료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강 변호사는 “남편분 입장에서 그렇지만 소송을 하다 보면 아내 입장에서도 불만이 있기 마련이라 양측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답했다. 재산 분할에 대해 강 변호사는 “집을 A씨가 총각 때부터 갖고 있었다고 해도 혼인해서 공동생활을 시작하게 된 이상 그 집도 재산분할 대상이 된다”면서도 “혼인 기간 외벌이를 했기 때문에 기여도가 아내보다 더 많이 인정될 거 같다. 또 A씨 말대로 아내가 불성실한 결혼 생활을 했다면 남편 쪽으로 참작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전곡선사박물관장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전곡선사박물관장

    수백만년 전 두 발로 걷는 존재가 등장하며 인류 진화의 여정이 시작됐다. 인간이 되어 가는 험난했던 과정을 아주 짧고 단순하게 정리해 보자. 우선 인류의 진화는 “머리는 점점 커지고 도구는 점점 작아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 최초의 도구를 만들어 냈던 고인류의 머리 크기는 500㎖ 우유갑 하나 정도에 불과했다. 이들이 처음 만들었던 도구는 투박하고 큼지막한 석기였다. 수백만년 동안 머리는 세 배 정도 커졌고, 크고 좋아진 머리로 마침내 손톱보다도 작지만 아주 성능이 좋은 좀돌날 석기도 만들 수 있게 됐다. 휴대전화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면서도 기능은 더욱 첨단화되는 과정을 머리 즉 뇌의 용량 증가와 반비례하는 도구의 크기 변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인류의 진화는 “추운 지역까지 들어가서 살 수 있게 되는 과정”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 아프리카를 떠난 인류가 삶의 터전을 넓히기 위해서는 극한의 추위까지 견뎌 내야 했다.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몸을 변화시키는 체질적 진화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모닥불, 두꺼운 털가죽을 꼼꼼히 꿰매 따뜻한 옷을 만들 수 있는 귀 있는 바늘 같은 문화적 진화의 산물들로 무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인간은 지구 전체에 퍼져 살고 있는 성공한(?) 영장류가 될 수 있었다. 먹기 위해서 사느냐, 살기 위해서 먹느냐. 요즘 같은 먹방의 시대에는 해석이 분분한 질문이다. 하지만 인류 진화의 초기 단계에서는 살기 위해 먹었던 것이 분명하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 본능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즐거움인 시절을 살아가는 오늘의 관점에서 볼 때 인류의 진화는 “살기 위해서 먹다가 먹기 위해서 살게 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투쟁의 과정이 바로 인류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혀가 느낄 수 있는 맛은 단맛, 신맛, 감칠맛, 짠맛, 쓴맛이다. 이 중 쓴맛도 맛있게 느낄 수 있는 능력이 맛있는 음식을 열망한 인류가 가장 늦게 개발한 비법이라고 한다. 쓴맛도 맛있게 느낄 수 있게 되면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크게 늘어났다. 쓴맛에도 잘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은 결국 우리를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줬다. 쓴맛에 적응하는 능력은 쓴 음식을 삼켰을 때 바로 뱉어 내지 않고 꾹 참아 가며 받아들이는 인내의 시간을 거쳐 개발됐다. 쓴맛 적응 능력이 인류 진화의 중요한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쓸쓸한 가을날이다. 쓰디쓴 커피를 맛나게 들이켜는 것처럼, 쓴소리도 달게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정치 지도자들 덕에 “인간”답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감히 꿈꿔 본다.
  • ‘손발톱 귀환’ 6·25전사자 71년 만에 가족 품으로

    ‘손발톱 귀환’ 6·25전사자 71년 만에 가족 품으로

    6·25전쟁 당시 전사해 손톱과 발톱만 가족에게 남겼던 송병선 하사의 유해가 71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2020년 7월 강원 평창군 대화면 신리에서 발굴했던 유해의 신원이 송 하사로 확인돼 9일 유족에게 전달한다고 8일 밝혔다. 고인은 인천 옹진군에서 태어났으며 15세 때 부친을 여의고 모친과 여동생을 돌보다가 둘째 딸이 갓 돌을 넘긴 1950년 12월 입대했다. 고인이 소속된 국군 제7사단 3연대가 1951년 3월 6~12일 평창군 잠두산과 백적산을 경유해 속사리와 하진부리를 탈환하는 작전을 펼치던 도중 전사했다. 2020년 발굴 당시 고인의 유해는 왼쪽 팔뼈 일부가 식별됐고 추가 수색에서 팔뼈와 갈비뼈 등 유해 7점과 전투화, 독수리 문양 단추 등 유품 11점이 더 나왔다. 신원 확인 소식을 들은 장녀 송효숙씨는 “전쟁 당시에는 아버지의 손톱·발톱만 돌아와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영영 못 찾을까 싶어 기도를 많이 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신원 확인 통보 행사인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9일 인천에 있는 유족 자택에서 열린다. 1954년 수여가 결정됐던 화랑무공훈장도 유가족에게 전달된다. 국유단은 유해 신원 확인에 국민 참여가 필요하다며 전화(1577-5625)나 인근 보건소·보훈병원·군병원 등으로 연락해 달라고 당부했다. 방문이 어려우면 국유단이 직접 찾아갈 수 있다.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은 2000년 시작됐으며 지금까지 전사자 199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 6·25전쟁 전사 손톱 발톱만 돌아왔던 송병선 하사 유해 71년 만에 가족 품으로

    6·25전쟁 전사 손톱 발톱만 돌아왔던 송병선 하사 유해 71년 만에 가족 품으로

    6·25전쟁 당시 전사해 손톱과 발톱만 가족에게 남겼던 송병선 하사의 유해가 71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2020년 7월 강원 평창군 신리에서 발굴했던 유해의 신원이 송 하사로 확인돼 9일 유족에게 전달한다고 8일 밝혔다. 고인은 인천 옹진군에서 태어났으며 15세 때 부친을 여의고 모친과 여동생을 돌보다가 둘째 딸이 갓 돌을 넘긴 1950년 12월 입대했다. 고인이 소속된 국군 제7사단 3연대가 1951년 3월 6~12일 평창군 잠두산과 백적산을 경유해 속사리와 하진부리를 탈환하는 작전을 펼치던 도중 전사했다. 2020년 발굴 당시 고인의 유해는 왼쪽 팔뼈 일부가 식별됐고 추가 수색에서 팔뼈와 갈비뼈 등 유해 7점과 전투화, 독수리 문양 단추 등 유품 11점이 더 나왔다. 신원 확인 소식을 들은 장녀 송효숙씨는 “전쟁 당시에는 아버지의 손톱·발톱만 돌아와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영영 못 찾을까 싶어 기도를 많이 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신원 확인 통보 행사인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9일 인천에 있는 유족 자택에서 열린다. 1954년 수여가 결정됐던 화랑무공훈장도 유가족에게 전달된다. 국유단은 유해 신원 확인에 국민 참여가 필요하다며 전화(1577-5625)나 인근 보건소·보훈병원·군병원 등으로 연락해 달라고 당부했다. 유전자 시료 채취를 희망하지만 거동 불편, 생계 등의 이유로 방문이 어려우면 국유단이 직접 찾아갈 수 있다.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은 2000년 4월 시작됐으며 지금까지 전사자 199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 尹대통령 약속한 ‘대불산단 전봇대 제거’ 내년 시작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약속한 ‘전남 영암군 대불국가산업단지의 전봇대와 전선 제거’ 공사가 본격화된다. 전남도는 6일 대불산단 전선 지중화 사업이 내년도 산업통상자원부 국비 지원 대상에 선정돼 2년간 223억원을 투입, 5.07㎞ 구간의 전봇대와 전선을 지중화한다고 밝혔다. 국내 유일의 선박 블록과 기자재 생산 핵심 기지인 대불산단은 당초 자동차, 기계산단으로 조성되는 바람에 전선 지중화가 안 됐다. 이후 조선업 특화산단으로 전환되면서 전봇대와 전선이 대형 선박 블록 운송에 큰 걸림돌이 됐다. 기업들은 대형 블록 운송을 위해 전봇대와 전선을 우회하거나 수백만원을 들여 전선을 절단하고 이동하는 불편을 겪어 왔다. 지난해 2월에는 블록 운송 차량이 변전기와 충돌해 정전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전봇대 때문에 추가 운송 비용이 발생한 것은 물론 안전사고 위험까지 있었던 것이다. 2008년 대불산단 전봇대가 대표적인 규제 사례로 꼽히면서 일부가 제거됐다. 하지만 소규모 지방자치단체 재원으로는 200억원이 넘는 전선 지중화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워 10년 넘게 지지부진했다. 지난 4월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대불산단을 방문하면서 전선 지중화 사업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고압선 단전 사고가 난 현장 등을 둘러보던 윤 대통령은 전남도의 전선 지중화 사업 건의에 “해결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취임 후 윤 대통령은 김영록 전남지사에게 이를 약속했고 산업부는 전선 지중화 사업에 노후 산단도 포함되도록 고시를 개정하고 국비 지원 범위를 확대했다. 김미순 전남도 기반산업과장은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대표적 ‘손톱 밑 가시’인 대불산단 전봇대와 전선이 사업 착수 15년 만에 땅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며 “최근 조선업 수주 증가에도 인력 수급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대불산단 기업인들에게 큰 선물이 될 수 있도록 조기에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 [알기 쉬운 우리 새말] 새로 나온 차 아니고 외관 개선만

    [알기 쉬운 우리 새말] 새로 나온 차 아니고 외관 개선만

    사람은 자기 몸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까? 머리칼과 눈썹이 가장 쉽고, 손톱 미용에서 이제는 쌍꺼풀을 넘어 얼굴 전체와 몸매까지 바꾼다. 인공 관절에 인공 장기도 나온다니 언젠가는 뇌까지 바꿀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증명하게 될까? 요즘은 사람의 넋(혼)이 바뀌는 설정까지 드라마에서 자주 사용한다. 정체성을 건드리지 않은 채 겉만 살짝 손대서 새 멋을 내는 일이 우리 외모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집이나 건물은 ‘리모델링, 리뉴얼’이라고 부르는 ‘새 단장’을 한다. 사용자가 물건을 새로 꾸미고 단장하기도 하지만, 생산자가 그렇게 하기도 한다. 기존 상품의 핵심은 건드리지 않고 주로 겉모습과 일부 기능을 개선해 새 상품처럼 내놓기도 하는데, 특히 자동차에서 이런 경우가 잦다. 집보다 더 오래 붙어 다니고 운전자의 멋과 품격을 대변하기도 하는 물건인지라 운전자에 따라 성능보다도 외관을 더 중요한 선택 요소로 삼는 상품이라서 그렇다. 자동차 업계와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주로 자동차에서 외관이 일부 변경되고 선택 사항이 추가됨으로써 기존 모델과 달라지는 일’을 ‘페이스 리프트’(face lift)라고 부른다. 사람의 심장에 해당하는 엔진과 핵심 성능을 좌우하는 제어 장치들뿐만 아니라 외관까지 몽땅 새로 내놓는 ‘풀 체인지’(full change)의 반대 개념으로 쓰는 말이다. 주름살을 펴는 미용 성형술에서 쓰던 말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운전자의 얼굴과도 같은 자동차의 외관을 개선한다는 뜻으로 이 말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번 새말모임이 다룬 말은 바로 ‘페이스 리프트’다. 그동안 일부 언론에서는 ‘페이스 리프트’를 ‘부분 변경’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풀 체인지’, 즉 ‘전체 변경’에 대비되는 말로 잡은 것이리라. 그런데 페이스 리프트에 들어 있는 가치 지향, 즉 ‘기존 것보다 더 좋게 보이도록 고친다’는 의미가 ‘변경’이라는 말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변경’보다는 ‘개선’이라는 말이 의도를 잘 표현해 준다. 여기서 ‘부분’이라는 말도 ‘전체’에 대립하는 말이긴 하지만 ‘부분’의 범위를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페이스 리프트’라고 할 때, 개선하려는 부분은 주로 겉모습이다. ‘겉모습 개선’이 딱 맞는 의미이지만,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 좀 덜하다. 겉모습을 뜻하는 말로 ‘외모’와 ‘외형’과 ‘외관’이 있는데, 이 가운데 외모는 주로 사람에게, 외형은 주로 사물에 사용한다. 외관은 사람과 사물 양쪽 모두에 사용하는 편이다. ‘외형’과 ‘외관’은 사전의 뜻풀이도 거의 같지만, 말빛으로는 ‘외관’이 훨씬 더 미적인 느낌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국민들도 페이스 리프트를 대신할 말로 새말모임에서 제안한 ‘부분 변경’, ‘외관 개선’, ‘새 멋’ 가운데 ‘외관 개선’을 뽑았다. 이제는 ‘페이스 리프트’ 대신 ‘외관 개선’이다. 아, 그런데 이 말을 성형에서 사용하면 마치 로봇에게 시술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하나의 외국어도 상황에 맞게 여러 가지로 번역되니 이럴 때는 영어사전에 나오는 ‘주름살 제거 수술’이라는 말을 쓰면 된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 질병·전쟁·기후변화·기근… 루터, 위기 속 돌파구 찾다 [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질병·전쟁·기후변화·기근… 루터, 위기 속 돌파구 찾다 [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10월 31일, 오늘은 핼러윈이기도 하지만 종교개혁 505주년 기념일이기도 하다. 1517년 10월 31일에 마르틴 루터가 그릇된 관습이나 잘못된 종교적 교리를 바로잡고 믿음의 근원으로 돌아가자고 주창한 날이다. 당시는 질병과 전쟁, 기근과 기후변화로 암울한 시대였다. 14세기 중반부터 주기적으로 유행한 흑사병이 유럽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앗아 갔고 결국 루터의 두 동생도 희생됐을 정도로 이 감염병은 오랜 시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또한 백년전쟁(1337~1453)이 끝나기 무섭게 동쪽에서 루터가 ‘사탄의 분노’라 불렀던 오스만 튀르크 세력이 서유럽 깊숙이까지 쳐들어오자 유럽인은 전쟁의 공포와 종말적 긴박감에 지속적으로 사로잡혔다.오랜 질병과 전쟁 그리고 소빙기(小氷期·little ice age)라고 불린 춥고 불규칙한 날씨와 굶주림에 허덕이던 시대에 사람들이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에 시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루터 역시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몸과 마음이 아플 대로 아픈 중세인은 종교와 교회에 의지하고자 했지만 삶이 어렵고 힘들어질수록 개인적인 기복신앙에 깊이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수많은 성직자, 특히 헌신적인 성직자일수록 죽음이 임박한 감염자들에게 병자성사를 행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성직자 부족과 전쟁·전염병으로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중심이라 할 성체성사와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조차 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의 불안과 심리적 공황은 커져만 갔다.사후 심판과 구원에 대한 두려움은 중세인에게 실재적·절대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개인이 고해성사를 하고 죄를 뉘우치면 금식·기도·성지순례·자선 행위 등 참회 고행을 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처벌을 가볍게 하는 성례를 구원 수단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하지만 생전에 죄를 다 씻어 내지 않고 죽으면 천국에 들어가기에 앞서 연옥이라는 곳에서 고통받으며 죄를 마저 정화해야 했다. 구원을 갈망하던 대중의 간절한 욕구는 결국 면벌부(免罰符)라는 증서의 남발을 불러왔다. 면벌부를 돈으로 사면 참회 고행을 하지 않아도 벌을 가볍게 하는 특혜를 주는 것이었다. 이는 흑사병이 퍼지자 이동과 사제 접촉을 제한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대중의 종교적 욕구와 맞물려 확산된 민중적 신앙 행위였다. 나중에 루터는 물론 종교개혁의 후원자가 된 한 군주조차 200만년에 해당하는 면벌부와 성유물 1만 9000점을 소유했을 정도다. 1476년 교황 식스토 4세가 면벌부의 효력을 연옥에서 벌을 받고 있는 영혼들로 확대하면서 ‘망자를 위한 면벌부’가 죽음의 시장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사실 대중은 이미 오래전부터 면벌부를 사들여 흑사병으로 급작스럽게 죽은 자들이 사면받기를 간절히 원했다. 이러한 행위가 광범위하게 늘어나면서 교회도 면벌부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수용해 교회 제도에 편입했다.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던 대중의 요구를 추인한 셈이다. ●기후변화와 성인 공경 종교개혁이 일어난 유럽 지역은 14세기 중반부터 소빙기에 접어들면서 한랭기후, 자연재해, 흉작, 굶주림과 폭동을 경험했다. 특히 15세기 후반에는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호우·홍수·산사태·병해충 확산 등의 재해가 빈번해졌는데, 이들은 주로 봄과 가을에 집중되면서 농업 생산성 하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잦은 전쟁으로 농산물의 생산, 유통, 판매에서 차질을 빚었고 물가는 상승했다. 흑사병이 남긴 상처에서 겨우 회복되던 때라 사람들은 더욱 심한 좌절감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특화된 기능을 지녔다고 믿는 성인들에게 하는 호소는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치아가 심하게 아프면 아폴로니아 성녀에게 낫게 해 달라고 빌었고, 흑사병은 전염병의 수호성인인 로코 성인에게 치유해 달라고 요청했다. 성인들에게 매달리고 기도하는 것으로는 안심하지 못한 사람들은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성인들의 유골을 가까이 두고 싶어 했다. 살아 있을 때 이미 공경과 사랑을 받은 튀링겐 출신 엘리자베스 성녀의 장례식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얼굴을 가린 천 조각과 심지어 머리카락, 손톱 같은 신체 일부를 떼어 가려 했다. 민중의 이러한 기복신앙은 일종의 정신적 건강보험과 같았다.●개혁가 루터와 그의 후원자들 구원 문제에 극도로 민감했던 중세인들은 죄를 씻고 죽으려 했다. 그래서 이들의 종교심은 종종 불건전한 성인 공경과 극단적인 성유물 숭배, 망자를 위한 미사, 과도한 면죄부 구매 그리고 무엇보다 민간신앙적 행위를 수용하고 추인한 교회의 모호한 태도로 얼룩졌다. 루터는 이러한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가톨릭의 민중적 신심에 들어 있던 종교적 가치를 부인했다. 하지만 대중은 오래된 종교적 관행을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았고 급격한 변화에 혼란스러워했다. 그래서 루터와 다른 개혁가들은 때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종교개혁은 루터를 후원한 많은 사람의 헌신적 노력으로 수행됐다. 그렇지만 그를 보호하고 지원한 세속 제후들에게는 종교개혁에 따른 정치권력 강화와 경제적 이득도 중요했다. 이들은 교리 문제보다는 교황이나 친가톨릭적인 황제의 간섭과 압력에서 벗어나 독립적 통치 기구를 구축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무엇보다 백성들의 돈이 면벌부를 사느라 교황청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내심 못마땅해했다. 루터는 25년간 2주에 한 번 책을 펴냈을 정도로 왕성한 다작가이자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그의 책을 대량으로 생산한 인쇄출판업자들은 상당히 큰돈을 벌었다. 초기 자본가들이었던 시민 계층은 세속 군주들이 교회의 건물과 토지 재산을 몰수해 국유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잉글랜드의 헨리 8세는 교회에서 몰수한 토지를 자영농들에게 나눠줬는데, 이는 결국 근대 잉글랜드의 젠트리 같은 신흥 지주 계층이 성장하고 농업 자본주의가 태동하는 계기가 됐다.세속 군주들과 시민들이 종교개혁에 가담한 중요한 목적은 바로 자신들의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세속적인 이유 때문에 루터는 이들에게 갈등과 신뢰라는 양가감정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루터가 봉건 질서에 저항한 농민 봉기와 이를 지지한 급진적 개혁 세력에 반대하면서 개혁은 농민층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루터는 이들에게서 ‘제후들의 아첨꾼’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결국 그의 개혁은 대중운동 차원으로 승화되지 못했다. ●역사적 위기와 개혁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다. 그로써 세계적으로 곡물과 에너지의 가격이 갑자기 오르고 있다. 밀·옥수수 등 곡물의 국제 가격은 2008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랐고, 그 여파로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은 더욱 심각한 식량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질병·전쟁·기후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종교개혁 시대의 파국으로 치닫던 묵시록적 세계가 재현되는 듯하다. 세계 역사를 거시적으로 성찰한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위기는 늘 우리 곁에 있었고 낡은 생활 방식을 정리하기 때문에 강인한 사람들은 오히려 위기의 분위기를 사랑한다’고 봤다. 질병-전쟁-기후변화-기근으로 이어지는 위기의 시대를 살았던 루터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말세 풍조를 쇄신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그를 개혁으로 이끌었다. 지금 우리는 종교개혁의 성공 여부와 한계를 얘기하기보다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 했던 루터의 정신을 기려야 한다. 이것이 2022년 10월의 마지막 날에 종교개혁 505주년 기념일을 기억하는 이유다. 중앙대 교수·작가
  • [길섶에서] 백년의 꿈/황수정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백년의 꿈/황수정 수석논설위원

    햇밤을 씻다 말고 기겁을 한다. 옴마야. 뽀얀 밤벌레 한 마리가 쏙 빠져나왔다. 내 호들갑에 녀석이 더 놀랐다. 아기 손톱만 한 몸을 밥풀떼기마냥 돌돌 말았다. 이래도 벌레로 보이냐, 시치미를 똑 떼면서. 이 녀석을 오래전부터 잘 안다. 우리들 몸피에 살이 오르면 어른들은 언제나 “고놈, 밤벌레 같은 놈”. 그런 날은 햇밤을 솥째 삶던 시월 밤이었다. 깨벌레도 불려 나왔다. 부지런한 밥숟갈에 내 볼살이 부풀 때는 “깨버러지 같은 내 새끼”. 그런 날은 하얀 깨꽃이 달보다 환한 유월 밤이었을 테고. 어린 것들도 살 오르고 벌레들도 살 찌고. 밤 익고 깨 익어 나눠 먹는 계절이면 버러지도 함께 축복의 말이 됐다. 산중 스님의 농담 같은 이야기에 혼자 웃는다. 이불 속에 찾아든 지네한테 그 이불 보시하고 밤새 떨었다지. 녀석이 숨은 밤톨을 화단가에 놓는다. 단풍나무 아래서 백척 밤나무가 되는 백년꿈을 너는 꾸어라. 실없는 꿈을 꾸는 사이. 밤 한 냄비 까맣게 타 버린 새까만 가을밤.
  • “긴 손톱에 대변 처리 이렇게”…걸그룹 멤버가 밝힌 비법

    “긴 손톱에 대변 처리 이렇게”…걸그룹 멤버가 밝힌 비법

    마마무 화사가 솔직한 매력을 발산했다. 지난 13일 솔라의 유튜브 채널 ‘솔라시도’에는 ‘수위 조절 따윈 필요 없는 마마무 Q&A’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다. 공개된 영상에는 마마무 멤버들이 오랜만에 완전체로 모여 신곡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모습이 담겼다. 솔라는 “오랜만에 돌아온 마마무 완전체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한다”면서 멤버들 한명 한명과 Q&A 시간을 가졌다. 솔라는 화사에게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긴 손톱에 대해 질문했다. 솔라는 “손톱을 짧게할 생각 없느냐”고 질문했고 화사는 “짧게 할 생각 없다.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길게 하고 다닐거다”라며 긴 손톱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자 솔라는 “똥 닦을 때 어떻게 닦느냐”고 질문했고, 화사는 닦는 손 각도를 알려줘 웃음을 자아냈다.
  • [최광숙의 Inside] “제조업 신화가 디지털 혁신 발목… 규제 개혁으로 돌파해야”

    [최광숙의 Inside] “제조업 신화가 디지털 혁신 발목… 규제 개혁으로 돌파해야”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미국 뉴욕에서 우리나라를 디지털 혁신의 선도 국가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SW), 데이터 활용을 통한 사회 전반의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노준형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난 23일 만나 우리 경제의 핵심 성장 동력인 디지털 신산업 육성과 디지털 혁신의 성패를 가를 규제 개혁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었다.●과도한 규제로 신기술 사장되면 안 돼 -디지털 신산업에 진입하는 데 규제 장벽이 너무 높다. “예전에 없던 신산업이 출연해 막상 규제를 개선하려고 보면 두 가지 문제, 즉 고용 문제와 기득권 산업과의 충돌에 부딪힌다. 차량 공유 서비스인 우버와 타다가 대표적이다. 인터넷 보급 초기에는 어떤 서비스가 인터넷을 통해 구현되고, 유료화될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인터넷상 서비스가 어느 정도 확산될 때까지 규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통용됐다. 우버나 타다 역시 지켜보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가 개입하면 된다. ” -우버·타다도 금지한 나라에서 디지털 혁신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해외에서는 더 진전된 서비스 산업이 등장하고 있다. “규제 개혁은 우리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일명 ‘타다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법 개정안)이 만들어질 때 독일과 일본은 우버 같은 서비스를 도입하는 대신 기존 택시 기사들이 배달이나 택배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택시 기사들은 비록 손님이 줄었지만 생활필수품과 식료품, 음식 등을 배달해 소득을 보전할 수 있었다. 즉 기존 규제를 폐지할 때는 그에 따라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한 보완 대책을 마련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신산업에 무턱대고 규제 잣대를 들이대는 바람에 전 세계적으로 모빌리티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졌는데도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다른 분야도 갖가지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격의료의 경우 디지털 강국인 우리나라가 기술적 우위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반대로 도입되지 못했다. 법률 플랫폼을 이용해 보다 좋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취지의 ‘리걸 테크’도 변호사업계가 반대하고 있다. 핀테크 금융이나 인터넷은행 등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신기술이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신구 산업 간 갈등 해결이 어려운 진짜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나라의 제조업 성공 신화가 오히려 발목 잡는 측면이 있다. 제조업이 추구하는 가치는 규격화(표준화)를 통한 대량 생산, 일사불란한 지휘·통제체제다. 우리의 경제·사회 시스템 전반이 제조업 위주로 최적화됐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중요해진 SW는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오픈소스 SW같이 수많은 사람들의 협업을 거쳐 생성·발전되기도 한다. 기존의 생각과 행태를 바꾸어 색다른 사회·경제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신산업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는 건가. “그렇다. 제조업 관점에서 보면 나와 다른 것은 불량품 내지는 위험한 것이다. 신산업을 균형의 교란이자 혼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신산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면 우선 다양성을 용인하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업계와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진다.” ●신구 산업 간 균형 잡아야 -역대 정권마다 규제개혁을 들고 나왔지만 용두사미가 됐다. “과거 정권에서도 규제로 표현되는 ‘전봇대’, ‘손톱 밑 가시’ 등을 개혁하겠다고 했는데 이들 분야의 규제는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라고 볼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규제개혁은 디지털 분야의 규제개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규제개혁은 어려운 과제이지만 우리나라가 살길은 이것밖에 없다.” -신구 산업 간 갈등 해결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기존 산업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서비스는 기존 규제 적용을 받지 않아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신산업 입장에서는 기존 규제 체계를 그대로 적용하면 새 사업의 성립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여겨 갈등이 생긴다. 이러한 신규 서비스에 대한 균형 있는 규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신산업은 기득권을 가진 기존 산업에 비하면 약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책 부서가 있어야 한다. 과거 정보화 시대를 열 때 경제기획원이나 정보통신부가 그 역할을 했다. 지금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술부처 성격이 강한데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전통적인 통신사업자 역할이 축소되고 있는데. “과거 산업화 시대에 철도, 도로 등이 국가경쟁력의 기반이 되는 사회 간접자본이라면 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회간접자본은 전력시스템, 통신시스템, SW인력 등이다.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의 총합체인 자율주행 자동차를 보면 대규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통신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우리의 통신·전력시스템 경쟁력 제고를 위해 합리적인 가격 인상이 가능하도록 가격규제를 포함한 모든 규제 철폐와 연구개발·시설투자에 적극적인 인센티브를 도입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디지털 혁신을 강조했는데 잘 될까. “최근 출범한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와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가 그 출발점이다. 플랫폼 정부는 각 부처의 모든 데이터를 플랫폼으로 연결해 부처 간 칸막이를 낮춰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국민 입장에서 통상 업무가 외교부에 있든 산업통상자원부에 있든 중요하지 않다. 각 부처가 소통하고 협조해 문제 해결 시스템을 구축하면 된다. 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조직, 문화, 사람이 바뀌면 규제개혁도 가능해진다. 부처 간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업무를 둘러싼 부처 간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 ●규제 개혁 안 하면 새 기회 없어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 아닌가. “정부가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과 디지털 인재 양성을 디지털 정책의 중심에 둔 것을 보면 방향을 잘 잡았다고 본다. 직접 벤처기업을 운영한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뿐만 아니라 권영세 통일부 장관, 박진 외교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모두 공통적으로 의원으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다. 디지털 마인드가 돼 있는 만큼 이런 장관들이 소관 업무에 디지털 정책을 접목한다면 전 부처에서 디지털 혁신의 전면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246개의 정부위원회를 통폐합한다는데 대통령 직속으로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를 신설하고 위원장에 민간기업가 출신을 임명한 것 등을 보면 정부의 디지털 혁신에 대한 의지가 읽힌다.” -디지털 혁신이 성공하려면. “획일적인 제조업 마인드에서 벗어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다. 과거 패러다임에 갇혀 디지털 혁신과 신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개혁을 이루지 못하면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 없다.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10단계가 넘는 행정 계층 조직을 3단계 정도로 축소해 의사결정 구조를 간소화해야 한다. 또 원격교육, 원격의료, 재택근무 등 디지털 혁신이 가져오는 사회·경제·문화 변화에 대한 다양하고 심도 있는 논의가 활성화돼야 한다. 이번 정부 5년간 디지털 혁신을 어떻게 이루는가에 앞으로 우리의 미래 50년이 달려 있다.”  ■ 노준형  전 장관은 행정고시 21회로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에 입문한 이래 1994년 정보통신부로 옮겨 차관과 장관을 역임했다. 30년 공직 생활 이후 서울과학기술대 총장을 지냈다.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디지털·ICT 분야 원로다. 풍부한 현장 경험과 함께 폭넓은 이론까지 겸비한 디지털 분야 전문가로 평가된다.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어떤 흠결도 거론되지 않아 ‘무결점’ 공직자로 불릴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현재 한국정보방송통신대연합 회장, 김앤장 로펌 고문으로 있다.
  • 가족이라면서요…추석 연휴 공원에 버려진 반려묘 [김유민의 노견일기]

    가족이라면서요…추석 연휴 공원에 버려진 반려묘 [김유민의 노견일기]

    추석 연휴 김포 어린이공원에는 이동장이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이동장 안에는 고양이는 잔뜩 겁을 먹고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는 듯 몇 시간 동안 이동장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고양이를 발견한 A씨는 “캔과 간식을 같이 둔 거라 버려진 것이 아닐까 싶어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다”라며 주인을 찾는 글을 올렸다. 이동장 문이 열려있고 가방 안 캔이 까져 있는 상태로 보아 유기가 의심되는 상황. 혹시나 싶어 보호자를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A씨는 “지나가시던 분이 보더니 오전 11시부터 있었던 애라고 한다. 캔이 상한 것으로 보아 하루 있던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분노했다. 공원 CCTV를 토대로 범인을 잡고자 김포 지구대에 신고했지만 범죄행위가 불확실해 도와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김포시청 측에 도움을 요청한 결과 추석 연휴가 끝나고 동물구조단체가 조치할 것이라고 했다. A씨는 “전염병 등에 대해 간단한 피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모두 음성이라더라”면서 “(동물병원에서) 귓속이랑 털 상태가 깨끗해 길냥이는 아니었을 것 같지만, 손톱 관리가 돼 있지 않고 중성화도 안 됐다고 한다”고 말했다. A씨는 반려묘와 임시 보호 중인 또 다른 고양이가 있어 녀석을 오래 보호해줄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한다며 도움을 요청했다.명절·피서철에 버려지는 ‘가족’ 명절이나 휴가·방학철만 되면 유기되는 반려동물의 수가 늘어난다. 현행법상 반려동물 등을 유기하는 경우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생명이 버림받는 일은 반복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집계한 유기(일부러 버리는 것)·유실(분실하는 것) 동물은 38만2907마리로 나타났다. 연평균 12만7635마리, 하루 평균 유기·유실되는 동물은 350마리에 이른다. 유기·유실 동물이 가장 많은 시기는 휴가철이 끼어있는 7~8월이었다. 유기·유실됐다가 구조된 동물 중에서 원래 키우던 사람이나 새로 입양할 사람에게 가는 비율은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 25.8%는 자연사하고, 15.7%는 안락사를 당한다. 이 때문에 지난 7월 23일부터 8월 28일까지 휴가지·피서지는 물론 주거지역 등에서 ‘반려동물 유기·유실 및 학대 방지’ 캠페인이 진행됐다. “동물은 쓰다 버리는 물건이 아닙니다. 가족이라면 끝까지 책임져 주세요.” 추석을 맞아 고향에 가거나 피서철 등에 휴가를 떠나기 위해 장기간 집을 비우게 된다면 반려동물을 맡길 수 있는 펫호텔 등 위탁관리업소를 이용할 것을 권유했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한 생명이 참치캔 하나와 함께 버려지고 말았다.한국에서는 해마다 10만 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달, 너의 뺨 / 이기린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달, 너의 뺨 / 이기린

    달, 너의 뺨/이기린 막 한술 뜨는 밥상 앞이겠지 숟가락만 입속에 들여 놓고 지난 말을 한마디씩 되감고 있겠지 저녁 유리창을 새벽까지 데려가는 눈빛이 되는 중이야 너는 말을 아끼는군 혼잣말의 울림이 귓바퀴를 돌고 있을 뿐 결코 말하지 않을 태세군 붉자마자 새파랗게 얼어버린 밤 내일이면 늘 괜찮아 ----------------------------------------------------------------------------------------------- 음력 팔월이 되면 자꾸만 하늘을 보게 된다. 어느 날 손톱달이 생겨나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추석’을 향해 귀향하는 달이다. 일 년에 한 번씩 씨족들을 밥상 앞에 둘러앉게 하는 달. 바람은 차차 서늘해져서 어떤 늪을 벗어난 듯 이제 살 만해졌다고 느끼게 한다. 달이 다 찬 보름 즈음 모처럼 맛난 음식을 앞에 놓고 ‘막 한술 떠’서 ‘숟가락만 입속에 들여놓고’ 더는 움직이지 않는 표정이 생긴다. 그 표정은 번져 간다. 하늘의 달빛은 ‘지난 말을 한마디씩 되감고’ 있는 ‘뺨’이고 회한에 잠들 수 없는 마음을 ‘새벽까지 데려가는 눈빛’이다. 현실에는 없고 가슴속에서만 웅얼대는 목소리들이다. 백남준이 그랬다던가? 동양인에게 달은 텔레비전이었다고. 여러모로 우리들은 ‘달 아래’ 족속이다. 가을이면 달은 젖은 눈 안에도 가득히 떠 있곤 한다. 장석남 시인
  • 책을 사는 것, 읽을 시간도 사는 것…책과 사는 것, 어떻게 사느냐 결정[김언호의 서재탐험]

    책을 사는 것, 읽을 시간도 사는 것…책과 사는 것, 어떻게 사느냐 결정[김언호의 서재탐험]

    ●이른 새벽에 검찰에 연행됐다 1992년 10월 29일 새벽. 네 명의 검찰 수사관이 집으로 밀어닥쳤다. 출판인 장석주는 곧장 서울지검으로 연행돼 갔다. 연세대 마광수 교수가 이미 연행돼 와 있었다. 검찰은 마 교수가 그해 써낸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를 ‘음란물’로 규정했다. 검찰권력은 마 교수와 책을 펴낸 청하출판사 장석주 대표를 ‘음란문서 제조 및 반포’ 혐의로 몰아 그날 저녁 8시에 전격 구속했다. 두 사람은 포토라인에 세워졌고 언론들은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그날 밤 텔레비전 9시 뉴스는 두 문화인의 구속을 난리가 난 듯이 보도해댔다. 검찰은 작가와 출판인을 이미 6개월 전부터 수사하고 있었다. 국무총리 현승종은 “어찌 이런 야한 내용이 공공연하게 출판될 수 있느냐”면서 화를 냈다는 것이었다. 뒷날 검찰총장이 되는 김진태가 담당 검사였고, 이건개가 서울지검 검사장이었다. 두 ‘공범’은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찬 채 끌려다니다가 두 달 만에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으로 풀려났다. 진보적인 이념으로 민주화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1980년대에 마 교수는 단독자로 성(性)담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청하출판사에서 이미 ‘상징시학’, ‘심리주의 비평의 이해’, ‘마광수 문학론집’을 펴냈다. “그는 독특한 유형의 천재였습니다. 솔직하고 유쾌한 성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검찰권력이 들이댄 문학의 잣대는 그 작가와 그 출판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사건이 됐다. 마 교수는 재직하던 연세대로부터 추방당했다. 법정 싸움을 통해 해직과 복직을 반복해야 했다. 결국 2017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심약하고 고립된 예술가에게 이 사회는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한 문학가를 우리 사회 전체가 공모해서 죽인 것입니다. 빈센트 반고흐의 자살도 ‘사회적 타살’이라고 하듯이, 마 선생의 죽음도 자살의 형식을 빌렸지만 우리 사회가 타살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를 ‘변태’라고 몰아세워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출판인 장석주에게도 ‘즐거운 사라’ 사건은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그해 12월 30일 ‘석방’됐지만, 1993년 1월 3일 새해를 맞아 서귀포로 가서 한 달을 머물며 고민했다. 결국 출판을 접기로 했다. 청담동의 사옥과 대치동의 집을 팔고 출판사를 정리했다. 1억원이 남았다. 의왕시로 가서 30평형 아파트를 세 얻었다. 책 만들기 13년 만이었다. 나름 개성 있는 책들을 기획해 냈다. 베스트셀러를 여럿 펴냈다. 서정윤의 시집 ‘홀로서기’(1987)는 200만 부의 슈퍼셀러였다. 몇만 권씩 읽히는 ‘니체전집’ 10권도 여느 출판사가 펴내지 못하는 기획이었다. 장 그르니에 선집을 펴냈고 인문과학시리즈 ‘청하신서’를 펴냈다. 1979년 고려원에 입사해 3년 동안 편집자로 일하다가 1982년 청하출판사를 창립해 500종 이상을 출간했다. 책에 대한 장석주의 헌신은 개성 있는 출판사 청하의 이미지를 출판계에 각인시켰다. “출판사명 ‘청하’(淸河)는 아들의 이름이었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 책을 만들자는 소박한 생각을 했습니다.”●정독도서관, 청소년 시절의 책 읽기 그가 펴낸 책들과 작가들이 그를 말한다.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32세에 자살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독일 시인 파울 첼란도 센강에 투신자살한다.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의 ‘태양의 돌’과 프랑스의 시인 프랑시스 퐁주의 ‘사물시편’이 그의 정신의 한 내면일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를 성찰하는 실존의 문제가 그의 가슴에 내재하고 있지 않았을까. 이 땅의 젊은이들이 온몸으로 온정신으로 책 읽고 행동하는 시대, 그 혁명적 정조(情調)의 시대에 출판인 장석주의 책 만들기는 인간의 본성탐구 그것이었을 것이다. 1955년 충남 논산의 농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장석주는 10세 때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 왔다. 아버지는 가난한 목수였다. 서울에서 장석주가 만난 책의 세계는 ‘문화충격’ 그것이었다. 책은 무한의 총체였다. 학급문고와 친구들과 형들이 읽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독서가 장석주의 탄생이었다. “청운중학교 시절, 친구 집에서 빌려 온 오영수 전집을 단숨에 읽고는 제 안의 노스탤지어가 폭발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김소월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학원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수업보다 정독도서관에서의 책 읽기가 그의 모든 것이었다. 1970년대 박정희의 권위주의 권력은 학교를 병영화시켰다. 그는 책의 세계로 도피했다. 저항의 몸짓 같은 것이었다. 정독도서관은 독서로 구현되는 피안의 세계였다. 황순원·김동리·손창섭·이제하·김승옥·이청준·박태순·이문구·박상륭·황석영·최인호 같은 한국소설가들, 고은·김종삼·김수영·김지하·황동규·신경림·김영태 같은 한국시인들, 카프카·카뮈·헤세·헤밍웨이 같은 국외 소설가들, 니체·바슐라르·사르트르·프로이트·융 같은 철학가와 사상가를 가리지 않고 읽었다. 미술사·성서고고학을 탐독했다. 노트했다. 정독도서관 시절의 이 노트들과 습작들이 1979년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시와 평론의 기초가 됐다. “저는 정독도서관에서 동과 서, 어제와 오늘의 책들을 두루 찾아 읽으면서 청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깨 너머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던 정독도서관 열람실에서의 책 읽기는 잊을 수 없는 세월이었습니다. 희망 없는 내일과 궁핍이 의식을 옥죄었지만, 날마다 책 읽는 것으로 그 고통을 견디어 냈습니다.” 그토록 책 읽기에 매달린 것은 책이 그를 새로운 의미의 존재로 이끄는 충만한 세계이기 때문이었다. “책은 심오한 통찰로 이루어진 위대함, 무한한 사유와 창조를 이끄는 촉매제였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주 샛길로 빠져 엉뚱한 영역에서 헤맸지만, 그 자체가 경이로웠습니다. 그 일탈의 경험은 또 다른 사유와 무한한 형태의 창조적 진화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지요. 책의 권능이었지요. 저는 독서를 즐거움의 수단으로 삼았지만, 이 즐거움이야말로 제 안의 ‘혁명’이자 ‘결단’이었습니다.” 20대 초반에 그가 읽은 다양한 문학이론서들. 프랑스의 가스통 바슐라르의 책들, 김우창과 김현의 비평서들이었다. 문학의 내재적 가치에 눈뜨고 나름의 방법론을 세웠다. 문학비평으로 가는 길이었다. 책 읽기는 그의 삶의 대안이었고, 사유의 모든 것이었다. 책 읽기로 시인이 됐고, 평론가가 됐고, 저술가가 됐다. “시와 철학은 오성(吾性)을 향하는 길에서 방법론적 차이를 가질 뿐 한 혈통입니다. 시는 상상력을, 철학은 사유를 방법론적 매개로 삼습니다. 시는 자명함을 배제함으로써 자명함에 닿고, 철학은 의미를 배제함으로써 의미에 닿습니다. 철학은 상식·대화·지혜 너머로 나아가려는 사유 속에서 뜨겁게 달아올라 빛을 내는 행위입니다.”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장석주에게 가장 진실한 명제일 것이다. 읽음으로써 그는 현실 속에서 실체를 구현해 내는 것이었다. 독서가 장석주! ●니체와의 만남 “제 인생 철학책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생각하고 생각했습니다. 니체의 철학은 벼락처럼 제 머리에 꽂혔습니다. 니체의 책들이 굶주린 짐승처럼 그르렁거리는 인식욕을 채워 주는 한편 제 절박한 내적 필요에 응답했습니다. 20대 때 저는 광대의 역할을 떨치고 일어나 사자의 심장을 갖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니체는 제게 속삭였습니다. ‘나는 너의 미로다’라고. 저는 굶주린 자가 젖과 꿀에 탐닉하듯이 니체 철학의 정수를 정신없이 들이켜며 철학이 건네주는 황홀과 도취 속에서, 부정의 정신에서 긍정의 정신으로 돌아섰습니다. 어느 순간 삶에 얽힌 매듭들이 주르륵 풀렸습니다. 더는 삶을 버거워하며 우울감에 빠지거나 주눅들지 않았습니다.” 장석주가 그동안 읽고 모은 책들이 3만 권이 된다. 온갖 책들의 섭렵이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시집이 물경 5000권이나 된다. 소설이 수천 권이 될 것이다. 문학이론·인문서·예술서들이 또 얼마나 될까. 이렇게 다양한 책들을, 때로는 여러 번씩 읽다 보니 100권이 더 되는 책을 저술해 냈다. 장석주는 자신을 ‘산책자’ 겸 ‘문장노동자’라고 칭한다. 사람들은 그를 ‘인문학 저술가’라고도 부른다. 책의 내용을 널리 알리고 책 읽기를 권하는 ‘독서교사’가 됐다. 세상의 친구들에게 책의 가치를, 독서의 즐거움을 알리는 작업이란, 책과 책 읽기를 사랑하고 스스로 출판해 낸 그에게는 운명 같은 일이다. 그가 북리뷰해서 써낸 책들이 열 권을 넘어서고 있다. 젊은 친구들에게 책의 가치와 즐거움을 이야기해 주는 일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행복하다. 그가 써낸 책들이 우리 현대문예사의 한 장르가 돼 가고 있다. 첫 시집 ‘햇빛사냥’으로부터 가장 최근의 시집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등 18권의 시집을 냈다. 문학을 통해 본 현대한국의 사회문화사인 ‘20세기 한국문학의 탐구’(전 5권), ‘일상의 인문학’, ‘이상과 모던뽀이들’, 이광수에서 배수아까지의 작가론인 ‘나는 문학이다’, ‘풍경의 탄생: 한국시의 이미지 계보학을 위해’, 동양철학에서 우리 시를 읽는 ‘상처 입은 용들의 노래’, ‘은유의 힘’ 등이 그것이다. ‘한 완전주의자의 책읽기’가 기억에 남는 한 권의 책이다. ●생의 고비마다 책이 있었다 보르헤스는 말했다. “쟁기와 칼은 손의 확장이다. 그러나 책은 그 이상이다. 책은 기억의 확장이다”라고. 한두 권의 책이 아니라, 수많은 책들 속에서, 그 책들의 내면을 탐험하면서 그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낸다. “살아온 인생을 되짚어 보면 항상 중요한 국면마다 책이 있었습니다. 아직 뼈가 약하고 살이 연할 때 저를 키우고 단련한 것도 책이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해 스스로 낙오자가 되어 시골로 내려와 쓸쓸한 살림을 꾸릴 때, 힘과 용기를 준 것도 책이었습니다. 평생을 책과 벗하며 살아왔으니, 제가 읽은 책들이 곧 내 우주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 안에 다정함이나 너그러움, 취향의 깨끗함, 투명한 미적 감수성, 올곧은 일에 늠름할 수 있는 용기가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모두 책에서 얻은 것입니다.” 독서가 장석주의 시 ‘대추 한 알’이 교과서에 실려 있다. 수많은 책들이 합창하면서 창출해 내는 그의 정신의 한 풍경일 것이다. “저는 늘 책을 삽니다. 책을 사들일 때 책을 읽을 시간도 함께 사는 것입니다. 책을 읽고 싶다면 서점에 나가 책을 사십시오. 그래야 비로소 책을 읽을 시간도 얻습니다. 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길사·한길책박물관 대표
  • [안녕? 자연] ‘종말의 날 빙하’ 예상보다 빨리 사라진다 “간신히 버티는 중”

    [안녕? 자연] ‘종말의 날 빙하’ 예상보다 빨리 사라진다 “간신히 버티는 중”

    해수면 상승에 큰 영향을 주는 탓에 ‘지구 종말의 날 빙하’로도 알려진 남극 스웨이츠 빙하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사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남극대륙 서쪽 아문센해에 맞닿아 있는 스웨이츠 빙하는 한반도 전체 면적(22만㎢)보다 조금 작은 약 19만 1900㎢로, 매년 얼음 약 500억t을 바다로 유입시키며 해수면 상승(전체의 4%)을 유발한다. 이 빙하가 다 녹으면 해수면이 지금보다 60㎝가량 높아질 수 있다.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와 영국 케임브리지대 남극조사단 등 국제연구진은 서남극 스웨이츠 빙하가 지난 200년간 얼마나 녹았는지를 조사했다.조사는 지난 2019년 스웨이츠 빙하 앞쪽 해저 700m 아래 지형을 고해상도 이미지로 여러 차례 찍어 지도화(매핑)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연구진은 빙하 앞부분이 녹아 붕괴하고 매일 조수 간만 차이에 따라 해당 지형에 생긴 흔적 약 160개를 기록했다. 분석 결과, 스웨이츠 빙하의 경계선은 지난 200년 중 일정 기간(약 6개월) 갑자기 2.1㎞ 이상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빙하가 붕괴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인데, 연구 주저자인 사우스플로리다대의 앨러스테어 그레이엄 박사는 미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빙하 붕괴는 20세기 중반쯤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당시 빙하 후퇴 속도는 지난 10년간 관측된 것보다 2배 더 빨랐다. 이 같은 데이터는 이 빙하가 지금까지 예상과 달리 앞으로 훨씬 빠르게 붕괴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공동저자인 영국 남극조사단의 로버트 라터 박사는 “현재 스웨이츠 빙하는 손톱으로 잡고 있는 것처럼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태다. 이 빙하는 앞으로 한두 해 안에 더 얇아질 것이고, 그러면 붕괴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지구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 9월 5일자에 실렸다.
  • 태풍보다 두 배 더 셌다… 해운대 ‘빌딩풍’ 주의보

    태풍보다 두 배 더 셌다… 해운대 ‘빌딩풍’ 주의보

    태풍 ‘힌남노’가 우리나라에 직접 영향을 미치면서 남해안권은 비상 상황에 들어갔다. 5일 기상청에 따르면 힌남노는 6일 오전 6시부터 부산, 울산, 경남 등 남부권에 집중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부산시는 5일 오전부터 대응 단계를 최고 수위인 ‘비상 3단계’로 격상하고 총력 대응에 나섰다. 시는 이날 오후 6시부터 부산시민공원, 어린이대공원 등 시내 주요 유원지 출입을 전면 금지했다. 광안대교 등 시내 7개 해상교량은 풍속이 초속 20m 이상이면 전면 통제하기로 했다. 부산 도시철도 지상구간은 6일 오전부터 운행을 중단한다. 부산 해안가 주변 상인들은 ‘빌딩풍’ 피해를 잔뜩 걱정하고 있다. 빌딩풍은 바람이 고층 건축물 사이를 통과하면서 강한 돌풍이 되는 현상이다. 2020년 태풍 ‘마이삭’이 불었을 때 연구 결과를 보면 당시 해운대 앞바다 풍속은 초속 23.4m였지만, 고층빌딩이 밀집한 마린시티에서는 최대 36m, 최고 높이 411m인 엘시티 주변에서는 47.6m로 측정됐다. 엘시티 주변 미포항 상인들은 가게 출입구를 합판으로 뒤덮으면서 태풍에 대비하고 있지만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서성환 미포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은 “2019년 엘시티가 들어서고 나서는 태풍이 아니라도 사람이 휘청일 정도로 센 바람이 불기도 한다. 과거 큰 태풍이 왔을 때는 엘시티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어떤 피해가 생길지 짐작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빌딩풍을 연구한 권순철 부산대 사회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마이삭 때 빌딩풍 영향으로 동백섬 한 아파트는 손톱만 한 조경석이 바람에 날리면서 아파트 14층까지 유리창이 다 깨지기도 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피해가 생길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남도와 18개 시군도 주민 대피령을 내리고 지하차도 등 침수 위험 시설 출입을 통제하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섰다. 창원시는 반지하 주택 거주자 등 침수 위험이 있거나 산사태 피해가 우려되는 5개 구 주민 156명에게 대피명령을 발령했다. 남해대교 등 교량과 지하차도, 둔치 주차장 183곳 출입이 통제됐다. 2.5m가 넘는 해일이 올 것으로 예보된 창원 마산만에는 길이 200m, 높이 2m인 차수벽이 세워졌다. 차수벽 옆의 강화유리벽까지 더하면 총길이가 1㎞에 달한다. 이 차수벽은 2003년 태풍 매미로 마산에서만 18명이 숨지고, 이재민 9200명이 발생하는 등 큰 피해를 본 뒤로 설치됐다. 2018년 준공 이후 이번이 두 번째 가동이다. 해상 가두리 양식장이 밀집해 있는 경남 남해안 어민들은 가두리 시설을 밧줄로 고정하고, 이동이 가능한 가두리 양식장은 태풍 영향이 적은 곳으로 옮기는 등 피해 예방 조치를 했다. 통영시와 거제시 등은 해상 양식장 상주 인력을 이날 모두 육지로 대피시켰다.
  • “출소하면 네 가족 다 죽이겠다” 대놓고 협박… 불법 소지품 뺏기자 교도관 허벅지 걷어차

    “출소하면 네 가족 다 죽이겠다” 대놓고 협박… 불법 소지품 뺏기자 교도관 허벅지 걷어차

    자해 난동 말리자 볼펜 휘둘러 식판으로 교도관 머리 가격도 폭행 반복하는 수용자들 많아‘강력범 집합소’로 악명 높은 경북 청송군의 경북북부2교도소. 그곳에선 수용자가 교도관을 때려 감옥살이를 더 하는 일이 해마다 반복된다. 2020년 6월 안경다리를 삼켜 병원에 입원한 한 재소자는 곁에 있던 교도관 얼굴에 침을 뱉고 물건을 던졌다. 같은 해 8월엔 손톱깎이 등을 삼켜 치료를 받던 재소자가 한 달 입원 기간 교도관 4명을 폭행했다. 지난해 9월엔 자해 난동을 부리던 한 재소자가 이를 말리는 교도관을 주먹과 발로 때리고 볼펜을 휘둘렀다. 이들 셋은 모두 재판에 넘겨져 징역 6개월이 추가됐다. 교도관은 수용자 간 폭력이나 자해·극단적 선택 등 각종 교정 사고를 막는 관리자이지만 때론 그 자신이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28일 서울신문이 분석한 최근 1년 법원에서 확정된 70건의 교도관 폭행사건 판결문에는 교정공무원이 처한 열악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전체 70건 중 67건은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함께 적용됐고 법원에서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피해 교도관 대부분은 정당한 업무 수행을 하다가 피해를 입었다는 뜻이다. 전남 목포교도소에 수감된 A씨는 불법 소지품을 뺏긴 일로 화가 나 교도관의 머리를 때리고 허벅지를 걷어찼다. 욕설을 하고 물병에 담겨 있던 물까지 뿌리며 “나는 출소가 얼마 안 남아 괜찮다”고 거들먹대던 그는 결국 그 일로 징역 1년을 더 살게 됐다. 서울남부구치소의 재소자 B씨는 밤늦은 시간에 반찬통을 내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교도관이 다가와 “조용히 취침하라”고 말하는 순간 문 사이로 손을 뻗어 교도관의 머리채를 잡았고 보호장비를 착용시키려 하자 발로 교도관을 걷어찼다. 교도관 2명에게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힌 B씨에겐 징역 1년 10개월이 선고됐다. 보호실 수용에 반발해 옷을 모두 벗고 괴성을 지르는 재소자를 진정시키려고 들어간 한 교도관은 팔목을 물려 전치 3주의 상해를 입었다. 또 다른 곳의 교도관은 ‘식판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바꿔 달라’는 요구를 거절했다가 식판으로 머리를 가격당했다. “권총으로 쏴 죽인다”, “출소하면 네 가족을 다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은 교도관들도 있다. 공무집행방해는 대법원 양형기준의 가중처벌 요소로, 일반 폭력범죄보다 무겁게 처벌한다. 실제로 총 70건 사건 중 64건에서 실형이 선고됐다. 벌금형과 징역형의 집행유예는 각각 2건과 4건에 그쳤다. 그런데도 재범을 반복하는 수용자들이 적지 않다. 수용자 폭행사건을 맡았던 한 판사는 “(이 같은 사건은) 교도관 개인의 피해를 넘어 교도 인력의 불필요한 낭비와 교도 행정의 질서를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 “출소하면 죽는다” 욕하고 때리고···교도관은 출근이 두렵다 [매 맞는 교도관]

    “출소하면 죽는다” 욕하고 때리고···교도관은 출근이 두렵다 [매 맞는 교도관]

    ‘강력범 집합소’로 악명 높은 경북 청송군의 경북북부2교도소. 그곳에선 수용자가 교도관을 때려 감옥살이를 더 하는 일이 해마다 반복된다. 2020년 6월 안경다리를 삼켜 병원에 입원한 한 재소자는 곁에 있던 교도관 얼굴에 침을 뱉고 물건을 던졌다. 같은 해 8월엔 손톱깎이를 삼켜 치료를 받던 재소자가 한달 입원 기간 동안 교도관 4명을 폭행했다. 지난해 9월엔 “나 오늘 죽는다”며 자해 난동을 부리던 한 재소자가 이를 말리는 교도관들을 주먹과 발로 때리고 볼펜을 휘둘렀다. 이들 셋은 모두 재판에 넘겨져 징역 6개월이 추가됐다. 교도관은 수용자 간 폭력이나 자해·극단 선택 등 각종 교정 사고를 막는 관리자이지만, 때론 그 자신이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28일 서울신문이 분석한 최근 1년 법원에서 확정된 70건의 교도관 폭행 사건 판결문에는 교정공무원이 처한 열악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전체 70건 중 67건은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함께 적용됐고 법원에서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피해 교도관 대부분은 정당한 업무 수행을 하다가 피해를 입었다는 뜻이다.목포교도소에 수감된 A씨는 불법 소지품을 뺏긴 일로 화가 나 교도관의 머리를 때리고 허벅지를 걷어찼다. 욕설에 물병에 담겨있던 물까지 뿌리고 “나는 출소가 얼마 안 남아 괜찮다”고 거들먹대던 그는 결국 그 일로 징역 1년을 더 살게 됐다. 서울남부구치소의 재소자 B씨는 밤늦은 시간에 반찬통을 내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교도관이 다가와 “조용히 취침하라”고 말하는 순간 문 사이로 손을 뻗어 교도관의 머리채를 잡았고, 보호장비를 착용시키려 하자 발로 교도관들을 걷어찼다. 교도관 2명에게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힌 B씨에겐 징역 1년 10개월이 선고됐다. 보호실 수용에 반발해 옷을 모두 벗고 괴성을 지르고, 대변을 바닥에 묻힌 재소자를 진정시키려 들어간 인천구치소의 한 교도관은 팔목을 물려 전치 3주의 상해를 입었다. 또 다른 곳의 교도관은 ‘식판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바꿔달라’는 요구를 거절했다가 식판으로 머리를 가격 당했다. “권총으로 쏴죽인다”, “출소하면 네 가족을 다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은 교도관들도 있다. 공무집행방해는 대법원 양형기준의 가중처벌 요소로서 일반 폭력범죄보다 무겁게 처벌한다. 실제로 총 70건 사건 중 64건에서 실형이 선고됐다. 벌금형과 징역형의 집행유예는 각각 2건과 4건에 그쳤다. 그런데도 재범을 반복하는 수용자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2월 교도관 폭행 혐의로 실형을 받은 뒤 9개월 만에 또 교도관을 때린 C씨는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4차례 동종 전과가 있던 D씨는 교도관의 치아를 부러뜨려 지난 5월 대전지법에서 징역 8개월이 확정됐다. 수용자 폭행 사건을 맡았던 한 재판부는 “(이 같은 사건은) 교도관 개인의 피해를 넘어 교도 인력의 불필요한 낭비와 교도 행정의 질서를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 김지우, ‘불쌍한’ 새끼 손가락 공개

    김지우, ‘불쌍한’ 새끼 손가락 공개

    뮤지컬배우 김지우가 자신의 손가락 모양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지우는 2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짜리몽땅한 불쌍한 나의 새끼 손가락. 어째 손톱을 길러도 약지의 두 마디를 안 오다니”라는 글과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을 통해 손톱을 에쁘게 기른 김지우의 손을 확인할 수 있다. 김지우의 새끼손가락은 다른 손가락에 비해 길이가 현저히 짧은 모습이다. 김지우는 새끼손가락의 길이를 비교하며 아쉬움을 표했다. 한편 김지우는 셰프 레이먼킴과 결혼했으며, 슬하에 딸을 두고 있다. 현재 뮤지컬 ‘킹키부츠’에 출연 중이다.
  • ‘43세 늦깎이 아빠’ 장동민 “♥보물이 첫 손톱 포장해놨어”

    ‘43세 늦깎이 아빠’ 장동민 “♥보물이 첫 손톱 포장해놨어”

    ‘늦깎이 아빠’ 코미디언 장동민(43)이 딸의 첫 손톱을 포정하며 ‘딸바보’의 면모를 보여줬다. 21일 장동민의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보물아~♡ 아빠가 우리 보물이 손톱을 깎아줬어요”라며 7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장동민이 딸 보물이(태명)의 작은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들과 함께 ‘보물이 첫 손톱♡’이라며 이날 날짜에 시간까지 적어놓은 종이 포장이 보여 눈길을 끌었다. 장동민은 “손톱이 너무 가늘어서 아빠도 걱정되고 떨렸지만 잘 깎았어요”라며 “우리 보물이 크면 신기해할 것 같아서 아빠가 잘 포장해놨어”라고 적었다. 장동민은 이어 “엄마는 극성이라고 했지만 우리 보물이가 아이를 낳아서 손톱을 깎아 보면 알 거야”라며 “보물이가 이 손톱을 보면 어떤 리엑션을 보일까 너무 궁금하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장동민은 지난해 12월 6세 연하의 비연예인 여성과 결혼했다. 이후 약 7개월 만인 지난 6월 딸을 얻어 아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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