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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야구] 고교 최대어 윤성빈 롯데行···넥센은 이종범 아들 윤성빈 지명(종합)

    [프로야구] 고교 최대어 윤성빈 롯데行···넥센은 이종범 아들 윤성빈 지명(종합)

    고교야구 투수 ‘최대어’로 꼽히는 부산고 우완 강속구 투수 윤성빈(17)이 롯데 자이언츠의 선택을 받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7일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2017년 신인 1차 지명 선수 명단’을 발표했다. 10개 구단 중 9개 구단(우완 7명, 좌완 2명)이 투수를 뽑았다. 넥센 히어로즈만이 ‘바람의 아들’ 유격수 이종범(46)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아들이면서 유격수가 주 포지션인 내야수 이정후(18·휘문고)를 지명했다. 대졸 선수는 두산 베어스가 선택한 동국대 우완 사이드암 투수인 최동현(22) 뿐이다. 롯데는 부산고 우완 윤성빈과 경남고 좌완 손주영, 이승호를 두고 고민하다 윤성빈을 최종 선택했다. 윤성빈은 키 195㎝, 체중 95㎏의 당당한 체격에 최고 시속 153㎞의 강속구가 장점이다. 고교 3학년인 올해 11경기에 등판해 2승 2패 평균자책점 4.22를 기록했다. 31⅔이닝을 던지면서 삼진 47개를 잡아내고 볼넷 22개를 내줬다. 관건은 윤성빈과 롯데가 계약금에서 합의할 수 있느냐 여부다. 윤성빈은 미국프로야구(MLB) 구단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가 윤성빈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계약금을 제시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절충이 이뤄지지 않아 윤성빈이 메이저리그행을 선택하면 롯데는 1차 지명 권리만 날리게 된다. 공교롭게도 롯데는 2001년 부산고 추신수(34·텍사스 레인저스)를 1차 지명했지만 추신수는 결국 미 시애틀 매리너스 입단을 선택했다. 넥센은 유일하게 내야수를 선택했다. 휘문고 유격수 이정후로 왕년의 스타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키 185㎝에 체중 78㎏의 신체 조건을 갖춘 이정후는 빠른 배트 스피드와 부드러운 스윙으로 다양한 구종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고교선수답지 않은 수준급 콘택트 능력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넥센 구단은 이정후가 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 어깨, 민첩한 움직임까지 갖춰 대형 유격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정후는 고교 통산 42경기에서 타율 0.397(144타수 55안타) 1홈런 30타점 44득점 20도루를 기록했다. 이정후는 아버지 이종범(1993년 해태 타이거즈)에 이어 ‘부자(父子) 1차 지명’이라는 진기록을 낳았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3개 팀 중 우선권을 얻은 두산은 동국대 출신의 우완 사이드암 투수 최동현을 선택했다. 최동현은 2013년과 2014년 대학리그 춘계리그에서 수훈상(2013년)과 최우수 선수상(2014년)을 받으며 동국대 대회 2연패를 이끌었다. 2014년 21세 이하 세계선수권대회와 2015년 하계유니버시아드,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또 하나의 서울 연고 팀인 LG 트윈스는 충암고 우완 투수 고우석(18)을 지명했다. 고우석은 올해 8경기에서 36이닝을 소화하며 3승 3패 평균자책점 3.75를 남겼다. 고교 통산 29경기서 132⅓이닝 13승 6패, 평균자책점 2.65를 기록했다. 삼성 라이온즈는 경주고 우완 투수 장지훈(19), NC 다이노스는 김해고 좌완 투수 김태현(18), KIA 타이거즈는 효천고 우완 투수 유승철(18)을 뽑았다. SK 와이번스는 야탑고 우완 투수 이원준(19)을 선택했다. 키 190㎝,체중 95㎏의 신체 조건을 갖춘 이원준은 매송중 시절까지 사이드암 투수였지만 고교 입학 후 오버핸드로 팔 스윙을 바꿔 던지기 시작했다. 한화 이글스는 천안북일고 좌완 투수 김병현(18)을 뽑았다. 키 187㎝,체중 88㎏의 신체 조건을 지닌 좌완 정통파 투수다. 최고 시속 140㎞ 직구를 던지고 커브와 슬라이더를 구사한다. 케이티 위즈는 장안고 우완 투수 조병욱(18)을 선택했다. 조병욱은 케이티가 신생구단 우선 지명권을 부여받지 못한 이후 처음으로 연고지에서 지명을 받은 선수가 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꽃할매표 주먹밥 3만개나 팔렸네

    꽃할매표 주먹밥 3만개나 팔렸네

    서울 영등포구의 주먹밥 가게 ‘꽃할매네’는 직원 평균 나이가 70대다. 노인 16명이 주먹밥을 만들어 과일과 함께 한 끼 도시락으로 판매한다. 영등포구는 23일 ‘꽃할매네 1호점’이 25일 개점 1주년을 앞두고 주먹밥 판매 3만개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꽃할매네는 노인들에게 일자리와 사회활동 참여 기회를 주기 위해 영등포구가 지난해 양평동에 문을 연 가게다. 꽃할매네 1호점의 월평균 매출은 390만원, 누적 매출은 5100만원에 이른다. 하루 평균 주먹밥 100개를 판매해 달성한 금액이다. 수익금은 월급과 노인복지사업에 사용한다. 노인 일자리 창출의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으며 지난해 12월 신길동에 2호점을 열었다. 일하는 노인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구민이자 점원인 윤성자(72·여)씨는 “집안일만 하다가 난생처음 취직을 해 보니 너무 재밌다”면서 “내 용돈 벌어 쓰고 손주들한테 아이스크림도 사 줄 수 있는 게 제일 좋다”고 웃었다.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은 “꽃할매네 주먹밥 가게가 개점한 지 1년 만에 영등포구만의 특색을 담은 사업으로 자리잡았다”며 “앞으로도 제2, 제3의 꽃할매네 사업을 개발해 어르신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브렉시트 국민투표 D-1] “경제 타격” vs “이민자 반대” 갈라선 영국 민심

    [브렉시트 국민투표 D-1] “경제 타격” vs “이민자 반대” 갈라선 영국 민심

    오는 23일(현지시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루 앞두고 찬반으로 나뉜 영국 민심의 향방이 어디로 쏠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찬·반 두 진영은 ‘브렉시트’(탈퇴), ‘브리메인’(잔류)을 주장하며 투표자들의 우려를 자극하기 위한 표현을 쏟아냈다. 영국의 EU 잔류를 찬성하는 진영에서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직접 나서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라”며 브렉시트가 가져올 경제적 파장을 경고했다. 이날 영국 언론과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캐머런 총리는 이날 집무실 앞에서 “여러분의 자녀와 손주들의 희망과 꿈을 생각해 달라”면서 “탈퇴를 선택한다면 그것을 되돌릴 수 없다. (브렉시트는) 영국에, 영국의 가정에, 영국의 일자리에 엄청난 위험요소”라고 경고했다. 캐머런 총리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도 이번 투표에서 잔류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면 다시 브렉시트를 추진하겠다는 탈퇴 진영을 겨냥해 “내가 아는 한 이번 투표로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며 “영국은 이 일을 다시 겪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브렉시트 반대 진영, 즉 ‘브리메인’(잔류) 진영은 사회 명사들로부터도 힘을 얻고 있다. 세계적인 억만장자 외환투자자 조지 소로스가 브렉시트 시 파운드화 폭락으로 가계와 시장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한 데 이어 세계 축구 스타인 데이비드 베컴도 브렉시트 반대를 천명했다. 영국 FTSE100 지수에 포함된 50개 대기업과 900여개 중소기업 등의 기업가 1285명은 전날 일간 더 타임스에 보낸 공개 편지에서 “브렉시트는 우리 기업의 불확실성, 유럽과의 거래 축소, 일자리 감소를 의미한다”며 잔류 찬성을 선언했다. 그러나 ‘브렉시트’를 촉구하는 진영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탈퇴 진영에 속한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은 잔류 진영이 영국 경제의 타격 가능성을 설파하는 “공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지난 21일 런던 웸블리 아레나에서 청중 6000명이 모인 영국 공영방송 BBC가 연 공개 대토론에서 “그들은 브뤼셀(EU본부 위치)에 머리를 숙이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한심하게도 이 나라가 할 수 있는 것을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존슨 전 시장은 탈퇴에 투표한다면 오는 23일 투표일이 영국의 ‘독립기념일’이 될 것이라고 말해 청중으로부터 박수 세례를 받았다. 이민 문제도 찬·반진영의 큰 논쟁거리 중 하나다. 존슨 전 시장은 이민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이민은 통제돼야만 한다”면서 “지난해 EU로부터의 순유입 18만 4000명, 그중에서 일자리 제안을 받지도 않은 채 들어오는 7만 7000명이라는 숫자를 보면 명백히 (이민) 통제권을 되찾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브렉시트 찬성론자들은 EU 국적을 가진 이민자들이 지나치게 많이 영국으로 들어오는 상황에서 터키가 EU에 가입하면 더 많은 이민자가 들어올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 사상 첫 무슬림 런던 시장이자 브렉시트 반대파인 사디크 칸 시장은 이런 존슨 전 시장을 향해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을 겁주고 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맹공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어나보니 미국 대통령家…클린턴의 손주 맞는 날

    태어나보니 미국 대통령家…클린턴의 손주 맞는 날

    세계 최강 권력가(家)인 클린턴 가족이 경사를 맞았다.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AP통신 등 현지언론은 18일 태어난 둘째 외손주 아이단과 함께 뉴욕의 산부인과 병원 밖을 나서는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와 딸 첼시(36), 그리고 그의 남편 마크 메즈빈스키(38)의 모습을 일제히 전했다. 이날의 주인공은 물론 딸 첼시의 품에 안겨 병원 밖을 나서는 아들 아이단이었다. 지난 2010년 투자은행가 마크 메즈빈스키와 결혼한 첼시는 4년 후 딸 샬럿을 얻었으며 이번에 둘째 손주를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에게 안겼다. 그러나 많은 언론들이 첼시의 출산에 관심을 갖는 것은 역시 힐러리 클린턴 때문이다. 민주당의 사실상 대선후보이자 유력한 차기 대통령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이날 언론과 시민들에게 여유롭게 손을 흔들며 '할머니'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에 언론들은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인간적인 면모를 노출해 대중과의 거리 줄이기에 나섰다고 평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 흥미로운 점은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측도 이같은 '마케팅'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는 점이다. 3번의 결혼으로 가족구성이 복잡한 트럼프의 자식 중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 이반카(35)다. 빼어난 외모와 몸매로 모델로도 활동한 바 있는 이반카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을 졸업해 그야말로 지성과 미모를 겸비했다. 특히 지난해 3월 그녀는 셋째인 시어도어를 출산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개인 SNS 계정을 통해 수시로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사랑스러운 손주들이 대선후보로 나선 할아버지를 측면 지원하는 셈이다. 이에 트럼프 캠프 측도 이반카를 주요 마케팅 수단으로 삼아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최종병기’라고 평가할 정도. 이날 클린턴 부부는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라면서 "우리 손자가 태어나 또 한 번 조부모가 돼 너무나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진=AP 연합뉴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이 시의 주인공은 스스로 단종을 했을까?

    이 시의 주인공은 스스로 단종을 했을까?

      이 시의 주인공은 스스로 단종을 했을까?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래 손주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반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통곡한다   한센인 시인으로 단종대에서 단종(정관수술)을 당했던 이동의 시이다. 이 시는 단종을 하는 수술대(단종대) 정면에 걸려 있다. 이동은 과연 자발적으로 단종을 한 것일까. 만약 강제로 한 것이라면 나라가 한 것인가 아니면 당시 근무했던 의료인들이 불법적으로 저지른 것일까. 판사들이 한센인들의 굴곡진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소록도로 갔다. 단종·낙태 피해를 입은 139명의 한센인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지 5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고법 민사 30부(강영수 부장판사)가 20일 국립소록도병원에서 국가 소송 2심 특별재판을 열었다. 소록도에 살고 있는 한센인 80여명은 방청석에서 그들의 아픈 과거를 되새겼다. 이 재판에서 한센인과 정부 측은 한센인에 대한 단종·낙태 수술에 대한 강제성 유무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한센인 측 대리인 박영립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는 “국가는 해방 이후에도 한센인 강제 격리수용, 단종·낙태, 학살 등 수많은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정부 측 박종명 법무법인 강호 변호사는 “한센인들이 받은 낙태·정관 수술은 강제로 실시된 게 아니며, 한센인들이 불법행위를 했다고 지목하는 당사자는 한센인을 평생 돌본 의료진들”이라며 “한센인의 아픔에 공감하지만 이에 대한 위로는 특별법에 따른 보상 등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맞섰다. 국내에서 한센인 단종·낙태는 한센병이 유전된다는 잘못된 믿음에 따라 일제강점기인 1935년 여수에서 시작됐다. 소록도에서는 1936년 부부 동거의 조건으로 단종수술을 내걸었다. 인천, 익산, 칠곡, 안동 등지에서도 많은 한센인이 낙태 수술을 했다. 피해 한센인 500여명은 국가가 수술을 강제했다며 2011년부터 1인당 5000만원을 배상하라는 5건의 국가 소송을 제기했다. 그간 법원은 단종 피해자에 3000만원, 낙태 피해자에 40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정부도 “일제시대 이후엔 강제 수술이 없었다”며 항소가 진행 중이다. 5건 소송 중 아직 확정 판결은 나오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날 한센인 원고, 과거 소록도 병원 의료진 등 5명을 불러 당시 상황을 청취했다. 남는 시간엔 이동의 시가 걸린 단종 수술대, 인체해부대 등 병원의 시설들을 둘러봤다.  김성곤 부국장 sunggone@seoul.co.kr
  • 둘째 손주 본 힐러리 클린턴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

    둘째 손주 본 힐러리 클린턴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

    미국 민주당의 사실상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오른쪽) 전 국무장관이 18일(현지시간) 둘째 외손주를 얻었다. CNN 등 미 언론은 클린턴 전 장관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사이의 외동딸인 첼시 클린턴(왼쪽·36)이 이날 아들을 출산했다고 전했다. 2014년 태어난 맏딸 샬럿 클린턴 메즈빈스키에 이은 두 번째 자식이다. 클린턴 부부는 첼시의 출산 직후 성명을 통해 “우리는 손자, 아이단 클린턴 메즈빈스키의 탄생으로 다시 한번 할아버지, 할머니가 돼 매우 기쁘다”며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라고 밝혔다. 첼시는 이날 트위터에 “남편과 나는 우리 아들의 탄생을 축하하며 감사와 사랑으로 벅차 있다”고 밝혔다. 첼시는 2010년 투자은행가 마크 메즈빈스키와 결혼했으며, 2011년부터 NBC방송 기자로 일하다가 2014년 출산과 육아를 이유로 사직했다. 그녀는 현재 부친이 설립한 비영리기관인 ‘클린턴재단’ 부대표를 맡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첫 손녀를 얻은 후 ‘할머니’가 된 기쁨에 대해 공개적으로 얘기해 왔다. 미 언론은 클린턴이 할머니가 된 뒤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뷰티바이블’ 제시카-재경, 바캉스 메이크업 비법 공개

    ‘뷰티바이블’ 제시카-재경, 바캉스 메이크업 비법 공개

    <뷰티바이블 2016 S/S>의 종영을 앞두고 MC 제시카와 재경의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가 전격 공개된다. 오는 19일 방송되는 <뷰티바이블 2016 S/S>에서는 마지막 회를 맞아 ‘힐링 뷰티 타임’ 스페셜 코너를 마련해 그동안 듣지 못했던 MC 제시카와 재경의 속마음을 공개할 예정이다. 스튜디오 촬영이 끝난 후 제작진이 준비한 힐링 스파에 제시카와 재경은 “땡땡이(?) 치는 것 같아 너무 좋다”며 둘만의 시간을 즐기고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MC 데뷔를 도전한 제시카는 “처음 경험해보는 게 많았다”며 첫 방송 당시 떨렸던 마음을 회상했다. 재경은 그간의 메이크업 비법들을 돌이켜보며 “녹화 끝나고 집에서 메이크업을 따라한 적이 있다”고 고백하며 뷰티 고수의 면모를 드러냈다. 특히 미세한 펄을 이용하여 지속력을 높인 비법은 레인보우 활동 중에도 재경이 아주 요긴하게 활용했다고. 이에 제시카 역시 격하게 공감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공유했다. 이외에도 제시카와 재경은 다양한 뷰티 제품을 접하며 지름신이 강림했던 사연, 메이크업 대결 당시의 솔직한 속마음 등 방송에서는 공개되지 않았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대거 방출했다고. 한편 이날 스튜디오에서는 다가오는 휴가 시즌을 맞아 간단한 뷰티템들로 물놀이, 디너파티 등 다양한 상황에 맞춰 연출할 수 있는 바캉스 메이크업 비법을 공개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날 뷰티 크루들의 해결사로는 손주희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출연하여 낮에는 내추럴하면서도 섹시한 메이크업을 밤에는 고급스럽고 화려한 메이크업으로 간단히 변신시키는 팁을 전수했다. 본격적인 시연에 앞서 손주희는 의외로 소박한 파우치를 공개하며 메이크업에서 베이스 단계를 생략하는 등 파격적인 비법을 선보였다. 이어 건강하게 빛나는 쇄골라인을 만드는 바디 메이크업이 공개되었는데, 이는 연예인들의 화보촬영이나 시상식에서 활용되는 필살기로 현장에 있던 모든 여성들이 눈을 떼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방송에서는 공개되지 않은 제시카와 재경의 <뷰티바이블 2016 S/S>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는 오는 19일(일) 밤 10시 10분 KBS Drama 채널에서 방송된다. 이지연 인턴기자 julie31080@seoul.co.kr
  • [新전원일기] 꽃보다 할매 충남 당진 ‘백석올미영농조합’

    [新전원일기] 꽃보다 할매 충남 당진 ‘백석올미영농조합’

    1. 프롤로그 청매실이 익어가는 6월, 충남 당진의 ‘백석올미영농조합’(올미)으로 향하던 날의 햇살은 따가울 정도로 강했다. 차에 오르자마자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미세먼지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도심과 고속도로에서는 선글라스를 끼나 벗으나 눈에 보이는 것에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백석리 어귀에 이르러 비포장 농로 위에서 차가 덜컹거릴 때쯤에는 선글라스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마을 개천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초록빛 매실나무의 향연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푸르고 무성한 잎사귀와 동그랗게 여문 열매가 따사로운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매실밭을 보면서 목적지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평균 나이가 76세인 할머니 57명이 함께 일하는 백석올미영농조합의 주소는 ‘당진시 순성면 매실로 246’이다. 10만 그루에 달하는 마을 공동 소유의 매실나무에서 나오는 매실을 좀더 가치 있게 팔 수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한 영농조합이 이제는 할머니의 일터가 되고, 삶이 되고, 꿈이 되었다. 2. 할머니의 반란은 성공 여름철이면 지천으로 열리는 왕매실은 백석리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지만, 영농조합 설립 전까지는 마을 주민들에게 천덕꾸러기로 여겨졌다. 보관이나 유통이 어렵고 제값을 받기도 힘들어 매실을 따서 판다고 한들 인건비도 제대로 건지기 어려웠다. “우리 마을에서 나는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매실 한과’를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33명의 조합원이 각자 200만원을 출자해 초기 자본금을 만들고, 농어촌 개발을 위해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 3억원을 받아 마을 영농조합이 만들어졌죠. 처음부터 큰돈을 벌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저 할머니들이 모여 마을을 위해 뭔가를 해보자는 마음이었지요. 이런 걸 두고 ‘사회적 기업’이라고 하더라고요.” 2011년 영농조합 설립 당시 마을 부녀회장을 맡고 있었던 김금순(66) 대표는 마을 소득 사업이나 사회적 기업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시골 할머니들이 모여 무작정 시작한 일이었다며 수줍게 웃었다. 2008년 대기업을 퇴직한 남편과 함께 백석리로 귀농했다는 김 대표를 두고 할머니들은 ‘굴러들어온 복덩이’라고 치켜세웠다. 2012년 한과 공장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매실 한과를 생산한 이래 연매출 6억원의 영농조합으로 발돋움하기까지 김 대표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 대표는 귀농 이후 마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위해 부녀회장을 맡으면서 새로운 운명의 길로 들어섰다고 회상한다. 부녀회원들을 중심으로 손주들에게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매실 한과를 만들어 보자며 시작한 영농조합의 생산 품목은 이제 매실 장아찌, 매실 고추장, 매실청, 매실 진액 등으로 확대됐다. 매실 따기와 한과 만들기 등 체험 활동 프로그램도 26개로 늘었다.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개최한 ‘6차 산업 우수 사례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이후 전국 각지의 농민들이 올미의 사례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 체험과 견학을 목적으로 이곳을 다녀간 체험객이 5000명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도 57명으로 늘었고 매출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올미의 성장보다 더 근사한 것은 57명의 할머니에게 일자리와 꿈을 선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미영농조합에 출근하며 처음으로 명함을 가져보았다는 할머니들은 주 5일 근무에 월급 126만원을 받는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약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할머니들에게는 큰 수입이다. 게다가 4대 보험과 퇴직금이 보장된 ‘정규직’이다. 상품 판매 실적에 따라 보너스를 받기도 한다. 남들은 경로당이나 요양원 갈 나이에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과 자부심은 돈보다 더 큰 행복을 안겨준다. 한과를 만들면서도, 공장 청소를 하면서도 할머니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한때 마을의 골칫거리였던 매실이 이제는 한과도 되고, 장아찌도 되고, 진액으로도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매실은 할머니들의 일자리가 되면서 돈을 벌어다 주었고,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통로를 열어 주었다. 3. 그녀들의 목소리 올미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은 50~80대로 다양하다. 70대가 제일 많아 평균 연령이 높지만 함께 일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한다. 이곳에 몸담으면서 달라진 이들의 삶에 대해 연령대별로 직접 들어보았다. 막내 유희숙(51)씨 -어른 행세하는 분 없이 언니들이 항상 든든해요 우리 남편이 백석리 이장이에요. 남편이 감투를 쓰는 바람에 저도 졸지에 이장댁 사모님이 되었죠. 그래서 여러 궂은일을 나서서 맡을 때가 많아요. 올미에서는 언제부터 일했느냐고요? 5년 전에 올미영농조합이 설립될 때 저도 200만원을 내고 조합원으로 가입했어요. 그런데 집에 다른 농사가 바빠서 영농조합에 출퇴근은 못 하다가 직원으로 합류한 지 이제 6개월이 지났어요. 젊은 사람이 부족하다고 도와 달라는데 모른 척할 수가 없었어요. 언니들이 솜씨는 좋은데 기계를 다룬다든지, 운전을 한다든지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일에는 서툴러요. 지금도 한과 만드는 기계를 살피는 중이에요. 기계 틈에 한과 부스러기가 끼어서 날카로운 대바늘로 긁어냈어요. 언니들은 눈이 어두워서 이런 일을 하기가…(웃음). 같이 일하는 어르신들이 시어머님뻘로 연세가 많으셔서 처음에는 대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런데 여기에는 나이 따지면서 어른 행세하는 분이 없어요. 똑같이 일하고 수익도 똑같이 나눠 갖는 시스템이니까요. 언니들에게 가장 고마운 건 제가 아무리 실수하고 뻗대더라도 나무라기는커녕 막내라고 귀여워하고 예뻐해 주신다는 거죠. 제가 이 나이에 어딜 가서 이런 사랑을 받겠어요. 언니들 덕에 저는 항상 든든해요. 대표 김금순(66)씨 -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버니 잡음 생길 틈이 없죠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은퇴하면서 남편 고향인 이곳 당진 백석리로 2008년에 귀농했어요. 서울에서는 은퇴할 나이인데 이곳에서 60대는 젊은이 취급을 받아요. 부녀회장도 맡고, 영농조합 대표까지 되면서 오히려 귀농 후에 더 바빠졌어요. 우리의 목표는 돈이 아니에요. 마을에서 나는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파는 게 첫 번째 목표예요. 찹쌀, 참깨, 검은깨 등 한과에 들어가는 재료는 모두 이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로 쓰는 게 철칙이에요. 원산지라고 해서 싸게 사는 것도 아니고 시중가대로 매입하죠. 다른 업체들은 대부분 수입산을 쓰는데 국산 농산물을, 그것도 비싼 값으로 사서 재료로 쓰니 크게 남는 장사는 아니에요. 저나 할머니들이나 노년에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돈 욕심을 부리고 싶진 않아요. 수익 규모가 커지면서 서로 간에 잡음이 생길 법도 하지만, 개인 욕심을 부릴 수 없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기 때문에 불평이 없어요. 제가 대표라서 일을 더 많이 한다고 해서 돈을 더 많이 받는 게 아니라 저도 다른 할머니들과 똑같이 월급을 받아요. 조합 성공 사례에 대한 강연을 하고 강연비를 받더라도 제 개인 몫으로 챙기는 게 아니라 조합 소득으로 계산하고, 저는 전체 수익을 할머니들과 똑같이 나누는 거죠. 한과 한 봉지도 따로 집에 못 가져가도록 해요. 본인 돈으로 구매하고 영수증을 처리해야 가능합니다. 시골 인심 같지 않다고요? 공평한 급여 체계와 투명한 운영이 갈등 없이 올미를 성장시킨 원동력이기 때문에 이 원칙을 끝까지 지킬 생각입니다. 판매왕 권탁(71)씨 - 여그만 오면 아픈디가 싹 나아…만병통치약이여 여그 일하는 할매들은 70대가 대부분이여. 처음 생길 때부터 시작해서 여그서 일헌 지 5년째여. 재미있고, 신나유.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명함도 생기고 말이여. 내가 여그 조합에서 최고 판매왕이유. 한과를 맹그는 것도 중요허지만, 못 팔면 소용이 없잖유. 비결이 뭐냐고? 내가 낳은 자슥들이 7남매유. 우리 아들, 딸들이 100박스, 200박스씩 팔아주는 게 비결이여. 한과를 한 해에 1000박스 넘게 파는 거지유. 갸들이 회사 홈페이지에도 올리고, 이웃들한테도 소개하고…. 한과 주문을 받느라 명절만 되면 전화통에 불이 나유. 재미가 쏠쏠한 게 뭐냐믄 월급 외에 한과 판 보너스는 영업 실적에 따라서 따로 받아유. 그래서 내가 보너스만 300만~400만원씩 받어유. 돈 벌어서 손주들 용돈 챙겨 줄 때가 제일 좋아유. 손주가 초등학교 댕길 때만 해도 할매가 용돈 주면 닁큼 받더니, 중학교 간 후부터는 안 받을라 그러잖유. 할미가 고생해서 번 돈이라서 못 받겠대유. 그래서 친구들이랑 즐겁게 놀면서 번 돈이라고 받아도 된다고 했지유.아픈 데가 없기는 왜 없겄슈. 평생 살림하고, 애 낳아 키우고, 농사짓고 살았는데 온몸이 쑤시고 프지유. 근디 신기하게 여그만 나오면 씻은 듯이 다 나아유. 웃고 떠들면서 일하다본께 피곤헌 줄도 모르고 아픈 것도 까묵어 버려…. 여그가 만병통치약인가벼. 최고령 성정옥(81)씨 - 돈 벌지, 돈 모아서 여행가지 을매나 좋은지 몰러 여그 정년퇴직 나이가 80세거든. 그런데 내 주민등록 나이가 아직 78세라 더 일할 수 있어. 우리 아부지가 내가 다 늙어서 올미에 취직할 줄 미리 알고, 출생 신고를 3년 늦게 해 준 덕이여. 나는 이렇게 등도 굽고, 다 늙어서 쪼글쪼글한 할매를 취직시켜 줘서 여그가 을매나 고마운지 몰러.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게 행복이여. 건강 관리는 어떻게 허냐고? 조합원들이 모여서 일주일에 두 번씩 체조를 햐. 체조 선생님이 오셔서 한 시간씩 제대로 하는 겨. 그것도 다같이 허니께 힘든 줄도 모르고 재미나. 70대에 처음 직장 생활해서 월급이란 걸 받아 봤어. 그 돈으로 영화도 보러 다니고 여행도 가. ‘해랑’이라고 열차로 크루즈여행을 하는 고급 여행 패키지여. 그게 2박 3일 가는데 100만원이나 혀. 여그 올미 할매들이랑 같이 댕겨 왔어. 자식들이 안 보내 주느냐고. 아유, 그런 말을 어떻게 혀. 내가 번 돈으로 친구들이랑 여행 가서 맛난 거 실컷 먹고 구경하고, 그게 을매나 좋은디. 4. 에필로그 매실 한과로 돈을 많이 벌면 ‘올미 실버타운’을 지어 친구들과 여생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할머니들, 올미에서 일하면서 할머니들은 이전과는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초록빛 매실이 시골 촌부(村婦)의 삶에 희망이라는 초록 불을 밝혀 준 것이다. 매실의 매(梅)를 한자로 풀이하면 ‘人+母 +木’이므로 ‘사람에게 어머니 같은 나무’라고 한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는 마음으로 오늘도 할머니들은 여러 매실 가공품을 정성스럽게 만들고 있다. 글쓴이 소설가 김유담 부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핀 캐리’로 등단.
  • “男고령 임신 위험…40세 넘으면 아이 자폐증 6배↑”(연구)

    “男고령 임신 위험…40세 넘으면 아이 자폐증 6배↑”(연구)

    건강한 아이 아빠를 꿈꾸는 남성이라면 40세가 되기 전에 아이를 갖는 것이 좋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조지타운 대학이 이끈 연구팀은 남성의 나이와 생활 습관이 자녀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여러 연구를 검토한 결과 위와 같은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고령 임신은 여성에게만 해당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이제 남성도 임신 계획이 있다면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이 검토한 한 연구에서는 40세 이상 남성의 아이가 30세 이하 남성의 아이보다 자폐증이 생길 위험이 거의 6배나 높은 것을 발견했다. 이는 남성도 나이가 들게 되면 생식 세포인 정자에 손상이 생길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려스럽게도 이런 부정적인 영향은 자식뿐만 아니라 손주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또한 이번 검토 연구에서는 술을 많이 마시는 남성일수록 태어날 자녀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도 확인됐다. 예를 들어, 아이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어머니가 술을 마신적이 없는 경우에도 아이에게서 ‘태아 알코올 스펙트럼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주의력 장애나 과잉 행동 장애, 운동 기능 감소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이번 검토 연구를 이끈 조안나 키틀린스카 박사는 “이 장애를 가진 어린이 75%가 술을 마시는 아버지를 두고 있어 부모의 알코올 섭취가 자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또한 이 연구는 부모의 알코올 섭취가 자녀의 더 작은 뇌와 더 낮은 지능과 연관성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는 부모의 흡연으로도 손상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번 연구는 남성의 비만이 다음 세대에 당뇨병이나 뇌종양과도 연관성이 있으며 부모의 스트레스는 자녀의 행동 문제와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들을 강조했다. 영국 쉐필드 대학의 생식 전문가인 앨런 퍼시 박사는 “건강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40세가 되기 전에 아이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나이를 넘기면 일반적으로 임신 성공률이 떨어진다”면서 “심지어 배우자가 한참 어려도 유산할 가능성이 높고 태어난 아이에게서는 정신분열증이나 자폐증, 선천적 결손증 등 질환이 생길 확률이 현저하게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전문가들은 나이 든 남성에게서 태어난 거의 모든 아이가 건강해 그런 자격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UCL)의 아동건강 전문가인 알라스테어 서트클리프 교수는 “나이 든 아버지의 이런 문제점은 더 침착하고 더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은 장점으로 상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국출산사회(British Fertility Society)의 회장인 아담 발렌 교수는 “젊은 사람들은 그런 영향이 불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알고 있어야 한다”면서 “따라서 젊은 부부가 경력 단절 없이 더 건강할 때 자녀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줄기세포 저널’(American Journal of Stem Cells) 최신호에 실렸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이주의 어린이 책] 부모도 못 끼는 할머니·손주 사이 ‘사랑의 그림책’

    [이주의 어린이 책] 부모도 못 끼는 할머니·손주 사이 ‘사랑의 그림책’

    행복을 나르는 버스/맷 데 라 페냐 지음/크리스티안 로빈슨 그림/김경미 옮김/비룡소/40쪽/1만 2000원 할머니와 손주 사이에는 부모도 끼어들 수 없는 각별함이 있다. ‘조건 없음’을 전제로 하는 할머니의 사랑은 아이의 평생을 지지해 주는 터전이 된다. 여기, 그 소중한 관계를 단순하고 아름다운 대화 몇 구절로 압축한 그림책이 있다. 재기발랄한 상상력이나 감정을 한껏 부풀리는 서사는 없다. 불쑥 비어나오는 아이의 질문과 할머니의 대답이 있다. 할머니는 아이의 질문에 한 번도 허투루 대답하는 법이 없다. 엉뚱한 물음이라도 귀찮아하는 기색도 없다. 어떤 물음에도 할머니는 간명하지만 충실하고 다정하게 답을 건넨다. 세상에 발을 내딛고 살아온 만큼 오래 숙성된 지혜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에 정직함, 올바름, 온기를 불어넣는다. 그렇게 할머니는 아이의 삶의 지지대가 된다. 친구처럼 차를 타고 달리는 대신 할머니와 버스를 타는 시제이는 마지막 정거장인 슬럼가에 내린다. “여긴 맨날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는 시제이의 물음에 할머니는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가리킨다. “아름다운 것은 어디에나 있단다. 알아보지 못할 뿐이야.” 무료 급식소에 봉사하러 가는 길에 아이는 또 묻는다. “왜 친구들은 안 가는데 우리만 가냐”고. 할머니는 딱하다는 듯 말한다. “그 애들에겐 안타까운 일이구나. 보보나 선글라스 낀 남자를 볼 기회가 전혀 없으니까.” 월스트리트저널이 “물질적으로 부족하다 해서 상상력이나 마음까지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는 것을 명확하고 아름답게 전한다”는 서평을 낸 이유다. 올해 뉴베리상, 칼데콧명예상 수상작으로 두 상을 동시에 받은 첫 그림책이다. 6세부터.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커버스토리] 평생 살면서 매달 꼬박꼬박…요놈이 효자네

    [커버스토리] 평생 살면서 매달 꼬박꼬박…요놈이 효자네

    1970년대만 해도 노인들의 환갑날은 동네 잔칫날이었다. 그런데 40여년이 흐른 지금은 환갑잔치라는 말도 잘 쓰지 않는다.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평균수명이 확 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100세 시대’라는 말도 무색할 지경이다. 그런데 늘어난 수명만큼 우리네 삶도 여유로워졌을까. 대다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자식들 공부시키고, 집 한 칸 마련하느라 청춘을 바쳐서다. 70세 무렵까지 일해야 먹고산다는 게 요즘 현실이다. 그럼 일할 능력도, 써 주는 곳도 없는 노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의 대안으로 우리나라에는 집을 통해 고정 수입을 만들 수 있는 정부 보증 주택연금 제도가 있다. 주택연금은 만 60세 이상 국민들이 주택을 담보로 제공하고 매월 일정 금액을 연금으로 지급받는 상품이다. 자기 집에 계속 살면서(주거 안정) 인생 황혼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노후 보장) 위해 도입됐다. 그러자면 자식에게 집을 물려줘야 한다는 ‘의무감’ 내지 ‘강박관념’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게 정부 얘기다. ■‘이사 그만’형 - 70대 부부 59㎡·2억대 구리에 아파트 판잣집·단칸방 전전하다 70대에 내집 마련… 주택연금 매달 102만원씩 ‘내 인생 위로금’ 올해 74세, 75세인 이혜자(여·가명)씨 부부는 결혼 51년차다. 42년 전 충청도에서 달랑 닭 두 마리를 들고 서울로 상경했다. 여관을 전전하다 거여동 무허가 월세 ‘하꼬방’(판잣집)을 얻어 짐을 풀었다. 수도도, 전기도 없고 화장실도 같이 써야 하는 곳에서 넷째를 가졌다. 남편은 연탄 배달을 하고, 이씨는 골목 초입에서 아기를 업고 풀빵을 팔았다. 세입자 보호법도 없던 시절, 6개월마다 월세를 올려 달라는 주인, 애들이 시끄러우니 나가 달라는 주인, 그렇게 하늘 같은 집주인 말에 윗동네에서 아랫동네로 돈에 집을 맞춰 옮겨다녔다. 이사만 열여섯 번이었다. 2남 2녀를 다 출가시키고 칠순을 넘겨서야 경기 구리시에 59㎡ 아파트를 장만했다. 이제야 내 집에서 사나 했더니 걱정은 또 찾아왔다. 이씨는 무릎관절 수술로 거동도 힘들었다. 남편은 설암 수술을 받았다. 자식들은 경기 침체로 손주들 학비 대기도 빠듯하다. “이 집 빼서 전세로 옮겨가고 남은 돈을 아껴 죽을 때까지 살자”는 남편의 힘없는 제안에 이씨는 몸서리쳤다. 칠순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2년마다 집을 옮기는 게 끔찍해 “이혼해서 당신은 전세 살고 나는 딸네 집에서 애 봐 주며 살자”고 등을 돌렸다. 평생 큰소리 한번 없던 잉꼬부부는 생활비 문제로 그렇게 남남처럼 넉 달을 지냈다. 그러다 남편이 “주택연금 좀 알아보자. 은행에 집을 빼앗기는 줄만 알았는데 많은 사람이 가입하는 것 보니 아닌가 보다”라며 말을 걸었다. 그렇게 부부는 2014년 주택연금 가입자가 됐다. 이씨는 말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고 죽을 때까지 집을 옮겨다니는 게 내 인생인 줄 알았는데 연금을 받으니 마치 그간 고생한 위로금이자 남은 생을 열심히 살라는 격려금 같다”고. 자식들이 간간이 주는 용돈은 비상금으로 모으고 기초노령연금에 주택연금을 합쳐 알뜰살뜰 산다. 부부 사이도 다시 좋아졌다. 지금은 운동도 하고 봉사도 함께 다닌다. 이씨는 “(연금은) 돈 없다고 한 달 미루지도 않고 자기 상황에 따라 줬다 안 줬다 하지도 않고 꼬박꼬박 제 날짜를 지키는 믿음직한 효자”라고 고마워했다. 남편 역시 “젊은 시절 소원이었던 집, 중년엔 자식들 울타리였던 집, 지금은 부부 노후를 책임지는 집이 바로 다름 아닌 자식”이라고 거들었다. 이씨 부부는 구리의 59㎡(2억 2200만원 상당) 집을 맡기고 한 달에 102만원(감소형)씩 받고 있다. ■‘혼자 산다’형 - 교직 명퇴 남편과 사별 59㎡ 아파트 남편 떠나고 빚 갚으니 작은 아파트에 나 홀로…그나마 주택+노령 연금 月80만원에 기대 37년간 교직 생활을 하다가 명예퇴직한 오세현(여·가명)씨. 남들은 “연금도 나오고 집도 있고 부럽다”고 한다. 하지만 실상은 적자 인생으로 살아왔던 터다. 다섯 자녀 뒷바라지도 모자라 시부모, 시동생, 시누이 다 합쳐 10명도 넘는 사람이 한집에서 살았다. 80㎏ 쌀로도 한 달을 못 채웠다. 월급이 나오면 가게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외상을 갚다 보니 집에 도착하면 남는 게 거의 없었다. “빌어먹는 한이 있어도 자식은 가르쳐야 한다”던 어머니의 가르침에 5남매 모두 대학에 보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빚이 많이 쌓여 퇴직금으로 빚을 정산하고 나니 남은 것은 고작 몇 푼. 1996년 2월 퇴직한 뒤 그해 7월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등졌다. 그리고 가을쯤 40여년간 살던 정든 집이 재개발로 헐렸다. 불과 1년 만에 정든 집이며 직장, 가족까지 떠나보냈다. 혼자된 몸으로 아들 집 근처에 59㎡의 작은 아파트를 얻었다. 남편이 떠난 지 20년이 됐다. 궁한 모습을 감추며 살아보지만 줄어드는 주머니에 갈수록 초라함만 느껴졌다. 그러다 인근에 노인 건강타운이 생겼다. 프로그램이 200개나 된다. 점심값은 1000원밖에 안 하지만 취미 생활을 하며 시간을 보내자니 오가는 길목마다 드는 돈이 제법이다. 이때 건강타운에서 주택연금을 알게 됐다. 매달 60만원 가까이 준단다. ‘내가 빨리 죽어도 남은 집값만큼 자식에게 상속된다’고 하니 손해 볼 일은 없겠다 싶었다. 여기에 노령연금 20만원을 합치니 용돈이 제법 두둑해졌다. 손주들 학비 보태라고 봉투를 건넬 여유까지 생겼다. 생일 선물도 사다 주는 넉넉한 할머니가 됐다며 오씨는 환하게 웃었다. ■‘자식 권유’형 - 일산 집 팔고 132㎡·4억대 안양에 새둥지 재산 상속 필요없다는 아들딸… 죽을 때까지 돈 나오니 오히려 자식 부담 더는 길 한국주택금융공사 직원들은 가장 가슴 아픈 사례로 자식 간의 갈등을 든다. 한 상담창구 직원은 “딸 손에 이끌려 주택연금에 가입했다가 다음날 아들 손에 끌려와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해지하는 노인이 많다”고 전했다. 아들에게 집을 물려주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주택연금 가입을 권유하는 자식은 딸, 해지시키는 자식은 아들이 많다고 한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아들딸이 적극적으로 권해 가입자가 된 사례도 있다. 2013년 가입한 이지희(여·가명)씨다. 이씨의 큰아들이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한테 재산 물려준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마세요. 아버지, 어머니가 버신 돈이니 이제는 마음껏 다 쓰세요.” 이때만 해도 이씨는 “쓸데없는 소리 마라. 너네 아버지한테는 손톱도 안 들어가는 얘기”라며 일축했다. 그런데 전셋값을 올려 달라는 집주인의 전화 한 통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씨는 경기 일산에 갖고 있던 원래 집을 팔고 자식 집 근처인 안양에 터를 새로 잡았다. 계속되는 자식들의 강권에 마지못해 연금에 들었다. 4억 5000만원짜리(132㎡) 집을 맡기니 매달 124만원이 나왔다. 이씨는 “죽을 때까지 100만원 넘는 돈이 나온다고 하니 오히려 자식들 부담을 덜어 주는 길”이라며 좋아했다. 주택연금의 가장 큰 장점은 매달 일정한 날에 일정한 돈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소득이 없어도 정해진 틀 안에서 생활을 계획할 수 있다. 자녀들도 편한 마음으로 부모를 대할 수 있다. 이씨는 “연금이 아니라 복권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집을 뺏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집에서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주택연금 누적 가입자 수는 2011년 7286명에서 올 3월 말 현재 3만 1504명으로 증가했다. 많이 늘었다고는 해도 전체 노령인구를 감안하면 턱없이 낮은 비중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집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우리나라 부모 특유의 정서와 “가진 거라곤 집 한 채뿐인데 벌써부터 넘겼다가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라는 불안감이다. 주택금융공사 측은 “주택연금으로 노후를 대비할지 말지는 개개인의 선택 문제”라며 “하지만 어떤 노후가 부모 자신은 물론 자식들에게도 행복이 될지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려줄 것은 집이 아니라 행복한 노후’라는 주택연금의 큼지막한 홍보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과학커뮤니케이터 이덕환 서강대 교수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과학커뮤니케이터 이덕환 서강대 교수

    이덕환(62) 교수의 연구실을 찾은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에 놀란다. 우선 ‘화학자’라고 하면 흔히 연상되는 흰색 가운 입고 비커나 시험관 만지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정말로 그의 연구실엔 컴퓨터와 책만 있다. 또 대화를 하다 보면 “정말 화학자가 맞나” 싶은 의문이 생길 만큼,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식견을 갖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의 세계를 연구하던 조용하고 내성적인 학자가 사람들에게 과학을 전파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 나서게 된 건 정말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닥터 리, 계속 화학을 할 건가?” “교수님, 제가 배운 게 화학밖에 없는데 다른 걸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 난 닥터 리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이상의 일을 했으면 해. 열흘 동안 한국을 돌아보면서 느낀 건데, 이 나라 사람들은 과학이 뭔지를 잘 모르는 것 같더군. 그래서 난 자네가 일반 대중에게 과학을 알리고 확산시키는 일을 해주면 어떨까 싶네.” -미국 코넬대 유학 시절 나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이셨던 로알드 호프만(79) 교수님께서 1993년 10월 중순 한 대학 초청행사로 한국에 오셨다. 당시 교수님은 50대 중반의 정력적인 학자이셨고, 마흔을 목전에 두고 있던 나는 부교수로 막 승진을 했던 상황이었다. 존경하는 스승이긴 했지만, 나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과학의 대중화라고? 그건 과학을 어설프게 배운 사람들이나 관심 갖는 일 아닌가요?” 호프만 교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는 아마 대놓고 이렇게 반박했을지도 모른다. -‘우드워드·호프만 법칙’으로 유명한 폴란드 출신의 호프만 교수님은 198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신 이론 화학의 대가였다. 몇 권의 시집도 낸 시인이자 철학자이면서 화학의 대중화에 관심이 많아 미국에서 ‘화학의 세계’라는 TV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계셨다. 한국을 오셨을 때에도 미당 서정주 선생을 만나고 싶다고 먼저 요청하셨고, 나중에 두 분의 대화는 월간 ‘현대문학’에 게재되기도 했다. -호프만 교수님과의 만남이 있은 이듬해(1994년) 대한화학회에서 ‘홍보간사’란 자리를 신설했는데, 어쩌다가 내가 그걸 맡게 됐다. 학회 회장대행이었던 채영복(2002~2003년 과학기술부 장관) 박사께서 뜬금없이 나를 지목하셨는데, 대선배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1년 전 호프만 교수님과 나눈 대화가 현실이 되는 출발점이었다. -2남 3녀 중 넷째인 나는 맏이인 큰누나와 열 살 차이가 나고 큰형과도 일곱 살이나 차이가 나 꽤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공부하라는 채근도 거의 없었다. 서울에서 초·중·고교를 다 나왔는데 방학숙제도 거의 해 본 적이 없었다. 방학이면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안동에 내려가 산으로 강으로 뛰어다녔는데, 공부를 얼마나 안했던지 시골 내려올 때 가져온 연필을 한 번도 깎지 않고 개학 때 그대로 교실에 가져갔을 정도였다. 그렇게 연필 한 번 쥐어보지 않고 개학을 맞다 보니 학교에 가면 글씨를 쓸 수가 없을 정도였다. 지금도 악필인 건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즘은 인터넷이나 TV, 신문 등 입시정보를 접할 수 있는 채널들이 다양하지만 당시만 해도 TV는커녕 라디오도 흔치 않았다. 그래서 입시 정보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때 다들 경기중·경기고를 최고로 쳤는데, 나는 우리 형들이 다니던 경복중·경복고가 더 좋은 줄 알았다. 별생각 없이 경복중에 지원했는데, 경기중에 갔더라면 똑똑하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들었을 거란 사실을 입학을 하고서야 알게 됐다. 경복중에서 경복고로 직행을 했는데, 지금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과학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고 계신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 고등학교 1년 선배다. 최 선배가 재수를 해서 서울대 같은 학번 동기가 됐는데, 문리대 이학부 학생 수가 적다 보니 형제처럼 친하게 지냈다. -고2에서 고3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에 할아버지께서 어머니와 함께 상경을 하셨다. 안동에서 큰 정미소를 운영하셨던 할아버지는 손주들 교육과 진로에 관심이 많으셨다. “덕환아, 대학에서 뭘 공부할지 결정했느냐.” “네. 저는 화학을 전공하기로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시며 의대나 법대는 어떠냐고 하셨다. “할아버지, 저는 법대 가서 평생 죄 지은 사람들 보며 살고 싶지 않아요. 의사가 되서 평생 아픈 사람들 보는 것도 싫고요. 저는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과학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어요.” 할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다시 안동에 내려가시면서도 실망의 눈빛을 풀지 않으셨지만, 귀여운 넷째 손주의 고집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건 잘 아셨다. 얼마 후 수정 제안을 하셨는데, “화학과보다는 화학공학과가 어떠냐? 공대가 더 취직이 잘 된다는데….” 하지만, 공대 역시 처음부터 내 선택지엔 없었다. -화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고2 때부터였다. 화학 수업을 처음 듣는데 “바로 이거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화학과에 가겠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둘째 누나가 농화학과를 다녔는데 누나의 전공서적에서 원자와 분자의 그림과 화학식들을 보면서 의지가 더 확고해졌다. “덕환아, 화학과는 너보다 성적이 한참 떨어지는 애들이 가는 데야. 좀 억울하지 않겠니?” 담임선생님도 날 의대에 보내려고 고3 내내 설득하셨지만, 내 귀에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화학 공부를 하러 대학에 갔지만, 1973년 입학 첫 학기부터 석사과정을 마친 1979년 2월까지 6년 동안 한 학기도 처음부터 끝까지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박정희 유신체제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집회와 시위로 거의 매 학기 휴교령이 내려졌다. 거의 독학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화학에 대해 눈을 뜨게 해준 분을 만났다. ‘일반화학’ 수업을 하신 김호진 교수님이었다. 김 교수님을 통해 이론화학이라는 분야를 처음 만났고, 그게 평생의 전공이 됐다. -지금까지 번역서와 저서를 합해서 30권 가까운 책을 냈다. 그중 번역서가 20여권이 된다. “전문 번역가도 아닌데 왜 그렇게 번역을 많이 하느냐”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과학처럼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는 번역가가 아닌 해당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이 번역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엄밀성과 정확성을 중요시하는 과학에서는 ‘어’ 다르고 ‘아’ 다른 법이다. 제일 먼저 번역했던 것은 1996년의 ‘그림으로 보는 분자 세계와 대칭성’이었는데, 삽화가 많은 화학입문서 비슷한 책이었다. 본격적으로 번역에 나서고 과학커뮤니케이터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호프만 교수님이 쓰신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라는 책부터다. 어려운 이론 화학을 쉽게 잘 풀어내 미국에 있을 때부터 꼭 번역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었다. -최재천 선배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인을 꿈꿨던 ‘문청’(문학청년) 출신이었지만, 사실 나는 글 쓰는 일을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학교 다닐 때 가장 힘들었고 싫었던 숙제가 바로 작문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논문과 책을 빼고 신문, 매거진 등 대중매체나 인터넷 블로그 등에 쓴 글이 줄잡아 2300편 정도 된다. 1년에 평균 150~200편 정도 쓰는데 일주일에 3~4편꼴이다. 여전히 많은 과학자들이 ‘잡문’이라고 배척하는 분위기가 강한 대중매체에 글을 쓰는 것은 ‘뒤늦게 터진 글솜씨’를 자랑하고 싶어서라거나 내 이름을 알리고 싶어서가 절대로 아니다. 호프만 교수님께서 부탁하셨던 것처럼 사람들이 좀더 과학에 친숙해지고 과학적 사고를 해줬으면 하는 책임감에서다. -나는 과학을 흥미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데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은 불과 100~150년 사이에 나온 지식들이다. 인류가 지구에 살아온 몇십만년과 비교하면 말도 안되게 짧은 시간에 나온 지식들이다. 그런 지식들을 대중이 쉽고 재미있게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역설적이지만 ‘재미있고 쉽게’란 흥미 위주의 과학, 신기술 개발 중심의 과학들이고, 나아가 그런 것들이 과학기피 현상을 불러온다. 재미있다고 하는 얘기만 들은 사람들이 실제로 과학을 공부하다가 어려움에 부딪히면 ‘과학은 쉽고 재미있다더니 어렵고 재미없네, 속았어’라고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한 다음 과학을 접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 항상 현실 문제를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우리 사회에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정신이 확산되지 않는 이유는 기술 중심의 과학을 이야기하는 정부와 그런 주장에 은연 중에 동의하는 전문가들 때문이다. 나는 좀 배웠다는 사람들이 “기초과학은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투자”라고 말할 때 정말 화가 난다. 우주론이나 진화론을 100년 연구해 봐야 무슨 성장동력을 얻을 수 있겠나. 기술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는 결과물인데 과학은 그 기술개발을 조직화, 체계화시켜 최종 산물까지 도출하는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과학의 여러 역할 중 3분의1에 불과하다. 다른 3분의1은 사람들에게 정직성과 비판성, 합리성이라는 과학정신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나는 이게 과학의 역할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지식의 축적이나 과학정신 함양보다 경제적 가치와 기술개발이란 부분만 강조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기술이전 숫자’, ‘국제학술지 게재 논문 수’ 같은 무의미한 통계가 더 중시되는 것이다. -사회 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목소리를 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 교수가 다른 데 관심 있는 것 아니냐”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나는 사람들이 세상을 좀더 과학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작은 밀알이 되고 싶을 뿐이다. 사회와 동떨어진 지식인이란 있을 수 없다. 더군다나 대학교수들은 사회적 명성뿐만 아니라 캠퍼스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사회를 위해서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당당하게 얘기하지 못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목소리가 커졌고 눈총도 받았던 것 같다. 아내가 나에게 자주 하는 소리가 있다. “당신은 절대 학교 밖에 나가 다른 것 할 생각은 하지 마라. 당신처럼 성격이 모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학교 밖에서 무슨 말 했다가는 정 맞는다.” 얼마 후면 정년을 맞는다. 그동안 썼던 나의 ‘잡문’들을 모으고 추려서 과학적 눈으로 우리 사회 문제 전반을 해석해보는 나름 거창한 시도를 해볼까 한다. 꽤나 방대한 작업이 될 것이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을 것이고,그래서 더 도전해 보고 싶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이덕환 교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다. 대학에서 화학과 과학커뮤니케이션을 함께 가르친다. 이 교수는 실험 중심인 화학 분야에서 ‘양자화학’과 ‘비선형 분광학’을 전공한 보기 드문 이론 화학자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만 잘은 모르는 과학 주제들에 대해 속시원한 해답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걸로 유명하다. 그래서 ‘언론사 기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과학자’로 통한다.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방송에 자주 출연하면서 20권 이상의 대중 과학서적을 번역했다. 특히 2004년에 번역 출간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과학 분야 최고의 스테디셀러 중 하나다. 자신의 대학원 지도교수인 로알드 호프만 미국 코넬대 교수의 저서를 번역한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1996년)는 많은 대학에서 ‘신입생이 읽어야 할 필독서’로 선정됐다. ▲1954년 서울 출생 ▲서울 경복중·고, 서울대 화학과, 미국 코넬대 박사(1983년) ▲서강대 화학과 교수(1985년~),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운영위원장(2009년), 대한화학회 회장(2012년),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2013년)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신문·잡지 부문· 2004년), 과학기술훈장 웅비장(2008년)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샘 킴 “요리는 배려·소통…학교 정규 수업서 배우면 좋겠어요”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샘 킴 “요리는 배려·소통…학교 정규 수업서 배우면 좋겠어요”

    “정말 좋았어요. 초등학교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몰입해 음식을 만들면서 두런두런 얘기하는 모습이며 자기가 만든 음식을 보며 마냥 신기해하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해요. 캠페인이 아니라 학교 정규 수업으로 요리가 편성됐으면 좋겠습니다.” 종편 요리 프로그램인 ‘냉장고를 부탁해’로 인기가 많은 셰프 샘킴(39·본명 김희태). ‘성자 셰프’ ‘자연주의 셰프’에 이어 ‘재능 기부 아이콘’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얼마 전 경남 통영의 한 초등학교에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인성 밥상’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한 ‘얘들아 밥 먹자’ 행사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평소 아이들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샘킴은 ‘얘들아 밥 먹자’ 캠페인을 계기로 사라져 가는 가족의 밥상문화를 되살리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 본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이탤리언 레스토랑 ‘보나세라’에서 만난 샘킴은 인터뷰에 앞서 7년째 총괄셰프로 일하는 식당 건물 3층에 가꿔 놓은 허브정원으로 안내했다. 요리에 쓰이는 로즈메리와 바질, 라벤더 등 허브 7~8종의 향내가 후각을 자극했다. →‘인성 밥상’과 ‘얘들아 밥 먹자’ 캠페인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인성 밥상’은 밥상머리교육에서 인성을 배우고 바른 먹거리 방법을 알게 하자는 취지에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벌이고 있는 공익광고 캠페인입니다. ‘얘들아 밥 먹자’는 제가 ‘인성 밥상’ 공익광고에 재능 기부 차원에서 출연한 것을 계기로 시작한 식습관 개선 캠페인이에요. 경기 수원, 경남 통영에 이어 4일 서울 용산에서 위탁가정 15가구가 참여하는 세 번째 밥상이 차려집니다. →최근 들어 밥상머리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가 뭐라고 보세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가족들이 제시간에 모여 함께 밥을 먹었는데 요즘은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바빠 하루에 한 끼도 같이 하기가 쉽지 않아요. 밥상에 앉아서도 각자 휴대전화를 보느라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죠. 사회가 각박해지고 험악해지는데, 인성교육을 학교에만 맡길 수는 없어요. 가정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요리가 유용한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요리의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 -요리는 함께 하다 보면 서로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집니다. 수원과 통영 행사 때 이탈리아 음식인 참치 아란치니(크로켓처럼 빵가루를 묻혀 튀겨 내는 이탈리아식 주먹밥)를 만들었는데, 우리 아들이 이런 요리를 좋아하는지 몰랐다고 놀라는 엄마도 있었고 엄마가 저런 요리를 할 줄 아는지 몰랐다며 자랑스러워하는 아이도 봤어요. 그동안 TV와 휴대전화에 빠져 있느라 놓쳤던 서로를 알아보고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는 걸 보면서 요리의 무한한 가능성에 확신을 갖게 됐어요. →‘얘들아 밥 먹자’ 캠페인은 언제까지 하나요. -이 캠페인은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문화적 체험 기회를 제공합니다. 계속하고 싶습니다. 목표는 전국 초등학교에서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는 건데, 어떻게 보세요? 가능할까요? 안전 문제만 해결되면 한달에 1번 내지 한 학기에 2번 요리 수업을 하면 좋겠어요. 기업보다는 정부의 도움을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해 기업 협찬은 사절입니다. →방송하랴 봉사하랴 요리하랴 정신없을 것 같은데, 주말에는 쉰다고 들었습니다. 레스토랑은 주말에 더 바쁠 텐데 가능한가요. -주말에 쉬는 건 제가 7년 전 총괄셰프가 될 때 내건 계약 조건입니다. 주말은 무조건 가족과 함께 보낸다, 그게 마지노선이죠. 믿을 수 있는 주방팀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구요. 대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매일 밤 12시 넘어 퇴근해요. 출근을 조금 늦게 해 아침마다 아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줍니다. 방송은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인데 건강한 요리법 등 제 생각과 맞는 것만 할 겁니다. →주말에 집에서 아들과 자주 요리를 하나요. -아들이 아빠가 요리사인 줄 알아요. 아빠가 만들어 주는 걸 좋아해요. 맛있다고 할 때 제일 기분이 좋아요. 식탁 대신 밥상을 펴고 바닥에 앉아서 먹어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장난도 치고 얘기도 많이 합니다. 장난이 심하면 혼내는 건 엄마 몫이구요(웃음). →자원봉사를 상당히 많이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요리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언제든 함께하고 싶습니다. 요리는 배를 채우는 게 다가 아닙니다. 요리는 훌륭한 매개체가 돼요. 봉사에도 쓰이고 손님 기념일에도 쓰입니다. 요리가 가진 무한한 능력을 계속 알리는 것이 요리사로서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그는 지난해부터 옥스팜과 푸드트럭 행사를 비롯해 SK행복나눔재단의 ‘해피쿠킹스쿨’, 메이크어위시재단의 ‘솔푸드콘서트’ 등 최소 두 달에 한 번꼴로 재능 기부 활동을 하고 있다). →샘킴에게 요리란. -요리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입니다. 아직까지 한 번도 슬럼프가 온 적이 없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하숙을 치면서 식당을 하시던 어머니를 도와 시장을 보고 식재료를 손질했어요. 엄마가 만든 음식을 사람들이 먹으면서 맛있다며 만족해하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정말 맛있어하는 표정과 칭찬, 그게 좋아요. 그 이외에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아요. 요리는 상대에 대한 배려입니다. →어머니 얘기를 많이 하시던데, 요리사가 되는 걸 반대하지는 않으셨나요. -고생 많이 한다고 반대하셨죠. 지금은 좋아하세요. 요리에 정성과 사랑이 담겨야 한다는 건 어머니를 보고 배운 거죠. →고생 모르고 자란 부잣집 장남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실제로는 미국 유학 가서 엄청 고생을 했다면서요.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유학 갈 즈음 아버지 사업이 기울었어요. 어머니가 어렵게 마련해 준 300만원 갖고 가서 방을 구하고 바로 다음날 새벽부터 떡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일식 초밥집에서 일해 모은 돈으로 1년 6개월 과정인 키친아카데미에 입학했어요. 학교는 새벽 6시부터 낮 12시까지 하는 새벽반을 다니면서 밤 12시까지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었어요. →어머니와 같이 요리해 본 적은 있나요. -물론이죠. 지금도 어머니와 명절 음식을 함께 장만해요. 어머니는 국과 손주들에게 줄 잡채를 만드시고, 저는 25년째 손만두와 동그랑땡, 전을 도맡아 합니다. →개발한 레시피가 대략 몇 개나 됩니까. -글쎄요, 모아 놓지 않아 잘 모르지만 어마어마하겠죠. 레시피는 주로 주말에 생각해요. 즉흥적으로 생각나면 적어 놓습니다. 예전에 애기 요리사일 때는 레시피에 엄청 집착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생각이 바뀌더라구요. →레시피도 지적재산권에 해당되지 않나요. -전 레시피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어요. 미국에서 일할 때 일인데, 미슐랭 별을 받은 정말 유명한 레스토랑이었어요. 주방 맨 뒤편에 책들이 쌓여 있었는데 식당에서 사용하는 레시피와 소스 등이 적혀 있었어요. 처음에는 그 책에 욕심을 냈어요. 사진을 찍어 집에 가서 옮겨 적어 놔야지, 생각도 했어요. 그 레시피를 갖고 다른 데 가서 만들면 그 맛이 날 거라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죠. 손맛이라는 게 있는데 말입니다. 레시피는 언제든 줄 수 있어요. 줘도 똑같이 못 한다는 자신감이 있죠. 주방에서 일하는 친구들 중에서는 제 레시피를 깬 적이 있어요. 더 맛있는 레시피는 반영해서 바꿔요. 미국에서 배운 건 레시피를 소수가 독점하고 있으면 나아지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 문화가 매우 충격적이었지만 정말 좋았어요. →자연주의나 유기농이 건강에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모두가 즐길 수는 없는 게 현실 아닌가요. -일전에 특강을 갔었는데, 건강한 요리를 해서 드셔야 한다고 하니까 객석에서 어떤 분이 “난 건강한 음식 못 먹겠네요. 돈이 없어서” 하시는 거예요. 한방 먹은 기분이었어요(자원봉사, 최근 시판된 L사의 커스터드 신제품 개발에 참여한 것도 이런 고민의 결과인 셈이다). →최근 커스터드 TV 광고에 나오던데요. -제과업체와 8개월 싸워 가며 내놓은 신제품입니다. 주위에서 만류했지만 제 의견을 반영해 주겠다고 해 시작했어요. 커스터드는 모든 아이들이 먹는 간식이잖아요, 셰프의 요리가 아니라. 아이들이 먹는 거니까 성에는 차지 않지만 기존의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간식을 만들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어요. →음식 가격대가 일반 대중에게는 부담스러운데. -그래서 새 레스토랑을 준비하고 있어요. 제 이름을 딴 캐주얼 이탤리언 식당. 시끌벅적하고 이곳(보나세라)보다 대중적이며 젊은 층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곳이 목표입니다. 샘킴은 경기 김포의 165㎡(50평) 규모 텃밭에서 3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올여름부터는 근처에 하우스도 세워 토마토를 더 재배할 계획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사는 사람에게서 뿜어 나오는 긍정의 에너지가 곁에 있는 사람까지 기분 좋게 한다. 김균미 부국장 kmkim@seoul.co.kr 샘킴 셰프는 셰프 샘킴의 본명은 김희태다.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요리가 좋아 199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유학을 갔다. 2006년 할리우드 키친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돌아와 2009년 32세의 나이에 이탤리언 레스토랑 ‘보나세라’의 총괄셰프가 됐다. 첫 한국인이자 최연소 총괄셰프였다. 2010년 미국스타셰프협회 아시아 스타 셰프에 선정됐다. 드라마 ‘파스타’의 실제 모델로 유명하다.
  • 90세 생일 맞은 엘리자베스 여왕 손주들과 찰칵

    90세 생일 맞은 엘리자베스 여왕 손주들과 찰칵

    영국 군주로선 처음으로 21일(현지시간) 90세 생일을 맞은 엘리자베스 2세(가운데) 여왕이 손주, 증손주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최장 재위(64년 75일)에 더해 이날 최고령 군주 기록도 갈아 치웠다. 생일을 기념한 예포 21발이 발사됐지만 공식 축하 행사는 왕실 관례에 따라 올 6월로 미뤄졌다. 대신 왕실은 이날 손주 2명, 증손주 5명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미국의 유명 사진작가인 애니 리버비츠의 작품이다. 런던 AFP 연합뉴스
  • [新전원일기] 은아목장 7억 매출의 비결

    [新전원일기] 은아목장 7억 매출의 비결

    봄볕 가득한 날이었다. 고속도로를 벗어난 후 내비게이션이 이끌어주는 대로 몇 번 굽이진 길을 달렸고, 길 끝에 초원이 보인다 싶더니 은아목장이 나타났다.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하얀 집 몇 채가 하늘과 닿아 있었고 태어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송아지와 자유로운 말 ‘벨라’와 그들이 노닐 법한 너른 마당이 보였다. 길을 오르다 멈춰 서서 뒤를 돌아다보면 구름 아래 펼쳐진 방목의 초원이 보였다. 하늘 아래 펼쳐진 이 아름다운 유럽형 목장을 이룬 사람이 바로 조옥향(64) 대표다. 지체장애 3급의 그녀가 불편한 다리를 끌고 가족과 함께 이곳 경기 여주시 금당리에 들어온 게 벌써 33년 전의 일이었다. 긴 세월을 지나 지금 그녀의 남편 김상덕(67)씨와 두 딸이 은아목장을 꾸려 나가고 있다. 신림동에 서울대학교가 자리잡기 전 그곳엔 곳곳에 목장이 있었다. 은아목장의 조 대표가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인 55년 전에 그녀의 아버지 친구분 목장을 구경 삼아 나들이 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자전거에 실린 우유통이 비포장도로를 지나가며 저희들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듣기 좋았죠. 옛날엔 우유를 그런 깡통으로 배달을 했어요. 그 길, 구름, 나무, 자전거를 쫓아 달려가는 강아지 그리고 초원 같은 걸 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해요.” 조 대표는 그 시절 그곳에서부터 낙농가의 꿈을 키웠으리라. # 목장의 여걸들 은아목장은 유럽형 축산을 실현한 국내 몇 안 되는 목장 가운데 하나다. 기술력이 뛰어난 친환경 목장이며 다양한 형태의 체험 프로그램을 접목한 ‘한국형 목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체험 목장으로 이름을 처음 알리던 2007년 무렵엔 200여명 남짓 다녀갔는데, 지난해에는 외국인 8000명을 포함해 2만여명이 다녀갔으며 체험교육비로 올린 매출액만 3억 5000여만원에 이른다고 했다. 지난해 은아목장의 총매출액이 7억원 정도였으니 그 절반은 목장을 방문한 사람들이 지불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성공은 조 대표가 황무지에 젊음을 바친 지난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땐 아무것도 없었어요. 언덕에 텐트 쳐놓고 지내는데 밥 지을 물이 없어 몇 달 동안 개울물 떠다 지었죠. 그땐 가스도 안 들어와서 땔감을 모아와 불을 피웠어요. 하루는 비가 퍼붓는데 텐트 안에서 그 비를 보고 있자니 서글프고 괜히 여주로 내려왔나 싶기도 했어요.” 조 대표의 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은아목장은 평화와 자유가 가득했다. “이런 작은 목장은 사람을 많이 쓸 수 없어요. 체험이나 유가공 같은 일은 비수기가 있어서 작은 목장은 가족들끼리 꾸려 나가는 게 좋아요. 우리도 두 딸하고 남편이랑 목장을 꾸려 가고 있어요.” 그녀에겐 두 딸이 있다. 목장의 체험 프로그램을 맡은 큰딸 지은(31)씨와 목장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작은딸 지아(30)씨가 조 대표의 양 날개이자 은아목장의 여걸들이다. “딸들에게 미안해요. 아들이 없으니 목장 일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딸들밖에 없는 거예요. 시골에서 하는 일이 쉬운 게 없어요. 제 몸 불편하니까 남편이랑 딸아이들이 돕는데 얘들이 큰 후로는 사실 거의 목장 일꾼처럼 살았죠. 사춘기 시절부터 예쁘게 꾸며본 적이 없어요. 그럴 시간이 없었죠. 지금도 새벽 5시면 일어나 젖을 짜야 하는데 우리 애들은 중학교 때부터 그 시간에 일어나 젖을 짜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어요. 소똥을 치우고, 건초를 준비하고, 밭일을 하고…. 예쁘게 자라야 하는 그 시간들을 목장에서 보내게 해서 늘 미안하죠.” 지금은 두 딸이 주력이 되어 목장을 꾸려 나가고 있다. 목장의 이름을 ‘은아목장’으로 만들 때 두 딸의 이름 마지막 글자를 따와서 만든 연유도 딸들이 목장을 꾸려 나가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녀의 두 딸은 소위 말해 유럽형 목장에 최적화된 교육을 받아 왔다. 큰딸인 지은씨는 프랑스의 유명 요리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수제 치즈며 요구르트 그리고 피자와 쿠키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은아목장 내에 있는 ‘엘리 카페’는 연간 수천명이 다녀가는 아이스크림 체험장이 되었는데, 그녀가 구상해 일군 공방이며 요구르트를 만드는 균주실험의 실험장이기도 했다. 작은딸인 지아씨는 일본에서 낙농업과 유가공을 공부하고 돌아와 은아목장의 낙농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녀가 유학을 다녀온 일본 홋카이도의 낙농학원대학은 종합대학으로 한국인 출신 중 여학생은 지아씨가 처음이라고 했다. 유럽인들이 죽기 전에 맛봐야 한다는 소량 생산의 리코타 치즈부터 은아 플레인 요거트, 은아 버터쿠키, 은아 다쿠아즈 등은 두 딸에 의해 탄생한 지구상에 하나뿐인 은아목장만의 먹을거리가 되었다. 두 딸은 결혼도 해서 아이들도 있는데 결혼 조건이 딸들이 목장 일을 해야 하니 그 점을 이해해 줄 남자여야 했다는 것이다. 두 딸과 조 대표, 그녀의 남편 그리고 손주들은 목장에서 지내고 그녀의 두 사위는 본의 아니게 주말 부부로 지낼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살아 내야 하는 일이 힘에 부칠 때가 있다. 그래도 소음 한 자락 없고 찌든 때 한 점 없는 이런 곳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겨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랭보의 유명한 시 ‘나의 방랑’에 보면 ‘내 여인숙은 큰 곰자리’라는 노숙하는 자신을 표현한 시구가 있는데 은아목장이라면 노숙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런 삶을 조 대표는 물론 두 딸도 순응하며 살고 있다. # 서울 여자가 목장의 주인이 되기까지… 조 대표는 치과 의사였던 부친의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집안의 맏딸이었던 그녀는 목장을 꾸려 나가면서 다리뼈가 세 번이나 부러지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그 점을 부친께서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런 그녀가 결혼 후에 경기도 여주행을 결심했다. 건설회사를 다니던 남편과 아버지의 고향이자 뿌리가 있는 여주로 내려왔다. 주변 사람들의 눈에는 한심한 짓거리로 보였을 것이다. 다리 불편한 여자와 서울서 직장 생활을 했던, 목장 경험이라곤 전무한 부부 내외가 시골로 내려와 목장을 하겠다니 혀를 찰 법도 했다. 그녀 나이 스물아홉 살 때의 일이었다. “아버지가 주말이면 일찍 병원 문을 닫고 여주에 다녀가셨어요. 버스 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버지가 그러셨죠. 농업은 창조적이고 경이로운 직업이라고요. 제 딸들을 이곳에서 낳았고 이곳에 정착하도록 했던 것도 그 시절 아버지가 가르쳐준 그 철학 그리고 아버지가 저를 믿어준 힘 때문이었는지도 몰라요.” 그녀는 초원 위에서 가족과 함께 수십 년을 버텨내고 개척하고 이루어냈다. 초원의 외로움과 고독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자식들은 쉬이 부모의 삶을 닮아가는 게 섭리일 터. 목장을 찾았던 한 낙농가가 아들도 없는 집안에서 목장을 해서 뭐하겠느냐고 말했을 때 작은딸인 지아씨가 그런 말을 했다. “아저씨, 제가 이 다음에요, 아들 많은 집에서 아들 데려다가 이 목장 할 거예요!” 작은딸의 말은 절반은 맞았다. 결혼했고 사위도 생겼지만 사위가 아니라 작은딸이 ‘목부’의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 대표의 고민도 이 지점에 있었다. 목장은 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 농업이다. 그녀와 그녀의 두 딸이 가꾸어 나가기에는 벅찬 일이었다. 게다가 2000년 우유값이 폭락한 ‘우유 파동’도 겪었다. 그때부터 조 대표는 ‘힘의 목장’이 아니라 노동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창의적인 목장’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7년간의 준비 끝에 2006년 낙농진흥회로부터 체험목장으로 인증받았다. 가족 단위 혹은 어린아이들이 단체로 찾아와 소들에게 먹이를 주고 젖도 짜고 치즈와 피자, 요구르트 등을 만드는 목장으로 새롭게 거듭났다. # 떠나고 싶었지만 떠날 수 없는 나라 2000년 무렵 조 대표는 기존의 헌 우사를 체험장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개발 차익을 노린다는 오해가 발목을 잡기도 했다. 또한 목장의 새로운 수익도 창출하고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신선한 경험을 안겨주기 위해 유제품 가공 공장이 필요했다. 조 대표는 10여년 가까운 세월 동안 끊임없이 정부 기관을 찾아다니며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공무원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나 축산인 행사가 있을 때면 꼭 찾아가 은아목장에서 나온 우유로 만든 치즈를 나눠주기도 했다. 그 노력 덕에 까다로운 규제를 완화할 수 있었고 공장을 설립할 수 있었는데 그게 2009년의 일이었다. 그 덕에 소규모 낙농은 물론 산양 등의 축산업까지도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목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낙농의 나라라면 어디든 연수를 떠났다. “일본은 목장 경영에서 우리보다 적어도 20년은 앞선 나라였어요. 우유를 가공하고 유제품을 만들고 목장을 가꿔 체험이 가능한 목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걸 절감했죠. 둘째 딸을 일본 홋카이도의 낙농대학으로 유학을 보낸 건 그 모든 걸 배워 오라는 뜻도 있었던 겁니다.” 그녀는 작은딸의 대학 지도교수이자 후견인이 되어 준 안도 고우치 교수를 만나 치즈 공방 설계 등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은아목장은 요즘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도 제품을 납품하고 있고 고급 치즈와 요구르트의 진정한 맛을 아는 소비자들 덕에 몇몇 백화점에도 들어가고 있다. 생산량이 일정 궤도 이상 올라가면 중국 등 해외 수출도 계획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그녀와 같은 낙농가의 삶이 가능할까 싶어 물었다. “처음엔 자본이 굉장히 많이 들기 때문에 낙농 귀농은 어려워요. 축사며 착유기 등 돈이 많이 들어가요. 대신 가축 사육에 관심이 있다면 젖을 생산하는 산양으로 시작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족의 절대적 믿음이에요. 남자라면 아내의 지지가 무엇보다 필요하죠. 그래야 귀농이 가능해질 거예요.” 그녀가 오랫동안 회장을 맡고 있는 ‘여주 낙농검정회’는 농장의 후계자 8명과 함께 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낙농가의 삶과 축산업에서 희망을 일구기 위한 시작이다. 검정회는 1998년 전국 최초로 설립됐으며 전국의 낙농가들이 롤모델 삼아 벤치마킹하러 오기도 한다. 30년 세월 동안 낙농가에게는 최고의 명예인 ‘홀스타인 품평회’에서 소규모 농가로서는 기적이랄 수밖에 없는 그랜드 챔피언을 2번 차지했던 조 대표와 두 딸은 세상의 여러 편견을 깨버린 여걸들임에 분명하다. 은아목장의 세 여걸이 그걸 몸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글쓴이 소설가 전민식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 주요 작품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불의 기억’ ‘13월’ ‘9일의 묘’ 등 다수
  • 69세 프로테니스 선수 “두 경기나 치러냈어요”

    69세 프로테니스 선수 “두 경기나 치러냈어요”

    올해 69세의 할머니 프로테니스 선수가 국제테니스연맹(ITF)이 주최하는 국제대회에 출전해 거뜬히 두 경기를 소화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앨라배마주 펠햄에서 열리고 있는 ITF 프로서킷 예선에 출전한 게일 폴켄버그.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그녀는 11일(이하 현지시간) 대회 2회전에서 무려 50세나 어린 톱시드 테일러 타운센드에게 세트 스코어 0-2(0-6 0-6)로 져 3회전 진출이 좌절됐다. 타운센드는 한때 세계주니어 랭킹 1위였으며 이제 막 프로 데뷔를 앞두고 있는 유망주. 폴켄버그는 12포인트만 따냈을 뿐이다. 폴켄버그는 “테일러, 그녀는 미친 것처럼 딱딱 쳐내더군요.난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테니스를 이기려면 열심히 해야 하는 뭔가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1998년에 마지막 프로 승리를 거뒀던 그녀는 전날 대회 1라운드에서 로잘린 스몰(22)을 세트 스코어 2-0(6-0 6-1)으로 격파하고 2회전에 올라왔다. 1960년대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에서 취미로 테니스를 했던 그녀는 38세 때 프로 선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88년 호주오픈테니스 본선 진출권을 손에 쥐기도 했으며 다른 대회에서 당시 13세의 제니퍼 캐프리아티에게 패배한 경험도 있다고 저널에 털어놓았다. 형편이 좋지 않아 1990년댄에는 센트럴플로리다 대학의 남녀 테니스 선수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손주뻘 상대와 겨루는 게 즐겁다고 털어놓은 그녀는 “믿거나말거나 더 나이든 축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지는 게 더 어렵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또 은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난 70세에도 경기를 뛰고 싶고 이기고 싶다”면서 “그 때까지 반년도 남지 않았다”고 기염을 토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SSEN 이슈] ‘코빅’ 충청도의 힘 폐지, 장동민 “웃음 위해 상처주지 않겠다”더니..

    [SSEN 이슈] ‘코빅’ 충청도의 힘 폐지, 장동민 “웃음 위해 상처주지 않겠다”더니..

    한부모가정 조롱 등으로 논란이 된 tvN ‘코미디 빅 리그’의 코너 ‘충청도의 힘’이 방송 1회 만에 폐지된다. ‘코미디 빅 리그’ 제작진은 7일 개그맨 장동민과 황제성 등이 한부모가정 조롱 논란에 휩싸인 것에 대해 “모든 것은 제작진의 잘못이며, 제작진을 믿고 연기에 임한 연기자에게도 사과의 말을 전한다”며 “해당 코너는 폐지하여 금주부터 방송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충청도의 힘’ 폐지 소식을 알렸다. 제작진은 이어 “시청자 여러분께 불편함을 끼친 점 사죄드린다. 본 코너로 인해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도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앞으로는 신중하게 생각해 좀 더 건강하고 즐거운 코미디를 선보이도록 노력하겠다”고 사과했다. 지난 3일 첫 선을 보인 코너 ‘충청도의 힘’에서 7세 애늙은이 역을 맡은 장동민은 새 장난감을 자랑하는 친구에게 “쟤네 아버지가 양육비 보냈나 보다” “부러워서 그랴, 너는 봐라 얼마나 좋냐 선물을 양쪽에서 받잖여, 재테크여, 재테크”라고 놀렸다. 장동민의 할머니로 출연한 황제성 역시 같은 아이를 향해 “너는 엄마 집으로 가냐, 아빠 집으로 가냐” “아버지가 서울서 두 집 살림 차렸다는데” “네 동생 생겼단다 서울서” 등 한부모가정 자녀를 조롱하는 듯한 대사를 했다. 또한 극중 장동민은 장난감 ‘또봇’을 사기 위해 “할머니 앞에서 고추를 까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코너 말미에서 할머니가 “늙어서는 죽어야지”라고 말하자 “기분이라도 풀어드려야지 어쩌겠냐”며 무대 뒤편에서 할머니가 손주의 성기를 만지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어 장동민은 우는 시늉을 하면서 “한 번 까서 사람 한 번 살렸잖냐”며 불쾌해 하는 모습을 연기했다. 방송이 끝난 후 시청자들은 해당 코너가 이혼가정 자녀를 조롱한 것을 비롯해 노인 비하, 아동 성추행 미화 등 다각도에서 심각한 문제를 보였다고 비판했고 논란이 확대됐다. 한부모가정 권익단체인 ‘차별없는가정을위한시민연합’(대표 이병철, 이하 차가연)은 7일 오후 “부모의 이혼으로 깊은 상처를 받은 한부모가정의 아이들과 이혼 당사자인 부모들을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조롱해 극심한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모욕행위를 직접 실행하거나 이를 조장 내지는 방조했다”며 개그맨 장동민, 황제성, 조현민과 tvN 김성수 대표, ‘코미디 빅리그’ 박성재 담당PD와 구성작가진 등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앞서 장동민은 여성 혐오가 담긴 발언과 삼풍백화점 사고 생존자를 조롱하는 발언 등으로 논란에 휩싸여 지난해 4월 대국민 사과를 한 바 있다. 당시 장동민은 “방송하면서 웃음만을 생각하다 보니 갈수록 자극적인 소재와 격한 표현을 찾게 됐다. 그 웃음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재미있으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다”며 “발언으로 상처받은 당사자와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이런 일이 없도록 평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장동민은 눈물의 사죄를 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웃음을 위해 소수자들에게 상처를 안기게 됐다. 이렇게밖에 웃길 수 없는 것일까.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코빅 장동민, 논란 속 라디오스타 출연 ‘나비에겐 다정한 남자친구?’ 대체 무슨 말 했길래

    코빅 장동민, 논란 속 라디오스타 출연 ‘나비에겐 다정한 남자친구?’ 대체 무슨 말 했길래

    개그맨 장동민이 ‘코빅’에서 새로 선보인 코너가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장동민이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시선을 모은다. 6일 장동민 코빅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3일 방송된 tvN ‘코미디 빅 리그(코빅)’의 코너 ‘충청도의 힘’에서 장동민은 새 장난감을 자랑하는 친구에게 “쟤네 아버지가 양육비 보냈나 보다” “부러워서 그랴, 너는 봐라 얼마나 좋냐 선물을 양쪽에서 받잖여, 재테크여, 재테크”라고 이혼가정 자녀를 조롱하는 발언을 했다. 또한, 극중 장동민은 장난감 ‘또봇’을 사기 위해 “할머니 앞에서 고추를 까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코너 말미에서 할머니가 “늙어서는 죽어야지”라고 말하자 “기분이라도 풀어드려야지 어쩌겠냐”며 무대 뒤편에서 할머니가 손주의 성기를 만지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방송이 끝난 후 시청자들은 해당 코너가 이혼가정 자녀를 조롱한 것을 비롯해 노인 비하, 아동 성추행 미화 등 다각도에서 심각한 문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이에 ‘코빅’ 제작진은 “방송을 보고 상처받으신 분들께는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해당 영상은 재방송 VOD에서 삭제 조치 할 계획이며, 코너 존폐 여부도 논의해서 조만간 결정할 방침”이라며 즉각 사과에 나선 상태. ‘장동민 코빅’ 논란이 불거지며 이날 방송이 예정된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는 난감한 상황이 됐다. 이날 ‘라디오스타’에는 실제 커플인 장동민과 나비가 출연한다. 솔직한 입담을 자랑하는 장동민 나비 커플의 동반 출연은 방송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또 장동민과 옹달샘으로 활약 중인 유세윤 유상무까지 함께 출연하며 기대를 높인 상황. 방송에 앞서 제작진이 공개한 사진에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장동민과 그런 그의 모습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나비의 모습이 담겨 있다. 시청자들이 장동민의 러브스토리를 웃으며 봐줄 수 있을까. 장동민 나비 유세윤 유상무가 출연하는 ‘라디오스타-옹달샘에 빠진 나비’ 특집은 오늘(6일) 밤 11시10분 전파를 탄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4·13 격전지를 가다] 4년 만에 재격돌 서울 영등포을

    [4·13 격전지를 가다] 4년 만에 재격돌 서울 영등포을

    1일 아침 서울 신도림역 근처. 빨간 글씨로 ‘약속합니다’라고 쓰인 피켓을 목에 걸고 출근 인사에 나선 권영세 전 새누리당 의원에게 시민들이 제법 아는 체를 했다. 직장인 민동환(45)씨는 “이 동네에서 국회의원을 오래 한 사람이라 많이들 기억하고 있다. 주중 대사도 했던 양반 아니냐”며 “지난 총선 때 야당 초선을 밀었는데 힘을 별로 못 쓰는 것 같더라”고 했다. 권 전 의원은 4·13총선에서 ‘힘 있는 여당 4선’을 앞세웠다. 16~18대 국회 내리 3선을 지낸 그는 친박근혜계 핵심 인사다. 지난 19대 총선 당시 사무총장으로 공천 실무에 관여했으면서도 정작 본인 선거에선 5.2% 포인트(4508표) 차로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패배했다. ●권 “메낙골 공원화 사업 다시 시작” 비슷한 시간 신 의원은 영등포구 여의동 여의도초등학교 앞에서 등굣길 인사를 했다. 방송사 앵커 출신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신 의원도 ‘여의도 대표 선수’ ‘특별건축구역 지정으로 규제 대폭 완화’라고 쓴 팻말을 메고 지지를 호소했다. 손주를 바래다주러 나온 한모(58)씨는 “신 의원이 기성 정치인과 다르게 말이 많지 않으면서도 진중하게 지역 활동을 해 왔다”며 “괜찮은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이라고 호평했다. 서울 서남권인 영등포을은 여야 지지세가 강남·북으로 갈리는 서울의 축소판이다. 여의동과 대림·신길동이 샛강을 끼고 나뉘는데 고층 아파트가 밀집한 여의동은 여당세, 구도심 지역인 나머지는 야당세가 우세하다. 4년 만의 리턴매치가 이뤄지는 4·13총선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권 전 의원이 앞서 나가고 있다. 변수는 국민의당 김종구 후보와의 야권 후보 단일화 여부다. 신 의원은 “이미 연대 의사를 전했는데 답이 없다”면서 “다시 한번 제안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시·구의원 출신으로 지역 기반이 탄탄한 김 후보는 이날 대림동 우리시장 유세를 돌던 중 “야권 연대는 절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신, 야권 연대 구애의 눈길 계속 권 전 의원과 신 의원은 “상대가 그동안 한 일이 없다”고 서로 깎아내렸다. 권 전 의원은 “병무청 부지의 메낙골 공원화 사업 등이 제가 4년 전 원외로 밀려난 이후 진척 없이 올스톱된 상태”라며 “공약은 서로 비슷하지만 문제는 누가 실천할 힘이 있는지다”라고 말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역시 지역민 기대감을 반영해 전날 대림시장 지원 유세에서 “권영세는 4선으로 당선되면 집권 여당 원내대표나 당 대표를 할 것”이라고 힘을 실었다. ●김, 기반 탄탄 “연대 없다” 자신감 그러나 신 의원은 “권 전 의원이 3번이나 배지를 달았지만 한 일이 제로에 가깝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등에도 연루됐던 당사자”라고 압박했다. 자신이 당선되면 테러방지법 폐기, 여의도 노후 아파트 재건축 추진, 신길동 역세권 개발 사업 등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대림시장 야채상인 김옥자(53)씨는 “신 의원이 주차장 정비 등 시장을 현대화하며 도움을 줬다. 재선을 해야 하던 일을 마무리짓지 않겠나”라고 지지했다. 여의동의 한 마트에서 만난 주부 김세은(32)씨도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 개성공단 폐쇄 등 잘한 일이 없는 것 같다. 이 정부 실세라 해도 별로 믿음이 안 간다”고 했다. 반면 여의동 부동산 중개인 장모(49)씨는 “야당이 그동안 너무 발목을 잡았다. 일하는 국회를 만들려면 이번엔 여당을 찍어 줘야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 대신시장에서 만난 신길1동 주민 고영숙(56·여)씨는 “동네에서 자꾸 ‘3번(국민의당)을 찍자’는 사람이 많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트럼프 8번째 손주

    트럼프 8번째 손주

    도널드 트럼프의 딸 이반카가 27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내 마음은 충만하다”는 글과 함께 갓 태어난 아들을 공개했다. 남편 재러드 쿠시너와의 사이에서 낳은 세 번째 아이로, 트럼프의 여덟 번째 손주다.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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