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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천·김태환 이회창·이용희 직계비속 2명 병역면제

    현역 국회의원 중 병역 면제를 받은 아들, 손자를 2명이상 둔 의원이 4명으로 집계됐다. 병무청이 9일 공개한 18대 국회의원 299명과 직계비속(18세 이상 남자) 249명의 병역 현황에 따르면, 직계비속 2명이 면제를 받은 의원은 한나라당 강성천·무소속 김태환 의원,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이용희 의원 등이다. 강성천 의원의 장남은 고령(35세까지 해외거주 후 36세에 면제)으로, 차남은 국적상실(해외국적 선택)로 군대에 가지 않았다. 김태환 의원의 장남과 셋째 아들은 각각 국적상실과 질병(수핵탈출증)을 이유로 면제를 받았다. 이 총재는 이미 알려진 대로 장·차남이 모두 체중미달로 면제된 경우다. 이용희 의원은 3남이 수핵탈출증 및 후종인대골화증으로, 손자는 시력장애로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 18대 국회의원 전체적으로는 17대 때보다 병역 면제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 국회의원의 81.8%인 211명이 현역 또는 보충역 등으로 복무를 마쳤고 면제된 사람은 18.2%인 47명이었다. 이는 17대 의원 면제율 24.2%(25명)보다 6.0%포인트 낮은 수치다. 자녀들의 경우 신고인원 249명 중 징병검사 대상자 34명을 제외한 215명 가운데 89.8%인 193명이 병역복무를 마쳤거나 복무 대기 중인 것으로 집계됐고 면제자는 22명(10.2%)으로 나타났다. 이는 17대 의원 직계비속 면제율 13.7%(25명)보다 3.5%포인트 낮은 것이다. 의원들의 면제 사유로는 질병이 25명으로 가장 많았고 수형(옥살이) 9명, 고령 5명, 장기대기(병력자원이 넘쳐 입대를 기다리다가 일정 기한을 넘겨 면제받은 경우) 6명, 신장·체중 1명, 생계곤란 1명 등이고 직계비속 역시 질병이 15명으로 가장 많고 고령 2명, 신장·체중 2명, 국적상실 2명, 영주권 취득 1명 등으로 나타났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엘리자베스 여왕 “왕자와 결혼하려면 취직해”

    “취직하기 전까지는 안돼!”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82)이 손자며느리 감의 ‘까다로운(?)’ 조건을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윌리엄 왕자의 여자친구인 케이트 미들턴(Kate Middleton·26)이 정식으로 취업 하기 전에는 결혼을 허락할 수 없다고 밝혔다. 왕실 보좌관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여왕은 대학을 졸업한 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정식 직장이 없는 미들턴에 불만의 뜻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을 졸업한 미들턴은 최근까지 영국의 고급 의류 체인 ‘지그소’(Jigsaw)의 구매담당을 맡고 있었으나 지난 해 말 사진작가로 전직하기 위해 이를 그만뒀다. 이후 아버지와 오빠가 운영하는 회사의 홈페이지에 쓰일 사진을 직접 찍는 등 사진에 큰 관심을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정식 취업이 아닌 아르바이트 수준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미들턴은 멋진 여성이지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도통 모르겠다.”면서 “윌리엄 왕자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자신의 힘으로 직장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두 사람의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가지만 아직 시기상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케이트가 정식으로 직업을 찾기 전에 결혼식을 치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취업’을 강조하는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해 영국 언론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에드워드 왕자의 부인 소피 웨식스 공작부인을 총애하는 이유도 그녀가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전문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미들턴이 일자리를 찾게 된다면 윌리엄 왕자가 군복무를 마치는 내년 쯤 결혼할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1일 TV 하이라이트]

    ●영상앨범 산(KBS1 오전 7시) 경기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연인산은 매발톱, 현호색, 너도바람꽃 등 희귀 야생화와 철쭉 군락지로 유명하다. 또한 연인능선을 타고 정상에 올라 다시 명지산으로 이어지는 종주코스는 주변 산들의 웅장한 산세까지 볼 수 있어 더욱 인기있는 코스이다.70년대 우리나라에 요들을 알리고 붐을 일으킨 가수 김홍철과 동행한다.●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20분) 지난 2002년 9월,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에서 발견된 미라가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살아있는 것 같아 보이는 머리카락과 탄력있는 피부. 모든 것이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는 이 미라가 주목받은 가장 큰 이유는 자궁 안에 있는 아기 때문이다. 첨단과학을 통해 복원된 440년 전 조선시대 엄마와 아기가 공개된다.●엄마가 뿔났다(KBS2 오후 7시55분) 친구들과 냉면을 먹으러 갔던 충복은 최영감이 여자친구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하자 뿌리치고 나가버리지만 억지로 잡혀 들어와 자리하게 된다. 한편 상견례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가 주저앉자 영수가 차를 바꿔 주겠다고 하지만 일석은 할아버지 때부터 타온 차를 버린다는 건 할아버지를 버리는 것 같다며 싫다고 한다.●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50분) 1821년 창백한 얼굴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프랑스의 한 영웅. 그는 바로 프랑스의 위대한 통치자 나폴레옹이었다. 화려했던 생전의 삶과는 대조적으로 초라했던 그의 죽음. 아직도 그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데…. 과연 누가 왜 나폴레옹을 죽였는가?●굿모닝 세상은 지금(SBS 오전 7시35분) 자녀에게 기대지 않고 부부 둘이서 여생을 즐기는 실버세대, 통크족(Two Only No Kids). 꼭 경제적인 여유보다도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고, 부부가 노후 생활의 주역이 되는 심리적 독립도 중요하다. 여행, 레저 등을 즐기며 제2의 인생을 사는 노부부와 이들을 타깃으로 한 실버마케팅 열풍을 살펴본다.●행복합니다(SBS 오후 8시50분) 할머니가 손자며느리 서윤에게 안 여사와 시아버지 철곤의 결혼날짜를 음력 6월15일로 잡았으니 준수와 둘이서 준비를 하라고 하자, 준수는 아직 때가 아니라며 만류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이것저것 따져 미룬 게 20년이라면서 이번만은 미룰 수 없다고 서윤에게 타이르고, 서윤 역시 할머니 말에 동의한다.●희망풍경(EBS 오전 6시) 천재 드러머 김응윤씨는 1992년에서 2002년까지 10년간 국내 최고의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에서 드러머를 맡았던 정신지체 3급의 장애인이다. 블랙홀의 리더 주상균에게 스카우트되면서 10여년을 프로밴드에서 활동하게 됐다. 하지만 프로밴드의 날마다 이어지는 연습과 공연을 버텨내지 못하고 종적을 감추고 마는데….●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5시30분) 세계 패션계에 친환경 의상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친환경 패션 붐은 환경오염 개선과 더불어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에도 영향을 준다. 각국의 기업과 환경단체들이 개발도상국의 유기농 목화생산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그린 패션에 대해 알아본다.
  • 영등포구 한강미디어고 영상동아리 영정사진 봉사

    영등포구 한강미디어고 영상동아리 영정사진 봉사

    “할아버지 화나신 분 같아요. 사진이 잘 나오려면 장가가실 때처럼 활짝 웃으셔야 해요.” 29일 오후 영등포구청 지하에 마련된 영정사진 촬영장. 카메라 앞에 앉은 김해식(79)할아버지와 일일 사진사로 나선 학생 사이에 정겨운 실랑이가 벌어진다. 자손들에게 남길 마지막 사진이란 생각에서인지 할아버지의 긴장된 얼굴이 잘 펴지지 않는 게 문제였다. “이렇게?” “아니 좀 더 웃으세요.” “학생. 난 장가갈 때도 안 웃었어. 원래 생겨 먹은 게 그러니까 그냥 찍어.”난데없이 미소 짓기가 어색하고 머쓱한 탓도 있다. 결국 할아버지는 촬영을 마치고 의자에서 일어나서야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활짝 폈다. ●봉사활동 하러 충남 당진까지 한강미디어고 영상동아리 ‘불끈’ 소속 학생들은 28일과 29일 영등포구청에서 노인들을 위한 영정사진 촬영을 진행했다. 지역 노인들을 위해 학생들은 이틀간 200명이 넘는 노인들의 모습을 카메라 속에 담았다. 촬영한 사진은 얼굴에 난 잡티 등을 제거해 주는 보정 작업을 거쳐 노인들에게 액자로 전달된다. 학생들이 이렇듯 어르신들에게 영정사진 찍기 시작한 건 3년 전부터다. 즐겨할 수 있는 사진으로 남을 위한 일을 해보자는 취지였다. 학생의 반응도 노인들의 호응도 기대 이상이었다. 이날 구청을 찾은 최정숙(72) 할머니는 “손자 손녀 같은 아이들이 찍어주니까 (영정)사진도 기분 좋게 찍을 수 있었다.”면서 “보기엔 아기같기만 한데 마음 씀씀이가 기특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학교 근처인 양평동 주변 노인을 위한 사진 봉사를 시작으로 충남 당진군 영전마을까지 외연을 조금씩 넓혀 나갔다. 그사이 아이들도 차츰 변해 나갔다. ●영등포구 400만원 등 도움 이어져 오용준(19)군은 “시골 마을을 찾았을 때 눈이 안 보이는 한 할머니가 영정 사진 때문에 지팡이를 짚고 찾아오신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길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하고 바래다드리는 길 내내 남몰래 눈물을 훔쳤는데 그후 봉사에 빠질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봉사하면서 아이들이 배우고 자라났다고 학교 선생님들도 입을 모았다. 학생들의 모습에 구청과 어른들도 도와주겠다며 팔을 걷었다. 영등포구는 400만원 예산을 책정해 ‘액자 만들기’를 지원하는 한편 장소제공과 노인들의 섭외 등 잡일을 도맡아 줬다. 시장 한복집 아주머니는 할머니들을 위한 새 한복을 빌려줬고 한 제과업체 사장님은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어르신들이 먹을 간식을 후원했다. 3년째 사진 봉사를 해온 조혜림(19)양은 “작고 어렵지 않은 일을 해드린 건데 받으시는 분들이 너무 고마워해 오히려 미안스러울 정도”라면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미소를 카메라가 아닌 마음에 담을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9) 경남 햠양군 마천면 창원·동구 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9) 경남 햠양군 마천면 창원·동구 마을

    지리산 곳곳에 걸쳐 있는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마을길 등을 환(環)형으로 연결해 오는 2011년까지 완공 예정인 국내 최초 장거리 도보 트레일 ‘지리산길’의 시범구간 약 20.8㎞가 지난 4월27일 개통됐다. 이번에 선보인 도보길 중 제1구간인 ‘다랭이길’은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까지의 10.68㎞로 전체 구간을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할 수 있는 길이다. 이 ‘지리산길’을 따라 전라도 남원땅에서 해발 700여m의 등구재를 숨 가쁘게 넘어서면 경상도 함양땅에 닿는데, 중봉∼천왕봉(1915m)∼제석봉 능선이 뚜렷한 경상도의 첫 마을이 바로 닥종이(한지) 생산지로 유명한 창원마을이다. 전북과 도계를 이루며 마을 서쪽을 감싸 안은 삼봉산(1186.7m)∼백운산(902.7m) 사이 등구재는 ‘거북이 기어 올라간 지형’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등구 마천 큰애기는 곶감 깎기로 다 나가고, 효성 가성 큰애기는 산수 따러 다 나간다.’라는 민요가 구전될 만큼 감나무가 많은 곳이다. 판소리 6마당 중 가루지기타령에 등장하는 변강쇠와 옹녀가 마지막으로 정착해 살던 곳도 등구(등구재와는 별도로 창원마을 건너편에 등구마을이 따로 있다) 마천이다. 등구재가 아직 산길로 남아 있는 것과 달리 마을 북동쪽 오도재에 도로가 뚫린 건 2003년 11월. 함양 마천 엄천사 도솔암에서 수도하던 청매 인오조사(1548∼1623)가 이 고개를 오르내리며 득도한 터라 ‘오도재’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벽소령과 장터목을 거쳐 온 남해 하동의 해산물이 이 고갯길을 통해 전북·경북·충청도로 운송되었다. 이 고갯길은 2006년 건설교통부에서 발표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굵직한 두 고갯길 틈에 자리한 창원마을엔 그 고갯길만큼 굴곡진 다랑논이 촘촘하다.‘옛날에 한 농부가 논을 갈다가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어보니 그 안에 논이 하나 더 있더라.’는 유래에서 ‘삿갓배미’라고도 불리는 이 계단식 논들엔 자투리땅도 소홀히 할 수 없었던 지리산민들의 억척스러움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이웃에 사는 박금순(71) 할머니와 박순자(64) 할머니는 이제 막 논배미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참이다. “50년 전, 그러니까 스물한 살 노큰애기(노처녀의 사투리) 때 저 등구재 넘어 남원에서 경상도로 시집을 왔지요. 등구재는 주로 인월장 다니려고 넘었고, 오도재는 함양읍 나갈 때 이용했던 고갯마루예요.” 박금순 할머니가 처음 창원마을로 시집 왔을 때만 해도 동네에 길이라곤 거의 없이 돌뿐이었다더니 그 덕에 돌담장이 많은 마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주로 논농사, 칠나무(옻), 감, 호두, 닥종이 생산을 주업으로 삼는데 한지의 경우 한때는 온 동네 사람이 다 했을 정도란다. 삼봉산과 백운산 등산로가 있긴 하지만 최근 공개된 ‘지리산길’이 창원마을 곁을 지나면서 부쩍 외지인들이 많아졌다. 박순자 할머니는 뜯어온 취나물을 팔라고 보채는 타지의 주부들에게 “이까짓 거.”하며 그냥 줘버린 일도 있다. 베풀기 좋아하는 아랫집 박순자 할머니의 가슴엔 상처가 가득하다. 지난해 장남과 남편을 모두 잃은 탓이다. 아들은 세 살배기 어린 딸을 두고 떠났다. 부산에 나가 있던 막내가 농사일을 돕기 위해 귀향했지만 그것 또한 위로가 되지 못한다. 남원에서 시집온 박금순 할머니 역시 작년에 딸을 잃었다고 한다. 아들이 사준 휴대전화를 꺼내 그 속에 담긴 손자 손녀 사진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마당에서도 빠끔 올려다 뵈는 지리산 천왕봉만이 갈기갈기 주름진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 두 여인의 슬픔을 위로한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기자(www.emountain.co.kr)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구의동 동서울터미널에 함양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무동행을 탔다면 마천에서 내려 창원리까지 버스나 택시를 이용한다. 자가용의 경우 88고속도로 지리산IC에서 산내∼마천 방면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함양과 생초IC를 각각 이용한다. 함양이나 남원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오도재(지방도 1023호선)를 넘어 창원마을로 갈 수도 있다.
  • [여성&남성] 슈퍼맘·슈퍼파파의 스트레스

    [여성&남성] 슈퍼맘·슈퍼파파의 스트레스

    가사와 양육 그리고 회사일을 모두 훌륭하게 해낸다는 슈퍼맘은 그 반면에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힘들 때도 많다. 최근에는 젊은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슈퍼파파도 급증하고 있다. 돈만 잘 벌어오는 아빠가 아닌, 육아와 가사까지 도맡아 하는 이들은 슈퍼맘 못지않은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슈퍼맘과 슈퍼파파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가정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맞벌이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요즘, 슈퍼맘과 슈퍼파파들이 서로에게 외치는 호소를 들어보았다. 사건팀 kdlrudwn@seoul.co.kr ●女-돈은 같이 버는데 양육은 내 몫? 중학교 교사인 최모(31)씨는 두 돌된 아이를 키우는 슈퍼맘이다. 최씨의 남편도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이기 때문에 최씨는 육아문제를 분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육아분담의 원칙은 시간이 흐르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 맡겼던 아이를 퇴근 무렵이면 데려와야 하는데 남편은 동호회 등의 저녁 약속을 이유로 늦는 일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요즘에는 최씨가 아이를 찾아오는 게 당연해졌다. 학교 회식은 물론 동료들과의 저녁 약속조차 어려워졌다. 최씨의 불만 섞인 잔소리에 남편은 그래도 한 명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하지 않겠냐면서 출세욕(?)을 보여 최씨의 화를 돋웠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남편이 얄밉더라고요. 같은 학벌에, 같은 직장에 처음에는 당연히 같이 아이를 책임지게 될 줄 알았는데, 결국 육아는 여자 몫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어학원 강사인 이모(28)씨는 육아휴직을 내지 못해 얼마전 아예 신혼집을 친정 근처로 옮겼다. 이제 백일이 갓 지난 아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신청하려 했지만, 학원에서는 그만두라고 눈치를 주었다. 맞벌이를 못하면 집을 장만할 수 없다는 생각에 어렵게 친정 근처행을 택했다. 친정 엄마가 아이를 돌보면서 이씨의 마음은 편해졌다. 하지만 남편이 오히려 얄미워졌다. 전에는 서로 힘들다면서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오는 성의는 있었는데 아예 장모를 믿고 양육을 나몰라라 하기 때문이다. 회사 핑계대고 일주일에 3∼4차례씩 술을 마시고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이씨는 얄미운 남편에게 “우리 엄마 몸도 안 좋다. 누구는 부탁하고 싶어서 한 줄 아느냐.”고 짜증을 냈더니, 남편은 “내가 시켰냐.”고 모른 척했다. “조금만 틈이 있으면 가사와 양육은 자기책임이 아닌 척하는 남자들 너무 얄미워요. 돈도 같이 버는데 왜 자기 피곤한 생각만 하는 거죠.” ●가사·양육·시어머니의 아들타령 ‘삼중고´ 이제 7개월 된 딸을 둔 회사원 윤모(28)씨는 시어머니의 아들타령 때문에 일과 양육도 모자라 또 다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딸을 낳자 시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서 둘째 이야기를 꺼내곤 하신다. 손녀는 바꾸어 달라고도 안 한다. 하루종일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진이 빠지게 아이를 돌보다가 전화를 받으면 화가 지나쳐 눈물이 난다. 남편은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근무를 해야 하고, 윤씨가 시간을 내 시어머니 이야기를 꺼낼라 치면 슬며시 자리를 피한다. 한번은 너무 서러워 딸을 안고 엉엉 울기도 했다. 남들은 아이를 낳으면 살이 찐다는데 윤씨는 스트레스 때문에 오히려 살이 5㎏ 빠졌다. “매일 딸을 돌보는 일과, 남편 뒷바라지, 집안 일, 직장 일을 모두 소화하려다 보면 제 생활 속에 제 자신은 없을 정도예요.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애 낳은지 이제 7개월밖에 안된 저에게 아들타령을 하는 시어머니를 보면 정말 말도 하고 싶지 않아요.” 꿈꾸던 ‘슈퍼맘’의 날개가 어이없이 꺾여버린 사례도 있다. 전문직 황모(33)씨는 연애로 만난 남편과 결혼 직후인 2년 전 바로 아이를 가졌다. 직장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기가 버거울 것이란 생각도 있었지만, 꿋꿋하게 일도 하고 아이도 잘 키워내리라 다짐했다. 방긋 웃는 아이 얼굴을 보면 일도, 아이도 포기할 수 없다는 맘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가 선천적으로 병을 갖고 태어나 생후 몇 개월도 안돼 큰 수술을 2∼3차례 해야 한다는 병원 측의 말을 듣자 시부모와 남편은 애꿎은 황씨에게 화살을 돌렸다.“여자가 너무 책을 많이 보고 공부를 많이 해서 아이가 저렇게 태어났다.”는 것이었다. “부부가 함께 가진 아이인데 남편이 함께 맞벌이하는 저만 계속 탓하더군요. 더 이상 기댈 곳도 없고 너무나 절망스러워서 결국 이혼을 결심했죠.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아이가 완치될 때까지 한동안 직장도 쉬어야 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길 우는 아이 달래느라 진땀 3살짜리 아들을 둔 교사 김모(29)씨는 아침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가까이 사시는 친정어머니가 손자를 돌보려고 아침마다 들러지만 아들은 엄마가 아침에 씻고 메이크업을 하려는 순간부터 울어대기 시작한다.3살짜리 어린 아들이지만 엄마가 출근준비를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크업과 헤어드라이를 하는둥 마는둥 대충 끝내고 울어대는 아들을 달래며 정신없이 아침시간을 보낸다. 처음엔 달래보다가 협박(?)도 해보며 갖은 방법을 써봤지만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김씨를 붙잡는 아들을 볼 때마다 그녀는 속상하다. 가끔은 남편이 돈을 잘 벌어서 집에서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현모양처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침마다 울어대는 아들을 데리고 하루종일 씨름하시는 친정어머니께도 죄송할 따름이다. “다른 집 애들을 가르치는 게 직업인 저로선 제 아들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것 같아 늘 미안한 마음이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우리 아들을 위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놔야죠.” ●男-슈퍼파파 “슈퍼맘 못지않죠.” 서울 광진구에 사는 김모(32)씨는 부인과 가사와 양육을 나누어 하는 슈퍼파파다. 직장 3년만에 대리 승진을 앞두고 있는 그는 일과 가정 둘 다 충실하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김씨는 솔직히 육체적·정신적 만성피로에 시달린다고 호소한다. 그는 아침 6시 일어나 돌이 막 지난 아이와 놀아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7시 출근해서 저녁 10시에 퇴근하고 집에 오면 자신이 맡은 저녁 설거지를 하고 아이와 밤 12시까지 놀아준다. 주말에는 대청소를 한다. 평일에 시간이 없기 때문에 빨래와 음식은 부인이 맡고 자신은 설거지와 청소를 맡았다. 주말약속은 꿈도 못꾼다. 아직은 잘 버티고 있지만 김씨는 체력과 정신 모두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서로 상황에 따라 보충해주자고 시작했는데 가사의 영역을 정하지 않으면 안 되더군요. 둘 다 일은 힘들고 가사는 많고, 솔직히 남들은 주말동호회를 통해 상사와 친해지는데 전 늘 걱정됩니다.” 4살 아들과 2살 딸을 둔 허모(35)씨는 요즘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간호사인 아내가 지난 3월 다시 병원에 나가기 시작한 데다 애들을 봐주던 어머니도 힘들어서 그만 보겠다고 했다. 아내가 주간근무일 때는 낮에 애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저녁에 찾아오기만 하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아내가 야간근무일 땐 거의 죽음(?)이다. 퇴근하면서 애들을 어린이집에서 찾아오는 순간부터 둘째의 우유타기, 첫째 밥먹이기, 집안청소, 빨래 등 잠들기 전까지 쉼없이 움직여야 한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첫째는 잘 놀다 곤히 잠들지만 둘째는 자다가도 시시각각 잠이 깨 울기 일쑤다. 다른 아이들은 돌이 지나면 괜찮다고 하지만 허씨의 딸은 예외다. 하루는 자다 깬 둘째가 하도 울어서 어디가 아픈 줄 알고 병원을 한걸음에 내달았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하니 다시 둘째는 곤히 잠든 것. 결국 허씨는 한숨도 못 자고 출근했다.“일주일에 하루라도 제대로 잘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죠.” 대학 시간강사 조모(34)씨는 최근 아내와 심하게 다퉜다. 아내가 집안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서다. 조씨는 박봉을 받으면서 대학교 세 곳에서 강의를 한다. 아내는 자그마한 편집디자인 회사의 대표여서 연일 야근이다. 조씨는 바쁜 아내를 대신해 집안 일을 도맡아 했다. 갓 돌을 지난 딸도 돌봤다. 딸아이는 낮 동안에는 조씨의 부모가 돌보고, 밤에는 조씨가 맡았다. 서울과 지방의 대학을 오가며 강의하랴 공부하랴 심신이 피곤했지만 아내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집 안팎에서 열심히 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아내도 달라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아내는 자신과 일만 알았다. 조씨는 지난달 초 아내에게 “회사일도 좋지만 집안일에도 관심을 좀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대뜸 “나도 여유롭게 살고 싶으니 돈 좀 많이 벌어와달라.”고 쏘아붙였다. 순간 조씨는 시간강사인 자신에 대해 자격지심을 느꼈다.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죠. 그 사람도 마음이 어디 편하겠어요. 자신의 위치에서 되는 대로 일과 가정 모두에 최선을 다해야죠.” 아직 돌이 되지 않은 아들을 둔 김모(30)씨는 출산휴가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는 아내를 못잡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아내는 철저한 양성평등주의자로 결혼할 때도 집안일을 50대50으로 철저히 구분해서 분담했다. 김씨는 집안에서 결혼 3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없냐며 닦달하기에 아내에게 사정사정해서 아이를 가졌다. 아내는 아이를 가질 경우 육아도 50대50으로 철저히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이를 원하던 김씨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약속했다. 둘은 하루씩 돌아가며 애를 보고 있다. 하지만 회사 회식이 있는 날이면 아내는 하루를 봐주는 대신 이후 이틀의 부담을 덮어 씌운다. 그래서 회식이 자주 있는 분기말에는 일주일을 내리 아이를 보는 경우도 생긴다. 아들이 새벽에 울고불고 해도 아내는 자기가 담당하는 날이 아니면 꿈쩍않고 잠을 잔다. 김씨는 “그럴 때 아내가 정말 밉다.”면서 “당당한 모습이 좋아 쫓아다녔던 내가 바보였다.”고 말했다. ●“행복한 가정 위해 당연한 일” 반도체업계에 종사하는 박모(35)씨는 직장에서는 한 팀의 리더이고, 집에서는 엄마·아빠 역할을 모두 하고 있다.8년차 박씨는 기술개발팀의 팀장이다. 일의 성격상 야근이 잦아 보통 밤 9시를 전후해 퇴근하지만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는 아내는 더 늦는다. 회사에서 밤을 새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문에 집안일과 육아는 항상 박씨 몫이다. 밤 10시면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빨래를 한다. 다음날 아침에 먹을 밥도 미리 해놓고, 다섯 살배기 아들의 잠자리도 챙겨준다. 아들은 낮 동안엔 인근에 사는 부모님에게 맡겼다가 퇴근길에 데려온다. 박씨는 집 안팎에서 여러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아내에게 불평 한 마디 하지 않는다. “저와 결혼해준 아내에게 늘 고마움을 느껴요. 일하랴, 살림하랴, 아이 돌보랴 몸이 힘들긴 해도 아내가 제 곁에서 힘이 돼주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음악인생 40년 국민가수 현철

    [김문기자가 만난사람]음악인생 40년 국민가수 현철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떠오르는 당신 모습 피할 길 없어라∼’ 35년 결혼생활, 부부싸움 한번 없었다.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없었다. 그야말로 사랑의 콩깍지 속에서 알콩달콩 살기에 바빴다. 강상수·송애경 부부. 결혼 초기 10여년 동안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생활이었다.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갔을 법도 한데 잔소리조차 안한 부인, 이에 늘 따뜻한 말로 위로해준 남편. 사랑의 힘으로 모든 역경을 극복했고 이제는 남 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최근에는 새 식구인 예쁜 며느리를 얻었고, 올가을에는 듬직한 사위까지 생긴다. 살아갈수록 새록새록 행복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남편 강상수는 다름 아닌 가수 현철(63)의 본명이다.‘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사랑의 이름표’‘봉선화 연정’‘사랑은 나비인가 봐’ 등 수많은 히트곡을 불러 국민가수로 사랑받는다.6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오빠’ 소리를 듣는다.‘사랑의 이름표’는 초등학생들까지 따라 부를 정도다. 대중가수의 인기라는 것이 오르락내리락, 또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다르다. 지난 20년 동안 흔들림없이 국민적 인기를 유지하면서 ‘트로트계 황제’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집에서 손자의 재롱을 볼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기를 끄는 비결은 뭘까. 토종 된장 같은 구수한 목소리, 사투리가 짙게 묻어나는 입담, 민요풍이 가미된 독특한 꺾기 창법은 누구도 흉내를 낼 수 없다. 일본의 어떤 학자는 그의 목소리를 연구해 보겠다며 특별주문(?)까지 했단다. 현철은 1968년 ‘무정한 그대’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음악인생 40년이 되는 셈이다. 여기에는 무명생활 20년이 포함된다. 대기만성, 나이 40대 중반에 ‘쨍’하고 햇빛을 본 그는 평소 “부인의 내조가 없었다면 오늘의 성공은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지난 주 그를 만났을 때에도 “우리 아내와는 한번도 부부싸움을 안 했어예, 어린 나이에 나한테 시집와 고생을 무척 많이 했지예.”라고 자랑하기 바빴다. 그는 가정의 달을 맞아 서울 장충체육관(8일)과 대전 컨벤션 센터에서 카네이션 효 콘서트(11일)를 개최했다. 또 최근 MBC ‘쇼 뮤지컬 판타지’ 전국 공연과 미국 LA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으며 신곡 ‘아미새’로 인기의 온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서울 여의도의 모 방송국 ‘현철 룸’에서 문을 꼭 걸어잠그고 1시간 동안 인터뷰를 가졌다. ▶‘아미새’가 요즘 최고 히트입니다. 아미새는 어떤 뜻인가요. “사랑하는 사람은 때론 꼬집고 싶고 또 얄미울 때도 있잖아요. 아름답고 얄밉기도 한 사랑, 바로 그 뜻이 담긴 ‘아름답고 미운 새’를 말합니다. 감정이 흠뻑 담긴 가사에 흥겨운 가락의 국악창법을 접목시켰더니 대박이 터졌습니다. 주부들이 설거지하다가도 ‘아미새’ 노래가 나오면 TV 앞으로 달려나온다고 하데예.” ▶그 매력이 독특한 꺾기 창법에 있다고 합니다. “저는 노래 부를 때 ‘도레미’ 중 높은 ‘미’에서 꼭 꺾어집니다. 민요가락 중 ‘닐리아 닐리아 니나노∼’라고 할 때 끝에 음이 올라가는 식의 창법을 응용했지요.” ▶꾸준하게 인기를 얻는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우리나라의 토종 김치와 된장 냄새가 담겨진 노래라는 얘길 많이 들어요. 또한 전철 탈 때도 있고, 동네 대중 목욕탕에도 자주 갑니다. 아마 촌스럽고 편한 느낌의 아저씨 같아서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수많은 히트곡이 있습니다. 이들 중 가장 애착을 느끼는 곡이라면. “무명가수 시절은 정말 돈도 못 벌고 셋방살이로 전전긍긍하며 아내를 너무 고생시켰습니다. 고민 끝에 가요계를 떠나려고 마지막 곡으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만든 것이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었지요. 평소 알고 지내던 부산 모 방송국의 김양화씨가 작사를 하고 제가 곡을 붙였습니다.1985년도인가 그랬죠. 정말 출세곡이 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장 애착이 갑니다. 이후 ‘사랑은 나비인가 봐’와 ‘내마음 별과 같이’‘들국화여인’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1988년부터 3년 연속 KBS가요대상과 MBC10대가수상을 수상했지요.” ▶무명 때는 어디에서 지냈나요. “주로 부산에서 헤맸습니다. 처음에는 솔로였다가 1974년에는 ‘현철과 벌떼’를 결성, 팝송을 리메이크하며 열심히 불렀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어요. 그때 13번이나 이사를 했는데 주로 월세 1만∼2만원짜라 단칸방에서 생활했습니다. 친구집에서 셋방을 살면서 봉지쌀 사다 먹고 연탄 낱장으로 사다가 추위를 달래기도 했지요. 마지막 이사 할 때에는 철거민 딱지를 사서 12평짜리 주택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무명시절의 일화 한토막.1987년 리비아 대수로 공사현장에 공연을 갈 때였다. 당시 리비아에 파견된 근로자들은 고국의 부인을 보고 싶은 마음에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부른 가수를 공연단에 꼭 포함시켜 달라고 사전에 요청했다.KBS방송팀은 주현미 현숙 조용필 김연자 김세환 백남봉 나미 등 당시 내로라하는 인기스타들과 함께 현철을 합류시켰다.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얼굴이 안 알려진 현철을 보더니 다들 리비아로 떠나는 근로자로 알았던 것. 그뒤 현철은 보란듯이 가요대상 등을 휩쓸어버려 동료 가수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특히 1989년 KBS가요대상을 받을 때 무명시절의 설움이 한꺼번에 묵받쳐 시상식에서 ‘사나이 눈물’을 왈칵 쏟아내 전국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현재 그는 서울 구의동 집에서 23년째 살고 있다. 그동안 번 돈으로 4층 건물을 구입해 식재료가게와 세탁소 등에 세를 내주고 그의 식구들은 4층에 산다. ▶다니던 대학 경영학과를 그만두고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우리 어머님이 ‘울고 넘는 박달재’를 무척 잘 불렀어요. 제가 그 소질을 이어받았습니다. 콩쿠르대회에도 많이 나갔지요. 그런데 아버님은 제가 장차 은행원이 되기를 원했어요. 야단도 많이 맞았습니다. 결국 아버님의 고집에 못이겨 경영학과에 진학했지만 끼를 못버렸던 것이지요. 또 동료나 주변 사람들이 목소리가 정말 독특하니 그 방면으로 한우물을 파라고 권하더군요.” ▶‘현철과 벌떼들’의 멤버는 지금도 만나는지요. “요즘 트로트계의 유명한 작곡가로 활동 중인 박성훈씨가 벌떼들 멤버였습니다. 박씨는 제 노래 ‘싫다 싫어’로 가요대상을 받기도 했지요. 당시 모두 7명이었는데 나머지는 만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현철이라는 이름이 뜨는 바람에 박성훈·박현진(봉선화 연정 작곡)씨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그는 작곡가 외에 ‘정정정’을 부른 가수 한영주 등 후배 양성에도 각별한 애정을 쏟는다. ▶트로트란 무엇입니까. “평양 공연을 갔을 때나 외국 공연 갔을 때나 트로트를 부르면 한마음 한뜻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 가요의 힘이지요. 기쁨과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고상한 대학교수도 술자리에서 트로트를 부르지 않습니까. 일생 동안 오직 트로트의 길만 갈 것입니다.” 현철 부부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현철은 지방공연을 갈 때마다 주변에 사찰이 있으면 꼭 들러 부처님께 기도를 한다. 부인의 안부를 물었더니 “무명시절에는 옷가게도 하고 카세트 장사도 하면서 아이도 키우고 집안을 이끌어갔다.”면서 지금도 방송 모니터를 하는 등 남편 내조에 열심이라고 했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대저중학교와 동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부친은 종묘장사를 했으며 모친은 5일시장에서 좌판 깔고 씨앗을 팔곤 했다. 그는 “말없이 꿋꿋하게 사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아내가 도망도 안 가고 잘 견딘 것 같다.”고 했다. 부인과 결혼할 때는 집안형편이 어려워 물 한그릇 달랑 떠놓고 식을 올렸다고 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아들하고 테니스도 친다.“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면 젊어지지 않겠어예.”라며 활짝 웃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5년 부산 출생(본명 강상수). ▲1964년 부산 동성고 졸업. ▲1966년 동아대 경영학과 중퇴. ▲1968년 데뷔곡 ‘무정한 그대’ 발표. ▲1974년 록밴드 ‘현철과 벌떼들’ 결성. ▲1988년 KBS 가요대상,MBC 10대가수상. ▲1989년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상. ▲1990년 KBS 가요대상,MBC 10대가수상, 고복수 가요제 대상, 제1회 서울가요대상 7대가수상. ▲1997년 국무총리표창(선행 연예인). ▲1999년 제36회 저축의 날 국민포장,KBS 올해의 가수상. ▲2002년 대한민국 연예 예술상 특별공로상(대통령 표창). ▲2006년 목관문화훈장. ●주요 히트곡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내 마음 별과 같이, 사랑은 나비인가 봐, 들국화 여인, 봉선화 연정, 사랑의 이름표, 아미새 등.
  • [부고] 애국지사 백옥순 선생 별세

    [부고] 애국지사 백옥순 선생 별세

    광복군에 입대해 항일운동을 벌였던 애국지사 백옥순 선생이 24일 별세했다.95세. 평북 정주에서 출생한 백 선생은 무장투쟁을 위해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해 자금모금 및 연락체계 구축 등의 특수훈련을 받고 국내에 잠입했다. 백 선생은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 남편인 고(故) 김해성 선생도 광복군에 입대해 중앙전시간부훈련의 ‘한청반(韓靑班)’을 수료했다.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1973년 대통령표창,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손자 김창인, 김창호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보훈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6일 오전 8시.011-441-4028(김창인).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檢, 구본호씨 소환조사

    재미교포 무기거래상 조풍언(68·구속)씨의 대우그룹 구명로비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대검 중수부(부장 박용석)는 23일 LG가(家) 3세인 구본호(35)씨를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구씨가 대주주인 여행사 레드캡투어의 2006년 유상증자 때, 조씨가 실소유주로 알려진 글로리 초이스 차이나가 제3자 배정방식으로 참여해 주식 20만주를 주당 7000원에 매입, 수십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사실에 대해 조사했다. 검찰은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 소환된 구씨를 상대로 내부정보를 이용해 조씨에게 이득을 얻게 했는지를 캐물었다. 검찰은 또 당시 조씨가 구씨를 통해 김우중 회장의 차명재산으로 알려진 자금을 세탁했는지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씨는 LG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의 둘째 동생인 고 구정회 창업고문의 손자로 범한판토스와 레드캡투어의 대주주이다. 구씨는 뚜렷한 직함은 사용하지 않지만 투자하는 주식종목마다 막대한 이익을 남겨 증권가에선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감사원 “세금체납자에 환급·보상금 지급 적발”

    정부가 과세자료를 공유하지 않아 세금체납·결손자에게 각종 환급금과 보상금이 지급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해 7월 국세통합시스템과 납세보전제도 운영실태를 감사한 결과 이같은 문제점을 적발, 관련 세무공무원을 징계할 것을 요청했다고 23일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국세청과 관세청간 자료공유 미비로 2004∼2007년 국세를 체납한 353개 업체는 압류조치를 당하지 않은 채 관세환급금 189억원을 고스란히 돌려받았다. 또 주공과 토공,SH공사는 국세정보통신망을 활용하지 않아 체납자 74명에게 182억원의 토지보상금을 지급했다. 국가가 체납자의 압류재산 등을 매각해 마련한 돈(공매재산 매각대금)이 다시 세금체납자에게 지급되거나, 세무당국이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한 세금결손자의 은닉재산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례도 적발됐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40대 마담놓고 연적은 62세와 70세

    40대 마담놓고 연적은 62세와 70세

    70살된 노인과 62살의 노인이 42살된 대폿집 「마담」을 가운데 놓고 눈치싸움을 벌이다가 마침내 피를 본 싸움이 일어났다. 한강 강바람에 마음들이 싱숭생숭, 늦바람이 불었던 탓일까? 『몸이야 늙어 쭈글쭈글 하지만 마음이야 어디 늙을까 보냐』는 노익장 사랑싸움의 전말. 밀려나자 “보통사이 아니다” 소문 퍼뜨려 7월 30일. 올해 70살된 나경칠(羅京七)노인(가명·서울시 영등포(永登浦)구 흑석(黑石)2동)은 노량진경찰서 형사과 보호실에서 손자뻘되는 다른 피의자들과 쭈그려 앉아 있었다. 노량진경찰서 창설이래 가장 나이많은 피의자라고 한 형사과 직원은 껄껄 웃는다. 나노인의 직업은 소개업자. 흑석2동에서 복덕방일을 보며 소일하는 처지였다. 나노인의 사랑의 「라이벌」은 이종식(李鍾植)노인(가명·62·무직·흑석2동). 그리고 두노인의 틈바구니에 끼어 사랑의 고민(?)을 한 여자는 조민애(趙閔愛)여인(가명·42·무허가 대폿집 경영·흑석2동). 7월29일 9시께부터 사건의 전초전은 시작됐다. 피해자인 이노인이 나노인에게 사실이 아닌 「스캔들」을 왜 뿌리고 다니느냐고 시비하면서, 홧김에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으로 때렸다. 「스캔들」의 내용인즉 이노인이 조여인과 보통 사이가 아니고, 더구나 30만원을 보태주어 대폿집을 차리게 했다는 것. 이 소문을 이노인은 평소 시샘이 많았던 나노인이 퍼뜨리고 다니는 것이라 단정, 취소를 요구한 것이다. 나노인 입장으로 치면 조여인의 단골손님. 외상술도 통하고, 상당히 친한 사이로 동네에서도 알려졌다. 이러한 나노인의 기득권(?)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70년 가을부터 조여인에 대한 이노인의 노골적인 접근작전이 눈에 띄게 표면화했다. 조여인의 말인즉 같은 경북(慶北)출인인데다가 이씨가 무슨일이든지 어려운것이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했다고. 그 정도뿐 아니라 주점의 안방에 들어앉아 글씨가 서툰 조여인을 도와 외상장부의 정리까지 도와주었다는 것. 단골끼리 접근 작전 끝에 혼자 끙끙 앓던 나노인은 생각도 못해 『몹쓸 여자니까 가까이 하지 말라』고 넌지시 충고까지 했다. 나노인의 속셈을 눈치챈 이노인은 『그런 것까지 참견하지 말라』고 퉁명스러운 응수. 이 충고사건 이후로 나·이노인의 우정은 급격히 파괴되어 험악하게 되었고, 이노인의 주장에 따른다면 『창피한 소문을 동네에 퍼뜨린 장본인』이 나노인이랄 정도로 견원지간이 됐다. 「라이벌」싸움에서 수세에 몰린 나노인의 열등감을 더욱 자극한 사건이 이노인의 외상독촉. 얼마전 나노인이 술마시러 가자 안방에 있던 이노인이 밖으로 나왔다. 그때 조여인이 『외상값 좀 정리해 줘요』라고 하며 밀린돈 1천1백80원을 요구하자 옆에 있던 이노인이 장부를 펄럭이며 외상을 갚으라고 윽박질렀다. 이노인보다 나이가 8살이나 더 되었고, 더구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조여인과 이노인의 「관계」를 아니꼬와 하던 나노인은 『수상한 사이』라고 동네에 「스캔들」을 마구 퍼뜨렸다는 것. 29일 아침의 담판은 대강 이러한 감정대립과 경위에서 벌어졌다. 이노인에게 수건으로 얻어 맞은 나노인은 하루종일 어찌나 울화가 치밀었던지 복덕방일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힘으로는 당할수 없고, 그놈을 혼내주기 위해서는 상처를 내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읍니다』 궁리하다 못해 저녁에 술을 마실때 혼을 내주기로 결심한 그는 17㎝되는 미제과도를 한복 조끼 주머니에 넣고 조여인의 대폿집으로 갔다. 시간은 29일 하오 6시20분. 주점에 들어가 소주를 시켜놓고 밖에서 동네 친구들과 윷놀이를 하는 이노인을 불러오게 했다. 『이거봐, 오늘 아침에 자네가 수건으로 날 쳤지?』 『그건 그때 서로 화해하고 다시는 얘기하지 않기로 했는데 왜 또 다시 말하는게지』 『말할건 해야지. 자네는 형님도 없나?』 외상값 독촉 받고는 울컥 “그놈 상처내서 혼내주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이노인은 방안에서 나왔다. 『너 이놈자식 어디로 도망쳐』 나노인이 뛰어 나오며 의자에 앉으려는 이노인을 덮쳤다. 이노인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나노인에게 오른쪽 목을 찔린 이노인은 병원으로 옮겨지고, 대폿집은 벌컥 뒤집혔다. 조여인은 나노인과 3년전부터 교제(?)해온 사이. 남편이 첩을 얻어 살기때문에 단신으로 나와 술장사등으로 살아온 처지였다. 조여인의 딱한 처지를 동정한 나노인은 담배도 사다가 주고, 말벗도 해왔다. 이러한 동정심이 차차 연정(?)으로 변했고 두사람 모두 『아무런 관계(육체관계를 뜻함)도 없었다』고 경찰조서에서 밝히듯 육체적인 교섭은 불가능했지만 감정만은 밀도(密度)있게 진전됐던 것. 이러한 늘그막의 알뜰한 연정에 나타난 도전자가 바로 이노인.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나노인은 61살된 부인과 3아들을 두었고, 이노인은 59살된 부인과 9남매를 둔 유부남(有婦男). 여자 좋아하는 바람기는 결국 연령따위 같은건 우습게 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나 할까? [선데이서울 71년 8월 8일호 제4권 31호 통권 제 148호]
  • ‘한·중·일 평화’ 복서 사각의 링서 잠들다

    ‘한·중·일 평화’ 복서 사각의 링서 잠들다

    경기 도중 링에서 쓰러진 ‘비운의 프로복서’ 고(故) 최요삼의 ‘일본 버전’이 열도를 눈물로 적시고 있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은 “지난 3일 도쿄 고라쿠엔경기장에서 열린 일본프로복싱 슈퍼라이트급 타이틀매치 전초전 도중 6회 TKO로 패한 뒤 의식을 잃고 입원 중이던 다케우치 미키오(23)가 지난 18일 밤 급성경막하혈종으로 사망했다.”고 19일 보도했다. 다케우치는 당시 병원으로 급히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25일 세계복싱기구(WBO) 인터콘티넨털 플라이급 타이틀 방어전 직후 쓰러져 뇌사 판정을 받고 장기기증 뒤 1월3일 숨진 최요삼의 복사판. 뒷얘기 역시 최요삼만큼이나 절절하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다케우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옛 만주국 개발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간 일본인의 후손으로 패전 뒤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주저앉은 ‘일본인 잔류 고아’ 다케우치 요시노(여·82)의 손자. 요시노는 현지에서 중국인과 결혼한 뒤 중·일 수교 뒤 일본으로 귀국했다. 당시 6살이던 다케우치도 할머니를 따라 일본으로 돌아왔다. 따라서 국적도 중국이고, 장스(張師)라는 중국 이름도 가지고 있다. 지난해 4월 자신의 성씨인 장씨를 살려 삼국지의 영웅 장비를 일본어로 발음한 ‘초히(張飛)’라는 별명을 만들어 링에서 활동했다. 일본말이 서툴렀던 탓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으며 컸던 다케우치는 일본에 정착한 뒤 부모가 이혼,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교에 다녔다. 고등학교 시절 아르바이트 동료로부터 복싱을 배워 2005년 4월 링에 데뷔했고, 강력한 왼손 훅을 주무기로 지난해 서일본 신인왕에 올라 주목받았다. 연습은 링에서 했지만 돈은 골프장 캐디 생활을 하면서 벌었다. 당시 한국계 기업의 관계자를 만나 후원을 받기 시작한 다케우치는 자신의 트렁크에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삼국의 국기를 새겨넣은 뒤 “아시아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기를 원한다.”면서 “복싱을 통해 일·중·한국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서 자라고, 한국계기업인의 후원을 받은’ 젊은꽃이 피기도 전에 스러졌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보통사람 사소한 이야기 뽑아 엮으니 ‘역사’되다

    보통사람 사소한 이야기 뽑아 엮으니 ‘역사’되다

    “내가 돈을 내고 표를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나를 힐끔 올려다본 판매원이 표를 잽싸게 가져가더니 극장에 들어올 수 없다고 말하더구나. 내가 흑인이라서 영화표 판매를 거부했던 거지. 나는 그날 밤 내내 울면서 거리를 헤매고 다녔지.” 2005년 75세의 할아버지 샘 하몬은 12세의 손자 에즈라 오메이에게 젊은 시절 자신을 분노케 했던 일화를 들려줬다.2차 세계대전 당시 15세의 나이로 해군에 입대해 나라를 위해 싸웠던 그에게 군대는 흑인이라며 백인 장교의 하인 역할을 맡겼고, 미국 수도이자 민주주의의 심장 워싱턴은 극장 출입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내 나라가 나에게 다른 나라와 싸우라고 하면서 ‘너는 영화를 볼 만한 시민이 못 된다.’고 하는 것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美프로젝트 단체가 수집한 일반시민의 라이프 스토리 할아버지가 ‘인생에서 겪은 가장 슬픈 경험’을 담담하게 회고한 곳은 ‘스토리코어스’(StoryCorps)의 인터뷰 부스에서였다. 스토리코어스는 2003년부터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구술 채록해온 미국의 프로젝트 단체다. 뉴욕 그랜드센트럴역 등 시내 곳곳에 부스를 설치해 부스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했고, 수집한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방영했다. 원할 경우엔 직접 집이나 일터로 찾아가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영웅 아닌 일반인에게 역사 찾아주는 직업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조윤정 옮김, 다른세상 펴냄)는 스토리코어스의 창립자인 데이브 아이세이가 지금까지 녹음한 1만여회의 인터뷰에서 32가지 이야기를 가려 뽑아 엮은 책이다. 비행기 사고에서 살아남은 할머니의 이야기, 자해가 습관화돼 칼로 손목을 그은 소녀,9·11테러로 약혼자를 잃은 남자 등 울고 웃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기뻐하고 고통스러워했던 우리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스토리코어스의 작업은 ‘역사 없는 사람들’에게 역사를 찾아 주는 일이다. 지금까지 역사가들은 소수 선택된 영웅들의 이야기에만 역사의 위상을 부여했다. 스토리코어스는 선택되지 못한 사람들의 삶의 여정 또한 역사로 바라본다. 거대 사건과 거대 담론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빛이 바랬던 개인의 역사가 들어주고 기록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 생기를 되찾는다.‘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가 지향하는 ‘역사의 개인화’ 작업이 가치 있는 이유다.1만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그래픽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 ‘비만여성’ 누드그림 350억원 경매최고가 경신

    ‘비만여성’ 누드그림 350억원 경매최고가 경신

    ‘비만 여성’의 누드그림이 무려 350억원에 팔려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영국 BBC는 “루시앙 프로이드(Lucian Freud)의 그림 ‘베네피츠 슈퍼바이저 슬리핑’(Benefits Supervisor Sleeping)이 3360만 달러(한화 약 350억원)에 팔려 현존작가의 작품 중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3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판매된 이 작품은 모델로서는 파격적인 ‘비만 여성’의 누드그림으로 유명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의 손자 루시앙 프로이드의 1995년도 작품이다. 예술 전문지 아폴로 매거진의 편집장 마이클 홀은 “이 작품은 접힌 살을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이 추해서 충격적이지만 이런 점이 오히려 수집가들을 이끄는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의 모델 수 틸리(Sue Tilley)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프로이드를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며 “매일 8시간씩 하루 20파운드(약 4만원)를 받고 일주일에 두 세 번씩 포즈를 취했다.”고 말했다. 틸리는 “처음에는 화가 앞에서 옷을 벗는게 부끄러웠지만 서로 친해지자 포즈를 잡는 게 편해졌다.”며 “나중에는 포즈를 취한 채 잠들기도 했다.”며 비화를 공개했다.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친손자인 프로이드는 독일출생의 사실주의 화가로 힘 있는 색채의 누드화와 초상화로 유명하다. 지난 2005년에는 세계적인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의 누드 초상화를 그려 화제가 된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지아 기자 skybabe8@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서울은 지금 ‘鳥심鳥심’

    서울은 지금 ‘鳥심鳥심’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서울 송파구 문정·장지지구로까지 확산돼 서울시가 시내 전역의 가금류를 거둬들여 땅에 묻었지만 시민들의 ‘AI 공포’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내 구청, 동사무소 등에는 집에서 키우는 잉꼬나 동네 비둘기를 처리해 달라는 민원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12일 오전 9시35분쯤 광진구 중곡동 한 주택 옥상에 비둘기 1마리가 움츠린 채 꼼짝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이웃 주민 원모(18)양이 구청 비상대책반에 신고했다. 구청 방역반은 비둘기 사체 주변에 소독약을 뿌린 뒤 집게로 사체를 봉투에 넣고, 다시 한 번 주변을 소독했다. 원양은 “전에는 동네 골목길이나 건물 옥상에 비둘기가 많아도 별 관심이 없었으나 지금은 매우 불결하고 위험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 광진구청에는 20∼30분 간격으로 중곡동의 또 다른 주택가에서 참새 1마리가 신고됐고, 능동 도로변에서도 비둘기 2마리 사체가 신고됐다. 주민 박모(40)씨는 “전에는 비둘기 사체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는데, 지금은 절대 손을 대지 않고 신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6일 동안 광진구청에는 총 45건의 방역 민원이 접수됐다. 한국수의과학검역원은 12일까지 10만건 이상의 AI정밀분석 의뢰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시민들이 주위에서 죽은 새를 무조건 신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약으로 죽은 야생조류까지 검사의뢰가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검역원 관계자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의뢰가 들어오면 모두 다 검사를 한다.”면서 “시민들이 자신의 애완조류를 어떻게 처분하느냐고 문의가 오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황금연휴는 ‘공포연휴’로 막을 내렸다. 이모(50)씨는 이날 손자를 데리고 석촌호수에 갔다가 유유히 호수를 헤엄치는 오리 10여마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곧바로 손자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김씨는 “언론에서는 모두 살처분했다고 하는데 왜 아직 오리가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석촌호수공원 측은 지난 8일부터 오리 살처분에 나섰지만 아직 모든 오리를 잡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과천 서울대공원과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도 한산했다. 서울대공원은 조류 중 홍학만 바리케이드 뒤에서 시민들이 바라보도록 했다. 지난 11일 3만 6000여명이던 관람객은 12일 5000여명에 그쳤다. 휴일이면 5만명 이상이 찾는 어린이대공원 역시 1만여명만 찾아 한산했다. 한편 서울시는 문정·장지지구 내에 불법 사육농가의 실태 파악과 관리에 소홀했던 송파구에 대해 감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프로축구 2008] 김호 감독 200승 금자탑

    전광판 시계는 9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1-1 상황.3경기째 통산 200승 위업이 물 건너가는가 싶었던 순간, 결승골이 터졌다. 김민수가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뛰어들면서 가운데로 빼준 공을 이성운이 달려들면서 오른발로 침착하게 밀어넣어 그물을 가른 것. 첫 골이 터졌을 때만 해도 표정에 변화가 없던 64세 노감독은 그제야 벌떡 일어나 두 팔을 치켜들었다. 김호 감독이 이끄는 프로축구 대전 시티즌이 11일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 9라운드 부산 아이파크와의 원정경기에서 종료 직전 터진 이성운의 결승골에 힘입어 짜릿한 2-1 승리를 거뒀다. 지난 1983년 K-리그 출범 이후 처음으로 통산 200승의 위업을 스승에게 안겨 드리겠다는 어린 선수들의 땀과 눈물이 값진 결실을 일궈낸 것. 대전이 부산 원정에서 승리한 것은 2000년 9월30일부터 시작,15경기(3무12패) 만에 처음이어서 기쁨은 곱절이 됐다. 나흘 전 며느리와 손자를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은 노감독은 “먼저 간 가족에게 영광을 돌리겠다.”고 말했다.“많은 축구인이 고생한 보람을 내가 대신 받은 것”이라고 겸손해한 김 감독은 “많은 지도자들이 이 기록을 토대로 더 좋은 경기, 더 좋은 기록을 남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선은 대전이 잡았다. 왼쪽 코너킥이 상대 수비에 맞고 튕겨나오자 부산에서 이적해 온 이여성이 머리로 받아 넣었고, 공이 골포스트를 맞고 튀어나오자 재차 받아 넣어 선제골을 만들었다. 이후 부산의 파상공세를 막아낸 대전은 후반 25분 김승현이 드리블할 때 최근식이 엉겁결에 어깨 아래쪽을 갖다대는 바람에 페널티킥을 허용했고, 이를 김승현이 직접 처리해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 순간, 대전의 노장 골키퍼 최은성의 역할이 돋보였다. 그는 흥분하는 후배들을 불러모아 다독거렸고, 이후 후배들은 기어이 결승골을 만들어내 노감독의 사랑에 보답했다. 포항 스틸러스는 광주 상무를 홈으로 불러들여 혼자 두 골을 터뜨린 데닐손과 리그 통산 9600호골을 기록한 최효진의 활약을 앞세워 3-1로 승리했다. 최근 4연승째. 상암벌에선 FC서울이 이청용의 결승골에 힘입어 라돈치치의 한 골로 따라붙은 인천을 2-1로 따돌리고 4경기 만에 승리를 챙겼다. 서울은 인천 상대 5경기 연속 무패(3승2무)를 이어갔고, 특히 홈에서는 2004년 10월 이후 5승3무로 한번도 지지 않았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4代가 고객인 걸요” 4년연속 교보 보험왕 강순이씨

    11일 교보생명에 따르면 올해 교보생명 보험왕으로 4년 연속 강순이(52)씨가 뽑혔다. 증조할아버지부터 증손자까지 4대째 이어지는 고객도 있는 보험설계사다. 그는 1983년부터 설계사 영업을 시작,26년째 보험영업의 한 우물을 파고 있다. 지난 2005년 10년 연속 백만불원탁회의(MDRT) 달성으로 MDRT 종신회원이 됐다.MDRT는 억대 연봉자에게만 가입자격을 주는 것으로 보험 설계사의 꿈이다. 현재 강씨에게 보험료를 내고 있는 고객은 1273명, 지난해 거둔 보험료는 106억원이다. 강씨는 “컨설턴트는 보험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과 정보를 나누는 직업”이라면서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고객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컨설턴트의 역량이 좌우된다.”고 밝혔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노루·사슴 노는 고향 땅서 편히 잠드소서”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고(故) 박경리 선생이 9일 고인의 고향인 경남 통영의 미륵산 자락에 영면했다. 고인의 유해는 이날 오후 외동딸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과 사위 김지하 시인 등 유족과 전국의 문인, 통영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통영 앞바다와 한산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산양읍 신전리 양지농원의 미륵산 자락에 안장됐다. 오후 1시쯤 양지농원에 도착한 유해는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남해안별신굿 보존회의 들채굿과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유족, 지인들의 큰 절을 뒤로 하관됐다. 이어 유족들과 강원도 원주, 경남 하동 문인들이 고인이 소설 ‘토지’를 완간한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옛집의 흙과 타계 전까지 살았던 원주 토지문화관 텃밭의 흙, 최참판댁이 있는 하동 평사리의 흙을 관위에 뿌리는 ‘허토’ 의식이 열렸다. 고인이 2003년 전남 함평나비축제 명예대회장을 했던 인연으로 함평에서 가져온 하얀 나비 수십마리가 하늘로 날아 오르는 가운데 고인은 양지바른 산자락에 영원히 육신을 눕혔다. 앞서 오전 통영시내 강구안 문화마당과 충렬사 주차장에서 추모제와 노제가 열렸다. 유해가 실린 꽃상여와 200여개의 만장(輓章)이 어릴 적 고인이 뛰놀던 통영시내 1㎞를 이동하는 동안 13만여명의 고향 주민들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다. 진의장 통영시장은 “선생의 타계로 문학의 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가를 우리는 깨닫게 됐다.”면서 “이순신 장군의 독전 소리가 저렁저렁하던 한산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 뵈는 양지바른 곳, 선생님이 좋아하셨던 그곳은 노루와 사슴이 쉬었다 가는 좋은 땅, 평화로운 땅이다. 그곳에서 편안히 잠드소서.”라고 추모사를 했다. 한편 통영시는 지난해 12월24일 고인이 81번째 생일을 기념해 외손자 2명과 통영을 찾아 시에 전달했던 유품 수백여점을 이날 시청 강당에서 공개했다. 공개 유품에는 ‘박경리문학상 제작에 관하여’ 육필원고(23장), 본명인 ‘박금이’(朴今伊)로 된 여권, 진주여고 재학당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김약국의 딸들’ 영역본, 외손자 등과 주고 받은 엽서와 편지,‘토지’ 완간 10주년 특별대담 DVD세트, 충무시 문화상 수상패, 고인의 연필 드로잉, 액세서리 주머니, 신문 스크랩 등이 포함돼 있다. 고인이 생전에 “나의 생활이요, 나의 문학이요, 나의 예술”이라며 가장 아꼈던 3가지 물품인 재봉틀과 국어사전, 통영 소목장(小木匠·목재로 만든 세간)은 들어 있지 않았다. 통영시는 유품을 2010년 개관 예정인 통영 박경리문학관에 전시할 계획이다. 통영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女談餘談] ‘먹거리 불신’/ 전경하 경제부 기자

    [女談餘談] ‘먹거리 불신’/ 전경하 경제부 기자

    지난 주말 3일간의 연휴에 모처럼 시댁에 다녀왔다. 사돈에게 인사할 요량으로 친정 어머니는 ‘몸보신’하라고 쇠꼬리를 선물로 골랐다. 길이 막혀 저녁에나 도착할 아들 내외와 손자들을 위해 시어머니는 닭 두마리를 사서 푹 고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품목들을 골랐을까’하는 투덜거림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찝찝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잘 먹는다. 아는 게 병이라고 해야 할까.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과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등으로 어수선하다.‘쥐우깡’,‘칼참치’,‘생쥐 야채’ 등에 이어 ‘먹거리 파동’의 결정판을 보는 듯하다. 누군가의 실수로 인한 먹거리 불신이 정책적 실수로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난상토론을 지켜보면서 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원칙과 믿음이 없어서인 것 같다. 우리는 종종 포장을 바꾼 식품을 본다. 납품업자의 농간으로 형편없는 식품이 유명 백화점에서 버젓이 거래되기도 하고 불량식품이 급식업체나 음식점으로 흘러 들어간다. 납품업자의 양심에도 문제가 있지만 납품받는 사람이 과연 몰랐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납품업자의 현장을 가끔은 불시 방문하거나 값이 싸다면 그 비결이 뭔지를 한번쯤은 물어봤어야 하는 게 원칙 아닐까. 국익과 대외신뢰도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혼란스럽다. 국민이 안심하고 무엇인가를 먹을 수 있는 상황은 사회적, 정서적 비용을 줄이기 때문에 국익이 향상되는 것 아닌가. 국익은 분명 대외용만은 아니다. 정부가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 대외신뢰도를 낮추는 것일까. 일단 정해졌으니까 이런저런 잘못이 있어도 그냥 가는 것이 대외신뢰도를 높이는 일일까. 국민 건강과 관련된 문제에서 대외신뢰도 운운한다는 것이 솔직히 너무 멀게 느껴졌다. 광우병 파동이 끝난 뒤 먹거리 유통에 대한 전면적인 손질을 기대해 본다. 함께 믿음과 원칙의 사회가 이뤄졌으면 싶다. 분명 정부가 할 일이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lark3@seoul.co.kr
  • ‘하늘의 토지’에서 편히 쉬소서

    지난 5일 별세한 박경리 선생의 영결식이 8일 오전 8시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문학인장으로 엄수됐다. 도종환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에는 외동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과 사위 김지하 시인 등 유족과 정·관계 인사 등 150여명이 참석,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박완서, 최일남, 오탁번, 박범신, 윤흥길, 김원일, 조정래, 김초혜, 이근배, 김병익, 김치수, 김화영 등 문인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이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외손자 세희씨가 든 위패와 최유찬 연세대 교수가 든 영정을 앞세우고 소복을 입은 외동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이 뒤따르는 가운데 고인의 관이 영결식장에 들어오자 참석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어 정현기 세종대 교수가 고인의 약력을 소개하고 고인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상영됐다.“가장 순수하고 밀도가 짙은 사랑은 허덕이고 못 먹는 것, 생명을 잃는 것에 대한 ‘연민’”이라는 고인의 육성은 장례식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소설가 박완서씨는 조사를 읽어 내려가다가 “선생님 손의 온기가 지금도 제 찬 손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는데….”라는 대목에서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시인 이근배씨는 고인의 영전에 바치는 조시를 통해 “선생님은 흙과 물, 나무, 짐승, 세상 사람들, 소설, 문학의 어머니”라면서 “부디 사랑의 손길을 한 번 더 잡아주소서.”라며 고인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유족을 대표해 김영주 관장은 “어머니께서는 아름답게 사시다가 아름답게 가셨습니다. 어머니 죽음을 애통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라고 울먹이며 힘겹게 인사말을 전했다. 유족과 내빈들의 헌화를 끝으로 고인의 유해는 최근까지 머물던 강원도 원주로 떠났다. 원주에서는 고인의 단구동 옛 집터에 마련된 토지문학공원에서 추모제를, 매지리 토지문화관과 모교인 경남 진주여고에서 노제를 지낸 뒤 이날 오후 고인의 고향인 경남 통영시에 도착해 하룻밤을 지냈다.9일 오전 통영시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헌무·헌다례 등 추도식에 이어 산양읍 신전리 미륵산 기슭에서의 마지막 안장식을 끝으로 고인은 영면에 들었다.김규환 김승훈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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