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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고령’ 131세 남성, 101세에도 자식을 낳았다

    브라질에 사는 131세 남성이 기네스북 세계 최고령으로 등재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4일(현지시간) 브라질 뉴스포털 UOL에 따르면 북서부 아크리 주 세나 마두레이아 시에 사는 주제 쿠엘류 지 소우자의 나이가 131세인 것으로 드러났다. 소우자의 출생증명서에는 그가 1884년 3월 10일 북동부 세아라주 메루오카시에서 태어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2개월이 지나면 132세가 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소우자가 101세에 마지막으로 자식을 낳았다는 점이다. 소우자에게는 현재 40세, 37세, 30세인 아들과 6명의 손자·손녀가 있다. 그는 현재 69세인 부인과 16세 손녀와 함께 살고 있다. 손녀는 “할아버지의 삶이 매우 고통스러웠던 것으로 안다”면서 “11세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는 바람에 어린 나이에 고된 일을 해야했다”고 전했다. 131세를 살 수 있었던 그의 건강 비결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인다. 소우자는 젊은 시절 술을 약간 마셨으나 평생 담배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청력이 좋지 않고 가끔 가족들을 못 알아볼 때가 있긴 하지만 건강에도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쌀밥과 소고기, 생선, 채소로 된 식사를 거르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령 남성으로는 지난해 7월 5일 112세로 사망한 일본인 모모이 사카리가 기록돼 있다. 앞서 지난해 4월 1일에는 남녀 통틀어 세계 최고령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던 일본인 오카와 미사요가 11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종인, 더민주 구원투수로

    김종인, 더민주 구원투수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경제민주화 공약 설계자이자 ‘경제교사’ 역할을 했던 김종인(76) 전 의원이 14일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선대위원장으로 전격 영입됐다. 더민주 문재인 대표는 ‘개문발차’(開門發車) 식으로 조기선대위를 출범시킨 뒤 호남 민심을 되돌릴 공동선대위원장의 추가 영입은 물론,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대표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3일 문 대표가 조기선대위 수용 의사를 밝힌 뒤 인선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비주류 탈당이 이어지는 등 극심했던 당내 혼란을 가라앉히는 한편, 중도성향 유권자층을 잠식하는 ‘안풍’(안철수 바람)을 잠재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文 “선대위 안정되면 대표직 사퇴” 문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김종인 박사는 시대정신인 경제민주화의 상징 같은 분”이라며 “선대위원장으로 모시려 한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얼굴 마담 격인) 선대위와 달리 전적인 권한들을 다 넘겨 선거 사무를 총괄하고 최고위는 일상 당무를 보는 취지”라면서 “당대표는 공천에 관한 일체 권한을 다 내려놓는 분명한 모습을 보여 드릴 것이며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야권 대통합을 실현하기 위해 대표직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전남을 대표하는 공동선대위원장 인선을 서두르겠다”는 언급과 맞물려 천정배 의원의 국민회의와 통합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독자 창당의 길을 걷고 있는 천 의원은 “현재 상태의 더민주와 통합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일단 부정적 입장이지만, 문 대표가 사퇴하면 당 대 당 통합이 가능하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김 전 의원의 영입은 전방위로 이뤄졌다. 문 대표는 2012년 대선 당시에도 김 전 의원을 영입하려 했지만, 김 전 의원은 “박근혜 후보의 요청을 수락한 직후”라며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만남은 이어졌으며 지난해 11월부터 삼고초려에 나섰다. ●‘엑소더스 열쇠’ 박영선 거취 촉각 정세균 의원과 이석현 국회부의장, 손혜원 홍보위원장 등 김 전 의원과 가까운 인사들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이 부의장은 “그저께 만나 ‘선배의 평생 지론인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라도 맡아 달라’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전날 이수혁 전 6자회담 수석대표와 함께 김 전 의원을 만나 “아무 욕심 없다. 와주시기만 한다면 모든 걸 다 내려놓을 수 있다”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주류 ‘수도권 엑소더스’의 열쇠를 쥐고 있는 박영선 의원의 탈당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세균 의원은 “(각별한 관계인 김 전 의원의 영입으로)나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초대 대법원장인 김병로 선생의 친손자로 비례대표로만 4선(11·12·14·17대)을 지냈다. 6공화국에서 보건사회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했다. 2011년 새누리당 비대위원으로, 2012년에는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아 19대 총선 및 18대 대선 경제공약을 입안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쓴소리를 한 탓에 거리가 멀어졌다. 김 전 의원은 안철수 의원이 정치권에 뛰어든 2011년 정치적 멘토 역할을 했다. 국민의당도 영입에 나섰다는 관측이 파다했다. 안 의원은 “건강한 경쟁 관계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영입 추진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 전 의원은 이날 아침 SBS라디오에서 “조직에 참여하는 사람이 불리하다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정치 행위를 잘 납득할 수 없다”며 안 의원의 탈당을 비판했다. 2014년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영입하려다가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지낸 전력 탓에 무산됐지만, 벼랑 끝에 몰린 당의 상황 때문인지 아직까지 큰 반발이 감지되지 않았다. 문 대표는 “당내와 지지자 중에서 비판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빠른 시일 내에 당을 안정시키고 또 한편으로 확장해 나가는 데 필요한 분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김 박사는 지난 대선(당시) 박근혜 지지에 대해 공개적으로 자기비판했다. 이런 분 영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더민주가)선대위원장으로 훌륭한 분을 모셔 갔다”면서도 “어쨌든 그런 사람들은 ‘선수’들이다. 선거 때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에게 가서… ‘대어’를 가져간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신의진 대변인도 “그저 총선을 겨냥한 무분별한 영입”이라며 “(김 전 의원이) 선거 때마다 자신의 입지를 위해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마치 자신만이 최고 전문가인 듯 처신하는 일을 국민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신학용·김승남·최경환 탈당 가세 한편 신학용(인천 계양갑) 의원과 김승남(고흥·보성) 의원은 탈당 대열에 가세했다. 안 의원을 포함해 지난달 이후 더민주를 떠난 현역 의원은 16명으로 늘었고, 의석수는 127석에서 111석으로 줄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을 지낸 최경환 광주 북구을 예비후보도 탈당했다. 반면 더민주는 DJ정부 국방비서관을 지낸 예비역 육군소장 하정열(전북 정읍) 한국안보통일연구원장과 박희승(전북 남원) 전 수원지법 안양지원장을 각각 9, 10호로 영입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김종인 자택 앞 일문일답] “공동 선대위원장 얘기 들어본 적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4·13 총선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된 김종인 전 의원은 14일 밤 서울 구기동 자택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공동 선대위원장이란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표가 호남 인사를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한다는데. -공동 선대위원장이란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단독 선대위원장으로 들었나. -상황을 적당히 호도하기 위해 공동으로 만들고 그러는 거지 공동으로 할 이유가 뭐가 있나. →정치를 안 하겠다고 했는데. -2012년 대선 끝나고 정치에 관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밖에서 관찰하다 보니 한국 정치가 이렇게 가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했다. 야당이 쪼개져선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도 굉장히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거 같기 때문에 기여를 해야겠다 결심했다. →안철수 의원 탈당을 만류했다던데. -나한테 물어보길래 총선 끝나면 기회가 생길테니까 인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얘기를 해줬다. 본인이 별로 개의치 않고서 그러고 나서 한 3일 후에 탈당을 해버리더라. →안 의원 쪽에서 영입 제안은. -탈당 이후에는 만나본 적이 없다. 영입을 한다는 소리는 다 이상한 얘기다. 그쪽을 따라간 사람들이 뭐 이러고 저러고 얘기를 했지만 심각하게 들어본 적이 없다. →박영선 의원이랑 상의를 했나. -혼자 결정하는 것이지 누구하고 소통을 하겠나. 본인 스스로가 판단에 의해서 결정을 하는거지. 나는 그런 정치는 안 하는 사람이다. 박영선 의원도 오늘 깜짝 놀라더라. 일체 상의를 안 했으니까.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김종인 전 의원,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으로 ‘반전’ 영입…어떻게 된 일?

    김종인 전 의원,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으로 ‘반전’ 영입…어떻게 된 일?

    김종인 전 의원,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으로 ‘반전’ 영입…어떻게 된 일?김종인(76)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조기선대위원장으로 14일 전격 영입됐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끌었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총선을 준비했으며, 박 대통령의 ‘경제 멘토’ 역할을 했다. 특히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문 대표의 이같은 ‘반전’ 인사는 김종인 선대위원장 체제를 출범시켜 조기 선대위 체제로 전환해 분당 사태로 비화된 당의 내분을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특히 ‘김종인 카드’는 거물급 인사의 영입으로 당내는 물론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 당의 바람을 잠재우겠다는 포석도 있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에서 실패했다고 비판해 온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는 호남 민심 달래기 차원에서 호남 출신 외부 인사의 공동선대위원장을 영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김 전 의원은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친손자로, 김병로 선생의 고향은 전북 순창이다. 당초 문 대표는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로 ‘김종인-박영선’ 카드를 추진했으나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의원이 이끄는 조기선대위 체제로 전환되면 문 대표는 인재영입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표는 현역 의원들의 잇따른 탈당 사태에도 동요하지 않고 참신하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힘을 썼다. 한편 김 전 의원은 서강대 교수 출신으로, 6공화국 시절 보사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역임했으며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의 신설을 주도했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여당의 핵심 공약을 성안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과 관련해 쓴소리를 해왔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종인 선대위원장 전격 영입…문재인의 ‘반전’ “천정배와의 통합도…”

    김종인 선대위원장 전격 영입…문재인의 ‘반전’ “천정배와의 통합도…”

    김종인 선대위원장 전격 영입…문재인의 ‘반전’ “천정배와의 통합도…”김종인 선대위원장 전격 영입 김종인(76)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조기선대위원장으로 14일 전격 영입됐다. 문재인 더민주당 대표는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야권 대통합을 위한 실현을 위해 대표직을 내려놓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끌었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총선을 준비했으며, 박 대통령의 ‘경제 멘토’ 역할을 했다. 특히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문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당대표실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김 전 의원의 선대위원장 인선문제를 확정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선대위를 조기 출범시키고 김종인 박사를 당 선대위원장으로 모시려고 한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김 전 의원을 ‘경제민주화의 상징’이라고 소개한 뒤 “우리 당이 유능한 경제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또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 김 박사의 지혜와 경륜이 꼭 필요하다”면서 “빠른 시일내에 당내 동의를 진행한 뒤 김 박사를 중심으로 총선 필승을 하고 정권교체까지 바라보는 선대위 구성을 빠르게 마무리해 총선 관리를 맡기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박사는 우리 시대 과제인 소득불평등 해소를 위해 유능한 정당을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면서 “이번 총선은 박근혜 정부의 불평등에 맞서는 심판으로, 낡은 경제세력과 새 경제세력의 대결”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표의 이같은 ‘반전’ 인사는 김종인 선대위원장 체제를 출범시켜 조기 선대위 체제로 전환해 분당 사태로 비화된 당의 내분을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특히 ‘김종인 카드’는 거물급 인사의 영입으로 당내는 물론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 당의 바람을 잠재우겠다는 포석도 있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에서 실패했다고 비판해 온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를 더욱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는 또 자신의 거취에 대해 “지금까지 여러번 ‘앞으로 통합의 틀이 마련되면 당 대표 직도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으며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야권 대통합을 위한 노력들을 하고 그 실현을 위해 내려놓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광주 등 호남을 대표하는 공동선대위원장을 추가로 임명하기로 했으며 천정배 의원과의 야권 대통합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앞서 문 대표는 호남 민심 달래기 차원에서 호남 출신 외부 인사의 공동선대위원장을 영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김 전 의원은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친손자로, 김병로 선생의 고향은 전북 순창이다. 당초 문 대표는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로 ‘김종인-박영선’ 카드를 추진했으나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의원이 이끄는 조기선대위 체제로 전환되면 문 대표는 인재영입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표는 현역 의원들의 잇따른 탈당 사태에도 동요하지 않고 참신하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힘을 썼다. 한편 김 전 의원은 서강대 교수 출신으로, 6공화국 시절 보사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역임했으며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의 신설을 주도했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여당의 핵심 공약을 성안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과 관련해 쓴소리를 해왔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종인 선대위원장 전격 영입…문재인의 ‘반전 카드’ 이유는 무엇?

    김종인 선대위원장 전격 영입…문재인의 ‘반전 카드’ 이유는 무엇?

    김종인 선대위원장 전격 영입…문재인의 ‘반전 카드’ 이유는 무엇? 김종인 선대위원장 전격 영입 김종인(76)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조기선대위원장으로 14일 전격 영입됐다. 문재인 더민주당 대표는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야권 대통합을 위한 실현을 위해 대표직을 내려놓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끌었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총선을 준비했으며, 박 대통령의 ‘경제 멘토’ 역할을 했다. 특히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문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당대표실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김 전 의원의 선대위원장 인선문제를 확정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선대위를 조기 출범시키고 김종인 박사를 당 선대위원장으로 모시려고 한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김 전 의원을 ‘경제민주화의 상징’이라고 소개한 뒤 “우리 당이 유능한 경제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또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 김 박사의 지혜와 경륜이 꼭 필요하다”면서 “빠른 시일내에 당내 동의를 진행한 뒤 김 박사를 중심으로 총선 필승을 하고 정권교체까지 바라보는 선대위 구성을 빠르게 마무리해 총선 관리를 맡기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박사는 우리 시대 과제인 소득불평등 해소를 위해 유능한 정당을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면서 “이번 총선은 박근혜 정부의 불평등에 맞서는 심판으로, 낡은 경제세력과 새 경제세력의 대결”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표의 이같은 ‘반전’ 인사는 김종인 선대위원장 체제를 출범시켜 조기 선대위 체제로 전환해 분당 사태로 비화된 당의 내분을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특히 ‘김종인 카드’는 거물급 인사의 영입으로 당내는 물론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 당의 바람을 잠재우겠다는 포석도 있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에서 실패했다고 비판해 온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를 더욱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는 또 자신의 거취에 대해 “지금까지 여러번 ‘앞으로 통합의 틀이 마련되면 당 대표 직도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으며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야권 대통합을 위한 노력들을 하고 그 실현을 위해 내려놓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광주 등 호남을 대표하는 공동선대위원장을 추가로 임명하기로 했으며 천정배 의원과의 야권 대통합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앞서 문 대표는 호남 민심 달래기 차원에서 호남 출신 외부 인사의 공동선대위원장을 영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김 전 의원은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친손자로, 김병로 선생의 고향은 전북 순창이다. 당초 문 대표는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로 ‘김종인-박영선’ 카드를 추진했으나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의원이 이끄는 조기선대위 체제로 전환되면 문 대표는 인재영입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표는 현역 의원들의 잇따른 탈당 사태에도 동요하지 않고 참신하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힘을 썼다. 한편 김 전 의원은 서강대 교수 출신으로, 6공화국 시절 보사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역임했으며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의 신설을 주도했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여당의 핵심 공약을 성안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과 관련해 쓴소리를 해왔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종인 선대위원장 전격 영입…문재인 꺼낸 ‘반전 카드’ 어떻게 된 일?

    김종인 선대위원장 전격 영입…문재인 꺼낸 ‘반전 카드’ 어떻게 된 일?

    김종인 선대위원장 전격 영입…문재인 꺼낸 ‘반전 카드’ 어떻게 된 일?김종인 선대위원장 전격 영입 김종인(76)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조기선대위원장으로 14일 전격 영입됐다. 문재인 더민주당 대표는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야권 대통합을 위한 실현을 위해 대표직을 내려놓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끌었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총선을 준비했으며, 박 대통령의 ‘경제 멘토’ 역할을 했다. 특히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문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당대표실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김 전 의원의 선대위원장 인선문제를 확정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선대위를 조기 출범시키고 김종인 박사를 당 선대위원장으로 모시려고 한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김 전 의원을 ‘경제민주화의 상징’이라고 소개한 뒤 “우리 당이 유능한 경제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또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 김 박사의 지혜와 경륜이 꼭 필요하다”면서 “빠른 시일내에 당내 동의를 진행한 뒤 김 박사를 중심으로 총선 필승을 하고 정권교체까지 바라보는 선대위 구성을 빠르게 마무리해 총선 관리를 맡기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박사는 우리 시대 과제인 소득불평등 해소를 위해 유능한 정당을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면서 “이번 총선은 박근혜 정부의 불평등에 맞서는 심판으로, 낡은 경제세력과 새 경제세력의 대결”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표의 이같은 ‘반전’ 인사는 김종인 선대위원장 체제를 출범시켜 조기 선대위 체제로 전환해 분당 사태로 비화된 당의 내분을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특히 ‘김종인 카드’는 거물급 인사의 영입으로 당내는 물론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 당의 바람을 잠재우겠다는 포석도 있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에서 실패했다고 비판해 온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를 더욱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는 또 자신의 거취에 대해 “지금까지 여러번 ‘앞으로 통합의 틀이 마련되면 당 대표 직도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으며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야권 대통합을 위한 노력들을 하고 그 실현을 위해 내려놓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광주 등 호남을 대표하는 공동선대위원장을 추가로 임명하기로 했으며 천정배 의원과의 야권 대통합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앞서 문 대표는 호남 민심 달래기 차원에서 호남 출신 외부 인사의 공동선대위원장을 영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김 전 의원은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친손자로, 김병로 선생의 고향은 전북 순창이다. 당초 문 대표는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로 ‘김종인-박영선’ 카드를 추진했으나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의원이 이끄는 조기선대위 체제로 전환되면 문 대표는 인재영입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표는 현역 의원들의 잇따른 탈당 사태에도 동요하지 않고 참신하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힘을 썼다. 한편 김 전 의원은 서강대 교수 출신으로, 6공화국 시절 보사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역임했으며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의 신설을 주도했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여당의 핵심 공약을 성안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과 관련해 쓴소리를 해왔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종인, 더민주 선대위원장 수락 ‘반전’… “경제민주화 실현 위해 꼭 필요”

    김종인, 더민주 선대위원장 수락 ‘반전’… “경제민주화 실현 위해 꼭 필요”

    김종인, 더민주 선대위원장 수락 ‘반전’… “경제민주화 실현 위해 꼭 필요”김종인(76)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조기선대위원장으로 14일 전격 영입됐다. 문재인 더민주당 대표는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야권 대통합을 위한 실현을 위해 대표직을 내려놓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끌었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총선을 준비했으며, 박 대통령의 ‘경제 멘토’ 역할을 했다. 특히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문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당대표실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김 전 의원의 선대위원장 인선문제를 확정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선대위를 조기 출범시키고 김종인 박사를 당 선대위원장으로 모시려고 한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김 전 의원을 ‘경제민주화의 상징’이라고 소개한 뒤 “우리 당이 유능한 경제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또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 김 박사의 지혜와 경륜이 꼭 필요하다”면서 “빠른 시일내에 당내 동의를 진행한 뒤 김 박사를 중심으로 총선 필승을 하고 정권교체까지 바라보는 선대위 구성을 빠르게 마무리해 총선 관리를 맡기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박사는 우리 시대 과제인 소득불평등 해소를 위해 유능한 정당을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면서 “이번 총선은 박근혜 정부의 불평등에 맞서는 심판으로, 낡은 경제세력과 새 경제세력의 대결”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표의 이같은 ‘반전’ 인사는 김종인 선대위원장 체제를 출범시켜 조기 선대위 체제로 전환해 분당 사태로 비화된 당의 내분을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특히 ‘김종인 카드’는 거물급 인사의 영입으로 당내는 물론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 당의 바람을 잠재우겠다는 포석도 있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에서 실패했다고 비판해 온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를 더욱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는 또 자신의 거취에 대해 “지금까지 여러번 ‘앞으로 통합의 틀이 마련되면 당 대표 직도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으며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야권 대통합을 위한 노력들을 하고 그 실현을 위해 내려놓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광주 등 호남을 대표하는 공동선대위원장을 추가로 임명하기로 했으며 천정배 의원과의 야권 대통합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앞서 문 대표는 호남 민심 달래기 차원에서 호남 출신 외부 인사의 공동선대위원장을 영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김 전 의원은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친손자로, 김병로 선생의 고향은 전북 순창이다. 당초 문 대표는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로 ‘김종인-박영선’ 카드를 추진했으나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의원이 이끄는 조기선대위 체제로 전환되면 문 대표는 인재영입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표는 현역 의원들의 잇따른 탈당 사태에도 동요하지 않고 참신하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힘을 썼다. 한편 김 전 의원은 서강대 교수 출신으로, 6공화국 시절 보사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역임했으며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의 신설을 주도했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여당의 핵심 공약을 성안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과 관련해 쓴소리를 해왔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종인, 더민주 선대위원장 ‘반전’ 영입… “천정배와의 야권 대통합도 추진”

    김종인, 더민주 선대위원장 ‘반전’ 영입… “천정배와의 야권 대통합도 추진”

    김종인, 더민주 선대위원장 ‘반전’ 영입… “천정배와의 야권 대통합도 추진”김종인(76)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조기선대위원장으로 14일 전격 영입됐다. 문재인 더민주당 대표는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야권 대통합을 위한 실현을 위해 대표직을 내려놓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끌었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총선을 준비했으며, 박 대통령의 ‘경제 멘토’ 역할을 했다. 특히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문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당대표실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김 전 의원의 선대위원장 인선문제를 확정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선대위를 조기 출범시키고 김종인 박사를 당 선대위원장으로 모시려고 한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김 전 의원을 ‘경제민주화의 상징’이라고 소개한 뒤 “우리 당이 유능한 경제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또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 김 박사의 지혜와 경륜이 꼭 필요하다”면서 “빠른 시일내에 당내 동의를 진행한 뒤 김 박사를 중심으로 총선 필승을 하고 정권교체까지 바라보는 선대위 구성을 빠르게 마무리해 총선 관리를 맡기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박사는 우리 시대 과제인 소득불평등 해소를 위해 유능한 정당을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면서 “이번 총선은 박근혜 정부의 불평등에 맞서는 심판으로, 낡은 경제세력과 새 경제세력의 대결”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표의 이같은 ‘반전’ 인사는 김종인 선대위원장 체제를 출범시켜 조기 선대위 체제로 전환해 분당 사태로 비화된 당의 내분을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특히 ‘김종인 카드’는 거물급 인사의 영입으로 당내는 물론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 당의 바람을 잠재우겠다는 포석도 있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에서 실패했다고 비판해 온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를 더욱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는 또 자신의 거취에 대해 “지금까지 여러번 ‘앞으로 통합의 틀이 마련되면 당 대표 직도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으며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야권 대통합을 위한 노력들을 하고 그 실현을 위해 내려놓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광주 등 호남을 대표하는 공동선대위원장을 추가로 임명하기로 했으며 천정배 의원과의 야권 대통합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앞서 문 대표는 호남 민심 달래기 차원에서 호남 출신 외부 인사의 공동선대위원장을 영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김 전 의원은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친손자로, 김병로 선생의 고향은 전북 순창이다. 당초 문 대표는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로 ‘김종인-박영선’ 카드를 추진했으나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의원이 이끄는 조기선대위 체제로 전환되면 문 대표는 인재영입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표는 현역 의원들의 잇따른 탈당 사태에도 동요하지 않고 참신하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힘을 썼다. 한편 김 전 의원은 서강대 교수 출신으로, 6공화국 시절 보사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역임했으며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의 신설을 주도했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여당의 핵심 공약을 성안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과 관련해 쓴소리를 해왔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더민주, 김종인 전 의원 ‘깜짝’ 영입… “천정배와의 야권 대통합도 추진”

    더민주, 김종인 전 의원 ‘깜짝’ 영입… “천정배와의 야권 대통합도 추진”

    더민주, 김종인 전 의원 ‘깜짝’ 영입… “천정배와의 야권 대통합도 추진”김종인(76)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조기선대위원장으로 14일 전격 영입됐다. 문재인 더민주당 대표는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야권 대통합을 위한 실현을 위해 대표직을 내려놓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끌었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총선을 준비했으며, 박 대통령의 ‘경제 멘토’ 역할을 했다. 특히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문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당대표실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김 전 의원의 선대위원장 인선문제를 확정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선대위를 조기 출범시키고 김종인 박사를 당 선대위원장으로 모시려고 한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김 전 의원을 ‘경제민주화의 상징’이라고 소개한 뒤 “우리 당이 유능한 경제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또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 김 박사의 지혜와 경륜이 꼭 필요하다”면서 “빠른 시일내에 당내 동의를 진행한 뒤 김 박사를 중심으로 총선 필승을 하고 정권교체까지 바라보는 선대위 구성을 빠르게 마무리해 총선 관리를 맡기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박사는 우리 시대 과제인 소득불평등 해소를 위해 유능한 정당을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면서 “이번 총선은 박근혜 정부의 불평등에 맞서는 심판으로, 낡은 경제세력과 새 경제세력의 대결”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표의 이같은 ‘반전’ 인사는 김종인 선대위원장 체제를 출범시켜 조기 선대위 체제로 전환해 분당 사태로 비화된 당의 내분을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특히 ‘김종인 카드’는 거물급 인사의 영입으로 당내는 물론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 당의 바람을 잠재우겠다는 포석도 있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에서 실패했다고 비판해 온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를 더욱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는 또 자신의 거취에 대해 “지금까지 여러번 ‘앞으로 통합의 틀이 마련되면 당 대표 직도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으며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야권 대통합을 위한 노력들을 하고 그 실현을 위해 내려놓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광주 등 호남을 대표하는 공동선대위원장을 추가로 임명하기로 했으며 천정배 의원과의 야권 대통합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앞서 문 대표는 호남 민심 달래기 차원에서 호남 출신 외부 인사의 공동선대위원장을 영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김 전 의원은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친손자로, 김병로 선생의 고향은 전북 순창이다. 당초 문 대표는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로 ‘김종인-박영선’ 카드를 추진했으나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의원이 이끄는 조기선대위 체제로 전환되면 문 대표는 인재영입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표는 현역 의원들의 잇따른 탈당 사태에도 동요하지 않고 참신하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힘을 썼다. 한편 김 전 의원은 서강대 교수 출신으로, 6공화국 시절 보사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역임했으며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의 신설을 주도했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여당의 핵심 공약을 성안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과 관련해 쓴소리를 해왔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으로 ‘깜짝 반전’ 영입… ‘경제민주화’ 아이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으로 ‘깜짝 반전’ 영입… ‘경제민주화’ 아이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으로 ‘깜짝 반전’ 영입… ‘경제민주화’ 아이콘김종인(76)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조기선대위원장으로 14일 전격 영입됐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끌었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총선을 준비했으며, 박 대통령의 ‘경제 멘토’ 역할을 했다. 특히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문 대표의 이같은 ‘반전’ 인사는 김종인 선대위원장 체제를 출범시켜 조기 선대위 체제로 전환해 분당 사태로 비화된 당의 내분을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특히 ‘김종인 카드’는 거물급 인사의 영입으로 당내는 물론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 당의 바람을 잠재우겠다는 포석도 있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에서 실패했다고 비판해 온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는 호남 민심 달래기 차원에서 호남 출신 외부 인사의 공동선대위원장을 영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김 전 의원은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친손자로, 김병로 선생의 고향은 전북 순창이다. 당초 문 대표는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로 ‘김종인-박영선’ 카드를 추진했으나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의원이 이끄는 조기선대위 체제로 전환되면 문 대표는 인재영입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표는 현역 의원들의 잇따른 탈당 사태에도 동요하지 않고 참신하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힘을 썼다. 한편 김 전 의원은 서강대 교수 출신으로, 6공화국 시절 보사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역임했으며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의 신설을 주도했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여당의 핵심 공약을 성안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과 관련해 쓴소리를 해왔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종인 선대위원장 전격 영입…문재인의 ‘반전’ “대표직 내려놓을 수도”

    김종인 선대위원장 전격 영입…문재인의 ‘반전’ “대표직 내려놓을 수도”

    김종인 선대위원장 전격 영입…문재인의 ‘반전’ “대표직 내려놓을 수도”김종인 선대위원장 전격 영입 김종인(76)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조기선대위원장으로 14일 전격 영입됐다. 문재인 더민주당 대표는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야권 대통합을 위한 실현을 위해 대표직을 내려놓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끌었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총선을 준비했으며, 박 대통령의 ‘경제 멘토’ 역할을 했다. 특히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문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당대표실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김 전 의원의 선대위원장 인선문제를 확정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선대위를 조기 출범시키고 김종인 박사를 당 선대위원장으로 모시려고 한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김 전 의원을 ‘경제민주화의 상징’이라고 소개한 뒤 “우리 당이 유능한 경제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또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 김 박사의 지혜와 경륜이 꼭 필요하다”면서 “빠른 시일내에 당내 동의를 진행한 뒤 김 박사를 중심으로 총선 필승을 하고 정권교체까지 바라보는 선대위 구성을 빠르게 마무리해 총선 관리를 맡기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박사는 우리 시대 과제인 소득불평등 해소를 위해 유능한 정당을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면서 “이번 총선은 박근혜 정부의 불평등에 맞서는 심판으로, 낡은 경제세력과 새 경제세력의 대결”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표의 이같은 ‘반전’ 인사는 김종인 선대위원장 체제를 출범시켜 조기 선대위 체제로 전환해 분당 사태로 비화된 당의 내분을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특히 ‘김종인 카드’는 거물급 인사의 영입으로 당내는 물론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 당의 바람을 잠재우겠다는 포석도 있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에서 실패했다고 비판해 온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를 더욱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는 또 자신의 거취에 대해 “지금까지 여러번 ‘앞으로 통합의 틀이 마련되면 당 대표 직도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으며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야권 대통합을 위한 노력들을 하고 그 실현을 위해 내려놓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광주 등 호남을 대표하는 공동선대위원장을 추가로 임명하기로 했으며 천정배 의원과의 야권 대통합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앞서 문 대표는 호남 민심 달래기 차원에서 호남 출신 외부 인사의 공동선대위원장을 영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김 전 의원은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친손자로, 김병로 선생의 고향은 전북 순창이다. 당초 문 대표는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로 ‘김종인-박영선’ 카드를 추진했으나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의원이 이끄는 조기선대위 체제로 전환되면 문 대표는 인재영입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표는 현역 의원들의 잇따른 탈당 사태에도 동요하지 않고 참신하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힘을 썼다. 한편 김 전 의원은 서강대 교수 출신으로, 6공화국 시절 보사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역임했으며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의 신설을 주도했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여당의 핵심 공약을 성안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과 관련해 쓴소리를 해왔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도요타 “친환경 자동차 R&D 年 1조엔 투자하겠다”

    도요타 “친환경 자동차 R&D 年 1조엔 투자하겠다”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전지차, 수소차, 하이브리드차 등 다양한 종류의 친환경 자동차를 연구개발하는 데 연 1조엔(약 10조 3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친환경차 개발을 특정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도요다 아키오(59) 사장은 12일 “앞으로 100년은 친환경 자동차의 시대가 될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창업주 도요다 기이치로 회장의 손자인 그는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공동 인터뷰에서 “닛산이 전기자동차(EV), 다임러는 연료전지차(FCV)에 주력하고 있지만 도요타는 다양한 친환경 기술 전반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환경보호를 위해 각국이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라면서 “각국 규제에 맞는 친환경 자동차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요타는 2050년 판매 신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90% 줄이고, 2020년 연료전지차 세계 판매 대수를 연간 3만대 이상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그는 이어 “판매 대수 등 수치 목표를 내걸지 않고 경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폭스바겐의 스캔들 등은 숫자화된 목표를 내걸어 조직이 한 방향으로 폭주한 결과”라며 “근접한 목표의 수치화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경영진에겐 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운전하는 사람에게 일종의 자유와 결정권을 주는 무엇”이라면서 “인공지능(AI) 등이 사람의 기량을 보완해 사고를 막고, 더 안전하고 쾌적한 주행을 실현해 자동차의 매력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세계서 가장 아름다운 할머니 대회’ 나오는 38세 여성 화제

    ‘세계서 가장 아름다운 할머니 대회’ 나오는 38세 여성 화제

    올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할머니를 선발하는 대회에 출전하게 된 38세 러시아 대표가 대회 시작 전부터 미모로 인터넷상에서 화제를 일으켰다. 러시아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등 현지언론은 러시아 여성 엘리자베스 로디나(38)가 오는 18일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개최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할머니 선발대회’에 대표로 참가한다고 전했다. 현지언론은 엘리자베스가 다른 참가자들보다 나이가 어릴 뿐만 아니라 빼어난 미모를 갖고 있어 우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친딸 안나와 함께 ‘데카메론’이란 이름의 그룹으로 가수 활동을 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로디나는 최근 러시아에서 열린 가장 아름다운 할머니 선발대회에서 1위를 차지해 이번 세계 대회의 참가 자격을 획득했다. 38세밖에 안 된 여성이 할머니라니 믿기지 않겠지만, 이 대회는 ‘친손주가 있다’거나 ‘나이가 45세 이상’이라는 두 조건 중 한 가지를 충족하면 출전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는 올해 38세밖에 안 됐지만, 현재 생후 3개월 된 손녀를 두고 있어 자격 조건은 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는 군인인 아버지와 함께 6살 때 극동 연방관구로 이사한 뒤 다시 스몰렌스크 주(州)로 이주해 대학을 나온 뒤 딸 안나를 낳았다. 그후 가족과 함께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6년 전인 2009년에도 러시아 대표로 출전한 47세 여성 엘레나 트베리트네바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할머니로 뽑혔다. 당시 우승자는 두 아들과 손자 3명을 두고 있었다. 사진=인스타그램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와일드캣 비리’ 김양 징역 4년…법원 “실제 알선 안 했어도 영향”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현용선)는 11일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 도입 과정에서 외국계 방산업체 고문으로 거액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양(63) 전 국가보훈처장에게 징역 4년, 추징금 13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전 처장은 해상작전헬기 구매사업과 관련해 공무원에게 아구스타웨스트랜드(AW)의 입장을 전달하는 등 알선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했다”며 “고문 계약에는 조언자 역할을 넘어 사업 담당 공무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또 “해상작전헬기 구매사업은 우리나라 안전보장에 직접 영향을 미쳐 업무의 공정성과 신뢰가 보호돼야 한다”며 “김 전 처장이 실제 알선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형을 감경하는 요소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백범 김구의 손자이기도 한 김 전 처장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AW사로부터 고문료 14억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7월 기소됐다. 김 전 처장은 “정상적인 고문 계약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월드피플+] 아내에게 ‘24억 당첨 복권’ 선물한 남편 사연

    [월드피플+] 아내에게 ‘24억 당첨 복권’ 선물한 남편 사연

    지난해 연말 미국 미주리주 플라트 시티에 사는 한 남편이 부인에게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넸다. 부인이 받은 선물은 12월 초 구매한 한 장의 로또 복권. 그러나 이 로또는 놀랍게도 200만 달러(약 24억원)에 당첨된 그야말로 대박 복권이었다.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은 장성한 세 자식과 두 명의 손자를 둔 로버트 볼윈 부부의 가슴 따뜻한 사연을 전했다. 사연은 지난해 12월 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남편 로버트는 지역 내 마트에서 미주리주에서 발행하는 숫자 6개를 맞추는 복권을 구매했다. 그리고 추첨이 이루어진 다음날 이 복권이 1등에 당첨돼 그는 2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손에 쥐게됐다. 당연히 기쁜 소식을 부인은 물론 가족과 나눠야했지만 그는 이 사실을 꾹꾹 숨겼다. 그리고 3주가 흐른 크리스마스에 그는 이 복권을 부인에게 선물했다. 부인에게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기 위해 숨기기 힘들었던 비밀을 참고있었던 것. 이같은 사실은 뒤늦게 미주리주 지역언론을 통해 알려졌으며 결국 전국뉴스가 됐다.     현지언론은 "볼윈 부부가 지난 29일 함께 당첨금을 수령했다"면서 "거액의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지 못한 부부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고 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현장 블로그] ‘청소년 담배셔틀 500원 할아버지’를 아시나요

    [현장 블로그] ‘청소년 담배셔틀 500원 할아버지’를 아시나요

    ●“애들 방학땐 소주값 못벌어서 아쉽지” 7일 오전 11시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은행공원. 두꺼운 외투를 입고 공원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걸로 보였던 한 남학생이 할아버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말을 몇 마디 나누는가 싶더니 5000원짜리 한 장을 받아든 할아버지가 담배 가게로 향합니다. 학생은 근처 화장실로 들어가 자리를 피합니다. 걸음걸이조차 힘겨운 할아버지는 학생을 찾아 담배를 건네고, 잔돈 500원을 호주머니에 넣습니다. 말로만 듣던 ‘할아버지 담배 셔틀’은 5분 만에 이렇게 이뤄졌습니다. 올해 71세인 이씨 할아버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입니다. “방학이니까 애들이 없어서 아쉽지. 세 번만 하면 소주 한 병 값이 나오는데.” ●흡연 중고생들 사이에서 ‘성지’로 유명 은행공원은 주변 중고생들 사이에서 이른바 ‘성지’로 불립니다. 거기에 가면 담배 심부름에 응해주는 할아버지들이 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엔 노숙인들도 끼어 있습니다. 할아버지들이 낮 동안 공원을 지키다 귀가하면, 담배 심부름 의뢰는 노숙인에게 갑니다. 하루 20차례 이상 담배 가게를 찾아 ‘500원 할아버지’로 불리던 할아버지도 있었다고 합니다. 공원에 있던 김모(69)씨는 “용돈 벌이가 된다는 소문이 퍼졌다”면서 “나도 중학생 녀석한테 한 번에 네 갑을 사다준 적이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실제 6~7일 사이 목격된 다섯 차례의 심부름은 모두 다른 할아버지들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급기야 지난해 5월에는 담배 셔틀에 대한 신고가 이어지자 관할 금천경찰서가 단속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협조요청 공문을 구청이나 학교에 보내고 담배가게 주인들을 상대로도 안내를 했습니다. 현행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의 의뢰를 받아 청소년유해약물 등을 구입해 청소년에게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 실제 입건된 사례는 총 3차례. 담배 심부름이 아니라고 주장할 경우 입증이 어려운데다 불우한 노인들을 형사처벌하는 게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경찰의 현실적인 고민도 있는 듯합니다. 이날 오후에도 학생들과 할아버지들의 불편한 만남은 이어졌습니다. 빈곤의 덫에 빠진 노인들이 손자뻘 되는 아이들의 담배 심부름을 해주고 감지덕지 몇 푼 챙겨 가는 씁쓸한 풍경. 2016년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여보, 24억 당첨복권이야” 어느 남편의 감동 선물

    “여보, 24억 당첨복권이야” 어느 남편의 감동 선물

    지난해 연말 미국 미주리주 플라트 시티에 사는 한 남편이 부인에게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넸다. 부인이 받은 선물은 12월 초 구매한 한 장의 로또 복권. 그러나 이 로또는 놀랍게도 200만 달러(약 24억원)에 당첨된 그야말로 대박 복권이었다.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은 장성한 세 자식과 두 명의 손자를 둔 로버트 볼윈 부부의 가슴 따뜻한 사연을 전했다. 사연은 지난해 12월 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남편 로버트는 지역 내 마트에서 미주리주에서 발행하는 숫자 6개를 맞추는 복권을 구매했다. 그리고 추첨이 이루어진 다음날 이 복권이 1등에 당첨돼 그는 2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손에 쥐게됐다. 당연히 기쁜 소식을 부인은 물론 가족과 나눠야했지만 그는 이 사실을 꾹꾹 숨겼다. 그리고 3주가 흐른 크리스마스에 그는 이 복권을 부인에게 선물했다. 부인에게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기 위해 숨기기 힘들었던 비밀을 참고있었던 것. 이같은 사실은 뒤늦게 미주리주 지역언론을 통해 알려졌으며 결국 전국뉴스가 됐다.     현지언론은 "볼윈 부부가 지난 29일 함께 당첨금을 수령했다"면서 "거액의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지 못한 부부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고 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새해 첫날 45세 생일맞은 멸종위기 ‘검정 코뿔소’

    새해 첫날 45세 생일맞은 멸종위기 ‘검정 코뿔소’

    전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 동물로 보호되고 있는 검정 코뿔소(black rhinoceros)가 새해 첫날 45세 생일상을 받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1일(현지시간) 미 주요 언론들이 보도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은 새해 첫날인 2016년 1월 1일, 자체 페이스북에 동물원에서 사육하고 있는 검정 코뿔소인 엘리(Elly)에게 오트밀과 당밀 등으로 '45' 숫자가 새겨진 맛있는 생일상을 제공해주었다고 밝혔다. 동물원 측은 야생에서 출생한 이 이 코뿔소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지난 1974년 4월부터 이 동물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엘리가 1971년 1월 1일 출생한 것으로 간주하고 매년 새해에 생일상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암코뿔소인 엘리는 40년 넘게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에 생활하는 동안 14마리의 새끼와 15마리의 손자새끼, 6마리의 증손자 새끼 등을 거느리는 대가족을 형성하는 데 일조를 했다고 동물원 측은 강조했다. 코뿔소는 1960년대 이전만 해도 약 20만 마리가 넘게 지구 상에 존재했으나, 일부 국가에서 코뿔소의 뿔이 만병통치약으로 잘못 알려져 대표적인 밀렵의 표적이 되는 바람에 현재는 그 수가 약 3천에서 5천 마리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멸종위기 보호동물로 지정되어 있다. 샌프란시스코 동물원 측은 북미 지역 동물원에는 모두 약 60마리의 코뿔소가 있는데, 마이애미 동물원에 있는 코뿔소가 약 38세의 나이로 추정되어 엘리가 북미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코뿔소라고 강조했다. 몸무게가 900kg이 넘게 나가는 엘리는 평소 바나나와 옥수수, 비트 등을 좋아하며 현재 손자 코뿔소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동물원 측은 밝혔다. 검정 코뿔소는 시력이 약한 편이지만, 대신 월등한 청각과 후각을 가지고 있으며, 야생에서는 보통 수명이 16년에서 20년 정도로 알려졌다. 사진: 새해 첫날 45세 생일을 맞은 검정 코뿔소 (샌프란시스코 동물원 제공)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2016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핀 캐리(pin carry)-김현경

    [2016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핀 캐리(pin carry)-김현경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감당할 수 있는 볼링공의 무게는 다르다. 몸무게의 10분의 1 정도 되는 볼링공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완력에 자신이 있다면 더 무거운 공도 괜찮다. 볼이 무거울수록 흔들림은 적고, 파괴력은 더 커진다. 오빠는 자신의 체중에 비해 다소 무거운 공을 사용하곤 했다. 그 16파운드짜리 볼링공이 65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 오빠에게 실제로 버거웠는지, 아니면 적절한 무게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오빠의 동영상을 반복해서 되돌려 보았다. 유튜브 검색 창에서 오빠의 이름과 ‘볼링’이라는 단어를 함께 치면 열 개가 넘는 동영상이 뜬다. Y시장배 아마추어 볼링 대회의 결승전 영상, 그리고 형식이 ‘제일볼링장’이라는 태그를 달아 업로드한 짧은 영상들로, 대부분 볼링공을 던지고 있는 오빠의 뒷모습을 찍은 것이다. 이따금 스트라이크를 치고 나면, 뒤로 돌아 허공을 향해 두 주먹을 내지르며 기뻐하는 모습이 짤막하게 잡히기도 했다.  기차가 속도를 줄이자 차창 밖으로 눈에 익은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커다란 모형 볼링핀을 지붕 위에 얹은 ‘제일볼링장’ 간판도 보였다. 나는 객차의 출입문을 향해 트렁크 바퀴를 천천히 굴리며 걸어갔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낡고 찌든 구두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오래된 구두로, 십여 년 전 그를 쫓아낸 오빠가 아버지의 외투와 함께 마당으로 내던졌던 그 구두였다. 앞코가 해지고, 뒤꿈치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낡은 갈색 구두의 원래 모습이 얼마나 날렵했는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당신은 아바이도 아이다.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만 우리 둘 다 제 명에 몬 삽니데이. 살아생전에 서로 보는 일 없도록 하입시더!” 오빠는 커다란 전정가위를 손에 든 채로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내가 있는 한, 이 집에 그 종자가 발을 디디 놓는 일은 없을 끼다. 엄마도 맞고 산 세월은 이제 잊으이소. 열일곱 살의 오빠는 짐짓 근엄하게 말했다. 자신이 지키고 있는 한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던 오빠의 말은 그대로 지켜진 셈이다. 하지만 오빠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아버지는 십 년 만에 나타나 러닝셔츠와 트렁크 팬티 바람으로 거실에 선 채로 나를 맞고 있었다. 닳을 대로 닳은 구두만큼이나 아버지의 몰골은 비참했다. 몸피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정수리의 머리카락은 다 빠져 휑뎅그렁했다. 게다가 새카만 피부와 깡마른 팔다리, 그리고 볼록한 배는 아프리카의 기아를 연상시켰다. 기세등등했던 예전의 모습을 모두 잃어버린 채 젓가락 같은 팔로 러닝셔츠 안의 배를 긁고 있는 그의 모습에 나는 흠칫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왔나? 밥은? 너거 엄마는 밭에 갔다. 덥은데 어서 들와서 선풍기 바람 쫌 쐐라.” 약간 새된 소리가 섞인 음성은 그대로였다. 방금 학교에서 돌아온 딸을 맞는 듯 다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고 있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는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을 자격이 없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내한테도, 거…걸리가 있다 카더라. 나도 다 들었는 말이 있다.” “걸리고, 권리고 간에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어떤 집인데!” 나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는 대꾸도 하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서 현관과 맞닿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내 방이었다. 고향을 떠나고 나서야 갖게 된 내 방. 그가 방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내가 신발조차 벗지 않고 현관에 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현관에 놓인 그의 구두를 집어 들어 마당으로 던져 버렸다.  냉장고에는 자양강장제 열 병이 두 개씩 나란히 줄을 지은 채 놓여 있었다. 각성 효과가 있다는 자양강장제를 물처럼 마시던 오빠가 세상을 뜬 지도 이 년이 지났지만, 엄마는 냉장실 가장 잘 보이는 선반에 갈색 병에 담긴 드링크를 열 병씩 정리해 놓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다. 오빠는 매일 아침 자양강장제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젊은 날의 선택’이라는 광고로 유명한 노란색 드링크제를 양쪽 점퍼 주머니에 불룩하게 넣은 채로 출근하던 그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고가 났던 날, 오빠가 몰던 트럭 조수석 바닥에는 빈 드링크제 병이 스무 개 남짓 뒹굴고 있었다. 오빠는 졸릴 때마다 자양강장제를 마시면 힘이 난다고 했다. 오빠는 자주 졸려했고, 늘 피곤해했다. 일상생활에서도 깜박깜박하는 일이 잦아서 소변을 본 후 변기 커버를 위로 젖혀 놓고 물도 내리지 않은 채, 화장실에서 그냥 나오는 일이 허다했다. 나는 그를 대신해 물을 내리면서 자양강장 드링크제처럼 샛노란 오빠의 오줌이, 거품을 일으키며 변기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다. 오빠 방에 들고 온 짐을 풀었다. 책상에 놓인 액자 속 오빠는 머리카락을 노랗게 탈색한 채 경직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담은 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 사진 액자 옆에는 두 개의 볼링핀이 놓여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볼링핀 모양의 트로피다. 한 개는 2.0리터짜리 생수 병 크기 정도로 크고, 나머지 하나는 막걸리 병만 했다. 오빠가 냉장 트럭에 가득 싣고 다니던 막걸리 말이다. 오빠는 이 지역에서 소문난 아마추어 볼링 선수였다. 그와 한판 붙기 위해 인근의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이곳까지 원정을 오기도 했었다는 건 오빠가 죽고 나서야 알았다. 빈소에서 문상객들이 늘어놓는 오빠의 무용담을, 나는 상복을 입고 빈청에 앉아 참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오빠의 사인은 졸음 운전이 불러일으킨 사고로 인한 심박정지였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IC 인근에서 서울 방면으로 시속 130㎞로 달리던 K주류회사의 냉장 트럭이 오전 6시 40분경 가드레일을 들이받았고,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보도가 전파를 탈 만큼 큰 사고였다, 새벽부터 출근해 냉장 트럭을 몰고 전국 각지로 막걸리를 배달하다가 사고를 당했으므로 그의 죽음은 당연히 업무상 재해에 해당했다. 사고 전날에도 오빠는 새벽 4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했고, 사고 당일에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출근했다. 그러나 회사는 오빠가 죽기 전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쳤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 나는 엄마에게 절대 회사가 원하는 대로 합의서 따위에 도장을 찍어 주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엄마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오빠의 회사 사람들이 찾아와 현란하게 혀를 휘두를 때에도 엄마가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이다. 나는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엄마의 곁을 지켰다. 문도 열어 줘서는 안 된다는 회사 사람들을 집에 들이고, 오빠가 즐겨 마시던 드링크제를 그들에게 내놓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엄마를 때리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오빠가 그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치지 않았더라면…. 회사는 이런 가정을 내놓고 우리를 괴롭혔다. 과한 취미생활이 화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나는 오빠를 대신해 회사와 싸웠다. 회사의 주장이 말도 되지 않는 것이라 강변하면서도 새로운 가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라 괴로웠다. 그날 아침 내가 오빠에게 전화라도 한 통 했더라면 그런 사고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빠가 그날 새벽에 뜨거운 국과 밥을 먹고 나간 것이 오히려 졸음 운전의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까. 엄마는 싫다는 오빠에게 한사코 아침을 먹여 보낸 것을 후회했다. 만약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내 한 학기 등록금은 당시 식구들이 살던 고향집의 연세(年貰)보다 비쌌다. 머릿속에서 새로운 가정이 하나씩 튀어나올 때마다 커다란 대바늘이 심장을 깊게 찔러 대는 느낌이었다. 오빠의 죽음을 곱씹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가정들과 후회는 바늘 끝처럼 날카롭고 좁았다가 때로는 큰 파도처럼 밀려와 삶 전체를 부정하고 휘저어 버렸다. 아버지가 반듯한 가장이었다면, 엄마가 좀 더 야무지게 우리 남매를 건사할 줄 알았더라면, 오빠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장례식장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위로의 말은 엄마에게 잘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웃들과 몇 안 되는 친척들은 동공이 초점을 잃고 실성한 사람처럼 빈소를 지키고 있는 엄마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나더러, 이제 너그 엄마한테 남은 사람은 인숙이 니밖에 없다고 말했다. 친척들은 혹시라도 자신에게 일말의 부담이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경계심을 감추고 살아남은 내 책임을 강조했다. 나 역시 하나뿐인 오빠를 잃었다는 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다. 슬픔 이전에 책임이라는 단어가 목구멍에 와 박히면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더구나 촌각을 다투면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았다. 오빠의 시신을 확인하고, 경찰을 면담하고, 장례 절차를 결정하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내 동창이자 오빠의 친한 후배였던 형식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곤란한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인호 행님은 내한테도 친행님이나 다름없다. 형식은 삼일 내내 장례식장에 머무르며 우리를 도왔다. 형식은 주변의 선후배들에게 오빠의 부고를 알렸고, 생각보다 늘어나는 조문객을 맞으려 술과 음식을 추가로 주문했다. 나를 대신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음식을 나르며 조문객들을 대접했고, 장례 행렬 맨 앞에서 오빠의 영정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장례 기간 내내 내 시선을 피해 의아한 마음이 들게 했다.  오빠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화장터 앞마당으로 나를 따로 불러 오빠가 남긴 보험금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준 것도 형식이었다.  “장례 다 치아고 말해 줄라 캤는데 행님을 저래 불구디에 보내디리고 나이 인자 말해도 되겠다 싶어서. 볼링동호회에 보험설계사 하시는 행님이 계시거덩. 그 행님한테 인호 행님이 얼마 전에 보험 하나를 들었다. 그기 정확히 말하만, 무슨 내기를 해가꼬 20만 원 정도 인호 행님이 땄는데 그거를 보험 행님이 돈으로 안 주고 인호 행님 이름으로 종신보험을 들어뿌맀다 이기라. 첫 달 보험료 대납해 줬다 카민서. 두 달도 안 된 일인기라. 그걸로 그 보험 행님이랑 인호 행님이 싸우고 억수로 난리 났는데, 일이 이래 되고 보이 이런 거를 불행 중 다행이라 캐야 되는 긴지…. 사람 운명이라 카는 기 참… 얄궂다.” 형식은 끝까지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은 채, 나와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길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화장터에서 나는 매캐한 냄새와 형식의 담배 냄새가 섞여 공중으로 흩날려졌다.   오빠가 내 이름으로 남긴 보험금이 꽤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웃들은 그래도 이제 인숙이네는 걱정 없겠다는 말을 대놓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아들 죽은 보험금으로 포도밭을 사고 새로 집을 지었다며 수군거렸다.  돈으로 위로할 수 있는 죽음이란 없다. 오빠의 보험금을 받았다고 해서 그를 잃은 슬픔이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위로받기 위해 그 돈을 받은 것 또한 아니었다. 오빠는 죽으면서 보험금을 내 앞으로 남겼고, 우리는 오빠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돈이 필요했다. 우리는 항상 가난했다. 오빠는 가난하게 자라, 가난하게 살다가 갔고, 우리에게 적지 않은 돈을 남겼다. 보험금 5억과 회사로부터 받은 보상금 1억, 6억이란 돈은, 남은 사람들이 더 이상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돈이었다.  남의 집 농사일을 도와주고 품삯을 받으며 살던 엄마의 소원은 자기 명의의 땅과 집을 가지는 것이었다. 내 소원은 학교 앞에 원룸이라도 하나 얻고, 돈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니는 것이었다. 오빠는 형식처럼 볼링장 아들로 태어나 볼링을 실컷 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가 굳어지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농담이라며 유난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꿈은 나와 엄마의 소원을 이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세 사람의 소원은 모두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중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고시원을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내 공간으로 마련한 8평짜리 오피스텔은 아늑했다. 뜨거운 물을 가장 센 수압으로 오래도록 틀어 놓고 머리를 감다가,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는 스스로에게 흠칫 놀라 벌거벗은 몸으로 주위를 둘러본 적이 있다. 나는 이 집에서 행복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되뇌면서 괜히 주눅이 들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볼링을 몰랐더라면, 형식과 어울리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현실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은 지금도 떨치기 어렵다. 장례가 끝난 후, 오빠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휴대전화에 남겨진 형식의 메시지들을 읽으며 나는 호흡이 가빠졌다. 형식은 거의 매일 밤 오빠를 자기네 볼링장으로 불러냈다.  행님 오늘 제가 3 대 3 죽이는 멤버들로 조 짜놨습니더. 판돈이 꽤 커예. 이거는 진짜 빅 매치라요. 컨디션 조절 잘하고 오시이소. 드링크 시원하게 해 놓고 기다리께예. 오빠의 휴대전화를 들고 읍내에 있는 형식의 볼링장으로 달려갔다. 볼링장 입구의 커피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를 보자마자 따귀를 올려붙였다. 형식이 놓친 종이컵에 담긴 커피가 바닥에 쏟아졌다.  “으. 뜨거버라! 니 미친 거 아이가.”  대답도 없이 볼링 레인 앞에 놓인 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볼링공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 볼링장 입구의 유리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야, 이형식. 너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어?” “머라카노. 니 뭐 잘몬 쳐 묵었나.” “너는 왜 이렇게 멀쩡해? 우리 오빠를 노름에 끌어들여 죽게 해 놓고,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살고 있냐고!” 나는 형식이 가슴팍과 어깨를 주먹으로 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다, 그런 기 아이고. 니가 무슨 오해가 있는 갑는데, 행님은 노름을 하신 기 아이고… 그거는 그냥 친목 도모다. 그라이깐 여기 볼링동호회 회원들끼리 재미로 했던 내기인기라.” “그래? 그럼 이 얘기 경찰서 가서 한 번 해 볼까. 매일 밤 판돈이 백만 원에서 이백만 원씩 오가는 볼링 게임이 내기인지 도박인지 말이야.” “니 말 다했나? 니 그래 말하만 나는 뭐 할 말 없을 줄 아나. 그래도 해…행님이 우리캉 볼링을 칬기 때문에 그 보험을 들게 된 기지. 동네 사람들이 다 칸다. 너거 집은 행님 죽어 가꼬, 그나마 남은 사람들이 살게 됐다꼬. 6억이 뭐 누구 집 아 이름이가?” 나는 형식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레인 앞에 놓인 볼링공 하나를 들어 카운터 방향으로 던졌다. 형식이 자리를 비운 카운터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둔탁하게 볼링공이 떨어지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장 볼링장 밖으로 나와 버렸다. 뒤통수에 대고 거칠게 욕을 하는 형식에게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입구에 잘게 부서져 있는 유리 조각을 밟으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밭에서 돌아온 엄마의 바지 자락은 흙투성이였다. 엄마는 입구에 더러운 몸뻬 바지와 토시를 허물처럼 벗어 두고, 반팔 셔츠와 팬티만 입은 채로 거실을 가로질러 욕실로 들어갔다. 못 본 사이 살이 더 빠졌는지 팬티조차 몸뻬처럼 헐렁했다. 엄마는 팬티를 발목까지 내리고 쪼그리고 앉아 욕실 바닥에 소변을 보았다. 욕실 문도 닫지 않고 수채 구멍에 오줌을 누는 엄마의 엉덩이를 나는 얼굴을 찌푸린 채 바라보았다. 변기가 아닌 수채 구멍 앞에 쪼그려 앉아 소변을 보는 엄마의 버릇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이기 편한데 우짜겠노. 엄마는 늘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 입안에서 삼키듯이 말했다. 학창 시절, 매일 아침 욕실에 들어갈 때마다 욕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지린내에 숨이 막혔다. 변기 물 내리는 것을 자주 깜빡하는 오빠도 지긋지긋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꼭 서울로 대학을 가야겠냐고 묻는 오빠의 질문에 나는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첫 학기 등록금만 마련해 달라고, 그다음에는 어떻게든 내가 알아서 해 보겠다며 겨우 오빠를 설득했다. 오빠에게도 집을 떠날 기회가 있었다. 공고 3학년 때 수원에 있는 반도체 공장에 취직이 되었지만 오빠는 고민 끝에 입사를 포기했다. 아들을 멀리 보내기 싫어했던 엄마의 만류 탓이 컸다. 대신 오빠는 집에서 멀지 않은 막걸리 공장에 취직했다.  “인숙아, 오빠야가 볼링부인 거 알제? 오빠야가 볼링 칠 때 제일 어려븐 기 뭐꼬 카만 스페어(spare) 처리다. 한 번에 스트라이크를 못 시키만 두 번째 공 떤질 때 나머지를 다 넘가야 되거덩. 최고 골치 아픈 기 뭐꼬 카만 핀이 몇 개 남지도 안해 가꼬 뚝뚝 떨어지가 있을 때인 기라. 그거를 스플릿(split)이라 카거덩. 양쪽 끝에 핀이 이래 두 개 뚝 떨어져 있으면 결국 한 개를 내삐릴 수빢에 없더라 카이. 그라이깐, 식구끼리는 서로 붙어 살아야 처리가 쉽다. 뭐 이런 말이다.”  오빠가 한창 볼링에 빠져들던 시기였다. 오빠는 모든 것을 볼링과 연결시켜 이야기하려 들었고, 볼링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환하게 웃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그때부터 굳게 다짐했다. 처치 곤란한 스페어, 그래서 포기해야 하는 스페어가 아니라, 아예 다른 레인에 스스로를 세워 보겠다고. 나는 일부러 사투리를 쓰지 않았고, 친구를 깊게 사귀지도 않았다. 이 좁은 동네를 떠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온전한 나로 새롭게 살아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들고 온 유리단지 속에는 수백 마리의 굼벵이가 서로 몸이 뒤엉긴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이런 게 어디서 났어요?” “어데서 났기는? 샀지. 읍내 건강원에 외상 잽히가 샀다. 읍에 나갈 일 있으만 그 집에 돈 쫌 갖다 주라. 구하기 힘든 기라꼬 억수로 생색내더라. 이따가 너거 엄마 오만 이거 씻거가 한 번 찌놓으라 캐라.” “아니, 대체 뭘 믿고 외상을 줘요?” “내 믿꼬 줬겠나? 인숙이 니 인자 부자됐다꼬 소문이 자자하더라.”  “그래서, 좋으세요?” “누가 좋다 카더나. 사람들이 그칸다 카는 기지. 나도 참 기가 차가 말도 안 나온다.” 아버지는 유리단지를 손에 든 채 계속 만지작거렸다. 나는 투명한 단지 표면에 희뿌옇게 찍힌 손자국을 보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얼마를 원해요? 그때 말한 권리라는 게 얼마짜리라고 생각하세요?” “35다.”  “당장 필요한 용돈 말고요. 얼마를 주면, 이 집에서 나가겠느냐고 물은 겁니다. 많이는 못 줘요. 우리 이제 돈 없어요. 엄마도 농협에 빚내서 비료 사고 농사지어요.” “35만 워이 아이라 35키로. 그기 지끔 내 몸무게다.” 예전의 그는 36인치 사이즈 바지를 입을 정도로 체격이 좋았다. “걱정 마라. 오래 안 있는다. 나도 곧 인호 저트로 갈 끼다.” 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죽을 병에 걸렸다는 말도 엄살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나는 무슨 병인지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 약은 왜 구해다 먹어요? 무슨 염치로 이래!” “하루를 살아도 쫌 덜 아프까 싶어가 칸다. 내가 이거 한 빙 사 묵는 것도 아깝나? 인호 글마가 살아 있었으만, 내를 이래 멸시하지는 않았을 끼다. 적어도 다 죽어 가는 아바이한테 이래 하는 거는 갱우가 아이라 카이!”  아버지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소리쳤다. 우윳빛 투명한 몸체에 붙은 검은색 대가리를 뒤흔들며 유리벽을 타고 있는 굼벵이들처럼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 같았다.  “오빠 이름 입에 올리지도 말아요. 오빠가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알기나 해요?” 더 독한 말로 쏘아 주려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놀라 엉거주춤 팔을 뻗었다. 그는 내 손을 뿌리치고 욕실로 달려갔다. 푸른색 타일이 깔린 욕실 바닥에 검붉고 끈적끈적한 피가 흩뿌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러닝셔츠 앞섶을 붉은 피로 흥건하게 적신 아버지가 욕실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가자, 나는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물을 세게 틀어서 바닥의 끈적끈적한 핏자국을 지우다 말고, 나는 쪼그려 앉아 울었다. 오빠였더라면 아버지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오빠가 돌아와 어서 이 스페어들을 처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방으로 들어가 옷장 문을 열었다. 오빠의 방에는 그가 쓰던 물건과 옷가지 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내가 갖다 버린 오빠의 유품들을 엄마는 모두 다시 주워 왔다. 오빠가 입던 옷들 사이로 얼굴을 파묻어 보았다. 오빠에게서 늘 나던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담배 냄새와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섞여서 나던 찌든 내가 좀약 냄새와 함께 코끝에 돌았다. 외투 주머니에서는 따스한 온기마저 전해졌다. 오빠의 점퍼 주머니에 하나하나 손을 넣어 보다가 손바닥 크기의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수첩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볼링에 관한 메모밖에 없었다. PVC 재질의 수첩 커버에는 ‘제일볼링장 이용권’이 스무 장 남짓 끼워져 있었다.  책상에 앉아 수첩을 첫 장부터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수첩은 각 장마다 오빠가 치른 게임에 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었다. 오빠는 자신이 얻은 점수와 딴 돈 혹은 잃은 돈을 먼저 기록하고, 그날 컨디션과 치러 낸 게임의 보완점들을 짤막하게 적어 놓았다. 돈을 잃은 날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액수라도 잃은 날이면, 처리하지 못한 스페어의 위치와 공의 각도까지 그려 가면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 들었다. 나는 모르는 볼링 용어를 인터넷 검색 창에서 찾아보면서까지 오빠의 게임을 내 나름대로 복기해 보려 애썼다. 오빠는 파워모션 볼링을 선호했다. 5스텝의 순서로 빠르게 어프로치 라인을 통과해 공의 스피드와 파워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오빠는 되도록 1회 차 투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해 성공시켜야 한다고 수첩에 써 놓았다. 스페어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오빠가 정신력이 강한 선수는 아니었던 듯하다. 첫 투구에서 스트라이크를 성공하지 못하면, 2회 차 투구에서는 미스가 잦았다. 그럼에도 그의 에버리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더블(두 번 연속 스트라이크)과 터키(세 번 연속 스트라이크)를 심심치 않게 보여 줄 정도로 스트라이크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수첩 곳곳에 빨간색 글씨로 쓰인 ‘일타열피!’라는 문구는 계산할 줄 모르는 오빠의 삶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막걸리 상자를 들 때에도 오빠는 남들처럼 한 상자씩 드는 게 아니라 두세 상자를 한꺼번에 겹쳐 옮기곤 했다. 상가에 조문 온 회사 동료들은 남들보다 일 처리가 빨랐던 오빠를 좋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을 허겁지겁 끝내고 그가 달려간 곳은 볼링장이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지독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그것에 매달릴 각오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아침 느지막이 거실로 나가자 엄마는 집에 없고, 아버지의 방문 앞에는 빈 죽 그릇이 놓인 개다리소반이 나와 있었다. 나는 늦은 아침을 먹고 읍내의 볼링장으로 나갔다. 카운터 앞에서 쿠폰을 내밀자, 형식은 두 눈이 동그레져서 물었다. “니 이거 어데서 났노?” “이 쿠폰 너네 볼링장 꺼 맞지? 240 사이즈로 줘.” 나는 대답 대신 건조한 목소리로 내 할 말만 늘어놓았다. 형식은 순순히 볼링화를 꺼내 주었다. 푸른색 쿠폰 한 장을 내고 하루 종일 볼링을 쳤다. 쿠폰 한 장당 한 게임을 이용할 수 있다는 규칙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섯 게임에서 열 게임은 족히 쳤다. 신발 대여료도 따로 내지 않았다. 형식은 그런 내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평일 낮 시간의 볼링장은 한산했다. 오빠의 옆에서 구경한 적은 있었지만, 직접 볼링을 쳐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부러 볼링공을 세게 바닥에 던지듯 굴렸다. 레인 위로 볼링공을 떨어뜨릴 때마다 쿵 하는 소리가 나며 발끝에 진동이 와 닿았다. 미치광이 같으니라고. 이게 뭐라고, 수첩에 공부를 해 가면서까지 쳐. 대단한 박사 나셨어. 그 시간에 집에 일찍 와서 잠이나 잤어야지. 나더러 걱정 말라고 자기가 다 책임진다고 하더니, 결국 이렇게 나한테 다 떠넘기고 혼자 떠났나. 공은 레인 옆의 도랑같이 생긴 회색 거터 속으로 들어가 떼굴떼굴 굴러가기 일쑤였다.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형식이 슬그머니 옆에 다가와 이죽거렸다.  “그래 가꼬 바닥이 뿌사지겠나. 더 씨기 쾅쾅 떤지 뿌라. 아이고 답답아래이. 그래 하는 기 아이고….” 형식이 내 손과 어깨를 붙들고 볼링공 잡은 자세를 교정시켜 주려 했다. 나는 볼링공을 손에 든 채로 형식을 노려보았다. 순간 형식은 움찔한 기색을 보이며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오일이 덧발라져 번들거리는 레인 위로 나는 폭탄을 던지듯 공을 던졌다. 오빠에게 등록금을 부쳐 달라고 했던 내 발등을 볼링공으로 찧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옆 레인에서는 교복을 입은 학생 무리들이 시끄럽게 순서를 바꿔 가며 볼링을 치고 있었다. 볼링공이 굴러가 핀에 부딪칠 때마다 그들은 요란스럽게 박수를 치며 깔깔 웃어 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리를 정리하고, 신발을 갈아 신었다. 카운터에 신발을 반납하며 힐끗 학생들의 전광판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들은 10프레임이 아니라 12프레임으로 게임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나는 형식에게 시비조로 말을 붙였다.  “쟤네들은 왜 열 번이 아니라 열두 번씩 쳐? 내가 쿠폰 손님이라고 홀대하는 거야?”  형식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니는 여어가 노래방맨치로 사장이 뽀나스 프레임 더 주고 싶으만 줄 수 있고 그런 덴 줄 아나? 그기 아이라 쟈들은 10회 차 떤질 때 스트라이크를 해 가꼬, 뽀나스 프레임을 받은 기다.” “보너스?”  “하긴, 니는 맨날 개판 치는 점수만 받아 가꼬 그런 기 있는 줄또 몰랐겠지. 인호 행님이 진짜 뽀나스 게임의 명수였는데…. 10회 차를 스트라이크 때리 가꼬 두 번 더 뽀나스 투구를 받아 뿌리민 당해 낼 사람이 없었제.” 형식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그때 저 행님은 진짜 운빨 쥑인다 생각했거덩. 스트라이크를 치도 우째 저 순간에 딱 성공시키민서 뽀나스 투구를 받아 가까. 행님이 내한테 자주 했던 말이 인생 끝까지 가봐야 안다꼬, 두고 봐라 늘 그캤는데….” 오빠는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더 볼링의 운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탁월한 실력에 운까지 따라 준다고 치켜세워 주는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이 졸린 눈을 부비며 공을 던지게 하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빨간색 팬티와 체크무늬 양말을 신은 날이 제일 점수가 좋다며 속옷과 양말 색깔까지 메모해 놓은 오빠의 수첩을 떠올리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볼링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직선으로 곧게 굴러가는 경우는 드물다. 공이 휘어지는 지점인 후킹 포인트까지 계산에 넣어야 완벽한 스트라이크를 이뤄 낼 수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오빠는 언젠가는 인생의 훅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그러나 오빠가 펼치던 인생이란 게임은 너무 빨리 끝나 버렸다. 보너스는커녕 주어진 프레임의 점수 칸을 제대로 채워 보지도 못한 채 종료되어 버린 것이다.   엄마와 아버지를 앞세우고 포도밭을 향해 걸었다. 포도송이를 종이 포장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그 집은 너거 아이라도 일손 안 많나. 오늘 우리도 해야 되는데, 우짜노. 내일은 약 치야 되는 날인데…. 오늘은 꼭 우리 밭에 와 줘야 된다꼬 내가 말 안 하더나…. 어데, 내 말은 그기 아이고….”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자 엄마는 전화기를 붙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해대고 있었다. 약속을 어긴 건 상대방인 것 같은데, 엄마는 화를 내지도 못하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쩔쩔맸다. 오기로 했던 이들은 엄마와 함께 조를 짜서 인근의 과수원과 비닐하우스로 일당 벌이를 다니던 아주머니들로, 오빠의 장례식장에 달려와 가장 큰 목소리로 곡을 해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포도밭을 사면서 그들의 태도는 묘하게 변해 갔다. 유월 초순, 포도알이 새파랗게 영글 즈음이면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 줘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면 병충해나 햇빛, 농약으로 포도가 상할 수 있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도울 테니 남한테 아쉬운 소리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방 안에 틀어박혀 숨죽이고 있던 아버지도 눈치를 보며 나갈 채비를 했다. 아버지나 나나 밭일을 안 해 봤기는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운 게 문제였다. 나는 엄마와 예닐곱 걸음 떨어져 혼자 일했고, 아버지는 엄마와 한 조를 이루어 일했다. 아버지가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면 엄마가 옆에서 그 위를 철끈으로 묶었다. 너무 쫄리게 묶으만 안 된다 카이, 포도도 숨을 쉬이야제. 엄마가 종이를 건네주면서 하는 말에 불현듯 기억하기조차 싫은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입관 전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피투성이로 병원에 실려 왔을 때와는 달리 깨끗한 모습으로 분까지 바르고 누워 있는 오빠의 모습은 차라리 편안해 보였다. 사고 직후 끔찍한 모습을 보지 못했던 엄마는 오빠를 쓰다듬으면서 통곡을 했다. 그리고 장례사를 붙들고 염해 놓은 오빠를 가리키며 애원하듯 말했다. “우리 아는 답답은 거 싫어하는데, 너무 꽉 쫄라 놨다. 옷도 찡기는 거 싫다 캐가 내가 맨날 한 치수 큰 걸로 사주고 캤는데…. 어차피 태울 꺼 아이가. 쪼매만 풀어 주만 안 되겠나. 우리 인호는 저래 답답은 거 싫어한다 안 카능교.” 목구멍에서 넘어온 뜨거운 기운을 억지로 삼키고 있는데, 아버지와 엄마가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지난 삼십여 년간 아무 탈도 없이 서로 의지하면서 산 금슬 좋은 부부인 양, 같은 포도송이를 붙든 채 도란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허망한 생각마저 몰려왔다. 엄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내려와 있는 내가 한심했다.  “니는 와 하필이믄 포도밭을 샀노. 쪼매난 하우스 같은 거를 샀으만 차라리 좀 핀하고 나슬 낀데.” “우리 인호가 포도를 제일 안 좋아했능교. 맨날 넘우 밭에서 얻어 가꼬 알매이 쪼매난 것만 믹인 기 계속 마음에 걸린다. 제사상에 제일 큰 걸로 올리 줄라꼬 그캤제.”  오빠 이야기가 나오자 엄마는 별안간 땅바닥에 주저앉아 꺽꺽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몸속 깊은 곳에서 토해 내는, 비명에 가까운 울음이었다. 한편으로, 별안간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철퍼덕 주저앉아 우는 품새가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닌 듯했다. 어쩌면 엄마는 목 놓아 울기 위해서 이 밭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차라리 속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웅얼거리면서 속의 말을 삼키던 엄마였다. 이렇게 울기라도 해야 썩은 포도알처럼 문드러진 가슴속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겠는가. 주변은 고요했다.  아버지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니 와 이카노. 일나 봐라. 동네 사램들이 들으만 머라카겠노. 내가 니 뭐 우째 했는 줄 알겠다. 동네 우사시럽구로.” 그는 진땀을 흘리며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의 팔을 붙들고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팔뚝은 엄마의 절반에 못 미칠 정도로 앙상했다. 엄마를 일으키려던 아버지가 오히려 휘청거리면서 흙바닥에 넘어졌다. 아버지는 스스로 일어날 기력조차 없는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네 발 짐승처럼 엎드려 있었다. 나는 눈을 찡그린 채, 쓰고 있던 선캡을 벗어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포도나무의 높이가 낮아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허리를 숙인 엉거주춤한 자세로 연신 부채질만 해댈 뿐이었다. 숨이 막히게 더웠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지고 있을 무렵 아버지가 땅바닥에 카악하고 가래침을 뱉었다. 길고 끈적끈적한 가래침이 끊어지지 않고, 그의 아랫입술에서 덜렁거렸다.   오빠는 죽기 전날까지 도박판을 벌였다. 수첩을 절반쯤 넘기다가 나는 게임일지의 패턴이 이상하게 변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가 생의 막바지에 빠져 있었던 게임은 단순히 볼링 에버리지를 얼마나 많이 내는지를 다투는 게 아니라 누가 점수를 제일 적게 내는지로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었다. 그렇다고 공을 레인 옆의 거터 구역에 빠뜨려서도 안 되었다. 핀 스폿까지 공을 굴리되, 가장 적게 핀을 쓰러뜨리는 자가 돈을 따갔다는 점에서 실력보다는 운이 더 중요한 투전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빠의 공은 킹핀과 헤드핀을 아슬아슬하게 잘 비켜나가 많은 수의 핀을 남겼다. 형식의 말에 따르면, 점수를 많이 내는 오빠를 견제하기 위해 점수를 적게 내는 사람이 승자가 되도록 룰을 바꾼 것이었는데, 오빠는 의외로 빨리 새로운 게임에 적응했다. 투구 자세와 쓰던 볼을 바꾼 효과가 컸다. 5스텝 대신 4스텝, 평소 쓰던 16파운드의 볼 대신 13파운드 볼을 쓴다. 거친 필체로 채워진 오빠의 메모는 꼼꼼했고 진중했다. 배치도까지 그려 놓고, 검은색으로 표시된 10번 핀 하나만 안정적으로 아웃시키기 위한 공의 동선을 짰다. ‘훅 볼’이라고 동그라미 쳐진 단어 옆에는 별모양 그림이 여러 개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스트레이트로 곧게 전진시키다가 핀 앞에서 오른쪽 바깥으로 볼의 커브를 유도해서 10번 핀을 날리는 전략이었다.   ⓻ ⓼ ⑨ ❿   ⓸ ⓹ ⓺ ↱    ⓶ ⓷ ↗     ⓵ ↗      ↱      ↑ ‘뉴 게임’이라고 이름 붙인 그 게임의 판돈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었고, 그에 비례해 메모에 담긴 욕망의 크기도 기묘하게 불어났다. 사고 즈음의 오빠는 팬티 한 장을 갈아입는 데에도 예민하게 굴어 엄마가 애인이 생겼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게임 한 판에 한 달치 월급이 오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른 핀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헤드핀(1번 핀)과 킹핀(5번 핀)을 비켜 지나가 단 하나의 핀만 깨끗하게 날려야 한다고 휘갈겨 놓은, 낯부끄러울 정도로 진지하고 치열한 메모로 빼곡하게 채워진 그 수첩을 나는 마당으로 들고 나와 오빠가 남긴 잡동사니와 함께 불태웠다. 맞춤법도 제대로 몰라서 ‘핀 캐리를 경게하자.’라고 빨간 글씨로 강조해 놓은 오빠의 흔적을 나는 볼품없는 물건을 버리듯 내팽개쳤다. 내 서울살이를 지탱했던 것이 오빠가 쓰러뜨리지 않은 스페어스(spares)라는 걸 잊고 싶었다. 까맣게 내려앉은 잿더미를 발로 밟고 침을 퉤퉤 뱉었다. 수첩에서 빼낸 몇 장의 쿠폰이 손 안에서 구겨졌다.  화가 치솟으면서 무언가 던지고 부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볼링장에 갔다. 이 집에서 머무른 대부분의 시간이 그런 나날이었다. 마지막 남은 쿠폰을 내고 벤치에 앉아 볼링화를 갈아 신으며, 나는 심호흡을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점수를 적게 내는 볼링을 쳐 보기로 했다.  오른쪽 끝의 10번 핀을 노리고 던졌더니 볼링공은 손에서 떨어지는 족족 레인 밖으로 굴러가기 바빴다. 한 번은 10번 핀에 공이 닿긴 닿았는데, 스치기만 했는지 핀이 살짝 기우뚱하는 데 그치고 오뚝이처럼 말짱하게 섰다.  “으이고, 속 터지 죽겠네. 니는 우째 핀을 맞차 놓고도 점수를 못 내노? 이거 끼고 한번 해봐라.” 형식이 볼링 아대라며 낯선 장비를 내밀었다. 광택이 나는 단단한 재질로 이루어진 붉은 아대는 아이언맨의 갑옷 같았다.  “핀이 맞으만 머하노. 손모가지에 히마리가 없어 가꼬, 핀이 쓰러지지를 안 하는데. 이거 차고 한 번 해 봐라. 훨씬 더 힘이 잘 들어갈 끼다.” 나는 웅얼거리듯 작게 말했다. “딱 하나만 아웃시키고 싶어. 아주 깨끗하게.” 형식은 내 팔에 억지로 아대를 채우느라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 번에 다 되는 기 아이다. 첨부터 우째 깨끗하이 다 처리하겠노. 부담 가질 필요 엄따. 공짜로 주는 거 아이다. 빌리주는 기다. 신발하고 같이 반납하만 된다.” 단단한 아대를 착용하자 팔목부터 팔꿈치까지 깁스를 한 느낌이었다. 공의 구멍에 손가락을 끼우고 천천히 스텝을 밟았다. 확실히 공이 뻗어 가는 기세가 이전보다 좋았다. 10번 핀을 향해 스트레이트로 나아가던 공이 핀 스폿 앞에서 갑자기 왼쪽으로 휘어지면서 1번 헤드 핀을 정확하게 때렸다. 헤드 핀이 넘어지면서 킹 핀을 때렸고, 또 킹 핀이 주변의 핀들을 쓰러뜨렸다. 스트라이크였다. “브라보! 내가 말 안 하더나. 아대 끼면 힘을 팍 받아 갖고 점수가 더 나올 끼라고. 이야, 핀 캐리 직이네. 일단 공을 쌔리삤다 카만 저런 반발력으로 핀 캐리가 나와 줘야 속이 씨원해진다 카이. 아대가 완전 임자 만났는 갑다.” 형식은 박수를 쳐 가면서까지 너스레를 떨었다. 스트라이크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손끝에 얼얼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이상한 희열을 불러일으켰다. 공에 맞은 핀이 튀어 오르는 순간, 핀과 핀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의 경쾌함이 내 몸마저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쓰러진 핀들이 쓸려져 나가고 새로운 열 개의 핀으로 리셋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얼한 손끝과 팔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아대를 어루만졌다.  볼링핀 간 중심에서 중심 사이의 거리는 30.48㎝이다. 각각 떨어져 있지만 완전히 독립적으로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무너지는 순간에는 서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도망가려 해 봤자, 강한 힘이 덮쳐 버리면 결국 한꺼번에 무너지게 마련이다.  반환구가 방금 전 내가 던졌던 10파운드짜리 남색 공을 뱉어 냈다. 오일이 표면 곳곳에 묻은 공을 헝겊으로 닦으며 오빠를 생각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힘껏 굴려도 결국 같은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이 볼링공처럼 매일 새벽 수백 상자의 막걸리를 싣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낯선 도시까지 가 닿았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오빠의 삶이 이제야 묵직하게 다가왔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무거운 볼링공을 던지며 그가 얻어 내고 싶었던 보너스는 무엇인지 나는 계속 외면하려 들었다. 그가 죽고 나서야 그것을 더 고통스럽게 들여다보게 된 것은 아마 그 대가일 것이다.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벤치에 앉은 형식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희뿌옇게 펼쳐진 눈앞에는 다시 제자리를 찾은 열 개의 볼링핀이 전투 태세를 갖추고 서 있었다. 넘어진 핀이든 남은 핀이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두 쓸려 나가고, 새로운 프레임이 시작된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게임의 법칙이었다. 나는 보너스 프레임에 선 기분으로 허벅지에 힘을 준 채 볼링공에 세 손가락을 끼우고 어프로치 라인에 섰다.
  • [2016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노인과 바닥-김주원

    [2016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노인과 바닥-김주원

    >> 등장인물 노인(77) 소년(12)-아역이 아닌 성인 배우가 연기할 경우 의상으로 소년다움을 표현 노인의 아들(50세) 노인의 며느리(40대 후반) 노인의 중년 시절 목소리와 친구 목소리-1인 다역 가능 무대 불이 켜지면 단출한 방이 보인다. 정면 벽면에 가족사진이 비스듬하게 걸려 있다. 노인 부부의 중년 시절 모습으로 가운데에 12살 아들이 있다. 아들의 모습은 극 중 소년과 일치. 구석에 오래된 소형 냉장고. 그 옆에 환경미화원들이 사용하는 커다란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기대어 놓여 있다. 우산 통에 우산이 하나 꽂혀 있다. 가난한 분위기보다 가구가 없는 느낌으로 표현. 정면을 보며 방바닥에 앉아 두 손으로 낚싯대를 잡고 있는 노인. 낚싯바늘에 미끼도 없다. 배우가 손으로 낚싯대를 들고 연기에 집중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낚싯대를 받칠 수 있는 탁자가 있어도 무방하다. 낚싯줄은 힘없이 바닥에 축 늘어져 있다. 노인은 사뭇 진지하다. 시간 비 오는 밤 노인의 방 빗소리 점점 거세지는가 싶더니 천둥소리. 노인: (폭우 소리에 주위를 돌아보며) 꼭 그놈 울음소리 같군. 낚싯대를 잡고 다시 집중하며, 노인: 놈은 모를 게야. 이 늙은이가 여기서 자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개나리 진달래 핀 봄에 오려나. 햇살 따뜻한 여름이려나. 낙엽 뚝뚝 떨어지는 가을, 하얀 눈 푹푹 날리는 겨울에 올까. 근데 딱 오늘 같은 날이었군. 비 오는 이런 밤에 누가 와도 모르지. 아무렴, 누구 하나 죽어도 모를 날씨야. 빗소리 잠잠해지고 똑똑, 노크 소리. 소년 목소리: 저예요. 또 문밖에 왔어요. 노인: 비 맞을라. 얼른 들어오너라. 소년 목소리: 전 이 정도 비바람엔 끄떡없는걸요. 노인: 다행이다. 아까 그놈은 울부짖더구나. 소년 목소리: 전 안 울어요. 약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노인: 사람이 약하기만 한 건 아니란다. 소년 목소리: 때에 따라 날씨처럼 바뀌죠. 노인: 어서 그놈이 와야 할 텐데. 소년 목소리: 또 그놈을 기다리나요? 노인: 그래. 아무래도 오늘은 놈이 올 것 같다. 소년 목소리: 도대체 언제 저랑 함께 가실 거예요? 노인: 얘야, 난 그놈을 기다려야 한다. 만나야 해. 소년 목소리: 그럼, 전 그놈이 올 때까지 기다려요? 노인: 바쁘면 먼저 가려무나. 소년 목소리: 그럴 수 없으니 문제죠. 노인: 늙은이가 된 후부터 그놈을 기다려 왔지. 소년 목소리: (웃으며) 늙은이요? 언제 늙은이가 되셨는데요. 노인: 기다리면서부터. 여기 이렇게 낚싯대 앞에서. 낚싯대를 쥔 노인의 손이 슬쩍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물고기 입질이 온 듯. 노인: 쉿. 소년 목소리: 왔나요? 그놈이? 노인 일어나 낚싯대를 쥐고 크게 좌우로 휘청댄다. 큰 물고기 움직임에 따라가듯이. 노인: 그런 것 같구나. 노인 어떻게든 낚싯대를 끌어 올리려고 한다. 빗소리 거세지고 노인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다 낚싯대를 놓치며 뒤로 넘어진다. 암전 무대 불 켜지고, 노인 허탈하게 앉아 있다. 곧 방문 열리고 소년 들어온다. 노인: 그놈이 아니었어. 소년: 저 왔어요. 노인: 오늘도 보여 줄 게 없구나. 소년: 할아버지만 있음 돼요. 노인: 오늘도 오지 않으려나 보다. 그놈이 아니었어. 소년: 대신 이렇게 제가 왔잖아요. 노인: 하지만 방금 엄청난 놈을 놓쳤다. (일어나 두 팔을 크게 벌리며) 적어도 이만 한 놈이었는데. 아니 훨씬 클 거다. 소년: 저도 알고 보면 엄청난 놈인데. 알면 깜짝 놀랄걸요? (낚싯대를 주워 와 굽히며) 와우 굉장한 놈이었나 봐요. 휘어졌어요. 할아버지 허리처럼. 노인: 어쩔 수 없어. 시간이 쾅쾅 밟고 가는데 별 수 있나. 소년: (한 손에 낚싯대를 들고) 다시 보세요. 멀쩡해요. 노인: 내 허리도 멀쩡하다. 이 바닥에서 낚시하는 덴 지장 없지. 얘야, 그걸 이리 다오. 소년, 낚싯대를 노인에게 건네며 그 옆에 앉는다. 노인, 정면을 바라보며 다시 낚시를 하고 소년: 다시 기다리는 건가요? 노인: 그놈은 온다. 소년: 놈이 알까요. 할아버지가 이렇게 기다리는데. 노인: 그냥 기다려야 하는 거야. 서두르면 안 돼. 소년: 알아요. 저도. 그래서 밤마다 그냥 여기 앉아 있잖아요. 노인: 놈은 온다. 꼭 와. 오늘 밤이 가기 전에. 소년: 어휴,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저도 빨리 할아버지와 여길 떠나고 싶거든요. 노인: 아까 놈이 울었단다. 창에 찔린 것마냥 고통스런 비명이었다. 결국 여기로 올 수밖에 없어. 살기 위해서 나를 찾아올 게다. 소년: 죽기 위해서가 아니고요? 노인: 죽을 거면 저렇게 비명도 지르지 않았어. 계속 나한테 신호를 보내는 거야. 놈은 알아. 내가 자기를 살려 줄 불빛이라는 걸. 소년: 과연 그럴까요. 노인: 그런 장면이 꿈에 나왔어. 요즘 매일 그놈 꿈을 꾼다. 그놈은 피를 철철 흘리며 나를 찾아와. 붉은 피는 보이는데 그놈 모습은 희미하지. 소년: 치, 할아버지는 바로 옆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빗줄기 소리 다시 들리고, 낚싯대가 꿈틀거린다. 소년: 어? 그놈인가요? 노인: 이놈은…, 이놈은! 노인 일어나서 낚싯대를 끌어 올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빗줄기 소리 점점 거세지고 노인은 낚싯대를 붙잡고 버둥댄다. 소년: 도울게요. 노인: 아니다! 소년: 제 허리는 멀쩡해요. 제 팔 힘은 어마어마하죠. 한 손으로 그놈도 때려눕힐 수도 있어요. 노인: 얘야, 비켜라. 이건 나와 놈과의 일이다. 소년 뒤로 조금씩 물러나며 퇴장 무대 조명, 낚싯대와 사투를 벌이는 노인만 비추는 가운데 빗줄기 소리 점점 거세진다. 방문 두드리는 소리 들리고, 문 열리며 며느리 등장한다. 며느리 노인을 보고 놀라며 조심스레 주변을 맴돈다. 노인이 낚싯대를 들어 올리려는 순간 며느리가 한 손으로 잡는다. 노인 비로소 며느리 바라보고 빗줄기 소리는 점점 약해지며 꺼짐. 며느리: (낚싯대를 뺏어 뒤에 들고) 아버님도 제정신이 아니군요. 노인: (정신 차려 며느리 바라보며) 누구신지…. 며느리: 저를 못 알아보시겠어요? 상태가 더 악화되셨군요. 저예요. 아직까지 아버님 아들하고 이혼 안 하고 같이 사는 여자. 노인: 그래, 내 아들 결혼식 때 봤구나. 20년 만인가. 며느리: 10년 만이에요. 아버님. 노인: 아하, 그래 오랜만이구나. 며느리: 전혀 반가운 표정이 아니시네요. 노인: 아니다. 네가 올 줄 몰라서 당황스럽긴 하다. 하지만 방금 그보다 더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나서 그래. 며느리: 무슨 일이죠? 지금 저희 집안 돌아가는 것보다 더 당황스런 일이 있겠어요? 노인: 아깝게 놓쳤어. 네가 들어오는 바람에 그놈이 달아났다. 며느리: (히스테릭하게) 어딜 가나 제 탓! 아버님도 제 탓이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올걸 그랬어요. 아버님마저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노인: 네 탓이라고는 안 했다. 며느리: 방금 제가 와서 잘못됐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요. 저는 잘못됐어요. 그런데 제가 뭘 잘못했나요? 며느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기 시작한다. 노인, 한 손으로 며느리의 어깨를 다독여 준다. 노인: 얘야, 잘 왔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기다렸단다. 며느리: (고개 들며) 저를요? 노인: 그놈을 가장 기다렸지. 하지만 네가 와도 좋구나. 여기에 너무 오랫동안 사람이 오지 않았어. 며느리: 맞아요. 그 애는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있어요. 노인: 그 애라니. 내 아들 말이냐. 그 애가 혼자 있니? 며느리: 아니, 아버님 손자요. 그이는 애가 아니잖아요. 노인: 나한테는 애로만 보이는구나. 그 애가 안 온 지 꽤 됐지. (가족사진을 보며) 저 사진을 찍을 때 참 좋았다. 그때는 몰랐지. 저 때 그 애가 몇 살인 줄 아니? 며느리: 아버님의 그 애가 사진 속에서 몇 살인지, 그런 게 뭐가 중요하죠? 노인: 열두 살이란다. 저 때 저 애를 데리고 바다 여행을 그렇게 다녔다. 며느리: 과거잖아요. 중요한 건 현재라고요. 노인: 현재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게냐? 며느리: 문제투성이죠. 아버님도 저도. 아버님의 손자까지도. 그 애는 잘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뭐하는지 아세요? 대학 실패하고 방에서 게임만 해요. 노인: 나도 방에서 낚시만 한다. 며느리: 아버님은 노인이잖아요. 그 앤 팔팔하다고요. 노인: 기다려 봐라. 다 때가 올 게다. 그 애도 기다리고 있을 게야. 자, 낚싯대를 다오. 지금 나는 낚시를 해야 할 때야. 며느리: (낚싯대를 더 뒤로 감추며) 그럴 때가 아닐 텐데요. 노인: 넌 모를 게다. 내가 여기서 얼마나 오래 낚싯대를 붙잡고 있었는지. 얼마나 애타게 그놈을 기다려 왔는지. 어서 낚싯대를 다오. 며느리: 그보다 허리는 어떠세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오년 전 새벽 청소하다 빙판길에 미끄러지셨다면서요. 노인: 참 일찍 묻는구나. 며느리: 저도 정신없었어요. 그 애는 저하고 한마디도 말을 안 해요. 전 혼자 상담받으러 다니느라 힘들었어요. 노력할 만큼 했다고요! 노인: 내 허리는 좋다. 낚시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 며느리: 솔직히 망가졌잖아요. 그 후로 일을 못 하시죠. 노인: 낚시는 할 수 있다. 낚시하며 기다리는 일도 할 수 있지. 며느리: 그런 건 일이 아니에요. 돈이 나와야 일이죠. 지금 집에 일하는 사람이 없어요. 다들 불량품이 됐다고요. 그래도 아버님은 멀쩡하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제정신이 아니실 줄이야. 노인: 나는 멀쩡하다. 낚싯대를 다오. 며느리: 제발 그만하세요. 노인: 내 집이야. 뭐든 할 수 있다. 내 맘대로. 며느리: 하지만 명의는 그이 앞으로 되어 있잖아요. 확인하고 오는 길이에요. 노인: 그래서 낚시를 하지 말라는 거냐? 이 집은 내가 청소해서 겨우 마련한 거야. 그 애 앞으로 해 놓은 것도 나다. 며느리: 이런 곳에 아버님을 방치할 수 없어요. 노인: 방치라니, 여기서 난 일을 하고 있다. 며느리: 무슨 일요? 노인: 그놈을 기다리는 일. 오늘처럼 비바람이 불었다가 잔잔해지면 심장이 뛴다. 이 나이에 심장이 뛰다니. 두근두근 누가 북을 치는 것마냥. 이게 다 그놈 때문이야. 얘야(귓속말하듯 가까이) 이 바닥 아래에 깊은 바다가 있어요. (정면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넓기도 하단다. 며느리: 정신 차리세요. 우리는 바닥에 있어요. 아버님! 빗소리 들리는 가운데 노인 천천히 바닥에 누우며 노인: 그날도 비가 왔어. 밤이었다. 새벽이었나. 뭐 늙은이 혼자 있는데 밤인지 새벽인지가 뭐가 중요하겠어. 이러고 바닥에 귀를 대고 있는데 들리는 게야. 그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나지막하게) 왜에 왜에 왜에 로오옵 로오옵 로오옵 다아다아다아. (천천히 일어나며) 뭐지. 빗소리를 뚫고 깊은 데서 신음처럼 올라오는 이 소리는 뭘까. 다음 날 바닥에 귀를 대고 있으니 파도소리가 들렸어. 이 바닥 깊은 곳에 바다가 있는 게야. 그놈은 거기에서 혼자서 울고 있던 거고. 상상이 안 가지? 나도 허리 다치기 전에는 몰랐단다. 며느리: 그때는 새벽부터 이 일 저 일 나가셨잖아요. 깊이 주무셨을 텐데. 노인: 그래, 일을 안 나가고 바닥에 누워 있으니 들리더구나. 며느리: 다 일을 못해서 생긴 병이에요. 노인: 병이 아니다. 며느리: 그이는 병에 걸렸어요. 노인: 뭐라고? 며느리: 네, 아버님 아들이 병에 걸렸어요. 보증까지 서더니 결국 사기당했어요. 백세시대라는데 인생의 절반까지 모은 재산을 날렸어요. 노인: 그 애는 어디에 있니. 며느리: 사기꾼 잡겠다고 전국을 이리저리 다녔죠. 올 초에 빈손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바닥에 누워 헛소리를 해요. 노인: 그 애도 바닥에서 바다를 발견한 거니? 며느리: 뭘 깨달았다고 하더군요. 그이는 제정신이 아니에요. 3년 전, 회사 정리해고 명단에 그이가 포함됐죠. 처음부터 제가 그 친구 조심하라고 했어요. 그런데도 돈을 빌려주고 순진하게 낚인 거예요. 친구가 아니라 사기꾼이죠. 그래도 걱정 마세요. 이 집은 안전하니까요. 노인: 마침내, 너희에게 이걸 줄 때가 왔구나. 며느리: 이제 말이 통하네요. 아버님. 그래서 십년 만에 아버님을 찾아온 거예요. 노인 냉장고에서 오래된 책을 한 권 꺼내 가져온다. 책 제목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노인: 헤밍웨이란 작자가 쓴 노인과 바다란다. 이걸 읽으면 견딜 수 있다. 내가 그랬거든. 며느리: 작자가 아니라 작가예요. 아버님은 제정신이 아니시네요. 노인: 난 멀쩡하다. 봐, 낚시도 하잖니. 아직 귀도 멀쩡해서 저 밑바닥에 있는 바닷소리도 듣는다. 며느리: 방금 책을 냉장고에서 꺼내셨잖아요! 노인: 이건 내 꿈이었다. 꿈은 싱싱해야 하니까. 상하면 안 되지. (책 냄새를 맡으며) 다행히 아직은 괜찮구나. (책을 들어 휘리릭 넘겨 보이며) 자 바다가 보이지? 며느리: 우린 바닥에 있다니까요! 노인: 네 나이 때 길바닥 청소를 하다가 주웠지. 성탄절 새벽이었다. 버릴 수 없었어. 바다, 라는 두 글자 때문이었다. 젊어서는 배를 타고 멀리 나가고 싶었어. 하지만 그럴 수 없었지. 바닥이 날 잡아 끌었으니까. 가족이 먹고살 만해지면 바다에 나가려고 했는데…. 어느 날 눈 떠 보니 나는 노인이 되어 바닥에 누워 있더구나. 하지만 이 바닥 깊은 곳에 바다가 있을 줄이야. 자, 어서 낚싯대를 다오. 빗줄기가 점점 거세진다. 노인: (천장을 두리번거리며) 그놈이 올 것 같아. 그놈이 오기에 딱 좋은 날씨군. 자, 빨리 그걸 달라니까. 며느리: 아뇨. 그이도 아버님도 치료가 필요해요. 노인: 병원은 필요 없다. 며느리: 병원이 아니에요. 주변에 푸른 나무들이 있을 거예요. 공기도 상쾌할 거예요. 무엇보다 아버님은 혼자가 아닐 거구요. 이런 낚시는 거기서도 맘껏 할 수 있어요. 그러려면 이 집을 팔아야 해요. 천둥소리! 며느리 깜짝 놀란 틈을 타 노인 낚싯대를 뺏어 온다. 대신 며느리 품에 책을 안겨 주며 노인: 자, 이걸 그 애한테 전해다오. 며느리: (책을 한 손에 들고 어이없어하며) 우리가 봐야 할 건 이런 게 아니에요. 이 집이 필요해요. 현실을 똑바로 보세요. 며느리 퇴장. 문밖에다 책을 홱 버린다. 노인 정면 보며 낚시를 한다. 빗소리 점점 줄어들며 똑똑 노크 소리 들리고 소년 목소리: 들어가도 돼요? 노인: 또 비가 오는구나. 추울 테니 어서 들어오너라. 소년 목소리: 추위 따위가 제 일을 방해하지는 못해요. 그리고 전 추위 같은 건 아무렇지 않아요. 노인: 젊었을 땐 나도 그랬지. 너만 한 아들이 있었을 때 말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두렵지 않았어. 아들이 쑥쑥 크고 있었으니까. 가진 게 없는 이들에겐 견디는 힘이 필요하지. 어느 날 바닥 청소를 하다가 허리가 아파 고갤 들었을 때 알았나. 아들은 이미 지 애비 키를 훌쩍 뛰어넘어 있었어. 그리고 내 몸에서 젊음이 빠져나갔더구나. 소년: 아 참, 누가 이겼어요? 노인: 모르겠다. 며느리하고 나 둘뿐이라서. 우리 둘 중 누가 이겼다고 할 수 있겠니. 소년, 문 열고 들어와 노인의 옆에 앉는다. 소년: 아이 참, 그놈하고 한 판 승부 말이에요. 노인: 안 왔다. 소년: 아까 왔다고 했잖아요. 노인: 그놈은 늘 올락 말락 한 곳에 있지. 그리고 난 그놈과 승부를 하려는 게 아니야. 소년: 그럼요? 노인: 그냥 만나고 싶구나. 놈을 억지로 여기 데려올 수는 없어. 정말 올 마음이 있다면 놈 스스로 낚싯줄에 걸려들 거야. 그럼 난 힘들이지 않고 들어 올리기만 하면 돼. 소년: 그놈이 올까요? 오늘이 가기 전에. 노인: 올 거야. 소년: 할아버지는 왜 그놈을 기다리죠? 노인: 그게 내 일이란다. 마음이 끌리는 일. 소년: 어서 그놈이 왔으면 좋겠어요. 노인: 너도 그놈이 보고 싶니? 소년: 전 그놈을 기다리는 할아버지를 기다려요. 노인: 오늘은 특별한 날이구나. 오랫동안 낚싯대를 들고 있었지만, 이런 날은 처음이야. 하루에 두 명이나 여길 왔어. 그중 한 명이 가족이라니. 소년: 오랫동안 가족이 안 왔군요. 노인: 한때 내 가족은 셋이었다. 아내와 아들이 함께 있을 때. 까마득한 일이야. 소년, 일어나 벽면 뒷면에 비스듬하게 걸린 가족사진을 본다. 소년: 아들이 엄마를 닮았네요. 노인: 깊은 데는 날 더 닮았지. 사람 말을 잘 믿는 거. 저 애가 친구한테 돈을 빌려줬다더군. 친구 사정이 딱했던 모양이지. 나도 그랬던 적이 있어. 그때 돈을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어. 기억이 안 나. 가끔 이럴 때 답답하지. 바닥에서 뭔가를 끌어 올리고 싶은데 아무것도 안 걸리는 게야. 소년: 도와드릴까요? 노인: 네가 말이냐? 소년: 비키라고 안 하시면. 소년, 양반다리로 앉은 다음, 자연스레 노인의 머리를 제 다리에 눕힌다. 노인, 소년의 다리를 베고 옆으로 누운 모습. 소년: 자, 눈을 감아 보세요. 기억이 떠오를 거예요. 영화의 되감기 장면처럼. 노인:(눈 감고) 그래, 그때 친구 놈 말을 끔찍하게 믿었지. 아니 믿고 말고 할 게 없었어. 당장 어린 아들이 수술을 해야 한다는데, 어쩌겠어. 친구 놈은 내가 적금 타는 걸 알고 있었거든. 퇴직금을 받는 대로 준다고 했는데. 소년: 못 받았나요? 노인: 안 받았지. 소년: 사람들은 돈이라면 다 좋아하지 않나요? 돈 싫어하는 사람 못 봤어요. 자식이 돈 때문에 집에 불 질러서 부모가 한날한시에 죽는 경우도 많아요. 부모가 돈 타려고 어린 자식을 보내는 경우도 있고요. 근데 왜 그 돈을 안 받았나요? 노인:(침울한 목소리로) 그 돈을 내가…어찌 받나. (사이) 친구 놈이 영영 떠났어. 차 사고로. 아들을 따라간 게야. 아들이 수술 도중에 먼저 갔거든. 무대 어두워지고, 허공에서 40대 중반 노인과 친구 목소리 들린다. 노인 목소리: (40대 중반) 자네 아들 수술, 이번에는 성공할 거야. (사이) 돈 꼭 돌려줘야 하네. 친구 목소리: 고맙네. 내일모레 퇴직금 들어오니까 걱정 말고. 내가 무슨 일을 해서라도 줄 테니까. 노인: 그건 친구 목숨 값이었어. 뒤늦게 친구의 편지를 받고 알았지. 그 친구가 저세상으로 갔다고 하니, 아내가 깜빡했다며 등기 우편을 하나 내밀더군. 편지에 사망 보험금 수령인을 나로 해 놨다고 쓰여 있더군. 더 일찍 읽었더라면…. 소년: 뭐가 달라졌을까요. 노인: 아내에게 화를 내지 않았겠지. 그때부터 아내의 뇌에 고드름이 생긴 것 같아. 내 머리에 흰머리가 군데군데 쌓일 때 아내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지. 아내의 뇌에 녹지 않을 고드름이 크게 자리 잡았거든. 아내의 종양은 고드름 모양이었어. 아내는 고통스러워했어. 아내가 떠났을 때 난 이렇게 말했어. 축하해, 여보. 노인, 태아처럼 몸을 웅크려 본다. 소년, 낚싯대를 바닥에 내려놓고 노인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노인: 왜 나만 이러고 있지. 친구도 아내도 떠났는데. 소년, 노인을 일으켜 앉히며 소년: 할아버지, 눈 뜨세요. 노인, 눈 뜨고 낚싯대를 잡는다. 소년: 지금은 아들과 둘이 남은 건가요? 노인: 나 혼자란다. 그놈이 오기 전까지. 소년: 저도 끼워 주세요. 그럼 다시 셋이 되잖아요. 노인: 너는 가족이 아니잖니. 소년: 그럼, 그놈은 할아버지와 가족인가요? 노인: 모르겠구나. 오래전에 이 바닥에서 그놈의 숨소리를 들었다. 놈은 심해에서 혼자 버티고 있었지. 그 소리를 계속 들으며, 고통스러웠어. 여기 가슴이 아팠다. 왜 나도 아플까. 저 밑바닥에서 놈을 끌어 올리기로 했지. 그때부터 놈은 남이 아니었다. 소년: 그놈이 올 때까지 할아버지는 여기를 안 떠나겠네요. 노인: 올 거야, 놈은. 소년: 네,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벌써 밤 열한 시예요. 노인: 이 방에는 시계가 없단다. 빛과 어둠만 드나들 뿐이지. 소년: 그래도 저는 알아요. 전 남들과 다르다니까요. 노인: 쉿! 빗소리 들리기 시작하고. 입질이 온 듯 노인 낚싯대 쥔 손을 움직인다. 소년: 빗소리예요. 노인: 저 밑바닥에서 뭐가 이리로 왔어. 얘야, 봐라. 이 줄의 움직임을. (낚싯대 움직임을 크게 하며) 노인 일어나 낚싯대를 크게 움직이며 버둥거린다. 큰 물고기를 끌어 올리는 듯. 소년: 도와드려요? 노인: 아니다. 소년: 이번에도 놓치면 어쩌시려고…. 노인: 정말 그놈 같구나! 소년: 전 정말 힘이 세다니까요. 숨을 들이마시면 (관객석을 쭉 가리키며) 여기 있는 영혼까지 죄다 빨아들일 수 있는데. 노인: 얘야, 부탁이다. 뒤로 물러나 있으렴. 무대 불 꺼졌다 켜졌다 하는 도중에 파도 소리, 거센 빗소리 들린다. 바다 한가운데서 혼자 큰 물고기를 잡아 올리려는 듯이 노인 무대 위에서 사투를 벌인다. 점점 폭우 소리 정점을 향해 가다 절정에서 무대 불과 소리 동시에 꺼짐. 그와 동시에 소년 퇴장하고 문이 열리고 아들 던져진 듯 노인 옆에 등장. 아들은 책 ‘노인과 바다’를 가슴에 끌어안고 있다. 무대 불 켜지고 쓰러진 노인 옆에 아들이 앉아 있다. 이 와중에도 노인은 손에 낚싯대를 쥐고 있다. 아들: (노인을 부축해 앉히며) 아버지, 왜 바닥에 쓰러져 계세요. 노인: (두 손으로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어디서 온 게냐. 얼굴이 상했구나. 아들: (고개를 돌리며)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어요. (관객 중 한 명을 가리키며) 저 자 보이세요? 저 사람이 아까부터 저를 쫓아다니고 있어요. 노인: 안 보인다. 내 눈엔 너밖에 안 보인다. 아들: 아버지, 작게 말씀하세요. (빗자루를 가리키며) 여기에 도청 장치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혹시 누가 오면 절대 문 열어 주지 마세요. 여기 들이면 안 돼요. 높은 곳에서 아버지를 잡으러 올 수 있어요. 노인: 높은 곳에서 왜 나 같은 늙은이를. 아들: (비밀을 말하듯이 은밀하게) 그들은 사람이 아니니까요. 우리 같은 사람을 쥐도 새도 모르게 잡으러 오는 일당이죠. 노인: (아들의 품에서 책을 꺼내 들고) 이건…. 아들: 문 앞에 떨어져 있었어요. 일당이 일부러 놓고 간 거죠. 노인: 내 정신이 깜빡깜빡하지만 이건 기억난다. 내가 며느리한테 준 거야. 아들: 아내가 떨어뜨린 건 맞겠죠. 문제는 그걸 조종한 게 그 일당이라는 겁니다. 노인: 잘 이해가 안 가는구나. 아들: 그럼 알기 쉬운 얘기부터 할게요. 예전에 아버지가 주워 온 책이잖아요. 밤에 아버지는 술 한 잔 마시며 이 책을 읽었죠. 전 그때 아버지가 신기했어요. 책을 읽다니. 그것도 저런 지루한 책을 진지하게. 낯설었어요. 노인: 난 바다에 가고 싶었다. 꿈이었다. 넓은 바다를 보며 한 가지 일만 하고 싶었지.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그런데 저 책에 나오는 늙은이는 그러고 살더구나. 심심하지 않게 말 걸어 주는 손자 같은 녀석도 있고. 아들: 지금도 그런 삶을 꿈꾸세요? 노인: 모르겠구나. 여기서 나도 한 가지 일을 하고 있지. 네가 발길을 끊은 후부터였나. 아들, 침묵 노인: 여기서 그놈을 기다렸단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아까만 해도 간절했는데. 순식간에 산 정상에서 내려온 것 같으니. 아들: 잠깐 그놈이라니요? 설마 그놈이 여기에 왔었나요? 아버지 조심하세요. 놈은 아버지를 데리러 왔다구요. 절대로 들여보내지 마세요. 노인: 그놈은 해가 되지 않아. 어디서 무슨 말을 들은 게야. 아들: 그 사람이 찾아왔다면서요. 노인: 그놈 말이냐? 아들: 아니, 이번에는 기찬이 엄마요. 아버님 며느리. 노인: 미안하다. 3년 만에 만나 그런지 아까부터 네 말을 한번에 못 알아듣겠다. 아들: 그 사람 말로는 아버지가 제정신이 아니래요. 노인: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구나. 아주 익숙해. 아마 나한테도 네 아내가 그 말을 수차례 하고 간 모양이다. 아들: 상처받지 마세요. 저도 매일 들어요. 노인: 얘야, 너야말로 상처받지 마라. 용서하고 기도해라. 아들: (욱 하듯이) 어떤 용서요? 무슨 기도를 하라는 거죠? 저는 된통 당했어요. 평생 모은 돈을 그놈이 들고 튀었다고요. 보통 사람이 할 짓이 아니죠. 아, 사실 그놈은 보통 놈이 아니었어요. 알고 보니 국가정보기관에서 일하는 놈이었죠. 저랑 사업 얘기를 할 때 만년필 머리를 꾹 누르곤 했는데, 실은 그게 녹음기였던 거예요. 노인: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아들: 그걸 들으며 어떻게 하면 저 같은 사람을 속일 수 있을까. 등쳐 먹을 수 있을까. 박사들이 연구를 하는 거예요. 노인: 국가에서 너한테 사기를 쳤다는 게냐. 왜 하필 너를. 아들: 저도 그게 궁금했어요. 괴로웠죠. 왜 나한테 이 일이 일어났을까. 전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어요. 회사가 하라는 대로 했고 세금은 월급에서 꼬박꼬박 빠져나갔죠. 그런데 아들 녀석은 대학에 떨어지고, 친구는 저한테 사기치고. 아내는…… 밤에 제 옆에 오지 않아요. 딜도와 함께 있죠. 노인: 딜도? 그게 높은 사람 이름이냐? 아들: 아니에요, 아버지. 여기서 딜도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아요. 전 국가에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어요. 물론 제 가족에게도요. 노인: 내가 보증하지. 넌 잘못하지 않았어. 아들: 아, 그 말씀은 안 들은 걸로 할게요. 아버지, 절대 보증은 서면 안 돼요. 제가 아들이어도 안 되는 거예요. 노인: 너는 착한 아이였다. 개근상을 꼬박꼬박 타왔지. 아들: 바로 그게 문제였어요. 전 만만한 사람이었어요. 일부러 저 같은 사람을 찾아내는 거죠. 국가기관에서 사람을 보내 저 같은 서민한테 사기를 치는 거예요. 그렇게 세금을 확보하는 거죠. 노인: 그럼 서민한테 사기 치는 사람들이……. 아들: 실은 특수 공무원들이죠. 노인: 아니야. 너는 만만하지 않다. 재수도 하지 않고 대학에 붙었잖니. 아들: 네, 그 점도 문제였어요.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걸. 올 봄까지 전국 바닥을 돌아다녔어요. 경찰에 신고해도 그놈을 잡을 수 없었어요. 그때 알았죠. 모두 한통속이구나. 이 비밀 시스템을 알아 버린 거예요. 순전히 촉으로 말이죠. 그 뒤부터 저한테 감시자가 붙었어요. 제가 이 사실을 터뜨릴까 봐 감시하는 거예요. (노인의 손을 잡으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아버지도 조심하셔야 해요. 노인: (아들의 뺨을 한 손으로 어루만지며) 얘야, 너야말로 조심해라. 아들: 우리는 표적이 됐어요. 제가 아버지까지 위험에 빠뜨리고 말았어요. 일당은 저를 협박하기 위해 아버지를 납치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말인데 아내 말대로 (가까이 귓속말하듯) 일단 요양원에 들어가세요. 시간이 지나면 제가 아버지 꿈을 이루어 드릴게요. 노인: 내 꿈? 아들: 바다에 보내 드릴게요. 노인: 괜찮다. 낚시는 이 바닥에서도 할 수 있다. 아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바닥은 위험해요. 노인, 비로소 낚싯대를 내려놓는다. 다음, 아들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운다. 아들을 안아 주며 노인: 얘야, 걱정 말아라. 아무도 널 해치지 못한다. 무엇도 널 망가뜨리지 못해. 너는 잘못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아니? 네가 훌훌 털고 일어나는 거다. 나는 이 바닥에서 버텨 왔다. 너도 여기에서 다시 시작해 봐. 아들, 두 손으로 아버지를 꼭 끌어안는다. 빗소리 들린다. 포옹을 풀고 아들 문 쪽으로 간다. 노인, 아들에게 ‘노인과 바다’ 책을 건넨다. 그 다음 우산 통에서 우산을 꺼내 아들 손에 쥐어 주며 노인: 바닥에서 일어나 보란 듯이 다시 걸어가렴. 그게 그들이 가장 겁내는 일이야. 혼자가 되는 걸 두려워하지 마. 아들 퇴장한다. 노인, 무대 중앙으로 와서 바닥에 옆으로 눕는다. 봄비처럼 가느다란 빗소리 들리는 가운데, 소년 목소리:(들뜬 목소리로) 할아버지, 할아버지. 노인: 밖에서 나를 기다렸구나. 소년 목소리: 저 방금 그놈 봤어요. 그놈이 할아버지 집에서 막 나왔어요. 노인: 어때 보이든? 많이 아파 보이든? 소년 목소리: 상처가 크긴 해요. 하지만 바로 죽을 정도는 아니에요. 좀 절뚝거리긴 하겠지만 혼자 살아가는 덴 문제없어요. 노인: 얘야, 네 목소리가 익숙하구나. 많이 들어 본 목소리야. 소년 목소리: 그놈하고 얼굴도 똑같이 생겼는걸요. 가족사진에서 봤어요. 전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로 찾아가거든요. 노인: 그래, 어서 들어오너라. 소년 목소리: 이제 저랑 함께 가실 거죠? 노인: 그러자꾸나. 근데 이렇게 밤이 깊었는데 어디로 갈까나. 소년 목소리: 바다로 갈까요. 노인: 그것도 좋지. 노인, 미소 띤 얼굴로 눈을 감는다.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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