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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립고 이사 아들이 식재료 납품…축산물은 며느리, 공산품은 손자

    사립고 이사 아들이 식재료 납품…축산물은 며느리, 공산품은 손자

    A사립고교는 2011년 급식을 위탁하며 특정 업체에 근거 없이 높은 점수를 주고 선정했다. 식재료 납품업체를 선정할 때도 입찰 절차 없이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선정된 납품업체에는 이 학교 이사장과 친분이 있는 모 이사의 아들이 대표로 있었다. 이 학교에 축산물을 납품하는 업체 대표는 이사의 며느리, 공산품 납품업체 대표는 이사의 손자였다. ●식재료비 2억여원도 학교에 떠넘겨 이렇다 보니 학교급식의 품질도 좋을 수가 없었다. 점심에 남은 멸치볶음 등 반찬을 저녁에 재사용하는가 하면, 납품한 사실이 없는 식재료비 4800만원을 포함해 자신들이 부담해서 구입해야 하는 식재료 구입비 1억 9600만원을 학교에 떠넘기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12월 감사를 통보하자 납품업체는 즉시 폐업 신고를 하고 식재료 구입 내역 등 관련 서류를 모두 폐기하기도 했다. ●종교적 이유로 고기·해산물은 빼기도 B사립고교는 종교적 이유로 육류와 수산물을 의도적으로 빼고 채소만으로 식단을 구성하기도 했다. 육류가 부족해 학생들이 급식 메뉴에 불만을 토로하자 빵과 케이크 등 단순 당류 위주 식단을 구성해 학생들의 당분 과다 섭취를 조장했다. 이 학교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상 급식관리 부문 영양관리 기준을 맞추기 위해 급식일지에 식재료 사용량을 허위로 기록했다. A·B고교와 같이 계약한 식재료보다 낮은 가격의 제품을 몰래 들여오거나 납품업체와 짜고 식재료를 외부로 빼돌린 학교, 가축의 출생·사육·도축 과정을 알 수 있는 축산물 정보가 담긴 축산물 번호를 위변조해 학교에 넘긴 납품업체 등이 서울시교육청 급식 감사에서 대거 적발됐다. 시교육청은 부당 수의계약 등 계약법 위반, 위생·안전점검 및 영양관리 부적정 등 5가지 유형에서 모두 181건의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고 25일 밝혔다. 시교육청은 우선 급식계약 시스템인 ‘G2B’와 ‘EAT’ 등을 통해 서울 1300여곳의 초·중·고교를 전수조사해 정도가 심각한 51개 학교를 골라 현장 감사를 시행했다. 일부 학교에서 표본을 뽑아 조사하거나 비리 제보가 들어오면 감사를 하는 것과 달리 이번처럼 전수조사를 기반으로 한 대규모 급식 감사는 처음이다. 시교육청은 관련 법규와 절차를 위반한 정도가 위중한 학교 관계자 11명에 대해 징계를 요구하고, 나머지 245명에 대해서는 경고·주의 조치했다. 횡령이 의심되는 4개 학교와 12개 업체 대표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시교육청은 학교급식을 가능한 한 학교직영체제로 운영하도록 유도하고 급식회계 관련 연중 사이버 감사를 실시해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즉각 현장 감사하는 등 감시체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에미야~ 나 됐다”

    “에미야~ 나 됐다”

    “수십년 만에 다시 아기를 보려니 예전에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도 안 나고 막막했는데, 큰 도움을 받았어요.”(서초구 ‘건강부모교육’ 수료생 장세자씨) 어린 자녀를 직접 돌보기 어려운 맞벌이 부부를 대신해 손자를 키우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늘고 있다. 이른바 ‘할마’(할머니+엄마), ‘할빠’(할아버지+아빠)들이다. 서초구는 구 보건소에서 열린 ‘제2기 건강부모 교육과정’ 수료식에서 21명의 할마·할빠, 엄마·아빠들이 왕초보 딱지를 떼고 보육 전문가로 변신해 수료증을 받았다고 23일 밝혔다. 구는 지난해부터 보육 문제로 고민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양육 지식과 방법을 알려 주고자 건강부모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신혼부부부터 할마·할빠까지 유형에 맞는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했다. 올해는 15차례의 교육에 총 731명이 참여했다. 출산 준비, 손자 양육법, 응급처치법, 자녀와의 소통법 등 다양한 교육이 이뤄졌다. 그러나 중도에 교육을 빠지거나 최종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이들은 수료증을 받지 못했다. 모든 과정을 완벽히 이수한 21명만이 자랑스러운 부모교육 수료증을 받게 됐다. 특히 교육생들이 뜻을 모아 지역의 미혼모 가정을 위한 후원금을 마련해 눈길을 끌고 있다. 미혼모들의 건강한 자녀 양육을 기원하며 대한사회복지회 관계자에게 소정의 후원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갑자기 부모가 되며 겪는 진통을 줄이고 지역사회의 아이 돌봄 인력 확충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바람직한 양육관과 지식을 갖춘 부모가 늘어나도록 교육을 확산, 정착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45만 서초구민 함께 달려요

    3대(代)가 함께하는 45만 주민 대화합의 장이 열린다. 서울 서초구는 21일 반포 종합운동장에서 ‘2016 서초구민 체육대회’를 개최한다. 2013년 이후 3년 만의 개최다. 지역 18개 전체 동에서 참여하고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함께해 눈길을 끈다. 구는 주민 체력 증진과 화합을 위해 2007년부터 이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대회의 정식 종목은 줄다리기, 400m 릴레이, 단체 줄넘기, 10인 11각 릴레이 등 4개 종목이다. 각 동 주민들이 한 달 넘게 우승을 위해 연습해 왔다고 한다. 18명의 동장이 명예를 걸고 달리는 ‘동장 400m 릴레이’도 흥미로운 경기다. 하지만 그동안 전통적으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종목은 ‘억척 아줌마 팔씨름 왕 선발대회’다. 각 동에서 팔 힘이 가장 세기로 유명한 엄마들이 한판 대결을 펼친다. 가족 단위 경기 중엔 ‘3대 가족 발 묶고 달리기’가 눈에 띈다. 바쁜 일상으로 3대가 함께 모여 무언가를 하기가 어려운 요즘, 발을 묶고 뛰고 호흡을 맞추며 가족애를 확인하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조은희 구청장은 “3년 만에 개최되는 체육대회가 가족 간, 또 주민 간 소통과 단합의 큰 잔치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대구내일학교 만학도 모여 가족과 함께 즐거운 골든벨

    대구시교육청은 21일 오전 10시 제일중학교 강당에서 대구내일학교 중학과정 학습자를 대상으로 ‘가족 골든벨’ 행사를 한다고 19일 밝혔다. 대구내일학교는 초·중학교 학력이 없는 만 18세 이상 성인을 위해 운영하는 학력 인정 문해교육기관이다. 골든벨 행사에는 중학과정 학습자 244명과 손자·손녀 37명 등 281명이 참가한다. 이들은 30개 팀을 이뤄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과 생활 상식 문제를 풀며 퀴즈 대결을 펼친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대구내일학교 만학도들이 골든벨 울린다

    대구내일학교 만학도들이 골든벨을 울린다. 대구시교육청은 오는 21일 오전 10시 제일중학교 강당에서 대구내일학교 중학과정 학습자를 대상으로 ‘가족 골든벨’ 행사를 한다고 19일 밝혔다. 대구내일학교는 초·중학교 학력이 없는 만 18세 이상 성인을 위해 운영하는 학력인정 문해교육기관이다. 골든벨 행사에는 중학과정 학습자 244명과 손자·손녀 37명 등 277명이 참가한다. 이들은 30개 팀을 이뤄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과 생활상식 문제를 풀며 퀴즈 대결을 펼친다. 이들 팀 중 가장 성적이 우수한 3팀이 본선에 진출한다. 금·은·동상 1팀과 응원상 3팀을 선정해 학용품 등을 시상한다. 또 학습자와 친구, 가족들의 노래와 춤, 핸드벨 연주, 장구 연주 등 다양한 장기자랑을 하기도 한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골든벨 행사를 가진 결과 학습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올해 행사는 손자·손녀 등 가족들이 함께하는 것으로 준비해 더 의미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시대의 번역가 김석희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시대의 번역가 김석희

    번역을 할수록 내 글이 건강해졌다… 18년 만에 나의 소설을 쓰려 한다 충북 증평군 내성리에 자리한 ‘21세기 문학관’에 도착한 것은 지난 10일 점심시간이 약간 지나서였다. 하늘색 점퍼에 청바지 차림을 한 그가 녹색 철문 뒤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18년 만에 재개한 소설 창작을 위해 얼마 전 제주도 집을 떠나온 그는 이곳을 ‘자발적 유배지’라고 불렀다. 점심 겸 해서 낮술 잔을 기울였다. 적당히 술기운이 올랐지만, 그의 유장한 말투는 빨라지지 않았고 간결한 문장들은 장황해지지 않았다. 중간에 말을 멈추는 때가 잦았는데 적확한 단어나 표현을 고민하는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가 말했다. “기자 양반이나 나나 즐겁게 술 마실 만큼만 건강하게 살면 되는 거요.” 김석희(64)는 ‘구름에 달 가듯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1979년 3월 어느 날 한참을 못 보고 지냈던 친구가 찾아왔다. 국사학과에 다니던 이종범이었다. ‘학생운동 하다가 제적됐다는 소식까지는 들었는데 갑자기 어쩐 일일까.’ 전공은 달랐지만, 중간에 연결고리가 되는 친구들 덕에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학교에서 잘리고 나서 작은 출판사를 하나 차렸다고 했다. “내가 불문과 다른 애들한테 물어봤는데, 김석희가 프랑스책 최고로 잘 읽는다고 하더라.” 다짜고짜 프랑스 고전을 하나 골라서 번역을 해 달라고 했다. “명색이 출판사이니 책을 좀 내야 하는데, 전문 번역가에게 맡기자니 번역료 줄 능력이 안 된다. 너한테는 술 한잔 사주면 되지?” 황당했지만, 학교에서 잘리고 뭐라도 해 보겠다는 그 친구의 딱한 사정을 안 들어주기가 어려웠다. 곰곰 생각하다가 18세기 프랑스 심리소설의 효시로 평가되는 뱅자맹 콩스탕의 ‘아돌프’를 번역해 주었다. 나는 불어를 말하고 듣는 것에는 약했지만, 독해와 번역에 나름 강점이 있었다. 번역료는 정말 술 한잔이었다. 1980년 이종범이 학교에 다시 돌아오면서 출판사는 소리없이 사라지고 그 책도 절판이 됐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게 내 인생의 이정표를 정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참, 이종범은 현재 조선대 사학과 교수로 박물관장을 하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노동의 대가를 받고 번역한 작품은 1982년 6개월 동안 작업한 영국 작가 존 파울스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였다. 1981년 메릴 스트립과 제러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동명 영화가 개봉되면서 갑자기 원작 소설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 책은 1997년과 2002년에 다시 번역을 했는데, 내가 전문 번역가의 길을 가게 된 첫 작품이 됐다. -1952년 제주시 무근성(삼도2동)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셔서 경제사정이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섬 소년에게 사방에 둘러쳐진 바다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갑갑함이었다. 섬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이었다. 1970년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재수를 위해 서울로 와서 육십을 바라보는 2009년 4월에 다시 고향에 정착했다. 40년의 타향살이 끝에 그 바다가 그리워 다시 돌아왔다. 나는 변덕을 부렸지만, 바다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보듬어준 것이다. -외할아버지께서 초등학교 때 가르쳐 주신 서예로 초등학교 때 웬만한 상들은 휩쓸었는데, 나한테 약간의 글재주가 있다는 것은 중학교 졸업 무렵에 알게 됐다. 제주일고 입학을 앞두고 도내 한 신문사가 주최한 학생 문예작품 공모전에 산문을 출품했다. 아직 고등학교 입학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2, 3학년 형들을 제치고 장원을 차지했다. 이 일로 입학을 하자마자 3학년 형들에 의해 반강제로 ‘향원’이라는 문학서클에 들게 됐다. 2학년 때는 동국대 문예백일장에서 산문부 장원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제주도립도서관은 제2의 집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뮈의 ‘이방인’을 이곳에서 읽었다. 모두 살인자인 두 책의 주인공이 꿈속에 뒤바뀐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큰 바다를 누비며 글을 쓰는 ‘마도로스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국립해양대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6·25 때 서울 영등포에서 납북된 숙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있어 입학이 불허됐다. ‘마도로스 소설가’의 꿈은 그냥 ‘소설가’로 수정됐다. -1972년 삼수를 해서 대학에 갔다. 그해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했다. 어떤 친구들은 두 주먹 불끈 쥐고 거리로 나갔고, 어떤 친구들은 술집으로 가 통음을 했다. 어떤 친구들은 캠퍼스 잔디밭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내 속의 울분을 터뜨리고 발산하기 위해 내가 택한 건 글쓰기였다. 일기를 쓰듯 글만 썼다. -수업에 들어간 기억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붕구(1922~1991) 교수님의 수업은 늘 감동 그 자체였다. 보들레르의 시를 설명하기 위해 직접 한시를 써서 읊으시다가 그걸 서양의 역사와 철학으로 이끌고 가셨다. 그러다가는 동양 인문학의 심오한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셨는데, 이야기에 빠져 한참을 넋 놓고 있다 보면 어느새 처음의 보들레르로 돌아와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넓고 깊은 인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울림 있는 강의를 하는 교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1979년 2월 졸업과 동시에 국문과에 학사편입을 했다. 소설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문학을 좀더 배우고 싶었다. 그때부터 등단을 향한 나의 긴 여정이 시작됐고, 그 과정은 1987년 12월 26일에야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끝이 났다. 세상에 대한 풍자와 야유를 담은 ‘이상의 날개’라는 작품이었다. 당선되고 나서 나를 인터뷰한 기자가 ‘칼의 노래’, ‘현의 노래’로 유명한 소설가 김훈이다. 당시 그는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였다. 1시간에 걸쳐 그와 나눴던 대화가 지금도 또렷하다. 그날 진탕 술을 마시고 돌아오던 길에 나는 한겨울 골목길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고상한 책만 번역한 줄 안다. 하지만, 내 손을 거친 책들 중에는 일본 잡지의 부록과 같은 것들도 상당수 있다. 번역은 그 자체로 생계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시사영어사 출판부에 다니던 친구가 맡겨 준 연애소설 ‘할리퀸문고’ 시리즈는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 한 달에 한 권씩 15개월을 번역했는데, 그 돈으로 쌀도 사고 아이들 공부도 시킬 수 있었다. 외국말을 입으로 하는 재주는 없었지만 눈으로 읽는 능력은 남보다 뛰어났다. 불어야 전공이니까 자연히 접할 기회가 많았고 영어는 틈틈이 원서를 읽으면서 번역 실력을 키웠다. 일본어는 학사편입한 국문과에서 현대문학 연구를 위해 일본 문헌을 참고해야 했기 때문에 독학을 했다. -1979년 학사편입부터 신춘문예에 당선된 1987년까지의 시간들은 이제 와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닌’ 고난의 시간들이었다. 계속되는 탈락에 마음엔 칼바람이 불었고,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제주의 어르신들은 나를 ‘백수’로 생각했다. “백날 써 봐야 안되는 소설, 그만 좀 하고 다른 일 찾아봐라. 서울대를, 그것도 과를 2개(불문과, 국문과)씩이나 나와서 이게 무슨 꼴이냐.” 명절에 고향 내려가는 건 아주 고역이었다. ‘아버지의 감귤밭을 이어받아 농사를 지을까, 일본에서 사업하는 사촌형을 찾아갈까.’ 고민은 계속됐지만, 소설가에 대한 꿈은 결코 포기가 되지 않았다. 안되면 안될수록 갈증은 더 심해졌다. 그러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한 번역은 계속해야 했다. 번역한 책에는 ‘김한경’이라는 필명을 썼다. 나와 아내, 아이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땄다. 내 본명은 내 최초의 소설의 표지를 위해 남겨 두기로 했다. -1987년 재일교포 작가인 김석범의 ‘화산도’를 번역했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5권짜리 대하소설이었다. 자유실천문인협회 이호철 대표가 “6월 항쟁을 계기로 4·3 사건을 다룬 책도 나올 수 있는 시대가 올 테니 미리 준비를 하자”고 했다. 마지막 제5권은 이 대표가 번역을 했고 내게는 1권부터 4권까지 번역을 맡겼다. 일본어를 번역하며 곳곳에 제주 사투리를 넣어야 하기 때문에 제주 출신 번역가가 필요했다. 제주 출신인 내가 4·3 사건 관련 책을 번역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었다. 처음으로 ‘김한경’이 아닌 ‘김석희’를 역자 이름으로 썼다. 이 일을 계기로 번역료가 크게 올라갔다. 그다음 맡은 일은 2년 6개월에 걸친 영국 브리태니커 사전 한국판 번역이었다. 매월 200자 원고지 1000장씩을 넘겼다. 아내의 가계부에 단비가 내렸다. -1994년 한길사의 김언호 사장이 두꺼운 책 3권을 들고 번역가 정도영·오정환 선생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이 책들을 읽어보고 번역해 출판할지 말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했다. 책의 지은이는 당시 무명이나 다름없던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였다. 정도영 선생이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오정환 선생이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내가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다. 당시 ‘로마인 이야기’는 일본에서 제3권(나중에 총 15권으로 완결)까지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세 명 중 가장 젊은 내가 맡았다. 2주 정도의 검토 끝에 우리 모두 ‘OK’ 사인을 냈다. 그때부터 2009년까지 12년에 걸쳐 번역을 하게 될 줄 몰랐지만 ‘로마인 이야기’의 내용은 상당히 진취적이었다. 대부분의 책이 귀납적 형식을 취하는데 이 책은 제1권 전체를 할애해 ‘국가 크기도, 문화도, 경제도 1위가 아닌 로마가 어떻게 패권(覇權)을 쥐었는지 궁금해 이 책을 쓴다’는 의문을 던지는 게 특별해 보였다. 투박하지만 힘 있는 문체도 흥미를 끌었다. 책은 번역 출간되자마자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베스트셀러 첫머리에 이름을 올렸고 사회적 신드롬으로까지 발전해 나갔다. -“내가 저들만큼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아무리 해도 거장들의 작품과는 차이가 많은데, 이걸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하나.” 힘들게 소설가로 등단을 하고 10여년이 흐른 1998년, 내 인생의 방향을 가르는 큰 선택을 했다. 그해 가을 중편 소설을 하나 냈는데 불현듯 소설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안되는 걸 들고 끙끙거리는 내가 안쓰러웠다. ‘나를 애먹이지 말자’고 했다. 소설을 중단했다. -2011년엔 ‘모비딕’을 출간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번역이었다. 작가인 허먼 멜빌은 정규 대학교육 없이 선원으로 살다가 작가가 된 사람이었다. 단정하게 완성된 문장이 아니었고, 단축형 비문이 많았다. 간혹 셰익스피어를 따라하는 도치문은 번역으로 그 느낌을 살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번역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단어도 이유 없이 배열될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대학 은사인 이휘영(1919~1986년) 교수님을 존경한다. 그는 1960년대에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의 ‘홍수’를 번역했다. 독해가 번역의 초벌작업이라면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휘력과 문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신 분이다. -나는 ‘888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8시간 자고, 8시간 놀고, 8시간 번역한다. 일은 주로 밤에 한다. 아직 번역하고 싶은 책들이 많다. 특히 판타지의 고전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싶다. 국내에서는 ‘해리 포터’를 어린이들이 먼저 즐기게 됐지만, 사실 판타지 소설의 세계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넓고 심오하다. 할아버지가 되고 보니 다섯 살 손자를 위한 번역에도 욕심이 난다. 하지만,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은 1998년 절필했던 소설 창작이다. 거의 20년 만에 다시 잡은 소설이다. 수많은 번역의 경험이 소설을 다시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많은 책을 번역하면서 내 글도 건강해졌다. 그저 예쁘게 다듬기만 한 미문, 추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그대로 나타낼 수 있게 됐다고 할까. 젊은 날 나의 명함에는 ‘소설가·번역가’가 동시에 적혀 있었다. 소설가가 되고픈 열망이었다. 정작 등단한 후 소설을 접고는 ‘번역가·소설가’라고 썼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소설가라는 직업을 다시 앞에 두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번역가 김석희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가로 통한다. 영어와 불어, 일어로 된 해외 작가들의 소설을 한글로 재탄생시켜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해 왔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허먼 멜빌의 ‘모비딕’, 재일작가 김석범의 ‘화산도’, 쥘 베른 걸작선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는 번역을 ‘장미 가시덤불에서 춤추는 것과 같은 고통 속의 쾌락’이라고 표현한다. 신춘문예 등단 작가이기도 한 그는 최근 18년 만에 자신의 소설 창작을 재개했다. ▲1952년 제주 제주시 출생 ▲제주제일중·고 ▲서울대 불문과·국문과 ,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 중퇴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소설 ‘이상의 날개’)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 수상(1997년) ●주요 작품 ‘화산도’(김석범) ‘아돌프’(뱅자맹 콩스탕) ‘여자란 무엇인가’(비올라 클라인)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에펠 탑의 검은 고양이’(아라이 만) ‘즉흥시인’(안데르센) ‘시간 박물관’(움베르토 에코 외) ‘인물 삼국지’(이나미 리쓰코) ‘빙벽’(이노우에 야스시) ‘칸의 제국’( 조너선 스펜스) ‘죽음을 삼킨 땅’(조르제 아마두) ‘프랑스 중위의 여자’(존 파울스) ‘지구에서 달까지’(쥘 베른) ‘문명 속의 불안’(지그문트 프로이트) ‘살아 있는 역사’(힐러리 로댐 클린턴) ‘모비 딕’(허먼 멜빌)
  • “클린턴 못 믿겠다”… 민주당 분열에 웃는 트럼프

    “클린턴 못 믿겠다”… 민주당 분열에 웃는 트럼프

    본선 대결때 샌더스 지지자들 트럼프 밀어주는 ‘역선택’ 우려 일부 대의원 선출 변경안 요구 지도부 살해 협박 등 과격 시위 7월 전당대회서도 난장판 조짐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굳어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당원들에게 대통령 후보로서 도덕적 확신감을 심어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은 17일(현지시간) 열린 켄터키와 오리건주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버몬트 상원의원과 1승 1패를 주고받았다. 클린턴은 승리를 챙긴 켄터키주에서는 샌더스에게 불과 0.5% 포인트 차로 앞서 사실상 동률을 이뤘고, 오리건주의 경우 7.6% 포인트 차로 샌더스에게 뒤졌다. 이 같은 결과는 클린턴이 누적 대의원은 2291명으로 매직 넘버(2383명)의 96%를 확보하게 됐지만 부족한 게 남아 있어 확신을 심어 주지 못하는 등에 따른 비호감이 여전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론조사 회사인 유고브가 지난 6~9일 실시한 조사에서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본선에서 맞붙을 경우 샌더스의 지지자 55%만이 클린턴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응답했고, 기성 정치 타파를 외치는 트럼프를 선택하겠다는 이도 15%였다. 비호감도에서 트럼프는 61%로 가장 높지만 클린턴도 56%로 결코 낮지 않았다. 특히 샌더스 지지자의 61%는 클린턴은 정직하지 않거나 신뢰할 수 없다며 비호감을 나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샌더스는 경선 완주 의사를 재확인했다. 이런 조사가 뒷받침하듯 샌더스 지지자 사이에서 클린턴과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노골화되고 있다. 이 같은 반감 때문에 샌더스 지지자들이 오는 11월 본선에서 민주당이 아닌 트럼프를 밀어주는 ‘역(逆)선택’ 반란을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샌더스 지지자 일부가 대의원 선출 규정 변경을 요구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당 지도부 인사를 상대로 살해 협박을 하는 등 분열이 심화하고 있다. 이들이 갈수록 과격해지면서 오는 7월 전당대회가 난장판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샌더스 지지자들은 지난 14일 네바다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샌더스에게 유리하도록 대의원 선발 규정 변경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네바다 민주당 의장인 로버타 랭에게 대회 직후부터 1000통 이상의 협박성 전화를 했고, 1분에 최대 3개 정도의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랭 의장은 “내 삶과 내 가족을 협박한 메시지”라며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자메시지 중에는 “당신의 손자들이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알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고, 랭 의장을 공개 처형해야 한다는 내용의 음성 메일도 배달됐다. 이에 대해 네바다 민주당 법률 자문위원인 브래들리 슈라거는 “네바다에서 벌어진 샌더스 지지자들의 행동은 불행하게도 7월 필라델피아 전당대회에서 있을 일의 조짐”이라고 지도부에 보고했다. 이와 관련해 샌더스 캠프는 “우리는 폭력을 용납하지도, 조장하지도 않는다”며 “이번 폭력과 관련해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샌더스는 특히 “(네바다주)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지도부는 공정하고 투명한 과정이 이뤄지지 못하도록 힘을 썼다. 민주당이 11월 대선에서 성공하려면 지지자들을 공정하게 대해야 할 것”이라며 경고성 발언까지 했다.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에 “버니가 (그동안과) 다른 무언가를 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클린턴 캠프 측은 이런 난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트럼트에 대해 18일 첫 비판 TV 광고를 시작했다. 클린턴을 지지하는 ‘슈퍼팩’(정치활동위원회)인 ‘미국을 위한 최우선 행동’이 이날 본선에서 트럼프를 꺾기 위해 600만 달러(약 70억원)를 들여 제작한 첫 TV 광고를 ‘스윙 스테이트’인 오하이오·플로리다·버지니아·네바다주에서 향후 3주간 방송한다. 광고는 여성과 노동자 유권자들에게 트럼프가 그들을 존중하거나 대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설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한편 트럼프는 미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에 낸 개인 재정보고서에서 재산이 100억 달러(약 11조 8000억원)를 넘어선 것으로 밝혔다고 미 언론이 전했다. 클린턴도 회고록 ‘어려운 선택들’ 인세로 500만 달러를, 강연으로 150만 달러의 소득을 올린 것으로 보고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마오를 따라, 마오에 취해… 중국의 자부심과 만나다

    [글로벌 인사이트] 마오를 따라, 마오에 취해… 중국의 자부심과 만나다

    광장에 어둠이 깔리자 집집마다 걸어 놓은 붉은 별이 하나둘씩 불을 밝혔다. 1935년 1월 15일부터 17일까지 중국 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가 열렸던 2층 건물 옆에는 아름드리 회화나무가 서 있었다. 81년 전엔 묘목에 불과했던 이 나무를 중심으로 ’홍군(紅軍) 거리’가 뻗어 있고, 거리에는 ‘혁명’의 상징을 파는 가게가 길게 이어졌다. 구이저우(貴州)성 쭌이(遵義)시. 해발 2000m의 첩첩산중에 형성된 이 도시는 홍군(인민해방군 전신)의 고향이자 중국식 사회주의 무장투쟁이 발원한 곳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이른바 ‘쭌이회의’로 불리는 1935년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소련 볼셰비키파를 누르고 당권과 군권을 장악해 특유의 게릴라전을 펼치며 북방 옌안(延安)을 향해 대장정을 이어갔다.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한국의 한·중문화우호협회와 구이저우성 초청으로 쭌이 유적지와 쭌이에서 자동차로 1시간 남짓 떨어진 마오타이진(茅台鎭·한국의 읍에 해당)을 찾았다. 마오타이진은 국주(國酒)이자 홍군의 술인 마오타이주의 원산지이다. 이 기간에 ‘포스트 시진핑’으로 불리는 천민얼(陳敏爾) 구이저우성 서기가 마오타이진에서 세계 각국의 관광업계 큰손들을 초대해 ‘구이저우여행산업발전대회’를 개최했다. 요즘 구이저우 발전의 3대 원동력으로 꼽히는 쭌이, 마오타이, 그리고 천민얼을 동시에 관찰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특히 문화대혁명 개시 50주년을 맞은 요즘 중국에선 ‘홍색 관광’을 통한 혁명 역사 배우기가 한창이다. 극좌사회주의 운동으로 중국을 10년 동안 암흑기로 몰아넣었던 문화대혁명의 비극도 혁명 역사를 바로 알아야 청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홍’(紅·혁명유적지)과 ‘주’(酒·마오타이주)를 적절하게 버무린 구이저우성의 홍색 관광이 주목을 받고 있다. 쭌이회의가 열렸던 2층 건물에는 펑더화이(彭德懷)와 양상쿤(楊尙昆)이 나란히 누워 자던 침대와 대장정의 향방을 놓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던 탁자, 마오쩌둥의 친필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하루 3만여명이 이곳을 찾는다. 회화나무 건너편에는 지난해 1월 쭌이회의 80주년을 맞아 건립된 거대한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기념관을 찾는 이들 중에는 격동의 중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체험한 노인들이 많았다. 쓰촨성에서 온 82세 노인은 “중국 사회주의 혁명을 손자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어서 온 가족이 함께 왔다”고 말했다.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쭌이회의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3D 홀로그램 영상이었다. 장제스(蔣介石)의 토벌작전으로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당시 총서기였던 소련파의 핵심인물 보구(博古)와 마오쩌둥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자아비판을 하고 장원톈(張聞天)·주더(朱德)·류사오치(劉少奇) 등이 마오쩌둥을 지지했다. 이 회의에서 ‘적이 진격하면 도망친다. 적이 멈추면 교란한다. 적이 피로하면 공격한다. 적이 퇴각하면 추격한다’는 마오의 유격전술이 채택됐고 군사지휘권도 마오가 움켜쥐게 됐다. 기념관에서 30여분을 걸어가면 홍군산(紅軍山) 열사묘역이 나온다. 덩샤오핑(鄧小平)이 쓴 ‘홍군 열사는 영원하다’는 비문을 한참 동안 쳐다보던 60대 관광객은 “내가 쭌이 출신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면서 “쭌이회의와 우강 도하작전이 없었다면 신중국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이저우의 홍색 관광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직접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시 주석은 쭌이회의 80주년이던 지난해 이곳을 찾아 “우리 당이 어떻게 지나왔는지 쭌이가 앞장서서 여러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勛)도 홍25군 사령관으로 쭌이회의에 참석했다. 기념관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마오타이주를 특별히 보호하라’는 홍군 사령부의 군령장이다. 굳이 이 군령장을 부각시킨 것은 홍군과 마오타이주를 연계해 관광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처럼 보였다. 당시 홍군은 소독약 대신 마오타이주를 사용한 것을 제외하곤 함부로 마오타이 양조장에 손을 벌리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지금도 마오타이진의 500여개 양조장은 전통 기법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마오쩌둥 등 1세대 지도자들은 고난의 행군 속에서도 쭌이에서 마셨던 마오타이주의 향을 잊지 못했다. 1949년 10월 1일 신중국 건국일 만찬에서 마오타이주를 마셨고, 그때부터 마오타이주는 중국의 국주이자 보배가 됐다. 구이저우성의 홍색 관광과 마오타이주 마케팅은 해외로 확대되고 있다. 쭌이시는 아예 홍색 관광을 전문으로 하는 그룹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오는 10월에는 마오타이진에 국제공항이 생긴다. 성도인 구이양과 쭌이에 이미 공항이 있는데도, 마오타이주 특화 공항을 신설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이 주요 타깃이다. 구이저우여행산업발전대회에서 만난 천민얼 당서기는 “마오타이주와 생태 관광을 매개로 양국이 더 가까워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멍치량 구이저우성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은 “양국의 항공 합작과 관광회사 교차 설립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글 사진 쭌이(구이저우성)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함께 실종된 할머니와 손자 잇따라 숨진 채 발견

    함께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끊긴 60대 할머니와 7살 손자가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됐다. 16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23분쯤 충북 충주시 금가면 남한강에 빠져 숨져있는 A군을 119구조대가 발견해 시신을 인양했다. 할머니 B(64)씨는 지난 14일 오전 8시 6분쯤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 탄금대교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B씨의 시신에서 특별한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B씨가 물에 빠져 숨진 것으로 보고 A군을 찾기 위한 수색작업을 벌여왔다. A군과 B씨가 발견된 지점은 1㎞ 정도 떨어져 있다. 인천에 사는 B씨는 남편과 함께 이혼한 아들과 A군을 돌보며 살아왔다. 평소 손자 양육 문제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가정불화를 겪던 B씨는 지난달 23일 자신의 집에서 손자를 데리고 나간 뒤 실종됐다. 가족들의 실종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B씨가 시외버스를 타고 충주로 이동한 사실을 확인하고 충주지역 숙박업소와 사찰, 기도원 등을 샅샅이 뒤졌지만 이들을 찾지 못했다. B씨는 충주에 연고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B씨가 처지를 비관해 손자와 함께 강물에 투신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건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충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무속인이 시키는대로 수년간 자녀 상습폭행하고 학대한 부산의 한 엄마

    부산에 사는 한 남매가 무속인에게 빠진 엄마에게 수년간 상습적으로 폭행과 학대를 당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 부산진경찰서는 16일 자녀를 수년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학대한 혐의로 김모(47)씨와 무속인 이모(40.여)씨 등을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23)군과 B(17)양 남매의 외할머니가 지난달 초 손자와 손녀들이 엄마와 무속인 김씨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남매는 처음에는 피해 사실에 대해 진술을 완강히 거부하다 경찰의 설득으로 학대를 당한 내용을 털어놨다. 10여 년 전 남편과 이혼한 이씨는 무속인 김씨와 함께 살며 김씨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랐다. 김씨가 “요즘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는다”고 하면 이씨는 아이들을 북채 등으로 마구 때렸다. 또 B군이 공부하지 않고 여자친구를 만난다며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발바닥과 허벅지를 때렸다. A양에게는 학교에 다니며 남자친구를 만난다는 이유로 머리카락을 가위로 삭발하기도 했다. 남매를 향한 학대는 대부분 무속인인 이씨의 말에서 비롯됐다. 이씨가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는다, 똑바로 가르쳐라. 귀신에 씌었다”고 하면 김씨가 흥분해 남매를 폭행하거나 굿을 할 때 사용하는 흉기 등으로 위협하는 일이 잦았다고 경찰은 말했다. 또 엄마 김씨는 이씨가 자녀를 무차별 폭행하면 보고도 말리기 않고 방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엄마 김씨와 무속인 이씨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내리고 상습적으로 학대하고 폭행한 혐의를 조사를 벌이고 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교육 차원에서 때렸고 무당이 아이들의 생명줄이 짧다고 해 관련 의식을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7살 손자와 집나간 60대女 실종 20일만에 숨진채 발견… 손자 행방은 묘연

     7살 손자와 함께 집을 나간 60대 여성이 실종 20여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그렇지만 함께 집을 나간 손자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한 상태다.  15일 충북 충주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전 8시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 탄금대교 부근 남한강변에서 A(64·여)씨가 숨진 채 쓰러져 있는 것을 이곳을 지나던 시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의 시신에서 특별한 외상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점으로 미뤄볼 때 타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며 “연고가 없는 충주에 손자를 데리고 온 이유가 석연치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A씨가 물에 빠져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씨의 남편은 지난달 23일 ‘아내가 오전 9시쯤 손자와 함께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A씨 부부는 뇌질환을 앓는 아들과 손자를 돌보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집을 나간 지난달 23일에도 손자의 양육 문제로 남편과 다퉜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A씨와 손자가 지난달 23일 오후 2시쯤 충주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충주지역 숙박업소와 사찰, 기도원 등을 샅샅이 뒤졌지만 이들의 행적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경찰과 소방당국은 A씨의 시신이 발견된 남한강 일대를 중심으로 실종된 손자를 집중 수색하고 있다.  충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새누리당 송희경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새누리당 송희경

    새누리당 비례대표 1번 송희경 당선자는 당이 자신을 1번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박사, 교수, 연구원장 등이 ‘전략가’라면 나는 ‘전투’를 하는 사람”이라고 13일 말했다. 그는 KT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의 새로운 지평인 사물인터넷(IoT) 사업을 이끌었다. Q. ‘정치는 ○○○다’라고 말한다면. A. 양심. 양심을 기반으로 국익을 위하는 것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 외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아이를 키우는 마음으로 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Q.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 하고 싶은 일은. A. 규제 완화.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법에 들어 있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 중소기업에 맡기는 부분은 그대로 육성시키고 대기업은 대기업이 새로운 산업을 선도해서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오게 해야 한다. IoT, 빅데이터 산업 등은 중소기업에서 할 수 없다. 그런데 규제가 너무 많다. 재개정해야 할 법도 많고 일몰폐지되는 법안들, 신설법에 유치할 것도 많다. 미방위에 꼭 가야 한다. Q. 3당 비례대표 1번이 모두 비슷한 분야 전문가다. 함께 해볼 것은 없는지. A. 초당적 연구단체 설립.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국민의당 신용현 당선자와 제4차 산업혁명 연구단체를 설립해 공동대표를 맡기로 했다. 셋이 성향도 비슷하고 초당적인 포럼을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모두 흔쾌히 승낙했다. 박 당선자는 교수였기 때문에 인재 육성, 교육을, 과학자인 신 당선자는 연구개발, 기초과학을, 나는 ICT 쪽이니 소프트웨어와 현장을 담당할 것이다. Q. 처음 만나 본 국회는 어떻던가. A. 느리다.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캘린더 국회’가 돼야 한다. 국민과 약속한 날에 본회의가 시작돼야 한다. 모든 일정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일정이 잡히고 실행에 옮겨지는 과정이 국회 밖의 사회보다 현저히 느리다. 법안도 발의된 뒤 통과되기까지 평균 35개월 걸린다더라. Q. 여성 정치인이자 워킹맘으로서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일은. A. 마더센터. 나는 행복한 워킹맘이었다. 아이 키우기 위해 시댁에 들어가 4대가 함께 살았다. 시할머니, 시어머니 등 온 가족이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다. 아이가 크게 다쳤을 때 큰 고객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끝나자마자 달려갔는데 발버둥 치는 아들을 병원에서 묶어서 매달아 놨더라. 땅을 치고 울면서 사표 쓴다고 했더니 시어머니가 ‘웃기는 소리 말고 당장 출근하라’고 했다. 나는 운 좋은 워킹맘이었지만 눈물 흘리며 회사를 나간 많은 후배들을 봤다. 여성이 나서서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여성가족위원회 겸임해서 새누리당이 마더센터를 만드는 것을 법제화시키고 싶다. Q. 20대 국회의원으로서 목표는. A. 좋은 국회 만들기. 여소야대, 3당 체제인 20대 국회가 새누리당에는 힘든 국회가 되겠지만 오히려 나에겐 더 좋을지도 모른다. 토론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투명한 국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김영란법’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요즘 기업은 얼마나 투명한지 모른다. 20대 이후로 좋은 국회가 돼서 나중에 호호할머니가 됐을 때 손자, 손녀 앉혀 놓고 “저기에 내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프로필 ▲1964년 부산 출생 ▲이화여대 전자계산학과 ▲KT GiGA IoT 사업단장, 한국클라우드산업협회장, 평창동계올림픽지원단장, 대우정보시스템 서비스사업단장.
  • 30년 전 고문, 살해 일삼은 전직 육군대령, 결국 체포

    30년 전 고문, 살해 일삼은 전직 육군대령, 결국 체포

    이미 30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반인권, 반인륜적 범죄행위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을 때 역사는 비로소 합법칙적인 발전의 걸음을 내딛게 된다. 이른바 '더러운 전쟁' 때 시민들을 납치해 조직적으로 고문하고 살해한 혐의를 받고 에콰도르로 도피해 은신해 있던 아르헨티나의 전직 대령이 전격 체포됐다. 에콰도르 언론은 지난 7일(현지시간) "과야스 지방에 숨어 있던 아르헨티나의 전직 육군대령 오라시오 E(66)가 5일 에콰도르 경찰에 검거됐다"고 보도했다. 오라시오는 2013년 12월 에콰도르에 잠입해 가족과 함께 지방에서 은신생활을 해왔다. 인터폴은 아르헨티나의 요청으로 올해 1월 적색 수배령을 내렸다. 체포작전을 지휘한 에콰도르 검사 세사르 페냐는 "경찰이 들이닥치자 (모든 걸 단념한 듯)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고 말했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대령은 티셔츠와 조끼차림에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있다. 하지만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인 만큼 그의 얼굴은 가린 채 공개하지 않았다. 에콰도르 검찰은 "그는 곧 키토로 옮겨질 예정"이라면서 신병을 아르헨티나에 넘기기 위한 절차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1980년대 초반까지 육군대령으로 재임한 그는 '더러운 전쟁' 때 무자비한 인권탄압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더러운 전쟁'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이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자행한 인권유린 범죄를 일컫는다. 군사정권은 학생, 기자 등 엘리트 저항세력과 사회주의를 추구하던 게릴라 등을 무차별로 잡아들여 비밀수용소가 가두고 무자비한 압제를 가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납치, 고문, 수장 등으로 살해됐거나 아직까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실종자는 1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론 희생자가 3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군부는 임신한 여성들까지 불법으로 납치해 아기를 낳게 하고 산모를 바다에 수장시켰다. 아기들은 군 가족 등에 불법으로 입양됐다. 당시 자식을 잃고 손자와 손녀까지 빼앗긴 할머니들은 마요광장 할머니회라는 단체를 결성, 지금까지 혈육 찾아주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덕분에 당시 불법으로 입양됐던 손자손녀 100여 명이 극적으로 핏줄을 찾았다. 사진=에콰도르 검찰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The Best 시티] 종로 ‘비운 자리’ 사람들이 채웠다

    [The Best 시티] 종로 ‘비운 자리’ 사람들이 채웠다

    “화려하고 웅장한 개발도 좋지만 ‘사람 살기 좋네’라고 느껴지는 도시가 진짜 ‘베스트 시티’ 아닐까요?” 김영종 서울 종로구청장은 12일 과거 사진을 보여주며 달라진 종로의 거리를 설명했다. 어지럽게 시야를 가리고 있던 전깃줄 대신 탁 트인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고 있던 간판들은 깔끔하고 선명하게 변신했다. 인도는 더 넓어졌으며 움푹 팬 곳 없이 매끈했다. 물론 이전의 거리가 어땠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겐 숨은 그림 찾기가 따로 없다. 그러나 주민들은 ‘달라진 우리 동네’를 잘 알고 있었다. 부암동 주민 이정순(58)씨는 “손자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하러 가는 길이 훨씬 편해졌다”면서 “안전하고 쾌적하고, 편리해졌다는 생각이 들고 전체적인 마을의 품격도 좀더 높아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여기엔 ‘디테일의 힘’을 강조하는 김 구청장의 도시 철학이 녹아 있다. 주민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것도, 불편하게 하는 것도 일상 속의 작은 부분에서 시작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김 구청장은 “건물이나 차량이 아닌 사람 중심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도시 비우기’ 사업을 시작했다”면서 “작은 변화들이 모여 점차 주민들이 체감하는 큰 변화를 만들어가는 중”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도시 비우기 사업은 김 구청장이 자부하는 역점 사업 중 하나다. 통일성 없이 마구잡이로 설치된 각종 시설물을 정비·정돈해 말 그대로 도시를 비우는 작업이다. 종로는 600년 역사를 품은 도시다.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곳곳에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긴 시간만큼 낡고 불필요해진 것도 많았다.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잡동사니를 밀어 넣었던 책상 서랍처럼 한 번쯤 치우고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도시의 원형은 보존하면서도 좀더 쾌적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구는 2013년 ‘시민 안전, 보행 편의, 시설물 간 조화’를 목표로 ‘도시비우기팀’을 신설했다. 불필요한 시설물은 없애고 중복되는 것은 통합했다.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불편을 가져오는 것들은 새롭게 정비했다. 막상 사업을 시작하니 손댈 것이 많았다. 도로 안내표지판과 전신주, 가로등, 담장, 간판, 소화전, 우체통, 공중전화 부스까지. 그러나 문제는 대상이 포괄적인 만큼 구의 힘만으론 진행할 수 없었다. 서울시와 경찰청, 한국전력 등 관계기관의 도움이 필요했다. 구는 수차례 협의와 조정, 설득 끝에 각 기관의 협조를 얻어 하나씩 사업을 진행했다. 3년간 1만 3370건의 시설물을 정비했다. 아름다운 도시의 민낯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도시 비우기의 하나로 ‘미리 비우기’ 사업도 추진했다. 각 부서의 사업을 도시비우기팀과 사전에 공유해 설치 및 설계 단계부터 도시 미관을 고려한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절감한 예산만 2억 2000여만원이다. 시설물을 설치했다가 다시 철거하거나 정비하는 비용을 아낀 것이다. 구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도시비우기 사업 조례’를 제정해 제도적 근거도 마련했다. 도시 시설물의 통합과 지중화 우선 원칙, 외부기관 시설물 설치의 사전 협의 등이 골자다. 올해는 추진 4년째를 맞아 ‘도시비우기협의회’ 운영을 제도화하고 본격적으로 가동할 계획이다. 지난 2월 구성한 이 협의회는 구와 종로경찰서, 혜화경찰서, 북부도로사업소, 종로소방서 등 시설물을 관리하는 7개 기관 관계자들로 구성돼 있다. 사전 협의로 시설물 통합을 유도하고 반드시 필요한 시설물만 설치하도록 하는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도시 비우기 사업은 그동안 성과를 인정받아 수상과 벤치마킹이 잇따랐다. 2014년 9월에는 국토교통부 주최의 ‘2014 대한민국 도시대상’ 종합평가 장관상을, 지난해엔 ‘2015 전국 기초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공약이행분야’ 최우수상을 받았다. 지난해 행정자치부의 ‘지방자치 20년 평가’에선 도시 비우기 사업이 우수사례로 채택돼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소개됐다. 또 이클레이(ICLEI) 한국 사무소의 ‘2016 회원 지방정부 정기회의’에서는 지속가능 발전 정책으로 꼽혀 주목을 받았다. 잘 정돈된 거리만으로 주민 만족과 대외적 성과를 동시에 거둔 것이다. 구는 올해 도시 비우기 사업을 확대 추진해 종로의 낡고 오래된 이미지를 벗고, 아름답고 깨끗한 도시를 완성할 계획이다. 김 구청장은 “복잡함과 불편함에 익숙해 있던 주민들에게 달라진 마을을 통해 좀더 나은 일상을 선사하고 싶었다”면서 “일상생활에 불편을 주는 것들을 먼저 찾고 개선하며 사람이 중심이 되는 정책을 펼치겠다”고 힘줘 말했다. 글 사진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길섶에서] 할머니 가설/최광숙 논설위원

    아침에는 유치원 가는 손자들을 챙기고, 그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놀이터에서 함께 놀아 주는 할머니들을 자주 본다. 비가 오면 젖을세라 옷을 여며 주고, 겨울이면 추울세라 모자를 씌운다. 손자를 바라보는 할머니들의 눈길은 사랑 그 자체다.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폐경이 지나도 10~20년 건강하게 활동한다고 한다. 진화의 시각에서 본다면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없는 ‘비생산적’인 여성들이 그토록 오래도록 살 필요가 있을까. 그 답으로 미국 인류학자인 커스틴 호크스는 폐경 이후의 할머니들이 자식을 낳지는 못하지만 손자들의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후손들의 생존성을 높여 준다는 ‘할머니 가설’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손자들을 지극정성 돌봄으로써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할 가능성도 높이고, 이는 진화에도 유리해진다는 것이다. 동네 할머니들만 봐도 일리가 있는 이론이지 싶다. 하지만 요즘 전 세계적으로 저출산, 고령화 사회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고 싶은 할머니들은 많은데 돌볼 아이들이 적어진다는 얘기다. 그럼 할머니 가설은? 새로운 할머니 이론이 나올 때가 된 듯하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가족끼리 왜이래… 상속재산 분할청구 1000건 넘어

    피를 나눈 친부모와 자식, 친형제들끼리 벌이는 재산 관련 분쟁이 지난해 1000건을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11일 법원에 따르면 가족 간에 벌어지는 ‘상속재산 분할에 관한 심판 청구 사건’이 지난해 1008건으로 잠정 집계됐다. 2010년 435건과 비교하면 5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상속재산 분할 심판 청구와 함께 내거나 분쟁 상대방이 맞소송 격으로 내는 ‘기여분 결정 청구’도 2010년 98건에서 지난해 225건(잠정 집계)으로 늘었다. 기여분 청구는 유산을 나누기 전에 이 재산 형성에 자신이 기여한 부분을 우선 인정해 달라는 요구다. 불황이 지속되자 가족 간 재산 분쟁은 꼭 상속재산이 많은 경우뿐 아니라 중산층이나 서민 가정에서도 적지 않게 벌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이 사망하고 집 한 채를 유산으로 남겼을 경우 이를 당장 나눠 가지려는 자식들에게 맞서 자신이 살 집을 지키기 위해 남편 재산의 기여분을 인정해 달라는 청구를 내는 여성들도 종종 있다고 법조계는 전했다. 민법은 상속 순위를 규정하고 있다. 사망한 사람의 직계비속(자녀, 손자녀 등)이 1순위, 직계존속(부모, 조부모 등)이 2순위다. 형제자매는 3순위, 4촌 이내 방계혈족(삼촌, 고모 등)은 4순위다. 배우자는 직계비속이나 직계존속이 상속인이 될 때 그들이 받는 재산에 0.5를 가산해 받는 공동 상속인이 된다. 따라서 법이 정한 상속 지분은 배우자와 자녀의 분할 비율이 1.5대1이다. 자식이 3명이면 1.5대1대1대1로 나눠야 해 배우자의 지분은 작아진다. 따라서 친어머니와 자식들 간에도 집 한 채를 놓고 분쟁을 벌이는 경우가 나온다는 것이다. 조용철 기자 choskku6@naver.com
  • [여기는 남미] 반인륜범죄는 30년 흘러도 법정에 세운다

    [여기는 남미] 반인륜범죄는 30년 흘러도 법정에 세운다

    이미 30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반인권, 반인륜적 범죄행위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을 때 역사는 비로소 합법칙적인 발전의 걸음을 내딛게 된다. 이른바 '더러운 전쟁' 때 시민들을 납치해 조직적으로 고문하고 살해한 혐의를 받고 에콰도르로 도피해 은신해 있던 아르헨티나의 전직 대령이 전격 체포됐다. 에콰도르 언론은 지난 7일(현지시간) "과야스 지방에 숨어 있던 아르헨티나의 전직 육군대령 오라시오 E(66)가 5일 에콰도르 경찰에 검거됐다"고 보도했다. 오라시오는 2013년 12월 에콰도르에 잠입해 가족과 함께 지방에서 은신생활을 해왔다. 인터폴은 아르헨티나의 요청으로 올해 1월 적색 수배령을 내렸다. 체포작전을 지휘한 에콰도르 검사 세사르 페냐는 "경찰이 들이닥치자 (모든 걸 단념한 듯)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고 말했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대령은 티셔츠와 조끼차림에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있다. 하지만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인 만큼 그의 얼굴은 가린 채 공개하지 않았다. 에콰도르 검찰은 "그는 곧 키토로 옮겨질 예정"이라면서 신병을 아르헨티나에 넘기기 위한 절차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1980년대 초반까지 육군대령으로 재임한 그는 '더러운 전쟁' 때 무자비한 인권탄압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더러운 전쟁'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이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자행한 인권유린 범죄를 일컫는다. 군사정권은 학생, 기자 등 엘리트 저항세력과 사회주의를 추구하던 게릴라 등을 무차별로 잡아들여 비밀수용소가 가두고 무자비한 압제를 가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납치, 고문, 수장 등으로 살해됐거나 아직까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실종자는 1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론 희생자가 3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군부는 임신한 여성들까지 불법으로 납치해 아기를 낳게 하고 산모를 바다에 수장시켰다. 아기들은 군 가족 등에 불법으로 입양됐다. 당시 자식을 잃고 손자와 손녀까지 빼앗긴 할머니들은 마요광장 할머니회라는 단체를 결성, 지금까지 혈육 찾아주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덕분에 당시 불법으로 입양됐던 손자손녀 100여 명이 극적으로 핏줄을 찾았다. 사진=에콰도르 검찰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韓 독립 주창’ 조지 노리스 건국훈장

    조지 윌리엄 노리스(1861~1944) 전 미국 연방 상원의원이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미국 의회에서 한국 독립을 주창한 공로로 한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안호영 주미 대사는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대사관저에서 한국 정부를 대신해 노리스 전 의원의 외증손자인 데이비드 노리스 래스(49) 박사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노리스 전 의원은 1919년 7월 1일 미국 상원에서 일제에 한국 침략을 중단하라고 비난하는 연설을 하고 일제의 식민통치 실상을 기록한 증거물을 의회에 제출하는 등 한국의 독립 열망과 일제 식민통치의 부당성을 미국 의회의 주요 의제로 부각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新전원일기] 딸기밭에 욕심을 묻었다… 빨갛게 익은 행복을 딴다

    [新전원일기] 딸기밭에 욕심을 묻었다… 빨갛게 익은 행복을 딴다

    어린 시절, 커서 돈을 많이 벌면 딸기를 실컷 사 먹겠다고 결심했다. 유독 남아 선호 사상이 심했던 할머니 때문이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딸기를 냉장고 깊숙한 곳에 숨겨 두고 몰래 남동생에게만 간식으로 내어 주셨다. 크게 넉넉하지는 않아도 먹는 것으로 남매를 차별할 형편까지는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까. 돌이켜 보면 할머니 세대에게는 딸기가 그 정도로 특별하고 귀한 과일로 각인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비닐하우스 시설과 재배 기술이 발전하고, 재배 농가도 늘어나면서 딸기는 옛날에 비해 훨씬 더 흔해졌다. 한겨울에도 어렵지 않게 사다 먹을 수 있고, 요즘 같은 봄철에는 대형마트의 과일 코너를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는 품목이 딸기다. 대기업 부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경북 상주시 청리면으로 귀농해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 박홍희(45), 곽연미(44)씨 부부가 왜 하필 딸기를 택한 건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특색 있고 이국적인 작물에 도전해 볼까 알아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런 작물은 재배가 더 어렵고 위험 부담이 컸어요. 딸기는 특별히 싫어하는 사람이 드문 과일이잖아요.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체험 농장까지 계획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매일 아침 ‘우공의 딸기 정원’이라는 로고가 박힌 빨간색 유니폼을 작업복으로 맞춰 입고 딸기밭으로 출근하는 이 부부의 각오는 남다르다. 이곳을 농원이 아닌 딸기 정원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맛있는 딸기를 키우는 것을 넘어 정원과 같은 깨끗하고 아늑한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단다. 그렇지 않아도 말끔하게 치워진 농원 곳곳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던 참이었다. 딸기밭이라 그런지 비닐하우스에 들어섰을 때 으레 나게 마련인 쿰쿰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여러 농기구나 잡동사니가 곳곳에 널려 있는 보통의 시골 농장과는 달랐다. 딸기 체험을 위해 마련된 테이블은 농부의 작업대라기보다는 마치 카페처럼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대기업 부장에서 인턴 농부로 재취업 삭막한 도시를 떠나 귀농을 한 후 ‘슬로 라이프’의 가치를 몸소 깨우치게 되었다는 이 부부는 그동안 소위 한국 사회의 ‘엘리트 코스’만을 걸어온 사람이었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서 캠퍼스 커플로 만난 이들은 LG전자(남편 박씨)와 삼성전자(아내 곽씨)에 각각 입사해 핵심 부서에서 일하며 부장 직함까지 달았다. 부부 모두 재직 중 회사의 지원을 받아 카이스트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기도 했다. 조금만 더 달리면, 조금만 손을 멀리 뻗으면 ‘샐러리맨의 꿈’인 임원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사회적인 성공, 더 윤택한 삶에 욕심이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행복한 삶인지, 정말 바라던 삶인지에 대해서 회의가 들었다. 무엇보다 다른 가족, 특히 아이들의 희생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워킹맘’이었던 곽씨는 그런 스트레스가 남편보다 더 컸다. “대기업 업무의 특성상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집에 아이의 성향조사를 위한 설문지를 들고 왔는데, 제가 아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아이가 누구와 친한지 무엇에 흥미가 있고, 어떤 취미가 있는지…. 주중에 밥 한 끼 같이 먹기도 쉽지 않은 일상이었으니까요.” 임원이 되지 못하고 ‘사오정’이 되는 건 더 끔찍했다. 사십대 후반 혹은 오십대 초반에 짐을 싸서 회사를 떠나야 하는 선배들을 적지 않게 봐 왔다. 치킨집 아니면 편의점 사장. 퇴직 후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 두 가지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우스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박 대표가 마흔 살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귀농을 알아보게 된 계기도 여기에 있었다. 실패로 인한 위험 부담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충분한 준비와 적응 기간을 거쳤다. 귀농 전 3년에 걸쳐 주말마다 전국 곳곳의 귀농 교육을 찾아다녔고, 다양한 작물을 물색했다. 남편이 우선 혼자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어 보기로 하고, 아내 곽씨는 아이들과 서울에 남아 직장 생활을 계속 이어 나갔다. 농사가 적성에 맞지 않으면 재취업을 하겠다고 가족들과 약속하고 상주에 온 박 대표는 딸기작목반 반장님 댁에서 1년간 ‘인턴 농부’ 생활을 하면서 농사일을 배웠다. 2014년 무급에 가까운 보수로 일하면서 딸기 농사의 1년 사이클을 몸으로 익힌 박씨는 남은 인생을 딸기에 걸어 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난해 ‘우공의 딸기정원’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아내와 함께 딸기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아내의 지지와 두 딸의 이해가 큰 힘이 돼 줬다. “사춘기에 접어든 큰딸이 시골로 전학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걱정이 컸어요. 하지만 이제 아이들도 서울보다는 여기가 더 편하대요. 전교생이 서른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곳 시골 중학교에서는 왕따나 학교 폭력 같은 문제도 없어서 안심이 됩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진 것이 귀농 후 가장 달라진 점이라며 아내 곽씨가 환하게 웃었다. ■연구·개발·사업보고서 쓰는 엘리트 농부 딸기 농업계에 신입으로 입문한 박 대표는 귀농 후 농사를 짓는 틈틈이 농업학교를 다니면서 딸기 공부에 매진했다. 경북도에서 운영하는 농민사관학교의 수출용 딸기 고설수경재배 과정을 1년간 수료했고, 현재는 심화 과정에 해당하는 농업 마이스터대학에 재학 중이다. 작물에 필요한 물과 양분, 온도를 인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수경 재배라는 첨단 농법을 활용하는 한편 무농약, 무비대제(과실을 크게 만드는 영양제), 무호르몬제라는 3무(無) 원칙을 고수해 딸기를 재배하려면 거듭된 공부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으려면 두 배 이상의 비용과 노동력이 들어요. 화학 약품 대신 약재나 해조류 추출물 등을 배합한 제제를 농약보다 훨씬 더 자주 작물에 뿌려 주어야 하거든요.” 그렇다고 유기농 딸기가 일반 딸기보다 두 배 이상의 값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유기농을 고집하는 이유는 본인의 두 딸에게도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딸기를 생산하고 싶어서다. 허리 높이의 베드가 길게 늘어져 있는 딸기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 달콤한 냄새가 코를 찌르면서 입 안에 저절로 침이 고였다. 박 대표가 큼직한 딸기 한 알을 그 자리에서 따 먹어 보라고 권했다. 조금 꺼림칙한 표정으로 씻지 않아도 되느냐고 묻자 0.01의 농약도 포함되지 않은 유기농 딸기라며 안심시켰다. “오전 오후로 나누어 하루 총 12팀씩 딸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흙과 작물을 만지고 딸기를 마음껏 따 먹는 공간인데 독한 농약을 칠 수는 없죠.” 품질 좋은 유기농 딸기를 생산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직거래 주문도 점점 늘고 있다. 택배가 어려운 딸기 과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포장 박스도 개발했다. 달걀처럼 딸기를 한 알 한 알 감싸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발송하면서부터 밭에서 갓 딴 딸기 모양 그대로 안방까지 전달할 수 있게 됐다. 대기업에서 쌓은 인맥이 딸기 장사에 도움이 되지 않느냐고 묻자, 어느 정도 사업을 궤도에 올리기 전까지는 주변의 지인들에게 알리지 않겠다는 것이 귀농 초기의 결심이었다고 말했다. “인맥으로 파는 것은 한계가 있잖아요. 제 힘으로 품질을 인정받고 수익을 내지 못하면 오래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판로를 개척하려 노력했습니다.” 인맥보다는 회사에서 갈고닦은 각종 서류 작성 능력이 농사에 더 도움이 된다며 싱긋이 웃는 박 대표 부부. 이들은 매년 회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제출하던 보고서의 형식으로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분기별 보고서를 파워포인트 형식으로 작성해 서로 공유한다고 한다. 둘밖에 없는 사업체지만, 앞으로의 목표와 주어진 과제들을 명확히 알 수 있고 수입과 지출에 대해서도 철저히 분석할 수 있어서 더 체계적인 농사가 이뤄진단다. “회사에서 쓰는 예산은 제 돈이 아니잖아요. 수백억원의 수익이 나더라도 제 것이 되지도 않고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제가 몸을 움직여 직접 생산하고, 눈으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새롭습니다.” ■고연봉 대신 고품질 딸기 생산 농부의 삶 우공의 딸기 정원 연매출은 1억원 수준. 그러나 여러 부대비용을 떼고 나면 순수익은 2000만원가량으로 아직 미미하다고 한다. 부부가 삼성과 LG를 다니며 맞벌이를 계속했더라면 순수하게 통장에 입금되는 연봉만 해도 합쳐서 1억원이 너끈히 넘었을 텐데 미련은 없느냐고 묻자, 적게 벌더라도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자유를 느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우문현답’이 돌아온다. “후회는 전혀 없어요. 이왕 시작한 농사이니 최고 품질의 유기농 딸기와 평생 추억으로 간직할 만한 뜻깊은 체험 프로그램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향긋한 딸기 내음을 가득 품은 채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돌아가신 할머니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생각해 보니 할머니가 딸기를 양껏 드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 단 한 번도 없다. 할머니에게는 딸기가 아끼고 아껴 아들이나 손자에게 먹이고 싶은 특별한 과일이었던 것이다. 차별이 서운하지만, 그런 할머니의 삶은 더 짠하고 안타깝다. 할머니 영전에 싱싱한 유기농 딸기 한 접시를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하는 딸기’가 아니라 ‘차별화된 딸기’ 말이다. 어릴 때 꿈꿨던 부자는 되지 못했지만, 딸기가 그때보다 더 흔해진 덕분에 제철 딸기를 배부르게 먹을 능력 정도는 된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까지 딸기에 욕심이 나지는 않는다. 조금 먹더라도 건강하고 깨끗한 과일을 먹고 싶다. 무조건 많이 먹는 것도 싫고 살찌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하게. 이런 생각을 하는 소비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프리미엄 딸기 생산을 표방하는 이 부부의 딸기 농장이 앞으로 더 분주해질 것 같다. 최정례 시인은 ‘딸기는 왜 이렇게 향기로운 걸까’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 바 있다. ‘딸기는 사랑스러워 앞으로도 뒤로도/사랑스러워 딸기는 그런 식으로 교묘하게/이야기를 숨겨 놓고 있는 거지/총총한 씨앗 속에 또다른 이야기를/(중략)/딸기가 맛있다고 하하 웃는/당신 속에 또다른 당신이 숨어 있다.’ 딸기 한 알에도 사연과 감동을 담아 전하고 싶다는 박 대표 부부의 마음이 시인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기를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체험하고 추억을 만들면서 농원 곳곳에 다채로운 이야기를 쌓아 가겠다는 이 부부의 꿈이 새콤달콤하게 익어 가는 중이다. 글쓴이:소설가 김유담 부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핀 캐리’로 등단
  • 화순전남대병원 ‘소외이웃·결식아동 돕기’ 앞장

    화순전남대병원 ‘소외이웃·결식아동 돕기’ 앞장

    화순전남대학교병원이 지역의 소외이웃 돕기에 나선 가운데 어려운 형편의 환자를 지원하기 위한 지역민들의 기부도 잇따른다. 화순전남대병원은 임직원들이 한 끼 식사비를 아껴 모은 3100여만원을 최근 어린이재단 전남지역본부에 전달했다고 10일 밝혔다. 2009년 ‘형편이 어려운 지역 꿈나무들을 키우자’라는 취지로 시작된 이 캠페인으로 올해까지 2억원 가까이 기부했다. 후원금은 어린이재단을 통해 결식아동이나 이혼 등 가정해체로 어린 손자녀들을 돌보는 저소득층 조손가정에 전달됐다. 또 어린이재단과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협약’을 맺고 불우 아동들을 돕고 있다. 기초수급대상자 가정과 저소득층 가정들에 대한 의료비 보조 외에도 생활안정비·교통비 등을 지원한다. 화순전남대병원 불교자원봉사자실도 최근 병원에 600만원을 전달했다. 이 후원금은 유방암을 앓는 김모(46)씨 등 형편이 어려운 11명 환자들의 치료비를 지원하는 데 쓰인다. 불교자원봉사자실은 2007년부터 환자들의 정서 안정과 심리치유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매년 성금을 모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을 돕는다. 지난달 29일에는 광주 새순교회가 1000만원을, 도서판매업체 ‘오픈북’이 400여만원을 전달했다. 김형준 병원장은 “지역의 소외이웃을 돕고, 의료 사각지대에 대한 진료봉사도 늘려나가겠다”고 밝혔다. 화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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