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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피플+] 목숨 던져 항암치료 포기하고 뱃속 아기 구한 엄마

    [월드피플+] 목숨 던져 항암치료 포기하고 뱃속 아기 구한 엄마

    한 임산부가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대신 뱃속 아기를 구한 가슴 아픈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28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메트로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웨일스 남부 스완지 출신의 타샤 트래퍼드(33)는 임신한 지 16주가 지났을 때, 희귀암인 ‘유잉육종'(Ewing’s Sarcoma)이 재발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됐다. 유잉육종은 골수암의 일종으로 뼈와 물렁뼈 또는 신경에 생기는 악성 종양이다. 예전부터 이 병을 앓고 있었던 트래퍼드는 종양을 제거하고 냉동배아를 이식한 상태였다. 첫 배아 이식에 성공해 엄마가 된다는 소식에 기뻐하고 있을무렵 그녀는 상상치도 못한 선택의 순간을 맞게됐다. 항암치료를 받고 아기를 포기하느냐, 아니면 치료를 포기하고 목숨을 담보로 아기를 낳느냐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것. 그러나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뱃속 아이를 그대로 품고 있기로 마음먹었다. 아이에게는 자신의 병이 해가 될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희생 덕분에 지난 2015년 12월 12일 아들 쿠퍼는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 트래퍼드는 11개월 후인 지난해 11월 사랑하는 아들을 뒤로하고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목숨과 맞바꾼 아들의 첫 생일을 불과 한 달 앞둔 상황이었다. 트래퍼드의 부친인 다이 걸리반은 “암은 딸에게 엄청난 고통이었기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고있었다"면서 "그러나 딸은 아들과 오래 있을 수 있었음에 오히려 감사해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암 자선단체를 위한 킬리만자로 등반을 완주하러 아프리카로 떠났던 부친은 딸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 대신 남동생 데이비드가 부탁을 받고 누나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딸을 떠나보내고 대신 손자를 얻게 된 부친은 “먼저 간 딸을 위해 트래킹을 완주할 예정"이라면서 "딸은 떠났지만 영원히 내 기억 속에 머물 것”이라고 밝혔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보훈은 애국의 출발”…보훈처, 내년 독립·참전·민주유공자 보상금 인상

    “보훈은 애국의 출발”…보훈처, 내년 독립·참전·민주유공자 보상금 인상

    국가보훈처가 예우 차원에서 독립·참전·민주유공자에게 제공하는 보상금 액수를 내년에 대폭 인상하기로 했다.29일 보훈처에 따르면 생존하는 독립운동 애국지사에 대한 특별예우금은 매달 157만 5000~232만 5000원(기존 월 105만∼155만원)으로 인상된다. 또 그동안 보상금을 받지 못했던 생활 형편이 어려운 (손)자녀에 대한 생활지원금이 신설된다. 기준중위소득(전체 가구 중 소득을 기준으로 50%에 해당하는 가구의 소득) 50% 이하는 월 46만 8000원을, 70% 이하는 월 33만 5000원을 각각 받는다. 생활 형편이 어려운 독립유공자 자녀 3564명, 손자녀 8949명 등에게 지급하는 매월 생활지원금 규모는 526억원이다. 또 참전유공자에게 지급되는 참전명예수당을 월 22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오른다. 내년부터 연간 1662억원의 예산이 더 투입될 예정이다. 또 참전유공자가 보훈병원이나 보훈처 위탁병원에서 치료받을 때 비용 90%를 감면 받는데 연간 필요한 비용 1052억원을 국가가 부담하기로 했다. 민주유공자에 대해서도 민주화의 공헌을 정당하게 예우하자는 취지에서 4·19혁명 공로자 보상금을 월 17만원에서 30만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보훈 사업 확대는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국가 책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광복절을 앞둔 지난 14일에는 독립유공자와 유족 등 24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독립유공자 3대까지 합당한 예우를 받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전날 대통령 업무보고를 마치고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이 보훈은 첫째, 국가에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최상의 예우이고 둘째, 보훈은 애국의 출발이라는 원칙에 대해 여러 번 강조하셨다”고 전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허리케인에도 사료부터 챙긴 화제의 견공, 알고보니…

    허리케인에도 사료부터 챙긴 화제의 견공, 알고보니…

    초강력 허리케인 ‘하비’가 미국 텍사스주(州)를 강타한 가운데, 홀로 커다란 사료 포대를 입에 문 채 어디론가 향해 화제를 모은 견공의 뒷 이야기가 전해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7일(현지시간) 유명세를 타게 된 견공 ‘오티스’를 소개했다. 오티스는 애초 알려진 골든 래트리버 믹스견이 아닌 저먼 셰퍼드 믹스견. 견주인 살바도르 세고비아(65)에 따르면 허리케인이 텍사스 해안을 강타하기 직전인 지난 25일까지 오티스는 코퍼스크리스티에 있는 그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오티스의 실제 주인인 5세 꼬마 카터는 나이가 너무 어려 부모와 함께 허리케인을 피하고자 이곳을 떠나게 됐고 오티스가 할아버지인 세고비아 집에 남게 됐다는 것이다. 이날 할아버지는 오티스를 집 뒤편 베란다에 약간의 먹이, 물과 함께 남겨두고 거실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밤중에 할아버지가 베란다 쪽으로 가보니 오티스는 사라졌고 문이 열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큰 소리로 오티스를 부르고 또 불렀지만 찾을 수 없었다”면서 “다음 날 아침에도 밖으로 나가 오티스를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오티스는 옆 마을 싱턴의 거리를 걷고 있었고 이 모습이 우연히 지역 주민 티엘레 도켄스에게 목격됐다. 도켄스는 "개 한 마리가 커다란 사료 포대를 입에 문 채 어디론가 걷고 있었다"면서 "무언가 임무를 수행중인 것 같았으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며 웃었다. 그녀는 개가 길을 잃은 것이지 확인하기 위해 개를 따라갔고 그 끝에 할아버지의 집 앞에서 멈출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한 여성이 다가와서 내게 ‘당신의 개가 길을 따라왔느냐?’고 물었다”면서 “이어 내가 (말을 거는 그녀를 향해) 돌아서자 오티스가 사료를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오티스는 집 앞 현관으로 들어가 사료 포대를 내려놓고 바닥에 드러누웠다고 할아버지는 설명했다. 사실 오티스는 이번 허리케인으로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일으키기 전부터 싱턴 지역에서 유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티스는 현지 지방법원과 골동품점, 그리고 식료품 가게 등 어느 곳이든 혼자 방문해 누구나 이 개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항상 그런 오티스에게 먹을 것을 나눠줬다. 할아버지는 “오티스는 정말 슬퍼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어 사람들은 그저 개를 볼 때마다 잘 대해준다”면서 “또한 오티스는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마을 주변 지리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때때로 오티스는 지역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방문해 그곳에 온 손님들로부터 아이스크림이나 햄버거를 얻어먹었다. 이뿐만 아니라 오티스는 개 사료도 판매하는 지역 목재 판매소와 건축자재 판매소를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럴 때마다 주인들은 먹을 것을 나눠준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오티스는 똑똑한 개다. 이 개는 자신이 대접받을 수 있는 곳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날 오전 오티스는 사료를 얻으러 갔을지도 모른다”면서 “오티스는 자신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익히 알고 있던 곳에서 사료를 집어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오티스가 강아지였을 때부터 봐왔다고 밝혔다. 그는 “오티스는 아마 6살쯤 됐을 것이다. 어느 날 차를 몰고 다니던 한 남성이 길에서 오티스를 버리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이와 함께 “난 개가 필요 없었지만 그에게 ‘개를 그냥 여기 두고 가라. 우리가 개를 돌보겠다’고 말했다”면서 “그가 개를 남겨뒀고 그 개는 내 손자의 개가 됐다”고 말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72세 할머니와 결혼한 27세 청년…사랑? 사기?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다고 하지만 72세 할머니와 결혼한 27세 청년의 사연은 어떻게 봐야 할까? 최근 영국언론 더선은 45세 연하의 나이지리아 청년과 결혼한 도체스터 출신의 할머니 안젤라 느와추쿠우(72)의 사연을 전했다. 과거 두 차례 결혼을 통해 50세, 47세, 43세의 세 아들을 두고 있는 할머니는 2년 전 나이지리아에서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놀랍게도 할머니의 새 남편은 손자뻘인 CJ 느와추쿠우(27). 수천 ㎞ 떨어진 두 나라에서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된 과정은 더욱 놀랍다. 지난 2015년 2월 할머니는 나이지리아의 한 청년으로부터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받는다. 바로 지금의 남편인 CJ.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한다는 그는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이 멋있다며 할머니에게 접근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그가 왜 나한테 친구신청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잘생긴 외모에 호감을 느꼈다"면서 "오랜 시간 메시지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고 회상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온라인 상에서 알게 된 지 한 달 만에 벌어졌다. CJ가 할머니에게 전격적으로 청혼했기 때문. 할머니는 "갑자기 CJ가 '당신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고 청혼했다"면서 "이에 주저없이 '예'라고 대답했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할머니는 결혼식을 위해 나이지리아로 떠나 현지에서 법적인 부부가 됐다. 두 사람의 사연이 현지언론에 알려진 이유는 귀국한 할머니가 CJ를 영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여러 차례 비자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영국 당국은 CJ가 처음부터 할머니의 돈과 합법적인 입국을 노린 사기로 판단해 관광 비자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의심에 할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할머니는 "내가 돈 없는 노인이라는 것은 CJ도 잘 알고 있다"면서 "가끔 경제적으로 도와준 적도 있지만 절반은 돌려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소울메이트"라면서 "내년에 컴퓨터 석사과정 진학을 위한 학생비자 신청을 고려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의지로 좌절 넘었다…美 백인 빈민의 기적

    의지로 좌절 넘었다…美 백인 빈민의 기적

    힐빌리의 노래/J D 밴스 지음/김보람 옮김/흐름출판/428쪽/1만4800원 책을 읽기 전에 ‘힐빌리’(hillbilly)의 의미부터 알아보자. ‘힐빌리’는 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를 가리키는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의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교육수준이 낮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시골사람을 뜻하는 ‘레드넥’(red neck)이나 ‘화이트 트래시’(white trash) 같은 비하적 표현과 맥을 같이한다.‘힐빌리의 노래’는 힐빌리 출신으로 미국 최고 명문 예일 로스쿨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의 전도유망한 사업가가 된 32세 청년 J D 밴스의 회고담이다. 젊은 나이에 회고담이라니 좀 의아하지만 성장기라고 하기엔 담고 있는 내용은 너무나 묵직하다. 계층과 가정환경이 가난한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무기력증에 빠진 백인 하층민들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지난해 6월 미국에서 출간돼 대통령선거에서 백인 하층 노동자 계층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 이유를 설명하는 책으로도 주목받았다. 뉴욕타임스는 책을 ‘트럼프의 승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여섯 권의 책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밴스는 오하이오의 철강 도시 미들타운과 캔터키 남동부의 탄광촌 잭슨을 오가며 ‘시궁창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사는 세상은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 출신 애팔래치아 사람들인 외가 쪽은 시비가 생기면 언쟁을 생략하고 바로 방아쇠를 당기는 유형이었다. 약물중독에 빠진 어머니와 돈 때문에 일찍이 양육을 포기한 아버지, 수없이 바뀌는 어머니의 동거인들, 소외와 가난과 마주하며 목표의식도 없이 정신적 빈곤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는 다혈질에 괴팍한 성격을 지녔지만 손자를 지극히 아끼는 외조부모와 누나 등 가족 덕분에 안정을 찾고 고등학교 졸업후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자립심과 자신감을 키운다. 제대 후 그는 오하이오주립대학을 졸업하고 예일대 로스쿨에 합격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밴스는 서문에서 “이런 일(성공)이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대부분의 아이에게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에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통계적으로 그와 같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의 미래는 비참하다. 운이 좋으면 수급자 신세를 면하는 정도고, 운이 나쁘면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사망한다. 그는 “나 역시 비참한 미래를 앞둔 아이들 중 하나였다”면서 “자포자기 직전까지 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어쩌다 그런 상황까지 가게 되는지, 가난한 사람들의 인생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신적·물질적 빈곤이 자녀에게 어떤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길 바랐다”고 적었다. 그는 책을 통해 윤리와 문화의 붕괴, 가족해체, 미래에 대한 체념, 소외와 가난으로 점철된 가족사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진솔하게 드러냄으로써 무관심 속에 버려졌던 힐빌리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는 가난을 대물림하며 피폐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힐빌리 문제의 본질을 ‘학습된 무기력’에서 찾는다. ‘내가 내린 결정이 앞으로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현상이다. 저자의 경우 해병대 입대가 변화의 계기가 됐다. 절대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일들을 배워 나갈 때마다 조금씩 자신을 향한 믿음이 생겨났다. 그는 “기대할 것이라고는 없는 미들타운의 환경부터 혼란이 끊이질 않는 집안 상황까지 인생은 내게 내 힘으로는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가르쳤다”면서 “집에서 ‘학습된 무기력’을 배웠다면 해병대에서 ‘학습된 의지’를 습득했다”고 말한다.그는 “미국 백인 노동자계층의 상당수가 나와 마찬가지로 산골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 산골 사람들은 여전히 안녕하지 못하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마법처럼 이 문제를 해결할 공공정책이나 획기적인 정부 프로그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자신 같은 환경에 놓인 아이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요소가 무엇인지 먼저 이해한 뒤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생활 속 화학물질 불임·기형 유발”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생활화학제품 속 살균제 성분의 유해성이 생각보다 크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미국 국립환경보건과학연구소(NIEHS)가 발행하는 학술지 ‘환경보건전망’(EHP)은 지난 22일(현지시간) 각종 생활화학제품에 들어 있는 ‘쿼츠’(Quats)계 화학물질이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를 손상시키고 성호르몬에 대한 반응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미 캘리포니아주립대(데이비스 캠퍼스) 지노 코르토파시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1600개 제품을 수거해 제품 내 쿼츠 성분을 세포에 노출시키는 실험을 한 결과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의 호흡과 세포 내 청소 등에 관여하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관이다. ‘제4급 암모늄 화합물’의 영어 줄임말인 쿼츠는 1930년대 살균성이 처음 발견돼 1940년대부터 ‘좋은 살균제’로 폭넓게 사용돼 왔다. 현재는 손·구강 세정제를 비롯해 치약, 로션, 샴푸, 보디워시, 디오더런트, 점안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에 들어 있다. 쿼츠는 세균의 세포막을 녹여 균을 죽이는데, 이런 기능이 동물이나 사람의 세포에도 유사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미 버지니아공대 테리 흐루벡 교수팀은 2014년 쥐를 쿼츠에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면 암수 모두 생식능력이 저하 또는 상실되며 쿼츠 노출을 중단해도 손자 세대까지 불임이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흐루벡 교수팀은 이어 지난 6월 임신 기간 쿼츠에 노출된 암컷 쥐에서 태어난 새끼의 일부에서 선천적 신경관 손상이 나타났다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신경관 손상은 척추갈림증이나 무뇌증 등의 원인이 된다. 전문가들은 모든 사람들이 쿼츠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상황에서 이 물질이 안전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문제는 사람이 쿼츠계 화학물질을 구체적으로 얼마나 흡수하는지 아직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이 화학물질 2종 이상에 노출되면 상승효과로 유해성이 증폭된다. 이에 미 FDA는 지난해 가장 흔한 쿼츠계 화학물질인 염화세틸피리디늄의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정되는’(GRAS) 상태를 취소, 사용 금지했고 염화벤잘코늄에 대해서는 안전성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일장기 말소’ 이길용 기자 흉상으로 부활

    ‘일장기 말소’ 이길용 기자 흉상으로 부활

    오늘 서울 손기정공원서 제막 아들 “납북돼 묘소 없어…감격” 81년 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하며 한국인의 기상을 떨친 손기정(1912~2002) 선생과 그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우며 일제에 저항한 이길용(1899∼?) 기자가 다시 만난다.한국체육언론인회(회장 이종세)와 한국체육기자연맹(회장 정희돈)은 25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만리동 손기정공원과 손기정기념관에서 이 기자의 흉상을 제막하고 그의 시대정신을 돌아보는 포럼을 개최한다고 24일 밝혔다. 손 선생은 1936년 8월 9일 베를린올림픽 스타디움 결승선을 2시간29분19초에 들어와 우승했다. 작은 체구의 동양인이 맨 먼저 결승선을 끊은 데 세계가 경악했다. 아시아인 최초의 올림픽 마라톤 제패였지만 손 선생의 윗옷에는 일장기가 선명했다. 손 선생은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렸고 시상식 내내 기뻐하지도 않았다.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남승룡(1912~2001) 선생은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던 손 선생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국내 신문도 10일자 호외로 첫 소식을 전했다.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는 13일자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장기를 지웠다. 조선중앙일보는 손 선생과 남 선생의 일장기를 모두 지운 반면, 동아일보는 손 선생 것만 지웠다. 인쇄가 좋지 않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동아일보 25일자 2면에 다시 실린 같은 사진의 인쇄가 선명해 일제에 발각돼 이길용 사회부 체육주임과 이상범 화백, 현진건 사회부장 등이 한 달 동안 치도곤을 치렀다. 일제는 곧바로 무기 정간했다가 이듬해 6월 2일에야 복간시켰다. 해직됐던 이 기자는 광복 후 복직했으나 1950년 7월 납북된 뒤 돌아오지 못했다. 3남이자 대를 이어 체육기자로 일했던 이태영(76) 체육언론인회 자문위원장은 “생사를 알 수 없는 데다 유해가 없어 묘소도 쓰지 못했다. 아버지의 뜻을 기리는 비석 하나 세우는 게 소원이었는데 흉상이 세워진다니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중견 조각가 이용철(57)씨가 제작한 청동 흉상은 높이 90㎝, 가로 64㎝, 세로 35㎝로 실제의 1.3~1.4배 크기로 세워진다. 손 선생의 외손자인 이준승(50)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은 “이 기자의 흉상을 마땅히 계셔야 할 곳에 모시게 돼 기쁘고 할아버지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사설] 인터넷은행, 보안 허점 해결해야 신뢰 얻는다

    인터넷은행은 시중은행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준다. 현금 입·출금 때 수수료가 따라붙지 않는다. 대출한도가 1억 5000만원에 이른다. 무엇보다 강점은 계좌 만들기가 쉽고 빠르고 간편하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화면 몇 번만 터치해서 계좌를 만들고 돈을 보낼 수 있다. 서비스 가입과 로그인, 송금하는 모든 단계에서 공인인증서가 필요 없다. 이 덕분에 카카오뱅크는 서비스를 선보인 지 13일 만에 무려 200만여명의 가입자를 모았다. 선발주자인 케이뱅크도 지난 7월 출범 100일 만에 예금, 대출 모두 6000억원을 돌파했다. 그런데도 고객들은 인터넷은행에 돈을 맡겨도 되는지 여전히 걱정한다. 카카오뱅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계좌가 개설되거나 소액대출이 신청된 사례가 10건 발생했다고 밝혔다. 주로 배우자가 남편이나 부인 명의로, 자식·손자가 부모·조부모의 이름으로 입·출금 계좌를 만들거나 소액대출을 받은 것이다.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 신분증 사진 촬영, 본인 명의의 타행계좌 입금 내역 확인 등 3단계로 이뤄지는 카카오식 비대면(非對面) 본인 인증에 취약성이 드러난 것이다. 타행계좌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휴대전화와 신분증에 접근 가능한 가족이라면 누구나 명의 도용을 할 수 있다. 가족이 아닌 제3자에 의해 ‘대포통장’으로 악용될 공산도 작지 않다. 비밀번호만 있으면 송금이 이뤄지다 보니 휴대전화 분실이나 해킹당했을 때도 대비해야 할 판이다. 은행업은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업(業)을 영위하는 조직이다. 카카오뱅크는 인증장벽을 높이면 그만큼 매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어 고심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보안 취약점을 보완하지 않으면 인터넷은행에 대한 기대가 물거품이 될 것이다. 간편한 본인인증제를 운용하면서도 명의도용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을 속히 내놔야 한다. 인터넷은행이 편리함만 강조할 시기는 지났다. 카카오뱅크는 얼마 전에 사전 공지 없이 마이너스통장의 한도를 줄여버렸다. 케이뱅크는 지난달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 비율)이 90%를 웃돌자 ‘직장인K 신용대출’ 판매를 돌연 중단했다. 두 은행 모두 “대출 신청이 몰려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했지만 신뢰에는 치명적인 조치다. 이런 미덥지 못한 일이 반복되면 고객은 눈을 돌릴지도 모른다. 이제 자리매김에 어느 정도 성공한 만큼 소비자 보호 장치 마련과 보안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바란다.
  • 23시간 걸려 전달한 화천의 손길… 흙바닥 쪽방, 미래가 열렸다

    23시간 걸려 전달한 화천의 손길… 흙바닥 쪽방, 미래가 열렸다

    인구 2만 7000여명의 산골마을 강원 화천군이 1억여명, 80여개 부족들이 모여 사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에티오피아 돕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66년 전 한국전쟁에 참전해 화천군을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당시 에티오피아군은 5차에 걸쳐 6037명이 파병돼 122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했다. 당시 에티오피아 최정예 황제근위병(칵뉴부대)은 253번의 전투에서 전승하며 유엔 참전국 가운데 가장 용감한 군으로 기억된다. 주로 강원 화천과 철원, 양구, 춘천 등 중부전선에서 활동하며 전과를 올렸다. 덕분에 전쟁 전 북한땅이던 화천군이 자유의 땅이 됐다. 이런 에티오피아를 잊지 못해 화천군이 어려운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9년째 보은의 장학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7일부터 열흘간 아프리카의 허브로 발돋움하는 에티오피아를 찾아 화천군 장학사업의 실태와 참전용사 후손들의 삶을 돌아봤다.“(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게) 자랑스럽습니다. 잊지 않고 멀리서 찾아줘 감사할 뿐입니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60㎞ 남짓 떨어진 외딴 산골 아레타 마을에서 만난 참전용사 바컬러다디(86) 할아버지는 목이 메었다. 이역만리에서 비행기로 20시간, 다시 3시간의 비포장길을 달려 찾아 준 데 대해 감격했다. 귀가 어두운 오로모족으로 에티오피아 공용어인 암하라어를 못하는 할아버지는 2중 통역을 통해 집안을 소개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마을 어귀까지 마중 나온 코흘리개 아이들부터 동네에 모여 사는 19명의 가족들이 모두 나와 반겼다. 아름드리 유칼립투스나무 서너 그루를 기둥 삼아 나뭇가지를 엮어 두른 울타리 안에서 소와 개, 양, 닭이 사람들과 함께 생활했다. 흙바닥에 그릇 몇 개 갖춘 초가집 오두막으로 손을 이끈 게테케베데(70) 할머니는 장학금을 받는 손자 워르크너(14·중1)를 인사시키며 “손자를 위해 장학금을 줘 고맙다”고 감사를 표했다. 화천군은 자치단체의 작은 예산과 십시일반 후원을 모아 244명(올해 29명 추가 선발)에게 연간 8330여만원씩 지급해 오고 있다. 여기에는 화천 지역 군민 10여명의 정기 후원자와 기업, 군부대가 동참한다. 빈곤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희망의 등불이다. 참전용사 회장 멜레세(87)는 “우리는 한국을 사랑하고 슬픔도 같이하는 형제 같은 나라”라고 고마움을 표했다.아디스아바바 도심지역에서 만난 대부분의 참전용사 후손들의 삶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도심지역이라고는 하지만 인구 밀집지역 골목마다 늘어선 2~3평 넓이의 흙바닥 쪽방에서 단출한 가재도구만 갖추고 서너 명의 가족이 함께 생활했다. 허름한 소파와 작은 텔레비전, 별도의 침실을 갖춘 집은 그나마 형편이 좋은 편이다. 참전용사 데넥에베르(85)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4학년 손자가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이어 가길 희망한다”며 참전용사 훈장과 당시 사진, 각종 증명서를 내보였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조카 갈립요셉(8)의 장학금을 신청한 참전용사 딸 엘리자벳리사(34)는 “장애인 아빠를 두어 생활력이 없는 조카가 장학금으로 학교에 가길 간절히 바란다”고 하소연했다. 흙바닥 단칸방에서 동생과 재봉일을 하는 어머니와 하루하루를 생활하는 루트(9·여)는 가슴 수술까지 했지만 학업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화천군이 주는 장학금은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단비와 같다. 많게는 에티오피아 교사 월급(12만원 정도)의 절반 수준인 6만원까지 지급되기 때문이다. 장학금은 주로 생활비 지원 형식으로 이뤄진다. 학년별·성적별로 차등을 둬 학업에 대한 열정을 부추긴다. 초·중·고·대학생에게 월 3만~5만원씩 주며 성적에 따라 1만원씩을 더 준다. 함께한 류희상(53) 화천군 의원은 “대학생은 국내 명지대, 한림대와 협의해 1명씩 유학생을 뽑아 학자금은 대학 측에서, 생활비는 화천에서 지원해 준다”고 말했다. 명성교회가 에티오피아에서 운영하는 명성의대에 진학한 후손들에게도 장학금을 지원한다. 명성의대 4학년인 부르크(23)는 “사회에 나가서도 참전용사 후손들을 돕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지급된 돈은 생활자금으로 요긴하게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국공립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교육의 질이 좋은 사립학교로 옮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고 있어 장래 참전용사 후손들이 자립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에티오피아에서 참전용사 장학사업 지부장을 맡은 오태일(54)씨는 “참전용사 후손들의 90%가 극빈층으로 생활하는 마당에 화천군이 지급하는 생활비 지급형 장학금은 후손들이 좋은 교육을 받아 자립해 나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후손들을 돕는 다양한 후원사업들이 있지만 화천군이 추진하는 장학사업은 시작한 지 9년이 넘어가면서 에티오피아 정부뿐 아니라 후손들 사이에서도 가장 모범적이고 장래를 밝히는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화천군은 손자들까지만 혜택을 볼 수 있는 장학제도를 정비해 후손들이 자립할 길도 열어 놓고 있다. 올해 처음 화천지역 고교생 3명과 함께 에티오피아 현지를 찾은 최수명 화천군 교육복지과장은 “위탁 운영을 하면 제대로 장학금이 전달되지 않겠다는 판단에 어려움이 있지만 직접 현지를 찾아다니며 대상자를 발굴, 지급해 오고 있다”면서 “참전용사의 후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길을 열어 놓고 돕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아디스아바바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이웃집 불 끄고 생명 구한 부부 단양소방서 감사패 수여한다

    이웃집 불 끄고 생명 구한 부부 단양소방서 감사패 수여한다

    위험한 화재 현장에서 이웃의 생명을 구한 부부가 감사패를 받는다. 20일 충북 단양소방서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전 1시 20분쯤 단양군 적성면 하원곡리에 사는 김기용(55)·함인옥(46)씨 부부는 반려견이 짖어 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밖으로 나와 보니 이웃집 창고가 타고 있었다. 김씨는 부인 함씨에게 119에 신고하게 한 뒤 팬티 차림으로 자신의 집에 있던 소화기를 들고 창고로 달려갔다. 소화기 3개로 불길을 어느 정도 잡은 뒤 바로 옆에 있는 창고 주인집으로 가 보니 이모(76·여)씨만 집 밖으로 탈출해 있었다. 이씨로부터 가족들이 집안에 있다는 얘기를 들은 김씨는 이씨의 남편 안모(83)씨가 자고 있던 방 쪽으로 뛰어가 창문을 열었다. 김씨는 안씨를 창문으로 끄집어냈다. 이어 김씨는 안씨의 딸과 손자·손녀가 있다는 다른 방 창문 쪽으로 뛰어가 창문을 통해 이들의 탈출을 도왔다. 소방서 관계자는 “김씨 부부에게 감사패를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단양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본인도 모르는 ‘카뱅’ 계좌·대출 10건 신고

    가족이 몰래 대출받는 사례 발견…케이뱅크도 유사사건 발생 우려 인터넷 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에서 명의도용 사건이 이어지는 등 비대면 본인 인증이 허점을 드러냈다. 카카오뱅크는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사례를 검토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계좌가 개설되거나 소액대출이 신청됐다는 신고가 최근까지 10건 접수됐다고 20일 밝혔다. 카카오뱅크 측이 신고 사례를 조사한 결과 배우자가 남편이나 부인 명의로, 자식·손자가 부모·조부모의 이름으로 입출금 계좌를 만들거나 소액대출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카카오뱅크 특유의 비대면 본인 인증 방식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카카오뱅크 계좌 개설은 우선 본인 명의 휴대전화, 신분증 사진 촬영, 본인 명의 타행계좌 입금 내역(송금 메모) 확인 등 3단계 절차로 비대면 본인 인증을 해야 한다. 제3자라면 본인 행세가 어렵다. 하지만 본인의 타행계좌 비밀번호 등 정보를 공유하고 있고 휴대전화와 신분증에 접근할 수 있는 가족이라면 도용이 가능하다. ‘국내 1호 인터넷 전문은행’인 케이뱅크의 경우 타인에게 속아서 본인이 개설한 계좌 정보를 직접 넘겨주는 등의 사례가 약 20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케이뱅크에서는 카카오뱅크처럼 명의를 도용한 계좌 개설 사례가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케이뱅크의 본인 인증도 마지막 단계에서 신분증을 들고 영상통화를 하거나 본인 명의 타행은행 계좌 입금 내역을 확인하는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뱅크와 같은 방식의 타행계좌 입금 내역을 선택하면 가족 간 명의도용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월드피플+] 아내 사별 후 집 마당에 ‘동네 수영장’ 만든 할아버지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부인을 떠나보낸 할아버지가 동네 수영장을 만들어 즐거운 인생을 사는 가슴 따뜻한 사연이 전해졌다. 최근 미국 NBC뉴스 등 현지언론은 미네소타 주 모리스에 사는 올해 94세 할아버지 키스 데이비슨의 사연을 소개했다. 전직 판사 출신인 할아버지는 결혼 66주년을 나흘 앞둔 지난해 4월 안타깝게도 부인을 먼저 떠나보냈다. 할아버지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정말이지 많이 울었다"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더이상 옆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지 아마 상상하기도 힘들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후 아내와 함께 살던 큰 집은 한마디 말도 들리지 않는 마음만큼이나 횡한 곳이 됐다. 특히나 장성한 자녀가 3명이나 있지만 손자가 없어 할아버지의 외로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결국 집에 혼자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 할아버지는 고민 끝에 놀라운 아이디어를 짜냈다. 주위에 많은 이웃들이 산다는 것에 착안해 집 마당에 큰 수영장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 할아버지는 "마당에 아이들이 뛰어논다면 적적함과 외로움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이웃들과 사이도 좋아지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놀이공간이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이웃들도 올해 초 진짜 공사가 시작되자 두 팔을 걷어부치기 시작해 지난 7월 폭 4.9m, 길이 9.8m에 달하는 수영장이 완공됐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예상처럼 수영장은 동네 아이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한 주민은 "수영장이 집 옆에 생기면서 매일 아이들과 이곳을 찾고있다"면서 "할아버지가 마치 동네 아이들 모두를 입양한 느낌"이라며 기뻐했다. 동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장 흐뭇한 사람은 물론 데이비슨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수영장 출입 조건은 반드시 아이들이 수영하는 동안 부모 혹은 조부모와 함께 하는 것"이라면서 "원래 판사 출신이기 때문에 규칙에 민감하다"며 웃었다. 이어 "언젠가는 이웃에 뭔가 보답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내 외로움도 덜게 됐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카카오뱅크, 비대면 인증서 ‘허점’…배우자·자식이 몰래 대출

    카카오뱅크, 비대면 인증서 ‘허점’…배우자·자식이 몰래 대출

    인터넷 전문은행 한국카카오은행(약칭 ‘카카오뱅크’)의 허점이 드러났다. 명의 도용 신고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20일 카카오뱅크에 따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계좌가 개설되거나 소액대출이 신청됐다는 신고가 최근까지 10건 접수됐다. 카카오뱅크 측이 신고 사례를 조사한 결과 배우자가 남편이나 부인 명의로, 자식·손자가 부모·조부모의 이름으로 입출금 계좌를 만들거나 소액대출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타인 명의를 이용한 계좌 개설이나 대출은 카카오뱅크의 비대면 본인 인증 방식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뱅크는 본인 명의 휴대전화, 신분증 사진 촬영, 본인 명의 타행계좌 입금 내역(송금 메모) 확인 등 3단계 절차로 비대면 본인 인증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타인이 3단계 인증을 모두 통과해 본인 행세를 하기는 어렵지만 타행계좌 비밀 번호 등 정보를 공유하고 있고 휴대전화와 신분증에 접근할 수 있다면 도용도 가능하다. 상황에 따라서는 가족 외 제삼자에 의한 도용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카카오뱅크는 비슷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사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경자 서울시의원 ‘자녀를 위한 엄마의 마음가짐’ 공개강의

    김경자 서울시의원 ‘자녀를 위한 엄마의 마음가짐’ 공개강의

    서울시의회 김경자 의원(국민의당, 강서2)은 8월 16일 서울시 강서구 우장산동 내발산 초등학교 시청각실에서 「엄마가 변해야 내 자녀가 행복하다」라는 주제로 공개강의를 했다. 본 강의는 BTN에서 5월 말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1시 30분에 방영되고 있던 강의로 이번 강의는 18, 19, 20강을 1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개강의로 진행했다. 18강에서는 「자녀를 위한 엄마의 마음가짐」을 이야기 했는데, ‘자녀는 엄마가 믿어준 만큼 성장한다. 엄마가 행복해야 자녀가 행복하다. 인내하고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어야한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줄서는 성적은 헌신짝처럼 버려라.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가 수천억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대이다’ 라는 내용을 가지고 강의를 진행했다. 평소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표어를 가지고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김의원은 19, 20 나머지 두 강의에서는 시청자들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자녀의 교육에 대한 고민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 자리에서 최선의 방법에 대해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강의에는 직장을 가진 딸이나 며느리를 대신해 손자 손녀를 보살피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함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찰, ‘학교폭력 은폐’ 숭의초 교장 등 휴대폰 압수수색

    경찰, ‘학교폭력 은폐’ 숭의초 교장 등 휴대폰 압수수색

    경찰이 학교폭력을 은폐·축소한 것으로 확인된 숭의초등학교에 대해 본격 수사에 나섰다.서울 중부경찰서는 시교육청이 수사를 의뢰한 숭의초 교장·교감·생활지도부장·담임교사 등 4명에 대해 최근 압수수색에 나서 휴대전화를 확보했다고 16일 밝혔다. 경찰은 휴대전화 통화·대화 내용 등을 바탕으로 이들이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정황이 있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다. 앞서 서울시교육청은 숭의초가 재벌 회장 손자와 연예인 아들이 낀 학교폭력 사안을 은폐했다고 결론냈다. 이후 교육청은 재단인 학교법인 숭의학원에 이들 4명에 대한 중징계를 요구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숭의학원은 감사결과에 반박하며 교육청에 징계요구를 취소해달라는 재심 신청서를 제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임청각 역사…민주당 이용득 의원·배우 이서진 관계도 재조명

    임청각 역사…민주당 이용득 의원·배우 이서진 관계도 재조명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경북 안동 임청각을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상징하는 공간’이라 거듭 극찬하면서 임청각(보물 182호)의 역사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안동시 법흥동 법흥교 옆에 있는 임청각은 세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이원(李原)의 여섯째 아들 영산현감 이중공과 형조좌랑을 역임한 이중공의 셋째 아들 이명이 1519년 건축한 조선 중기 별당형 정자다. 500년의 역사보다 더욱 주목받아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이 곳은 대한민국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1858∼1932) 선생의 생가이며 석주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한 고성 이씨 가문의 종택이다. 이 중에는 석주 선생의 두 동생과 아들, 손자, 조카 등이 있다. 석주 선생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1월 식솔들을 이끌고 임청각을 떠나 기약 없는 만주 망명길에 올라 독립운동에 여생을 바쳤다. 국내에서 의병투쟁과 애국계몽운동을 해봤지만, 그 방식으로는 도저히 일제를 이기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학식이 풍부하고 재산이 많은 석주 선생이었지만 부귀영화를 걷어차고 국난 극복의 선봉에 섰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은 물론이고 99칸짜리 임청각까지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다. 일제는 독립운동 성지나 다름없는 임청각의 정기를 끊으려고 마당 한가운데로 중앙선 철길을 내고 행랑채와 부속건물 등 50여 칸을 뜯어내 오늘의 어색한 모습을 갖게 됐다. 선생이 서간도에서 독립단체 통합 노력에 주력하다가 1932년 유명을 달리하자 가문도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석주 선생의 손부 허은(1907∼1997)여사 슬하 7남매 중 장남은 일본강점기 경찰에 끌려가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고 둘째, 셋째, 넷째는 실종되거나 사고로 숨지는 등 대를 잇는데도 상당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허은 여사는 훗날 회고록에서 “(나라에)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남 앞에 비굴함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래도 선대의 긍지가 그들 핏속에 자존심으로 살아 있구나 싶다”고 했다.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은 임청각의 소유주였던 독립지사 이상룡 선생의 후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의원은 경북 안동출신으로 한국상업은행 노조위원장과 전국금융산업노조 위원장, 한국노총 위원장을 역임한 노동운동가 출신 국회의원이다. 이용득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에 “항일 독립운동의 산실과도 같은 공간인 임청각은 독립운동가이자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내신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며, 저의 종갓집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어 “매년 현충일이 있는 주 토요일에 온 가족이 현충원에 모여 (이상룡 선생에 대한) 추모와 헌화의 시간을 갖고 있다”면서 “(문 대통령의) 방문을 도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난 방문에 이어 이번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임청각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주신데 대해 석주 선생의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나라를 되찾지 못하면 가문도 의미가 없다’며 아흔아홉칸 가택을 팔고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조상님들의 정신을 본받아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의정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임청각 등 전 재산을 처분한 이후 이상룡 선생 후손들은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일제강점기 탄압은 물론 광복 이후엔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빨갱이로 몰리기도 했다. 이로인해 후손들은 거리로 내몰리거나 고아원에 가는 등 뿔뿔히 흩어졌다. 임청각은 광복 뒤 가문의 노력으로 되찾았고 2002년 국가에 헌납했다. 이를 주도한 것이 서울은행장과 제일은행장 등을 지내고 2001년 타계한 원로 금융인이자 고성 이씨 탑동파 종손이었던 고(故) 이보형 선생이다. 이보형의 친손자가 바로 배우 이서진(탑동파 16대손)으로 알려졌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임정 초대 국무령’ 이상룡 본가… 일제가 50칸 뜯고 철길 만들어

    ‘임정 초대 국무령’ 이상룡 본가… 일제가 50칸 뜯고 철길 만들어

    독립운동가 9명 낸 99칸 가옥 文 “노블레스 오블리주 상징” 李총리도 임청각 복원 지원 의사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경북 안동 임청각(臨淸閣·보물 182호)을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극찬하면서 이 건축물이 주목받고 있다. 안동시 법흥동 법흥교 옆에 있는 임청각은 상하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 선생의 본가로 99칸 규모다. 세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이원(1368~1430)의 여섯째 아들 영산현감 이중공과 형조좌랑을 역임한 이중공의 셋째 아들 이명이 1519년에 지었다. 대청의 현판은 퇴계 이황의 친필로 알려졌다. 임청각은 석주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한 고성 이씨 가문의 종택이다. 선생의 두 동생과 아들, 손자, 조카 등도 독립운동을 했다. 석주 선생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1월 식솔을 이끌고 만주 망명길에 올라 독립운동에 여생을 바쳤다. 학식이 풍부하고 재산이 많은 석주 선생이었지만 부귀영화를 뿌리치고 국난 극복의 선봉에 섰던 것이다. 선생은 이 과정에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은 물론 임청각까지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다. 일제는 독립운동 성지나 다름없는 임청각의 정기를 끊기 위해 마당 복판으로 중앙선 철길을 내고 행랑채와 부속건물 등 50여칸을 뜯어냈다. 선생이 서간도에서 독립단체 통합에 주력하다가 1932년 유명을 달리하자 가문도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선생의 손부인 허은(1907~1997) 여사 슬하 7남매 중 장남은 일제강점기 경찰에 끌려가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고 둘째, 셋째, 넷째는 실종되거나 사고로 숨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임청각을 방문, “안동이나 유교라고 하면 보수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안동 지역에서는 독립운동이 활발했다”며 “(이들은) 혁신 유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 10일 임청각을 찾아 “대통령께 경북으로 휴가를 간다고 보고드렸더니 ‘안동으로 가 보라’고 말씀하셨다”며 “문 대통령이 의원 시절이던 지난해 임청각을 찾아 복원 등과 관련해 하신 약속을 잘 알고 있다”고 지원 의사를 내비쳤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文 극찬한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 상징’ 안동 임청각은?

    文 극찬한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 상징’ 안동 임청각은?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경북 안동 임청각을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말하면서 임청각(臨淸閣·보물 182호)의 역사가 재조명 되고 있다.안동시 법흥동 법흥교 옆에 있는 임청각은 세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이원(李原)의 여섯째 아들 영산현감 이중공과 형조좌랑을 역임한 이중공의 셋째 아들 이명이 1519년 건축한 조선 중기 별당형 정자다. 영남산 기슭 비탈진 경사면을 이용해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고 99칸을 배치한 살림집으로 지었다. 대청에 걸려있는 현판은 퇴계 선생 친필로 알려졌다.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임청각이지만 정작 주목받아야 할 이유는 따로 있다. 대한민국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1858∼1932) 선생의 생가이며 석주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한 고성 이씨 가문의 종택이다. 이 중에는 석주 선생의 두 동생과 아들, 손자, 조카 등이 있다.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1월 식솔들을 이끌고 임청각을 떠나 기약 없는 만주 망명길에 오른 석주 선생은 독립운동에 여생을 바쳤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은 물론이고 99칸짜리 임청각까지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다. 일제는 독립운동 성지나 다름없는 임청각의 정기를 끊으려고 마당 한가운데로 중앙선 철길을 내고 행랑채와 부속건물 등 50여 칸을 뜯어내 오늘의 어색한 모습을 갖게 됐다. 선생이 서간도에서 독립단체 통합 노력에 주력하다가 1932년 유명을 달리하자 가문도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석주 선생의 손부 허은(1907∼1997)여사 슬하 7남매 중 장남은 일본강점기 경찰에 끌려가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고 둘째, 셋째, 넷째는 실종되거나 사고로 숨지는 등 대를 잇는데도 상당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시인 이육사의 형제들은 어려서부터 종고모 집인 임청각에 드나들며 함께 지내기도 했다고 임청각 웹사이트는 소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임청각을 방문해 “안동이나 유교라고 하면 보수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안동지역에서는 독립운동이 활발했다”면서 “(이들은)혁신 유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호남 출신인 이낙연 국무총리는 영남과 유교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영남 유림 뿌리를 찾아 경의를 표하기 위해 지난 10일 임청각을 찾아 “대통령께 경북으로 휴가를 간다고 보고드렸더니 ‘안동으로 가보라’고 말씀하셨다”며 “제 발로 왔지만, 대통령 분부를 받고 온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한편 2020년까지 도담∼영천 145.1㎞ 구간의 중앙선을 복선화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현재 철로와 약 7m 거리에 있는 임청각은 철로에서 6㎞ 밖으로 이격된다. 중앙선 신선이 놓이게 되면 임청각을 관통하고 있는 철로는 더는 사용하지 않는 폐선이 된다. 이에 따라 폐선을 걷어내면 임청각을 온전히 복원하는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문›문재인 대통령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

    ‹전문›문재인 대통령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촛불혁명으로 국민주권의 시대가 열리고첫 번째 맞는 광복절입니다.오늘, 그 의미가 유달리 깊게 다가옵니다. 국민주권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처음 사용한 말이 아닙니다.백 년 전인 1917년 7월, 독립운동가 14인이 상해에서 발표한‘대동단결 선언’은 국민주권을 독립운동의 이념으로 천명했습니다.경술국치는 국권을 상실한 날이 아니라오히려 국민주권이 발생한 날이라고 선언하며,국민주권에 입각한 임시정부 수립을 제창했습니다.마침내 1919년 3월, 이념과 계급과 지역을 초월한전 민족적 항일독립운동을 거쳐,이 선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국민주권은 임시정부 수립을 통한 대한민국 건국의 이념이 되었고,오늘 우리는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그렇게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세우려는 선대들의 염원은백 년의 시간을 이어왔고,드디어 촛불을 든 국민들의 실천이 되었습니다. 광복은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이름 석 자까지 모든 것을 빼앗기고도자유와 독립의 열망을 지켜낸 삼천만이 되찾은 것입니다.민족의 자주독립에 생을 바친 선열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독립운동을 위해 떠나는 자식의 옷을 기운 어머니도,일제의 눈을 피해 야학에서 모국어를 가르친 선생님도,우리의 전통을 지켜내고 쌈짓돈을 보탠 분들도,모두가 광복을 만든 주인공입니다. 광복은 항일의병에서 광복군까지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흘린 피의 대가였습니다.직업도, 성별도, 나이의 구분도 없었습니다.의열단원이며 몽골의 전염병을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 선생,간도참변 취재 중 실종된 동아일보 기자 장덕준 선생,무장독립단체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과학으로 민족의 힘을 키우고자 했던 과학자 김용관 선생,독립군 결사대 단원이었던 영화감독 나운규 선생,우리에게는 너무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의 무대도 한반도만이 아니었습니다.1919년 3월 1일 연해주와 만주, 미주와 아시아 곳곳에서도한 목소리로 대한독립의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항일독립운동의 이 모든 빛나는 장면들이지난 겨울 전국 방방곡곡에서,그리고 우리 동포들이 있는 세계 곳곳에서, 촛불로 살아났습니다.우리 국민이 높이든 촛불은 독립운동 정신의 계승입니다. 위대한 독립운동의 정신은민주화와 경제 발전으로 되살아나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그 과정에서 희생하고 땀 흘린 모든 분들,그 한 분 한 분 모두가 오늘 이 나라를 세운 공헌자입니다. 오늘 저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그리고 저마다의 항일로 암흑의 시대를 이겨낸 모든 분들께,또 촛불로 새 시대를 열어주신 국민들께,다시금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저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이 날이민족과 나라 앞에 닥친 어려움과 위기에 맞서는용기와 지혜를 되새기는 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존경하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경북 안동에 임청각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습니다.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입니다.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대한민국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습니다.아흔 아홉 칸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지금도 반 토막이 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이상룡 선생의 손자, 손녀는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고아원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임청각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역사를 잃으면 뿌리를 잃는 것입니다.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영웅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명예뿐인 보훈에 머물지도 말아야 합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합니다.친일 부역자와 독립운동가의 처지가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더라는 경험이불의와의 타협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만들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을 모시는 국가의 자세를완전히 새롭게 하겠습니다.최고의 존경과 예의로 보답하겠습니다.독립운동가의 3대까지 예우하고자녀와 손자녀 전원의 생활안정을 지원해서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겠습니다. 독립운동의 공적을 후손들이 기억하기 위해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하겠습니다.임청각처럼 독립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유적지는모두 찾아내겠습니다.잊혀진 독립운동가를 끝까지 발굴하고,해외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보전하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정부는대한민국 보훈의 기틀을 완전히 새롭게 세우고자 합니다.대한민국은 나라의 이름을 지키고, 나라를 되찾고,나라의 부름에 기꺼이 응답한 분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서 있습니다.그 희생과 헌신에 제대로 보답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젊음을 나라에 바치고 이제 고령이 되신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겠습니다.살아계시는 동안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의 치료를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참전명예수당도 인상하겠습니다. 유공자 어르신 마지막 한 분까지대한민국의 품이 따뜻하고 영광스러웠다고 느끼시게 하겠습니다.순직 군인과 경찰, 소방공무원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확대할 것입니다.그것이 우리 모두의 자긍심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보훈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확립하겠습니다.애국의 출발점이 보훈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지난 역사에서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해국민들이 감수해야 했던 고통과도 마주해야 합니다. 광복 70년이 지나도록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고통이 지속되고 있습니다.그동안 강제동원의 실상이 부분적으로 밝혀졌지만아직 그 피해의 규모가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밝혀진 사실들은 그것대로 풀어나가고,미흡한 부분은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마저 해결해야 합니다.앞으로 남북관계가 풀리면남북이 공동으로 강제동원 피해 실태조사를 하는 것도 검토할 것입니다.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이 많습니다.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할 것입니다.지금도 시베리아와 사할린 등 곳곳에강제이주와 동원이 남긴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그 분들과도 동포의 정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 동포 여러분, 오늘 광복절을 맞아한반도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군사적 긴장의 고조가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분단은 냉전의 틈바구니 속에서우리 힘으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없었던식민지시대가 남긴 불행한 유산입니다.그러나 이제 우리는 스스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국력이 커졌습니다.한반도의 평화도, 분단 극복도,우리가 우리 힘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오늘날 한반도의 시대적 소명은 두말 할 것 없이 평화입니다.한반도 평화 정착을 통한 분단 극복이야말로광복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길입니다. 평화는 또한 당면한 우리의 생존 전략입니다.안보도, 경제도, 성장도, 번영도평화 없이는 미래를 담보하지 못합니다.평화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한반도에 평화가 없으면 동북아에 평화가 없고,동북아에 평화가 없으면 세계의 평화가 깨집니다.지금 세계는 두려움 속에서 그 분명한 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은 명확합니다.전 세계와 함께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입니다.정부는 현재의 안보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안보위기를 타개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의 안보를 동맹국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의 원칙은 확고합니다.대한민국의 국익이 최우선이고 정의입니다.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은 안 됩니다.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입니다.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문제는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이 점에서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평화적 해결 원칙이 흔들리지 않도록외교적 노력을 한층 강화할 것입니다.국방력이 뒷받침되는 굳건한 평화를 위해우리 군을 더 강하게, 더 믿음직스럽게 혁신하여강한 방위력을 구축할 것입니다.한편으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군사적 대화의 문도 열어놓을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대화는 선후의 문제가 아닙니다.북핵문제의 역사는 제재와 대화가 함께 갈 때문제해결의 단초가 열렸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시험을 유예하거나 핵실험 중단을 천명했던 시기는예외 없이 남북관계가 좋은 시기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그럴 때 북미, 북일 간 대화도 촉진되었고,동북아 다자외교도 활발했습니다.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한반도 문제의 주인은 우리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북핵문제 해결은 핵 동결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적어도 북한이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해야대화의 여건이 갖춰질 수 있습니다.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의 목적도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지군사적 긴장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이 점에서도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 당국에 촉구합니다.국제적인 협력과 상생 없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이대로 간다면 북한에게는 국제적 고립과 어두운 미래가 있을 뿐입니다.수많은 주민들의 생존과 한반도 전체를 어려움에 빠뜨리게 됩니다.우리 역시 원하지 않더라도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더욱 높여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즉각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핵 없이도 북한의 안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우리가 돕고 만들어 가겠습니다.미국과 주변 국가들도 도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천명합니다.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습니다.흡수통일을 추진하지도 않을 것이고인위적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통일은 민족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합의하는‘평화적,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북한이 기존의 남북합의의 상호이행을 약속한다면,우리는 정부가 바뀌어도 대북정책이 달라지지 않도록,국회의 의결을 거쳐 그 합의를 제도화할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밝힌 바 있습니다.남북간의 경제협력과 동북아 경제협력은남북공동의 번영을 가져오고, 군사적 대립을 완화시킬 것입니다.경제협력의 과정에서 북한은핵무기를 갖지 않아도 자신들의 안보가 보장된다는 사실을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쉬운 일부터 시작할 것을 다시 한 번 북한에 제안합니다.이산가족 문제와 같은 인도적 협력을 하루빨리 재개해야 합니다.이 분들의 한을 풀어드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이산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 성묘에 대한 조속한 호응을 촉구합니다. 다가오는 평창 동계올림픽도남북이 평화의 길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야 합니다.남북대화의 기회로 삼고,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합니다.동북아 지역에서 연이어 개최되는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2020년의 도쿄 하계올림픽,2022년의 베이징 동계올림픽은한반도와 함께 동북아의 평화와 경제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절호의 기회입니다.저는 동북아의 모든 지도자들에게이 기회를 살려나가기 위해 머리를 맞댈 것을 제안합니다.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은 역내 안보와 경제협력을 제도화하면서공동의 책임을 나누는 노력을 함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국민 여러분께서도 뜻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우리는한일관계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한일관계도 이제 양자관계를 넘어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함께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과거사와 역사문제가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지속적으로 발목 잡는 것은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새로운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셔틀외교를 포함한 다양한 교류를 확대해 갈 것입니다.당면한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서도양국 간의 협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한일관계의 미래를 중시한다고 해서역사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오히려 역사문제를 제대로 매듭지을 때양국 간의 신뢰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그동안 일본의 많은 정치인과 지식인들이양국 간의 과거와 일본의 책임을 직시하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그 노력들이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이러한 역사인식이 일본의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바뀌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한일관계의 걸림돌은 과거사 그 자체가 아니라역사문제를 대하는 일본정부의 인식의 부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한일 간의 역사문제 해결에는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민적 합의에 기한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약속이라는국제사회의 원칙이 있습니다.우리 정부는 이 원칙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일본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 동포 여러분, 2년 후 2019년은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은,외세에 의해 분단된 민족이 하나가 되는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우리에게 진정한 보훈은,선열들이 건국의 이념으로 삼은 국민주권을 실현하여국민이 주인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준비합시다.그 과정에서, 치유와 화해, 통합을 향해지난 한 세기의 역사를 결산하는 일도 가능할 것입니다. 국민주권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보수, 진보의 구분이 무의미했듯이우리 근현대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세력으로 나누는 것도이제 뛰어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역사의 유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모든 역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며,이 점에서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온 시대를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누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 없는 일입니다.대한민국 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시김대중, 노무현만이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의 역사 속에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치유와 화해, 통합을 바라는 마음으로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의 가치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이제 지난 백년의 역사를 결산하고, 새로운 백년을 위해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정부의 새로운 정책기조도 여기에 맞춰져 있습니다.보수나 진보 또는 정파의 시각을 넘어서새로운 100년의 준비에 다함께 동참해 주실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우리 다함께 선언합시다.우리 앞에 수많은 도전이 밀려오고 있지만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헤쳐 나가는 일은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세계에서 최고라고 당당히 외칩시다.담대하게, 자신 있게 새로운 도전을 맞이합시다.언제나 그랬듯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이겨 나갑시다.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완성합시다.다시 한 번 우리의 저력을 확인합시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독립유공자들께깊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독립투사들의 위대함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독립투사들의 위대함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이곳에서 할아버지께서 큰 고초를 겪으셨다니 후손으로서 다시 한번 일제의 억압에 대한 분노를 느끼며 할아버지를 포함한 우리 독립투사들의 위대함에 고개가 숙여집니다.”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의 친손자인 로버트 안(71)은 14일 서울 서대문역사문화공원(옛 서대문형무소 터)을 둘러본 뒤 잠시 고개를 숙여 상념에 잠겼다. 할아버지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까 이곳저곳 주의 깊게 살피기도 했다. 도산의 둘째 아들 안필선씨의 아들인 로버트 안은 한국의 발전상에 큰 감동을 받은 듯했다. 그는 “강남 도산공원에 처음 왔을 때는 흙밖에 없었다”면서 “오늘 이 시간 강남은 한국이 자랑하는 동네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LG TV로 한국 영화를 보고, 삼성 스토브로 갈비도 해먹는다”면서 “한국 사람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해서 오늘의 이 나라를 건설했다. 정말 겸손한 마음이 든다”고 덧붙였다. 친일파 청산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로버트 안은 “아는 바 없다”고 일축했다.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의 고초에 대해서도 겸손하게 손사래 쳤다. 그는 “미국 땅에 오셨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통해서 빼앗긴 조국을 찾기 위해 고생하셨지 저는 고생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청와대 오찬행사에서 독립유공자 후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을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서는 “많이 고무됐다”면서 “문 대통령의 인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로버트 안은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하와이에서 자랐으며 하와이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3년 동안 교사로 일하다 미 국무부에 들어가 34년간 근무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로버트 안 부부는 국가보훈처가 광복절 72주년을 계기로 마련한 ‘해외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특별초청’에 응하면서 44년 만에 방한했다. 도산은 독립협회, 신민회, 흥사단을 조직해 구국운동을 벌였으며 동우회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 간질환이 악화돼 1937년 11월 병보석으로 출소한 뒤 4개월 만에 서거했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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