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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주 바뀌는 정책, 노인 등 알기 어려워” “2022년부터 알림 서비스”

    “자주 바뀌는 정책, 노인 등 알기 어려워” “2022년부터 알림 서비스”

    90년대생들은 ‘정부혁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22~24일 개최된 ‘제1회 정부혁신박람회’의 개막식 행사인 ‘응답하라 1990’에서 90년대생 3명은 ‘비효율적인 업무처리의 변화’, ‘서류 간소화’, ‘복지사각지대 공백 해소’ 등을 개선 과제로 제시했다. 이날 행사는 ‘디지털 전환의 시대, 정부는 어디로 나가야 하며, 무엇을 혁신해야 할까?’라는 주제로 미래의 주역인 90년대생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공공서비스의 불합리한 점들을 솔직하게 말하고 멘토단의 해결 방안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 행정안전부 공무원 문소영(94년생·여)씨, 직장인 강보성(90년생)씨, 대학생 서효진(99년생·여)씨의 문제 제기와 멘토단의 답변을 재구성했다. 멘토단으로는 정부혁신컨설팅 단장인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 최두옥 스마트워크 연구개발 그룹 ‘베타랩’ 대표, 90년대생인 탤런트 김시은씨가 참여했다.●새내기 공무원 “매주 업무보고 작성에만 이틀” 문소영: 한 달 된 새내기 공무원이다. 매주 주간 업무보고를 작성하는데 팀마다 별도의 내용을 작성하다 보니 이것들을 취합하는데만 시간이 이틀 정도 소요된다. 오래 걸릴 때는 사흘이 걸린다. 팀마다 공유 문서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동시에 확인이 가능하고 수정까지 할 수 있다. 취합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공무원 메신저도 있지만 잘 활용하지는 않는다. 대학교 때 팀 프로젝트를 하면 공유 문서 프로그램을 항상 사용했는데 부처에도 적용하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보고서 작성자부터 팀장, 과장, 국장, 실장, 차관, 장관까지 보고 단계가 너무 길어서 비효율적이다. 멘토단: 우선 전자결재로 하면 보고 대기 시간은 줄일 수 있다. 공유 문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건 보안 측면에서 고려할 점이 있지만 사실 모든 문서들의 보안이 중요한 건 아니다. 그런 부분은 잘 조정해서 자료 취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공무원들이 남은 시간을 활용해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일하는 방식이 바뀜에 따라 조직에 협업 문화 정착이 가능하다(최 대표). 역시 민감한 것은 중요한 문서가 노출됐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역설적인 것은 조직 운영성 제고를 위해 투명성을 높이면 오히려 생산성이 낮아진다. 협업의 가치는 높이되 제도적으로 보완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오 교수).●새내기 직장인 “대출 문서 70장… 간소화 절실” 강보성: 90년생 새내기 직장인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고 은행에 갔다. 그런데 대출에 필요한 서류가 너무나 많더라. 은행 측에서 설명 의무를 제대로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들도 적지 않고, 내가 서명한 문서가 70장이 넘더라. 팔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은행에서 정확히 이름도 모르는 문서들을 이해도 하지 못한 채 서명을 하며 3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내가 뭐하나’ 싶더라. 복잡한 서류들을 간소화시킬 수는 없을까. 멘토단: 현재 행정정보 공동이용 서비스가 있다. 정부 부처나 지자체 간에 정보 공유를 하는 것인데 아직 모든 기관들이 다 연결되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본인이 동의를 해야 부처 간에 정보 공유가 가능하다. 그리고 앞으로는 본인이 필요한 민원서류를 스마트폰에 저장하는 등 전자지갑화해서 갖고 다닐 수 있게 된다. 연말부터 주민등록 등·초본을 전자증명서로 시범 발급하고 2021년까지 증명서·확인서 300종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서비스인 ‘정부24’ 애플리케이션(앱)뿐 아니라 은행, 보험사 등 금융기관 앱에서도 각종 증명서를 전자증명서 형태로 내려받을 수 있게 된다(오 교수).●99년생 대학생 “복지 사각지대 공백 해소해야” 서효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많은 곳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내가 만나는 국가 복지혜택의 대상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있는지 모르더라. 초등학생 대상으로 봉사활동 중인데 한 초등학생이 방과후 서비스 대상자임에도 오후 시간 내내 혼자 시간을 보낸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한 어르신도 복지 급여를 스스로 신청하지 않아서 더 힘들게 살고 있다. 사실 이런 분들은 시시각각 바뀌는 정책, 복지혜택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인터넷도 익숙지 않고 말이다. 디지털 정부로서 복지혜택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정보를 더 편리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멘토단: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면 주인공의 할머니가 요양원을 갈 수 있는데 못 가고, 그의 손자 역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가 사는 곳에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거주하는데 대부분 혜택을 잘 모른다(김씨). 사실 정부는 큰 틀에서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나 본인이 자격이 됨에도 못받는 분들이 있다. 2022년까지 정부가 혜택 대상자 본인이 스스로 이를 증명하지 않아도 알려주는 서비스를 구축한다고 하니까 이후에는 개선될 것이라 본다(오 교수). 복지 정책이 360여개라고 한다. 부정수급자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받아야 할 사람이 혜택을 못 받고 있다면 이를 개선해야 한다(최 대표).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이것 좀 바꿨으면...’ 90년대생이 바라는 정부혁신은?

    ‘이것 좀 바꿨으면...’ 90년대생이 바라는 정부혁신은?

    90년대생들은 ‘정부혁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22일 ‘제1회 정부혁신박람회’의 개막식 행사인 ‘응답하라 1990’에서 90년대생 3명은 ‘비효율적인 업무처리의 변화’, ‘서류 간소화’, ‘사각지대 공백 해소’ 등을 개선 과제로 제시했다. 이날 행사는 ‘디지털 전환의 시대, 정부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며, 무엇을 혁신해야 할까?’라는 주제로 미래의 주역인 90년대생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공공서비스의 개선점들을 솔직하게 말하고 멘토단인 청춘 고민 해결사들의 해결방안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 행정안전부 공무원 문소영(94년생·여)씨, 직장인 강보성(90년생)씨, 대학생 서효진(99년생·여)씨의 말과 멘토단의 답변을 재구성했다. 멘토단으로는 정부혁신컨설팅 단장인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 최두옥 스마트워크 연구개발 그룹 ‘베타랩’ 대표, 90년대생인 탤런트 김시은씨가 참여했다.“매주 업무보고만 꼬박 이틀 걸려요!” 문소영씨: 한달 된 새내기 공무원 문소영이다. 우리 부처에서 매주 주간업무보고를 작성하는데 팀마다 별도의 내용을 작성하다보니 이것들을 취합하는데만 시간이 이틀 정도 소요된다. 오래 걸릴 때는 사흘이 걸린다. 팀마다 구글 프로그램을 이용해 문서를 작성하면 동시에 확인이 가능하고 수정까지 된다. 취합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메신저 기능도 있지만 잘 활용하지는 않는다. 공무원 되기 전 대학교 때 팀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공유문서를 항상 사용했는데 부처에도 적용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보고서 작성자부터 팀장, 과장, 국장, 실장, 차관, 장관까지 보고 단계가 너무 길어서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멘토단: 우선 전자 결제로 하면 보고에 따른 대기시간은 줄일 수 있을 거 같다. 보안 측면에서 정부 문서를 다룰 때 공유 문서 프로그램으로 사용하는 건 고려할 점이 있지만 사실 모든 문서들의 보안이 중요한 건 아니다. 그런 부분은 잘 조정해서 자료 취합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줄일 필요가 있다. 공무원들이 남은 시간을 활용해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일하는 방식이 바뀜에 따라 조직에 협업 문화 정착이 가능하다.(최 대표) 역시 민감한 것은 중요한 문서가 노출됐을 때, 미리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역설적인 것은 조직 운영성 제고를 위해 투명성을 높이면 오히려 생산성이 낮아지는 부분이 있다. 협업의 가치는 높이되 제도적으로 보완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오 교수)“대출한 번 받는데 문서만 70장” 강보성씨: 90년생 새내기 직장인 강보성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연고가 아닌 곳에 직장을 갖다 보니 집을 구하기 위해 은행에 가게 됐다. 그런데 대출에 필요한 서류가 너무나 많아 놀랐다. 은행 측에서 설명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것들 하나하나 서명을 하다보니까 70장이 넘는 곳에 내가 서명을 했더라. 팔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은행에서 정확한 명칭도 모르는 문서들을 이해도 하지 못한 채 서명을 하며 3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뭘하나’, ‘빨리 끝나면 좋겠다’ 같은 생각이 들더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대출절차 상에 필요한 복잡한 서류들을 좀더 간소화 시킬 수는 없을까. 멘토단: 혁신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국민의 불편함을 제거하는 것이다. 현재 행정정보 공동이용 서비스가 있다. 정부 부처나 지자체 간에 정보공유를 하는 것인데 아직 모든 기관들이 다 연결되지 않은 한계가 있다. 그렇다보니 본인이 동의를 해야 부처 간에 정보 공유가 가능하다. 이런 부분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본인이 필요한 민원서류를 전자지갑화 해서 갖고 다닐 수 있게 된다. 연말부터 주민등록 등·초본을 전자증명서로 시범 발급하고 2021년까지 증명서·확인서 300종까지 확대할 계획인데 정부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서비스인 ‘정부24’ 애플리케이션(앱)뿐 아니라 은행, 보험사 등 금융기관 앱에서도 각종 증명서를 전자증명서 형태로 내려받을 수 있게 한다.(오 교수)“그 복지서비스, 내 것 맞나요?” 서효진씨: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많은 곳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는데 국가 복지혜택의 대상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있는지 모르더라. 구체적인 사례로 초등학생에게 봉사활동을 하는 중인데 어느 한 초등학생이 방과후 서비스 대상임에도 오후 시간 내내 혼자 시간을 보낸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한 어르신도 복지 급여를 스스로 신청하지 않아서 더 힘들게 살고 있다. 사실 이런 분들은 사회적 흐름에 따라 바뀌는 정책, 복지혜택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인터넷도 익숙지 않고 말이다. 디지털 정부로서 복지혜택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정보를 더 편리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멘토단: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면 한 할머니가 요양원을 갈수 있는데 못 가고, 그의 손자 역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가 사는 곳에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거주하는데 대부분 혜택에 대해 잘 모른다.(김씨) 사실 정부는 큰 틀에서 보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 중이나 본인이 자격이 됨에도 못받는 분들이 있다. 2022년까지 정부가 혜택 대상자 본인이 스스로 이를 증명하지 않아도 알려주는 서비스를 구축한다고 하니까 이후에는 개선될 것이라 본다.(오 교수) 복지 정책이 360여개라고 한다. 부정수급자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받을 사람이 못 받는다면 이를 개선해 더 많은 사람이 혜택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최 대표)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백사 이항복의 후손, 400년간 지켜온 문화재 기증

    백사 이항복의 후손, 400년간 지켜온 문화재 기증

    국립중앙박물관은 오성부원군 백사 이항복(1556∼1618) 15대 종손인 이근형씨에게서 종가가 400년간 간직한 문화재 17점을 기증받았다고 21일 밝혔다. 이항복 종가가 전달한 유물 중 백사 관련 자료는 모두 6점이다. 특히 백사가 1604년 받은 ‘호성공신 교서’는 보물급 가치가 있다고 중앙박물관은 강조했다. 교서는 신하가 공을 세웠을 때 왕이 주는 이름과 업적, 특권, 명단을 적은 문서다. 호성공신 교서는 임진왜란 때 선조를 모시고 의주까지 호종하는 데에 공을 세운 신하 86명에게 등급을 나눠 하사했다. 이 중 1등 공신은 이항복과 정곤수 두 명뿐이며, 현존 호성공신 1등 교서로 유일하다. 가로 271㎝, 세로 37㎝ 크기로, 명필로 알려진 한호가 글씨를 썼다. 이항복 후손들이 기증한 초상화는 모두 2점이다. 이항복이 호성공신과 위성공신이 됐을 때 받은 초상화가 낡자 18세기에 베껴 그린 후모본으로 보인다. 중앙박물관 측은 “서울대 박물관에 있는 ‘이항복 초상화 초본’과 얼굴 표현이 유사하다. 서울대 작품은 이항복이 57세 때인 1613년 초상화 초본(밑그림)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항복이 손자를 위해 직접 쓴 천자문은 손 글씨 천자문 가운데 가장 이르다. 정자체로 쓴 뒤 “정미년(1607) 4월 손자 시중에게 써 준다. 오십 먹은 노인이 땀을 닦고 고통을 참으며 쓴 것이니 함부로 다뤄서 이 노인의 뜻을 저버리지 말지어다”라고 당부를 남겼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화마로부터 코알라 구한 할머니 “손자 이름 따 루이스, 잘 회복해”

    화마로부터 코알라 구한 할머니 “손자 이름 따 루이스, 잘 회복해”

    불타는 나무 위에 올라가 어쩔줄 몰라하는 코알라를 구하려고 불길 속에 뛰어든 호주 여성이 코알라가 치료받는 병원을 찾아 다시 만났다. 뉴사우스웨일스(NSW)주 롱플랫에 사는 토니 도허티란 여성으로 손주를 일곱이나 둔 할머니다. 그녀는 지난 18일 자동차로 근처 도로를 달리다 혼비백산한 코알라가 오히려 불길이 번지는 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차에서 내려 달려갔다. 셔츠를 벗어 코알라의 등을 감싼 뒤 안고서 불길을 피해 달아났다. 동영상만 보면 느껴지지 않지만 그녀는 불길 때문에 무척 뜨거웠다고 털어놓는다. 근처 할아버지로부터 물통을 건네 받아 화상에 신음하는 코알라의 몸에 물을 뿌려주고 목을 축이게 한 뒤 담요로 감쌌다. 코알라가 통증 때문에 외마디 신음을 내뱉는 모습은 기술적으로는 멸종된 것으로 여겨지는 이 종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이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20일 공개되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다. 도허티는 21일 이 코알라가 입원해 있는 포트 매쿼리 코알라병원을 찾아 잘 지내는지 살펴봤다. 그녀는 손자 이름을 따 12살 정도 된 수컷 코알라의 이름을 루이스로 붙여줬다. 그녀는 현지 9뉴스 인터뷰를 통해 “그저 본능에 따른 것이었다. 우리가 루이스를 나무에서 내려주지 않으면 불길 속에 갇히게 될 것이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병원 대변인은 “루이스의 상태는 여전히 위중하며 회복 가능성은 50-50인 상태다. 다리들이 완전히 탔고 가슴과 배도 그을렸다. 붕대를 감고 있고 항생제도 맞고 아직도 보살핌을 받아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19일 아침 유칼립투스 가지를 먹는 등 원기를 되찾고 있지만 아직도 화상 치료 등을 받느라 힘겨워한다고 이 병원에서 일하는 리지 펄은 말했다. 이번 화마의 여파로 350마리 정도의 코알라가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루이스는 워낙 화상 정도가 심해 야생으로 돌려보내기가 힘들어 계속 병원이나 보호소에서 지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야후! 나우는 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동백꽃 필 무렵’ 이정은 모자에 담긴 이토록 슬픈 이야기 [SSEN리뷰]

    ‘동백꽃 필 무렵’ 이정은 모자에 담긴 이토록 슬픈 이야기 [SSEN리뷰]

    “엄마 이 모자만 벗자” ‘동백꽃 필 무렵’ 정숙(이정은)이 손자 필구(김강훈)의 야구 경기 응원을 가는 길에 썼던 이 촌스러운 모자. 방송 당시 지나쳤던 이 분홍색 모자에는 딸 공효진(동백 역)을 향한 그리움, 사무침, 미안함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었다.‘동백꽃 필 무렵’ 공효진이 기억하지 못했던 이정은의 마지막 부탁이 있었다. 돈을 벌어올 테니 보육원에서 딱 1년만 기다려 달라는 것. 눈물을 쏙 빼놓은 엄마의 진심에 전국 가구 시청률은 18.1%, 20.4%를 기록하며 전채널 수목극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2049 수도권 타깃 시청률은 9.9%, 11.5%를 기록했다. (닐슨코리아 제공) 지난 20일 방송된 KBS 2TV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극본 임상춘, 연출 차영훈, 강민경, 제작 팬엔터테인먼트)에서 동백은 연이은 이별에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고, 엄마 정숙(이정은)만큼은 자신을 떠나지 말아 달라 간절히 부탁했다. 자신을 버리기 전까지의 7년, 그리고 돌아와 3개월, 정숙은 동백에게 ‘7년 3개월짜리 엄마’였기 때문. 엄마 없이 보낸 세월을 고깟 보험금으로 퉁칠 수 없었던 동백은 자신의 신장으로 엄마가 수술을 받고 오래오래 옆에 있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정숙도 완강했다. 그동안 해준 것 하나 없는데, 자식의 신장마저 떼어 받기엔 너무도 염치가 없었다. 그렇게 애초부터 죽을 날을 받아 놓고, 자식을 보듬어 주기 위해 찾아왔던 정숙. 그런데 그 3개월간 보듬을 받은 건 도리어 자신이었고, 그 따뜻함에 자꾸만 더 살고 싶어졌다. 그 간절한 마음을 단념시킨 건 주치의(홍서준)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이었다. 정숙의 병은 유전이라 동백 역시 50%의 확률로 정숙과 같은 병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사람의 피를 다 뺀 후 갈아서 넣는 투석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잘 알고 있던 정숙은 “나는 그냥 내 딸 인생에 재앙이네요”라며 절망했다. 그리곤 동백을 떠나리라 다짐했다. 속도 좋은 동백이 자꾸만 자신의 신장을 떼어주겠다며 엄마를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했기 때문. 아니나 다를까, 유전병의 위험이 있다는 사실에도 동백은 “그냥 할래요”라며 신장 이식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여태껏 자신의 불운은 이미 다 썼고, 이제 행운만 받아낼 차례였기에 “그깟 오십 프로, 제가 이겨요”라며 자신한 것. 그렇게 행운이 오리라 철석같이 믿었는데, 병실로 돌아와 보니 정숙은 사라졌다. 심지어 투석도 받지 않은 상태. 당장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던 수치에 동백은 헤어진 용식(강하늘)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를 찾아 달라 애원했다. 그러나 용식이 정숙을 찾았을 땐, 정숙은 모텔 방 침대에 홀로 누워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그 곁에 놓여있던 정숙의 사망 보험금과 편지 한 통은 슬픔을 배가시켰다. 그 편지 속에는 정숙의 독살스러웠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 가정 폭력 때문에 어린 동백을 안고 무일푼으로 집을 뛰쳐나온 정숙, 애 딸린 여자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쪽방 딸린 술집에서 주방일을 돕는 것뿐이었다. 그곳에서 ‘아빠’도 배우지 못한 동백이 ‘오빠’를 배우고, 술집 여자 취급을 받게 되자 엄마의 마음은 썩어 문드러져갔다. 동백을 보육원에 ‘버린’ 이유도 그래서였다. 그래야 항상 배곯아 있던 동백이 배불리 밥을 먹으며 학교도 다닐 수 있었기 때문. 정숙은 돈을 벌어 올 테니 1년만 기다리라 부탁했다. 그러나 이 중요한 말을 잊은 동백은 미국으로 입양을 가게 됐고, 그렇게 두 모녀는 엇갈리게 됐다. 정숙은 동백이를 입양한 부모를 찾아가 감사의 마음으로 분홍색 모자를 전했지만, 이내 동백이가 파양된 사실을 알게 분홍색 모자를 다시 가져왔다. 동백이 있으나, 없으나 지난 34년간 동백을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한 정숙. ‘자신을 버린 엄마’ 때문에 평생이 외로웠던 동백에게 “허기지지 말고, 불안해 말고, 훨훨 살아. 훨훨”이라며 엄마의 마음이 온전히 담긴 편지를 남겼다. 안방극장에 애절한 눈물을 몰고 온 동백과 정숙 모녀는 이렇게 헤어지고 마는 것인지, 그 마지막 이야기에 관심이 집중된다. 한편, 연쇄살인마 까불이의 범행동기가 드러났다. 바로 철물점을 운영하는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들의 태도. 자신의 기름때 낀 손톱을 경멸하고, 땀자국을 멸시하고, ‘똥파리’ 취급해 살인을 저질렀던 것. 까불이는 열등감이 만들어낸 괴물이었다는 사실에 시청자들 역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동백꽃 필 무렵’ 최종회는 오늘(21일) 목요일 밤 10분 앞당겨진 9시 50분에 KBS 2TV에서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문화마당] 부모님의 가심비, 가인이어라!/이은선 소설가

    [문화마당] 부모님의 가심비, 가인이어라!/이은선 소설가

    “송가인이 나오냐? 아빠는 오케이!” 가족 대화의 난장이 펼쳐진 채팅방, 아빠의 답변에 나도 모르게 크게 웃었다. “안 갈겨, 절대!”를 반복하던 엄마의 톡이 “그럼 한 장만 끊어!”로 바뀌었고, 콘서트 표를 예매하려던 사위는 매우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내친김에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표가 생각보다 안 비싸다”, “VIP는 이미 매진이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대동강에 한이 흐르고, 영동에는 부르스를 추는 사람이 넘쳐났다는 뜬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곡이라고도 했다. 안 간다고 할 때와는 전혀 딴판인 말을 들으며 나는 순식간에 엄마 아빠의 옛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단칸방에 살면서 월부로 전축을 들여놓고 음악을 듣던 때의 이야기였다. 엄마는 내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을 때 ‘내 이야기를 쓰면 소설책 열 권은 나온다’며 꼭 시댁 험담과 아빠에 대한 불만, 옆집 누가 바람나서 도망갔고 또 누가 보증 섰다 잘못됐는지 상세하게 전해 주며 결론을 맺었다. 정작 소설가는 난데, 엄마가 내 자랑을 할 적마다 에피소드들을 덧붙여 준 덕에 나는 나도 모르는 내 어린 시절도 갖게 됐다. 아빠는 딸이 작가가 된 기념으로 친목계원들에게 밥을 사러 다니며 2차로는 꼭 노래방을 갔다가 마이크를 남에게 넘기지 않아서 계원들에게 핀잔을 들었다. “소설은 길어서 어렵고 수상 소감만 읽어도 다 된다”던 엄마의 내 시상식 평가 이후로 십 년. 나는 이제 소설집 두 권을 출간한 작가가 됐고 우리 가족 총수에도 변화가 생겼다. 여전한 것이 있다면 엄마의 속내와는 다른 표현법, 그리고 여전히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과 한 이야기를 또 한다는 사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부모님이 가성비를 따지지 않는 대신 시간과 마음을 즐기는 사람이 됐다는 사실이 기쁘고도 뜨끔했다. 부모님의 시선이 삶의 애잔한 가성비에서 마음이 즐거운 가심비로 옮겨간 것만 알았지 진즉 문화생활을 하시게끔은 못했기 때문이었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이 한창일 때에도 ‘옛날 노래 듣는 부모님’만 생각했을 뿐, 이 정도로 열광하고 계실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엄마 아빠는 노래를 들으며 이미 당신들이 지나온 예전의 그 어느 때로 돌아가 있던 것이다. 나는 옛날 노래를 새롭게 불러 주는 그 멋진 가수들이 새삼스럽게 고마웠다. 자식들 최고의 효도는 나훈아 콘서트 표 예매라는데, 남편과 합세해 그 치열한 티케팅 열기에 동참할 다짐을 했다. 기꺼이 엄마 아빠가 지나온 시간 속으로 같이 들어갈 준비 자세다. 월부 전축을 들여놓은 단칸방에서 노래를 듣는 새댁인 엄마와 탄광차를 모느라 온몸이 시커멓던 아빠의 젊은 날이 ‘영동 부르스’ 속에, ‘한 많은 대동강’과 ‘단장의 미아리 고개’ 위에 다시 서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새댁과 새신랑이 어떤 맛이 조금 부족한 찌개를 수줍게 떠먹으며 부르던 그 노래 같은 이야기들이라니. 그것만큼은 엄마가 아무리 많이 되풀이해 내게 들려주더라도 전혀 지루해하지 않고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맞장구쳐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번 연말은 수원 월드컵경기장 밖에서 콘서트를 보고 나오는 부모님을 마중하며 맞이할 것이다. 한껏 상기된 표정의 부모님이 차에 올라 “송가인이 노래 좀 다시 틀어 봐라”고 하실 그 밤이 무사히 우리를 환영해 주었으면 좋겠다. 집에 돌아와 한 잔의 술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고, 졸리다고 떼쓰는 손자를 가운데 눕히고도 잠이 오지 않아 다시 부르는 한 자락의 노래 속으로 기꺼이 다 함께 건배. 콘서트에 반드시 앙코르가 따라오듯이, 내가 써 나갈 소설과 부모님의 옛날에도 보너스 트랙이 있다면 바로 이번 연말 콘서트 같은 날이 아닐까. 가인이어라!
  • 카카오, 카카오뱅크 최대 주주 등극

    카카오가 22일 한국투자금융지주(한투지주) 소유의 카카오뱅크 지분 16%를 사들여 지분율 34%로 카카오뱅크 최대주주에 오른다. 카카오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중 인터넷뱅킹 1호 최대주주뿐 아니라 은행 최대주주가 되는 첫 산업자본이 된다. 금융위원회는 20일 정례회의를 열고 한투지주가 카카오뱅크 지분 50% 중 29%를 손자회사인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 넘기는 방안을 승인했다. 이번 지분 매각은 카카오뱅크 설립 당시 한투지주가 ‘은산 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제한) 규제가 완화되면 카카오에 지분 16%를 매각하겠다’고 한 약정에 따른 것이다.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금융지주사는 자회사 지분의 50% 이상을 갖거나 5% 미만을 보유해야 한다. 이에 한투지주는 카카오에 매각할 16%를 뺀 34%의 카카오뱅크 지분 중 29%를 한투밸류자산운용에, 1주는 예스24에 넘기고 4.99%만 갖는다. 한투지주는 이날 입장문에서 “지분 조정이 완료된 후에도 한투지주와 한투밸류자산운용은 카카오뱅크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2대 주주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차명 주식 보유’ 코오롱 이웅열 명예회장 2심서 징역 1년 구형

    ‘차명 주식 보유’ 코오롱 이웅열 명예회장 2심서 징역 1년 구형

    상속받은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웅열(63)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에 대해 검찰이 항소심에서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구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이근수 부장판사)는 20일 이 명예회장의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위반 등 혐의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을 심리했다. 이 명예회장은 부친인 이동찬 명예회장이 자녀들에게 남긴 코오롱생명과학 주식 34만주를 차명으로 보유하면서 신고하지 않은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기소됐다. 또 대주주 양도소득세를 회피할 목적으로 2015∼2016년 차명주식 4만주를 차명 거래(금융실명법 위반)하고, 이 과정에서 주식 소유상황 변동을 보고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2016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을 위한 자료 제출 때 차명주식을 본인 보유분에 포함하지 않고 거짓으로 자료를 제출한 혐의(공정거래법 위반)도 있다. 앞서 1심은 이 명예회장에게 벌금 3억원을 선고했다. 검찰은 1심 양형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허위 공시를 하고 세금도 면탈했다. 피고인의 범행 횟수가 상당하고 중대한 범행”이라며 원심과 같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5000만원을 구형했다. 이 명예회장 측은 공소사실을 전부 인정하며 “이번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스럽다”며 “그룹 회장이 아닌 자연인으로서 다시 한번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최후 변론에서 밝혔다. 이 전 회장은 창업주 고 이원만 회장의 손자이자 고 이동찬 명예회장의 아들로 23년간 코오롱그룹을 이끌다 지난해 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배민아의 일상공감]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

    [배민아의 일상공감]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

    병세가 깊어진 엄마를 요양병원에 모신 뒤 호전을 바랐던 가족들의 실낱같은 기대는 결국 헛된 희망이었다. 입원하던 날 엄마는 병상의 다른 분들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아침이면 스스로 얼굴과 옷매무새를 단장하셨고, 화장실도 혼자 다니셨으며, 인지기능이 떨어지셨어도 도란도란 대화도 하셨고, 아빠의 팔에 의지해 산책도 하셨다. 그러나 치매와 복합 병증을 연로한 나이로 감당하기는 버거웠는지 하루가 다르게 컨디션은 저하됐다. 살이 빠져 헐거워진 틀니를 빼내니 입 모양이 변하셨고, 누워 계시는 시간이 많아 위생 차원에서 짧게 잘려진 머리카락, 기저귀까지 찬 엄마의 모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여느 중증 환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엄마의 변해 가는 모습이 낯설고 마음 불편했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건 모든 변화에 순종하고 어떤 상황에도 그저 내맡기는 엄마의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대화의 주제는 점차 한정되고 줄어들어 최근에는 엄마의 형제자매 관계를 알려 주거나 자녀와 손주들의 이름을 묻고 되새기는 정도의 1차원적인 대화만 되풀이했다. 갑작스런 쇼크나 또 다른 병증 치료로 상급 병원에 다녀오기도 여러 번. 그러다 최근 폐렴이 악화돼 집중치료실로 옮기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놀란 마음으로 가족들이 달려갔을 때 엄마는 눈도 뜨지 못하고 가쁜 숨만 몰아쉬셨으며, 의료진들은 가족들에게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얼떨결에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장면 속에 들어가 있었다. 엄마가 아프실 때부터 죽음이 남의 얘기가 아니라 곧 우리에게 닥칠 미래라는 걸 각오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되니 심장이 요동치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의식 없는 엄마 곁에서 무엇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여러 생각이 엉켜 복잡했지만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의식이 없는 엄마에게 말을 건네는 것도 어색했고, 행여 연결된 호스와 주사 줄에 방해라도 될까 손을 잡기도 안아 보기도 겁이 났다. 오래전 개인적인 관심으로 죽음준비교육에 관한 연구에 참여하면서 죽음 준비는 생전에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며 가치 있게 살다가 편안하고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가족의 임종을 지켜야 하는 지금 그 모든 주장들이 허공에서 무의미하게 흩어질 뿐이었다. 당황스러워하는 가족들과 달리 엄마는 어쩌면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평소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수차례 밝히셨고,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있음을 아셨을 때 며느리들과 딸들을 불러 간직하셨던 패물들을 친히 나눠 주셨다. 중환자 집중치료실로 옮기신 지 한 달째 엄마는 여전히 의식이 혼미한 채로 세상의 피로를 다 풀고 가시려는 양 곤히 주무시듯 누워 계신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은 차분해진 가족들도 서서히 이별을 준비하며 시시때때로 병상을 찾아 각자의 방법으로 사랑과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전한다. 부디 평소 엄마의 당부대로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의존하지 않고 큰 고통 없이 모두가 이별할 준비가 됐을 때 죽음을 두렵지 않게 받아들이기를 바랄 뿐이다. 야무지고 착한 딸로 여덟 남매들과 평생 돈독한 우애를 나누며 지내셨고, 아빠와 뜨겁게 멋진 사랑을 하셨으며, 네 자녀와 일곱 손주들까지 세상에 바로 서도록 키워 주셨고, 몫을 하는 사회인으로, 존경받는 교육자로, 신실한 신앙인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오셨으니 엄마의 드라마는 충분히 해피엔딩이다. 엄마의 시간은 끝나 가지만 팔십여 평생 이 세상에 남겨 놓은 흔적들은 곳곳에 배어 있어 유난히 엄마를 닮은 딸에게서, 손자의 호탕한 웃음에서, 허전한 팔로 홀로 걸으실 아빠의 뒷모습에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라도 불현듯 우리의 기억을 흔들고 행복한 추억으로 살아날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엄마는 늘 우리 곁에 계실 테니까.
  • 악덕 친일 부호 장승원 사살… 세금 수송 마차 털어 독립운동 자금 조달

    악덕 친일 부호 장승원 사살… 세금 수송 마차 털어 독립운동 자금 조달

    “한 잔 술을 차려 놓고 ‘우리 상진아’ 하고 가슴을 치면서 고한다. 네가 죽던 날, 시신을 수레에 싣고 돌아왔을 때는 성안에 있는 네 친구들이 모두 너를 어루만지면서 울음을 터뜨렸었다.(…) 길거리에 가득한 남녀들이 상여를 따라 통곡하자, 길을 가던 남모르는 나그네까지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義士)의 삼년상을 마치던 날 대한제국 홍문관 교리였던 생부(生父) 박시규가 비통한 심정으로 지은 제문 앞부분이다. 고헌(固軒) 박상진은 1884년 12월 6일(음력) 울산 북구 송정동에서 태어나 큰아버지에게 양자로 들어갔고 3세 때 경북 경주 녹동으로 가 성장했다. 의사의 집안은 조부와 생부, 양부가 모두 급제했고 재산이 7000석이나 됐던 명문가였다. 종형을 따라 경북 청송 진보에 갔다가 그곳에서 왕산 허위를 만나 사제의 인연을 맺은 것이 운명을 바꾸게 됐다. 왕산은 구한말 평리원장(대법원장 격)에 올랐다가 개화사상을 수용하고 의병 투쟁을 벌인 혁신유림이었다.스승을 따라 상경한 의사는 21세에 양정의숙에 들어가 안희제 등 동지를 만나 국권 회복의 열망을 키웠다. 양정의숙을 졸업한 해인 1908년 왕산은 교수형을 당했고 서대문형무소로 들어가 버려진 스승의 시신을 포대기로 감아 안고 나오면서 의사는 무력투쟁을 다짐했다. 교남교육회, 달성친목회 등에 가입하고 의사는 투쟁 계획을 세워 나갔다. 나라를 잃은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 평양법원 판사로 발령받았지만 곧바로 사직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1년 의사는 스승과 가까웠던 안동 유림 이상룡, 김동삼이 설립한 만주 서간도의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방문해 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중국 단둥에 안동여관을 설치했는데 독립운동 연락기관이었고 나중에 광복회의 거점이 됐다. 이듬해 귀국한 의사는 대구에 상덕태상회라는 곡물회사를 차렸다. 곡물 거래는 해외를 드나들고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는 데 감시를 덜 받는 이점이 있었다. 국내외에 연락 거점을 마련한 의사는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풍기광복단 등 독립운동 단체들의 연합체 격인 대한광복회 출범식을 가졌다. 7개 강령의 첫째는 친일 부호의 의연금을 받아 내고 일인이 불법 징수하는 세금을 압수한다는 것이었다. 일제 고관과 한인 반역자를 처단하는 내용도 있다. 겉으로는 회(會)였지만 사령관, 사령부, 지휘장 등 군대식 조직과 전국 각지에 지부를 갖춘 무장투쟁 단체였고 박 의사는 총사령이었다.대한광복회는 거사에 나섰다. 박 의사의 명령을 받은 우재룡은 1915년 12월 24일 엄동설한에 경주 광명동 효현교(나무다리) 일부를 파괴한 뒤 풀숲에 숨어 기다렸다. 일제가 악랄하게 징수한 세금 수송 마차가 대구로 가려면 효현교를 건너야 했다. 전날 권영만은 마부를 찾아가 대구 병원에 치료받으러 가야 한다며 애걸복걸해 짐칸에 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냈다. 마침내 효현교에 이른 마차가 부서진 다리를 보고 속도를 늦추자 그 틈을 타 권영만은 당시로선 거액인 8700원이 든 세금 행낭을 들고 유유히 빠져나왔다. 1917년 11월 10일 밤 경북 관찰사를 지낸 장승원의 경북 구미 집에서 권총탄 소리가 터졌다. 7만 5000석을 수확하는 당시 최고의 부자이면서 악명이 높았던 장을 처단하는 총소리였다. 그는 왕산의 추천으로 관찰사가 됐는데 자금을 대겠다는 약속을 어겼을뿐더러 밀고까지 해 광복회원 채기중과 강순필이 사살한 것이다. “조국 광복을 하자는 것은 하늘과 사람의 같은 뜻이니 이 큰 죄를 성토하노라.” 거사 후 두 사람은 담벼락에 이런 격문을 붙여 놓았다. 장은 광복 후 미군정 수도경찰청장과 3대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의 아버지다. 장택상은 아버지 일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고 노덕술 등 친일 경찰을 군정 경찰로 받아들였다.“우리 2000만 민족은 노예로 변하여 섬 오랑캐의 악정 폭행은 날로 더해 가고 날로 거듭해 간다. 생각하면 피눈물이 샘솟는다. 각 동포는 능력에 따라 이를 도와….” 광복회원들은 친일 행각, 재산 규모에 따라 부호들에게 이런 포고문을 보내고 모금액을 통고했다. 불응하는 친일 인사는 사살했다. 악질 친일파 도고면장 박용하, 벌교 부호 서도현, 보성의 양재성 등이다. 조선총독 암살, 직산과 상동 광산 습격도 시도했다. 박 의사도 대구 부호 서우순 처단에 직접 가담했다가 발각돼 징역 6개월 형을 받았는데 이른바 ‘대구 권총 사건’이다. 장승원 처단 후인 1917년 겨울부터 박 의사와 광복회 조직원들은 일제의 추적을 받았고 1918년 1월 충남 천안 헌병대에 주요 회원들이 체포돼 광복회의 전모가 드러나고 말았다. 의사는 망국(亡國)에 분개해 단식으로 순국한 이만도의 아들인 경북 안동 이중업의 집에 은신했다. 의사를 보살펴 준 사람은 이중업의 부인이며 3·1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체포돼 고문으로 실명한 여성 독립운동가 김락이다.숨어 있던 의사는 뜻밖에도 생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도리가 아니겠는가”라며 만류도 뿌리치고 경주 집으로 갔다. 의사가 도착했을 때 생모는 눈을 감은 뒤였다. 1918년 2월 1일 장례를 치르는 중에 일경 수백명이 출동, 의사를 포박하려 했다. 의사는 “나는 내 할 일을 정당하게 했다. 너희에게 포박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내 몸에 손대지 마라”고 꾸짖으며 백마를 타고 유유히 일경에 앞서 나아갔다. 물고문, 불고문과 3년이 넘는 재판 끝에 의사에게 사형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사형 집행 며칠 전 면회 온 가족에게 의사는 “울 까닭이 없다”며 태연히 미소를 지었다. 1921년 8월 11일 오후 1시 대구감옥에서 의사는 순국했다. “어머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나라님 원수도 갚지 못했네. 빼앗긴 국토마저 되찾지 못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저승길을 갈까.” 이 유시(遺詩)와 전해지지 않는 4장의 유서, 사진 1장을 남기고 간 36년 8개월의 짧은 삶이었다. 시신이 옮겨지던 청천역(경북 경산)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통곡했다. 일제는 새벽부터 기마대를 보내 길가에 줄지어 오는 조문객들을 휘몰아 쫓는 등 조문을 방해했다. 의사 집안은 195만평이나 되던 광대한 땅을 모두 날리고 풍비박산이 났다. 경주 최부잣집의 최준(의사의 처사촌)이 농간을 부려 재산을 빼앗아 갔다며 송사를 벌였지만 패소하고 말았다. 의사의 생부는 “일곱 집안 100여 식구가 갑자기 모두 거지가 되어 사방으로 떠돌아다니고, 나도 혼자서 이 옛집을 지키고 있다가 며칠 동안 굶어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썼다. 의사의 묘소는 경주 내남면 노곡리 등운산 기슭에 있다. 농로를 지나 작은 개울을 건너고 산길을 따라가다 오른쪽의 가파른 경사지를 100m 남짓 올라가니 어두컴컴한 숲속에 묘소가 나타났다. 잠시 묵념을 올렸다. 정부는 1963년 의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생가도 복원되고 동상이 세워졌으니 조금이나마 원혼을 달래 줄 것이다. 송정동 생가는 증손자 박중훈(65)씨가 돌보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 찾아간 생가에서 박씨는 의사의 일생과 여태 끝나지 않은 장승원가와의 악연, 후손들의 비참한 삶을 들려주었다. 박씨는 의사의 일대기이자 평전인 ‘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을 펴냈다. 평생 고통을 겪은 증조할머니, 할머니, 어머니의 일생도 정리해 따로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박씨는 최현배 선생을 비롯한 울산 지역 독립운동가를 함께 기리는 기념관이 건립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땅 195만평 등 재산 뺏기고… 후손들은 가난의 대물림

    땅 195만평 등 재산 뺏기고… 후손들은 가난의 대물림

    후손들 문중 소유 생가 서당서 26년 살아 “의사 부인 노년에 병마와 굶주림에 신음” 형언하기 힘든 곤궁한 사정 신문에 실려 장승원 후손들은 권세 부리고 부귀 누려박상진 의사의 사망과 함께 그 많던 재산은 남의 손으로 넘어갔고 부모와 부인, 후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대대로 겪었다. 일본 밀정들은 유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의사의 아들과 손자들은 일제 치하에서 독립투사, 사상범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취업은 엄두도 내지 못해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의사의 증손자 박중훈씨에 따르면 후손들은 의사의 사후 문중 소유인 울산 북구 송정동 생가 옆의 낡은 서당에서 26년 동안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가난을 견디기 어려워 1957년 부산으로 이사해 부암동의 방 세 칸짜리 집에서 12식구가 살며 닭을 길러 내다 판 돈으로 연명했다고 한다. 이후 당감동 골짜기로 옮겨 가 살았는데 생활은 더욱 어려워져 멀건 죽, 우거지 밥과 개떡을 먹으며 비참하게 살았다. 독립운동가 집안에 시집온 며느리들의 고생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생존해 있는 의사의 손자며느리(박씨의 어머니) 이갑석 할머니는 “시집온 지 사흘 만에 양식이 떨어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박 의사 후손들의 어려운 사정이 부산일보 1961년 3월 5일 자에 실리기도 했다. 의사의 부인 최영백 여사가 당시 81세의 나이에 먹을 양식도 없이 냉방에서 병마와 굶주림으로 신음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박씨는 날마다 먹어야 했던 죽에 질린 할머니(의사의 며느리)가 1982년 돌아가실 때까지 굶을지라도 죽은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복 후 독립운동가와 후손들은 박 의사처럼 극한의 가난과 싸우면서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지도 못했지만, 일제의 권력에 빌붙었던 사람들은 변함없이 권세를 부리고 부귀를 누렸다. 대한광복회가 처단한 장승원의 후손들도 그랬다. 장승원의 장남 장길상은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일본인 자본가들이 은행을 설립할 때 투자해 거부가 된 친일파이자 악덕 지주였다. 둘째 장직상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친일 인사다. 1949년 1월 반민특위에 구속됐다가 풀려났다. 셋째 아들 장택상은 미군정 수도경찰청장으로 부임해 친일 경찰을 받아들인 것은 물론이고 아버지 장승원의 원한을 품고 있었다. 광복회의 재건을 두고 볼 수 없다며 경찰력을 동원해 방해했다는 것이 박씨는 주장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1964년 광복회원의 후손들이 충남 천안삼거리공원에 순국한 광복회원 7인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려 했는데 모종의 방해를 받아 중단됐다고 한다. 모종의 방해라는 것이 바로 장택상 일족의 짓임을 쉽게 추정해 볼 수 있다. 장택상이 사망하고 두 달 후인 1969년 10월에야 기념비를 세울 수 있었던 것만 봐도 그런 점은 분명해진다. 그런 장택상은 현재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박상진 의사 가문과 장승원 가문의 악연은 계속됐다. 장택상의 딸 장병혜는 1990년대 초 ‘역사를 고발한 자, 그를 고발한다’ 등의 책을 펴내면서 광복회를 떼강도 집단, 박 의사를 파렴치한 살인강도라고 썼다. “무슨 놈의 애국지사가 일본 사람에게는 손 하나 대지 않고 동포를 죽이는 애국투사가 있겠는가. 박상진을 애국투사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으며 판결문에 기재된 대로 살인강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살인교사를 한 일당을 독립투사로 변신시키기 위한 활동”이라고 쓰기도 했다. 뉴라이트 계열의 일부 학자가 안중근 의사 등의 독립투쟁을 테러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이는 99% 엄마의 노력으로 완성된다’는 등의 책을 발간하기도 한 장병혜는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아시아 역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역사학자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악덕 친일 부호 장승원 사살… 세금 수송 마차 털어 독립운동 자금 조달

    악덕 친일 부호 장승원 사살… 세금 수송 마차 털어 독립운동 자금 조달

    “한 잔 술을 차려 놓고 ‘우리 상진아’ 하고 가슴을 치면서 고한다. 네가 죽던 날, 시신을 수레에 싣고 돌아왔을 때는 성안에 있는 네 친구들이 모두 너를 어루만지면서 울음을 터뜨렸었다.(…) 길거리에 가득한 남녀들이 상여를 따라 통곡하자, 길을 가던 남모르는 나그네까지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義士)의 삼년상을 마치던 날 대한제국 홍문관 교리였던 생부(生父) 박시규가 비통한 심정으로 지은 제문 앞부분이다. 고헌(固軒) 박상진은 1884년 12월 6일(음력) 울산 북구 송정동에서 태어나 큰아버지에게 양자로 들어갔고 3세 때 경북 경주 녹동으로 가 성장했다. 의사의 집안은 조부와 생부, 양부가 모두 급제했고 재산이 7000석이나 됐던 명문가였다. 종형을 따라 경북 청송 진보에 갔다가 그곳에서 왕산 허위를 만나 사제의 인연을 맺은 것이 운명을 바꾸게 됐다. 왕산은 구한말 평리원장(대법원장 격)에 올랐다가 개화사상을 수용하고 의병 투쟁을 벌인 혁신유림이었다.스승을 따라 상경한 의사는 21세에 양정의숙에 들어가 안희제 등 동지를 만나 국권 회복의 열망을 키웠다. 양정의숙을 졸업한 해인 1908년 왕산은 교수형을 당했고 서대문형무소로 들어가 버려진 스승의 시신을 포대기로 감아 안고 나오면서 의사는 무력투쟁을 다짐했다. 교남교육회, 달성친목회 등에 가입하고 의사는 투쟁 계획을 세워 나갔다. 나라를 잃은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 평양법원 판사로 발령받았지만 곧바로 사직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1년 의사는 스승과 가까웠던 안동 유림 이상룡, 김동삼이 설립한 만주 서간도의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방문해 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중국 단둥에 안동여관을 설치했는데 독립운동 연락기관이었고 나중에 광복회의 거점이 됐다. 이듬해 귀국한 의사는 대구에 상덕태상회라는 곡물회사를 차렸다. 곡물 거래는 해외를 드나들고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는 데 감시를 덜 받는 이점이 있었다. 국내외에 연락 거점을 마련한 의사는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풍기광복단 등 독립운동 단체들의 연합체 격인 대한광복회 출범식을 가졌다. 7개 강령의 첫째는 친일 부호의 의연금을 받아 내고 일인이 불법 징수하는 세금을 압수한다는 것이었다. 일제 고관과 한인 반역자를 처단하는 내용도 있다. 겉으로는 회(會)였지만 사령관, 사령부, 지휘장 등 군대식 조직과 전국 각지에 지부를 갖춘 무장투쟁 단체였고 박 의사는 총사령이었다. 대한광복회는 거사에 나섰다. 박 의사의 명령을 받은 우재룡은 1915년 12월 24일 엄동설한에 경주 광명동 효현교(나무다리) 일부를 파괴한 뒤 풀숲에 숨어 기다렸다. 일제가 악랄하게 징수한 세금 수송 마차가 대구로 가려면 효현교를 건너야 했다. 전날 권영만은 마부를 찾아가 대구 병원에 치료받으러 가야 한다며 애걸복걸해 짐칸에 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냈다. 마침내 효현교에 이른 마차가 부서진 다리를 보고 속도를 늦추자 그 틈을 타 권영만은 당시로선 거액인 8700원이 든 세금 행낭을 들고 유유히 빠져나왔다.1917년 11월 10일 밤 경북 관찰사를 지낸 장승원의 경북 구미 집에서 권총탄 소리가 터졌다. 7만 5000석을 수확하는 당시 최고의 부자이면서 악명이 높았던 장을 처단하는 총소리였다. 그는 왕산의 추천으로 관찰사가 됐는데 자금을 대겠다는 약속을 어겼을뿐더러 밀고까지 해 광복회원 채기중과 강순필이 사살한 것이다. “조국 광복을 하자는 것은 하늘과 사람의 같은 뜻이니 이 큰 죄를 성토하노라.” 거사 후 두 사람은 담벼락에 이런 격문을 붙여 놓았다. 장은 광복 후 미군정 수도경찰청장과 3대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의 아버지다. 장택상은 아버지 일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고 노덕술 등 친일 경찰을 군정 경찰로 받아들였다. “우리 2000만 민족은 노예로 변하여 섬 오랑캐의 악정 폭행은 날로 더해 가고 날로 거듭해 간다. 생각하면 피눈물이 샘솟는다. 각 동포는 능력에 따라 이를 도와….” 광복회원들은 친일 행각, 재산 규모에 따라 부호들에게 이런 포고문을 보내고 모금액을 통고했다. 불응하는 친일 인사는 사살했다. 악질 친일파 도고면장 박용하, 벌교 부호 서도현, 보성의 양재성 등이다. 조선총독 암살, 직산과 상동 광산 습격도 시도했다. 박 의사도 대구 부호 서우순 처단에 직접 가담했다가 발각돼 징역 6개월 형을 받았는데 이른바 ‘대구 권총 사건’이다. 장승원 처단 후인 1917년 겨울부터 박 의사와 광복회 조직원들은 일제의 추적을 받았고 1918년 1월 충남 천안 헌병대에 주요 회원들이 체포돼 광복회의 전모가 드러나고 말았다. 의사는 망국(亡國)에 분개해 단식으로 순국한 이만도의 아들인 경북 안동 이중업의 집에 은신했다. 의사를 보살펴 준 사람은 이중업의 부인이며 3·1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체포돼 고문으로 실명한 여성 독립운동가 김락이다.숨어 있던 의사는 뜻밖에도 생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도리가 아니겠는가”라며 만류도 뿌리치고 경주 집으로 갔다. 의사가 도착했을 때 생모는 눈을 감은 뒤였다. 1918년 2월 1일 장례를 치르는 중에 일경 수백명이 출동, 의사를 포박하려 했다. 의사는 “나는 내 할 일을 정당하게 했다. 너희에게 포박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내 몸에 손대지 마라”고 꾸짖으며 백마를 타고 유유히 일경에 앞서 나아갔다. 물고문, 불고문과 3년이 넘는 재판 끝에 의사에게 사형 확정판결이 내려졌다.사형 집행 며칠 전 면회 온 가족에게 의사는 “울 까닭이 없다”며 태연히 미소를 지었다. 1921년 8월 11일 오후 1시 대구감옥에서 의사는 순국했다. “어머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나라님 원수도 갚지 못했네. 빼앗긴 국토마저 되찾지 못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저승길을 갈까.” 이 유시(遺詩)와 전해지지 않는 4장의 유서, 사진 1장을 남기고 간 36년 8개월의 짧은 삶이었다. 시신이 옮겨지던 청천역(경북 경산)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통곡했다. 일제는 새벽부터 기마대를 보내 길가에 줄지어 오는 조문객들을 휘몰아 쫓는 등 조문을 방해했다. 의사 집안은 195만평이나 되던 광대한 땅을 모두 날리고 풍비박산이 났다. 경주 최부잣집의 최준(의사의 처사촌)이 농간을 부려 재산을 빼앗아 갔다며 송사를 벌였지만 패소하고 말았다. 의사의 생부는 “일곱 집안 100여 식구가 갑자기 모두 거지가 되어 사방으로 떠돌아다니고, 나도 혼자서 이 옛집을 지키고 있다가 며칠 동안 굶어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썼다. 의사의 묘소는 경주 내남면 노곡리 등운산 기슭에 있다. 농로를 지나 작은 개울을 건너고 산길을 따라가다 오른쪽의 가파른 경사지를 100m 남짓 올라가니 어두컴컴한 숲속에 묘소가 나타났다. 잠시 묵념을 올렸다. 정부는 1963년 의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생가도 복원되고 동상이 세워졌으니 조금이나마 원혼을 달래 줄 것이다. 송정동 생가는 증손자 박중훈(65)씨가 돌보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 찾아간 생가에서 박씨는 의사의 일생과 여태 끝나지 않은 장승원가와의 악연, 후손들의 비참한 삶을 들려주었다. 박씨는 의사의 일대기이자 평전인 ‘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을 펴냈다. 평생 고통을 겪은 증조할머니, 할머니, 어머니의 일생도 정리해 따로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박씨는 최현배 선생을 비롯한 울산 지역 독립운동가를 함께 기리는 기념관이 건립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쿠바 빨갱이 영화까지 만드냐” ‘헤로니모’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쿠바 빨갱이 영화까지 만드냐” ‘헤로니모’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지난 12일 두 편의 영화 시사회를 경험했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보고 난 뒤 21일 개봉하는 이 영화 ‘헤로니모’를 만났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 모두 한계가 뚜렷했다. ‘헤로니모’는 우리에게도 낯선 쿠바의 한국인 2세 디아스포라 헤로니모 김 임(한국 이름 임은조)을 아들과 손자가 그리워하며 밟는 여정을 재미교포 변호사 출신 전후석 (미국 이름 조지프 전) 감독이 다큐멘터리로 담아낸 영화다. 뻔한 얘기라거나 신파라거나 하는 선입견이 93분의 러닝타임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설 가능성이 높다. 기자와 함께 시사회에 간 한 선배는 “임은조 기사를 썼더니 ‘빨갱이 찬양 기사까지 쓰느냐’는 댓글이 달리더라”며 웃었다. 선뜻 지갑 열기도 쉽지 않은 영화다. 그런데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된 다음해인 2015년에 신나게 놀려고 쿠바에 갔다가 택시 운전사인 헤로니모의 손녀를 만난 인연으로 이 영웅적인 인물에 매료돼 변호사 일마저 접고 영화에만 매달린 전 감독의 내공이 대단하다. 지루하고 따분하거나 눈물 자아내게 하려는 데 급급하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객관적 시선을 지켜내는 자제력이 놀라웠다. 임은조의 아들과 손자가 바다를 바라보며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이 첫 장면이자 마지막 장면인 점도 절묘했다. 헤로니모를 아는 쿠바의 한인 100명 정도를 취재한 정성은 꼼꼼했고, 이를 필름으로 직조하는 재주가 탁월했다. 한 인물의 일대기를 좇으며 한인 교포의 정체성을 묻고 또 묻는다. 쿠바의 근현대사를 맨앞에서 호흡하며 살아간 헤로니모의 이야기는 우리 한국의 근현대사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아버지 임천택 씨는 두 살 때 어머니 품에 안겨 1905년 인천 제물포 항을 떠난다. 1033명을 태운 배는 멕시코에 도착해 22개 애니깽(선인장) 농장들로 한인들은 흩어진다. 임천택 씨는 다시 1921년에 큰 기회가 있다는 말에 쿠바로 떠난다. 임씨는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쿠바의 한인 이민자들이 끼니마다 쌀 한 숟가락씩 덜어내 모아 상해 임정으로 1489원 70점을 부치는 데 앞장선다고 백범일지에 기록된 인물이다. 헤로니모는 1926년 태어나 46년 남미 한인 최초로 대학생이 돼 아바나 법대에서 피델 카스트로와 동기로 공부한 인연으로 59년 쿠바 혁명에 동참, 카스트로, 체 게바라 등과 공산화 꿈을 이루고 훈장을 아홉 개나 챙긴다. 쿠바 한인 가운데 최고위 직에 오른다. 남북이 갈라선 뒤 일관되게 “미친 짓”이라고,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개탄하는 장면도 나온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때인 1995년 난생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임은조는 쿠바 한인 공동체를 재건하기로 마음먹고 낡고 허름한 트럭을 타고 한인의 피가 흐르는 이들을 찾아 쿠바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닌다. 2006년 기준으로 944명의 한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낸다. 그리고 한인회 설립 준비를 모두 마쳤는데 쿠바 정부가 이를 거부하는데 각별한 사이였던 북한을 의식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 이 영화의 가장 논쟁적인 대목이 등장한다. 미국에서 건너온 선교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헤로니모가 한국을 다녀온 뒤, 옛 소련 붕괴 등을 바라보면서 속았다고 털어놓으며 사상 전향을 선언했다는 것이 선교사들의 설명이다. 물론 부인은 펄쩍 뛴다. 도움이 필요하고, 손을 벌리려니 그런 게 아니었나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2006년 헤로니모는 한많은 눈을 감았으니 이를 밝혀낸들 무슨 대수이겠는가 하는 생각마저 드는데 한인들의 역사를 올곧게 세우겠다는 그의 결기만은 뚜렷하다.이역만리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갈구했고 분단을 “미친 짓”이라고 분개하며, 조국이 있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게 한인 이민 기념비의 처마를 세우도록 지시하는 장면 등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보통 ‘올드랭 사인’으로 알고 있는 멜로디의 예전 ‘애국가‘를 목놓아 부르는 장면, 한인들과 그저 한글을 배우려는 쿠바인들이 ’아리랑‘이나 ’고향의 봄‘, 노사연의 ’만남‘을 함께 부르는 장면. 아들과 손자가 대서양과 그 너머 태평양을 건너야 닿는 먼바다를 바라보며 훌륭한 삶을 다짐하는 마지막 장면은 묵직한 감동을 안긴다. ‘헤로니모’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고 살아갈 우리 관객들에게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800만명의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망치로 내려 친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보잉의 땜질 처방/장세훈 논설위원

    [씨줄날줄] 보잉의 땜질 처방/장세훈 논설위원

    미국의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는 글로벌 항공기 제작 시장에서 양대 산맥이자 숙명의 라이벌이다. 연륜만 놓고 보면 보잉과 에어버스는 ‘할아버지와 손자’ 격이다. 1916년 설립된 보잉은 항공산업의 역사 그 자체다. 에어버스는 프랑스·독일·영국 등의 업체들이 손을 잡고 1969년 공식 출범했다. 미국 업체와 경쟁하기 위한 대항마였다. 이후 1990년대까지만 해도 보잉이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지만 2000년대 들어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이다. 2000년대 초반 보잉은 당초 추진해 온 500석 규모의 초대형 여객기 ‘747X’ 시리즈 개발 계획을 보류하는 대신 크기는 작지만, 음속에 버금가는 속도로 비행하는 `소닉 크루저’ 개발에 주력했다. 반면 에어버스는 2005년 ‘하늘 위의 호텔’로 불리는 A380을 발표하면서 대형 장거리 여객기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당시 국제 유가 상승은 ‘빠르게’에 주력했던 보잉이 아닌 ‘싸게’에 초점을 맞춘 에어버스의 손을 들어 주는 역할을 했다. 2010년대에는 저비용항공사(LCC)들의 급성장, 지역과 지역을 잇는 이른바 ‘포인트 투 포인트’(Point to point) 항공운송 전략 등과 맞물려 두 업체의 경쟁이 다양한 기종으로 확대됐다. 대형 장거리에서는 B777X와 A380, 중형 중·장거리는 B787 드림라이너와 A330 네오, 소형 중·단거리는 B737 시리즈와 A320 패밀리 등의 시장 쟁탈전이 치열하다. 다양한 기종이 출시되는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는 B737 시리즈다. 1967년 첫비행한 뒤 누적 판매량만 1만 5000여대에 이른다. 대표작인 만큼 탈도 많다. B737 맥스는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에서 발생한 잇단 추락 사고로 지난 3월 전 세계적인 운항 중단 사태에 직면했다. 이어 B737 맥스의 전 세대 모델이자 LCC들의 주력 항공기인 B737 NG는 최근 기체 결함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동체·날개 이음부에서 균열이 발견돼 국내에서만 13대가 운항 중단 조치됐다. 확인 작업이 계속되고 있어 운항 중지 항공기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보잉의 대응 방식이다. 보잉 관계자들은 최근 한국을 방문해 해당 기종을 보유한 항공사에 “균열 부위를 때워 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국내 항공사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체 균열은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보잉이 내놓은 처방은 ‘땜질’이다. 땜질 처방의 사전적 의미는 ‘잘못된 일을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바로잡지 않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임시변통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레토릭(수사)이 아닌 현실이라 더 위험천만해 보인다.
  • 아시아나, HDC현대산업 품에 안긴다

    아시아나, HDC현대산업 품에 안긴다

    2조 5000억 과감한 베팅에 매각 속도 본 협상 순조로우면 연내 마무리 가능 ‘증손회사’ 에어부산 지분이 변수 될 듯매각 절차가 진행 중인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 후보로 HDC현대산업개발이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11일 재계와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금호산업은 12일 이사회를 열고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을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할 우선협상대상자로 최종 선정할 계획이다. 함께 입찰 경쟁을 벌였던 애경그룹·스톤브릿지 컨소시엄과 KCGI·뱅커스트릿 컨소시엄은 고배를 마시게 됐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 7일 본입찰에서 시장이 예측한 가격을 훨씬 웃도는 2조 5000억원을 입찰가로 적어 내면서 유력한 우선협상대상자로 떠올랐다. 당초 본입찰에서부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까지 1~2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현대산업개발의 과감한 베팅으로 경쟁이 무의미해지면서 단 5일 만에 최종 후보를 발표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산업개발은 현금성 자산만 1조 7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자금력이 막강해 부채 규모가 9조 6000억원에 달하는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후보로 제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응찰한 컨소시엄 3곳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금호산업과 채권단은 국토부의 심사가 12일까지 마무리되지 않으면 조건부 승인 형태로 우선협상대상자를 먼저 선정하는 등 매각 절차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금호산업은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후 곧바로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위한 본협상에 돌입한다.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매각 절차는 연내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걸림돌은 여전히 남아 있다. 현대산업개발 측이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를 다시 매각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HDC그룹은 2018년 5월 HDC를 정점으로 하는 지주사 체제로 출범했다.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지배구조가 ‘HDC→HDC현대산업개발→아시아나항공→에어부산·에어서울’ 순으로 재편된다. 그런데 공정거래법은 ‘지주사의 손자회사는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거나, 이를 준수하지 못하면 2년 내에 처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손자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이 증손회사인 에어부산·에어서울의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은 에어서울의 지분 100%를 갖고 있지만 에어부산의 지분은 44%만 갖고 있다. 따라서 현대산업개발이 에어부산까지 인수하려면 나머지 지분 56%를 함께 사들여야 해 추가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에어부산을 다시 매각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르게 된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배우 윤정희 10년째 알츠하이머 투병…파리에서 요양 중

    배우 윤정희 10년째 알츠하이머 투병…파리에서 요양 중

    배우 윤정희(75)가 10년째 알츠하이머를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윤정희의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73)의 공연을 담당하는 기획사 빈체로 측에 따르면 윤정희가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이며, 최근 증세가 심각해졌다. 10년 전쯤 시작된 윤정희의 알츠하이머 증상이 최근 심해지면서 같은 질문을 수없이 반복하거나 그의 딸인 바이올리니스트 백진희를 알아보지 못 하는 등 상태가 심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윤정희는 현재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딸의 집에서 함께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정희는 1960년대를 대표하던 톱배우다. 1967년 영화 ‘청춘극장’을 시작으로 약 3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1960~1970년대를 풍미했다. 윤정희의 2010년에는 영화 ‘시’(감독 이창동)에서 알츠하이머 치매로 기억을 잃는 미자 역할을 맡아 열연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윤정희는 홀로 손자를 키우며 늦은 나이에 시를 배우는 할머니 ‘미자’를 연기했다. 미자라는 이름은 윤정희의 본명이다. 영화 ‘시’ 이후 연기 활동을 제대로 재개하지는 못 했지만 알츠하이머 증세가 완화됐을 때는 여러 차례 공식석상에 참석했다. 아름다운예술인상을 선정하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로도 활동했으며,지난해 11월에는 영화평론가상 시상식에 참석해 공로상을 받았다.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 3연승 거둔 야구대표팀 2연패 청신호 켰다

    3연승 거둔 야구대표팀 2연패 청신호 켰다

    야구대표팀이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예선 무대에서 가뿐하게 3연승을 거두며 대회 2연패를 위한 청신호를 켰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쿠바와의 C조 예선 3차전에서 7-0 승리를 거뒀다. 호주, 캐나다, 쿠바를 차례로 꺾은 대표팀은 3전 전승으로 C조 1위 자격으로 슈퍼라운드에 진출했다. 한국을 제외하고 모두 1승 2패로 동률을 이뤘지만 팀성적지표(TQB)에 따라 호주가 극적으로 2위를 차지하며 도쿄행 티켓을 따냈다. 한국은 2회 말 양의지의 몸에 맞는 공과 김현수, 박민우의 볼넷으로 만든 2사 만루에서 김하성이 야리엘 곤살레스에게 좌전 적시타를 뽑아내며 2점을 선취했다. 조금 아쉬운 리드를 이어가던 대표팀은 5회 말 넉 점을 보태 사실상 승을 확정지었다. 키움 트리오의 호흡이 빛났다. 1사 후 김하성의 볼넷과 이정후의 몸에 맞는 공으로 만들어진 1, 2루에서 박병호가 첫 안타로 김하성을 불러들였다. 이어지는 1사 1, 2루에서 김재환이 1타점 우전 적시타를, 양의지가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5-0으로 달아났다. 김현수가 뜬공을 때렸지만 쿠바의 아쉬운 수비가 나오며 김재환마저 홈을 밟았다. ‘바람의 손자’ 이정후는 6회 2사 1루에서 좌중간을 가르는 1타점 2루타로 쐐기를 박았다. 선발 박종훈은 4이닝 4피안타 무실점으로 마운드에서 버텼고 5회 구원 등판한 차우찬이 쿠바의 좌타라인을 봉쇄했다. 이영하, 고우석, 하재훈, 이승호가 릴레이 호투로 팀 완봉승을 합작했다. 1과3분의1이닝을 던진 이영하가 승리투수가 됐다. 승부의 추가 기울자 김 감독은 7회 이후 벤치 멤버를 모두 투입하는 팬서비스를 선사했다. 한국은 A조 1·2위인 멕시코와 미국, B조 1·2위인 일본, 대만과 슈퍼라운드에서 맞붙는다. 같은 조였던 호주는 슈퍼라운드 대결이 없다. 호주에 따낸 1승 안고 슈퍼라운드에 임한다. 한국은 11일부터 일본 지바와 도쿄에서 열리는 슈퍼라운드에서 호주, 대만보다 나은 성적을 올리면 아시아·오세아니아 1위 자격으로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얻는다. 대표팀은 9일 일본으로 떠난 뒤 11일 슈퍼라운드 첫 경기를 치른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美 초등학교 1학년 소년, 가방에 장전된 권총들고 등교 파문

    美 초등학교 1학년 소년, 가방에 장전된 권총들고 등교 파문

    초등학교 1학년인 6살 소년이 장전된 반자동권총을 들고 등교해 현지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CNN 등 현지언론은 오하이오 주 노스 콜럼버스에 위치한 키즈 케어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을 일제히 보도했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 6일 오전 8시 45분으로 학교에서 현지 경찰로 한 통에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학생 중 한 명이 백팩 안에 권총을 넣어 학교에 가져왔다는 것. 이에 출동한 경찰은 학생에게서 권총을 수거했으며 다행히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초등학교 1학년으로 알려진 6살 소년은 자신의 가져온 권총을 다른 친구에게 보여줬으며 이에 친구가 교사에게 알리면서 사건은 무사히 종료됐다. 현지 경찰은 "하마터면 학교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뻔 했다"면서 "이 초등생이 왜 학교에 권총을 가져왔는지 조사 중에 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의 경찰 조사에 따르면 권총은 학생의 할아버지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전날 할아버지가 문제의 권총을 분실했으나 손자가 가져간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 경찰은 "학생은 나이 때문에 처벌받지 않지만 할아버지는 법적인 책임 하에 있다"면서 "보호자들은 반드시 어린이들이 총기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고령화로 상속재산 갈등 증폭… ‘배우자 노후생활’ 위협

    고령화로 상속재산 갈등 증폭… ‘배우자 노후생활’ 위협

    지방에 사는 A씨는 3억 5000만원의 집 한 채를 남기고 사망했다. A씨의 아내 B씨는 이 집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데, 두 자녀가 상속재산 분할을 요구했다. 법정상속비율이 배우자 1.5, 자녀당 1이어서 B씨는 집을 팔아 1억 5000만원만 갖고 자녀들에게 1억원씩 줬다. B씨는 1억 5000만원으로 새 집을 구하고 노후 생활비까지 해결해야 한다. 최근 급속한 고령화로 부부 중 한 명이 사망할 경우 상속재산을 놓고 가족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생존한 배우자가 재산을 적게 물려받아 생활이 어려운 사례도 적지 않다. 정부가 상속세 제도를 재점검하고, 고령화 사회에 먼저 진입한 선진국의 제도 개선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6일 이런 내용의 ‘고령사회와 상속시장의 현황 및 과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연간 상속액은 35조 7000억원으로 2003년(12조원) 대비 3배가량 증가했다. 상속세에서 각종 공제를 뺀 실효세율은 평균 17.2%였다. 특히 재산을 물려준 피상속인 중 80세 이상이 51.4%나 됐고, 상속재산은 부동산이 59.8%로 가장 많았다. 연구소는 ▲배우자 상속 ▲주택 상속과 주택연금 ▲노노(老老) 상속 ▲유류분 제도 등 4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우자 상속 문제는 B씨 사례처럼 자녀와의 상속 갈등으로 배우자의 생활이 위협을 받는 것이다. 고령가구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높은데, 상속재산이 집 한 채일 경우 배우자는 살 집이 없어져서다. 연구소는 일본 정부가 지난해 민법을 바꿔 만든 ‘배우자 거주권’을 해결책으로 꼽았다. 생존한 배우자에게 현재 사는 집에서 일정 기간 또는 사망할 때까지 살 권리를 주는 제도다. 주택연금도 문제다. 집을 담보로 매달 주택연금을 받는 고령층이 늘고 있는데, 자녀들이 집을 상속받으려고 주택연금 이어받는 것을 반대해서다. 금융 당국은 배우자 사망 때 다른 배우자에게 연금이 자동 승계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노노(老老) 상속은 부모뿐 아니라 자녀도 노인이 돼 자산이 고령층 안에서 맴도는 현상이다. 과거 일본도 이로 인해 소비와 투자가 줄어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일본 정부는 2013년 내수 활성화를 위해 조부모가 손자에게 교육자금을 증여하면 한시적으로 증여세를 매기지 않는 대책을 내놨다. 이후 주택 취득 자금과 육아, 결혼, 출산 비용도 비과세했다. 연구소는 부모 등 피상속인이 유언을 통해 자녀를 비롯해 법정 상속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재산을 모두 상속시키려고 해도 재산의 일정 비율을 상속인에게 주는 ‘유류분 제도’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제력이 없는 배우자나 미성년 자녀를 위한 제도인데, 경제력을 갖춘 고연령층 자녀가 많아져서다. 정나라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정부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와 부양의식 변화에 대응해 현행 상속세 제도를 재점검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실종자 가족 “독도 헬기 ‘펑’하며 추락한 영상 봤다”

    실종자 가족 “독도 헬기 ‘펑’하며 추락한 영상 봤다”

    소방당국·해경 “그런 영상 없다” 반박 블랙박스 등 담긴 꼬리 날개 부분 발견 실종자 5명 수색은 별다른 진척 없어독도 인근 해상에서 응급환자 이송 도중 추락한 소방헬기 사고 원인 조사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실종된 5명의 수색은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동해지방해양경찰청은 청해진함이 인양한 사고 헬기 동체를 김포공항으로 옮겨 원인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4일 밝혔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 조사위원회는 사고 발생 직후 조사관 5명을 투입, 사고 배경 조사에 착수했다. 문제는 소방헬기의 블랙박스를 수거하는 일이다. 제병렬 해군 특수전 전단 참모장은 이날 오후 “블랙박스와 보이스 레코더는 꼬리 날개 부분에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그는 “중앙 119구조본부라고 적힌 글씨 중 119라고 써 있는 부분에 블랙박스, 보이스레코더가 있는 것”이라며 “오늘 야간에 무인잠수정(ROV)으로 탐색해 실종자부터 수습한 이후 꼬리 날개 부분을 인양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해군은 이날 오후 9시 30분쯤 현장에 도착할 청해진함의 무인잠수정을 활용해 5일 아침까지 실종자 수습에 주력할 방침이다. 동체가 김포공항으로 옮겨지면 비상부유장치 작동 여부 등 기체 결함 가능성에 대한 정밀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실종자 5명을 찾기 위한 수색도 닷새째 이어졌다. 동해해경 등 수색 당국은 이날 오전 7시 30분부터 추락 지점 반경 55㎢에 함정 14척과 항공기 6대, 드론 2대를 투입해 해상 및 수중 수색을 진행했다. 그러나 남동 방향으로 35㎞가량 떨어진 해상에서 동체 일부가 발견된 것 외에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황상훈 동해해경 수색구조계장은 “해군 무인잠수정은 물론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보유한 음파탐지장비인 사이드스캔소나 등 가용 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해 실종자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이종후(39) 부기장과 서종용(45) 정비실장이 안치된 대구 동산병원 백합원과 해군이 실종자 가족에게 수색 관련 브리핑을 한 대구 강서소방서에는 오열과 한숨만 가득했다. 한 유족은 사고 며칠 전 아들이 올린 손자 생일 사진을 보며 울먹였다. 강원 원주시에서 급히 올라온 이 부기장의 아버지는 아들을 데려간 하늘이 야속한 듯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실종자 배모(31)씨의 가족은 “수영을 잘하는 아들이 어디선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울릉도를 떠나지 않고 있다. 한편 이날 일부 실종자 가족이 ‘펑’ 소리 후 소방헬기가 추락하는 영상을 수색 당국이 보여 줬다는 주장을 제기해 논란이 일었다. 이들은 강서소방서에서 “사고 초기 다 함께 모인 장소에서 동영상을 보여 줬다”며 “헬기가 하늘 위로 날다가 갑자기 기울고 곧이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다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앙119소방본부 관계자는 “‘펑’ 소리가 나는 영상이 있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해 실종자 가족들 진술에 대한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출처가 다른 얘기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경 관계자도 “저희가 제공한 추락하는 영상은 전혀 없다”며 “KBS에서 찍은 영상도 이륙 전까지가 전부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동해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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