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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풍환자 전기자극요법 효과/근육경직 줄고 뇌세포 자극

    ◎운동능력 눈에 띄게 좋아져 팔·다리에 이미 마비가 온 중풍환자는 좀처럼 치료가 쉽지않다.양방과 한방을 번갈아 가며 치료를 받는 사람도 많지만 완치됐다는 사람은 흔치않다. 뇌출혈이나 뇌경색 등으로 대표되는 중풍은 일단 발병하면 뇌세포가 손상을 받게 되는데 이것을 원상태로 돌린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방에서는 중풍환자의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 약물이나 침구요법을 쓰면서 보조치료로서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재활치료를 병행한다. 최근 한방병원중에서는 전기자극기를 이용,중풍환자의 재활치료에 효과를 보고 있는 곳이 늘고 있다. 전기자극기는 중풍뿐 아니라 교통사고나 뇌성마비로 마비가 온 환자들에게도 치료효과가 높다는 설명이다. 이들 한방병원에서는 일반 물리치료실이 아닌 신경근치료실을 따로 두고 FES라는 전기자극기를 써서 환자를 치료한다.이 기기는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작용점을 자극,팔·다리를 움직이게 하는 재활장비다. 전기자극으로 경직현상을 줄여 환자의 마비된 팔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 움직임이 다시 뇌세포를 자극해 운동능력이 되살아 난다는 것이다. 이전의 재활치료가 주로 통증치료에 국한됐던 데 반해 적극적인 치료법이다.특히 휴대용 전기자극기는 환자에게 대여해줘 집에서도 재활치료를 받을수 있다. 중풍환자를 주로 치료하는 보현한방병원(02­771­3838)에서는 “지금까지는 중풍환자의 보조치료법으로 재활운동만 시켜 왔는데 최근 전기자극기를 이용한 재활치료를 하면서 거동이 불편했던 중풍환자들의 걸음걸이나 팔·다리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말했다.
  • 변호사업계/자정 싸고 내홍 심화

    ◎징계회부 변호사­“납득할 해명 않으면 변협회장 고소”/변협 윤리위원­“여러차례 면담 거절당해 수사 의뢰” 대한변호사협회(회장 함정호)로부터 지난 23일 수사 의뢰 및 징계위 회부 결정을 통보받은 대전의 임창혁 변호사가 25일 변협에 해명 촉구서를 보내 “허위 사실을 발표한데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이 없으면 변협회장과 최종백 윤리위원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밝혀 변호사업계 자정을 둘러싼 내홍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임변호사는 해명서에서 “조사위원을 만난 적도 없으며 ‘형사사건 담당사무장에 현직 경관 고용’ 등 윤리위의 발표 내용은 모두 거짓”이라면서 “윤리위가 사전 해명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허위 사실을 언론에 공개,비리 변호사로 낙인 찍혀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단순히 형사사건을 많이 수임한 것만으로 비리 변호사 취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정당한 방법으로 사건을 수임했으며 수임료도 공정하게 받았다”고 덧붙였다. 윤리위원 조헌수 변호사는 이에대해 “임변호사에게 여러차례 사건 의뢰인의 명단 공개와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는 등 조사에 응하지 않아 수사를 의뢰했다”면서 “윤리위의 표결에 따라 정당한 절차로 처리된 만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임변호사는 96년 7월 판사직에서 물러나 개업한 뒤 1년동안 200여건의 형사사건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 김 차기대통령 대외관계 활성화 기대(해외사설)

    한국의 김대중 차기대통령이 25일 공식 취임한다.취임에 앞서 한일관계 회복과 남북대화 추진 등 화해와 건설의 외교방침을 밝혀 놓고 있다.김영삼 정권에서 꽉 막혔던 대외관계의 타개에 기대를 걸고 싶다. 한국의 국제관계는 한일 관계가 어업협정 파기 등으로 악화됐으며,한미관계도 결코 원활하지 못하다.남북대화는 중단된 채다.왜 한국 외교는 실패했는가.외교의 기본이 인간관계에 있음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대국에 둘러쌓여 있고 분단돼 있는 국제환경하에서는 좋은 국제관계가 필요불가결하다는 데 대한 인식이 엷었다.김영삼 외교는 너무 오만한 자세를 고치지 않았다는 게 한국내에서의 반성이다.이러한 반성에 입각해 김차기대통령은 대일관계 회복 노력을 천명했다. 일본측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대통령 취임 직전에 한일어업협정을 파기하는 일본의 대응은 한국측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사태다.한국은 새 정권이 발족하면 조기에 문제를 해결한다고 밝혀 왔기 때문에 체면이 손상됐다고 받아들이는 것도 무리는아니다.협정 파기 때문에 차기대통령의 조기 방일이 어려워진 것도 부정할 수 없다.어업협정 파기를 주장한 일본측 책임자도 국제감각을 결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김대중 차기대통령은 관계 회복에 노력한다는 자세를 보였다.한국내에서의 지지율은 90%를 넘는다고 한다.국민은 경제의 재건과 국민적인 화해에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을 터이다.그 배경에는 한국에 뿌리깊은 지역감정 및 노동문제 등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김차기대통령밖에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지금까지 수많은 정치 탄압을 받으면서도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왔고 그것을 신중하게 실행에 옮기려 하고 있다. 이 자세에 국민이 공감해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김차기대통령의 정치와 외교를 일관하는 것은 화해와 민주주의 발전의 정신이다.김종필씨와의 협력에 대해서도 ‘사람은 용서할 수 있다’고 말한다.이 화해와 민주주의 발전의 이념에 국제사회도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 DJ취임과 한국경제의 대전환/노조에 신이치(지구촌 칼럼)

    ○적절한 선수교체로 호기 김대중 정권이 이틀 뒤 정식으로 발족된다.이미 지난해 12월 당선이후 한국의 정치·경제는 김대중씨를 중심으로 전개돼 왔다.외국인의 눈에는 조금 이상하게 비치는 풍경이지만 ‘법치보다 인치’라는 표현이 딱맞는,아무래도 한국적인 정치풍경이다. 그러나 이‘선수교체’는 한국으로서는 대단한 행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한국은 바로 그때 경제가 통화·금융위기에 빠져 막대한 자금지원과 맞바꿔 국제통화기금(IMF)의 융자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권교체는 경제정책의 대전환을 분명히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기도 했다.김대중씨가 야당출신의 대통령이라는 사실도 한국이 필요로 하는 개혁을 지향하는데 다행이었다. 한국 경제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한마디로 말하면 차입 거품의 붕괴다.일본의 경우는 토지 거품의 붕괴였지만 양국 경제는 모두 성장 메커니즘 그 자체에 기능 부전이 발생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일본에선 땅값의 상승과 기업활동이 상호 작용해 성장을 이끌어 가는 메커니즘이 형성돼 ‘땅값은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토지신화를 낳았다. 한편 한국에서는 정부의 두터운 보호(관치금융) 아래 많은 대기업이 성장,‘재벌은 도산하지 않는다’라는 신화가 형성됐다. 그러나 이들 거품은 언젠가는 붕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일본에서는 80년대말부터의 몇번의 금리인상을 계기로 땅값이 크게 떨어져 대량의 부실채권이 발생됐으며 아직도 그 처리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주지하고 있는 것처럼 97년에 들어서서부터 일련의 중견재벌이 도산,이번 통화·금융위기의 출발점이 됐다. ○차입 자본주의의 붕괴 양국의 경제위기는 인간의 병을 예로 든다면 당뇨병과 같이 대사기능에 관한 병이다.난병이어서 간단하게는 고칠 수 없다.방심하면 합병증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실제로 이 ‘차입자본주의’는 한국 발전에 유효했다.한국기업의 다이내미즘은 차입경영에 있었다고 말해도 좋다.한국기업은 한국인이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세계적으로도 커다란 존재로 성장했다.그 일례를 들어보자.니혼케이자이신문은 3년 전부터 ‘아시아기업(일본기업 제외)중 매출액 상위 100대기업’을 발표하고 있다.이것을 보면 95년 발표에는 100대 기업 가운데 한국기업의 수는 38개사였고 96년에는 중국을 제외시켰다는 사정도 있어 43개사로 늘었다.97년에는 중국을 제외하기는 했지만 호주,뉴질랜드가 추가됐기 때문에 31개사로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이 31이라고 하는 숫자는 큰 숫자다.상위 10개사에 한국기업이 7개사나 들어가 있는 것도 지나쳐 버릴 수 없다. ○재벌개혁이 포인트 이렇게 덩치가 커진 기업이 계속해서 차입으로,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 사업확장을 지속하는 것은 세계경제로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IMF 및 그뒤에있는 미국의 생각이었던 듯하다.한국의 통화·금융위기를 기화로 한국의 문어발식 기업경영에 메스를 대려는 것이 이번 IMF체제의 포인트일 것이다. IMF가 한국에 요구한 조건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적인 논의가 있다.당사자인 한국에 말할 게 많은 것도 당연할 것이다.그러나 한국경제는 몇번이나 구조개혁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외쳐졌지만 엔고 등 요행에 도움을 받아 개혁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채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이다.이번 사태는 그 외상값이 돌아온 것을 의미한다. 야당 정치인 김대중씨의 대통령 취임이 개혁을 지향하는 한국 경제에 있어 다행이라고 말한 것은 경제개혁의 포인트인 재벌개혁에는 재벌과 유착이 없는 정치인이 어울리기 때문이다.또 구조재편(리스트럭처링)에 불가결한 정리해고제의 법제화가 가능하게 된 것도 노동조합과의 관계가 깊은 정치인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경제난 극복 낙관 재벌개혁은 연결재무제표의 도입,상호지불보증의 폐지,외부감사인 제도의 도입 등 제도적 개혁으로 상당히 진전돼 갈 것이라고 생각된다.이들 제도적개혁에 금융개혁이 덧붙여짐에 의해 재벌기업의 경영의 투명성이 촉진돼 주력산업도 자연히 명확하게 돼 갈 것이라고 생각된다.이들 개혁을 오너 경영자의 ‘하고자 하는 마음’을 손상시킴없이 추진해 나간다면 최고일 것이다. 세계경제의 추세는 대기업 체제로부터의 이탈이다.‘커다란 것은 좋은 것이다’라고 마구 외형적 성장을 좇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시장원리에 바탕을 둔 투명성 있는 경제운영을 추진해 나감으로써 한국 경제의 면모는 일신돼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 야당세력의 형성(대한민국 50년:8)

    ◎48년 8월 한민당 “이승만정권에 투쟁” 선포/조각 배분 푸대접 받자 초대총리 지명 인준 부결/보수세력에 지나치게 기대 ‘보수야당’ 성격 고착 이승만정권에 대응한 야당세력의 출현은 바로 한국민주당에서 비롯된다. 한민당은 미군정기인 45년 9월16일 좌우대립속에서 지주세력 등 우익측 인사들로 결성된 보수반공연합체 정당으로 출발했다. 중경의 임시정부를 정통정부로 추대하고,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건국준비위원회의 인민공화국 타도를 모토로 내걸었다. 한민당은 창당 당시에는 이승만 김구 김규식 등의 임정요인들을 지지하고 이들과 함께 반탁운동을 전개했으나 김구 등 임정세력들과의 노선차이로 결별했다. ○건국까지는 손발 맞춰 그러나 단독정부수립을 주장한 이승만과 한민당은 손발을 맞춰 건국까지 이끈다.이승만과 한민당의 관계는 ‘정약결혼’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이승만은 그들의 국내 지지기반이 필요했고 대신 한민당은 이정권에서 권력을 주도하려는 야심이 있었던 것이다.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귀국한 이승만은정약결혼속에서도 내심 ‘친일정당’으로 비판받던 한민당과 계속 제휴하는 것은 자신의 노선까지도 손상받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48년 7월20일 제헌국회에서 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꿔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은 바로 조각작업에 착수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하나씩 드러냈다. 먼저 한민당이 국무총리로 내세운 당위원장 김성수안을 거부하고 조선민주당 부당수였던 이윤영을 총리로 지명,국회인준을 요구했다. 이에 한민당도 기다렸다는듯 즉각 인준을 부결시켰으며,결국 이범석을 총리로 지명해 인준받은 이승만은 김도연에게 재무장관 자리 하나를 주는 것으로 한민당의 조각참여를 제한했다. 한민당은 이 사건을 ‘이승만의 배신’으로 간주하고 자연스럽게 야당의 길로 전향했다.한민당의 이승만에 대한 불만은 48년 8월8일 발표한 성명에 잘 나타나있다. 이 성명은 ‘…본당원으로서 정부에 국무위원으로 입각한 사람은 김도연 1인뿐이어서 극히 빈약하다.본당은 신정부에 대해 시시비비주의로써 임할 것은 물론이거니와…”라고 주장해 이승만정권에 대한 투쟁을 선포한 것이다. 한민당은 본격 야당으로 강화하기 위해 대한국민당의 신익희 세력 등을 규합,민주국민당(민국당)을 창당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한민당은 창당 3년4개월만인 49년 1월26일 자연해체하게 되고 49년 2월10일에는 민국당으로 자리잡게 된다. 민국당은 이어 정부12개부처의 각료중 7명이나 차지해 세를 불려나갔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기 위해서는 내각책임제 개헌밖에 없다고 여겨 이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민국당은 50년 1월 79명의 서명으로 된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50년 3월14일 국회 본회의에서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표결에 부쳐졌으나 부결로 끝났다. ○49년 2월 민국당 창당 하지만 민국당은 동조자를 확보해 계속 이정권에 도전하는 공세를 펴나갔다.민국당 신익희의 국회의장직 진출로 민국당이 반 이승만세력을 한창 규합해 갈 즈음 6·25전쟁이 일어났다. 이로써 국회활동도 중단되고 정쟁은 사그러지는 듯 했으나 이승만측의 정권에 대한 욕심은 굳건했다.전쟁중에도 민국당이 차지한 의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선거를 치르기 위한 직선제 개헌에 불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이어 청·장년들을 강제징집·수용해놓고 간부들은 돈을 횡령한 ‘국민방위군사건’과 ‘거창양민학살사건’을 겪으며 정부불신임이 팽배해지면서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는 마침내 이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야당 국회의원들을 마구 잡아들인 ‘부산정치파동’으로 연결돼 반정부 물결이 거세게 일어났다. 당시 문헌들에서 한민당은 흔히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의 수호자로,또한 이승만의 독재적인 행정부 권력에 맞서는 의회 특권의 수호자로 묘사돼있다. 그러나 한민당은 사실상 토지와 지방권력등을 대변하는 기관으로 군림했으며 재원의 분배와 부의 통제를 둘러싸고 중앙 행정권력과 투쟁을 벌일 뿐이었다. ○6·25중에도 개헌 추진 미 중앙정보국(CIA)은 당시 한국 국회를 대한민국 내의 ‘민주주의 정신의 터전’이고 흔히 입법부에서의 논의가 정부관리들과 가열된 공방을 야기시켰다고 파악했다. 그런데 이 국회가 ‘서구의회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며’ 집행부에 대해서는 전혀 효과적인 억제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승만의)‘보나파르티즘’(Bonapartism)에 어떤 장애도 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한민당은 민주국민당으로 변신해서도 국가관료의 고위지도부에 계속 참여했다.49년초 도지사,시장,군수등의 명단은 45∼46년 지방관리들의 명단과 놀라울 정도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한민당이 야당으로 자리매김했으면서도 이승만정권의 정책에는 동조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한민당은 이승만의 보수주의적 반공노선에 동조함으로써 혁신 세력들을 견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러면서도 자기 지분을 늘리기 위해 6·25전쟁의 소용돌이속에서도 의원내각제 개헌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이는 CIA가 50년 당시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경쟁’은 ‘보수지도자들 사이에서만 존재했다’고 평가한데서도 알 수 있다. 한민당은 수많은 당명의 교체속에서도 현재까지 한국 야당의 명맥을 이어준 ‘뿌리’로 치부되고 있다.그러나 첫 야당이 보수세력에 지나치게 기댐으로써 지금까지 한국정치에서 야당의 성격을 보수로 규정하게 만드는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야 한민당 관료기구 주도”/49년 미 관리 작성 ‘남한정세 조사’ 보고서 확인 이승만정권시기 관료기구에서 한민당의 주도성과 한계는 1949년 3월 미국관리 맥도널과 로지엘이 직접 대한민국 전역을 여행하며 작성한 ‘남한 정세의 조사’라는 보고서와 미국무부 문서 등 당시 문헌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한 정세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각 지역의 도지사·시장·군수 등은 1945∼46년 미군정기 지방관리와 거의 일치함을 보여준다.한민당이 이승만정권에 대한 투쟁을 선언했으면서도 관료기구를 주도했던 것이다. 한민당 후신인 민주국민당도 역시 ‘산업가 및 지주들’의 후원을 받는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정당이었다.따라서 이승만정권과 이들 야당세력 사이에는 ‘권력을 향한 경쟁 이외에는 모든 것이 부차적’이었으며 ‘내부 파벌투쟁 또한 강력해 하찮은 자극에도 당을 뛰쳐나가게’ 만들었다.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의 야당은권위주의적 통치권을 획득하려는 노력에 의해 움직여졌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체질적 요소가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미 공문서 기록관리청(NARA) 국무부 일반문서중 50년총선관련자료(Developments concerning the 1950 general election)에 따르면 당시 한국 정당의 정강은 유교체제탓인지 정부에 대해 온정적 시각을 담고 있다고 표현돼있다.게다가 당시 이는 정강자체는 의미없는 것으로 여겨져 부실한 정당정치를 알 수 있다.이들간에 이데올로기의 차이도 권력투쟁에 있어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민국당과 대한국민당 양대정당 사이의 주요한 이슈는 민국당이 행정부에 반대하고 국민당은 지지한다는 차이,그것으로 족했던 것이다.국민당 당수 윤치영도 주한미대사관 관리에게 개인적으로 “우리 당과 민국당의 위치에 큰 차이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또 민국당은 자유주의를 공언했으나 산업가,지주 등의 지지를 등에 업어 보수정당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 판사 비리 발표 이모저모

    ◎검찰수사 등 사건확대 우려 ‘자체 중징계’ 강조/“품위손상 고려 서면조사 활용”… 조사 미진 인정 의정부 지원 판사들의 금품 수수 사건의 조사 결과를 발표한 안용득 법원행정처장은 검찰 수사 등으로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한 듯법원 차원에서 엄정하게 조사하고 있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그러나 발표문 곳곳에 법관의 명예가 손상될 것을 우려한다는 내용이 눈에 띄는가 하면 일부 관계자들은 기자회견 자체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듯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이날 공개된 내용은 조사 결과라고 하기가 무색할 만큼 알맹이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발표문은 장황했지만 주로 송구스럽다거나 철저히 조사하고 있다는 추상적인 내용이 주종을 이루었고 그동안 언론에서 제기한 내용을 확인하는 차원이었다. 이에 대해 변재승 법원행정처 차장은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으며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뒤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그러나 한 관계자는 “법관의 품위와 신분이 훼손하지 않도록 주로 서면조사 등을 활용했다”고 털어놓아 조사가 미진했음을 시사했다. ○…특히 사법처리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금품수수의 대가성 부분은 사실상 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법원 관계자는 비리 판사가 돈을 준 변호사의 사건을 맡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직 그런 부분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혀 ‘철저한 조사를 벌였다’는 발표문을 무색케 했다. 특히 안행정처장은 “명예를 생명으로 하는 법관이 징계절차에 회부된다는 것 자체가 치명적인 일”이라고 말해 법원 자체의 징계로 사건이 마무리되길 바라는 눈치였다. ○…판사들이 온라인을 이용해 금품을 수수한 것은 ‘직접 받기에는 거리가 멀어서’라는 이유 등 단순히 편의를 위해서였던 것으로 알려져 이들이 아무런 문제 의식이나 거리낌 없이 돈을 받아왔음을 반증했다. ○…징계위원회의 위원장은 대법원장이 되고 징계위원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대법원은 그러나 법률상 판사는 탄핵에 의해서만 파면할 수 있어 정직 또는 감봉이 가장 중한 징계라고 밝혔다.따라서 징계 대상판사가 사직하지 않으면 재판을 맡기지 않고 일반 행정직으로 전보할 방침이다.
  • “수사착수는 검찰이 판단할 문제”/안용득 법원행정처장 문답

    ◎대가성 있는 금품수수는 아닌 것으로 판명/판사가 변호사에 ‘실비’받는 관행 부인 안해 안용득 법원행정처장은 20일 의정부지원 판사와 변호사 사이의 금품수수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금품수수와 관련,법관이 징계에 회부되기는 사법 사상 처음”이라면서 “그러나 이번 발표가 사건의 종결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생각은. ▲아직 없다.대법원에서 그런 의견이 소수 있었지만 사법부의 자율권이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생각이다.징계위원회를 통해 범죄사실이 들추어진 뒤에 이어지는 검찰의 수사착수는 검찰의 판단이라고 본다. ­돈이 오갔는데 대가성을 염두해둔 뇌물이 아닌가.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대가성 있는 금품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지금까지의 조사방향은 법관의 품위와 법원의 명예를 손상한 부분에 대한 것이었다.앞으로 징계위원회를 통해 대가성이 있었던 금품이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질 것이다. ­판사가 변호사로부터 실비를 받는 것은 전국적인 관행인가. ▲전국적인 관행이라는국민적 의문을 부인할 수는 없다.그러나 현재까지 의정부지원외의 다른 곳에서 실비가 오갔다는 구체적 단서가 확보돼 있지 않다.이번 사건으로 사법부내의 많은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발표에 국민들이 수긍할 것으로 보는가. ▲발표는 현재까지 대법원이 조사한 내용에 불과하다.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면 그것에 상응하는 조치가 뒤따를 것이다.오늘의 발표가 사법부가 제시한 최종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달라.앞으로 있을 징계위원회에서 더욱 구체적인 내용들을 다룰 것이다.
  • 총리 인준 타협하라(김호준 정치평론)

    ○여야 모두 절박한 입지 타툼 새 정부 출범일이 다가오면서 ‘JP총리’ 인준문제를 둘러싼 정치권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거대 야당 한나라당은 ‘JP총리 반대’를 당론으로 굳힐 태세다.반면에 신여권은 “난국타개에 야당이 협조해야 한다”고 한나라당을 압박하며 ‘JP총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여야는 새 대통령 취임일인 오는 25일 국회에서 이 문제를 놓고 격돌할 판이다.만일 국회가 JP총리 임명안을 거부한다면 정치권은 물론 온 나라가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다. 신여권은 ‘JP 총리’는 지난 12·18 대선에서 이미 국민동의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DJP 공동집권을 대선 최대공약으로 내걸어 승리했기 때문에 JP총리 임명동의는 국민의 뜻이라는 것이다.그러니 야당은 군소리 말고 JP총리 임명안을 지지하라는 것이다.아니면 각개격파하겠다는 것이 신여권의 으름장이다. 물론 한나라당측 입장은 그게 아니다.‘JP총리’는 DJP의 내부합의일 뿐 존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더구나 3김청산을 대선공약으로 내건한나라당이 IMF 시대에 역행하는 구태의연한 ‘JP총리’를 어떻게 인정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다.한나라당의 대통령제 고수 입장도 내각제 추진공약을 내건 JP를 거부하는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 헌정사를 돌아보면 총리가 국회에서 인준을 거부당한 사례가 몇차례 있었다.하지만 그 파장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총리는 2인자인 때문에 임명안이 부결되면 제2,제3의 대안을 내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JP총리’가 거부될 경우 대통령만 있고 총리와 내각은 없는 기형적인 정부가 일시 존재하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새 정권은 DJ와 JP의 공동정권이다.‘JP총리’는 대통령의 일방적 지시를 받는 ‘대독 총리’가 아니라 독자적 정치세력을 대표하는 파트너이다.공동정권의 한 축인 JP가 무너지면 DJ의 국정운영이 심각한 타격을 받는 것은 물론 정권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정이 절박하기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물론 이 경우는 역의 상황이다.JP총리의 등장은 한나라당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다.지금 구여권에선 신여권으로 이적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다만 국민회의로 바로 가기엔 정서가 맞지 않아 주저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그런 참에 JP총리가 등장하면 때를 만났다는 듯 자민련행이 밀물을 이룰 것이란 전망이다.특히 충청권과 TK지역의 동요가 심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JP총리’인준문제는 단순히 총리로서의 적격여부를 확인하는 통과의례가 아니다.여야 모두에게 사활적 문제가 걸린 입지 다툼이라고 보아야 한다.부결되면 DJP 정권이 흔들리고,통과되면 한나라당이 와해위기에 몰리는 제로섬 게임과도 같은 것이다.따라서 이 문제는 우리가 다당제를 인정하는 한 여야 모두의 입지와 공존을 보장하는 바탕에서 원만한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지금은 ‘IMF 해법’ 찾을때 특히 지금은 오직 ‘IMF 체제’극복에 국력을 결집할 때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강력하게 형성돼 있는 때다.이런 국난극복의 뜨거운 의지 때문에 한국은 국제사회로부터도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고있다.만일 여야가 대결정치의 재연으로 이 분위기를 깨뜨린다면 그처럼 망국적인 행위도 없을 것이다.정치권은 경제난 타개에 모아진 국민 의지를 손상시키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게 행동할 때다.그러자면 우선 정치권의 최대현안인 ‘JP총리’문제를 격돌없이 처리하는 지혜부터 발휘해야 할 것이다. ‘JP총리’문제의 원만한 해법으로는 다음 두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첫째,JP의 초대 총리직 사양이다.물론 그 대안은 한나라당이 수용할 수 있는 자민련 인사라야 할 것이다.그래야 DJP의 약속도 지켜지고 새 정부의 출범도 순조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앞으로 정계개편이 자연스럽게 진행돼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다수당으로 부상하면 그때 JP를 총리로 옹립하라는 것이다.그러나 이 방안은,국민회의와 자민련이 과연 다수당이 될지도 두고 볼 일이려니와 당사자인 JP가 그럴 뜻이 없고 신여권도 이미 ‘JP총리’임명 강행방침을 굳혔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내각제 유보’ 천명 고려를 둘째는,DJ가 “JP총리’임명과 내각제 추진은 무관하다”고 내각제 유보를 천명하는 것이다.DJ의 진의가 무엇이든 많은 사람들에게 JP총리 임명은 지난 대선때 DJT연합이 공약한 내각제 개헌으로 가는 수순으로 받아들여 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일 지금 내각제 개헌론이 부상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권은 금방 격렬한 찬반공방과 어수선한 이합집산으로 벌집 쑤셔놓은듯 혼란에 휩싸일 것이 분명하다.또 DJ는 취임초부터 레임덕 현상에 부딪칠지 모른다.이렇게 되면 정치안정과 국민화합을 전제로 한 IMF체제 극복노력은 내부적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내각제 추진 유보는 한나라당에 대해 입장선회의 명분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난국타개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고려할 만한 대안이라고 하겠다.이런 대안이 성립하려면 한나라당도 ‘JP총리 반대’를 경직된 당론으로 굳히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 교수임용절차 강화/윤리위 내일 발족…비리 방지/서울대 선우 총장

    서울대는 17일 치대 구강외과 교수 임용비리사건과 관련, 오는 19일 교수윤리위원회를 발족해 교수 윤리규범의 제정 및 품위손상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고 교수 신규임용과 학사행정 전반에 대한 적극적인 검증절차와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서울대 선우중호 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교수윤리위원회를 발족시켜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윤리기준을 정하고 그에 위배되는 경우,자율적으로 규제해 나감으로써 한층 높은 교수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겠다”고 말했다. 선우총장은 “앞으로 서울대는 이번의 상처를 깨끗이 씻고 어떠한 비리나 물의가 빚어지지 않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서울대는 이에 앞서 구속수감된 김수경 김종원 남일우 교수 등 3명을 직위해제하는 한편 교육부에 파면이나 해임 등 중징계를 요청했다.
  • 주초 청와대 등 외환특감 본격화

    ◎구제금융 요청 건의·묵살경위 규명 초점/강 전 부총리 이어 이달 말 YS 서면조사 감사원의 외환·금융위기 특감이 16일부터는 중반전에 돌입한다.감사원은 지난달 30일부터 실시된 17일동안의 특감에서 총론적인 차원에서 경제전반을 살펴보면서 ‘환란’의 원인을 점검했다.기관별 현장감사 결과의 취합작업은 주초에 끝난다. 이제부터는 각론적인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환난 원인 규명작업이 벌어진다.특감의 대상이 ‘권부’인 청와대까지 확대된다.감사원은 청와대에 감사장을 설치하지는 않지만 주초의 1∼2일 정도 현장감사를 실시할 예정이다.부처 특감의 마지막 수순이다. 청와대 조사에 이어 기관별 특감 방식은 개인별 조사로 바뀔 전망이다.이번주말쯤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이경식 한은총재·김인호 전 청와대경제수석 등에 대한 조사방침도 같은 맥락이다. 조사 방향의 윤곽도 대체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알려진다.가용외환보유고의 허위 보고,한은의 IMF구제금융 요청건의와 재경원의 묵살 등으로 모아진다.강전부총리는 “국가적 체면 손상을 우려해 IMF자금 지원을 지연시켰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국가적 중요사태를 몰고 올 수 있는 사안을 놓고 우물거렸다는 사실은 직무유기 또는 직무태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가용외환보유고 보고도 마찬가지이다.환난직전인 지난해 10월말 2억달러를 태국에 지원한 것도 경제전망과 대처 미숙의 여지가 있다. 감사의 마지막주인 23∼28일은 문답서 작성 등 그간의 조사를 총정리,결론을 내리는 시기이다.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서면질문도 이즈음 실시될 가능성이 있다.
  • 미 칼럼니스트 짐 호글랜드 IHT지 기고 요지(해외논단)

    ◎클린턴 대이라크 정책 ‘우유부단’ 이라크의 무기사찰을 둘러싼 미국과 이라크의 긴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빌클린턴 미 대통령은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유럽과 중동지역에 파견,국제지지세력확보를 위한 외교노력에 더 한층 힘을 쏟고 있다.이라크 사태를 외교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유화론과 함께 클린턴 행정부의 우유부단한 정책을 강하게 비난하는 대이라크 강경론 또한 만만찮다.칼럼니스트 짐 호글랜드가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기고한 ‘대 이라크 작전에서 주저하는 클린턴’제하의 글을 소개한다. ○부시정권 결단력 배울것 외교력을 통해 이라크 사태가 해결되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클린턴 미행정부는 최근 대 이라크 군사행동이라는 작전에서 한발짝 비켜나고 있다.그러나 클린턴의 이같은 후퇴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막바지에 몰려 제시할 수도 있는 어떤 ‘거래’의 가능성을 옅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라크 정책과 관련,클린턴 대통령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이라크 민간인들을 대량 살상하고 미국에도 손실이 따르는 대공습을 할 것인지,아랍권과 유럽의 비난을 최소화 할 수 있는 표면적인 공격에 그칠지 사이에서. 클린턴은 사담 후세인과 자신 둘 다에게 큰 상처를 주지않는 중간선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클린턴의 측근들은 클린턴 대통령이 이라크 공격시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이 이라크 민간인들의 희생이며 다음이 아랍권의 비난이라고 밝히고 있다. 클린턴은 최근 르윈스키양과의 섹스스캔들로 인해 정책결정에 집중을 못하고 대 이라크정책에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왔다.따라서 클린턴 안보팀은 부시정권이 지난 91년 이라크위기시 보여준 것과 같은 단호한 결단력과 해결책을 내세우지 못했다.부시와 짐 베이커는 당시 ‘사막의 폭풍’작전을 감행하면서 상당한 국제적지지와 비용분담까지 얻어냈다. 부시 당시 대통령은 유럽과 아랍 러시아 일본은 미국이 압도적인 무력을 사용할 것을 결정했을 때에야 미국에 협력한다는 것을 알았다.그러나 최근 사태에서 클린턴은 반대의 메시지로 이들 나라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그의 안보팀은 이라크에 대해 최대한의 손상을 입힐 군사적대응을 준비하기 보다는 유약하기 그지없는 정치적 연대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말 독일 뮌헨을 방문한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이 이같은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그는 걸프에 파견됐던 니미츠항모를 버지니아의 연례임무를 위해 철수 시키겠다고 밝혔다.니미츠항모를 대신한 인디펜던스호는 선령이 노후할 뿐더러 화력도 약하다. ○외교작 노력 실패 불보듯 코언 장관은 또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서도 미군의 전력이 더 소비된다 할지라도 사우디 내 미군기지 사용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클린턴 대통령 안보팀이 설득력과 결단력, 그리고 사우디를 대 후세인 반대선에 이끌어내는 힘을 모두 결여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지난 50여년 동안 위기의 시기에 미국이 사우디를 미국편에 서도록 노력해온 것을 헛되이 한 것에 다름 아니다. 코언 장관은 뮌헨 안보장관 회의에서 핵심을 벗어난 발언으로 참석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그는 사담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를 논의하면서피마자씨 추출물이 살상 독약의 원료이며 이라크인들의 수백 에이커의 피마자씨를 재배하고 있다고 말했다.참석자들은 미국이 곧 이라크의 피마자 밭을 공격할것이란 말인지,아니면 심오한 다른 뜻이 있는지 의아해했다.미 관리들은 미국 대통령의 결단력 부재로 인해 외교무대에서 미사여구만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의 목표가 무엇인지 헷갈리게 한다.클린턴 대통령의 국가안보 고문인 샌디 버거는 지금 계획된 대이라크 공격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사담 후세인에게 이번에 파괴되는 무기 시설을 다시 세울 경우 ‘‘우리는 또한번 공격할 준비가 돼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있다고 TV에 나와 밝혔다. 클린턴지지자들은 외교가 여전히 그들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그들은 군사적인 효과를 희생할 준비가 돼있으며,속임이 가능한 외교 동맹을 유지하고 외교력을 지지할 준비가 돼있다. 그러나 그 노선은 외교적으로도,군사적으로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 미 이라크 공습 강행땐/러,양국관계 손상 경고

    【모스크바 DPA】 이고르 세르게에브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공습이 시작된다면 미국과 러시아 두나라 관계에 손상을 주게 될것”고 12일 경고했다. 세르게에브 장관은 이날 러시아를 방문중인 윌리엄 코엔 미국방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경고했다.
  • 이 케이블카 추락…20명 사망/저공훈련 미군정찰기가 지지선 끊어

    【트렌토(이탈리아)·워싱턴 AP AFP 연합】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테산의 스키장에서 3일 저공훈련중이던 미군 정찰기가 케이블카 지지선을 끊는 사고를 일으켜 케이블카가 추락,최소한 20명이 사망했다. 구조요원들은 독일인 7명,헝가리인과 폴란드인이 각각 2명을 포함해 20명의 사망자가 인근 트렌토시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밝혔다. 사고를 낸 EA­6B 프라울러기는 아비아노 소재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기지의 보스니아 평화 감시를 위한 정찰임무를 지원키 위해 파견돼 저공훈련을 하던 중 80m 상공에서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 운항중이던 다른 케이블카 1대가 공중에 매달린 채 추락 위험에 직면해 있었으나 구조요원들이 헬기를 동원해 땅으로 안전히 유도했다고 경찰이 밝혔다. 사고기는 꼬리부분에 경미한 손상을 입은 채 아비아노기지로 무사히 귀환했다.아비아노기지 사령관 티머시 페프 준장은 사고원인이 규명될 때까지 모든 미군기의 저공비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 중 위안화 평가절하 우려 확산

    ◎일부 전문가,성장률 둔화 등 근거로 “곧 단행”/“세계 대공황 초래” 중 정부 단행가능성 일축 중국이 위안화를 평가절하하리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날이커지고 있다.급격한 위안화 평가절하가 세계경제에 미칠 파괴력이 엄청나리라는 전제 때문이다. 경제전문가들이 위안화 평가절하가 곧 있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첫번째 근거는 중국의 수출 경쟁력 약화 조짐이다.최근 동남아 통화들이 약세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위안화가 평가절상됐고 그만큼 중국의 수출 경쟁력이 손상을 입었다는 것이다.전문가들은 일례로 94년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함으로써 한해전 1백22억 달러 무역적자가 54억 달러 흑자로 돌아섰음을 주목하고 있다.무역수지와 관련,중국은 지난해 4백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으나 올해는 흑자폭이 2백50억 달러에 못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위안화 평가절하 가능성을 점치는 또 하나 중요한 근거는 올해 중국의 성장률 둔화 전망이다.일부 중국경제학자들은 올 성장률이 6%대에 머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밖에 중국경제 성장의 중추기능을 담당해온 일본 등으로 부터의 외국인투자 감소세,위안화의 달러화에 대한 암달러 환율과 공식환율의 괴리(30%)등도 위안화의 평가절하 유혹을 부추기는 요인들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위안화가 평가절하될 경우 분석가들이 상정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세계경제 대공황으로의 귀결이다.그에 앞서 동남아 통화가 또다시 하락,금융위기가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심화되고 이는 다시 엔화 폭락,미국의 주가 폭락을 초래한다는 것이다.이럴 경우 어렵사리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동남아국가들은 외국투자자본의 대거 철수로 지금보다 더 큰 환란에 빠지리라는 전망이다. 이런 우려를 반영,미국 IDEA 컨설팅 그룹의 경제분석가 조시 스타일즈는 3일 위안화의 평가절하가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과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게 최악의 악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서방 경제전문가들은 끊임 없이 중국정부에 위안화를 평가절하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정부는 다보스 경제포럼 등을 이용,아직까지 ‘평가절하는 없다’는 일관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일부 분석가들도 중국이 1천4백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고 외국인 직접투자가 생산시설에 집중된 장기투자라는 점 등 동남아 국가와는 다른 장점을 갖고 있음을 들어 급격한 위안화평가절하가 단행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 미 30년만에 재정적자시대 마감/흑자예산 배경·전망

    ◎경제 8년째 호황 자신감 바탕 둔 청사진/공화 “세수줄이자” 당론… 의회통과 장애로 【워싱턴〓김재영 특파원】 미국의 흑자재정은 꼭 30년만의 쾌거이기도 하지만 또 바로 1년전에도 생각하지 못한 기분좋은 ‘돌연’ 사태다. 클린턴 대통령이 2일 발표한 99 회계연도의 흑자재정 예산안은 엄밀히 말해 의회가 통과시켜줘야 실행되는 행정부의 계획에 불과하다.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야당 공화당은 ‘세금 덜 걷고,국가 사업 적게 벌이자’는 노선임에따라 행정부의 흑자재정안을 국가사업 우선주의의 여당인 민주당보다 더 환영하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빚내지 않고 거둬들인 세금 내에서 연방정부 일을 모두 하자’ 는총론에는 행정부와 공화당이 생각이 같지만 각론에서는 첨예하게 대립하고있다.그래서 오는 9월 30일의 통과시한까지 미 행정부와 의회는 8개월동안 흑자재정이란 ‘좋은’계획을 놓고 피나는 싸움을 벌일전망이다.흑자재정의 대원칙은 손상되지 않겠지만 14개 관련법안에 담길 행정부 예산안은 심한 변형을 겪게 될 것이다. 69년 흑자재정 이후 미국은 계속 세금을 웃도는 적자예산을 집행해 현재국가채무가 세계최대인 5조3천억달러에 이른다.8조달러의 국내총생산 규모에서 99년도 예산안 총액은 1조7천3백억달러인데 이중 2천5백억달러가 이 누적 국가채무의 이자지불로 계상되어 있다.재정적자가 무려 2천9백억달러에 이른 직후 첫취임한 클린턴 대통령은‘균형재정을 이루는 기반을 닦은’대통령이 될 의지를 여러차례 피력했다. 그러나 재정적자는 계속됐고 40년만에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의 2002년 균형재정달성요구와 맞서 96년초 연방정부 기능폐쇄 사태까지 일어났었다. 협상끝에 2002년 균형재정 법안은 지난해 8월 통과됐는데 묘하게 이 법 통과 직후부터 월별기준으로 균형재정이 이룩되고 말았다.97년도 예산을 짜면서 정부와 의회는 그해 1천억달러의 적자가 날 것으로 전망했으나 실제는 2백20억달러에 그쳤다.올해는 단 50억달러만 난다고 전망하고 있는데 1년전만해도 98년도 예산적자 추정치는 무려 1천2백억달러였다. 이같은 결과는 8년째 호황 기조인 미 경제가 갈수록 상승세를타 세금이 예상외로 많이 걷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화당은 이제 세금을 덜 걷자는 쪽으로 99년도 예산안을 밀고 갈생각이다.그러나 행정부는 흑자기조 속에서 사회복지 사업의 확대를 꾀할 방침이어서 양자의 대립은 여전한 상태다.
  • “한국,대만과 관계개선 추진 대표단 파견 구상무역 제의”

    ◎대만외교부·중국시보 【타이페이 AFP AP 연합】 타이완(대만)은 26일 한국이 지난 92년 8월 중국과의 국교 수립 이후 손상된 양국관계 개선을 위한 움직임에 환영을 표시했다. 타이완은 그러나 한국의 유화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저준위 방사성 핵폐기물 북한 수출계획을 당초 예정대로 강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타이완 외교부는 이날 한국 정부가 지난 16일 타이완에 대표단을 파견한 사실을 확인하며 이같이 말했다.외교부의 한 대변인은 “타이완 정부는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유의하고 있다”고말하고 그러나 한국 대표단과의 구체적인대화 내용에는 언급을 회피했다. 이와 관련,타이완의 중국시보는 한국 대표단과 타이완 정부측이 국교단절로 중단된 한국­타이완간 항로 부활과 과일 구상무역 재개에 대해 협의했다고 보도했다.이 신문은 건설교통부 국장급을 단장으로 하는 10여명의 한국 대표단이 김대중 정권이 정식 발족한 후 과일 구상무역 재개를 제의했다고 전했다.
  • 여드름 흉터 제거 수술/김석화(전문의 건강칼럼)

    여드름은 사춘기의 심벌.하지만 30,40대의 여성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남성 등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피지가 많이 분비되는 얼굴,목,가슴 등 부위에 잘 생긴다.여드름은 여드름 자체보다 여드름이 사라진 뒤에 남는 흉터가 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외모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즈음 여드름 때문에 생기는 흉터는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다. 여드름 흉터는 가벼운 것도 있지만 심하면 마치 천연두 자국을 방불케 할 정도라 흉터를 없애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 레이저를 이용한 시술이 속속 선보이는 등 흉터 치료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특히 청소년기를 지낸 젊은이들에게 희소식이 되고 있다. 레이저를 이용한 흉터 치료는 과거에는 푹 파여진 요철면의 옆을 깎아내 평평하게 해주는 기계적 박피술이 주종을 이루었다.그러나 최근 레이저의 발전에 힘입어 표면이 푹 파여 요철이 심한 경우 파인 부위를 레이저로 깊이 뚫어주면 새로운 조직이 차올라와 평평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물론 이때 깊이가 균일하고 주위 조직에열손상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이제는 레이저 에너지의 강약을 조절해 원하는 만큼만 균일하게 시술할 수 있어 여드름 흉터 치료가 크게 진전했다. 여드름 흉터 제거에는 약물을 이용하는 화학적 박피술도 있다.이 시술은 TCA라는 약물을 흉터 부위에 발라 피부를 벗겨내는 것이다.약물을 투여하면 깊은 경우 진피층 상부까지 녹아내려 진피에서부터 피부가 재생되는 것이다.대개 1주일에서 2주일 뒤면 상처가 아물고 벗겨낸 피부는 처음에는 불그스레한 색을 띠다가 2개월에서 4개월 뒤면 얼굴색과 조화된다. 따라서 이 시기에 햇빛을 쪼이면 검게 변하므로 조심해야 하는데 자외선을 막아주는 선크림을 발라 예방하고 있다. 여드름 흉터는 약물치료만으로는 환자에게 만족을 주기가 힘들다.따라서 최근에는 먼저 약물로 치료한 뒤 레이저를 이용하는 시술이 주로 이용되고 있다.
  • 자연보호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미국의 대통령 문화:9)

    ◎도약의 20세기 연 ‘공익의 조정자’/트러스트 해체 등 대기업 부당행위에 철퇴/포츠머스 조약 중재… 미 최초의 노벨상 수상/역사·자연·여행·정책관련 등 저서 38권 남겨 【메도라(미 노스다코타주)=나윤도 특파원】 ‘컬러드(colored canyon) 캐년’.미중부 대평원 북단 노스다코타주의 서쪽끝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은 시어도어 루즈벨트 국립공원 초입에 위치한 이 거대한 골짜기는 이름 그대로 형형색색의 띠를 두른 바위산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신비의 조화를 이룬다. 남북 다코타주의 남북을 가로질러 흐르는 미주리강의 지류인 리틀미주리강을 따라 색동 바위의 군무를 연상케 하는 비경이 루즈벨트 컨트리가 된 내역은 이 공원의 입구에 해당하는 인구 100명의 소읍 메도라에 들어서면 이내 알 수 있다. 루즈벨트가 3년간 머무르던 ‘말티즈크로스’통나무집 앞에 세워진 그의 기념관에는 자연보호 대통령인 그의 생활에 관한 자료들과 함께 미국의 자연보호역사가 다양하게 전시돼 있어 다코타의 황량한 벌판을 달려온 여행객들에 컬러드 캐년의장관과 함께 위대한 대통령과의 만남이라는 기쁨을 선사해 주고 있다. 미 26대 태통령으로 미 역사상 도약의 시대인 20세기를 연 그는 저술가,언론인,등산가,카우보이,전쟁영웅,노벨 첫 수상자 등 미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타이들을 보존하고 있을만큼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그같은 루즈벨트의 업적에 대한 설명이 다코타에서 시작하는 것은 젊은 시절 이곳에서의 경험이 그의 정치철학이던 ‘공익정신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뉴욕 맨해튼 출신인 루즈벨트는 1884년 2월14일 발렌타인데이에 23세의 젊은 부인 앨리스와 부친을 한날 병으로 잃은 슬픔을 이기기 위해 컬러드 캐년으로 훌쩍 떠나 왔다.이곳 목장에서 카우보이 생활을 하며 갖게 된 자연의 애착과 그것들이 방치된 채 손상돼가는 안타까움이 후에 그가 대통령이 된 후 국립공원 시스템을 창안하게 했다는 것이다.이는 오늘날 미국이 많은 자연을 원형대로 보존할 수 있었고 또 엄청난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 큰 업적으로 꼽힌다. 그의 공익정신이 유명해진 원인은 취임후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대기업 조정정책 때문이었다.남북전쟁이후 급격한 산업발전은 미국의 경제를 과거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팽창시켰고 문명기기의 발달로 국민생활을 몰라보게 바꿔놓았지만 그 발전의 뒤안길에 만연돼 가는 각종 병폐는 미국 사회를 엄청난 불평등의 사회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특히 당시 가장 크게 대두된 문제는 대기업들의 횡포였다.철도 철강 석유 등 분야에서 통합과 독점을 통해 경제권을 장악한 기업인들은 정치인들과 언론까지 돈의 힘으로 매수,자신들에 유리하게 이끄는 등 국민 전체의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민주주의를 심각한 위협에 빠지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19세기말 20세기초 미국내에는 사회 도처에 만연된 부정부패 일소와 진정한 민주사회로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지고 있었다.루즈벨트의 공익정신은 이같은 시대적 요구와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당시 부통령으로 있다가 1901년 9월14일 대통령의 암살로 예기치 않게 대통령이 된 그는 “연방정부는 어떤 특별한 세력의 대변자가 아니다.바로 공익의 조정자가 돼야만 한다.또한 대통령은 바로 이같은 조정자의 중심인물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강조,대기업 병폐의 치유에 대통령이 직접 개입할 것을 천명했다. 루즈벨트의 정책 핵심은 대기업들의 부당행위를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그 결과를 국민들에게 공개할 수 있는 힘을 정부가 갖도록 하는 것으로,우선 악명높은 몇몇 기업의 통합을 해체시키는데 주력했다. 그 첫대상은 철도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하고 있던 북부증권회사였다.당시 미 최대의 금융가 J.P 모건과 철도업자 제임스 힐이 공동으로 만든 막강한 파워를 가진 이 회사에 대해 손을 댄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다.그러나 루즈벨트는 과감하게 법무부에 이 회사에 대한 셔먼 트러스트 금지법위반 여부 조사를 명령했다.모건과 힐이 이에 강력히 반발했으나 루즈벨트는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결국 2년후 대법원의 판결로 해산명령이 내려지게 됐다.그는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트러스트 해체에 나섰으며 반발하는 기업인들에게 “만일 대기업들이 정부가 불법이라고 간주한 무엇인가를 행해 왔다면나는 그것을 끝까지 척결해 버릴 것이다”,“부패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부패기업들에도 칼이 필요하다”는 등 강경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노동문제에 있어서도 그동안 노사분규시 일방적으로 고용주 편을 드는 것으로 돼 있던 정부의 입장을 노동자의 입장도 동동하게 고려하는 방향으로 바꿨다. 이같은 그의 온건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는 과격한 변화를 반대하는 대다수의 미국인들을 만족시켰으며 1904년 압도적 지지로 재선 대통령이 되었다. 루즈벨트는 대외적으로 미국의 위상을 제고,국제사회의 지도국으로 부상케 했다.파나마를 콜롬비아에서 분리독립시키고 파나마 운하를 완성시킨 것은 중요한 그의 업적의 하나로 지적되며 1905년에는 러·일 전쟁 당시 양국 대표를 뉴햄프셔의 포츠머스로 불러 평화조약을 중재하기도 했다.이같은 그의 국제평화 노력은 이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미국에 첫 노벨상 수여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1858년 뉴욕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하버드에서 수학한 루즈벨트는 24세때 뉴욕주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진출,뉴욕경찰국장,해군부 차관보를 역임했다.또 1898년 미·스페인 전쟁 발발시에는 의용기병대 대장으로 참전,산 후안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전쟁영웅의 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후 뉴욕주지사에 당선됐으며 1900년 선거에서 매킨리 공화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출마,부통령이 된 후 8개월 만에 42세의 나이로 미국 사상 최연소 대통령에 취임했다.그는 21세때 첫 저서인 ‘1812년 해전’을 발간한 이래 역사,자연,여행,정책관련책 등 38권을 펴내 미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저서를 남겼다.또 대통령 퇴임후 10년간 ‘The Out look’이라는 잡지의 편집자 등 언론인 생활도 하고 아프리카 사냥여행,브라질,정글 탐험을 했으며 새로운 정당을 결성,정치적 재기를 꿈꾸기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도을 하다가 1919년 60세의 나이로 롱 아일랜드의 자택에서 생을 마쳤다. 라이딩스의 대통령 랭킹에 따르면 는 종합순위 5위를 나타내 2위를 기록한 제 32대 프랭클린 루즈벨트(12촌간)와 함께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다. ◎수잔 사르나 루즈벨트박물관 큐레이터/백악관 역사상 첫 흑인 초청/애칭 딴 ‘테디 베어’ 곰인형 인기/미국 이상적 남편·아버지의 전형 【오이스터베이(미 뉴욕주)=나윤도 특파원】 루즈벨트 대통령의 사적지인 사가모어 힐은 뉴욕 롱아일랜드 오이스터베이 언덕에 위치해 있으며 사저와 박물관,당시 농장건물 등이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다.이곳 박물의 수잔 사르나 큐레이터는 “아직까지 그가 대통령같다”며 설명에 들어갔다. ­루즈벨트가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남북전쟁 이후 19세기말 30여년 대통령들이 지나치게 무능했고 기업들에 매수되다시피해 땅에 떨어졌던 대통령직의 권위를 되살렸기 때문이다.그리고 부통령에서 승계한 대통령의 경우 그때까지는 대부분 잔여임기만 때우는 식이었는데 그는 그같은 관행을 종식시켰다. ­그가 애칭으로 많이 불리는 이유. ▲미 역사상 가장 젊은 대통령이었고 또 최초의 현대적 대통령으로 친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그래서 TR이라는 이니셜도 처음으로 사용됐다.또 애칭 테디(Teddy)가 광범위하게 불렸으며 그를 딴‘테디 베어’라는 곰인형은 지금까지도 어린이들에게 유명하다. ­루즈벨트의 가족관계는. ▲첫 부인 앨리스와 1녀,소꿉친구로 두번째 부인이 된 에디트와 4남 1녀를 두었다.무척 자상한 성격으로 미국의 이상적 남편,이상적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특히 전투기 조종사이던 막내아들이 1918년 프랑스 공중전에서 전사해 슬픔을 안겨 주었으며 그후 큰 아들이 노르만디 상륙작전에서 전사,1,2차 대전에 아들 하나씩을 잃은 아버지가 됐다. ­그의 성품은 어떠했는가. ▲상당히 개방적이고 진보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대통령 취임직후 백악관 첫 손님으로 흑인 지도자였던 부커 워싱턴을 초청했던 것은 유명하다.백악관 역사상 첫 흑인 초청을 놓고 남부 정치가들로부터 반감을 사 고전하기도 했다.그는 사냥 등산 등 야외생활을 좋아하면서도 틈만 있으면 책을 읽었으며 6천여권의 장서를 남겼다.
  • 국회 본회의 이모저모/뒤바뀐 공수… 불꽃튄 설전

    ◎한나라당­외채보증 국민부담·농가대책 추궁/국민회의­“흠집내기 중단·위기극복 동참” 촉구 21일 폐회된 제187회 임시국회 본회의는 여야가 뒤바뀐 의원들의 첫 설전장이었다.본회의에 앞선 5분 자유발언에서 국민회의 자민련 의원들은 한나라당의 경제실정 사과와 새 정부 흠집내기 중단을 촉구했다.반면 한나라당은 경제위기 책임론을 제기한 국민회의 방용석 의원의 발언을 놓고 긴급의총을 소집,본회의가 1차례 정회되기도 했다.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은 “우리 당 총재가 ‘새로 임명되는 총리는 참신하고 경제적 식견이 있어야 한다’고 하자 자민련에서 무서운 정치 운운하는 발언이 나왔다”면서 “무서운 정치가 한일어업협정 공동파기 밀약 등이냐”고 진의를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자민련 구천서 의원은 “김종필 명예총재는 일본을 방문해 우리의 외환위기를 호소하고 지원과 협력을 요청했으며 일본의 한·일어업협정 일방적 파기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철회하도록 요구했다”고 해명했다.구의원은 “우국충정을 곡해하고 국익을손상하는 적전분열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면서 “무서운 정치 운운하는데 오해와 해석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완구 의원은 “경제파탄의 위기에서 1백20만 농가는 5조5천억원의 추가부담을 져야하는데도 대책없이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이의원은 “대선 때 김당선자는 농어촌 부채경감을 약속했다”면서 현 정부와 김당선자는 농업인 대표를 즉각 만나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촉구했다. 이어 국민회의 방용석 의원은 “김영삼 정권과 한나라당의 실정으로 국민들이 눈물과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데도 한나라당 의원들은 죄지은 자가 아닌 채권자의 태도로 반성은 커녕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차기정권 흠집내기를 중단하고 경제위기 극복에 동참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본회의에 상정된 외채 국가보증동의안 처리에 앞선 찬반토론에서도 한나라당 홍준표 권오을 의원은 “국민이 민간은행과 기업이 진 빚을 보증하는 것은 국가위기의 모든 책임과 국민에게만 떠넘기는 것”이라는 반대발언을 해 공격수와 수비수가 바뀐 여야를 실감케 했다. ○…이날 하오 2시30분쯤 시작된 본회의는 50분여만에 정회됐다.한나라당은 의원총회를 소집해 방의원 발언에 대해 격결히 성토한 뒤 양당 총무의 사과를 받는 선에서 매듭짓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국가보증 동의안 처리에 대해선 김홍신 권오을 의원 등 초재선 의원들이 처리를 반대,표결 끈에 55대 16으로 동의안을 처리키로 결정했다. ◎외채국가보증 동의안 내용 ▲한국은행의 외화채무에 대한 보증=채권자는 외국의 중앙은행이며 채무자는 한국은행이 된다.올해 도입하는 만기 3년이내의 외화채무로써 80억달러이내의 원금 및 이자를 보증액으로 한다. ▲외국환은행의 외화채무에 대한 보증=채권자는 외국금융기관이며 채무자는 외국은행 국내지점을 제외한 외국환은행이 된다.올해 발생하는 만기 5년이내의 외무채무로서 70억달러 이내의 원금 및 이자를 보증액으로 한다.보증에 필요한 사항은 재경원장관이 정하고 보증내용에 대해서는 추후 국회에 보고토록 한다.
  • 힐러리 “그래도 남편…”/클린턴 성희롱 충격 부부애로 극복

    ◎“어떠한 공격도 그의 업적 손상 못해”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는 남편이 성희롱 혐의로 제소돼 지난 17일 6시간동안 증언한 것과 관련,“이 모든 것이 그의 업적을 손상시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남편을 두둔했다.또 자신은 이때 받은 정신적 충격을 부부애로 극복했다고 토로했다. 힐러리는 20일 AP 라디오방송과 CBS와 인터뷰에서 “남편의 역사적 지위와 국가에 대한 기여는 그에 대한 어떤 공격보다 가치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존스씨 사건을 화이트워터 스캔들에 비유하면서 “이는 아마 끝낼만한 계기가 없기 때문에 흐지부지한 상태로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의 증언 당일 상황에 대해 그녀는 “그날은 아주 바빴다.쌓인 일도 많았고,일주일동안 감기로 고생하고 있었으며 밀린 가사일을 했다”면서 남편이 증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려 함께 저녁을 먹고 영화를 봤다고 말했다.아주 즐거운 저녁 시간이었다는 설명이다. 클린턴 여사는 또 지난 일요일에는 함께 교회에 다녀오고 벽장 청소를했다고 덧붙이면서 “우리 부부가 받은 가정교육과 두사람의 쾌할한 성격이 큰 회복제가 됐으며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힐러리는 또 친구와 가족들이 있었기에 자신들은 진실과 진실이 아닌 것을 분간할 수 있었다고 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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