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손님
    2026-07-18
    검색기록 지우기
  • 모자
    2026-07-18
    검색기록 지우기
  • 선의
    2026-07-18
    검색기록 지우기
  • 단테
    2026-07-18
    검색기록 지우기
  • 검사
    2026-07-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0,889
  • “75만원 결제했는데 방 없다” 환불거절 대게집…‘반전’ 주장

    “75만원 결제했는데 방 없다” 환불거절 대게집…‘반전’ 주장

    “룸 예약하고 75만원 선결제…자리가 없으면 환불해줘야 한다”(손님) “예약시간보다 일찍 왔다. 난동까지 피웠다. 환불은 어렵다”(업주) 울산의 한 대게집에서 발생한 사건과 관련 네티즌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사전에 예약하고 찾아간 식당에 빈 자리가 없어, 수십만원의 결제 금액을 취소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식당 측은 손님이 예약시간 보다 일찍 왔고, 난동까지 피워 환불을 거절했다는 내용이다. 7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30일 장모님 칠순을 맞아 거제도 여행을 떠났다. A씨는 “울산의 한 식당에 가서 예약한 방이 있다고 해 결제했는데 막상 보니 방이 없어 음식도 먹지 않고 환불 요청했는데 거절당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A씨에 따르면 해당 식당은 1층에서 생물을 고르고 결제한 뒤 위층에서 상차림비를 별도로 내고 먹는 형태의 가게였다. A씨는 “대게를 고른 후 75만원 선결제를 하고 2층으로 갔는데 2층, 3층 전부 만석으로 자리가 없었다”며 “언제 자리가 날지 모르겠다 싶어 다른 식당에 가려고 카드 결제 취소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식당 측은 이미 생물인 게를 죽였기 때문에 환불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홀에 자리를 마련해 줄 테니 먹거나 포장해 가라고 했다. A씨는 “식당 측은 결제할 때 윗층 상황을 잘 확인하지 못했다고 일부 잘못을 인정 하면서도 무조건 손님인 우리 보고 이해하라는 식으로 카드 취소는 안된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했다. 하지만 출동한 경찰은 “형사 사건이 아니어서 개입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끝내 식당 측은 결제 취소를 해주지 않았고 A씨 가족은 결제 금액을 그대로 두고 다른 식당으로 이동해 밥을 먹어야 했다. A씨는 “더 이상 얘기해도 시간만 흘러갈 거고 결제 취소는 안 되겠구나 싶어 기분만 상한 채 다른 곳으로 가서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며 “손님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면 가게 측이 손해를 감수해야지 아무런 잘못 없는 손님한테 이해하라고 하는 게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물었다.해당 식당, 경찰에 명예훼손·업무방해로 고소장 접수 식당 측은 해당 게시글 댓글을 통해 “19시 30분 예약손님이 18시 21분에 방문해 결제 후 아직 방이 나지 않아 대기해야 한다고 부탁드렸는데도 막무가내 환불을 요청하고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려 현재 본 매장에 심각한 영업방해를 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식당은 “울산경찰청에 명예훼손과 일부 고의적 노쇼, 고의적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장을 접수했다”며 “저희는 19시에 약속된 방을 준비했지만 그 이전에 (손님이) 막무가내로 난동을 피우다 돌아간 장면도 폐쇄회로(CC)TV로 확인 중이다”고 밝혔다. 이어 “부디 한쪽 의견만 듣고 죄 없는 자영업자에게 함부로 돌을 던지는 행위를 멈춰주시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처럼 손님과 식당 측의 주장이 엇갈리자 네티즌은 역시 “양쪽 입장을 다 들어봐야한다”, “한 시간 전에 왔는데 벌써 요리는 들어갔다고요?”, “자리 확인도 안하고 일단 결제부터 했나”, “식당 측 입장도 들어봐야할 듯”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 식당서 쓰러진 손님 ‘릴레이 심폐소생술’로 구한 영웅들

    식당서 쓰러진 손님 ‘릴레이 심폐소생술’로 구한 영웅들

    식당에서 갑자기 쓰러진 남성이 주변 시민들의 도움으로 소중한 목숨을 지켰다. 7일 MBC에 따르면 최근 강원 영월의 한 식당에서 음식물이 기도에 걸린 남성이 주변에 있던 간호사와 시민들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MBC가 공개한 폐쇄회로(CC)TV를 보면 밥을 먹던 남성 A씨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쓰러진다. 이를 목격한 식당 직원은 황급히 달려와 응급처치를 시도했다. 이때 옆방에서 밥을 먹던 여성과 동료들도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이 여성은 A씨를 바닥에 눕히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여성은 인근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이찬영씨였다. A씨의 동료는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 구급대원이 도착하기 전까지 심폐소생술을 계속됐다. 이씨가 지치자 옆에 있던 다른 손님이 교대해 심폐소생술을 이어갔다. 이씨는 “갑자기 그분 얼굴이 청색증이 오면서 눈동자가 돌아갔다. 숨소리를 들어보니까 숨소리가 나지 않아서 가슴 압박을 (했다)”면서 “옆에 있던 분(손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다행이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A씨가 쓰러진 순간부터 심폐소생술이 끝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2분 40초였다. 3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식당 안 사람들은 A씨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고, A씨의 혈색은 서서히 돌아왔다. A씨는 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완전히 의식을 되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의 직장 동료는 “뉴스에서 보던 상황을 실제로 겪으니까 좀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런데도 식당에 계셨던 다른 분들이 도움을 많이 주셨다. 일상 속의 영웅은 항상 있는 것 같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 “英앤드루 왕자, ‘성 착취’ 엡스타인 집에서 매일 마사지 받았다”

    “英앤드루 왕자, ‘성 착취’ 엡스타인 집에서 매일 마사지 받았다”

    미성년자 성 착취 혐의로 체포된 후 구치소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의 재판 관련 문건이 공개된 가운데 문건에 이름이 언급된 영국 찰스 3세 국왕의 동생 앤드루 왕자가 엡스타인의 미국 집에서 매일 마사지를 받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6일 BBC, 더 타임스 등은 전날 추가 공개된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의 문건을 토대로 “엡스타인의 플로리다 팜비치 주택 관리인 후안 알레시는 2009년 녹화된 증언에서 앤드루 왕자가 손님 방에 묵으며 매일 마사지를 받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누가 앤드루 왕자에게 마사지했는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는 앤드루 왕자의 전처 새러 퍼거슨도 잠시 들른 적이 있으며, 둘 다 엡스타인과 길레인 맥스웰의 친구라고 주장했다. 1953년생인 엡스타인은 투자은행에서 일하다 1980년대부터 사모 펀드를 세워 정·재계와 문화계, 학계 저명인사의 자산 관리를 도왔다. 엡스타인의 회사는 10억달러(약 1조 2700억원) 이상의 고객 자산을 운용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2008년 그는 미성년자 36명을 대상으로 성행위를 강요한 혐의로 수사를 받은 뒤 감형 협상 끝에 13개월 징역형을 받았다. 이후 엡스타인은 미성년자 125명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 수감된 뒤 2019년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범행을 도운 여자친구 맥스웰은 중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이날 공개된 문건에는 맥스웰이 앤드루 왕자와 엡스타인이 서로 어떻게 알게 됐는지 모른다고 말한 내용도 있다. 이는 맥스웰을 통해서 엡스타인을 만났다는 앤드루 왕자의 주장과 다르다. 이번 주 법원은 피해자 버지니아 주프레가 맥스웰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문건 중 미공개분을 차례로 공개했다. 먼저 공개된 문건에는 주프레로 추정되는 인물이 17세에 맥스웰의 런던 주택 등에서 세 차례 앤드루 왕자와 성관계를 갖도록 강요받았다고 주장한 내용이 담겼다. 왕실과 앤드루 왕자는 이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앤드루 왕자는 2019년 BBC 인터뷰에서 주프레를 만난 기억이 없다고 반박했다. 2022년에는 주프레가 낸 민사소송과 관련해서 거액 합의금을 지급했지만, 유죄를 인정하진 않았다.
  • 만취 아내 “우리 아이, 친아빠 몰라 불쌍하다”…충격 고백

    만취 아내 “우리 아이, 친아빠 몰라 불쌍하다”…충격 고백

    “임신했다”는 말에 결혼했는데…술김에 듣게 된 충격적 사실유전자 검사 의뢰…친자 아니었다 헤어진 여자친구가 임신했다는 말에 책임을 느껴 결혼한 남성이 유전자 검사 결과 친자가 아님을 알게 됐다는 사연이 알려졌다. 7일 YTN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는 전라도의 한 섬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남성 A씨의 고민이 전해졌다. A씨는 카페 단골손님이던 B씨와 친하게 지내다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됐다. 하지만 술·담배를 하지 않고 조용한 성격의 A씨와 달리 술을 좋아하고 외향적인 성격의 B씨는 잘 맞지 않았다. 3년간의 교제 끝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또 헤어지는 우여곡절 끝에 A씨는 헤어진 상태였던 아내로부터 “임신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A씨는 아이에 대한 책임감으로 B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아이가 생겼으니 관계가 나아질 거라고 믿었지만, 결혼한 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진 만큼 더 자주 싸웠다. 힘들게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A씨는 어느 날 B씨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술에 취한 B씨가 “우리 아이는 진짜 아빠를 몰라서 불쌍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후 자신의 아이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던 A씨는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고, 친자가 아니라는 결과를 받았다고 한다. A씨는 “가족관계등록부에 B씨가 낳은 아이가 제 아이로 등재된 상태”라며 “결혼을 취소할 수 있냐. 가족관계등록부도 정리하고 싶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은데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냐”고 법률적 자문을 구했다.변호사 “사실 알고 3개월 내 소송 제기해야 ‘혼인 무효’” 사연을 접한 박세영 변호사에 따르면 민법 제816조 제3호는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해 혼인 의사를 표시한 때’를 혼인 취소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그러한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 소송을 제기해야 ‘혼인 무효’ 판단을 받을 수 있다. 박 변호사는 “B씨는 임신한 아이가 A씨의 친생자가 아닌데도 마치 친생자인 것처럼 기망한 것”이라며 “A씨에게 B씨가 임신한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사실은 혼인 의사를 결정할 때 매우 중요한 요소였으므로 혼인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 이를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혼인 취소 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의 호적 문제에 대해 박 변호사는 “민법 제865조에 따라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청구, A씨와 자녀 사이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한다는 판결을 받은 뒤 판결이 확정되면, 1개월 내에 전국 시(구), 읍, 면사무소에 판결 정본과 확정증명원, 등록부정정신청서를 제출하면서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혼인이 취소되는 때에는 과실이 있는 상대방에 대해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며 “재산상 손해 외에 정신상 고통에 대하여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만약 B씨가 아이의 친부와 연락을 주고받았다면 친부에게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박 변호사는 “지금까지 나간 자녀 양육비에 대해 부당이득 반환을 청구할 방법도 검토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야간에 혼자 영업하던 여사장 잇달아 피살…동일범 가능성 수사

    야간에 혼자 영업하던 여사장 잇달아 피살…동일범 가능성 수사

    경기 양주와 고양시에서 야간에 혼자 주점 겸 다방 영업을 하던 60대 여사장 2명이 일주일새 잇달아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동일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건을 수사에 나섰다. 5일 경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30분쯤 양주시 광적면에 있는 한 다방에서 60대 여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 몸에서는 폭행 흔적 등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 상인들에 따르면 A씨와 직원 1명이 다방 형태로 운영하며 술도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발생 시점으로 추정되는 전날 밤에 남자 손님 1명이 이 가게를 찾았다. 손님이 왔을 때는 직원도 가게에 있었지만 시간이 늦어져 직원은 나가고 여사장과 남성 손님 둘만 가게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가게에 출근한 직원이 숨진 A씨를 발견해 신고했다. 경찰은 살인 사건에 무게를 두고 용의자를 추적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30일에도 고양시 일산서구의 한 지하 다방에서 60대 여성 B씨가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B씨 역시 야간에 혼자 영업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 사건의 용의자인 57세 남성 이 모 씨의 사진을 공개하고 수배했다. 이씨와 B씨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두 사건의 범행 수법이 유사한 점과 용의자 인상착의,현재까지 파악된 이씨의 도주 경로 등을 토대로 동일범의 소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 박병은 “같이 김밥집 할래?” 김아중에 러브콜

    박병은 “같이 김밥집 할래?” 김아중에 러브콜

    배우 박병은과 김아중이 김밥 말기에 소질을 보였다. 4일 tvN ‘어쩌다 사장3’에서는 사장즈(차태현, 조인성)와 알바즈(임주환, 윤경호, 박병은, 김아중)의 아세아 마켓 영업 6일 차의 모습이 담겼다. 윤경호가 만든 ‘염정아 식혜’가 손님들의 호평을 이끄는 가운데, 김아중과 박병은이 김밥 만들기에 열중했다. 김아중은 여유가 생긴 박병은을 보며 “한국 가서 김밥집 하셔도 될 것 같다. 너무 안정적으로 앉아서 싸시는 것 같다”고 감탄했다. 이에 박병은이 “같이 할래? 네가 모델하고?”라고 너스레를 떨자 김아중이 “그럴까요”라고 답하며 찰떡 호흡을 뽐냈다. ‘어쩌다 사장3’는 서울남자 차태현x조인성의 세 번째 한인 마트 영업일지를 담은 프로그램으로 매주 목요일 오후 8시 45분에 방송된다.
  • “1시간에 10만원, 남친 빌려드립니다” 日 ‘렌탈 남친’ 체험기

    “1시간에 10만원, 남친 빌려드립니다” 日 ‘렌탈 남친’ 체험기

    일본에서 거주하는 한국인 크리에이터가 이른바 ‘렌탈 남자친구’ 서비스를 경험한 후기를 남기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4일 유튜브에 따르면 ‘류스펜나’ 채널은 지난해 12월 22일 ‘렌탈 남자친구 빌려봤습니다(1시간에 10만원)’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했다. 패션 및 뷰티 크리에이터 류스펜나는 지난 2022년 12월쯤 홀로 일본 여행을 떠났다가 현지에서 1년째 거주 중이다. 한 어학교에 입학한 그는 명소 탐방, 일상·패션 브이로그 콘텐츠를 주로 올리고 있다. 류스펜나는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궁금한 분들도 많을 것 같고 직접 체험해보면 어떨까 싶어 (이용)하게 됐다”며 영상 제작 배경에 대해 운을 뗐다. 그가 고른 일일 남자친구는 한 렌탈 남자친구 사이트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남성으로, 한 시간에 1만엔가량의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처음 이용하는 고객의 경우 할인이 되며, 데이트 코스는 직접 짜야 한다고도 부연했다. 일본 내 일일 남자친구·여자친구 대행 서비스는 온라인 사이트 등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한 현지 유명 사이트를 살펴보면 거주지와 나이, 직업, 키, 혈액형을 비롯해 성격과 취미, 음식 취향 등 예비 일일 남자·여자친구에 대한 내용이 담긴 프로필을 보고 데이트를 원하는 상대방을 고르는 방식으로 만남이 진행된다. 해당 영상에는 류스펜나가 일일 남자친구 ‘스즈야(25)’와 도심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담겼다. 먼저 신주쿠 소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나눈 이들은 도심 공원인 신주쿠 교엔으로 이동, 함께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했다. 여느 커플처럼 손을 맞잡고 거닐거나 다정한 포즈를 취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스즈야는 데이트 과정 중 ‘성격이 나쁜 손님도 있었나’라는 류스펜나의 물음에 “다른 손님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라면서도 “상대방이 2시간 늦게 도착했다고 했는데 (결국 만나지 못한 채 연락을) 차단당한 적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게임랜드를 찾아 인형 뽑기를 하고 스티커 사진을 찍는 것으로 이날 일정은 마무리된다. 데이트를 마친 뒤 류스펜나는 “솔직히 말하면 가기 전까지 좀 걱정이 앞섰다”며 “뭔가 가벼운 남자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수줍음이 많은 타입이었다. 근데 또 할 건 다 한다. 만나자마자 손을 잡자고 해서 좀 놀라긴 했다”는 반응을 내놨다. 이어 “다시 이용은 안 할 것 같지만, 현대사회는 상대방한테 신경 쓰지 않고 상대방한테 맞추는 게 귀찮지만 데이트는 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지 않나”라며 “그런 분들이라면 가끔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엄청 젠틀하게 대해주고 남자친구처럼 대해줘서 ‘아 이래서 1위구나’ 생각했고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덧붙였다. 또 많은 이들이 몰리는 곳에서 동영상을 함께 찍거나, 과도한 연출에 응해주는 등 부끄러움을 유발할 수 있는 행동도 스스럼 없이 하는 점을 특징으로 거론하기도 했다. 한편 해당 영상은 이달 4일 오후 기준 109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 퇴실 요청에 모텔 女직원 목 졸랐다…CCTV에 찍힌 80대 노인의 행동

    퇴실 요청에 모텔 女직원 목 졸랐다…CCTV에 찍힌 80대 노인의 행동

    경기도 의정부의 한 숙박업소에서 80대 노인이 퇴실을 요청한 여성 직원의 목을 조르며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여성은 극심한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3일 KBS에 따르면 숙박업소에서 카운터 직원을 폭행한 혐의를 받는 80대 남성 A씨가 불구속 송치 됐으며, 이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최근 A씨를 벌금형으로 약식기소했다. 지난해 10월 A씨는 모텔에서 숙박 후 “퇴실하거나 추가 요금을 내라”는 30대 여성 직원 B씨의 말에 격분해 폭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KBS가 공개한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A씨는 객실 문 앞에서 퇴실을 요구하는 B씨와 실랑이를 벌였다. B씨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자 A씨는 B씨의 몸 위로 올라타 목을 졸랐다. B씨가 소리를 지르자 A씨는 손으로 입을 막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B씨의 입안으로 집어넣기도 했다. B씨의 “살려 달라”는 소리를 듣고 방에서 나온 옆방 투숙객이 A씨를 제지하며 폭행은 멈췄다. 당시 B씨는 A씨가 퇴실 시간이 지나도 열쇠를 반납하지 않자 A씨를 찾아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B씨가 “1시 다 됐으니까 나오셔야 한다”고 안내했지만 A씨는 “못 나간다”고 답했고 “더 사용할 거면 추가 요금을 내셔야 한다”는 말에 “내가 돈을 왜 내냐”고 거부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씨를 우발적 범행으로 판단, 폭행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경찰은 “시비에서 비롯된 80대 고령 노인의 우발적 범행이라 구속영장을 신청할 사안은 아니었다. 상해가 중하거나 큰 피해 사실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노인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전했다. B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사건 직후 경찰이 ‘그냥 목을 졸렸다는 이유만으로 살인 미수가 되지는 않는다. 단순 폭행이다. 상해로 변경이 되려면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인정이 된다’고 했다”며 “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 피해자가 직접 모든 걸 다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 힘들었다. 수사 결과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일을 겪고나서 비슷한 연령대의 손님 분이 지나가시는 것만 봐도 숨게 된다”면서 “하지만 지켜야 할 아이들이 있어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B씨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편을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민사소송까지 제기해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높은 것이 아름답다”…하늘에 가장 가까운 인공물 ‘부르즈 할리파’ 문 열다[지구촌 소사]

    “높은 것이 아름답다”…하늘에 가장 가까운 인공물 ‘부르즈 할리파’ 문 열다[지구촌 소사]

    14년 전 오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말을 듣는 최고 높이 빌딩이 문을 열었다. 2004년 9월 첫삽을 떴는데, 우리나라 삼성물산이 시공사에 선정돼 더욱 유명해졌던 건물이다. 2010년 1월 4일(현지시간) 석유부국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최대도시 두바이에서 ‘부르즈 할리파’가 개장해 세계인의 탄복을 불렀다. 2004년 9월 21일 착공해 5년 10일 만인 2009년 10월 1일 완공됐다.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구조물보다도 높다. 이전엔 건물이 아닌 구조물이었던 폴란드 바르샤바 라디오 송신철탑(646m)이 최고 높이였는데 이것을 부르즈 할리파가 추월했다. 완공 이전에는 부르즈 두바이(두바이의 탑)으로 불렸지만, 이후 UAE의 대통령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1948~2022)에게서 이름을 새로이 따 붙였다. 아부다비 국왕으로 UAE 최고권력자인 셰이크 모하메드(75) 두바이 통치자는 이날 부르즈 할리파 앞 야외 특설무대에서 열린 개장식에서 “오늘 우리는 인류 최고 높이의 건물을 갖게 됐다”며 “이처럼 위대한 프로젝트엔 위대한 인물의 이름을 붙이는 게 합당하다”고 말했다. 그가 “이제 부르즈 할리파의 개장을 선포한다”고 외친 뒤 UAE 국기를 뜻하는 ‘녹·흑·적·백’ 4색의 낙하산들이 셰이크 모하메드의 거대한 초상화 위에 착륙함과 동시에 외부 벽 구조를 공개해 박수를 받았다. 이름 교체는 개장식 직전까지 극비 사안으로 다뤄졌다. 이날 오전 공식 보도자료에도 모든 문서에 나오는 건물 이름을 부르즈 두바이로 표기했다. 두바이가 채무 상환 압박 속에서 UAE 수도 아부다비의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건물명 변경은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읽힌다. 아부다비 정부는 세 차례에 걸쳐 두바이에 250억 달러(약 32조 7500억원)를 지원했다. 부르즈 할리파는 과연 마천루, 글자 그대로 하늘을 닦는 누각이라고 할 만하다. 기존 최고 건물 타이베이101(508m)보다 320m나 높다. 내부에만 모두 57개 엘리베이터를 갖췄다. 특히 124층에 위치한 전망대 전용 엘리베이터는 지상층에서 최고층까지 무려 829.8m를 1분 남짓에 손님을 모시는 초고속을 자랑한다. 부르즈 할리파에는 10000실의 호텔, 586세대의 주거용 공간, 3㏊의 공원, 19개 이상의 주거 타워와 두바이 몰, 12㏊의 인공 부르즈 할리파 호수 등이 있다. 122층에 자리한 ‘엣.모스피어(At.mosphere)’는 411m 상공에 위치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레스토랑으로 이름을 올렸다. 또한 부르지 할리파는 층수(163층) 부문에서도 2001년 9·11 테러 때 붕괴된 뒤 재건립해 2014년 11월 개장한 미국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110층)를 따돌리고 1위에 올랐다. 2011년 할리우드 영화인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 출연한 월드스타 톰 크루즈(62)가 이곳에서 스턴트 장면을 촬영해 더욱 명성을 높였다. 부르즈 할리파는 2019년 사우디 아라비아 ‘제다 타워’에 세계 최고 높이라는 명예를 빼앗길 뻔했다. 영어로는 제다 타워라고 하지만, 건설 기획단계에서는 ‘킹덤 타워’로 불렸으며, 아랍어로는 여전히 ‘부르즈 알 마물라카’(왕국의 탑)라는 이름을 달았다. 그러나 높이 1000m를 웃돈다던 해당 건물은 2013년 4월 공사를 시작한 뒤 언제쯤이나 마무리될지 기약도 없다. 이미 여러 이유로 우려를 샀던 터다.
  • 하나은행, 폐지폐 재활용 방석 제공

    하나은행, 폐지폐 재활용 방석 제공

    하나은행은 오는 31일까지 폐지폐를 재활용한 ‘하나원큐 돈 기운 캠페인’을 실시한다고 3일 밝혔다. 하나은행은 2022년부터 ‘하나원큐 돈 기운 캠페인’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캠페인에서는 350명을 추첨해 ‘머니드림’(Money Dream) 방석을 제공한다. 머니드림 방석은 폐지폐를 활용한 충전재와 함께 포장재까지 친환경 소재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폐지폐의 재활용률이 낮아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획된 업사이클링 상품이라고 하나은행은 설명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2024년 새해를 맞아 하나원큐를 이용하시는 손님 모두가 행운의 돈 기운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이벤트를 준비했다”면서 “올해에도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고객과 함께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친환경 활동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이재용이 “국물 좀 더 달라”던 어묵집, 매출 ‘수직 상승’

    이재용이 “국물 좀 더 달라”던 어묵집, 매출 ‘수직 상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연말 윤석열 대통령 등과 찾았던 부산 중구 부평깡통시장 어묵집이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3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재용 어묵집 최신 근황’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회장은 지난해 12월 6일 윤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그룹 총수들과 함께 해당 어묵집을 방문했다. 당시 이 회장은 어묵을 맛있게 먹으며 “국물을 더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후 어묵집 측은 매장에 ‘이재용 회장님 서 계시던 자리’, ‘쓸어 담던 자리’ 등을 표시해 방문객과 손님들을 맞고 있다.여기에 ‘대한민국 VIP들의 어묵’이라는 홍보 문구도 만들어 잘 보이는 자리에 걸어뒀다. 업체 측은 지난달 공식 소셜미디어(SNS)에 “이재용 회장님 덕분에 매출이 엄청나게 올랐다”며 2주간의 매출을 공개했다. 해당 매장의 매출 그래프는 이 회장이 방문한 후 5배 이상 가파르게 상승했다.온라인 스토어에선 “이재용 회장님이 드시고 간 OOO어묵”이라는 내용의 ‘이재용 세트’가 매출을 견인 중이다. 업계는 이 회장 등이 등장한 사진 한 장의 광고 가치가 10억원 이상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말 그대로 ‘이재용 특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어묵집 업주는 최근 “이재용 회장님 너무 감사하다. 장사가 너무 잘 된다”면서 “아이폰만 사용하던 제 동생도 삼성으로 바꿨다. 모니터도 수명을 다 하면 삼성으로 바꾸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또 “단 한 번뿐인 이 기회가 순간적인 이벤트로 끝나지 않도록 고객님들과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감사인사를 전했다.한편 지난달 6일 윤 대통령과 깡통시장을 찾아 상인을 격려하는 자리에는 이 회장과 더불어 SK 최재원 수석부회장, LG 구광모 회장, 한화 김동관 부회장, HD현대 정기선 부회장, 효성 조현준 회장, 한진 조원태 회장, 한국경제인협회 류진 회장 등이 함께했다. 당시 이들은 떡볶이, 어묵, 빈대떡 등을 나눠 먹으며 시장을 둘러봤는데 평소 보기 드문 소탈한 모습으로 이목을 모았다.
  • 박호산 “재혼 후 아이 갖기 싫어 아내와 다퉜다”

    박호산 “재혼 후 아이 갖기 싫어 아내와 다퉜다”

    배우 박호산이 재혼 후 아내와 2세 문제로 갈등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지난 2일 방송된 SBS TV ‘신발 벗고 돌싱포맨’에는 박호산, 가수 민경훈, 그룹 ‘오마이걸’ 승희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그룹 ‘룰라’ 출신 이상민은 “박호산 형은 우리들의 본”이라고 말했다. 댄스듀오 ‘컨츄리꼬꼬’ 출신 탁재훈은 “무슨 기술이 있어야 하냐?”고 물었다. 개그맨 김준호는 “키스를 잘하시는 건가?”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박호산은 “전 누굴 만나도 오래 만난다. 사실 지금 아내랑 결혼할 사이가 아니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박호산은 “그때 당시 장모님이 되게 무서운 사람이다. 집에 한 번 놀러 갔는데, ‘결혼식은 언제 할 거냐?’고 물으시더라”고 떠올렸다. 박호산은 “그래서 ‘저희는 교제를 좀 더 하겠다’ 하니 ‘장난하나. 자네?’라고 하시더라. 그런데 둘 다 돌싱(이혼자)이다 보니, 다시 결혼식에 손님들 모시기가 그래서 결혼식을 연극 공연으로 했다”고 털어놨다. 이상민은 “재혼할 때 아들들에게 어떻게 말했냐?”고 물었다. 박호산은 “이혼하게 됐을 때는 ‘엄마 아빠가 떨어져 사는 것은 온도 차이다. 싫어서 그런 게 아니야. 실제로 그랬다. 적도에 사는 사람과 남극에 사는 사람이 함께할 순 없잖아. 대신 너희들은 이 양쪽을 언제든지 왔다 갔다 해도 된다고 말해줬다. 지금 아들들은 29살, 25살”이라고 밝혔다. 이상민은 재혼 당시 아들들의 반응을 물었다. 박호산은 “딱히 이야기할 게 없던 것이 남자 셋이 큰 원룸에 살았다”고 답했다. 그는 “사춘기 때 벽이 있게 살면 안 그래도 엄마가 없는데 척질까 봐 큰 원룸에 살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당연히 제가 여자친구가 바뀌는 걸 다 봤다”며 아들들이 자신의 연애사를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상민은 “재혼 후 형수님과 출산 문제로 다툰 적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박호산은 “막내가 지금 나왔는데, 전 사실 (아이를) 갖기 싫었다. 그간 아이 둘을 거의 혼자 육아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군대를 두 번 더 가지 싶었다”라고 털어놔 웃음을 안겼다. 그는 “아내는 재혼이지만 아이가 없었다. 꼭 한번 갖고 싶다는 아내 마음도 이해했다. 길게 상의하다가 합의를 본 게 ‘나는 육아에서 빼달라’고 합의했다. 큰집으로 이사해서 장인어른, 장모님과 살게 됐다. 한 10년 같이 살았다”고 했다.
  • “썩은 대게 아닐 수도”… 노량진 수산시장 논란 불거진 ‘검은 점’ 정체

    “썩은 대게 아닐 수도”… 노량진 수산시장 논란 불거진 ‘검은 점’ 정체

    10대 학생에게 흑색 반점이 생긴 이른바 ‘썩은 대게’를 팔아 논란이 된 사건과 관련해 “썩은 대게가 아닐 것 같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왔다. 어류 칼럼니스트 김지민씨는 지난 2일 유튜브 채널 ‘입질의 추억’에서 지난해 논란이 됐던 ‘노량진 썩은 대게 사건’을 다루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썩은 게가 아닐 것 같다”고 말했다. 해당 사건은 지난달 A씨가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사 온 게가 썩었다며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면서 논란이 됐다. A씨는 “친구와 노량진수산시장에 구경 삼아 다녀오겠다더니 3시간쯤 뒤 검정 봉지 3개를 들고 집에 왔는데 봉지에서 생선 썩은 듯한 비린내가 진동해서 뭔가 봤더니 대게 다리를 산 거란다. 하지만 물건을 꺼내 보고 경악했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대게 다리 전체가 까맣다기보다는 갈라진 틈 쪽 부분, 바깥 공기와 맞닿는 부분과 관절 부분이 까맣다”며 “공통점은 산소가 드나들고 맞닿는 부분이다. 한마디로 산화의 흔적”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이를 “흑변현상”이라고 소개하며 “일본에서도 대게를 많이 먹지 않나. 일본에서도 한창 문제 됐다가 오해가 풀린 사건”이라고 말했다. 대게나 킹크랩은 아미노산의 일종인 티로신이라는 물질을 가지고 있다. 티로신이 체액과 피에 들어있는 티로시네이스라는 화합 물질과 산소를 만나 산화가 일어나면 멜라닌 색소 침착 현상이 나타난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산소와 맞닿는 부분이나 갈라진 틈새가 먼저 까매지고 이후 전체적으로 번진다고 김씨는 덧붙였다.김씨는 다만 대게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상인들도 흑변 현상을 모를 수 있다고 했다. 김씨는 “대게를 수조에 넣고 95% 이상은 산 채로 판매한다. 손님이 찾으면 수조에서 꺼내 바로 찜통에 찌기 때문에 흑변 현상을 볼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문제가 된 대게가 산소와 맞닿는 부위가 넓은 ‘절단대게’였던 점, 해당 손님이 대중교통을 이용한 점 등을 이유로 흑변현상이 빠르게 일어났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씨는 “실온이 높으면 2~3시간 만에 까맣게 된다. 특히 절단 대게는 찌지 않은 상태로 두면 흑변 현상이 빠르게 일어난다”며 “학생이 1시간 이상 정도 걸려 대중교통을 이용했다고 한다. 추정이긴 하지만 (대중교통에) 난방을 많이 틀어놔서 흑변 현상을 촉진했을 수도 있다. 혹은 시장에서 이미 흑변 현상이 있었는데 못 보고 샀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안 좋은 냄새가 났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대게는 자연스러운 비린내를 품고 있다. 맨눈으로 봤을 때 시커멓기 때문에 냄새가 왠지 썩어서 나는 냄새가 아닐까 하고 오해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맡았을 때 냄새가 나지 않으면 먹어도 된다. 암모니아나 쉰내가 나면 먹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판매 상인은 A씨에게 “알고는 안 판다. 믿어달라”고 했지만 지난달 논란이 불거진 후 수협노량진수산은 징계위를 열고 해당 대게를 판 상인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김씨는 “(썩은 대게 사건은) 판매자나 구매자나 잘 몰라서 생긴 오해 같다. 상인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 “25개월 아기도 1인 1메뉴”…무한리필 식당서 쫓겨난 사연

    “25개월 아기도 1인 1메뉴”…무한리필 식당서 쫓겨난 사연

    무한리필 부대찌개 식당에서 25개월 아기를 포함한 4인 가족이 음식 3인분을 시켰다가 주문을 거절당했다는 사연이 전해져 누리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 2일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에는 ‘저희가 부대찌개 집 진상인가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 A씨는 “오늘 친척 집에 갔다 오는 길에 우연히 부대찌개 무한 리필 현수막을 보고 가게에 들어섰다”고 운을 뗐다. A씨는 “나랑 아내랑 25개월, 5살 조카 두 명이었는데 일하는 분은 2명이었고 부부로 보였다. 처음에는 반갑게 맞아줬다. 어쨌든 부대찌개 2개랑 소고기 전골 1인분을 시켰다”고 말했다. 첫 주문을 받았던 남자와 달리 여자 사장은 “그런 주문은 받을 수 없다”며 거절했다. 계산대로 돌아간 남자는 ‘아기인데 그래야 하냐?’고 말했지만 여자 사장은 ‘딱 봐도 5살 넘었다’며 서로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A씨는 25개월 아기까지 포함해 부대찌개 2인분과 소고기 전골 2인분을 주문했지만, 여자 사장은 이번에도 “그런 주문이 어디 있느냐”며 거듭 부대찌개를 인원수대로 주문할 것을 강권했다. A씨는 “아이들이 매워서 부대찌개를 못 먹는다”고 양해를 구했지만 여자 사장은 “정 그렇게 주문할 거면 부대찌개 무한리필이 안된다. 괜찮냐?”고 말했다고 한다. 오기가 생긴 A씨는 “부대찌개 (어른만) 주고, 애들은 옆에 소고기 백반만 따로 상 차리는 거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여자 사장은 “나가라. 손님 같은 사람들이 뉴스에 나오는 진상이다. 손님도 가려 받아야 한다. 저런 손님 안 받아도 된다”고 말했다. 결국 A씨 가족은 식사도 하지 못한 채 나와야 했다. A씨는 “애들이 초등학생만 돼도 우리가 잘못했다 하겠지만 25개월짜리 아기랑 5살 아이 두 명을 가지고 그냥 속상하다”며 “진짜 우리가 잘못 생각한 건지 모르겠다. 융통성 있게 줘도 되지 않느냐, 허탈해서 화도 안 난다”고 토로했다.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저런 식당 갈 필요 없다’, ‘뷔페나 무한리필집은 개월 수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 ‘적게 먹는 거 뻔히 아는데 그걸 다 받겠다는 게 도둑놈 심보다’, ‘1인 1메뉴는 아줌마들 몰려와서 3인분 시키고 공깃밥 추가해서 4인 식사하는 거 방지책으로 나온 건데 어느 순간부터 미취학아동까지 1인 1메뉴가 된 것이냐?’ 등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 여성 승무원까지… 한국인 대상 ‘원정 성매매’ 조직 적발 [여기는 베트남]

    여성 승무원까지… 한국인 대상 ‘원정 성매매’ 조직 적발 [여기는 베트남]

    베트남 호치민에서 한국인을 주요 고객으로 매춘을 알선해 온 한국 남성 2명이 현지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2일 베트남텔레비전(VTN.vn)에 따르면, 한국인 황(42,남)씨는 호치민시 1군 응웬타이빈구에 음식점을 차린 뒤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을 위한 매춘 조직을 운영하다 현지 경찰에 적발됐다. 황씨는 지난해 7월부터 음식점을 운영하며, 매춘 알선 행위를 직접 관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음식점에는 30개의 비인가 노래방을 구비하고, 여성 접대부 180명, 서비스 직원 20명 등의 직원을 고용한 뒤 한국인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 손님만 받아 왔다. 미모의 여승무원을 접대부로 끌어들여 성매매 1회당 380만동(약 20만원)을 제공했다. 한국인 총지배인 정씨와 현지 관리인이 고객의 호출이 들어오면 여승무원과의 일정을 직접 조율해 제공했다. 식당 출입구에는 3~5명의 경비원이 삼엄한 경비를 펼쳤고, 첨단 경보 시스템을 이용해 감시망을 피해 왔다. 음식점을 방문한 고객에게 고급 차량 제공 및 매력적인 여성 소개 등을 광고하며, 경찰의 검열 없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 관광객 사이에서는 ‘파라다이스(천국)’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인기 장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호치민시 형사 경찰국은 해당 음식점을 검열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성매매 문건과 성매매 녹화 영상을 적발했다. 또한 호치민시 1군의 한 호텔과 7군의 아파트에서 여승무원 3명이 성매매하는 현장을 급습했다. 사업장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황씨 등 일당은 호치민시의 인근 성으로 도주했다. 하지만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 작전에 황씨, 정씨를 포함한 현지인 5명이 지난달 30일 긴급 체포됐다. 경찰 조사에서 이들은 성매매 알선 혐의를 인정했다. 음식점에서 성매매 알선 행위로 벌어들인 수익은 200억동(약 10억76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확보한 증거물을 바탕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거대 매춘 알선 조직이 적발됐다. 한국인 손(47,남)씨 등 한국인 4명은 호치민시 7군에 음식점과 노래방을 차리고 여성 접대부 180명을 고용해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알선하다 체포됐다. 여성 접대부들은 손님 1명당 300만~500만동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업소의 월 매출액은 수억 원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해 7월에도 한국인 3명이 성매매 알선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은 호치민 시내 불법 노래방과 식당을 차린 뒤 여성 접대부 80명을 고용해 호텔과 고급 아파트에서 윤락을 알선했다. 역시 한국남성이 주요 고객이었다.
  • “대기손님 30명인데, 식사 후 30분째 잡담…어찌할까요?”

    “대기손님 30명인데, 식사 후 30분째 잡담…어찌할까요?”

    대기 손님이 30~40명가량 되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아 고민이라는 자영업자의 사연이 전해졌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식당에서 식사 후 안 나가고 30분째 잡담’이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왔다. 식당 주인 A씨는 “점심시간이면 대기인원이 30~40명 되는 식당이다. 메뉴 가격은 평균 9000~1만 2000원 정도라 테이블 회전율로 버틴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A씨는 “뒤에 기다리는 손님이 30~40명 된다. 여자 3명이 식사는 다 하고 얘기한다고 한참을 있더니 30분 정도 얘기 중이다. 가게 직원이 ‘식사 다하셨냐’고 물어보니 나가더라”라고 밝혔다. 그는 “손님의 당연한 권리인 거냐 아니면 민폐인 거냐?”라고 네티즌에게 질문했다. 대부분의 네티즌은 “한가한 상황도 아니고 30~40명이 기다리는 상황이면 민폐다”, “기다리는 사람은 화가 난다” 등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일부는 “1시간 이상 앉아 있었다면 몰라도 30분은 괜찮지 않나”, “배려지 의무는 아닌 듯”, “식사 시간 제한을 둬라”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소비 줄었는데, 비용만 늘어”…소상공인 부실 우려 최근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高) 복합위기에 자영업자의 시름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생계형 소상공인들은 소비자들이 지갑을 좀처럼 열지 않는 상황에서 각종 비용 부담에 버티기 쉽지 않다고 공통된 반응을 보였다. 눈덩이처럼 늘어난 부채 상환 시기가 다가오자 연체율이 높아져 폐업 소상공인도 증가하고 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폐업 사유의 노란우산 공제금 지급액은 전년 동기보다 33.0% 증가한 1조 182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노란우산은 소기업·소상공인의 생활 안정과 노후 보장을 위한 제도이다. 노란우산 공제금 지급액이 1조원을 넘은 것은 사상 처음이다. 폐업 사유 공제금 지급 규모가 커진 것은 그만큼 소기업·소상공인이 한계 상황에 몰리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소상공인이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 ‘사고액’ 규모는 더 컸다. 지난해 1∼11월 사고액은 2조 1133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76.1% 증가했다.“소상공인 금융 부실, 경제 뇌관 될 수도…대책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소상공인, 자영업자 상환 능력 실태를 파악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영업자 연체율이 계속 높아져 올해 가시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정부가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대출 현황과 함께 상환 능력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해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 이 교수는 “금융 부실이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고 폐업 문제와 얽히면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당분간 고성장은 어렵고 저금리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다”며 “중소기업은 올해 험난한 한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금융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단기 땜질식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어 중장기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북바인딩 수업/이지혜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단편소설]

    북바인딩 수업/이지혜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단편소설]

    책방 안에 희미하게 레몬빛이 돌았다. 창문에는 아이보리색 커튼이 드리워졌고, 형광등과 보조등에서 퍼져나온 빛이 커튼 위로 어우러져 따듯하면서도 산뜻했다. 윤재는 사람들과 함께 반대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내 기척을 느낀 몇 사람이 얼굴을 돌렸고 윤재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줄지어 선 책장을 지나쳐 테이블 쪽으로 걸었다. 중앙에 자리 잡은 매대 위에는 윤재가 만든 책들이 놓여 있었다. 여기 있어요, 오래된 자리, 쓰고 만듦. 이모의 환갑을 열흘 앞두고 윤재는 나에게 다시 연락해왔다. 휴대폰 액정에 윤재에게 온 메시지 알림이 떴을 때 나는 윤재가 환갑잔치 일정을 알려주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메시지에 이모 이야기는 없었다. 윤재는 내가 사는 곳 근처 책방에서 북바인딩 수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날짜는 이틀 뒤였다. - 민정아, 와줄 수 있어? 나는 답장하길 망설였다. 윤재와는 한동안 거리를 두며 소원하게 지내고 있었다. 반년 만에 온 윤재의 연락이 반갑기보다는 어색했다. 윤재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여섯 살 때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나를 이모에게 부탁했다. 동생만 외할머니 집에 데려가 함께 살면서 식당에서 종일 일하며 돈을 벌었다. 아빠가 남긴 유산은 없고 병원비와 빚만 쌓여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훗날 엄마는 설명해 주었다. 일이 년 돈을 모아서 방이라도 얻을 수 있게 되면 나를 데리러 올 예정이었다고 덧붙였다. 엄마의 결정과 계획을 당시에는 알지 못한 채로 나는 이모네 집에 들어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사촌인 윤재와 함께 자랐다. 윤재가 한 살 많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윤재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윤재의 형인 윤석을 꼬박꼬박 오빠라고 부른 것과 달리 윤재는 이름으로 부르며 친구처럼 대했다. - 이모 환갑은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되묻자 윤재는 만나서 얘기하자고 답장했다.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말을 우리는 반년 전에도 나눴다. 당시 그렇게 말한 건 나였고 윤재는 알겠다고 우선 만나자고 선뜻 대답했다. 그때 윤재도 속으로는 내키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윤재에게 답장을 보내 책방으로 가겠다고 말해 놓고도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도 올까 말까 망설였다. 이런 마음을 모르는 윤재는 웃으면서 나에게 손짓했다. 유난히 하얗고 마디가 굵은 윤재의 손. 어린 시절엔 지금보다 훨씬 작은 손으로 윤재가 내 등을 쓸어내렸던 적도 있었다. 처음 이모네 집에 들어갔을 때 나는 잘 웃지 않았다. 울거나 떼를 쓰지도 않았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고, 괜히 말썽을 부렸다가 이모네 집에서 쫓겨나게 될까 봐 불안해했다. 이모나 이모부가 나에게 눈치를 줬거나 윤재나 윤석과 사이가 나빴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모부는 이 년 동안 나를 거두어 키우면서도 싫은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를 돕는 일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윤재와 윤석을 대할 때는 태도가 엄격했고, 자녀의 교육과 생활 지도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이 확고했다. 거기 어긋나거나 미치지 못하면 납득이 될 때까지, 원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 사람을 몰아세웠다. 왜 그렇게 했니. 말해봐, 왜.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야. 왜 말을 못 해. 어떻게 할 거냐니까. 윤석은 공부나 생활 면에서 이모부의 기대만큼 해내는 편이었고 이런 말을 듣는 건 대체로 윤재였다. 이모네 집에 들어간 지 세 달쯤 지났을 때 윤재가 이모부에게 크게 혼났다. 그날은 이모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았다. 도중에 이모부가 윤재를 때리려고 해 이모가 말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공부방으로 들어온 윤재가 테이블 앞에 주저앉았다. 윤재 눈에서 눈물이 한두 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줄줄 흘러내렸다. 소리 없이 우는 윤재를 보다가 나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왜 그랬는지 윤재가 하는 것처럼 숨죽여 울었다. 한번 터진 울음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군가 내 등을 다독이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윤재가 테이블 앞으로 몸을 숙인 채 내 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윤재의 눈에서도 계속 눈물이 흘렀다. 간식을 들고 온 이모가 우리 둘 사이에서 눈가를 훔치는 모습을 나는 봤다. 와달라는 윤재의 요청을 끝내 거절하지 못한 것, 머뭇거리면서도 뒤돌아 책방에서 나가지 못한 것, 이게 다 그 순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울었고 또 웃기도 했으니까. 단지 그것뿐이라고 속으로 되뇌며 윤재에게 손을 흔들었다. 모두 여섯 사람이 색지와 실, 송곳 등이 놓인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모서리가 둥근 사각 테이블은 밝은 갈색의 원목 상판과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철제 다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벽면 스크린 앞에 서 있던 윤재가 목을 가다듬었다. “저는 책 만드는 박윤재예요. 제 목소리가 좀 작은 편이죠? 혹시 안 들리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빔 프로젝트 화면을 넘기자 윤재가 만든 세 권의 책이 스크린에 올라왔다. “그동안 이 책들을 만들었고요. 여러 책방에서 북바인딩 수업을 진행해 왔어요. 첫 번째 책을 만든 게 벌써 칠 년 전이네요.” 윤재는 책들을 소개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고, 어떤 상황에서 만들었으며,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어려움은 또 어떻게 해결했는지, 하는 내용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낮고 느린 목소리에서 나름대로 강약이 느껴졌다. 가끔 참여자들이 소리 내어 웃기도 했는데 사람들 앞에서 술술 이야기하는 윤재가 나는 좀 낯설었다. 윤재는 참여자들에게도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첫 번째 참여자는 프랑스어를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곧 어학연수에 갈 예정이라며 거기서 보고 느낀 것들을 책으로 펴낼 거라고 했다. 두 번째 참여자는 입을 열기 전, 옆에 앉은 세 번째 참여자를 잠깐 봤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사내 커플이었다. 퇴근 후 함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걸 즐긴다고 했다. “우리가 같이 보낼 시간을 책에 기록하고 싶어요.” 두 번째 참여자가 말하자 세 번째 참여자가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했다. 다른 사람들은 웃으며 박수했고 윤재도 따라서 손뼉을 쳤다. 나는 타이밍을 놓쳐 고개만 끄덕거렸다. 속없이 웃는 윤재가 내심 못마땅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저는 호텔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하던 호텔에서는 팬데믹 시기에 나와야 했고, 요즘 다른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한다는 말을 덧붙일 순 없었다. 윤재의 사촌이라는 것은 밝히지 않았다. 그렇게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었다. 그 후 대화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마지막 참여자가 평소에 책을 좋아해서 신청했다고 말하는 것만 귀에 들어왔다. 내가 처음 호텔에서 일하기 시작한 때는 윤재가 첫 번째 책을 만들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인턴으로, 정확하게는 프리인턴으로 호텔에 입사했다. 육 개월간의 프리인턴 과정을 통과한 사람만 일 년제 인턴이 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호텔이라는 공간이 꽤 그럴싸해 보였고 그 안에서 유니폼을 맞춰 입고 구성원이 되면 든든한 소속감을 느끼게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반년이 지나가고 인턴 전환 시험이 다가왔다. 개별 면담과 지필 시험, 조별 면접까지 마치고 며칠간 결과를 기다렸다. 어느 날 쉬는 시간, 직원 로커룸에서 친한 동기가 가방을 꾸리고 있었다. 내가 뭐 하냐고 묻자 동기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나 집에 가.” 오후 세 시가 되기도 전에 동기는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로커룸을 나갔다. 다음 날 나는 인턴이 되어 출근했고 평소처럼 유니폼을 입은 채 일했지만 호텔이라는 공간, 특히 매일 지나는 길고 어두운 직원 통로가 좀 무서워졌다. 나는 이런 일들을 그때그때 윤재에게 알렸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엄마는 이모네 집 가까이에 셋집을 얻었다. 윤재와 따로 살면서도 같이 밥을 먹고 숙제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이미 엄마보다는 이모를, 동생보다는 윤재를 더 친밀하게 느끼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윤재와 가깝게 지냈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윤재에게 연락했다. 내 친구들이 윤재와 내가 연인 같다고 놀린 적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그런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호텔에서 있었던 일들을, 윤재는 책 만드는 작업을 주로 이야기했다. 내가 인턴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자 윤재도 첫 번째 작업에 대해 소식을 전해왔다. 윤재가 처음으로 만든 책 <여기 있어요>는 서울아트시네마가 많은 사람의 후원과 노력에도 낙원상가에서 철수하고 서울극장 삼 층에 단일 상영관으로 축소되어 자리 잡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윤재는 일이 벌어지는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위치를 옮긴 서울아트시네마가 오픈하던 날부터 백 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곳에 갔다. 많은 사람이 거기 서울아트시네마가 들어섰다는 데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선 여전히 특별기획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새로운 독립영화가 상영됐고 또 누군가는 계속 극장을 찾았다. 나는 윤재의 책을 통해서 그런 일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윤재는 대학교 사 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윤재가 색지를 테이블 가운데로 옮겨서 색깔별로 펼쳤다. “이 두꺼운 색지는 여러분이 만들 책의 표지가 될 거예요. 좋아하는 색으로 두 장씩 골라주세요.” 같은 크기로 잘린 흰 종이도 색지 옆에 꺼내두었다. “눈에 띄는 색이 없으실까 봐 걱정인데요. 그러면 흰 종이에 색연필이나 펜으로 표지를 꾸미셔도 좋을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표지를 만드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윤재가 혼잣말하듯 덧붙이고 뒤통수를 긁적였다. 여러 색의 색지들은 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진달래색 표지 두 장을 손에 들었다. 조금 촌스러운가 생각했지만 그대로 내 앞에 가져왔다. 진달래색 색지는 묘하게 기시감이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내 매니큐어 색깔과 비슷했다. 며칠 전 나는 발톱에 짙은 분홍색 매니큐어를 발랐다. 꽃잎을 그려 넣듯 하나하나 두 번씩 덧칠했다. 매니큐어가 마른 발을 보면서 색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손을 보며 조금 씁쓸했다. 이제 정직원도 아닌데 적당히 넘어가도 되는 규정을 철저히 지키는 내가 답답하기도 했다. “이 얇은 종이들도 열 장씩 가져가세요. 이건 책의 내용을 담을 내지가 될 거예요.” 윤재는 표지와 같은 크기인 흰색 종이들도 테이블 위에 죽 늘어놓았다. 어차피 내지는 다 똑같은 흰 종이라 열 장씩 나눠줘도 될 텐데 한 장 한 장 직접 골라서 가져가라고 했다. 참여자들은 테이블 중앙에 세 줄로 놓인 종이들을 훑어보다가 한 장씩 집었다. 옆 사람이 고르기를 기다렸다가 가져가기도 했고 앞 사람과 손가락이 부딪히기도 했다. 그 과정이 나는 좀 번거로웠는데 옆에 앉은 연인 참가자들은 서로 종이를 골라주며 재미있어했다. 나는 윤재를 흘끔 봤다. 윤재는 테이블 반대쪽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윤재가 나를 왜 이곳에 불렀는지 알 수 없었다. 이모 환갑잔치 일정은 전화로도 충분히 알려줄 수 있는 내용이라서 나는 윤재가 그걸 핑계로 나에게 연락해 관계를 회복하려는 게 아닌가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윤재는 나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다 하셨으면 이렇게 표지 사이에 내지를 넣어 보세요. 벌써 책 같은 모양이 됐죠?” 다들 윤재가 말한 대로 표지 사이에 내지를 넣어서 앞뒤로 살폈다. 나도 앞에 놓인 종이들을 한 손에 잡고 어떤 책이 완성될지 가늠해 보았다. 잘 그려지지 않았다. 윤재가 실뭉치와 송곳 두 개를 테이블 가운데로 가져오더니 이제 구멍을 뚫을 차례라고 말했다. 이미 묶어둔 견본을 펼쳐서 우리에게 보여줬다. “구멍을 잘 뚫는 게 중요해요. 그 구멍으로….” 그때 책방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대화 소리가 커서 윤재의 말이 끊겼다. 책방 직원이 다가가 수업 중이니 목소리를 낮춰달라고 말했다. “수업이요? 무슨?” 한 사람이 이쪽을 건너다보며 물었다. “책 만드는 수업을 하고 있어요.” 책방 직원이 목소리를 낮춰가며 대답했고 세 사람은 한 마디씩 말을 보탰다. 책이요? 그래, 책을 만든대. 그런 수업도 하는구나. “그걸 어떻게 만드는데?” 셋 중 한 사람이 물었고 실내가 조용해졌다. 세 사람은 서가 앞에 서서 이쪽을 들여다보더니 테이블 위를 둘러보고 윤재와 참가자들도 훑어봤다. “저렇게 만드는가 보네.” 그런가 보다고 몇 마디를 더 주고받고는 책방 직원을 향해 그러면 다음에 오겠다고 말했다. 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세 사람이 나간 뒤 닫힌 문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저걸 왜 만들지.”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윤재는 서너 차례 목을 가다듬었다. 잠깐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곧 견본을 손에 잡고 테이블 앞으로 내밀었다. “구멍을 잘 뚫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죠? 그 구멍으로 한 장 한 장의 낱장들이 모이고 묶여야 책이 되는 거니까요.” 목소리가 조금 흔들리는가 싶었지만 윤재는 막힘없이 말을 마무리했다.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고 마음이 상한 듯해 보이지도 않았다. 당황하고 마음이 흔들린 쪽은 오히려 나라는 것을 깨닫고 있을 때 윤재는 표지를 자세히 보라며 견본을 들어 올렸다. 구멍 사이의 간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모두 다섯 개의 구멍을 뚫어야 했다. 모든 구멍은 왼쪽 끝을 기준으로 가로 0.5cm를 띄워놓아야 했으며, 첫 번째 구멍은 왼쪽 끝 윗면에서 세로 1cm의 간격을 둬야 했고, 두 번째 구멍부터는 세로 2.5cm의 거리가 필요했다. 그렇게 간격을 유지하다 보면 마지막 다섯 번째 구멍은 자연스럽게 네 번째 구멍과는 세로 2.5cm, 종이의 아랫면과는 첫 번째 구멍과 마찬가지로 세로 1cm의 거리가 생겼다. 표지에 윤재가 알려준 간격대로 점을 찍어 두었다. 송곳이 나에게 넘어오길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이 책 만드는 모습을 둘러봤다. 옆에 앉은 커플은 알맞은 위치에 점을 잘 찍었는지 서로 확인하는가 싶더니 책을 바꿔 상대방의 책에 구멍을 뚫어주고 있었다. “제일 끝에 있는 구멍은 잘 안 되는데? 잘못했다간 종이 찢어질 것 같아.” “이리 줘. 내가 해볼게.” 여자가 마지막 구멍을 뚫어서 남자에게 건넨 뒤 나에게 송곳을 전해줬다. 여자가 몸을 돌렸고 두 사람은 테이블에 놓인 하늘색 표지 위로 손을 포갰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송곳을 잡았는데 무언가에 찔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벼려진 바늘 끝으로 오래된 흉터를 짓누르는 기분. 송곳을 고쳐 쥐었다. 진달래색 표지와 흰색 내지들을 모아서 왼손에 잡고 오른손으로 송곳을 들어 첫 번째 구멍으로 가져갔다. 종이 위에 찍어 둔 점을 송곳으로 누른 뒤 힘을 줬지만 종이는 뚫리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종이를 내려놓고 왼손 손바닥으로 고정한 채 송곳을 좌우로 돌렸다. 손의 힘이 풀려 낱장들이 자꾸 흩어졌다. 윤재가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윤재는 앞 장 표지만 가져가 송곳을 살살 돌려가며 구멍을 뚫었다. 뾰족한 송곳 끝이 표지 반대편으로 빠져나오자 내지를 서너 장씩 집어서 같은 위치에 구멍을 만들었다. 송곳을 돌리는 윤재의 손. 가까이서 보니까 작은 흉터가 많았다. 윤재가 종이를 다시 내게 건넸다. 가지런히 뚫린 다섯 개의 구멍이 흠집 같았고 그 자체로 고리 같아 보이기도 했다. 윤재는 사람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살펴보며 테이블을 한 바퀴 돌았다. 송곳 두 개를 한쪽에 모아놓고 실뭉치를 풀었다. 미리 준비해 둔 실을 손에 잡고 그 길이에 맞춰서 한 줄씩 잘라나갔다. “이제 구멍 사이에 실을 넣어서 책으로 엮어 볼게요. 실 한쪽 끝에 매듭을 만들어 주세요. 구멍에 매듭이 고정될 수 있도록이요.” 참여자들이 그 말에 따라 매듭을 묶고 있을 때 윤재 앞에 놓인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윤재는 한동안 테이블을 내려보다가 빠르게 말했다. “급한 전화라 잠깐 받고 올게요.”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져 통화를 시작하는가 싶더니 곧 몸을 돌려 책방 서가를 가로질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윤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지 걱정됐다. 반년간 왕래 없이 지내는 동안 윤재에게도 많은 일이 생겼을 것이다. 그전엔 윤재와 이렇게 오래 연락이 끊긴 적이 없었다. 윤재는 만들고 싶은 책이 떠오르면 나에게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며 작업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나갔고, 책이 나오면 나에게 제일 먼저 보여줬다. 그런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는 윤재도 나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함께 있는 게 그저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느끼지 못한 동안 윤재와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대학을 졸업한 뒤 윤재는 내가 어디냐고 물을 때마다 대개 카페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도 한 번은 윤재를 만나러 도서관에 갔다. 윤재는 열람실에서 책을 읽다가 나를 만나러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가지, 우선 나갈까? 내가 묻자 윤재는 여기에도 식당이 있다며 내려가 보자고 했다. 우리는 도서관 지하 식당에서 라면과 김밥을 사 먹었다. 내가 내려고 하는 걸 여기까지 왔는데 그럴 수 없다며 윤재가 막아섰다. 내가 한 번 더 나서자 윤재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럴 땐 좀.” 식사 후에는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마시며 일 층 만남의 광장에서 조용조용 얘기를 나눴다. 윤재는 당시 구상 중이던 책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내가 딴생각을 하지 않는지 가끔 눈치를 살피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마 멈추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질문을 부지런히 삼켰다. 그때는 내가 정규직이 된 지 육 개월쯤 지난 시기였다. 인턴 때에 비하면 생활이 조금 나아졌고 해고에 대한 불안감은 없어졌다. 하지만 유니폼이 마치 내 일부인 듯 익숙해지면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나는 뭘 놓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애꿎은 매니큐어만 사서 모으고 있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립스틱이나 아이섀도 같은 값이 더 나가는 것은 사지 못했고 가끔 퇴근길에 매니큐어를 샀다. 화장대 위에 올려둔 매니큐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더니 두세 달이 지나자 두 줄 세 줄로 길어졌다. 업무 규정 때문에 손톱에는 바를 수 없어서 나는 발톱에만 매니큐어를 발랐다. 그날 도서관에서 윤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화장품 가게에 들러 매니큐어를 하나 더 샀다. 일하지 않은 날 매니큐어를 산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윤재를 사랑하는 마음이 발톱에만 바를 수 있는 매니큐어 같다는 생각도 그날 처음으로 했다. 이런 시간이 윤재와 나 사이에 난 구멍처럼, 적당하지 못한 간격처럼 느껴졌다. 구멍을 뚫는 건 종이에 손상을 주는 일인데도 그 구멍을 통과해야 낱장들이 하나로 묶여서 책이 된다는 윤재의 말을 곱씹었다. 지난 반년 새 우리 사이에는 확실히 거리가 생긴 것 같았다. 나는 윤재에게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지내는 근황을 알리지 못했고 어쩌면 윤재도 나한테 전하지 못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전화를 받으러 나간 윤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불만을 내비치는 사람은 없었지만 하나둘씩 핸드폰을 꺼내기 시작했다. 십 분쯤 지났을 때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밖으로 나왔다. 복도는 어두웠고 아무도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층계참에서 방향을 꺾고 뛰어 올라오는 윤재가 보였다. “미안, 많이 늦었지?” 윤재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방금 들은 말과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윤재의 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 낯익었다. “아니야, 다들 신경 안 써. 무슨 일이야?” 윤재는 발을 멈추고 주저하다가 그게, 하면서 입을 열었다.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윤재는 참여자들에게 여러 차례 사과했다. “일이 생겨서 시간이 지체됐어요. 죄송합니다.” “그럴 수도 있죠. 괜찮아요. 근데, 괜찮으신 거예요?” “그래요. 작가님 별일 없으면 됐어요.” 참여자들에게서 괜찮다는 반응과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이어졌다. 윤재는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거듭 시간을 확인했다. “매듭을 만드는 데까지 했죠? 이어서 나가볼까요?” 윤재가 테이블을 훑더니 작업하던 것을 위로 올렸다. “이제 표지 뒷장 두 번째 구멍에 바늘을 넣어서 매듭으로 고정해 주세요.” 두 번째 구멍에서 나온 실로 책등을 한 바퀴 돌려서 묶고 두 번째 구멍으로 다시 돌아왔다. 세 번째 구멍으로 이동해서 또 책등을 한 바퀴 돌리고 한 번 더 옆으로 바늘을 움직였다. 윤재의 손을 따라서 나도 구멍 안으로 바늘을 넣었다. 낱장의 종이들을 묶으려고 하니까 표지와 내지가 모이는가 싶다가도 금방 실이 풀려 흩어지고 말았다. “헐거워지지 않도록 적당한 힘으로 당겨주는 게 중요해요.” 윤재의 말을 듣고 손에 더 힘을 줬다. 다시 옆으로 바늘을 돌려 책등을 만들고 아래로 이동해 나가며 종이를 엮었다. “이걸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옆에 앉은 사람이 혼잣말했다. 여러 방향을 오가며 구멍에 바늘을 넣었다가 빼야 하는 과정이라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시간이 지체된 것 때문인지 윤재는 윤재대로 조급해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통화 내용이나 나와 나눈 이야기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졌을지도 몰랐다. 윤재는 사람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갔는데 일의 진도는 빨라지지 않았다. 내 옆에 앉은 사람도 같은 자리에서 바늘을 넣었다가 빼기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도와드릴까요? 순서가 바뀐 것 같아요.” 내가 손을 내밀자 그는 나에게 자신의 책을 건넸다. 오렌지색 표지 끝부분에 자리 잡은 구멍으로 실을 빼내고 윤재가 알려줬던 순서로 다시 바늘을 넣었다가 뺐다. 다른 사람의 책을 들고 있다는 게 왠지 긴장돼서 조심히 손을 움직였다. 복도에서 윤재에게 들은 얘기가 떠오를 때마다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도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선 느슨해진 매듭을 꽉 묶어두고 바늘로 구멍과 구멍을 옮겨가며 그의 책을 엮었다. 팽팽히 묶인 책을 건네고 나자 반대쪽 테이블에서 참여자들을 도와주던 윤재가 고개를 들었다. 몸을 세우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방식은 동양식 바인딩이라고 말한 뒤 이쪽으로 다가왔다. 옆을 지날 때 윤재가 내 어깨에 잠깐 손을 올렸다. 두 시간 전에 고른 열두 장의 종이가 제법 책의 틀을 갖췄다. 단단하고 부드러운 표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윤재가 입을 열었다. “이제 여러분 책에 내용을 채워 보도록 할 건데요. 책의 제목은 <북바인딩 수업>이라고 정해볼게요. 이 시간 동안에 여러분께 생긴 일, 느낀 감정, 떠오른 생각 등을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윤재는 내지 첫 장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책을 옆으로 돌려서 그 내용에 대해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주는 것으로 책 속 내용을 채워 나가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여기서 함께 시간을 보낸 건 맞지만, 다 같은 시간을 보낸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이 수업에 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으니 솔직하게 써볼까요.” 참여자들은 손에 색색의 책을 한 권씩 들고 있었다. 색연필을 나눠준 뒤 윤재는 내 맞은편에 와서 앉았다. 옆에 놓인 책장을 곁눈질로 가리켰는데 거기엔 윤재의 세 번째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윤재가 나에게 색연필을 건넸다. 글씨 쓰기 편하도록 끝이 뾰족하게 깎여 있었다. 윤재는 나를 향해 살짝 웃더니 몸을 돌렸다. 앞에 놓인 책의 표지를 넘기고 하얀 바탕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세 번째 책으로 윤재는 독립출판 작가들의 인터뷰집을 만들었다. 다섯 작가의 인터뷰를 싣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책을 만들기 직전, 윤재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윤재는 카페 아르바이트 휴무일에 물류 창고 일을 하러 갔다가 허리를 다쳐 원래 하던 아르바이트도 못 하게 됐다. 당시 나는 정규직 사 년 차로 호텔의 중식 레스토랑과 베이커리를 거쳐 연회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각종 포럼이나 세미나를 위해 준비해야 했고, 결혼식이 주말마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 열렸다. 나는 손님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다가 또 상사에게 웃으며 고개 끄덕이길 반복했다. 정신이 없을 땐 명찰을 착용하는 것도 잊었다. 내가 호텔 얘기를 하면 이모는 그만둬도 괜찮다고 말했다. 이모가 윤재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는 건 나중에 전해 들었다. 뭘 선택해도 길은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했든 윤재도 나도 마음껏 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윤재가 마지막 통원 치료를 받았다며 전화를 걸어와 독립출판 작가들을 인터뷰해서 책을 만들 거라고 얘기했을 때 나는 윤재가 답답하다고 느꼈다. 윤재가 책을 만들수록 윤재와 함께할 수 있는 미래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애초에 쉬운 관계도 아닌데. 불쑥 눈물이 나왔다. 이번에는 참을 수 없었다. “그걸 왜 만드는데?” 윤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윤재가 다시 입을 닫았고 나도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냥 내가 남았어.” 윤재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 근데 지금 와서 보니까, 그냥 책을 만드는 내가 남았어. 나는 책이 남는 건 줄 알았지.” 윤재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테이블 위에는 손바닥만 한 책이 아홉 권 놓여 있었다. “다 적으셨으면 다른 사람의 책을 같이 완성해 봐요.” 책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윤재 앞에 오른쪽에서 넘어온 책이 놓였고 나도 옆 사람이 만든 책을 건네받았다. 내 앞에 차례로 전해지는 책들은 이 시간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어떤 책에는 책방 공간에 대한 묘사와 거기서 얻은 느낌들이 적혀 있었고, 다른 책에는 책 만드는 과정과 재미있었던 점이 쓰여 있었다. 참여자들과 겪은 에피소드를 적어둔 페이지에서 나에 관한 내용을 읽었을 때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느새 윤재의 책이 내 앞에 도착했다. 나는 민트색 표지를 넘겼다. 막상 쓰려고 하니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써봤어요.) 앞으로 북바인딩 수업을 쉬려고 했거든요. 책 만드는 것도 그만하려고 했고요. 엄마가 아프셔요. 큰 병은 아니지만 수술을 받고 잘 관리해야 한대요. 엄마 컨디션 때문에 일정이 당겨져서 오늘 수술을 받으셨는데 다행히 경과가 좋다고 연락이 왔어요. 한동안 엄마 옆에 있으려고 해요. 그래도 북바인딩 수업은 계속해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서툴게 진행한 부분이 있어서 이번 참여자분들은 다음 수업에 한 번 더 오실 수 있도록 할게요. (그만 사과하라고 하셨지만 정말 죄송해요.) 책, 책이요. 책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또 솔직하게 써보자면) 어영부영 책 만든다고 놓치고 산 게 많아요. 우선 옆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싶어요. 못 본 척해 온 것을 이젠 제대로 보고 싶고요. (더 솔직하게는) 할 수 있는 한 마음껏 사랑하며 살아보고 싶어요. 오늘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모가 아프다는 말은 복도에서 들었지만 윤재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은 몰랐다. 오늘로 북바인딩 수업을 그만하려는 줄은. 그래서 나에게 와달라고 한 건가. 예전에 윤재에게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을 윤재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책 만드는 걸 쉬겠다는 윤재의 말도 뜻밖이었다. 페이지를 넘기자 참여자들이 남긴 메시지가 이어졌다. 어머님 쾌차하실 거예요, 작가님 팬인데 책도 계속 만들어 주세요. 다음에 또 뵐 수 있다니 좋네요, 같은 말들이 페이지 가득 적혀 있었다. 내가 윤재에게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병원에 있을 이모가 걱정됐다. 아까 복도에서 윤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수술 전에 엄마가 괜히 겁을 내면서 나한테 당부하더라고. 너를 잘 챙기라고.” 이모는 어째서 윤재에게 나를 부탁했을까. 어째서 윤재에게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어째서 엄마나 동생이 아닌 윤재에게 나를. 그래도 우선은 수술이 잘 끝난 게 다행이었다. 얼마 전 엄마가 두 번 연달아 전화를 걸어왔는데 아마 이모 소식을 전하려던 것 같았다.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로 나는 엄마의 전화를 피하고 있었다. 그날도 일이 바쁘니 다음에 전화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은 없었다. 선뜻 색연필을 들지 못하다가 윤재의 글을 다시 읽어봤다. 아까는 급하게 읽느라 놓친 것인지 이번에 유독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윤재는 못 본 척해 온 것을 이젠 제대로 보고 싶다고 썼다. 나는 윤재가 어떤 일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반년 전 그날은 이른 장마가 끝난 직후라 여름 한복판에 들어선 듯 무더웠다. 나는 아침에 윤재에게 불쑥 전화해 만나자고 했다. 윤재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와도 만나서 얘기하자고 대답했다. 그동안 만나왔던 루트를 벗어나 윤재와 새로운 곳에 가보면 좋을 것 같았다. 처음 가는 곳에서 윤재와의 관계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우리는 우선 경복궁역에서 만나 같이 버스를 타기로 했다. 윤재가 잠깐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한 뒤 오겠다고 해서 나는 십 분 정도를 더 계산해 집을 나섰다. 십 분 정도 늦게 나가면 시간이 딱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한 시간이 지나서도 윤재는 오지 않았다. 경복궁역 앞 잡화점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밖으로 나와 다시 십여 분을 기다렸다. 윤재는 일이 좀 꼬인다며 금방 온다고만 말했다. 금방 온다고 하지 않았다면 어디 카페에라도 가서 기다렸을 텐데 윤재는 곧 도착할 것 같다고 했고 나는 윤재와 새로운 곳에 가려고 했으므로 땡볕을 참았다. 원래 약속했던 시간보다 삼십여 분이 지나서야 윤재가 지하철 역사 안쪽에서 뛰어 올라왔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미안하다고 했는데 왜 늦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아니, 윤재가 정말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기분이 상해서 윤재가 사과할수록 서운함만 더 커졌다. “뭐 하느라 늦었어?” “미안해.” “왜 늦었는데?” 진짜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윤재는 대답이 없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게 버스 때문에.” “버스?” “딴생각하다가 정거장을 놓쳐서. 괜히 좀 돌아오느라.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윤재의 답은 계속 늘어졌고 종종 끊겼다. 둘러댈 말을 찾는 것 같기도 했다. “너 지하철로 왔잖아.” 내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그래도 왔잖아.” 윤재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중간에 갈아탔어. 너무 오래 걸려서.” 말을 마치자마자 입을 다물었고 나를 앞질러서 걸어 나갔다. 윤재가 입은 파란색 티셔츠 위에 등을 따라 흐른 땀자국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날 가려고 했던 새로운 곳에 가지 않았고 나는 하려던 말을 하지 않았다.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시켜 놓고 마주 앉았다. 윤재는 유독 말이 없었고 내가 나서서 평소에 하던 얘기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잘되지 않아 곧 일어났다. 그 후로 한동안 윤재와 연락하지 않았다. 뜸하게 업데이트되는 윤재의 SNS 피드를 보며 나는 혼잣말했다. 그냥, 나를 보듯 너를 보며 살아야 했을까. 그날 내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윤재는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윤재의 글을 한 번 더 읽었다. 색연필을 손에 잡고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하얀 종이 위에 윤재의 이름을 썼다. 윤재를 부르고 나니까 쌓여 있던 말들이 술술 풀려 나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대로 모두 적었다. 나만 너무 길게 쓰는 게 아닌지, 내용이 너무 튀는 게 아닌지, 윤재를 난처하게 할 만한 말은 없는지, 신경을 쓰느라 자주 주저했지만 멈췄다가도 다시 적어나갔다. 그동안 못한 이야기들을 모두 적고 나서 추신을 남겼다. - 너의 다음 책이 또 뭘 남길지 궁금해. 색연필을 내려놓고 앞을 봤다. 윤재도 조금씩 손을 움직여 가며 누군가의 책에 메시지를 적고 있었다. 윤재가 잠깐 고개를 들었을 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어떤 책에 답글을 적고 있는지 윤재가 볼 수 있도록 앞에 놓인 윤재의 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윤재가 쓰던 것을 멈추고 책을 덮었다. 나는 윤재의 책을 두 손으로 잡았다가 내려놓고 민트색 표지 위에 내 손을 포개어 올렸다. 나를 바라보던 윤재의 눈매가 조금씩 휘었다. 윤재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우리가 함께 만든 첫 번째 책이야,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자식에 짐 안 되길” 희망 싣고 달린 첫차

    “자식에 짐 안 되길” 희망 싣고 달린 첫차

    “자식들에게 짐만 안 되면 그럭저럭 잘 산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새해 첫날인 1일 새벽 4시. 서울 구로구 차고지에서 출발해 강남구 개포동으로 향하는 6411번 버스에 첫 승객으로 탑승한 김명순(66)씨는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인데, 택시비 1만 3000원을 아끼려고 첫차를 3시간이나 기다렸다”며 이런 새해 소망을 전했다. 이날 새벽 3시 45분 차고지를 나선 버스는 김씨를 시작으로 30분도 지나지 않아 좌석이 가득 차더니 서서 가는 승객이 늘어났다. 공휴일인 이날에도 건물 청소나 경비 업무 등을 하는 시민들이 해가 뜨기 전부터 일터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이른 새벽 추운 날씨 탓인지 두꺼운 외투와 장갑으로 중무장한 이들이 많았다. 버스 기사 김정남(68)씨는 “예나 지금이나 강남으로 출근해 건물 청소하는 아주머니 손님이 많다”며 “첫차 시간은 예전보다 빨라졌는데 손님은 갈수록 늘어난다”고 전했다. 강남에 있는 한방병원에서 4년째 청소 업무를 하고 있는 황명옥(68)씨는 “평일에는 버스가 사람들로 빼곡하다”며 “휴일이라 그나마 사람이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새해 소망을 묻자 황씨는 “이제 40대가 된 자식들이 더 잘 풀렸으면 좋겠다”며 미소 지었다. 서초구 서초동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김주용(57)씨는 “지금까지 헌혈 100회를 달성했는데, 올해를 포함해 생애 남은 날 동안 헌혈 200회를 하는 게 목표”라며 “나눔의 행복을 이어 가겠다”고 했다. 이원화(55)씨는 “주 6일 출근하는데,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 조금 여유를 갖고 싶다”고, 김향옥(55)씨는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것 말고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강남에 진입한 뒤 승객이 하나둘 내리면서 버스가 한산해졌다. 오전 5시 20분쯤 버스는 종점인 지하철 2호선 선릉역을 돌아 다시 차고지로 향했다. 종점에서 내린 조영래(75)씨는 재활용센터에서 한 달에 하루 쉬며 일한다고 했다. 이날 만난 승객 가운데 최연장자인 조씨는 “노인들도 힘들지만, 젊은 사람들은 더 힘들지 않겠냐. 새해에는 젊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며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라”는 뭉클한 덕담을 남기고 일터로 떠났다. 새해 첫날부터 일터로 향한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생들의 소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날 오후 성동구 카페거리에서 만난 이모(30)씨는 “지난해 물가가 오르면서 힘든 한 해를 보냈다”며 “올해는 경기가 회복돼 생계 걱정을 덜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김모(28)씨는 “지난해 돈을 많이 벌겠다며 식당을 창업했는데, 가까스로 적자를 면하고 있다”면서 “장사가 잘되는 것과 함께 로또에 한번 당첨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 [르포] “자식들에 짐 안되길”…새해 첫 6411번 버스 탄 출근객 만나보니

    [르포] “자식들에 짐 안되길”…새해 첫 6411번 버스 탄 출근객 만나보니

    “자식들에게 짐만 안되면 그럭저럭 잘 산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새해 첫날인 1일 새벽 4시. 서울 구로구 차고지에서 출발해 강남구 개포동으로 향하는 6411번 버스에 첫 승객으로 탑승한 김명순(66)씨는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인데, 택시비 1만 3000원을 아끼려고 3시간이나 첫차를 기다렸다”며 이런 새해 소망을 전했다. 이날 새벽 3시 45분 차고지에서 출발한 버스에는 김씨를 시작으로 30분도 지나지 않아 좌석이 가득 찼고, 서서 가는 승객도 늘어났다. 공휴일인 이날에도 건물 청소나 경비 업무 등을 하는 시민들이 해가 뜨기 전부터 일터로 향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이른 새벽 추운 날씨 탓인지 유독 두꺼운 외투와 장갑으로 중무장한 이들이 많았다. 버스 기사 김정남(68)씨는 “예나 지금이나 강남으로 출근해 건물 청소하는 아주머니 손님이 많다”며 “첫차 시간은 예전보다 더 빨라졌는데 손님은 갈수록 늘어난다”고 전했다. 강남에 있는 한방병원에서 4년째 청소 업무를 하는 황명옥(68)씨는 “평일에는 버스가 사람들로 빼곡하다”며 “휴일이라 그나마 사람이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새해 소망을 묻자 황씨는 “이제 40대가 된 자식들이 더 잘 풀렸으면 좋겠다”며 미소 지었다. 서초동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김주용(57)씨는 “지금까지 헌혈 100회를 달성했는데, 올해를 포함해 생애 남은 날 동안 헌혈 200회를 하는 게 목표”라면서 “나눔의 행복을 이어가겠다”고 전했다. 이원화(55)씨는 “주 6일 출근하는데,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 조금 여유를 갖고 싶다”고 했고, 김향옥(55)씨는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것 말고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버스가 강남에 진입하자 승객들이 하나둘씩 내리면서 버스는 한산해졌다. 오전 5시 20분쯤 버스가 종점인 지하철 2호선 선릉역을 돌아 다시 차고지로 향했다. 종점에서 내린 조영래(75)씨는 한 달에 하루 쉬면서 재활용센터에서 일한다고 했다. 특히 이날 만난 승객 중 가장 연장자인 조씨는 “노인들도 힘들지만, 젊은 사람들은 더 힘들지 않겠냐. 새해에는 젊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며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라”는 뭉클한 덕담을 남기고 일터로 향했다. 새해 첫날부터 쉬지 못하고 일터로 향한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생들의 소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날 오후 성동구 카페거리에서 만난 이모(30)씨는 “지난해 물가가 오르면서 힘든 한 해를 보냈다”며 “올해는 경기가 회복돼 생계 걱정을 덜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김모(28)씨는 “지난해 돈을 많이 벌겠다며 식당을 창업했는데, 가까스로 적자를 면하고 있다”면서 “장사가 잘되는 것과 함께 로또에 한 번 당첨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 ‘보신각 타종’ SNS 타고 전 세계가 함께 봤다

    ‘보신각 타종’ SNS 타고 전 세계가 함께 봤다

    2024년의 시작을 알리는 서울 보신각 제야의 종소리는 한국을 찾은 해외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함께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특히 미국, 인도, 카자스흐탄, 필리핀 등에서 온 해외 인플루언서 6명은 직접 타종 대표로도 참석했다. 6명의 유튜브, 틱톡,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 구독자 수는 1억 4000만명(중복 집계)에 이른다. 이들은 ‘서울 윈타’를 세계적인 겨울 축제를 만드려는 서울시와 함께 서울경제진흥원(SBA)이 개최한 인플루언서 박람회 ‘서울콘’ 참석차 온 인플루언서다. SBA관계자는 “당초 예상보다 더 많은 58개국에서 3100여팀의 인플루언서가 참여해 서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3100여팀의 SNS 구독자 수는 30억명 규모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밤 12시 종로구 보신각에서 ▲필리핀 가수 겸 배우 크리스텔 풀가(SNS 구독자 1887만명) ▲한국계 카자흐스탄인 키카킴(구독자 5100만명) ▲우즈베키스탄 태생 귀화 한국인 엘리나 카리모바(구독자 1700만명) 등 해외 인플루언서 6명, 시민대표 12명과 함께 재야의 종을 울렸다. 보신각 앞 시민 인파 속에선 해외 인플루언서 15팀이 타종 장면을 전 세계로 송출했다. 다른 인플루언서들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월드 K팝 페스티벌 카운트다운’에서 새해를 맞았다. 서울콘은 DDP에서 이틀간 패션, 뷰티, 엔터테인먼트 등을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오 시장이 전날 K뷰티 부스트 세미나에 입장하자 36개국 150여명의 해외 뷰티 인플루언서들은 동시에 스마트폰을 들고 영상을 찍으며 환영하기도 했다. 타종 대표인 미국의 뷰티제품 리뷰어 커샌드라 뱅크슨은 행사장에 전시된 한국 화장품을 살펴보며 관심을 보였다.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 구단인 T1의 팬미팅, 글로벌 인플루언서 상이 처음 추가된 서울콘 에이판 스타 어워즈, SBA 크리에이티브포스 어워즈 등도 열렸다. 특히 타종 대표인 인도 차세대 배우 아누쉬카 센이 지난 28일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 50만명이 ‘좋아요’를 누르는 등 참석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서울을 알렸다. 서울시와 SBA는 매년 서울콘을 개최해 문화를 전파하고 도시 경쟁력 제고와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이다. 김현우 SBA 대표이사는 “인도의 센과 한국의 온오빠가 만나 협업을 약속하는 모습을 보며 인플루언서가 주인공인 서울콘의 확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확신을 얻었다”며 “해외에서 한국 문화에 익숙한 세대가 형성된다면 향후 잠재적인 한국 제품의 소비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보신각 타종 직후 세종대로엔 12m 규모의 태양 모양 구조물인 ‘자정의 태양’이 떠올랐다. 타종 행사의 시민 대표로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때 구조활동에 나선 의인 윤도일씨, 55년간 무료 예식을 치른 ‘신신예식장’ 2대 대표 백남문씨 등이 참여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