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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선의원 “반민족행위 다시 조사 국회내 특별기구 두자”

    민주당 김희선(金希宣)의원은 18일 국회 본회의 신상발언을 통해 “일제하 반민족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국회 내특별기구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국회 내에 새로운 ‘반민 특위’를 구성,친일 문제를 원점에서 재조사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돼 눈길을 끌었다. 김 의원은 특히“일제하 언론의 경우 조선,동아일보 등 일부 언론사가 일제 말기 천황 찬양기사를 1면에 싣고 일왕 생일을 민족 명절로 선전·선동해 조선 젊은이들을 일제의 총알받이로,군대 위안부로 팔아 넘겼다”고 특정 언론사를 겨냥했다. 이어 “이들 언론사들은 속죄도,역사적 심판도 없었으며 오히려 교과서에 ‘민족신문’으로 왜곡, 기술되어 있는 등민족 정기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일제 때 독립군 3지대장 김학규 장군의 손녀이며 백범 김구가 이끌던 한독당의 비밀 청년 당원이었던 김일련씨의 딸이다.김 의원은 그동안 민족 정기를 고양하는데 앞장서왔다. 이종락기자
  • [전통주 이야기] (11)옥로주

    옥로주(玉露酎)는 이름만큼이나 맑고 깨끗한 맛으로 유명하다. 1880년쯤 서산 유(柳)씨 가문에서 만들기 시작한 가양주였지만 이제는 연간 10만병(750㎖ 기준)이 넘게 생산,판매되고 있다.사라질 위기를 여러번 겪은 끝에 93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12호로 지정받으면서 호주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것이다. 현재는 첫 제조자로 알려져 있는 유행룡(柳行龍·1852-1932)의 5대 손녀 유민자(柳敏子·60·당정옥로주 대표)씨가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박곡리에서 빚어내고 있다. 옥로주는 여러 전통주와 마찬가지로 쌀,누룩이 주재료지만 율무와 쑥을 사용하는 점이 특이하다. 술을 빚는 과정은 두 단계로 나뉜다.곡주를 빚는 게 첫 단계다.분쇄한 밀 2말과 율무 7되를 끓여서 식힌 뒤 3∼5시간 둔다.여기에 마른 약쑥을 첨가해 다시 반죽,1∼2시간 광목으로 보쌈해 둬 누룩을 띄운다.누룩과 율무,쌀을 물로 섞어 10일간 숙성시키면 대나무 잎 빛깔을 띤 곡주(穀酒)가 만들어진다. 곡주 5말을 가마솥에 넣고 토고리(흙으로 빚은 소주고리)를 씌어 장작불을 때면 소주 2말이 나오는데 증류과정에서소주가 옥같이 영롱하게 맺혀 떨어진다고 해서 옥로주라 부른다.모두 20일 정도 소요된다. 옥로주는 도수가 45도에 이르나 다른 증류식 소주와는 달리 맛이 부드럽고 감칠맛나는데다 율무의 향이 어우러져 일품으로 평가받고 있다.특히 증류과정에서 종양억제 효과가있는 것으로 알려진 율무의 ‘코익세라노’라는 성분이 다량 추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애주가들의 구미를 끌고 있다.25도와 45도짜리가 있으며 가격은 5,000∼5만원선.문의 (031)333-0335. 이동구기자 yidonggu@. ■노완섭 동국대교수 옥로주 맛평가. “옥로주는 무색,투명하고 여러가지 독특한 맛과 청량감,그리고 향기가 서로 잘 어우러져 마시기에 부드럽고 숙취가 전혀 없습니다” 동국대 식품공학과 노완섭(盧完燮·60) 교수는 옥로주에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음식분야에 관한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노 교수는 옥로주를 민속주로 지정하는과정에서 맛을 알게 됐다며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게 안내한다. 어울리는 음식은 높은 도수의 술인만큼 수분이 많고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으면 된다.순두부안주가 가장 적합하다고 노 교수는 추천한다. 노 교수는 또 향을 즐길 때는 옥로주에다 얼음을 띄워서마시라고 권한다.피로나 긴장을 풀고 싶을 때는 옥로주 한잔에 섭씨 40도 정도의 따뜻한 물 2잔을 섞어 마시고 오렌지 2잔에 옥로주 1잔이면 맛있는 칵테일이 된다. 노 교수는 “참맛은 역시 45도의 옥로주를 그대로 마시는원샷에 있다”고 말한다. 이동구기자
  • LPGA 캐리웹 외조부 ‘개선 못보고 사망’

    [골드코스트(호주) AP 연합]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최연소 커리어(생애)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캐리 웹(호주)의외할아버지 믹 콜린슨(71)씨가 외손녀의 개선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LPGA챔피언십 우승컵을 안고 호주로 급히 돌아온 웹은 27일 오전 9시쯤 외할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 도착했으나 이미타계한 뒤였다고 웹의 코치 켈빈 홀러가 28일 전했다. 콜린슨씨는 웹에게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 골프 클럽을쥐어주며 골프와 인연을 맺도록 해 세계 최고의 여자골프선수를 탄생시킨 인물. 웹은 외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LPGA챔피언십 4라운드 출전을 포기하려 했으나 “우승해 달라”는 외할아버지의 당부를 전해듣고 경기를 계속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달성했다.웹은 우승 인터뷰에서 “우승컵을 외할아버지에게바친다.쾌유를 바란다”며 눈물을 쏟았다.
  • 김 국방, 한국전 종군기장 수여

    미국을 공식 방문중인 김동신(金東信) 국방장관은 19일 (현지 시간) 미 상원 군사위원회 회의실에서 존 워너 상원 군사위원과 나이트 호스 캠벨 상원의원, 솔로콤 전 국방부 정책차관 등 6·25전쟁에 참전했던 7명에게 한국 정부의 참전 기장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친필 감사서한을 수여했다. 이 자리에는 민주당 칼 레빈 상원군사위원장은 물론 워너의원 등의 손자·손녀 등 가족과 친지,지인 등 80여명이 함께 참석했다. 워싱턴 노주석특파원 joo@
  • 방미 김동신 국방장관 옛 美軍친구 묘소 찾아

    [워싱턴 노주석특파원] 한미 국방장관회담을 위해 18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을 공식 방문한 김동신(金東信) 국방장관이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아난델 지역에 있는 옛 미국인 벗의 묘소였다. 김 장관은 숙소에서 여장을 푼 뒤 곧바로 미 국방부 한국과장을 지낸 월러스 노울즈씨의 묘소를 찾아 헌화하고 참배했다. 김 장관은 80년대 초반 대령으로 두차례나 국방부 국외정책과장을 맡으면서 당시 미 국방부 한국과장이던 노울즈씨를 카운터 파트너로서 처음 만났다. 노울즈씨는 78년부터 4년간 육군 중령으로 한국과장을 맡았으며 82년 전역한 뒤에도 96년까지 14년동안 예비역으로 미 국방부 한국담당관을 지냈다. 노울즈씨가 작고한 것은 99년 6월8일.김 장관은 당시 고인의 장례식에 주미 육군무관을 보내 조사를 대독하게 했을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 노울즈씨와 한국의 인연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그는 한국인 양녀를 입양해 키워 결혼시켰으며,이 양녀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외손녀를 맡아 키우는 등 한국에 대한 애정을 죽는 날까지 간직했다. joo@
  • 기자커뮤니티 엿보기/ 희망으로 부활하는 역사의 무게

    5월,또다시 광주를 떠올립니다.가혹한 역사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들. 하지만 역사의 무게를 느끼고 있는 삶이 다 그렇게 비극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작년 5월 어느 방송의 특집프로를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한 외신기자가 밝히는 20년 전 광주. 죽음 앞에서 용기와예지를 간직했던,그가 보았다는 한 젊은이의 영혼. 평생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고 말하는 그의 들뜬 듯한 모습에서, 저는 역사의 무게가 한 개인의 삶의 무게로 바뀌어 일생을 지탱시키는 희망의 힘이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도 제 영혼을 정화시킬 수 있는 그런 감동적인 역사의순간을 맞고 싶습니다.지금 그게 안 된다면 영화를 통해 간접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죠? 켄 로치 감독의 ‘랜드 앤 프리덤’(Land And Freedom:A Story from the Spanish Revolution,1995). 영화는 한 노인의 장례식에서 손녀가 읽었던 시구로 시작됩니다.“삶을 바칠 가치가 있는 것은 또한 목숨을 바칠 가치를 갖고 있다(There is nothing worth living for that isn’t worth dying for).” (중략)‘랜드 앤 프리덤’은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할아버지 세대인 아나키스트들의 못 다한 이야기를 손녀 세대의시점으로 다시 쓰면서,결국 지금의 희망에 대해 말하고 있는 영화입니다.30년대 뜨거운 가슴으로 혁명을 이야기하던데이빗은 90년대 영국에서 평범한 서민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그가 이 세상에 남긴 흔적이란 빛바랜 사진과 신문기사,그리고 전장에서 썼던 편지뿐.할아버지의 낡은 흔적들을주워 모으며 회상에 잠기는 데이빗의 손녀는 30년대와 현재의 관객을 잇는 고리입니다. 그녀의 회상을 따라 펼쳐지는 스페인의 혁명 드라마는-죽은 데이빗이 남은 자료를 통해 그의 손녀에게 이야기를 걸듯-결국 감독이 관객에게 혁명의 열정을 현재로 부활시키고자 하는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비록 공산주의에 이용당하고 파시즘에 희생당하지만 역사의 희생자가 아닌 역사의 주인들이라는 것을말하고 있습니다.영화의 첫 시작처럼 진정한 삶의 희망을위해 목숨을 걸었던 그들이야말로 철없는 이상주의자가 아닌 이름없는 영웅들이란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겠죠.감독의 의도대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희망을 실천하고,후대에 또 우리들만이 간직한 희망과 열정의 이야기를 남겨야 하지 않을까요. “도대체 왜 사나”하는 의문이 들 때 켄 로치의 영화들을본다면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전문▶kdaily.com)김소연 편집팀 기자
  • 불꽃처럼 살다간 여자 정월 라혜석전집 출간

    한국 최초의 여류화가이자 여성작가,여성해방론자로 활동한 정월 라혜석(羅蕙錫·1896∼1948)의 글과 그림을 총망라한 ‘원본 정월 라혜석 전집’(국학자료원)이 출간됐다. 이 ‘전집’은 기존 라혜석 관련 자료집과는 달리 그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원본으로 수록한 점이 특징이다. 총12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그의 대표작인 ‘농촌풍경’‘무희’‘불란서 마릉 풍경’‘자화상’‘김우영 초상’ 등을 원본사진으로소개하고 있다.제2부는 그가 ‘여자계’에 발표한 ‘경희’‘회생한 손녀에게’등 소설작품을,제3·4부는 그가 쓴희곡·시를 담고 있다.또 제5·6부에는 남편 김우영에 대한 단상,육아체험,연애·결혼문제 등에 대한 수필과 여성의 자기인식에 대한 글들이 수록돼 있다.제8부에 실린 페미니스트 산문이나 제9부에 실린 ‘회화와 조선여자’는국내 최초의 여성미술론으로 불리고 있다. 이어 제10부에는 그가 남편 김우영과 함께 1927년 6월부터 1년반 동안 구미 각국을 여행한 여행기를,11부에는 당시 각종 신문에 실린 그의 인터뷰,좌담기사 등을모았고,마지막 12부에는 그의 사후 염상섭이 쓴 그의 추모소설 ‘추도’와 라혜석이 3·1의거 당시 보안법 위반으로 검찰조사를 받은 ‘신문조서’가 부록으로 첨부돼 있다. 경기도 수원에서 총독부 군수집안의 딸로 태어난 나혜석은 당시로선 드문 여류화가 이외에도,첫애인이었던 최승구의 죽음으로 만주국 부영사인 외교관 김우영과의 결혼,구미 여행시절 최린과의 염문과 그로 인한 이혼,말년의 비참한 생활·최후 등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정운현기자 jwh59@
  • 美 ‘장외카드’ 먹힐까?

    미중 관계가 최악 상황으로 가는 것인가. 지난 1일 군용기충돌사건과 관련된 자존심 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24일 타이완에 대한 첨단무기 판매 결정이 예정돼 있고 20일에는미국이 리덩후이(李登煇) 전 타이완 총통에게 방문비자 발급 방침을 밝혀 양국간 감정의 골은 깊어질대로 깊어진 모습이다. 물론 미국은 무기판매가 타이완관계법에 의거한 적법한 판매임을 항변하며 무기판매와 정찰기 충돌사고와는 별개사안이라고 주장하나 액면 그대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기판매 목록에는 디젤 잠수함,잠수함 초계기,패트리어트미사일, 키드급 구축함 등 여러가지가 포함돼있으나 핵심사안은 육·해·공 적의 동태를 한꺼번에 파악하게 해주는 이지스 레이더를 장착한 구축함의 판매 여부. 중국은 이미 “이지스함 판매시엔 타이완을 공격할 것”이라고 협박한 바 있어 이번주 결정될 무기판매 내용에 따라양국은 감정의 폭발을 보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또 리 전총통이 30일부터 5월6일까지 뉴욕주 코넬대 연설과 손녀 상봉을 위한 미국 방문비자가 발급될 예정이어서미국이 중국을 정확히 계산된 방법으로 자극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다음달 21일 중남미 순방에 나서는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에게까지 방문비자를 발급할 것으로 보여 미중 관계는 정찰기를 둘러싼 자존심싸움에서 감정자극 차원으로 변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가 “건조시까지 8년 이상걸리고 타이완이 다루지 못할 정도로 높은 기술수준인데다현시점에서 중국과 정면충돌이 뻔한 이지스함은 판매목록에서 제외하는 것이 좋다”는 미 국방·국무 실무팀의 건의를받아들여 극한 충돌은 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타이완 인사에 대한 비자 발급 자체가 이지스함 판매 대신중국 압력수단으로 고려됐던 사항이었다. 따라서 이를 실행한 것은 극한 충돌을 피하려는 차선책 이행이어서 미중관계는 표면적 알력 이면에 극단상황만은 피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 보스턴 마라톤 이봉주 우승/ 천안 고향집 축제 분위기

    “지난달 세상을 뜬 봉주 아버지가 이 영광스런 장면을보았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아들이 17일 새벽 미국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하는모습을 충남 천안시 성거읍 소우리 고향집에서 지켜본 이봉주 선수의 어머니 공옥희(孔玉姬·66)씨는 “봉주가 미국에 가기 전 전화로 이번 일요일 아버지의 49재에 우승소식을 반드시 갖고 가겠다고 다짐했었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공씨는 이날 새벽 딸 경숙(慶淑·34)씨 부부,외손녀(11),외손자(8)와 함께 TV로 아들이 달리는 모습을 지켜봤다.이 선수의 누나 경숙씨는 “잘했다.고생했다”고 말했다. 공씨는 “작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메달을 못 따 섭섭했었는데 이번에 우승하게 돼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며 아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주기를 바랐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성적을 내 나라의 위상을 세계에떨쳤으면 한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이날 아침 TV로 이 선수의 우승사실을 알고 달려온 마을주민들은 “상중인데 무슨 잔치냐”는 공씨의 만류에도 부침개를 부치며 조졸하게 잔치상을 마련,이 선수의 쾌거를축하했다. 천안 이천열기자 sky@
  • 이희호여사, 한복전시회 참석

    대통령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는 2일 오후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한복전시회에 참석, 우리 고유의 복식문화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이 여사는 이 자리에서 한복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강조한 뒤 “한복을 경쟁력 있는 문화상품으로 발전시켜 나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시회는 독립운동가 박영효(朴泳孝)선생의 증손녀이자서울시 무형문화재 11호 침선장(針線匠) 보유자인 박광훈(朴光勳·예명 朴宣映)씨가 조선 전기 복식인 삼회장 저고리등 전통복식 234점을 기증해 이루어졌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희망 2001] 안동 안막동노인회

    “꿈을 키우며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거라” “할아버지 할머니,열심히 공부해 은혜에 꼭 보답할게요. 부디 오래오래 사세요” 최근 경북 안동시 명륜동 길원여고 교정에서는 훈훈한 사랑을 전달받는 정경이 펼쳐졌다. 일흔을 넘긴 백발의 노인들이 빈병과 폐지 등 재활용품을 주워모아 모은 돈 100만원으로 이 학교 불우학생 5명에게 20만원씩을 장학금으로 전달했다.안동시 안막동노인회(회장 金堧東·76) 회원 50여명이 96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행하는 ‘사랑의 장학금 전달식’이다. 올해까지 이렇게 모은 돈 675만원이 가정형편이 어려운길원여고 학생 35명에게 장학금으로 지급됐다. 노인들이 재활용품을 수집해 판 돈으로 장학금 마련에 나선 것은 지금으로부터 7년전. 이들은 거의 매일 오후 서너 시간씩 리어카를 끌고 동네구석구석을 돌며 버려진 각종 재활용품을 수집하고 있다. 노인들은 폐품을 처분해 하루 평균 1만∼2만원 남짓한 돈을 손에 쥐게 되지만 노인회 운영을 위한 공동경비를 빼면 별로 남는 것이 없다. 그러나 손녀뻘인 불우 학생들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허리띠를 졸라맸다.경로당 난방비까지 줄여가며 해마다 100만∼120만원 정도를 꼬박꼬박 적립,장학금으로 지급해 오고있다. 김 회장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녀뻘 학생들을돕는 보람에 이제는 모두가 힘든 것도 잊고 산다”고 흐뭇해했다. “경로당에서 잡담을 나누며 술 마시고 화투놀이하는 것보다 비록 힘은 들지만 얼마나 보람있고 기쁜 일인지 몰라요” 길원여고 김창훈(金昶勳·47)교장은 “노인들의 장학금이 학교에서는 ‘천금 장학금’으로 통한다”며 “장학금을받은 학생은 물론 교사와 다른 학생들까지도 노인들을 존경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 안동 김상화기자 shkim@
  • 현대 비서실 막내린다

    현대그룹 비서실이 32년만에 해체된다. 현대는 27일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의 별세로 비서실 조직이 더 이상 필요없게 돼 조만간 기존의 비서 4명을다른 곳으로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그러나 명예회장실은 당분간 남겨두기로 했다. 비서실 역사는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현대건설 사장에서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69년부터 시작됐다.건설 사장때는 여직원 1∼2명이 잡일을 거드는 정도였으나,회장이 된 뒤부터비서라는 기구를 만들었고 직원도 4∼5명으로 늘렸다. 초대 비서실장은 이익치(李益治) 전 현대증권 회장.이 전회장 전에 자유당 시절 한희석 국회부의장의 딸인 한경자씨와 한글학자 최현배씨의 손녀인 최은주씨 등이 왕회장을 잠깐 ‘모신’ 적이 있다. 이 전 회장을 필두로 김재수(金在洙) 현대구조조정위원장,이병규(李丙圭)현대백화점 사장,이전갑(李銓甲) 기아차 부사장,홍사성(洪思成) 현대아산 상무,박찬종(朴^^宗)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 이사 등이 뒤를 이었다.장수비서로는 이 사장(77∼91년)과 현대자동차 김경배 차장(91∼2000년)이 있다. 사람을 한번 쓰면 오래쓰는 왕회장의 성품탓에 지금까지왕회장 비서는 전·현직을 포함해 남자비서 14명,여비서 16명 등 30명을 넘지 않는다.비서출신의 한 관계자는 “현대그룹 비서실은 종합조정실역할을 해온 삼성 비서실과 달리개인비서의 성격이 강했다”면서 “왕회장이 건강했을 때는1년에 한두번씩 ‘부부 단풍놀이’를 갈 정도로 화기애애했다”고 전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정주영 가족사

    정주영(鄭周永)전 현대 명예회장의 가계는 유교풍의 전통적인 대가족이다.6남1녀의 형제들 가운데 맏형으로 집안의어른이었고, 직계 자녀만 8남1녀를 두었다.손자와 손녀만도 20명이다.현대호(號)의 선장인 동시에 현대 패밀리의가장이었다. 동생과 두 자식이 앞서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었고,아들들의 경영권 분쟁으로 현대호가 크게 흔들리는 쓰라림을목도하기도 했다. 동생들에게는 처음에는 함께 일하다가때가 되면 독립시켜주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그래서 관련기업은 형제들과 아들들이 골고루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자녀그룹 장남 몽필씨가 지난 82년 세상을 떠나면서 2남몽구씨가 장남 역할을 하고 있다. 몽구씨는 동생 몽헌씨와갈등을 겪으면서까지 현대그룹의 모태인 건설을 잡고 싶어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대신 기아·현대차 회장으로자동차 관련 소그룹을 맡고 있다. 3남 몽근씨에게는 현대백화점으로 대표되는 금강개발산업을 맡겼다.4남 몽우씨는90년 자살했다. 5남 몽헌씨에게는 현대건설을 떼주었다.대북사업을 총괄하는 현대아산도 몽헌씨의 몫이다.자녀 가운데 유일하게정치에 뛰어든 몽준씨는 현역 국회의원.현대중공업을 이끌다가 지금은 고문으로 한발 물러섰지만 여전히 중공업의최대주주다.7남 몽윤씨와 막내아들 몽일씨는 각각 현대해상 고문과 현대기업금융 회장으로 금융업을 맡고 있다. ■형제 그룹 현대건설을 함께 일구어낸 첫째 동생 인영씨는 지난 62년 분가했다.인영씨는 현대양행을 설립하면서한라중공업을 기반으로 한 한라그룹을 형성했고,지금은 자식들이 이끌고 있다.둘째 동생 순영씨에게는 시멘트와 레저사업이 중심인 성우그룹을 떼주었다.여동생 희영씨는 규모는 작지만 한국프랜지 회장으로 장남 김윤수 부회장과함께 직접 경영을 맡고 있다. 넷째 동생 세영씨는 현대자동차를 키운 장본인.현대산업개발을 경영하는 등 가장 최근까지 정 전 명예회장과 일을한 동생이다. 지금은 현대산업개발의 경영권을 아들 몽규씨에게 넘겨주고 명예회장직만 맡고 있다.다섯째 동생 신영씨는 62년 독일 유학 중 작고했고,미망인인 장정자 여사가 현대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막내동생 상영씨는 80년그룹에서 분가한 KCC(전 금강고려화학)회장으로 금강종합건설 등을 거느리고 있다. 류찬희기자 chani@. *현대 선정 ‘정 회장 10대 업적'. 현대는 22일 기업가로서 탁월했던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10대 업적’을 선정했다. ■1965년 국내 최초로 해외 고속도로공사 수주■68년 경부고속도로 건설■71년 26만t급 유조선 2척 수주■74년 포니 승용차 개발■76년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공사 수주■81년 서울올림픽 유치■84년 유조선공법으로 서해안 개척■86년 포니엑셀 미국시장 진출■98년 소떼몰이 방북■2000년 금강산 관광사업 유치
  • 타계한 경제거목 왕회장 정주영씨/ 일대기

    정주영은 격동의 현대경제사의 산증인이자 역사 그 자체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근대화의 거목(巨木)이었고,옛소련과 중국의 경제 교류를 이끌어낸 민간 외교관이었다. 서울올림픽을 유치,성공적으로 치른 체육인이면서 사회사업가이기도 했다.누구도 엄두내지 못했던 ‘소떼 방북’으로 금강산 관광을 이끌어낸 이도 그였다.‘소떼 방북’은지난해 6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밑거름이 됐다.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로 자신의 퇴진 여부가 도마에 올랐던 지난해 5월에는 ‘3부자 동반 퇴진’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던정주영.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그의 자서전 제목만큼이나 그의 인생 역정은 위기와 시련,극복의 연속이었다. ■소년 정주영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의 산골짜기에서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그의 호 아산도 고향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어려서부터 남달리 야심이 많았던 그에게“농사일을 하라”는 부친의 말은 성에 차지 않았다.가난은 야심찬 통천 산골의 소년을 잡아두지 못했다. 신천지를 꿈꾸며 세번씩이나 가출을 시도했던 정주영은 19살때 아버지가 소 팔아 모아 둔 70전을 훔쳐 들고 네번째‘탈출’에 성공, 드넓은 세상으로 나온다.그러나 기다리는 것은 냉엄한 현실뿐.막노동판을 전전하다 다다른 곳이서울 신당동 쌀 가게였다.황소처럼 우직하게 일한 그에게운이 따랐다.그의 성실성에 탄복한 주인이 그에게 쌀 가게를 넘겨줘 일약 점원에서 사장으로 올라앉게 된다.‘경일상회’라는 상호로 자신의 간판을 내단 것은 고향을 떠난지 4년 만의 일이다.보통학교(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그에게 ‘안되는 일은 없다’는 불굴의 의지가 생긴 것도 이무렵이다. ■사업은 탄탄대로 40년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에 자동차수리공장인 ‘아도써비스’를 창업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의길로 들어선다. 이후 46년에는 중구 초동에 현대자동차공업사를,47년에는 현대건설 모태인 현대토건을 세우며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손대는 일마다 성공했다.그에게 ‘두려움’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머리 속은 ‘도전’ ‘성공’이란 단어들로만 가득찼다.반세기에 걸친 ‘현대 역사’의 시발점이었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잠깐 부산으로 피란 길에 올랐던 그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복구사업에 뛰어든다.단일 공사로는최대였던 한강 인도교 복구공사를 맡아 일약 대형 건설업체로 부상한 것도 57년이다.62년부터 본격 추진된 경제개발계획때는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65년에는 태국의 파타니 나라와소 고속도로공사를 따내면서 국내 최초로 해외에 진출하는 개가를 올렸다.68년엔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성공리에 마친다.세계 최단 시간 완공이라는 기록까지남긴 이 공사는 ‘정주영’을 불세출의 인물로 각인시킨대역사였다. 70년대 후반은 중동 붐을 타고 대규모 건설공사를 수주,현대를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또 다른 계기가 됐다. 사업 절정기는 80년대.76년 최초의 국산 모델 ‘포니’승용차를 만들어 미국 수출 길을 닦았다.86년에는 포니의 후속 모델인 엑셀이 미국 수입시장 소형차 판매 1위를 차지,‘엑셀신화’를 만들어냈다.엑셀신화는 후속 모델인 엑센트,베르나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결단의 승부사 그의 ‘신화 창조’는 초인적 의지와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그의 삶은 위기와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그때마다 특유의 뚝심으로 승부를 걸었다.결과는 늘 적중했다. 고비때마다 결단은 더욱 빛났다.한국전쟁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한겨울에 유엔군 묘지에잔디를 깔라는 미군측 요청에 보리밭을 떠다가 푸른 잔디로 바꿔 현대건설이 미군 공사를 독점한 일화는 두고두고회자된다.조선소 도크도 없이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내밀어 영국에서 조선소 건설 차관을 따낸 일,일본나고야를 제치고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일은 아마도 그가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84년 2월 서해안 서산 간척지의 물막이공사는 정주영의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다.양쪽에서 쌓아온 방조제의 끝 사이를 막아 조류를 차단하는 당시 공사는 유속이너무 빨라 난공사 중 난공사였다.정주영은 때마침 외국에서 들여온 고물 유조선 한 척을 활용하는 ‘기발한 발상’으로 물막이공사를 완벽하게 해낸다.후일 ‘정주영공법’으로 불렸을 정도다. 그런 그에게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대통령에 출마해 떨어진다.대가는 비쌌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쓰라린 실패로 기록된 이 사건으로 그는 현대그룹 일선에서 물러났고,건강도 극도로 악화되는이중고(二重苦)를 겪어야 했다. 회사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문민정부 5년간 각종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일 욕심은 물론 명예욕도 컸던 그가재벌의 정치 참여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을 계산하지 못해무리수를 둔 결과였다. ■마지막 불꽃,대북사업 금강산에 가졌던 그의 애착은 남달랐다.그에게 통천에서 가까운 금강산은 바로 고향이었다. 98년 6월 ‘소떼 방북’을 추진하면서 “아버님의 소판돈 70전을 갖고 집을 나선 뒤 긴 세월 동안 저는 묵묵히일하는 소를 ‘성실과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삼고 인생을걸어왔습니다. 이제 그 빚을 갚기 위해 한 마리의 소가 1,000마리가 되어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갑니다”라며벅찬 감회를 표현했다. 발이 부르트도록 방북 길에 올랐던 그의 노력은 헛되지않았다.‘3부자 동반 퇴진’과 함께 대북 총수 자리를 아들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에게 물려줬지만대북사업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금강산 관광에 이어 개성공단을 따낸 것도 성과 중의하나다. 지난해 6월28일에는 막걸리를 싣고 방북,김 위원장이 지방 순시 중인 원산까지 날아가 대북경협을 담판짓는 지칠줄 모르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자식들엔 엄격 손주들엔 자상. 아버지 정주영은 자식들에겐 매우 엄격했다.잘못을 저지른 아들에겐 용서를 허락하지 않았다.아들들은 아버지 앞에서는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고 고백하곤 했다. 92년 총선 전후까지만 해도 자식들을 한데 모아 아침을같이 먹고 계동사옥으로 출근할 정도로 가부장적인 면을지니고 있었다.자식들과는 달리 손자·손녀들에게는 정이많은 할아버지였다.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손자·손녀들을 자주 찾곤 했다. 이렇듯 위세당당하던 그도 나이는 이기지 못했다.말년에몽구(MK)와 몽헌(MH) 두 아들이 싸우면서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데 몹시 속상해 했다고 한다. 일 벌레로 비쳐진 그에게도 멋진 풍류가 있었다.‘아침이슬’을 곧잘 불러댔고,한번 마이크를 잡으면 ‘가는 세월’ ‘고향의 봄’ ‘고향무정’ 등 3∼4곡을 불러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노래를 좋아했다.시간이 날 때면 작가와화가를 만나 문학과 예술을 논하는 면도 있었다. 외지와의 회견에선 “120살까지 살겠다”고 장담했던 정주영.그러나 그도 불로초를 구할 수는 없었다.매순간 승부로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던 대사업가 정주영은 이승에 ‘왕(王)회장’이란 이름 석자를 남기고 끝내 이 세상을 떴다.사업가로 첫 발을 내디딘 지 63년,47년 현대건설 전신인 현대토건을 설립한 지 꼭 54년 만의 일이다. 손성진기자 sonsj@
  • [씨줄날줄] ‘5월광장’의 어머니들

    지난 6일 아르헨티나에서 들려온 뉴스 하나가 눈길을 끈다. 가브리엘 카발로라는 연방법원 판사가 “군사독재 관련자들의 면책특권을 규정한 1987년 사면법은 위헌이며 따라서 무효”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군사독재 시기인 1978년 반체제 인사 호세 로아 부부와 8개월된 딸을 납치해,부부는 살해하고 딸은 불법 입양한 혐의로 기소된 예비역 육군중령 등군정 관계자 11명에 대한 재판에서였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중심가에는 ‘5월광장’이 있다.이 광장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후 3시가 되면 일단의 할머니들이 “납치해간 가족들을 돌려달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30분 동안 침묵시위를 벌인다.‘5월광장의 어머니들’로 불리는 사람들인데,시위를 시작한 지 20년 넘게 세월이 흘렀는지라 대부분 할머니들이다.민주화 투쟁을 하다 납치된 아들과 며느리,혹은 딸과 사위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아닐테니 불법 입양된 손자나 손녀라도 돌려달라는 것이다. 이들의 침묵시위에는 시민들도 “인간 백정들을 처단하라”는 피켓을 들고 동참한다. 군사독재 시기 군부는 반체제 민주인사와 가족들을 닥치는대로 납치해 갔다.한번 납치되면 그 뒤로는 종무소식이다.부모들은 고문으로 살해하고 자녀들은 신분을 바꿔 다른 사람에게 입양시켰기 때문이다.임산부의 경우 출산을 기다려 신생아는 입양시키고 산모는 살해하기도 했다.그렇게 실종된사람이 무려 3만명이 넘는다. 1982년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배한 뒤 들어선 라울알폰신 정권은 비델라, 비올라,갈티에리 등 군부 독재자들을내란과 살인, 인권유린 등으로 사법처리했으나 1987년 사면법을 제정해서 모두 사면했다.알폰신의 사면법은 국민화합을위해서라지만 지나친 관용으로 정의에 반(反)하는 일이 아닐수 없다. 그동안 ‘5월광장의 어머니들’은 납치 관련자들을추적해서 법정에 세웠지만 문제의 사면법 때문에 범법자들을단죄하지 못했다.다만 유전자 검사를 통해 40여명의 손자 손녀들을 되찾았을 뿐이다. 그 사면법을 위헌으로 판정한 이번 판결을 계기로,1976부터1983년까지 역대 군사독재정권 아래 인권을 유린했던 ‘인간백정들’은 이제라도‘죄값’을 제대로 치렀으면 한다. 장윤환 논설고문 yhc@
  • 한국 첫 창작오페라 ‘견우직녀’원본 발견

    월북작곡가 안기영(安基永·1900∼1980)이 작곡한 한국 최초의 창작 오페라 ‘견우직녀’원본이 발견됐다.1937년 라미라가극단이 초연한 ‘견우직녀’의 악보는,당시 라미라와 쌍벽을 이룬 반도가극단의 악장 박구씨의 아들 박경삼교수(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가 최근 발굴했다. 박교수는 9일 “집 다락에서 악보를 찾았다”면서 “내년월드컵 직전에 이 오페라를 남북합작으로 제작하고자 정부당국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견우직녀’는 서양적 화성에 민요적 선율을 결합한 전체4막 2시간짜리 향토가극(한국적 오페라)으로,구전으로만 존재가 알려져왔다.따라서 국내 음악계는 그동안 37년 나온 이 작품을 제쳐놓고 50년에 발표된 현제명의 ‘춘향전’을 첫창작 오페라로 인정해 왔다. 안기영은 이화여대 교가와 가곡 ‘그리운 강남’등을 지은작곡자이자 국내 첫 테너가수지만 6·25직전 월북한 탓에 음악적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민경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학과교수는 “‘견우직녀’가 북한 혁명가극운동의 원류가 돼 ‘꽃파는 처녀’‘피바다’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안다”면서 “한국 오페라사를 연구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견우직녀’에 직접 출연한 적이 있는 원로 음악평론가 박용구씨도자신의 글에서 “현제명 작곡의 ‘춘향전’보다 시기적으로앞설 뿐만 아니라 작품수준도 월등하다”고 ‘견우직녀’를극찬한 바 있다. 안기영은 월북후 평양국립음악학교(현 평양음악무용대학)교수와 국립예술극장 창작부장등을 지냈으며 그가 데리고간 딸 남식씨(65)는 피아니스트로서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남한에서는 외손녀인 소프라노 김영미씨(예술종합학교 교수)가활동하고 있다. 허윤주기자 rara@
  • 진화작업 소방관 6명 참사

    휴일 새벽 꽃샘추위 속에 화재현장에 출동한 소방관 6명이사람을 구하기 위해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불속으로 뛰어들었다가 무너지는 건물더미에 깔려 순직했다.서울세곡동 화훼단지 비닐하우스에도 불이나 10명이 숨졌다. 4일 오전 3시48분쯤 서울 서대문구 홍제1동 312의 135 2층주택에서 불이 나 건물이 붕괴,서울 서부소방서 소속 박동규(朴東奎·45)소방장 등 6명이 숨지고 이승기(38)소방교 등 3명은 중상을 입고 치료 중이나 이 소방교는 위독하다. 숨진 소방관들은 화재가 난 건물 안에 사람이 남아 있다는말을 듣고 확인하기 위해 불타고 있던 건물 안으로 들어가다순식간에 변을 당했다. 경찰은 집주인 선모씨(69·여)의 아들 최모씨(32)로부터 “어머니에게서 꾸중을 들은 뒤 홧김에 불을 질렀다”는 자백을 받아냈다.최씨는 정신질환을 앓은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자치부와 서울시는 순직한 소방관들에게 1계급 특진과옥조근정훈장을 추서하고 국립묘지에 안장하기로 했다.또 서소문동 서울시청 별관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했다.영결식은 6일 서울특별시 소방방재본부장으로 치를 예정이다.한편 이날오전 4시40분쯤 서울 강남구 세곡동 202 율암마을 화훼단지비닐하우스에서 불이나 잠을 자던 이일행(李一行·58)씨 등일가족 10명이 숨졌다.경찰은 일단 누전 또는 전기곤로 과열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사망한 사람은 다음과 같다. ◇홍제동 화재 △박동규△김철홍(金喆洪·36·소방교)△박상옥(朴相玉·33·〃)△김기석(金紀錫·43·〃)△장석찬(34·소방사)△박준우(朴埈佑·31·〃) ◇세곡동 화재 △이일행△김옥례(金玉禮·54·이씨의 부인)△황수연(黃水蓮·31·〃 큰며느리)△이현수(29·〃 둘째아들)△박구자(朴九子·28·〃 둘째 며느리)△이아성(李雅星·6·〃 손자)△이유성(李兪聖·4·〃)△이유진(李兪珍·5·〃 손녀)△이아진(李雅珍·2·〃)△이아선(李雅善·1·〃)전영우 안동환기자 anselmus@
  • 3차 이산상봉/ 성경희씨 어머니의 전언

    “승무원 옷차림을 한 딸이 비행기에 따라 타고 온 것만 같아요” 지난 69년 납북된 대한항공 여승무원 성경희(成敬姬·55)씨의 어머니 이후덕(李後德·77)씨는 28일 오후 아시아나 특별기로 입국,김포공항 국제선 1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3차이산가족 방문단으로 평양을 다녀온 소감을 담담하게 밝혔다. 이씨는 “30여년 동안 꿈에 그리던 딸을 만나 이제 죽어도여한이 없다”면서 “함께 피랍됐던 승객 7명도 다들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씨에 따르면 성씨는 대한항공 서울발 강릉행 YS-11기 여객기가 연포공항에 내린 뒤에야 북한 군인들을 보고 납북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성씨는 피랍 직후 김일성종합대학 연구원(대학원)에 입학해 역사를 전공,현재 김일성대국토통일연구원에서 일하며 북한 곳곳을 답사하고 강연을 하는 등 학계에서 활동하고 있다.김일성종합대학 지리학 교수인 남편 임영일씨(58)와는 김일성대 재학 때 도서관에서 만나 사랑을 나누다 73년 결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평양에서 사위가 직접 마련해 준희수(喜壽) 생일상과 짙은 보라색 한복을 받고 외손자의 기타반주에 맞춰 온가족이 노래를 부르는 등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손녀 손자를 처음 봤는데도 너무 다정하고 어려서부터 보아온 아이들 같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올해26세 된 손녀가 어떤 남편감을 맞을지 벌써 궁금하기만 하다”고 덧붙였다. 딸 성씨가 상봉 전 3일동안 거의 먹거나 자지를 못해 첫날단체상봉이 끝나고 나서는 실신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이씨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딸이역사를 전공한만큼 남한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참가,이곳을방문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며 마지막 희망을 피력했다. 같이 납북돼 북한에서 친자매처럼 지내고 있는 창덕여고 동창생 정경숙(鄭敬淑)씨가 남쪽 가족 상봉을 손꼽아 기다리고있다는 소식을 딸에게서 들은 이씨는 서울을 떠날 때 가져간 가정상비 의약품세트를 “정씨와 나눠 쓰라”며 성씨에게건네줬다고 덧붙였다. 송한수기자 onekor@
  • 3차 이산상봉/ 개별상봉 2題

    첫날의 감격스런 단체상봉에 이어 27일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은 숙소인 서울 롯데월드호텔과 평양 고려호텔에서 가족들과 개별상봉했다.이들은 지난 세월의 깊은 골을 단번에 메우려는 듯 일분일초를 아끼며 혈육의 정을 나누었다. ◆납북 여승무원 성경희씨=“장군님이 내 미래,운명,가족들을 책임져 줄 수 있기에 내가 원해서 이곳에 남은 거야.남에 갔으면 엄마가 내 운명을 책임지지 못했을 거잖아.이 말을꼭 하고 싶었어.엄마.” 32년 만의 감격스런 해후의 기쁨을 가라앉히고 어머니 이후덕(李後德·77)씨의 고려호텔 숙소를 찾은 대한항공 납북 승무원 성경희(成敬姬·55)씨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딸의 위로에 눈시울을 붉힌 이씨는 “네가 말 안해도 나는다 안다.잘 사는 모습 봤으니 이제 돌아가면 네 걱정은 안할거다”라고 애써 성씨를 안심시키는 모습이었다. 분위기가 다소 어색해지자 외손자 임성혁씨(24)가 나섰다. 그는 “할머니 한번 업어봅시다”라며 이씨를 거뜬히 업어보이더니 “(남에) 가지 말고 손자랑 같이 살아요”라며 혈육의 정을 담뿍표시하기도 했다. 이씨는 외손녀 임소영씨(26)에게는 “너 주려고 직접 목도리를 짜왔다”며 손수 뜨개질 한 목도리와 모자를 씌워줬다. 생일을 며칠 앞둔 이씨는 딸과 손자·손녀,사위 임영일씨(58·김일성대 교수)와 둘러 앉아 서울에서 준비해 온 케이크로 조촐한 생일잔치도 열었다.이씨는 “생일까지 미리 당겨서 큰 딸 가족들과 보내고 나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연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냈다. 평양 공동취재단·김상연기자◆피바다가극단장 김수조씨=“너희들 생각에 밤새 잠을 설쳤다.빨리 들어오너라.” 북한 집단체조의 거장 김수조씨(69)는 롯데월드호텔 객실밖까지 나와 복겸씨(54) 등 조카 4명과 이모 진양덕씨(79)를 반갑게 맞았다. 전날 김씨로부터 전해들었던 아버지 수희씨의 사망소식으로 상심했을 조카들에게 조금이나마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워주려는 듯 김씨는 일일이 조카들과 포옹을 하며 어깨를 어루만졌다. 북한에서 최고영예로 통하는 ‘공화국 영웅’과 ‘인민예술인’ 칭호를 받은 김씨는 북한 유명 공연단체인 피바다가극단의 총장(단장).그는 조카들에게 “얘들아,이것 좀 보라.이 삼촌이 자랑스럽지 않냐”며 자신이 연출한 평양세계학생축전 직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찍은 사진과 공화국 영웅 증서 등을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복겸씨도 평양 연극영화대학에서 강좌장까지 지내다 99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아버지 생각으로 “50년 만에 삼촌을 만나니 돌아가신 아버지를 뵙는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최여경기자 swlee@
  • 69년 납북 KAL승무원 성경희씨 母女 평양 해후

    “엄마,엄마…” “내 딸 맞지,경희 맞지…” 지난 69년 12월11일 대한항공 강릉발 서울행 YS11기에 승무원으로 탑승했다가 납북된 성경희(成敬姬·55)씨는 26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32년만에 만난 어머니 이후덕(李厚德·77)씨를 부둥켜 안고 울부짖었다. 납북된 딸을 만나기만 기다리며 살아온 어머니 이씨는 처음엔 딸 경희씨의 얼굴만 바라보면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딸을끌어안고는 왈칵 눈물을 터뜨렸다.헤어질 당시 스물셋의 꽃다운 처녀였던 딸은 어느덧 주름잡힌 초로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난 이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어머니야.전에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줄 알았는데….서신교환 명단에도 들어 편지까지 주고받을 수 있으니 이제 여한이 없어”한동안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던 경희씨는 북에서 결혼한김일성대 교수인 남편 임영일씨(58)와 딸 소영(26),아들 성혁씨(24)를 소개했다.군인인 성혁씨는 외할머니에게 거수 경례를 했다.이씨는 손자를 껴안으면서 “손자,손녀까지 보게돼 너무 좋다”면서 기뻐했고 경희씨는 다시 어머니를 얼싸안고뺨을 비볐다. 그러나 어머니 이씨가 아버지 성충영(成忠永)씨가 지난 79년 작고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경희씨는 다시 한번 목놓아 울었다.소영씨는 지난해 12월30일 “꿈에 처음 보는 키 큰 할아버지가 손을 꼭 잡더니 할머니가 평양에 온다고 알려줬는데 꿈이 이뤄졌다”고 어머니 경희씨를 위로했다.이씨도 “지난해 말쯤 막내딸 은희가 비슷한 꿈을 꿨다”고 신기해했다. 경희씨는 이화여대를 나와 지난 68년 대한항공 여승무원(스튜어디스)으로 취직했다.69년 12월11일 강릉에서 승객 47명과 경희씨를 포함한 승무원 4명 등 51명을 태우고 서울을 향해 떠난 KAL기는 출발 직후인 낮 12시30분쯤 간첩의 권총 위협으로 납북됐다.성씨는 납북 당일 비번이었으나 승무원으로근무하다 함께 납북된 여고 동창 정경숙(鄭敬淑)씨의 제의로 근무를 바꿔 비행기에 올랐다.당시 비행기 탑승 40일밖에안된 햇병아리 스튜디어스였다. 어머니 이씨는 지난 48년 시댁과 친정이 모두 있는 함남 함흥을 뒤로 하고 젖먹이 딸을 업은 채 먼저 월남한 남편을 따라 38선을 넘었다.서신교환 대상자로도 뽑혀 상봉명단에서빠질까봐 서신 대상에서 빼달라고 통일부에 통사정하기도 했던 이씨는 이번에는 딸을 만나러 53년만에 다시 북녘땅을 밟았다.아버지 성씨마저 시샘할 만큼 사이가 좋았던 두 모녀는서로의 얼굴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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