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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 이은 국악가족 ‘득음 선율’ 뽐낸다

    대 이은 국악가족 ‘득음 선율’ 뽐낸다

    “딸과 가야금·거문고 병창을 하고 딸의 거문고 연주에 맞춰 판소리 즉흥연주도 합니다. 피붙이와 하는 공연은 처음이라 부담이 되네요” 국악인 안숙선(56·판소리 가야금 병창 인간문화재)씨가 대를 이어 국악에 뛰어든 딸 최영훈(29·국립창극단·거문고)씨와 처음으로 한 무대에 선다. 이들 모녀는 18일부터 27일까지 삼청동 삼청각에서 열리는 ‘국악가족-부전자전, 모전여전’공연에 출연한다. 이번 공연은 국악의 대를 이어가는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이 한자리에서 국악 한마당을 꾸미는 자리. 국악계의 ‘얼굴’로 알려진 안씨는 공연 일정이 워낙 빡빡해 모시기 힘든 거물이지만 “딸과 함께하는 무대라서 의미가 있다.”며 흔쾌히 공연에 나섰다. 안씨는 “소리는 너무 힘들다.”며 딸의 국악계 입문을 말렸지만 영훈씨는 거문고를 선택,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 지혜를 발휘했다. 하지만 매사에 열심인 영훈씨를 보고 이제 안씨는 “가업을 잇는 딸이 대견스러워 본격적으로 소리를 가르치고 싶다.”며 ‘욕심’을 낼 정도로 딸의 적극적인 후원자다. 영훈씨는 “국악계 후배로서 어머니와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은 큰 영광”이라며 “안숙선의 딸이라는 사실이 과거에는 부담이 됐지만 이제는 어머니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국립국악원에서 악장, 집박(지휘자)으로 20년 넘게 활동해 온 국악계의‘어른’ 정재국(63)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아들 계종(34·국립국악원· 아쟁)씨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아들이 같은 국악의 길을 가고 있어 든든하다.”는 정씨는 피리 정악의 대가. 정악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 등 아들에게 지도를 아끼지 않는 선생님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들 재국씨는 “아쟁이 저음이어서 아버님이 부는 피리 소리를 잘 받쳐줄 수 있다.”며 “이번에 아버님과 같이 ‘함영지곡’ 등을 연주할 계획인데 소리도 크고 웅장해서 볼 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외에 3대째 국악의 길을 걷는 지성자(성금연가락보존회 대표)·김귀자(KBS민속연주단)모녀의 공연도 함께 마련됐다. 가야금 산조 명인인 성금연씨의 딸과 외손녀인 이들 모녀는 일본등에서 활동하며 가야금을 해외에 알린 주역이다. 지씨의 딸 김귀자씨는 도예를 전공했지만 가야금 가문의 대를 잇고자 뒤늦게 가야금에 뛰어든 케이스. 판소리 인간문화재 남해성씨의 아들 한세현(국립국악원 민속단 지도위원)씨와 그의 아들 한림(한양대 국악과)씨도 3대째 이어지는 국악가족. 승무의 달인이라 불리는 한순서(한순서무용단대표)씨와 그의 딸 이주희(중앙대 교수)씨도 이번 공연에 동참한다. 삼청각측은 “사실 명인·명창들은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자식들과의 공연을 스스로 추진하기란 어려운 실정이기에 이번 공연은 보기 드문 공연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군사독재 시절 요정 정치의 산실이던 삼청각이 공연 ‘사랑방’으로 탈바꿈한 것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문의(02)3676-3456.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마니아] 그들은 ‘늙음’을 불사른다

    [마니아] 그들은 ‘늙음’을 불사른다

    “나이가 들면 키가 오히려 줄어들어요. 공 던지고 나면 어깨가 아파 병원에 가기도 하고…. 하지만 야구에 미쳐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어버이날인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전동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할아버지 투수’ 장기원(75)씨는 차분한 목소리로 야구 사랑을 노래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슬로건 아래 50세 이상으로 똘똘 뭉친 노노(No老·늙지 않는다는 뜻) 야구단의 마운드를 책임지고 있다. 노인 야구단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다. 야구단에서는 막내가 56세인 주광수(2루수)씨로, 평균 연령이 60세를 훌쩍 넘겼다. 선수들은 저마다 의욕이 넘친다. 40대만 돼도 ‘할아버지 선수’라는 소리를 듣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놀랄 만하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하기야 팀을 소개하는 노노 야구단 타이틀부터가 이를 잘 말해준다.“늙은이들이 주책이라는 소리도 듣지요.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우리를 얕보다간 큰 코 다칩니다.” ●운동 버릇만은 ‘청년’ 장씨는 “야구가 좋아 일제 때부터 유니폼을 입었는데, 인연을 끊은 뒤 40여년이 지나 다시 뛰게 돼 젊음을 되찾은 기분”이라면서 “아들 둘 가운데 한 명은 직업군인, 또 한 명은 목회자여서 야구를 할 기회는 없다.”고 웃는다. 얼핏 자녀들이 동참하지 못한 데 대한 서운함마저 느껴지는 그의 얼굴에 야구 사랑이 묻어나는 듯했다. “어르신, 연세에 비해 아주 건강해 보이십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장씨는 손끝으로 안경을 밀어올리며 “지금도 군데군데 아파 병원 신세를 진다.”면서도 “그러나 100세든,90세든 (볼을)던질 수 있을 때까지는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부인(72)도 “우리 할아버지는 잘 하는 편”이라고 거들었다. 아파트 베란다 한쪽에 놓인 아령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평소 어떤 운동을 하시는지요.”라는 물음에 그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경기에 나설 꿈도 꾸지 못한다.”고 맞받았다. 매일 한 시간 이상 스트레칭을 한단다. 틈만 나면 아령 5㎏짜리 2개로 근육을 다지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무엇보다 달리기는 기본이라고 덧붙였다. 집에서 가까운 서강대교를 건너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돌아오는 5㎞코스를 매일 아침 뛰다가 최근 잠시 중단했다는 말로 얼마나 체력관리를 해오고 있는지를 그대로 내보였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최근 열린 프로야구 경기장면을 녹화해뒀던 비디오테이프에 눈길이 가고는 했다. 아마 손님을 두고 미안했던지 손녀를 돌보던 부인이 “텔레비전 끄고 얘기를 나눠야지, 나중에 봐도 되잖아요.”라고 핀잔(?)을 주자 실핏줄 굵은 손으로 리모컨을 눌렀다. 장씨는 1997년 3월 노노 야구단이 출범할 당시 엄연히 입단 테스트에 합격한 ‘원조 멤버’다. 광주시 광산동국민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해 광주공고를 졸업하던 1952년 한국전쟁에 징집돼 야구를 그만둔 지 45년만의 일이었다. “라디오를 통해 50세 이상 노인들만을 위한 야구단을 창단한다는 소식을 듣고 쏜살같이 달려갔지요.” 한국전쟁이 끝나고 58년 서울에서 일자리를 잡은 장씨는 야구단이 있는 직장을 수소문했으나 접하기 힘들어 뜻을 접어야만 했다. 대신 조기축구로 몸을 다지다가 놓칠 수 없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여기에다 박규채(67·김천대 방송연극영화과 초빙교수) 당시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단장으로, 윤동균(56) 전 OB 베어스 감독과 최동원(47) 해설위원 등 내로라하는 스타 2명이 감독을 맡아 뛸 듯이 기뻤다. 초창기 동료 37명 가운데에는 장씨에게 인생선배인 선수도 2명이나 있었다. 그 무렵 장씨는 67세였는데 좌익수를 맡은 배용해(2003년 작고), 우익수 홍재룡(이상 당시 73세) 회원이 형뻘이었다. 지난해 들어서는 홍씨도 노노 야구단을 떠나 장씨는 이제 최고령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노노 야구단은 젊은이들에 뒤지지 않는 노익장을 뽐낸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한때 회원이 45명으로 불어났다가 지금은 절반에도 못미치는 20명에 지나지 않아 정비작업 중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아요 장씨는 어린이 날인 지난 5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지하철 지축기지 쪽에 있는 구장에서 ‘피플’을 맞아 6회를 마무리짓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원진리그 AAA리그 소속인 팀은 1대5로 쓴맛을 봤다. 올 시즌 승리는 없고 4연속 패배의 성적이다. 그러나 그는 “사회인 야구라고는 해도 갈수록 기량이 쑥쑥 성장하는 20∼30대와 붙어 어쩔 수 없다.”며 웃었다. 그리고는 “하기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해마다 반타작, 최소한 5∼6승씩은 건졌는데….”라면서 “내 딴에는 최선을 다했는데, 아마추어는 실수 몇 차례로 죽을 쑤는 법”이라고 입맛을 다셨다. 공격과 수비 양면에서 뒷받침이 안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번엔 “그럴 때면 후배들이 야속하겠습니다.”라고 되물었다. 장씨는 “솔직히 져서 좋은 사람은 없지만 나이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라고 거듭 말했다. 타자 10명 가운데 1∼2명쯤은 삼진으로 돌려세운다는 그는 즐겨 사용하는 무기로 홈플레이트 앞에서 구부러져 들어가는 슬라이드를 들었다. 장씨는 “팀이 승리할 때의 기쁨은 더할 나위도 없지만 투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는, 삼진을 낚았을 때의 기분을 마운드에 서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라며 활짝 웃어보였다. ●즐기는 야구, 재미 백배 고교시절 키가 162㎝로 장신 축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보통은 넘었다는 장씨는 얼마 전 160㎝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팀에서 뛰다가 5년 전 회원으로 가입한 고인환(57) 감독은 “선배님은 전체 경기의 40∼50%를 책임진다.”면서 “팀은 내리막길을 걷더라도 ‘오기 때문인지 갈수록 힘이 생긴다.’고 얘기하는 데 후배들이 깜짝 놀라고 있다.”고 알려줬다.” 정신력이 대단하다고 덧붙였다. 일화도 들려줬다. 한창 이기고 있는데, 교체한 선수 때문에 무릎을 꿇는 일이 이따금 나온단다. 어차피 회비를 거둬 팀을 운영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회원 모두에게 뛸 기회를 줘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원칙 때문이었다. 그런데 동료들이 거세게 항의해왔다. 그런 경우가 생길 때마다 “운동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인데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운동하자.”며 설득했으며, 노노 야구단 최고의 보람도 바로 이런 점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고 감독은 이어 “장 선배님 역시 아직도 기량이 녹슬기는 고사하고, 날로 힘이 솟아난다고 한 데에는 워낙 야구를 즐기기 때문 아니겠느냐.”면서 “선수들이 비가 쏟아져도 웬만하면 경기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등 잘 따라줘 고맙다.”고 말했다. ●일본도 무섭지 않은데… 장씨는 98년 6월19일 노노 야구단이 제주시 연동 신제주초등학교에서 열린 일본 실버팀과 친선경기 때로 옛날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양국 친선을 넓힌다는 취지에서 일본 아오모리(靑森) 히로카(弘前) ‘UFO 야구단’과 맞붙었다.77년 창단돼 노노 야구단으로서는 20년 선배인 UFO는 60세 이상 60여명으로 이뤄져 일본에서는 꽤 관록이 있는 팀이었다. 비록 친선경기이지만 노노는 10대 22로 매운맛을 봤다. 이 때의 인연으로 일본 UFO의 2루수 오무라 시로(大村耐郞·68)씨와 아직도 근황이 담긴 편지를 주고받게 됐다고 장씨는 말했다. 노노 야구단에서 선·후배로 운동을 통해 화목을 다졌던 고 배용해 회원과의 잊지 못할 인연도 있다. 일본 와세다대 출신이었던 배씨의 선배로 역시 야구를 통해 사귀었던 실버팀 지바(千葉) 마린스(Marines)의 곤도 에이지(近藤榮治·83)씨도 영원한 ‘야구 친구’로 남았다. 외국관광 등으로 만나 회포를 푼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엔 장씨가 초청을 받아 일본 지바를 방문했다. 마린스가 자신을 위해 마련한 자체 청백전에서 3회를 던졌는데, 자못 놀라워하는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기자 양반, 내 얘기를 늘어놓는 것보다는 노노 야구단에 대해 잘 홍보해 나이 많다고 주저앉은 이들이 팀에 들어오도록 해주면 좋겠습니다.”장씨는 이웃나라인 일본만 해도 실버팀이 150개나 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노인 야구단 더 나와야 ‘50세 이상으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쌍수를 들어 환영’이라는 말도 되풀이했다. 그것도 50세 이상,60세 이상,70세 이상으로 나누어 리그를 벌이는 정도라고 귀띔했다. 우리나라 입장으로는 일본과 비교가 되지 않는 저변이라는 설명이다. “그나마 국내에서는 유일한 팀마저 사그라지는 현실”이라고 안타까운 나머지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고인환 감독은 “2003년 7월 강원도 속초에서 지바 팀과 친선경기를 가진 뒤 올해 세번째로 한·일전을 가지려 했으나 독도 영유권 문제가 터지는 통에 무산된 것은 또 한가지 아쉬운 대목”이라고 한수 거들었다. 장씨는 실버팀 창단이 이른 시일 안에 성사되기는 쉽지 않다는 현실 때문에 다른 대안도 내놓았다. “여성으로만 이뤄진 비밀리에(감독 안향미), 피치스(감독 정혜림) 등 이색 팀과의 경기는 하나의 이벤트로도 썩 괜찮은 작품이 될 것입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역경딛고 파릇파릇 자라는 새싹들

    역경을 딛고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제 83회 어린이날을 맞아 ‘서울사랑시민상’을 받는다. 서울시는 5일 월드컵 공원에서 열리는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모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서울시장 표창인 서울사랑시민상을 수여한다고 4일 밝혔다. 효행예정·봉사협동·용기·창의·근검절약 및 글로벌리더십 등 총 6개 부문에 걸쳐 모두 69명의 어린이 및 청소년들이 상을 받을 예정이다. 어린이상 대상은 몸이 불편한 조부모님을 모시고 어린 동생을 돌보고 있는 손수경(서울용두초등학교 6년·여)양이 받는다. 손양은 지난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도 집을 나간 상황 속에서 가장의 역할을 하며 밝게 생활하고 있어 주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있다. 정부 보조금 40만원으로 네 식구의 한 달 살림을 꾸려가는 손양은 할아버지·할머니와 동생을 돌보며 집안의 실질적인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다. 매일 집안 일을 도맡아 하면서 거동조차 하기 어려운 할머니의 식사를 돕고, 초등학교 2학년인 동생을 챙기고 있다. 손양의 할아버지 손정용(76)씨는 “아들이 가정불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술로 지새우다 세상을 떴지만, 이에 주저앉지 않고 착하게 살아가는 손녀 덕분에 산다.”면서 “집안 일을 다 하고 밤이 되어서야 공부를 하는 수경이가 너무나 안타깝지만, 늘 밝은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매우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효행예절부문 본상을 받는 홍정민(서울성원초등학교 6년)양의 사연도 이에 못지 않다. 뇌성마비 1급 장애를 지닌 오빠를 부축해 매일 재활병원을 따라다니는 홍양은 어머니를 도와 두 명의 어린 동생까지 돌보고있다. 지난해에는 트럭 운전을 하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쳤지만 손양은 좌절하지 않고 현재 반에서 회장직도 맡을 정도로 모범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홍양의 어머니 김옥희(42)씨는 “오빠와 동생들을 챙기는 딸이 너무나 고맙다.”면서 “정민이는 무엇이든 열심히 해서 매번 학교 대표로 글짓기 대회도 나가는 등 지금까지 받은 상이 70개가 넘는다.”며 뿌듯해했다. 이 밖에 소년부 대상은 실업고등학생 창업대회에서 산업자원부장관상을 수상하고 연합창업동아리 대표 활동을 하고 있는 강민구(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3년)군이, 어린이상 봉사협동부문 본상은 정기적으로 노숙자들에게 리코더·단소 등으로 위문공연을 해온 ‘문맥엔젤스(서울문맥초등학교)’ 단원 등이 수상할 예정이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아기 맡기기 겁나는 무자격 베이비시터

    아기 맡기기 겁나는 무자격 베이비시터

    “말 못하는 젖먹이라고 이렇게 함부로 할 수 있나요. 무서워서 아무한테도 애 못 맡기겠어요.” 생후 10개월 된 아들을 키우는 맞벌이 엄마 김모(34·회사원·서울 잠실동)씨는 지난달 29일 근무 도중 이웃 주민의 전화에 심장이 멎는 듯했다.“그 집 아이 돌보는 여자를 조금 전 백화점에서 만났는데 지금 밖에 나와있는 게 이상하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황급히 집으로 뛰어간 김씨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아기가 세탁기 안에 갇혀 꼼짝도 못하고 울고 있었다. 나오지 못하도록 세탁기 뚜껑까지 닫아 놓은 상태였다. 김씨는 “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아이에게 해코지를 할까 두려워 일을 그만두게 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고 울먹였다. 역시 맞벌이 주부인 회사원 이모(35·경기도 분당)씨도 베이비시터에게 딸을 맡겼다 큰 일을 당할 뻔했다. 함께 사는 시어머니가 바깥 일을 일찍 마치고 집안에 들어왔더니 세 살배기 손녀 딸이 침대 모서리에 손이 묶인 채 앉아 있었고 40대 중반의 베이비시터는 옆방에서 태연히 얼굴에 오이팩을 하고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베이비시터들의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부모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핵가족화로 베이비시터의 수요가 늘면서 자질이 떨어지는 여성들이 보모로 나서고 있는 탓이다. 고용인인 부모들은 베이비시터가 전에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사람인지 알 길이 없다. 정부는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보복 두려워 신고도 못해 지난달 서울의 한 경찰서에 30대 직장 여성이 베이비시터를 고소하러 찾아왔다. 그 여성은 “베이비시터가 상습적으로 딸(5)에게 감기약을 먹여 잠을 재운 뒤 외출을 해 왔고, 심지어는 아이를 미용실에 데리고 가 얌전히 있으라며 약을 먹이기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여성은 한참 망설이다 결국 신고를 포기했다. 담당 형사는 “베이비시터가 처벌을 받은 뒤 아이를 유괴하거나 다치게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당하고도 속앓이만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에 따르면 베이비시터를 포함한 이웃 사람의 아동학대는 2002년 34건에서 2004년 77건으로 두배 이상으로 늘었다. 아동학대 의심 사례도 같은 기간 2946건에서 4880건으로 무려 65.6% 증가했다. 센터 관계자는 “의사표현을 거의 할 수 없는 영·유아라는 점에서 부모가 모르는 아동학대는 통계치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육아경험 없는 대학생도 ‘알바’ 법률상 베이비시터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자격요건은 없다. 파견업체 역시 인·허가가 필요없다. 육아경험이 없는 대학생이나 자녀를 키운 지 몇십년이 지난 고령자들도 아무런 교육 없이 일한다. 여성부가 최근 전국 1만 2000가구를 대상으로 보육 실태를 조사한 결과, 탁아모나 베이비시터를 이용하는 가구가 22.6%를 차지했다. 그런데도 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 여성부 관계자는 “영유아보육법에 보육시설에 대한 조항은 있지만 1∼2명의 아동을 가정에서 돌보는 베이비시터들은 대상에서 제외된다.”면서 “베이비시터 파견업 역시 법률상 규제가 불가능하며 숫자가 적어 당국이 나설 필요성도 별로 없다.”고 밝혔다. ●미국선 자격검증 의무화 생활안전연합 윤선화 대표는 “사설기관에서 무자격자들을 베이비시터로 취업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미국에서는 15시간 이상 안전교육을 받고 아동학대 예방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많은 이들이 베이비시터가 ‘쉬운 일거리’라는 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일이 생각보다 고되면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정부가 시설을 만들고 필요한 인력을 훈련시키는 등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지혜 김준석기자 wisepen@seoul.co.kr
  • [길섶에서] 자서전/우득정 논설위원

    10여년간 같은 아파트단지에서 살며 이따금 함께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던 60대 초엽의 여성계 인사 한분이 갑자기 술집으로 호출한다. 여전히 씩씩한 걸음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생맥주집으로 들어서더니 앉기가 무섭게 “동생, 나 자서전 내기로 했어.”라고 선언하듯이 내뱉는다. 내 얼굴에 나타난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표정을 본 듯 “남은 30년을 위해 지나온 날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자식과 손자·손녀들에게도 좋은 유산이 될 것 같기도 하고…”라며 나중에 문장 손질을 해달라고 한다. 그러곤 자서전 집필을 결심하기까지 과정을 설명한다. 올해 초 현역에서 은퇴한 뒤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찾으려 했지만 머릿속에 소음만 무성할 뿐 줄거리 정리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마침내 인생 1막이 정리되지 않았으니 2막의 스토리가 제대로 전개될 리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위대한 사람만 자서전을 쓰라는 법이 있어? 내 삶에도 교훈될 만한 일이 많다고. 자손들에게 이보다 더 소중한 유산이 어디 있겠어.”말하는 품새가 말릴 단계는 지난 것 같다. 한편으론 ‘자손들을 위한 평범한 사람의 자서전’-흥미있는 발상 같기도 하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옌벤처녀, 춤바람 났습니다

    옌벤처녀, 춤바람 났습니다

    이제 막 소녀에서 숙녀로 성장해 가는 여배우를 지켜보는 경험은 특별하다. 마냥 깜찍하게만 대하기엔 어쩐지 미안하고, 그렇다고 순순히 성인으로 인정하기엔 왠지 아쉬운 느낌. 영화 ‘댄서의 순정’(감독 박영훈, 제작 컬처캡미디어)에서 보여지는 문근영(18)은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금세 물기가 고일 듯한 여린 눈망울의 ‘은서’(가을동화)에서 막춤을 추는 천방지축 여고생 ‘보은’(어린 신부)까지, 데뷔 이후 문근영은 언제나 이웃집 여동생처럼 친근한 소녀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사랑에 물든 애틋한 눈빛으로 ‘이렇게 좋은 남자 다시는 못 만날 것 같다.’고 고백할 줄 아는 성숙한 여인으로 어느새 훌쩍 커버린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화려한 댄스복에 아찔한 높이의 하이힐을 신고 열정적인 라틴 댄스를 추는 문근영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혈혈단신 서울에 와서 댄스 스포츠를 배우고, 가슴 두근거리는 첫사랑까지 경험하는 스무살 옌볜 처녀 채린은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문근영의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함께 연기한 박건형은 “어리게만 봤는데 너무 어른스러워 당황했다.”고 털어놨다.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즐거워요.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도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문근영은 이번 영화를 위해 댄스 스포츠는 물론 옌볜 사투리, 중국어를 익혔다. 하루 10시간씩 강행군하며 익힌 춤솜씨는 혀를 내두를 정도. 발톱까지 빠지는 고통을 감수하며 힘들게 연습한 결과는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슴다’로 어미가 끝나는 옌볜 사투리도 귀에 착착 감긴다. 중국어로 부르는 덩리쥔의 노래 ‘야래향’은 관객을 위한 깜짝 선물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멜로 연기. 위장결혼 상대이자 춤 스승인 영새에게 사랑을 느끼는 채린의 모습은 풋풋하고, 애절하다.“사실 멜로연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경험이 별로 없다 보니 감정표현하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연기가 꼭 경험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건 아니잖아요. 감독님이랑 스태프 언니들이 옆에서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그럼 아직 첫사랑을 못해 봤다는 얘기? “첫사랑이라고 할 만큼 좋아했던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는데요. 음, 영화를 찍으면서 돌이켜보니 ‘그게 사랑이었구나.’싶은 초등학교 친구는 있어요.” 수줍은 듯 배시시 웃는 표정은 영락없는 사춘기 소녀다. 문근영이 채린을 통해 간접체험한 사랑의 느낌은 ‘그리움’이다.“사랑은 아주 다양하잖아요. 근데 이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사랑은 그리움이 아닐까 싶어요. 같이 있을 땐 모르다가 지나고 나서 깨닫는 것. 그리워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인 것 같아요.”하지만 사랑도, 연기도 당분간은 사절해야 할 듯싶다. 입시를 코앞에 둔 고 3수험생(광주국제고)의 신분인 그녀가 한동안 매진해야 할 또 다른 역할이다. 하지만 낙천적이고, 쾌활한 평소 성격답게 그녀의 답변은 시원시원하다.“열심히 공부해야죠!.” 얼마 전 작고한 외할아버지 얘기를 꺼내자 검은 눈망울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만족할 만한 답변을 해드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문을 연 문근영은 “할아버지는 뜻이 깊은 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로 인해 할아버지의 뜻이 희석될까 두렵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할아버지에게는 배우 문근영이 아니라 손녀딸 근영으로 남고 싶다는 소망도 덧붙였다. 문근영의 외할아버지는 널리 알려진 대로 장기수로 복역했던 재야 통일운동가 류낙진옹이다.6·25전쟁 직후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른 뒤 1971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문근영의 선행은 신념과 대의를 중시하는 외할아버지의 뜻을 잇는 일이기도 하다. 고향인 광주의 빛고을장학기금으로 내놓은 돈이 1억원을 넘었고, 류낙진옹의 부의금 5000만원 전액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에 통일기금으로 전달,‘역시, 문근영’이라는 감탄을 자아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큐! 아름다운 노년] ③황혼의 쉼터 아쉽다-주거문화 현주소

    [큐! 아름다운 노년] ③황혼의 쉼터 아쉽다-주거문화 현주소

    노인들의 가족 구성과 주거형태가 급변하고 있다. 당당하게 살고 싶다는 의식변화 때문이다. 손자·손녀들을 돌보는 전통적 역할을 거부하고 황혼을 편하게 즐기려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른바 ‘통크족(Two Only No Kids)’으로 불리는 노인들은 주거·건강·여가활동까지 해결할 수 있는 복합 실버타운을 선호한다. 이런 노인들의 욕구충족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도 유료 실버타운 조성에 발벗고 나섰다. 하지만 무분별한 시설 난립은 자칫 부실운영 등 부작용마저 우려되고 있다. ●지방정부 직영 노인복합타운 1곳에 불과 전북 김제시 하동 일대 부지 2만여평에 자리잡은 노인종합복지타운. 이곳은 지난 1996년 보건복지부의 노인종합타운조성 시범사업으로 조성돼 지방정부가 관리하는 국내 유일의 노인종합복지타운이다. 입주금이 저렴하고 비교적 시설도 잘돼 있어 인기를 모으고 있다. 때문에 입주 대기자가 많이 밀려 있다는 설명이다. 봄기운이 완연한 지난 16일 오후. 이 복지타운에 들어서자 노인들의 유행가 노랫소리가 귀청을 울린다.“비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노랫소리를 따라 찾아들어간 곳은 매주 한번씩 열리는 노인 가요교실. 전직 여교사 출신 강사의 지도아래 30여명의 노인들이 열심히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노인전용주택(아파트)과 노인요양원, 노인종합복지관, 야외공연장 등 시설물이 정갈하다. 여기저기 산책을 즐기는 노인들의 모습 또한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시설 곳곳에서는 게이트볼과 탁구를 치는 노인들의 함성소리가 흘러나왔다.2001년 초 입주했다는 임만순(71) 할아버지는 “살기가 너무 편하고 노래도 배우고 운동을 하다 보면 마치 학교에 다니는 기분이 든다.”면서 “모두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친구하며 지내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또 자식들이 함께 살자는 제의를 뿌리치고 부인(75·최용순)과 함께 노인복지타운 입주를 선택했다는 김영준(80세) 할아버지는 “노인들이 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이라며 만족스러워했다. 이곳 노인들은 “자식들과 함께 살다 보면 손자라도 봐줘야 되고 서로가 불편한 점이 많다.”면서 “노후를 좀더 자유롭게 보내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노인 의식변화로 수요자 급증 복지타운 단지내에서 반장님으로 통하는 원영희(71) 할머니. 노래, 게이트볼 등 취미활동과 치매·중풍노인들의 요양시설 봉사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복지타운에 입주한 할머니 20명으로 구성된 ‘소리모아봉사단’ 총무를 맡아 매주 비슷한 또래지만 병마와 싸우는 할머니·할아버지의 말벗이 돼주고 청소와 목욕 등을 돕는다. 복지타운관리사업소 김성희 소장은 “유명세가 알려지면서 입주 대기 신청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올 6월이면 290여 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 주택이 추가로 완공돼 대단위 복지타운으로 발돋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5000여평의 부지를 추가로 매입해 일본 스가모 거리처럼 노인들의 용품 등을 판매하는 상가와 실버거리도 조성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김 소장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김제시의 재정자립도가 18%로 형편없이 낮아 시설확충에 드는 예산확보가 가장 큰 문제”라며 “중앙정부의 대폭적인 지원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노인들의 주거개념이 바뀌면서 유료로 운영되는 노인복지주택과 요양시설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유료로 운영되는 노인전용 복지주택과 요양시설은 124곳에 달했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중산층 이상 노인들만이 선택적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김제시에서 직영하고 있는 노인복지타운은 11평형 1350만원,17평형 2000만원,23평형 2700만원의 입주 보증금만 내면 된다. 월평균 관리비는 평형별로 1만5000∼3만 3000원 정도 들어간다. 고가로 차별화된 고급실버타운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고급 실버타운의 경우 식사와 1대1 의료 서비스까지 제공해 10억원 이상 호가하는 곳도 있다. 수도권에서는 삼성 노블카운티와 서울 시니어스타워, 인천실버타운 등이 고급화 전략으로 운영되고 있다. ●유치·조성 봇물, 부실 우려도 삼성 노블카운티 이호갑 운영팀장은 “실버타운은 자식들의 봉양을 대신할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한데 가라앉은 건설경기의 활로를 뚫기 위해 뛰어드는 측면도 있다.”면서 “복지에 대한 철학과 목표를 가진 업체선정 및 자격을 엄격히 규제하는 등 관리에 나서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민간 차원의 실버타운 조성붐을 타고 지자체들도 도시 은퇴자 등 노인들을 겨냥한 대규모 복합노인복지타운 건설에 뛰어들고 있다. 충남 서천군은 이미 부지를 확보해 공사를 시작했고 전북 순창, 전남 곡성 등도 참여를 구체화하고 있다. 노인복지타운 등 노인복지시설은 지자체장의 의지에 따라 자체적으로 건립, 운영할 수 있다. 노인복지타운 유치신청을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인구감소에 따른 인구유입 정책으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대단위 노인복지타운을 조성하려는 측면도 있다.”면서 “재정 자립도가 부실한 지자체에서 중앙정부 지원없이 시설을 짓고 운영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유료타운4곳 추진 복지부 서신일 과장 “노인 복합주거단지 시범모델 제시할것”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노인전용 복합주거단지 시범모델을 제시하겠습니다.” 올해 전국 4곳에 유료 노인복지타운 조성업무를 맡은 복지부 서신일(보건복지시설확충TF팀) 과장은 요즘 하루해가 짧게 느껴진다고 푸념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노인복지타운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동분서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고령화사회의 대책으로 대규모 노인복지타운을 조성한다는 계획은 노인들의 의식변화에 따른 주거형태 변화를 염두에 두고 추진되고 있다. 서 과장은 17일 “조만간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5월 말까지 최종부지 4곳을 확정할 계획”이라며 “2007년이면 입주가 가능하도록 서둘러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후보지는 도심과의 교통이 유리한 농어촌지역으로 관계부처 공무원과 전문가로 구성한 선정위원들이 현지 실사 등을 통해 결정 된다고 설명했다. 처음 시도되는 사업이지만 민간기업에서 운용하고 있는 시설 등을 돌아보고 노인주거환경의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그는 “요즘 무분별한 실버타운 조성붐에 대해 정부가 나서 규제해야 한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정부가 관여할 일은 아니다.”면서 “오히려 시장경쟁원리에 따라 다양한 시설이 만들어져 선택권을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제시하는 대규모 노인주거단지의 운영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때까지 지자체가 직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란 의견을 함께 제시했다. 정부가 나서서 조성하려는 농어촌복합 노인주거단지는 중산층 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보다 싼값에 노인들이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했다. 서 과장은 “시범조성하는 4곳의 노인주거단지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2010년 이후 전국적으로 사업이 확대될 것”이라며 “시설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국고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자체의 요구 등은 앞으로 정부에서 심도 있게 논의돼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⑥- 현대백화점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⑥- 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3남인 정몽근(63) 회장이 이끌고 있다. 9남매(8남 1녀) 가운데 작고한 몽필씨를 제외하면 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이어 두번째 ‘큰 형님’이지만 MK(몽구),MH(몽헌),MJ(몽준) 등 이른바 3M으로 불리는 화려한 다른 형제들에 가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원래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 데다 처음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이래저래 세간에서 멀어진 ‘황태자’가 됐다. 하지만 현대백화점의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부친의 후광으로만 생각하지 못할 정 회장의 ‘몫’이 있다. 역시 ‘왕 회장’의 아들답게 때로는 부친과의 담판을 통해 새 사업을 추진하고, 때로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경영상의 문제들을 다른 형제들과 대화로 풀어내며 회사를 일궈왔다. 그가 1974년 현대백화점의 전신인 금강개발산업주식회사를 맡을 당시 회사는 현대그룹 주력사인 현대건설의 외곽 지원업체에 불과했다. 개발시대에 쭉쭉 뻗어나가던 현대건설이 진출하는 국내외 현장에 식품과 의복 등 잡화류를 공급하고 동부이촌동 등 6개의 금강슈퍼마켓 등을 운영하던 작은 회사였다. 하지만 현대백화점그룹은 현재 주력사업인 백화점외에 홈쇼핑, 지역케이블 방송사업 등 계열사 20개를 거느린 유통그룹으로 우뚝 섰다. 지난해 매출이 5조 2500억원, 영업이익은 3300억원에 이른다. ●부친 설득해 한강가에 세운 명품백화점 현대백화점 사람들은 정 회장을 사실상의 창업자라고 말한다. 다른 형제들이야 자동차, 중공업 등 부친이나 삼촌들이 키워온 중후장대한 기업을 물려 받았지만 정 회장의 출발은 그들과 다르다는 설명이다. 현대백화점 한 임원은 “기껏해야 현대건설의 하청업체 수준이었던 회사가 그룹사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85년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을 지으면서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그룹의 모태가 된 압구정 본점을 짓고 그 이후 이윤을 남겨 1988년 무역점을 짓고 또 다른 백화점을 문여는 등 새 점포가 늘어나면서 지금의 그룹사로 발전된 것이라는 얘기다. 70년대 중반 이후 압구정동은 대규모 현대아파트단지가 들어섬에 따라 건축법상 근린상가를 의무적으로 지어야 했다. 당시 현대아파트의 건설주체인 한국도시개발(현대산업개발)은 롯데, 신세계 등 유통업체에 백화점 진출 의사를 타진했으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당시 아파트만 덩그러니 서 있고 배나무 밭으로 황량했던 이 곳은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누가 봐도 백화점 입지로는 적합하지 않았다.“현대가 백화점 사업에 성공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극언을 서슴지 않던 기업인이 있을 정도였다. 이 때 정 회장은 백화점 진출 의사를 밝혔다. 예상대로 그룹 안팎의 반대에 부딪혔다.“현대가 유통경험이 없는 데다 아파트 단지 배후에 한강이 흐르고 백화점 옆에 고가도로(동호대교 연결)가 가로지르는 등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일본 도쿄에 있는 다카시마야 백화점 후다코다마가와점의 성공을 예로 들며 부친을 적극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백화점은 현대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주변에 강이 흐르고 부촌에 자리잡고 있어 입지 여건이 비슷했다. 정 회장은 청운동 본가를 찾아가 사업 보고서를 보이며 백화점 사업을 고집했다.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던 왕 회장도 아들의 집념 어린 설득에 결국 사업 참여를 결심했다. 현대가에서는 이를 두고 “몽근이한테도 이런 사업에 대한 의지와 추진력이 있었느냐.”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때 정 회장의 뚝심이 발휘된다. 다른 유통업체들이 구조조정을 하며 신규 출점을 주저하고 저가 정책을 추진할 때 정 회장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정책 결정에 손을 들어줬다.98년 부도위기에 놓인 서울 신촌 그레이스백화점을 인수해 신촌점으로, 울산 주리원 백화점 2곳을 인수해 울산점으로 탄생시키고, 서울 천호점도 문 열었다. 최고급 인테리어와 상품을 앞세워 ‘명품 백화점’임을 일반에 각인시키며 고급화 전략을 폈다. 이같은 정 회장의 역발상 기조에 대해 당시 유통의 흐름을 거슬렀다는 지적도 있지만 내부에서는 이런 정 회장의 정면 돌파형 리더십이 현대백화점의 성공 기반이 됐다고 평가한다. ●삼국지 꿰뚫는 ‘리틀 왕회장’ 정 회장의 이런 일면은 평소 삼국지 등 각종 전략 서적을 즐겨 읽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는 신규 백화점 출점후 임원들과 갖는 자리에서 ‘적벽대전’ 등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들을 즐겨 인용한다. 중국 삼국시대 양쯔강 남안에 있는 적벽에서 위나라 조조가 오나라의 손권, 촉나라의 유비 연합군과 치른 전투 내용을 줄줄이 꿰며 승전 전략을 소개한다. 현대백화점의 한 임원은 “정 회장은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 이름과 전투 내용을 거의 외우다시피한다.”고 전했다. 그는 실제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 형상이다. 골격이 큰 몸집에 굳게 다문 입, 솥뚜껑처럼 큰 손과 발은 여지없이 현대가의 혈통을 지닌 남자임을 보여준다. 나이 들면서 얼굴에 돋아나는 검버섯과 걸음걸이를 보면 부친인 왕 회장과 흡사하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세간에는 한때 ‘건강 이상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매일 오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내에 있는 백화점 본사 4층 회장실에 출근, 굵직한 사업의 방향타 역할을 한다. 서울 시내 6개 백화점과 중동점 등 7개 백화점 가운데 하루에 2∼3군데의 백화점을 순시하는 이른바 ‘점 순회’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점포당 30분 정도 걸린다. 비슷한 시간대에 항상 나타나는 정 회장을 보고 매장 직원들이 인사하면 “어잇!”하며 꼭 화답을 한다. 매일 출근하다시피하니 직원들도 정 회장을 낯설어 하지 않는다. 매장을 지나다 고객들을 만나면 먼저 지나가도록 자신은 비켜 서는 서비스 정신도 몸에 배었다. 정 회장의 현장 중시 스타일도 부친과 닮은 꼴이다. 백화점 신축 공사 현장에는 늘 그의 발걸음이 닿는다. 공사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안전모를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왕 회장’을 보는 듯하다고 현대백화점 맨들을 말한다. 그는 문제가 발생하면 항상 대화로 풀 것을 강조한다. 한번은 건설 현장에서 이뤄진 브리핑 도중 간부들간에 이견이 생기자 정 회장은 “여러 사람의 의견이 함께 반영되는 것이 최선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투박한 외모와 달리 자상한 편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얘기한다. 백화점을 둘러보아도 상품이 진열돼 있는 멋진 매장보다 주차장, 식품 작업장 등 구석진 곳을 먼저 찾는다. 어려운 여건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봉투에 넣지도 않고 자신의 지갑에서 20만∼30만원씩 꺼내 “소주에 삼겹살이나 하라.”며 격려금을 건넨다. 다음날 이들을 만나면 “회식 잘 했냐.”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지난해 정 회장 생일에는 시내 모음식점에서 전·현직 임원들을 초청,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이날 정 회장 부부는 물론 장남 지선씨 부부도 나서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는 또 ‘주차장 제일론’을 갖고 있다. 임원들이 상품과 서비스, 매장 환경을 중요시한다면 정 회장은 임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설은 주차장”임을 내세운다. 현대백화점 목동점·미아점의 주차장 진입로 폭이 다른 백화점과 비교해 훨씬 넓은 것은 여성 고객들을 위해서다. 주차장 하나에도 “고객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라.”는 정 회장의 경영철학이 담겨있는 셈이다. ●황산덕가(家) 손녀 며느리로 맞아 경복고,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정 회장은 현대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평사원으로 있던 우경숙(54)씨와 결혼, 슬하에 지선(33), 교선(31) 등 2남을 뒀다.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여성스러우면서도 야무진 외모에 차분하고 깔끔한 성격의 우씨를 내심 며느리감으로 점찍었다는 후문이다. 우씨의 친정은 평범한 집안으로 부친은 우호식 전 현대그룹 고문이다. 우씨는 중앙여고를 졸업했다. 장남 지선씨는 경복고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현대가 3세들이 대부분 미국 유학파이듯 그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촌형제들 가운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외아들 의선(35)씨와 가깝다. 아무래도 지선씨가 손아래 동생이다보니 의선씨로부터 사업상 조언을 받는다는 후문이다. 사업외에 여러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는 사이다. 지선씨는 고교 동창의 소개로 만난 동갑내기 황서림씨와 2001년 10월 정 회장의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결혼, 장남 창덕(1)군을 두고 있다. 서림씨는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로 서울예고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성격이 활달하고 대인관계가 좋아 선후배와 교수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고 기억했다. 지난 97년 삼성문화재단이 선정한 문화예술인재로 뽑혀 장학금을 받으며 미국 뉴욕대에서 미술관 경영을 전공했다.99년부터 1년간 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하나인 뉴욕 근대미술관 뉴미디어 부서에서 부지배인을 맡았고,2000년 3월부터 5개월 동안 세계적인 일본 멀티미디어 작가 마리코 모리의 스튜디오 조교를 지냈다.2000년 7월부터 뉴미디어와 교육 인터넷사이트에서 웹 프로듀서로 근무하기도 했다. 지선씨는 서림씨를 처음 보는 순간 아내로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특히 밝고 쾌활한 성격을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서림씨 역시 정 부회장의 과묵하고 남자다운 면이 좋았다고 한다. 교선씨는 경복고, 외국어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 아델파이대에서 경영학석사를 땄다. 대학시절 청바지와 면티를 입고 다니는 등 소탈하게 생활해 같은 학과 친구들조차 그가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현대가의 3세라는 사실을 몰랐을 정도다.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들에 따르면 지갑에 돈도 별로 없이 구내식당에서 밥먹고 버스를 몇번씩 갈아타고 통학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했다. 부드러운 성격에 논리도 갖춰 친구들 사이에 이견이 생기면 중재역할을 맡곤 했다. 한때 미대 진학을 고려 했을 정도로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2녀 중 장녀인 승원(30)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승원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 치과대에 다녔던 재원이다. 교선씨와 승원씨는 학교가 같은 미국 뉴욕에 있어 유학시절 자연스럽게 1년6개월 정도 사귀었다. 현대가와 사돈을 맺은 허 부회장은 32년간 스프링과 차량 시트 등 자동차 소재의 국산화에 앞장선 자동차 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의 오너겸 전문경영인이다. 연 매출 3600억원 정도다. ●현대백화점 이끄는 파워 엘리트 하원만 현대백화점사장은 1978년 입사해 기획·관리·영업·구매·마케팅 등 백화점 업무를 두루 거쳐 2003년 1월 현대백화점 사장에 오른 백화점통이다.“백화점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생활문화를 제안하는 곳”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다른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라이프 스타일리스트 현대백화점’을 새 전략으로 내걸고 있다 부드러운 외모이지만 승부욕과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이다.“음식재료나 요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식품 책임자를 할 수 있냐.”며 지난해 식품 책임자 전원을 요리학원에 다니게 했다. 또 여성 심리를 모르고는 유통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직원들에게 여성 심리를 알 수 있는 책 읽기와 ‘엄마를 잡아라’나 ‘왓 위민 원트’와 같은 영화 감상도 권하는 섬세한 스타일이다. 지난해 백화점협회장으로 취임, 일본백화점협회와의 68년 만의 교류방문 등을 펼치고 있다. 경청호 현대백화점 기획조정본부 사장은 영업·관리·기획 등 백화점의 주요 포스트를 두루 거쳤다.2003년 부사장을 달고 현대백화점그룹 경영지원실장을 맡아오다 지난 1월 경영지원실의 기능과 역할이 대폭 강화되면서 기획조정본부 사장을 맡고 있다. 기획조정본부는 그룹내 투자·인사 등 주요 핵심 업무를 조정, 통합하는 조직으로 다른 대기업의 구조조정본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최근 경기침체로 인한 유통업계 불황 타개를 위해 구조조정의 중추적 역할을 맡기도 했다. 회사내 권위, 형식, 온정주의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 사장은 평소 메모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기억력이 비상해 보고하는 임직원들이 땀을 흘릴 정도다. 열가지 사안을 한가지로 압축해 신속정확히 처리하는 업무방식과 건강 및 체력관리 등 자기관리가 워낙 치밀해 빈틈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간부들과 소줏잔을 기울이는 회식자리에서는 위트나 유머로 웃음바다를 만들곤 해 인간적 매력도 있다는 평이다. 김태석 현대백화점 H&S·현대푸드시스템 사장은 78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해 경리·회계·재무 등 관리 및 지원업무를 거쳤다. 지난해 말까지 백화점 영업본부장직을 맡다가 올부터 현대백화점H&S와 현대푸드시스템의 대표이사 사장직을 맡고 있다. 김 사장은 일, 생활 모든 면에서 폭이 넓은 CEO이다. 특히 진솔한 대화를 통한 친화력있는 리더십이 돋보인다. 일본 전국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를 다룬 ‘대망’을 임직원들의 필독서로 권한다. 김 사장은 임직원들이 자기 업무에 자긍심을 가질 것과 직무에 필요한 다양한 자격증 취득을 독려하는 등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광균(부사장) 한국물류 대표는 74년 현대그룹에 입사, 현대백화점 천호점장·무역센터점장·현대백화점 H&S 대표이사를 거쳤다. 낙후된 물류 시스템을 바꿔 유통 경쟁력을 높이는 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반백의 머리와 걸쭉한 목소리로 처음 만나는 사람도 오랜 지기처럼 느껴지게 하는 친화력을 갖고 있다. 홍성원(부사장) 현대홈쇼핑 대표는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출신으로 ‘열린 CEO’라는 의견수렴 제도를 운영, 현대홈쇼핑의 무형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데 성공했으며, 홈쇼핑업계의 후발주자로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일 새벽 집 근처 산 바위에 앉아 하는 명상으로 하루를 연다. 명상에서 얻은 업무 관련 아이디어를 감성적으로 표현한 일일쪽지를 이메일 형태로 아침마다 전직원에게 보내 새로운 업무 활력을 제공한다. 최신 유행가도 따라 부르고 패션 감각을 갖고 있으며 젊은 직원들과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다. bori@seoul.co.kr ■ 장남은 백화점, 차남은 H&S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의 후계 구도는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정 회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두 아들에게 백화점 관련 주식을 증여하며 자신의 지분을 계속 축소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장남 지선(33)씨는 현대백화점 지분 15.72%에 현대푸드시스템의 현대백화점 지분 4.3%를 더해 사실상 20.02%의 백화점 지분을 확보, 최대 주주가 됐다. 차남 교선(31)씨도 지난해 처음으로 부친으로부터 현대백화점 H&S의 주식 56만주(10%)를 증여받아 2대 주주가 됐다. 지선씨는 현대백화점, 교선씨는 현대백화점 H&S로 형제간에 경영권 관할이 가시화된 것이다. 현대백화점 H&S는 여행사 현대드림투어와 기업들의 명절 선물사업을 하는 백화점 특수판매 회사로 이뤄져 있다. 지선씨는 2001년 현대백화점 기획실장(이사)으로 기획·인사·재무·조직관리 등 핵심 업무를 두루 맡아왔다.2003년에는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부회장 직함을 달면서 지선씨는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던 백화점 경영에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백화점 등 계열사들을 세차례에 나눠 한달에 한번씩 경영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계열사의 투자·인사는 물론 업무 조정·통합 역할까지 진두지휘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외부에서는 여전히 경영수업 중이라고 생각하지만 정 부회장은 실질적으로 그룹 경영 전반에 걸쳐 부회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선씨는 부회장이 되자 마자 어려움에 처했다. 경기침체로 백화점 업계가 불황을 겪으면서 현대백화점은 다른 유통업체와 달리 할인점이 없는 사업구조와 신규사업 진출 부진으로 미래 성장성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 부회장은 최근 회사의 미래성장 엔진 발굴에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한다.“유통이든 유통이 아니든 수익을 내 회사에 도움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신사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회사 역량 강화를 위해 외부 자문도 구하라.”는 제안도 했다. 그렇지만 “사업을 하다보면 구름도 끼고 햇볕도 드는 것”이라면서 자신감을 보이기도 한다. 또 지난 1월 조직개편을 단행, 기존의 경영지원실을 기획조정본부로 승격시키며 조직 장악에 나섰다. 사회공헌 활동에도 관심이 많아 최근 경영전략회의에서 ‘매칭그랜트’제도 도입을 지시하기도 했다. 임직원이 매달 봉급에서 일정 금액을 자발적으로 기부하면 회사에서도 그만큼의 금액을 출연해 사회공헌기금을 마련하는 이 제도는 유통업계에서는 처음 시도됐다. 정 부회장은 사내에서 “과묵하면서도 매우 꼼꼼하고 생각이 깊다.”는 평을 듣는다. 주요 회의에서도 다른 임원들의 의견을 경청한 뒤에 소신껏 자기 의견을 제시한다. 소수의견이라도 타당성이 있으면 흔쾌히 수용하고 정책방향을 수정하는 합리적인 스타일이다. 정 부회장은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아버지를 꼽는다. 올해 계열사별 신년 업무 브리핑 이후 간부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아버님은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얘기를 듣는 스타일로 나도 아버지처럼 훌륭한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웬만해서 지치지 않는 강인한 체력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다. 동생 교선씨는 지난해 1월 경영지원실 산하 경영관리팀장(부장)을 맡은 데 이어 올해 기획조정본부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 수업을 하고 있다. 일을 배우는 단계여서인지 매사에 열심이다. 형 지선씨보다 선이 굵고 상당히 활동적인 성격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이들 형제는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사 사무실 4층에서 나란히 근무하고 있다. bori@seoul.co.kr ■ ’숨은 실세’ 우경숙 고문 정몽근 회장의 부인 우경숙(54) 고문은 현대가의 다른 며느리들과 달리 회사 경영에 참여한 활동파다. 현대가의 딸과 며느리들이 대부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지시로 소리없이 문밖 출입을 했던 집안 분위기를 감안할 때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다. 훗날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전면에 나선 것과도 사뭇 다르다. 우 고문은 사실 정 회장과 결혼후 현대가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남편을 내조하는 전형적인 주부에 머물렀다. ●비서실 근무하다 며느리 낙점 현대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한 인연으로 현대가에 시집와서인지 우 고문은 시부모를 극진하게 모셨다고 한다. 본격적인 백화점 사업을 하기 전인 70년대 후반 울산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시절, 우 고문은 수시로 울산 방어진 수산시장에서 ‘참전복’을 공수해 청운동 본가로 보냈다.“정말 복 덩어리 음식이 참전복인 만큼 어른들 건강에 좋다.”며 살이 통통한 자연산만 고집했다. 잘 익은 제철 과일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처럼 가정사에만 신경쓰던 당시 우 고문의 대외 활동이래야 1985년 백화점사업을 시작하기 전 서울 압구정동 본사의 작은 건물 직원식당에서 창립기념일 등에 참석하는 수준이었다. 우 고문은 회사 행사에서 시어머니인 변중석 여사와 함께 임직원들에게 직접 떡과 과일 등을 담아주는 일을 했다고 당시 직원들을 기억한다. 그러던 우 고문은 백화점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0년부터 96년까지 우고문은 상무 직급을 달고 현대백화점의 신상품 개발 담당 업무를 맡았다. 유통업계 후발주자인 현대백화점으로서는 롯데, 신세계백화점과 경쟁하기 위해 고급화·차별화 전략이 절실했던 시기다. 그래서 백화점 PB(자체브랜드)개발에 주력했다. 상품개발부 직원 30여명과 함께 그가 개발한 자체브랜드는 ‘시그너스’‘벨라지’‘아르모니아’ 등이다. 특히 아르모니아는 강남의 전문직 여성들 사이에 한때 붐을 일으킬 정도로 히트를 쳤다. 96년에는 전세계에 10개의 매장만 운영할 정도로 신규 매장 출점에 까다로운 이탈리아 하이패션 브랜드 ‘지비에르돈나’를 압구정점에 유치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명품 브랜드 유치 수완도 당시 상품개발 부문에서 같이 일했던 직원들로부터 우 고문은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패션을 보는 안목과 미적 감각이 남다르다.”는 평을 들었다. 계절에 앞서 주력 상품을 고르는 과정에도 직접 참여하고 의견을 내놓아 담당 바이어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틈틈이 집에서 그리는 서양화 실력은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나면 미술전이나 각종 전시회를 찾는 것도 우 고문의 패션 센스와 맥을 같이 한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그는 최근 몇년사이 점포수 확대와 홈쇼핑 등 사업 다각화가 이뤄지고, 현대백화점이 현대백화점 H&S와 분할되는 과정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계열사간 투자, 인사에 관한 업무조정 및 중재가 필요한 시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역할이 부각됐던 것이다. 때문에 그룹 안팎에서는 ‘우씨’집안에서 백화점 경영을 섭정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2003년 장남인 지선씨가 그룹 부회장을 맡으면서 우 고문에게 쏠리던 시선은 상당 부분 거두어졌다. 온화한 성품이지만 장남의 후계구도를 굳히는 과정에서 우 고문의 역할이 다소 과장되면서 실제 이미지와는 다르게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두 아들이 경영에 적극 참여하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다만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 사무실을 두고 이곳에서 지인들을 만나기도 하고 백화점 분위기도 살핀다. 가끔 백화점 영업이나 환경에 대해 세심한 조언을 해 매장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다.500평 규모의 현대백화점 본점 옥상을 잔디공원으로 바꿔 고객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토록 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지난해부터 백화점 직원과 협력사원이 함께 하는 지역 사회단체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우 고문이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bor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쇼핑in]분당 삼성플라자 아동전문관

    [쇼핑in]분당 삼성플라자 아동전문관

    어린이상품 매장에 소비자들의 발길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5월 ‘어린이날’을 앞두고 선물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데다, 하나둘뿐인 자기 아이를 ‘왕자’나 ‘공주’로 키우겠다는 젊은 소비자들이 늘어나며 어린이상품의 구매를 주도하고 있는 까닭이다. ●570여평서 40여 브랜드 ‘동심’ 유혹 이같은 추세에 힘입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에 있는 삼성플라자 ‘아동전문관’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백화점 1개층을 대부분을 이용하고 있을 정도로 매장 규모가 큰 데다 상품의 구색 또한 다양하게 갖춰져 있어 어린이상품을 원스톱 쇼핑하려는 소비자들로 크게 붐비고 있다. 삼성플라자 5층에 있는 ‘아동전문관’은 570여평의 널찍한 매장에 40개 이상의 어린이 관련 브랜드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강일 아동전문관 과장은 “분당지역의 어린이용품에 대한 소비패턴은 고급 제품을 선호하고 비교적 까다로운 편이어서, 기존 백화점의 흉내내기식 매장으로는 이곳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이에 따라 유아·어린이용품 매장을 전문화한다는 차원에서 매장을 크게 넓히고 브랜드도 다양화했다.”고 밝혔다. 때문에 삼성플라자 아동전문관의 가장 큰 특징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어린이상품 관련 브랜드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빈폴키즈’·‘폴로보이즈’·‘모다까리나’ 등 고가 브랜드를 비롯해 ‘빈’·‘지오다노 주니어’ 등 중저가 브랜드 등 모두 41개 브랜드가 선보이고 있다. 황선미 아동전문관 주임은 “뭐니뭐니해도 어린이 브랜드 가운데 고가와 중저가 브랜드가 골고루 갖추고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게 아동전문관의 최대 강점”이라며 “중저가 브랜드의 경우 매장간 경계구역을 최소화하는 등 멀티숍(편집매장) 형태로 꾸며 쇼핑 편의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가·중저가 상품 고루 갖춰 ‘빈폴키즈’는 학교갈 때 입기 좋은 어린이의류로 널리 알려진 브랜드. 유행도 타지 않고 모범생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캐주얼한 스타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티셔츠 6만∼7만원대, 점퍼는 14만 5000∼17만 5000원대이다. 미국적인 패션 감각이 돋보이는 ‘폴로 보이즈’는 실용과 고급을 겸비한 스타일이다. 바지 9만 8000원대, 티셔츠 7만 2000원대, 남방 7만 8000원대. ●밝고 다양한 컬러가 주류 2∼3년새 가장 인기있는 어린이 브랜드로 떠오르고 있는 국내 브랜드인 ‘빈’은 저렴하면서도 유럽 스타일의 세련미와 색감이 물씬 풍긴다는 점이 인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티셔츠 3만 3000∼4만 8000원, 원피스는 8만 3000∼15만 6000원대이다. 이곳에서 만난 주부 정숙희(31·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씨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딸의 옷을 사기 위해 들렀다.”며 “다른 백화점보다 매장이 넓고 상품의 종류도 다양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밝고 다양한 컬러가 주류를 이루는 ‘지오다노 주니어’는 실용적인 소재 중심의 베이직한 의류로 각광받고 있는 브랜드이다. 가격도 비교적 싼 편이라 편하게 입을 수 있다. 티셔츠 1만 6800∼2만 9800원대, 점퍼는 4만 9800∼5만 9800원대이다. ‘모다까리나’는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여자 어린이의 원피스 전문 브랜드이다. 원피스는 11만 9000∼13만 9000원대, 바지 7만 6000∼8만 9000원대, 티셔츠는 4만 9800∼6만 6000원대이다. ●의류·헤어 액세서리·구두 등 구색 눈길 ‘오렌지 스토리’와 ‘밤비니’ 코너도 눈길을 끈다. 오렌지 스토리는 밝고 명랑한 어린이 헤어 액세서리 전문 브랜드. 헤어밴드 8000∼1만 8500원대, 머리핀 5500∼8500원대, 머리방울 2500∼6500원대, 지갑 1만 2500∼1만 3500원대, 모자는 1만 5000원대이다. 어린이 구두전문 브랜드인 밤비니는 드레스에 맞춰 신는 구두가 주요 컨셉트이다. 드레스용 구두 5만 2000∼5만 5000원대, 아동화 3만 9000∼4만 7000원대, 스니커즈는 5만 2000∼5만 5000원대. 손녀와 함께 와 모자를 고르고 있던 박영임(58·여)씨는 “상품 모두가 너무너무 예쁘고 깜찍해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망설여진다.”며 “어린이상품을 모두 한곳에 모아 놓아 쇼핑하기가 편리한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분당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놀이기구·파티방·과학놀이방… ‘플레이타임’은 ‘어린이천국’ 아동전문관의 ‘핵심’은 어린이 전문 놀이터인 ‘플레이타임’이다.140여평 규모의 대형 공간에 설치된 이 시설은 평일 200명, 주말에는 500명의 어린이들이 찾아 즐기는 ‘해방구’이다. 플레이타임에 들어서면 중앙에 볼 풀장과 기차놀이, 미끄럼틀 등 아동들이 좋아하는 알록달록한 원색의 대형 놀이기구들이 설치돼 있어 어린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이들 놀이기구에는 부딪히거나 넘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스티로폼과 고무 쿠션으로 마감 처리돼 있고, 바닥에는 두꺼운 안전매트를 깔아 안전성을 높였다. 강효경 플레이타임 담당 주임은 “플레이타임에는 파티방과 과학놀이방 등이 따로 마련돼 있어 생일파티와 과학놀이를 체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여러 가지 놀이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며 “시간대 별로 매직 풍선 만들기와 페이스 페인팅, 체조놀이 등의 프로그램에도 직접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어린이들의 안전 관리와 교육을 위해 7명의 안전지도 교사들이 상주해 보살피고 있다. 생일파티 예약을 하면 파티 진행도 무료로 해준다. 이용료는 시간당 2500원. 문화센터 회원에게는 평일에 50% 깎아준다. 분당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4)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中)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4)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中)

    뜻밖에도 ‘정감록’에 경도됐던 사람들 가운데는 부자가 적지 않았다. 영조 때 남원의 부자 김영건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평소 유복해 보였던 김씨 일가가 비결에 쏠리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남원의 벽보 사건을 좀더 밀도 있게 그려보면 그 답이 보일 것 같다. ●남원성에 나붙은 벽보 영조9년 7월 하순. 그믐날이 가까워 달빛조차 희미한 깊은 밤, 김영건의 두 아들은 괴문서를 남원성벽에 붙였다. 장남 원팔이 문서를 내거는 동안 아우 원하가 망을 보았다. 출입이 가장 빈번한 남문 근처에 한 장의 대형 벽보를 붙이는데 실제 소요된 시간은 극히 짧았지만, 그들 형제에게는 견딜 수 없이 긴 시간이었다. 당시 남원은 호남 굴지의 대도회라서 날마다 성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수백 명이 성안을 드나들었다. 그들의 눈에 띈 벽보 내용은 삽시간에 호남 일대로, 그리고 지리산 너머 영남 지방으로도 퍼져나갈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튿날 오전 남원부중은 괴문서 이야기로 들썩였다. 그날따라 몸이 불편해 좀 늦게 출근한 최정도 이방(吏房)은 이미 사령들이 수거해온 벽보를 훑어본 다음 한숨을 길게 내뿜었다. 조정대신을 강도 높게 비난한 구절도 그랬지만 ‘자미진주(紫微眞主)’ 운운한 것이 영락없는 반역자의 소행이었다. 이방이 알기로, 자미성(紫微星)은 자미원(紫微垣)에 속한 큰 별이다. 그것은 북두칠성의 북쪽에 있는데 천제(天帝) 또는 국왕을 상징한다. 그런데 벽보에 ‘진주’라고 했으니 한양성안 구중궁궐에 엄숙하게 앉아계신 상감께선 왕도 아니고, 자미성 정기를 받은 진짜 왕이 곧 나온다는 얘기다. 벽보엔 상감이 무도하다는 둥 동궁(사도세자)이 미쳤다는 둥 흉악한 언사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핀 이방은 새파랗게 질렸다. 잠시 후 어느 정도 마음을 가다듬은 이방은 도호부사 조호신에게 긴급사태를 보고하는 한편, 많은 정탐꾼을 풀어 성 안팎에 떠도는 온갖 소문을 즉각 수집토록 했다. 평소 성품이 침착하고 판단력이 있는 이방이었다. 그는 엄하기로 이름난 이 형방, 실무경험이 가장 풍부한 박 호장 등과 함께 수사본부를 구성했다. 그들은 시시각각으로 들어오는 소문들을 비교 종합해 믿을 만한 것을 추려내어 계통별로 분류했다. 범인을 바로 잡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변고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일이라, 수사는 신속히 진행돼야 했다. 최 이방은 진행중인 수사에 관해 남원부의 우두머리인 조 부사에게 여러 차례 보고했다. 그러나 서울 명문대가 출신인 부사는 실무에 워낙 어두워 한숨만 내쉴 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많은 정보를 비교분석해 보니 성안에 거주하는 김영건과 세 아들이 용의선상에 떠올랐다. 이방은 사령들을 급파해 우선 그들을 잡아들이고, 김씨 집안에 소장된 모든 문서(文書)를 철저히 수색했다. 그날 해질 무렵 김씨의 문갑에서 두 장의 수상한 문서가 발견됐다. 큰아들 원팔의 필체가 분명했는데, 놀랍게도 벽보의 초안이었다. 두 장 가운데서도 큰 종이에 적힌 문건은 벽보보다 언사가 훨씬 과격했다. 반역자만이 쓸 수 있는, 대역무도한 ‘불온문서’였다. ●정 노인이 일으킨 해프닝 김영건에 대한 남원 사람들의 평판은 무척 좋았다. 그는 성품이 부드럽고 공손하고 단정한 데다 재산도 많았다. 여느 부자와는 달리 가난한 이웃은 물론, 집 앞을 지나는 거지들에게까지 후했다. 최 이방은 소문으로 그런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섣불리 김영건에게 혐의를 둘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문수사 결과를 무시할 수 없어 망설이다가 사령들을 내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김영건의 집에서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는 바람에 이방은 기가 막혔다. 김영건에게는 김원팔, 김원하, 김원택 등 세 아들이 있었는데 셋 다 글 잘하고 글씨도 잘 쓴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모두 아버지를 닮아 인물도 훤칠했다. 특히 큰아들 원팔은 과거시험에도 여러 차례 응시했을 정도다. 그는 남원은 물론 호남의 수부(首府) 전주를 비롯해 각지의 선비들과 두루 사귀고 있었다. 최 이방은 사실 김영건 일가와 친한 편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으론 늘 김영건의 유복함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김영건 일가에게는 말 못할 고민이 하나 있었다. 수사에 동참한 이 형방이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김영건의 ‘근본’ 즉, 신분을 둘러싼 의혹이 있다고 했다. 형방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 나서 이방은 여러 해 전에 있었던 정 노인 사건을 다시금 뇌리에 떠올렸다. 하루는 남원 성 밖에 사는 가난한 양반 정 노인이 읍내에 시장구경을 나왔다가 만취한 상태에서 김영건을 노비의 자손이라고 비방하는 시비가 벌어졌다. 그러나 문제의 정 노인은 평소 행동거지가 단정하지 못해 세인의 평판이 좋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인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그 뒤 정 노인은 다시 그런 ‘망령된’ 말을 꺼내지 않아 사건으로 비화되진 않았다. 기억력이 비상한 최 이방조차 이 사건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된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그때 정 노인이 입을 다문 것은 김영건이 적절한 조치를 취해서 그런 것이었다. 영건은 노인과 다투지 않고 도리어 그를 살며시 회유했다. 그는 노인을 정중히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약주를 대접했다. 싫은 노릇이었겠지만 그 뒤에도 길가에서 노인을 마주치면 먼저 반색을 했다. 남원 사람들의 눈엔 마치 도량 있는 김영건이 철없는 주정뱅이 노인을 너그러이 용서한 것으로 보였다. 이 사건은 영건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몇 년 뒤에 일어났는데, 적어도 아들인 그만은 진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김영건의 비밀 사실 김영건은 노비나 별 다름 없이 천한 사람이었다. 남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상도 함양에 노씨 성을 가진 한 양반이 살았는데, 그 집에 막산이란 사내종이 있었다. 그 아내는 이름을 분금이라 했다. 본래 가난한 농사꾼의 딸이었다. 그리고 김영건으로 말하면 분금의 아들이 분명했다. 분금은 어릴 적부터 유달리 영리했고 행실도 조심스러웠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그녀의 미색이 너무 뛰어났다는 점이다. 노씨네 행랑것이었던 그녀를 주인양반은 물론 그 집에 드나든 여러 양반들이 다투어 탐을 냈다. 분금은 물론 영건도 이런 집안내력을 꽁꽁 숨기며 살았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영건은 어머니가 세상을 뜨기 직전에야 그 내력을 알게 됐다. 종 막산은 영건이 아직 젖먹이였을 때 돌림병에 걸려 갑자기 죽었다. 그러자 양반들은 아예 마음 놓고 분금에게 집적거렸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대체로 취미삼아 그런 불륜을 저질렀다. 분금은 자신이 노리갯감으로 전락하는 것이 너무 원통했다. 엄밀히 말하면, 분금은 본래 노씨 집안의 여종이 아니었으므로 종살이를 계속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공공연히 노씨네 종으로 간주되는 실정이었다. 한탄으로 나날을 보내던 분금은 남편을 묻은 지 1년 만에 젖먹이 영건을 등에 업고 몰래 주인집을 빠져나와 지리산 쪽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이틀 동안 산길을 헤매던 분금은 지리산의 서쪽 자락에 있는 운봉을 지나 대도시 남원성으로 들어갔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옛말도 있지만, 뼈대 있는 양반집에서 수년 동안 종 아닌 종살이를 한 분금은 양반들의 예의범절에 거의 통달한 편이라 누구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녀는 질병으로 온 가족이 몰살한 어느 한미한 시골선비의 청상과부라고 했다. 영건의 성은 김씨가 됐다. 마침 그 얼마 전 역질이 남원성을 강타했던 탓에 성안엔 주인 없이 텅 빈 집이 여럿이었다. 분금은 그 가운데서도 시장 쪽으로 얌전히 앉은 초가집 하나를 골라 거처로 삼고서 오직 삯바느질에만 매달렸다. 분금은 나이 일흔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원체 부지런해 해마다 조금씩 재산이 늘어났다. 과부 허리춤엔 은이 서 말이란 속담 그대로였다. 영건이 스무 살쯤 됐을 때 어머니 분금은 논을 네댓 마지기나 장만했다. 영건은 어려서 서당을 몇 년 다녀 까막눈은 아니었다. 그는 홀로 고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안타까워 일찌감치 공부를 그만두고 농사일에 전념했다. 잘 모르는 것은 이웃의 경험 많은 노인에게 물었고, 가끔 시장에 들러 쌀, 콩, 면화, 무명 등의 가격을 조사해 비망록에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만일 콩 한 되라도 팔라치면 반드시 시세가 가장 비쌀 때 내놓았다. 이런 식으로 살림을 하다 보니 영건은 곧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됐다. 그런 아들인데도 늙은 어머니는 영건에게 늘 하는 말이 있었다.“누구에게든지 공손해라! 가난한 이웃을 잘 보살펴 주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이만큼이나 살게 된 것은 모두 부처님의 크신 원력 덕택이다. 절간에 시주를 게을리 하지 말라!” 영건은 그 가르침을 묵묵히 따랐고, 이웃사람들이 모두 영건을 존경했다. 어머니는 세상을 뜨기 전날 밤, 아들을 머리맡에 불러 앉혀 놓고 나직이 말했다.“지금까지 네 아버님의 기일(忌日)이라 믿어온 것이 실은 함양 양반 노씨네 종 막산의 제삿날이다. 나는 그 아내 분금이다. 네 아버지는 경상도 하동 사는 김 선비인데, 이름도 모르고 아무 것도 더는 모른다. 부디 죄 많은 이 어미를 용서해라. 이제 비밀을 네게 털어놓으니 내 가슴이 후련하구나!” ●김영건과 예언서의 만남 김영건은 아무에게도 자신의 비밀을 말할 수가 없어 혼자 그저 답답한 심정이었다. 그랬는데 정 노인 사건까지 터져 마음을 안정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천도를 핑계 삼아 절간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는 평생 동안 뭐든 그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던 것인데, 갑자기 하늘이 무너진 것도 같고 인생과 세상에 대한 회의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과연 전생에 무슨 큰 죄가 있어 평생 아버지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는가. 종 아닌 종이 되어 제 근본을 숨기고 가슴을 졸이며 살아야 되는 내 인생은 도대체 얼마나 불쌍한가. 언젠가 이 비밀이 세상에 알려질 경우 자식들의 장래는 또 어찌 될 것인가. 이 놈의 세상이 아주 송두리째 바뀌어야 한다. 나같이 천한 사람도 가슴 펴고 떳떳이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와야 된다. 도무지 세상이 원망스럽기만 하구나!” 김영건이 제기한 질문들은 누구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정 노인 사건 이후 영건은 사람이 달라졌다. 그의 왕성했던 식욕은 오간데 없어졌고, 일할 마음도 사실은 거의 사라졌다. 세상이 허무하다는 한 생각만이 온종일 영건의 머리에 가득했다. 영건은 그런 자기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지 못해 더욱 고민이었다. 그나마 큰 다행은 그가 가끔은 절간에 들러 스님들과 문답을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영건은 태연한 척 여러 가지 사소한 질문을 던졌다. 스님들 가운데는 더러 영건의 깊은 고민을 눈치 채는 경우도 없지 않아 찻잔을 마주한 승방 문답이 해질 때까지 오래 이어지기도 했다. 절간을 오가는 횟수는 점점 많아졌고 영건은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인연설은 물론 장차 미륵부처가 다스릴 용화세계가 지상에 실현된다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밖에 승려 태진이 소지했던 것과 같은 ‘남사고비기’라든지 ‘정감록’에 관해서도 말을 많이 들었다. 정말 그 비결의 내용처럼 세상이 뒤집어져 상놈이 양반도 되는 그런 세상이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과연 그런 세상이 올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당시 조정에선 일체의 ‘위험한’ 비결의 독서, 소장, 유포 및 출판을 엄금했다. 금지가 심할수록 비결은 더욱 유행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알게 됐다. 영건도 절간에서 객승이 소지한 ‘남사고’를 한두 번 구경한 적이 있었다. 영건은 비결을 베껴 곁에 놓고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졌다. 그는 점차 비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비결을 직접 소장하지 못했고, 비결대로 세상을 바꾸려는 ‘불온한’ 사람들의 무리에 섞이지도 못했다. 그러기엔 영건의 성격이 너무도 소극적이었고 그는 이미 늙었다. 하지만 큰아들 원팔은 달랐다. 영리한 아들은 아버지의 불안과 고민을 대강 눈치 채고 있었다. 아들에겐 최봉희란 약빠른 친구도 있었는데, 그 친구는 이미 ‘남사고’를 소장하고 있었다. 아들은 최의 책을 필사해가지고 아버지에게 드렸다. 아들은 위험천만한 ‘비결’ 조직에 점차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남원 양반 이유성의 문제제기 김영건 일가에 정체성의 위기가 다시 찾아온 것은 1733년이었다. 이미 칠순에 접어든 정 노인과 다시 문제가 생긴 것인데, 정확히 말하면 정 노인의 외손녀사위인 이유성과 다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술 취한 정 노인이 이유성이 듣는 데서 김영건의 비천한 출신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정 노인의 친구 가운데는 젊은 시절 분금을 유독 탐낸 양반이 하나 있었다. 그 양반이 참으로 우연히 남원 읍내 길가에서 이미 노인이 다 된 분금을 마주친 것이 화근이었다. 친구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정 노인은 김영건을 노씨네 종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김영건의 비밀을 들은 이유성은 반드시 그것을 폭로하겠다고 별렀다. 스스로 양반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혈기 방장한 양반 이유성에게는 신분이 뒤섞이는 것이야말로 나라의 근본을 뒤흔드는 범죄행위였다. 그는 가짜 양반 김영건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유성의 적의를 느낀 김영건 일가는 극도로 긴장했다. 양측의 대립은 갈수록 심각해져 마침내 상대방을 관가에 고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제출된 양측의 문건을 검토한 이 형방은 그들의 주장에 애매한 점이 많은 데다, 시급히 처리해야 할 다른 사건들이 많은 관계로 그에 대한 심리를 뒤로 미뤄놓고 있었다. 김영건의 큰아들이 남원성벽에 붙인 벽보에는 게시자가 이유성의 아버지 이여매라고 적혀 있었다. 김씨들은 자기들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이유성 집안에 역모 죄를 뒤집어씌울 계산이었던 모양이다. 정말 그런 단순한 계산에서 김원팔 형제는 위험천만한 벽보를 붙였을까. 아니면 혹시 어떤 비밀집단이 그들의 배후에서 벽보사건을 기획했던 것일까. 도승 자명과 변산 승려 태진, 최봉희, 김원팔 등의 관계는 정확히 무엇인가. 다음 호에서 따져볼 것이다.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美, 中 가장 주시해야”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존 네그로폰테 미국 국가정보국장(DNI) 지명자는 “미국 정보 당국이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시해야 할 문제는 중국”이라고 말했다.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12일(현지시간) 상원 정보위원회의 인준 청문회에서 “중국의 점증하는 영향력과 그것이 미국의 외교정책에 주는 충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우리 아이들과 손자, 손녀들은 중국이 세계무대에서 매우 강력한 국가가 되는 세상에 살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또 정보 수집을 강화해야 할 분야로 북한 및 이란의 핵 개발 능력과 이라크의 반미 활동을 지목했다. 그는 이라크 침공 전에 정보기관이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과장했다는 지적과 관련,“보는 대로 말하는 것이 최선”이라면서 “정보기관들이 수집한 정보를 정치적 목적으로 변형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새로 창설된 국가정보국의 단기적 과제들로 ▲대량살상무기의 근절 ▲대 테러전 지원 ▲미 정보망의 개혁 등을 꼽았다.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중앙정보국(CIA)의 포터 고스 국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을 것이며,CIA가 수행하는 비밀 작전을 의회에 사전 보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또 CIA와 군 정보기관, 법무부간의 정보를 둘러싼 벽을 허무는 등 정보체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미 상·하원이 합동으로 구성한 9·11위원회의 요청으로 신설된 국가정보국장은 미국 15개 정보기관의 인사와 예산을 관장한다. 또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인준되면 매일 아침 대통령에게 일일 정보보고를 하게 된다. 네그로폰테는 공화당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민주당 의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어 이번 주말로 예정된 찬반투표에서 인준이 거의 확실하다.5개국어에 능통한 네그로폰테는 그동안 대사직 5차례를 포함해 상원 인준을 7차례나 통과했다. 한편 워싱턴 포스트는 이날 인준 청문회에 맞춰 지난 1983년 네그로폰테가 온두라스 주재 미국대사였을 당시 비공식 채널을 통해 인접국 니카라과의 반군을 고무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등 반정부 활동을 적극 개입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네그로폰테는 당시 미국 하원이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좌파 정부를 전복하려던 우익 반군인 콘트라에 대한 지원을 모두 중단하려 하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CIA 국장에게 콘트라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며 강하게 버틸 것을 촉구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네그로폰테가 콘트라 반군 비밀무장을 지지했으며, 이를 당시 중미에서 공산주의를 몰아내려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전략의 요체라고 생각했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네그로폰테는 청문회에서 “당시 수행한 모든 일은 법의 범위 내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dawn@seoul.co.kr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삼청교육대서 남편 사망 뒤늦게 혼인신고… 보상 받나

    저의 남편은 1980년 삼청교육 대상자로 끌려가 훈련 중 사망했습니다. 최근에 정부에서 무슨 보상을 해 준다는데 받을 길이 없을까요. 문제는 남편이 사망한 지 2년 뒤인 1982년에 혼인신고를 했는데 그것이 보상수령에 장애가 되지는 않을까요. 사실 남편에게는 친족이 아무도 없고, 단지 저와 결혼해 살다가 아이를 낳지도 못하고 교육 중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경우 저는 사실상 배우자로서 보상을 받을 수는 없을까요. -이영숙(가명)- ‘삼청교육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어 시행되고 있고, 그 명예회복과 보상금의 신청기간이 공고되었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올 7월 30일까지 신청해야 합니다. 삼청교육 법률에 따르면 사망자의 상속인이라야 보상금을 받을 자격이 있는데, 문제는 영숙씨가 혼인신고를 남편 생존 중에 하지 않고 남편 사망 후에 하였다는 데 있습니다. 사망한 사람과 혼인신고라도 유효한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혼인신고특례법(1968.12.31. 법률 제2067호)상의 혼인신고 뿐입니다. 남편이 전투에 참가하거나 전투 수행을 위한 공무에 종사하다가 사망한 경우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으면, 아내는 단독으로 혼인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혼인신고를 하면 남편 사망 시에 혼인신고가 된 것으로 간주됩니다. 이는 전쟁이나 사변 시에 나라를 지키다가 사망한 사람의 공적을 기리고 그 유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서, 혼인 당사자 일방의 사망 후에도 혼인신고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특례입니다. 위 특례법에 따른 가정법원의 확인심판의 사례를 보면 “청구인은 망 김갑돌(가명)과 1947년 3월 혼인했으나, 혼인신고가 되지 아니한 채 김갑돌은 군복무중 6·25 사변 당시인 1951년 12월 경기도 동두천지구에서 전사하였음을 확인한다.”고 심판문의 주문에 적었습니다. 이런 심판을 받아 혼인신고를 한 사람은 보호를 받습니다. 그러면 영숙씨의 남편이 삼청교육 대상자로 동원되어 교육받은 것이 위 혼인신고특례법상의 ‘전투’ 또는 ‘전투수행을 위한 공무’에 해당될까요. 아무래도 그렇게 보기는 곤란할 것 같고, 따라서 영숙씨가 가정법원에 혼인신고확인심판 청구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남편 사망 후 신고한 혼인신고를 유효한 혼인으로 볼 수는 없을까요. 심신상실자나 뇌졸중 등으로 의식을 상실한 사람이 혼인신고서를 제출한 경우, 또는 남편 사망 2개월 혹은 1일전에 신고된 혼인 등은 모두 무효입니다. 남편 사망 후 제출된 혼인신고를 호적공무원이 심사하지 않고 접수해 호적부에 기록해도 그것은 무효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위 삼청교육법률이 망인의 상속인을 보상금 수령자로 정하고 있습니다. 상속인은 망인의 직계비속(아들, 딸, 손자, 손녀, 외손자, 외손녀 등)과 배우자가 1순위의 상속인입니다. 망인의 직계존속(부모, 조부모, 외조부모, 양부모, 양조부모 등)이 2순위 상속인(자녀가 없는 배우자는 직계존속과 공동상속), 망인의 형제자매(이복형제자매, 이성동복 형제자매 모두 포함)가 3순위 상속인입니다. 망인의 3촌,4촌 이내의 혈족(예컨대, 백부, 숙부, 고모, 외숙부, 이모, 조카, 질녀, 생질, 생질녀, 친4촌, 외4촌, 고종4촌, 이종4촌, 조부모의 형제자매 등)이 4순위 상속인입니다. 그러면 영숙씨는 배우자로서 상속인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민법이 이른바 신고혼(申告婚) 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부부로서 혼례식을 올리고 아무리 오래 살고 있어도, 혼인신고 없이는 법률상 부부가 될 수 없고 그 부부는 사실혼 부부에 불과하게 됩니다. 법률상 부부만이 배우자로서 상속인 자격이 있고, 사실혼 부부는 서로 상속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혼 부부를 보호하기 위해 주택임대차보호법, 근로기준법, 기타 각종 사회보장법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삼청교육법률은 ‘사실혼 배우자’를 일절 언급하지 않고 ‘상속인’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영숙씨는 이 중에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아니하므로, 결국 보상금을 수령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정은 딱하지만 법은 법이니만큼 지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1982년 5월 19일 ‘기업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고의 날일 것 같다.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날 현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고, 세계 최대의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 사장에 그를 앉히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이때가 그의 나이 31세. 현대그룹 후계구도에서 형들보다 한발 늦게 출발한 몽준씨가 가장 먼저 부친에게 인정받은 비결은 뭘까. 고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창립 25주년 행사에서 그 배경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어떻게 보면 파격적이지만 길게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저서 ‘기업경영이념’을 읽어보면 우리나라의 어떤 젊은 경영진보다 확실히, 모든 것을 잘 분별해서 회사를 끌고 나갈 겁니다. 우리 아이들간에도 서열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가족회의를 열어 몽준 사장이 충분히 직책을 수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결정을 했습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이에 앞서 몽준씨가 미국 MIT 석사학위 논문을 보완한 경영서적 ‘기업경영이념’ 서문을 읽고 “정말 잘 썼다.”며 “사장 자리에 앉아도 될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몽준씨는 훗날 가장 아끼는 그의 저서로 ‘기업경영이념’을 꼽으면서 “서문만 읽어도 충분하다.”고 곁들이기도 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부친에게 기업가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던 점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2002년 12월 18일 ‘정치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악의 날일지 모른다. 그는 이날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의 공조 파기를 선언, 사실상 ‘백의종군’의 첫 발을 내디뎠다. 정권의 공동 주인으로 향후 5년간 막강한 정치적 실세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마다한 셈이다. 이 때가 ‘하늘의 뜻을 알수 있다’는 지천명(知天命)을 갓 지난 나이(51)였다. ●아버지에게 바가지 씌운 아들 정몽준(54). 현대가(家)의 여섯번째 아들.5선의 중진 의원. 대한축구협회 회장. 자산규모 재계 9위(지난해·공기업 제외)인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지분 10.80%). 국내 재벌가에서 정 의원만큼이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도 드물다. 일각에서는 “잘난 집안에 태어나 순탄하게 성장한 대가”라고 폄훼하기도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정 의원은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산에서 3년 가량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 장충초등학교와 중앙중·고교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의 초등학교 동기 동창이다. 그는 초·중학교 시절 놀기를 좋아하고, 장난이 심했다고 한다. 중학교 담임 선생이었던 임환씨는 “몽준이는 놀기를 좋아해 친구들과 수업을 빼먹고 야외로 놀러갔다가 종아리를 맞기도 했다.”면서 “전혀 부잣집 티를 내지 않았으며, 학교 도서관을 지을 때 시멘트 1만포대를 지원받은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가 고 정 명예회장임을 알게 됐다.”고 술회했다. 정 의원의 학생시절 별명은 ‘꺼벙이’다. 큰 키에 소탈하고, 겸손하지만 우유부단하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부친한테는 다른 형제처럼 어려워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하곤 했다. 부친에게 ‘바가지’ 씌운 일화 한 토막.1970년대 초반 어느 날.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한잔 쏘겠다며 명동 생맥주 골목으로 모시고 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오랜만에 접하는 생음악과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에 흥에 겨워했다. 자리가 파할 무렵,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1차는 제가 샀으니,2차는 아버지가 사시라.”고 제안했다. 고 정 명예회장도 유쾌한 기분으로 흔쾌히 응했다.2차 행선지는 정 의원이 정한 강남의 한 술집. 그러나 2차가 끝나고 계산서를 받은 정 명예회장은 술값에 놀랐다. 먹은 것에 비해 족히 여섯배의 술값이 청구됐기 때문. 그렇다고 재벌 회장이 술값을 놓고 시비를 걸기도 뭐했지만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종업원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아드님이 전에 드셨던 외상 술값까지 계산하라고 해서 그렇게 됐습니다.”“허허 이것 참….”고 정 명예회장은 아들에게 된통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 의원은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대에 진학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울산으로 변형윤, 이현재 교수 등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초청해 크게 ‘한턱’을 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우리 몽준이가 혹시 사무착오로 합격한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면서 우리 아들을 잘 지도해 달라고 수차례 부탁했다고 한다. 현대 고위 관계자가 밝힌 허물없는 부자관계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일화는 이렇다.“한번은 고 정 명예회장이 아들들과 골프를 치는데 티샷을 하고는 먼저 그냥 걸어갔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머뭇거리다 채를 들고 뒤따라 가는데 유독 정 의원만 얼른 공을 놓고 티샷을 했죠. 그러자 고 정 명예회장이 ‘저놈∼.’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을 짓더라고요.” ●아내 자랑하는 ‘팔불출’ “나는 나의 아내가 고맙고, 때로는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친구들은 종종 내가 대통령 감이라기보다 내 아내가 ‘퍼스트 레이디’ 감이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아내는 바쁜 나의 생활을 잘 이해해 주고, 조용히 내조를 하는 스타일이다. 아내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한다. 밖으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정 의원이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밝힌 부인 김영명(49)씨에 대한 평이다. 정 의원은 1978년 여름 넷째 형수(이행자·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 부인)의 중매로 영명씨를 미국에서 만났다. 당시 두 사람의 첫 인상은 이랬다. 영명씨는 “우선 키(정몽준 182㎝·김영명 174㎝)가 커서 좋았어요. 제 키가 큰 편이라 어머니가 ‘너는 키 큰 신랑감이 없으면 시집도 못 갈거다.’고 곧잘 농담을 하곤 했어요. 첫 인상은 나이 차이가 다섯살이나 나서 그런지 듬직했어요. 믿고 의지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벌가 사람답지 않게 소탈한 것도 좋았고요.” 정 의원은 “약속 장소에 나갔는 데 키 큰 여자들이 쭉 지나가기에 미국 사람들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나에게 오더라고요.”고 당시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이들은 틈틈히 테니스를 치며 1년 가량 연애끝에 잠시 귀국해 서울 정동교회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영명씨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2남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부친의 외교관 활동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17년간 일본과 미국에서 살았다. 미국 웨슬리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공부했다. 웨슬리대학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상원의원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나온 전통의 명문 대학이다. 영명씨는 외교관인 부친을 닮아 사교성이 뛰어나다.‘88 서울올림픽’ 유치전에서는 고 정 명예회장을 현장에서 보좌했고,1992년 대선 때는 변중석 여사를 대신해 시아버지의 파트너 역할을 했다.‘2002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부인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행사장에서는 미소와 화술로 친분을 쌓기도 했다.‘미스 스마일월드컵’이라는 애칭은 이 때 얻었다. 이 때문인지 정 의원의 부인 자랑은 유별나다.‘김영명이 없으면 오늘의 정몽준도 없다.’는 우스갯말이 떠돌 정도다.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계속되는 자랑 하나.“아내는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한다. 유머를 곁들인 자연스러운 영어는 외국에서 처음 만나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할 때 곧잘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곤 한다. 그동안 4남매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아내는 아이들이 크자, 뜻있는 분들과 함께 우리의 ‘옛’것을 ‘올’바로 알자라는 의미를 가진 ‘예올회’를 만들어 문화재 보존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명씨가 밝힌 애처가 해프닝은 이렇다.“첫 아이를 가졌을 때였어요. 입덧이 심했던 제가 걱정스러웠던지 남편은 며느리들만 모인 자리에 와서는 제게 ‘밥 먹었니.’하고 묻는 거예요. 좀처럼 없는 일이라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 한마디 때문에 남편은 ‘애처가’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 꼬리표는 지금까지 따라 다닙니다.” 그도 신혼 초에 시아버지인 고 정 명예회장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철부지 며느리 시절, 저는 식사 중에도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데 불쑥 끼어들어 참견을 하곤 했어요. 아버님이 어느 날 저에게 ‘밥 먹을 때 말을 많이 안하는 게 좋은 거다.’며 조용히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자녀는 2남2녀. 장남인 기선(23)씨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올 초 아버지의 뒤를 이어 ROTC 장교로 임관했다. 장녀 남이(22)씨는 연세대를 휴학하고, 현재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유니버시티에 유학 중이다. 차녀 선이(19)씨도 미국 디어필드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 막내 예선(9)군은 경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영명씨는 늦둥이인 막내 임신과 관련해 병원에서 무안당한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임신해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하잖아요. 한번은 의사가 ‘아들이 없으세요. 왜 이렇게 애를 많이 낳으세요.’라고 물어 난감한 적이 있었어요.” 시중에는 예선이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축구 예선전이 한창일 때 태어나서 이름을 예선이라고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 의원은 최근 ‘예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와 돌림자 ‘선’을 합쳐 예선으로 지었다고 밝혔다. ●정치인 정몽준 “내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것은 11대 국회의원 선거 때였고,1984년 12대 국회의원 선거 때도 출마하려고 했다. 그런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가 나가면 여당 의원이 떨어진다고 나가지 말라고 했다. 결국 나는 그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단념해야 했다. 하지만 공적 서비스를 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는 생각은 내가 지금까지 흔들림없이 지켜온 가장 기본적인 정치철학이다.”정 의원이 밝힌 정치 입문의 배경이다. 정 의원은 1988년 울산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지금은 5선의 중진 의원으로 확실한 입지를 구축했다. 한때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반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본 정치인 정 의원은 어떨까. 지난 대선기간 내내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정 회장도 ‘피’는 어쩔 수 없었던지 그 속내를 내보인 적이 있었다.“몽준 의원은 우리 형제들 가운데 제일 똑똑하고 잘 생겼다. 미국 MIT 대학원도 졸업하고,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잘 치렀다.” 그러나 정 회장은 이 발언 이후 정치권으로부터 호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정치인 정 의원의 평판은 극과 극을 달린다. 일각에서는 직선적이고 엄격하다고 지적한다. 그를 보좌했던 비서관의 얘기다.“정 의원은 성격이 급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정 의원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합리적이고 매너가 깨끗하다는 평이다.“정 의원은 서구식 매너가 몸에 배어 있다. 직원들이 떠나는 차에 인사를 하면 ‘왜 차에다 대고 절을 하느냐. 하지 말라.’고 말린다. 또 비서를 시키지 않고 직접 자신이 동료 의원에게 전화를 한다.”며 다른 전직 비서관이 전했다. ●현대중공업의 핵심 브레인 민계식(63)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가장 부지런한 CEO, 백발의 마라토너 CEO로 불린다. 아침 6시 출근, 새벽 2시 퇴근하는 일과를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비서를 퇴근시키고 저녁 6시부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새벽까지 사업구상이나 신제품 개발 계획에 열중한다. 그의 이런 노력은 국내외 학술지 및 학술대회에 150편의 논문을 발표토록 했으며,48건의 국내 및 국제특허를 보유토록 했다. 우주항공학 및 조선공학(석사), 해양공학(박사) 등을 넘나드는 그의 해박한 전문지식은 현대중공업의 연구개발(R&D) 부문을 업그레이드시켜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 부회장은 또 6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 그의 최고기록은 2시간 23분 48초. 비록 20대 초반 시절에 일궈낸 기록이지만 지금도 2시간대의 기록을 내고 있다.42.195㎞의 완주기록도 100회를 넘었다. 유관홍(60) 현대중공업 사장은 그룹내에서 경영 합리화의 귀재로 통한다.1999년 침체에 빠진 현대중공업 건설장비부문의 사업본부장을 맡아 세계 각지를 직접 뛰는 영업활동을 전개, 직원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 결과 만성적자였던 건설장비 부문을 2001년 국내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는 국내 1위의 건설장비 업체로 탈바꿈시켰고, 중국시장 점유율 25%를 기록하는 중국 최대의 건설장비 공장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이런 경영능력을 두고 지난해 6월 미국의 권위있는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유 사장을 ‘기업회생 전문가’라고 평했다. 이연재(63)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은 1976년 현대중공업 간부로 입사한 이래 30년간 조선과 해양플랜트의 해외영업 부문에서 일해 왔다.1999년 부도 위기에 처했던 옛 한라중공업을 현대중공업이 위탁경영하면서 대표이사로 선임돼 흐트러진 조직을 안정시켰다. 단기간에 70여척의 선박을 수주했으며, 중단된 사원 복지향상에도 노력을 기울여 사원아파트와 스포츠문화센터 등을 조성했다. 파산 직전까지 이르렀던 회사를 2001년부터 4년 연속 흑자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최길선(59) 현대미포조선 사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최 사장은 설계·생산·기획 등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조선 현장에서 33년을 보낸 최고의 조선전문 경영인이다.‘항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원칙아래 내실을 강조한다. 최 사장은 올해 슬로건을 ‘창사 30주년, 새로운 도약의 해’로 선포하고, 선박 60척 생산체제 구축을 마련하는 등 제 2도약을 위한 전략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현대중공업 탄생 일화 ‘옥스퍼드 박사가 낳은 현대중공업’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평소에 즐겨 썼던 “이봐, 해봤어.”라는 말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곳이 현대중공업의 설립 신화다.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고 정 명예회장의 ‘원맨쇼’였다. 고 정 명예회장은 1971년 조선소 차관 도입을 위해 영국 런던의 바클레이즈 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듣도 보지도 못한 한국의 작은 회사가 언감생심 어딜 넘보는 것이냐.’는 바클레이즈 은행의 태도에 기가 질렸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는 없었다. 그가 기댄 곳은 당시 기술협조 계약을 맺은 영국의 A&P 애플도어 엔지니어링사. 그는 500원짜리 지폐로 애플도어사의 롱바톰 회장을 감동시켰다.“이것은 한국 지폐입니다. 여기 그려진 것이 거북선이죠. 한국은 이미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든 실적과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영국의 조선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1800년대이니 한국은 무려 300년이나 앞선 셈입니다.” 그는 롱바톰 회장의 도움으로 바클레이즈 은행 부총재를 만났다. 그러나 콧대 높은 영국 은행의 부총재를 설득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옥스퍼드 박사’ 일화는 여기서 나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임기응변으로 “어제 제가 이 사업계획서를 들고 옥스퍼드대학에 갔더니 한번 들쳐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주더군요.”라고 말했다. ‘옥스퍼드 유머’에 부총재는 껄껄 웃으며 “옥스퍼드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이런 사업계획서는 못 만들거요. 당신은 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합니다. 당신의 전공은 유머 같소. 우리 은행은 당신의 유머와 함께 이 사업계획서를 수출보증국으로 보내겠소.” 고 정 명예회장은 ‘거북선 지폐’와 ‘옥스퍼드 박사’로 바클레이즈 은행 벽을 넘었지만, 아직 영국 수출보증기구(ECGD) 총재의 보증을 받아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그러나 이것도 울산의 초라한 백사장 사진 한장 들고 그리스 선사인 ‘선 엔터프라이즈’사의 리바노스 회장을 설득, 선박을 수주 계약함으로써 무사히 통과했다. 이로써 세계 조선 역사상 최초로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가 동시에 진행하는 신화가 나오게 됐다. 고 정 명예회장과 리바노스 회장이 당시 맺은 인연은 지금도 대(代)를 이어 지속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MJ 처가의 ‘화려한 혼맥’ 정몽준 의원의 처가인 고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가계도를 보면 한국 상류사회의 ‘족보’를 엿볼 수 있다. 슬하에 2남 4녀를 둔 고 김 장관과 송두만(83) 여사는 자식교육 뿐 아니라 혼사까지 성공한 케이스. 자녀 모두 외교관 출신인 부친의 영향으로 영어와 일어 등을 유창하게 구사하며, 외국의 명문대를 졸업했다. 특히 장녀인 영애(60)씨와 차녀인 영숙(59)씨는 일본 최고의 여성 사립명문인 세이신대학을 졸업했다. 장남인 대영(57)씨는 미국의 암허스트대학을 졸업했으며, 차남인 민영(51)씨는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 자녀 가운데 재계 가문으로 시집간 이는 삼녀인 영자(55)씨와 막내인 영명(49)씨. 영자씨는 GS그룹의 허씨가인 허광수(59)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결혼했다. 허 회장의 형제로는 허남각(67) 삼양통상 회장과 허동수(62) GS칼텍스 회장이 있다. 또 허창수(57) GS그룹 회장과는 사촌간이다. 허 회장의 부친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LG그룹 경영의 한 축을 맡았던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맏형이다. 고 허 명예회장은 일찌감치 삼성물산의 창립멤버로 참여,LG 구씨가와 손잡은 고 허준구 명예회장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영명씨는 정몽준 의원과 1979년 결혼, 현대가의 일원이 됐다. 이로써 고 김 장관의 집안은 국내 대재벌인 삼성과 현대,LG,GS가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차녀인 영숙씨는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낸 손원일 제독의 장남인 손명원(64)씨와 결혼했다. 손씨는 30대 초반에 ‘손컨설팅 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으며 현대미포조선과 쌍용자동차, 맥슨전자에서 CEO(최고경영자)를 역임했다. 그는 현재 스카이웍스솔루션 코리아 고문이다. 장녀인 영애씨는 자수성가한 국제 금융계의 거물급 인사로 미국 모건스탠리의 부사장이다. 남편인 최융호(62)씨는 해양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제너럴 마리타임 사장이다. 장남인 대영씨는 부친인 고 김 전 장관의 아호(海吾)를 딴 해오실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차남인 민영씨는 한국외국어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부인인 정다미(44)씨도 명지대 교수다. 김 전 장관의 집안은 또 언론계와도 각별하다. 손녀 사위들이 언론계에 몸담고 있다. 셋째 사위인 허 회장의 장녀인 유정(31)씨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아들인 준오(31)씨와 결혼했다. 둘째 사위인 손 고문의 차녀인 정희(31)씨는 1999년 헤럴드미디어 사장인 홍정욱(35)씨와 화촉을 밝혔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④-현대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④-현대그룹

    “믿겨지지 않았다.” 2003년 8월 4일 새벽. 그룹 비서실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아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훗날 지인에게 “처음엔 얘 아빠(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러나 남편의 죽음을 제대로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시숙(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에게서 그룹을 지켜야 했다. 경영 전면에 나섰다. 스물한살에 현대가로 시집와 30년 가까이 살림만 했는데 세상에 나오는 것이, 그것도 시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가 평생을 일군 그룹을 덜컥 떠맡는 게 두렵지 않았을까. 지인의 얘기다.“나도 그 점이 궁금해 언젠가 한번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그 때는 (경영권 분쟁으로) 상황이 너무 다급해 두려워할 겨를조차 없었다고 하더라.” 그렇게 현대가의 ‘조용한’ 며느리에서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때가 2003년 10월 21일. 그로부터 1년여.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관리종목’의 악몽에서 벗어나 지난해 사상 최대 순익(4279억원)을 올렸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주도하는 현대아산 역시 소폭이나마 첫 흑자(8억원)를 기록했다. 현대엘리베이터(839억원), 현대증권(580억원 추정치), 현대택배(74억원), 현대경제연구원(3억원)도 지난해 흑자로 돌아섰거나 흑자를 지켰다. 그룹 경영을 맡은 지 불과 1년 만에 6개 계열사 모두를 흑자로 돌려놓은 것이다.2010년까지 그룹 매출을 20조원(지난해 말 6조 6400억원)으로 끌어올려 재계 10위권(현재 19위)에 입성하겠다는 현 회장의 ‘2010 프로젝트’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운’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왕회장(정주영 명예회장) 시절부터 현대에 몸담아온 한 임원의 해석은 다르다. “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현 회장 취임후) 해운 경기가 살아나면서 그룹의 주축인 현대상선이 살아났으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있다. 전에 비해 그룹의 방향이 매우 뚜렷해졌다. 현 회장은 한번 결정을 내리면 단호하다. 흔들리지 않는다. 배포와 결단력은 오히려 몽헌 회장(MH)을 능가한다는 게 임원들의 공통된 평가다.” 이와 관련해 또다른 임원의 말이 재미있다.“현 회장을 보고 있으면 사업가 유전자라는게 따로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업가 집안의 둘째딸 현 회장은 1955년 딸만 넷을 둔 사업가 집안의 둘째로 태어났다. 훗날 현대상선에 흡수된 당시 신한해운의 현영원(78) 회장이 아버지다. 일제때 ‘호남의 거부(巨富)’로 이름을 날렸던 현준호씨의 후손이다. 어머니는 김용주 전남방직 창업주의 외동딸인 김문희(77) 현 용문학원 이사장이다. 김창성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의 친누나이기도 하다. 현 회장에게는 외삼촌들이다. 현대가의 며느리 가운데 손아래 동서 김영명(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부인·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딸)씨와 더불어 친정이 가장 화려한 편이다. 현 회장은 그룹 홈페이지에 올린 ‘나의 삶 현대의 길’에서 “기업가 집안의 엄격한 가정교육 속에서 세상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시각을 조금씩 키워나갔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임원의 해석처럼 ‘유전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업가 집안의 가풍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현 회장의 자매들 이름이다. 언니가 일선씨, 여동생이 지선씨다. 현 회장의 시조카들과 이름이 똑같다.“정씨 집안과의 혼사는 숙명”이라는 우스갯말이 나올 만도 하다. 언니 일선씨는 수입 침장(沈臧) ‘쉐르단’으로 유명한 홈텍스타일코리아 유승지 회장과 결혼했다. 유 회장은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의 친동생이자 유유산업 창업주인 고 유특한씨의 아들. 현 유유산업 유승필 회장의 친동생이다. 동서지간인 유 회장과 생전의 MH는 나이가 같아 유난히 친했다고 한다.MH가 죽기 직전 가족들과 외식을 할 때도 유 회장이 함께 했었다. ●‘군인’ MH와의 첫 만남 대학(이화여대 사회학과) 4학년때인 1975년 1월 어느날. 현 회장은 아버지를 따라 울산의 현대중공업 선박 명명식에 갔다. 당시 아버지는 사업관계로 잘 알고 지내던 홍콩 행정 장관(C.Y. 퉁)이 방한하자 때마침 열린 선박 명명식에 ‘모시고’ 갔다. 애초 맏딸만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둘째딸의 성화에 딸 둘을 대동하고 나섰다. 몇달 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쪽에서 넌지시 연락이 왔다.“군대간 아들이 마침 휴가 나왔는데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선박 명명식에서 ‘참한 인상의 늘씬한 재원’을 처음 본 정 회장이 단박에 며느릿감으로 점지한 것이다. 이 때가 75년 5,6월께. 현 회장과 MH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언젠가 현 회장이 사석에서 털어놓았다는 MH의 첫인상이다.“요샛말로 필이 꽂히거나 그렇진 않았다. 군인이라 머리도 짧았고…그래도 듬직해 보였다.” 첫 데이트 장소는 ‘군인 커플’답게 서울 태릉사격장. 이듬해 7월 두사람은 결혼했다. ●“나도 내게 이런 속배짱이 있는 줄 몰랐다” 현 회장은 결혼 후 첫딸을 낳고도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라 페어리 디킨슨 대학원에서 인간개발론을 전공했다. 귀국해서 얘들 키우고 살림하는 동안에도 짬짬이 걸스카우트연맹(이사)·대한적십자사(여성봉사 특별자문위원) 등에서 ‘표 안나게’ 사회활동을 했지만 사업가로 나서게 되리라고는 그 자신 상상도 못했다. 현 회장을 가까이서 지켜본 임원의 얘기다.“그룹 경영을 맡은 지 1년여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르지만 확실한 것은 배포가 여간 아니라는 점이다. 경영 참여를 결심한 것도,8개월에 걸친 경영권 분쟁을 버텨낸 것도 이같은 배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겉으로 보면 전형적인 현대가의 조용한 며느리인데 어디에 그런 배포가 숨겨져 있는지 모르겠다. 본인 스스로도 ‘내게 이런 속배짱이 있는 줄 몰랐다.’며 웃더라.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경영권 분쟁때의)그 지독했던 마음 고생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의지력도 대단하다. 더러 확신이 서기까지 결단을 늦추는 경향이 있어 답답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일단 확신이 서면 무섭게 밀어붙인다. 번복하는 일도 없다.”결단을 내려놓고도 마음이 여려 ‘가신’들의 주장에 흔들리곤 했던 MH와는 대조되는 면모다. 현 회장의 단호함을 보여주는 일화 한가지. 지난해 8월 그룹 비전을 선포할 때의 일이다. 당시는 경영권 분쟁을 매듭짓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던 때라 사내외에 선언할 ‘비전’이 매우 중요했다. 현 회장은 ‘용기와 자부심의 현대’라고 직접 쓴 쪽지를 내밀었다. 임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살림만 하던 사람이 기업 경영과 직원 심리를 얼마나 알겠느냐.”는 냉소도 은근히 깔려 있었다. 그러나 현 회장은 지금이야말로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용기와 ‘재계 1위 현대’에 대한 자부심이 절실한 때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선언문에는 이 문구가 그대로 들어갔다. 시간을 지체해 물건너갔다고 생각했던 가신그룹(김재수 당시 경영전략팀 사장 등)에 대한 인사도 그 해말 전격 단행해 임직원들을 다시한번 놀래켰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 숙부의 난 현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다른 사람도 아닌 시삼촌과 길고 지루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정상영 명예회장이 2003년 8월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사들이면서 본격화된 경영권 분쟁은 이듬해 3월 30일 현대엘리베이터 주총에서 현 회장이 승리할 때까지 8개월 가까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현 회장은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집안의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비즈니스가 얽혀있어 개입할 수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중립이 현 회장을 도왔다. 현 회장측은 분쟁의 단초가 된 금호생명 대출 200억원에 대한 정상영 회장의 보증과 관련,“정 명예회장은 조카(MH)에 대한 의리라고 주장하지만 처음부터 경영권을 뺏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행보였다.”고 주장한다. 한 측근은 MH가 정상영 명예회장을 인간적으로 따랐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왕자의 난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정상영 회장이 MH의 자금줄을 교묘하게 막았다.”면서 “이 때문에 MH가 ‘그룹을 위해 (내가) 이렇게 희생했는데 상영 삼촌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언젠가 몹시 화를 낸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KCC측에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여전히 팔지 않고 있어 경영권 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경영수업 받는 큰딸…‘코디’ 둘째딸… 사격 좋아하는 외아들 시어머니(변중석)가 아이 잘 낳는 보약을 하루가 멀다하고 들이미는 바람에 얼떨결에 일찍 가졌다는 큰딸. 딸을 낳자 시댁보다 딸만 넷인 친정의 실망이 더 컸다고 한다. 그 딸이 지금은 현 회장의 든든한 친구이자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지이(28)씨다. 서울대 고고미술학과와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을 나온 그는 외국계 광고회사에 다니다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지난해 1월 3일 현대상선 재정부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올 1월 1일 대리로 승진했다. 회사 흐름을 가장 빨리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재정부에 배치한 것을 보면, 제대로 경영수업을 받게 하려는 현 회장의 의지가 읽혀진다. 경영권 분쟁때도 현 회장은 정상영 명예회장 등 시댁 어른들과의 대면 자리에 반드시 지이씨를 데리고 나갔다. 맏이답게 찬찬하고 침착해 현 회장에게는 큰 의지가 된다고 한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평이 매우 좋다. 지난해 10월 그룹 해체후 처음 가진 신입사원 수련회때는 다른 ‘신참’들과 똑같이 텐트에서 잠을 자고 장기자랑도 마다하지 않아 주위의 경계심을 녹였다.‘싼타페’를 직접 몰고 출퇴근한다. 아직 사귀는 사람은 없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터울이 크면 아들일 확률이 높다.”는 집안 어른들의 압력에 6년 7개월만에 가졌다는 둘째딸 영이(21)씨는 서울 상명여고 1학년때 혼자서 미국 유학을 떠났을 만큼 당차다. 보스턴에서 한시간 거리인 사립 고등학교 ‘쿠싱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현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부에 재학중이다. 언니와 달리 성격이 매우 활달하다. 방학을 맞아 귀국하면 엄마의 의상을 열심히 조언해준다. 막내 외아들인 영선(20)씨는 모 대학 경영학과를 다니다 지금은 휴학한 상태다. 군대를 먼저 다녀온 뒤 미국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아버지 장례식때 고3(경복고) 수험생이었는데도 어찌나 많은 친구들이 빈소로 몰려왔던지 조문객들 사이에 화제가 됐었다. 아버지를 닮아 총쏘는 것을 좋아한다. ●옛 영광 재현 꿈꾸는 핵심 브레인들 경영전략팀이 그룹의 ‘싱크 탱크’다. 다른 그룹으로 치면 구조조정본부에 해당한다. 현 회장 사람들로 전부 세대교체가 이뤄진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최용묵(57) 사장을 사령탑으로 이기승(55) 전무-하명호(47) 상무로 수직 연결된다. 현대엘리베이터 사장도 맡고 있는 최 사장은 경영권 방어전략을 촘촘히 짜 현 회장의 리더십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급진적 개혁보다는 점진적 개선파로, 조직 안정이 최우선 과제인 현 회장 체제에서는 적임이라는 평을 듣는다.76년 현대건설 평사원으로 입사,84년 현대엘리베이터 창립과 함께 관리부장을 맡으면서 조직관리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임직원들과 회사 앞마당에서 족구를 하고 삼겹살 소주 뒤풀이를 즐긴다. 이 전무는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금융전문가의 보완을 절실하게 느낀 현 회장이 지난해 6월 외환은행에서 영입해온 이다.KS(경기고-서울대 법대) 출신답게 머리회전이 빠르면서도 친화력이 뛰어나 핵심인맥의 자리를 굳혔다. 미국 디킨스대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하 상무도 재무 전문가다. 현대석유화학에서 지난해 말 그룹 심장부로 옮겨왔다. 그룹의 정신적 뿌리인 대북사업은 ‘서울대 트리오’가 이끌고 있다.“대북사업에 인생을 걸었다.”는 김윤규(61) 현대아산 부회장이 단연 첫 손에 꼽힌다. 왕 회장때부터 ‘소떼 방북’ 등을 성사시키며 현대와 동고동락해 온 김 부회장은 MH가 그 앞으로 남긴 별도 유서를 통해 “자주 윙크하는 버릇 고치라.”고 농담을 던졌을 만큼 2대에 걸쳐 각별한 신임을 얻었다. 얼마전 부회장으로 승진해 대북 라인 접촉 등 대외 업무에만 힘을 쏟고 있다. 대내 업무를 떼준 것은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어주려는 배려이자 ‘거리 두기’라는 해석도 있다. 대내 업무는 윤만준(60) 현대아산 사장의 몫이다. 고문으로 물러나 있다가 김 부회장의 승진과 함께 대표이사 사장으로 발탁된 그는 남북경제협력사업에 초창기부터 관여해 실무에 밝다. 서울법대를 나와 74년 현대중공업에 입사,MH와 함께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일궜다. 김 부회장의 서울대 공대 직속 후배인 심재원(58) 현대아산 부사장은 개성공단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 업무처리가 치밀하다. 그룹의 ‘캐시 카우’(돈버는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노정익(52) 사장이 이끌고 있다. 유동성 위기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던 2002년 9월 사장에 취임해 1000원대이던 주가를 2만원 가까이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자동차 운반선 매각 등 뚝심으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여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때 들어온 1조원대의 현금이 없었다면 뒤이어 터진 대북송금·분식회계 등의 악재를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얘기다. 취임하자마자 승선 체험을 자청, 선원들과 거센 파도와 싸우며 하나가 된 덕분에 ‘캡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안살림을 꼼꼼하게 챙기는 안홍환(55·부사장) 지원본부장, 회사 매출의 70%를 책임지고 있는 이재현(54·전무) 컨테이너본부장, 일반화물 영업을 이끄는 이동렬(56·전무) 벌크선영업본부장, 해양대 항해학과를 나와 선장으로도 근무한 ‘마도로스’ 신용호(56·전무) 해사본부장 등도 상선의 중추 세력이다. 2003년 6월 부국증권에서 스카우트돼 온 김지완(59) 현대증권 사장은 ‘현투(현대투자신탁증권) 책임분담금’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지어 그룹의 고민을 덜어주었다.‘숙부의 난’때는 오랜 증권업계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권 방어 전략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이어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하마평에 자주 오르기도 한다. 김 사장을 떠받치고 있는 노치용(53·전무) 도매영업본부장은 그룹 홍보도 겸하고 있어 여의도와 광화문을 오가며 ‘셔틀 업무’를 보고 있다. 경영권 분쟁때 설득력있는 논리로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숙부의 난 당시 격전지(경영전략팀) 한복판에 있었던 현기춘(51) 현 현대엘리베이터 전무도 눈에 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또다른 한 축인 한승준(51) 전무와는 춘천고 같은반 친구이다. 기획·관리 전문가로 ‘선 굵은 CEO’로 불리는 김병훈(55) 현대택배 사장, 경제연구원 최초로 수익모델 창출에 도전한 재무관료 출신의 김중웅(64) 현대경제연구원 회장,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주현(53) 현대경제연구원장 등도 그룹의 핵심 브레인들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경영권 분쟁이 오히려 약이 됐다. 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흔들리던 임직원들이 경영권이 위협받자 현 회장을 중심으로 차돌처럼 뭉쳤다. 이번 기회에 전열을 확실하게 정비해 그룹의 모태로서 옛 현대의 영광을 반드시 재현하겠다.” hyun@seoul.co.kr ■ ‘비운의 황태자’ 정몽헌 현대가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는 한 현대맨은 “90년대 들어 언론에서 빅3(MK,MH, MJ) 운운했지만 그 때는 이미 왕회장이 MH를 후계자로 형제들에게 선언한 뒤였다.”면서 “좀체 칭찬을 하지 않는 왕회장이었지만 MH에 대해서는 심지가 깊은 아이라며 믿음을 내보였다.”고 전했다. 보성고와 연세대를 나와 미국 페어리 디킨슨 대학에서 MBA(경영학 석사학위)를 딴 MH는 귀국후 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세워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급기야 2000년에는 그룹 단독 회장에 취임했다. ‘왕자의 난’의 상처를 털고 MH시대를 여는 듯했다. 하지만 2003년 8월 4일 계동사옥 12층 집무실에서 몸을 던지고 만다.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저 유서를 통해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고만 했을 따름이다. 대북송금 특검 등에 따른 중압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그러나 한 측근은 당시 “극심한 중압감 때문이었다면 가족들이 낌새를 알아챘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일축했었다. 투신하기 직전, 가족과 식사한 것을 두고 미리 자살을 준비했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이 역시 MH가 일요일에는 가족들과의 외식을 즐겼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MH는 바깥일을 집에 와 자상하게 털어놓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가급적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등 가정적인 편이었다. 한 측근의 얘기다.“(대북송금·비자금 수사 등이 진행되자) 나 혼자 책임지겠다는 말씀을 여러번 하셨다. 그때는 혼자 감옥가겠다는 뜻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살을 염두에 뒀던 것 같다. 그렇더라도 투신하기 두달 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오자 부인(현 회장)에게 매일 순두부를 끓이라고 했던 점으로 미뤄보아 투신 결심은 순간적으로 이뤄졌던 것 같다.” 소탈하면서도 합리적이고 머리도 좋아 따르는 이가 많았던 MH. 그는 그러나 끝내 아버지의 꿈(대북사업)을 완성하지 못하고 삶을 접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55살때였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며느리들 현대가의 며느리들은 4월을 ‘제사의 달’이라고 부른다. 시아버지(정주영 회장)가 생전에 워낙 제사를 중시한 데다 온갖 제사가 몰려있어 4월에는 아예 청운동 시댁 부엌에서 살다시피 했다. 시아버지의 독특한 ‘밥상머리 교육’ 때문에 새벽마다 시댁으로 가 아침식사도 직접 준비해야 했다. 한 며느리는 “새벽 3시반에 갔다는 항간의 얘기는 다소 과장이고 이를 때는 4시반, 보통때는 5시나 5시반쯤 갔다. 시아버님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새벽마다 수행원들 몫까지 김밥을 엄청나게 쌌던 기억이 난다.”고 털어놓았다. 언젠가 한번은 아들들이 꾀가 나 아침식사 회동에 몇번 빠졌다. 대로한 왕회장이 “모두 들어와 살라.”고 불호령을 내려 1년간 청운동 시댁 주변에 모두 모여산 적도 있다고 한다. 여자들이 나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왕회장이지만 말년에는 겸상 식사도 허용했다고 한다. 맏며느리 이양자씨는 수도여대를 나와 한때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이씨가 91년 암으로 세상을 뜨면서 실질적 맏며느리 역할을 해온 둘째며느리 이정화(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부인)씨는 당시 명문으로 꼽히던 숙명여고를 나왔다. 빼어난 미모로 유명했던 넷째며느리 이행자씨는 한양대 출신으로 세간에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숙명여대를 졸업했다. 유난히 여대 출신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여자는 여대를 가야 한다.”는 왕회장의 보수성 때문이었다. 이화여대에 수석 입학해 화제가 됐던 손녀 유희씨(고 몽필씨 딸)도 원래는 연세대 원서를 다 써놓은 상태에서 할아버지에게 ‘보고’했다가 된통 혼이 난 뒤 여대로 틀었다고 한다. 며느리든 딸이든 해외유학까지 다녀오고도 회사 경영이나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이가 거의 없는 것도 유교적 가풍 탓이다. 왕회장은 “살림에만 신경쓰라.”며 며느리들에게 골프도 치지 못하게 했다. 현정은 회장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골프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월이 훨씬 흐르고서야 뒤늦게 골프를 배웠지만 영 재미가 붙지 않아 골프장에 딱 세번 나가본 뒤 관뒀다고. 오는 10월 ‘금강산 골프장’ 개관에 맞춰 상징 티샷을 날리라는 임원들의 압력이 많아 여간 고민이 아니라고 한다. 한때 기체조를 배웠으며 ‘걷기’ 가 취미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책꽂이]

    |경제·실용| ●울지마, 다빈아(손영철 지음, 들마루 펴냄)생후 1개월된 딸 아이를 혼자 키우게 된 다빈 아빠가 인터넷 카페에서 선배엄마들의 도움으로 터득한 육아 체험을 담은 일기. 강희철 연세대 의대 교수의 조언을 함께 실었다.9000원.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안철수 외 지음, 스테디북 펴냄)IT분야에서 프랜차이즈 사업까지 저마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꾼 한국의 CEO 21명이 들려주는 성공 노하우.1만원. ●유쾌하게 나이먹는 건강상식(시오자와 유키토 지음, 한혜란 옮김, 나무의꿈 펴냄)평균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제2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중장년을 위한 건강 실용서. 건강한 치아 유지와 노화를 막는 섹스, 치매 예방 스터디, 식생활 포인트 등 알아두면 유용한 상식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9800원. ●프랭클린, 위대한 생애(벤저민 프랭클린 지음, 최종률 옮김, 지훈 펴냄)대표적인 성공 신화의 주인공인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30년 전 ‘후회없는 생애’(삼성문화문고)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던 원고를 새롭게 번역했다.1만원. |유아·아동| ●원숭이 사세요(새나 스탠리 지음, 윤정숙 옮김, 느림보 펴냄) 아프리카 콩고가 배경이어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덤으로 맛볼 수 있는 그림책. 아프리카의 장날 풍경, 물물교환 등 원시경제의 모습을 보면서 먼 나라의 이색풍물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색다른 책읽기.5세 이상.8500원. ●베개아기(김현주 지음, 깊은책속옹달샘 펴냄) 어린 아이의 물건에 대한 집착심리와 성장통을 묘사한 애니메이션 원작 그림책. 담요, 베개, 인형 따위에 생명체 대하듯 강한 집착을 보이는 아이의 이야기. 사소한 것도 보물처럼 여기는 아이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어 부모가 함께 읽어도 좋을 듯.4∼7세.9000원. |초등·청소년| ●어린이 식물백과(이명호 지음, 베텔스만 펴냄) 초등학생들이 꼭 알아야 할 614종의 식물을 생생한 컬러사진으로 보여주는 백과사전. 식물의 특징, 분류, 구조, 번식 등 다양한 해설이 덧붙었다. 초등 교과과정에 나오는 70종의 식물을 별도 화보집에 담았다. 초등생.2만4000원. ●나무의사 큰 손 할아버지(우종영 지음, 사계절 펴냄) 나무의 생태를 보여주는 교양서이면서도 생태지식을 평면적으로 나열하지 않아서 좋다.‘큰 손 할아버지’가 어린 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나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덕분에 책은 창작동화처럼 재미있다. 초등2년 이상.9500원.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자서전 ‘대화’ 낸 리영희 전 한양대교수 산행 인터뷰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자서전 ‘대화’ 낸 리영희 전 한양대교수 산행 인터뷰

    ‘아큐정전’의 저자 루쉰(魯迅)은 생전에 영국의 시인 바이런을 예찬했다.‘영국’이라는 속박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려는 저항정신을 사랑했다. 얼마전 중국은 네티즌 13만명을 상대로 20세기 중국사회에 가장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루쉰을 1위로 꼽았다. 한국의 루쉰으로 일컬어지는 사람이 있다. 누굴까.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한다. 파란과 곡절의 삶 그 자체이다. 주위에서는 ‘60% 저널리스트,40% 아카데미션’이라고 한다. 르몽드지는 ‘사상의 스승’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1999년 ‘연세대학원신문’이 교수와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20세기 영향력 있는 학자와 저작’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학자 가운데 리영희(77)씨를 가장 으뜸으로 꼽았다. 또 모언론사에서 지난 한 세기동안 가장 영향력있는 100대 인물 중 리씨가 24위로 조사됐다. 리씨는 “나의 글은 루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루쉰을 좋아한다. 흥미로운 것은 루쉰과 리씨가 해양대학 출신의 지식인이라는 점. 리씨 역시 온몸으로 ‘저항’하며 한 시대를 깨우치려 했다. 또 올곧은 사상가의 길을 걷고자 했다. 경기도 군포시 수리동의 한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다. 신분을 밝히자 “문이 열렸으니 그냥 들어오세요.”라고 했다. 안으로 들어섰다.40평쯤 돼 보였다. 리씨는 식탁에서 혼자 과일을 먹고 있었다.“점심을 지금 막 먹었거든. 조금만 기다려주게.”라고 했다. 잡안에는 조수미의 ‘새야새야’가 조용히 울려퍼졌다. 이윽고 리씨와 마주앉았다. 이런저런 인사말이 오고갔다. 그는 “오늘 날씨도 좋은데 뒷산 구경이나 할까.”라면서 옷을 갈아입었다. 이때 전화벨이 울렸다. 본의 아니게 전화내용을 듣게 됐다.“요새 글 못써. 책도 안 읽어. 스트레스 받으면 재발하거든. 뭐? 대학에서 두번 쫓겨나는 바람에 연금도 없어. 내가 언제 감투를 써봤나. 요새 책도 안팔려, 전자매체로 다 보잖아.” 문득 벽에 걸린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손자손녀들과 밝게 웃는 모습의 사진도 보였다. 전화통화를 끝낸 리씨는 “가족이란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해야 기억할 수 있지. 손자들은 서울 신촌에 살고 있어.”라며 노년의 외로움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후 마을 뒷산인 수리산 입구에 들어섰다.“이 산은 말야, 해발 489m의 야트막한 산이지. 그런데 물이 좋아. 약수물 받으러 오는 사람 많아.” 리씨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천천히 걸었다. ●이번 자서전이 마지막 글 최근 발간된 자서전 ‘대화’(한길사刊)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왔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직접 글을 다듬고 쓰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지. 서울대 학생이 우리집에 기거하며 정리해 주었어.2년 걸렸지. 누락됐거나 생략된 것도 많아. 살아온 76년은 한마디로 ‘야만의 시대’였지. 일제와 해방후 50년은 반인간적 생존환경이었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우는 고결한 정신의 소유자들 돕기 위해 많은 글을 썼지. 문장으로는 꽤나 중국의 루쉰 같은 스타일로 써왔어.” 20분 가량 걸었다. 약간 힘들었는지 의자에 앉자고 했다. 푸른 소나무 사이로 새들의 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혔다. 자연이 그에겐 어떤 모습으로 다가갈까. 잠시 하늘을 쳐다보다가 “아름다운 경치야. 무심(無心)으로 걸어. 자연의 오묘한 변화를 새삼 느끼지. 몸이 불편하니까, 지난날의 정열과 행동양식이 내면화되니까, 정서가 합치돼.”라면서 지나온 세월을 잠시 돌이켜본다. “참으로 우역곡절과 파란만장이었어. 어떤 장면과 국면에 가까이 안가도 될 것을, 지성인의 본질적 책임을 위해 개인의 안락보다는 사회쪽으로 시선을 돌렸지. 가정위주로 산다는 것은 배반이었어. 자식들에겐 굉장히 미안해. 또 지나칠 정도로 논증적으로 빈틈없이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었지. 정서적 내면은 철저히 억압됐어.” 이같은 고통스러운 삶으로 술은 늘 곁에 끼고 있었다고 했다. 모언론사 외신부장 시절이다. 부원들과 팔당에서 야유회를 가졌다. 부원들은 정종을 마셨지만 리씨는 들고온 고량주(10홉짜리 큰병)의 뚜껑을 땄다. 안주없이 벌컥벌컥 5홉을 연거푸 마셨다. 정신을 잃었다. 이튿날 배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위궤양이었다. 성인의 위두께가 보통 11㎜인데 9㎜까지 파고들었단다. 이후 15년 동안 위궤양으로 고생했다. 리씨는 인터뷰에 앞서 스트레스 받는 질문은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온국민의 관심사인 독도문제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본은 모든 상황을 1945년 이전으로 롤백하려는 큰 구상 속에 영토문제를 꺼내고 있지. 우리는 고증과 실증을 통해 법률적 역사적 근거를 제시해야 해. 걱정되는 것은 우리 국민의 ‘냄비’ 정서야. 항상 반응적이거든. 그러나 독도문제만큼은 영국 국민처럼 뚝심으로 대처해야 해.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은 불독처럼 말야. 여기에 일본인 같은 교묘함도 염두에 두어야 해.” ●한·일 우익들의 밀착이 문제 이어 “이번 사태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의 친일파 우익과 일본의 우익단체간에 밀착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라면서 “한국과 일본의 우익 뒤에는 항상 미국이 있지. 김대중 정권에서도 그랬지만 노무현 정권에 와서 미국은 남한의 우익을 더욱 부추기고 있어. 기독교 인사, 전직 장관, 군부세력 등 남한의 우익단체가 더 무서워. 자기 몸속의 벌레를 찾아내야 해.”라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낀 듯 “그만두자.”고 했다. 화제를 돌렸다. 여생에 뭔가 또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한 인간으로 할 수 있는 분량이 있어.40년간 범속한 지식인의 머리로 쓴 소리도 많이 했지. 국민들에게 시대의식과 세계관을 바로잡는 데 나름대로 기여했다고 봐. 또 우리 국가나 사회가 대체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이 기쁘고 행복해. 이만하면 분량을 다했어.”라며 말끝을 흐린다. ●광주 배후자로 몰려 수차례 고초 그는 1929년 평북 운산에서 3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부친은 구한말 신식교육을 받은 선비형이었다.14세 때 경성의 ‘공립5학년제 갑종 중학교’에 입학한 뒤 1945년 11월 미국식 6년제가 된 고등학교에 5학년으로 편입했다. 이때 담배말이와 성냥장사를 했지만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정도였다. 그러던 1946년 국비로 입혀주고 먹여준다는 말을 듣고 해양대학 1기생으로 입학해 1950년 3월 졸업했다. 6·25전쟁이 나자 연락장교에 지원해 7년 동안 전방근무를 했다. 전방 근무시절엔 권총을 잘 쏘아 명사수로 명성이 자자했다. 제대 1년전 56년 스물일곱에 하숙집 아줌마의 중매로 결혼했다. 제대후에는 합동통신사 외신부 기자로 취직했다. 슬하에 2남1녀를 두었는데 셋다 합동통신사 다닐 때 태어났다. 이후 72년 신학기부터 한양대 강단에 서면서 무섭게 글을 썼다.77년에 ‘8억인과의 대화’‘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을 한데 묶어 2년 동안 투옥된다. 수감 중에는 ‘D검사와 리교수의 하루’라는 소설을 썼다. 대학에 복직됐으나 ‘광주폭동’ 배후자로 몰려 다시 해직되는 등 수차례 고초를 겪는다. 정년 퇴임후 그는 시대적 소임을 다했다고 자위하며 조용히 살았지만 2000년말 일흔나이에 뇌출혈로 쓰러졌다. 언어장애까지 겹쳤다. 다행히 요즘들어 건강이 다소 회복됐다. 그러나 오른손의 떨림과 손가락마비는 여전해 장마철만 되면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의 심한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내가 할 일은 다했다.”고 거듭 말하는 리씨. 그는 자신의 책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며 저녁노을을 뒤로 하고 쓸쓸히 산을 내려왔다. ■ 그가 걸어온 길 ▲1929년 평북 운산 출생 ▲50년 해양대학 1기 졸업, 경북 안동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중 6·25전쟁이 나자 연락장교 지원 ▲57년 대위로 군제대 ▲57∼64년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64∼71년 조선일보·합동통신 외신부장 ▲72년 한양대 문리과대 교수 ▲76년 박정희 정권때 해직 ▲80년 3월 복직됐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됨. ▲84년 재복직 ▲87년 미국 버클리대 부교수 초빙 ▲95년 한양대에서 정년퇴임 ▲99년 동대학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 역임 ■ 주요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74년), 우상과 이성(77년),8억인과의 대화(77), 분단을 넘어서(84년), 베트남전쟁(85년), 인간만사 새옹지마(91년) 등 km@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③-현대·기아차 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③-현대·기아차 그룹

    정몽구(67^MK)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격의없이 지내는 지인들은 정 회장을 이렇게 평가한다. “곰같은 외모에 뱀같은 머리를 지녔으며 여우같은 행동가이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현대의 한 고위임원은 서슴없이 정 회장을 ‘지략가’라고 정의했다. “현대차는 현대차, 기아차, 현대정공, 현대차써비스 네 집안이 합쳐진 회사다. 그런데도 큰 잡음이 없다. 카리스마만 갖고서는 이렇게 이끌 수가 없다.MK가 대단한 지략가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이어지는 그의 얘기.“햇볕도 잘 들지 않는 땅(서울 원효로)에서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을 만든 이가 MK다. 다른 아들들이 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한테 기업을 물려받은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는 사실상 창업자나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차그룹의 비약적인 성장이 결코 요행이나 우연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 정 회장은 2000년 9월 그룹에서 독립한 지 불과 4년만에 현대차를 세계 6위 반열에 올려놓았다. 독립 당시 10개에 불과하던 계열사 수는 28개로 불어났으며, 종업원 수도 10만명을 넘는다. 총자산 규모 67조원(3월14일 현재)에 올해 매출목표액 85조원, 재계 서열 3위다. ‘싸구려 현다이’라고 비웃던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은 이제 현대차를 두려움의 존재로 인식한다. ●갤로퍼 신화에서 품질경영까지 서울 경복고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나온 정 회장은 현대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현대자동차써비스(74년)와 현대정공(77년)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일찌감치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이후 기아차를 인수해 자동차 전문그룹을 만들기까지 평생을 차(車)와 함께 했다. 그를 가까이서 본 고위임원의 얘기다.“세상 사람들은 보여지는 외모와 어눌한 말투만 보고 MK의 저력을 더러 간과한다. 그러나 현대정공 시절, 그는 일일이 차를 뜯어보고 조립하면서 갤로퍼 신화를 만들어냈다. 차에 관한 한 누구보다 전문가다.” 그런 정 회장이 충격을 받은 사건이 발생했다.98년 미국 JD파워의 신차 품질조사에서 현대차가 꼴찌를 한 것이다. 이듬해, 그 이듬해에도 꼴찌권을 맴돌았다. 엄청난 모멸감에 휩싸인 그는 “이제부터 등수는 잊어라. 대신 무조건 품질을 끌어올려라.”라고 일갈했다. 현대·기아차의 보도자료에서 ‘세계 톱5 진입’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품질본부가 즉각 하나로 합쳐지고, 회장이 직접 주재하는 품질 회의가 꾸려졌다. 올초 쏘나타는 ‘세계에서 가장 결함이 적은 차’로 선정(컨슈머 리포트지)됐다. 몇년 전의 수모를 보기 좋게 설욕한 것이다. ●부인 이정화여사 실질적 맏며느리 정 회장은 평범한 ‘실향민’ 집안의 셋째딸(이정화·66)과 결혼해 1남3녀를 두었다. 고향이 이북인 부인 이씨는 손위동서인 이양자씨가 91년 암으로 세상을 뜨자 이때부터 집안의 실질적인 맏며느리 역할을 도맡아 했다. 시아버지 생전에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3시30분이면 청운동 시댁으로 달려가 아침을 준비하곤 했다. 시어머니(변중석)가 이 무렵 거동이 불편해져 병원 신세를 졌기에, 대식구의 아침 준비는 오롯이 며느리들 몫이었다. 틈날 때마다 현대아산병원을 찾아 시어머니를 돌보는 일도 맏며느리인 그의 몫이다. 시어머니가 그랬듯,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다. 이렇다할 직함도 없다. 굳이 찾자면 그룹 계열사인 ‘해비치 리조트’(제주도 다이너스티 골프장과 콘도 등을 운영하는 회사)의 개인 대주주라는 정도다. ●외아들 의선… ‘ES 시대’ 개막 그룹의 핵심인 자동차는 정 회장의 막내 외아들이자 현대가의 종손인 의선(35·ES)씨가 한 축이 돼 이끌고 있다. 이달초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담당 사장 겸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모비스(자동차부품 전문회사) 부사장도 맡고 있다. 본텍·글로비스·엠코 등 비상장 계열사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오너 3세’의 프리미엄만을 업고 사장에 오른 것은 아니다. 휘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온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 정 회장이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을 갖고 있다는 ‘현대정공 자재부’에 94년 과장으로 입사, 현장감각을 익혔다. 이후 기아차 슬로바키아공장 건설 등 굵직한 해외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면서 차세대 리더로서의 잠재능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얼마전 기아차 수출 500만대 돌파 기념식때는 임원들의 넥타이를 기아차 상징색인 빨간색으로 즉석에서 통일시켰을 만큼 회사에 대한 애착과 감각이 남다르다. 자기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면서도 상대에게 겸손하다는 느낌을 준다. 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우스갯소리도 곧잘 해 평이 좋다. 생전에 정주영 회장이 지선(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의 장남)씨와 더불어 가장 예뻐했던 손주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의 사촌여동생이 미국에 유학을 오자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 95년 결혼에 성공했다. 훗날(2000년) INI스틸에 흡수된 당시 강원산업 정도원 부회장의 딸 지선(32)씨가 부인이다. 스물다섯, 스물둘의 나이에 일찌감치 결혼한 두사람은 딸 진희(9)양과 아들 창철(7)군을 두고 있다. ●의사집안 대 잇는 큰사위 정 회장의 큰딸 성이(43)씨는 저명한 정형외과 전문의 고 선호영 박사의 둘째아들 두훈(48)씨와 결혼했다. 역시 의사인 두훈씨는 현재 대전 선병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목동 선병원, 중촌 선병원, 선치과병원, 건강증진센터, 유성 선병원 등이 모두 같은 계열이다. 서울집(한남동)과 대전을 오가며 병원 일을 보고 있다. ●금융 사업 이끄는 둘째 사위 93년 현대차 원효로 사옥에서 프로젝트팀 형태의 현대오토파이낸스㈜로 출발한 현대캐피탈은 우리나라에 자동차할부 금융업을 처음 선보였다. 그러나 ‘카드 사태’ 등으로 현대카드가 어려워지자 ‘구원투수’로 투입된 이가 정태영(45)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이다. 정경진 종로학원장의 아들이자 MK의 둘째딸 명이(41)씨의 남편이다. 한 임원의 얘기다.“그 분(정태영 사장)은 스스로를 오너의 사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문경영인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아깝다며 골프조차 안친다. 회사가 안정될 때까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골프에 할애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식이다.” 당장의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착실히 손실을 털어낸 덕분에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은 올해 ‘동반 흑자’ 전환을 앞두고 있다.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와 미국 MIT(매사추세츠공과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궁금한 게 있으면 실무자에게 직접 휴대폰을 걸어 물어봐 직원들을 긴장시키기도 한다. 현대차 근무시절 함께 호흡을 맞췄던 제갈걸(53) 부사장, 옛 현대그룹 문화실장을 지낸 김상욱(52) 전무 등이 그와 함께 금융소그룹을 이끄는 핵심 브레인들이다. ●꿈의 철강 라인업 셋째 사위-조카 한보철강(현 당진공장) 인수를 계기로 그룹은 열연(당진공장)-냉연(현대하이스코)-스테인리스(INI·BNG스틸)로 이어지는 철강 풀라인업을 달성했다. 이 꿈의 라인업에 정 회장의 셋째 사위와 조카들이 포진하고 있다. 김원갑(53) 부회장과 함께 현대하이스코(옛 현대강관)를 이끌고 있는 신성재(37) 사장은 현대정공에 근무하던 시절, 정 회장의 동갑내기 셋째딸 윤이씨를 만나 결혼했다. 미국 페퍼다인대학 MBA 출신이다.98년 현대하이스코로 옮겨 수출부장, 영업본부장 등을 거쳐 이달초 사장으로 승진했다. 영업본부장 시절에 1조원대에 머물던 연간 매출액을 2조 3000억원대로 끌어올려 ‘장인’의 인정을 받아냈다. 김 부회장은 78년 현대건설 경리부로 입사해 건설과 자동차에서 잔뼈가 굵은 재무 전문가다. 이계안 현 열린우리당 의원이 2001년 7월 현대차에서 물러날 때 함께 사표를 냈지만 정 회장이 다시 발탁했다. INI스틸(옛 인천제철) 김무일(62) 부회장도 빼놓을 수 없는 철강 인맥이다. 정통 철강맨은 아니지만 취임하자마자 한보철강 인수를 보기좋게 성공시켜 정 회장의 신임을 확실하게 굳혔다. 지난해 4월 현대·기아차 구매총괄본부장(부사장)에서 사장을 거치지 않고 곧장 INI스틸 부회장으로 승진 이동했다.‘수처위주 입처개진’(隨處爲主 立處皆眞·언제 어디서건 그 곳의 주인이 돼라)이 좌우명이다. 김 부회장이 지인에게 털어놓은 현대차의 타이어사업 진출 무산 뒷얘기가 재미있다.90년대 초반 현대차는 현대정공을 통해 타이어사업 진출을 모색했다. 그러나 정주영 명예회장이 “공예산업(타이어에 홈을 파는 작업을 공예에 비유)은 안된다.”고 하는 바람에 막판에 철회했다고한다. ●LS전선·김&장과의 혼사 BNG스틸은 젊은 나이에 타계한 동생 몽우씨를 생각해 MK가 조카들에게 대부분 맡긴 회사다. 몽우씨의 세 아들이 모두 이 회사에 있다. 큰아들 일선(35)씨가 대표이사 사장이다. 그룹이 2000년 말 삼미특수강(BNG스틸의 전신)을 인수할 때 실무를 맡아 내부사정에 밝다. 철강의 꽃으로 불리지만 유통구조는 낙후된 스테인리스 업계에 서비스센터(코일센터)를 도입해 새 바람을 일으킨 이도 그다. 운동을 워낙 잘해 그룹사 축구시합때면 직접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빈다. 사촌인 의선씨와는 생일이 일주일 밖에 차이 나지 않아 어려서부터 유난히 친했다. 유학중에 ‘어린 신부’를 만난 것도 똑같다. 고려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던 일선씨는 같은 대학 심리학과로 갓 유학온 여섯살 연하의 구은희씨를 만나 96년 결혼했다. 현대가 내로라하는 재벌 집안과 처음 혼사를 맺는 순간이기도 했다. 은희씨는 구자엽 희성전선 부회장의 딸로, 구태회 LG전선(현 LS전선) 명예회장의 손녀이다. 결혼할 때 스무살이었다. 지금은 세 아이(창현·진주·창민)의 엄마다. 일선씨의 동생 문선(31)씨도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김&장 법무법인 김영무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31)씨가 부인이다. 재정부에서 이사로 근무하다 미국 연수길에 올라 현재 미시간대학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다. 올 연말에 귀국한다. 미국 버클리대학 회계학과를 나온 막내 대선(28)씨는 지난해 11월 품질혁신부 대리로 BNG스틸에 합류했다. 아직 미혼이다. ●MK의 용병술 현대차그룹의 인사 시스템은 ‘예측 불허’다. 그런데도 떠난 사람들 가운데 그룹을 욕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한 전직 고위임원의 분석이다. “MK는 아버지를 몹시 어려워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자신 아버지와 몹시 닮았다. 우선 그룹내에서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현대차그룹에는 2인자가 없다. 웬만한 간부는 회장에게 모두 직접 보고한다. 충성 경쟁을 유발하는 셈이다.” 그는 “빈번한 패자부활과 적절한 견제도 MK 용병술의 특징”이라고 했다. 이를 그룹내 파벌싸움의 산물로 보는 이도 있지만 ‘권위에 대한 도전’을 용납지 않는 MK의 치밀하게 계산된 행보라는 분석이 더 많다. ●자동차 전문인맥 ‘탱크 박사’ 김동진(55) 현대차 부회장이 단연 눈에 띈다.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의 전문 엔지니어로 국방연구소에서 ‘K1탱크’ 국산화를 주도하다가 78년 정 회장에 영입됐다. 정의선 사장과도 가깝다. 중국시장을 거의 개척하다시피하고 있는 화교 출신의 중국통 설영흥(60) 부회장과 ‘갤로퍼 신화’의 숨은 조력자 전천수(59·생산노무담당)사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 등 정·재계에 발이 넓은 채수일(52·방송인 이숙영씨 남편) 고문도 빼놓을 수 없다. 이사대우 5년 만에 사장이 된 MK의 대학후배 최한영(53·전략조정실장겸 마케팅총괄본부장)사장은 한때 ‘MK의 입’으로 불렸었다. 본인은 “99년 해외출장중에 갑작스럽게 홍보실 컴백 명령이 나 사표쓸 생각까지 했었다.”그렇지만, 곧이어 터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누구보다 MK의 의중을 정확히 짚어내 파격 승진을 거듭했다. GE캐피탈과의 자본제휴, 글로비스 지분 매각 등을 주도한 재무통 채양기(52·기획총괄부본부장)부사장도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이다. 그가 쓴 ‘채권관리 실무교본’은 지금도 채권 전문가들 사이에 필독서로 꼽힌다. 그룹 ‘암행어사’ 인 이전갑(58·감사실장)사장, 품질경영 전도사인 서병기(58·품질본부장)사장, 신차 기술개발 주역인 김상권(59·연구개발본부장)사장, 미국시장 공략의 중책을 맡고 있는 최재국(57·국내외 영업기획담당)사장, 김수중 전 사장의 계보를 잇는 ‘영업의 귀재’ 이문수(57·내수영업본부장)부사장, 치밀한 홍보맨 이용훈(55)부사장 등도 현대차를 이끄는 중추세력이다. 기아차의 선두주자는 단연 김익환(55) 사장이다.‘오너 아들’과 대표이사를 같이 맡고 있어 적잖은 부담이지만 도약의 기회이기도 하다. 영업·수출·홍보를 두루 거쳐 실무에 밝다. 외모만큼이나 선이 굵다. 양쪽 날개로는 구태환(50·재경본부장)부사장과 김용환(49·해외영업본부장)부사장이 있다. ●‘오랜 동반자’ 정공 인맥 현대·기아차 출신들이 ‘신측근’으로 분류된다면, 현대정공과 현대차써비스 인맥은 ‘전통가신’으로 분류된다. 유홍종-박정인-김동진-김익환으로 이어지는 정공 인맥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 한토막. 언젠가 MK가 해외출장지에서 뜬금없이 막걸리를 찾았다. 현대차 출신들은 난색을 지었다. 정공 출신들은 “어떻게든 구해보겠다.”며 나가 정말로 막걸리를 구해왔다. 유홍종(67) BNG스틸 회장은 MK와 양궁 신화를 함께 써내려간 정공 인맥의 대부다. 그 뒤를 잇는 박정인(62) 현대모비스 회장은 현대차써비스가 일개 사업소(현대차 원효로사업소)에 불과했던 72년,MK를 처음 만났다. 이후 자재부장과 경리담당 대리로 황금콤비를 이루면서 30년 넘게 MK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인터넷 화상회의·전자결재 등을 정착시킨 ‘스피드 경영’으로도 유명하다.“맹꽁이”가 부하직원들을 나무라는 가장 심한 욕일 만큼 점잖지만 허점이 너무 없어 오히려 겁날 때도 있다는 게 아랫사람들의 얘기다. 서울 양재동 사옥을 사들일 때 점쟁이까지 불러 감정한 것으로 유명한 이중우(57) 다이모스(자동차부품회사) 사장, 등산 마니아인 김평기(60) 로템·위아 사장, 이여성(55) 서울시메트로 구호선 사장, 정석수(53) 현대파워텍 사장 등도 정공이 ‘뿌리’다. 서비스업체(해비치리조트) 사장에서 하루아침에 그룹의 신생 건설사업을 책임진 김창희(52) 엠코 사장도 시선이 쏠리는 인물이다. hyun@seoul.co.kr ■ 인간 정몽구회장 술을 많이 마시면 다음날 아침 꼭 라면으로 해장하는 버릇이 있다. 폭탄주 20잔도 끄떡없을 만큼 주량이 세지만 절제력이 강해 실수하는 일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폭탄주보다 소주를 즐긴다. 해외출장길에 수행원들이 맨먼저 챙기는 것도 소주와 라면이다. 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를 닮아 먹성이 소탈하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에는 서울 양재동사옥의 지하2층 중역식당을 애용한다. 임원들의 구내식당행도 개의치 않는다. 이는 아버지와 다른 면이다. 왕 회장은 임원들이 구내식당에 나타나면 “밖에 나가 사람들 만나라고 접대비를 줬더니 기껏 안에서 먹는다.”며 불호령을 내리곤 했다. 가정적인 면모도 아버지와는 딴판이다. 주말이면 아들딸 사위들과 함께 곧잘 산을 찾는다. 대신 골프는 별로다. 좋아하지 않다보니 실력도 그저 그렇다. 여느 현대가 사람처럼 ‘새벽형 인간’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아침을 먹고 6시30분쯤 출근한다. 대신 밤 10시면 잠자리에 든다. 그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의 공통된 얘기는 “겉 인상과 달리 마음이 매우 여리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잘 자르지 못한다. 현대차는 한때 이사만 100명에 이르렀었다. 더는 버틸 수 없는 포화상태에 이르러서야 MK는 “진급한 숫자만큼 자르라.”며 지난해 구조조정을 지시했다. 어눌한 말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 처음 그를 접하는 사람들은 말뜻을 해석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해석이 쉬워질 때쯤이면 “참모들보다 서너배는 빠르다.”는 그의 머리회전에 진땀을 흘리게 된다고. 어떤 이는 이를 “아버지의 ‘방목’과 형제간 경쟁과정에서 터득한 본능적인 생존지수”로 해석했다. 효심도 남다르다. 한 현직임원의 얘기다.“일을 하다 보면 종종 과거에 잘못 벌여놓은 일과 마주치게 된다. 그럴 때면 MK는 ‘이거 참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고 잘했다고도 할 수 없고‘하며 말을 흐린다. 한번도 대놓고 선친때 일을 지적한 적이 없다.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섭섭한 감정이 남아 있을 텐데도 말이다. 형제들 일도 마찬가지다. 장남으로서의 원초적 책임감 내지 부담감을 늘 갖고 있는 느낌이다.” 경영권 분쟁때 동생(정몽헌)과 그토록 부딪쳤건만, 그 동생이 2003년 8월 계동사옥에서 몸을 던졌을 때 맨먼저 사고현장에 달려가 시신을 수습한 이도 그였다. 한 전직 임원은 “빈소 뒤에서 나를 붙잡고 우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여담여담] 보상은 다음 순서다/구혜영 정치부 기자

    요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치자면 서울 신문로 새문안교회 맞은편에 있는 ‘세안빌딩’건물이 으뜸일 것 같다. 이곳 8층에는 일제하 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가 있다. 평생 ‘과거사’의 한(恨)을 지니고 살아온 사람들이 이제야 빗장을 풀기 시작한 정부를 원망하며 이곳을 찾는다.“호적에 있는 이름과 집에서 부르던 이름이 다른데 어떡하냐.”,“접수번호는 받았지만 어디로 끌려가신지 모르는데….”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많은 사연들을 두서없이, 눈물과 함께 쏟아냈다. 유족으로 보이는 한 60대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할머니는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보낸 어린 시절만 해도 가슴 아픈데 돈 받을지 모르니까 여기저기서 연락온다.”며 담당자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아버지가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뒤 연락이 없자 외갓집 식구들이 나서서 어머니를 재혼시키자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가 도망갈까 봐 자기 전 몰래 어머니의 고쟁이에 끈을 묶어놨다는 할머니. 그러나 눈떠보니 끈만 풀어진 채 어머니는 없어지고 할머니는 고모집에서 쇠주걱으로 맞아가며 눈치꾸러기로 컸다고 한다. 다른 한 할머니도 내 얘기 좀 들어보라며 자리를 뜰 줄 몰랐다.30년 전 정부가 일제 피해 사망자들에게 준 30만원도 시댁에서 챙겨갔다며, 어린 자식 출생신고를 못해 학교에도 못 보냈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제 정부가 나서서 일제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보상해줄 것처럼 알려지자 그 시절 친척들이, 시댁 식구들이 연락을 해온다는 것이다.“그래도 친척이 거기밖에 없어서…”라며 잊고 싶은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슬픔은 또 고스란히 할머니들의 몫이다. 상처받은 이들에게는 ‘보상’보다 더 급한 게 있지 않을까 싶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할머니가 손자손녀들을 데리고 와서 “이 분이 너희 조상”이라며 같이 향을 피우고, 영정 앞에서 수십년 동안 하지 못했던 얘기를 밤새도록 털어놓을 수 있는 추도·기념관이라도 좋다. 하루종일 살풀이춤을 출 수 있는 추모제를 마련하는 것은 또 어떨까. 가슴 밑바닥에 쌓인 상처를 달래는 너른 마당부터 마련해야 할 것 같다. 구혜영 정치부 기자 koohy@seoul.co.kr
  • 노점상 아빠 배웅하던 8세딸 아빠차에 참변

    “못난 아빠를 향해 반갑다고 뛰어오며 웃던 얼굴과 고사리 손만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집니다.” 야간 노점상 일을 나가는 아버지를 배웅하던 어린이가 아버지가 몰던 트럭에 치여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23일 오후 5시30분쯤 부산 북구 금곡동 모 아파트 앞 도로에서 고모(45)씨가 몰던 활어 판매용 1t트럭에 딸(8·초등1년)이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날 사고는 고씨가 야간 노점상 일을 나가려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트럭을 몰고 나오는 것을 가게에서 과자를 사오던 고씨의 딸이 보고 반가운 마음에 트럭을 따라가다 차량 안쪽으로 넘어지면서 발생했다. 한편 24일 고양의 빈소가 차려진 부산 북구 덕천동 부민병원 장례식장에는 고양의 부모와 친척, 성당 교우들이 모여 고양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했다. 고양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갑작스러운 딸의 죽음에 넋을 잃은 채 딸의 영정만을 바라보고 딸의 이름을 부르며 굵은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손녀가 사고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칠순 할머니는 충격으로 쓰러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보증금 1700만원에 월세 22만원짜리 임대아파트에 사는 고씨는 야간에 집 근처 아파트단지에서 오징어회를 썰어 팔면서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고 있으며, 지난해 말 오토바이 사고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상태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공연포커스]본 트랩 칠드런, 30일부터 공연

    [공연포커스]본 트랩 칠드런, 30일부터 공연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 본 트랩 대령의 후손들이 또 우리나라를 찾아온다.‘본 트랩 칠드런’이란 이름으로 지난해 가을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공연해 큰 인기를 누렸던 이들은 9∼15세의 4인조 노래팀. 본 트랩 대령의 증손자, 증손녀로 이뤄진 팀은 30일 오후 7시30분 한전아트센터 무대를 시작으로 31일 오후 7시30분 고양 어울림극장, 새달 2일 오후 8시 분당 요한성당에서 잇따라 공연할 예정이다. 팀의 멤버는 소피아(15), 멜라니(14), 아만다(12), 저스틴(9) 등 네명. 이들은 1997년 할머니의 생일날 가족모임에서 노래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음악활동에 나섰다. 세계 유명축제와 TV프로그램, 자선공연 등에 출연하며 ‘사운드 오브 뮤직’의 감동을 재연해왔다. 이번 내한무대에서도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제곡들을 다시 부른다.2001년 ‘오페라의 유령’에서 크리스틴을 연기했던 뮤지컬 배우 이혜경이 마리아 선생님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다.2만∼5만원(분당 요한성당은 전석 3만원).(02)3472-4480.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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