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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가족입니까? 짐승의 가족입니까?”

    “하늘 아래 이렇게 막나가는 가족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중국 타이완(臺灣)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삼촌,형제가 모두 한패를 이뤄 손녀,딸,누나·동생을 무자비하게 성폭행·성추행하는,인간이라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막나가는 사건이 발생,충격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타이완 북동부 이란(宜蘭)현에 살고 있는 한 자매는 지난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오빠와 남동생,그리고 삼촌 등 가족 3대(三代)로부터 끊임없이 성폭행과 성추행 당해온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고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인터넷신문인 인민망(人民網)이 1일 보도했다. 인민망에 따르면 천인공노할 짐승같은 가족들로부터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해온 이들 자매중 언니는 현재 대학에 다니고 있고 동생은 고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는데,이같은 끔찍한 사건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19살인 언니는 지난 1995년 아버지로부터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하면서 ‘악몽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7살이라는 어린 그녀가 꽃잠을 자고 있는데,짐승같은 아버지(49)가 그녀의 하체를 더듬으며 성폭행을 자행했다. 올해 16살인 동생은 9살 나던 지난 2000년 4월부터 할아버지(76)와 삼촌(47)으로부터 잇따라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이어 아버지도 어린 막내 딸이 잠에 들기만 하면 짐승처럼 달려들어 배를 쓰다듬거나 하체를 더듬으며 성폭행과 성추행을 자행했다. 이같은 천인공노할 짐승같은 행위는 2002년 8월까지 계속됐다.그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두명의 오빠로부터 연달아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특히 할아버지는 지난 1998년부터 2001년 사이에 이들 자매가 TV를 시청할 때 가슴을 만지거나 하체를 더듬었다.삼촌은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하고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의 성폭행을 자행했다고 한다. 경찰 조사결과 이 난륜(亂倫)사건의 중심인 아버지는 자동차 수리공으로 그 어떤 전과도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그는 부부생활도 아주 정상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당국은 “아마도 어머니는 두 딸이 가족들로부터 성폭행 등을 당하고 있는 것을 미리 알았을 것”이라며 “그러나 타이완 사회가 부권사회인 만큼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뤄둥보(羅東博) 정신과병원 라차오슝(李朝雄) 주임은 “이번 사건으로 볼 때 이들 가족은 유전성 정신병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아무리 그래도 가족들이 모두 성폭행 공범이 된 사례는 처음 본다.”고 혀를 내둘렀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부고]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美 조종사 티베츠 사망

    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투하했던 미국인 조종사 폴 티베츠 예비역 준장이 1일(현지시간) 숨졌다.92세. 티베츠의 손녀 키아는 “할아버지가 3개월여 전부터 건강이 나빠져 이날 별세했다.”고 밝혔다. 그는 62년 전인 45년 8월6일 모친의 이름인 ‘에놀라 게이’로 명명한 애기(愛機)에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비밀계획 속에 개발된 우라늄 원자탄을 싣고 히로시마로 날아갔다. 마침내 이날 오전 8시 15분 9.44㎞ 상공에서 히로시마의 일본공군 본부를 겨냥해 원폭을 투하했다.B-29는 당시로서는 4개의 엔진을 단 최신예였다. 그는 자서전 ‘티베츠 이야기’에서 “거대하고 검붉은 버섯구름 띠가 4만 5000피트(13.7㎞) 상공까지 너비 3마일(약 4.9㎞)로 퍼지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지켜봤다.”고 회고했다.B-29는 폭격으로 불길이 치솟는 도시 상공을 피해 옆으로 날아갔다고 덧붙였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할아버지 조정래의 위인이야기

    할아버지 조정래의 위인이야기

    소설가 조정래(64)가 손자 손녀들이 읽을 수 있는 인물이야기를 펴냈다. 시리즈 제목이‘큰 작가 조정래의 인물이야기’(문학동네)다.‘소설가 조정래’가 추구해온 치열한 작가적 고민을 ‘할아버지 조정래’의 입을 빌려 진솔한 마음을 담아 풀어냈다. 작가는 “글 쓰는 할아버지로서 위인전과 전래동화를 손수 써서 손자에게 읽히고 싶은 꿈을 갖고 있었다.”고 집필동기를 설명했다. 민족이 겪어온 처절한 역사 속에서 민족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를 놓고 동시대 독자들에게 호소했던 것을 이젠 손자 세대에게도 말해 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10권을 훌쩍 넘는 대하장편소설을 써온 작가는 자신의 글힘을 과시하듯, 국내외 인물 30명의 삶을 30권에 담는 방대한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다시 ‘글감옥’에 갇혔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7월까지 소설 작업을 중단하고 한 달 반만에 한 권씩을 마무리했다. ‘민족주의자’ 조정래가 인물을 고른 기준 또한 민족주의다. 신채호·안중근·한용운·김구·박태준을 주인공으로 해서 5권이 먼저 나왔다. 유일한 생존인물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을 꼽은 데 대해 작가는 “‘단군 이래의 최대 기적’이라 부르는 한국의 경제발전 중심엔 박태준씨가 있었다.”면서 “그는 식민지시대 항일열사들만큼이나 한국 현대사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인물로 이순신, 세종대왕, 허준, 김정호, 전봉준, 홍범도, 신돌석, 김원봉, 유일한, 장기려 등을 추후 집필 대상으로 꼽고 있다. 국내 인물을 마치면 곧 해외 인물 집필을 시작할 계획이다. 조정래의 인물이야기가 기존 위인전과 다른 점은 작가가 한평생 견지해온 문제의식을 그대로 투사했다는 점이다.‘안중근편’에서는 외국 신부의 입을 통해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고발했고,‘신채호편’에선 작가 자신이 사표로 삼아온 선생에 대한 존경의 뜻을 한껏 담았다. 조정래는 “글을 쓰면서 선생들이 느꼈을 고통과 괴로움을 내가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늘 두려웠다.”면서 “한 권의 글을 마칠 때마다 그분들의 삶이 너무 숭고해 가슴이 먹먹했다.”고 회고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할아버지가 지킨 조국 발전한 걸 보니 기뻐”

    스탈린에 의해 자행된 러시아의 고려인 강제 이주 70주년을 맞아 고려인 독립운동가 후손 및 강제 이주 1∼2세대 109명 등 고려인 모국 방문단이 25일 강원 속초항을 통해 5일간 일정으로 고국을 방문했다. 방문단 가운데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 등에서 독립군을 지휘한 홍범도 장군의 외손녀 김알라(67·러시아 연해주 스파스코시)씨는 강릉 오죽헌을 방문한 자리에서 “할아버지가 지킨 조국이 이렇게 발전한 걸 보니 기쁘고 감사할 뿐이다.”고 말했다. 김씨의 한 손에는 할아버지 홍범도 장군이 일제를 물리친 공으로 레닌으로부터 권총을 선물받고 전쟁 영웅 칭호를 받은 뒤 찍었던 젊었을 때의 흑백사진 1장이 들려 있었다. 김씨는 “할아버지가 레닌에게 선물받은 권총은 지금 없지만 권총 케이스는 보관하고 있다.”며 “늦게나마 할아버지가 지킨 조국 땅을 밟게 돼 꿈만 같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연해주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한 박노순 장군의 아들 박필립(68)씨도 “아버지가 싸워 지킨 나라가 발전한 것을 보니 가슴이 뜨겁다.”며 “아버지가 독립 운동을 해서 후손들의 삶이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조국이 이렇게 잘살고 있는 것을 보니 너무 좋다.”고 말했다. 옛 소련 시절에 경제학 박사를 받은 강릉 출신인 전인수(84)씨는 “두살 때 강릉을 떠나 82년 만에 찾아왔다.”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매우 즐겁고 반갑다, 한국말 잘 못하지만 감사하고 기분이 최곱니다.”라고 입국 소감을 밝혔다. 이들은 강제 이주 이후 연해주 고려인촌에서 생활하던 1세대와 그 후손들로, 횡성 성우리조트에서 고국 방문 첫날밤을 보낸 뒤 속초와 춘천, 강릉, 삼척, 서울 등의 고향을 찾을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사)고려인돕기운동본부 등이 주관했으며 강원도는 2005년 연해주와 교류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추석 명절 송편빚기와 물품기증 등 연해주 고려인 조국문화 전파사업을 펼치고 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장선윤 호텔롯데 상무 재혼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36) 호텔롯데 상무가 이달말 재혼한다.22일 호텔롯데에 따르면 장 상무는 아우디코리아의 양성욱 상무와 이달 말 몰디브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장 상무는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를 나와 1997년 롯데면세점에 입사해 롯데백화점 해외명품팀 바이어, 해외명품통합팀장, 해외명품담당 이사대우와 이사를 거쳐 올해 상무로 승진했다.
  • 10대 세자매 능욕…이발사가 차례로 꾀어

    부산(釜山)시 서(西)구 모 이발소 이발사 박(朴)모(37)는 추행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는데-. 그는 L모노파(60)집 아랫방에 전세들어 살면서 L모노파에게 자주 찾아오는 외손녀들에게 눈독을 들여오다 『과자 사줄께』라고 꾄다음 방안에 들여놓은뒤「못된 짓」을 저질렀다는 것. 처음엔「하이·틴」의 장녀를 건드리고 다음엔 2녀까지손댄 다음, 아버지와 함께 남탕에 목욕갈 정도로 어린 3녀까지 모두 쓸어 3자매를 망쳐 놓았다고. -「카사노바」가 아니라「박살노바」로군. <부산> [선데이서울 71년 2월 21일호 제4권 7호 통권 제 124호]
  • “700만 동포에 인정 넘치는 서비스”

    “700만 동포에 인정 넘치는 서비스”

    제1회 ‘세계 한인의 날’ 기념식이 외교통상부 주최로 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세계 각지의 재외동포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재외동포와 모국간 연대를 강화하고 전세계 한인의 역량을 결집하자는 취지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일본 프로야구 전설의 강타자 장훈씨, 독립운동가 조병요의 외손녀인 양은혜씨 등 재외동포들과 한덕수 국무총리, 송민순 외교부 장관 등 국내인사들이 참석했다. 한 총리는 치사에서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났기 때문에 이 자리가 더욱 뜻깊다.”며 “특히 남북 정상이 해외동포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은 동포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장관은 기념사에서 “정부의 대외동포정책은 동포들이 거주국에서 번창하고 거주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며 “외교부는 ‘세계 한인의 날´ 기념일 제정을 계기로 재외동포 700만 시대에 걸맞게 인정미 넘치는 맞춤형 서비스를 동포들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우리 국민에게 700만 재외동포의 소중함을 알리고 동포들에게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취시킨다는 취지에서 지난 5월 ‘세계 한인의 날´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노대통령 ‘우울한 일요일’

    노대통령 ‘우울한 일요일’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중 마지막 생일은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우울한 일요일)가 될 것 같다. 16일 일요일은 노 대통령의 61번째 생일(음력 8월6일)이다. 청와대에서 맞는 마지막 생일이다. ●국무위원·비서관 만찬 전격 취소 하지만 생일 만찬을 참모 등과 가지려던 계획을 14일 전격 취소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임기중 마지막 생신이라 오늘 국무위원과, 내일은 수석·보좌관 및 비서관급 직원 등과 함께 만찬을 나눌 생각이었으나 취소했다. 특별한 행사가 없다.”고 말했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의 비리 연루 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청와대가 임기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 조치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취임 후 네 차례 생일을 주변 사람과 식사하며 축하 자리를 가졌다. 첫해에는 참모에게서 도자기와 자신의 사진이 실린 사인보드 등을, 국무위원에게서는 꽃다발과 선비상(床)을 선물받았다. 가족 만찬에는 아들 건호, 딸 정연씨 내외가 참석했다. 지난해 회갑 때는 수석·보좌관과 조찬을 나눈 뒤 국무위원과 오찬을 하며 케이크를 잘랐다. 당시 조찬 때는 공교롭게 변 전 실장이 건배를 제의했다. 해외 순방길에 생일을 맞은 2004년과 2005년에는 출국 직전 수석·보좌관 등과 만찬 자리를 가졌다. 올해에는 자녀 내외와 손녀까지 모두 미국에 가 있어 노 대통령 내외는 관저에서 가장 우울하고 조용한 생일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신당·한나라당, 축하난 전달 한편 대통합민주신당 오충일 대표는 이날 오후 정대화 대표 비서실장을 청와대로 보내 문재인 비서실장에게 생일 축하난을 전달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도 박재완 비서실장을 통해 축하난과 상황버섯을 생일선물로 건넸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뿌리를 돌아보는 이파리처럼_김경인 시인

    뿌리를 돌아보는 이파리처럼_김경인 시인

    취재, 글 이미현 기자 ┃ 사진 한영희 “오래 기다렸던 첫 시집이라 그런지 시원섭섭하네요. 한 편 한 편 작품을 쓸 땐 몰랐는데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오고 보니 제 한계가 보이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요.” 얼마 전 첫 시집 <한밤의 퀼트>를 낸 시인 김경인 씨(36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퀼트’라고 하면 색색의 조각천들이 모여 만들어낸 기하하적이고 아름다운 무늬가 떠오른다. 과연 그의 삶은, 문학은 어떤 색과 무늬의 조각들로 짜여져 있을까?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수줍고 소심하며 겁에 질린 것처럼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소녀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한밤중 혼자 침대에 누워 천장 벽지의 무늬, 창가에 비친 그림자, 방구석에 앉아 있는 인형들로 온갖 기괴한 상상을 하는 소녀…. “그래요? 어릴 때부터 멍하니 앉아 공상을 즐기긴 했어요. 덕분에 엄마한테 많이 혼났죠.” 그는 상상의 공간에서 환상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 자신의 여러 얼굴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김경인 시인이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감자’ ‘배따라기’를 쓴 소설가 금동 김동인의 손녀다. 금동의 아들·딸(6명), 손자·손녀(20명) 가운데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문학의 길을 걷는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어릴 때 할머니와 일본식 구옥에 살았는데, 거실이 온통 책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중앙에는 김동인 문학전집이, 그리고 양쪽으로는 할아버지의 작품이 수록된 한국문학전집이 빽빽이 꽂혀 있었죠.” 할아버지의 초상화, 가끔 할머니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찾아왔던 기자들, 한 달에 한 번 인세 정산을 위해 찾아왔던 출판사 직원, 마룻바닥에 누워 바라보던 출판사 직원의 발톱에 칠해진 새빨간 매니큐어…. 1년에 한 번 동인문학상 시상식에 가는 날은 으쓱한 기분으로 예쁘게 차려입고 가는, 의젓하게 보여야 하는 날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혈연적 유대라기보다는 숨 쉬고 생활하는, 나를 둘러싼 공기 같은 존재였던 것 같아요.” 유달리 책 읽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그를 보며 어른들은 말하곤 했다. “너는 나중에 자라서 할아버지 같은 작가가 되거라.” 그에게 그건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와 다름 아닌 말이었다. “우리 가족에겐 이미 할아버지라는 훌륭한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할아버지를 현실적으로 인식한 것은 중학교 국어시간 교과서에서 소설 ‘붉은 산’을 읽었을 때였다. “낯설기도 하고 흥분도 되는, 복잡한 심경”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내 안에서 ‘나는 뭔가’ 자문하며 부끄러워하는 나와, 내 존재의 근원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내가 충돌하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중·고교 시절까지만 해도 산문을 즐겨 썼던 그가 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건 대학에 들어와 김수영의 시를 접하고부터였다. 이런 발화가 가능하구나, 이렇게 짧은 말로 많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구나…. 그러다 대학원에 들어와 시를 공부하면서부터 비로소 진지하게 시를 쓰기 시작했다. 2001년 그가 <문예중앙>으로 등단하기 전까지 아주 가까운 사람들조차 그가 시를 쓴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가족들조차도 그의 등단 소식에 “너 시를 썼었니?” 할 정도였다고. “어린 시절부터 막연하게 이런 생각은 했던 것 같아요. ‘글을 쓴다면 정말 잘 써야겠다.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할아버지를 함께 떠올릴 거야’라고요. 우습죠?” 할아버지는 그를 있게 한 토양이었지만, 그에게는 하나의 벽이기도 했던 것. “어쩌면 죽을 때까지 사람들은 저를 ‘김동인의 손녀인데 시를 쓰는 사람’으로 기억할지 몰라요.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그런 선입견들에 부딪히겠죠. 하지만 이젠 알아요. 결정지을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이파리의 숙명이라는 걸.” 이파리는 뿌리로부터 나왔지만 또 다른 뿌리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끊임없이 뿌리를 돌아볼 수밖에 없는 것이 이파리의 운명이기도 하다. 그는 언젠가 유족의 입장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기록들을 정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응당 제가 맡아야 할 몫이라고 생각해요. 워낙 연구가 많이 되어 있어서 되려 연구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부분도 많겠지만요.” 100세에 가까우신 할머니와 비교적 할아버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큰고모의 구술 자료들도 조금씩 모으는 중이다. “불이 난 적이 있어서 가족들도 할아버지의 자료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아요. 헌책방에 부탁해 소설 초판본을 비롯한 자료들을 하나하나 사들이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그는 할아버지와 관련된 자료를 소장한 분이 있다면 연락을 주셨으면 한다는 간곡한 부탁의 말을 남겼다. 시인. 가톨릭대 국문과 졸업. 한양대 국문학 박사. 2001년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 아무리 딸이 싫기로서니…

    |베이징 이지운특파원|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몸속에 박은 바늘 26개와 함께 30년 가까이 살아온 중국의 뤄추이펀(羅翠芬·29)양이 11일 오전 9시 마침내 바늘 제거 수술을 받는다. 뤄양은 오줌 속에 피가 섞여 나와 병원을 찾아가 X-레이 검사를 받다가 몸속에 26개의 바늘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의사들은 뤄양의 말에 따라 그녀의 몸에 박힌 바늘은 할머니가 그녀를 죽이고 손자를 얻기 위해 오래 전에 꽂은 것이라고 말했다. 뤄양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녀가 태어났다는 사실에 실망한 나머지 갓 태어난 손녀의 머리와 가슴, 음부, 폐, 배, 다리 등에 길이 4.2∼4.5㎝의 바늘 26개를 꽂았다. 중국은 한 자녀만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은 첫째가 딸일 경우 일정액의 벌금을 내고 둘째까지 낳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남아를 선호하는 사상이 강하다. 따라서 성비가 여아 100명당 남아는 119명일 정도로 불균형이 심하다. 윈난(雲南)성 리치랜드(瑞奇德)국제병원 원장인 쉬메이(徐梅)는 “이번 바늘 제거에 드는 수술비는 17만위안(약2200만원) 정도에 달한다.”고 말했다. 중국 시민들은 신문들이 지난해 4월 뤄양의 애타는 사정을 보도하자 성금을 보내기 시작, 수술이 이뤄지게 됐다. 쉬 원장은 “이들 바늘은 환자의 폐와 간, 신장을 건드리고 있어 제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11일 1차 수술 때는 바늘 6개를 제거하며 모두 제거하는 데는 1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술은 미국과 캐나다 등 국내외 23명의 의사가 모여 실시하게 된다. jj@seoul.co.kr
  • 자손86명의 대가족(大家族) 새해잔치

    자손86명의 대가족(大家族) 새해잔치

    한국 기독교 80년사상 처음의 경사인 희년(禧年)축복예배가 새해 첫 일요일 전남(全南) 여천(麗川)군 율촌(栗村)교회서 거행된다. 주인공은 전 부통령 함태영(咸台永)씨와 동기동창인 88세의 조의환(曺義煥)목사. 조목사는 50주년째 현직 목사로 있으며, 7남매의 자녀가 모두 생존하여 슬하에는 무려 증손자까지 86명의 가족이 뻗어나 화제가 되고 있다. 60넘는 자녀만 4명이나 손자는 34명 증손자 45명 88세로 50년동안 목사 일을 맡아보고 있는 조의환 목사는 이젠 걷기가 어려운 처지에 있다. 그러나 정신력은 또렷 또렷하여 주일이면 반드시 교회에 나가 축복예배를 드리고 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데모데」서 4장 7절을 즐겨 설교하며 『나의 갈길 다하도록 예수 인도하시니…』하는 찬송가를 즐겨 불렀다. 『저희 아버님은 지금도 매주 한번씩 꼭꼭 저에게 편지를 써보내십니다. 안경도 안쓰시고 필력(筆力)도 좋으십니다』 역시 60세에 목사가 된 장남 조기영(曺基榮)씨(61)의 말이다. 조의환 목사는 전남 여천군 율촌면 마을에서 조병하(曺秉夏)씨의 5남매중 둘째로(세째는 전 외무장관 조정환(曺正煥)씨) 전 부통령 함태영선생과 동창 사이가 된다고. 『무엇보다도 복된 것은 우리 7남매가 모두 살아서 아버지의 50주년 희년예배를 함께 보게 된 것입니다』. 조목사의 슬하에는 장남 기영(목사·서울), 차남 기선(基善·교통센터·서울), 3남 기성(基成·국민교장·여수), 장녀 영관(永寬·70·서울), 차녀 정은(貞恩·66·구례(求禮)), 3녀 안희(安熙·63·서울), 4녀 영은(英恩·서울)씨등이 모두 복된 가정을 가지고 있다. 이러니까 7남매중 60세이상의 아들딸이 4명이며, 그들의 몸에서 난 손자가 34명, 증손자가 45명이나 되어 혈통이 모두 86명. 조목사는 24세때 예수교를 믿기 시작하여 30세때 평양(平壤)신학교에 입학하여 8년만에 졸업, 39세때 비로소 목사가 되었다. 『그동안 아버지는 광양(光陽) 여수(麗水) 제주 교회등에서 일했읍니다. 무엇보다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제주도 모슬포교회에서 6년을 일보시는 동안 두번이나 투옥을 당하신 일입니다』 2차대전때 혹독한 일제의 압박에도 신사참배(神士參拜)를 거부했다. 또 조목사는 당시 순천(順川)지구 노회(老會) 선교사로 있다 미국으로 귀국당했던 「프레스턴」목사와 국내 정세를 연락했다고 해서 투옥, 많은 고초를 겪었다. 모든식구 한자리에 모여 소원대로 산제사 모시게 그런가운데서도 조목사는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아우 정환씨를 10년동안이나 미국에 유학시켜 공부하게 했다. 『저도 일본경찰서에 몇차례나 끌려갔읍니다. 그놈들은 술만 취하면 한밤중에 날 경찰서로 잡아다 놓고 일본도를 빼어 내 목에 겨누는 등 행패를 부렸지요. 그 굴욕에서 벗어나기 위해 판임관 시험을 치르기도 했읍니다』 장남 조기영 목사의 설명. 조기영목사는 연전(延專) 상과, 숭실전(崇實專) 농과, 명치(明治)학원 영문과 등에서 수학한뒤 호남비료 서무과장, 무역업에 종사해오다가 나이 60세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 목사가 되어 지금은 「망각지대선교회」회장일을 보고 있다. 『7남매 모두 따로 살고 있지만 이번에 전부 모여 아버지 소원대로 산 제사(祭祀)를 지내는 축복예배를 보기로 했읍니다』 조의환목사는 원채 나이가 많으시니까 아들이나 손자들이 찾아오면 『사탕 좀 사오너라』하고 명령을 한다는 것. 그래서 단 것을 장만해서 이번에 행사를 벌이기로 한 것인데, 그 「단 것」선물의 거의 전부가 교회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진다. 이래서 어린이와 할아버지의 사탕잔치가 한꺼번에 벌어진 것인데 88세 할아버지 목사님은 여느날에도 『사탕 먹으니까 맛있죠? 나도 맛있어요!』하고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재미. 노목사는 아들딸을 제외하곤 아무리 어린나이의 증손자에게도 반드시 존칭을 쓰는 버릇이 몸에 배어 있다. 77살에 재혼 아직도 정정 장수의 비결은 절제주의 한가지 섭섭한 것은 57년에 7남매의 어머니 김월봉(金月鳳)여사가 돌아가신 것. 이듬해 김영엽(金永葉·72)씨를 계모로 맞아 아버지와 짝을 지어 드렸다. 그러니까 조의환 목사는 76살때 재취 장가를 간 셈. 조목사는 지금도 기억력이 생생해서 86명속에 끼어 있는 손자와 증손자의 이름까지 모두 외고 있으며, 아무날 어느 손자, 또는 증손녀가 무슨 과자를 사왔다는 내용을 모두 「노트」에 적어놓고 있다고 자녀들이 아버지를 놀리자(?), 아버지는 『야 이놈들, 산 제사를 지내려면 단것 좀 많이 사와라!』하고 농담으로 받아 넘긴다. 조의환목사의 뜻을 받아 60세에 목사가 된 장남 조기영씨는 「예수」 믿고 보이지 않는 천당가는 신앙보다 보이는 이웃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 더 값있는 일이라고 망각지대를 향해 선교를 나섰다. 『망각지대란 것은 글자 그대로 소외당하고 잃어버린 땅을 향해「예수」의 정신을 심자는 것입니다. 난 돈도 명예도 없어요. 푼돈이 생기면 그대로 양로원 고아원 또 사형 확정수들을 찾아다니며 「예수」말씀을 전하고 있읍니다』 조기영목사는 60세에 안수를 받았지만 정열이 대단하다. 국제신학교 강사로 나가면서 어떤때는 하루종일 서울역 남대문 지하도 근처를 헤매면서 서울역에서 내리는 시골손님들의 길을 안내하고 짐을 들어다주곤 하는 생활-. 다만 조의환목사의 3형제중 일제때 만주국(滿洲國) 48(王)중의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형님 조일환(曺日煥)씨와 아우 정환(正煥)씨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간 것이 슬프다고 88세의 원로목사는 기쁜중에도 섭섭한 눈물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 이처럼 장수하는 비결은? 『절제주의입니다. 나는 술과 담배를 평생 안했거든요. 또 성욕도 많이 절제하면서 산셈이야요. 내가 젊어서는 미남자였거든요. 만약 목사가 안되었다라면 많은 여자와 바람을 피웠을지 알아? 그랬더라면 86명 자손이 아니라 수백명일 뻔했지? 하하하…』 조목사는 이런 농담으로 곧잘 잔치집에 온 하객들을 웃긴다. <여천에서 이용선(李鏞善)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신년특대호 제4권 1호 통권 제 118호]
  • “이젠 더 희생되면 안돼”

    “이젠 더 희생되면 안돼”

    인도 시인 안와르 알리(42)가 아프가니스탄 피랍 한국인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글을 서울신문에 보내왔다. 시론집 ‘물의 평안’과 시집 ‘우기’ 등을 출간한 시인은 말라얄람어와 영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인도 케랄라주의 대표 작가다.‘아시아문화네트워크’,‘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 ‘인도를 생각하는 예술인 모임’ 등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은 지난 수년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의 인권과 평화를 위한 연대활동을 펼쳐왔다. 피랍자 무사귀환을 호소하는 제3세계 작가의 글이 한국 언론에 실릴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와르 알리는 현재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학번역원이 진행하는 ‘문화동반자사업’(2007년 6월1일∼11월30일)에 참여, 국내에 머무르며 한국 문학과 문화를 배우고 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세상의 모든 오사마들 2004년 1월 먼지 가득한 오후, 나는 인도 케랄라주 트리반드룸에서 아프가니스탄 영화 한 편을 보고 있었다. 케랄라 국제영화제에 출품된 세디그 바르막 감독의 영화 ‘오사마’(탈레반 정권 후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들어진 첫 번째 영화)였다. 넘쳐나는 관객 한가운데서 난 85분 동안 서서 영화를 봤고, 영화가 끝났을 때 내 마음은 피 끓는 눈물로 요동쳤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오사마’는 부시나 빈 라덴과는 아무 상관없는 영화다. 탈레반의 냉혈정치로 남성의 보호 없이는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직업을 가질 수도 없는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리고 있다. 전쟁으로 남자 가족을 모두 잃자 사춘기도 지나지 않은 소녀와, 어머니, 할머니 세 사람은 동굴 같은 집에 웅크리고 앉아 밥을 굶어야 했다. 할머니가 고심 끝에 생각해낸 방법은 손녀의 머리를 잘라 남장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소녀는 오사마란 이름으로 일거리를 찾아 나서지만, 소녀는 곧 직장을 잃고 탈레반 전사를 양성하는 학교로 보내진다. 남자 행세를 위해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결국 여자임이 밝혀진 소녀는 젊은 여성들을 죄수처럼 집에 가둬두는 늙은 물라(무슬림 사제)의 여럿 아내 중 한 명이 되는 벌을 받는다. 영화 ‘오사마’는 잔혹하다. 그 잔혹함은 ‘침략자 미국’의 이미지만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 상영 후 어두운 마을 골목길로 도망치듯 걸어갈 때, 소녀와 어두운 집에 갇힌 어머니, 할머니의 탄식이 인간애가 죽어 묻힌 창백한 무덤길을 따라 나를 쫓아왔다. 며칠 동안 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 고향 케랄라는 수천 종의 생물로 가득한 열대지역이다. 수많은 카스트와 종교가 존재하는 저개발 지역이고, 우리 중 다수는 미국과 유럽, 걸프 지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우리 공동체는 카스트 내, 종교 내 결혼을 반대하기에는 너무 보수적이다. 다른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는 데 열려 있으면서도, 때로 우리 자신의 모순에는 위선적인 태도를 보인다. 난 종교를 믿지 않고, 개인적으론 더 이상 무슬림도 아니다. 하지만 난 이슬람의 위대한 정신과 우리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이 보여준 자비로운 이슬람식 삶을 존중한다. 힌두교 및 기독교 이웃들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인 피랍자들 속 오사마 일년 전 아프가니스탄 거리에서 마니야판 쿠티라는 한 이주노동자가 살해 되는 일이 있었다. 탈레반은 그의 머리를 잘랐고 시체를 고속도로 옆에 던졌다. 최하층 카스트 출신이었던 그는 가난한 가족을 돌보기 위해 외국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해야 했다. 그의 운명은 어린 오사마와 다를 게 없었다. 지금 난 마이야판과 오사마와 그들의 가족이 한국인의 모습을 하고 내 눈앞에 서 있음을 본다. 내가 인질 상태에서 풀려난 두 명의 한국 여성을 텔레비전에서 봤을 때, 그들의 눈물과 흐느낌을 보고 들었을 때, 난 그들 속에서 오사마와 그녀의 어머니를 봤다. 풀려나지 못한 다른 한국인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한다. 내 이슬람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을 대신해 그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한다. 또한 종교적·경제적 판타지에 갇혀 있는 모든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 기도한다. 한 명의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세계의 모든 절망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쓴다. 한 망명객이 고국에서 그를 찾아온 손님에게 물었다.“내 낙타 주라이크는 잘 있습니까?” “죽었소.” “죽었다고요?” “당신 아내에게 너무 많은 물을 나르느라고요.” “내 아내가 죽었어요?” “네, 그래요.” “어쩌다가요?” “당신 아들을 위해 너무 많이 울었으니까요.” “내 아들도 죽었어요?” “그렇습니다.” “왜요?” “집의 지붕이 무너져 아들을 덮쳤어요.” 정말이지, 이젠 그만 죽어야 한다.
  • 부동산 변칙증여 혐의 1472명 특별점검

    국세청이 배우자나 자녀, 손자·손녀, 증손 등에게 부동산을 무상이전한 뒤 매매한 것처럼 위장하거나, 거래가를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양도하는 등 변칙증여 혐의가 있는 1472명에 대해 특별점검에 나섰다. 이번 특별점검 대상은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거래한 부동산의 가격과 양수자의 연령 등을 고려해 선정했다. 국세청은 23일 점검대상에 포함된 사람들에게 매매대금 증빙과 자금의 출처를 소명하도록 우편으로 요구한 뒤 이를 근거로 대가 지급 여부, 양도 가액, 취득자금의 소득원과 자금형성 등을 검증할 계획이다. 탈루혐의가 확인되면 즉시 세무조사를 하기로 했다. 국세청은 부동산을 무상거래한 것으로 확인되면 즉시 양수자에게 증여세를 부과하고, 매매대금을 주고받았더라도 시가보다 현저히 낮거나 높은 가격인 경우에는 그 차액에 대해 증여세 또는 양도소득세를 추징할 것이라고 밝혔다.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우동 할머니’ 아름다운 나눔

    ‘우동 할머니’ 아름다운 나눔

    서울역 앞에서 우동을 팔며 모은 전 재산과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80대 할머니가 있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15일 경희대에 따르면 지난 10일 세상을 떠난 김복순(83) 할머니는 자신의 전재산인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빌라(85㎡·시가 2억 7000만원)를 기부했으며, 시신 역시 이 대학 의료원에 연구용으로 기증했다.1998년 당시 자신이 죽으면 재산과 시신을 기증하겠다던 약속을 지키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경희대는 ‘김복순 장학재단’을 설립해 고인과 가족들의 귀한 뜻을 기리기 위해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지원할 예정이다. 2002년 4월에도 당시 자신이 갖고 있던 현금 전액인 8800만원을 경희대에 기증했던 김 할머니는 “늙은 몸이지만 학생들의 배움에 조금이라도 유익하게 사용된다면 얼마나 고맙겠느냐.”는 말과 함께 경희대 의과대학에 시신을 기증을 약속했다. 김 할머니가 입양해 양육한 세 딸도 98년 당시 할머니의 뜻에 동참해 상속 포기 각서를 썼다. 김 할머니가 경희대에 기증한 장위동 빌라에 살고 있는 막내 딸 미진(26)씨는 기증을 실천하기 위해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택시 운전을 하는 둘째사위 하민호(39)씨와 딸 심명희(38)씨 부부 역시 할머니의 뜻을 잇기 위해 경희대 측에 재산 기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하씨는 “장모께서 늘 사회에 모든 것을 기증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실천하는 고귀한 삶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고 밝혔다. 경희대 관계자는 “할머니가 학교를 방문하실 때마다 학생들을 당신의 손자, 손녀 대하듯 아끼며 애정을 보이셨다. 기부한 재산을 토대로 장학재단을 만들어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겠다.”고 말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영업신청 당일 졸속 허가

    일가족 5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산 이동식 놀이공원(월드카니발)의 허가서가 구청에 신청된 당일에 허가돼 허가 처리과정이 허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곤돌라 추락 사고가 ‘기계 결함’으로 인한 오작동으로 발생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월드카니발 사고는 지난 13일 오후 5시25분쯤 영도구 동삼동 이동식 놀이공원에서 회전 관람차의 곤돌라가 뒤집히면서 발생, 할머니와 며느리, 손자, 손녀 등 나들이 일가족 5명이 추락해 숨졌다. 14일 행사 관할 구청인 부산 영도구청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오전 월드카니발측이 영업 신청서를 제출했고 오후 허가(종합유원시설업)를 내줬으며 업체는 곧바로 영업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 허가 관청인 영도구청은 “당시 안전점검 기관인 (사)한국종합유원시설협회가 3,4일 전인 지난달 20일 전후해 시설물 안전 검사를 해갔으며 공교롭게도 이날 구청으로 ‘적합’ 통보를 해와 오후에 영업 허가증을 내줬다.”고 해명했다. 구청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업체와 구청 간의 결탁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월드카니발측은 행사에 앞서 구청에 지역발전 장학금 명목으로 10만달러를 무상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특히 이 회사 홈페이지에는 사고가 나기 전부터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글이 잇따랐으나 영도구청은 이동시설이라는 이유로 한차례도 안전점검을 하지 않았다. 월드카니발 주최측은 기계 결함 가능성을 제기했다. 행사 주최측 관계자로 구성된 ‘월드카니발 부산 비상대책위’는 곤돌라의 기계적 결함이 원인이 돼 오작동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사고 당시 공중에 매달려 있다 구조됐거나 관람차 아래에서 근무하다 코앞에서 사고현장을 목격했던 놀이공원 아르바이트생들은 심각한 사고 후유증을 앓고 있다. 아르바이트생 김모(18·대학 1년)양 등 4명은 음식을 먹지 못한 채 헛소리를 하는 등 정신적 공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부산 이동식 놀이공원 놀이기구 곤돌라 추락… 일가족 5명 사망

    부산 이동식 놀이공원 놀이기구 곤돌라 추락… 일가족 5명 사망

    부산의 한 매립지에 설치된 이동식 놀이공원에서 회전 관람차의 곤돌라가 뒤집히면서 할머니와 며느리, 손자, 손녀 등 일가족 5명이 추락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13일 오후 5시25분쯤 부산 영도구 동삼동 동삼혁신지구에 설치된 이동식 놀이공원인 ‘월드 카니발’ 행사장에서 놀이기구인 관람차(일명 자이언트 휠 놀이기구)의 1개 곤돌라 쇠줄(와이어 로퍼)이 꼬이면서 잠가 뒀던 출입문이 열려 옆에 있던 곤돌라와 충돌했다. 이 충돌로 사고 곤돌라에 타고 있던 김시영(68·여·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씨 등 일가족 5명이 땅에 떨어져 사망했다. 김씨 손녀인 전윤경(26·〃)씨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으나 숨졌다. 이날 사고는 정원 8명인 회전 곤돌라간의 쇠줄이 꼬이면서 충돌, 사고 곤돌라가 뒤집어진 뒤 출입문이 열리는 바람에 탑승객들이 튕겨져 나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곤돌라에는 안전벨트가 설치돼 있지 않아 인명 피해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곤돌라에 타고 있던 나머지 가족 2명(할아버지, 손녀)은 구조됐고, 다른 곤돌라에 타고 있던 13명은 곤돌라에 매달려 있다가 사고 발생 2시간30여분만에 긴급 출동한 119구조대에 의해 전원 구조됐다. 사고가 난 관람차는 최고 높이 66m로,8인승 곤돌라 42개를 매달고 회전하는 놀이기구다. 영국 UK 펀페어스사가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유원시설협회로부터 사용검사 합격을 받은 뒤 이용객을 받았다. 월드 카니발은 관람차 등 27종의 조립식 놀이기구를 설치한 이동식 테마파크다. 최근 홍콩에서 행사를 마치고 지난달 23일부터 부산에서 개장해 오는 31일까지 일정으로 운영에 들어갔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직원들을 현장에 파견, 사고 곤돌라의 체인 등을 정밀 조사하는 한편 업체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기계 결함 및 안전점검 미비 여부 등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이 곤돌라들이 낡아 잠금쇠가 풀린 것으로 보고 이 부분에 대해 집중 조사하고 있다. UK 펀페어스사는 놀이 시설과 놀이기구 탑승객에 대해 보험(사망시 1인당 2억원)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곤돌라를 함께 탔던 김시영씨의 남편 전운성(70·〃)씨는 뒤집힌 곤돌라에서 40분간 거꾸로 매달린 채 손녀 지민(8)양을 구해 가족의 사망에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망자는 다음과 같다.▲전민수(6·부산 영도구 청학동)▲전지운(23·여·서울 동대문구 용두동)▲변영순(47·여·〃)▲김시영 ▲전윤경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Seoul In] 헐버트박사 58주기 추모식

    마포구(구청장 신영섭) 3일 오전 11시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호머 헐버트 박사 서거 58주기 추모식을 연다. 추모식에는 헐버트 박사의 외손녀를 비롯해 김정복 국가보훈처장, 신영섭 마포구청장, 김국주 광복회장, 제프리 존스 암참 명예회장 등 2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헐버트 박사는 1886년 육영공원 교사로 내한해 1909년까지 교육선교사로 활동했다. 문화체육과 330-2512.
  • [어떻게 지내십니까] 송종의 전 법제처장

    [어떻게 지내십니까] 송종의 전 법제처장

    주소 하나 달랑 들고 서울을 떠났다. 피할까 싶어 연락도 넣지 않았다. 숱한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10년간 피해온 그다. 세 시간을 달려 당도한 곳이 논산시 양촌리다. 있을까, 있더라도 만나줄까, 이런 저런 근심이 머릿속에 쌓여가는 사이 어느덧 양촌영농조합법인이란 큼지막한 글씨의 공장과 창고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사이로 동남쪽에 틀어 앉은 ‘天古齋(천고재)’란 옥호의 2층짜리 빨간 벽돌집이 객을 맞는다. 정원 잔디에 서있는 주인이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성성한 백발이다. 장맛비가 걷힌 후텁지근한 오후, 흙 묻은 바지를 입고 선 얼굴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오가는 길에 들렀다.”고 하자 “먼 길 오신 손님이니 차나 한잔 하고 가시라.”며 조합 사무실로 안내한다. 1998년 문민정부의 마지막 법제처장을 끝으로 세상에서 얼굴을 감춘 송종의씨. 참여정부에서도 법무장관, 부패방지위원장 등 요직에 천거됐으나 끝끝내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총리를 빼고는 다 거론됐다.”고 손사래를 친다.“노무현 대통령과는 악연이 있어요. 부산지검 시절 그렇게 구속시키려고 했는데, 그때 구속시켰어야 했는데….”라고 껄껄 웃는다.87년 2월 부산에서 열린 박종철 추모집회 현장에 있다가 붙들려온 노무현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를 결재했던 이가 바로 당시 송 부산지검 차장검사였다. 그러나 이런 악연 때문에 벼슬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 있어서였다. ●“노무현 대통령과는 악연이…” 법제처장 퇴임사 말미에 그는 열여섯자 자작 한시를 남긴다.‘귀거래혜(歸去來兮) 영고무상(榮枯無常) 산수자한(山水自閑) 좌간부운(座看浮雲)’. 풀이하면 “돌아가네, 영화와 쇠락이 무상하니 자연에서 한가로이 뜬구름 바라보리.”라는 뜻일 게다.“이렇게 떠나왔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는 거지.”어릴 때부터 한학을 했던 그는 한시와 시조에 능하다. 검사 시절 송도사, 한학도사란 별명으로 불렸다. 그의 첫 낙향은 95년이었다. 대검 차장이던 당시 검찰총장 자리를 놓고 1기 후배인 김기수(사시 2회) 당시 서울고검장과 경합했다. 그러나 김영삼(YS)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얻은 경남고 후배인 김 고검장에게 고배를 마시고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심정으로 자유인으로 돌아간다.”며 훌훌 밤농장이 있는 이곳으로 내려왔다.YS는 1년 뒤 법제처장으로 그를 불러들인다.“검찰총장 건으로 빚을 졌다고 생각한 게야.YS가 조각을 해놓고는 통보한다고 나를 찾았던 모양인데, 휴대전화도 잘 안 되던 시절이라 집에 와보니 집사람이 ‘청와대에서 급하게 찾는다는데 무슨 큰일난 거냐.’고 하는 거야. 전화를 넣었더니 YS가 ‘니는 와 그리 연락이 안 되노, 내일부터 법제처장이니까 그리 알아라이.’라면서 응대할 틈도 안 주고 전화를 끊더라고.” ●서재에는 불경과 고서·역사서로 가득 1년여의 법제처장을 마치고는 다시 양촌으로 돌아왔다. 양촌과 연을 맺게 된 것은 71년 강경지청 검사를 하면서이다. 이곳의 국유지를 불하받아 밤나무를 심었다.10∼20년생이 가장 튼실한 열매를 맺는 나무인지라 30년쯤 된 ‘1세대’를 2000년대초 베어내고 새로 심은 ‘2세대’가 이제 탐스러운 과실을 머금기 시작했다. 그가 나무를 심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육군 법무관 시절인 67년 베트남에서 귀국할 때였다. 여수 상공에서 내려다 본 조국의 강산은 온통 황토색 민둥산이었다.“비행기에서 지은 시조 2수가 지금의 내 인생을 만들었어.” ‘전략…눈비벼 다시 보아 민둥산을 알았네/이렇게 헐벗었더냐 꿈에 그린 내조국’,‘옷을 입히리라 초록으로 덮으리라…중략…이 결심 헛되이 마라 천지신명 다 안다’ 나무를 심어놓은 양촌으로 오면서 그는 법전을 비롯한 법률 서적을 모조리 고물상에 줬다. 법전을 불태웠다거나 창고에 넣어뒀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조합 사무실의 ‘천목헌(天目軒)’이란 서재와 집 어딜 둘러봐도 불경과 고서, 역사서뿐이다.“이렇게 사는데 시비를 둘로 갈라야 하는 법이란 게 왜 필요한가?”그런 법을 배우려고 법대에 갔지만 원래 그는 공대 체질이었다. 손수 조립한 4구 라디오로 클래식을 들었을 정도이니 말이다.“형이 서울대 법대를 다녔는데 전쟁통에 졸업도 못 하고 고시도 안 됐어. 그래서 집에서 인정받으려고 법대도 가고 고시도 봤어.” 사시1회의 선두주자 검사 송종의의 인생 갈림길은 그렇게 여러 차례 있었다. 그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애지중지하던 스무살된 아들을 교통사고로 96년 잃은 것이다. 그때의 충격으로 한동안 행방이 묘연하던 부인을 부산의 어느 절에서 발견했다. 묵었던 절방이 ‘천목단(天目壇)’이었다.“스님이 던져준 화두를 풀면서 열사흘을 있었는데 하룻밤도 못 잤어. 뭔가 옆구리를 쿡쿡 쑤시는 귀신 같은 게 있다는 그 방에서 이틀 이상을 버틴 스님이 없었다는데 말이야. 결국 열사흘을 보내고 그 절에서 내려왔지.”이때 부부가 법명을 받았는데, 그는 천목, 부인은 고불법(古佛法)이다. 앞 글자를 한자씩 따 양촌 집의 옥호로 삼았다. “이제는 (슬픔을)다 털어버렸다.”고 한다. 쌍둥이 외손녀(13)를 위해 ‘외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음악여행’을 쓰고 있다. 인터넷을 뒤져 A4용지로 180장 남짓 썼다. 재경부 사무관을 거쳐 미국에서 대학교수를 하고 있는 사위와 딸 사이에 낳은 손녀들이다.‘딸에게 주는 편지’는 이미 340장을 탈고했다. 사시에도 합격했던 이 사위에게는 법조인의 길을 안 걷는다는 조건으로 딸을 줬다. ●농촌기업 성장시킨 성공한 귀농 사업가 가끔 찾아오는 선후배들을 위해 그는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었다. 왜 낙향했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쏟아지는 질문에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어 ‘천목거사의 생활’을 비롯한 그의 인생을 53개의 파일,370분 분량으로 손수 제작했다.“파워 포인트를 1년간 배워 하는 장난”이라는 이 영상물은 귀한 손님에게만 보여준다. 사무실 거실에 아예 스크린을 걸어놓았다. 첫 관객이 법제처장 시절 모신 이수성 전 총리였다. 낙향이라곤 하지만 사실 그는 성공한 귀농 사업가라고 하는 편이 옳다.96년 세운 양촌영농조합은 “전국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든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밤농장에서 나는 밤 40t을 비롯해 일본에 수출하는 물량까지 합치면 한해 1500t가량의 밤을 가공하고 있다. 딸기가공에도 손을 대 전국 딸기생산의 7%를 차지하는 논산 딸기를 포함해 한해 1800t을 처리한다. 뿐만 아니라 사과, 포도, 유자, 자두, 복분자, 매실 가공도 하고 있다.11년 만에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모범적인 농촌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예까지 왔으니 저녁을 먹고 가란다. 성화에 못 이긴 척 이웃한 전북 운주의 음식점으로 옮겨 소주잔을 주고받는다. 서울을 오가며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골프도 치며 세상일을 전해들었을 법하다. 대통령선거와 특수부 시절 데리고 있던 김성호 법무장관의 거취가 자못 궁금한 모양이다. 결국 자리는 폭탄주로 이어졌다.66세의 나이에도 술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예닐곱잔의 폭탄주에도 꼿꼿한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새 정권이 들어서도 관직에 나갈 생각이 없으시냐고 하자 그의 꼬장꼬장한 목소리는 단호하다.“꽃은 피고 지는 때가 있는 법”이라고. 양촌(논산)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세계 최고액 복권 당첨자 4년반만에 알거지로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세계 복권 사상 최고액인 3억 1490만달러(약 3000억원)에 당첨됐던 미국인 잭 휘태커(60)가 채 5년도 안돼 알거지로 전락했다. 웨스트버지니아주 작은 마을 스콧 디포에서 건설회사 사장으로 일하다 2003년 1월 파워볼 복권 당첨으로 일확천금을 거머쥔 휘태커는 4년 반이 지난 지금 현금으로 가득했던 은행 계좌가 텅텅 비어 무일푼 신세가 됐다고 워싱턴 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이 28일(현지시간) 본인의 말을 인용, 일제히 보도했다. ‘세계최대 행운의 사나이’로 불리며 부러움을 샀던 휘태커는 제3자의 부도수표 발행에 얽혀 기소됐을 뿐 아니라 음주 혐의로 체포되고 잇달아 강도를 당하는 등 인생이 파탄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특히 휘태커는 자신의 수표를 위조해 웨스트 버지니아와 켄터키주의 시티 내셔녈 뱅크 12개 지점에서 4만 9070달러를 빼내려다 들통나 제소된 토비 넬슨(31)의 사기사건에도 연루돼 법정을 오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앞서 휘태커는 복권당첨 뒤 세금을 공제하고도 1억 1170만달러(약 1000억원)를 쥐었으나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 당첨금을 탕진하고 음주운전, 술집지배인 폭행사건 등으로 수차례 체포되기도 했다. 또 스트립쇼 클럽에 주차된 자신의 스포츠카에서 현금과 수표 등 54만 5000달러가 든 가방을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자신의 집에 자주 도둑이 들었을 뿐 아니라 도둑이 침입한 날 손녀딸 남자친구가 18세의 나이로 죽은 채 발견돼 언론의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dawn@seoul.co.kr
  • 가족 4명이 의문사한 중국판 ‘귀신의 집’ 논란

    일가족 4명을 의문사로 몰아넣은 ‘귀신의 집’이 있어 중국 네티즌들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국 관영방송 CCTV는 26일 “충칭(重庆)시에 위치한 ‘귀신의 집’에서 일가족 4명이 의문사 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귀신의 집에 살고있는 사람은 펑(彭)할머니와 그의 13살 난 손자 둘 뿐. 의문사가 끊이지 않는 이 ‘귀신의 집’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1982년 펑 할머니는 그녀의 남편과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 손녀, 손자와 함께 지금의 집으로 이사왔다. 그러나 1년이 지난 83년. 당시 48세였던 펑 할머니의 남편은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진 후 숨을 거뒀다. 같은 해 9월 펑 할머니도 밭에서 일을 하던 중 왼쪽 다리를 다쳐 장애 판정을 받았다. 10년이 지난 95년. 평소 매우 건강했던 사위가 귀가 하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사망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는 결혼한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던 30세의 아들이 갑자기 온몸이 붓고 피를 토하는 증상을 보이다 숨을 거두고 말았다. 3년전인 2004년에는 32세의 딸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하혈을 하기 시작했고 계속되는 치료에도 차도를 보이지 않자 끝내 집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펑 할머니는 “모든 것이 이 집에 사는 귀신이 부리는 저주” 라며 “밤이면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때로는 손자와 함께 자고 있는 방에 나타나기도 한다.”고 두려움에 떨었다. 사연을 접한 각 방면의 전문가들이 집 주변 환경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세한 조사를 벌였으나 어떠한 문제점도 나타나지 않았다. 현재 펑 할머니와 손자는 계속되는 악재가 두려워 집을 나와 근처 산중에서 3년째 천막생활을 하고 있다.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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