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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신춘문예-시·시조 당선작] 시 심사평

    [2014 신춘문예-시·시조 당선작] 시 심사평

    본심에 올라온 10명의 작품은 예심위원들의 젊은 안목 덕분에 정형화된 신춘문예 스타일과는 다른 개성적인 목소리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의 심사는 한 편의 ‘잘 빚어진 항아리’를 선택하기보다는 세계에 대한 ‘개성적 독법과 화법’을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여러 번 읽는 과정에서 수사적인 표현에만 의존한 시, 지나치게 관념적인 시, 낯익은 발상에 머물러 있는 시 등이 우선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남겨진 것은 박세미, 김잔디, 이현우의 작품이었다. 김잔디의 시는 이미지를 조형해 내는 솜씨가 섬세하고 감각적이라는 점에서 호감이 갔다. “풍경을 의심하는 초식동물의 눈은 까맣다”라든가 “우유곽 바닥을 훑는 빨대 소리에 놀라 수목은 뿌리를 내리고” 등 매력적인 구절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행과 이미지들이 파편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뚜렷한 구심을 형성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이현우의 시는 상상력이 활달하고 다양한 소재를 유니크하게 소화해 낸다는 점에서 범상치 않은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여겨졌다. 실러캔스, 달의 착란, 손금의 태계, 프로토아비스…. 그는 무엇이든 시로 만들 수 있지만 어떤 시에도 자신을 전폭적으로 걸지는 않는 것 같다. 이 소재주의적 경향이 그의 유창함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망설이게 했다. 박세미의 시는 간결한 언어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증폭시켜 내는 특유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비극적 인식을 경쾌한 어조로 노래하는 그는 시적 대상의 슬픔과 고통을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끌어안는다. 당선작인 ‘알’에서도 버려진 존재들에 대한 상투적 연민이 아니라 “껍질을 깨고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새로운 난생설화를 탄생시킨다. 화자의 교체나 장면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행과 연을 조율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세계를 향해, 바깥을 향해, 끝없이 질문하고 대화한다. 그 질문과 대화의 자세로 오랫동안 좋은 시를 쓸 것이라 믿고, 또한 지켜볼 것이다.
  • “서울시 신청사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

    “서울시 신청사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

    “건축이라는 운명의 회오리에 빠져 있나 봐요.”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 시티:홀’은 정재은(44) 감독이 계획한 ‘건축 3부작’의 2부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1부에 해당하는 ‘말하는 건축가’가 건축가 정기용의 세계를 담았다면 ‘말하는 건축 시티:홀’은 서울시 신청사의 건립 과정을 들여다본다. 건축 3부작을 시작하기 전 개발하고 있던 SF호러 영화 ‘오피스’도 최첨단 초고층 빌딩이라는 공간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감독은 “어쩌다 이렇게 건축을 소재로 찍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이전에 찍었던 ‘고양이를 부탁해’나 ‘태풍태양’에서도 도시는 주인공이었어요. 인천이나 서울 잠실 같은 공간들을 영화의 주인공만큼 애정을 가지고 탐사했었죠. 건축이라는 게 도시와 사람들에 대해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건설과 건축이라는 문화가 일종의 전환기에 접어든 것도 건축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이유 중 하나였어요.” 신청사는 2005년 3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건립안을 채택해 지난해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개청식을 열 때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말하는 건축 시티:홀’이 집중하는 것은 7년에 이르는 지난한 건립 과정 중 마지막 1년이다. 서울시 신청사 콘셉트 디자인의 당선자였던 건축가 유걸이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배제됐다가 ‘총괄 디자이너’라는 직책으로 복귀해 1년여가 흐른 시점이다. 그러나 건축가와 시공사 간의 갈등으로 공사는 여전히 삐걱거린다. “서울시 신청사가 중요한 이유는 건설사의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 공사로 끝날 뻔했던 건물에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반영하려 했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건축가에게 집중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찍다 보니 시공과 감리 등 여러 가지 영역이 함께 건축에 대해 고민해야 좋은 건물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죠. 신청사에서 굉장히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하나의 사회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의 방향도 달라졌어요.” 2011년 10월 촬영을 시작한 감독은 서울시의 촬영 금지 통보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약 1년 반 동안 400시간 분량의 영상을 기록했다. 106분으로 압축한 영화에서 감독이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 같은 신청사”의 숨겨진 서사다. 감독은 “담당자들의 입을 통해 드러내려 했던 것은 크게 두 가지”라면서 “하나는 ‘신청사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가’였고 또 하나는 ‘만들어지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였다”고 설명한다. 영화는 이 두 가지를 면밀히 따라가면서도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들거나 성급한 결론을 통해 무조건적인 비판을 가하지는 않는다. “결론을 정말 못 내리겠더라고요. 제 주장을 담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모든 사람의 결론이 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 안에 파고들어서 속 얘기를 꺼내 놓게 하는 대신 관객들이 그들의 위치와 삶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적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봤어요. 영화 안에서 턴키 공사를 맡았던 삼우의 설계안도 보여주고, 유걸 건축가와 함께 공모했던 다른 건축가들의 디자인도 보여주잖아요. 만약 지금의 신청사가 마음에 안 든다면 관객은 어떤 건물을 올리고 싶은 건지 상상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감독은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만으로도 신청사는 충분히 뜻깊고 좋은 건축물”이라면서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건축물이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건축가가 박대받는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건축가의 의도를 일정 부분 반영했다는 점에서 신청사가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를 품게 만든다”는 것이다. 건축이 공간의 기억과 이야기를 손금처럼 품고 있다면 감독의 영화는 그것을 부지 바깥으로 확장시킨다. 그래서 그가 “지금 가장 바라는 것 중 하나는 신청사의 다목적홀에서 영화를 상영해” 공간에 기억을 더하는 일이다. “3부는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제가 극영화를 찍으면 다큐멘터리 같다고 하고, 다큐멘터리를 찍으면 극영화 같다고 해서 고민이에요(웃음). 아마 그 사이 어딘가에 제가 추구하는 영화적 현실이 있는 거겠죠. 영화가 장면의 완벽함을 추구한다면 다큐멘터리는 장면의 현실적 제약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다큐멘터리는 그 빈 구멍들을 관객에게 맡기는 장르 아닐까요.”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비키니 선발대회? 요지경속 中 ‘백만장자 맞선’ 현장

    비키니 선발대회? 요지경속 中 ‘백만장자 맞선’ 현장

    일부 중국 여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품게 했던 ‘백만장자의 공개구혼’이 사실상 참가 여성들을 속이려는 ‘쇼’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이런 쇼는 오히려 백만장자들을 ‘낚기 위한’ 사기임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 전역에서는 수시로 백만장자의 ‘공개 구혼’ 이벤트가 열리는데, 이러한 행사는 재산이 많고 학력이 높은 남성 1인이 신부를 찾기 위해 열기도 하고, 때로는 백만장자가 단체로 참석해 여성들을 평가한 뒤 짝을 짓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 관영 CCTV의 보도에 따르면 백만장자 공개맞선행사의 상당수는 재력가와 결혼하기 위한 여성 참가자들의 돈을 노린 사기행각으로 드러났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4월 베이징과 상하이 등 4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린 ‘백만장자 공개 맞선 장’은 재력이 뛰어난 남성과 결혼하려는 여성 참가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현장에는 연예인을 연상케 하는 뛰어난 외모의 여성부터 딸의 손을 이끌고 나온 부모까지 각양각색의 여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첫 번째 ‘관문’으로 성형외과 전문의의 심사를 거치는데, 이 전문의들은 참가 여성이 현대의학의 힘을 빌린 ‘인공미인’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한다. 두 번째 관문은 손금과 관상으로 운명을 예측하는 철학자다. 여기에 성격을 판가름 하는 심리학자와 건강상태 전반을 살피는 의사까지 등장했다. 여성들은 비키니를 입고 몸매를 뽐내는 등 웃지 못할 관문들을 거쳐야 ‘주인공’인 재력가와 단독으로 면담에 들어갈 수 있다. 지난 7월 중국 국가공상총국이 이러한 행사를 조사한 결과, 위와 비슷한 행사를 주최한 조직은 자신들이 광저우에서 불법으로 운영하는 ‘중국미혼기업가클럽’이었다. 이들은 공개 구혼 행사를 통해 클럽에 가입된 백만장자와 여성들의 ‘다리’역할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실제 재력가라 불릴 만한 회원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들은 연계조직을 통해 불법으로 돈을 갈취했다. 이른바 ‘학원’이라 불리는 곳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재력가와 결혼할 수 있는 소양을 쌓게 가르쳐준다’며 홍보를 해 왔다. 이들은 여성들에게 학원비 수 천 위안에서 많게는 수 만 위안까지 받은 뒤 재력가의 아내로서 갖춰야할 자세와 교양 등을 가르쳐 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런민대학교의 양쥐화 교수는 “재물욕심이 사람의 마음과 정신력, 판단력 등을 모두 흐리게 해서 속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지에서는 물질주의에 사로잡힌 여성들과 이를 이용하는 불법 업자 등에게 모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고소득자 ‘의료·교육비 공제’ 최대 4분의1로 축소

    고액 근로소득자의 의료비, 교육비 공제 규모가 최대 4분의1 수준으로 줄어든다. 반대로 현재 6%의 세율을 적용받는 과표기준 1200만원 이하 근로자는 공제 혜택이 다소 늘어날 전망이다. 또 세금 공제가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과표(세금 부과의 기준금액)가 올라간다.그렇게 되면 세 부담이 일정 수준 늘어나게 된다. 기획재정부는 이런 내용의 ‘2013년 세법개정안’을 마련하고 당정 협의를 거쳐 오는 8일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 상정키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31일 “현재는 근로자 소득공제 항목 중 의료비와 교육비를 비용으로 인정해 총급여에서 빼지만 내년부터는 총급여에 포함시켜 세액을 산출한 뒤 일정 비율을 세액공제방식으로 제외해 주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세액공제 비율은 10~15%가 유력하다. 현재 35%의 소득세율이 적용되는 연봉 1억원(과세표준으로 가정) 근로자 A씨의 경우 교육비로 한해 1000만원을 썼다면 지금까지는 1000만원을 뺀 9000만원을 과표로 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산출했다. 이렇게 되면 교육비 1000만원의 35%(소득세율)인 350만원만큼 세금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1000만원을 과표에 포함시켜 세액을 산정한 뒤 일정비율에 따라 세금을 빼주게 된다. 교육비의 세액 공제율이 10%로 확정된다면 1000만원의 10%인 100만원이 산출세액에서 제외된다. 이 경우 세금 공제 혜택이 기존 3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줄어든다. 최고세율(38%)인 과표 3억원 초과 근로자는 혜택이 더욱 축소된다. 반대로 과표 기준으로 1200만원의 연봉을 받는 서민들은 세금혜택 규모가 6%(소득세율)에서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소득공제 방식에서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하면 급여 인정액이 늘어나 실수령액 대비 과표(세금 부과의 기준금액)가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과표기준이 1200만원이라면 통상 연봉이 2000만~3000만원 구간이며, 4600만원이라면 연간 6500만원 정도 받는 근로자”라고 설명했다. 연봉 6000만원이라도 지금까지는 소득공제를 적용하면 과표구간이 4600만원 이하여서 15%의 세율을 적용받았으나 앞으로는 과표기준이 4600만~8800만원으로 높아져 세율 24%를 적용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또 올 초 추진과정에서 논란 끝에 후퇴한 ‘성직자 과세’의 관철을 위해 각 교단 관계자를 설득 중이다. 합의가 이뤄지면 이번 세제개편안에 담을 예정이다. 정부는 또 기업 규모 확대에 따라 중소기업 요건에서 벗어나 세제 지원이 한꺼번에 끊기는 일이 없도록 단계적으로 세제 지원을 축소하고 국외 근로자의 해외 근로소득에 대한 비과세를 확대하기로 했다. 개인택시 사업자는 차량을 구입할 때 부가가치세를 면제받는다. 문화예술 창작지원을 위해 문화예술 기부금에 대한 세제 지원이 확대되고, 미술품 구입 시 즉시 손금산입 한도도 인상된다. 문화·관광시설 등 투자금액에 대한 세액공제 역시 인정된다.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해가 뜰 조짐을 보이자 두 사람은 이윽고 발걸음을 멈추고 씨라리골 깊숙한 갈대숲 속으로 숨어들었다. 위인은 가근방 지리를 손금 들여다보듯 환하게 꿰고 있었고, 몇 리 상거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여축 없이 알아맞히는 눈치였다. 오밤중에 내성에서 발행하면 여명이 밝아올 무렵에 씨라리골 갈대숲에 닿게 되고, 그곳에 숨어 한나절을 보낸다면 내왕하는 길손들 눈에 발각되지 않고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자로 잰 듯 계산하고 있었다. 녹록하게 볼 위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위인의 정체를 적실하게 밝혀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굴을 뛰쳐나온 적당이 아닐까. 그러나 적당이라고 믿기는 아직 일렀다. 포흠하다 쫓겨난 관변 부스러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관변 부스러기라면 왜 하필 상단에서 쫓겨난 하찮은 신세가 된 자신을 덮쳐 인질로 삼았다는 것인가. 갈숲 속이라지만 지척이나 진배없는 숫막에서 그때 새벽닭이 목청을 길게 빼고 울었다. 어찌된 일일까. 닭 울음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린 것일까. 그곳까지 길을 줄여올 동안 입에서 구린내가 나도록 말이 없던 위인이 드디어 입을 열어 곡절을 물었다. “네놈이 끼고 잤던 내성 저잣거리 논다니는 행방술이 절륜하더냐?” “그 음분(淫奔)한 계집이 감창소리가 어찌나 소란하던지…… 색사를 벌일라치면 가죽방아 한 번에 삼이웃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러서 창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마치 가풀막진 된비알을 오르는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소리를 질렀지요.” “이놈 봐라 비위짱 좋게 언사가 개차반이군…… 계집의 행요가 그토록 절륜했다면, 해우채는 섭섭지 않게 대접을 했어야지 푼돈깨나 만진다는 네놈이 인색하게 푸대접을 하였더군. 의지 없이 떠돌며 풍상을 겪는 신세는 살꽃 파는 논다니 계집이나 십이령 치받이길을 쇄골이 부러지도록 용을 쓰고 오르내리며 연명하는 네놈이나 같은 처지가 아닌가. 상부상조하라는 말을 잊었더냐?” 40리 길을 올 동안 내내 입을 닥치고 있다가 불쑥 지른다는 말이 너무나 하찮아서 못 들은 척하고 딴청을 피우는데, 위인이 눈발을 날카롭게 곤두세우며 채근을 하였다. “내 말이 말 같잖나?” “가졌던 돈을 투전판에서 거덜내기는 하였습니다만, 계집에게도 틈틈이 적잖은 해우채를 안겼습지요. 계집에 주려서 눈알이 뒤집힌 사내들이라면 그깟 해우채 몇 푼 때문에 배리다는 핀잔을 듣겠습니까. 동전만 헤아리다 백발 되면 뭣하겠습니까. 체면만 깎일 뿐이지요…… 그년이 색사를 과도하게 벌여 육탈이 된 나를 끝까지 잡아먹지 못해서 몇 푼 되지도 않는 해우채를 가지고 벌벌 떠는 자린고비로 날조를 한 것이오.” “이놈 봐라? 제법 통이 큰 척하네. 그게 거짓이 아니라면 그 논다니도 고얀 년이군. 널 나한테 팔아넘길 적엔 네놈을 눕혀놓고 물먹은 걸레 짜내듯 해도 눈물 한 방울 짜낼 것이 없는 아주 똑 떨어진 자린고비여서 달포 가까이 같이 끌어안고 농탕질하고 배꼽을 맞춰주며 육허기를 채워주었는데도 떨군 것이라곤 쇳내 등천하는 동전 몇뿐이었다고 아주 이를 갈면서 궁상을 떨더군.” “그년 소행머리를 보면 매타작을 내려 어육을 만들 년입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닳고 닳은 계집들이 바로 색주가를 떠도는 논다니들 아닙니까. 밑엣품 파는 계집치고 고쟁이도 벗기 전에 손부터 내미는 버릇이 있다는 것은 이미 고려 적부터 소문난 일이 아닙니까. 그년이라고 해서 계집편성 다를 리가 있겠습니까.” “하긴…… 청루주사(靑樓酒肆) 즐비한 저잣거리를 쏘다니다보면 농염한 미술 가진 계집을 찾지 않을 수 없겠지만, 떼 꿩에 매 놓기라고 해서 투전판에까지 물색 모르고 첨벙 뛰어들면 네놈처럼 몰골 숭한 꼴을 당하느니……” 투전이란 것은 두꺼운 종이를 작은 손가락 너비만하게 만들어 그 한편에 사람이나 짐승, 새나 벌레, 물고기 같은 그림을 그려넣어 끗수를 정하고 기름으로 절인 것이자 이 종잇조각 40장이나 60장을 가지고 끗수를 겨루는 노름이다. 그런데 이 심심풀이 오락으로 시작한 노름이 여염에 널리 퍼지면서 저자의 무뢰배와 행상꾼과 악소배와 타짜꾼들이 꾀어들어 도박하여 하루이틀 사이에 그로 말미암은 부채가 수백 관에 이르렀다. 그로써 걸핏하면 칼부림이 오가고 심지어 살인까지 서슴지 않아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멋모르고 하찮은 밑천으로 노름판에 뛰어들었다가 전문(錢文)을 빚진 뒤에 노름 돈을 대지 못하면 전문을 가진 전주가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냉큼 노름 밑천을 변통해주는데, 비록 잠시라 하더라도 필경 몇 배의 이자로 문권을 작성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하룻밤 사이에 누차 작성하여 원금과 이자가 수십 수백으로 늘어나 아주 홀딱 벗기고 말았다. 문서로 작성한 것을 관아에 내고 고발하게 되면 빚진 자의 부모처자가 대신 갚아주어야 풀려날 수 있었다. 장본인은 저지른 일이 있으니 당연히 망신을 당해도 싸지만, 나머지 식솔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 불상사에 또한 패가망신하는 것이었다. “사내에게 여색이란 세상의 쇠락거리다. 그래서 서로 만나기만 하면, 기필 액운이 따르기 마련이다. 또한 음욕이 자못 방자해지면, 마치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심해지고 오직 죽고 나서야 그치게 되니 어찌 만족이 있을 수 있겠나.” 훈계인지 핀잔인지 아리송한 말을 귓가로 흘려듣는 길세만의 시선은 갈밭 너머로 아득하게 바라보이는 숫막 쪽을 향해 있었다. 단칸집의 구새먹은 통나무로 새운 굴뚝에선 아침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길세만은 문득 용기를 내어 물었다. “나를 그년으로부터 넘겨받은 까닭이 무엇입니까.”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곡절을 묻는 거조가 길세만의 면목을 알고 있을 것 같아 냉큼 그렇다고 대답하고 얼른 봉당으로 다가서며 환원수작 나눈 뒤 어디서 온 상단이냐고 물었다. 행수로 보이는 자가 듣고 있다가 봉당 모서리에 대고 곰방대의 담뱃재를 툭툭 털고 나서, “봉당이나마 우선 좌정하시지요. 보아하니 종일 쏘다니느라, 고단하시겠소.” 나이는 사십대 후반으로 보였고, 허우대는 부상들이 언제나 그러하듯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하였다. 역시 입성도 깔끔했다. 배고령이 다시 어디서 온 상단이냐고 물었다. “차차 아시게 되리라 믿소만, 우리도 한때는 뜨내기 행상으로 저잣거리에 당도하면 접소나 사처 잡는 숫막을 바로 고단한 몸을 누일 수 있는 집으로 여겼지 않습니까. 그러나 지난해부터 선달산 아래에 있는 오동나무골(梧田) 생달이라는 마을에 정처를 두고 살면서 옥돌봉 아래에 있는 박달령을 넘어 내성이나 현동 저자, 구룡산 아래 도래기재를 넘어 영월 태백의 물상객주로 드나들고 있지요. 여기서 150리에 상거한 충청도 단양은 풀방구리에 생쥐 드나들듯 수월하게 내왕하고 있지요.” 오동나무골 생달 마을이라면 곽개천이 지난날 포수 생활할 적에 발견한 약수터가 시오리 상거에 있는 곳이란 생각이 번쩍 들었다. 게다가 지난번 화적들에게 목숨을 잃었던 차인꾼을 옥돌봉 기슭 노루막이에 묻어준 기억도 없지 않았다. “그곳에 약수터가 있지요, 아마?” “잘 알고 계십니다그려. 우리는 약수터와 시오리 정도 떨어진 골짜기에 정처를 정해 살고 있습니다.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내려앉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가근방에서는 그만 한 길지가 없겠다 싶어 골짜기에 띄엄띄엄 토담집을 짓고 접소로 쓰기도 하고 보행객주도 열어 그럴싸한 저잣거리를 찾아 헤매는 행상들이나 고단한 길손들이 쉬어가도록 주선하고 있습니다. 물도 귀하지 않고, 찬바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통팔달이어서 내왕 행보가 앉아서 떡 먹기보다 손쉽지요. 강원도의 영월과 태백, 울진의 흥부장, 충청도의 단양과 영주, 경상도의 내성과 안동의 경계를 멀어야 150여 리 내외 행보에서 드나들 수 있지요. 적어도 사방 200여 리에 상거한 고장에서 나는 토산품이나 유기 같은 물화의 시세를 손금 들여다보듯 환하게 꿰뚫어 볼 수 있어 길미를 챙기기에도 가근방에서는 오동나무골 생달만 한 곳이 없지요. 그래서 시생들의 형세가 기운 적이 없답니다.” “그렇다면 모두 가솔을 거느리고 있겠군요?” “정착한 원상들이 열 안짝으로, 가솔들을 거느린 동배간도 있지만 대부분 엄지머리로 지낸답니다.” “언사가 매우 순박하십니다.” “정착하고 난 뒤 안정을 찾은 덕분이겠지요.” “오동나무골 얘기는 소문을 들어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대면하기는 처음입니다. 거래하는 물목들은 무엇이오?” “곡물과 약초와 피륙입니다.” “시생이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지요?” “이틀 전에 이곳 어물 도가 포주인을 회술레 돌리는 것을 보았고, 노형께서 동배간의 행방을 찾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소금 도가 포주인을 훼가출송시킨 것은 적당의 소굴을 섬멸하면서 얻은 결과입니다. 궐자뿐만 아닙니다. 십이령길 곳곳에는 신표도 갖지 않은 무뢰배가 원상 행세하며 창궐하여 장시의 풍속이 개차반된 지 오래지요. 십이령길 내왕 행보에도 그런 왈짜들이 들끓고 있지요. 이들 모두를 소탕해야 장삿길 소통이 원만해지겠지요.” “우리 행중도 얼마 전 검은돌 마을에 소금을 거래하러 갔다가 그곳에 박힌 돌 행세하는 무뢰배에게 둘러싸여 숫막의 술동이가 비도록 술을 사고 나중에는 전대까지 털려 거래는커녕 빈손으로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처럼 크고 작은 폐해를 설혹 내성 아니라도 많이 겪고 있지요.” “용모단자는 없습니다만, 시생의 동배간은 본 적이 없으시군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도 발 달린 짐승이긴 마찬가지인데…. 사정이 다급하다면 꼭 내성 저잣거리에서만 머물 까닭도 없겠지요.”
  • [저자와의 차 한잔] ‘북핵 일본핵을 말한다’ 펴낸 김경민 한양대 교수

    [저자와의 차 한잔] ‘북핵 일본핵을 말한다’ 펴낸 김경민 한양대 교수

    “북핵과 일본 아베 총리의 극우 행보 탓에 격랑에 휩싸인 한반도 정세가 어디로 흘러갈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안보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선택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일본이 핵무기가 들어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김경민 교수 북핵 일본핵을 말한다’(가나북스)를 펴낸 김경민 한양대 교수(국제정치학과)는 31일 위험천만한 일본의 핵무기 제조능력과 핵 보유 속셈을 만천하에 공개하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미국 미주리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연구했지만 핵물리학자처럼, 군사전문가처럼 ‘핵의 모든 것’을 씨줄과 날줄로 풀었다. 일본의 잠수함 전력과 미사일 방어체제, 우주항공 능력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박근혜 정부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얻어내려는 핵 재처리권을 일본은 25년 전인 1987년에 어떻게 얻어냈는지 ‘설득의 논리’도 제시한다. 이 책에서 처음 밝혀낸 일본의 사용 후 핵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확보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김 교수는 이공계 출신 과학자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문학의 문체’로 핵 개발의 모든 과정을 ‘류현진의 돌직구’처럼 뿌려준다. 4년 전 한국과학기자협회가 ‘과학과 사회 소통상’ 제1회 수상자로 그를 뽑은 이유를 알 만하다. 연구생활 20여년 동안 연구실과 교단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구를 빙빙 돌며 마치 신문기자처럼’ 에너지안보 분야를 취재했다. 외국인으론 처음으로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 객원연구위원으로 들어가 일본 자위대를 경험한 것도 큰 소득이었다. 9권의 저서 제목에 ‘일본’이 빠지지 않는 까닭이다. ‘군사대국’ 일본의 가공할 핵 능력, 대륙간 탄도탄과 요격미사일로 직결되는 우주항공력, 아시아 해상을 사실상 지배하는 잠수함력, 한반도를 손금 보듯 지켜보는 첩보위성의 실체를 샅샅이 파헤쳤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일본이 핵무기를 개발하려 한다면 아무리 길어도 2년 이상은 걸리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북한의 핵폭탄보다 훨씬 소형화된 양질의 핵폭탄을 한꺼번에 여러 개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김 교수는 점잖게 에둘러 표현했지만, 일본의 국내 전문가들은 ‘짧은 시간 안에 수천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뒷골이 당기는 대목이다. 일본의 핵무장을 미국이 그냥 두겠느냐고 질문하자 “미국과 일본은 서로 필요에 의해 군사 일체화된 지 오래여서 일본이 일을 저지르고 나서는 미국이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큽니다. 3차례의 핵실험과 은하 3호 로켓 발사에서 보듯 북한의 핵과 미사일 결합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북한’이라고 기록된 역사책을 읽게 될 겁니다”라고 답했다. 이미 일본은 북한의 위협을 내세워 2차대전 이후 금기시한 ‘비핵 3원칙’을 깨버렸다. 아베의 일본은 마지막 남은 평화헌법 제9조의 개정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북핵을 막지 못한 미국이 일본의 핵 개발을 저지할 명분이 없다는 조심스러운 분석도 곁들인다. “우리의 선택지는 우주 개발과 잠수함 전력 극대화입니다. 미사일과 로켓 개발에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의 강점이 있습니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 중국 마우쩌둥 주석, 일본 나카소네 총리가 자국 우주 개발의 초석을 놓은 미래 비전의 지도자입니다. 더 늦기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력을 모아야 문이 열릴 것입니다.” 노주석 선임기자 joo@seoul.co.kr
  • [열린세상] 이제 메세나법을 제정할 때다/박양우 중앙대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교수

    [열린세상] 이제 메세나법을 제정할 때다/박양우 중앙대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교수

    문화예술이 왜 중요하냐는 질문은 이제 우문(愚問)이 되었다. 저명한 세계적 미래학자들의 이름을 빌릴 것도 없이 지금은 문화의 시대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다. 이 덕분일까, 우리 사회에서 문화가 꽤나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국민행복’을 국정 비전으로 제시하고, 국정지표라고도 할 수 있는 열쇠말을 경제부흥, 국민행복 그리고 문화융성으로 설정했다. 이들은 모두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경제부흥의 핵심은 창조경제이고, 창조경제의 핵심분야 중 하나가 콘텐츠산업, 곧 문화산업이다. 종교를 비롯해 문화예술이야말로 국민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도 실질적인 실행수단이다. 문화융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더군다나 임기 중 정부재정 2%의 문화재정 공약도 이미 공표된 바 있다. 이만하면 문화융성이 곧 눈앞에 이루어질 것 같다. 그러나 문화예술계는 아직도 마음을 졸이고 있다. 그동안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수많은 공약(公約)들이 정권이 끝날 때쯤 해서 슬그머니 공약(空約)이 된 사례를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초예술을 위한 공약(公約)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번 정부도 기초예술에 대한 배려는 문화산업이나 관광, 체육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한 편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문화경제를 선두로 복지와 연관된 문화향수권 관련 정책이 문화정책의 주를 이루고 있다. 문화산업의 모태가 되고, 삶의 질의 기반이 되는 문화창조력을 높이는 정책목표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이래저래 기초예술 분야는 찬밥 신세인 셈이다. 앞으로 늘어날 사회복지 예산 등을 감안하면 문화재정의 획기적 확대도 낙관할 수만은 없다. 더군다나 기초예술 분야를 진흥시킬 재원 확보는 더욱 난감하다. 문화예술진흥기금은 운명을 다할 날만 기다리고 있고 이를 보충하거나 대체할 방안이 현재로선 없는 실정이다. 예술에 대한 정부 지원이 없으면 예술이 고사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간접지원 방식이라 할 수 있는 세제 감면 등 세제상의 개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길정우 의원이 작년 수정 발의한 ‘메세나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 필요한 단순한 이치다. 이 법이 순수예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 전반을 위한 것임은 물론이다. 문화예술이 산업으로 갖는 경제적 효과는 물론, 문화예술이 다른 산업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에 관해서도 연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문화예술이 주는 계량화된 경제효과 못지않게 기업의 문화적 창조력과 조직 몰입, 국민의 행복한 삶, 사회통합, 국가브랜드 제고 등 이른바 비화폐적 사회경제효과를 계량화한다면 그 규모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사실 조세특례제한법을 잠깐만이라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특례대상이 수두룩하다. 중소기업, 연구 및 인력개발, 국제자본거래, 투자 촉진, 고용 지원, 기업 구조조정, 금융기관 구조조정, 지역 간 균형발전, 근로 장려, 외국인 투자, 기업도시 개발 등 그 목록이 꽤 길다. 정치자금의 세액공제 및 손금산입 특례조항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조세특례제도는 엄격하게 운영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을 대상으로 한 기부가 국가경제, 사회통합과 발전, 문화복지 실현 등 국가와 국민에게 끼치는 실익을 감안할 때 현 조세특례제한법에 명시된 다른 대상들과 비교해 그렇게 괄시받을 이유가 없다. 이제 문화를 주창하는 이 시대에 조세특례에 관한 시각은 바뀌어져야 한다. 나아가 문화예술에 대한 기부는 장려되고 우대받아야 한다. 새 정부는 적어도 취임사로만 본다면 대한민국 정부 역사상 문화를 국정 전반에 표방한 최초의 정부라고 불러 손색이 없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메세나 관련 법안이 제정될 수 있도록 국회의원은 물론, 국민행복을 국정 비전으로 제시하고 문화융성을 주창한 대통령께서도 나서야 한다. 이 일은 새 정부가 내세우는 문화융성의 정책 화두가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한 1단계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 법이 제정된다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문화정책사에도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 될 것이 분명하다.
  • 접대비 초과 상위 10곳중 6곳이 제약사

    접대비 인정한도를 많이 초과한 10대 기업 가운데 6곳이 제약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약사들이 신약 연구보다는 병원과 의사 접대에 열을 올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또 접대비의 상당 부분이 룸살롱·단란주점 등 호화 유흥업소로 유입되고 있어 공정거래를 막고, 사회의 도덕수준을 낮추는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도 유발하는 것으로 지적됐다. 손원익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6일 이런 내용의 ‘접대비 현황과 정책과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기준 국세청에 신고된 전체 기업의 접대비는 8조 3535억 600만원이다. 5년 전인 2006년(5조 7481억 6000만원)보다 45.3% 늘어났다. 접대비 급증은 의약품 제조사들이 이끌었다. 법인세법상 접대비 손금(비용) 인정 한도를 90% 이상 넘은 1~10위 기업 중 6곳이 제약사다. 한도를 넘으면 그만큼 세금을 더 내야 하는데 그런 불이익까지 감수한 결과다. 과다 접대비 지출은 의약품제조업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의약품제조업의 매출액 대비 접대비 지출 비중은 대기업 0.49%, 중소기업 1.25%로 산업 전체 평균보다 최대 6배 정도 높다. 손 연구위원은 “제약사들이 연구개발(R&D)보다는 접대 경쟁을 벌인 것”이라면서 “기업 경쟁력이 하락하고 공정경쟁 질서가 훼손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복제약 값도 높게 책정하는 현행 약가 제도도 문제로 지적됐다. 우리나라의 신약 대비 복제약 가격은 86% 정도로 미국(16%), 캐나다(24%), 일본(33%), 프랑스(41%) 등에 비해 매우 높다. 신광식 연세대 법무대학원 교수는 “제약사가 독자개발한 신약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어 제약사들이 어려운 신약 개발보다는 쉬운 마케팅에 치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사설] 南 개인정보 통째로 北에 유출된 사이버 현실

    우리나라 사업자들이 중국에서 활동 중인 북한 해커에게 디도스(DDos, 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용 악성코드 파일과 해킹장비를 받아 사업을 하고 북한의 외화벌이까지 도운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최모(28)씨 등 3명은 북한 해커에게서 받은 해킹 프로그램으로 선물거래(HTS)와 인터넷 게임, 도박사이트 등을 운영해 해커와 수익금을 나눠 가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북한 해커가 ‘능라도정보센터’ 요원인 줄 알면서 거래를 했고, 이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개인정보 1억 4000만건이 북한에 넘겨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북한이 이를 이용해 사이버상에서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를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북한은 지금 대남 군사적 위협과 동시에 사이버 테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런 시기에 사업자 몇 명이 돈에 눈이 멀어 국민의 정보를 북한에 넘겨 국가 안보까지 위태로운 지경으로 내몰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최씨는 백화점·주유소·쇼핑몰 등을 해킹해 고객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이메일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확보했다고 한다. 1억 4000만건이면 웬만한 국민의 정보는 다 들어 있을 것 아닌가. 북한이 이를 도용해 우리 사회의 혼란을 야기시키고 인터넷 어느 구석에 악성 코드라도 심어 놓으면 사이버 대란은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피의자를 관련법 위반으로 단순하게 처벌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닌 것이다. 검찰은 철저히 수사해서 전모를 더 밝혀내야 한다. 북한은 이미 1990년대 초부터 해마다 1000명의 ‘사이버 전사’를 양성해 왔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터넷은 총이다. 남한 전산망을 손금 보듯이 파악하라”고 교시까지 내렸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도 최근 “용맹한 (사이버)전사만 있으면 어떤 제재도 뚫고 강성국가 건설도 문제없다”고 큰소리를 쳤다. 지난 몇 년 동안 북한의 소행으로 확인·추정되는 사이버 공격이 어디 한두 건인가. 이번 사건은 바로 그런 북한의 전사와 결탁해 사이버 공격 통로를 닦아준 꼴이다. 사이버 공간은 육·해·공·우주에 이어 제5의 전쟁터라고 한다. 국민이 힘을 합쳐 지켜야 할 또 다른 대한민국의 영토인 셈이다. 정보기술(IT) 강국인 대한민국의 국민답게 이제 개인들도 사이버 공간에 대한 경각심으로 무장해야 한다. 이는 총을 들고 우리의 땅과 바다, 하늘을 지켜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안보 태세이기도 하다.
  • 사망 다음다음달→사망 2개월 뒤, 교부→주다…알쏭달쏭 세법 쉬워진다

    사망 다음다음달→사망 2개월 뒤, 교부→주다…알쏭달쏭 세법 쉬워진다

    ‘사망일이 속하는 달의 다음다음 달 말일까지’, ‘세금계산서를 교부한 경우’, ‘증여자의 채무’. 얼핏 보면 이해하기 힘들거나 뜻이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 표현들이다. 하지만 현행 세법에서 엄연히 사용하고 있는 표현들이다. 세법 자체가 복잡한 데다 한자나 일본어 번역 등이 많아서다. 세제실장을 지냈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조차 “우리 세법은 최고 학력을 지닌 사람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혀를 내두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렇듯 어려운 세법이 이르면 올해 말부터 한결 쉬워진다. 재정부는 3일 소득세법과 법인세법, 부가세법 등 3대 세제 법령에 대한 ‘조세법령 새로 쓰기’ 작업을 마무리하고 올해 안에 국회 의결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서울신문이 입수한 초안에 따르면 ‘사망일이 속하는 달의 다음다음 달 말일까지’는 ‘사망한 달의 말일부터 2개월 되는 날까지’로 고쳐진다. 새로 고친 법령 안은 이달 말 공표될 예정이다. 한국조세연구원, 한국세무사회, 회계법인, 법무법인, 국어학자 등이 1년 6개월가량 머리를 맞댄 결실물이다. ‘알쏭달쏭 세제’가 전면 재보수에 들어가는 셈이다. 부가세법은 37년, 소득세법은 19년, 법인세법은 15년 만이다. 조세법령을 새로 쓰는 이유는 현행 세법이 ‘암호문’ 수준이기 때문이다. 일본식 한자어가 난무하는 것은 물론 복잡한 세금 공식을 무리하게 한글로 풀어쓴 경우도 많다. 법이 왜 만들어졌는지 이유조차 제대로 설명돼 있지 않다. ‘대손충당금및대손금조정명세서’ 등 긴 용어인데도 띄어쓰기가 안 돼 있는 사례도 있다. 이인기 재정부 조세법령개혁팀장은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세법 조문을 한글 맞춤법 등에 따라 명확하게 고쳐 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면서 “어디에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법령 순서를 바꾼 것도 큰 변화”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소득세법의 경우 ‘상당하는 금액’은 ‘사용된 부문만큼의 금액’이나 ‘사용된 부분의 다른 비용까지 포함한 금액’ 등으로 명확하게 표시된다. 말로 표현하기 복잡한 계산식은 기호나 도표 등으로 처리했다. 부가세법은 세무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었던 ‘납부세액’을 상세히 규정, 누구나 법만 읽어도 계산이 가능하도록 했다는 게 재정부 측의 설명이다. 통일성이 없던 조문번호 체계도 개편했다. 지금까지는 세금계산서 발급의무 면제 조항을 보려면 법 16조, 시행령 57조, 시행규칙 17조 등을 다 뒤져야 했지만 앞으로는 33조만 확인하면 된다. 이 팀장은 “내년부터는 조세특례제한법과 국세기본법 등 다른 법률에 대한 작업도 진행할 것”이라면서 “이렇게 되면 세법과 일반인 사이의 문턱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불필요한 조세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세종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낯설지 않다, 지금도 어딘가 있을 모습 같아서

    낯설지 않다, 지금도 어딘가 있을 모습 같아서

    1930년대, 그러니까 대공황의 잿더미 속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신화가 이륙하던 그 시간, 그 시간은 하나의 기념비다. 비슷한 내용인데 강조점에 따라 조금씩 달리 부르는 말들이 많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누군가는 자유민주주의의 갱신, 누군가는 수정자본주의 혹은 혼합경제체제, 누군가는 대압착의 시대, 누군가는 실질적인 사회민주주의의 시대, 누군가는 최첨단 정보기술(IT) 유행을 타고 자본주의 2.0이라 부르는 시대. 국가의 원체험기이기도 하다. 대공황이란 공포에서 길어올려진. 공포에 대처하는 방식은 두 가지. 하나는 파란 약 먹고 꿈꾸는 것이다. 야리야리한 여자아이들이 두 주먹 불끈 쥐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거라 신나게 흔들며 노래 부르는 뮤지컬이다. 고전으로 꼽히며 지금도 한국 무대에 종종 선뵈는 ‘애니’, ‘42번가’, ‘시카고’ 같은 것들이다. 다른 하나는 빨간 약 먹고 냉정하게 현실을 보는 것이다. “농업안전국(FSA)의 국장이던 경제학자 렉스퍼드 터그웰은 1935년 그의 오랜 조수인 로이 스트라이커에게 역사 관련 분과를 일임했다.” 중요한 것은 1935년이란 시점. 숨 죽이고 있던 기득권층이 마침내 뉴딜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을 때다. 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터그웰의 제자이자 사회학자인 스트라이커가 선택한 것은 사진이었다. 왜? “삶의 현실을 포착하는 사진이야말로 경제학적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라 꼴이 어떤지 두 눈 뜨고 똑똑히 보라는 얘기다. ‘지속의 순간들’(제프 다이어 지음, 한유주 옮김, 사흘 펴냄)은 바로 이 시기를 전후해 확립된 다큐사진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지를 다룬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다이앤 아버스, 유진 아제, 리처드 애버던, 워커 에번스, 도로시아 랭, 유진 스미스 등 현대다큐 사진을 말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사진을 두고 ‘지속’과 ‘순간’을 얘기하는 것은 지겨운 감이 있다. 지속되면 순간이 아니요, 순간은 지속되지 않는다. 이 둘의 충돌지점이 사진의 매력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저자는 작가의 의도, 시대 배경 등을 모두 뛰어넘어 개별 작품들을 징검다리 삼아 겅중겅중 뛰어다닌다. 작가나 시대에 따른 연대기적 ‘순간’을 해체한 뒤 저자의 관점에 따라 재배치해서 이를 ‘지속’으로 재해석한다. “이 책을 써내려 가면서 나는 점차 실제로 사진을 찍은 사진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찍은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좋아하게 됐다”고 고백할 정도다. 연대기가 차이, 구분, 범주화라면 저자는 이를 한데 섞어 콜라주를 만든다. 콜라주를 빛내는 것은 저자의 독창적 글쓰기다. 가령 이런 식이다. 책은 폴 스트랜드의 1916년작 ‘맹인’(Blind woman)에서 시작한다. 뉴욕 시내의 맹인이란, 구걸하는 누추한 이들이다. 눈이 안 보이기 때문에 포장하거나 위장할 수 없는,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는 존재다. 맹인들은 주로 아코디언을 들고 있다. 그래서 루스벨트의 죽음에 흑인이 눈물 흘리는 장면을 담은 에드 클라크의 1945년작 ‘귀향’(Going home)을 들고 나온다. 얼굴을 위장하거나 꾸미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신적 맹인, 그러니까 정신병자 등 특이한 사람들을 열심히 찍은 다이앤 아버스 얘기를 꺼낸다. 그러고는 1932년 어둠에 잠긴 파리 뒷골목을 렌즈에 담은 사진집으로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브라사이 얘기로 넘어간다. “밝은 한낮의 빛 아래서 당신이 주목하는 것들-색, 머리카락, 옷-은 모두 손쉽게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밤이 되어 집중해서 보아야만 하는 것들-어깨의 경사각, 옷이 닳은 방식, 걸음걸이-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당신의 손금만큼이나 개인적이고 불변적이다.” 그래서 손, 조지아 오키프의 손을 집중적으로 찍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를 불러낸다. 저자는 이런 방식으로 사람의 등, 누추하게 낡아버렸거나 절망적인 손에 쥐어져 구겨진 모자, 복잡하게 구겨진 시트가 씌워진 빈 침대, 텅 비거나 부서진 벤치, 창으로 내다보는 도시 이미지, 길과 이발소의 모습, 땅바닥 속으로 꺼져들어가는 이미지로서의 계단, 불안감에 서성이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는 권력의 상징으로서 보안관의 흔들의자 등 끊임없이 소재를 이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결론? 막바지에는 9·11테러로 충격에 빠진 뉴욕 사람을 찍어둔 사진을 배치해 뒀다. 도입부 맹인 사진과 절묘하게 겹쳐진다. 전망을 잃어버린, 그래서 민낯을 드러내버린 미국인이다. 별다른 장, 절 구분이나 소제목조차 없이 27쪽 맹인 사진에서 468쪽 뉴요커 사진까지 한번에 통으로 쭉 이어지는 본문은, 어쩌면 이 책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지속의 순간들 그 자체임을 드러낸다. 저자는 9·11테러에서 멈췄다지만, 그러고 보니 집권 2기 오바마 정부가 다시 불러낸 인물은 루스벨트다. ‘중산층의 아버지’로서 말이다. 흑백 다큐 사진에나 남아 있는 옛 추억이라 밀쳐 뒀던 과거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온전히 미국적 맥락의 작업들임에도 이 사진들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것은, 우리 역시 70% 중산층 복원을 내세워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번역자는 짐작하는 그 소설가가 맞다. 출판사에서 먼저 접촉했는데 저자의 매력에 빠져 다른 책들 번역까지 맡았다. 재즈를 다룬 ‘그러나 아름다운’(But Beautiful: A Book About Jazz)을 오는 4월쯤에, 그 뒤 소설 등도 번역해낼 예정이다. 이 책은 보도사진의 아성으로 꼽히는 뉴욕국제사진센터에서 상을 받은 책이다. 2만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軍관계자 “北 군사시설·후방까지 독자적 정보 확보”…군사전문가 “한반도 작전 반경 좁은데 고비용·저효율”

    미국 국방부가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4대를 한국에 판매하겠다는 의향을 의회에 공식 통보함에 따라 이에 따른 우리 군의 전력증강 효과에 관심이 쏠린다. 군사 전문가들은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에 맞춰 미군에 주로 의존하던 북한의 탄도미사일 등 군사시설 감시 능력을 강화하고 북한 후방 지역까지 독자적으로 감시 정찰할 수 있게 될 것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비용 대비 효과에 의문을 표시하기도 한다. 군 관계자는 25일 “글로벌호크는 높이 나는 새가 더 멀리 보듯이 20㎞ 이상 상공에서 정밀한 감시와 활동이 가능하다.”면서 “최근 북한이 발사한 장거리 미사일 기지의 동향을 손금 보듯 감시하는 등 영상 정보가 많이 보강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우리 군이 운용 중인 정찰기 ‘금강’과 ‘백두’는 상승 고도가 12㎞다. 글로벌호크는 악천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고도 20㎞ 상공에서 32시간 동안 3000㎞를 비행하고 지상 0.3m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 또한 전천후 합성개구레이더(SAR)를 통해 24시간 동안 북한보다 넓은 13만 8000㎢의 지역을 탐색하고 적외선 센서로 탄도미사일의 발사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맞춰 우리 정보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할 필요조건”이라면서 “블록 40형 등 최신 버전의 기종을 구입해 올 수 있게 꼼꼼히 따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점점 치솟는 가격 등 비용 대비 효율성이 떨어지고 조직 확대를 꾀하는 군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에서 2010년 말 진행된 시험평가에서는 기체와 항법장치, 통합센서 처리장치 등에서 결함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김종대 디펜스21 플러스 편집장은 “지상에 항공기의 수신기지 설치까지 고려하면 비용이 추가로 들 것”이라면서 “글로벌 옵서버나 팬텀아이 등 대체 기종이 개발되고 있는 상태에서 굳이 비싼 비용을 들여야 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편집장은 “작전 반경이 좁은 우리가 한반도 밖까지 정찰할 기종을 갖춰야 하는지도 의문”이라면서 “새 부대 창설로 조직을 늘리려는 군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천장 또 뜯겨 물 새… 보수는 무슨 그냥 살아야지”

    “천장 또 뜯겨 물 새… 보수는 무슨 그냥 살아야지”

    불암산 끝자락에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104마을’이 있다. 정확한 주소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 산104. 나지막한 돌산에 곧 무너질 듯한 판잣집 900여채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주민 대부분은 1960년대까지 청계천·영등포·양동·창신동 등에 살던 철거민들이다. 도심 개발에 밀려 이곳까지 흘러와 50년 전과 별반 차이 없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29일 오후 제15호 태풍 볼라벤이 한반도를 빠져나갔다는 소식에도 달동네 주민들은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제14호 태풍 덴빈이 다시 많은 비를 쏟아낼 것이라는 예보 때문이었다. 47년간 104마을에서 살아온 김점염(79·여)씨는 ‘태풍’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2년 전 태풍 곤파스로 김씨의 판잣집은 지붕이 날아갔다. “태풍 소식에 간밤에 한숨도 못잤어. 2년 전처럼 또 집이 무너질까 봐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다들 태풍이 비껴갔다곤 하는데 천장 위쪽이 뜯겼지 뭐야. 물이 조금씩 새는데 내가 무슨 돈이 있어. 그냥 살아야지.” 할머니가 가리킨 천장에서는 속절없이 물이 새들어 오고 있었다. 가난한 마을은 자연의 힘을 견뎌내기엔 턱없이 약했다. 달동네 주민들은 작은 태풍에도 전쟁을 치러야 한다. 유리 현관문 앞에 비닐을 덧대는 것은 기본. 지붕이 통째로 날아가지 않으려면 집 위에 올라가 대형 비닐을 덧씌우고 타이어 등을 얹어야 한다. 정부 재난대비 지원이 없다 보니 믿을 건 남들이 버리는 재활용 비닐과 헌 종이뿐이다. 1960~70년대 풍경 같지만 이곳에선 현실이다. “지붕이 약해 비만 오면 만날 물이 새. 가난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헌 종이를 구해다 천장에 덧바르는 것뿐이야. 매년 여름 이 짓만 20년째인데, 장마니 태풍이니 하는 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철렁하지 뭐.”라며 곽오단(80·여)씨는 한숨을 쉬었다. 25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모일순(72·여)씨는 “도와준다는 이야기도 반갑지 않다.”고 했다. “겨울만 되면 국회의원 같은 높은 사람들이 기자들 데리고 우르르 와서 연탄 나르는 봉사활동을 해. 다 광고지, 속보이는 그런 거 반갑지 않아.” 주민들은 방재의 손길에서도 이곳은 소외된다고 입을 모은다. 강남에 물이 차면 세상 뒤집어질 것처럼 난리를 해도 못사는 이곳에 수해가 나면 당연하게 여긴다고 했다. 실제로 서울시는 지난해 8월 우면산 산사태 피해를 본 방배동 일대에 420억원과 연인원 4만 2000명을 투입, 10개월 만에 복구 작업을 마쳤다. 반면 104마을에 대한 정부의 재해대비는 거의 없다는 것이 주민들의 불만이다. 104마을은 손금처럼 얽혀 있는 골목길 사이사이로 불규칙하게 집들이 지어져 있다. 그만큼 복구도 쉽지 않다. 42년째 이 마을에서 거주하는 신동옥(76)씨는 “작은 공간에 우후죽순으로 지어진 판잣집들이 강한 바람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 걱정”이라면서 “이번 태풍이 지나면 또 다른 태풍이 온다는데 죽기 전에 단 하루라도 맘 편히 잠들어 봤으면 좋겠어.”라고 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때론 소비현장, 때론 생계현장… 女, 격동의 공간을 지배하다

    식민지 시절 일본인이 점령했던 지배의 공간, 전쟁의 포화가 휩쓸고 간 참담한 폐허, 민주화 열기로 뒤덮인 목마름의 해방 공간, 첨단의 유행과 패션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소비와 향락의 최일선…. 세대와 연령에 따라 서울 한복판 명동은 각양각색의 얼굴로 각인된다. 명동은 그렇게 다양한 성격의 땅이지만 늘 남성과 생산보다는 여성과 소비의 인상이 짙었다. 지금도 그 인상은 여전하다. 전국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 전국 최고의 상권, 외국인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공간, 보행객의 최고 밀집 지역 명동. 그곳에서 여성은 언제나 소비에 치우친 존재일까. 여성 학자가 쓴 ‘명동 아가씨’(김미선 지음, 마음산책 펴냄)는 그 ‘소비적이고 여성들의 발걸음이 몰리는’ 명동을 뒤집어본 흥미로운 책이다. 6·25전쟁이 끝난 뒤 허무와 비감이 무성했지만 상권이 형성되고 번창했던 1950∼60년대의 명동을 저자는 새롭게 되살려 놓았다. 당시의 여성 잡지와 일간지 기사며 사진, 행정지도, 당사자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명동이 마치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본 손금처럼 생생하다. 저자는 전후의 명동이 소비·문화·생존의 공간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지금의 명동을 일군 주인공이 바로 여성이었음을 강조한다. 저자가 훑어내 보여 주는 명동의 궤적을 보자. 총성이 그친 후 도시 재건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명동은 국가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사회복지부, 상공부, 증권거래소 등이 들어섰고 전쟁 중 폐업했던 백화점 개점과 함께 양장점이며 미용실이 들불처럼 빠르게 거리를 점령했다. 그렇게 요동치는 명동에서 여성은 소비와 노동의 주체였다. “시일에 맞춰 (옷을) 완성하기까지 밤이 이슥하도록 일을 해야 하고 정열을 소모시켜야 한다.” “손님들이 바쁘다고 성화를 부릴 때는 손끝이 말을 듣지 않아서 울고 싶어진다.” 당시 디자이너와 미용사로 일했던 여성들의 회상은 그 증거나 다름없다. 일부 여성이 누리고 치장했던 사치와 소비의 한켠에선 전쟁으로 가장을 잃어 생계를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여성들이 즐비했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함께했다 할지라도 누구의 경험을 중심으로 해석하고 쓰이느냐에 따라 그 공간의 역사는 달라진다.” 저자는 지금도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변화무쌍한 공간 명동을 빌려 결국 이렇게 말한다. “전쟁으로 인한 ‘폐허’와 ‘허무’가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여성들은 부딪쳐 싸웠고 도전했다.” 1만 30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인천, 사상 첫 적자 … 작년 878억원 ‘구멍’

    인천시가 그동안 분식회계로 숨겨 왔던 적자 구조가 2011회계연도 결산에서 공식적으로 밝혀졌다. 시가 31일 ‘2011회계연도 일반·특별회계 결산’ 승인사항을 고시한 결과 878억원에 달하는 결손액(적자)이 드러났다. 적자 결산은 1981년 인천시가 직할시로 승격된 이후 처음이다. 전국적으로도 사례가 드물다. 시의 2011회계연도 결산을 보면 세입이 6조 6062억원, 세출이 6조 2288억원으로 명목상은 세입이 세출보다 3774억원 많다. 그러나 2011년에 지출해야 했지만 현금 유동성 악화로 지출하지 못해, 다음 연도로 이월된 금액이 4652억원이다. 따라서 이를 제하면 878억원의 결손금이 발생한다. 이월 내역을 보면 아시안게임 경기장과 인천지하철 2호선 건설, 경인고속도로 직선화 등을 추진하다 사업자에게 줄 돈이 없어 지출을 다음 해로 넘긴 것이다. 따라서 세입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세출 예산을 과다하게 책정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인천시는 사상 처음 적자 결산이 이뤄진 것에 대해서는 분식회계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사실 적자 결산은 몇 년 전부터 계속됐지만, 분식회계로 감춰 오다가 이번에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전임 안상수 시절부터 적자재정을 겪었으나 분식회계로 모면하다가 송영길 시장이 취임한 뒤 적자재정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라고 한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7) ‘실학거성’ 정약용 & ‘북학거두’ 김정희

    [선택! 역사를 갈랐다] (17) ‘실학거성’ 정약용 & ‘북학거두’ 김정희

    다산(茶山)과 추사(秋史)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조선 최고의 지식인들이다. 한 사람은 조선 실학(實學)을 집대성한 인물로 추앙받고, 한 사람은 북학(北學)의 종장으로 일컬어진다. 중국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청나라의 학술과 문화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다산, 청나라에 유학하여 중국인을 스승으로 삼고 청나라의 학술과 문화를 배우고 좋아했던 추사, 이런 사실만으로도 이들의 삶이 달랐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당색(黨色)마저 달랐으니 애초부터 가까이 지내기엔 서로가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럼에도, 추사는 다산의 아들 정학연과 가까운 친구였고 선배인 다산을 존경했다. 다산 사후에는 다산의 제자들이 추사의 문하를 수시로 출입하며 교유하였다. 이렇게 두 사람의 삶이 다르면서도 닿아 있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로 죄인의 몸이 되어 유배형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배의 설움 글로 푼 정약용 대대로 문한(文翰)을 숭상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다산은 정조 임금의 총애를 온몸으로 받았던 신하이자 제자였다. 그런데 출세가도를 달리던 다산에게 시련이 닥쳤다. 젊은 시절 천주학(天主學)에 관한 책을 읽고 연구했던 게 화근이었다. 다산의 집안에는 형님과 매형을 비롯한 천주교도들이 많았다. 호기심 많던 다산이 천주학에 관심을 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후에 다산은 성균관에 들어가면서 천주학과의 인연을 끊지만, 젊은 시절 그가 한때 마음을 두었던 천주학은 결국 인생의 항로를 바꾸고 만다.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젊은 시절 천주학에 몸담았던 사실은 점점 다산의 목을 겨누는 칼로 변해갔다. ●든든한 후원자 정조 죽자 유배생활 시작 상황이 악화되자 다산은 짐을 챙겨 고향으로 돌아갔다. 1800년 봄의 일이었다. 얼마 후 다산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정조가 승하하자, 다산은 다음해 2월에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 10월에 상경하여 재조사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다시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고 만다. 죄인의 몸이 되어 강진을 찾은 다산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801년 겨울, 강진에 도착한 다산은 동문 밖 술집에 거처를 마련했다. 동천여사(東泉旅舍) 뒷골방인 사의재(四宜齋)였다. 이곳에서 1806년 여름까지 지냈다. 1805년 겨울은 승려인 아암(兒庵)의 배려로 아들 정학연과 함께 보은산방(寶恩山房)에서 지냈다. 1806년 가을에는 제자 이학래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1년 남짓 살았다. 이렇게 떠돌던 다산은 1808년 봄부터 1818년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다산초당(茶山草堂)에 머물렀다. 다산은 유배생활 대부분을 제자를 가르치고 저술하는 일로 보냈다. 누구보다도 승려들과 많은 교유를 하였고 차(茶)를 사랑했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었다. 강진에 도착한 다음해 봄부터 붓과 벼루를 옆에 두고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저술에 매달렸다. 그 때문에 왼쪽 어깨에 마비 증세가 나타나 폐인이 될 지경이 되었고, 시력은 나빠져 늘 안경을 끼고 살았다. 다산이 그렇게 저술에 매달린 것은 폐족(廢族)이 되어버린 자신의 가문과 자신을 구원할 길이 오직 저술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저술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전하고, 이로써 죄인의 오명을 벗어 던지고 싶었던 것이다. ●폐족 벗어나기 위해 두 아들의 학문정진 강조 한편으로는 두 아들에게 수시로 훈계의 글을 써 보내 공부를 강조했다. 청족(淸族)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존경을 받게 되지만, 폐족이 된 마당에 학문에 힘쓰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천시하고 세상에서도 버림을 받게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두 아들이 자포자기하면 자신의 저술이 후대에 전해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자신의 글이 전해지지 못한다면 후세 사람들은 단지 관청의 문서만 가지고 자신을 평가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은 끝내 죄인의 오명을 벗을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이런 절박함은 다산으로 하여금 500권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남기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유배의 恨 서화로 푼 김정희 김정희의 증조부는 영조 임금의 사위였다. 그런 집안에서 자랐으니 왕실의 한 구성원인 셈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남부러울 게 없는 생활을 하였다. 1810년 부친을 따라 중국 연경(燕京·지금의 베이징)을 다녀온 뒤로 북학의 종장으로 성장하였다. 연경의 지식인들은 김정희와 교유하기를 희망하였고, 김정희의 연구 논문이 나오기를 기다리곤 하였다. 이미 동아시아 최고의 석학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親청’ 추사, 反청 다산 선배로 여기고 후학들끼리 교류도 그러나 김정희가 45세 되던 1830년에는 부친 김노경이 전라도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840년에는 그 자신마저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모두가 정쟁 속에서 빚어진 일들이었다. 평생 고생이란 걸 모르고 살았던 김정희에게 제주도의 유배생활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음식은 거칠어 목에 넘어가지도 않았고, 날씨는 맞지 않아 걸핏하면 앓아누웠다. 제주도에 도착한 다음해, 추사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가장 친한 친구 김유근의 부음이 전해졌던 것이다. 김유근은 추사를 유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가장 큰 희망이었는데, 이제 그 희망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김유근의 사망 소식을 들은 뒤로 추사는 미쳐버린 듯, 정신이 나가버린 듯하였다. 하늘을 향해 혀를 차고 밥상을 대하면 수저를 드는 것조차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돌멩이가 목구멍에 걸린 듯하고 대못이 가슴에 박혀 있는 듯하여 몰골은 날마다 말라가고 정신도 따라서 나가버린 것 같았다. 슬픔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추사는 두 번째 아내인 예안(禮安) 이씨와 사별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반대파들의 박해도 끊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의 친구들과는 소식도 점차 끊어졌다. 젊은 시절 그렇게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마저 소식 한 통 전해오지 않았다. 그런 추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책뿐이었다. 역관이었던 추사의 제자 이상적은 그런 추사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중국에 갈 때마다 최신의 서적들을 구해다 추사에게 보내주었다. 모두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이었다. 그 덕분에 몸은 제주에 있었지만, 중국 소식을 손금 보듯 하며 지낼 수 있었다. 유배 가기 전이나 유배 간 뒤나 언제나 똑같이 자신을 대하는 이상적의 행동을 보면서 추사는 문득 ‘논어’의 구절을 떠올렸다. ‘자한’ 편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라는 구절이었다. 공자께서는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듯이, 사람도 어려운 지경을 만나야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추사는 이상적의 행동이야말로 공자가 인정했던 송백(松柏)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추사는 그 고마움을 그림에 담아 이상적에게 선물하였다. 그렇게 ‘세한도’가 탄생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추사체로 불리는 그의 글씨는 바로 9년간의 유배생활 속에서 탄생하였다. 추사 또한 평생 수많은 저술을 하였고, 유배기간에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말년에 자신의 저술을 두 번에 걸쳐 불에 태워버렸다. 그가 남긴 것은 그의 혼이 담긴 서화뿐이었다. ●올해 다산 탄생 250주년… 활발한 학술행사 열려 18년 유배생활을 저술로 보냈던 다산, 9년 유배생활을 예술로 승화시킨 추사, 이들의 삶은 이렇게 같으면서도 달랐다. 한 사람은 가슴 속에 쌓인 것을 밖으로 풀어내 책을 지었고, 또 한 사람은 가슴 속에 쌓인 것을 붓 끝에 모아 서화로 표출했다. 올해는 다산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전시회와 함께 그의 삶과 업적을 조명하는 학술행사가 열린다. 다산의 바람대로 죄인이라는 오명은 오래 전에 씻어졌다. 이제 다산을 죄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500권의 저술을 남긴 위대한 학자로서의 명성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다산의 치열했던 삶이 온전히 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박철상(고서연구가)
  • [사설] 진보당 불법경선 의혹 규명 적당히 안된다

    통합진보당의 도덕성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4·11총선 야권후보 단일화 여론조사 조작 파문으로 이정희 공동대표가 후보를 사퇴한 데 이어 이번엔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현장투표에서 참관인 없이 투표함을 들고 돌아다니는 ‘이동투표함’ 제도를 악용해 당권파 인사들이 몰표를 얻었다는 것이다. 당권파 간부의 지시로 온라인 투표 도중 ‘소스코드’를 수차례 열람하는 부정도 있었다고 한다. 투표기간에 소스코드를 열어 본다는 것은 투표 진행상황을 손금 보듯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는 말이니,그게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총체적인 부정선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진보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일방 지명하는 대신 경선을 통해 뽑은 것은 나름의 공정성을 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경선 과정이 부정으로 얼룩졌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아무리 오래된 관행이라지만 투표함을 들고 당원들을 찾아다니는 행태는 표를 구걸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온라인 투표에서의 소스코드 부정은 한층 더 치명적이다. 진보당의 도덕성 시계는 지금 몇 시인가. 진보당은 6월로 예정된 당 대표 선출을 앞두고 민족해방(NL)계 주축의 당권파와 민중민주(PD)계 등 비당권파의 권력투쟁이 한창이다. 불법경선 공방은 이 같은 내부갈등과 무관치 않다. 그런 만큼 정파 간에 적당히 불법을 봉합하고 넘어갈 공산 또한 없지 않다. 그건 자멸의 길이다.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아무리 진보·개혁의 가치를 소리 높이 외친들 절차적 정의를 무시하는 정당에 눈길을 줄 국민은 없다. 진보당은 결자해지의 자세로 부정의혹을 철저히 밝히고 위기를 기회로 삼기 바란다. 진보당은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7석, 비례대표 6석 등 모두 13석을 차지하며 약진했다. 비록 원내교섭단체는 꾸리지 못했지만 제3당으로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진보당은 스스로 ‘소수정파’에 안주할 생각이 아니라면 위상에 걸맞은 책임을 다해야 마땅하다. 진보당의 정치적·도덕적 각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국민의 사랑을 받는 ‘대중정당’으로의 발전은 요원하다.
  • 대구국제공항 활성화 ‘날개’

    대구국제공항이 활성화된다. 대구시의회는 21일 본회의를 열고 ‘대구국제공항 이용 항공사업자 및 여행사 재정지원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 조례는 대구공항을 발착지 및 경유지로 하는 항공사에 대해 국제선 신규개설에 따른 결손금과 공항시설 사용료 등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국제선 신규개설 승객유치 여행사에 대한 지원도 가능하다. 이에 따라 시는 2002년 오사카 노선 폐쇄 뒤 10년 만에 일본 정기 항공 노선개설에 나선다. 시는 도쿄 하네다공항이나 오사카 간사이공항을 주 2회가량 운항하는 노선을 검토하고 있다. 2013년 세계에너지협의회(WEC) 총회, 2015년 세계물포럼 등 대구에서 굵직한 국제행사가 개최돼 일본 등 국제노선이 시급하다고 시는 보고 있다. 1996년부터 오사카 노선을 운항했으나 탑승률이 50% 안팎으로 낮아 2002년 5월 폐쇄했다. 현재 대구공항의 국제선 운항노선은 베이징과 상하이, 선양 등 중국 3개 정기노선과 일부 아시아권 부정기노선뿐이어서 지역 주민들의 불편이 크다. 이 조례안을 발의한 시의회 김원구 의원은 “해외 관광객이 늘어나는 추세인 데다 국제회의도 많아 항공사의 적자 폭이 크지 않을 것이다. 탑승률이 60% 정도에 이를 경우 지원금을 연간 3억원으로 잡고 있다. 청주공항의 경우 2007년 이 같은 조례를 제정, 시행 첫해에 승객이 57%나 증가했다.”고 말했다. 최영호 시 교통정책과장은 “항공사 2~3곳을 상대로 일본 노선 개설을 협의하고 있다. 오는 6월 취항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시는 2002년 대구국제공항 활성화를 위해 항공사 등에 대한 지원조례 제정을 추진했지만 시의회가 버스와 택시 등 다른 교통수단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 무산됐다. 양양, 군산, 청주 등 지방공항을 둔 8개 지자체는 이미 2002년부터 지원조례를 제정, 시행하고 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기고] 北김정은 체제의 사이버전 대비해야/김승주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교수

    [기고] 北김정은 체제의 사이버전 대비해야/김승주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교수

    김정일 사망 이후 전 세계의 이목은 후계자인 셋째 아들 김정은에 집중되고 있다. 김정은은 ‘독일어와 영어에 능통하고, 수학을 잘하며 컴퓨터공학 및 군사학, 물리학 학위를 가진 27세의 젊은 지도자’로 일컬어지고 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목된 이후 북한은 본격적으로 디지털화를 추진해 왔는데, 이 같은 북한의 디지털화 추세는 하이테크 첨단 기술에 관심이 많은 김정은의 입지를 부각하는 데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대북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국제학 교수이며 북한의 선전 활동을 연구하는 브라이언 메이어는 “김일성과 김정일은 군사력을 기반으로 정권을 유지했지만, 김정은은 기술 혁신을 통해 지지 기반을 확보하려고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북한 학생들은 북한 최고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자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이들에게는 외국 근무나 해외 기업에서 일할 새로운 기회가 제공되기 때문에 컴퓨터 분야는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종으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이 단순히 정보기술(IT)의 발전뿐만이 아니라 주요 비대칭 전력의 하나인 사이버 전쟁 및 사이버 심리전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걸프전 당시 북한군과 전력이 비슷한 것으로 평가되던 이라크군과 미군과의 전쟁을 지켜보면서 김정일은 첨단 무기와 결합한 IT의 군사적 활용이 전쟁의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절감했다고 한다. 10여년 전부터 김정일은 “인터넷은 총이다.”, “남한 전산망을 손금 보듯이 파악하라.”, “인터넷 공간은 국가보안법이 무력화된 해방구” 등의 교지를 통해 사이버 전쟁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북한은 이미 인민학교(초등학교) 영재들을 대상으로 중·고교-대학-군부대로 이어지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해커 선발 및 양성 체계를 구축해 놓았다. 북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에서 사이버전을 담당하는 인력 규모는 3000~4000명이며, 이 중 500~600명은 최정상급 해킹 요원이고, 매년 100여명의 해킹 전문요원들이 추가로 배출되고 있다고 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대학에서 컴퓨터공학, 군사학, 물리학을 전공한 김정은 또한 사이버전 수행에 최적임자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김정은은 2007년 9월부터 이미 해킹 및 전파 교란을 전담하는 사이버 부대를 자신의 직속으로 통합 관리해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2009년 7·7 디도스(DDoS) 공격과 2011년 3·4 디도스 공격 및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 등의 대남 사이버 공격도 김정은이 사이버전 지휘 전면에 나선 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버 전쟁 및 사이버 심리전은 유지비용이 타 전력보다 저렴하고, 전시와 평시를 막론하고 효과와 지속성이 보장되며, 은밀성과 비대면성이라는 특징 덕분에 북한과 같이 은밀하게 대남 전략을 수행해야 하는 집단에는 최적의 공격무기이다. 특히 북한이나 중국보다 인터넷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나 미국은 사이버 공격으로 볼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 북한의 김정은 시대 개막과 더불어 총체적인 국가 사이버 안전체제 구축을 더욱더 서둘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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