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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지부 ‘역경속 희망찾기’

    보건복지부내의 최근 분위기는 “우리가 동네북이냐.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는 항변속에 자괴감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위기 극복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 또한 강하다. 어둠이깊어지면 새벽이 온다는 말처럼 역경속에서도 희망을 찾기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장관 불명예 퇴진 국민의 정부 들어 복지부 장관들은 릴레이식으로 쓰러졌다.‘의약분업’의 직격탄을 맞아 쓰러진 장관은 국민의 정부들어 최선정(崔善政)·차흥봉(車興奉)전장관.최 전장관은 재정위기에 대한 ‘비난여론’에무릎을 꿇었고,차 전장관은 ‘의료계파동’이 끌어내렸다. 이에앞서 주양자(朱良子)전장관이 부동산파문 등 개인 문제로,김모임(金慕妊)전장관은 국민연금으로 중도하차했다. 주 전장관을 제외하고 ‘실정’에 대한 문책성 경질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전국민연금실시,의보통합,기초생활보장제도,의약분업)이 장관을속죄양으로 삼았다.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차곡차곡 여물어 가고 있다.이에앞서 문민정부 때는 한약파동으로 4명의장관(宋貞淑·徐相穆·李聖浩·金良培)이 물러났다. ■세대교체 최 전장관의 사임으로 복지부는 사실상 세대교체가 이뤄졌다.1세대의 퇴진이다. 고시출신 관리로 그동안 복지부의 모든 정책을 주도했던인물은 최 전장관을 비롯한 행시 10회 출신.장관 1명과 차관 3명(최 전장관 포함)을 배출했다.전계휴(全啓烋)·김용문(金龍文)전차관,최선정 전장관(차관을 거침),99년 직권면직된 김종대(金鍾大) 전기획관리실장 등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그동안 복지부의 정책을 입안했던 정책 책임자들이다.마지막 주자였던 최 전장관의 퇴임으로 미래의 보건복지정책은 이제 후배들의 몫으로 남게 됐다. 최 전장관의 사임기자회견에서도 이러한 의미를 읽을 수있다.그는 “30여년 공직생활 동안 복지부의 모든 정책이내 손을 거쳤으며 잘못된 것도 솔직히 많았다”면서 자신을 ‘모든 책임의 원흉’이라고 자세를 낮추기로 했다. ■책임론 “앞으로 복지부 직원이라고 하지 못하겠어”“아냐,복지부라고 하면 사람들이 무서워 할거야”-여론의지탄을 받고 있는 복지부 직원들이 나누는 대화의 일부다. 이들이 특히 언짢아하는 것은 ‘책임론’이다.재정파탄의책임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이 의약분업과 재정위기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땀을 흘린 복지부의 일꾼들이라는 점이 이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접시를 닦다가 실수로 깬 사람과 접시를 닦지도 않은 사람,일부러 접시를 깬사람과는 구분이 있어야 한다는 항변으로 해석된다. 한 의약분업 담당공무원은 정부 인터넷 게시판에 학계,시민단체 담당자를 거명하면서 “의약분업 강행과 의보통합을 주장할 때는 언제이고,지금와서 복지부 책임자를 문책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고 심경을토로했다. 강동형기자 yunbin@
  • 삼성 임창용 첫 등판 ‘속죄투’

    임창용이 깔끔한 ‘속죄투’를 선보였고 이적생 마해영(이상 삼성)은 불방망이를 이어갔다. 임창용은 20일 대구에서 열린 2001프로야구 해태와의 시범경기에 선발로 첫 등판,4이닝 동안 삼진 4개를 낚으며 2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틀어 막았다.마무리 투수로 뛰다올시즌 선발로 대변신한 임창용은 최고 구속 144㎞를 기록,예전의 구위를 되찾았다.임창용은 지난 겨울 삼성의 전지훈련지인 미국 애리조나에서 연봉 협상에 불만을 품고 돌연 귀국,‘코끼리’ 김응용감독의 노여움을 샀다.그러나임창용은 김 감독에게 사과했고 뒤늦게 이날 시범경기에첫 등판했다.95년 프로에 뛰어든 임창용은 98년 구원왕에오르는 등 국내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명성을 쌓아왔다. 타격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마해영은 이날도 5타수 4안타의 맹타를 터뜨려 주포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삼성이5-4로 이겨 5전 전승. LG-SK의 인천 경기에서는 4년간 18억원을 받고 해태에서LG로 이적한 자유계약선수(FA) 홍현우(LG)가 1회 3점포를뿜어내고 4회 중전안타를 뽑는 등 그동안 부진에서 탈출,팀을 안도케 했다.LG의 에이스 대니 헤리거는 2번째 선발등판해 4이닝을 2안타(탈삼진 3개) 무실점으로 막아 시범2경기에서 7이닝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LG가 홈런 6발을 앞세워 15-1로 대승. 에밀리아노 기론(5이닝 1실점)과 임선동(5이닝 무실점)이 맞대결한 롯데-현대의 수원경기는 현대의 3-0승리로 끝났고 대전경기에서는 한화가 두산에 3-2로 이겼다. 김민수기자 kimms@
  • [김삼웅 칼럼] 일본 지식인들에 메시지

    좋은 이웃 만나 화목하게 사는 것이 행운이듯 국가관계도그렇다.하지만 인종이 다르고 문화와 체제가 상이한 이웃이평화롭게 지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프랑스와 영국,독일과 프랑스,중국과 러시아,이스라엘과 중동국가,중국과 인도,인도와 파키스탄,이란과 이라크 등 예를들자면 한이 없다. 한·일관계도 예외는 아니다.외교적 수사로 흔히 일의대수(一衣帶水)라 표현하지만 현해탄의 파고는예나 이제나 거칠다. 우리는 늘 일본에 피해를 당해 왔다.16세기 임진왜란 이전부터,삼한시대 이래 왜구의 침략으로 편할 날이 없었다. 일찍이 유학과 불교를 전해 야만을 깨우치고 온갖 문물을보내 금수의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스승의 국가였는데도돌아오는 것은 항상 침략이고 적대였다. 일본의 모든 지식인들이 역사의 진실에서 눈멀고 귀먹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그러나 다수 ‘눈멀고 귀먹은’ 식자들에게 몇가지 사실(史實)을 적시하고자 한다.어느 나라나역사 의식이 없는 식자가 문제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당신들 국호가 한국 도래인(渡來人)들에의해쓰여진 사실을 아는가. 그리고 일본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국보의 상당수가 ‘한국산’인 것을 아는가. 고대사로올라갈수록 한국 문화의 영향이 일본 문화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끼쳤는지 아는가. 반면 일본 사서(史書)가 얼마만큼 왜곡되었는지 알고 있는가.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의사례를 들어보자. 일본어로 ‘미마나’로 읽는 ‘임나’는 한반도 남단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야 사람들이 왜(矮) 땅에 건너가 세운소국 중의 하나였다.가야인들이 낯선 왜 땅에서 고국의 임금을 그리며 ‘임금의 나라’를 줄여 ‘임나’를 세운 것인데일본 학자들은 엉뚱하게 일본이 가야 지역을 식민지로 삼아임나일본부를 두었다고 날조했다. 일본이란 국호가 6세기 말부터 쓰였는데 4∼6세기 중엽에‘임나일본부’라는 명칭의 식민지를 한반도에 두었다는 주장은 억지다.이같은 허튼 주장을 ‘입증’하고자 일본 육군참모본부는 집안(集安)의 광개토왕릉비문까지 변조했다.일본의 역사 변조와 날조는 지난해 11월 저명한(!)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가구석기 유적을 날조했다가 들통난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최근 물의를 일으킨 역사 교과서 왜곡은 바로 이같은 ‘전통’에서 비롯된다.더욱 놀라운 일은 산케이(産經)신문 등극우 언론·지식인들이 보인 반응이다.이들은 침략주의를 옹호하면서 양심 인사들이 외압을 끌어들여 자국을 비하한다고비난한다.한국과 중국에는 내정 간섭이라 억지를 부린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은 일제로부터 침략을 받아온 이웃나라에는 더 이상 남의 나라 내정문제가 아니다.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병탄을 당해온 우리에게는 불행했던 과거사의 일부이며 따라서 정직한 역사 기술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세계 학계에서 손꼽히는 일본 전문가인 호주 국립대의 매코맥 교수는 일본의 팽창주의와 역사 왜곡을 “제2차 세계대전후 전범 처리가 불충분했고 정체성이 흔들리기 때문”이라분석했다.일본이 전범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극우 세력이준동하고 정체성이 흔들림으로써 역사를 왜곡한다는 주장이다. 우리가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해 수구 세력이 득세한 것처럼일본은 전범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극우 세력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었다.불행하게도 두 나라 수구 세력은 이념적으로 ‘동조동근(同祖同根)’의 유사성을 보인다. 한반도분단의 일본책임론을 편 와다하루키(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 극우 세력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비판하면서 일본 정부가북한에 배상을 미룬 것은 “북한이 스스로 무너지면 사죄와배상의 부담이 없어질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라 주장했다. 일본은 여전히 과거사에 대한 속죄 의식과 이웃의 어려움을외면하는 반이성적 국가임을 지적한 것이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최근 한 사설에서 “정치가 혼미하고경제도 침체한 일종의 자신감 상실의 폐색 상황에서 과거를미화하는 역사관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분위기이지만 괴로울때야말로 더듬어 온 길을 빈 마음으로 돌아봐야 할 때”라고자성할 것을 촉구했다. 일본의 모든 지식인들이 이 ‘자성’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김삼웅 주필 kimsu@
  • 일본연극인들 “제암리사건 참회”

    일제가 이땅에서 저지른 가장 악랄한 만행 가운데 하나인제암리사건.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있은 뒤 경기도 화성군 제암리의 마을 교회에 일본 헌병들이 기독교 신도 21명을모아놓고 불질러 죽인 참사를 말한다. 오는 3·1절을 전후해 일본 연극인들이 이 제암리사건을 고발하고 참회하는 이색 연극 한편이 무대에 오른다.26일부터3월2일까지 문예회관 대극장서 공연되는 ‘아 제암리여’는일본인이 연출하고 일본 중견 배우들이 그 무대에 직접 선다. 이 작품은 지난 99년 3·1독립운동 80주년을 맞아 일본 연극인들이 한국 극작가(이반 숭실대 교수)에게 희곡집필을 의뢰,지난해 3월1일 도쿄 소재 한국 YMCA극장 무대에서 ‘칼과춤’이란 제목으로 선보인 연극.사건의 중대성과 공연장소덕에 현지 언론과 관객들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공연은 극단 현대극장의 주선으로 성사된 것으로,일본내 브레히트 최고의 권위자로 통하는 우치다 도로 일본대교수가 연출을 맡았다.일본 극단 동인회가 제작,극단 ‘배우좌’‘동인회’‘세대’등에서 활동하는 50∼60대 중견 배우 11명이 동참했다. 연극은 제암리 사건의 참상을 다루면서 정신대 문제 등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극중극’형식으로 녹여낸다.일본 헌병의 손에 초토화한 마을을 살아남은 주민들이 재건하고 일본인 목사가 속죄의 의미로 교회를 지어줌으로써 참회와 화해의 메시지를 강조한다. 극 말미에 살아남은 마을 주민이 처용무를 추어 고통을 승화하는 장면이 삽입되는데 처용무는 한국 무용가 최숙희가 맡았다. 김성호기자 kimus@
  • [사설] 김우중씨 재산 몰수해야

    대우 회계부정 비리를 수사중인 검찰이 김우중(金宇中)전회장의 국내외 은닉 재산을 파악해 몰수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김씨에 대해 즉각적인 여권 무효화 조치를 취하는 한편 체류지로 추정되는 독일·프랑스·모로코·수단 등 4개국에 범죄인 인도에 관한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신병인도를 요청할 방침인 것으로알려지고 있다. 우리는 검찰의 이같은 움직임이 비록 때늦기는 하지만 지극히 당연한 조치라고 본다.김씨는 이른바 ‘세계경영’이란 구호를 내세워 방만한 경영과 41조원에 달하는 분식회계를 통해 천문학적 자금을 해외에 빼돌림으로써 국가경제를 위기 속에 몰아 넣은 장본인이다.한때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선망을 받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장으로 한국 재계를 대표하기도 했다.이런 김씨는 법의 심판을 받아 과오를 속죄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여전히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김씨는 영국 비밀계좌를 통해 불법 조성한200억달러(약 25조원) 가운데 상당액을 해외에 은닉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김씨가 오래 전부터 가족과 친지·측근 명의로 재산을 위장 분산시켜 놓은 징후도 감지되고 있다.그는 과거 사재 출연 때마다 “지금 내놓은 게 거의 모든 재산”이라고 했지만 검찰은 경기도 포천 아도니스 골프장과 인천 영종도 일대 부동산등에 거액의 재산을 숨겨 놓은 것으로 보고 있다.심지어 지난 1998∼1999년 대우자동차 부도 직전에 수출대금 등 3조원 가량을 해외에 빼돌려 대우차를 고의적으로 고사(枯死)시켰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검찰수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장기간 해외에 잠적 중이다.검찰은 더이상 그의 자진 귀국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를 소환해야 한다.만에 하나 검찰이 적당히 수사를 매듭지으려 할 경우 국민적 지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대우사태가 터진 지가 언제인데 아직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신병확보 의지가 단호하지 못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검찰은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그를 하루빨리 법정에 세우기 바란다.이와 별개로국내외에 숨겨놓은 그의 재산을 샅샅이 파악해 몰수해야 한다.그렇게 해서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는그간의 잘못된 기업관행에 경종을 확실하게 울려야 한다.그것은 ‘검찰이 김씨의 행방을 알면서도 일부러 잡지 않는다’는 항간의 의혹을불식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 은행들 “변화없인 죽는다”

    정초부터 은행권의 ‘소리없는 경쟁’이 치열하다. 2일 금융계에 따르면 은행들은 심볼 교체,파업민원창구 가동,수수료 면제,정신 재무장운동 등 신년 캠페인을 잇달아 실시하고 나섰다.대출비리,파업,감자 등으로 헝클어진 은행권의 이미지를 바로잡겠다는의도다.금융구조조정 ‘본게임’에서 살아남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국민·주택,파업=이미지 씻기 안간힘 국민은행은 이달말까지 수신관련 수수료를 일절 받지 않는다.파업기간동안 고객에게 끼친 불편을 ‘속죄’하는 뜻에서다.자기앞수표 발행,각종 증명서 발급,통장재발행,부도처리 수수료 등이 대상이다.이달말까지 ‘파업민원 창구’를운영한다.파업기간중의 손해 등을 신고(02-769-7425∼7)하면 시정 조치해 준다. 노사간의 화해를 시도하려는 노력도 엿보인다.국민은행은 안경상(安敬相)·박도원(朴道源)상무의 사표를 수리하고 이날 후임인사를 신속히 단행했다.안상무는 파업비상대책위원장,박상무는 ‘파업가담자 보복인사’ 등으로 노조의 불신을 샀던 임원이다.김상훈(金商勳)행장은 시무식에서 “올해 1조원의 당기순익을 달성해 합병과정에서 우월성을 확보하자”고 강조했다. ◆서울·한빛·외환,생즉사 사즉생=지난 연말 가까스로 공적자금을투입받은 서울·한빛·외환은행 등은 결기(決氣)마저 느껴진다. 서울은행은 이날 새로운 CI(기업이미지통합) 선포식을 가졌다.신뢰와 희망이 있는 ‘늘 푸른 공간’이란 의미의 초록 사각형을 새 심볼로 택했다.강정원(姜正元) 행장은 “겉모습(심볼)을 바꿨다고 해서 은행이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속까지 바꿔 해외매각을 반드시 성사,서울은행의 신화를 만들어내자”고 역설했다. 김경림(金璟林) 외환은행장은 신년사에서 “대주주(코메르츠방크)의 정부주도 지주회사 불참 결정으로 마이웨이를 가게 됐다”면서 “이제 죽기살기로 뛰어야 한다”고 외쳤다. 김진만(金振晩) 한빛은행장도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며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을 강조했다.아울러 대대적인 이미지 쇄신광고도 준비중에 있다.공적자금 수혈은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의 부득이한 산물이지,본질적으로 부실은행이 아니라는 점을 적극 부각시킬 계획이다. 조흥은행은 매일 아침 지점을 첫 방문하는 고객에게 지점장이 직접장미한송이와 신년인사를 건네는 ‘지점장 고객맞이 캠페인’에 들어갔다. 안미현기자 hyun@
  • “의료파업 노래로 속죄합니다”

    “병원 파업으로 끼친 불편을 노래로나마 위로드립니다” 21일 오후 서울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는 의대 교수들과 젊은전공의,간호사 등이 어우러진 ‘사죄의 콘서트’가 열렸다. 연세의료원 강진경(康珍敬) 원장은 처음 무대에 올라 “오랫동안 국민 건강의 그루터기로서 사랑받아온 우리 병원의 파업으로 심려를 끼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합창을 통해 속죄하고 환자 곁에 다가서는 병원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무대 앞에 모인 300여명의환자와 보호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먼저 병원 전산과 직원들로 구성된 ‘샤론’팀이 찬송가 ‘새벽이슬같은’으로 환자들을 위로했다.이어 재활병원의 ‘찬양팀’, 임상병리과의 ‘수금과 비파팀’ 등의 아름다운 하모니가 울려 퍼졌다. 흰 가운을 벗고 말쑥한 정장을 한 참가자들은 서로 손을 잡고 흥겨운 율동을 선보였다.일부팀들은 바이올린과 플룻 등을 연주하며 흥을돋웠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심사 결과 치과병원 ‘찬양연합팀’이 1등을 차지하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암센터 방사선 종양과팀의 이창걸(李昶杰·40)교수는 “파업으로 직원들과도 서먹해졌는데 합창을 함께 하면서 옛 분위기를 되찾았다”고 말했다.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된 안모씨(23)도 “그동안 의사들의 행태를 보고 안타깝게 생각했는데 오늘 행사를 보고 따뜻한 마음씨가 느껴지는 것 같아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송하기자 songha@
  • [기고] 역사의 허구는 공허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현해탄 너머에 있는 일본 시마네(島根)현의 시마네대학 국제회의장.지난 3일부터 사흘간에 걸쳐 한·일 양국의 인문·사회과학 연구자가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그러나 둘째날인4일 뜻밖에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가미타카모리(上高森)구석기 유적조작사건이 공표되었다. 일본사를 무려 70만년까지 끌어올려 영웅으로 부상한 도후쿠(東北)고고학연구소의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가미타카모리 발굴단장이자신이 1주일 전에 묻어 놓은 석기를 새로 발굴한 것처럼 조작한 자작극이 탄로난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은 이미 80여년 전 베이징(北京) 근처의 주구점(周口店)동굴유적에서‘북경원인’이라고 명명된 50만년 이전의 화석 인류를 발견하여 ‘아시아인의 원고향’이라고 까지 일컬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 이후 남북한이 약속이나 한듯이 커다란 진전을 이루었다.북한은 평양 근처 검은모루 동굴유적이 각광을 받았고,남한은 아프리카·유럽형에 속하는 전기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와 자르개를 전곡리에서 발굴해 세계고고학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구석기시대의 존재조차 불분명했던 일본은 경제적 번영에 도취한 나머지 상상조차 못할 역사 미화를 서슴지 않았다.일본 학계는1946년 군마(群馬)현에서 발견한 2만5,000년 전의 석기를 보고 흥분하였다.이때 문제의 후지무라가 등장한다.1981년 발굴 조사를 벌인미야기(宮城)현 이와데야마마치 유적이 적어도 5만년 전까지 연대가올라간다고 극적인 발표를 했다.이후 그가 수십개의 구석기 유적 발굴에 손을 댈 때마다 연대가 올라가는 유물이 계속 나왔다. 드디어는 가미타카모리 유적을 70만년 전으로 끌어올리고,중국의 북경원인과 결부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후지무라의 발굴을 통해 일본은 선사문화를 70만년 전으로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찬란한 문화로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은 이집트문명과 맞먹는 고대문명이 존재했다는 내용이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일본이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라고까지 허구에 찬 주장에 맞장구를 친 일본 국민의 한결 같은 성원도 가세되었다.나아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구석기시대 조작사건을 오랫동안 묵인한 일본 학계의 학문적 양심도 오늘과 같은 사건을 일어나게 한 요인으로 지적할수 있다. 일본 고고학자들은 우리를 가미타카모리 유적지로 초청하는 계획을세워놓았다고 한다.일본 역사의 서장을 알리는 유적을 방문하지 않고서는 좀더 진전된 한·일 고고학 교류가 불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그런데 이 유적 조작사건이 공표되자 언제 그런 계획이 있었냐는식으로 조용하기만 하였다. 심포지엄이 끝난 5일 일본은 문제의 조작사건을 시인하면서 이를 속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일본 교육부도 조작되고 왜곡된 교과서를고쳐 나가겠다는 재빠른 조처로 뒤따랐다. 일련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머리 속에는 우리의 옛날 모습이 스쳐갔다.1981년 세계적으로 저명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구석기 학자 클라크(D.Clark)박사가 충남 공주 석장리,충북 점말 구석기유적을 실사한 뒤 연대 문제와 문화유적의 진위에 의문점을 제기한 일이 있다. 그후 20년 동안 우리 학계는 구석기 연구에서 과학에 바탕을 두지않고 무작정 연대를올리는 등 적지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유적의 진위 문제,깨진 돌 조각을 석기로 간주하여 성과를 과대 발표하는 문제,저절로 깨진 뼈 조각 따위를 인공 예술품으로 해석하는 문제 등 숙고해야 할 일은 한둘이 아니다. 가미타카모리 유적의 유물 조작사건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이다.나아가 그동안 수없이 이루어진 일본의 고고학적발굴 결과나 역사 교과서의 왜곡 기술, 그리고 일그러진 한·일관계사를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역사의 허구(虛構)는 결국 공허할 뿐이다. 임효재 서울대 교수·선사고고학회장
  • [사설] 張來燦씨의 자살

    동방·대신금고 불법 대출사건의 핵심인물로 수배를 받아온 장래찬(張來燦) 전 금융감독원 국장이 잠적 8일만인 지난달 31일 서울의 한여관에서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장씨는 ‘자살입니다’라고 시작되는 이 유서에 주식 매입 경위와 한국디지탈라인 정현준 사장으로부터 주식손실 보전금을 받은 경위 등을 자세히적어놓았다.그는 옛 직장의 동료 미망인을 도와주기 위해 주식을 매입했다는것이며 물의를 빚은 사실에 대해 금감원 임직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말도 남겼다고 한다. 장씨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자이를 감내할 수 없어 자살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에게 이러저러한 말을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겠으나 장씨의자살은 잘못된 선택이다.그는 금감원 간부 신분으로 정현준 사장의사설펀드에 1억원을 투자하고,평창정보통신 주식 3억5,900만원어치를매입했다 주가가 떨어지자 투자손실을 보전받은 혐의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검찰에 자수해서 사건 수사에적극 협조했어야 옳다.금감원 고위층 및 정·관계 로비의혹을 밝히기 위해서는 장씨의 진술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장씨가 사건의 진상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것이 그나마 속죄의 길이기도 했다. 그러나 장씨는 영원한 침묵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그 결과 검찰이 이 사건을 아무리 철저히 수사하더라도 의혹이 남을 수밖에 없게 됐다.장씨의 자살을 두고,일부에서는 그가 검찰 조사를 받게 될 경우자신이 몸담아왔던 금감원에 큰 부담을 줄 것이라는 판단에서 ‘조직보호’를 위해 자살을 택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는 마당이다.자살은 그 자체가 불행한 일이지만,이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의혹을 말끔히 정리할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도 그의 자살은 유감스러운일이 아닐 수 없다.검찰의 수사에도 문제가 있다.검찰은 장씨가 잠적한 뒤 출국금지와 함께 장씨의 집 주변에 경찰을 잠복 배치하고 장씨 가족을 통해 자수를 권유해왔다고 해명한다.그러나 장씨에 대한 검찰의 추적이 미지근해서 ‘안 잡는 것인가,못 잡는 것인가’라는 비판이 일기도했다.검찰의 소극적인 태도가 결과적으로 장씨의 자살로 이어진 셈이다. 이번 사건은 공직사회에 준엄한 경종이 돼야 한다.금감원 간부가 동료의 미망인에게 주식정보를 누설하는가 하면,자신의 직위를 이용한편법 주식매입으로 10억대의 거금을 챙긴 것은 도대체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 張來燦 前국장은 누구

    비리 속죄를 목숨을 끊은 것으로 대신한 금융감독원 장래찬(張來燦) 전 비은행검사1국장은 이번 동방금고 사건에서 한국디지탈라인 정현준사장과 이경자(李京子)씨의 집중 로비를 받은 인물로 지목돼 왔다. 장국장은 지난 23일 잠적한 뒤 평창정보통신 사설펀드에 3억5,000만원을 차명으로 가입했다가 손해를 보자 원금을 돌려받은 사실을 시인한 바 있다.그동안 금감원에 전화를 걸어 출두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오기도 했다. 그는 중앙대 출신으로 86년 재경부 주사에서 금고와 종금사 감독·검사기관인 신용관리기금 국장으로 옮긴 뒤 금고 업무에 관여해왔다. 통합 금감원 금고경영지도관리국장과 비은행검사1국장으로 재직하며금고 퇴출을 주도했다.강력한 추진력으로 50∼60개 부실금고를 퇴출시켜 업계에선 ‘저승사자’로 통했다. 금고업계에서의 평판은 그다지 좋은 편이 못됐다.20여년동안 금고감독업무를 해온 전문가로 금고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경영자들을 압박했다고 한다. 부동산 투자로 재산을 모아 금감원 간부 중에서 ‘재력가’로 알려져 치부 과정에 의혹의 눈길을 받기도 했다.장국장은 이근영(李瑾榮)위원장이 취임한 직후 보직에서 해임돼 금융연수원에서 연수를 받고있었다. 박현갑기자
  • 의문사 진상규명委 梁承圭위원장 인터뷰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의문사 진상규명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梁承圭·가톨릭대 대우교수)는 17일 종로구 이마빌딩에서 현판식을 가진 뒤 1차회의를 갖고구체적인 활동방향 등을 논의했다.양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민족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겠다”며 관련 제보를 당부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위원회 조사권 한계에 대한 지적이 많은데. 실질적인 수사권한이 없는 위원회로서는 공권력의 고문이나 가혹행위 여부에 대한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때문에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협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위원회의 활동은 범법자의 처벌이 아니라 은폐됐던 진실을 밝힌다는 의미가 더 크다.가해자들의 참회와 속죄,피해자의 용서와 화해를 이루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그들이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 위원회의 결정으로 고발할 방침이다.하지만 가능하면 그보다는 당사자 스스로의 자백과 양심선언을 통해법의 테두리 내에서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 것이다.유가족들도 처벌보다는 진상 규명을 원하고있다고 생각한다. ◆조사대상은. 69년 삼선개헌 이후 발생한 사건으로 공권력의 직·간접적인 행사로 사망했다고 추정되는 죽음은 모두 대상이다.95년 문민정부 이후에도 의문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파악된 피해자는. 현재 시민단체 등이 주장하고 있는 의문사 피해자는 75년 장준하(張俊河)선생,73년 당시 서울대 법대 최종길(崔鍾吉)교수 등 44명이다. ◆앞으로의 일정은. 접수는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의문사 관련 진정서 접수를 시작해 올 연말까지 진행할 것.조사는 6개월 이내에 마무리하되 필요한경우 1회에 한해 3개월 연장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따라서 의문사에대한 최종 조사결과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의문사진상규명위는 조사가 끝나면 1개월 이내에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사건의 진상을 공표한다.진정 내용이 사실로 확인되고 범죄혐의가 인정되면 검찰총장 또는 해당 군참모총장에게 고발하거나수사기관에 수사를 요청한다. ◆공소시효에 대한 문제는 없는가. 국내법상으로는 공소시효가 있지만 반인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 국제적인 관례이다.따라서 문제가 없을것으로 본다. 최여경기자 kid@
  • [매체비평] 언론이 YS의 정치행위를 무시해야할 3가지 이유

    한국언론이 최근 김영삼 전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 지나치게세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물론 전직 대통령이 국내외에서 기자회견을열고 현 정부에 대해 독설을 퍼붓고 사실상 정치행위를 하는 그 자체가 뉴스감이 되기 때문에 무조건 보도하지 말라고 말릴 수도 없다.그러나 필자는 언론의 김 전대통령에 대한 보도는 적어도 세가지 이유때문에 자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이유는 언론이 갖는 의제설정 기능 상 순기능보다 역기능이더 크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언론은 사회의 주요한 의제를 선택,보도함으로써 공론화의 장을 마련한다.따라서 보도 그 자체를 통해특정행위를 직·간접적으로 홍보하는 기능을 결과적으로 하게 된다. 김 전대통령이 현재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국가존망의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민총궐기대회를 열고 2천만 서명운동도 하겠다’는 것이다.물론 과거 민주산악회를 전국적으로 다시 조직화 하겠다는 것이다.그의 이런 활동이 공익적으로 언론이 진정으로 공감한다면 지속적으로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당장보도를 멈춰야 한다. 두번째 이유는 김 전대통령이 시도하고자 하는 이런 정치행위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건설적인 것이 아니라 파괴적이기 때문이다.그의주장핵심은 ‘김정일이 적화야욕을 버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측 속임수에 김대중 대통령이 속아넘어가 대혼란이 초래되고 있다’는 것이다.그래서 국민을 동원하고 산악회를 조직해서 대규모 규탄대회를 열겠다는 것이다.그의 이런 주장에 누가 어느 정도 공감할 지도 미지수이지만 그 내용이 전직대통령이 앞장 서서 하기에는 너무 부정적이고 소모적이다.야당총재가 할만한 규탄대회 같은 것을 전직대통령이 발벗고 나선다는 것 자체가 자기분수를 망각한 모습이다.더구나 국민은 의료파업이다,물가상승이다 해서 당장 생활이 불편하고 불안하다.도움은 못줄망정 전직대통령까지 나서서 국민을 동원해서 하겠다는 것이 ‘규탄대회’라니.더 이상 피곤하고 지친 국민을 동원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그나마 현정부가 국민들로부터 가장 높게평가받고 있는 대북정책을 두손들고반대한다고 하니 국민은 혼란스럽다. 세번째 김 전대통령은 재임 당시 경제국치일이라며 치욕의 ‘IMF구제금융체제’를 가져온,실패한 지도자라는 점이다.무능한 국가지도자 때문에 하루아침에 직장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고국을 등져야 했던 사람들,엄청난 세금부담으로 여전히 망가진 국가경제의 축을 지탱하고 있는 국민들.이들을 위해 속죄하는 마음은 커녕,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줬을 때는 뭐하다 이제 와서 다시 실패한 지도자가 정치 전면에 나서겠다는 말인가.‘언론장학생들’ 덕을 톡톡히 본 전직대통령이 언론플레이를 하겠다는데 언론은 다시 치욕적인 과거를 되풀이하려고 한다.언론은 그를 용서했을지 모르지만 그가 ‘머슴’처럼 동원하려는 국민은 아직 그의 무능과 몰염치를 용서한 적이 없다.언론이 현정부를 비판하려면 김 전대통령의 말을 빌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전직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으로 파괴적인 주장을 하며 세력을 조직화하는 나라는 불행하고 그 미래는 암울하다.객관보도에 얽매여 이런 내용을 곧이 곧대로 보도하며비판조차 제대로 못하는 언론을 둔 국민 역시 불행할 수 밖에 없다.우리 언론은 이제 ‘무엇을보도할 것인가’ 보다 ‘무엇을 보도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 언론정보학부
  • [사설] 북·일 수교 ‘일본의 책임’

    22일부터 일본 도쿄에서 제10차 북·일 수교회담이 열린다.이번 회담은 최근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남한 언론사 사장단과의 회견에서 북·일 수교회담과 관련해 “청산해야 할 과거문제가 있다.일제 36년도 배상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한 뒤 열리는 첫 회담이어서 관심을 끈다.김위원장의 이 발언을 놓고 일본 내부에서는 구구한 정치적 해석이 있는 모양이나 김위원장의 언급은 지극히 원칙론을 제기한 것으로 인식된다.따라서 일본이 김위원장의 언급에 이런저런 해석을 붙이는 것은 회담에 임하는 자세가 진솔하지 않다는 느낌을준다. 이번 북·일 수교협상은, 북한이 선(先) 과거청산을 주장하는 반면일본은 북한의 일본인 납북과 미사일 발사 등 현안문제를 동시에 풀자는 입장이어서 순조로울 것 같지는 않다.우리는 북·일 수교가 동북아 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이를 환영한다고 거듭 밝힌 바있다.굴욕적인 한·일 수교회담과 같은 협상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도 이번 북·일 수교회담에서는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정직한 사과와 응분의 배상을 해야 한다.그런 다음 일본이 주장하는 일본인 납북문제 등에 대해 북한도 사과 및 재발방지를 약속하면 될 것이다.그리고 미사일 문제는 북한과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미국과도 연관된 문제다.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관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마땅하다.그러나 일본이 이문제를 일제 식민통치의 죄과와 상쇄하려는 듯한 협상자세는 옳지 않다고 본다.일본은 비슷한 과거를 가진 전범국 독일에 비해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자세 때문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차제에 우리는 일본의 배상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를 느낀다. 이 문제가 궁극적으로는 북·일 수교협상의 핵심으로 같은 민족으로같은 피해를 입었으며 65년 한일협상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당시박정희(朴正熙)군사정부는 무엇보다 정권의 안정에 다급한 나머지 서두르기도 했거니와 경험도 없어 군 위안부 문제,징용민간인 피해,문화재 반환,사할린 교포문제 등은 챙기지 못해 미제로 남겼다.당시 한·일간에 타결된 무상 3억,재정차관 2억,민간차관 1억 달러는 해방전 국내외 한인들이 일본 금융기관들에 맡겼다가 찾지 못한 예금액수에도 못 미친다.일본의 대북 배상액의 적정선을 찾기 위해 북한과 일본이 원한다면 일제 강점하 민간인 피해 등에 대해 남·북한과 일본의공동조사도 한 방법일 것으로 생각된다.일본은 뒤늦게나마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국가로 인식받기 위해서는 북·일 수교와 관련,과거속죄 차원에서 진지하게 임해야 할 것이다.
  • 남북이산상봉/ 北 하경씨 재혼 부인과 극적 해후

    남한의 부인을 만나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던 북한의 영화 촬영감독 하경씨(73)에게 귀환 하루를 앞둔 17일 경사가 겹쳤다. 지난 두차례 상봉에 나타나지 않았던 부인 김옥진씨(78)와 함께 육군 모부대에 근무 중인 장손자 종훈씨(23)가 ‘특별 휴가’를 얻어상봉장에 나왔기 때문이다. 하씨는 그동안 “50년 전 헤어진 아내에게 죽기 전 마지막 속죄라도하고 싶다”는 애틋한 ‘망부가’를 여러차례 피력했으나 부인 김씨가 수절하지 못한 죄책감과 재혼해 낳은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이 겹쳐 만남을 꺼리는 바람에 이틀밤을 실의에 빠져 보냈었다. 김씨는 이날 오후 4시에 시작된 마지막 개별 상봉장에도 나타나지않았다. “이제 죽기 전엔 못보갔구만…” 하씨는 더 이상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없다고 체념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50년 전의 새색시처럼 화사하게 차려입은부인 김씨가 종훈씨와 함께 707호실 문을 열고 나타났다.하씨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씨는 “왜 이제 왔노,옛날 고운 모습은 그대로구려…”라며 뜨겁게 김씨를 껴안았다.김씨는 “미안해요”라며 젊은 시절 ‘멋쟁이’남편이 즐겨 끼었던 ‘선글라스’를 선물로 가져와 남편 얼굴에 끼워주곤 울음을 터뜨렸다.옆에서 지켜보던 아들 문기(55) 정기(54) 승기(51)씨와 적십자사 관계자들도 울었다. 하씨와 김씨는 지난 45년 광업진흥회사에서 사내 커플로 만나 열애끝에 1년만에 결혼했다. 하씨는 옆에 있던 문기씨가 김씨와 함께 온 육군 상병 종훈씨를 장손자라고 소개하자 자신의 젊은 시절 모습을 꼭 닮은 데 대해 또 한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인하대 화학과 2학년에 다니다 지난해 군에 입대한 종훈씨는 북에서 할아버지가 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부대장의 배려로 특별휴가를 나왔다. 종훈씨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만나는 모습을 보니 무척 기쁘다”면서 “통일이 되면 할아버지와 함께 살겠다”며 할아버지의 두손을꼭 잡았다. 북한 방문단 중 가장 안타까움을 샀던 하경씨가 방북단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여보,만나자마자 헤어져야 하는구려.우리 또 언제 만날 수 있겠소?” “건강하면 만날 수 있겠지요” 하씨는 다시 눈물을 쏟아내며 김씨를 껴안은 뒤 복도까지 쫓아나오며 안타깝게 손을 흔들었다. 조현석기자 hyun68@
  • 남북이산상봉/ “다시 만날때까지 꼭 살아계셔요”

    상봉 사흘째인 17일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짧은 만남 끝에 또다시 찾아온 이별에 단장(斷腸)의 아픔을 느껴야 했다.마지막으로 상봉한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는 반세기 만에 만난 혈육을 다시 떠나보내야 한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곳곳에서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이번 만남이 마지막은 아닌지,또다시 만나기까지는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마지막 환송 만찬에 참석한 뒤 떨어지지 않는발걸음을 옮겨 서울 올림픽파크텔과 워커힐호텔로 돌아온 남한의 이산가족과 북한 방문단은 온갖 상념으로 서울의 잠못 이루는 마지막밤을 보냈다. ■모자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다시 만날 때까지 꼭 살아계셔야 해요” 반세기 만에 만난 아들 조진용씨(69)를 떠나 보내는 어머니 정선화씨(94)는 복받쳐 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노환으로 침대에 누워 아들을 맞은 정씨는 떨리는 두 손으로 연신아들의 두 빰을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조씨가 “어머니,떨지 마세요”라며 울먹이자 정씨는 “어지러워서그래”하며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써 아들의 얼굴을 외면했다.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조씨는 어머니에게 애끊는 사모의 심정을 담은자작시를 읽어드렸다. “어머니,이 아들 떠나보낼 때 검은 머리의 어머니,주름 깊게 패어아들 맞으니 이것이 어쩐 일입니까…(중략)…부디 백수 천수 하셔서통일의 그날 이 아들을 다시 한번 안아주소서…” 조씨는 “셰익스피어가 살아 있다 해도 조선 민족의 비극적인 삶을제대로 쓰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아들 서기석씨(67)를 떠나보내는 어머니 김금예씨(90)도 “집으로데려가 따뜻한 밥이라도 먹였어야 했는데…”라며 울먹였다.김씨는“어릴적 삼베 옷을 입혀 키운 자식이 이렇게 크다니…”라며 말을잇지 못했다.서씨는 “어머니가 고령이고 나도 나이가 많은데 언제다시 만날 수 있을까”하고 되뇌였다. 조주경씨(68)의 어머니 신재순씨(88)도 아들의 두손을 잡고 “죽는날까지 함께 살자”며 흐느꼈고 조씨는 “꼭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라며 어머니의 두손을 꼭 잡았다. ■부부 “만나자 이별이니…” 남쪽의 아내 이춘자씨를 상봉한 이복연씨(73)는 “50년 만에 와 놓고 또 떠나버리면 어떡하느냐…”며 울부짖는 아내의 어깨를 두드리며 “통일이 돼 같이 사는 날이 올 것”이라고 위로했다. 그토록 만나고 싶어하던 아내 김옥진씨(78)를 끝내 만나지 못한 하경씨(74)는 “아내가 재혼했다는 이유로 상봉장에 나오지 않았는데정말 죽기 전에 마지막 속죄라도 하고 싶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아들 정기씨(54)는 “어머니가 ‘내일 아침 공항에서 먼발치에서나마보겠다’고 말씀하셨다”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전날 호텔앞까지 왔다가 죄책감 등으로 남편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형제 북에서 온 사촌형 김용환씨(70)를 만난 용승씨(68)는 “어제는 웃는 시간이 많았지만 오늘은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눈물이 흘러나온다”며 기약없는 이별을 안타까워했다. 전날 북에 있는 장조카 이정렬씨(39)가 남한 가족에게 보내온 안부편지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던 종석씨(64)는 형 리종필씨(69)에게 “꼭 다시 만나자”며 굳은 악수를 한 뒤 북한 가족에게 보내는 답장을써 전달했다. 부모님 영정 앞에 잔을 올리며 어머니 추모 자작시 3편을 낭독했던북한의 대표적 서정시인 오영재씨(64)도 “떠난다고 생각하니 섭섭하지만 통일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형제들을 위로했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상봉 이틀째 쏟아진 말 말 말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와 워커힐 호텔,평양 고려호텔 등 이산가족 상봉장은 50여년간 쌓인 가슴속의 한을 토해 내는 이산가족들의 절규가 이어졌다. ●어머니는 15년전 돌아가셨어.늘 네 얘기만 하시곤 했는데.아마 하늘나라에서도 기뻐하실 것이다. 남측 임창혁씨가 북측 동생 재혁씨가어머니 소식을 묻자. ●아버지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한 장밖에남지 않은 사진을 보고 또 봤어요. 남측 유인자씨가 북한의 국어학자인 부친 류렬씨와의 상봉에서. ●어머니가 이 자식을 보려고 여지껏 살아 계셨구나. 북측 리종필씨가 어머니 조원호씨의 생존에 감격해. ●제가 불효한 것 같지만 아버지 어머니 뜻을 받들어 교수,박사까지됐으니 효녀로 생각해주세요. 북측 김옥배씨가 어머니 홍길순씨에게불효를 빌면서. ●니 어쩌다 손이 이리 쭈글쭈글 됐나. 남측 최성록씨가 북측 아내유봉녀씨에게 금가락지를 끼워주며. ●니가 있어 내가 올 수 있었어. 북측 리복연씨가 남측 아내 이춘자씨에게 50년만의 만남을 속죄하며. ●여보 그동안 속절없이 살았시오.우린 이제 어찌합니까. 북측 아내오상현씨가 남측 남편 김일선씨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1·4후퇴 때 일주일만 백리 밖에 피난가 있으면 무사하다고 해서떠났는데 이제야 돌아 왔습니다. 남측 김상현씨가 북측 누나 상원씨와 만나 생이별에 오열하며. ●아버님 어머님.아들 장수가 왔어요.제가 죽지 않고 돌아 왔어요.광산 김씨 문중의 대를 끊지 않았으니 이제는 걱정말고 편히 눈을 감으세요. 5대 독자인 남측 김장수씨가 북측 누이 봉래씨와 만나 부모님사망에 절규하며.
  • 남북이산상봉/ 죽었다던 딸 만난 이재경씨

    황해도 연백군이 고향인 이재경씨(80·경기 부천시 원미구)는 방북이틀째인 16일 1·4후퇴 당시 네살배기 딸 경애씨를 혼자만 떼어놓고와 한이 맺혀 있는 아내 민정숙씨가 쓴 애절한 편지를 딸에게 전달,대면 상봉 못지않은 눈물과 감동을 자아냈다. 민씨는 편지를 통해 “화장실까지 아장아장 따라오던 네 모습이 아직도 선한데 너를 데려오지 못한 그 긴 세월이 원망스럽구나.경애야,엄마를 용서해다오.이 어미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늘 부처님께 네 행복을 기도하며 살았단다.그래 경애야 결혼을 했니.아들딸은 몇명이나되니.부디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해야 될텐데….(중략)건강 때문에 비록 너를 직접 만나지는 못하지만 네가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어미는 너무도 기쁘단다.수십년동안 단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내 딸아,정말 너무도 보고싶구나”라며 단장의 애절함을 구구절절하게 표현했다. 남편 이씨는 또 딸 경애씨 외에 생사확인을 신청했던 동생과 조카등 일곱가족이 모두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에 어린아이처럼 뛸듯이 기뻐했다. 이씨는 경애씨의 손을 붙잡고 “서울에 있는 네 에미는 다른 가족들이 다 죽었다는 통보를 받고 몸져 눕기까지 했다”며“왜 다들 죽었다고 알려줬는지 모르겠다”고 원망섞인 말을 하면서도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였다. 평양 공동취재단
  • 형사재판 ‘양형 감정’ 첫 도입

    서울지법 남부지원 형사합의 1부 윤재윤 부장판사는 27일 자신의 두아들을목졸라 숨지게한 혐의로 징역 15년이 구형된 안모(45) 피고인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피고인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고 심리적으로 매우 약한 상태에 있었다는 양형감정(量刑鑑定) 결과를 반영,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양형감정은 사건기록만으로 범죄자를 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범죄를저지른 이유나 범행 당시의 환경 등을 알아보고 그에 가장 알맞은 형을 선고하는 것이다.안씨에 대한 감정은 연세대 상담학과 정석환 교수가 직접 구치소를 방문,2차례의 인성검사(MNPI)를 통해 이뤄졌다. 윤 부장판사는 “안씨가 비록 살인을 저질렀지만 악한 마음을 갖지 않았고심한 고통에 빠져있음을 알기 때문에 앞으로 수감생활을 마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기를 바라는 뜻에서 검사의 구형량보다 대폭 낮춰 선고했다”고 밝혔다. 월 30여만원의 생계보조비로 생활해온 안씨는 지난 3월 30일 오전 2,000원을 들고 집근처 완구점으로 아이들 장난감을 사주러 갔으나 너무 비싸 그냥돌아온 뒤 같은날 오후 1시30분쯤 집에서 두 아들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하고자신도 왼쪽 손목의 동맥을 끊고 자살을 기도했으나 귀가한 부인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윤 부장판사는 3개월 전부터 피고인들에게 가족관계,주거와 경제력,성장과정,학교생활,직업과 수입,성격,전과의 상세한 내역,장래계획과 가족의 입장 등을 담은 ‘성행 및 환경진술서’를 작성토록해 양형자료로사용하고 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49세 신학도 부산-광주-서울 대장정 올라

    20여년동안 범죄세계에 빠져있다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된 40대 후반의신학도가 십자가를 메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700여㎞에 달하는 도보행군에 나섰다. 화제의 주인공은 장로교 총회신학교(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소재) 3학년생인김영묵(金永默·49)씨. 김씨는 12일 오전 6시 부산시 해운대구 반송동 변화산기도원에서 신도들의박수속에 미리 준비한 십자가를 메고 출발,마산∼순천∼담양∼광주∼정읍∼전주∼논산∼대전∼천안∼평택∼오산∼수원∼안양 등을 거쳐 다음달 10일쯤최종 목적지인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김씨가 직접 낙엽송 통나무를 잘라 만든 십자가는 가로 1m,세로 2m 크기에 무게가 20㎏이나 되며 운반이 쉽도록 땅바닥에 끌고갈 끝부분에 바퀴를달았다. 김씨가 이같이 폭염속의 ‘십자가 고행길’을 자초한 것은 20여년의 긴 세월을 범죄세계에서 허우적거렸던 자신의 과거를 속죄하고 나약하기 이를데없는 청소년들에게 강한 정신력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29세때 폭력을 휘둘러 처음으로 교도소 문을 들어선 뒤 전과 9범으로 20년가까이 교도소와 감호소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지난 93년 청송교도소에 수감돼 있을때 예배에 참석했다가 신앙인이 되기를 결심했다. 지난해 6월 출소한 김씨는 청송 모 기도원에서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같은해 7월2일부터 15일간 청송에서 서울까지 430㎞에 이르는 첫‘십자가 도보’를 성공리에 마치기도 했다. 김씨는 “통일이 될때까지는 우리나라 구석구석을,통일이 되면 북한 전역을 십자가를 메고 누빌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김삼웅 칼럼] 일본총리 망언과 독도문제의 배경

    모리 요시로(森喜郞)일본총리가 28일 방한한다. 정부는 그의 ‘신국론(神國論)’발언이나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외무성 발간의 ‘2000년 청서’문제 등을 엄중히 따져야 한다. 일본은 기회있을 때마다 엉뚱한 수작으로 한국의 반응을 떠보곤 했다.임진왜란때나 19세기말 침략할 때도 그랬다. 본론에 앞서 두가지 문제부터 살펴보자. 하나는 일본의 국호문제다. 명치시대의 대표적인 학자 요시다다고(吉田東伍)는 1907년에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辭書)’의 국호편에서 “일본이란 이름은 한민족이 처음으로 쓰기시작했으나 우리 일본인들이 그 이름이 아름답고 나라 이름으로 쓰는 것이 어울린다고 믿어 만고불변의 국호로 삼았다”고 썼다. 다른 역사학자들도 비슷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일본은 ‘일본’이란 국호를 한국계 도래인(渡來人)들이 사용해온 말을 701년 다이호(大寶)율령에서부터 국호로 채택하여 써온 것이다. 그 이전에는 왜(倭)라고 불렀다. 두번째는 일본의 양심적 학자 와다하루키(和田春樹)의 “소련이 참전하면한반도는 분할점령케 될 운명에 있었으므로 소련참전 이전에 전쟁(태평양전쟁)을 끝내지 않은 일본은 한국의 분할점령 나아가 분단의 책임이 있다”는지적이다. 분단의 원인제공은 물론 직접책임도 일본에 있다는 분석이다. 멀리는 일본이란 국호를 ‘차용(借用)’해서 쓰고 가까이는 민족분단의 비극을 안겨준 일본이 ‘종전’반세기가 넘는 현재, 많은 인적교류와 물적거래를 하는 ‘우방’에 대해 엉뚱한 독도영유권 주장과 잊힐만하면 망언을 서슴지 않고 군사대국화와 극우노선으로 치닫는 배경은 무엇일까. 비록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세계화에 앞섰다고는 하지만 변함없는 ‘섬나라’근성과 콤플렉스인가 아니면 16세기말부터 집착해온 이른바 ‘정한론’의 부활인가. 2002년 월드컵공동개최를 앞두고 두나라는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된다. 그러나 한꺼풀만 벗기면 해마다 쌓이는 연100억달러 규모의 무역역조와 일본군위안부로 동원된 20만 희생자의 배상문제 등 ‘미제사건’과 개선해야 할 현안이 수두룩하다. 한꺼풀을 더 벗기면 1905년의 을사조약 문제다. “회의장 주변과 궁궐·서울시내 전역이 일본군에 의해 점령된 상태에서 한국측 대표와 정부대신 심지어 국왕에게도 협박이 가해져서 한국측의 자유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을사조약은 ‘완전무효’(프랑스국제법학자 프랑시스 레이, 1906년)”라는 국제법상의 유권해석이다. 여기에 한국측대표 외부대신 박재순이나 일본측 전권대표(林權助)가 각각 국왕의 위임장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체결된 을사조약은원인무효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이후 일체의 한일조약이나 협약은 무효가 되고, 일제는 한국을불법강점해온 것을 속죄와 배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1965년 박정희정권이 이러한 역사적 바탕에서 국교정상화 조약을 체결하지 못한 것은 중대한 실책이다. 그렇다고 ‘역사적 진실’이 사라지거나 일본의 불법과 책임이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일본이 지난해 여름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국기와 국가로 규정하는법률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자위대의 지위를 격상시키고 활동영역을 확장하는 새 미―일(美日)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관련 3개 법안을 마련하고 이달초에는 동남아시아의 군사적 교두보라고 할 수 있는 싱가포르 기지 사용권을 얻어냈다. 일본자위대는 이미 세계 제2위의 막강한 전력(戰力)을 보유하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사태를 종합할때 일본의 ‘군사대국호’는 이미 닻을 올린상태에서 우리를 넘보고 있는 것이다. 독도문제만 해도 그렇다. 독도를 일본영토로 편입한 1905년 시마네(島根)현의 고시(告示)는 국제법상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 영유권을 주장할수 있는 주체는 국가이므로 중앙정부가 아닌 일개 지방현의 고시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일본이 떼를 쓰는 것은 그들의 숨긴 의도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독도를 ‘실효적으로’지배하고 있다는 안일한 자세를 버리고 단호한 대처가 있어야 한다. 북한과 독도관련 공동대책도 필요하다. 우리가 베푼은혜와 저들이 저지른 죄악을 잊고 새로운 군국화에 열을 올리는 일본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남북정상회담의 성공과 통일은 시급한 민족사적 과제다. 김삼웅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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