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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황 “큐리아는 지금 정신적 치매 앓고 있다”

    교황 “큐리아는 지금 정신적 치매 앓고 있다”

    “큐리아(바티칸 행정기구)는 지금 ‘정신적 치매’를 앓고 있다. 권력에 굶주린 사제들이 낮은 곳에서 묵묵히 기도하는 동료와 형제들의 명예를 잔인하게 죽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올해 크리스마스 메시지는 통렬했다. 교황의 연설이 끝나자 바티칸 클레멘타인홀은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고 22일(현지시간) BBC 등이 전했다. 교황은 이날 큐리아를 구성하는 추기경, 주교, 사제 등을 모아 놓고 큐리아 관리들의 위선적인 이중생활과 탐욕, 복지부동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교황청을 ‘정신 분열증’, ‘장례식에 간 듯한 얼굴’ 등 15개 병에 시달리는 몸으로 진단하기도 했다. 교황은 특히 “‘험담 테러’가 교황청 관리의 명성을 해치고, 조직의 화합을 해치는 암적 존재가 되기도 한다”면서 “내년에는 속죄하고 병이 낫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일부 관리들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봉사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또 자신이 머무는 방문자 숙소 옆에 대형 펜트하우스를 소유하고 있다가 최근 물러난 교황청 국무장관을 지낸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을 겨냥해 “젊은 예수회 소속 신부가 간단한 짐과 책을 모아 이사를 했던 것을 기억하는데 이것이 예수회 신부가 보여줬어야 할 교회의 모범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교황은 “로마 교황청에 집중된 권력을 전 세계 가톨릭 주교들에게 나눠줌으로써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 수 있다”고 밝혔다. 올해 메시지가 얼마나 강력한지는 지난해와 비교하면 알 수 있다. 그는 지난해 같은 자리에서 “큐리아의 사제들이 봉사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지금의 큐리아는 성령의 일을 방해하는 비대한 관료주의 조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소명의식을 강조했다. AFP는 “지난 1년간 관료들이 스스로 변하길 기다렸으나 변화가 없자 교황이 직접 메스를 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교황은 취임 이후 온갖 추문에 시달리던 바티칸 은행(IOR·종교사업기구)의 비밀 금고를 만천하에 공개했고, 은행장뿐만 아니라 이사회 전원을 교체하는 등 교회 역사상 초유의 개혁을 단행했다. BBC는 “교황청과 검은 커넥션을 유지하던 마피아를 파문시킨 아르헨티나 출신 교황이 300여명의 보수적인 이탈리아 사제들이 쌓아올린 철옹성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김종면 칼럼] 조현아와 조양호, 누가 더 부끄러운가

    [김종면 칼럼] 조현아와 조양호, 누가 더 부끄러운가

    부모의 욕망은 때론 자식의 삶을 헝클어뜨린다. 2차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의 응석받이 외아들 랜돌프 처칠도 그런 경우다. ‘자기도취에 빠진 런던의 아기 공작새’라는 소리를 들은 랜돌프는 전형적인 파파보이였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아버지가 총리일 때 단 한 차례 당선됐을 뿐 여섯 번이나 떨어졌다. 그럼에도 처칠은 정치가들을 초대한 디너 파티에 아들을 불러 토론을 하게 하는 등 그의 교만과 허영을 부채질하기 바빴다. 내리사랑일까. ‘못난 자식’을 탓하기에 앞서 그런 멍에를 뒤집어쓰게 한 남다른 성장 배경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항공기 회항 사건으로 국제적 조롱거리가 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신뢰가 각별하다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또한 처칠만큼이나 지금 자식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도대체 나이 마흔이 되도록 어떤 인성을 키워왔길래 보통 사람으로선 상상도 못할 ‘땅콩 회항’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우행을 저질렀을까. 조 회장은 결국 자식교육을 잘못 시켰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대한항공의 이미지는 이미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창업자 조중훈 회장이 미8군에서 나오는 폐차를 가져다 고쳐 팔아 일군 대한항공의 피와 땀과 눈물의 역사는 한갓 월광에 물든 신화가 되고 말았다. 처칠은 영국의 전통적인 명문 가문이지만 자식교육에 실패해 자랑스러운 가문의 대를 잇지 못했다.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조 회장은 못된 뿔만 웃자란 자식에게 인간의 도리, 세상 사는 이치 같은 ‘사람 만드는 교육’을 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영 미덥지가 않다. 조 회장은 딸의 경영 복귀와 관련해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여론이 잠잠해지면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이다.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저열한 인격의 밑창을 고스란히 보여준 안하무인격의 인물을 연간 매출액 11조원이 넘는 국적 항공사 핵심 자리에 다시 앉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치는 것 자체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자식은 부모의 지나간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자식을 보면 부모를 알 수 있다. 부모의 일그러진 욕망이 자식에게 투사된 것은 아닌가. 국격까지 만신창이로 만든 대한항공은 지금 ‘반국가적’ 기업으로 낙인찍힐 만큼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대한항공이라는 이름을 회수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명령일하 황제경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대책 같지 않은 대책만 늘어놓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반성 없는 재벌의 오만과 독선을 눈앞에서 보면서 반기업 정서의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만 높이는 것은 공허하다.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는 혁명가 루쉰의 권고는 1920년대 격변의 중국에만 해당되는 게 아닌가 보다. 21세기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니 자괴감마저 든다. 대한항공은 지금 대형 항공사고로 얼룩진 1990년대 후반보다 더 심각한 위기라고 한다. 재벌 3세의 막장 행태를 여지없이 드러낸 ‘조현아 사건’은 우리 국민의 자존감을 짓밟은 정신적 테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항공참사보다 더 충격적이다. 결코 안이하게 다룰 사안이 아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근본부터 되돌아 봐야 마땅하다. 모든 문제의 한복판에 수명 다한 오너 일가 세습경영 체제가 놓여 있음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제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조 전 부사장보다 더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그룹 총수로서 제대로 된 위기관리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조 회장이다. 지금이야말로 사즉생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법적 단죄와는 별개로 실패한 인사로 판명난 조 전 부사장이 경영에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천명하라. 그리고 조 회장도 스스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 전대미문의 이 거대한 추문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 버리면 언제든지 기회는 다시 온다.
  • 연말 클래식 무대의 ‘메시아’

    연말 클래식 무대의 ‘메시아’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가 연말 클래식 공연계를 휩쓸었다. 소년 또는 성인 합창단들이 메시아의 거의 모든 곡을 부르거나 대표곡들을 부르는 다양한 공연이 관객을 찾아간다. 국립합창단은 메시아 53곡 가운데 46곡을 들려준다. 예술감독 구천의 지휘 아래 소프라노 박미자, 알토 양송미, 테너 이원준, 바리톤 정록기 등 국내 정상의 성악가들이 메시아의 메시지를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바로크음악 전문 연주단체인 바흐솔리스텐서울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22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만~5만원. (02)587-8111 서울시합창단은 메시아 중 ‘깨끗케 하시리라’ ‘그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벼워’ ‘우리를 위해 나셨다’ 등 세 곡을 선사한다.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열리는 정기연주회에서다. 아서 설리번의 ‘잃어버린 화현’, 테너 박기천의 ‘생명의 양식’ ‘하느님의 어린양’, 남성 6인조 퍼니밴드와 홀리엠핸드벨의 캐럴 등 다양한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20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1만~7만원. (02)399-1777 천상의 목소리를 자랑하는 소년 아카펠라 합창단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은 메시아 중 가장 유명한 ‘할렐루야’를 부른다. 최정상의 솔리스트들을 포함한 24명의 소년이 감동의 무대를 연출한다. 합창단은 1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 완벽한 화음으로 세계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다. 소년 소프라노의 진수를 보여 주는 모차르트 ‘자장가’, 브람스 ‘자장가’, 비발디 ‘글로리아’, 카치니 ‘아베마리아’ 등 주옥같은 클래식 명곡도 들려준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징글벨’ 등 크리스마스 캐럴은 성탄절 분위기를 더한다. 19~20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만 3000~11만원. 22일 오후 7시 30분, 용인포은아트홀, 3만~8만원. (02)523-5391 메시아는 하이든의 ‘천지창조’, 멘델스존의 ‘엘리야’와 함께 세계 3대 오라토리오로 불린다. 헨델이 아일랜드 공작 류테난트 경의 의뢰를 받아 1741년 8월 22일부터 9월 14일까지 3주간 작곡했다. 독일적 중후함, 이탈리아적 명쾌함, 프랑스적 장려함, 영국적 기품을 동시에 아울렀다는 평을 받는다. 1750년 공연 당시 영국 국왕 조지 2세가 ‘할렐루야’를 합창할 때 큰 감동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난 이후 할렐루야 합창 대목에선 청중이 모두 기립하는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언과 탄생’ ‘수난과 속죄’ ‘부활과 영원한 생명’ 3부로 구성돼 있다. 2부 마지막에 ‘할렐루야’ 코러스가 등장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노홍철 음주운전 적발, 프로그램서 하차 후 자숙의 시간 갖는다

    노홍철 음주운전 적발, 프로그램서 하차 후 자숙의 시간 갖는다

    8일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방송인 노홍철은 이날 새벽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됐다. 노홍철은 1차 호흡 측정을 거부한 후 2차 요구를 하는 경찰에게 채혈 검사에 응했으며, 검사결과는 오는 17일 이후 나온다. 한편 노홍철은 속죄의 의미로 출연중인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 노홍철은 공식입장을 통해 “앞으로 자숙의 시간을 가지며 반성하고 또 반성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시청자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고 전했다. 사진=서울신문DB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소외 이웃 돌보고 회개… 제2의 개혁 계기로”

    “소외 이웃 돌보고 회개… 제2의 개혁 계기로”

    요즘 개신교계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명제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독일 신학자 마르틴 루터(1483~1546)가 1517년 10월 31일 속죄의 효력에 관한 ‘95개 조문’을 발표, 프로테스탄트(개신교) 탄생으로 이어졌던 개혁운동. 종교개혁 500주년을 3년 앞둔 지금 한국 개신교계에 ‘제2의 종교개혁’을 이루자는 목소리가 무성하다. 교단 연합기관과 교회 연합체, 교단들이 500주년 사업들을 앞다퉈 마련해 개혁과 도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은 연합기관 차원의 대표적 사안. 창립 90주년을 맞은 NCCK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교회의 연합과 갱신에 주력하기로 했다. 교회 개혁의 기치를 걸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일에 집중한다는 계획 아래 ‘한국교회 10대 개혁과제’도 세웠다. 최근 NCCK 차기 총무 단일후보로 확정된 김영주 현 총무는 “한국교회의 개혁 과제를 선정해 추진하면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을 준비에 우선 힘쓰겠다”고 밝혔다. 기독교한국루터회는 루터의 신앙 정신에 따라 설립된 교단답게 일찌감치 500주년 기념사업에 나섰다. 루터회는 최근 정기총회를 열고 루터 전집 및 관련 도서를 제작하는 한편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대회 ▲종교개혁지 탐방 ▲500주년 기념교회 설립 ▲500주년 기념 루터연구지 발행 ▲한·일 루터란 연합예배를 포함해 12개 사업을 추진할 것을 결의했다. 특히 한국교회의 제2의 종교개혁을 돕기 위해 루터의 저작과 그의 신학과 사상을 다룬 양질의 도서들을 우선 제공할 계획이다. 현재 기독교 출판사인 ‘컨콜디아사’를 통해 출판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하디1903성령한국’을 통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준비하면서 성령운동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감리회는 하디 선교사의 회심 110주년 기념과 함께 지난 5년간의 감리회 사태를 회개하고 종교개혁 500주년을 원년으로 새로운 감리회의 미래를 열기로 했다. 한편 예장 합동은 최근 총회에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을 예장고신 등 개혁신앙에 동의하는 교단들과 함께 준비·시행키로 결정했다. 예장 합동은 특히 기념사업을 범교단적 사업으로 진행하기 위해 별도 위원회 구성 없이 임원회에서 주관키로 해 주목된다. 한편 ‘2017 종교개혁 500주년 성령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세계성령중앙협의회는 사전 행사로 오는 30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한국교회 개혁과 갱신 대토론회’를 연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의 개혁·갱신을 대사회적으로 선언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이에 앞서 개신교 16개 단체가 모인 월드기독교총연합회(월기총)도 28일 오후 충남 공주 평화의동산에서 종교개혁 500주년과 관련한 연합대성회를 열 예정이다. 월기총은 이날 연합성회를 통해 1907년 평양의 대부흥운동을 재조명한 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까지 제2의 종교개혁에 초점을 맞춘 전국 순회 연합성회를 열어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대형교회를 지양한 교회 개혁운동을 벌이고 있는 생명평화마당도 ‘작은 교회 박람회’ 행사를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까지 이어가기로 했다. ‘작은 교회 박람회’ 준비위 측은 이와 관련, “500년 전 개혁을 말했던 교회가 이제 개혁의 대상이 됐다”며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한국 교회가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작은 교회가 개혁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이준석 “퇴선방송 지시”… 승무원들 진술 엇갈려

    이준석 세월호 선장이 법정에서 침몰 당시 퇴선 명령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상황을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방청석의 유가족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 임정엽)는 7일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재판에서 이 선장을 피고인 신문했다. 검찰은 이 선장이 퇴선 명령을 내렸는지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퇴선 명령 여부는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선장은 검찰 수사 등에서 퇴선 방송을 이등 항해사에게 지시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경위에 대해서는 계속 오락가락하고 있다. 해경 경비정이 10분 후에 도착한다는 말을 듣고 5분 후에 퇴선 방송을 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가 30분 후 경비정 도착 소식에 25분 후 퇴선 방송, 15분 후 도착 소식에 5분 후 퇴선 방송을 지시했다고 하기도 했다. 일부 승무원은 이 선장이 퇴선 방송을 지시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승무원은 책임을 피하려고 거짓말을 한 것 같다고 말하는 등 승무원 사이에서도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검찰이 제시한 진술 조서에서 이 선장은 “지금까지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면 그 많은 생명을 내가 죽였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이라도 깊이 반성하고 속죄하는 의미로 사실대로 말씀드린다”면서 “평생 단원고 학생 등의 유가족에게 속죄하겠다”며 승객 구조를 하지 않은 사실 등을 시인했지만, 법정에서는 돌변했다. 또 이 선장은 신문 내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사고 당시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공황 상태였다”는 등의 답변을 반복해 야유를 받기도 했다. 지속적인 발뺌에 재판을 지켜보던 한 유가족은 “살인마, 300명을 죽인 악마”라고 외치며 오열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獨, 50여개 수용소 추모·교육 공간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獨, 50여개 수용소 추모·교육 공간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독일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 다양한 방법으로 2차대전 희생자들에게 사죄의 뜻을 나타냈다. 말에서 그치지 않고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조치들이 이어졌다. 그 한 가지가 남아 있는 수용 시설이나 관련 시설을 추모와 교육의 공간으로 바꿔 피해자인 유대인과 가해자인 독일인의 후손들이 역사를 정확하게 보고 판단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독일 전역에는 50개가 넘는 유대인 수용소 추모관 및 관련 박물관이 건립돼 있다.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홀로코스트 추모공원과 테러의 토포그라피 박물관은 진심으로 속죄하고 미래 세대가 바른 역사의식을 갖도록 노력하는 독일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브란덴부르크 문 남쪽으로 5분 거리에 있는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은 6000여평에 달하는 대규모 부지에 관처럼 생긴 2711개의 콘크리트 추모비가 세워져 있는 장소다. 미국인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이 설계하고 2004년 완공된 이곳은 과거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평균 무게 8t에 달하는 콘크리트 추모비들이 높낮이를 달리하며 줄지어 서 있어 공동묘지를 마주하는 듯 비장함을 안겨준다. 베를린의 심장부에 이 의미 있는 장소가 생기기까지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는 것 역시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다. 통일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대규모 추모시설 건설을 주장한 사람은 저널리스트인 레아 로스와 역사학자 에버하르트 예켈이다. 베를린이 포츠다머광장을 중심으로 급속한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던 1990년대 초반이었다. 유대인박물관이 논란을 거듭하며 건설되던 때다. 이미 유사한 시설이 많은 상황에서 대규모의 유대인 추모시설을 세울 바에야 그 돈을 복지에 사용하라는 반대론자들이 많았다. 예켈은 반대하는 이들을 향해 “새 시대를 준비하는 지금이야말로 역사 앞에서 진실하고 겸허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격렬한 논쟁을 거친 끝에 정부와 의회는 홀로코스트 추모공원 건설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독일 정부는 성명에서 “600만명의 유대인을 추모하는 시설을 통일독일의 수도에 건립하는 것은 독일은 물론 세계가 이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우리가 담당해야 할 역사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추모공원이 자리한 곳은 과거 히틀러의 최측근이었던 나치 선동가 괴벨스의 집무실이 있었던 곳이다. 1994년 현상설계가 진행돼 아이젠먼이 선택됐다. ‘테러의 지형학’으로 번역할 수 있는 테러의 토포그라피 박물관(Topographie des Terrors)은 1933~1945년 나치 비밀경찰 게슈타포, 나치 친위대 슈츠슈타펠(SS), 제국 중앙보안국의 헤드쿼터가 있던 자리에 있다. 히틀러 치하의 베를린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곳이었다. 과거 프린츠 알프레히트 거리로 불리던 니더크리슈너로에 있는 이곳은 2차 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됐고, 일부에 베를린 장벽이 지나가면서 오랜 세월 폐쇄됐었다. 유대인들에게 큰 공포를 안겼던 장소가 조심스럽게 역사의 전면으로 등장한 것은 42년이 지난 1987년. 베를린시 수립 750년을 맞은 행사의 일환으로 당시 고문실로 쓰였던 지하실을 개방했다. 1989년 동서독 학자들의 공동 연구를 토대로 그 일부에 나치의 범죄를 기록한 야외 전시실이 마련됐고 2년 뒤에는 이곳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단도 설립됐다. 그 위쪽으로 건축가 페터 춤토르의 설계로 2010년 완공된 박물관에서는 각종 학술행사와 전시회가 열린다. lotus@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베를린 유대인박물관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베를린 유대인박물관

    나치의 광적인 반(反)유대주의는 60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20세기 역사에서 인류가 가장 부끄럽게 여기는 참혹한 범죄에 대해 가해자인 독일은 다양한 방식으로 참회를 계속해 오고 있다.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은 과거에 대한 독일인들의 속죄의 뜻을 담은 대표적인 장소일 뿐 아니라 건축적 의미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장소다. 2001년 9월 정식 개관에 앞서 비어 있는 상태에서도 전 세계에서 수많은 방문객이 찾았고, 지금은 베를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방문지로 꼽힐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명소다. 린덴스트라세 14번지에 있는 이 박물관은 독일의 유대인들이 떠안아야 했던 참담한 역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이 왜 중요한 가치인지, 올바른 역사의식이란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다. 말없이 서 있을 뿐인 건물이 이런 철학적이고 어려운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비극적 역사의 무게감과 엄숙함을 시각적, 공간적 언어로 완벽하게 표현한 건축가는 다니엘 리베스킨트다. 폴란드 유대계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교육받은 그가 설계한 포스트모던 양식의 건축물은 외형과 외부 장식, 내부 디자인의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심오하고 무거운 철학적 개념들을 담고 있다. 리베스킨트는 2001년 9·11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추모공원 ‘그라운드 제로’의 마스터플랜 설계자로 세계적 명성을 확인한 바 있다. 하지만 유대인박물관 설계공모전이 열린 1989년까지만 해도 그는 실현 불가능한 건축 설계와 드로잉을 하는 ‘언빌트’ 건축가로 알려졌었다. 이스라엘에서 음악을 공부한 뒤 미국과 영국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음악을 드로잉의 모티브로 삼기도 하고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비정형의 드로잉을 통해 자신의 건축 철학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름을 알렸다. 상상력 가득한 그가 첫 번째로 도전한 설계 공모전이 베를린의 유대인박물관이다. 리베스킨트가 설계한 유대인박물관은 전형적인 박물관과는 시작부터 다르다. 티타늄과 아연 합금으로 뒤덮인 이 건축물에는 입구가 없다. ‘리베스킨트 빌딩’이라고 불리는 박물관에 들어가려면 바로 옆에 있는 올드 빌딩, 즉 베를린박물관 건물을 통해야 한다. 바로크양식의 베를린박물관은 과거에 프로이센의 법원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건물에 들어서면 정원 쪽으로 탁 트인 휴식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지그재그로 된 강철재와 유리로 된 천장을 얹은 ‘유리정원’은 2007년 리베스킨트의 설계로 완성됐다. 기념품 판매소 앞쪽으로 계단실이 있다. 60도로 급격하게 경사진 이 계단을 내려가면 긴 복도가 나오고 어느덧 유대인박물관의 전시 공간에 도착하게 된다. 박물관 안내를 해 준 독일인 가이드 카르스텐 크리거는 “유리정원은 18세기에 지어진 베를린박물관 건물과 21세기에 지어진 포스트모던 양식의 유대인박물관 건물을 공간적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급격한 경사에 이어지는 긴 복도는 방문객들이 시간여행을 하도록 이끌어 주는 건축적 장치”라고 설명했다. 박물관 건물은 나치의 대학살로 희생된 수백만 유대인의 비극적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치들로 가득하다. 건물의 지그재그형 구조는 유대인의 표식인 ‘다윗의 별’이 부러진 모양이다. 그 모양은 조감도로 봤을 때 확연히 나타나지만 건물 내부를 관람하는 동안에는 미로처럼 끝없이 흩어지는 좁다란 복도와 어디쯤인지 가늠할 수 없는 야릇한 공간감으로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리베스킨트는 건물 청사진을 발표할 때 박물관을 ‘선(線) 사이’라고 명명했었다. “사고와 조직, 관계에서 어긋나는 두개의 선을 표현하고자 했다. 똑바로 뻗어 있는 하나의 선은 수많은 조각으로 날카롭게 부서지고, 다른 하나는 우여곡절이 많지만 정체성을 이어 가는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를 상징하는 선이다.”(리베스킨트, 1998) 박물관의 외벽과 창문, 그리고 내부에는 무수히 그어진 날카로운 선들이 교차한다. 금속 외벽의 차가움과 난도질당한 듯 잘라진 선들은 보기에도 섬뜩하고 긴장감을 높인다. 무의미해 보이는 선들은 마구잡이로 그어진 게 아니다. 2차 대전 전에 베를린에서 살았던 독일인과 유대인 유명 인사들의 거주지를 연결해 얻어낸 매트릭스다. 리베스킨트가 이 건축물의 구조적 요소로 택한 기본 개념은 ‘공백’(void)이다. 단절된 역사, 사람들이 떠난 자리, 재가 돼 버린 인간성 등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모든 종류의 공백이 건물 곳곳에서 실물로, 느낌으로 다가온다. 2층 구석에 있는 ‘공백의 기억’은 공백을 극단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공간이다. 노출 콘크리트 벽이 높이 서 있는 기다란 공간은 원래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으로 설계된 것인데 지금은 바닥에 이스라엘의 조각가 메나슈 카디슈만(1932~)의 작품 ‘샬레헤트’(낙엽이라는 뜻의 히브리어)가 설치돼 있다. 쇠로 만든 얼굴 조각 1만개가 바닥에 깔려 있다. 각기 다른 크기에 다른 표정인데 그 표정은 한결같이 불행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 위를 지나가면 쇠로 만든 얼굴들이 서로 부딪치며 삐거덕삐거덕 괴상한 소리를 낸다. 감옥에서 인간성을 말살당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의 심정이 어땠을지를 상상하게 된다. 박물관의 미로들은 세 개의 축을 따라 유대인이 처했던 비극적인 상황을 체험하도록 관람객을 이끈다. 30도의 완만한 경사로 올라가는 긴 복도는 ‘연속성의 축’이다. 기나긴 베를린의 역사는 미로처럼 계속되다가 무질서하게 갈라진 좁고 긴 공간들과 함께 사라진다. 마치 유대인들이 어느 순간 도시에서 사라졌던 것처럼. 또 다른 축은 ‘방랑의 축’이다. 그 끝에 있는 문을 열고 나가면 ‘추방의 정원’이 있다. 12도의 경사로 비스듬히 세워진 49개의 콘크리트 기둥 사이를 걸어가다 보면 사람들은 방향감각을 잃고 만다. 독일에서 추방당해 불안한 마음으로 낯선 땅에 도착한 유대인들이 느꼈던 심정을 표현하고자 했던 리베스킨트는 이곳이 ‘역사에서의 조난’을 상징한다고 표현했다.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알지 못하는 천진한 아이들은 기둥 사이를 숨바꼭질하듯 돌아다닌다. 콘크리트 기둥 위에는 희망을 상징하는 러시안졸참나무가 심어져 있다. 마지막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축’을 남기고 독일인 가이드는 “백 마디 설명을 듣는 것보다 직접 느껴 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는 총총 사라졌다. 그 이유를 곧 알게 됐다. 복도에 설치된 장에는 비참하게 학살당한 사람들이 지녔던 물건들이 추억과 함께 전시돼 있고 좁은 복도 끝에는 무거운 철문이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홀로코스트 타워’다. 묵직한 철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히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20m 높이의 노출 콘크리트 탑은 출구도 없고 창문도 없다. 절대 어둠에 놓인 공간을 밝히는 것이라곤 천장 쪽으로 살짝 열린 창을 통해 들어오는 가느다란 광선이 전부다. 평상시에는 이 창문을 통해 박물관 뒤편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도 들린다고 한다. 자유와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절망과 공포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하게 된다.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복도, 벽에 가로막힌 계단들을 지나면서 유대인들의 상처와 분노, 고통, 그리고 비틀린 역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서울광장] “가만히 있으라” vs “잊지 않겠다”/문소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가만히 있으라” vs “잊지 않겠다”/문소영 논설위원

    서울 광화문에는 앙상하게 뼈와 가죽만 남은 김영오씨가 광복절인 8·15까지 33일째 단식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 4월 16일 여객선 세월호를 타고 학교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 유민 학생의 아빠다. 그의 가슴에는 ‘세월호 유가족 특별법 제정 단식 33일’이, 등에는 ‘대통령님! 힘없는 아빠 쓰러져 죽거든 사랑하는 유민이 곁에 묻어주세요’라는 글귀가 달렸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개월이 되는 “8월 16일까지 세월호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관을 짜놓고 여기서 쓰러져 죽을 때까지 단식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소식에 미국 학자 놈 촘스키는 지난 14일 그에게 편지를 보내 “당신의 고귀한 행동이 당연히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수사권·기소권을 가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그가 목숨 걸고 단식하지만, 주요 뉴스로 다뤄지지 않는다. 왜일까. 여야 간 이견도 있지만,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결정적 역할을 할 여당 의원들이 7·30 재·보선 이후 민심 반영에 관심이 없는 탓으로 본다. 광화문에서 농성과 단식을 하는 유가족에게 “노숙자 같다”거나 “제대로 단식했으면 벌써 탈이 났을 것”이라며 모욕을 줬다. 유족들에게 “당신들 가만히 있으라”고 호통치고,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규정하며 “국가유공자보다 더 많이 보상받으려 한다”는 말도 퍼뜨렸다. 유가족의 단식농성에 박근혜 대통령도 무심해 보였다. “유병언을 잡으라”고 3차례나 검경합동수사본부를 압박했던 박 대통령은 세월호특별법 제정은 지난 5월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언급한 이후 침묵했다. 3개월 지난 11일에서야 “정치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냐”고 호통쳤지만, 유가족의 반발로 여야 간 세월호 특별법 합의가 무산돼 질타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비난도 받는 한국 대통령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유병언 수사 헛발질과 윤 일병 폭행살인치사와 관련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호통친 지 7시간 만에 경찰청장과 육참총장이 사표를 제출하지 않았나 말이다. 만약 박 대통령이 유가족이 환호할 만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신호를 여당에 보냈더라면, 입법권이 국회의 일이지만 여당은 결코 그 신호를 무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후 지난 4월 말 방한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그의 관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검은색 양복을 입어 세월호 참사를 위로한다는 인상을 한국인에게 주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화사한 하늘색 상의를 입어 대조를 이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 방한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희생자를 기억하고 있다”고 위로했고, 15일 대전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서는 왼쪽 가슴에 세월호를 추모하는 노란 배지를 달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광화문 천막 농성장 강제철거가 거론됐을 때 강우일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은 “눈물 흘리는 사람을 내쫓고 사랑의 시복식을 열 수 없다”고 옹호했고, 농성장 고수를 외치던 강경한 세월호 가족은 2개동을 제외하고 나머지 천막을 모두 철거하겠다고 화답했다. 권력 있는 자가 고통받는 자를 관용하면 그 관용은 소통의 시작이 된다는 것을 알리는 화답이었다. 어제는 69회째 광복절이었다. 일제 때 고통받았던 한국인 위안부와 강제징용자들은 69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사과와 배상은 끝났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한국의 발전에 큰 도움을 줬다고 주장한다. 피해자인 우리는 그 태도가 몰염치하고 뻔뻔하다고 느낀다. 때문에 정부는 미국의 압력에도 아베 정부와의 정상회담도 거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역시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측면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정부를 돌아보면, 피해자가 충분히 납득하고 용서할 때까지 정부가 최선을 다해야 ‘화답’이 가능하다. 유가족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윽박지를 게 아니라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세월호 유가족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것이 세월호 참사가 교통사고라고 치더라도, 사고 이후 정부가 잘못 대처해 304명의 대형 인명피해로 키운 데 대한 속죄가 될 것이다. symun@seoul.co.kr
  • 일제 전범이 돼 조국에 오지 못한 조선 청년들 이야기

    일제 전범이 돼 조국에 오지 못한 조선 청년들 이야기

    일본 학자 우쓰미 아이코는 1975년 인도네시아에서 독립영웅으로 추대된 일본인 3명 중 1명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독립영웅이 된 포로감시원 출신 조선 청년 양칠성의 죽음은 그때까지도 한국 가족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창씨개명한 이름으로 남아 있었던 탓이다. 우쓰미가 찾아낸 역사적 진실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역사와 너무 달랐다. KBS 1TV ‘KBS 파노라마’는 4부작 ‘전쟁과 일본’을 방영한다. 1편 ‘전범이 된 조선 청년들’은 1일 밤 10시에 전파를 탄다. 1942년 한반도의 젊은이들은 일본군에 징병되거나 징용으로 끌려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징병과 징용을 거부하면 가족의 생계가 달린 배급이 끊기는 상황은 17살이던 이학래를 비롯한 조선 청년 3000여명을 전쟁터로 몰아넣었다. 이학래는 타이~미얀마 철도 건설 현장 근처의 수용소에 감시원으로 배속됐다. 전쟁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열대 기후와 열악한 환경 탓에 많은 포로들이 목숨을 잃고, 전쟁이 끝난 뒤 감시원들은 가혹한 노동 강요와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범 판결을 받는다. 조선인 포로감시원 129명은 BC급 전범이라는 낙인을 받았고 그중 12명이 사형당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전쟁이 끝나도 오명을 쓴 채 조국에 돌아오지 못한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간다. 8일에는 2편 ‘1937, 난징의 기억’, 15일에는 3편 ‘히로히토와 종전조서’를 방영한다. 22일에는 4편 ‘망각하는 나라, 속죄하는 나라’를 통해 전범 국가인 독일과 일본을 집중 비교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사설] 정쟁 치닫는 세월호 국정조사 유족만 속탄다

    세월호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국정조사가 정쟁으로 변질되고 있다. 국회 국정조사 특위 첫날부터 졸거나 유족에게 언성을 높이던 의원들은 끝내 ‘이전투구’의 본성을 숨기지 못했다. 엊그제 특위에서는 ‘VIP 발언’이 문제가 됐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은 “VIP(대통령)가 그걸(현장 동영상) 좋아하니까 그거부터 하라고 청와대가 지시했다”고 하지도 않은 말을 지어냈다. 그러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김 의원의 위원 사퇴를 요구하며 조사를 거부하는 소동을 벌였다. 상대를 공격하려고 사실을 왜곡하고, 왜곡을 빌미로 조사를 보이콧하는 삼류 정치의 단면을 또 한 번 보여준 것이다. 사고 직후 여야 의원들은 전에 없이 정쟁을 중단하고 사고 수습에 힘을 모으자며 손을 맞잡았다. 민생법안과 안전법안을 조속히 처리하는 데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했다. 그게 불과 두 달여 전이다. 본 모습으로 돌아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의 진상을 밝히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보자는 국정조사에서 국민과 유족을 먼저 생각하는 그 어떤 진지함도 찾아볼 수 없다. 아직도 세월호는 바닷속에 있고 11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인데 말이다. 우리가 바라는 국정조사는 이런 게 아니다. 그동안 수사를 통해 해경 등의 무능과 직무 태만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구조에 실패한 기관들은 속죄하는 심정으로 과오를 낱낱이 밝혀 다시는 이런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국정조사에 나온 책임자들은 최선을 다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항변하고 있다. 의원들 또한 사고를 일으킨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찾아내고 앞으로 개선해 나가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여야가 별개일 수 없다. 그런데 싸움이나 하고 유족들에게 막말이나 하는 지금 이런 꼴은 도대체 뭔가. 진상 규명보다 자신들의 목적을 관철하는 데 더 매달리는 의원들의 행태를 지켜보는 유족들의 절망과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를 한낱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킨 데 대한 서러움에 눈물도 흘렸다. 이래서는 국가 개조나 안전한 대한민국은 다 헛구호가 될 것임이 자명하다. 사고 이후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무사안일했던 몇 달 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자조 섞인 한탄도 나온다. 여전히 우리는 정신을 못 차렸다. 이제부터라도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국회 또한 국민을 먼저 생각하겠다던 다짐을 되새겨 보기 바란다.
  • [장관에게 힘 실어주자] 마주 보며 토론하는 미국…고개 숙여 받아적는 한국

    [장관에게 힘 실어주자] 마주 보며 토론하는 미국…고개 숙여 받아적는 한국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 이후 축구대표팀 감독이 8차례나 바뀌며 혼선을 겪었다. 축구행정 책임자들이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차근차근 노력하기보다는 국제대회 때마다 눈앞에 닥친 비판을 피하기 위해 감독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가 초래한 결과였다. 차범근 전 감독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기간 중 현지에서 해임되기도 했다. 축구대표팀 감독 교체와 장관 경질은 불행히도 상황만 놓고 보면 서로 다르지 않다. 장관이 제 역할을 다하려면 충분한 재임 기간이 필요하다. 부처 수장으로서 구상하고 있는 국가사업을 예산안에 반영했는데 장관이 갑자기 바뀐다면 계획을 세운 장관 따로, 집행하는 장관 따로가 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보통 장관이 업무 파악을 하는 데 6개월 정도 걸린다는 점에서 장관 재임 기간이 최소 2년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금처럼 장관 자신이 6개월짜리인지, 1년짜리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선 조직을 장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장관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노무현 정부 때 11.4개월, 이명박 정부 때 18.9개월이었다. 현 정부의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은 기어코 3개월짜리 ‘단명 장관’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말았다. 충분한 임기를 보장한다는 것은 신중하고 철저한 인선을 전제로 한다. 지금처럼 국무총리, 장관 선임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선 기대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미국에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버락 오바마 1기 행정부 4년간 국무장관을 지냈고 존 케리 국무장관이 이변이 없는 한 오바마 2기 행정부 4년 동안 국무장관을 지낼 거라는 게 상식이다. 이는 장관 임명 전에 이미 예측 가능할 정도로 철저한 인사 검증을 거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독일에서 정부 기관장을 선임하는 방식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독일 국책연구기관 원장의 경우 종신직이다. 통상 40~50대 연구자가 원장이 되기 때문에 20년 이상 원장으로 일하는 게 일반적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연구자가 기관장이 되고 종신직이다 보니 장기 전략을 세우고 집행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후임 원장을 정하기 위해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적임자를 선정하기 때문이다. 검증 기간도 3년에 이른다. 장관 임기가 짧은 것은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리거나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갈 때마다 개각이라는 카드를 꺼내는 관행과 연관된다. 한마디로 장관의 역할 중 하나가 ‘속죄양’이기 때문에 임기가 길 수도 없고 특별한 전문 역량도 의미가 없다. 6월항쟁과 직선제 개헌 등으로 국내 정세가 극도로 혼란스러웠던 1987년에 내무부 장관이 1년 동안 무려 4명(정호용, 고건, 정관용, 이상희) 바뀐 게 단적인 예다. 기획재정부는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 기능을 통합한 뒤 예전에는 부처별로 운용에 자율성이 강했던 기금 사업까지 시시콜콜 간섭할 정도로 독주를 거듭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심지어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토론을 통해 분야별 예산 총액을 정하도록 돼 있는 국가재정전략회의조차 구색에 그칠 뿐 거의 모든 예산 배분이 청와대와 기재부 손에 좌지우지된다. 또 장관이 필요해서 자신의 부처에 별도의 부서를 만들려고 해도 조직 부문이 안행부가 관할하는 총액인건비 제도 등에 묶여 있는 탓에 쉽지 않다. 예산이든 조직이든 장관이 힘을 쓸 수 없는 구조다. 심지어 과장급 인사 발령에까지 청와대 입김이 영향을 미치면서 장관은 말 그대로 허수아비가 돼 버렸다. 청와대와 정치권에서 구상한 정책이나 선거공약을 그대로 받들어 실행할 뿐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하다. 대통령과 장관의 관계부터 고쳐야 장관에게 권한과 책임이 부여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미국 백악관 참모들을 다룬 정치드라마 ‘웨스트 윙’을 즐겨 본다는 말을 주변에 한 적이 있다. 이 드라마에선 대통령과 백악관 참모들, 장관들이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책상에 걸터앉아 허물없이 토론하는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가 실제 백악관의 풍경이기도 하다. 노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도 국무위원들끼리 토론을 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참모들과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고 토론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국무회의 모습은 박근혜 대통령이 하나하나 지시하고 장관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수첩에 받아 적느라 바쁘다. 대통령이 묻지 않으면 특별히 대답할 필요가 없다. 정부세종청사에서 급히 올라온 장관이 열심히 ‘받아쓰기’만 하다가 내려가는 행태다. 김상묵 서울과학기술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정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이 지지만 대통령이 나라의 모든 일을 혼자 다 할 순 없으니 총리와 장관이 이런이런 일은 대신 맡아 달라고 명확히 분담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향수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너무 자세하게 일일이 지시하고 다그치면 장관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고 지적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돌아온 아트사커 “어게인 1998”

    돌아온 아트사커 “어게인 1998”

    “프랑스, 미친 것 아냐?”, “98년 우승할 때의 냄새가 난다.” 프랑스가 지난 21일 스위스와의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E조 2차전을 5-2 승리로 장식하자 국내 팬들이 보인 반응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10계단 이상 앞선 스위스를 사정없이 두들긴 결과였다. 16년 전 ‘레블뢰 군단’의 주장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디디에 데샹 프랑스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당시와 지금의 라커룸을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그때와 같은 분위기가 있다”면서 “우승을 하고 싶은 하나의 생각을 갖고 있다”고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아트사커의 부활이라 할 만했다. 2006년 독일대회에서는 준우승했지만 세대교체가 절실함을 깨달았고, 4년 전 남아공대회에서는 내분으로 16강 좌절의 눈물을 삼켰던 프랑스가 확 달라졌다. 더욱이 이번 대회 유럽예선에서 탈락 위기에 몰렸다가 우크라이나를 꺾고 구사일생으로 본선 티켓을 따낸 터라 극적인 반전의 감격은 더욱 컸다. 마침 이날은 4년 전 대표팀 내홍이 처음 바깥에 알려져 망신살이 뻗쳤던 날이었다. 전반 9분 스위스에 불운이 깃들었다. 중앙 수비수 스티브 폰베르겐이 프랑스 공격수 올리비에 지루와 경합하다 지루의 발에 안면을 강타당한 뒤 필리페 센데로스로 교체됐다. 지루는 이 틈을 타 전반 17분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슛으로 선제골을 넣었다. 프랑스의 월드컵 통산 100번째 골이었다. 1분 뒤에는 블레즈 마튀이디가 왼발 슈팅으로 골문을 갈라 상대 수비진을 무너뜨렸다. 이어 지루는 자로 잰 듯한 크로스를 반대편에서 달려들던 마티에 발뷔에나에게 보내 세 번째 골을 도왔다. 후반 22분 카림 벤제마가 페널티킥 실축을 만회하는 ‘속죄포’로 이번 대회 개인 세 번째 골을 넣었고, 6분 뒤에는 무사 시소코가 벤제마의 패스를 건네받아 골 폭죽을 터뜨렸다. 뒤늦게 추격에 나선 스위스는 후반 36분 블레림 제마일리의 프리킥 골에 이어 42분 그라니트 자카가 수비 뒷공간으로 날아온 패스를 논스톱슛으로 연결해 그물을 흔들었지만 더 추격할 시간이 없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노란 리본’이 피었습니다…먹먹하게도

    ‘노란 리본’이 피었습니다…먹먹하게도

    전북 무주에 걷기 좋은 강변길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가는 길이었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조붓한 강변길들은 나무랄 데 없이 서정적이었다. 한데 정작 마음을 빼앗아 간 건 적상산의 피나물 군락지였다. 줄기를 자르면 피처럼 선홍빛 액체가 흐른다는 들풀. 해마다 이른 봄이면 피나물은 노란 꽃을 피운다. 키 낮은 들풀인 까닭에 주변의 커다란 수목들이 나뭇잎을 내기 전 서둘러 꽃을 피우고 자손을 퍼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적상산의 그늘진 북사면은 온통 노란빛 일색이다. 응달을 좋아하는 피나물은 이른 아침 꽃술을 접었다가 사위가 밝아지면 연다. 새벽녘, 푸른 기운 사이로 노란 꽃들이 무리 지어 선 모습, 노란 리본을 보는 듯 가슴이 먹먹해지는 풍경이다. ●적상산 자락에 피나물 군락지… 노란 꽃 줄기 자르면 붉은 액체가 예부터 무주는 전북에서도 외진 곳에 속했다. 무주와 진안, 장수 등 외진 지역들의 머리글자를 합쳐 ‘무진장’이라 부르기도 했다. 물론 요즘은 달라졌다. 잘 뚫린 도로 덕이다. 그런데도 여태 도시로부터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풍경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금강을 따라가는 강변길이 그렇다. 무주는 금강이 휘돌아 가는 고을이다. 강변을 따라 조붓한 길들이 많다. 예컨대 ‘벼룻길’이 그렇다. ‘벼루’는 ‘벼랑’을 이르는 현지 사투리다. 그러니 벼룻길은 강가의 가파른 비탈 사이로 난 길이라고 보면 틀림없겠다. 지금은 길로서의 기능을 잃은, 그러나 오래전엔 무수히 많은 이들이 분주히 오갔을 그 길들을 이어 붙인 게 ‘예향천리 금강변 마실길’이다. 부남면에서 서면마을까지 총 19㎞ 거리다. 그 가운데 잠두마을 옛길과 학교길을 걸었다. ●‘반딧불이의 마을’ 잠두 숲길 걷노라면… 산새소리·맑은 공기에 취해 잠두길은 잠두마을 강 건너에 뚫린 숲길이다. 잠두마을 앞 잠두1교에서 출발해 잠두2교 나그네가든까지 얼추 2㎞쯤 된다. 자박자박 걸어도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잠두(蠶頭)는 산 위에서 바라본 지세가 누에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해마다 반딧불이 축제가 열릴 만큼 무주에서도 청정 지역으로 꼽힌다. 트레킹 들머리는 잠두1교다. 시멘트로 얼기설기 만든 옛 잠두교 뒤로 잠두1교가, 더 뒤로는 통영대전고속도로의 550m짜리 거대한 잠두교가 놓여 있다. 수십 년 세월이 포개진 풍광이다. 잠두1교를 떠받치는 교각 위엔 파랑새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필경 짝짓기를 앞두고 있는 게다. 두 파랑새 암수의 희롱하는 소리가 산골에 울릴 만큼 낭자하다. 잠두길은 금강을 끼고 갈선산(480m) 허리를 에둘러 간다. 금강의 원형이 살아 있는 물길을 따라 이어진 길은 20여년 전만 해도 무주와 충남 금산을 잇는 비포장 국도였다. 완행버스가 탈탈거리며 달릴 때마다 뿌연 흙먼지가 폴폴 날리던 그런 길 말이다. 이른 봄, 벚꽃이 화사했을 그 길엔 이제 녹음이 내려앉았다. 공기는 맑고 산새 소리는 청아하다. 시인 김소월이 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했는지 능히 짐작할 만한 풍경이다. ●강과 산에 막혀 ‘섬 아닌 섬’ 주민들이 바위 쪼아 만든 ‘학교길’ ‘학교길’은 말 그대로 ‘학교 가는 길’이다. 무주를 휘휘 돌아가던 금강은 무주 끝자락에서 급하게 휘돌아 가며 앞섬, 뒷섬마을을 만들었다. 강줄기와 산으로 막힌 두 마을은 배를 타지 않으면 무주읍으로 나갈 방법이 없었다. 그야말로 ‘섬 아닌 섬’이었던 셈이다. 특히 뒷섬마을의 경우 배를 두 번이나 타야 했다. 사정이 이런데 아이들 등굣길이라고 수월했을 리 없다. 해서 뒷섬마을 주민들은 아이들 학교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 벼룻길 중간의 질마바위를 정으로 쪼아 길을 냈다. 이게 ‘학교길’이다. 길은 1971년 5월 20일에 완성됐다. 질마바위 아래 표지석의 ‘1971년 5월 20일’이란 글자는 당시 주민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새겨 놓은 것이다. 질마바위 아래 개울은 물총새의 사냥터다. 다리쉼할 겸 10여분 정도 바위 그늘에 앉아 있자니 퐁당퐁당 돌 던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물총새가 사냥을 마친 뒤 물 위로 솟구치는 소리다. 대개의 경우 물총새 입엔 작은 물고기가 물려 있기 마련이다. 꼭 TV의 생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길은 무주읍 내도리 뒷섬마을에 놓인 후도교를 들머리 삼아 향로봉(420m)을 넘어간다. 향로봉에서 굽어보는 내도리 일대 풍경도 일품이다. 경북 예천 회룡포에 견줄 만한 물돌이동 풍경이 펼쳐진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적상산의 피나물 군락지였다. 이른 봄, 노란 피나물꽃들이 하늘대는 풍경이 빼어나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으나 발걸음하기는 처음이다. 듣던 대로 적상산의 북사면은 온통 노란빛 일색이었다. 능선 중턱부터 눈길이 닿는 산 하단부까지 죄다 피나물꽃 일색이었다. 간간이 보랏빛 벌깨덩굴 등의 들꽃들도 눈에 띄었지만 노란꽃의 기세는 그야말로 산자락을 압도하고 있었다. 여느때라면 필경 그 자태에 취했을 터.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아이들을 속수무책으로 잃은 비통함에 국민들이 속죄와 애도의 뜻을 담아 선택한 빛깔이 노란색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붉은(赤) 치마(裳)를 두른 듯하다는 적상산은 무주 사람들이 어머니의 품처럼 생각한다는 산 아니던가. 그 정경은 그러니까, 어머니의 주름진 치마를 부여잡은 채 재롱을 떨고 조르며 재잘대는 수많은 아이들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안국사 돌담에 앉아 산골 마을 바라보면… 내가 인간인지 부처인지 피나물 군락지는 안국사 뒤편 산자락 능선에 있다. 걸어서 10분 남짓이면 닿는다. 들머리인 안국사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적상산 사고’를 지키던 절집이다. 임진왜란 등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엔 승병들의 거처로 쓰였던 호국 사찰이기도 하다. 절집 아래엔 옛 적상산성도 복원돼 있다. 돌담 위에 앉아 골 깊은 무주의 산골마을들을 둘러보는 맛이 각별하다. 기왕 적상산에 올랐다면 안렴대와 적상산 전망대도 둘러보길 권한다. 둘 모두 빼어난 풍경 전망대다. 이른 아침에 방문하면 무주 일대의 산군들이 펼쳐내는 장관과 마주할 수 있다. 무주에 새 명소가 생겼다. 태권도를 세계적인 관광 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조성한 태권도원(www.tkdwon.kr)이다. 국기인 태권도를 상징할 변변한 공간 하나 없었던 터라 태권도원의 개원이 더욱 반갑다. 태권도원이 실제로 문을 연 건 지난 4월 말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적 애도 분위기를 따르느라 제대로 개원식도 치르지 못한 채 손님을 맞고 있다. 태권도원은 박물관과 체험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 연면적은 231만 4000㎡(70만여평)에 이른다. 내부는 체험과 교육·수련, 깨달음 등 세 구역으로 나뉜다. 체험지구에는 태권도 역사와 관련 자료 등을 모아 놓은 태권도박물관, 자신의 체력과 태권도 실력 등을 평가할 수 있는 체험관 등이 들어서 있다. 체험관에서는 전자 인식 태그를 이용해 자신의 발차기 실력이나 주먹의 파괴력 등을 측정해 볼 수 있다. 와이어에 매달려 날아차기에도 도전할 수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는 전망대에서는 덕유산과 적상산 일대 전망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이 밖에 숙박을 겸한 패키지 프로그램 등 모두 45가지의 단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글 사진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3)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통영대전고속도로 무주나들목으로 나와 19번 국도를 타고 가옥교차로에서 좌회전해 무금로를 따라 직진하면 잠두마을이다. 학교길은 19번 국도를 타고 무주읍으로 들어 무주1교를 건넌 뒤 내도 방면으로 고갯길을 넘어가면 된다. 앞섬다리 건너 내도에 들어선 후 직진해 후도교를 넘자마자 오른편으로 학교길이 시작된다. 태권도원은 충북 영동과 경계를 이루는 설천면 끝자락에 있다. 입장료는 4000원. 320-0114. →맛집 무주읍내 금강식당(322-0979)과 내도리로 건너가는 앞섬다리 부근의 앞섬마을(322-2799), 뒷섬마을의 큰손식당(322-3605) 등은 어죽으로 이름난 집들이다.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너새니얼 호손 ‘주홍글씨’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너새니얼 호손 ‘주홍글씨’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이사야 1장 18절) 17세기 미국의 어둡고 준엄한 청교도 사회를 배경으로 죄지은 자의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 낸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는 치밀한 묘사와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 미국 문학의 걸작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치욕의 상징인 주홍글씨가 알레고리로 등장한다. 성경에서 비롯된 주홍빛은 인류의 죄와 피를 의미한다. 주홍글씨란 어떤 죄나 잘못을 저지르면 평생 동안 죄를 지은 사람에게 따라다니는 불명예를 뜻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주홍글씨를 단순히 죄의 상징으로 낙인찍는 데 그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작품이 죄를 짓는 과정이 아닌 그 후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먼저 작품 속 주인공을 만나 보자. 뉴잉글랜드 보스턴. 젊고 아름다운 헤스터 프린은 2년 전 미국에 건너와 사생아 펄을 낳고 간통을 의미하는 A(Adultery)를 평생 가슴에 달고 다니는 벌을 받게 된다. 때마침 행방불명됐던 헤스터의 남편이 나타나 처형대 위에 서 있는 헤스터를 목격한다. 그는 로저 칠링워스라는 이름의 의사로 정체를 숨긴 채 마을에 정착한다. 헤스터는 청교도주의적인 사회에서 불의의 남녀 관계로 냉혹한 제재를 받지만 사랑하는 상대를 지키기 위해 모든 비난을 인내한다. 그의 딸도 세상과는 유리된 채 밝고 자유분방하게 살아간다. 그녀가 사랑한 상대는 목사 딤스데일이었다. 그는 젊고 온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자였다.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모두 포기하고 죄를 드러낼 의지가 약했던 그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로저 칠링워스는 그런 목사에게 접근해 마음을 할퀴고 상처를 줘 쇠약하게 만든다. 헤스터는 목사가 자책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알고 로저 칠링워스에게 복수를 그치라고 간청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리고 목사를 찾아가 영국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살자고 설득한다. 그러나 목사는 장관 취임식 날 자신의 죄를 만천하에 고백한 뒤 목숨을 끊는다. 이렇게 작가 호손은 죄를 지은 후 벌어지는 죄의식과 벌, 나아가 구원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헤스터가 가슴에 늘 새기고 다니던 낙인은 원래 쇠붙이로 만든 뒤 불에 달궈 찍는 도장으로, 가축이나 목재에서 유래했고 노예가 도망치지 못하게 할 때나 형벌의 수단으로 썼던 것이다. 흔히 ‘낙인을 찍는다’는 말은 씻기 어려운 불명예스러운 판정이나 평판을 비유적으로 말할 때 사용된다. 주목할 점은 낙인의 기준이 시대와 종교, 사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번의 실수와 잘못으로 온갖 사람들에게 치욕을 당하고 평생 동안 낙인찍힌 채 손가락질을 감수해야 하는 건 옳은 일일까?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는 죄도 많다. 남의 마음에 심한 고통을 주거나 잘못된 가치관으로 사회를 변형시키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특히 그들이 권력자이거나 승리자였다면 그러한 잘못은 더욱 치장되고 미화돼 버린다. 마녀재판이라고 하는 잘못된 관습도 결국 그 사회의 약자요, 유리된 자들을 사회질서 유지의 희생양으로 사용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헤스터가 살았던 17세기 뉴잉글랜드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이 새롭게 뿌리 내린 곳이었다. 그들은 굶주림과 고통 속에서 미국 사회를 건설했다. 금욕, 절제, 규율을 기본 윤리로 삼은 청교도 사상은 미국 사회를 일군 힘이 되기도 했지만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고 죄의식과 규율 속에 가두는 독선적인 경향도 강했다. 19세기를 살아가던 호손은 작품을 통해 17세기 청교도적 삶의 허구성을 비판했다. 헤스터는 주홍글씨를 단 채 사람들로부터 온갖 저주와 욕설을 들어야 했지만 타고난 위엄과 기품을 잃지 않는다. 그녀의 실수가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 윤리적 규범으로 규정지어진 벌을 받겠다는 자세, 실수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는 자세 그리고 이제부터 제대로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연하고 일관된 의지가 있었다. 그녀는 세상의 규범이 자신의 명예와 사랑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죄를 지은 뒤 보여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사랑과 병자들에 대한 헌신, 불평 없이 깨끗한 삶을 영위하는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주홍글씨의 A를 Able(유능함)로 인식하게 했다. 나아가 목사가 죽은 뒤에도 평생 주홍글씨를 달고 남을 위해 애쓰며 사려 깊고 헌신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이제 그녀는 Angel(천사)의 상징이 된다. 하늘나라의 기쁨을 전하고 가장 고상하고 순결한 여인으로 표적이 된 것이다. 한편 대조되는 인물이 있다. 목사는 성직자라는 위치에서 드러낼 수 없는 죄를 내면화해 자책하고 스스로에게 가혹한 벌을 내린다. 그리고 또 한 명, 끝까지 복수의 화신이 돼 목사를 괴롭혔던 로저 칠링워스는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양심도 이해심도 가지지 못했고 섬뜩한 복수의 칼날에 자신도 베어 버린 악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복수는 헤스터에 대한 사랑으로 볼 수 있다. 본문에서도 사랑과 증오는 근본이 하나이기 때문에 자비를 구하자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방법이 왜곡됐으며 결국 비극으로 끝나 버린다. 이렇게 호손은 세 사람을 통해 종교적 신념에 근거한 양심의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사회적 낙인을 끊임없는 헌신과 사랑으로 승화시킨 헤스터, 마음속 낙인으로 괴로워하고 영혼의 구원을 외치며 죽은 목사, 죽기 직전 자신의 전 재산을 펄에게 물려주는 것으로 자신의 악행을 뉘우친 로저 칠링워스를 통해 도덕적 진실과 양심의 구원, 나아가 영혼의 자유를 밀도 있게 풀어내고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주홍글씨’라는 크고 작은 치욕을 겪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똑같은 죄를 저지른 헤스터와 딤스데일. 한 명은 사회의 지탄과 멸시, 천대를 받았고 다른 한 명은 죄의 폭로를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자책했다.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중요한 것은 스스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세다. 양심과 도덕적 판단이 그 어떤 규범보다 중요한 이유다. 이것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통해 마음속 깊숙이 숨겨 놓았던 인간의 본성과 규범, 죄와 벌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면 좋겠다. ■너새니얼 호손은 너새니얼 호손(1804~1864)은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다. 장편 ‘주홍글씨’와 함께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의 작품으로는 흔히 ‘큰 바위 얼굴’로 축약돼 알려진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과 다른 흰 산 이야기’가 있다. 청교도 집안에서 자란 호손은 작품에서 원죄와 속죄, 법과 양심을 진지하게 탐구했다. 호손은 자신의 조상들이 17세기 퀘이커교도에게 태형을 가하거나 마녀재판에 참여한 일 등에 대해 죄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1825년 보든대학을 졸업한 호손은 24살에 소설 ‘판쇼’를 출판하지만 스스로 회수했다. 이후 보스턴 세관에서 일하다가 1842년 결혼한 뒤 콩코드에 살면서 집필한 단편들을 모아 ‘영 굿맨 브라운’이 담긴 단편집 ‘낡은 저택의 이끼’를 출간했다. 1850년 ‘주홍글씨’를 출간한 뒤 소설가로 명성을 얻었다. 세밀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주홍글씨’는 미국의 상징주의 소설에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팁:‘알레고리’는 어떤 한 주제 A를 말하기 위해 다른 주제 B를 사용해 그 유사성을 적절히 암시하면서 주제를 나타내는 수사법이다. 은유법이 하나의 단어나 문장 같은 작은 단위에서 구사되는 반면 알레고리는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총체적인 은유법으로 관철돼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 [사설] 유씨 일가, 수사 협조가 최소한의 속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라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청해진해운에 대한 유씨 일가의 비정상적인 경영 관여가 상습적 과적과 비정규직 선원 고용 등으로 이어져 세월호 참사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는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2245억원의 빚을 지고 1997년 무너졌던 유씨가 불과 십수년 만에 5000억원대의 재산을 다시 모았다. 부정과 비리가 개재되지 않고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누가 믿겠는가. 검찰 수사가 유씨와 주변 인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런데도 부르기 전에 달려왔어도 마땅치 않았을 차남 혁기씨가 검찰의 마지막 소환 통보에도 불응했다고 한다. 혁기씨 말고도 김혜경 한국제약 대표와 김필배 전 문진미디어 대표가 해외에 머물고 있다는 이유로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특히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직전 해외로 출국한 차남은 비협조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이 눈물마저 말라버린 채 여전히 진도 팽목항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상황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혁기씨와 측근들이 유씨의 사법처리를 막아보겠다거나, 수사에 대응할 시간을 벌어주겠다는 심산으로 소환에 응하지 않는 것이라면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처신이 유씨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어려움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검찰은 이미 청해진해운 압수수색에서 유씨를 ‘회장’으로 명시한 내부조직도와 비상연락망을 확보했다고 한다. 혁기씨와 측근들의 소환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유씨를 사법처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당장 검찰은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정식 사법 공조를 요청해 혁기씨를 강제 소환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그는 수백억원의 회사 돈을 빼돌리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영주권자인 만큼 한·미 당국의 공조로 여권을 무효화하면 곧바로 불법체류자로 전락한다. 미국이 마냥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면 크나큰 오산일 수밖에 없다. 유씨 일가와 측근들은 검찰 수사에 저항하는 지금의 행태가 스스로를 더욱 빠져나오기 어려운 수렁으로 몰아넣는 결정적 패착(敗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라도 청해진해운을 비롯한 계열사 기업경영 과정의 잘못을 검찰에 털어놓고 법의 심판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청해진해운의 부정과 비리에 관련된 사람이라면 300명이 넘는 고귀한 목숨을 차가운 진도 앞바다에 수장시킨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을 더 이상 고통스럽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것만이 조금이라도 속죄 받을 수 있는 길이다. [반론보도문] 유병언 전 회장 측은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의 주식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의 실소유주가 아니라고 밝혀왔습니다.
  • 총리→대통령→부총리, “죄송합니다”

    총리→대통령→부총리, “죄송합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세월호 사고와 관련, “초동대응과 수습과정 미흡해 죄송하다”며 공식 사과했다. 정홍원 총리의 사과 및 사퇴,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포함해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가 이어지고 있다. 현 부총리는 이날 정부 세종청사에서 제2차 경제혁신장관회의 겸 제15차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사고 예방을 비롯해 초동대응과 수습 등의 과정에서 사고 가족과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스러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고 심정을 밝혔다. 또 “저를 포함한 모든 공직자들이 속죄하는 마음을 가지고 구조 활동과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 하겠다”면서 “이번 사고로 인한 아픔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도록 희생자 가족과 학교·지역사회 등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현 부총리는 “예방과 수습에 이르기까지 이번 사고와 관련된 전 과정에 대해 철저하게 원인을 규명함은 물론, 국가 개조를 한다는 각오로 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의 안전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개혁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현 부총리는 다음달 2일부터 예정됐던 카자흐스탄 출장을 취소한 뒤, 사고 수습과 피해자 지원 등 업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일수 樂山樂水]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으랴

    [김일수 樂山樂水]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으랴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와 국민들이 비통에 잠겨 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가 세계시민들의 노란 리본 가슴마다 메아리친다. 영결식장을 뒤로하고 떠나는 영령들에게 우리는 감히 미안하다는 말도 할 수 없어 정말 서글프다. 한 가정의 꿈이었을 어린 희생자들의 유가족, 텅빈 교실을 지켜봐야만 하는 안산 단원고 교사들과 학생들의 아픔을 우리는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으랴. 지금도 깊은 바닷속에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친지들, 1명의 실종자라도 더 수습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군·경·민 합동구조대원들의 저 안타까움을 무슨 말로 대신할 수 있을까. 가지가지 사연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야 하는 저들에게 우리는 편히 잘 가라고 말할 수도 없다. 너무도 억울한 죽음이기에 더욱 그렇다. 남은 우리들의 어깨에 실린 공동책임이 너무 막대하여 더욱 그렇다. 겉만 번지르르한 우리네 공동체적 삶의 밑바닥이 엉망진창인 것으로 드러났다. 해상교통안전과 질서에 대한 총체적 부실이 세월호 침몰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일반시민들이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해운당국은 배의 수명을 10년이나 더 연장하는 입법조치로 길을 터주고, 탐욕스러운 선주는 일본에서 수명을 다해 가는 고철용 선박을 싼값에 사들여 승객과 화물을 실어나르는 정기항로에 투입했다.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배의 안전운항을 결정적으로 위협하는 선박 개조를 감행했다. 당국은 앞으로 일어날 위험도 모른 채 이를 합법적으로 허가, 승인해 줬다. 이렇게 합작된 위험 덩어리는 무고한 인명과 과적화물을 싣고 위험곡예를 일삼는데도 안전감독당국은 구태의연하게 늘 위험을 눈감아줬다. 더욱 한탄스러운 일은 대형 조난사고 발생 직후 초기 황금시간을 선원들과 구조 책임 있는 당국자들의 공조 미비로 소진함으로써 희생을 더 키운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70년대 남영호 사건, 90년대 서해훼리호 사건, 이번 세월호 사건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대형 해난사고를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한단 말인가. 또한 애타게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저들에게 즉시 효과적으로 손을 내밀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기만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할 것인가. 뒤늦게 정부가 해양수산안전 연구개발비로 7조원대 규모의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며, 또한 국민안전과 재난구조 시스템을 혁명적으로 재건하고 운용하겠다니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정부대로 이번 사건의 원인과 책임소재를 철저히 밝혀 안전한 미래를 여는 데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재난구조 선진국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도 머지않은 장래에 길거리에서도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로 다가가야 한다. 위험 원인을 안고 살아가는 산업체들과 기업들도 이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풍토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에 합당한 안전망 구축을 위해 더 많은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와 도리일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자신과 가족, 기업을 사랑하고 보전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공동체 안전을 위해 자기 몫을 다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이번 참사로 희생된 모든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길이 될 것이다. 단 하나뿐인 고귀한 생명을 바친 이들의 죽음을 결코 헛되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죽음과 마주하면 모든 희망이 멈춰 서고 무기력을 실감하게 되는 절망적 사회통념을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는 깨뜨리고 다시 일어서야만 한다. 죽음이 인간의 한계상황이요, 벗어 버릴 수 없는 인간의 굴레이긴 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부활의 소망을 붙잡아야 한다. 눈부신 부활의 계절이면 다시 피어오를 봄꽃 같은 새 생명을 기대하며, 우리는 저들의 생명까지 품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남쪽 뜰에 있던 목련 한 그루를 가져와 단원고에 전한 것도 바로 그 뜻이었으리라.
  • [손성진 칼럼] 미안하다, 잘못했다

    [손성진 칼럼] 미안하다, 잘못했다

    억장이 무너진다. 숨이 막혀 온다. 스러져간 꽃다운 넋들아. 차가운 바닷물이 들어찬 그 깜깜한 곳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마지막 안간힘을 쓰면서 엄마를 찾았을 너희를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잘못했다. 모두 우리 어른들의 잘못이다. 미안하다. 막 피려는 꽃봉오리 같은 너희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처음부터 엉터리였다. 몇 명이 탔는지도 몰랐고 무거운 화물도 아무렇게나 실었다. 그런 어른들을 믿고 너희는 들뜬 마음으로 배에 올랐다. 전날 밤 엄마 생일 파티를 하고 귤을 선물로 사 오겠다며 좋아했었지. 난생 처음 가 보는 제주도의 밝은 아침 햇살을 그리며 선실에서 친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웠지. 그런데 갑자기 배가 기우뚱하며 가라앉기 시작했다. 너희는 시키는 대로 했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에 따르듯이. 움직이지 말라고 하니 그대로 있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서로 문자 연락을 했다. “아빠 지금 걸어갈 수 없어. 너무 기울어져서.” 메시지를 보내 놓고 너희는 더 말이 없다. 차디찬 물속에서 지금껏 말이 없다. 왜 말이 없느냐. 말은 할 수 있는데 못하는 것이냐. 너희가 믿고 따랐던 어른들의 온갖 치부가 드러나고 있다. 부끄럽다. 창피하다. 어른들은 몰래 탈출했다. 너희가 있는 선실엔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공무원이라는 사람들은 허둥대기만 했고 정치인들은 와중에 얼굴 알리기에 바빴다. 대한민국 어른들 모두 너희 앞에 엎드려 빌면 용서가 되겠느냐. 같은 어른으로서 우리는 어른 자격이 없다. 너희를 이끌고 가르칠 자격이 없다. 자격을 논할 가치조차 없다. 너희를 사지에 몰아넣고 자신은 살겠다고 도망쳐 나온 어른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잠수부들이 목숨을 걸고 노력했지만 여태 한 사람도 구하지 못했다. 정부가 무능한 건지, 불가항력인지 모르겠다. 너희 엄마, 아빠는 애가 타서 실신할 지경이 됐다. 어떤 부모는 다 정리하고 한국을 떠나겠단다. 내 새끼도 지키지 못한 못난 부모라고 자책한다. “이 나라가 내 자식을 버렸기 때문에 나도 내 나라를 버리겠다”고 한다. 같은 국민으로서 할 말이 없다. 어떻게 해야 속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잘못했다. 반성한다. 이런 말로는 안 될 것이라는 것도 안다. 사고는 주기적으로 났고 그때가 지나면 우리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어버렸다. 그렇게 당하고도 문제점을 고치지 못했다. 이번에는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달라지겠다. 용서받을 길은 앞으로는 정말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온 국민이 무슨 잘못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이번에는 믿어봐라. 대통령이 앞장서서 다 뜯어고치겠다고 한다. 인식과 생각부터 고치겠다. 대충대충 하겠다는 생각부터 버리겠다. 철두철미해지겠다. 규정을 따르고 점검하겠다. 어디를 들춰봐도 문제점들이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입 밖에 내지 않아서 그렇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는 안다. 잘못을 바로잡아서 너희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 안전을 말로만 외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하나 점검하고 재난이 닥치면 너희 동생들이 또다시 당하지 않도록 대비할 것을 약속하마. 우리 수준은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다. 조금 더 빨리 잘살아보려다 이 지경에 이른 것 같다. 근본을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노력하마. 다 잘될 거다. 안타깝게도 많은 친구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신이 있고 기적도 있음을 믿고 싶다. 몇몇이라도 살아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 살아 있다면 제발 끝까지 버텨다오. 아리따운 넋들이여, 잘못했고 미안하다. 약속은 꼭 지키마. 사고 없는 세상,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서 너희 후손에게 물려주마. 그러니 이제 편안히 눈을 감아라. 지금 산에 들에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너희 가는 길에도 그렇겠지. 가는 길, 꽃향기 맡으며 천천히 가기 바란다. sonsj@seoul.co.kr
  • [기고] 소외이웃 찾는 사회봉사 국민공모제/신달수 서울보호관찰소 사회봉사명령담당관

    [기고] 소외이웃 찾는 사회봉사 국민공모제/신달수 서울보호관찰소 사회봉사명령담당관

    지난 설날을 떠올리면 내 마음은 아직도 따뜻하다. 사회봉사명령담당관으로서 특별한 설을 보냈기 때문이다. 조금 생소한 사회봉사명령은 일반인의 자발적 봉사활동과는 다르다. 음주운전 등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법원은 집행유예와 함께 일정 시간 사회봉사명령을 부과한다. 보호관찰소는 이런 대상자들을 사회복지기관 등에 배치하여 무보수로 일하게 한다. 봉사활동으로 대상자들이 범죄피해자에게 속죄하고 사회에 배상케 하는 것이다. 또 자신들보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의 삶을 경험케 하여 재활 의지를 다지게 하는 것이다. 지난해 5월 법무부는 ‘사회봉사 국민공모제’를 도입했다. 국민으로부터 신청받아 꼭 필요한 곳과 꼭 필요한 사람에게 사회봉사명령자들을 배치하는 수혜자 중심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래서 전국 56개 보호관찰소에서 511건 신청을 받아 홀몸노인 주거환경개선 등에 연인원 8106명을 투입했다. 작년 서울보호관찰소는 사회봉사 국민공모로 서울 동대문구 소재 경로당 두 곳과 홀몸노인 여섯 가정에 도배·장판교체, 전기수리 등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벌였다. 홀몸노인 돌보미와 동사무소 직원이 신청한 사연은 절실하고 딱했다. 조그마한 경로당과 쪽방촌에 홀로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집수리는 대기업이나 사회봉사단체에서는 소규모이고 사소한 작업이 많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 사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직접 좁은 집에 가득 차 있는 살림살이를 옮기면서 집수리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건축 특기와 자격이 있는 사회봉사 대상자와 직원을 배치했고 서울시 등에서 건축자재를 지원받아 최선을 다해 작업했다. 지난 1월 28일, 사회봉사 국민공모를 통해 도움을 주었던 경로당과 쪽방촌 할아버지·할머니들을 다시 찾았다. 직원들이 모은 쌀로 떡을 만들고 남양주농협에서 지원받은 쌀과 보호관찰 나눔봉사단에서 마련한 귤을 갖다 드렸다. 처음 경로당을 찾아갈 때 너무 적은 도움이라 망설여졌다. 하지만 웃는 얼굴로 반겨주고 따뜻한 커피까지 준 어르신들 덕분에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오후에 찾아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과 전농동 쪽방촌에 사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설을 앞두고도 모두 홀로 집에 있었다. 문을 열면 부엌이고 한 걸음만 더 옮기면 바로 방인 좁은 집과 매서운 추위,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 갇혀 있는 할아버지·할머니들. 그분들을 보며 마음이 짠했다. 아직도 좁은 길 끝까지 따라 나와 배웅해 준 정 할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봄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마음이 간절한 2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벌써 서울 강동구에서 신청한 ‘도시형 텃밭 가꾸기’ 지원 사회봉사 국민공모가 진행 중이다. 올해도 변함없이 서울보호관찰소를 비롯한 전국 보호관찰소는 사회봉사 국민공모를 통해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갈 계획이다. 그래서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힘이 되고자 한다.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행복 나눔인 사회봉사 국민공모제. 국민들의 더 많은 신청과 관심, 그리고 지원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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