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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간 피랍 사태] 한국, 가짜 탈레반에 돈 건넸나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태 15일째인 2일 인질 사태의 전말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의하면 탈레반이 미군에 체포된 최고 사령관과 맞교환할 외국인을 물색하다가 한국인들이 걸려들었고, 납치 초기엔 아프간 협상단에 탈레반 동료 수감자 115명과 한국인 인질 23명을 맞교환하자고 요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위크는 인질 납치에 관여한 탈레반 고위 지휘관 3∼5명과의 위성전화 통화를 통해 납치 당시 상황과 한국인 인질들의 건강상태, 탈레반의 협상전술 등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다. 이와함께 아프간에 파견된 한국 특사와 가즈니 주의원, 아프간 정부 협상단이 한국인을 억류한 것처럼 행세한 ‘가짜 탈레반’에 속아 몸값을 건넸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뉴스위크가 전하는 전말은 이렇다. 탈레반 부사령관 물라 압둘라가 이번 납치극을 주도했다. 그는 최고사령관 가운데 한 명인 다로 칸이 지난 6월 가즈니주에서 미군에 체포된 후 그와 맞교환할 외국인을 지속적으로 찾았다. 카불과 칸다하르를 잇는 도로를 순찰하던 압둘라 대원들은 지난 7월19일 오후 ‘목표물’을 찾았다. 안전 호위대도 없이 지나가는 흰색 버스를 발견한 것. 이 버스엔 당일 오후 가즈니주의 레오나이 시장을 30분간 산책한 뒤 어디론가 이동하던 한국인 23명이 타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탄 압둘라 대원들은 AK-47 소총과 수류탄 등으로 운전사를 위협해 버스를 탈취했다. 이들은 버스를 사막과 암석이 섞인 인근 마을로 끌고 간 뒤 한국인들을 5개 그룹으로 나눴다.23명을 한 곳에 모아두면 인질 관리가 어렵고 자기들의 근거지가 쉽게 노출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한국인 인질들을 오토바이와 트럭에 태워 카라바그와 인근의 안다르, 가즈니시 근처 데약으로 보내 분산 수용시켰다. 이후 탈레반은 바로 아프간 정부에 한국인 인질 23명을 풀어주는 대가로 탈레반 수감자 115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하지만 아프간 정부와의 협상이 예상과 달리 난항을 겪자 석방 대상 탈레반 수감자 수를 23명으로 줄였고 지금은 8명의 명단을 아프간 정부에 넘긴 상태다. 현재 남은 한국인 인질은 여성 16명, 남성 5명(탈레반은 여성 18명, 남성 3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주장)으로 탈수증과 장 뒤틀림 등의 증세로 날로 심신이 쇠약해지고 있다. 최소 여성 인질 2명이 위중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 인질 협상과 관련, 익명의 탈레반 고위지휘관은 “인질들의 건강 문제가 있지만 적어도 탈레반 수감자 8명의 석방이 이뤄지지 않는 한 협상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며 “아프간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우리는 이번 사태를 지속할 것이며 때에 따라서는 더 지연시킬 수 있다.”고 협박했다. 이번 인질 사태에 탈레반 최고 지도자가 직접 개입한 증거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탈레반 고위 지휘관이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가 이끄는 탈레반 지도위원회가 이번 인질 사태에 관여하고 있으며 지도 위원회의 일원인 하지 하산이 인질 협상에 대해 조언을 하고 있다.”밝혔다. 인질 협상 중재에 나섰던 부족 원로들이 여성 인질 억류에 반대하고 관습과 전통에 의한 압박도 가해지고 있어 최소 여성 인질들만큼은 당분간 무사할 것이라고 탈레반 고위 지휘관이 전망했다고 이 주간지가 전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재판엔 졌지만 내 마음은 지지 않았다”

    “재판엔 졌지만 내 마음은 지지 않았다”

    |도쿄 박홍기특파원|‘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한국인 위안부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일본에 체류 중인 송신도(85)할머니의 절규이자 지난 10년간의 법정투쟁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이다.‘재일 조선인 위안부 송신도의 투쟁’이라는 부제가 붙은 95분 분량의 다큐 영화는 오는 3일 일본 도쿄에서 첫 시사회를 갖는다. 송 할머니의 전쟁 때 고통뿐만 아니라 전쟁의 폐해, 일본의 차별 등을 고발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일본 정부 상대로 10년동안 사죄·보상 요구 송 할머니는 지난 1993년부터 2003년까지 만10년 동안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며 긴긴 법정투쟁을 벌였으나 결국 패소했다. 송 할머니는 당시 재판을 지원해온 지인들에게 “비록 일본에 졌지만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며 한맺힌 한마디를 던졌다. 충남 유성이 고향인 송 할머니는 16살 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 땅에서 말로는 다하지 못할 고초를 겪었다. 종전 뒤 민간인이라고 속인 일본군 병사로부터 결혼하자는 말에 속아 일본 땅을 밟은 송 할머니는 버림을 받고 혼자 생활하다 1992년에 위안부와 관련 시민단체와 연결됐다. 이 후 송 할머니를 돕는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도 결성됐다. 모임의 책임을 맡은 교포 양징자(50)씨는 “1993년 4월 송 할머니의 재판이 시작된 지 5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송 할머니가 마음을 열었다.”고 말했다. 영화의 바탕은 양씨가 97년부터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마음으로 송 할머니의 재판과정 및 심경 변화, 재판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 등을 찍은 비디오다. 비디오 테이프의 분량은 50여개가 넘는다. 양씨는 처음에 내부 기록을 위해 비디오 테이프를 정리하려다 ‘인간의 존엄성을 후대에도 느끼고 인식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큐 영화로 방향을 돌렸다. 송 할머니도 “이대로는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다.”며 영화 제작을 흔쾌히 허락했다. 제작비는 670여개의 시민단체 및 개인들이 낸 성금으로 충당했다. ●개인 고통 차원 넘어 전쟁의 잔혹성 고발 영화 감독을 맡은 안해룡(46)씨는 “영화는 송 할머니 개인의 고통에 대한 차원을 넘어 전쟁의 잔혹성을 고발,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고 있다.”면서 “우선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배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송 할머니는 지난 31일 미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양씨로부터 전해듣고 “잘 됐다. 나쁜 짓을 했으면 마땅히 사죄해야 한다. 미국에 가서 한바탕 만세라도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hkpark@seoul.co.kr
  • ‘사이버 앵벌이’

    가출한 10대 청소년들을 내세운 ‘인터넷 앵벌이 사기단’이 경찰에 적발됐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30일 도용한 여성의 ID로 인터넷 채팅사이트에 접속, 대화 상대로부터 돈을 뜯어낸 서모(20·여)씨를 사기 등 혐의로 구속하고, 애인 김모(20)씨와 10대 청소년 등 1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04년 10월부터 지난 5월까지 대구지역 PC방 등을 돌며 채팅남 2000여명으로부터 교통비와 PC방 이용비, 조건만남 등의 명목으로 9000여만원을 뜯어낸 혐의다. 조사결과 이들은 고향 선후배 사이로 대화 상대에게 불우한 환경으로 가출한 소녀인 것처럼 가장, 동정심을 유발한 후 2만∼10만원씩 송금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채팅 상대가 의심해 확인 전화를 하면 통화임무를 맡은 10대 소녀는 울먹이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ID는 내 것이 맞다.”며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등 채팅·통화·계좌제공 등으로 역할을 나눠 조직적으로 사기행각을 벌여 온 것으로 드러났다. 채팅남은 대부분 30대 직장인으로 속아서 송금을 했으며, 최모(34)씨는 몇 차례에 걸쳐 50만원을 송금하기도 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주행거리·오일교환 등 ‘차계부’ 만들어라

    주행거리·오일교환 등 ‘차계부’ 만들어라

    지금 타는 차를 팔고 싶다. 과연 이 차는 중고차 시장에서 제 값을 받을 수 있을까. 파는 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아닐까. 괜히 중고차 매매상에게 속아 헐값에 처분하는 것은 아닌지 찜찜한 느낌도 든다. 차를 팔 때의 궁금증을 문답으로 알아본다. ●중고차 가격결정 요인은 가장 기본적인 것은 연식과 주행거리, 사고 유무다. 제조회사가 어디인지도 중요하다. 시트·에어백 등 추가옵션이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다. 사고의 유무는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보다 무사고 차량의 비율이 월등히 높기 때문에 사고경험이 있는 차는 더욱 푸대접을 받는다. ●연식에 따른 선호도는 통상 3∼4년 된 차들이 인기가 높다. 연식이 나중일수록 좋기는 하겠지만 1∼2년 된 차들은 값이 비싸다. 가격이 크게 떨어지는 5년 전후 차량에 대한 선호도도 높은 편이다. ●1년 미만 차의 가격 하락폭은 별다른 사고가 없을 경우 통상 소형은 100만∼150만원, 준중형은 200만∼300만원, 중형은 300만∼400만원, 대형차는 1000만원 이상 빠지게 된다. ●주행거리가 미치는 영향은 주행거리가 적을수록 좋긴 하겠지만 연간 2만∼2만 5000㎞ 정도 뛰었다면 평균적인 상태로 인정받는다. 그 이상이면 값이 떨어진다. 현대차 NF쏘나타의 경우 연간 2만 5000∼3만㎞는 30만원가량,3만∼5만㎞는 70만원가량,5만㎞ 이상은 100만원 이상 평균치보다 깎인다. ●사고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범퍼에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여러번 범퍼를 갈았다고 해도 가격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어차피 차체를 보호하는 소모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강한 추돌로 범퍼에 이어 라디에이터 그릴까지 뒤로 밀렸다든지 하는 정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펜더, 도어, 보닛, 트렁크 등은 원래 차체에서 찌그러진 부분을 편 것이라면 ‘무사고’로 보지만 다른 것으로 교환했다면 ‘사고’로 친다. 엔진이 상했던 적이 있다면 100만원 이상 값이 떨어진다. 특히 엔진에 더해 ‘휠하우스’(앞바퀴 축이 들어 있는 공간 전체)까지 크게 손상됐을 때에는 통상 차값이 반토막 난다고 보면 된다. ●차 관리는 어떻게 하는 게 좋나 자동세차, 셀프세차는 차체에 좋지 않다. 자동 세차장에 가면 플라스틱 재질의 걸레가 돌아가면서 차를 닦는데 그때 페인팅이 많이 벗겨진다. 표면의 흠집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흰색·은색 계통과 달리 검정색 차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흠집이 나면 아무리 광택을 내도 원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일반 손세탁이 좋다. 통상 먼지털이를 많이 이용하는데 그냥 닦지 말고 분무기식 광약을 뿌려가면서 촉촉하게 한 상태서 닦아주는 게 좋다. 차량설명서에 따라 소모품을 제때 갈아주는 것도 차의 수명을 연장시켜 나중에 중고차 값을 더 높이는 방법이다. 타이어는 2∼3년마다, 엔진오일은 5000㎞마다 한 번씩 갈아주는 게 좋다. 요즘 같은 여름 장마철에 차를 몰다 보면 아스팔트가 차체에 많이 묻게 된다. 끈적끈적 차에 붙어 차의 외관을 해칠 수 있으므로 그때그때 청소를 해 준다. ●주로 어떤 브랜드가 인기가 좋나 현대 아반떼, 쏘나타, 그랜저와 르노 삼성 SM 시리즈의 인기가 높다.GM 대우나 쌍용차는 다소 가격이 낮게 형성된다. 수입차 중에서는 렉서스, 혼다, 벤츠가 인기가 높다. 작은 외제 소형차도 시세가 높게 형성되는 편이다. ●내 차의 신뢰를 높이려면 중고차에는 관리상태나 사고유무 등에 대해 막연한 불신이 있다. 주유, 오일교환, 주행거리 등 차계부를 만들면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차를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중에 내 차를 살 사람에게 보여주었을 때 신뢰감을 높일 수 있다. 수리 내역서도 보관해두는 게 좋다. 물론 이런 것 때문에 가격이 크게 오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믿음을 주기 때문에 일단 팔기가 쉬워진다는 장점이 있다. ●그 밖에 알아둘 것은 중고차 매매의 성수기는 여름이다. 좀체 안 팔리던 차들도 이 때에는 잘 팔린다. 물론 가격도 겨울보다 높게 형성된다. 가죽시트·고급 오디오 등 자기 돈을 들여 차를 손봤더라도 그 비용을 붙여서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중고차 기준가격은 전국중고차매매조합연합회(www.kucar.org)를 통해 조회할 수 있다.‘엔카’(www.encar.com),‘보배드림’(www.bobaedream.co.kr),‘메가오토’(www.megaauto.com) 등에 가면 차의 상태를 진단받을 수 있다. 인터넷카페 중고자동차8949(cafe.daum.net/car49or89)에서는 허위매물 판별법 등을 알 수 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한승원 토굴살이] 시인과 농부

    [한승원 토굴살이] 시인과 농부

    ‘시인과 농부’를 가끔 듣는다. 이 곡은 익살과 기지가 넘치는 데다 경쾌한 춤곡풍이어서 그윽하고 아름답고 즐겁다. 작곡자 주페는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에서 태어나 빈에서 극장 전속 작곡가와 지휘자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의 음악에는 빈이라는 멋스러운 도시의 분위기와 이탈리아풍의 아름다운 정서가 서려 있다.‘시인과 농부’는 오페라의 서곡인데 그것을 감상함에 있어서는 시인과 농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명쾌한 곡이므로 즐겁게 감상하면 된다. 그런데 젊었을 적에 이 곡을 처음 들으면서, 농사일로 늙어온 농부와 감수성 예민한 늙은 시인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 나름의 치기어린 사유(관념)를 대입하면서 들어 버릇했다. …푸른 들판 논두렁에서 한 시인과 한 달관한 늙수그레한 농부가 마주앉아 농주 잔을 나누며 자연과 세상살이의 희로애락을 이야기한다. 농부는 시와 철학을 공부한 적이 없지만, 농사짓고 살아오면서 하늘의 뜻과 땅의 질서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잘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것들을 자기도 모른 사이에 터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농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시이고 철학이다. 농부의 햇볕에 그을린 거무튀튀한 얼굴과 힘든 작업으로 인한 마디 굵은 나무껍질 같은 손은, 그 자체가 시이고 철학이다. 시인은 그것들을 가슴으로 느끼고 환희를 맛보며 농부와 탄성어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 때 시인은 말 아닌 몸으로 시를 쓰는 것이다…. 내가 이 음악을 이렇게 감상해 버릇한 것은, 그 곡에 붙어 있는 ‘시인과 농부’라는 표제 때문이다. 한번 그 표제에 걸려 속아 넘어가고 나자, 속았음을 알아차린 뒤에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같은 방법으로 그것을 즐겨 듣곤 한다. 물론 나는 지금 그것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개, 어떤 사물의 진짜 아닌 가짜 얼굴(가면)과 그것에게 붙여진 이름에 걸려서, 자기 나름의 상상을 하고 순수하게 꿈꾸고 즐거워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최면에 잘 걸리는 동물이다. 모든 얼굴과 그에 따른 이름은 고정관념을 가지게 한다. 사람들이 자기나 자기 아들딸의 이름을 소문난 작명가들에게 지어달라고 맡기고, 기업체들이 상호와 상품의 이름과 상표(brand) 치레를 하고 열심히 광고하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멋들어진 환상(고정관념 혹은 착각)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더러운 정치가들은 깨끗한 얼굴 만들기, 그럴 듯한 자기선전 표어 만들기에 광적으로 심혈을 기울이고 돈을 퍼붓는다. 그의 참모들은 그의 아름다운 가면(이미지)을 만들기 위하여, 그로 하여금 방송에 나가서 서정시 한 편을 정감 있게 암송하게 하고, 고전적인 노래 하나를 애창곡이라고 하면서 애처롭게 부르게 하고, 거부감 없는 색깔의 양복과 거기 알맞은 넥타이를 매게 하고, 위호주머니에 흰 수건을 찌르게 하고, 머리 스타일을 부드럽게 바꾸게 하고, 늘 생긋 미소 짓게 하고, 강한 말씨와 호소하는 말씨를 적당히 섞어 쓰게 하고, 그윽한 사랑의 눈빛을 가지게 한다. 그 가면으로 인해 인기가 상승하면, 이익단체들과 대중이 얼싸안고 얼씨구절씨구 광기어린 춤을 추며 부르짖는다. 굴원의 어부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무리(군중)가 다 취해 있을지라도 나 홀로 깨어 있어야 한다(衆人皆醉我獨醒)’ 예로부터 개인은 영리하지만, 무리는 어리석었다. 그리하여 중국에서 애초에 그 ‘무리’라는 뜻의 글자를 만든 사람은, 그것을 아주 재미있게 표현해 놓았다. ‘여기저기를 저돌적으로 돌진하면서 늘 들이받은 까닭으로, 머리에 피(血)를 묻히고 있는 돼지(豕)들이 무리(衆)’라고.呵呵呵. 한승원 소설가
  • 8090 ! 박수 준비됐나요 영심이가 돌아왔습니다

    ‘젊음의 행진’을 보려면 미리 준비할 게 있다.‘열린음악회’용 박수는 필수. 노래를 따라부를 목상태 점검도 잊지말 것.20여곡이 넘는 80,90년대 언니·오빠들의 노래가 두 시간 내내 포진해 있다. ‘젊음의 행진’은 그래서 알면서도 속아주는 거짓말 같다. 이미 알고 있는 가요에 반은 업혀가고 원작인 만화 ‘영심이’에서 반 이상 따왔다. 한마디로 안전한 기획이다. 관객은 알면서도 유쾌하다. 이전의 뮤지컬들이 7080의 향수를 건드렸다면 ‘젊음의 행진’(8월12일까지, 나루아트센터)은 뮤지컬의 주소비층인 8090의 감정선을 정통으로 감전시킨다. 뉴키즈온더블록 브로마이드가 나오면 모두 소녀팬으로 돌변. 롤라장에서의 종종 연출되던 어리숙한 연애, 아카펠라로 듣는 장학퀴즈 테마곡, 남고 응원단들이 힘차게 팔을 뿌려대던 뿌연궤도(무한궤도)의 ‘그대에게’까지 나오면 속수무책이다. 무표정하게 끼고 있던 팔짱은 어느새 풀려 박수를 치고 있다.‘아는 사람만 아는’ 이런 추억의 코드들은 관객과 내통한다. 드라마 ‘질투’ 주제곡에 빠르게 회전하는 카메라가 배우들을 비출 때면 공감은 극에 달한다. 조연의 힘도 세다. 여고 ‘킹카(?)’이상남에 영심이의 형부 ‘이상무’는 환호의 반을 가져간다. 김왕선, 심쉰, 강수자의 노래는 그들과 우리들의 ‘왕년’을 되돌린다. 그러나 노래의 힘이 워낙 세다보니 노래를 위해 존재하는 듯한 장면들이 눈에 띈다. 극적 장치를 위해 주요 인물을 갑작스럽게 등장시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작 ‘우리의 영심이’가 밋밋하다는 것도 아쉽다. 서른 셋이라는 나이가 그녀를 철들게 한 걸까.“한바탕 웃음으로 모른 체 하기엔 서른 세살 한숨이 너무나 깊어. 한바탕 눈물로 잊어버리기엔 서른 세살 상처가 너무나 커”라는 그녀의 노래가 귓가에 씁쓸함을 떨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음의 행진’은 매끄럽게 안착한다. 뻔하지만, 즐겁다. 긴 커튼콜에도 기꺼이 일어설 만큼.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민중의 안테나’

    ‘아들을 납치했다.’는 가짜 협박 전화에 속아 두 시간가량 끌려다니던 한 시민이 우연히 통화 내용을 듣게 된 경찰의 도움으로 피해를 면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1일 서울 광진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5일 오전 9시쯤 이모씨는 낯선 남자로부터 “아들을 데리고 있다. 즉시 은행에 가서 돈을 입금하라.”는 협박 전화와 함께 고등학생인 이씨의 아들로 추정되는 학생이 “아빠! 무서워.”라며 울먹이는 소리를 들었다. 이씨는 아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경찰에 신고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이날 오전 11시쯤 서울 강동구 명일동 한 은행 앞에서 전날 야간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광진경찰서 고현정(30) 경장이 은행 주차장에 차를 세우다 다급한 모습의 이씨를 발견했고, 현금출금기 앞에서 “입금하는 대로 아들 목소리를 듣게 해달라.”는 통화 내용을 들었다.순간 납치 사건임을 직감한 고 경장은 통화 중인 이씨에게 다가가 “경찰입니다. 납치 전화를 받았느냐.”라는 메모를 건넸고 이씨는 고개를 끄덕였다.고 경장은 다시 “시간을 최대한 끌어보라.”는 메모를 보여주며 이씨의 아들 이름과 학교 이름 등 인적 사항을 갖고 학교에 연락해 이씨 아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고 경장은 “사기 전화인 것을 알고 입금을 멈추라고 말했지만 이미 500만원을 이체하는 확인 버튼을 누른 뒤였다.그러나 너무 긴장한 나머지 이씨가 계좌번호를 잘못 입력해 송금이 되지 않아 피해는 보지 않았다.”고 밝혔다.이같은 사연은 이씨가 고 경장에게 감사한다는 사연을 경찰서에 보내면서 최근에야 알려졌다.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에릭손-퍼거슨 다시 만난 앙숙

    탁신 시나왓 전 태국 총리가 인수한 맨체스터 시티의 새 사령탑으로 스웨덴 출신의 명장 스벤 예란 에릭손(59)이 영입됐다.2002년과 지난해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을 이끈 에릭손 감독이 지난 5월 경질된 스튜어트 피어스의 후임으로 3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영국의 스카이 스포츠가 27일 보도했다. 그의 영입으로 2002년부터 설전을 벌여온 알렉스 퍼거슨(6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과의 신경전이 8월 개막되는 프리미어리그 07∼08시즌을 후끈 달굴 전망이다. 탁신도 이를 의식한 듯 “에릭손이 퍼기를 제압할 것”이라며 그에게 신뢰를 보냈다. 둘의 입씨름은 2002월드컵 직후 시작됐다. 월드컵을 마치고 데이비드 베컴이 돌아왔을 때 퍼거슨은 불같이 화를 냈다. 베컴의 발등뼈 골절이 악화됐기 때문. 전지훈련에 그를 빼야 했던 퍼거슨은 “에릭손은 선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적에만 급급한 3류”라고 깎아내렸다. 퍼거슨은 그해 9월 폴 스콜스가 다쳤다며 유럽 챔피언스리그를 앞두고 열린 포르투갈과의 A매치에 빠지도록 했는데 얼마 뒤 스콜스는 리그 경기에서 펄펄 날았다. 퍼거슨의 보복인 줄 뒤늦게 안 에릭손은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이 강한 둘의 갈등에는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2001년 초 퍼거슨이 시즌 뒤 물러나겠다고 하자 맨유 구단은 후임을 찾아나섰다. 그런데 퍼거슨이 은퇴 의사를 번복해 3년 재계약 논의가 오가던 이듬해 2월까지 에릭손과의 접촉이 계속되자 마침내 폭발했다. 1년 뒤 퍼거슨은 “구단이 에릭손을 선택한 것은 그가 예스맨이기 때문”이라며 “언론에서 떠든다고 베컴에게 대표팀 주장을 맡긴 걸 보면 그가 얼마나 소신없는지 알 수 있다.”고 인신공격을 쏟아냈다. 독일월드컵 때는 웨인 루니가 다치자 그의 출전 여부를 놓고 또 뒤엉켰다. 맨유 주치의가 루니가 월드컵에서 뛰어도 괜찮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장하자 퍼거슨은 그를 즉각 해임했다.“루니를 독일에 보내는 것은 내가 결정한다.”는 것. 이런 치열한 자존심 다툼 끝에 에릭손은 기자의 거짓 취재에 속아넘어가 “베컴은 내가 시키는 대로 다한다.”는 부적절한 발언을 하게 됐다. 그의 영입에 대해 맨시티 서포터스의 30%만이 지지를 보냈다. 아무튼 현격한 전력 차로 미지근하기만 했던 ‘맨체스터 더비’가 둘의 입씨름으로 재미있어졌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量心불량’ 김치냉장고

    ‘量心불량’ 김치냉장고

    ‘구형 184ℓ와 신형 297ℓ 김치냉장고의 김치 저장용량이 똑같다?’ 본격적인 여름철을 앞두고 김치냉장고를 마련한 소비자들이 ‘눈속임 용량 표기’에 속아 낭패를 보고 있다. 20일 서울신문이 소비자 제보를 토대로 김치냉장고의 용량을 조사한 결과, 상당수의 김치 냉장고에 실제 김치가 들어가는 양은 카달로그(제품 안내 소책자) 표기 용량의 40∼60%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선 판매원들도 김치 실용적량(실제 김치를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은 숨긴 채 냉각, 신선도 유지 등 성능만을 강조해 소비자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속았다고 항의해도 교환 안돼” 충남 예산군에 사는 주부 안모(48)씨는 용량이 큰 김치냉장고가 필요해 지난 11일 L사 297ℓ짜리 스탠드형 김치냉장고를 구입했다.3년전 마련한 같은 회사 제품 뚜껑형 184ℓ짜리를 쓰던 안씨는 김치를 옮겨 넣어 보고 깜짝 놀랐다. 용량 차이가 113ℓ나 났지만 새 김치냉장고에 똑같은 양의 김치밖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가 난 안씨는 곧바로 대리점을 찾아 교환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김치를 이미 넣어 안 된다고 거부했다.”면서 “판매업자의 말을 믿고 샀고, 카달로그나 제품에도 김치 실용적량은 표기돼 있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표기 용량은 내부에 있는 김치통과 서랍 등 모든 부속물을 들어내고 물을 부었을 때의 용량으로 신제품의 경우 김치 실용적량이 구형 제품들보다 훨씬 떨어진다. 서울에 사는 주부 유모(46)씨도 최근 뚜껑형 210ℓ짜리를 구입했으나 김치 실용적량이 134ℓ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렸다. ●김치 저장용량은 표기 용량의 40∼60% 취재 결과에 따르면 상당수 제품에서 표기용량과 김치 실용적량간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선 대리점 판매원들은 김치 실용적량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복합형(서랍형과 스탠드형)은 L사뿐만 아니라 M사 225ℓ짜리는 김치 실용적량이 99ℓ로 44%에 불과했다.S사 227ℓ짜리는 46%인 104ℓ였다. 뚜껑식도 L사 201ℓ짜리는 124.8ℓ,M사 210ℓ는 134ℓ,S사 202ℓ는 135ℓ로 실용적량이 60%대였다. 한 가전매장 판매원은 성능과 편리함에 대해서만 설명할 뿐 김치 실용적량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김치 실용적량에 대한 질문에는 “김치 60포기 들어간다.”며 애매한 설명으로 일관했다. L사 관계자는 “스탠드형은 김치냉장고가 과일 저장 등 다용도로 사용하는 추세에 맞춰 내놓은 상품”이라면서 “2005년부터 모든 김치냉장고에 실용적량 표시를 부착하고 있고 판매원들에게 이를 언급하도록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4년전 소보원 지적에 시늉만 2003년 한국소비자원이 김치냉장고는 일반 냉장고와 달리 김치가 들어가는 양이 중요한 만큼 실용적량을 표기할 것을 업체들에 권고했다. 하지만 업체들은 표기용량 옆에 조그많게 실용적량을 써넣는 수준에 그쳤다. 또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는 실용적량을 거의 표시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당시 생산 업체들과 간담회를 통해 소비자의 혼동을 막기 위해 용량표기가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지금까지 이 의견을 받아들인 업체가 거의 없다.”면서 “소비자들은 업체들의 홍보성 표기용량에 현혹되지 말고 실제 김치 실용적량을 꼼꼼하게 알아보고 구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30대 여자들을 위한 연극 두편

    30대 여자들을 위한 연극 두편

    “20대에는 연애하다 실패해도 사랑밖에 잃는 게 없지만 이젠 모든 걸 다 잃게 되겠지.” 연극 ‘연인들의 유토피아’에서 30대 여자가 중얼거린다. 폭신하던 사랑이 착잡해지는 순간 30대가 온다. 알 것 다 아는 30대만 공감할 수 있는 사랑에 관한 신랄한 유머, 쓸쓸한 독백이 담긴 두 편의 연극을 소개한다. ●‘썸걸즈´ 나쁜 남자를 사랑한 싱글녀에게 영화감독 강진우의 호텔방에 찾아온 네 여자가 소파에 내려놓는 핸드백을 보면 그 주인을 알 것만 같다. 장바구니 같은 백을 앞가슴에 폭 안은 양선, 날렵한 디오르백을 달랑거리며 나타난 민하, 고고한 흰색 켈리백을 내려놓는 정희, 낡고 빛바랜 가죽백을 아무렇게나 던지는 은후. 네 여자는 옛 남자, 진우의 전화를 받고 차례로 달려온 참이다. 진우는 딱 한 가지만을 확인한다.“너 나한테 화난 거 아니지? 나 너한테 잘못한 거 없는 거다?” 그리고 고백한다.“나 결혼해.”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여자와 핸드백이 운명 같은 관계임을 설파했다. 그 핸드백만큼이나 성격도 스타일도 다른 네 여자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눈물을 떨구거나 담담하거나 덤비거나 악을 쓰거나. 공통점도 있다. 첫째, 강진우와 헤어진 여자는 아무도 없다. 여자들은 입을 모아 합창한다.“난 너랑 헤어진 적 없어. 네가 사라졌잖아!” 둘째, 미워도 다시 한번, 여전히 미련은 진득하게 남아 있다. 호텔방을 뛰쳐나온 여자들이 모두 문밖에 돌아서서 얼굴을 감싸쥐는 걸 보면…. ‘썸걸즈’(8월5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소극장)는 홍상수 영화의 코믹 버전이다. 빤하게 들여다 보이는 남자의 너절한 속셈에 어이가 없지만 여기저기 빈틈을 찌르는 유머에 웃을 수밖에 없다. 여성 관객들은 헛웃음·감탄사·욕 중에서 기호에 맞게 취사 선택한다. “너는 다 나쁘지만 웃는 얼굴로 뭉개면서 절대로 미워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 이게 제일 나빠, 이 XXX아.”라는 은후의 째지는 외침에 객석에는 통쾌함이 번진다. 연출을 맡은 황재헌씨는 “우리가 알면서도 모른 척하려 했던 사랑의 이중성과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극적인 순간을 포착하려 했다.”고 밝혔다. 더블 캐스팅된 이석준과 최덕문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이냐도 주요 관전 포인트. 이석준표 강진우가 날렵한 표범처럼 세련된 ‘꾼’이라면 최덕문표 강진우는 능청스럽고 말빨좋은 천상 ‘오빠’다. 닐 라뷰트 원작인 작품의 해외 공연에서는 시트콤 ‘프렌즈’의 데이비드 시머가 나쁜남자로 출연했다. 막판까지 네 여자와 관객의 머리를 후려치는 남자는 침대에 누워 ‘사랑해’를 주문처럼 왼다. 그 남자의 빤한 거짓말에 또 속아 넘어가는 게 결국 여자가 아닐런지.“사랑, 허무하다고 안 할 수 없잖아요.”라는 연출가의 말처럼 말이다. ●‘연인들의 유토피아´ 배려가 필요한 부부에게 소용돌이 형태의 무대. 허겁지겁 무대로 뛰어든 여자가 가방을 뒤진다. 남편이 사준 목걸이가 없어진 것. 비슷한 것도 없고 새로 만들 수도 없다는 걸 알자 여자는 절망한다. ‘연인들의 유토피아’(8월12일까지,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의 이 첫 장면은 극 전체를 관통한다. 잃어버린 목걸이는 곧 버린 사랑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남자와 여자, 그와 그녀는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그와 그녀의 무대는 밝다. 움직임도 크다. 떠들썩한 웃음과 마주보는 시선이 있다. 여행을 온 두 사람은 빗소리가 들리자 가난한 부부가 된 상상을 한다. 결혼할 돈이 없으니 사진관에 사진이나 찍자며 종알거린다. 사랑에 들뜬 그와 그녀는 기꺼이 추억만들기에 나선다. 그녀가 냉정해지는 이유는 그의 부인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통.“당신은 나에게 유토피아예요.” 매달리는 그를 그녀는 밀어낸다.“유토피아? 그건 아무 데도 없다는 뜻인데….” 남자와 여자의 공간엔 쓸쓸한 빛이 내리쪼인다. 한 무대에 있지만 공간과 시선을 따로 쓴다.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여자는 취기를 핑계로 솔직해진다.“당신은 솔직한 게 장점이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말해줘.”남자는 멍하니 중얼거린다.“옛날에 당신 만나면 뭐라고 할까 밤새 연습했었는데…. 이런 날이 오네.” 남자와 여자의 무대에 그와 그녀가 슬그머니 들어오는 순간 객석 위엔 이런 말구름이 뜬다.‘낚였다’. 낚인 사연은 극을 곱씹어 봐야지만 알 수 있는 반전 아닌 반전이다. 그녀 역의 이일화는 사랑받는 여자의 달콤함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여자 전현아는 관객을 불안하게 하지 않는 힘을 지녔다. 연출을 맡은 김진만씨는 “네 사람 모두 피해자”라고 했다. 자신은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결국 자기 방식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그런 오해로 단절되는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단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사랑의 기쁨에 눈물겨워하기보다는 안으로 깊이 가라앉아 외로운 자신의 맨 얼굴을 바라봐야 하는 쓸쓸한 일인 모양”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굳어버린 사랑의 맨 얼굴을 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깔깔깔]

    ●항상 속아 넘어가는 거짓말 1.TV홈쇼핑의 거짓말 최고로 저렴한 가격에 여러분들 딱 100분만 모십니다. 오늘 이후엔 이런가격에 절대로 구입하실 수 없습니다. 2. 중국집 주인의 거짓말 “자장면 배달시킨 지 한참 됐는데 왜 아직도 도착하지 않죠?” “자장면 떠난 지 한참됐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3. 알바 광고 거짓말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장님도 친절하셔서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일하실 수 있습니다.●술꾼의 아들 선생님이 3학년생인 조지를 보고 ‘스트레이트’ 철자를 써보라고 했다. 조지는 틀린 데 없이 받아썼다. “그럼,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 말할 수 있겠니?” “네, 선생님. 물을 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 ‘핑크빛’ 국제 콜렉트콜 사기로 25억원 챙겨

    ‘핑크빛’ 국제 콜렉트콜 사기로 25억원 챙겨

    “중국에 유학중인 여대생입니다.22살이고요. 며칠 뒤 한국에 들어가는데 남자 친구도 없고 외로워요. 전화 요금은 제가 낼 테니 수신자 부담에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대학생 A씨는 유명 인터넷 채팅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여자로부터 걸려온 국제 전화를 수차례 받았다. 요금은 상대방에서 낼 것이라는 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조만간 여자 친구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A씨는 한달 뒤 600만원짜리 전화요금 고지서를 받고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중국동포 여성 등을 고용해 인터넷 채팅사이트로 남성들을 유혹한 뒤 ‘수신자 부담 국제전화(콜렉트 콜)’를 받게 하는 수법으로 수십억원을 챙긴 국제전화 사기단이 경찰에 붙잡혔다. 국내 유명 통신업체는 이러한 사기 행각을 알고도 영업이익을 올리는 데 급급해 이를 방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3일 국제전화 사기단 4개 조직을 적발, 박모(47)씨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사기) 등 혐의로 구속하고, 김모(33)씨 등 19명을 불구속 입건하는 한편 6명을 지명 수배하고 4명에 대한 공조 수사를 인터폴(국제 형사경찰 기구)에 요청했다. 또 이들의 사기 행각을 방조한 혐의로 기간통신업체 D사 영업부장 김모(48)씨와 별정통신업체 K사 서비스사업팀장 정모(35)씨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2005년 9월부터 올 4월까지 중국과 필리핀 등에서 동포 여성이나 국내 여성 수십명을 고용해 한국 남성들에게 콜렉트콜을 걸도록 한 뒤 통화료의 45∼65%를 수수료로 받아 25억여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에게 속아 콜렉트콜을 받은 남성이 9만 5000여명이며 부과받은 통화료는 56억원에 달했다. 피해자들은 1분에 2000원가량의 통화료가 부과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전화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된 여성들은 채팅사이트의 남성 회원들에게 준비된 사진을 보여주며 “조만간 귀국할 테니 사귀자.”고 접근했고,“전화 요금은 내가 부담한다.”,“요금은 1분에 200원쯤 나오는데 반반씩 내면 된다.”며 전화 통화를 오래 끌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특히 D사는 2006년 9월쯤 소비자 피해 신고가 급증했는데도 본격적인 경찰 수사가 시작될 때까지 3∼6개월가량 박씨 등과의 계약해지 등 피해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D사의 영업부장 김씨는 경찰에서 “처음 통신망 계약을 할 때는 사기인 줄 몰랐고, 이후 고객 민원이 급증했지만 회사 수익과 영업실적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지난달 회사에 명예 퇴직을 신청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9월 클레임(항의)이 집중되면서 D사 상무까지 보고가 올라갔지만, 부서간 책임을 미루다가 유야무야된 것으로 알고 있다. 수익을 위해 기업 윤리를 저버린 행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D사 측은 “김 부장이 중국에서 통신서비스 유통망을 운영하는 사람과 계약했다.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기 쉽지 않고 사실 확인도 필요해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해명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3세대 ‘아트 서커스’·웃기는 비보이들…쇼가 시작됐다

    3세대 ‘아트 서커스’·웃기는 비보이들…쇼가 시작됐다

    연극과 뮤지컬이 주도했던 한국 공연계가 아트 서커스, 비보이와 만나 한층 진화하고 있다. 오는 3일로 서울 잠실 천막극장에서 막을 내리는 ‘퀴담’은 낮공연을 추가할 정도로 인기를 얻으며 한국인들에게 아트 서커스가 어떤 것인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트레이시스, 멀티미디어 쇼 선보여 지난 25∼27일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3일간 짧게 공연된 ‘트레이시스’는 ‘퀴담’을 만든 ‘태양의 서커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2002년 새로 뭉친 세븐 핑거스에서 제작한 것이다. 1세대 아트 서커스인 태양의 서커스가 예술적 서커스를 정착시켰다면,2세대 서크 엘루아즈는 연극적 서커스를 보여줬다.3세대 세븐핑거스는 멀티미디어 쇼를 시도했다. 이제 캐나다 아트 서커스를 대표하는 세 단체의 공연이 모두 한국에서 선을 뵌 셈이다. ‘트레이시스’가 그간의 아트 서커스와 가장 큰 차별화를 시도한 것은 무대 뒷벽에 설치한 대형 스크린이다. 이 스크린을 통해 배우들은 그래피티(즉석 그림)를 보여주거나, 동영상을 튼다. 공연의 마지막도 직접 스크린 영상에 뛰어든 배우들로 장식된다. 하지만 이러한 차별화가 얼마나 인상적으로 관객들에게 스며들었는지 의문이다. 주말 한국 관객의 대부분은 서커스를 즐기러 온 어린이들이었고, 이들은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동작에만 크게 환호했다. 4명의 청년과 1명의 여배우가 보여주는 재능은 놀랄 만한 것이었다. 긴 쇠막대를 타고 머리부터 바로 수직낙하 하거나, 바퀴와 몸이 하나가 되어 무대 위에서 회전했다. 하지만 기존 아트 서커스 무대와의 차별화를 위해 시도한 스케이트 보드나 농구공을 활용한 묘기는 아직 어설퍼 보였다. ‘트레이시스’는 흔적이란 뜻. 아직 젊은 배우들은 자신들의 흔적, 즉 그들의 과거에 대해 한국말로 이야기한다. 비교적 정확한 발음으로 나이와 성격, 경험 등을 말하는 배우들의 현지화 노력은 가상한 것이었다. 광대가 아니라 건강한 젊은이들이 공중에서 날고, 후프를 통과하며, 서로의 머리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는 것은 압도적인 시각적 짜릿함을 안겨준다. 한국 공연계는 대단한 메시지 전달에 대한 강박관념 없이, 사소한 이야기만으로 매력적인 시각 체험을 선사한 이들 세븐 핑거스로부터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2일까지 춘천마임축제에서도 공연된다.7500원∼2만원.(033)242-0551.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좌충우돌 탈옥기, 피크닉 ‘피크닉’은 한번에 들이킬 수 있는 알싸한 맥주를 닮았다. 돗자리와 샌드위치를 챙겨 떠나는 피크닉이 가뿐하듯 딱 그만큼의 마음가짐으로 보면 된다. ‘피크닉’은 비보이 댄서들을 배우로 길러내겠다는 야심과 드라마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출발했다. 해외 진출에 성공한 비언어극인 ‘점프’나 ‘난타’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의도다. 세계 시장에서 검증 받겠다며 지난 4월에는 런던 웨스트엔드부터 공략했다. 그리고 지난 26일 드디어 한국 공연계에 합류했다. ‘피크닉’은 죄수 5명의 감옥 탈출기다. 자동차를 정비하던 죄수들이 우주에서 날아온 비급()을 들고 자유를 찾아 탈옥한다. 여기에 비트박스만 나오면 정신 못차리는 경찰, 늘 정색하고 있지만 장난끼로 뭉친 교도관이 가세한다. 섹시한 간호사에서 천진난만한 수녀로 변신하는 미녀 삼총사도 사랑스럽다. ‘피크닉’은 관객과 놀 줄 안다. 코미디를 보는 사람들은 나를 웃겨보겠다고 덤비는 코미디를 좋아한다. 배우들은 조명이 자신들을 잡아채는 적막의 순간에 웃음을 끌어낼 줄 안다. 그러나 신선도가 높지는 않다. 웃음의 밑간은 적절히 쳐놨지만 TV코미디나 정통 슬랩스틱에서 본 뜬 상황들이 많다. 감옥에서 병원과 수녀원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인과관계도 덜커덕거린다. 드라마에 방점을 찍었다고 선언한 만큼 캐릭터에 생기를 더 불어넣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크닉’은 코미디의 미덕인 웃음의 강약 조절이 매끄럽다. 특히 땅굴 속에서 인형 몸옷을 얼굴에 달고 달아나는 죄수들의 온몸을 바친 열연(?)에서 관객의 웃음은 정점에 오른다. 이 장면은 연극이란 관객이 기꺼이 속아주는 거짓말임을 확인케 한다. 등줄기를 타고 전해지는 좌석의 들썩임이 어떤건지 가물거린다면 이번 주말 ‘피크닉’, 괜찮은 선택이다.7월 22일까지.3만∼4만원. 충무아트홀.(02)747-0366.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상상초월 보이스 피싱 수법… 당신을 노린다

    상상초월 보이스 피싱 수법… 당신을 노린다

    타이완·중국을 통한 국제 ‘보이스 피싱’(전화사기)이 극성을 부리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31일 전화사기로 거액을 가로챈 중국인 불법체류 금융사기단 17명이 경찰에 검거됐고,30일에는 아들(24)을 납치하고 있다는 전화 한 통에 한 지방법원장이 수천만원을 송금하는 사기를 당한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발생했다. ●지법장,6000만원 사기 검찰과 법원은 31일 지방법원 A법원장이 지난달 28일 오전 전화사기범으로부터 “아들을 납치하고 있다.”는 전화에 속아 6000만원을 뜯겨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과 법원에 따르면 A법원장은 사건 당일 오전 11시쯤 국회 초청 업무관계로 서울로 와 자택에 머물고 있던 중 “당신의 아들을 납치하고 있으니 돈 500만원을 입금하라.”는 협박전화를 받았다. 사기범은 “경찰에 알리거나 아들에게 통화를 하면 아들이 위험하게 될 테니 알리지 말라.”면서 아들의 목소리를 가장한 가짜 비명소리 등을 들려주었다. 다급해진 A법원장은 휴대전화로 급히 근무지 비서실로 연락해 500만원과 1000만원을 각각 두 차례,3000만원 한 차례 등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6000만원을 송금했다. 사기범은 같은 날 오후 2시까지 기다리면서 돈이 입금되자 추가로 더 많은 돈을 요구했다. 사건 당시 법원으로부터 이같은 사실을 통보받은 검찰은 사기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주민등록 조회를 통해 법원장 아들의 휴대전화를 알아냈고, 같은 날 오후 2시쯤 통화를 하면서 사기임을 확인했다. A법원장은 “아들에게 전화를 하면 아들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다.”며 검찰에 아들의 휴대전화를 알려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범인들이 여러 계좌로 돈을 입금하도록 한 뒤 서울 근교에서 돈을 찾았으며 전화 발신지는 중국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대구에서도 17명 검거 대구 동부경찰서도 이날 경·검찰 및 금융감독원, 금융권 관계자 등을 사칭해 노인, 부녀자 등을 상대로 금융사기를 벌인 B(21)씨 등 중국인과 타이완인 불법 체류자 10명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또 유학생 자격으로 입국해 국내 금융기관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예금통장 35개를 일괄 개설한 뒤 1개당 25만원씩 받고 B씨 등에게 넘긴 C(23)씨 등 중국인 유학생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통장 25개, 현금 등 3000여만원, 현금 인출카드 및 체크카드 90개, 대포(가짜 전화번호) 휴대전화 16개, 위조 여권 등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대구 한찬규·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위안부 첫 고발’ 故 정서운 할머니 추모비

    일제 ‘위안부’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으로 고발한 고(故) 정서운 할머니를 기리는 추모비가 정 할머니의 고향인 경남 하동군에 세워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정서운 할머니 추모위원회는 지난 26일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작은 공원 취간림에 정 할머니의 넋을 기리는 ‘추모와 평화의 탑’ 제막식을 가졌다. 이 추모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리고 숨진 정 할머니의 뜻을 기리고 일본 정부의 사과와 보상을 촉구하기 위해 건립됐다. 추모위는 탑 건립을 위해 5개월에 걸쳐 모금 활동을 벌였다. 이날 추모비 건립 행사에는 서울, 대구, 통영 등에서 모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 10여명과 민주노동당 권영길·노회찬 의원,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79) 할머니는 추도사에서 “역사가 살아있어야 한다는 마음에 일제의 사과를 요구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전쟁이 없어져 우리 같은 아픔을 당하는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행사에는 태평양전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평화순례행사 ‘스톤워크(Stone Walk) 코리아 2007’의 일원으로 전국을 돌고 있는 일본인 5명이 참가, 피해 할머니들을 끌어안고 용서와 화해를 구해 눈길을 끌었다. 정 할머니는 14살때인 1937년 당시 일본군 주재소에 갇힌 아버지를 풀어주겠다는 동네 이장의 말에 속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8년 간 위안부생활을 했다. 이후 귀국한 뒤 1991년 위안부 존재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맞서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해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확산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중국 베이징(北京) 세계여성대회 등에서 활발한 증언활동을 하다 2004년 삶을 마감했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월 200만~400만원 벌게 해준다” 장애인등 443명 꾀어 낙도에 팔아

    정신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이모(25)씨는 지난 1월 사람을 구한다는 생활정보지를 보고 부산 서구의 모 수산업체를 찾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이씨에게 월 200만∼400만원의 소득을 보장한다는 광고문구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좋은 일자리를 소개시켜 준다는 김모(34)씨를 따라 꿈에 부풀어 간 곳은 전남 목포였다. 김모씨는 여관에 숙소를 마련해 주고 술대접에 이어 윤락녀를 소개시켜 줬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씨는 ‘정말 좋은 일자리를 얻게 되는구나.’하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기대감이 악몽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김씨는 이씨에게 술값이 무려 500만원이나 나왔다며 덤터기를 씌워 인근 낙도의 선주에게 팔아 넘겼다. 이어 이씨가 선상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3일 만에 배에서 내리자 이번에는 같은 수법으로 다시 200만원의 빚을 지워 김양식장에 팔았다. 이씨가 또 3일 만에 다시 돌아오자 또 200만원의 빚을 지게 한 뒤 선원으로 넘기는 등 김씨 일당은 1개월 동안 이씨를 무려 5차례나 팔아 넘겼다.1개월 동안 이씨는 돈 한 푼 받지 못했지만 김씨 일당은 소개비와 외상값 명목으로 선주 등으로부터 1300만원을 받아 가로챘다. 부산해양경찰서는 20일 생활정보지와 인터넷 등에 2005년부터 월 200만∼4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과장광고를 낸 뒤 이를 보고 찾아온 장애인과 중증환자 등을 서해안 낙도의 김양식장과 선원으로 불법 취업시키고 소개비 명목으로 수억원을 챙긴 혐의(직업안정법 위반)로 김모씨 등 5명을 구속하고 일당 3명을 수배했다. 또 K모(54)씨등 선주 2명을 선원법 위반혐의로 입건했다. 해경에 따르면 이들은 정신지체장애인 2급인 이모씨를 비롯,2005년부터 최근까지 장애인 5명을 포함해 폐결핵환자 등 사회적 약자 443명을 서해안 지역의 낙도 양식장 등지에 소개하고 1인당 90만원의 소개비와 외상값 등의 명목으로 모두 1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이들은 선원 소개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경찰에 자진 출석해 가벼운 벌금형을 받는 방법으로 경찰의 단속을 피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선주 K모씨 등은 소개업자에게 장애인의 급여를 직접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과거에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감금해 일을 시키는 사례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터무니 없는 빚을 지게 한 뒤 이를 갚게 하는 방식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경은 이들의 꾐에 속아 낙도의 열악한 양식장 등에서 일하던 장애인 5명을 가족들에게 인계하는 한편 더 많은 피해자들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현장 행정] 관악구 우리농수산물 보증사업

    [현장 행정] 관악구 우리농수산물 보증사업

    ‘품명=자연산 헛개나무, 원산지=국산, 가격=5000원, 관악구’19일 관악구 신림4동 재래시장안 금산한약건재상엔 오미자·구기자·결명자·감초·계피 등 수북이 쌓인 약재마다 품명·원산지·가격이 큼지막하게 적힌 푯말이 어김없이 꽂혀 있다. 덕분에 점포를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어떤 상품이 수입산인지, 국내산인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관악구가 지난달부터 지정·운영하고 있는 원산지표시 모범업소의 풍경이다. 관악구는 재래시장 대표와 상가번영회 등에서 추천받고 구청 직원이 실사를 통해 확인한 뒤 모범업소를 선정한다. 이날 현재 신림2동·신림4동·신림8동·봉천11동·봉천7동 골목시장에서 우리 농수산물을 판매하는 점포 17개가 모범업소 스티커를 얻었다. 유통지도팀 장세희씨는 “수입 농수산물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외국산이 국내산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아 구청이 우리 농수산물을 보증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원산지표시 뒤 단골 늘어 금산한약건재상 유명례(46)씨는 “원산지 표시를 강화하고 나서 불황이 사라졌다.”고 반겼다.“원산지 표시가 확실해 신뢰할 수 있는 점포라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단골이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유씨는 수입산과 국내산을 나란히 배열, 손님이 제품의 차이를 직접 확인하도록 했다. 국내산이 수입산보다 3∼8배 비싸기 때문에 손님이 구별법을 물으면 설명도 자세히 해준다. “구기자 국내산은 촉촉하고 단맛이 진하지만, 중국산은 고슬고슬 메말라 있습니다. 오미자 중국산은 새까맣지만 국내산은 붉은빛이 감돕니다.” 유씨의 설명이 이어지자 차이점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래도 손님이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으면 유씨는 “믿지 못하겠으면 수입산을 구입하라.”고 말한다. 그럼 속일 일도, 속을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의 자신감에 반해 낯선 손님이 단골로 변한다. 매출만 오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 농산물의 판매량도 급등한다. 손님의 70%가 국내산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유씨는 “수입산을 국내산으로 속아 살까봐 망설이지, 소비자는 우리 농산물을 사랑한다. 우리 가족에게 차려줄 음식인데 당연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중국산 ‘정직한 푯말´에 고객 외면 그러나 원산지 표시가 매출 증가로만 이어지지는 않는다. 일부 점포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소라생선 김비인(37)씨는 “해산물의 경우 부산·속초·러시아·일본 등 원산지를 확실히 표시하자 오히려 매출이 줄었다.”고 털어놨다. ‘중국산’이란 푯말을 보고 생선을 사지 않던 손님이 옆집에 원산지 표시가 없자 상품을 구입하더라는 얘기다. 김씨는 “옆집 생선도 분명 중국산인데….”라며 한숨지었다. 청정농산 김귀순(47)씨도 “고사리 등은 국내산을 찾기가 정말 힘든데 손님들이 원산지 푯말만 보고 돌아선다.”면서 “십중팔구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은 점포에서 중국산을 구입할 것”이라고 맞장구쳤다. 업주들은 재래시장 모든 업소가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구청이 유도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신림4동시장 상가번영회 유덕현 회장은 “지난해 9월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을 마친 후 점포 80∼90%가 원산지를 표시하고 있다.”면서 “구청과 주민들이 원산지 표시 모범업소를 꾸준히 지원하면 재래시장이 우리 농산물을 믿고 살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늑장대응… 연구 신뢰성 큰 타격

    서울대가 ‘늑대복제 논문’에 대한 진상 조사에 착수했지만 학교 안팎에서는 서울대의 부적절한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황우석 전 교수 사건으로 혹독한 경험을 한 서울대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이병천 교수팀의 ‘욕심’에 부화뇌동해 연구 신뢰성을 크게 손상시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양 연구처장은 기자회견에서 “황 전 교수 사태 이후 연구윤리 제도 보완에 노력했지만 미흡했고, 이 교수 논문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데 대해서도 책임을 느끼고 사과한다.”고 밝혔다. 서울대가 뒤늦게 진상 조사에 착수한 것에 대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란 비판이 적지 않다. 사태를 키운 것이 그간 서울대 연구처가 보여준 오락가락하는 태도 탓도 크다는 지적이다. ●“논문 이상 없다” 입장 오락가락 국 처장은 기자회견 전까지 이 교수의 개 복제 성공률 수치 및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 오류를 두고 “단순 수치 오류다. 논문에는 이상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이 교수의 늑대복제 관련 논문이 해외 학술제에 실린 사실이 언론에 흘러나오던 지난해 12월에는 “개나 개과 동물복제에서 수의대 동물복제연구팀이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한 만큼 학교 차원에서 회사를 차려 주겠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혹이 연이어 불거지자 지난 5일에는 “이 교수 논문은 나로서도 심히 부끄럽고 유감스러운 일로, 네이처 등 세계 유명 학술지도 속아 넘어가는데 서울대가 검증하기란 쉽지 않다.”“상위 10%에 드는 저널에 게재되는 논문만 공개했다면 이 교수 기자회견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말로 이 교수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재발방지 대책으로 내놓은 방안도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다. 피인용지수 상위 저널에 게재된 논문만 언론에 발표하겠다는 내용은 국 처장이 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지난해 12월에 시행한 일로 이 교수 일을 계기로 마련한 대책이 아닐뿐더러 논문 검증이 아닌 우수 논문을 발굴해 칭찬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황우석 사태 이어 서울대 또 위기 이현숙 생명과학부 교수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을 논문이 황우석 사태를 겨우 수습한 서울대를 다시 위기에 빠뜨린 것은 정확한 검증 없이 부화뇌동한 연구처 때문”이라면서 “의혹이 외부 인터넷 게시물과 언론사의 실명 기사로 촉발됐음에도 실명제보 없이는 위원회를 가동할 수 없다고 한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혹시 이 어린이도?

    혹시 이 어린이도?

    인천 어린이 유괴사건에 이어 제주에서는 학원에서 귀가하던 초등학생이 사흘째 실종됐다. 충남 공주에서는 교통사고로 숨진 아내의 사망보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장애인 아버지가 공범과 함께 10살 짜리 친딸을 납치했으며 전남 여수와 전북 전주에서도 자녀 납치 사기사건과 납치 오인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18일 제주 서귀포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6일 실종된 양모(9·서귀북초교 3년)양을 찾기 위해 경찰과 군인, 공무원, 주민 등 500여명이 사흘째 양양의 집 주변 야산과 과수원 등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다. 경찰은 양양을 납치했다며 금품을 요구하는 전화가 아직 없는 것으로 미뤄 일단 유괴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납치 등 범죄와 관련된 실종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양양의 어머니 박모(39)씨는 “평소 집과 학교, 학원밖에 모르는 아이”라며 “제발 하루빨리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앞서 양양은 지난 16일 오후 5시쯤 서귀포시 모 피아노학원에서 교습을 마친 후 학원차량을 타고 서홍동 모 빌라 자신의 집 앞에서 내린 뒤 소식이 끊겼다. 키 135㎝, 몸무게 30㎏인 양양은 실종 당시 모자가 달린 갈색 운동복과 검은색 단화, 네모난 안경을 착용하고 있었다. 이날 충남 공주경찰서는 특가법상 약취유인 등 혐의로 박모(48·정신지체 2급)씨와 공범 전모(47)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17일 오전 11시30분쯤 충남 공주시 이인면 주봉리의 한 도로변에서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던 박씨의 딸(10)을 납치해 대전 서구 오동의 전씨 집 인근 야산 개 사육장에 감금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박씨는 정신지체 2급 장애인으로 지난 1999년 아내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면서 딸의 양육을 처가에서 맡아 왔고,2004년 결국 아내가 숨지자 보험금 2억원가량이 지급됐으나 이 또한 처가에서 관리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 초등생 박모(8)군 납치·살해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박군이 납치된 장소인 송도국제도시 K상가 앞길과 살해장소인 인천 남동공단 유수지 등에 대한 현장검증을 19일 실시하기로 했다. 전남 여수에서는 자녀를 납치했다며 금품을 요구하는 전화 사기사건이 발생했다. 여수경찰서에 따르면 17일 오후 5시쯤 여수시 여서동 김모(55·여)씨가 아들(27)을 납치했다는 전화에 속아 현금 500만원을 송금했다. 전북 전주에서는 10대 소녀들이 여중생 2명을 8시간 동안 여관 등지로 끌고 다니는 바람에 납치 신고가 경찰에 접수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 관계자는 “영화 ‘그놈 목소리’개봉 이후 각종 모방범죄가 극성을 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전국종합 kkhwang@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 누르하치,명(明)에 도전하다 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 누르하치,명(明)에 도전하다 Ⅱ

    건주여진을 통일하고, 해서여진과 몽골의 연합군마저 물리친 누르하치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누르하치는 하다, 호이파, 울라 등 해서의 여러 부족들을 강온(强穩), 양면으로 통제하여 가장 강한 예허부(葉赫部)를 고립시키는 정책을 취했다. 당시 해서여진이 누르하치에게 맞서려면 4부 사이의 단결이 절실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 사이의 알력 때문에 누르하치에 대해 연합전선을 펼 수 없었다. 하다, 호이파, 울라는 차례대로 누르하치에게 각개격파되었고, 혼자 남은 예허는 결국 명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누르하치는 예허의 그 같은 전략을 꿰뚫었다. 그는 해서여진을 공략하는 동안, 자신을 견제했던 명에 몸을 낮추었다. 명의 견제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여 명분을 축적하고, 내실을 다졌다. 결정적인 기회를 엿보기 위해 숨고르기를 했던 것이다. ●하다와 호이파를 멸망시키다 1599년 하다의 국주(國主) 멩게불루는 예허와의 갈등으로 전쟁을 하게 되자 누르하치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멩게불루가 셋째아들을 볼모로 보내자 누르하치는 2000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하다를 원조하려 했다. 다급해진 예허는 개원(開原)에 주둔한 명군 지휘부를 움직여 멩게불루를 질책했다. 누르하치와 동맹을 맺은 것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한편으로는 멩게불루에게 자신을 딸을 아내로 주었다. 멩게불루는 예허의 요구를 받아들여 누르하치와의 동맹을 철회했다. 누르하치와 예허, 명 사이에 끼여 있는 약소국의 ‘눈치보기’였다. 격분한 누르하치는 하다를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멩게불루를 사로잡았다. 그러자 명이 개입했다.1601년 명의 만력제(萬曆帝)는 사신을 보내 누르하치를 질책하고, 하다의 유민들을 멩게불루의 아들 우루구다이(武爾古岱)에게 반환하라고 강요했다. 누르하치는 명의 요구에 따라 유민들을 송환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예허가 하다를 공격하여 우루구다이를 자신의 세력권에 편입시켰다. 누르하치는 명에 서신을 보내 항의했다. 자신이 하다를 격파한 것은 문제삼고, 예허의 침략은 그냥 넘어가는 이중적 태도를 따졌다. 하지만 명에 대해 정면으로 반발하는 것은 삼갔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호이파를 정벌하는 과정도 하다의 경우와 유사했다.1607년 9월, 호이파의 신료들이 모반하여 예허로 귀순하자, 국주 바인다리는 누르하치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7명의 볼모를 보내왔다. 그러자 예허는 바인다리에게 “누르하치에게 볼모 보낸 것을 취소하면 귀순한 자들을 송환하겠다.”고 제의했다. 바인다리는 예허에게 속아 누르하치에게 다시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누르하치는 결국 정벌에 나서 바인다리 부자를 살해하고, 호이파를 병합했다. 예허의 고립은 더욱 심화되었다. ●울라 격파와 조선에 미친 파장 누르하치와 예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해서 부족 가운데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았던 것은 울라였다.1596년, 울라에서 내분이 일어났을 때 누르하치는 자신이 억류하고 있었던 부잔타이(布占泰)를 송환하여 국주로 즉위시킨 바 있다. 부잔타이는 누르하치의 은혜에 감사하여 혼인 관계를 맺고 동맹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는 수시로 향배를 바꾸어 배신과 복종을 반복했다. 부잔타이는 국주가 된 이후 모두 7차례나 누르하치에게 복종할 것을 맹세했다. 누르하치 또한 자신의 딸을 포함한 세 명의 여인들을 부잔타이에게 아내로 주어 다독였다. 부잔타이는 끝내 누르하치와 예허 사이에서 양단을 걸치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누르하치가 압박하여 곤경에 처하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조선에 손을 내민 것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1610년, 누르하치의 압박 때문에 위기에 처하자 부잔타이는 조선에 사신을 보내 직첩(職帖)을 하사해주고 교역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울라의 세력은 두만강 너머까지 미치고 있었는데 광해군(光海君)은 부잔타이의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 그에게 직첩을 주고, 관복을 하사했다. 광해군의 의도는 그들을 회유하여 두만강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던 상황을 탐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광해군의 의도는 맞아떨어졌다.‘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를 보면 당시 조선 조정은 누르하치와 해서 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던 격변의 추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1610년 2월14일의 경우,‘이 오랑캐가 겉으로는 누르하치와 화해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사이가 좋지 않은 형상이 있다. 예허와의 중간 길이 끊기고, 교역의 통로가 막혔기 때문에 우리나라 변방에서 교역하기 위해 우리의 의도를 떠보는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참으로 정확한 정세 판단이었다. 광해군과 조선 조정은 이 같은 정보를 기초로 누르하치의 실체를 명확히 인식했다. 나아가 곧 닥쳐올 ‘누르하치와 명의 대결’이라는 파장에 대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팔기제(八旗制)를 완성하다 누르하치는, 향배가 무상했던 부잔타이를 공격하여 1613년 마침내 울라부를 멸망시켰다. 예허만 빼놓고 해서여진을 통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누르하치는 이윽고 1616년, 국호를 아이신(金)으로 고치고, 칸(汗·한)으로 즉위했다. 바야흐로 12세기 한족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아구다(阿骨打)의 위업을 계승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제 지배하는 종족이 다양해지고,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새로운 통치 체제가 필요했다. 주목되는 것은 바로 팔기제(八旗制)였다. 팔기제는 니루(牛)라는 만주족 고유의 조직에서 기원했다. 만주인들은 수렵 등을 나갈 때 10명을 한 조로 삼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을 우두머리로 뽑아, 그를 니루라고 불렀다.‘니루’란 ‘큰 화살’을 뜻한다. 누르하치는 성년 남자 300명을 1니루로,5개의 니루를 1자란(甲喇)으로, 다시 5개의 자란을 1쿠사(固山)로 편제했다.1쿠사는 결국 7500명인 셈인데 그것을 한자로는 기(旗)라고 했다. ‘기’는 군사조직이자 정치, 사회조직으로 모든 만주인은 예외 없이 여기에 소속되었다. 각 기에는 고유한 깃발이 있는데 황색, 백색, 홍색, 남색만으로 제작된 것을 정기(正旗), 황색, 백색, 남색 깃발에 홍색의 테두리를 두른 것과 홍색 깃발에 백색의 테두리를 두른 것을 양기(旗)라고 한다. 1616년 누르하치는 본래 4기였던 것을 8기로 확충했다. 해서여진을 통합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귀순해 오는 한족과 몽골족이 늘어나면서 한군팔기, 몽골팔기가 등장했다.“나가면 병사가 되고 들어오면 인민이 되는(出則爲兵 入則爲民)” ‘군민일체’,‘군정일체’의 팔기제의 효용성은 엄청났다. 평소 일상 생활과 전쟁에 동시에 대비할 수 있게 편제된 팔기제 아래서 후금(後金)의 백성들에 대한 통제력과 전투 능력은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 당시 쇠망의 조짐이 뚜렷했던 명군이, 조직화된 팔기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실제 팔기는 1644년, 청이 베이징으로 입성한 뒤에도 중원(中原)을 제압하고 통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중원 장악 이후, 팔기에 소속된 사람들을 기인(旗人)이라 불렀는데 그들은 별도의 호적에 편입된 특수 신분이 되었다. 그들은 기지(旗地)라 불리는 토지를 하사 받고, 그들만을 위한 독자적인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중원 입성 이후 기인들은 오로지 만주어를 익히고 궁술(弓術)을 연마하여 관리나 군인으로 등용되었다. 다른 농공상의 직업을 갖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특권도 컸지만 의무도 명확했다. 기인들에게 만주어를 익히게 하고, 궁술을 연마시킨 것은 결국 만주족이 지닌 정체성과 야성(野性)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수십만에 불과한 만주족이 1억 이상의 한족을 270여년이나 통치할 수 있었던 비책이기도 하다. 요컨대 1616년, 팔기제를 완성하면서 누르하치는 명과 일전을 겨룰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마련했던 셈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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