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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스승과 제자/김효겸 대원대 총장

    [기고] 스승과 제자/김효겸 대원대 총장

    스승의 날이다.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 이끌어주는 사람’을 말한다. 스승은 덕을 지닌 성품이 있어야 한다. 참을성도 많아야 한다. 제자를 자식처럼 생각하고 이끌어 주어야 한다. 제자가 잘못된 일을 저질러도 사랑으로 꾸짖어야 한다. 반성하지 않는 성품을 반성하는 성품으로 이끌어야 한다. 참으로 어렵고 고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스승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고 건너야 할 강이 아닌가. ‘스승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혹여 다칠세라, 혹여 잘못될세라 노심초사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요즘은 스승과 제자 간의 따뜻한 정이 흐르지 않는 것 같다. 다시 정을 복원해야 한다. 스승의 날을 맞아 스스로 부족한 점은 없는지, 개선할 점은 없는지 냉철히 반성하고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스승의 참모습이 훼손되어 간다고 하지만 여전히 스승만큼 제자를 돌보고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게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스승의 마음은 언제나 제자들 걱정으로 가득하다. 일부 부족한 스승도 있을 수 있지만 대다수의 스승들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인류의 발전은 교육에서 비롯됐다. 과학기술이 교육 없이 발전할 수 있었을까. 교육과 선행연구를 통해서 과학기술이 발전했다. 과학기술 발전만으로 인류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을까. 정신문화 발전의 토양에서 과학기술이 발전할 때 인류문화가 꽃필 수 있다. 일부 교사들은 청소년들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학생들로 하여금 문제행동이 나타날 때마다 자신들의 책임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학생들에게만 탓을 돌리는 경우가 있다. 시각을 바꿔 학생들을 긍정적 관점으로 보도록 한다면 문제해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문제 학생을 대해야 한다. ‘교육에는 절대 포기는 없다’라고 하는 명언을 교육자 모두 재음미하길 소망한다. 교수는 전문 교육에만 초점을 둘 게 아니라 인성교육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바른 인성의 바탕 위에서 전문교육이 꽃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 성공하려면 스승과 제자 사이의 돈독한 인간관계 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랑으로 가르치는 스승의 힘은 제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행동변화에 영향을 준다. 자살충동을 일으킨 제자를 구할 수 있고, 우울증으로 방황하는 제자를 올곧게 길러낼 수 있다. 이런 힘을 스승은 가지고 있다. 명심보감에 ‘황금천냥(黃千兩)이 미위귀(未爲貴)요 득인일어(得人一語) 승천금(勝千)이니라’라는 말이 있다. ‘황금천냥이 귀한 것이 아니라, 좋은 말 한마디 듣는 것이 천금보다 낫다’는 뜻을 담고 있다. 스승의 날을 맞아 명심보감에 나오는 이 글귀를 되새겨 보도록 권하고 싶다. 스승은 제자를 사랑하고 제자는 스승을 존경하는 사회로 만들어 가야 하리라.
  • [길섶에서] 고샅길 라일락/정기홍 논설위원

    농익은 이 봄날, 만화방창 꽃잔치로 시끌하더니 초록 잎사귀가 봄꽃의 옆자리를 하나씩 꿰차고 있다. 벚꽃의 흐드러짐을 본 게 엊그제인데 세상의 생물은 시절을 먼저 알고 계절의 바뀜을 재촉하는 것 아닌가. 장사익이 부른 ‘봄날은 간다’의 애절한 가락처럼 이 봄이 훌쩍 떠날까봐 괜히 우울해진다. 아파트단지 담장 너머로 와 닿는 라일락 꽃향기를 즐긴 지가 얼추 보름 정도 됐다. 꽃은 화사했던 며칠 전보다 덜하지만 그 향긋함은 여전히 으뜸인 듯하다. 하얀 벚꽃과 노란 개나리, 붉은 진달래 필 때와 다른, 눈과 코의 호사다. 겨우내 먹던 묵은지를 봄나물 겉절이로 바꾼 맛이라 할까. 우리 속담에 ‘국화는 개나리를 시샘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봄 개나리가 아름답기로서니 어찌 가을 국화의 우아함과 향기의 그윽함에 비할손가. 국화의 지조를 이름이다. 아직도 코끝을 건드리는 라일락 향기를 맡으며 꽃마다 지닌 자태와 가치에 고개를 끄덕여 본다. 고향마을 고샅길을 지키던 라일락은 이제 향기를 잃었을까. 40년 전 추억을 떠올려 본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기고] 물이용부담금, 상생의 정책이다/최지용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고] 물이용부담금, 상생의 정책이다/최지용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물 쓰듯이’라는 표현이 있다. 하지만 물은 더 이상 아낌없이 ‘펑펑’ 써서는 안 되는 소중한 자원이다. 산 좋고 물 맑은 우리나라 역시 물 부족 국가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언제까지 맑은 물을 마실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발행한 ‘환경전망 2050’에 따르면 2050년 물 수요는 400%나 증가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 인구의 40% 이상이 물 부족 스트레스를 겪고, 맑은 물을 마시기 위한 국가 간 경쟁도 가열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나라는 1999년 물이용부담금제를 도입했다. 믿고 마실 수 있는 저렴하고 안전한 식수를 지속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관리에 필요한 비용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옛 속담을 실천하는 데 지출되는 돈이다. 상수원의 수질을 먹는 물에 적합한 수준으로 보호하기 위한 물이용부담금은 상수원을 이용하는 이용자에게 편익이 돌아간다. 물이용부담금은 지금껏 환경기초시설 설치·운영에 47.1%, 주민 지원에 20.9%, 토지 매수에 19.4% 등 상수원 보호와 관련된 정책에 지출됐다. 이에 따라 부담금 지원 사업구역의 최종 말단 지점인 잠실 수중보의 생화학적 산소요구량(BOD) 농도는 도입 전에 비해 1.3배나 개선됐다. 게다가 주민 지원, 토지 매수 및 수변구역관리, 비점(非點)오염관리 지원 등의 효과까지 고려하면 그 효과는 훨씬 크다. 특히 물이용부담금은 상수원을 자체 보유하지 못한 서울과 인천시에 상수원 관리 수단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상수원 지역인 팔당 상류 유역은 수도권에 인접해 개발 수요가 큰 만큼 각종 규제수단을 통해 오염원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체계적인 관리가 절실하다. 오염총량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개발을 억제하고 수변구역을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물이용부담금이 없어지면 서울과 인천시는 시민들이 마시는 상수원에 대한 관리 수단이 없어진다. 상수원을 지킬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인 셈이다. 주목해야 할 또 다른 하나는 물이용부담금이 정부의 일방적, 강제적인 징수가 아니라 상·하류의 합의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상수원 수질 개선을 위한 재원이라는 화폐적 가치를 넘어 상류 지역과 하류 지역의 상생을 위한 결과물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다. 만약 훼손되면 이후에는 물이용부담금의 수배의 비용을 치르더라도 다시 마련할 수 없을 것이다. 올해는 ‘세계 물 협력의 해’이기도 하다. 물 협력에 대한 가장 우수한 사례가 물이용부담금제가 아닌가 싶다. 많은 나라들도 상수원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각종 형태의 수익자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다. 물 관리에서는 선진국으로 꼽히는 영국은 2014년부터 우리와 같은 물이용부담금제를 시행할 태세다. 많은 곳에서 현재 물이용부담금을 둘러싼 상·하류 간의 갈등을 빚고 있지만 공영정신 아래 물이용부담금이 자발적·효율적·안정적으로 이행될 때 상수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아니 술어미… 우선 행리부터 풀고 봅시다. 나귀들도 작도간(斫刀間)에 들여 매야지요.” “나귀들 수발이야 수하 행중이나 차인꾼 들이 잘 돌보지 않겠습니까. 걱정 붙들어매시고 여기 앉아보시지요.” “시생이 본래부터 물색에는 뜻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소매를 당기는 게 아닙니다. 어디 켕기는 구석이 있소?” 봉당 쪽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으며 행수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평소 거동에 흐트러짐이 없었던 월천댁이 조급하게 구는 것이 적잖이 의아했다. “그날 병구완했던 사내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행중 사람이 되돌아와서 말래 숫막촌까지 업어간다기에 그냥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만.” “지금 말래 도방에서 구완을 받고 있소. 다리가 부러져서 온전히 걷자면 달포는 꼼짝 못 하고 구완을 받아야 할 것이오.” “그런데 그 사람의 행방을 눈이 시뻘게져서 수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가?” 월천댁은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한지 상반신을 한번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 군불을 때다가 별안간 밖으로 뛰어나온 것을 깨닫고 다시 정주간으로 달려가서 잉걸불을 수습하고 나왔다. 소생인 구월이나 늙은 중노미는 이웃에 방아품을 팔러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게 누구였소?” 곁에서 누가 엿듣는 사람도 없건만 월천댁은 행수에게 귀엣말을 하였다. 행수가 더욱 의아하여 되물었다. “탁발하는 운수였단 말이오? 나물 먹고 푸른 똥 싸는 절간 중놈이 비석거리에는 무슨 소간사가 있어 나타났단 말이오?” 월천댁이 소스라쳐 행수 정한조의 무릎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에그… 그 목소리 좀 낮추시오. 누가 듣겠습니다.” “행색이 어땠소? 주모더러 살보시하라고 눈알을 부라립디까?” “에그머니나… 그런 음탕한 소리 그만둬요…. 스님이란 사람이 목자가 온화하지 못했지요. 목탁은 두드리고 있었지만, 힐끗 보아도 두 눈이 얼음에 자빠진 쇠눈깔처럼 번들거려서 소름이 끼칩디다. 염불을 외우면서도 눈자위를 가만두지 않고 정주간이며 봉노를 서캐 잡듯 뒤집디다. 누굴 찾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소매를 내저으면서도 집 앞뒤를 살피는 것을 멈추지 않았지요. 쇤네가 도대체 누굴 찾느냐고 파고들었더니 그제사 요지간에 벼랑길에서 실족한 사내가 혹시 이 숫막에서 묵어간 적이 있느냐고 묻습디다. 나이가 이팔인 딸 소생을 둔 어미 심정이 어떠한지 짐작하시겠지요? 중이든 속이든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 가슴부터 두근거린답니다.” “그래서?” “그 말에 가슴이 뜨끔했습니다만, 스님의 목자가 하도 불량해 보이고 제가 안다 하고 섣불리 입을 나불댔다간 큰 동티라도 입을 것 같아 우리집에서는 잔술이나 팔지 객주는 치지 않는다하고 둘러대며 모르쇠로 딱 잡아떼고 말았지요. 정말 모르느냐고 되반들거리는 낯짝을 모잽이로 쳐들고 하냥다짐을 하는데, 데면데면하게 굴었다간 당장 이웃을 불러 무릎맞춤이라도 할 것 같아 쇤네 등골이 오싹합디다. 그 유들유들한 스님이 내 속내를 속속들이 꿰고 있을 것 같아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립디다. 외정도 없는 집에 계집사람 혼자서 과년한 여식을 두고 숫막을 경영한답시고 천방지축 요량없이 날뛰다가 언제 된불을 맞게 될지 조마조마하답니다. 언제 어떤 곡경을 치를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이웃에 방아 품앗이 간다고 핑계대고 다른 데로 가보라고 방색하고 말았습니다만, 다시 찾아와서 지분거리면 그땐 또 뭐라고 둘러댈지 생각이 올지갈지 하답니다.” “봄 얼음 건너듯 언행에 조심만 한다면 별 탈 있을라구…. 그 땡추는 어디로 갔을까?” “방색하고 나서 힐끗힐끗 훔쳐보았더니 저진터재 쪽으로 휑하니 되돌아갑디다.” “저진터재라면 내성 쪽이 아니오?” “그야 알 수 없지요.” “바랑은 지고 있었소?” “이제 보니 그렇네요. 탁발한다는 스님이 짊어진 바랑도 보이지 않습디다.” “속담에… 배를 타는 손님 중에 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는 십중팔구 무뢰배라 했습니다. 궐자가 중의 가사를 입고 있었으나 본색은 부랑배였을 거요.” 정한조는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겉으로는 태연하게 말했다.
  • 불의를 봐도 왜 못 본 척할까 뇌 때문에? 간 때문에?

    사랑에 눈먼다는 표현을 흔히 듣는다. 얼핏 시적인 표현처럼 들리지만, 뇌과학은 이를 과학적인 현상이라 규명했다. 쉽게 말해 사랑에 빠졌을 때 일어나는 뇌의 화학작용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거다. 유형은 다르지만, 본질은 비슷한 현상이 현실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예컨대 불의를 봐도 ‘상대방 숫자’에 따라 애써 못 본 체하는 경우다. 뇌가 불의를 분명하게 인지했으면서도 동시에 이를 무시하는 이율배반이 버젓이 성립하는 거다. 뇌가 비겁한 걸까, 간이 콩알만 한 걸까. ‘의도적 눈감기’(마거릿 헤퍼넌 지음, 김학영 옮김, 푸른숲 펴냄)는 이처럼 알면서도 실수를 되풀이하는 뇌의 특성과 인간 본성 간의 관계를 조명한 책이다. ‘의도적 눈감기’란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라도 뇌의 본능과 어긋난다면 고의로 무시하는 현상을 말한다. 못 본 척하는 것을 넘어, 아예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깨끗이 잊어버리려 할 만큼 뇌가 비겁한 속성을 갖고 있다는 거다. 저자는 사랑 외에 우리 뇌를 눈감게 하는 요소들로 동질성과 이데올로기, 복종, 순응, 보상 등을 꼽았다. 대단히 정밀하고 똑똑한 듯 보여도, 뜻밖에 뇌는 허점이 많다. 특히 익숙한 것에 쉽게 속는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을 보자. 여인을 얻기 위한 노력과 정성을 강조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지만, 이를 뇌과학의 시선으로 보면, 익숙한 것에 뇌가 길들여진다는 의미가 있다. 익숙함은 쉽게 동질감, 또는 호감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부지런히 자신의 얼굴을 상대방에게 보여 주면, 상대방의 뇌가 익숙한 사람으로 인식해 ‘비호감’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1980년대 미국 미시간대에서 64명의 남녀 학생을 대상으로 벌인 호감도 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가벼운 예를 들었지만, 책에 담긴 ‘의도적 눈감기’의 실제 내용은 무겁다. 건강검진 미루기 등 개인의 일상적인 문제부터 성직자들의 아동 성 학대 등의 사회 현상까지, 의도적 눈감기의 구체적인 사례와 그로 인한 파장을 짚고 있다. 물론 비겁한 뇌의 한계를 딛고 선 용기 있는 사람들도 많다. 저자는 이처럼 정신의 작동 방식을 바꾼 이들을 ‘카산드라’라고 명명했다. 빠지기 쉬운 의도적 눈감기의 유혹에서 벗어나 진실을 직시한 사람들이다. 저자는 ‘카산드라’를 통해 의도적 눈감기를 부추기는 요소들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1만 5000원.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소금을 구우려면 먼저 염전 바닥에 왕피천에서 가져온 뻘을 넣고 평평하게 다진다. 그 위에 산에서 채취한 마사토를 깐 뒤 바닷물을 퍼붓고 말린 다음 써레질을 해서 뒤집는 작업을 7, 8일 동안 반복한다. 그다음에는 마사토와 함께 응축된 소금을 긁어모아 다시 바닷물을 부어 표면 아래 뻘로 만들어 웅덩이에 흘러내리게 하여 마사토와 소금물을 분리한다. 염부 두 사람이 한 열흘 동안 작업을 하면 소금물 200초롱을 얻게 되는데, 이 소금물을 솥에 부어 주야로 쉬지 않고 달이면 소금 80말을 얻어 낸다. 이런 토염이 햇볕에 의존하여 수분을 증발시켜 얻는 천일염이나 바닷물을 끓여서 얻어 내는 화염에 비하여 맛이 달다. 이 토염이 워낙 고품질이기 때문에 이웃 고을뿐만 아니라, 십이령을 넘어 경상도 안동과 상주, 강원도 내륙 영월과 태백에, 고초령을 넘어 영양, 진보, 청송, 심지어 고령 개포(開浦) 장시의 원상들까지 내성에 있는 어물 객주에 눈치 빠른 거간을 넣어 거래를 틀 만큼 천세난 물화였다. 고령뿐만 아니었다. 낙동강에서 손꼽히는 나루터 장시로는 고령 외에도 밀양의 삼량진(三梁津), 의령의 박진, 초계의 율지(栗旨), 현풍의 세암(洗巖), 성주의 명덕진, 대구의 사문진, 안동의 외관, 선산의 비산, 상주의 낙동과 같은 포구들이 있었다. 이런 포구에서 열리는 최고의 갯벌장에서도 울산 포구 염막에서 나온 토산염이 거래될 정도였다. 이들 갯벌장을 드나드는 부상들도 울진 포구의 염전이나 해물 저자까지 오면, 좀 더 값이 눅은 물화를 매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십이령을 넘자면, 섶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경난을 겪기 마련이어서 쓸개 빠진 위인이 아니라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낙동강 하구에서도 소금이 생산되었다. 이들은 배에 소금을 싣고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각 포구에 도착하여 소금을 팔았다. 그러나 사공들이 직접 팔 수는 없었고, 수산 도방, 남지 도방 등 각 포구에 있는 도방의 객주가 물건을 중매해 그곳에서 쌀, 보리, 채소, 과일 같은 낙동강 유역에서 재배되는 곡물과 상품을 바꾼 뒤 다시 강을 내려갔다. 그러나 그 품질이나 맛에 있어 울진 포구의 염호에서 생산되는 토염을 따르지 못했다. 토염이든 자염이든 소금의 수요가 이처럼 많았던 것은 소금으로 열두 가지 반찬을 만든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우리 생활에 너무나 깊숙하게 소용되기 때문이었다. 소금은 부정을 씻어 주고 병을 낫게 하며 재액까지 막아 준다고 했다. 사람이 죽으면 배꼽에 소금을 수북하게 놓고 마당에 차리는 상에도 소금 사발을 두었다. 배꼽의 소금은 바람이 배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주고 소금을 먹은 저승사자가 목이 말라 쉬어 가게 되므로 죽은 자도 힘들이지 않고 저승까지 당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초상집에 갔던 사람은 집으로 돌아와 소금을 뿌려 악귀를 쫓았다. 나쁜 병으로 사람이 죽으면 집 안에 소금을 뿌렸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낙네는 성주 단지 안에 있는 소금을 먹으면 아이를 낳게 된다고 믿기도 하였다. 울진 포구 소금 장시에서 내륙으로 왕래하는 길목은 통틀어 세 곳이었다. 남쪽으로는 온정에서 구슬령을 넘어 영양과 안동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고, 중로에는 원남 갈면에서 고초령(高草嶺)을 넘어서 영양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북으로는 흥부장에서 십이령을 넘어 내성과 영주로 넘어가는 길이 있었다. 흥부장에서 내성으로 넘어가는 십이령길은 강원도 해안에서 경상도 북부 내륙 장시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였다. 이 고개는 험준하고 가파르기가 마치 낙타 열두 마리를 세워 둔 것과 방불하여 정한조가 향도하는 원상과 그를 따르는 담꾼들 외에는 언감생심 넘을 엄두조차 못 내는 험준한 산길이었다. 그들 고개 중에서 코치비재나 곧은재는 그 가파르기가 사람의 콧등이 땅에 닿을 정도였다.
  • [데스크 시각] 밀어내기와 뒷북치기/전경하 경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밀어내기와 뒷북치기/전경하 경제부 차장

    재산형성저축과 국민행복기금이 세간의 화제다. 돈을 모으는 상품과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둘 다 많아서 문제다. 재형저축은 너무 많이 팔아서다. 새 상품이 나왔으니 금융회사로서는 상품의 우월함을 실적으로 증명하고 싶을 게다. 그 방법은 직원을 통한 판매 독려다. 금융감독원이 과당경쟁이나 불완전판매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나 사후약방문이다. 금융회사도 판매자 이름을 남겨 민원이 발생할 경우 인사평가 등에 반영한다. 역시 사후약방문이다. 일단 많이 판 직원들은 이미 상을 받았을 것이다. 자기가 산 금융상품에 결정적 하자가 없다면, 고객 또한 샀기 때문에 민원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 최근 일시적 판매 중단 사태를 일으켰던 즉시연금이 그렇다. 세금 부과 대상이 아닌 2억원 이하 가입자의 급증은, 소비자의 불안함도 있지만 수수료를 의식한 은행 창구의 부추김이 없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행복기금을 보면서 허전한 사람도 있다. 힘겹지만 이자를 잘 갚아온 사람은 뭘까. 연체 기록을 안 남기려고 다른 소비를 줄였던 기억은 대출자라면 다 있을 게다. 원금 탕감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다. 아등바등 원리금을 갚아온 소심한 자신을 탓하거나, 원금을 탕감받는 수십만명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다는 욕심이 일어날 것이다.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우리 속담처럼, 일단 빚내고 보자는 심리가 있었을 게다. 그리고 ‘설마 떼이겠느냐’는 은행의 안이함이 더해졌을 게다. 조금씩 기본에서 벗어났을 뿐인데 두세 가지가 만나 문제가 커졌다. 실적 쌓기 위해 밀어내고, 뒷감당할 자신은 없지만 일단 쓰고. 재형저축이 대출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재형저축은 2015년까지 가입할 수 있다. 아직도 2년 이상 가입 기간이 남아 있다. 차분히 생각한 뒤 가입해도, 가입을 권유해도 괜찮다. 재형저축 광풍이 잦아든 뒤 금융사들의 가입계좌 월별 추이를 따져보고 싶다. 행복기금은 그 취지는 좋지만 반복돼서는 안 되는 프로그램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예기치 않은 변수가 있었지만 ‘원금 탕감해 준다’고 사방에 떠드는 것은, 혜택을 못 받는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대출자의 상환능력에 맞춰 대출하자. 금융회사도 원금 떼여서 좋을 것 없지 않은가. 소비자가 일단 자신의 능력껏 대출받아야겠지만, 본인보다 금융 지식이 뛰어날 것 같은 직원이 더 대출해 주겠다는 말에 넘어가지 않기는 어렵다. 약탈적 대출이나 일단 팔고 보자는 실적주의가 아닌, 다음을 생각하는 관계형 금융으로 가자.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인 미국의 비우량주택담보대출은 대출자의 상환능력에 기반하지 않는 약탈적 대출로 유명하다. 대출이, 대출받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삶마저 파괴시켰기 때문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담보인정비율·총부채상환비율 규제는 금융회사의 약탈적 대출 유인을 억제하는 금융소비자 보호 장치”라고 밝혔다. 빚을 내서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한들 또 다른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신 후보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다음을 생각해 보는 여유, 이제 우리 금융도 이런 체력을 가졌다고 믿고 싶다. lark3@seoul.co.kr
  • 최윤 아프로파이낸셜그룹 회장 “금융당국 감독 기꺼이 받겠다…저축은행 인수 9전10기 도전”

    최윤 아프로파이낸셜그룹 회장 “금융당국 감독 기꺼이 받겠다…저축은행 인수 9전10기 도전”

    “대출금리를 20%대로 인하하기 위해서라도 저축은행 인수는 꼭 필요합니다.” 저축은행 인수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 최윤(50) 아프로파이낸셜그룹 회장은 단호한 목소리로 ‘9전 10기’ 의지를 밝혔다. 아프로파이낸셜은 대부업체 러시앤캐시 등을 두고 있는 그룹이다. 언론 인터뷰에 좀체 나서지 않는 최 회장은 지난달 28일 서울신문과 만나 “서울·경기권 중대형 저축은행 인수에 올인하겠다”고 선언했다. 최 회장은 2007년부터 예한울·예쓰·중앙부산·프라임·파랑새·현대스위스4 등 9곳의 저축은행 인수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대부업체의 저축은행 인수에 대한 정서적 반감 때문이다. 언론사 개별 인터뷰에 응한 것이 “이런 세간의 오해를 벗고 싶어서”라는 최 회장은 “일정 규모 이상의 대부업체와 개인이 운영하는 대부업체에 대해서는 다른 잣대가 필요하다”면서 “(대부업체 감독권을 갖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대신 금융 당국의 엄격한 감독을 받아야 한다면 (러시앤캐시도) 기꺼이 받겠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인수에 왜 그렇게 매달리는가. -제도권 금융에 진입하게 되면 자금조달 비용이 대폭 싸진다. 그러면 대출금리를 낮출 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동력이 확보되면) 소상공인 대출, 자영업자 전용상품 등을 내놓을 작정이다. 아직도 제도권 금융 문턱을 넘지 못해 고통받는 금융소외자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 →대부업체에 대한 국민 정서를 감안할 때 시기상조 아닌가. -대부업체라서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굴지의 글로벌 기업인 GE(제너럴일렉트릭), 씨티, SC(스탠다드차타드) 등은 모두 한국 내에서 캐피털 업체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그들은 우리와 비슷한 20~30%대 금리로 금융업을 하는 회사들이다. 캐피탈, 대기업, 저축은행이 하면 소비자금융이고 대부업체가 하면 사채라고 매도하는 시각을 이해하기 어렵다. →대부업체라는 것도 그렇지만 심지어 일본계 아닌가. -금융 당국이 이미 일본 대부업체의 국내 저축은행 인수를 허용했다. J트러스트는 미래저축은행을, SBI는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을 각각 인수했다. 그런데 솔직히 두 회사는 일본인이 운영하고, 철저하게 일본에 기반을 둔 금융사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완전히 ‘남’이다. 재일교포인 저는 굳이 비유하자면 ‘사촌’쯤은 된다. ‘남’에게는 (저축은행 인수) 기회를 주면서 ‘사촌’에게는 왜 계속 벽을 치는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기는 어려운 대목이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한국에서 고금리를 받고 있다고 해서 러시앤캐시에 저축은행 인수 기회를 줘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럴수록 소비자의 권익을 더 잘 지켜줄 만한 곳으로 저축은행을 넘겨야 하는 것 아닌가.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이 바로 그 점이다. 러시앤캐시는 무조건 저신용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곳이 결코 아니다. 대출을 원하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신용이 낮은 80여명 정도는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곳이다. 1인당 평균 대출금액이 280만원, 평균이자가 한달 약 8만원 정도다. 제가 직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택시론’이다. 택시는 버스나 지하철 같은 공공 교통 수단보다 비싸지만, 급할 때 요긴하고 또 반드시 서민에게 필요한 교통수단이다. 지갑에 택시비가 없는데 (상환능력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택시를 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러시앤캐시는 채권을 발행하거나 기존 자본금을 활용하는 방법밖에 없어 택시비(금리)를 낮추기가 어렵다. 지난해 영업정지 이슈가 있었음에도 찾아오는 고객 수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자금 조달방식이 제한되어 있다 보니 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 고통은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제도권 문만 열어주면 엄청 잘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웃음) 큰소리 치는 건 아니지만 2002년 한국에 대부업법이 처음 생겼을 때를 생각해 보라. 제가 (아프로의 토대인) 원캐싱을 설립해 담보 없이 200만~300만원을 빌려주자 제도권 금융에서는 돈을 떼일 것이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10년 만에 자산 2조원대의 대형 대부업체로 키우지 않았나. 저축은행은 원래 서민을 위한 금융기관이다. 그런데 부동산 파이낸싱프로젝트(PF) 등에 손을 대며 욕심을 내다가 망가진 것이다. 자영업자 전용대출 등 개척 가능한 상품이 굉장히 많다. →영업정지 처분과 관련해 1심 법원은 부당하다며 러시앤캐시 손을 들어줬지만 금융 당국이 항소해 2심 법원에 계류 중이다. 2010년에는 검찰의 압수수색도 받았다. -사정기관에서 여러 차례 조사받은 것이 사실이다. 횡령, 탈세, 배임은 기본이고 일본 야쿠자 자금을 세탁했다느니, 조총련을 통해 북한에 자금을 송금한다느니 별별 혐의가 다 있었다. 지금은 웃지만 당시에는 너무 억울했다. 결국 아무것도 나온 건 없었다. 오히려 러시앤캐시의 결백을 입증시켜준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직도 항간에는 (러시앤캐시) 순익의 상당액이 일본으로 빠져나간다는 의심이 많다. -2002년 원캐싱을 설립해 운영하던 중 일본 법원에서 A&O(아프로파이낸셜그룹의 전신)가 매물로 나왔다. 그때 나고야와 오사카 재일교포 상공인들의 도움을 받아 J&K캐피탈이라는 법인 명의로 A&O를 인수했다. J&K가 서류상으로는 일본에 본사를 둔 페이퍼컴퍼니이기 때문에 일본계로 오해 받지만, J&K 지분 100%를 제가 다시 인수했기 때문에 사실 한국계 회사이다. 저는 알다시피 재일교포 3세다. 할아버지 때부터 100년이 넘게 한국 국적을 유지했다. 1년 365일 중에 330일은 한국에서 산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 10년 동안 저는 단 한 차례도 이익금 배당을 받지 않았다. 지금도 가장 억울한 오해가 국부 유출을 했다는 것이다. →공식석상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인지 국부유출설 외에도 유난히 루머가 많다. 모 여배우와의 소문도 끊이지 않는데. -그 여배우와는 회사 일로 딱 5분간 얘기한 게 전부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때 재외동포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도 났다.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겠다고 생각했다. 거듭 말하지만 어려서부터 한국인임을 잊지 말라는 교육을 수없이 받았다. 또 결코 잊은 적도 없다. 체계적인 고객정보(CB) 구축 노력 등을 통해 사채 수준에 머물렀던 우리나라의 소비자금융업을 어엿한 금융업의 한 축으로 양성화시켰다는 데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이 노하우를 중국과 동남아시아에도 전파하고 싶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열린세상] 중견기업도 손톱이 있다/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 부원장

    [열린세상] 중견기업도 손톱이 있다/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 부원장

    중국 속담에 맛이 쓰기로 유명한 약재인 황련과 관련된 얘기가 제법 많다. 대부분은 황련이 너무 쓴 나머지, 이를 씹고도 아무 소리도 못 내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최근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둘러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갈등 속에서 중견기업은 말 못하는 사람이 황련을 씹은 듯 냉가슴을 앓고 있다. 산업발전법에 중견기업 개념이 도입된 지도 벌써 3년째 접어들지만 중견기업은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아닌 샌드위치 신세로 정부정책에서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경제의 허리인 중견기업은 대기업 계열사가 아니라 중소기업 때부터 20~30년을 한 우물만 판 기업이 대부분이다. 디스크 세라믹 커패시터분야 세계 1위인 삼화콘덴서(1956년 설립), 다이아몬드 공구분야 세계 4위인 이화다이아몬드공업(1975년 설립), 엔드 밀 절삭공구분야 세계 1위인 와이지-원(1981년 설립)은 모두 한 분야에 집중해 성공한 중견기업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 우물만 파온 중견기업들에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 다름없다. 1957년부터 묵묵히 골판지 생산에만 주력해온 한 중견기업 대표는 최근 중견기업이 된 것을 무척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2011년에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분류되면서 ‘사업 확장 자제’ 권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골판지 제조업을 하려면 300명 이상 채용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마치 여자아이의 발을 천으로 칭칭 감아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막던 중국 은왕조 시대의 ‘전족’이 현대판으로 리메이크된 듯하다. 이러한 규제로 인해 매출이 2000억원에 달하는 이 업체의 성장 가도에 ‘빨간불’이 켜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중견기업의 성장 과정을 보면 대기업의 인력 빼가기,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와 일방적 계약 취소 등 이른바 ‘손톱 밑 가시’와 함께한 세월이 30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중견기업의 70%가 부품소재업체이다 보니 대기업 전속 계열화로 인해 매출 확대에도 제약을 받고 있다. 특히 기업의 핵심 자산인 인재를 정성들여 키워놓고도, 너무도 쉽게 대기업에 뺏기는 일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최근 3년간 매출이 33%가량 고속성장하고 있는 인천의 한 중견기업은 우수한 인재를 붙들기 위해 해외 연수도 보내주고, 대기업 못지않은 연봉에 기숙사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우수인력의 80%는 결국 대기업으로 이직을 한다며 중견기업이 대기업의 인재사관학교가 되어 버린 현실을 하소연한다. 지난해 조사에서도 중견기업의 경우, 입사 1년 이내의 이직률이 62.7%에 달하며 5년 이상 장기 재직자는 6.1%에 불과했다. 단지 법적으로 중견기업이 됐다고 해서 현실적인 ‘손톱 밑 가시’가 일시에 해소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중견기업이 되자마자 기존의 지원을 단번에 거두고, 대기업과 똑같이 규제하는 것은 이제 막 성장 가도에 진입한 중견기업에 또다시 가시밭길을 가라고 등을 떼미는 셈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많은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이 되기를 꺼리고 있으며, 가장 큰 이유로 ‘규제 증가’(45.3%)를 꼽고 있다. 다시 말해 ‘괴롭힘 당하는 게 싫다’는 것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중소기업은 1%뿐이고, 중견기업 중 수출기업은 48%에 불과했다. 국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3년 19.4%에서 2011년엔 10.9%로 하락하고 있다. 글로벌시장 진출을 통해 다시 한번 새로운 줄기와 싹을 틔워야 하는 시기에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인해 중견기업의 생장점(Growing Point)이 잘려 나가고 있다는 얘기다. 창조경제를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역량 있는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고, 중견기업들은 다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성장 사다리’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규제, 기업 관행 등 산업 생태계에 박혀 있는 ‘손톱 밑 가시’를 찾아내 없애야 한다. 그러나 이는 사후적이고 일시적인 방편에 불과하다. 이제는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이 헤쳐나갈 험난한 가시밭길을 미리 꼼꼼히 살펴보고, 가시가 박히지 않도록 사전에 섬세하게 배려하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새 정부가 중소기업의 손톱만 쳐다보다가 중견기업의 손톱을 잊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 [다시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재능기부 시스템 만들어 저소득층 빛 될 것”

    [다시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재능기부 시스템 만들어 저소득층 빛 될 것”

    “2만여명의 직원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빛이 될 수 있도록 ‘재능기부’ 시스템을 구축하겠습니다.”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훌륭한 재능을 가진 직원들이 저소득 가정의 학생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나눠줄 수 있도록 ‘자원봉사 인력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조 사장은 “한전은 전국에 14개 본부와 230개 사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지역에 있는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이 학업에 대한 자신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거미줄 같은 사업소 조직을 거점으로 이용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교육 양극화 해소뿐 아니라 빈곤의 대물림을 끊는 데 공기업으로서 역할을 다하겠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조 사장은 “요즘 한전 직원들은 모두 외국어가 최고 수준이며 음악과 그림, 운동 등 다양한 특기를 가지고 있다”면서 “이들 직원을 인적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만 만들어진다면 한전이 미래 희망을 만드는 조직으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이철휘 서울신문사장 “닫힌 민족주의 대신 열린 미래로” 센고쿠 도쿄신문대표 “적대자세 무익… 상호 발전 기회로”

    이철휘 서울신문사장 “닫힌 민족주의 대신 열린 미래로” 센고쿠 도쿄신문대표 “적대자세 무익… 상호 발전 기회로”

    이철휘 서울신문사장 개회사 일본 속담에 ‘소데후레 아우모 다쇼노엔’(袖?れ?うも多生の?)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한국 속담과 같은 뜻입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양국 간 인적교류 및 교역규모는 연간 각각 1만명과 2억 달러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하루에만 각각 1만 5000명과 2억 5000만 달러에 이를 정도로 깊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년 말 이래 한·일 관계는 과거사 문제로 어려운 과정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기를 맞아 보다 승화된 관계가 정착돼야 할 이 시점에 오히려 한·일 양국은 물론 동아시아 전체에 격랑이 일고 있습니다. 닫힌 민족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열린 사회를 지향하면서 세계의 평화, 발전, 인권에 기여하는 모범적 선린 관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올해 창간 109주년을 맞은 서울신문과 도쿄신문, 주니치신문이 함께 마련한 이번 포럼에서 생산적이고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을 위한 통찰력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센고쿠 도쿄신문대표 개회사 작년 여름 이후 한·일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습니다. 서울신문과 도쿄신문, 주니치 신문은 지난해 말 양국 관계를 주제로 공동 여론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를 보면 양국 국민의 각각 70% 정도가 한·일 관계 악화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대시하는 자세는 서로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습니다. 급격한 저출산·고령화와 양극화 등 두 나라가 안고 있는 국내 정치의 과제는 공통된 부분이 많아 함께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많습니다. 외교에 있어서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북핵 문제에 대한 연계는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번 포럼의 목적은 두 나라에서 동시에 진행된 정권 교체를 양국 관계 재설정의 호기로 삼아 발전적인 미래를 모색해 보자는 것입니다. 양국을 대표하는 뛰어난 식견을 지닌 분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분들을 연사로 모셨습니다. 우리 함께 앞을 향해 나아갑시다. 이번 포럼이 이를 위한 지침을 제시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 유명환 “의원연맹 복원해 대화·협력 시대로 중단된 FTA협상 조속히 마무리해야”

    유명환 “의원연맹 복원해 대화·협력 시대로 중단된 FTA협상 조속히 마무리해야”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한·일 관계 회복과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해서는 “민간 부문의 대화와 협력 관계를 더 강화하고 특히 역할이 약해진 한·일 양국 간 의원연맹을 복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각 지방자치단체 간의 교류를 다시 활성화시켜야 한다”고도 했다. 유 전 장관은 14일 한·일 국제 포럼에서 기조 연설을 통해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문화적, 역사적 차이점이 크다”면서 “먼저 이런 상호 인식의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이 양국 관계 개선에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유 전 장관은 이어 “최근의 한·일 관계는 갈등이 다시 증폭되는 등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 “그 원인은 독도와 역사 인식의 문제”라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연합국들은 일본에 전쟁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묻지 못했고 이로 말미암아 일본은 스스로 전쟁의 잘못을 정리할 기회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식민 지배와 전쟁의 가해자라는 일본 국민의 인식은 엷어지고 원폭 피해 등으로 피해의식이 두드러지면서 일본이 기억하는 역사와 한국이 기억하는 역사의 괴리가 더 커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를 잊는 자는 한쪽 눈을 잃어버리는 것이지만 과거에 안주하는 것은 두 눈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서양 속담을 인용하면서 “한·일 모두가 이제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어 “민족주의적 감정과 잘못된 애국심은 이런 합리적 사고를 방해한다”면서 “민간 교류 활성화로 이를 방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유 전 장관은 지난해 8월 이후 한·일 관계가 매우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지만 그 당시 걱정한 것보다는 이른 시기에 복원력이 살아나고 있는 것도 민간 교류 활성화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유 전 장관은 민간 교류 강화를 위한 방법으로 청소년 교류 활성화도 제시했다. 그는 “한·일 대학 간 장학금 지원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면서 “이는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한 실질적 투자”라고 주장했다. 또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의 조기 타결 필요성도 강조했다. 한·일 FTA는 2003년 한·미 FTA보다 먼저 협상이 시작됐지만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그는 또 한·일 양국의 새 정부 출범이 한·일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는 어려운 현안에 얽매이지 말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베 신조 총리도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어 박근혜 정부와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상반기 한국에서 열릴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이런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피력했다. 그는 “3국 정상회담에서 한·일은 물론 일·중 정상회담도 부담 없이 열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朴 “역사 직시해야 한·일 관계 진전”

    朴 “역사 직시해야 한·일 관계 진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14일 한·일 관계와 관련, “한·일 공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과거사가 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면서 “양국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역사를 직시하고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진지한 자세가 쌍방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이날 서울신문이 주최한 한·일 국제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중의원 의장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에서 접견하고 “새 정부는 ‘신뢰 외교’를 중요한 외교 기조로 삼고 있다. 한·일 양국은 신뢰에 입각해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등의 교류를 진척시키고 성숙한 파트너 관계를 진행시켜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배석했던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이 전했다. 박 당선인은 또한 “세계 어느 나라도 혼자 힘으로만 할 수는 없으며 한·일 간 긴밀한 관계가 동아시아 비전을 실천할 수 있는 첫 단추”라면서 “오늘 열리는 한·일 관계 포럼에서 새 정부가 시작되는 양국이 미래지향적인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의견을 교환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고노 전 의장은 “(박 당선인의) 일관되고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일본에서 봤다”면서 “확고하고 제대로 된 기초 위에서 한·일 양국이 새로운 관계를 맺고,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당선된 (양국의) 리더십이 앞으로의 한·일 관계를 논의했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고노 전 의장은 이어 “북한의 핵실험 문제에 국제사회가 함께 공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당선인은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해 차기 정부의 대북 관계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설명한 뒤 “양손을 마주 쳐야 박수 소리가 난다는 한국 속담이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는) 현재 상황은 이러한 생각을 진행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면서 “북한의 이와 같은 도발은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고노 전 의장은 1993년 관방장관 시절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강제성과 인권 침해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내용을 담은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이날 접견은 지난달 말 아베 신조 총리가 ‘위안부 강제 연행에 대한 문서상의 증거는 없다’는 입장 아래 ‘고노 담화’ 수정 가능성을 시사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길섶에서] 술비(酒雨)/서동철 논설위원

    전통사회의 농촌에서는 ‘봄비는 일비요, 겨울비는 술비’라고 했다. 겨울은 어차피 농한기라 일거리가 많지 않았겠지만, 비를 핑계로 쉬면서 막걸리 한잔 더 먹어보자는 심산에서 만들어낸 속담이었을 것이다. 나아가 요즘에는 계절과 상관없이 비가 내리면 전집이 성시를 이룬다. 부침개에는 막걸리가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종종 들르는 전집 주인은 비 오는 날은 손님이 너무 많으니 되도록 오지 말라고 당부할 지경이다. 대중가요 속 겨울비는 이별이다. 로커 김종서는 “우울한 하늘과 구름 1월의 이별노래”라는 ‘겨울비’에서 “사랑의 행복한 순간들 이제 다시 오질 않는가”라고 절규한다. 싱어송라이터 임현정도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에서 “이별은 겨울비처럼 두 눈을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내게 남기고…”라며 “나와 상관없는 행복을 꿈꾸는 너”를 절절하게 원망한다. 오랜만에 겨울비가 내린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에서 이별의 눈물을 떠올리면 신세대, 주기(酒氣)가 발동하면 ‘쉰세대’가 아닌가. 아, 나는 쉰세대가 분명하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설 선물/정기홍 논설위원

    선물에는 정(情)이 담긴 나눔의 미학이 깃들어 있다. 예부터 때가 되면 내남없이 선물을 주고받아 그 종류가 많기로 선물만 한 게 없을 게다. 지금은 선물 축에 못 들지만 고무신과 양말, 보루담배가 어른을 찾을 때 챙겨야 하는 목록 1호였던 때도 있었다. 그 이면에 뭉칫돈 선물로 인해 패가망신한 이들도 심심찮게 보았지만 말이다. 연초 모임에서 뜻깊은 선물을 받았다. 하나는 복권이고 다른 하나는 ‘기프티콘’이다. 복권은 횡재의 꿈에 젖게 했지만, 기프티콘은 기기가 나눔을 대신하는 시대상을 생각하게 했다. 중국에선 성묘 때 스마트폰 등 첨단기기의 종이모형을 선물로 산 뒤 태우는 게 인기라고 하니 기프티콘 선물이 새삼스럽지 않지만, 선물의 진화가 놀랍다. 설이 20여일 남았다. 올해는 2만원대 이하의 선물이 인기라고 한다. 깊은 경기불황이 지갑을 닫게 한 탓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분을 담은 선물로 훈훈한 명절이 됐으면 한다. 우리 속담에 ‘선떡 가지고 친정에 간다’는 말이 있다. 가까운 이에겐 변변찮은 선물을 들고 가도 흉이 안 된다는 뜻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커버스토리-1983 과천 vs 2013 세종] 세종시 지금은 불편하지만 스마트 행정도시로 발전 기대

    [커버스토리-1983 과천 vs 2013 세종] 세종시 지금은 불편하지만 스마트 행정도시로 발전 기대

    “과천으로 유배됐다.” 30여년 전 정부부처의 과천 이전이 현실로 나타나자 공무원들은 이렇게 탄식했다. ‘구내식당 2부제’, ‘행정 비효율 초래’, ‘주변 편의시설 부족’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지금의 세종시대와 완전히 ‘닮은꼴’이다. 1980년까지만 해도 과천은 경기 시흥군의 인구 1만명에 불과한 촌락이었다. ‘서울 무섭다고 과천부터 긴다’는 속담으로나 접해 본 ‘오지’에서 근무하게 된 공무원들의 심경은 참담했다고 한다. 이런 과천청사 이전과 지금의 세종청사 이전을 모두 경험한 중앙부처 고위공무원들에게서 1980년대 과천과 2013년 세종시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방담에는 은성수(51·행정고시 27회)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정책국장, 손병석(51·기술고시 22회) 국토해양부 국토정책국장, 박천규(48·행시 34회) 환경부 기후대기정책관 등 3명이 함께했다. →과천시대 이전은 어땠나. 은성수 1984년 재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는데 1986년 초까지 지금의 서울 세종로 이마빌딩에 재무부가 있었다. 당시에는 공무원들 대부분이 차가 없었다. 퇴근하면 우르르 종로 쪽으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러 갔다. 그러다 누군가 “대포나 한 잔” 하고 바람 잡으면 청진동 골목길로 방향을 틀었다. 자연스럽게 끈끈해졌다. 손병석 1987년 첫 월급봉투를 받아보고 대학생 때 과외 교습비보다 못해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미 과천청사시대가 열린 뒤였는데 지하철 4호선은 아직 건설 중이었고 남태령 고갯길은 확장공사 중이었다. 그래서 서울 동료들에게 출퇴근길은 늘 전쟁이었다. 박천규 1990년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서울 잠실의 환경처(환경부 승격은 1994년) 시절이었다. 단독 청사이다 보니 서로 모르는 직원이 없었다. 토요일 오전 근무가 끝나면 함께 족구를 하기도 했다. →과천 이전으로 달라진 점은. 은 1986년 과천으로 갔더니 출퇴근 교통이 불편해 과천청사 앞에 택시들이 도열해 있었다. 사당역까지 1인당 1000원씩 받았고 4명이 다 차야 출발하는 합승이 일반적이었다. 나중에는 하나둘씩 차를 구입하게 돼 허전하게 주차장에서 흩어지곤 했다. →업무환경은 어땠나. 손 청와대 보고를 하면 두꺼운 판지를 여러 쪽 이어 붙여 보고용 병풍을 만들었다. 필경사를 불러 병풍에 내용을 쓰게 했다. 타이핑 담당 여직원이 있어 기계식 타자기로 공문을 찍어주기도 했다. 시·도에서 시행하는 공문을 작성하려면 먹지와 갱지를 여러장 겹쳐 글쇠를 힘껏 쳐야 했다. 밤늦게 타이핑하던 여직원 손가락이 갈라터져 피가 나기 일쑤였다. 국회 질의 답변서를 사무관이 직접 썼는데 회의장 앞 복도에 신문지를 깔고 주저앉아서 가방을 받치고 작성했다. 은 1986년은 우리나라 국제수지가 처음 흑자로 전환된 해다. 적자시대 정책을 많이 바꾸고 개방화도 시작하면서 정말 야근했던 생각밖에 안 난다. 컴퓨터나 인터넷이 없는 아날로그 시대니까 일일이 타이핑을 해서 윗사람에게 대면 보고했다. 윗분들 편의를 위해 125%로 확대 인쇄하기도 했다. 박 1991년과 1994년 두 차례 낙동강 오염사고가 있었다. 고도성장의 부작용이 나타났고, 환경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새로운 업무가 쏟아졌다. 1991년 환경개선부담금제도 도입이나 1995년 쓰레기 종량제 도입 같은 굵직한 정책들이 만들어졌다. 야근이 잦았는데 상사가 자리에 남아 있으면 감히 먼저 퇴근할 수 없었다. →2013년 세종시의 업무환경은. 은 지금은 업무를 ‘스마트’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이다. 보고는 이메일로 하고, 장차관도 스마트폰으로 결재를 한다. 서울과 이처럼 멀리 떨어진 곳에 행정도시를 만든다는 건 스마트환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세종청사는 옛날 같았으면 불가능했다. 스마트 업무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 앞으로 더 발전할 것으로 본다. 박 과거엔 당연시됐던 대면보고가 많이 사라졌다. 유무선을 통한 구두보고도 일반화됐고, 아이패드를 활용한 보고도 많다. →과천과 세종을 비교하면. 손 1987년만 해도 과천은 지금의 세종시처럼 을씨년스러웠다. 개발이 덜 돼 빈 땅도 많았고, 가로수는 갓 심어 자그마했다. 도로는 아직 공사 중이었고, 비만 오면 곳곳이 진흙탕으로 변해 곤욕을 치렀다. 미분양 주택이 많아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 부 직원들을 상대로 강매까지 이뤄졌다. 은 (과천 인근의) 인덕원, 평촌 등이 개발됨에 따라 대중교통이 크게 개선되면서 과천이 서울의 일부처럼 느껴지게 됐다. 세종시는 좀 심하게 말하면 ‘청사밖에 없는 도시’다. 지금 짓고 있는 아파트 입주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2014년 이후가 되면 세종시도 도시 기능이 정상화될 것으로 본다. 박 과천은 계획도시로 성공한 사례다. 행정도시로 출발했지만 주거환경이 편리하고 대공원, 경마장 등 문화공간도 갖췄다. 세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여기저기서 불만들이 많이 들린다. 앞으로의 세종,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야 할까. 은 세종시는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이 자체로 발전시켜야 한다. 국회나 다른 행정기관과의 물리적 거리를 극복할 보완방안을 마련하고, 대학 등 교육여건을 확충해 도시로서의 기능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솔직히 세종청사의 경우 새집 냄새도 나고 불편함이 많지만 지엽적인 부분이다. 세종시를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것인지에 대한 합리적인 컨센서스(공감대)가 필요하다. 세종시 발전이 나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손 세종청사 개청은 지방 분권과 국토 균형발전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국정 운영이라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보면 낡은 행정관행과 의식을 혁파하고 선진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박 소소하지만 회의 문화도 많이 바뀔 것이다. 서울역이나 오송역 등 교통편이 좋은 곳에서 회의가 열리고 화상회의도 더 많이 활용될 것 같다. →끝으로 두 번의 청사 이전을 겪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손 세종시가 꼭 불편한 것만은 아니다. 전국 어디든 두 시간 안에 갈 수 있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놀러가기에도 좋다(웃음). 박 불편함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로 삼아 봐도 좋을 것 같다. 은 외국 공무원들이 꼭 물어 보는 말이 있다. “이전할 때 공무원들이 반발하지 않았느냐”고. 그러면서 “한국 공무원들의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태도가 부럽다”고 말한다. 후배들의 업무에 대한 열정으로 세종청사 시대가 빠르게 정착하기를 기대한다. 정리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박근혜 정부 대한민국의 과제] (2)잠재성장률을 올려라

    [박근혜 정부 대한민국의 과제] (2)잠재성장률을 올려라

    우리 속담에 ‘3대 가는 부자 없다’라는 말이 있다. 바꿔 말하면 물려받은 재산을 제대로 관리해야만 상당 기간 먹고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국가 경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각종 자원이 풍부하거나 내수시장이 큰 부자 국가는 위기가 몇 년 지속돼도 큰 문제 없이 굴러간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물려받은 재산이 변변찮은 ‘자수성가형’ 국가는 위기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달리는 자전거’처럼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일정 정도의 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2.1%(추정치) ‘저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자칫 2%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잠재성장률을 계속 밑도는 수준이다. 1일 기획재정부와 국내 연구기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3% 중후반이라는 게 대체적인 공감대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의 연평균 잠재성장률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현대경제연구원은 3.8%, 삼성경제연구소는 3.6%를 제시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추산치는 3.4%로 가장 낮다. 한국은행과 KDI, 현대연 등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고도성장기였던 1970년대 10% 정도에서 1980년대 8~9%로 하락했다. 1990년대 들어 6~7%로 다시 떨어졌다가 1997년 환란을 계기로 4%대 후반으로 급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치며 3% 후반대로 더 쪼그라들었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KDI는 2021년부터 2030년까지 2.9%, 2031년부터 2040년까지 1.9%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삼성연은 같은 기간 각각 2.8%, 2.2%, LG연은 2.8%, 2.5%를 제시했다. 해외 시각은 더 비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2011년부터 2030년까지 2.7%를 기록한 뒤 2030년 이후 30년간 1.0%로 처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1.0%의 잠재성장률은 국가 부도 상태인 그리스(1.1%)보다 낮은 수준이다. 미국(2.1%), 영국(2.2%)과 비교해도 절반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잠재성장률 하락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2031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01년 대비 3.4% 포인트나 떨어질 것으로 OECD는 예측하고 있다. 이는 룩셈부르크와 더불어 34개 OECD 회원국 중 가장 가파르다. 우리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스페인(-2.0% 포인트), 호주(-1.0% 포인트) 등보다도 감소 폭이 크다. 멕시코(0.6% 포인트), 일본(0.7% 포인트) 등은 되레 잠재성장률이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기관차(국가)의 속도(잠재성장률)를 높이려면 더 많은 땔감(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을 넣는 동시에 엔진(생산성) 효율을 높여야 한다. 생산성을 단기간에 높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생산요소 투입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경제는 생산요소 투입 감소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비극’에 직면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투자 부문은 외환 위기 이후 급격한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 실질 고정투자 증가율은 1970년대 연평균 17.8%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3%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8월 이후부터는 설비투자가 아예 감소세로 돌아섰다. 국내 자본의 해외 투자 비율 역시 1980년대 1% 미만에서 2010년에는 8% 안팎까지 뛰어올랐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약화도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656만명인 국내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7년부터 감소세로 전환돼 2060년에는 2187만명으로 뚝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교역 조건 악화에 따라 수출로 인한 실질 이익도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의 성장 동력인 정보기술(IT) 산업의 수출 비중이 2000년 이후 점차 낮아지고 있어 신성장 산업 모색이 절실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잠재성장률 하락 속도를 늦추려면 지금까지 주춤했던 자본 축적 확대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기업들이 투자 활성화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실효성 있는 투자 인센티브 패키지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정부와 기업이 함께 중장기 투자 계획을 짜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고용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고부가가치 지식서비스 업종의 육성도 과제로 꼽힌다. 제조업으로 고용과 성장률을 늘리기에는 우리 경제가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에 육박하는 싱가포르의 전례처럼 투자 대비 실적이 높으면서도 고용 효과가 큰 금융과 교육, 의료, 관광 등의 서비스 업종 발전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 통일도 잠재성장률 확충에 도움이 될 변수로 꼽힌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 하락의 가장 큰 요인인 고령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부에 따르면 2050년 기준으로 통일이 될 경우 생산가능인구 비중은 67.9%에서 70.2%로 증가한다. 반면 노인인구 비중은 22.1%에서 17.2%로 크게 감소한다. 대북 설비투자 증가와 분단 비용 감소 등도 이점으로 지적된다. 최광해 재정부 장기전략국장은 “2030년대에 통일이 된다고 가정하면 통일 비용에 따른 재정 부담에도 불구하고 잠재성장률이 0.86∼1.34% 포인트 정도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용어클릭] 잠재성장률 노동과 자본 등 동원 가능한 생산요소를 모두 투입해 한 나라의 경제가 물가 상승 등의 부작용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최대의 생산 능력.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어느 정도의 잠재성장률 하락은 불가피하지만 우리나라는 속도가 가파르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 [2013 신춘문예-동화 당선작] 하트/김보름

    [2013 신춘문예-동화 당선작] 하트/김보름

    “그럼 내일 감정 실기시험 잘 보세요.” 거실 벽 스크린 속에서 감정 과외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선생님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내 왼쪽 가슴에 달린 ‘하트’ 배지엔 초록색 불이 들어와 있다. ‘적정 감정 수준’ 차분하고 안정된 감정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지난 2020년에 나온 감정 조절기 ‘하트’는 이제 초등학생들에겐 제2의 심장이나 다름없다. 중학생이 되기 전에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내 하트는 계속 초록빛이다. 후훗, 나도 이제 감정 조절의 대가가 된 건가. 1학년 때부터 5년째 하트를 사용한 보람이 나타나는가 보다. 앗, 괜히 기분이 좋아 하트를 만지작대다 뒷면의 단추를 눌러 버렸다. 음성 녹음된 하트 사용 설명서가 흘러나온다. 하트는 가슴에서 나오는 감정의 파장을 실시간 감지해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깔 중 하나로 나타냅니다. 빨강은 가장 흥분된 감정, 보라색은 가장 침체된 감정입니다. 초록은 기준이 되는 색으로서 편안하고 쾌적한 기분을 나타냅니다. 화가 나거나 마음이 들뜨면 그 정도에 따라 노랑, 주황, 빨강 순으로 색깔이 올라갑니다. 반대로 기분이 가라앉으면 파랑, 남색, 보라색 순으로 내려갑니다. 가장 위험한 상태인 빨강 단계에 이르면 경보음과 함께…. 나는 다시 단추를 눌러 음성 설명을 껐다. 엄마가 거실로 나왔다. “은찬아, 내일 하트 정기 점검하는 날인 거 알지? 이번엔 꼭 점검 받아. 벌써 두 달이나 미뤘잖니.” “알았어요, 엄마.”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정기 점검은 딱 질색이다. 가슴에 달린 하트에 푸른 광선을 쬐는 것인데, 아무리 정신 건강에 좋은 알파파가 나온대도 난 속이 메스껍다. “은찬이 너 대답만 하지 말고…. 하트가 개발된 시대에 사는 걸 복인 줄 알아. 엄마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하트 같은 건 상상도 못했어. 애들이 욱하는 성질을 못 참아서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알아? 만날 학교 폭력이 일어나고, 전쟁 게임을 실제로 따라 하기도 하고, 심지어 초등학생들이 노인을 폭행하기도 했어. 정말 무서운 시절이었지. 하트가 나오고 나서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엄마의 잔소리는 언제나 하트 예찬으로 시작된다. 엄마는 얼마 전 하트사랑학부모위원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요즘 애들은 얼마나 침착하고 세련됐니? 그게 다 하트 덕이야. 마음이 차분한 아이들이 학업 성취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잖아. 이번에 전교 1등한 규빈이는 벌써 명상전문가 자격증도 땄다더라. 마음공부가 자기 계발의 기본이 된 이 시대엔, 감정 통제력이 성공의 밑바탕이라는 거 항상 명심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다. 엄마는 벽에 설치된 가훈 액정 화면을 눈으로 가리켰다. 거기엔 엄마가 존경하는 세계적인 리더, 수잔나 윌파워의 명언이 적혀 있다. 세상을 다스리려면 먼저 자신을 다스려라. 자신을 다스리려면 먼저 감정을 다스려라. 엄마는 자동명상소파에 앉아 스크린을 텔레비전 모드로 바꿨다. 뉴스가 나왔다. 허름한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경찰서에 들어가고 있었다. “오늘 오후 서울 ○○동에 사는 일흔두 살 한모씨가 소주를 마시고 시위를 하다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한씨는 인근 초등학교를 돌며 하트를 부수라고 고함을 질러….” “어머, 우리 동네잖아!” 엄마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세상에, 정말 정신없는 양반이네. 소주까지 마셨다니….” 알코올 도수가 1도 이상인 술은 금지돼 있다. 1도가 어느 정도인지 난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허가를 받아야 구할 수 있는 소주라는 술은 알코올이 20도나 된다고 한다. 엄마는 소주를 마시면 미치광이가 된다고 했다. “은찬아, 너 저 할아버지 보면 얼른 피해. 저런 사람은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야.” “네, 엄마.” 하지만 나는 그 할아버지가 나쁜 사람 같지 않았다. 얼마 전에 길에서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땐, 재미있는 놀이 기구가 많았어. 너희들은 그네, 시소, 미끄럼틀을 책에서만 봤지? 할아버지는 그런 것들을 다 타 봤단다. 가장 재미있는 건 퐁퐁이었어.” “퐁퐁이요? 그게 뭐예요?” “넓고 쿨렁쿨렁한 매트에 올라가 퐁퐁 뛰는 거야. 정식 이름은 트램펄린인데, 한때는 올림픽 경기 종목이기도 했지. 퐁퐁이 불법이 되기 전까지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퐁퐁을 태워 주는 일을 했단다.” “와, 그런 직업도 있었어요?” “그럼. 퐁퐁은 마법의 기구란다. 퐁퐁을 타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 하늘로 날아오를 듯 행복해지지.” 할아버지는 퐁퐁을 타던 옛날 어린이들 얘기를 해 주었고,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나는 ‘사라진 놀이 기구들’이라는 책에서 그 기구를 본 적이 있다. 거기서 트램펄린은 위험한 놀이 기구로 소개되어 있었다.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이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할아버지 말을 듣고 보니 퐁퐁이 그렇게 나쁜 기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 뉴스를 보다 딴 생각에 빠졌구나.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내일 보는 감정 실기시험을 준비해야 하는데. 나는 방에 들어가 매직북을 켜고 ‘감정의 스펙트럼’을 클릭했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단계로 배열된 감정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실기시험에선 ‘빨강’에 해당하는 감정들을 평가한다고 했다. 선생님이 어떤 상황을 이야기해 주면, 그때 일어나는 기분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연기해 보이는 것이다. 나는 빨강에 속하는 감정들을 읽어 보았다. “도취, 광란, 분개, 분노, 북받침, 극도의 흥분, 가슴이 터질 듯함….” 가슴이 터질 듯함? 이건 못 보던 거다. 이번에 업데이트된 감정인가 보다. 그런데 가슴이 터질 듯한 게 뭐지? 심장병이라도 일으키는 기분인가? 다음 날, 나는 가슴이 터질 듯한 감정이 어떤 건지 짝 미루에게 물어보았다. “나도 몰라서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그건 아주 많이 기쁘고 행복한 기분이래.” 미루가 말했다. 나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쁘고 행복한 기분이 왜 빨강이야? 빨강에 속한 건 위험한 감정들이잖아. 조절이 어려울 정도로.” “나도 그게 이상해서 엄마한테 다시 물어봤더니,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은 좋지 않대. 그렇게 마음이 들뜨면 평소에 안 하던 행동도 하게 된다고.” “그렇구나. 기쁨도 나쁜 감정이 될 수 있구나….” 나는 조금 의아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감정의 스펙트럼’을 열어 보았다. 다른 행복한 감정들은 초록이나 노란색에 들어 있었다. 만족감, 뿌듯함, 유쾌함, 즐거움, 쾌적함, 편안함, 흐뭇함…. 그런데 빨강에 속한, 가슴이 터질 듯한 기분은 얼마큼 큰 기쁨일까? 이것들을 전부 합친 것보다 강렬한 걸까? “야, 우리 감정 실기 연습해 보자.” 생각에 잠겨 있던 나를 미루가 툭 쳤다. “그래. 네가 먼저 상황을 말해.” “음, 오늘은 너의 결혼식 날이야. 네가 예복을 잘 차려입고 집을 나섰는데, 갑자기 위층에서 물 폭탄이 떨어졌어. 너는 쫄딱 젖어 버렸지. 그럼 기분이 어떨까?” “화가 욱 치밀겠지. 하지만 그 순간 하트가 찌릿찌릿 신호를 보내주니까,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뭐야, 이건 네가 어른이 됐을 때 얘기잖아. 넌 결혼할 때까지 하트 달고 다닐래?” “아차! 그렇지, 참.” 나는 멋쩍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휘성이가 실실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얘들아, 나 어제 재밌는 일 있었다.” “무슨 일?” “내가 얼마 전에 최신형 하트로 바꿨잖아. 근데 그걸 달고 나서 어제 처음으로 빨간불이 들어왔거든.” “왜? 어쩌다가?” “우리 형이랑 해적판 만화영화를 보는데 너무 웃겨서 배를 쥐고 웃다가.” “어, 정말? 너무 웃어도 빨간불이 돼?” 나는 조금 놀랐다. 지금껏 웃다가 빨간불이 들어온 일이 내 기억엔 없다. “그것도 몰랐어? 넌 실컷 웃어 본 적도 없냐, 이 감정 샌님아!” 휘성이가 약을 올렸다. “하트는 감정의 파장만 읽어 내니까, 웃는 것도 심하면 빨간불이 되지. 그건 아마 ‘극도의 흥분’에 포함될걸.” 앞자리에 있던 솔비가 돌아앉으며 말했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갑자기 머릿속이 뒤죽박죽된 기분이었다. 심하게 웃어도 빨간불이라니? 웃는 것도 잘못인가? “야야, 내 얘기 아직 안 끝났어.” 휘성이가 말을 이었다. “하트가 빨갛게 삐삐거리는데, 내가 웃느라고 하트를 끄지도 못하고 한참 데굴데굴 굴렀더니….” “어떻게 됐어?” “병원에 가라고, 이 똑똑한 신형 하트가 정신과 전화번호를 불러주는 거야.” “하하하하.” 아이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하트들이 줄줄이 노랑, 주황으로 물들었다. 그런데 나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야, 강은찬! 넌 왜 그래? 재미없어?” 내 굳은 얼굴을 본 휘성이가 물었다. “아, 아냐. 재밌어.” 나는 억지로 웃어 보였다. 하지만 하트를 속일 수는 없었다. 나는 파랗게 질린 내 왼쪽 가슴을 손으로 감싸고 복도로 나왔다. 하트를 점검 받을 때처럼 속이 메슥거렸다. 뭔가가 잘못된 것 같았다. 며칠 뒤였다. 수업이 끝나고 미루, 솔비, 휘성이와 함께 우주 체험관에 가는 길이었다. 저만치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퐁퐁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나는 얼른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지 얼굴이 전보다 많이 수척해 있었다. “은찬아, 너 저 할아버지 알아?” “우리 엄마가 저 할아버지한테 가까이 가지 말랬는데….” 미루와 솔비가 속닥거리며 물러섰다. 휘성이도 놀란 눈치였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어서 가라고 손짓을 했다. 나는 다시 꾸벅 절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마음이 자꾸 할아버지 쪽으로 향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야윈 등이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 나는 몸을 홱 돌려 할아버지한테 뛰어갔다. 뒤에서 아이들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냐. 무슨 일이냐?” 할아버지가 푸근하게 웃으며 물었다. “할아버지, 아직도 퐁퐁 가지고 계세요?” “으응? 아, 아니….” 할아버지는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퐁퐁 있는 거 맞죠? 저 퐁퐁 한 번만 태워 주세요.” 나는 할아버지 팔을 붙잡고 매달렸다. “할아버지, 제발요. 정말 꼭 타 보고 싶어요.” “흠….”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할아버지는 말없이 앞장서 걸어갔다. 할아버지의 왜소한 등이 장군처럼 당당해 보였다. 나는 할아버지를 뒤따랐다. 아이들도 멀찍이서 주춤주춤 따라왔다. 할아버지의 집은 낡은 주택이었다. 대문을 열고 뒷마당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크고 둥근 퐁퐁이 있었다. 가슴이 콩콩거렸다. “얼마 전에 수리하고 용수철도 다 고쳤다. 허름해 보이지만 타 보면 괜찮을 게야.” 나는 신발을 벗고 조심스레 매트에 발을 디뎠다. 올라서자마자 몸이 저절로 출렁거렸다. 퐁퐁이 마술을 부리는 것 같았다. “너희도 올라와!” 나는 아이들에게 손짓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던 미루, 솔비, 휘성이도 머뭇머뭇 퐁퐁에 올라왔다. 우리는 힘차게 발을 굴렸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방방 뛰기만 했다. 몸은 점점 더 높이 튀어 올랐다. “와우!” “와하!” 우리는 신이 나서 맘껏 소리쳤다. 말할 수 없이 커다란 기쁨이 온몸을 감쌌다. 하늘까지 날아오를 듯 짜릿한 기분이었다. “삐삐삐삐….” 빨갛게 흥분한 네 개의 하트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그러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우리는 가슴에서 하트를 떼어 던져 버렸다. 검게 죽은 하트들이 땅바닥에 뒹굴었다. 맨가슴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가슴이 터질 듯했다. ■당선소감 세상에 따뜻한 빛 전하고 싶어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을 치유하고 인간을 내면의 고향으로 안내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한낱 ‘동화’에 불과한 것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마법과 환상이 자재로이 활개 치고 영혼이 굴레 없는 자유를 누리는 이상향은 우리가 잊거나 잃어버린, 그러나 결코 쇠하거나 사라지지 않는 무엇이어서, 인간은 삶과 노동을 통해 자기 안의 낙토를 조금씩 넓혀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짧지 않은 시간을 홀로 방황하였다. 그리고 그 길에서 동화를 만났다. 동화는 어둠 속의 불빛이었다. 어둠은 크고 짙었지만 끝내 작은 빛을 이기지는 못하였다. 어둠은 빛에 의해 흐려졌고 빛은 어둠에 아랑곳없었다. 그렇게 우주의 밤하늘에 촛불 한 자루 세우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그러나 처음에는 문학이 아니었다. 고민과 잡념을 내리 쓴 일기였다. 내부에서 들끓는 무언가를 꺼내 놓지 않을 수 없어 하릴없이 적어 온 일기들이 창작의 밑거름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동화를 습작하면서, 흔히 비현실적이라고 여기는 완전하고 이상적인 진리들이, 어떤 면에서는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더 생생한 리얼리티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맑고 밝은 기운이 나 자신과 이 세계를 조용히 감싸고 있음을 느끼면서, 주변을 좀 더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비전이 담긴 아름다운 작품으로 세상에 따뜻한 빛을 전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더 많이 사랑하고 부딪치고 끌어안아야 할 것이다. 졸고를 너그러이 거두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서울신문사, 그리고 힘이 되어 주신 분들께 가슴 깊이 감사드린다. 부단한 정진으로 모든 분들의 후의에 보답하고 싶다. ●약력 ▲1981년 경기 부천 출생 ▲한양대 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심사평 시의성 띠고 상상력 출중해 요즘 같은 팍팍한 시기에 과연 좋은 동화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신춘문예에 응모한 수많은 동화작가 지망생은 물론이고, 당선작을 고르는 심사위원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232편의 응모작 모두가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들이다. 아직도 그렇게 많은 동화를 이 땅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가 썼다는 사실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공모이기에 몇 가지 기준을 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고의 회장’과 ‘춤추는 수건’은 둘 다 휴대전화와 수건이라는 사물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끌어간 공통점을 가진 수작이었다. 하지만 전자는 동화에 담기에는 부적절한 몇몇 표현 때문에 탈락했다. 후자는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기 힘들게 감동적이고 뛰어났다. 결정적으로 어린이들이 읽고 자신의 이야기로 느낄 수 있는 동일화의 덕목을 놓쳐 어른들의 동화가 되어버린 것이 치명적 결함이었다. 결국 우리는 다른 작품 ‘하트’를 골랐다. 후반부에 급박하게 대화 위주로 사건을 전개해 서술이나 묘사가 좀 부족하다는 흠은 있었다. 하지만 시의성을 잘 띠고 있으며, 동화적 상상력이 출중하고, 동일화의 덕목도 지켜냈다. 재치 있는 이야기 구사 능력에서 보여주는 대성할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며 축하해마지 않는다. 사족으로 ‘속담왕’ ‘엄마의 별’ ‘짜잔 정훈이’ ‘꿀벌이 되면’ ‘길잃은 아이’ ‘까마귀와 배시시’ ‘자귀나무 이야기’ 등도 아까운 작품들이었음을 밝히고 싶다. 더욱 분발하여 ‘낭중지추’(囊中之錐)의 미덕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 朴 “거짓말 세력 vs 민생 세력” 文 “與는 軍미필 특권층 당”

    朴 “거짓말 세력 vs 민생 세력” 文 “與는 軍미필 특권층 당”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13일 민주통합당이 제기한 네거티브와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역공 수위를 한층 높이며 대선 막판 세몰이에 나섰다. 한편으론 국민대통합을 역설하면서 ‘국민만 보고 가는 민생 대통령론’을 역설했다. 그동안 제기된 이슈들을 총동원해 ‘거짓말 세력 대 민생 세력’ 구도를 확대하고 지지율 굳히기에 들어가겠다는 전략이다. 박 후보는 이날 경기북부와 강원, 충청을 돌며 ‘문재인 바람’ 차단에 힘을 쏟았다. 경기 의정부·남양주·용인, 강원 홍천·원주·제천·충주를 훑은 이날 유세는 막판 맹추격전에 나선 문 후보 견제의 성격이 짙었다. 대선 전 마지막으로 공표된 지난 12일 각종 여론조사에서 수도권과 중원지역인 강원·충청 표심이 다소 흔들리는 것으로 나타나자 캐스팅보트를 쥔 이 지역 표심 단속에 나선 것이다. 특히 박 후보는 민주당의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주장, 아이패드 커닝 논란을 거짓말 시리즈로 몰아붙이며 비판 강도를 높였다. 박 후보는 이날 의정부시 행복로에서 열린 유세에서 민주당을 향해 “제가 무슨 굿판을 벌였다고 흑색선전을 하고, (TV토론장에) 갖고 가지도 않은 아이패드로 커닝을 했다고 네거티브를 하고 급기야는 애꿎은 국정원 여직원을 볼모로 정치공세를 하고 있다.”면서 “아무런 증거도 없이 28살 여성을 일주일씩이나 미행하고 집앞에 쳐들어가 사실상 감금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후보는 “지금 국민은 문 후보가 혹시라도 정권을 잡으면 댓글달기도 무서운 세상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몰아세웠다. 그러면서 “저는 국민만을 바라보는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 여러분이 저를 지켜주시라.”고 호소했다. 원주시 문화의 거리 유세에선 “우리 속담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도 있고 싹수가 노랗다는 얘기도 있다.”면서 민주당의 ‘카더라식’ 비방 선거운동을 비판했다. 충주 유세에서도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며 공세를 이어갔다. 오후 박 후보는 원주시 매지리에 있는 박경리 토지문화관을 방문해 박 후보 지지선언을 한 김지하 시인 내외를 50분가량 면담했다. 유신독재에 저항하며 옥고도 치렀던 김 시인은 박 후보에게 “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굉장히 미워했지만 인생무상이더라.”면서 “여자로 태어난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엄마·부인 역할, 밥벌이를 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이에 박 후보는 “국민대통합의 단초를 열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여성 리더십을 잘 발휘해 국민행복 지킴이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문화기본법을 만들고 문화예산도 소외계층이 향유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한류의 세계화 등도 약속했다. 이후 박 후보는 일정을 즉석에서 추가해 충북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를 참배하기도 했다. 이곳은 유신 항쟁의 상징인 지학순 주교의 묘역이 있는 곳이다. 박 후보는 성지 참배를 통해 국민대통합 의지에 무게를 실었다. 의정부·남양주·원주·충주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서울광장] 정권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는 이유/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정권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는 이유/임태순 논설위원

    임기 말이 되면 실정이 겹쳐 국민들이 으레 등을 돌린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도 욕을 많이 먹었지만 이명박 대통령 역시 더하면 더했지 못 하지 않은 것 같다. 그의 과(過) 못지않게 공(功)도 분명 있으련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그의 곁을 떠났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나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는 물론 안철수씨까지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한목소리로 통합을 들고나온 것만 봐도 얼마나 민심이 갈라졌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의 큰 짐이 되고 있는 쌍용자동차 사태는 따지고 보면 참여정부도 책임을 비켜갈 수 없다. 소설가 공지영도 쌍용차 사태를 다룬 책 ‘의자놀이’에서 “쌍용차를 헐값에 매각한 노무현 정부의 경제 각료들과…, 상하이차의 ‘먹튀’를 방조한 이명박 정권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이미 알고 있는 대로 쌍용차는 참여정부 초기인 2004년 중국 상하이차에 매각됐다. 상하이차는 쌍용차를 4년간 경영하면서 4000억원 투자, 생산설비 확충 등 약속은 지키지 않고 하이브리드 엔진 기술과 핵심 연구원을 빼돌리는 등 단물만 빼먹고 철수했다. 정부가 상하이차에 대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했더라면 쌍용차가 저렇게 만신창이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뇌리에 쌍용차 사태는 온전히 MB 정부의 몫으로 남아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2009년 중반 노조원들의 파업에 대한 경찰의 폭력 진압이 결정적일 것이다. 공지영은 의자놀이에서 한 노동자의 ‘경찰이 원없이 다 했잖아요. 우리는 마루타가 된 거잖아요.’라는 말을 인용해 경찰 진압이 살벌하게 이루어졌음을 고발하고 있다. 물론 의자놀이는 노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편파적이거나 과장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파업농성장에 물과 전기 공급을 끊고 테러 진압에 쓰이는 테이저건을 쏘며 발암물질이 든 최루액을 공중투하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생존권 투쟁을 하는 노조원들에게 불법기구나 물질을 사용하며 진압을 한 것이다. 당시 조현오 경기경찰청장은 직속 상관인 경찰청장을 제치고 청와대에 직보, 진압에 나섰다고 하니 그의 ‘의욕과잉’이 폭력 진압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공권력의 남용이나 부당한 행사는 후유증이 크다. 조현오 경기청장은 나중에 경찰청장까지 됐지만 그의 무모함으로 인해 MB 정부는 큰 상처를 받았다. 공권력은 국민들이 경찰, 검찰 등 법 집행 기관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해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그런데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들이 주인에게 폭력을 휘둘렀으니 국민들이 느끼는 배신감과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의자놀이를 보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말까지 나온다. 얼마나 모멸감을 느꼈으면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를 버리고 싶다고 했을까. 공권력의 자의적 행사는 MB 정부 들어 유독 많았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이나 내곡동 사저 부지 불법구입 의혹을 야기한 공권력 집행이 대표적이다. 검찰이 두 사건에 대해 수사에 나섰으나 부실, 축소 수사로 인해 특검이 다시 수사를 해야 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아프리카 스와힐리족에 ‘도끼는 잊어도 나무는 잊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칼자루를 쥔 사람들은 공권력을 어떻게 행사하든 곧 잊게 되지만 공권력의 횡포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은 결코 잊을 수 없다. 특히 요즘과 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게시판’ 등 한 번 등돌린 국민들의 생각을 강화시켜 주는 기제가 도처에 쌓여 있다. 정권에 대한 증오감, 거부감이 쉽게 증폭될 수 있는 취약한 사회 구조라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에게 위임받은 공권력을 더욱 공정하고 엄정하게 행사해야지 그렇지 않고 정권의 전리품이나 프리미엄으로 여겼다간 그 사회의 소통과 통합은 요원해지기만 한다. sts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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