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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사가 총열 빼내 팔다니/김원홍 사회2부차장(오늘의 눈)

    「총기는 군인의 제2의 생명이다」 군인이 되기 위해 신병훈련소에 입대하는 날부터 제대하는 날까지 장병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다. 훈련소에서 총기를 처음 지급받은 신병들은 식당이나 화장실에 갈때도 꼭 휴대해야하며 잠을 잘때도 신주처럼 위하다가 불침번을 설때는 분신처럼 소중히 들고나가야 한다. 신병교육은 총기구조·분해·소집·조립으로부터 시작,총검술과 사격술 등으로 개인화기를 익숙히 다룰 수 있을때 끝이난다.말하자면 총은 군인의 모든것이다. 사격장에서 총소리와 함께 한 사람의 군인이 탄생한다고 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군인이 개인화기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흡사 적군에 포로가 되는 것처럼 불명예라는 것이 정신교육으로 강조되기도 한다. 총은 애인처럼 소중히 다루어야하며 훼손을 했다가는 어김없이 영창에 가야하는 것이 군대다. 군대생활을 10년이상이나 한 병기보급창의 현역상사가 M16소총 총열11개를 빼내 민간인 엽총업자들에게 팔아넘긴 사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파렴치한 범죄행위이다. 무분별한 민주화 분위기에 편승해 해이해진 군부대의 군기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걱정스럽다. 무장탈영병의 인질극이나 총기난사사건보다도 위험하고 충격적인 사건이다. 40세가 가까운 고급하사관의 윤리의식이 이 정도밖에 안돼서야 국민들이 어떻게 군대를 믿을 수 있겠는가 하는 한심한 생각마저 든다. 60만 국군 장병들에게 지급되는 개인화기와 탄약·식품·의류 등은 모두 국민들의 정성어린 세금으로 조달되는 이른바 관물이다. 군의 비품은 내몸처럼 아끼고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군의 한 관계자는 김상사가 훔친것은 완제품인 M16소총이 아니라 무기의 부품인 총열일 뿐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그러나 완제품이나 부품이거나를 막론하고 장병의 생명과 같은 무기의 일부임에는 틀림없다. 개인화기에는 모두 고유한 총기번호가 찍혀져 있어 부대별로 엄중히 관리되고 있다.무기검열이 부대의 가장 큰 행사이다. 이번에 빼돌린 11개의 총열은 완벽한 소총을 조립할 수 있는 순정 핵심부품이다. 국민들중에는 이번 사건을 놓고 부패했던 중국국민당군대가 미국이 지원한 탱크와 야포까지 공산군에게 팔아넘겼던 사실을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라가 어려울때는 작업복 한벌,군화 한 켤레라도 모두 아껴썼으나 요즘은 물자가 흔해서인지 관물의 소중함을 알고 이를 아끼는 마음이 줄어들고 있는 듯하다. 군부대 지휘관들은 총기검열이나 탄약고 재고조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군인의 생명과도 같은 화기가 훼손되고 일실되는 일을 막아야 하겠다.
  • 상사가 부대 M16총열 빼내 팔아/5명 검거

    ◎민간 엽총개조업자에 11개 넘겨 【인천=김동준기자】 현역 육군상사가 M16소총부품을 훔쳐 시중 총포개조판매업자에게 1개당 10만원씩에 팔아오다 경찰에 적발됐다. 인천 부평경찰서는 10일 자신이 근무하는 부대의 총기수리 부속창고에서 M16소총 총열을 훔쳐 시중에 팔아온 육군모부대 소속 김세남상사(38)를 검거,군수사기관에 이첩했다. 경찰은 또 김상사로부터 사들인 총열을 이용,사냥용 엽총으로 개조해 판매해온 이호성(55·무직·인천시 북구 부개동134),김복태씨(37·선반업·〃작전동 신진아파트1동),이씨로부터 개조된 엽총을 산 심종진(57·무직·〃산곡동 우성아파트 403동 305호),권혁순씨(33·총포사경영·〃서구 석남동)등 4명을 군용물등 범죄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이와함께 홍정오씨(34·오세총포사경영)를 같은 혐의로 입건,건축업자 차상옥씨(38·서구 석남동)는 수배하고 불법개조된 공기총 2정등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상사는 같은 낚시회원인 이씨로부터 『M16소총 총열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지난해 11월초 자신이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부대 총기수리 부속창고에서 총열 10개를 훔쳐 이씨에게 건네주고 1백만원을 받는등 두차례에 걸쳐 모두 총열 11개를 훔쳐주고 모두 1백10만원을 받은 혐의다. 또 이씨는 김상사로부터 넘겨받은 총열11개중 5개를 김씨에게 개당 10만원을 주고 엽총 탄두의 크기에 맞게 총열구멍을 깎아 사냥용 엽총으로 개조,심씨등 4명에게 20만∼40만원에 4정을 팔아온 혐의다. 한편 군당국은 이번 사건으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데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엄중조치하겠다고 밝혔다.
  • 무장한 경관/근무지 이탈/경찰,행방추적

    【관도=최치봉기자】 10일 하오2시쯤 전남 완도군 보길면 중리 어선신고소에서 근무중이던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윤성하경장(32)이 M16소총 1정과 실탄 4발을 갖고 근무지를 이탈했다. 경찰은 예비군 40여명과 해경 1백여명을 긴급 동원,수색작업에 나서 윤경장 소유의 전남1가8310호 프라이드 승용차를 보길도 인근 해변가에서 발견했으며 하오 4시30분쯤 승용차가 발견된 지점으로부터 1㎞쯤 떨어진 보길읍 예송리 인근 야산에서 총소리가 들렸다는 주민들의 신고에 따라 윤경장이 자살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색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 탈영병검거 경관 1계급 특진(단신패트롤)

    탈영병검거 경관 1계급 특진 ◇서울경찰청은 6일 지난 4일 소총을 들고 탈영해 카페를 털려던 오세호하사(21)를 격투끝에 검거한 서울 송파경찰서 형사계 이상대순경(35)을 경장으로 1계급 특진시켰다.
  • 무장탈영하사 인질극/카페서 금품요구/경관과 격투끝에 잡혀

    ◎군인범죄 이틀째 4건… 절도방화에 뺑소니도 지난4일 상오2시쯤 경기도 고양군에 있는 육군 모부대소속 오세호하사(21)가 초소근무를 하다 탈영,이날밤 11시20분쯤 서울 송파구 가락동 175 「등」카페에 들어가 여주인 탁모씨(40)등에게 총을 들이대고 금품을 요구하다 서울 송파경찰서소속 이상대순경(35)에게 격투끝에 붙잡혔다. 오하사는 이날 상오2시쯤 부대에서 M16소총 1정과 실탄 90발을 가지고 탈영한뒤 택시와 버스를 갈아타며 상오6시쯤 서울역에 도착,목욕탕과 만화가게 등을 전전하다 도피자금을 마련하려고 카페에 들어갔다. 한편 5일 상오3시30분쯤 서울 강동구 성내3동 416 금성전자 성내동대리점(주인 구석우·58)에 육군 모부대 소속 윤제권일병(21)이 흉기를 들고 들어가 금품을 훔치려다 출입문에 설치된 도난경보장치의 비상벨 소리를 듣고 출동한 경찰과 대치,포장지에 불을 지르는등 1시간 남짓 반항하다 붙잡혔다. 이에앞서 지난4일 상오0시30분쯤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13 봉은사 앞길에서 술에 취해 서울 1추4140호 콩코드승용차를몰고가던 국방부소속 홍승필일병(20)이 길을 건너던 이한우씨(35·가내공업·송파구 오금동)를 치어 숨지게하고 4㎞쯤 달아나다 뒤쫓아간 공영택시소속 서울1마2711호 택시운전사 이한규씨(43)등 2명에게 붙잡혔다. 또 서울구로경찰서는 5일 육군 모부대소속 손주옥병장(23)을 야간주거침입등 혐의로 붙잡아 군수사기관에 넘겼다.
  • 소년원 탈주범 광주북부서 침입/총기·무전기등 털어

    ◎경찰측 “쉬쉬”… 범인 자수로 밝혀져 【광주=남기창기자】 광주소년원 탈주범 김모군(19)이 지난 28일 상오 광주 북부경찰서에 침입,카빈소총 2정과 권총 공포탄 9백70발등 각종 무기를 훔쳐갔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28일 하오 10시30분쯤 전남 장성군 황룡면 월평리 서울신발가게 앞길에서 전남5나4014호 봉고차에 카빈소총 2정,권총 공포탄 9백70발,경찰무전기 1대,경찰용 가스총 1정,현금 50만원,자기앞수표 10만원짜리 1장 등이 실린 채 발견됐다. 장성경찰서는 김군의 의붓아버지 박정호씨(48)의 전화제보를 받고 문상남경장등 경찰관 3명이 현장에 출동,카빈소총 등이 실린 차량을 찾아내 각종 무기류를 회수했다고 밝혔다. 경찰조사결과 이 무기는 김군이 지난 28일 상오 2시쯤 광주시 북구 오치동 광주 북부경찰서 무기고와 형사계 강력반 사무실에 침입,탈취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광주지검 강력부(남충현부장검사)는 29일 하오 자수한 김모군과 함께 소년원을 탈출한 양모군등 2명을 특가법(특수절도)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김군은 검찰에서 『지난 24일 광주소년원을 함께 탈출한 동료 양모군을 구출하기 위해 광주서부경찰서에 찾아갔으나 양군이 없자 자신을 소년원에 송치했던 광주북부경찰서에 앙심을 품고 이날 찾아가 단독범행을 저질렀다』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 “시아누크경호원은 북한 현역군인”

    ◎북한제 소총 무장… 한국어로 암호교환/일 주간지 기자 현지취재중 공식확인 그동안 캄보디아 국가최고평의회(SNC)의장 노로돔 시아누크공의 경호원으로 알려졌던 북한 현역군인들이 실제로 시아누크공의 경호임무에 활동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일본 시사주간 아에라(AERA)지의 사진기자 다케우치 쇼스케(죽내정우)가 지난해 12월9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동북쪽으로 1백20㎞ 떨어진 메콩강의 선착장에서 시아누크공의 고무농장시찰을 동행취재하던중 「안녕하십니까」라며 한국어를 말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그들이 구사하는 한국어와 무술로 단련된 체격과 매서운 눈초리로 보아 이들 8명이 시아누크공을 경호하는 북한출신 경호원들임을 알아차렸다고 동지 1월28일자 최신호에서 밝혀 알려지게 됐다. 그는 또 이들이 청회색제복을 입고 북한제 소형자동소총으로 무장한채 시아누크공을 경호했으며 한국어로 된 암호를 교환했다고 말했다.
  • 알제리 첫 유혈사태/헌병대 피습… 수명 사상/주이란·불대사 소환

    【알제 AP 로이터 연합】 알제리의 정정이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군부와 회교원리주의 세력간의 대립으로 긴장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19일 수도 알제 근교의 고속도로 검문소가 공격을 받아 군인 1명이 숨지고 경찰관 2명이 부상했다. 알제리 헌병대는 무장괴한들이 이날 상오2시15분쯤 알제에서 남쪽으로 20㎞ 떨어진 고속도로 검문소에 자동소총과 수류탄 공격을 가해와 트럭에서 잠자던 군인한명이 죽고 경찰관 2명이 다리에 부상을 입고 입원했다고 말했다. 한편 알제의 신정부는 18일 이란과 프랑스가 알제리 군부주도하의 정권장악에 반대한데 대한 항의로 테헤란및 파리주재 대사를 소환했다.
  • 미얀마­방글라/국경 긴장 고조

    【다카·치타공 로이터 AFP 연합】 미얀마 국경방위군이 지난 21일 방글라데시의 소총부대를 공격하는 등 일련의 국경 분쟁으로 양국간 긴장이 점증하고 있는 가운데미얀마가 24일 수만명의 병력을 국경에 배치한데 이어 방글라데시군도 비상경계에 돌입했다.
  • 증축 건물 화장실서/카빈소총 1정 발견

    【군산=조승진기자】 5일 상오11시쯤 전북 군산시 신창동 25의 5 한식집 「시온회관」증축공사장 화장실에서 이 음식점 건물주 신원택씨(38·상업)가 카빈소총 1정을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 북한테러 사령탑은 김정일/KAL 피격4돌 계기로 본 실상

    ◎니카라과등 38국에 요원파견 훈련/작전부는 요인 납치·정찰국선 파괴공작/60년대 이후 22개국 반정단체 지원 1백15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대한항공 858기폭파사건이 발생한지 29일로 네돌이 됐다.최근에는 국제사회에서 테러국가로서의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는 북한이 핵사찰까지 거부함으로써 전세계에 적지않은 우려와 불안을 불러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미케네디재단 상임 연구원인 게리 밀홀린은 최근 『북한의 핵은 세계 암거래시장으로 흘러나갈 것이며 이 핵은 테러리스트 손에 넘어갈 경우 한개의 폭탄으로 워싱턴시는 물론 주요 도시를 파괴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보내고 있을 정도다.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테러조직과 폭력혁명의 실상등을 알아본다. ▷테러기구◁ ▲북한의 테러기관은 통치기구의 핵심인 로동당 중앙위 직속기구로 돼있는 연락부,통일전선부,작전부,대외정보조사부,인민무력부 정찰국등을 들 수 있으며 김정일이 직접 이들 기관을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연락부는 주로 남한내간첩망을 조직하고 유지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으며 아웅산 폭파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통일전선부는 테러활동외에도 남북대화와 대남선전선동,심리전등도 도맡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작전부는 테러리스트의 훈련과 요인납치및 살해,외국인 테러리스트에 대한 훈련과 지원업무등을 하며 대외정보조사부는 해외정보수집과 테러를 병행하고 있다.또 인민무력부 정찰국은 4만명 규모의 특수8군단을 비롯,경보병여단및 해상특공부대등 모두 10만명 이상의 병력을 보유하면서 파괴공작을 일삼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테러분자양성◁ 테러리스트는 사상적으로 견실한 사람,다시 말해 주체사상에 투철한 사람으로 가정·사회적 배경,당성등 주위환경과 사업조건이 좋아야하는 것은 물론 육체적 건강이 뒷받침돼야 한다.정치,군사,경제,사회문제등에 대한 판단이나 분석이 예리해야하며 또 목숨을 버리더라도 입을 열지 않을 정도로 입이 무거운 것도 필수적인 선발조건이다. 훈련과정은 단기 3∼6개월에서 장기 1∼2년까지로 돼 있으며 훈련내용은 도시및농촌게릴라 전투에 대한 이론과 전술등으로 육박전,각종 무기및 폭발물 사용법,사보타지,정찰법,지도작성법,비밀통신법,비밀거점확보방법,주변사람조종법,공공시설물 파괴방법,요인납치및 암살방법등을 모두 배우게 된다. ▷테러실상◁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이후에는 뜸해졌으나 그전만 해도 대남테러및 게릴라활동은 물론이고 해외에서 저지른 테러·공작활동도 적지 않았다.대남활동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청와대 습격사건(68년),울진·삼척 침투사건(68년),미얀마의 아웅산 묘소폭파사건(83년),대한항공기 폭파사건등이 있는데 아직도 생생하게 우리들 기억에 남아 있다.이밖에도 크고 작은 테러,게릴라 활동은 부지기수여서 지난 67년과 68년에는 각각 6백29건과 5백64건을 기록했을 정도다. 해외에서는 지난 82년 파나마에서 반정부파괴활동을 지원하다 북한요원 5명이 추방됐으며 인도에서도 대학생을 세뇌하려다 발각돼 요원 1명이 역시 추방됐다. 이밖에도 북한은 80년대 들어 베네수엘라,튀니지,버마,스리랑카,콜롬비아등지에서 반정부활동을 지원하다적발되기도 했다. 또 북한은 69년 이후 팔레스타인해방기구등 36개국에서 1만여명의 요원들을 데려다 게릴라 훈련을 시켰으며 니카라과,엘살바도르등 38개국에 특수요원들을 파견,현지에서 훈련을 시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뿐만 아니라 북한은 테러수출국답게 60년대 이후 아르헨티나 인민해방군등 22개국의 반정부단체에 소총,탄약,수류탄,경기관총등 무기및 자금을 지원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무장탈영병 검거

    【강릉=조성호기자】 13일 상오 4시55분쯤 육군 모부대 통신대대 소속 김재남(21·원주시 우산동 243의 19),이재영(22·부산시 사하구 당리동 협진아파트 3동 201호),전양식일병(21·서울 종로구 송월동 32의 15)등 3명이 K1소총 각1정·실탄 5백97발을 갖고 탈영,명주군 주문진읍 교항5리 신한연립 지하 쓰레기장에 숨어있다 9시간만인 이날 하오2시쯤 출동한 군인들에 의해 모두 붙잡혔다. 김일병등이 탈영때 갖고 나간 소총과 실탄,그리고 이들이 빼앗아 타고 달아났던 르망승용차도 모두 회수됐다.
  • “노랭이” 별명의 기업가 김학우씨(이사람)

    ◎아직도 선반 돌리는 56살 “억척사장”/개미저축 38년… 공장 차려 자수성가/억대 재산 모았어도 신용카드 몰라/“힘든일 싫어하는 풍조 안타까워” 사람이 자기 분수를 지켜 근검·절약하며 살기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신분과 계층의 구분없이 과소비행태가 만연하고 있는 요즘 세태에선 더욱 그렇다.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238의 24 풍창기계 주인 김학우씨(56).그의 삶은 요즘의 우리들에게 감동을 넘어 사뭇 경외심까지 들게한다. 인쇄기계 제작과 함께 한 인생,「자린고비」「노랭이」「기름쟁이」등등의 수식어들도 그를 전부 설명하기는 어렵다. 밑바닥 직공으로 출발,38년간 손에 기름을 묻혀가며 번 돈을 쓰지않고 꼬박꼬박 저축을 해 조그만 기계공장을 차리게 됐다. 15평정도 허름한 공장에 맏아들을 포함한 종업원 6명이 고작인 조그마한 인쇄기계업체이다. 그러나 덜먹고 덜쓰고 아껴 저축을 한다는 일생동안 몸에 밴 근검 절약으로 통장5개에 예금액만도 수억원인 알짜 사장이다.겉만 번지르르한 채속은 빚 투성이인 빈껍데기 회사와는 다르다. 전주의 가난한 농부의 5남매중 막내로 태어난 김씨의 어린시절은 불우했다. 『우리 세대는 누구나 그랬지만 먹을게 없어 풀뿌리를 캐먹고 짚신조차 제대로 신기가 어려웠으며 학교도 10리이상을 걸어다녀야 했지요』 그나마 국민학교 4학년때 집안형편이 어려워 배움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먹고 살기위해 전북병기창에 취직을 했다.말이 취직이지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나온 김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청소나 심부름이 고작이었다.그러나 이곳에서 김씨는 그에게 맡겨진 소총을 청소하거나 기술자들이 박격포수리를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평생을 같이하게된 기계와 첫 인연을 맺게됐다. 50년 6·25가 터지자 병기창에서 계속 의용경찰로 근무하며 병역을 대신한뒤 이듬해 서울로 올라왔다.전쟁통이긴 하지만 그래도 서울에서는 뭔가 좀더 나은 기술을 배울 수 있고 좋은 일자리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서 였다.무작정 상경인 셈이었다.김씨나이 20살때였다. 그러나 아무 연고나 아는 사람이 없는 서울이라 갈곳이 있을리 없었다.며칠동안 서울역주변을 헤매다 원효로의 한 기계공장에 일자리를 구했다.새벽같이 일어나 공장청소를 하고 하루종일 기술자들의 심부름을 하고 공장문을 닫을때 쯤이면 또다시 청소나 하는 고달픈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먹고 재워주고 월말이면 약간의 용돈까지 받았다. 2년여동안 푼돈이지만 한푼도 쓰지않고 꼬박 꼬박 저축을 했다.그리고 비록 어깨 넘어긴했지만 열심히 기술을 배웠다.밤에는 야간중학에도 다녔다. 워낙 성실하고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주인 눈에 들어 3년만에 어엿한 기술자대우를 받게 됐다.생활이 나아지고 일정한 월급도 받게되자 부모의 중매로 결혼을 했다.23살때였다. 가정을 갖게되자 가난을 벗어나기위한 김씨부부의 노력은 더욱 처절했다.한푼이라도 더 벌기위해 부부가 하루종일 일했고 한푼이라도 아끼기위해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서 다녔으며 술·담배는 물론 하루 두끼로 떼우기 일쑤였다.저금통장에 한푼 두푼 쌓여가는 재미로 모든 고생을 잊었다. 『그때는 하루 빨리 내집을 마련하고아이들은 고생시키지않고 잘 교육시키고 싶었으며 조그마한 내공장 한개를 갖고싶은 욕심 뿐 이었습니다』 월급은 몇푼되지않았지만 지독하게 아껴 벌이의 60%이상을 저축하니 결혼 10년만에 마장동 판잣집에서 비록 산동네이긴 했지만 신당동에 자그마한 내집을 마련할 수 있게됐다. 또 2년뒤에는 용두동에 작은 공장을 차릴수 있게됐다.그동안 아이들도 4남매나 갖게됐다. 일벌레인 김씨는 이제 살만큼된 오늘도 직접 선반을 돌리며 종업원들과 또같이 일을 한다. 수억원의 예금이 있으면서도 당좌수표거래는 아예 하지않고 그 흔한 신용카드 한장 갖지않고 있다. 21년동안 인쇄기계만을 제작하며 외길을 걸어온 김씨의 몸에는 장인정신과 절약정신이 철저히 배어있다.스티커를 제작하는 6백여대의 국내인쇄기계가 모두 김씨의 손을 거친 것이다. 『돈만 벌려면 지금이라도 외제기계를 수입해 팔거나 중고기계를 들여와 파는것이 훨씬 쉽습니다.그러나 평생을 바쳐 익힌 기술로 우리기계를 만들어 파는데에 돈보다 더한 보람을 느낍니다』 그래서 지금은 높은 임금과 원가상승으로 수지가 맞지않지만 공장문을 닫지않고 주문이 들어오면 밑지면서도 기계를 만들어주고 있다. 『요즘은 일할 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안타깝습니다.우리공장만해도 한때 스무살 안팎의 젊은이들이 18명에 달했으나 요즘은 한명도 없고 30대이상만 몇명있지요』 김씨는 요즘 젊은이들의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기피하는 풍조가 결코 월급이 적어서만은 아닌것 같다고 나름대로 진단했다.
  • 장년 국군의 어제와 오늘

    ◎최고학력 정병,첨단 국산장비로 무장/합참본부 통합 지휘로 전력 집중화/일제 소총 창군서 유수의 강군으로 1일은 건군 제43주년 국군의 날.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과 함께 창설된 우리국군은 43년이 지나는 동안 세계유수의 정병강군으로 성장했다. 10월1일을 국군의날로 정한 것은 6·25동란때 낙동강까지 후퇴했던 국군이 50년 10월1일 동해안에서 마침내 38선을 돌파 실지회복에 나섰던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건국초기 국군의 총병력은 육군 5개여단 15개연대 5만4백90명,해군이 6천여명,공군이 1천6백여명으로 모두 합쳐 5만8천여명밖에 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현역 65만5천여명 방위병 17만명 예비군 4백여만명으로 1백배에 가까운 양적인 성장을 했다. 낡은 일본소총과 20여대의 연락기,40여척의 작은 연안수송선등으로 출범했던 국군은 3년1개월간의 6·25동란을 겪으면서 온갖 역경을 이기고 전선을 현 휴전선에서 고착시키는데 성공했다. 50년대의 시련기,60년대의 확장기,70년대의 자주국방기를 거쳐 80년대 성장기를 지나 90년대의국군은 극동지역에서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전위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창군당시의 초라한 장비와 임시 천막에서 구 일본군·만주군·광복군·중국군등 각기 다른 전통을 가진 장병들로 구성됐던 국군은 첨단과학무기와 현대식 막사를 갖춘 엘리트 기술집단으로 변모했다. 현대 국가의 국방력은 경제력과 직결된다. 80년대를 맞으면서 정부의 중화학공업육성과 주한미군감군에 따른 전력증강계획에 힘입은 국군은 5대양6대주에 걸친 경제성장으로 방위산업이 쏟아내는 각종 국산장비로 무장되었다. M16소총과 한국형탱크 중거리유도탄 국산 구축함 고속정 국산제트전투기 헬리콥터 각종 지상·함상포등을 갖춘 정예 현대군이 오늘의 국군의 모습이다. 현재 우리 국군은 어떠한 북한의 도발도 즉각 분쇄할 수 있는 전술·전략을 갖게 됐으며 북한의 군사력은 이미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에 차있다. 국군의 성장·발전은 무기·통신등 장비체제에만 두드러진 것이 아니다. 국민개별제에 의한 신성한 병역의 의무는 사병들의 평균교육수준을 고졸이상 대학재학생으로 높여 세계 최고의 학력자들로 구성되어 현대의 전자·과학전 운영에 큰 힘이 되고 있다. 고졸이상 학력을 가진 장병들은 전군의 95%가 넘고 이들의 애국심과 사명감등 정신전력은 세계 어느나라 군대보다도 높다. 육·해·공군 각군 본부의 지휘관및 참모들의 수준도 50년대 사관학교를 졸업한뒤 월남전과 같은 실전경험을 익히고 미국·유럽등 선진국에 유학,교육훈련을 받고 현대적인 군사기술과 함께 선진과학기술·부대경영·행정능력을 배워와 국제감각을 익혔다. 민주화·개방화·국제화의 새시대 새질서가 시작된 90년대의 국군은 조국통일이라는 민족사적 성업과 민주복지국가건설의 선봉에 서서 새로운 민·군관계를 정립하고 있다. 지난해 10월1일에는 개정된 국군조직법에 따라 출범한 합동참모본부가 육·해·공군의 전투부대의 작전지휘권을 갖게 되어 명실상부한 국군최고사령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통제협 합참의 발족으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각 군 참모총장이 갖고 있던 군령권을 합참의장에게 집중시킴으로써 작전의 즉응성이나 효과·속도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게됐다. 90년대이전의 합참의장은 국군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국방부장관→각군참모총장→군사령부에 이르는 군령계선에서 제외돼있어 국군의 지휘·참모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징적인 위치에 불과했으나 현재의 합참의장은 전군의 13개 전투사령부 국군의 70%이상을 차지하는 전투부대의 지휘봉을 잡게됐다. 합참본부가 3군을 통합지휘하게 됨으로써 국군의 정보·통신망을 일원화하고 유사시 육상·해상·공중의 모든 작전요소와 화력을 집중화 하게되어 전투효과가 2∼3배로 증가할 수 있게됐다. 또 각군본부의 인원도 작전과 정보분야에서 약40%가 감축되어 육군은 3∼4개사단을 신설하고 해군은 잠수함전단,공군은 F16 차세대전투기로 구성된 새로운 전투비행단을 창설할 수 있게됐다. 각 군 참모총장은 병력의 훈련·군수기능을 포함한 군정권(행정)만 행사함으로써 신병과 사관생도의 교육훈련·인사·예산·군사법·감사권·군기및 사기유지에 대한 책임과 권한만을 행사하고 있다. 정예 국군은 민족 자멸을 초래할 어떠한 전쟁도 사전에 억제하며 7천만 동포를 동족상잔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며 국가와 민족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국토방위와 민족수호의 임무에 여념이 없다. 원숙기에 접어든 장년국군은 겨레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첨병으로 사명을 다하고 있다.
  • 해외 파병 자위대/장갑차 무장 가능/가이후 일 총리

    【도쿄 연합】 일본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규정하고 있는 유엔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안과 국제긴급원조대 파견법 개정안에 대한 본격적인 국회 심의가 24일 하오 중의원 본회의에서 개시돼 정부의 취지 설명및 각 당의 질의가 벌어졌다. 가이후 총리는 이날 의원들의 질의에 대한 답변을 통해 『참여 자위대의 휴대무기는 지금까지 예로 보아 권총과 소총은 물론 기관총과 장갑차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 일 해외파견군 무기 강화/평화군법안 성안

    ◎「소화기국한」 규정 철폐 【도쿄 연합】 일본 정부는 최대의 초점으로 돼있는 유엔의 평화유지활동(PKO)에 참여하는 자위대가 휴대,사용할수 있는 무기를 소총등 소화기류에 국한하지 않고 「유엔사무총장이 인정하는 범위」로 하도록 규정함으로써 평화유지군(PKF)으로 활동하고 있는 다른 나라 군대와 같은 수준의 무기체제를 유지할수 있도록 16일 최종 확정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 가이후(해부)총리를 비롯 이시하라(석원)관방부장관,구도(공등)내각 법제국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같은 내용의「유엔평화유지 활동법안」과 「통일견해」를 정부안으로 마무리 짓고 오는 18일께 안전보장회의,각의등을 잇달아 열어 이들 안건이 통과되는 대로 이번 임시국회에 제출,회기 내에 통과되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일본 정부가 이날 확정한 PKO협력법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겸임참가의 자위대가 휴대 사용하는 무기의 범위는 유엔사무총장이 인정하는 범위』로 하는 것이외에 ▲신설되는 국제평화협력대의 주력을 자위대를 겸임하는 부대참가로 하도록 하고 있다.
  • 경희대생 격렬 시위/경찰,공포 발사 해산

    경희대 학생 40여명은 4일 하오2시30분쯤 관할 청량리경찰서 회기파출소에 몰려가 화염병 2백여개를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이날 학교 정문앞에서 경찰의 학교수색행위를 규탄하는 집회를 가진뒤 파출소로 몰려가 파출소 현판을 떼어내고 건물벽에 스프레이로 현정권을 비난하는 글을 쓴뒤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파출소 3층 옥상에서 M16 소총 공포탄 10발과 38구경 권총 공포 12발등 22발을 쏘자 20여분만에 해산했다.
  • 미 싱글로브 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6

    ◎“주한 미2사단 철수” 카터 공약 큰 파문/“또 다른 아시아 전쟁 개입 피한다” 명분/한국측선 “철군구상은 배신행위” 반발/베시 유엔군 사령관,백악관 면담서 “최종결정전 논의” 언질 받아내 76년 가을로 접어들면서 유엔사령부는 서서히 8·18만행으로 증원됐던 부대들을 원대복귀 시켰다.수개월 동안 군사정전위원회에서의 북한측 태도는 두드러지게 유화적으로 나왔으며 DMZ상에서의 도발도 거의 없었다.이는 우리의 강력한 무력시위가 이들 공산군 지휘부를 자제토록 했기 때문이었다. ○새 사령관으로 부임 리처드 스틸웰대장은 그해 가을 전역했으며 존 베시대장이 새사령관으로 부임했다.그는 2차대전 때 소총수로 입대하여 전장에서 현지임관,승진해온 군인중의 군인 이었다.조용하고 강직한 성격으로 한국에서 유엔군사령관직을 수행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인물 이었다. 그러나 베시의 지도력은 곧 시험을 겪게 됐다.미국의 대통령선거전이 본격적으로 개시되면서 민주당후보인 카터의 대외정책 공약중에는 한국으로부터 미지상군을 철수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그의 유세 가운데 나타난 철군이유는 아시아에서 또다른 전쟁에의 개입을 피하기 위한다는 것이었으며 더러는 경제적 이유도 있었다.아마도 그는 2사단병력을 한국에 그대로 두는것이 미국에 유지시키는 것보다 경비가 덜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것 같다. 한국인들은 이같은 카터의 철군구상은 일종의 배신이며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불평했다.한국 군고위장성들과 정부고위층들은 미국인 대화채널에게 기회있을때마다 그 부당성을 강조했다.한국인들은 이미 5만명의 지상군을 베트남에 파병했으며 엄청난 살상에도 불구하고 연합군과 행동을 같이 했었다. 그러나 이에대해 미국은 1971년 한국정부와 한마디의 상의없이 보병7사단을 철수하는 것으로 보답한바 있었다.그런데 이제 또 유력한 대통령후보가 나머지 병력의 철군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었다.보병2사단은 고도의 통신장비와 강력한 화력을 가진 부대로 한반도에서 북한군의 침입을 억제하는 수단이 되어왔다. 카터가 당선된 후에 나는 한국군 참모총장인 이세호대장과 후에 합참의장이된유병현중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그들은 한결같이 카터 대통령당선자의 주한미군 철수주장 이유를 물었으며 또 그가 북한군 전력증강에 대한 정보보고를 받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었다.그들은 49년 미군의 갑작스런 철수로 야기됐던 50년의 북한 침공을 상기시켰다.류장군은 『만일 당신들 군대가 떠나면 김일성이 틀림없이 다시 쳐들어 올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이들에게 미합참이 대통령 취임후에 바로 이 문제를 대통령에게 환기시킬 것임을 확약했다.그러나 그들은 카터의 군사보좌관들이 주로 자유주의 그룹과 좌파경향의 평화주의그룹으로 구성돼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있었다.나는 그들을 달래려고 애를 썼지만 솔직히 나 스스로도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해 12월 우리는 북한의 침공 가능성을 경고한 새로운 정보평가를 입수했다.전에는 북한군이 전면공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수일내지 적어도 일주일은 걸린다는 것이었는데 새로 작성된 중앙정보국(CIA),국방정보국(DIA)합동평가에 따르면 12시간이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북 침공 가능성 경고 더욱 비관적인 상황이 새해들어 전개됐다.77년 1월21일 카터대통령은 취임후 첫공식집무로 1만여명에 달하는 베트남전쟁 징집기피자들에 대한 사면령을 내렸다.이는 한국인들에게는 미국이 아시아에 있는 우방들을 더이상 방어할 의사가 없다는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로까지 비추어진것이 틀림없었다. 2주후 베시사령관은 합참의장인 조지 브라운대장으로부터 비공식 메시지를 받았다.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에 주한 미군철수 시안인 대통령지시각서(PRM)13호를 내렸으며 세가지 방안중 어느것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견해를 물어왔다는 것이었다. PRM­13은 1월27일자로 작성된것으로 틀림없이 카터대통령이 북한군 증강및 전쟁준비에 관한 새정보평가에 대해 충분히 검토할 시간적 여유없이 성급하게 성안된 것이었다. 제시된 내용은 첫째 즉각적인 철수,둘째 2개월에 1개 대대씩 2년내 완전철수,셋째 한국군에의 현대식 장비이양및 조작술훈련등을 포함한 4∼5년내 철수등이었다.그런데 백악관은 이 문제에 대해 서울의 유엔군 사령부와 협의할 필요가 없다고 특별히 요청해 왔다는 것이다. 결국 합참은 이들 방안 모두가 한반도에 치명적 결과를 낳을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일수 없다고 결정했으나 해롤드 브라운 국방장관으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고는 마지못해 세번째 방안을 천거했다는 것이다. 베시는 기회 있을때마다 합참의 참모들에게 북한군이 지난 가을이후 방어태세에서 공격태세로 전환된 사실등을 강조했다. 베시는 그해 3월초 회의참석차 워싱턴에 갔다가 카터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면담할 기회가 있었다.베시는 북한의 명백한 침략의도등 최근의 정보평가를 바탕으로 보고했다.그러나 대통령은 보고하는 동안 줄곧 무표정하게 있었다.베시는 과장법을 쓰지않는 사람이며 군사작전면에서는 어느 지휘관보다도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낙관적 분위기 점증 카터는 마침내 『장군,당신은 내가 미처 알지못하던 사실들을 잘 지적해주었소. 최종결정을 내리기전 다시한번 당신과 의논하겠소』라고 말했다. 며칠후 3월9일 카터대통령은 기자회견을 가졌다.그가 먼저 한국에 관해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한 기자가 그에게최근 제출된 78년예산안에 주한미군 유지경비 수억달러가 포함돼 있음을 들어 그의 철군공약에 대해 물었다. 그는 철군을 하되 4∼5년간의 적절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하고 한국정부와 신중하게 협의해 결정하게 될것이라고 답변했다. 이 문제는 4월말 버나드 로저스 육군참모총장이 서울에 왔을때 다시 거론됐다.리처드 스나이더대사의 관저에서 베풀어진 오찬에 참석했을때 그는 카터대통령이 철군계획을 그대로 추진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엔사령부는 철군결정을 정식으로 접수한바 없었으며 베시사령관에게 최종결정을 내리기 전에 꼭 협의를 거치겠다고 한 대통령의 언질을 바탕으로 낙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더욱이 이같은 낙관적 분위기는 5월초 미국무부와 국방부 합동으로 철군관련 고위협의단을 한국에 파견하겠다는 전문이 날아왔을때 최고조에 달했다.전문내용은 브라운 합참의장과 필립 하비브 국무차관이 인솔하는 협의단이 5월말에 파견된다는 것과 철군에 대한 결정이 아직 내려지지 않았고 한국내의 모든 그룹들과 협의를 통하지 않고는 결정될수 없음을 한국인들에게 강조하라는 지시까지 포함돼 있었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6

    ◎“포플러나무 잘라라”… 폴 버년작전 발동/21일 새벽 특공대 60명 돌진… 전폭기 엄호/“만행응징” 한밤 펜타곤서 작전개시 재가/김일성 “유감”표명… 9월8일 경계태세 「데프콘4」로 완화 8·18만행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첫째는 군사적 행동 없이 정전위를 통한 강력한 항의,두번째는 즉각적인 군사보복,세번째는 상징적 경고행위등이 스틸웰사령관에게 보고되었다. 스틸웰사령관은 지하벙커의 월 룸으로 곧바로 와서 참모회의를 열어 작성중인 OPLAN(작전계획)을 점검했다.우선 정전위 차석대표인 마크 푸르덴 해군소장을 불러 다음날 소집키로한 정전위원회에서 자신이 북한의 김일성에게 보내는 강력한 항의서한을 전달토록 지시했다.한편 즉각적 군사보복은 3차대전으로의 확대위험이 있다는 판단하에 상징적 경고행위를 채택키로 했다.그 작전은 유엔사령부의 힘을 명백히 보여주는 동시에 경고를 주기에 충분한 것이어야 했으므로 장소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로 한정키로 했다. ○「상징적 경고」 채택 작전의 주요내용은 문제의 포플라나무를 베어버리는 것이었다.결국 그 나무가 미국 권위의 상징처럼 된 것이다.지난 8월초 유엔군이 처음 그 나무를 베려했을때 북한군의 공갈협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것이 바로 북한군에게 약점을 보였다는 판단에서였다.따라서 증강된 무력시위와 함께 공동경비구역 안에 들어가 그 나무를 당당하게 베어버림으로써 북한측에 심리적 위축을 주자는 것이었다. 다음날인 19일 아침 본토의 합동참모본부로부터 미군의 방어태세를 데프콘­3로 격상시키도록 지시가 하달됐다.이는 1953년 휴전협정조인 이래 처음 내려진 조치였다.30분후 한국 국방부장관도 한국군에 비상전투태세를 명령했다.잠시후부터 SR­71초음속정찰기들이 고공으로 발진,DMZ 상공을 가로지르며 북한군의 움직임을 24시간 감시하기 시작했다.또 나이키­허큘리스 장거리미사일도 적의 레이다를 향해 발사준비를 완료했다.RF­4D 정찰기와 와일드 워젤 방공억제기가 일본과 필리핀기지에서 이날 아침 발진,한반도의 오산 군산 대구기지에 도착했다.또 미아이다호의 마운틴 홈 공군기지에서는 핵을 장착한 F­111전략폭격기가 한반도를 향해 출발했다.이로써 북한과의 신경전이 개시됐다. 지상군은 미보병2사단과 한미1군단이 DMZ를 따라 전진배치를 끝냈으며 여러 구경의 재래식 포와 전술핵 미사일등이 발사준비를 완료하고 있었다.수많은 트럭이 병력을 싣고 전방으로 투입됐으며 수송헬기가 계속 전선으로 보급물자를 날랐다.이같은 움직임은 과거어느때도 볼 수없는 규모로 북한측에게 불안한 징조로 받아들여졌음이 틀림없었다. 사건발생 다음날인 8월19일 밤까지 우리는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전시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전의 이름은 폴 버년(PAULBUNYAN)으로 명명됐다.작전의 목적은 공동경비구역은 물론 DMZ지역 어디서나 미군지휘하에 있는 유엔군이 권리를 침해당했을 경우 반드시 행동으로 응징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작전내용은 포플라나무를 자르고 또 지난 65년부터 북한측이 공동경비구역내 도로상에 불법으로 설치해 놓은 2개의 차량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었다.작전개시일은 8월21일 토요일 상오7시 정각이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군과 조우하지 않고 신속하게 작전을 수행하고 철수하는 일이었다. ○남침땐 핵 사용 공동경비구역내에서의 실제작업은 빅토르 비에라중령이 이끄는 한미합동으로 편성된 2개소대 60명의 특공대가 맡기로 했다. 20일 새벽 펜타곤으로 보내진 이 작전에 대한 최종 재가는 작전개시를 7시간여 남겨놓은 그날밤 23시45분에 내려졌다. 다음날 새벽까지 나는 이번 작전에 동원된 모든 예하부대 지휘관들로부터 전투준비를 완료하고 출발선에 대기중이라는 보고를 받았다.결전의 시간을 앞두고 나는 월 룸 맨끝에 있는 빈방으로 가서 기도를 올렸다.이번 작전의 전쟁발생 가능성은 반반이었다.만일 전쟁으로 비화된다면 불과 한시간도 못돼 수십만명이 피로 물든 산과 들에서 싸우다 죽어야할 것이었다.북한군의 살인공격은 미국의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부를 것이고 이 대응이 또 북한의 침공으로 이어진다면 대량살상을 피할수는 없을 것이었다.사실 우리는 북한군이 서울을 향해 대규모 공격을 가해온다면 2차대전 이래 최초로 핵무기 사용을 요청할수 밖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상오6시48분.특공대병력을 실은 대형트럭들이 키티호크기지를 떠나 공동경비구역으로 출발했다.앞에는 미군 소령이 칸보이했다.공동경비구역의 남쪽 통로인 제2초소를 통과,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소령은 인접한 중립국감시위원회 막사로 갔다.그곳에는 스위스대표 클라우드 무브덴소장과 스웨덴대표 라게 베른스테드소장이 있었다.소령은 그들에게 나의 인사장을 내밀고 방금 시작될 우리의 작전을 설명하고 북측의 폴란드와 체코대표단에도 통보해주도록 요청했다.그러자 장군들은 이 계획을 사전에 자신들에게 통보하지 않은데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공격은 공동경비구역 안으로 특공대트럭이 요란하게 돌진하면서 시작됐다. ○북 경비병들 당황 동시에 20대의 병력수송 헬기가 12대의 AH­1G 코브라건십의 에스콧을 받으며 공동경비구역 남쪽에 엄호병력을 풀었다. 동시에 대전차 F­4팬텀기와 F­111 중거리 전략폭격기들이 발진했으며 서해쪽으로는 괌기지에서 B­52 수개편대가,또 동해상으로는 항공모함 미드웨이호에서 40여대의 전폭기가 발진해 무력시위를 벌였다. 특공대중 1개소대는 포플라나무를 둘러싸고 다른 1개소대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쪽으로 가 북한군의 진입로를 차단했다. 북한경비병들이 놀라 자기네 진영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우리 작업단은 신속하게 나무밑둥을 베어나갔고 다른 작업팀은 적들이 설치해 놓은 차량장애물 쪽으로가 그 구조물을 크레인으로 들어내고 있었다.이때 수십명의 북한경비병들이 달려왔으나 몽둥이와 곡괭이등으로 무장한 건장한 60여명의 경비병이 작업단을 호위하고 있었으며 중무장된 한국군 수색대가 공동경비구역 남쪽에 포진돼 있는등 엄청난 규모에 놀라는듯 했다. 10분쯤후 우리 작업단이 잘라낸 밑둥을 작게 잘라 트럭에 싣고 있을때 버스 한대와 트럭 2대 그리고 덜거덕거리는 동독제 고물 세단 한대로 편성된 북한경비대가 경비구역 안으로 들어왔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앞에 멈추더니 AK­47소총으로 무장한 1백50명가량의 병사들이 차에서 내려 제방주위로 포진했다.그러나 그들은 계속 지켜보기만 할뿐 이렇다할 행동은취하지 않았다. 우리 작업단이 경비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철수를 시작한 것은 상오7시45분부터 였다.적의 기습을 우려해 조심스럽게 철수가 진행됐으며 모두 키티호크기지로 귀환한 것은 8시30분 이었다.유엔측 경비병들은 정위치로 돌아갔고 북한경비병들은 포플라나무로 와서 잘린 부분을 살펴보고 철거된 장애물들을 돌아봤다. 작전은 무사히 끝났으나 상오10시15분쯤 공동경비구역남쪽을 날며 작전의 마무리를 지휘하던 브래디장군의 헬기가 북한군의 자동화기 사격을 받았다. ○폭력책임 첫 시인 그러나 여섯대의 코브라헬기가 사격자세를 취하며 선회하자 그들의 사격은 멎었다.정오무렵까지 더이상의 총성이 들리지 않았으며 북한측이 정전위원회를 즉각 열자고 제의해 왔다.이 회의에서 북한군측 대표는 그들의 총사령관인 김일성의 메시지를 읽어내려갔다.그는 8·18사건을 「유감」으로 표시했으며 남북 양측이 이같은 불행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주장했다.이는 휴전협정이 조인된지 23년만에 북한이 부분적일 망정 DMZ내에서 폭력의 책임을 시인한 최초의 일이었다. 이후 수일 동안 위성사진에 따르면 북한이 계속 방어적 배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그들이 서서히 경계를 완화시키는 동안 미군은 그대로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9월8일 북한이 우리들의 요구를 사실상 모두 수용했을때 합동참모본부는 경계태세를 데프콘­3에서 데프콘­4로 완화시켰으며 미드웨이호는 동해를 떠났다. 폴 버년작전은 북한의 오만하고 필사적인 공산지도자들을 힘으로 다스린 예가됐다.김일성이 마침내 물러서게된 유일한 이유는 그가 직면한 위험상태를 우리가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미군은 동남아시아에서의 퇴각에도 불구하고 동맹국 한국에 대해서는 강력한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 포탄등 1천5백발/대구공사장서 발견

    【대구】 24일 상오9시40분쯤 대구시 동구 방촌동 1086의17 태평주택 건설공사장에서 박격포탄 59발과 수류탄 30발,M1소총 실탄 1천4백발,조명탄 9발,대전차 총류탄 9발이 땅속에 묻혀 있는 것을 공사장 포클레인 기사 오상환씨(29·대구시 북구 산격3동 1422)가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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