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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국가대표다] (19) 1승이 아닌 우승하려면

    소주와 맥주를 반반씩 섞어 들이켰다. 아, 이 시원한 목넘김이 얼마 만이던가. 5개월의 힘든 여정을 마무리하며 그것도 1승이라는 값진 결과와 함께, 여자럭비대표팀은 처음으로 우리들만의 자리를 가졌다. 지난 4일 인도에서의 아시아 여자7인제대회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날이었다. 우리는 여느 대학생들처럼 게임을 하며 시시덕거렸다. 경기 중 에피소드를 곱씹으며 재잘거렸고, 감독·코치 성대모사도 곁들였다. 분명 신 나게 웃고 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뭔가가 심장에서 줄곧 찰랑거렸다. 툭 대면 쏟아질 것 같았다. 끝났다는 생각에 홀가분했지만 너무 서운했고 아쉬웠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고 밤거리를 걸으며 “내년에도 할 거야?”라고 물었다. 몇몇은 “우리 이대로 다 같이 또 하자.” 혹은 “언니하면 저도 할게요.”라고 선동(!)했다. 온몸이 멍으로 얼룩져 있고 입술이 터지고 발톱이 빠지는 건 예삿일이지만, 우리는 이제 럭비를 사랑하게 됐다. 러거들이 말하는 그 ‘마약 같은’ 매력을 알아버렸다. 하지만 이제 시즌이 끝났다. 대표팀은 일단 해산했다. 다들 직장과 학교로 흩어졌다. 나도 신문사로 돌아왔다. 내년에는 아마도 올해 그랬듯, 상반기 선발전을 통해 새로운 3기 대표팀이 꾸려질 것이다. 럭비를 계속할 1~2기 대표팀 멤버들은 초보 러거들과 또 한번 기초부터 단계를 밟아야 한다.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 멤버가, 혹은 지금 이 멤버들이 쭉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까지 간다면 아마 훌륭한 짜임새를 갖춘 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럭비에만 올인하기에 선수들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명색이 국가대표라지만 럭비로 먹고살 상황이나 실력은 아직 아니다. 선수들은 친구들이 어학연수 가고 인턴 하는 걸 보며 자신의 장래를 걱정한다. 물론 젊은 시절 잠깐을 바쳐 태극마크를 달 수 있는 건 그 자체로 엄청난 특혜다. 선수단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당장의 자긍심과 성취감을 빼면 계속 럭비를 할 동력이 약한 게 사실이다. 인천아시안게임 메달이라는 가시적인 목표가 있는 팀이라면 좀 더 충분한 당근이 필요하다. 선수들의 열정에만 기대하는 건 가혹하다. 계속 이렇다면 지난해, 그리고 올해처럼 ‘힘든 럭비를 여자가 한다니.’라는 흥밋거리에 머물고 말 것이다. 1승을 했으니 이제는 우승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꿈꾸는 건 자유니까.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5)살인 현장에 남은 ‘그’의 립스틱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5)살인 현장에 남은 ‘그’의 립스틱

    “301호라꼬예? 같은 신고만 벌써 5번째 아잉교? 근데 가봤더니 아무 것도 아이던데예.” “그기 아이라 사람이 죽었다니까요.” 2001년 7월 27일 경남 창원의 한 오피스텔. 결과적으로 경찰은 이틀간 같은 집에 5차례나 출동해서야 빼어난 미모의 죽은 여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사망자는 인근에서 소주방을 운영하는 A(당시 41세)씨였다. 장롱 속 시신을 발견한 것은 남동생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열어 본 옷장에 그녀는 목이 졸린 채 숨져 있었다. 시신 발견 시간을 늦추기 위해 누군가 그녀를 옷장 속에 넣어 놓은 것이었다. 이틀 전 이웃들은 심하게 싸우는 소리를 들어 신고했다고 했지만, 누가 드나들었는지 본 사람은 없었다. 범인은 A씨의 손과 발을 묶은 후 장롱 속에 욱여넣었다. 얼마간을 웅크려 있었는지 피가 몰린 자국인 시반이 등에 몰려 있었다. 피살자의 목에는 스타킹과 실타래가 칭칭 감겨 있었다. 손으로 목을 조른 후 스타킹 등으로 다시 한번 숨통을 조인 듯 보였다. 배꼽 위에는 6㎝ 정도 칼에 베인 상처가 나 있었다. 싱크대 위 피묻은 과도가 범행 도구였다. 직장(直腸)온도 등을 통해 대략 계산한 A씨의 사망추정 시간은 약 48시간 전. 하지만 경찰은 정확한 시간은 탐문수사를 통해 확인하기로 했다. 시신의 부패가 진행 중이면 과학수사반은 헨스게 도표 등 일반적인 사망시간 추정법을 쓰지 않는다. 무리한 계산으로 오차 범위가 늘면 오히려 수사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망시간을 찾아내는 연구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여전히 미완의 단계다. ●3명의 남자 DNA 범인은 그중 하나 A씨가 혼자 살았던 오피스텔은 살인현장치고는 너무 깨끗했다. 출동한 경찰은 이 때문에 출동했다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손님이 왔었는지 방바닥엔 과일 접시와 2개의 방석이 놓여 있었다. 싱크대 속 밥공기도 2개였다. 반면 어디에도 외부침입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면식범에 의한 살인이라고 판단했다. 범인이 시가 200만원 상당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빼 가지 않은 것도 이런 확신을 뒷받침했다. 4차례에 걸쳐 정밀 감식이 진행됐다. 감식반은 숨진 A씨를 덮었던 이불과 쓰레기 속 휴지, 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 지문이 묻은 생수통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청으로 보냈다. 검사 결과 현장에서 확인된 DNA는 모두 3개였다. 범인이 죽은 그녀 위에 덮어 놓았던 이불, 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 쓰고 난 휴지에서 각각 다른 세 남자의 DNA가 검출됐다. 이불에서 나온 것은 A씨의 애인 B씨 DNA였다.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그는 “애인 집에서 내 DNA가 나오는 건 당연하지 않으냐.”며 펄쩍 뛰었다. 그는 사건 전날 A씨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나마 밖에서 만났고 그 후에는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B씨는 알리바이가 확실했다. 경찰은 휴지와 담배꽁초에 흔적을 남긴 남성 2명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한달이 지나도록 DNA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 남편과 그녀가 운영하던 소주방의 단골, 이웃집 남자 등 경찰은 무려 100여명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지만 모두 DNA가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문감식 결과도 실망스러웠다. 범인을 잡았을 때 대조는 가능하지만, 해당 지문만으로는 범인이 누군지 특정할 수 없다는 결과였다. 결국 경찰은 수사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그 남자가 남긴 립스틱 자국 사건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때 수사팀이 통신회사에 의뢰한 오피스텔 전화통화 내역이 날아왔다. 경찰은 당일 오전 8시 13분 마산의 한 지하상가 공중전화에서 걸려온 전화에 주목했다. 죽은 여성 A씨의 마지막 통화였다. 2분 49초 동안 A씨와 통화한 그는 같은 장소에서 연달아 2통의 전화를 더 걸었다. 경찰은 해당 통화내역을 따라갔다. 그곳은 M주점과 B단란주점이었다. 두 주점과 A씨 소주방 사이에 공통점이 발견됐다. 최근 생활정보지에 여종업원 구인광고를 냈던 것이었다. M주점 사장은 수화기 너머 공중전화로 걸려온 통화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여종업원을 구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목소리가…, 어딘가 남자 같았어요.” 순간 수사관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담배꽁초에 남은 립스틱 자국이었다. “왜 그걸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범인은 트랜스젠더일 수도 있어.” 경찰은 트랜스젠더인 남자가 피해자와 구직 문제로 통화를 하고 그의 오피스텔을 방문했다가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그 일대 주점에는 트랜스젠더 한 명이 여종업원이 되고 싶다며 술집을 찾아왔다가 거부당하면 행패를 부리고 돈을 뜯어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추정연령도, 인상착의도 같았다. 경찰은 이 사람을 찾는 데 총력을 다했다. 전국 경찰서를 상대로 트랜스젠더 관련 사건을 확인한 결과 제주에서 트랜스젠더 한 명이 술집 주인으로부터 돈만 챙겨 달아난 사건이 접수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이 확인한 그의 신원은 C(31)씨. 놀랍게도 범행 현장 생수병에 남긴 지문은 그의 오른손 지문과 일치했다. 결국 경찰은 고향으로 도주한 C씨를 검거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그는 최근 마산·창원·부산 일대를 돌며 술집 일자리를 구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8년 동안 여성으로 살아온 그였지만 성 전환자라는 것을 알아차린 주인들은 그를 내쫓기 일쑤였다. 사회가 자신을 차별한다고 생각한 C씨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행패를 부리거나 난동을 피웠다. 그렇게라도 돈을 받아내야 분이 풀렸다. 시신이 발견되기 이틀 전인 7월 25일, 아침 일찍 A씨와 전화통화를 한 그는 밤 10시쯤이 돼서 A씨의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일종의 면접이었는데 이야기가 잘 풀렸다. A씨는 마치 친언니처럼 C씨를 대했다. 저녁을 못 먹었다는 말에 선뜻 미역국에 밥까지 내줬다. 그렇게 고용 계약을 할 때쯤 C씨는 주민등록증을 내밀며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1번으로 시작하는 주민증을 본 A씨는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남자를 쓸 수는 없다고 했다.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C씨가 한바탕 악담을 퍼붓고 오피스텔을 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A씨가 최후의 한마디를 했다. “별 미친 놈 다보겠네. 세상이 참말로 말세다 말세….” C씨는 순간의 분을 참지 못했고,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글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그래픽 강미란 기자 mrkang@seoul.co.kr
  • 삼척, 에너지·관광산업 둘 다 잡는다

    에너지산업도시를 꿈꾸고 있는 강원 삼척시가 ‘클린에너지 콤플렉스’ 개발을 추진한다. 삼척시는 원덕 지역 230만㎡ 일대에 8조원 규모의 클린에너지 콤플렉스 개발 사업에 대한 투자협약을 포스코 계열사와 체결하고 공동개발하기로 했다고 10일 밝혔다. 원덕에는 내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동안 2단계에 걸쳐 모두 4000㎿급 발전 설비를 갖추게 된다. 클린에너지 콤플렉스 개발 사업은 환경친화적인 최신 발전설비를 갖춘 에너지단지 조성으로, 신재생에너지 연구는 물론 연관 산업 유치로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게 된다. 장기적으로 청정석탄화학 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연료인 석탄을 고온·고압에서 가스화나 액화를 하는 석탄가스화발전(IGCC), 석탄액화(CTL) 및 합성천연가스(SNG) 등의 공정으로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에너지 사업으로 기대된다. 본격 사업 추진에 앞서 삼척시와 포스코파워㈜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입지 조사와 사업타당성 평가를 거쳐 내년 제6차 국가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반영할 계획이다. 시는 이번 사업을 통해 앞으로 건설기간 중에 단계별로 연인원 200만~300만명의 고용 창출과 함께 장기적으로 4000여명의 인구 유입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 사업기간에 ‘발전소주변지역지원금’, 지역자원시설세 등 직접적으로 모두 6000억원이 지자체 재정으로 유입되고 운영인력 고용과 운영 간접비 등에 따라 3조원 이상의 재원이 지역사회에 풀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주변 지역 일자리 창출 및 지역투자 활성화에도 기여를 함으로써 삼척에 활기를 불어 넣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대수 삼척시장은 “이번 사업은 동해안권 복합에너지산업단지 구상에 맞춰 추진하는 것으로, 시는 이 투자협약을 통해 ▲2조 7000억원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생산기지 ▲5조 9000억원 규모의 종합발전단지 착공 ▲1조 5000억원 규모의 SNG 생산 플랜트시설 유치 협약에 이어 ▲클린에너지 콤플렉스까지 갖춘 명실상부한 국내 유일의 종합에너지 메카로 발돋움하게 됐다.”고 말했다. 삼척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그 남자가 남긴 립스틱 자국…옷장 속의 시신

    그 남자가 남긴 립스틱 자국…옷장 속의 시신

    “301호라꼬예? 같은 신고만 벌써 5번째 아잉교? 근데 가봤더니 아무 것도 아이던데예.” “그기 아이라 사람이 죽었다니까요.” 2001년 7월 27일 경남 창원의 한 오피스텔. 결과적으로 경찰은 이틀간 같은 집에 5차례나 출동해서야 미모의 죽은 여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사망자는 인근에서 소주방을 운영하는 A씨(당시 41세)였다. 장롱 속 시신을 발견한 것은 남동생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열어 본 옷장에 그녀는 목이 졸린 채 숨져 있었다. 시신의 발견 시간을 늦추기 위해 누군가 그녀를 옷장 속에 넣어 놓은 것이었다. 이틀전 이웃들은 심하게 싸우는 소리를 들어 신고했다고 했지만, 누가 드나들었는지 본 사람은 없었다. 범인은 여성의 손과 발은 묶은 후 장롱 속에 우겨넣었다. 얼마간을 웅크려 있었는지 피가 몰린 자국인 시반이 등에 몰려 있었다. 피살자의 목에는 스타킹과 실타래가 칭칭 감겨 있었다. 손으로 목을 조른 후 스타킹 등으로 다시 한번 숨통을 조인 듯 보였다. 배꼽 위에는 6㎝ 정도 칼에 베인 상처가 나있었다. 싱크대 위 피묻은 과도가 범행 도구였다. 직장(直腸)온도 등을 통해 대략 계산한 여성의 사망추정 시간은 약 48시간 전. 하지만 경찰은 정확한 시간은 탐문수사를 통해 확인하기로 했다. 시신의 부패가 진행 중이면 과학수사반은 헨스게 도표 등 일반적인 사망시간 추정법을 쓰지 않는다. 무리한 계산으로 오차의 범위가 늘면 오히려 수사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망시간을 찾아내는 연구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여전히 미완의 단계다.   3명의 남자 DNA 범인은 그중 하나 A씨가 혼자 살았던 오피스텔은 살인현장 치고는 너무 깨끗했다. 출동한 경찰은 이 때문에 출동했다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손님이 왔었는지 방바닥엔 과일 접시와 2개의 방석이 놓여 있었다. 싱크대 속 밥공기도 2개였다. 반면 어디에도 외부침입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면식범에 의한 살인이라고 판단했다. 범인이 시가 200만원 상당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빼가지 않은 것도 이런 확신을 뒷받침했다. 4차례에 걸쳐 정밀 감식이 진행됐다. 감식반은 숨진 A씨를 덮었던 이불과 쓰레기 속 휴지, 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 지문이 묻은 생수통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청으로 보냈다. 검사 결과 현장에서 확인된 DNA는 모두 3개였다. 범인이 죽은 그녀 위에 덮어 놓았던 이불, 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 쓰고 난 휴지에서 각각 다른 세 남자의 DNA가 검출됐다. 이불에서 나온 것은 A씨의 애인 B씨 DNA였다.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그는 “애인 집에서 내 DNA가 나오는 건 당연하지 않으냐.”며 펄쩍 뛰었다. 그는 사건 전날 A씨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나마 밖에서 만났고 그 후에는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B씨는 알리바이가 확실했다. 경찰은 휴지와 담배꽁초에 흔적을 남긴 남성 2명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한달이 지나도록 DNA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 남편과 그녀가 운영하던 소주방의 단골, 이웃집 남자 등 경찰은 무려 100여명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지만 모두 DNA가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문감식 결과도 실망스러웠다. 범인을 잡았을 때 대조는 가능하지만, 해당 지문만으로는 범인이 누군지 특정 할 수 없다는 결과였다. 결국 경찰은 수사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그 남자가 남긴 립스틱 자국 사건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때 수사팀이 통신회사에 의뢰한 오피스텔 전화통화 내역이 날아왔다. 경찰은 당일 오전 8시 13분 마산의 한 지하상가 공중전화에서 걸려온 전화에 주목했다. 죽은 여성 A씨의 마지막 통화였다. 2분 49초 동안 A씨와 통화한 그는 같은 장소에서 연달아 2통의 전화를 더 걸었다. 경찰은 해당 통화내역을 따라갔다. 그곳은 M주점과 B 단란주점이었다. 두 주점과 A씨 소주방 사이에 공통점이 발견됐다. 최근 생활정보지에 여종업원 구인광고를 냈던 것이었다. M주점 사장은 수화기 너머 공중전화와의 통화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여종업원을 구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목소리가?, 어딘가 남자 같았어요.” 순간 수사관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담배꽁초에 남은 립스틱 자국이었다. “왜 그걸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범인은 트랜스젠더일 수도 있어.” 경찰은 트랜스젠더인 남자가 피해자와 구직 문제로 통화를 하고 그의 오피스텔을 방문했다가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그 일대 주점에는 트랜스젠더 한 명이 여종업원이 되고 싶다며 술집을 찾아왔다가 거부당하면 행패를 부리고 돈을 뜯어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추정연령도 인상착의도 같았다. 경찰은 이 사람을 찾는 데 총력을 다했다. 전국 경찰서를 상대로 트랜스젠더 관련 사건을 확인한 결과 제주에서 트랜스젠더 한 명이 술집 주인으로부터 돈만 챙겨 달아난 사건이 접수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이 확인한 그의 신원은 C씨(31)씨. 놀랍게도 범행 현장 생수병에 남긴 지문은 그의 오른손 지문과 일치했다. 결국 경찰은 고향으로 도주한 C씨를 검거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그는 최근 마산·창원·부산 일대를 돌며 술집 일자리를 구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8년 동안 여성으로 살아온 그였지만 성 전환자라는 것을 알아차린 주인들은 그를 내치기 일수였다. 사회가 자기를 차별한다고 생각한 C씨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행패를 부리거나 난동을 피웠다. 그렇게라도 돈을 받아내야 분이 풀렸다. 시신이 발견되기 이틀 전인 7월 25일, 아침 일찍 A씨와 전화통화를 한 그는 밤 10시쯤이 돼서 A씨의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일종의 면접이었는데 이야기가 잘 풀렸다. A씨는 마치 친언니처럼 C씨를 대했다. 저녁을 못 먹었다는 말에 선뜻 미역국에 밥까지 내줬다. 그렇게 고용 계약을 할때 쯤 C씨는 주민등록증을 내밀며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1번으로 시작하는 주민증을 본 A씨는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남자를 쓸 수는 없다고 했다.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C씨가 한바탕 악담을 퍼붓고 오피스텔을 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A씨의 최후의 한마디를 했다. “별 미친 놈 다보겠네. 세상이 참말로 말세다 말세?.” C씨는 순간의 분을 참지 못했고,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연재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목졸려 죽은 시신의 ‘마지막 증언’ 운전석 아내 목졸라 살해하고 차는 낭떠러지로…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긴장한 범인이 현장에 남긴 대변이 결정적 증거를…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7) 여성 유린 위해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8) 핏자국 속 엽기 살인범의 족보 혈흔 속 性염색체로 ‘악마의 姓’ 찾아내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급성 수분중독으로인한 사망사건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 생활반응은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그녀가 성형수술만 안했더라도…”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죽은 여성이 남긴 데스노트…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바다에서 건진 토막시신의 신원찾기 18) 치밀한 남편 ‘전류반’은 못 숨겼네 찌릿찌릿 전기충격기 자국이 완전범죄 밝혀내다 19) 두려움이 만든 ‘자기 폭력적 자살’ 참혹한 죽음…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여성 시신 2구의 잔인한 진실게임…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그 남자 노리는 ‘한밤 통증’… 동양인의 저주? 청장년 급사 증후군 22) 70% 부패한 시신… 말없이 증언하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의 240㎜ 운동화 용의자 중엔 없는데…60대 노인의 트릭이었다 별무늬 자국의 비밀 24)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4회]택시강도의 진실…흙탕물이 살인자를 지목하다
  • ‘성희롱 입사 면접’ 여성 구직자의 분노

    ‘성희롱 입사 면접’ 여성 구직자의 분노

    심각한 취업난 속에 여성 구직자들이 면접과정에서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철저한 갑을 관계에서 피해자들은 부당한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행여나 선발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신고는커녕 상담조차 못하고 속앓이만 하는 실정이다.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구조인 까닭이다. ’벙어리 냉가슴’이다. 지난해 9월 캠퍼스 리크루팅으로 D그룹 계열사에 지원한 대학생 A(25·여)씨는 ‘술자리 면접’ 과정에서 인사 담당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A씨는 인사부로부터 “이력서를 넣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일호프를 열 예정이니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고 호프집에 갔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인사담당자는 A씨에게 다가와 회사에 관해 설명하며 허벅지·등·손 등을 만졌다. A씨는 뿌리치고 싶었으나 술자리가 면접의 일부라고 생각해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A씨는 자신이 겪은 일을 주변에 알리려고 했으나 혹시나 신원이 드러나 취업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 혼자 화를 삭였다. A씨는 “앞으로 또 같은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B(25·여)씨의 경우, 지난해 11월 L그룹 계열사의 면접에 갔다가 면접관으로부터 ‘스토킹’ 수준으로 시달렸다. 면접 때 놓고 나온 서류가 문제였다. 면접관은 “서류를 직접 돌려주겠다. 집이 어디냐. 집 근처로 가져가겠다.”며 전화하는가 하면 “잘 지내느냐.”고 전화를 걸기도 했다. B씨는 합격하지 못했다. 최근 직장을 잡은 C(28·여)씨는 현재 문을 닫은 중소 화장품 제조회사의 면접을 보다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했다. C씨는 주량을 묻은 면접관에게 “소주 반 병 정도는 마실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면접관은 “잘됐다. 우리 여직원들은 한 잔 마시고도 취해 술 따라 줄 사람이 없다.”며 황당한 말을 늘어놓았다. C씨는 “면접관이 농담이 아니라 진담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면접이라 불쾌한 티를 낼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황현숙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은 “한 회사는 면접 때 ‘우리는 자유로운 분위기라 서로 뽀뽀도 하니 한번 해 줘라’라는 말을 했다는 사례도 접했다. 당시 피해자의 상담을 듣고 고용노동부 등에 진정을 넣으려고 했으나 피해자가 극구 만류해 진정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예컨대 국가인권위원회에는 구직 과정에서 벌어지는 성희롱·성추행에 대한 진정이 접수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 피해는 입어도 상대적 약자라는 입장 탓에 스스로 덮는 것이다. 소라미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는 “남녀고용평등법 제2조 2항은 고용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 법에 따라 성추행을 신고하기는 어렵지만 국가인권위법에 따르면 사용자가 직위를 이용해 성적 불쾌감을 줄 경우 진정이 가능해 인권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 회장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부당한 일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면서 “피해를 입으면 노동자회의 전국 15개 고용평등상담실에 상담하거나 고용부, 인권위 등에 진정을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美 정치후보 30명 “안녕하십니까”… ‘親韓 공적’ 열변

    美 정치후보 30명 “안녕하십니까”… ‘親韓 공적’ 열변

    “그동안 주 상원으로서 한인 사회에 관심이 없으셨던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느냐.”(사회자) “앞으로는 여러분이 초청하면 꼭 참석하겠다.”(딕 새슬로 주 상원의원 후보) “초청해야만 참석한다니…. 부르기 전에 적극적으로 한인 행사에 참여해야 한다.”(로버트 사비스 주 상원의원 후보) 29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시의 루터 잭슨 중학교 강당이 미국 정치인들의 열변과 한인들의 박수로 쩌렁쩌렁 울렸다. 미주 한인 역사상 처음으로 한인교포들이 미국 정치 후보자들을 대규모로 불러 토론회를 갖는 뜻깊은 행사였다. 오는 11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버지니아 한인회(회장 홍일송)가 한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페어팩스 카운티 일대를 지역구로 하는 주 상원의원 후보와 주 하원의원 후보, 주 슈퍼바이저(군수 격), 주 교육위원 후보 등 민주, 공화 후보 총 30명을 토론회에 초청했다. 초청 받은 후보자 전원이 참석한 것은 물론, 초청받지 못한 2명의 무소속 후보도 “왜 우리한테는 기회를 안 주느냐.”고 항변하며 객석에 앉아 ‘무언의 시위’를 벌였다. 미국에서 훌쩍 성장한 한인 사회의 위상을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페어팩스 주민 120만명 가운데 한인은 10만명으로 후보자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표밭’이다. 후보자들이 어눌한 한국어 발음으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거나 “소주 판매 합법화에 기여했다.”라고 ‘친한(親韓) 공적’을 뽐낼 때마다 객석을 메운 400여명의 한인 동포들은 우레 같은 박수로 화답했다. 사회를 맡은 마이클 권 토론회 준비위원장은 교육위원 후보 7명에게 “교육위원에 선출되면 새 교재와 지도에 동해와 일본해 이름을 병기할 의사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6명이 차례로 “예”라고 답했고, 1명만 “모르는 이슈라서 일단 ‘아니오’라고 답하겠다.”고 했다. 2시간 반에 걸친 토론회가 끝난 뒤 후보들은 출구에 나란히 서서 행사장을 떠나는 한인들에게 한국식으로 허리를 숙이며 지지를 호소했다. 페어팩스(버지니아)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씨줄날줄] 철가방/최광숙 논설위원

    1895년 10월 일제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된 직후 경복궁. 홀로 남겨진 고종황제는 궁내의 친일파 세력이 자신마저 독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식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철가방’이다. 미국인 선교사들이 궁 밖에서 만든 음식을 양철통에 담아 자물쇠에 채워 가져간 것이다. 당초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중국집 짜장면 배달 가방인 철가방은 지금의 모습을 갖춘 이후에도 무한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소설가 김훈씨는 버려진 철가방을 주워다 원고지나 취재수첩을 놓는, 간이 서가로 쓰고 있다고 한다. 개그맨 전유성씨가 경북 청도에 문을 연 코미디 전용극장은 짜장면, 짬뽕, 소주병 조형물로 장식된 철가방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도 철가방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배달의 기수 ‘철가방맨’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라고도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한 그들의 철가방에는 그래서 처절한 아픔과 슬픈 사연들이 배어 있다. 철가방 인생이 빚어낸 감동의 스토리가 유독 가슴 절절한 이유이기도 하다. 고려대 앞 중국집에서 일하던 김대중씨. 짜장면을 시키면 짬뽕 국물도 주는 고객감동 서비스로, 그는 예전에 ‘고려대 철가방 번개’로 명성을 날렸다. 요즘 ‘태풍이 불어도 철가방은 달린다’는 주제로 대학 등에서 스타강사로 활약 중이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얼마나 열의를 갖고 하는가에 따라 일의 승패가 좌우된다.”고 굳게 믿은 그였기에 희망의 전도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 최근 또 한 명의 철가방맨이 사람들을 울리고 있다. 한 달 70만원 벌이임에도,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들을 후원하던 ‘철가방 아저씨’ 김우수(54)씨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창문도, 화장실도 없는 1.5평의 고시원 쪽방에 살면서도 작지만 큰 이웃사랑을 펼쳤던 삶이기에 그를 향한 추모의 물결이 넘실댄다. 보험금마저 어린이재단 앞으로 남긴 그의 충만한 삶.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나 7세 때 고아원에 맡겨졌고,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돌았지만 불우 어린이들을 후원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그의 삶이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사회의 보살핌을 받아야 마땅했던 그가 오히려 사랑을 베풀었다는 점이다. 외로운 삶이었지만, 그의 마음속은 우리보다 훨씬 풍요로웠는지도 모른다. 책상 위에 놓여진, 그가 후원했던 어린이들 사진을 보면 말이다. 그가 세상에 전해준 사랑의 온기가 식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폭행치사’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어떻게 뽑나 봤더니

    ‘폭행치사’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어떻게 뽑나 봤더니

    국민참여재판을 아시나요. ‘배심원’이란 말은 들어 보셨겠죠. 미국 영화를 보면 피고인이 판사가 아니라 배심원단에 읍소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한국에서도 2008년부터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일종의 배심제가 시범 실시되고 있고, 내년부터는 확대됩니다. 얼마 전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재판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뤄지면서 조금 알려지긴 했지만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국민참여재판은 다른 형사 재판처럼 공개되지만 배심원 선정 과정은 비공개입니다. 배심원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해서죠. 비공개인 배심원 선정 과정을 들여다봤습니다. 언제 법원에서 ‘배심원으로 나와 달라.’는 소환장이 날아올지 모릅니다. 법원에서 소환장 왔다고 놀라지 마시고, 기사를 읽어 보세요. “술 좋아합니까. 주량은 얼마나 되지요.”(검사) “주량은 소주 반 병 정도지만 자주 마시지는 않는 편입니다.”(25세 남성, 5번 배심원)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부장 배준현) 심리로 열린 국민참여재판은 폭행치사 사건이었다. 내기 당구에서 언쟁이 붙어 피고인 김모씨가 피해자를 밀쳤고,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피해자가 며칠 뒤 사망한 사건이었다. 살짝 밀친 것을 폭행으로 봐야 하는지가 사건의 쟁점이었다. 적절한 배심원을 선정하기 위한 판사·검사·변호인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판사는 중립적이고 공정한 배심원을 찾기 위해서, 검사나 변호사는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해 줄 배심원을 찾기 위해서다. 피고인과 피해자 모두 만취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 술과 관련된 질문이 많았다. 변호인이 “술을 많이 먹고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한 기억이 있느냐.”고 묻자 한 배심원은 “술을 먹으면 일찍 자는 편이라 그런 일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번에는 검사가 질문을 던졌다. ‘폭행치사’와 ‘살인’의 차이를 아는지, 또 성폭행 범죄를 저지른 조두순의 처벌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 “사람이 누군가를 때려서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 배심원은 “재수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데 죽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답했고, 또 다른 배심원은 “치사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심원들의 답변이 끝나면 검사와 변호인은 판사에게 배심원 기피신청을 한다. 이 과정에서 ‘범죄를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는 답변을 했다면 변호인이 꺼리게 되고, ‘좀 봐줘도 된다.’는 답변을 했다면 검사가 꺼릴 수 있다. 이날은 청력이 약해 질문을 거의 듣지 못했던 70대 노인 등 3번에 걸쳐 9명이 기피됐다. 결국 2시간 만에 배심원 7명에 예비배심원 1명이 결정됐다. 검사들은 보통 동종 전과를 가진 배심원을 선호하지 않는다. 피고인의 범죄에 대해 너그러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배심원들은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치열하게 평의했고, 징역 2년을 권고하는 의견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배심원 통지를 받은 국민은 출석 의무를 지닌다. 올해까지는 시범기간이라 그냥 넘어가지만, 어길 경우 과태료도 물어야 한다. 배심원으로 출석하면 5만원, 배심원으로 선정되면 10만원의 수당을 지급받는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건강노트] 고춧가루 소주

    [심재억 기자의 건강노트] 고춧가루 소주

    이걸 민간요법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감기에 걸리면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라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저도 오래전 이런 권고를 따랐다가 고춧가루 사레로 혼쭐이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차피 치료제가 없는 감기다 보니 ‘약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칠일’ 만에 낫지만 인후염에 열까지 더해지면 감기가 주는 고통도 만만찮은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감기 고통을 덜기 위해 인체에 전기충격이라도 가해보자는 심정으로 이런 꾀를 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생각해 보면 정말 대책 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흔히 감기는 열을 동반합니다. 일단 감염되면 스스로는 느끼든 그렇지 않든 열은 나게 됩니다. 인체의 면역체계가 바이러스와 한창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증거가 바로 열이라는 현상이지요. 따라서 면역체계를 도우려면 열이 날 때 발열이 쉽도록 하는 것도 감기를 빨리 털어내는 한 방법일 터인데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 마셔 열에 열을 더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걸 감당해야 하는 몸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게다가 술은 일단 마시면 체내 수분을 고갈시키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열이 나서 수분이 자꾸 빠져나가는데 술까지 마셔 탈수를 부채질하는 격이라니요. 의사들이 감기 환자더러 “물 많이 마시고 휴식을 취하라.”고 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인데, 독한 소주를 마셔 수분을 잃게 만드니 상식적인 치료와는 정반대인 아주 고약한 선택인 셈이지요. 더러는 “바이러스가 열에 약한데,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면 일시적으로 체열이 높아져 바이러스 퇴치에 도움이 된다.”고 강변하기도 합니다만, 이것도 엉터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독한 땡초 가루를 타 마신들 감기열을 넘겠으며, 그렇게 해서 약에다가 술까지 감당해야 하는 간의 부담은 또 어떻겠습니까. 다시 감기가 기승을 부릴 때입니다. 가장 좋기로야 감기에 안 걸리는 것이겠지만 기왕 걸렸다면 의사를 찾는 게 상책입니다. 물론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걸렸다 하면 고생하는 사람도 적지 않거든요. 단, 제발 의사더러 “항생제 좀 꼭 넣어주세요.”라는 식의 주문은 삼가시기 바랍니다. 필요하면 의사들이 다 알아서 조치하니까요. jeshim@seoul.co.kr
  • [열린세상] 만성질환의 시대/강대희 서울대 예방의학 교수

    [열린세상] 만성질환의 시대/강대희 서울대 예방의학 교수

    유엔은 지난주 향후 새로운 보건 정책 목표로 심혈관질환, 암 등 만성질환을 설정했다고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심장병, 뇌졸중, 암 등 만성질환으로 한 해 3500만명이 죽어가고 있다.”면서 향후 10년간 3억명 이상이 만성질환으로 사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흔한 당뇨병,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과 연관이 깊은 과체중이나 비만 인구가 전세계에 약 10억명이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높은 사망 원인인 암, 뇌졸중, 심장질환이 매년 얼마나 발생하고 해마다 얼마나 늘어나고 있는지, 그 발생 원인과 예방대책은 무엇인지. 이런 것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등 궁금한 건 많은데 속시원한 답이 없어 답답하다. 우리나라 사망원인 1위인 암의 발생률에 대해서는 국가 암등록 통계 자료의 도움으로 지난 몇년간 크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사망원인 2, 3위를 차지하는 뇌혈관질환이나 심장질환에 대해서는 유병률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질병 발생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표성이 있는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일정한 진단기준에 의해 동일한 방법으로 조사해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자료를 이용해서 간접적으로 추세를 살펴볼 수는 있다. 하지만 심평원 자료는 의료기관에서 요양급여비를 신청하기 위해 모아진 자료이기 때문에 진단의 정확성, 대상 인구의 대표성 등에서 우리나라 주요 질병의 발생규모를 파악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심평원 자료를 분석한 유병률 결과가 국민건강영양조사결과나 학회 차원에서 수행한 다른 연구결과와 차이를 보이는 이유다. 질병의 원인에 대한 연구는 더욱 미흡하다. 우리나라 대장암 발생률이 아시아에서 1위, 전 세계에서 4위라고 하고 2030년에는 현재의 두배가 될 것이라고 한다. 한림대학교 김동현 교수가 2008년도 국제심포지엄에서 우리나라 대장암 환자 1300명과 정상인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서 매일 소주 한병 정도를 마시는 사람은 그러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대장암 발생위험도가 약 1.8배 증가한다고 하였고 특히 알코올 대사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대장암 발생이 6배 증가한다고 보고하였는데 이 연구가 우리나라에서 수행된 가장 큰 규모의 대장암 발병에 관한 역학연구이다. 외국에서 수십만명의 정상인 코호트(통계상 인자 공유 집단)를 대상으로 수천명의 대장암 신규발생자의 특성을 비교분석한 연구결과와는 연구의 규모나 질 면에서 천지차이다. 대장암의 발생 원인이 음주, 고기섭취, 운동부족 등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의 결과는 외국의 연구에서 나왔다. 우리나라 사람을 대상으로 한 대장암 발생위험 요인에 대한 역학연구는 거의 없다. 암은 국가에 따라, 인종에 따라, 같은 양의 위험요인에 노출돼도 사람에 따라 발생률과 발병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연구결과를 근거로 한국형 예방지침을 만드는 게 필수적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기본적인 건강지표 생산에 국가 연구개발비를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서 국가 연구개발비에서 보건의료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낮은 나라 중의 하나이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 개발도 중요하고 유전체검사를 이용한 질병조기진단마커의 발굴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흔한 만성질환이 얼마나 발생하고 있는지. 그 원인을 알아야 조기진단의 유용성이나 세포치료제의 효용성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비 배분의 불균형과 비효율성도 큰 문제이다.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 또한 중요하다. 정부 연구비는 성공위험도가 떨어지지만 기본자료 생성을 위해서 필수적인 인프라 연구 등에 투자돼야 한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연구개발예산의 많은 부분을 질병원인 예방연구에 투자한다. 우리나라는 예방연구를 아예 연구개발 영역으로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급히 시정해야 할 문제이다. 세금을 내는 국민에게 어떤 병에 왜 걸리는지, 어떻게 예방해야 할지 정도는 국가에서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감기 걸렸을 때 소주에 고춧가루 타 마시면?

    감기 걸렸을 때 소주에 고춧가루 타 마시면?

     이걸 민간요법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감기에 걸리면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라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저도 오래 전, 이런 권고를 따랐다가 고춧가루 사래로 혼쭐이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차피 치료제가 없는 감기다 보니 ‘약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칠일’만에 낫지만 인후염에 열까지 더해지면 감기가 주는 고통도 만만찮은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감기 고통 덜기 위해 인체에 전기충격이라도 가해보자는 심정으로 이런 꾀를 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생각해 보면 정말 대책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흔히 감기는 열을 동반합니다. 일단 감염되면 스스로는 느끼던, 그렇지 않던 열은 나게 됩니다. 인체의 면역체계가 바이러스와 한창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증거가 바로 열이라는 현상이지요. 따라서 면역체계를 도우려면 열이 날 때 발열이 쉽도록 하는 것도 감기를 빨리 털어내는 한 방법일 터인데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 마셔 열에 열을 더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걸 감당해야 하는 몸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게다가 술은 일단 마시면 체내 수분을 고갈시키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열이 나서 수분이 자꾸 빠져나가는데 술까지 마셔 탈수를 부채질하는 격이라니요. 의사들이 감기환자더러 “물 많이 마시고 휴식을 취하라.”고 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인데, 독한 소주를 마셔 수분을 잃게 만드니 상식적인 치료와는 정반대의 아주 고약한 선택인 셈이지요. 더러는 “바이러스가 열에 약한데,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면 일시적으로 체열이 높아져 바이러스 퇴치에 도움이 된다.”고 강변하기도 합니다만, 이것도 엉터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독한 땡초가루를 타 마신들 감기열을 넘겠으며, 그렇게 해서 약에다가 술까지 감당해야 하는 간의 부담은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시 감기가 기승을 부릴 때입니다. 가장 좋기로야 감기에 안 걸리는 것이겠지만 기왕 걸렸다면 의사를 찾는 게 상책입니다. 물론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걸렸다 하면 고생하는 사람도 적지 않거든요. 단, 제발 의사더러 “항생제 좀 꼭 넣어주세요.”라는 식의 주문은 삼가시기 바랍니다. 필요하면 의사들이 다 알아서 조치하니까요.  jeshim@seoul.co.kr
  • 약 120억원 가치 ‘월석’(月石) 발견돼

    약 120억원 가치 ‘월석’(月石) 발견돼

    달 탐사선 아폴로 17호가 1972년 달에서 가져온 월석(달의 암석)이 30여년 간 자취를 감췄다 최근 모습을 드러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23일 보도했다. 당시 아폴로 17호가 지구로 가져온 월석 중 135개는 리처드 닉슨 미 행정부가 세계 130여 개국과 각 주정부 등에게 선물했다. 이중 현재 행방이 확실한 것은 60여 개 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발견한 월석은 미국 아칸소주 중앙도서관의 기록보관소에 잠들어 있었다. 도서관 디렉터인 바비 로버트는 최근 아칸소주 명판이 붙은 상자를 열었다 이를 발견했다. 로버트는 “보통 월석에는 해당 지역의 국기와 관련 정보가 적힌 명패가 붙어있기 마련인데, 이 월석은 명패가 떨어진 채 박스에 보관돼 있었다.”면서 “전문가들은 한 눈에 이것이 월석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고 말했다. 이 월석은 1976년 아칸소주 상원의원이었던 데이비드 프라이어가 닉슨 전 대통령으로부터 선물 받은 뒤 사무실에 전시됐었다. 이후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 사무실을 쓰다 1980년 아칸소 주지사 재선에 실패해 사무실을 비우면서, 아칸소주 기록보관소로 넘어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많은 월석이 분실됐거나 도둑맞아 개인 소장품으로 전락한 것이 확실하다면서, 부르는게 값일 만큼 고가에 매매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이번에 발견된 월석 역시 불법매매시장에서 최소 1000만 달러(약 119억 5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르포] 배심원 선정절차 지켜보니?주량은? 조두순 사건에 대한 생각은?

     국민참여재판을 아시나요. ‘배심원’이란 말은 들어 보셨겠죠. 미국 영화 보면 피고인이 판사가 아니라 배심원단에 읍소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한국에서도 2008년부터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일종의 배심제가 시범 실시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재판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뤄지면서 조금 알려지긴 했지만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국민참여재판은 다른 형사공판처럼 공개되지만 배심원 선정 과정은 비공개입니다. 배심원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해서죠. 배심원을 어떤 방식으로 선정하는지 비공개 선정 과정을 들여다봤습니다. 언제 법원에서 ‘배심원으로 나와 달라.’는 소환장이 날아올지 모릅니다. 법원에서 소환장 왔다고 놀라지 마시고, 기사를 읽어 보세요.  “술 좋아합니까. 주량은 얼마나 되지요.”(검사)  “주량은 소주 반병 정도지만 자주 마시지는 않는 편입니다.”(25세 남성, 5번 배심원)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부장 배준현) 심리로 열린 국민참여재판은 폭행치사 사건이었다. 내기 당구에서 언쟁이 붙어 피고인 김모씨가 피해자를 밀쳤고, 머리가 땅에 부딪친 피해자가 며칠 뒤 사망한 사건이었다. 적절한 배심원을 선정하기 위한 판사·검사·변호인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판사는 중립적이고 공정한 배심원을 찾기 위해서, 검사나 변호사는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해줄 배심원을 찾기 위해서다. 피고인과 피해자 모두 만취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 술과 관련된 질문이 많았다.  변호인이 “술을 많이 먹고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한 기억이 있느냐.”고 묻자 한 배심원은 “술을 먹으면 일찍 자는 편이라 그런 일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배심원은 “술을 먹으면 말이 많아지고 과감해진다. 다른 사람의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검사가 범죄에 대한 배심원의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폭행치사’와 ‘살인’의 차이를 아는지, 또 성폭행 범죄를 저지른 조두순의 처벌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 “사람이 누군가를 때려서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 배심원은 “재수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데 죽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답했고, 또 다른 배심원은 “치사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심원들의 답변이 끝나면 검사와 변호인은 판사에게 배심원 기피신청을 한다. 이 과정에서 ‘범죄를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는 답변을 했다면 변호인이 꺼리게 되고, ‘좀 봐줘도 된다.’는 답변을 했다면 검사가 꺼릴 수 있다. 이날은 청력이 약해 질문을 거의 듣지 못했던 70대 노인 등 4명이 기피됐다. 모두 3번에 걸쳐 9명이 기피됐고, 결국 배심원 7명에 예비배심원 1명이 2시간 만에 결정됐다.  검사들은 보통 동종 전과를 가진 배심원을 선호하지 않는다. 피고인의 범죄에 대해 너그럽게 판단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날도 각종 범죄로 벌금형을 여러 번 선고받은 경험이 있는 한 배심원이 기피됐다. 성범죄 사건의 경우 배심원의 남녀 비율도 중요하다. 이날 배심원들은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치열하게 평의했고, 징역 2년을 권고하는 의견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배심원 통지를 받은 국민은 출석 의무를 지닌다. 올해까지는 시범기간이라 그냥 넘어가지만, 어길 경우 과태료도 물어야 한다. 배심원으로 출석하면 5만원, 배심원으로 선정되면 10만원의 수당을 지급받는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7)예천 삼강주막 회화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7)예천 삼강주막 회화나무

    태백산 황지연못에서 부산 앞바다까지 사람살이의 온갖 애환을 품어 안고 1300리를 흐르는 낙동강 줄기에 이 땅의 마지막 주막이 아직 남아 있다. 세 개의 강물이 하나로 만나는 곳이어서 삼강(三江)이라 불리는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다. 안동 하회마을을 돌아 나온 낙동강, 회룡포를 휘감고 뻗어 온 내성천, 죽월산에서 흘러 내려온 금천, 그렇게 세 줄기의 강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삼강주막엔 이제 전설이 된 ‘주모’가 살아 있었다. 마흔 살부터 생을 마친 여든아홉 살까지 ‘주모’라는 이름으로 주막을 지켜온 유옥연 노파는 2005년 시월 초하루에 저세상으로 돌아갔다. 주모가 세상을 떠난 뒤 주막은 크게 바뀌었다. 슬레이트 지붕에 비스듬히 기울었던 오두막은 헐어내고 기둥을 다시 세우고 지붕도 초가로 바꿨다. 천장도 조금 높였다. 그래 봐야 여전히 앙증맞다. 경북도는 민속문화재 제134호로 지정했다. ●세 줄기 강 만나는 주막 곁에 우뚝 주막 앞으로 펼쳐졌던 공터에는 옛 나루터의 저잣거리를 재현해 누구라도 찾아와 편히 쉴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삼강 나루터의 오래전 기억을 갖고 있는 마을 노인들은 새 저잣거리에 들지 않는다. 그들은 주막 곁의 커다란 회화나무가 바라다보이는 둑방 평상에 앉아 강바람 쐬는 걸 더 좋아한다. “주모 살아 있을 때에도 여기에 멍석을 깔아놓고 쉬었어. 강바람이 좋잖아. 얼마 전에 멍석이 못 쓰게 돼서 마을에서 이 평상을 놓았지. 나는 아침에 해 뜨면 곧바로 여기 나와서 저 나무한테 말부터 붙이지.” 노을 지는 삼강주막 옛 나루터 자리의 평상에 앉아 옛날 주막에서 그랬던 것처럼 술 한잔에 목을 축이던 정강섭(80) 노인은 다짜고짜 나무 이야기를 꺼낸다. 나무 빼고 변하지 않은 게 없는 풍경에서 옛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까닭이다. “나무가 무슨 말을 하겠나? 대답을 하긴 하는데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설렁설렁 가지를 흔들어대는 거야. 그게 다 내 말을 알아 들었다는 신호고 대답이지,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게 아니라고.”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흔들흔들 춤추듯 나무 시늉을 내는 노인의 이야기에는 술기운 탓인지 신이 들어 있다. 이어서 누구라도 삼강주막에 오면 먼저 나무에게 말을 붙여 봐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250년 세월 간직한 삼강마을의 쉼터 노인이 바라보는 삼강주막의 나무는 ‘학자수’ 혹은 ‘선비수’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회화나무다. 나루터 주막의 야단법석과 어울리기는 쉽지 않을 듯한 나무다. 250살쯤 된 삼강주막 회화나무는 키가 15m쯤 되는 큰 나무다. 가슴높이에서 잰 줄기 둘레는 5m인데, 그 부분에서 줄기는 7개의 큰 가지로 나눠지면서 넓게 펼쳐졌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게 퍼진 것도 여느 회화나무와 다를 게 없다. 앙증맞은 크기로 오도카니 서 있는 주막은 넉넉하게 펼쳐진 회화나무의 품 안에 쏙 들어갈 듯하다. 주막은 그래서 더 아늑해 보이고 나무는 실제 크기보다 훨씬 우람하고 높아 보인다. 나이도 그렇다. 얼핏 봐서는 300살은 넘어 보인다. 아마도 거의 모든 줄기에 잔뜩 피어오른 초록 이끼에 얹힌 세월의 무게가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지 싶다. 삼강 나루터가 한창이던 시절에 이 나무는 나룻배를 탈 순서를 기다리는 나그네들이 햇볕을 피하며 쉬던 그늘이었을 것이다. 주막이 생긴 뒤로는 주막의 앞마당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웠던 정자나무이기도 했을 터다. 나무 그늘에는 어김없이 술꾼들의 거방진 술판이 흥겹게 벌어졌을 거다. 그러나 나루터가 사라지고 강변에 둑방을 높이 쌓아 강바람을 막아버린 지금 회화나무는 주막과 함께 그저 ‘오래된 나무’라는 근사한 볼거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됐다. “회화나무가 주막보다 훨씬 먼저지. 옛날부터 나루터에 있던 나무였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까 저 나무 그늘에 기대어 주막을 지은 거지. 주막은 한 100년밖에 안 됐거든. 이 나루터가 인근에선 제일 컸어.” 주모 유옥연 노파가 살아 있던 몇 해 전만 해도 나무 아래에는 널찍한 평상이 있었고, 해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마을 사람들이 이 평상에 모여들어 흙 묻은 손으로 주모 유 할머니가 내놓는 음식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곤 했다. 음식이래 봐야 고작 막걸리와 소주, 라면과 김치가 전부였지만 잊히기 어려운 살가운 풍경이었다. “여기가 우리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이야. 집은 잠자러 가는 안방이지. 이 주막을 마을 사람들이 번을 정해서 매일 밤을 새우며 지키기는 하는데…….” 말꼬리를 흐리는 정 노인은 새로 고쳐 지은 주막 담벼락 안팎의 낙서들이 못마땅하다는 눈치다. 노인의 말대로 주막의 흙담에는 누가 누구와 찾아왔다는 식의 유치한 낙서들이 빽빽하다.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이다. ●주모 살았을 적엔 언제나 흥겨운 술판 나룻배와 주막, 주모와 소금 상인, 모두가 지금은 낯선 낱말이다. 나룻배가 끊긴 건 30년쯤 전이고, 그때 주막 앞으로 불어오던 강바람도 거대한 둑방에 가로막혔다. 나루터 주막의 옛 풍경은 사라지고 삼강주막은 민속문화재이자 관광지로 태어났다. 그러나 주모가 김치 국물 묻은 손으로 건네주던 라면 냄비의 유정한 맛은 사라졌다. 그나마 한 그루의 회화나무가 아니었다면 삼강주막은 철 지난 영화 세트장처럼 더 살풍경했을지 모른다. 그렇다.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어서 삼강주막은 피로하고 지쳤을 때 한번쯤 찾아가 쉬어봄 직한 곳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글 사진 예천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반값 쿠폰·반값 과외·반값 연극… ‘반값 신드롬’에 담긴 사회학은

    반값 쿠폰·반값 과외·반값 연극… ‘반값 신드롬’에 담긴 사회학은

    ‘소주 1500원, 맥주 2000원, 홍합탕 3000원, 순대 1000원.’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술과 안주를 절반 가격으로 판매하는 ‘반값포차(포장마차)’가 문을 열었다. 하루 200인분의 음식을 모두 팔아도 수익금은 22만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반값포차를 통한 반값 현실화로 대학 등록금 등 고물가에 허리가 휘는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 주겠다는 자세만은 여전하다. 지난달 15일에는 ‘반값 고시원’ 운동이 벌어졌다. 서민들을 위해 1평 고시원을 400만원 전세로 빌릴 수 있도록 제도화하자는 움직임이다. 요즘 대학가에는 온통 ‘반값’이다. 열풍에 가깝다. 반값 과외를 내세운 구직 유인물이 부쩍 늘어난 데다 수수료를 반값으로 해 주겠다는 중개업체마저 생겨났다. 서점가의 반값 도서전뿐만 아니라 반값 아파트, 반값 펜션, 반값 쿠폰, 반값 연극까지 등장했다. ‘반값 등록금’이 ‘반값 신드롬’이라는 사회현상으로 발전하는 형국이다. 실제 범위도 국가 정책에서 사회운동, 서민경제, 마케팅 전략에까지 뻗어 있다. 문제는 얄팍한 상술이 끼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화장품을 반값에 판매한다고 광고하면서 원가대로 결제한 뒤 50%는 캐시백으로 돌려주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최근 소셜커머스를 통해 상품권을 반값에 판다는 허위광고로 66억원의 대금을 챙긴 사기범이 붙잡히기도 했다. 휴대전화기 반값 판매를 공언한 통신업체 대리점들이 타인 명의로 미리 개통된 사실상 ‘중고폰’을 새것처럼 속여 판매하는 행태는 이미 관행으로 굳어졌다. 이에 따라 “반값 신드롬에는 고물가에 대한 국민의 저항 심리와 마케팅적 꼼수가 상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반값에는 고물가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 의식이 담겨 있다.”면서 “비싼 대학 등록금을 반으로 낮추라는 ‘반값 등록금’ 운동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고, 이것이 곧 생활고 문제와 직결된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기업으로 눈을 돌려 보면 ‘반값’에는 마케팅 측면의 꼼수도 없지 않다.”면서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값이 ‘파격’이나 ‘큰 폭’을 상징하는 의미일 뿐 기계적인 ‘절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반값은 현재 가능한 가장 큰 파격의 의미일 뿐 절대적으로 50%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반값 신드롬은) 택시 기사가 ‘따따블’을 외치는 손님을 태우는 심리와 일맥상통한다.”고 짚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처럼 반값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싼값만을 바라는 사회 풍조가 자칫 제품의 질 저하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값에 현혹돼 사기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불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반값은 매우 매력적인 요인이지만 서비스의 질까지 담보할 수는 없다.”고 경고했다. 한 소셜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제품의 질을 유지한 채 반값 마케팅을 편다면 업체로서는 출혈이 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연히 안전장치를 만들 것”이라면서 “반값 제품은 결국 질이 관건이다. 그래서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씨줄날줄] 맥주 한 잔/이도운 논설위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 미군 최고 무공훈장을 받게 된 다코타 마이어 예비역 병장과 와이셔츠 차림으로 백악관 집무실 밖 테라스에서 맥주 한 잔씩을 앞에 놓고 마주한 사진이 전세계로 타전됐다. 이 한 장의 사진 속에 오바마 대통령의 소탈함과 소통 능력, 마이어 병장의 애국심, 미 해병대의 용맹함, 미국식 민주주의의 우월함 같은 메시지들이 담겨 지구촌 가족들에게 전파됐을 것으로 백악관 홍보 담당자들은 기대할 것이다. 관심이 가는 것은 두 사람 간의 대화 내용. 마이어 병장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홀로 적진을 뚫고 동료 해병대원들과 민간인들을 구출해 훈장을 받았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얘기가 우선적으로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 마이어 병장은 “나는 참전을 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미군의 총사령관이므로 둘 다 전쟁을 안다고 할 수 있다.”고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나 마이어 병장은 두 사람 간의 대화가 과거(전장)보다는 미래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말했다. 스물 세 살인 마이어 병장은 “당신이 만약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서두를 것 없다. 먼저 공부를 해라. 나도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는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현재 고향 켄터키에서 해병대 예비군으로 복무 중인 마이어 병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조언에 따라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통령과 예비역 군인의 입장을 떠나 인생의 선배와 후배로서 나눈 대화가 가슴에 와 닿는다. 두 사람 앞에 놓인 맥주잔은 한국에서 흔히 마시는 500㏄ 생맥주 잔보다 작은 300㏄ 정도 돼 보이는 잔이었다. 만일 두 사람 앞에 위스키나 와인 잔이 놓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맥주 잔보다는 진지하고 소탈한 대화의 느낌이 덜하지 않았을까. 위스키가 몸을 덥히는 데, 와인이 분위기를 잡는 데 유용하다면, 맥주는 대화의 액세서리로 적당한 술이다. 오바마와 마이어가 맥주 대화를 나누던 날,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각국의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을 발표했다. 1인당 독주(毒酒) 섭취량 1위 국가는 한국이었다. 맥주보다는 소주나 위스키 혹은 폭탄주를 좋아하고, 세상에서 가장 마시기 어려운 술이 ‘딱 한 잔’이라는 말을 하는 한국인들이기 때문에 놀랄 일도 아니다. 이런 한국형 음주 문화 속에서는 오바마와 마이어가 나눴던 맥주 한 잔의 대화가 쉽게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맥주 한 잔의 사진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 가운데 하나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진중권의 새책 ‘아이콘’

    진중권의 새책 ‘아이콘’

     진중권(48)은 ‘진보계의 모두까기 인형’으로 대중에게 알려졌지만, 그의 본분은 미학자다. 글쓰기 능력을 처음 대중에게 알린 세 권짜리 ‘미학 오디세이’는 50만부 이상 팔린 우리 시대의 명저로 꼽힌다. 지난 7월 나온 ‘서양미술사 모더니즘 편’도 고전예술 편과 함께 각각 1만부 이상 나갈 정도로 예술사 책치고는 대중의 호응이 높다. 현대미술 편도 나올 예정이다.  신간 ‘아이콘’(씨네북스 펴냄)은 영화 주간지에 연재한 칼럼으로 시대적 현상을 철학의 개념으로 풀어냈다. 청소년을 위한 대중 교양서 성격을 지닌 ‘미학..’에 비하면 ‘아이콘’은 잡지에 연재됐던 칼럼치고는 상당히 글이 난해한 편이다.  책에서 말하는 ‘아이콘’은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란 뜻이 아니라 컴퓨터 화면의 둥글고 네모난 시각화된 명령어를 가리킨다. 아이콘을 이용해 복잡한 명령어 없이 간단히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듯이 ‘개념어’를 통하면 전문적 철학 지식을 완벽하게 갖추지 않아도 철학적 수준의 깊은 사유가 가능하다는 것.  저자는 2010년 4월부터 벌어진 천안함 사건, 트위터, 허경영, 심형래 등의 사회적 이슈를 냉소적 이성, 시뮬라크르(복제), 정체성과 차이 등으로 분류해 종합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진중권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다시 한번 각인시킨 계기는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이 현상에 진중권은 견유주의(Kynismus)를 갖다 댄다. 포스트 이데올로기 시대를 지배하는 냉소주의의 대안으로 나온 견유주의자들의 비판은 철저히 유물론적이었다고 한다.  견유주의자의 대명사 디오게네스는 머리로 논증하는 게 아니라 오줌, 정액, 몸짓 등의 신체로 퍼포먼스를 했다. 뻔뻔한 독설, 얄미운 조롱, 신랄한 풍자가 비판의 주 내용이었다는 디오게네스에 대한 해설에서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는 진중권의 현재 모습이 겹쳐진다.  진중권은 독일 철학자 슬로터다이크를 인용해 “냉소의 시대에 철학은 장바닥으로 내려와 무례함과 뻔뻔함을 가지고 냉소를 냉소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중권이 심 감독에게 ‘뻔뻔한 독설’과 ‘얄미운 조롱’만 던진 것은 아니다. 최근 직원 임금 체납과 ‘카지노 도박설’ 등으로 위기에 처한 심 감독에 대해 “그분, 이제 와서 비난하지 맙시다. 심 감독이 직원들 밀린 임금과 퇴직금은 갚아 줘야 한다. 그 이후 오류와 오산에서 더 배워 더 나아진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 이번엔 꼭 성공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트위터에 남겼다.  세상을 볼 때 철학이란 도구가 있다면 ‘암중모색’만으로 끝나진 않는다. 자신의 철학에 기초해 언론이나 대중의 선동에 휩쓸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 철학자의 성향이 모든 이의 시각에 만족스럽진 않을지라도 이 시대에 철학자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1만 4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하프타임] 양희영 월마트 챔피언십 2위

    양희영(22·KB금융그룹)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월마트 아칸소 챔피언십(총상금 200만 달러)에서 준우승에 그쳐 한국(계) 선수의 LPGA 투어 통산 100승이 다음 기회로 넘어갔다. 양희영은 지난 12일 끝난 아칸소주 로저스의 피너클 골프장(파71·6284야드)에서 열린 대회 3라운드에서 버디만 3개 뽑으며 12언더파 201타를 기록, 세계 1위 청야니(타이완)와 동률을 이뤘다. 그러나 양희영은 515야드 18번홀(파5)에서 열린 연장 첫 번째 홀에서 파에 그쳐 버디를 잡은 청야니에게 우승컵을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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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위 연휴(10~13일)에도 굵직한 스포츠가 줄을 잇는다. 추석을 맞는 스포츠 팬들에게 두배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 틀림없다. 우선 사상 첫 600만 관중 돌파를 눈앞에 둔 프로야구는 2~4위 간 피 말리는 순위 다툼으로 연휴를 후끈 달구게 된다. 또 한국(계) 골프 여전사들은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에 출전해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한국선수 통산 100승에 재도전한다. 여기에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에 입단한 축구대표팀 ‘완장’ 박주영이 10일 스완지시티전에 데뷔할 것으로 보여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가위 스포츠의 대명사 씨름은 전남 여수에서 샅바 싸움의 진수를 선보인다. ●프로야구 2~4위 피 말리는 순위다툼 플레이오프(PO) 직행 티켓이 걸린 막바지 ‘2위 전쟁’이 10일부터 불꽃을 튀긴다. 2∼4위 롯데, KIA, SK가 하위권인 넥센, 두산, 한화와 각 2연전에 나선다. 이들 상위 3개팀은 전력에서 한수 위이지만 자칫 발목이 잡힐 경우 치명타를 입을 수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실낱 같은 4강 희망을 접지 못한 5위 LG는 선두 삼성을 상대로 사활을 건 총력전을 펼 각오다. 추석인 12일은 경기가 없는 예비일이다. 하지만 주말 비가 예보된 상태여서 추석 당일에도 밀린 경기가 열릴 전망이다. ●LPGA투어 한국통산 100승 재도전 한국(계) 여자골프선수들이 9일(현지시간)부터 사흘간 아칸소주 로저스의 피너클 골프장(파71·6284야드)에서 열리는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총상금 200만 달러)에서 통산 100승 달성에 온 힘을 쏟는다. 지난달 유소연(21·한화)이 US여자오픈에서 99번째 승리를 챙긴 이후 ‘아홉수’에 시달리며 100번째 우승이 미뤄져 왔다. 최근 한화금융 클래식에서 우승, 기력을 되찾은 최나연(24·SK텔레콤)과 지난달 캐나다여자오픈에서 공동 2위에 오른 미셸 위(23·나이키골프)가 선봉에 서 ‘LPGA 통산 100승’이라는 한가위 선물을 안길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에이스 신지애(23·미래에셋)가 허리부상으로 나설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아스널 박주영, 오늘 데뷔전 기대 레바논, 쿠웨이트와의 월드컵 3차 예선에서 혼자 4골을 폭발시킨 박주영의 데뷔전이 관심의 초점이다. 박주영이 새로 둥지를 튼 아스널은 10일 밤 11시 런던 에미리트 스타디움에서 스완지시티를 상대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치른다. 박주영은 이적 후 아직 팀 훈련에 참여하지 못했다. 박주영의 출전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상대가 약체여서 박주영을 시험 가동할 가능성이 짙다. ‘산소탱크’ 박지성이 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1일 오전 1시 30분 부상으로 시즌에 나서지 못하는 이청용이 속한 볼턴과 격돌한다. 기성용(셀틱)은 같은 시간 마더웰과의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홈 경기 출격을 앞뒀다. ‘한솥밥’ 차두리는 오른쪽 허벅지 뒤근육을 다쳐 당분간 결장이 불가피하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는 11일 오전 1시 30분 손흥민이 뛰는 함부르크가 베르더 브레멘과 정규리그에서 맞붙는다. 12일 0시 30분에는 구자철이 속한 볼프스부르크가 살케04와 격돌한다. 프랑스 리그1에서는 11일 오전 2시 남태희가 뛰는 발랑시엔이 아작시오를 상대하고 12일 0시에는 정조국의 오세르가 낭시와 대결한다. ●전남 여수 백두급 샅바싸움 흥미진진 10~13일 여수 진남체육관에서 열리는 추석장사대회에서는 백두급(160㎏)이 관심이다. 이슬기(현대삼호중공업)는 올해 2개 대회에서 연속 우승, 최강 자리를 굳히는 듯했지만 앞선 단오대회 결승에서 정경진(창원시청)에게 일격을 당했다. 따라서 이슬기에게는 이번 대회가 설욕의 무대인 셈. 여기에 2008년 천하장사인 팀 동료 윤정수가 부상에서 회복해 우승의 향방은 더욱 혼미해졌다. 한라급(105㎏ 이하)에서는 금강급(90㎏ 이하)에서 한 체급 올린 이주용(수원시청)이 예전의 화려한 기량을 과시할지 주목된다. 이주용은 단오대회에서 한라급으로 체급을 올렸지만 힘을 쓰지 못했다. 이주용이 자리를 비운 금강급에서는 임태혁(수원시청)과 팀 동료 이승호의 치열한 샅바 싸움이 점쳐진다. 김민수 선임기자·체육부 종합 kimms@seoul.co.kr
  • [9일 TV 하이라이트]

    ●TV 쏙 서울신문(서울신문STV 밤 7시 30분) 전북 진안군 백운면의 ‘삼산옥’. 손님들이 주인처럼 쑥 들어와 냉장고 문을 열고 먹을 것을 챙겨 먹는다. 권순남(사진 앞쪽·76) 사장이 그날그날 내놓는 안주에 막걸리나 소주잔을 기울인 뒤 술값만 내면 그만인 보기 드문 식당이다. 서울과 군산, 전주에 흩어져 사는 4남 1녀에 손주를 10명 둔 권 할머니의 추석을 맞는 심경을 담았다. ●독립영화관(KBS1 밤 1시 30분) 형섭은 전구를 갈아 달라는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외할머니 댁을 찾아 간다. 오랜만의 방문인지라 집조차 제대로 찾지 못했던 형섭은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에 갈 생각에 들떠 빨리 돌아가기만을 바란다. 우연히 레슬링을 보던 형섭과 외할머니는 세대 차이를 뛰어넘는 논쟁을 벌이게 된다. ●휴먼 서바이벌 도전자(KBS2 밤 11시 5분) 기존의 레드팀과 블루팀은 모두 잊어라. 도전자는 단 일곱 명뿐이다. ‘최후의 3인’을 향한 뜨거운 개인전이 시작된다. 불꽃 튀는 생존게임, 개인전답게 더 강력해진 대결과 고지를 앞두고 탈락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7인의 도전자들. 대망의 개인전 첫 승자는 누가 될까.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2(MBC 밤 9시 55분) 대한민국 최고 디바인 이선희가 헬기와 함께 등장하며 ‘위대한 탄생2’의 시작을 알린다. 칭찬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지원자들의 기를 팍팍 살려주는 가요계 대모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이선희는 한없이 부드러운 엄마 미소를 짓다가도 합격과 탈락 사이에서는 거침없는 결단력을 보여주는데…. ●더 뮤지컬(SBS 밤 9시 55분) 재이를 알아본 은비는 재이에게 “거지깽깽이에 술주정뱅이”라고 막말한 것을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리고 재이는 뮤지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은비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한편 상원을 찾아간 재이는 자신의 보증으로 배우를 추천한다고 이야기한다. ●세계의 아이들(EBS 밤 8시 50분) 알래스카에 드디어 여름이 찾아왔다. 여름은 알래스카 이누이트 아이들이 꿈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최적의 계절이다. 알래스카 사붕가 마을에서 만난 채드. 포획과 해체작업, 바다표범을 날로 먹는 모습들까지 옛 전통을 이어가며 살아가는 소년의 꿈과 일상을 생생하게 들여다본다. ●전기현의 씨네뮤직(OBS 밤 11시) ‘씨네뮤직’은 팝 칼럼니스트 전기현의 진행으로 시작한다. 세계 영화음악의 다양성과 희소성, 마니아적인 감성으로 음악영화를 소개한다. 영화속의 명연주 장면을 감상하는 ‘스크린 속의 갈채’ 코너에서는 쿠바의 옛 전성기 시대 뮤지션들의 신화 같은 이야기를 기록한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한 장면을 만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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