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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 너머로 내면 파고든 시대의 초상

    얼굴 너머로 내면 파고든 시대의 초상

    초상화는 정지된 한순간을 포착해 인물의 내면까지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을 꿰뚫는 통찰이 담겨 있다. 자기 과시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때론 감추고 싶은 속내가 은연중 표출되는 게 초상화의 묘미다.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 역사 속 인물을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 초상화가 ‘셀피’(셀프 카메라) 홍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500년을 넘나드는 세기의 초상화가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해외 문화재 특별전시로 개최하는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에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화 전문 미술관인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의 소장품 78점을 처음으로 국내에 들여왔다. 1856년 문을 연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은 영국뿐 아니라 세계 역사와 문화에 기여한 인물들의 초상화를 소장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그림을 넘어 사진까지 범위를 넓혔으며, 백인 상류층 위주에서 다양한 인종과 소수 계층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왕족을 제외하고 사후 10년이 지난 인물의 초상화’라는 원칙도 바꿔 생존 유명인의 초상화도 수집한다. 1991년생인 대중 뮤지션 에드 시런의 초상화가 소장 목록에 포함된 배경이다.전시는 ‘명성’, ‘권력’, ‘사랑과 상실’, ‘혁신‘, ‘정체성과 자화상’ 등 5개 주제별로 73명의 작가가 그린 76명의 인생 이야기를 펼친다. 양수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우리가 잘 모르는 인물이라도 초상화를 마주하면서 교감할 수 있도록 책과 음악 등 다양한 아카이브 공간을 함께 구성했다”고 소개했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인물은 영국이 낳은 최고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다. 셰익스피어 생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일한 회화 형태의 초상화로, 동시대 배우 겸 화가 존 테일러가 그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예술성보다는 역사적 가치에 주목해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이 맨 처음 소장한 작품이다. 수백년 세월에도 여전히 빛나는 그의 명성을 이 한 장의 그림이 대변한다. 튜더왕조의 마지막 군주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는 권력과 권위의 표상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초상화를 남겼다. 1575년쯤 나무에 유화로 그린 초상화에서 그는 가문의 상징인 붉은 장미를 들고, 순수를 의미하는 진주와 불사조 모양의 장신구로 치장했다.절대왕권이 사라진 현대사회에서 권력은 정치 이외에 사회, 문화적인 영향력으로 영역을 넓혀 왔다.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주인공인 패션지 ‘보그’ 편집장 애나 윈터, 월드와이드웹(WWW)을 발명한 팀 버너스 리의 초상은 일상적이고 소박하게 변화한 권력의 이미지를 흥미롭게 보여 준다. 초상화 본질은 무엇보다 정체성의 투영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화상은 더 주목할 만하다. 17세기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초상화가 안토니 반다이크는 생전에 많은 자화상을 그렸는데, 한 인간이자 예술가로서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정신을 보여 준다. 데이비드 호크니, 루치안 프로이트의 자화상도 마찬가지로 인상적이다.고전적인 유화에서 사진, 조각, 홀로그램, LCD스크린까지 초상화의 다채로운 변화상을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크다. 그레이슨 페리의 ‘시간의 지도’(2013)는 작가가 인생에서 겪은 감정과 경험을 성곽 도시의 지도 형태로 그린 그림인데 이를 자화상으로 분류해 전시 마지막에 배치한 점도 이채롭다. 초상화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전시는 8월 15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사설] 지자체 유치전 과열 ‘이건희 미술관’, 서두를 일 아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미술품 1226건, 1488점의 목록이 어제 공개됐다. 현대미술관 과천관 수장고에 입고된 기증품은 한국 근·현대미술 작가 238명의 작품 1369점, 외국 근대작가 8명의 작품이 119점이다. 한해 소장품 구입 예산이 48억원에 불과한 현대미술관으로서는 언감생심이었던 박수근, 장욱진, 권진규, 유영국 등 근대 대표작가 작품도 망라돼 있다. 모네, 고갱, 피카소,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마르크 샤갈 등 서구 거장들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처음으로 소장하는 것이다. 이건희 소장품의 국가기증은 극소수 인사만 즐기던 수준 높은 예술품의 가치를 모든 국민이 함께 향유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기증품을 어떻게 활용해야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을지 깊게 고민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거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도 같은 문제의식의 표현이라고 본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너도나도 ‘이건희 미술관’을 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불을 붙인 것은 ‘국립근대미술관’을 송현동 부지 등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서울지역 미술계 인사들이다. 그러자 부산, 대구 등 광역자치단체와 특별자치단체인 세종은 물론 수원, 창원, 진주, 의령 등 기초자치단체도 유치전에 줄지어 뛰어들었다. 이건희 소장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을 어떤 외국 미술관과 비교해도 부럽지는 않을 명실상부한 ‘국가대표 미술관’으로 발전시키는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국립근대미술관을 새로 설립한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은 과거의 ‘부실한 국책 미술관’이란 오명을 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국립근대미술관을 신설하더라도 국립현대미술관의 덕수궁관, 과천관, 청주관의 활용방안을 먼저 평가해보길 바란다. 천문학적 액수가 들어가는 미술관을 신축하다보면 국립현대미술관의 컬렉션 강화가 또 미뤄질 것 아닌가. 문화체육관광부는 문 대통령이 지시했더라도 ‘이건희 컬렉션’ 활용법을 신속히 내놓으려는 강박관념을 떨쳐야 한다. 문 대통령이 ‘특별관’을 말하면서 ‘별도의 전시실’을 언급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이건희 미술관’ 신축 지시가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는 7월부터 이건희 기증품을 단계적으로 공개한다. 내년까지 기초 학술조사를 하고, 도록 발간과 학술행사도 연다. 그렇게 기증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작업을 선행하면서 전시공간을 찾는 게 올바른 순서다. 이후 미술관 신설 여부와 함께 주제별로, 작가별 활용방안도 도출될 수 있다고 본다.
  • 이중섭· 이상범· 나혜석 희귀작…“한국근대미술 공백 메웠다”

    이중섭· 이상범· 나혜석 희귀작…“한국근대미술 공백 메웠다”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청전 이상범의 ‘무릉도원도’(1922)부터 나혜석 작품의 진위평가 기준이 되는 ‘화녕전작약’(1930년대), 1975년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이중섭의 ‘흰소’(1953~1954)까지 그야말로 한국 근대미술사의 공백을 채우는 희귀작들의 향연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7일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기증한 미술품 1488점(1226건)에 대한 세부 내용을 공개했다. ‘이건희 컬렉션’은 한국근현대미술작가 238명 작품 1369점, 외국 근대작가 8명 작품 119점으로 구성됐다. 회화 412점, 판화 371점, 한국화 296점, 드로잉 161점, 공예 136점, 조각 104점으로 모든 장르를 고르게 포함했다. 제작 연대별로는 1950년대까지 작품이 320점으로 전체 기증품의 22%를 차지한다. 1930년 이전에 출생한 ‘근대작가‘의 범주에 들어가는 작가의 작품 수로 따지면 860점으로, 전체 기증품의 58%에 이른다. 작가별로는 유영국 작가의 작품이 187점(회화 20점, 판화 167점)으로 가장 많다. 이어 이중섭 104점(회화 19점, 엽서화 43점, 은지화 27점 등), 유강열 68점, 장욱진 60점, 이응노 56점, 박수근 33점, 변관식 25점, 권진규 24점 순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기증의 가장 큰 의의는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 소장품의 질과 양을 비약적으로 도약시켰다는 점“이라며 “기증 문제가 대두됐을 때 100점 정도만 와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고인이 가장 아끼던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를 비롯해 상상할 수 없는 근대작가의 대표작들이 대규모로 기증됐다”고 말했다.희소가치가 높고 수집조차 어려웠던 근대기 소장품이 크게 보완됐다. 먼저 김은호, 이상범, 변관식, 김기창 등 한국화가의 대표작이 목록에 추가됐다. 이상범이 25세에 그린 청록산수화 ‘무릉도원도’는 스승 안중식의 ‘도원문진도‘의 전통을 잇는 명작으로 꼽혔지만 그동안 실물이 확인되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 노수현의 대표작 ‘계산정취’(1957), 김은호의 초기 채색화 ‘간성’(1927), 김기창의 5m 대작 ‘군마도’ 등도 미술관의 한국화 소장품 수준을 현격히 올려주는 기증작들이다. 박수근의 대표작 ‘절구질하는 여인’(1954), 김환기의 절정기 점화인 ‘산울림’(1973) 등 예산 부족으로 구입하기 어려웠던 근대기 대표 작가의 작품도 골고루 망라했다. 또한 이중섭의 스승이었던 여성 화가 백남순의 유일한 1930년대 작품 ‘낙원’(1937), 4점 밖에 전해지지 않는 김종태의 유화 중 1점인 ‘사내아이’(1929) 등 희귀작 여러 점이 미술관 품에 안긴 것도 의미가 크다. 나혜석이 수원 고향집 근처 화녕전 앞에 핀 작약을 그린 ’화녕전작약‘은 진작이 확실한 극소수 작품 중 하나다. 나혜석은 한국 첫 여성 서양화가로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대부분 소실된 탓에 현존하는 그림 중 진위가 명확한 작품은 드물다.해외 기증작 면면도 화려하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1919~1920), 르누아르의 ‘책 읽는 여인’(1890년대), 카미유 피사로의 ‘퐁투아즈 시장’(1893), 폴 고갱의 ‘무제’(1875), 마르크 샤갈의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1975),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1940), 호안 미로의 ‘구성’(1953) 등 거장 7명의 회화 7점과 파블로 피카소의 도자기 112점이 기증됐다.‘이건희 컬렉션’은 오는 7월 덕수궁관에서 개최되는 ‘한국미, 어제와 오늘’ 전에서 도상봉의 회화 등 일부 작품이 먼저 공개된다. 본격적인 전시는 8월 서울관에서 개막하는 ‘이건희 컬렉션 1부: 근대명품’(가제)부터다. 한국 근현대 작품 40여 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12월 ‘이건희 컬렉션 2부: 해외거장’(가제) 전에서는 해외 작가 기증품이 소개되고, 내년 3월 ‘이건희 컬렉션 3부: 이중섭 특별전’에서는 이중섭의 작품 104점 전부가 공개된다. 11월 덕수궁관 박수근 회고전, 내년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뮤지엄(LACMA)에서 열리는 한국 근대미술전, 내년 4월 과천관 ‘새로운 만남’ 전에서도 이건희 컬렉션 일부를 만날 수 있다. 청주관에선 수장과 전시를 융합한 ‘보이는 수장고’를 통해 기증품을 공개하며, 지역 미술관과 연계한 특별 순회전도 내년에 열 예정이다. 미술관 측은 “국립현대미술관은 기존 소장품 8782점에 더해 이번 기증으로 미술 소장품 1만점 시대를 열게 됐다”면서 “내년까지 기초 학술조사를 하고, ‘이건희 컬렉션’ 소장품 도록 발간을 시작으로 학술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기증은 총 4차례 작품 실견을 한 뒤 수증심의회의를 거쳐 작품반입을 하고 기증확인서를 발급하는 미술관의 기증절차에 따라 진행됐다. 모든 기증 작품은 항온·항습 시설이 있는 과천관 수장고에 입고됐다. 공식명칭은 ‘이건희 컬렉션’으로 향후 작품 기본정보에 포함돼 순차적으로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직접 목격한 차별...‘장애인>외국인근로자>중국동포’ 순

    직접 목격한 차별...‘장애인>외국인근로자>중국동포’ 순

    국민이 목격한 차별은 장애인(35.0%), 외국인근로자(25.7%), 중국동포(조선족, 23.9%)순으로 나타났다.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6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공동 연찬회를 열고, 이 자리에서 ‘대국민 문화다양성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만 15세 이상 남녀 3019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실시했다. 응답자들은 사회 갈등을 완화하려면 장애(84.9%), 성별(80.6%), 세대(76.6%)에 따른 정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미디어에서 집단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백인은 긍정적인 모습으로 묘사하지만, 중국동포, 성소수자는 부정적으로 모습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경험한 차별에 대해 세대(39.0%), 성별(36.4%), 학력(26.7%)에 따른 차별을 경험했다고 했다. 문화예술 분야별 접근성에 관해 방송프로그램(드라마 등), 영화는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어 접근성이 높다고 느꼈지만, 무용, 미술 분야는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낮다고 느낀다고 응답했다. 연찬회에서는 황희 문체부 장관과 지난 2월 임명한 문화다양성위원회(위원장 한건수) 위원을 비롯해 15개 광역 지역문화재단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문화다양성 실태조사에 대해 효과적인 실천 방안을 논의했다. 문체부와 문광연이 문화기관 155곳을 대상으로 벌인 문화다양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직 구성원 가운데 장애인은 3%, 여성은 51%로 인사 운영의 다양성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관리자급에서는 장애인 0.1%, 여성은 25%로 비율이 낮았다. 이에 따라 ‘문화기관의 문화다양성 지침’에는 문화다양성 관점을 고려해 인사를 운영하도록 하고, 사업 기획에도 소수(소외) 분야의 범주를 정의하고 구체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소장품과 소장 자료 선정 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예술가와 소수 분야가 포함될 수 있도록 문화다양성 관점을 고려한 기준을 마련하도록 했다. 공연장 대관에 대해서는 독립예술과 전통문화예술 분야에 우선권을 주고, 신체적 약자를 위한 별도 좌석 마련 등 문화시설 접근성 측면에서도 다양성 확보를 강조했다. 황 장관은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이 240만명을 넘었고, 등록 장애인이 261만명,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803만명에 이른다. 문화기관이 앞장서서 문화다양성을 확산하도록 노력해달라”고 밝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씨줄날줄] 이건희 컬렉션과 새 미술관/이종락 논설위원

    [씨줄날줄] 이건희 컬렉션과 새 미술관/이종락 논설위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기부한 미술품을 전시할 공간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미술계는 서울에 근대미술관 건립을 위한 주비위원회를 구성했고, 광역자치단체들은 지역 유치를 주장하고 있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등 미술계 인사들은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주비위원회를 발족하고 “삼성가 기증 근대미술품 1000여점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000여점을 기반으로 국립근대미술관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새 미술관 입지로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와 정부서울청사를 제안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같은 역할을 루브르박물관이, 국립현대미술관(과천관ㆍ서울관)은 퐁피두센터 내 현대미술관이 한다. 근대미술관으로 오르세 미술관이 있다. 영국도 영국박물관은 고대 유물, 내셔널갤러리는 르네상스 이후 근대 이전을 다루고 있다. 테이트브리튼은 영국의 근대 작품, 테이트모던은 영국과 해외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전시한다. 일본은 국립박물관, 국립서양미술관, 국립근대미술관, 우에노 현대미술관, 도쿄 현대미술관 등을 두고 장르와 소장품을 연대별로 구분해 수집·관리하고 있다. 새로운 미술관 건립 반대 의견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충분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 못한 만큼 이건희 컬렉션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간 작품 구입비가 너무 적은 탓에 주요한 작품 한두 점도 사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건희 컬렉션을 유치하려는 지자체 간 경쟁과 기부 작품의 전시도 치열하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2일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의 문화 발전을 위한 고인의 유지를 살리려면 수도권이 아닌 남부권에 짓는 것이 온당하다”고 밝혔다. 광주비엔날레를 이어 온 광주시와 대구시 등 지방 도시들도 ‘이건희 미술관’ 유치 의사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대구시는 올해 하반기 착공 예정인 대구간송미술관의 전통미술, 대구미술관의 현대미술과 지역 근대미술을 아우르는 체제를 구축하는데 이건희 미술관 유치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제주시도 이중섭 작가의 작품 12점을 화가의 기일인 9월 6일에 맞춰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에서 특별전시회로 관람객에게 공개한다는 예정이다. 강원 양구군에 있는 박수근미술관도 지난달 30일 삼성 측이 기증한 박수근 화백의 작품 18점을 공개하며 미술 애호가들의 방문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관 신축 여부에 앞서 기증 미술품의 목록 파악이 먼저라고 설명했다. 근대미술관 건립에 걸맞은 콘텐츠가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8월 전시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 14~23일 박물관·미술관 주간...다양한 온·오프라인 행사

    14~23일 박물관·미술관 주간...다양한 온·오프라인 행사

    문화체육관광부는 ‘세계 박물관의 날’(5월 18일)을 맞아 14~23일 박물관·미술관 주간을 연다고 밝혔다. 올해는 박물관·미술관이 미래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역할과 기능을 찾는 시간을 마련했다. 관련해 다양한 온·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한다. 우선 경남 산청박물관에서는 체험 꾸러미를 활용해 스마트폰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비대면 프로그램 ‘랜선으로 체험하는 산청 선비의 하루’를 연다. 서울 헬로우뮤지움에서는 소리 예술을 통해 내면을 치유하는 프로그램 ‘디지털 디톡스(ASMR 힐링 박스)’를, 서울 환기미술관에서는 가상현실(VR) 등을 활용해 화가 김환기의 예술세계를 경험하는 체험형 프로그램 ‘환기뮤지엄 어드벤처: 7개의 보물’ 등을 진행한다. 또,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적 유대와 치유’를 주제로 한 소장품들이 거리에서 시민들을 맞는다. 서울스퀘어와 대구 롯데백화점, 코엑스 크라운미디어에서는 박물관·미술관 소장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미디어파사드 ‘거리로 나온 뮤지엄’을 볼 수 있다. 관람객들이 박물관·미술관 명소를 찾아다니며 적극적으로 탐색해 볼 수 있는 ‘뮤지엄 꾹’ 행사도 열린다. QR 코드를 설치한 전국 박물관·미술관 100여 곳을 방문해 기관당 최대 5개의 QR 코드를 찾아 도장을 찍으면 추첨을 통해 등급별 기념품을 제공한다. 아울러 제15회 한국박물관 국제학술대회(18∼24일)가 ‘박물관의 미래: 회복과 재구상’을 주제로 온라인 생중계할 예정이다. 이밖에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 ‘올해의 박물관·미술관상’ 등을 17일 시상한다. 행사의 자세한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www.뮤지엄위크.kr)에서 확인하면 된다. 문체부는 2012년부터 매년 박물관·미술관 주간을 진행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기증자 예우·사회 인식 전환” 불씨 살아나는 물납제 도입

    삼성가의 사상 최대 예술품 기증에 고무된 미술계는 이참에 부유층의 문화재·미술작품 수집에 대한 세간의 인식 전환과 아울러 기부 문화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29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삼성가 기증품 2만 1600여점을 포함해 총 43만여점,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건희 컬렉션’ 1488점을 더해 1만 270점을 소장하게 됐다. 이 소장품에서 기증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11%(5만여점), 53%(5455점)이다. 기증품이 80% 이상인 뉴욕현대미술관, 메트로폴리탄뮤지엄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기증 문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미술품 수집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꼽았다. 그는 “미술품을 돈세탁과 탈세 등에 악용하는 사례는 일부에 불과한데도 고가 미술품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 널리 퍼져 있다”면서 “이번 삼성가 기증을 계기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 많은 컬렉터들이 기꺼이 소장품을 사회에 환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세제 혜택이 없는 건 아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와 보물은 상속세가 면제되고, 박물관·미술관에 현금을 기부하거나 문화재·미술품을 기증하면 소득세를 감면받는다. 하지만 규정과 절차가 복잡해 실질적으로 적용받는 사례는 드물다는 게 미술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기증자에 대한 예우와 혜택 등 자발적인 미술품 기부가 늘어나도록 제도적인 지원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에 미술계가 주장하는 요구가 현금 대신 미술품으로 상속세 등 세금을 대신 내는 물납제 도입이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일 관련 법안을 발의했고, 이달곤 국민의힘 의원도 곧 법안을 낼 것으로 전해졌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물납제 도입이 잘 진행될 것으로 본다”면서 “협회는 공정하고 투명한 미술품 가치 산정 방안 마련에 전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정선·김홍도·모네·피카소… 국보·보물만 60점 ‘세기의 기증‘

    정선·김홍도·모네·피카소… 국보·보물만 60점 ‘세기의 기증‘

    소유한 국보·보물 중 절반 ‘국민 품으로’단원 김홍도 마지막 작품 ‘추성부도’ 포함모네·피카소 작품 없던 국립현대미술관‘수련이 있는 연못’ 등 소장해 위상 높여박수근 미술관 등 지역에도 143점 기증이건희 컬렉션 6월부터 국민에게 공개황희 “李부회장 사면과는 별개의 사안”“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시대적 의무”라고 했던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뜻이 유례없는 대규모 미술품 국가 기증으로 활짝 꽃을 피우게 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8일 삼성의 공식 발표 이후 후속 브리핑을 열어 삼성가 유족들이 고인이 소유한 고미술품, 국내 유명 작가의 근대미술 작품과 세계적인 서양화 작품 등 2만 3000여점(1만 1023건)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개인 컬렉션으로는 기증 규모도 사상 최대일뿐더러 작품 가치와 수준에서도 국내외를 통틀어 손꼽힐 만한 ‘세기의 기증’이라는 평가다. 미술계에선 감정가 2조 5000억~3조원을 넘어 시가로는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현존하는 고려 유일의 ‘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 단원 김홍도의 마지막 그림인 ‘추성부도’(보물 제1393호)를 비롯한 국보 14점, 보물 46점 등 국가지정문화재 60점과 청자·백자 등 도자류, 서화·전적류, 석조물 등 한국 고고·미술사를 망라하는 고미술품 2만 1693여점(9797건)을 기증받는다. 국가지정문화재는 상속세를 내지 않지만 유족은 이번에 고인이 소유한 국보 30점, 보물 82점 가운데 절반가량을 국민 품으로 돌려보냈다. 특히 ‘인왕제색도’는 교과서에도 실린 조선 회화의 걸작으로, 이 회장이 생전에 겸재의 ‘금강전도’와 더불어 가장 아꼈던 작품으로 알려졌다. ‘금강전도’는 기증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1946년 문을 연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기증을 포함해 지금까지 문화재 43만점을 수집했다. 이 중 기증품은 5만점으로, 이번 ‘이건희 컬렉션’ 2만여점은 전체 기증 문화재의 43%를 차지한다. 최응천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최상의 퀄리티를 지닌 국보급 문화재가 한꺼번에 기증된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하면서 “전 국민이 향유할 수 있게 박물관이 잘 활용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국립현대미술관에는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등 한국 대표 작가의 근대 미술작품 460여점과 모네, 고갱, 샤갈, 달리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대표작을 합해 1488점(1226건)이 간다. 이중섭의 ‘황소’,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장욱진의 ‘소녀/나룻배’ 등이 포함됐다. 또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샤갈의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을 비롯해 피카소, 고갱, 르누아르의 작품도 여러 점이다. 자코메티, 로스코, 베이컨 등 서양 현대미술품들은 기증 목록에 오르지 않았다. 이날 삼성 발표에서 리움, 호암미술관을 운영하는 삼성문화재단에 대한 미술품 출연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미뤄 유족들이 물려받는 쪽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모네와 피카소 작품이 단 1점도 없었던 국립현대미술관으로선 단번에 위상이 올라가게 됐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한 해 소장품 구입 예산이 50억여원에 불과한 국립현대미술관이 그동안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세계적 미술품들을 대량 갖게 됐다”면서 “이번 기증이 문화 선진 국가로 나아가는 토대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대구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제주 이중섭미술관, 강원 박수근미술관 등 지역 미술관 5곳과 서울대 등에도 총 143점을 기증하기로 했다. 전남도립미술관에는 의재 허백련, 오지호, 김환기, 천경자 등 지역 작가 9명의 작품 21점이 간다. 대구미술관에는 이인성, 김종영 등 대구 작가의 작품 21점을 안겼다. 박수근미술관은 박수근의 유화와 드로잉 등 18점을 기부받았다. 이건희 컬렉션은 오는 6월부터 기관별로 국민에게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선 대표 기증품을 선별해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특별공개전’(가제)을 열고, 내년 10월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명품전’(가제)을 개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는 8월 서울관에서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명품전’(가제)을 시작으로 9월 과천, 내년 청주 등에서 특별·상설 전시를 마련한다. 더 많은 국민이 문화유산을 향유하도록 지역 박물관과 공립미술관 순회 전시도 계획 중이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건희 컬렉션을 위한 별도 시설 건립 계획에 대해 “(이 회장 유족의 기증으로) 작품도 많아졌고,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비슷한 기증들이 더 많아질 가능성이 있어 어떤 형태가 됐든 미술관과 수장고를 새롭게 건립할 생각이 있다”면서 “‘근현대 미술관’ 형태로 할지, 기증자 컬렉션으로 할지 검토하고 방향을 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기증이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선 “별개의 사안”이라며 “고인이 생전에 밝혔던 훌륭한 정신을 실현한다는 사안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스티브 잡스 3.5배...삼성家 상속세, 세계도 놀랐다[이슈픽]

    스티브 잡스 3.5배...삼성家 상속세, 세계도 놀랐다[이슈픽]

    외신, 삼성가 상속 소식 집중 보도“세계 최대 상속세 중 하나”“미술 소장품, 대규모로 기증”“한국, 엄격한 상속세법과 높은 세율” 미국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 삼성가 상속 관련 “삼성 일가가 피카소, 모네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WSJ은 이날 온라인판으로 ‘삼성 일가가 막대한 상속세 결정과 맞물려 피카소, 모네를 방출하기로 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WSJ은 앞서 이건희 전 회장 유족이 발표한 상속 내용, 미술품 기증 계획을 상세히 소개하고, 삼성 일가가 ‘사상 세계 최대 규모의 상속세 중 하나’를 낼 계획이라고 해설했다. 미술품 기증에 대해선 “현지 매체에 따르면 가치가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이번 기증으로 이 전 회장 재산 중 과표가 축소된다”고 짚었다. 삼성전자 “12조원 이상 상속세로 납부할 계획” 앞서 삼성전자는 이날 “유족은 이 전 회장이 남긴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계열사 지분과 부동산 등 전체 유산의 절반이 넘는 12조원 이상을 상속세로 납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 전 회장이 남긴 고미술품과 서양화 작품, 국내 유명작가 근대미술 작품 등 1만 1000여건, 2만 3000여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을 비롯해 샤갈, 피카소, 르누아르, 고갱, 피사로 등이 남긴 서양미술 걸작도 기증된다. 이는 과거 스티브 잡스 애플 CEO의 사망시 자산에 부과된 28억 달러(약 3조 1192억원)의 상속세의 3.5배에 달하며, 2019년 국내에서 걷힌 상속세 총액 8조 3292억원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AP 통신은 “상속세에 직면해 삼성가가 원만하게 상속하기 위해 미술 소장품을 대규모로 기증한다”며 “삼성가에서 진귀한 미술품 수만 점을 기증하기로 했는데 여기에는 피카소와 달리가 포함됐다”고 소개했다.영국 로이터 통신 역시 삼성 일가의 상속세가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최대 규모 중 하나”라고 기사화하고, 이런 상속세가 “이 전 회장 일가의 삼성 지배 구조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을지 주목받아 왔다”고 전했다. 또 프랑스 AFP 통신은 관련 기사에서 “한국은 엄격한 상속세법과 높은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면서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포함한 일가에 무거운 과세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술품 기증에 대해서는 “보도에 따르면 미술품 기증이 이 전 회장 일가의 세금 부담을 줄여줄 것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한국 경제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 거대한 가족 경영 기업 집단” 미 경제 전문 방송인 CNBC는 이날 삼성 측 발표를 기사로 다루면서 ‘한국 재벌’ 현황에 대해 주목했다. CNBC는 재벌을 그대로 영어로 옮겨 ‘chaebols’로 표기하면서 “한국 경제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거대한 가족 경영 기업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삼성은 한국 최대 재벌”이며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을 포함한 기업이 있다”며 “여전히 수많은 비판론자는 정실 자본주의와 관련한 우려를 이유로 재벌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한 개선안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국보·보물 60점, 이중섭·모네 등 세계적 컬렉션 국민 품 안겼다

    국보·보물 60점, 이중섭·모네 등 세계적 컬렉션 국민 품 안겼다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시대적 의무”라고 했던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뜻이 유례 없는 대규모 미술품 국가 기증으로 활짝 꽃을 피우게 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8일 삼성의 공식 발표 이후 후속 브리핑을 열어 삼성가 유족들이 고인이 소유한 고미술품, 국내 유명 작가 근대미술 작품과 세계적인 서양화 작품 등 1만 1023건, 2만 3000여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개인 컬렉션으로는 기증 규모도 사상 최대일뿐더러 작품 가치와 수준에서도 국내외를 통틀어 손꼽힐 만한 ‘세기의 기증’이라는 평가다. 미술계에선 감정가 2조 5000억~3조원을 넘어 시가로는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현존하는 고려 유일의 ‘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를 비롯한 국보 14점, 보물 46점 등 국가지정문화재 60점과 청자·백자 등 도자류, 서화·전적류, 석조물 등 한국 고고·미술사를 망라하는 고미술품 2만 1693여점(9797건)을 기증받는다.국가지정문화재는 상속세를 내지 않지만 유족은 이번에 고인이 소유한 국보 30점, 보물 82점 가운데 절반 가량을 국민 품으로 돌려보냈다. 특히 ’인왕제색도’는 교과서에도 실린 조선 회화의 걸작으로,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겸재의 ‘금강전도’와 더불어 가장 아꼈던 작품으로 알려졌다. ‘금강전도’는 기증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1946년 문을 연 국립중앙박물관은 지금까지 문화재 41만점을 수집했다. 이중 기증품은 3만여점으로, 이번 ‘이건희 컬렉션’ 2만여점을 합하면 5만여점으로 늘어난다. 최응천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최상의 퀄리티를 지닌 국보급 문화재가 한꺼번에 기증된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하면서 “전 국민이 향유할 수 있게 박물관이 잘 활용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국립현대미술관에는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등 한국 대표 작가의 근대 미술작품 460여점과 모네, 고갱, 샤갈, 달리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대표작을 합해 1488점(1226건)이 간다. 이중섭의 ‘황소’,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장욱진의 ‘소녀/나룻배’ 등이 포함됐다. 또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샤갈의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을 비롯해 피카소, 고갱, 르누아르의 작품들도 여러 점이다. 자코메티, 로스코, 베이컨 등 서양 현대미술품들은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날 삼성 발표에서 리움을 운영하는 삼성문화재단에 대한 미술품 출연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미뤄 유족이 물려받는 쪽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모네와 피카소 작품이 단 1점도 없었던 국립현대미술관으로선 단번에 위상이 올라가게 됐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한해 소장품 구입 예산이 50억여원에 불과한 국립현대미술관이 그동안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세계적 미술품들을 대량 갖게 됐다”면서 “이번 기증이 문화 선진국가로 나아가는 토대가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유족들은 대구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제주 이중섭미술관, 강원 박수근미술관 등 지역 미술관 5곳과 서울대 등에도 총 143점을 기증하기로 했다. 전남도립미술관에는 의재 허백련, 오지호, 김환기, 천경자 등 9명 작가의 작품 21점이 간다. 대구미술관에는 이인성, 김종영 등 대구 지역 작가의 작품 21점을 안겼다. 강원 박수근미술관은 박수근의 유화와 드로잉 등 18점을 기부받았다. 이건희 컬렉션은 오는 6월부터 각 기관별로 국민에게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선 대표 기증품을 선별해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특별공개전’(가제)을 열고, 내년 10월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명품전’(가제)을 개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는 8월 서울관에서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명품전’(가제)을 시작으로 9월 과천, 내년 청주 등에서 특별·상설 전시를 마련한다. 더 많은 국민이 문화유산을 향유하도록 지역 박물관과 공립미술관 순회 전시도 계획 중이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70년 만의 국내 전시 뜻 깊어”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70년 만의 국내 전시 뜻 깊어”

    “피카소가 ‘한국에서의 학살’을 발표한 지 올해로 꼭 70년입니다. 우리의 비극적 역사를 배경으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거장의 작품을 마침내 국내에서 전시할 수 있어 기쁩니다.” 20세기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한국전쟁을 소재로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이 오는 5월 1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하는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에서 처음으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서순주(58) 전시 총감독은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장 기관인 프랑스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에서도 이 작품을 전시하는 경우가 드물어 현지에 가도 보기 어렵다”면서 “한국인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에선 ‘한국에서의 학살’을 비롯해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이 소장한 유화, 판화, 도자기 등 110여점을 선보인다. 피카소가 1951년 1월 완성해 넉 달 뒤 파리 살롱 드메전에서 공개한 ‘한국에서의 학살’은 ‘게르니카’(1937), ‘시체구덩이’(1944~1946)와 더불어 피카소의 3대 반전(反戰) 회화로 꼽힌다. 가로 210㎝, 세로 110㎝ 대형 합판에 유화로 제작된 이 그림은 왼쪽에 공포에 질린 벌거벗은 여인과 아이들이, 오른쪽에 이들을 향해 총을 겨누는 군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프랑스 공산당원이었던 피카소는 이 작품으로 공산주의자로 몰려 한동안 미국의 입국 기피 대상이 됐다. 프랑스에서 유학한 미술학 박사인 서 감독은 “신천군 학살, 노근리 학살 등 특정 사건을 배경으로 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사건들이 외부에 알려진 건 1952년이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면서 “가해 주체가 누구든 전쟁의 피해는 사회적 약자가 입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보편적인 반전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당시 공산당 안에서도 명확하게 미군을 묘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카소를 비판했다고 한다.국내에선 과거 반공법 때문에 반입이 거부됐고, 2000년대 이후 국공립 미술관에서 여러 차례 전시를 추진했지만 예산 부족 등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는 이번 전시가 성사된 비결로 오랜 프랑스 생활에서 얻은 인적 네트워크와 20여년간 쌓은 전시 기획 경력을 꼽았다. 2004년 ‘샤갈전’을 시작으로 모네(2007), 반 고흐(2007~2008), 로댕(2010), 모딜리아니(2015) 등 대형 명화전을 이끈 것도 서 감독이다. 그는 “2006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위대한 세기-피카소전’을 기획할 때 들여오려다 실패했는데 15년 만에 뜻을 이루게 돼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이번 전시는 피카소의 주요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 컬렉션을 한자리에서 처음 선보인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국립피카소미술관은 피카소 사후 유족들이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대납하는 물납제를 통해 프랑스 정부에 기증한 작품들을 모아 1985년 개관했다. 서 감독은 “코로나19로 해외 전시들이 취소되면서 우리가 빌려올 수 있는 작품 구성이 풍성해졌다”면서 “‘마리 테레즈의 초상’을 비롯해 190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시기별 활동 전반을 살필 수 있는 수준높은 작품들로 회고전을 꾸몄다”고 말했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이순녀의 문화발견] 팬데믹 시대, 샤머니즘 품은 현대미술

    [이순녀의 문화발견] 팬데믹 시대, 샤머니즘 품은 현대미술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신당(神堂)이 차려졌다. 금동 불상처럼 꾸민 마네킹과 탱화를 차용한 지옥도, 형형색색 천 조각들이 어우러진 난장이 범상치 않다. 벽에는 고구려 벽화 속 사신(四神), 우주론적 세계관을 형상화한 이미지들과 ‘승진 도움’ 등 복을 비는 부적이 걸렸고, 기도하는 손 모양의 조각 옆에는 ‘목사님, 눈물을 거두세요’라는 책자가 놓였다. 정체불명의 신당이 들어선 곳은 뒷골목이 아니라 전시장이다. 일민미술관이 지난 금요일 개막한 ‘운명상담소’(7월 11일까지)에서 선보이는 곽은정, 김수환, 박가인, 최장원 작가의 ‘2021년형 네오 신당’이란 작품이다.미술관에 펼쳐진 건 신당만이 아니다. 탑골공원 주변에 즐비한 ‘사주포차’,  손바닥을 맞대 뇌를 스캔한 뒤 관람객의 본능에 맞는 캐릭터를 그려 주는 ‘본능미용실’이 차려졌다. 정신과 의사, 점술가, 예술가가 관람객과 상담한 뒤 처방하는 ‘오래된 약국’도 있다. 미신으로 치부되던 샤머니즘과 명리학, 우주론 등 신비주의가 현대미술의 한 형태로 미술관에 들어온 풍경은 낯설면서도 흥미롭다. 조주현 일민미술관 학예실장은 “코로나19 여파로 과학적인 사고가 더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안감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샤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과거 은밀한 행위였던 사주, 역술, 타로가 최근 젊은 세대에선 편하고 가볍게 즐기는 문화로 떠오른 현상을 예술적인 접근법으로 풀어 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1층 ‘운명’, 2층 ‘상담소’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는 현대미술 작가 17명이 참여했다. 토요일 오후에 방문한 전시장은 20~30대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상담소마다 긴 줄이 늘어섰다. 한 20대 여성 관람객은 “미술관 밖에 걸린 ‘운명상담소’란 제목을 보고 호기심에 들어왔다”면서 “전시장에서 사주를 보니 신기하고 재밌다”고 말했다. 상담소는 일종의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이지만 작가와 관람객 모두 실제 상담처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대면이 일상화된 시대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대면 상담을 통해 위로를 주고받는 과정이 현실을 반영하는 예술의 일환”이라는 조 실장의 얘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마침 광주비엔날레(5월 9일까지)에서도 샤머니즘과 관련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을 주제로 동서고금 다양한 지성의 형태와 체계를 돌아보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안적 지성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전통 무속 신앙에도 주목했다. 서울의 샤머니즘박물관, 가회민화박물관 소장품들과 국내외 작가의 신작이 어우러진 1층 전시실은 영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중에서도 토속 문화와 샤머니즘을 현대미술로 재해석한 김상돈 작가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진도의 전통 장례 문화인 ‘다시래기’를 모티프 삼아 애도와 치유 행위를 재해석한 ‘행렬’, 마트 카트에 부적과 의례용 장식품 등을 달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질문하는 ‘카트’ 등은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쌍두마차에 올라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를 사유와 성찰의 시간으로 안내한다. 무속 신앙과 신비주의는 인류의 탄생부터 함께해 온 오랜 동반자다. 이성과 과학이 지배하던 시기에 음지로 숨어들었던 샤머니즘이 기후위기와 바이러스 습격 등으로 인간의 나약함이 드러나면서 불안을 잠재우는 전통적인 치유의 방법론으로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물론 무분별한 미신 숭배로의 회귀가 아니라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성찰의 한 방편으로서 말이다. 정작 우리가 고민할 것은 전통 샤머니즘이 아니라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물질 숭배, 물신주의일지도 모른다. ‘영끌’, ‘빚투’로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투자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사회에 넘쳐난다. ‘돈을 벌려면 돈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는 이른바 ‘자본주의 샤머니즘’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혼돈과 불안의 시대, 흔들리지 않게 발밑을 단단히 지켜 줄 백신은 없을까. coral@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톈안먼 민주항쟁의 마지막 흔적 역사의 뒤안길로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톈안먼 민주항쟁의 마지막 흔적 역사의 뒤안길로

    중국 베이징 중심가 톈안먼(天安門) 광장을 핏빛으로 물들인 중국 민주주의 항쟁의 마지막 흔적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비운의 지도자’ 자오쯔양(趙紫陽·1919∼2005) 전 공산당 총서기의 유족이 베이징 둥청(東城)구 왕푸징(王府井)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푸창후퉁(富强胡同) 6호’ 사합원(四合院)에서 이삿짐을 싼 까닭이다. 자오쯔양 유족들이 푸창후퉁 6호를 떠난다는 것은 이 옛집의 자오쯔양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홍콩 명보(明報)가 지난 5일 평가했다. 이에 따라 중국 라오바이싱(老百姓·일반 서민)들이 그의 흔적을 찾아 추념하며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는 일이 완전히 사라지는 셈이다. 사실 중국에서는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 중국 본토 인터넷을 검색하면 자오쯔양 옛집 퇴거 소식은 찾을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 당국이 인공지능(AI)를 활용해 톈안문 민주화 운동 관련 콘텐츠를 거의 완벽하게 온라인에서 통제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톈안먼 광장의 상흔은 평소 일반인들은 접근 자체가 어려운 금단의 공간이 되고 있는 셈이다. ‘ㅁ’자로 닫힌 형태의 중국 전통 주택양식인 사합원 형태의 푸창후퉁 6호는 중국 공산당이 1949년 10월 1일 사회주의 중국을 건국한 이후 중국 공산당 소유의 관저였다. 1987년까지 당총서기를 지냈던 개혁파 지도자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도 한동안 베이징시 시청(西城)구 후이지쓰후퉁(會計司胡同) 25호 사합원에서 머물렀다. 중국 공산당은 사망한 국가 지도자 주택관리에 관한 규정에 따라 자오쯔양의 딸인 왕옌난(王雁南· 본명 趙亮)과 남편 왕즈화(王志華)가 머물고 있던 푸창후퉁 6호 사저를 당중앙판공실이 회수할 예정이다. 시진핑(習近平) 당총서기는 앞서 2016년 11월 30일 당중앙정치국 회의를 주재하고 당과 국가 지도자 예우와 관련된 규범을 통과시켰다. 당시 정치국 회의에서는 사무실·사저·관용차·교통편·비서 규모·휴가 격식 등 당과 국가 지도자에 대한 대우 수준을 규정하고 당과 국가 지도자가 퇴임한 뒤 적시에 사무용 관저에서 퇴거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톈안먼 민주화 운동은 1989년 4월 후야오방 전 당총서기가 사망하자 이를 추모하는 대학생·시민들이 그에 대한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며 톈안먼 광장에 몰려들면서 시작됐다. 당시 당총서기였던 자오쯔양은 무력 진압을 결정한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실각했다. 그는 실각한 이후 2005년 1월 사망할 때까지 16년 가까이 이 집에 가택연금 생활을 했다. 자오쯔양은 후야오방과 함께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주목받았으나, 당총서기였던 1989년 5월 톈안먼 민주화 시위로 궁지에 몰리며 결국 권좌에서 쫓겨나야 했다. 자오쯔양은 회고록에서 “1989년 6월3일 밤 가족과 함께 마당에 앉아 있다가 총소리를 들었다”며 “세계를 놀라게 한 비극은 피할 수 없었으며 결국 발생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학생운동이 반당분자와 반사회주의 세력들의 계획된 음모라고 규정하고 배후 지도부와 향후 계획, 당내 결탁 세력 등을 알아내기 위해 고심했다”며 “그러나 나는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지 우리의 단점을 고칠 것을 요구한 것이지 정치체제 자체를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설득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학생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을 동원한 당총서기가 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고 다짐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자오쯔양은 1989년 5월19일 새벽 비장한 마음으로 톈안먼 광장에 섰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당시 장면을 보면 그가 빨간색 메가폰을 잡고 학생들과 시위 참가자들에게 행한 7분 가량의 연설은 여전히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우리가 너무 늦게 왔습니다. 미안합니다. 당신들이 우리들에게 어떤 것을 말하고 비판하건 가치가 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대학생들에게 단식 중단을 요구하며 “대화의 문은 열려 있고 당신들이 제안하는 모든 것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냉정하게 생각하기를 간곡하게 부탁 드립니다”라고 설득하는 그의 마지막 연설을 50대 이상의 중국인들이 적잖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자오쯔양은 30시간 가량의 육성 녹음테이프를 남겼다. 그의 절친한 친구 3명이 몰래 중국 밖으로 갖고 나간 것을 녹취한 것으로 그의 사후 회고록 ‘국가의 죄수’(Prisoner of The State)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됐다. 이 책에서 자오쯔양은 무력 진압을 주도한 강경 보수파 리펑(李鵬) 총리의 당지도부 내부 모임 발언이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실리도록 배후 역할을 해 시위가 격화됐고, 덩샤오핑이 권력을 상실할까 조바심을 내 민주화 시위에 대한 무력 진압을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자오쯔양은 이른바 개혁파로서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유력했기에 실각의 정치적 파장은 더욱 컸다. 이후 6월 4일 무력 진압이 현실화됐고 권좌에 쫓겨난 그는 가택 연금을 당하다가 2005년 1월 별세했다. 작고한 뒤에도 자오쯔양의 유골은 사저를 떠나지 못했다. 자오쯔양의 묘지가 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체제 세력의 성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한 탓이다.이런 까닭에 자오쯔양은 이 세상을 떠나서도 통상적으로 중국 최고 지도자들이 사망 후 안치되는 베이징 근교 바바오산(八寶山) 혁명공묘 지도자 구역에 안치되지 못했다. 2015년 중국 당국은 그의 매장을 허락했으나 베이징과 멀리 떨어진 허난(河南)성 고향을 요구하는 중국 당국과 이에 반대하는 유족 사이의 긴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결국 2019년 10월 18일 그의 부인 량보치(梁伯琪·1918~2013)와 베이징 도심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창핑(昌平)의 민간 묘지 천수원(天壽園)에 합장됐다. 매장 의식은 물샐 틈 없는 보안 속에 비밀리에 치러졌다. 자오쯔양 사망 후 해마다 6월 4일을 비롯해 그의 생일(10월 17일)과 기일(1월 17일), 중국 전통명절인 칭밍제(淸明節·4월 5일 전후) 등 기념일이 되면 자오쯔양의 푸창후통 집에는 공안 당국의 삼엄한 감시와 통제에도 아랑곳 없이 적지 않은 지지자와 추모객들이 찾았다. 2019년에는 자오쯔양의 옛집 부근 곳곳에 출입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얼굴인식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고인의 옛집 서재에는 고인의 사진과 기록물, 소장품들을 보관한 소규모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고 고인의 유해도 2019년 10월 부인과 합장하기 전까지 이 집에 안치돼 있었다. 후야오방의 후손 역시 2019년 5월 19일 그가 생전에 머물던 후이지쓰후퉁 25호 사합원에서 퇴거했다. 공산당 내 대표적 개혁파였던 후야오방은 1989년 4월 15일 사망했는데, 그 추모 물결이 6·4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그를 추앙하던 베이징대 등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보수파에 대한 비난 등 정치개혁에 대한 요구들이 확산됐다. 마침내 후야오방의 장례식을 계기로 그의 명예 회복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이 집회를 갖고 여기에 라오바이싱들이 가세해 민주화운동의 거센 불길이 타올랐다. 자오쯔양 유족이 사저를 떠나는 모습이 알려진 계기가 된 것은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기자 가오위(高瑜·77)가 지난 4일 올린 트위터였다. 가오위는 칭밍제 당일 자오쯔양 푸창후퉁 집에서 짐을 싸는 모습을 과거 자오쯔양 유족과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올렸다. 그는 이날 트위터에 자오쯔양의 생전 사진과 2018년 그의 기일에 찍은 사진, 사합원 정문과 유족이 싼 이삿짐까지 모두 4장의 사진을 올렸다. 원로 여성 언론인인 가오위는 톈안먼 민주화 운동 직후 6년간 옥고를 치렀고 이후 중국 정부의 언론 조치를 담은 문건을 폭로해 다시 징역형을 선고받은 반체제 인사이기도 하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팬데믹 시대 치유와 회복의 새 빛, 예술… 비서구의 토속·무속·모계사회를 담다

    팬데믹 시대 치유와 회복의 새 빛, 예술… 비서구의 토속·무속·모계사회를 담다

    마트에서 흔히 보는 카트 위에 알록달록 화려한 상여가 놓였다. 그 앞뒤로 토속적이면서 기괴한 형상의 조형물이 길게 늘어섰다. 죽은 이를 애도하고, 남은 이를 위로하는 장례 풍습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김상돈 작가의 조각 설치작품 ‘행렬’이다. 전시장 한가운데는 빨강, 주황, 노랑 색깔의 실로 짠 대형 조형물이 걸렸다. 북유럽 소수민족 사미족 출신의 작가 오우티 피에스키가 전통의상에 달린 장식을 형상화해 만든 수공예 작품 ‘함께 떠오르기’다.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환하게 빛나는 사미족 여성들의 연대를 상징한다. 코로나19 여파로 두 차례나 행사를 연기한 끝에 지난 1일 개막한 제13회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의 한 풍경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현대미술축제인 광주비엔날레가 올해는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이란 주제 아래 전통 무속 신앙인 샤머니즘과 생태주의, 모계문화 등을 다룬 작품들을 통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대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한다.감염병으로 인한 전 지구적 혼란과 위기는 우리 삶의 형태와 본질에 대한 성찰의 기회이기도 했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 와중에 자연환경은 급속도로 훼손됐고, 물질적 풍요로움은 공동체의 연대보다는 각자도생의 길로 사람들을 내몰았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공동 예술감독인 데프네 아야스와 나타샤 진발라는 서구 사회의 이성과 합리성에서 벗어나 비서구 세계의 공동체적 삶과 집단 지성에서 지혜를 구하고자 했고, 이에 부합하는 40여개국 69명 작가의 작품 450여점을 모았다. 주 전시 공간인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5개 전시실에선 다양한 나라 토속민들의 생활 방식과 제의적 예술을 포함해 군국주의에 대한 저항,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각심, 경쟁과 배척 대신 화합과 포용의 정신을 내재한 모계사회를 형상화한 다채로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민정기, 문경원, 이상호, 릴리안 린, 소니아 고메즈 등 국내외 작가의 작품들 사이에 각종 부적과 병풍, 제의 도구 등 현대미술 전시에서 좀체 보기 어려운 무속 신앙 유물이 함께 진열된 모습이 이채롭다. 가회민화박물관과 샤머니즘박물관에서 특별히 대여한 소장품들이다. 첫 번째 전시실을 전체 전시의 구성과 맥락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공간으로 구성해 무료로 개방한 점도 예년과 다른 점이다.국립광주박물관과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 광주극장 등 비엔날레 전시관 밖에서도 주제전은 이어진다. 과거의 유물이 잠든 박물관에서 만나는 테오 에쉐투의 영상 ‘고스트 댄스’는 장소의 특수성으로 인해 삶과 죽음, 치유와 애도에 대한 메시지가 보다 명징하게 다가온다. 크리산네 스타타코스가 꽃으로 장식한 만다라 ‘세 개의 다키니 거울’도 생사의 덧없음을 음미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번 비엔날레에선 주제전 외에 이불, 배영환, 김성환, 시오타 치하루, 마이크 넬슨 등이 참여한 광주비엔날레커미션(GB), 스위스 안무가의 퍼포먼스와 설치작품을 선보이는 파빌리온프로젝트, 5·18민주화운동 특별전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 등이 장외 전시로 열린다. 이 가운데 광주 지역 작가 12명이 협업한 특별전은 5·18 당시 계엄사에 연행돼 고문을 당한 학생과 시민이 치료받던 옛 국군광주병원에서 열려 더욱 의미가 깊다.2007년 국군병원이 함평으로 이전한 뒤 폐허처럼 방치됐다가 2018년 비엔날레 전시공간으로 일시적으로 부활했으나 국립 트라우마센터 건립 계획에 따라 이번이 마지막 전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환자실이 있는 병원 2층으로 올라가는 보행로에 데이지 꽃밭을 만들어 병원의 본질적 기능인 치유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문선희 작가의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목소리’는 전시장을 떠나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5월 9일까지. 광주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샤머니즘, 모계사회…광주비엔날레가 주목한 팬데믹 시대의 예술

    샤머니즘, 모계사회…광주비엔날레가 주목한 팬데믹 시대의 예술

    마트에서 흔히 보는 카트 위에 알록달록 화려한 상여가 놓였다. 그 앞뒤로 토속적이면서 기괴한 형상의 조형물이 길게 늘어섰다. 죽은 이를 애도하고, 남은 이를 위로하는 장례 풍습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김상돈 작가의 조각 설치작품 ‘행렬’이다. 전시장 한가운데는 빨강, 주황, 노랑 색깔의 실로 짠 대형 조형물이 걸렸다. 북유럽 소수민족 사미족 출신의 작가 오우티 피에스키가 전통의상에 달린 장식을 형상화해 만든 수공예 작품 ‘함께 떠오르기’다.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환하게 빛나는 사미족 여성들의 연대를 상징한다. 코로나19 여파로 두 차례나 행사를 연기한 끝에 지난 1일 개막한 제13회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의 한 풍경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현대미술축제인 광주비엔날레가 올해는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이란 주제 아래 전통 무속 신앙인 샤머니즘과 생태주의, 모계문화 등을 다룬 작품들을 통해 팬데믹 시대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한다.감염병으로 인한 전 지구적 혼란과 위기는 우리 삶의 형태와 본질에 대한 성찰의 기회이기도 했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 와중에 자연환경은 급속도로 훼손됐고, 물질적 풍요로움은 공동체의 연대보다는 각자도생의 길로 사람들을 내몰았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공동 예술감독인 데프네 아야스와 나타샤 진발라는 서구 사회의 이성과 합리성에서 벗어나 비서구 세계의 공동체적 삶과 집단 지성에서 지혜를 구하고자 했고, 이에 부합하는 40여개국 69명 작가의 작품 450여점을 모았다. 주 전시 공간인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5개 전시실에선 다양한 나라 토속민들의 생활 방식과 제의적 예술을 포함해 군국주의에 대한 저항,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각심, 경쟁과 배척 대신 화합과 포용의 정신을 내재한 모계사회를 형상화한 다채로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민정기, 문경원, 이상호, 릴리안 린, 소니아 고메즈 등 국내외 작가의 작품들 사이에 각종 부적과 병풍, 제의 도구 등 현대미술 전시에서 좀체 보기 어려운 무속 신앙 유물이 함께 진열된 모습이 이채롭다. 가회민화박물관과 샤머니즘박물관에서 특별히 대여한 소장품들이다. 첫 번째 전시실을 전체 전시의 구성과 맥락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공간으로 구성해 무료로 개방한 점도 예년과 다른 점이다. 국립광주박물관과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 광주극장 등 비엔날레 전시관 밖에서도 주제전은 이어진다. 과거의 유물이 잠든 박물관에서 만나는 테오 에쉐투의 영상 ‘고스트 댄스’는 장소의 특수성으로 인해 삶과 죽음, 치유와 애도에 대한 메시지가 보다 명징하게 다가온다. 크리산네 스타타코스가 꽃으로 장식한 만다라 ‘세 개의 다키니 거울’도 생사의 덧없음을 음미하게 하는 작품이다.이번 비엔날레에선 주제전 외에 이불, 배영환, 김성환, 시오타 치하루, 마이크 넬슨 등이 참여한 광주비엔날레커미션(GB), 스위스 안무가의 퍼포먼스와 설치작품을 선보이는 파빌리온프로젝트, 5·18민주화운동 특별전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 등이 장외 전시로 열린다. 이 가운데 광주 지역 작가 12명이 협업한 특별전은 5·18 당시 계엄사에 연행돼 고문을 당한 학생과 시민이 치료받던 옛 국군광주병원에서 열려 더욱 의미가 깊다.2007년 국군병원이 함평으로 이전한 뒤 폐허처럼 방치됐다가 2018년 비엔날레 전시공간으로 일시적으로 부활했으나 국립 트라우마센터 건립 계획에 따라 이번이 마지막 전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환자실이 있는 병원 2층으로 올라가는 보행로에 데이지 꽃밭을 만들어 병원의 본질적 기능인 치유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문선희 작가의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목소리’는 전시장을 떠나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5월 9일까지. 광주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피카소가 고발한 6·25 비극… ‘한국에서의 학살’ 국내 첫 공개

    피카소가 고발한 6·25 비극… ‘한국에서의 학살’ 국내 첫 공개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6·25전쟁을 소재로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이 처음으로 국내에서 공개된다. 전시기획사 비채아트뮤지엄은 오는 5월 1일부터 8월 29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하는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인투 더 미스(Into the Myth)’에 ‘한국에서의 학살’이 출품된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의 소장품 110여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피카소의 대표작 ‘마리 테레즈의 초상’, ‘피에로 옷을 입은 폴’을 비롯한 유화와 판화, 도자기 등이 다채롭게 소개된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피카소가 1951년 1월 완성한 그림으로, 그해 5월 파리에서 열린 ‘살롱 드메’에서 처음 공개됐다. 1937년 파리만국박람회에서 선보인 ‘게르니카’와 더불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피카소의 대표적인 반전 작품으로 꼽힌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 신천군에서 벌어진 미군에 의한 학살을 다룬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국립피카소미술관 전문가는 “피카소가 특정 사건을 염두에 두고 그린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고 비채아트뮤지엄 관계자는 전했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피카소가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 국내 첫 공개

    피카소가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 국내 첫 공개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가 6·25전쟁을 소재로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이 처음으로 국내에서 공개된다. 전시기획사 비채아트뮤지엄은 오는 5월 1일부터 8월 29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하는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인투 더 미스(Into the Myth)’에 ‘한국에서의 학살’이 출품된다고 29일 밝혔다. 피카소가 1951년 1월 완성한 그림으로 같은 해 5월 파리에서 열린 ‘살롱 드메’에서 처음 공개됐다. 1937년 파리만국박람회에서 선보인 ‘게르니카’와 더불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의 소장품 110여 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피카소의 대표작 ‘마리 테레즈의 초상’, ‘피에로 옷을 입은 폴’을 비롯한 유화와 판화, 도자기 등이 다채롭게 소개된다. 비채아트뮤지엄은 “그동안 국내에서 피카소 전시회는 여러 차례 열렸지만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의 걸작들이 대거 한국을 찾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청년 시절인 1900년대 초부터 황혼기인 1960년대까지 피카소의 예술 여정을 연대기별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라고 소개했다. 전시 관람료는 1만 1000~2만원이며, 50% 할인되는 슈퍼얼리버드 티켓은 오는 31일부터 29cm에서 구매할 수 있다. 4월 4일 이후 모든 예매사에서 티켓을 판매한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씨줄날줄] 대체불가능토큰(NFT)/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체불가능토큰(NFT)/임병선 논설위원

    2006년 3월 21일(이하 현지시간) 트위터 공동창업자 잭 도시가 날린 최초의 트윗이 23일 291만 5000달러(약 33억원)의 값어치에 새 주인에게 넘어갔다. ‘지금 막 내 트위터 설정했음’(just setting up my twttr)이라고 다섯 단어 적었을 뿐인 트윗을 그처럼 비싸게 거래하는 것도 놀라운데 더 눈길을 붙드는 것은 15년 묵힌 메시지를 사고파는 현란한 방식이다. 도시는 지난해 12월에 트윗 장터인 ‘밸류어블스’ 경매에 내놓았다. 주목받지 못하다 지난 5일 비트코인 열풍에 용기를 얻은 도시가 가상자산의 일종인 대체불가능토큰(Non-fungible Token)으로 판매하겠다고 하자 사람들이 줄을 섰다. 이렇게 NFT로 경매된 것을 1630.58이더(암호화폐인 이더리움 단위)에 다시 경매에 내놓아 말레이시아 암호화폐 기업 ‘브리지 오라클’의 최고경영자(CEO)가 낙찰받았는데 환산하면 이만 한 액수가 된다. 비트코인을 적극 지지하는 도시는 다시 수익금을 비트코인으로 바꿔 아프리카 빈곤 퇴치에 앞장서는 ‘기브 디렉틀리’ 펀드에 기부한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거래하는 것일까? 도시의 첫 트윗은 디지털 자산이라 형체가 있을 수 없다. ‘내 것’이라지만 소유하거나 소장할 수가 없다. 내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문서만 따로 챙길 수 있을 뿐이다. 동영상이나 이미지, 음악 파일도 그렇다. ‘내 것’은 맞지만 책꽂이나 서랍에 보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한 복제할 수 있고 원본임을 증명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암호화폐처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콘텐츠에 고유한 인식값이 주어지는 NFT는 소유권이나 판매 이력 등의 정보가 블록체인에 저장되기 때문에 복제할 수 없는 ‘디지털 원작’의 가치를 지닌단다. 이렇게 고유성과 희소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NFT는소셜미디어의 콘텐츠, 디지털 예술작품이나 희귀 소장품 거래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 미국 프로풋볼(NFL) 전직 스타들이 서명 카드를 NFT로 거래해 175만~370만 달러를 챙긴 데 이어 미국 프로야구 뉴욕 메츠 투수 타이완 워커(29)가 이날 메이저리그 선수로는 처음 서명 카드를 4275달러(약 485만원)에 판매해 메츠재단에 기부했다. 무한복제 시대에 유일본을 갖겠다는 욕망이 흔해 빠진 돈 대신 NFT를 찾아냈다. 너도나도 이 열풍에 뛰어드는 것을 꼬집으려고 미국의 한 영화감독이 일 년 동안 방귀 소리를 녹음했다고 내놓았더니 정말로 누군가 85달러에 사 가더란다. 증강현실(AR)로 만든 집이 50만 달러, 300메가바이트 용량의 JPG 파일이 6930만 달러에 팔렸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 “일년치 방귀 소리 파일로 내놓으니 10만원에 사더라” NFT 광풍 탓

    “일년치 방귀 소리 파일로 내놓으니 10만원에 사더라” NFT 광풍 탓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 알렉스 라미레스 말리스(36)는 지난해 이맘때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코로나19가 미국에서 막 유행하기 시작하던 때다. 국내에는 올해 들어서야 소개됐지만 그의 주변에서는 대체불가능토큰(Non-fungible Token) 열풍이 막 불기 시작하고 있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가리지 않고 모든 예술품이 NFT로 거래되고 있었다. 자신의 방귀 소리를 녹음한 파일이 안 팔린다는 법은 없다는 데 생각이미쳤다. 물론 너도나도 NFT에 창작물을 내놓는 세태를 꼬집자는 생각도 있었다. 여하튼 록다운(봉쇄) 일주년이 됐고 그는 친구들과 파일을 공유했는데 친구들이 판매해보자고 부추겼다. 해서 그는 ‘일년간 녹음된 방귀소리(One Calendar Year of Recorded Farts)’란 제목으로 경매에 내놓았다. 그런데 믿기지 않게도 익명의 구매자가 선뜻 85달러(약 9만 6000원)를 주고 매입했다. 말리스는 “NFT 시장이 미쳤다고 밖에 할 수 없다”고 놀라워했다. 그는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일간 뉴욕 포스트 인터뷰를 통해 “NFT는 본질적으로 형체가 없는 자산에 가치를 두는 것으로, 단순히 소유권을 나타내는 디지털 문자와 숫자의 나열일 뿐이다. 이런 광란의 시장에는 디지털 예술 애호가 대신 빨리 부자가 되고 싶은 투기꾼들만 있다”고 말했다. 사실 그의 방귀보다 조금 더 나아 보이는 콘텐트도 실로 어마어마한 가격에 거래된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이 50만 달러(약 5억 6400만원)에 팔린다면 믿겠는가? 그런데 사실이다. 크리스타 킴이 만든 ‘디지털 하우스’인데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고글을 써야만 둘러볼 수 있는 가상의 집이다. 디지털 파일에 불과하다.지난 10일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Beeple)의 작품이 6930만 달러(785억원)에 거래됐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천재의 작품인가 싶겠지만 ‘매일-최초의 5000일’이란 제목이 달린 이 작품은 300메가바이트(Mb) 용량의 JPG 이미지 파일 하나일 뿐이다. 디지털 파일 하나가 높은 가격에 거래될 수 있는 것은 NFT 기술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미지, 영상, 음악 파일 등에 NFT를 적용하면 블록체인에 소유권, 거래 이력 등의 정보가 저장돼 일종의 ‘디지털 인증서’ 기능을 갖는다. 복제나 위조, 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술을 쓰기 때문에 희소성과 고유성을 인정받는다. 이렇게 NFT 열풍을 지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트위터 공동창업자인 잭 도시다. 지난 2006년 3월 21일 자신이 날린 최초의 트윗 ‘지금 막 내 트위터 설정했음(just setting up my twttr)’을 지난해 12월 트윗 장터인 ‘밸류어블스’ 경매에 내놓았다. 그런데 영 반응이 신통잖았다. 그러다 지난 5일 비트코인 열풍에 용기를 얻은 도시가 가상자산의 일종인 NFT로 판매하겠다고 하자 사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이렇게 NFT로 경매된 것을 1630.58 이더(암호화폐인 이더리움 단위)에 다시 경매에 내놓아 말레이시아 가상화폐 기업 ‘브릿지 오라클’의 시나 에스타비 최고경영자(CEO)가 낙찰받았는데 환산하면 291만 5000 달러(약 33억원)가 된다. 고작 다섯 단어 적힌, 15년 묵은 메시지가 열풍을 타니 엄청난 가격에 거래된 것이다. 비트코인을 적극 지지하는 도시는 다시 수익금을 비트코인으로 바꿔 아프리카 빈곤 퇴치에 앞장서는 ‘기브 디렉틀리’ 펀드에 기부한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로 불리는 가상자산에 투자자가 몰린 데 이어 최근에는 NFT 기술을 쓴 자산에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고유성과 희소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NFT는 소셜미디어의 콘텐트, 디지털 예술작품이나 희귀 소장품 거래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 미국프로풋볼(NFL) 전직 스타들이 서명카드를 NFT로 거래해 175만~370만 달러를 챙긴 데 이어 미국프로야구 뉴욕 메츠 투수 타이완 워커(29)가 이날 메이저리그 선수로는 처음 서명카드를 4275달러(약 485만원)에 판매해 메츠 재단에 기부했다. 비트코인 열풍에서 한몫 기회를 놓친 이들이 찾아낸 투기의 대체재에 불과하다는 삐딱한 시선도 있는 반면, 나만의 것을 나만의 가치 수단으로 갖고 싶어하는 욕망의 확장이란 해석도 가능하겠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비트코인, 통화로 사용 불가…편집증 환자가 만든 화폐”

    “비트코인, 통화로 사용 불가…편집증 환자가 만든 화폐”

    비트코인은 “편집증 환자가 만든 화폐”라며 “통화로 사용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뉴욕대의 애즈워스 다모다란 교수가 17일 CNBC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이 화폐이든 소장용 수집품이든 가치는 없다. 하지만 가격은 책정될 수 있다”며 “궁금한 건 비트코인의 공정한 가격이 5만 달러이냐 6만 달러이냐 하는 것 일텐데, 내 관점에선 공정한 가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비트코인이 달러 가치나 인플레이션에 대비한 헤지용 자산으로 간주한다. 이에 다모다란 교수는 “소장품으로서 가격은 급등했지만 적시에 오른 건 아니다”며 “사실 작년에 주식이 폭락했을 때 비트코인은 더욱 하락했다. 그건 당신이 수집품에서 원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비트코인보다 더 나은 디자인의 사이버 화폐가 필요하다”며 “비트코인은 편집증 환자를 위해 편집증 환자가 설계한 사이버 화폐로 광범위하게 통화로 사용할 수 있는 화폐는 아니다”고 비판했다. 이날 애즈워스 다모다란 교수는 “금리가 계속 상승하면 성장주가 더 하락할 여지가 있다. 테슬라도 여전히 밸류에이션이 높다. 추가 조정을 받을 것이다”며 “통상 금리가 올라갈 때 성장 기업은 성숙한 기업보다 약간 더 고통을 느낀다. 금리 상승으로 미래 수익과 현금흐름이 감소하고 기업가치도 낮아지기 때문”이라며 주장도 했다.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올 초 연 0.9%대에서 최근 1.6%대까지 급등했다. 블랙록의 릭 라이더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올해 2%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다모다란 교수는 투자자들은 최근 몇 년간 성장주가 급등해온 사실을 고려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장주는 엄청난 10년을 보냈다. 반납해야할 주가 상승분이 조금 더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하며, “테슬라 주가는 모멘텀을 타고 시장 역사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올랐다. 추가 조정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테슬라의 주가는 그동안 여러 번 다섯 발자국 앞으로 가면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나는 식으로 움직였다. 주당 676달러는 아직도 높은 밸류에이션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다모다란 교수는 최근 금리 상승에 대해 “미 중앙은행이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3%가 된다면 어떻게 금리를 1.5~2%로 유지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며 “금리 상승은 반드시 시장에 나쁜 것만이 아니다. 경기 회복에 따라 기업 실적이 개선되기만 한다면 시장은 계속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애즈워스 다모다란 교수는 앞선 인터뷰에서도 “비트코인이 실제 통화라면 그건 끔찍하게 나쁜 화폐”라며 “자산이 아닐 뿐만 아니라 매우 투기적인 게임 수단”이라고 혹평한 바 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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