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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은 강원의 ‘힘→돈’

    자연은 강원의 ‘힘→돈’

    강원도가 풍력·태양광·지열·나무·가축분뇨·수소 등 자연을 활용한 ‘신·재생에너지’생산에 팔을 걷어붙였다. 광활한 자연속의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어 팔면 반영구적으로 짭짤한 수입원이 되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바람은 돈바람 강원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백두대간 대관령일대의 바람은 곧 돈이다. 강원도에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선 것은 지난 2001년 대관령 삼양축산단지가 처음이다. 국비 등 60억원을 들여 이곳에 4기의 풍력단지를 설치한 뒤 2004년부터 연간 2640㎾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생산된 전기는 정부의 발전차익지원제도에 의해 고스란히 한국전력에 납품되면서 해마다 2억 7000∼3억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시설을 한번 설치하면 15년간은 고정 수입원으로 자리잡으면서 새로운 투자재원으로 뜨고 있는 것이다. 국가에서도 설치비의 80∼90%를 저리(3.6%)로 융자지원해 주고 있다. 대관령외에도 태백산 매봉산에도 국비 등의 지원으로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서 지난해부터 발전에 들어갔다. 이곳에서는 8기의 풍력발전 가운데 5기가 우선 설치돼 연간 8억원의 수입이 창출되고 있다. 이곳의 바람은 질이 좋아 3기가 더 설치되면 10억원까지 수입이 예상되고 있다. ●민간자본 투자도 활발 풍력에 대한 민간자본 투자도 활발하다. 양양 진동리일대(발전기 2기)와 대관령 강원풍력발전 등에도 외국자본과 한국전력 등이 컨소시엄으로 풍력발전단지를 설치해 지난해부터 각각 3000㎾와 1만㎾의 전력을 생산해 내고 있다. 또 양구 돌산령, 횡성 태기산, 강릉 대기리, 태백 귀내미골 등은 타당성 조사를 끝내고 민간자본으로 풍력단지가 추진 중이고 고성 명파리, 미시령, 진부령일대 등 11곳도 풍력 타당성 조사 중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강원도 어디든 풍력발전단지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태양광으로도 대박 꿈꾼다 태양광을 이용한 발전설비 추진도 풍력에 못지 않다. 춘천시 의암호내의 붕어섬에 친환경적으로 태양광발전소가 추진된다. 춘천시민 가정용 전력의 3분의1을 생산해 낼 수 있는 붕어섬 태양광발전소는 민자를 유치해 1만㎾p를 생산해 낼 수 있는 규모로 건설된다. 이에 앞서 태양광은 이미 지난 2002년 삼척동굴엑스포때 설치돼 657㎾p를 생산해 내고 있다. 국내최대 규모인 동해 화력발전소도 지난해 6월부터 순수 태양광으로 연간 1000㎾p의 전기를 생산해 ㎾p당 706원씩 받고 한전에 납품하고 있다. 강원도청에서도 청내 사용을 위해 올 6월 중에 120㎾p의 전기를 생산할 계획으로 설비공사가 한창이다. ●지열(地熱)도 새로운 에너지 강원도는 또 땅속의 열기를 이용한 지역도입에도 한발짝 앞서나가고 있다. 최근 강원도 아산관에 한국지열에너지기술지원센터 개소식을 갖고 전국 처음 지열의 에너지 사용에 시동을 걸었다. 지열은 초기 투자비용이 높지만 투자비 회수기간이 짧은 것을 장점으로 꼽고 있다. 이밖에 버려지는 나무와 가축분뇨, 수소를 이용한 바이오 에너지도 본격 개발에 나선다. 강원도는 오는 2015년까지 7000억원을 들여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그러나 소음 공해와 함께 새나 야생동물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등 부작용도 있어 철저한 검증이 요구되고 있다. 김상표 강원도 산업경제국장은 “강원도는 풍부한 자연자원을 살려 지열과 태양광 풍력 등의 신·재생에너지분야 개발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환경·생명] “쿵 쾅 쿵 쾅” 공사 소음·진동 사람 잡는다

    서울 관악구 신대방동 보라매병원 옆에 살고 있는 문흥준씨는 1년 넘도록 공사장 소음·진동에 시달리다 못해 환경분쟁조정위에 호소했다. 건설사가 집 앞에 대형 병원을 지으면서 소음·진동을 줄이는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공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문씨는 “2005년 여름부터 병원 터 파기 공사를 시작해 1년 가까이 소음·진동에 시달렸다.”면서 “바위를 깨는 소리 때문에 낮에는 집에 있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문씨는 “진동으로 집에 균열이 생겼으나 업체는 공사와 무관한 것이라며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동 심해 이웃집 벽에 균열 생기기도 문씨처럼 건설현장 가까운 곳에 사는 주민들은 소음·진동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휴식은 고사하고 일상생활 피해까지 입고 있다. 건설업체들이 공사비를 아끼려고 미리 소음·진동 방지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탓이다. 민원이 생기면 적당히 타협하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소음·진동 환경피해를 가져오고 있다. 환경분쟁조정위원회 재정·조정 사건의 80% 이상이 소음·진동 피해일 정도로 공사장 소음·진동에 피해가 심각하다. 경기도 부천시 중동 꿈마을 아파트 주민들은 15m소방도로 건너편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 공사장에서 나오는 소음·진동에 시달렸다.2004년부터 땅파기 공사 때는 소음·진동이 심해 일상적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건설업체에 항의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건설업체는 소음·진동을 줄이는 공법을 적용하고 이동식 방음벽을 설치했다며 예정대로 공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지하 외벽 설치공사를 위해 굴착기, 덤프트럭, 크레인 등이 들락거렸다. 골조공사 때는 레미콘, 펌프카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주민 김석곤씨는 “시공사에 항의해 보았지만 소음·진동·먼지를 줄이는 조치를 취했다.”며 공사를 강행하자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호소했다. 공사장 소음도는 층별로 70∼73㏈로 측정됐다. 조정위는 공사 중 소음피해 인정 기준인 70㏈을 넘어 휴식방해 및 불안감, 스트레스 등 사회통념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한계를 넘는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 배상결정을 내렸다. 건설사들이 공사를 시작하기 전 충분한 소음방지대책을 마련하고 특히 발파 소음·진동은 전문기관의 계측을 받아 미리 주민들과 협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경남 거창군 도로공사장에서는 발파 소음·진동으로 주민들이 건물 균열과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환경분쟁조정을 신청하기도 했다. 건설 장비 진동은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었지만 소음은 피해인정기준(70dB)을 초과했다. ●가축 피해도 부지기수 일반적으로 가축은 사람보다 소음에 민감하게 반응해 피해를 입기 쉽다. 소음으로 인한 가축피해의 임계 수준은 통상적으로 70dB로 보고 있다. 사육환경에 따라서는 50∼60dB 범위에서도 피해가 난다. 경북 고령 고속도로 터널 공사현장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터지는 발파 공사 소음·진동으로 돼지가 죽고 유산·사산되는 피해가 났다. 돼지우리에서 400m 떨어진 공사장에서 500여차례에 걸친 발파 소음과 진동으로 돼지들이 스트레스를 받은 피해였다. 돼지 주인은 최대 소음 77.6dB, 진동 76dB이 넘는 발파 작업으로 돼지들이 임신이 안되고 유산·조산하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지만 건설사는 이를 무시했다. 돼지 주인은 환경분쟁조정위에 억울함을 호소했고, 위원회는 발파 공사로 인한 돼지 유산·조산 피해를 인정해 배상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경북 김천의 고속도로건설현장에서도 비슷한 피해가 나왔다. 방음대책없이 공사를 강행해 일어난 소음으로 인근 농가에서 사육중인 개가 유산·사산한 피해였다. 결국 건설사는 개값을 물어줘야 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환경·생명] 지자체가 공사장 관리·감독 철저히 해야

    건설현장 소음·진동피해는 지자체가 공사장 관리 감독만 철저히 하면 막을 수 있다. 그런데도 오히려 지자체의 안이한 태도로 건설현장 환경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다. 인천 서구 검암지구 P아파트 주민들은 신공항고속도로 차량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고속도로와 가깝게 평행으로 배치된 아파트에서는 야간 소음도가 65㏈ 이상으로 측정돼 수면 방해를 받을 정도다.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고속도로 개통 이후 건설됐는데도 고속도로 소음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집을 지었다. 사업 단계부터 소음 대책을 세웠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는데 사업허가를 내줬기 때문에 개발업체뿐 아니라 지자체에도 책임을 물었다. 택지 조성 때에는 단독주택 입주예정지였으나 지자체가 고층 아파트용지로 개발계획을 변경·승인함에 따라 고속도로와 인접한 7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 주민이 소음피해를 입게 됐다.6층 이하 아파트 주민은 아파트쪽으로 나란히 설치된 신공항철도 방음벽으로 소음을 막을 수 있어 단독주택이나 저층아파트를 지었더라면 소음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헌부산 남항대교 건설 현장에서는 소음 피해를 인정, 시행사인 부산시와 건설업체에 소음피해 배상 결정을 내렸다. 남항대교 개통 뒤 예상되는 교통소음 방음대책에 대해서는 아파트 사업허가권자인 영도구청과 아파트 건설업체에 책임을 물었다. 부산시는 도로관리자로서 교통소음방지시설을 보완하도록 결정했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환경·생명] 소음·진동 고통호소가 86%

    [환경·생명] 소음·진동 고통호소가 86%

    건설현장 주변 주민들이 소음·진동에 시달리고 있다. 28일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276건의 사건이 들어왔다. 전년도보다 24% 증가했다. 이 가운데 165건을 재정·조정·중재합의로 처리했고 32건은 자진 철회됐다.197건을 종결하고 79건은 올해로 넘어왔다. 대부분 집과 가까운 건축공사·도로건설 현장 소음으로 인한 주거환경 피해가 주된 분쟁 원인으로 분석됐다. 아파트 층간소음 분쟁도 경기도 9건, 서울 5건, 인천에서 1건이 접수됐다. 피해 원인별로는 165건의 처리사건중 소음·진동이 150건(86%)으로 가장 많았다. 대기오염 8건(5%), 수질오염 3건(2%) 순으로 나타났다. 소음 피해 원인은 공사장 127건(85%), 도로차량소음 11건(7%), 공장소음 등 8건(5%), 철도소음 4건(3%)순이다. 피해 내용별로는 정신적 피해 74건(45%), 정신·건물 피해 40건(24%), 축산 피해 20건(12%) 등이 많았다. 개발사업이 널려 있는 경기 (40건 24%), 서울(34건 21%), 인천(17건 10%)에서 주로 일어났다. 지방 도로건설 현장이 많은 경북(16건 10%), 부산(14건 8%)도 비교적 많았다. 환경분쟁을 일으킨 건설업체는 굴지의 건설사가 많아 심각성을 더했다. 시공능력 100위 안에 드는 업체 중 32개사가 64건의 분쟁을 일으켰다. 가장 많은 분쟁을 일으킨 업체는 풍림산업으로 5건을 차지했다. 대우건설, 두산산업개발, 롯데건설,GS건설이 4건으로 뒤를 이었다. 나머지 27개사는 1∼3건의 피신청인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체들에 내린 보상액은 GS건설이 1억 61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풍림산업이 1억 3500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女談餘談] 고스트 드라이버/안미현 산업부 차장

    예전에 미국에서 1년 살 기회가 있었다. 미국의 고속도로 체계는 인류 100대 발명품 중 하나라고 한다. 입심좋은 이들의 주장을 빌리자면 더미(얼간이)를 기준으로 설계됐다고 한다. 그만큼 쉽고 잘돼 있다는 얘기다. 그런 미국의 고속도로에서도 툭하면 길을 잃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더미만도 못한 드라이버(운전자)’였다. 며칠 전 미국 출장길에 7시간 운전대를 잡게 됐다. 길을 바꿔야 해 좌회전 차선에 섰다. 옆의 직진 차선에서는 차들이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었는지 앞의 트럭이 움직였다. 그런데 내내 신호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던 트럭이 정작 좌회전을 하지 않고 직진을 했다. 속으로 ‘이상한 운전자군’ 하며 좌회전을 했다. 순간 전후좌우 사방에서 날카로운 경적이 자지러지게 울려댔다.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옆좌석의 동승자에게 물었다.“뭐지?” 대답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맞은편에서 차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숨 넘어가게 깜빡이며 우리차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갓길로 차를 뺐다. 순식간에 이뤄진 일이었다. 맙소사,6차선은 족히 됨직한 왕복차선 도로가 교차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일방통행으로 바뀔 줄이야. 분명 안내 표지가 있었을 텐데 앞의 큰 트럭 때문에 못 본 모양이었다. 이 일로 또 하나의 별명을 얻었다.‘고스트(유령) 드라이버’다. 독일에서 역주행 운전자를 일컫는 말이다. 다소 헷갈리는 도로 체계 때문에 유난히 역주행 운전자가 많은 독일에서는 아예 라디오에서 ‘어느 어느 길에 고스트 드라이버가 출현했으니 조심하라.’는 안내방송까지 해준다고 한다.‘아낌없이’ 조롱당하는데 문득 자동차 경적에 생각이 미쳤다. 자지러질듯 울어댄 경적이 아니었다면 속도를 늦추지 않았을 터다. 그랬다. 경적은 본디 위험을 상대에게 급하게 알리는 수단이다. 언제부턴가 습관적으로 울려대는 소음에, 때로 거기에 실려오는 무언(無言)의 욕설에 경적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왔다. 하지만 경적이 본디 기능을 할 때는 더이상 소음이 아니었다. 안미현 산업부 차장 hyun@seoul.co.kr
  • [화제의 작가를 찾아서] 설치미술가 최우람씨

    [화제의 작가를 찾아서] 설치미술가 최우람씨

    프라모델에 ‘집 한 채’는 족히 되는 돈을 쏟아부은 소년은 움직이는 기계생명체를 만드는 조각가가 됐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지하에 있는 최우람(37)씨의 작업실에 들어서자 번쩍이는 금속 광택과 날카로운 용접 소음이 귓가를 때렸다. 그는 금속과 모터로 로봇, 꽃, 벌레 등 움직이는 생명체를 만든다. 중앙대 조소과 3학년 수업시간 때 움직이는 조각을 하면서 로봇을 제작하는 데 재미를 느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마이크로로봇이란 로봇 제작회사에서 3년간 일하기도 했다. 이 회사에서 만난 프로그래머 박태윤씨는 점점 더 어렵고 정밀한 작품을 만드는 데 없어선 안될 동업자다. 미술학도가 어떻게 피어나는 금속꽃과 날갯짓하는 벌레를 만들 수 있었을까. “국산차 1호인 시발자동차를 만드셨던 할아버지의 손재주와 미술을 하신 부모의 감각을 물려받았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청계천을 10년 넘게 들락거리며 공구상 주인들에게 부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묻고 또 물었다. 포스코에서 주최한 스틸아트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도 청계천 부품상들과 금속부품을 잘라주는 레이저커팅 공장 사장이 제일 먼저 떠올랐단다. 고마워서 상금으로 홍삼을 돌렸지만, 실은 재료비가 상금보다 많이 들었다. 최우람씨는 지난해 말 작가들의 꿈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뉴욕의 비트폼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지난 20일까지 뉴욕 첼시에서 계속됐던 전시회에 출품했던 작품들은 벌써 다 팔렸다. 그가 ‘어바누스’라고 이름 붙인 작품이 7만 5000달러(약 7000만원)에 팔렸다. 지난해 3∼5월 일본 모리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오는 2월14∼19일 스페인에서 열리는 세계 5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아르코에 출품하며, 오는 6월 미국 댈러스 크로 컬렉션에서 또 개인전을 갖는다. 세계로 뻗어가는 젊은 작가의 행보가 숨가쁘다. 하지만 최우람씨의 꿈은 소박하다. 역시 조소를 전공한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다음달 아르코에는 꽃 시리즈를 출품할 예정이다. 마드리드는 예전에 소장자의 작품을 수리해 주기 위해 단 하룻밤 머물렀던 추억이 있는 곳이다. 금속으로 만든 그의 작품에 대한 관람평은 다분히 서정적이다. “부드러운 순풍에 빛을 내고 날개를 흔들며 호흡하던 금속 생명체들…금속이 보여주는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잊을 수 없다.” 도쿄 롯폰기 모리미술관을 찾은 한국 관객의 평이었다. 작가는 “쇠도 하다 보면 말랑말랑해진다.”고 말한다. 작품에 대한 영감은 영국 BBC의 ‘식물의 사생활’과 같은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많이 얻는다. 작가의 이름을 딴 ‘URAM(기계생명체 연합연구소·영어 이름의 약자)’에서 앞으로 어떤 감동적인 기계생명의 움직임이 나올지 기대된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경동호텔 고객은 무조건 귀빈대우

    경동호텔 고객은 무조건 귀빈대우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20여년동안을 한결같이 손님들을 무조건 귀빈대접하는 호텔이 있어 인류가 달에 갔다온 20세기 후반기에도 계속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고색찬연한 전통속에서도 하루가 멀다고 날로 새로워지는 시대감각(時代感覺)에 알맞은 참신한 경영방침으로 최신형(最新型) 일류(一流)호텔에 못지않은 호텔의 명문 경동호텔(회현동(會賢洞) 1가 130 TEL (24) 3116~7)을 가본다. 경동호텔은 지금으로부터 20년전에 건립한것으로서 우리나라 민간호텔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5백만 시민이 우굴거리는 서울의 심장부에 우뚝 솟아 있는 남산(南山)이 인왕산쪽으로 줄기차게 뻗어내려가다가 끝인 가장자리-중구(中區) 회현동 입구(入口)에 자리잡고 있는 경동호텔은 그대로 우리나라 호텔의 산역사를 말해주듯 고색찬연하게 도사리고 있다. 하루가 멀다고 새로와지는 시대감각에 뒤질세라 경동호텔 특유의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살린 보다 진보된 경영과 저렴한 봉사로 고객을 맞는다. 「일하는 개미는 굶지않고」「흐르는 물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것」과 같이 경동호텔의 고객을 위한 간단(間斷)없는 노력은 언제나 일류호텔을 능가하는 승수파장(乘數波長)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고도의 관광교육을 받은 30여명의 종업원들이 베푸는 풍성한 친절은 누구나 경동호텔을 찾게 되면 「귀빈대우」를 충분히 해준다. 그래서 어떤 고풍(古風)스런 촌로(村老)는 이곳을 가리켜 가장 인사성있고 예절 바른 호텔이라고 격찬했지만! 더욱이 수도 서울의 명소 남산을 등에 업고 있어 풍치(風致)의 아름다움은 말할수 없고 고층건물의 처마밑을 지날때마다 그 거대한 건물의 도괴(倒壞)를 두려워하는 현대인의 노이로제가 이곳 경동호텔에서는 완전히 배제된다. 광난과 소요속에서 신경질적으로 충혈된 현대인의 피곤을 풀기에 알맞은 이곳 경동호텔은 한낮의 소란도 차라리 말짱 잊어버릴수가 있는 별천지라고 할수있다. 5월의 햇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한나절 어딘가 누구에게 다정한 대화라도 나누고 싶은 그런 충격을 안고 경동호텔은 찾은 취재기자의 촉각도 이곳에서는 편히 쉬고싶은 것도 오히려 당연할일! 호텔이라기 보다는 가정과 같이 아늑하고 마음의 고향과 같은 포근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이곳 경동호텔의 분위기는 서울이면서도 서울의 유배지처럼 시장속같은 혼잡과 번거로움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교통이 지극히 편리하고 남대문 시장이 지척에 있기때문에 굉장히 소란할 것이라는 선입감은 이곳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무산해버리고 서울 한복판에 이런 한적한 호텔이 있구나 하는 인식을 새롭게 해주기 때문에 한번 찾은 손님은 영락없이 단골손님이 되어버리곤 한단다. 오랜만에 다정한 친구와 만나 적조한 회포를 나누기에 알맞고 또 일확천금을 할수 있는 기막힌 사업이야기를 하기에도 손색이 없는 이곳 경동호텔은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 不如一見)으로 한번 찾아보지 못한 사람은 경동호텔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는 도저히 실감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월남에서 돌아온 개선용사들이나 일선장병은 여관비정도로 할인해주고 있으며 일반인에게도 절반에 가까운 요금으로 봉사해주고 있어 경동호텔은 현대의 소음속에서 피로에 지친 현대인의 조용한 「휴식의 광장」으로서의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는 곳이라고 할수 있다. [선데이서울 70년 5월 31일호 제3권 22호 통권 제 87호]
  • 의왕~과천 통행료 형평성 논란

    경기도가 의왕∼과천 고속화도로 통행료를 의왕시민에게 면제해 주기로 해 인근 지자체가 반발하는 등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도는 17일 의왕 주민에게 의왕∼과천 고속화도로 통행료를 면제해 주는 내용의 ‘경기도 유료도로 통행요금 징수조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도는 조례규칙심의와 다음 달 도의회 임시회를 거쳐 이르면 올 상반기에 요금을 면제해 줄 예정이다.도 관계자는 “이 도로가 개통되면서부터 의왕 지역 주민들은 자동차 소음 및 배기가스 고통을 감수했고, 특히 요금소가 의왕에 있어 이 지역 피해가 컸다.”며 통행료 무료화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왕복 4차선의 의왕∼과천 고속화도로(10.8㎞)는 1993년 개통됐으며, 현재 승용차를 기준으로 800원의 통행료를 징수한다. 도로 전체 구간 중 7.5㎞가 의왕시 행정구역을,3.3㎞가 과천 구역을 가로지른다. 경기도가 의왕시민에 대한 통행료 면제를 추진하자 도로 일부가 지나면서도 혜택에서 제외된 과천과 화성 등 시민들이 즉각 반발했다. 이해문(과천) 도의원은 “같은 도로가 의왕시와 과천시를 모두 통과하는데 의왕시민에게만 통행료를 면제해 주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과천시도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입법예고안에 대한 이의 신청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도 “유료도로 이용료는 이용자가 얻는 시간과 비용 등 편익에 대해 수익자 원칙에 따라 부과하는 것”이라면서 “일부 지역 주민에게만 통행료를 면제해 주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경기도의 논리대로라면 판교톨게이트 주변의 분당·판교 주민들에게도 통행료를 면제해 줘야 할 뿐만 아니라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지역 주민 모두에게도 똑같은 혜택을 줘야 한다는 지적이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의왕~과천 통행료 형평성 논란

    경기도가 의왕∼과천 고속화도로 통행료를 의왕시민에게 면제해 주기로 해 인근 지자체가 반발하는 등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도는 17일 의왕 주민에게 의왕∼과천 고속화도로 통행료를 면제해 주는 내용의 ‘경기도 유료도로 통행요금 징수조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도는 조례규칙심의와 다음 달 도의회 임시회를 거쳐 이르면 올 상반기에 요금을 면제해 줄 예정이다.도 관계자는 “이 도로가 개통되면서부터 의왕 지역 주민들은 자동차 소음 및 배기가스 고통을 감수했고, 특히 요금소가 의왕에 있어 이 지역 피해가 컸다.”며 통행료 무료화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왕복 4차선의 의왕∼과천 고속화도로(10.8㎞)는 1993년 개통됐으며, 현재 승용차를 기준으로 800원의 통행료를 징수한다. 도로 전체 구간 중 7.5㎞가 의왕시 행정구역을,3.3㎞가 과천 구역을 가로지른다. 경기도가 의왕시민에 대한 통행료 면제를 추진하자 도로 일부가 지나면서도 혜택에서 제외된 과천과 화성 등 시민들이 즉각 반발했다. 이해문(과천) 도의원은 “같은 도로가 의왕시와 과천시를 모두 통과하는데 의왕시민에게만 통행료를 면제해 주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과천시도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입법예고안에 대한 이의 신청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도 “유료도로 이용료는 이용자가 얻는 시간과 비용 등 편익에 대해 수익자 원칙에 따라 부과하는 것”이라면서 “일부 지역 주민에게만 통행료를 면제해 주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경기도의 논리대로라면 판교톨게이트 주변의 분당·판교 주민들에게도 통행료를 면제해 줘야 할 뿐만 아니라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지역 주민 모두에게도 똑같은 혜택을 줘야 한다는 지적이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연초부터 ‘리콜’ 비상

    연초부터 ‘리콜’ 비상

    자동차 업계에 연초부터 ‘리콜’(소환 수리) 비상이 걸렸다. 자동차회사들은 이런저런 제작 결함으로 잇따라 리콜을 하고 있다.‘품질 경영’이 무색해졌다. 수입차와 국산차 모두 마찬가지다. 국내 최대 완성차 회사인 현대자동차도 노사 갈등이 심화되고 있어 품질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리콜로 새해를 연 폴크스바겐·인피니티 한국폴크스바겐은 파사트 승용차 920대에 대해 지난 4일부터 자발적 리콜을 실시중이다. 와이퍼 모터에서 물이 새는 결함이 발견돼서다. 연료 냉각호스 지지대도 불량으로 드러났다. 리콜 대상은 2005년 7월11일부터 지난해 8월15일까지 수입된 차량이다. 이 회사의 대형 승용차 페이톤은 리콜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브레이크에서 나는 소음으로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앞서 한국닛산도 인피니티(FX35,FX45) 595대에 대해 2일부터 자발적 리콜에 들어갔다. 전조등의 밝기와 비추는 각도가 자동차 안전기준에 맞지 않아서다. 대상 차량은 2005년 8월23일부터 지난해 7월28일까지 수입된 인피니티 FX35(454대)와 FX45(141대)이다. ●윈스톰 대규모 리콜·로체도 타이어 결함 연초부터 리콜 몸살을 앓기는 국산차도 예외는 아니다.GM대우는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윈스톰 4만 6147대에 대해 지난 5일부터 자발적 리콜을 실시중이다. 이같은 승용차 리콜은 2005년 4월 GM대우의 라세티(4만 9480대) 이후 최대 규모다.GM대우는 매번 리콜 최고 규모 기록을 갱신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리콜 사유는 브레이크 페달의 반복 작동으로 인한 연결핀 이탈로 브레이크가 고장날 위험이 있어서다. 대상은 지난해 4월11일부터 12월14일까지 생산된 차량이다. 국내 판매 차량(1만 3893대)은 물론 수출 차량(3만 2254대)도 대상이다. 택시 물량으로 많이 나가고 있는 기아차의 로체도 도마에 올랐다. 자발적 리콜이 아니라 정부가 품질 문제를 들어 무상수리를 권고했다. 문제가 된 것은 타이어. 옆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이 비슷한 타이어를 장착해야 하는데 일부 로체 차량은 서로 다른 타이어가 앞바퀴에 장착돼 주행중 차량 쏠림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불만이 빗발치자 건설교통부가 제작결함 심사평가위원회를 열어 이같이 결론냈다. 다만 타이어 결함은 타이어 제작사의 책임도 큰 만큼 완성차 회사의 제작 결함으로만 단정지을 수 없어 리콜 대신에 수리 권고 조치를 취했다. 르노삼성차도 중형 승용차 SM5에서 브레이크 소음과 핸들 떨림을 지적하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아 속앓이를 하고 있다. 자동차산업연구소 류기천 박사는 “자발적 리콜이라고는 하지만 새해 시작부터 리콜이 너무 많다.”면서 “업체들이 차량 출고 전 품질 심사를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희망 2007 새벽을 여는 사람들] (8)끝 부산 자갈치시장 상인들

    [희망 2007 새벽을 여는 사람들] (8)끝 부산 자갈치시장 상인들

    “희망을 갖고 힘차게 뛰어야죠.600년 만에 온다는 ‘황금돼지 해’라고 하니 올해는 좋은 일이 있지 않겠어요.” 날이 밝으려면 아직도 한참 있어야 하는 이른 새벽. 부산시 중구 충무동 자갈치시장은 기지개를 켠지 한참 됐다. 북새통을 이루는 저잣거리에는 생명의 거친 숨결이 뜨겁다. 12일 오전 5시. 자갈치 시장 저잣거리에는 밤새 잡은 활어를 위판하기 위해 공판장에 닻을 내리는 고깃배의 엔진소리, 경남 통영·남해, 전남 완도·여수 등 각 산지에서 밤을 세워 달려온 활어차, 그리고 짐을 싣고 내리는 손수레, 상인들의 부산한 몸놀림과 오토바이 소음, 비릿한 갯냄새 등이 함께 어우러져 이 곳만의 특별한 뭔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부산항 앞바다에서 부는 칼바람이 매섭지만 자갈치시장 상인들에게는 대수롭지 않다. 자갈치시장 상인들은 억세다. 이들의 흥정소리는 한치라도 더 나은 싱싱함을 낚으려는 외침이자 치열한 삶의 현장을 대변하는 소리이다. 여기에서는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오히려 무질서가 질서를 압도하는 느낌을 준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상인들의 고함소리가 오히려 정겹게 여겨지는 것도 이곳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자갈치시장의 하루는 늘 이렇게 어둠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시끌벅적하게 문을 연다. 자갈치시장 상인들은 3년여간의 임시 가건물 생활을 끝내고 지난해 12월 새로 지은 신축건물에 입주했다. 배모양의 현대식 건물 입구에는 복을가져온다는 황금돼지 조형물이 우뚝 서있다. 시장 건물 1층에서 어머니에 이어 2대째 어패류 가게를 하는 미자상회 주인 김대광(43)씨의 하루도 예외가 아니다. 전복 해삼 문어 등 해산물 도·소매업을 하는 김씨는 전날 오전 활어차를 몰고 전남 여수, 완도, 남해 등 산지에서 물건을 받아온다. 그는 “자정이나 오전 1시쯤 도착해 일식집 등 거래처에 보낼 물건을 선별하고 다듬다보면 너댓시간이 훌쩍 넘어버린다.”고 말했다. 도매를 하는 상인들은 김씨처럼 새벽녘에 모든 일을 끝낸다. 날밤을 새운 김씨는 오전 7시쯤 가게에 도착한 아내 김인영(가명·39)씨에게 가게를 넘기고 집으로 향한다. 가게 운영은 전적으로 아내 김씨의 몫이다. “하루 하루가 경쟁이죠. 벌써 이 생활도 20여년 가까이 되는데 경기가 그다지 좋지 않아 걱정입니다.”. 바로 옆에서 활어가게를 하는 양산 상회 주인 김종원(49·부산 영도구 남항동)씨도 27세때 이 곳에 발을 들여 놓았다. 개인사업을 하던 김씨는 2년 앞서 먼저 둥지를 튼 아내 곽세란(45)씨의 권유로 이곳에 오게 됐다. 그 역시 오전 6∼7시쯤 가게 문을 연다. 한평 반 남짓한 가게 수족관에는 광어 돔 장어 열기 민어 등 수십여 종류의 활어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손님들이 생선을 고르면 즉석에서 회를 떠준다. 김씨도 7년전만 하더라도 활어차로 남해와 전남 지역 등 산지를 돌며 활어를 직접 구입, 도·소매를 겸했다. 그러다 1999년 1월 산지에서 물건을 해오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가 불편해 지금은 활어차에서 물건을 받아 쓰고 있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며 일년에 추석과 설 등 명절 이틀씩 4일을 빼고는 매일 나와서 일을 한다.”는 김씨는 “열심히 일한 덕택에 다른 곳에 가게도 하나 장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사가 예전 같지 않아 걱정이다. 불경기 탓도 있겠지만 15년전에 비해 가게수가 배이상 늘어나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월세에다 활어값 등을 제하고 나면 겨우 부부 인건비를 건지는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씨 부부는 최근 재래시장 활성화와 새건물 입주 등에 힘입어 시장을 찾는 손님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봐요. 나보다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3남매가 아무탈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면 되잖아요. 뭘 더 욕심을 내겠어요.” 새벽을 여는 자갈치시장 상인들의 새해 소망이 이뤄지려는 듯 이날 아침 솟아오르는 태양이 부산 앞 바다를 더욱 붉게 물들였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문화마당] 지악무성(至樂無聲)의 역설/한명희 예술원회원·이미시문화서원 좌장

    오랜만에 삼한사온의 리듬을 되찾더니 엄동의 한 복판인 소한(小寒) 또한 제 구실을 해내고 있다. 때마침 흰눈까지 천지를 뒤덮으니 내 우거(寓居)인 교외의 한적한 계곡마을은 온통 침묵의 해일 속에 침잠되고 말았다. 새해 벽두의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며 곰곰 살펴 보니, 한겨울 특유의 침묵을 조장하거나 충동질하는 원인자들은 영락없이 뜨락의 나목(裸木)들이었다. 물론 지난해 가을 샛노란 볏짚으로 이엉을 올린 마당가 원두막 추녀 끝에 매달린 고드름이, 뽀얀 햇살을 받으며 떨구는 눈물방울에서도 무거운 겨울날의 침묵이 묻어나고, 때마침 중천의 명월이 온 누리를 천지백(天地白)으로 물들이는 교교한 겨울밤 삼경(三更)의 침묵 또한 여간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 단편적인 삽화들이 빚어내는 침묵의 무게는 울안에 총립(叢立)한 나목들이 빚어내는 깊고 넓은 침묵의 교향악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회양목, 향나무, 주목, 반송 등 검푸른 상록수들이 하얀 잔설을 이고 연출해 내는 청백대비의 시각적 침묵도 그러하거니와, 극명한 영욕의 성쇠랄까 그처럼 화사한 색채로 한철을 수놓던 진달래, 황철쭉, 백일홍, 불도화 등이 삭풍으로 바싹 마른 몇 줄기 가지로 그려내는 정적의 미세화는 여간 내밀하지가 않다. 그러나 역시 한 겨울 정적의 가없는 상념과 계시를 펼쳐 보이는 침묵의 교향곡 주선율은 아무래도 늠름하고 풍채 좋은 은행나무나 느티나무 같은 거목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이들 우람한 덩치의 나목들이 마치 동안거(冬安居)의 절간 같은 적료(寂廖)의 가락으로 탄주해 내는 ‘무언의 합주(無聲之樂)’는 창해수보다 깊고 곤륜산보다 중후하고 구만리 창공보다 드넓다. 장면을 바꿔, 저만큼 재 너머 서울의 하늘밑을 생각해 본다. 음향의 홍수다. 도처가 불협화의 소음들로 아비규환이다. 인간의 청각기능에 불원간 돌연변이 현상이 나타날 지경이다. 소리를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음식물 쓰레기는 소각장에라도 가지만, 한번 뱉어낸 소음들은 일파만파로 퍼져가며 사람의 가슴에, 날짐승 길짐승에, 돌부리 풀포기에, 달과 별들에 날아가 꽂히며 독이 되고 비수가 된다. 이같은 소음의 대열에서 음악 또한 열외가 아니다. 특히 가을철만 되면 갖가지 음악회로 홍수를 이룬다. 얼마나 가며롭고 아름다운 일일까마는,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많은 경우가 억지춘향으로 생경한 소음들을 뿜어내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음악이라는 추상의 베일 때문인지, 소리만 내면 음악이요 작품인양 호도하고 강변한다. 너무 인생을 알레그로로만 달리려 한다. 바삐 바삐 변죽만 울려대니 심금에 와닿는 음악이 나올리 없다. 뜸을 들이지 않으니 설익은 밥이 될 수밖에 없고, 외화(外華)의 거품만 좇다 보니 진수(眞髓)의 앙금이 고일리 없다. 그래서 확성의 기계음에 맞춰서 음악계가 춤추고, 난세지음(亂世之音)으로 사회가 요동치며, 망국지음(亡國之音)으로 나라가 위태롭다. 이쯤에서 우리는 잠시 선인들의 역설의 철학을 음미하며 음악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모색해볼 필요가 있겠다. 긴긴 겨울밤의 정적 속에서 왜 도연명이나 고려조의 이규보 같은 사람은 시흥이 도도해지면 차라리 줄을 끊어 줄 없는 무현금(無絃琴)을 탄주했으며, 노자 같은 현인이 왜 오색의 화려한 색채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의 영롱한 음향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한다고 했는지도 반추해봄이 어떨까한다. 플라토는 음악의 순기능을 인간의 열정을 ‘진정(calming)’시키는 것으로 보았고, 앞서의 노자는 진정으로 위대한 음악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으며(大音希聲), 장자의 경우는 가장 훌륭한 음악이란 소리가 없는 세계로 설정하며(至樂無聲) 그 최고의 단계에 하늘의 음악(天樂)을 상정하였다. 과연 저간의 우리네 음악환경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나목의 침묵 속에서 진지하게 길을 물어야겠다. 한명희 예술원회원·이미시문화서원 좌장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과거를 묻지마세요’의 나애심(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과거를 묻지마세요’의 나애심(1)

    정열적인 눈, 이지적인 마스크로 등장,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노래하는 스타, 즉 ‘싱잉 스타 시대’를 열었던 나애심(77)씨.1953년 ‘밤의 탱고’를 시작으로 300여 곡의 주옥 같은 노래를 남김과 동시에 1980년대 초까지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그는 스크린과 무대를 동시에 장악, 배우와 가수 두 분야에서 모두 큰 획을 그었던 인물이었다. 아울러 ‘백치 아다다’,‘과거를 묻지 마세요’,‘미사의 종’,‘아카시아꽃잎 필 때’ 등 직접 영화에 출연하며 동시에 영화주제가까지 히트시켰다. 당시로서는 꽤 큰 키에 속하는 162㎝에 ‘버스트, 웨이스트, 히프 사이즈가 몇이냐.’로 화제가 되며 한국 여배우 최초로 글래머 스타라는 칭호까지 얻은 그의 또 다른 애칭은 ‘한국의 안나 카시피’. 이렇듯 이국적인 용모가 돋보이던 나씨는 실제로 ‘춤추는 안나’라는 노래까지 발표했을 정도. 나씨로부터 시작된 글래머 스타, 즉 육체파 배우의 계보는 이후 김지미, 도금봉, 김혜정으로 이어졌다. ‘글래머스타’이자 ‘멋쟁이의 대명사’로 1950∼60년대 예술인들의 집합지인 ‘명동시대의 주역’이기도 했던 나씨는 또한 당대 예술가들과 폭넓은 교류를 가지며 시인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쓰고 극작가 이진섭씨가 즉흥적으로 곡을 붙여 만든 노래 ‘세월이 가면’을 현장에서 최초로 부른 일화 속 인물로도 유명하다. 본명은 전봉선(全鳳仙).1930년 9월5일 부친 전상연, 모친 장중차 사이의 5남3녀 중 장녀로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났다.‘과거를 묻지 마세요’ ‘미사의 종’의 작곡가 전오승씨가 바로 그의 친오빠. 진남포여고를 졸업한 뒤 잠시 아이들을 가르치던 스무 살 때 6·25 전쟁이 발발한다. 이어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된 이튿날, 그는 당시 정동방송국(현 KBS, 당시 이념의 혼란기라 ‘대적방송국’이라고도 부름)의 ‘HLKA 경음악단‘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던 오빠 전오승씨를 찾아 단신 월남한다. 이듬해인 1·4 후퇴 당시 서울로 피란내려온 나머지 가족들과 가까스로 상봉, 피란길에 오른다. “당시 오빠와 함께 방송국 경음악단에서 활동하던 박춘석, 최상용씨 등 연주인 여덟 명의 가족들, 총 80여명과 함께 남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피란민 행렬에 합류했어요. 먹을 것이 없어 한 끼 걸러 한 끼씩 동냥을 하며 죽음의 사선을 넘던 그 25일 간의 일들은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가슴이 메어옵니다.” 그의 회고다. 그렇게 정착한 대구 피란 시절, 그는 작곡가 김동진씨를 단장으로 이북 출신 예술인들로 구성된 ‘꽃초롱’ 단원으로 입단, 첫 무대 활동을 시작한다. 이 무렵 곽규석(후라이보이), 구민(성우) 그리고 현미(가수) 등과 오페라 ‘아리아’의 무대에 서기도 했고 또 호구지책으로 함께 피란생활을 하던 김미정(미스코리아 출신 영화배우, 가수 현인의 미망인), 그리고 이경희(영화배우), 그리고 막내 동생 전봉옥(가수) 등과 함께 ‘아리랑시스터즈’를 결성해 미8군 무대와 일반무대에까지 나섰다. 비록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지만 미군부대공연을 갈 때마다 손짓발짓해가며 군인식량이나 초콜릿,DDT, 휴지 등을 얻어 와야 했을 만큼 물자가 매우 귀했던, 절박한 시절이기도 했다. 이러한 와중에도 실력을 인정받은 나씨는 당시 대구에 있던 오리엔트레코드 녹음실을 빌려 정식 음반을 첫 취입한다. 전오승 작곡의 ‘밤의 탱고’,‘정든 님’ 같은 블루스 리듬의 곡들로 당시엔 녹음 시설과 방음 시설이 매우 열악해 어렵게 녹음을 끝낸 뒤 테이프를 틀어 보면 ‘재치국 사이소!’ 같은 당시 주위의 소음들이 종종 들어가 있어 몇 번이고 재취입해야 하는 소동이 다반사로 일어나던 시절이라 회고했다. 이 때 처음 사용한 예명이 나애심(羅愛心).‘나는 내 마음을 사랑한다.’라는 뜻을 담은 이름으로 ‘빈대떡 신사’로 유명한 가수 겸 작곡가 한복남씨가 지어준 것. 환도 직후, 영화배우로도 활동을 시작하는 그는 16㎜ 다큐멘터리 ‘여군’을 시작으로 ‘불사조의 언덕’ ‘미망인’ 등 전쟁영화에 이어 극영화 ‘구원의 애정’에서 첫 주연을 맡는다. 이 영화의 주제가가 ‘물새 우는 강 언덕’. 영화에서는 나씨가 이 주제가를 불렀고 음반으로는 백설희씨가 취입해 널리 알려진 노래다. 이어 문예영화 ‘물레방아’로 주목을 받은 그는 계속해서 계용묵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백치 아다다’에 캐스팅되는데 처음엔 기분이 매우 언짢았음을 숨기지 않았다. 가수로서 목소리 연기 또한 누구보다 자신 있었는데 하필 대사가 거의 없는 언어 장애인 역할이 맡겨진 것이 나름대로 불만이었던 셈. 그러나 6개월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촬영된 이 영화의 연출을 맡았던 이강천 감독은 늘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그의 선글라스 아래에는 항상 눈물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이 감독의 실제 다섯 살 난 딸이 바로 언어장애인이었기 때문. 해서 나씨는 ‘아다다’ 역을 위해 온몸을 던져 열연함과 동시에 ‘가고파’의 작곡가 김동진씨가 곡을 쓰고 홍은원씨가 노랫말을 만든 주제가 또한 발표되자마자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큰 반향을 몰고 왔다. 결국 이 ‘백치 아다다’는 그의 대표곡이자 대표작으로 자리잡는다.1956년의 일이다.(계속)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홍두식의 루어낚시 따라잡기] 전남 고흥 해창만 배스낚시

    겨울철 배스낚시 여건은 좋지 못하다. 따뜻한 남쪽으로 장거리 출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생스럽게 먼곳을 찾아도 조황을 보장받지 못하는 계절이도 하다. 겨울철 천혜의 배스낚시터로 급부상하는 곳이 있다. 전남 고흥의 해창만수로. 간척 매립공사로 인해 생긴 수로 형태의 호수다. 3개의 배수갑문 사이로 바다와 접해 있어, 저수지나 내륙의 수로에 비해 염도가 높다. 그다지 춥지 않은 날씨와 염분 덕에 한 겨울에도 결빙이 잘 되지 않아 물낚시가 가능하다. 게다가 수로 전역을 촘촘하게 뒤덮은 갈대는 매복을 좋아하는 배스들의 천연 스트럭처가 되고 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끝없는 지류들과 그 속의 많은 배스들이 장거리 출조도 주저하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무성한 갈대들 탓에 도보로 진입할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라는 것이 단점. 이곳을 찾는 배서들은 땅콩보트나 고무보트를 이용할 것을 권한다. 겨울철에는 아침보다는 햇살이 퍼지는 낮 시간대에 더 기대를 걸어야 한다. 배스의 식욕은 수온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포인트 선정. 평균 수심이 2∼3m, 깊은 곳이라도 7∼8m정도이기 때문에, 밀집된 스쿨링 형태보다는 얕은 곳과 깊은 곳을 오가며 활발히 먹이 활동을 할 수 있는 수심대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채비는 지그헤드 1/16 온스에 2∼3인치 정도의 에코기어 버그엔츠 같은 수서곤충 타입의 웜을 끼워 사용하면 효과적이다. 채비가 물에 떨어지는 순간과 액션을 가하는 순간 입질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해창만 배스들의 특징 중 하나는 포인트 한곳에서 많은 수의 배스를 뽑아 낼 수 있다는 것. 한 마리를 뽑아낼 때 나는 소음을 주변에 숨어 있는 배스들이 먹이활동으로 착각하여 몰려드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한자리에서 20∼30마리를 낚을 수도 있다. 씨알은 주로 20∼25㎝.40㎝짜리도 간간이 잡힌다. 작년 12월 중순쯤엔 하루에 300마리 가까이 잡은 배스낚시인도 있다고 하니, 손을 덜 탄 배스를 찾아 먼 곳을 오가는 열정을 쏟을 만도 하다. 에코기어 프로스탭
  • 관악구, 건축현장 소음 규제한다

    관악구, 건축현장 소음 규제한다

    관악구(구청장 김효겸)가 건축공사장에서 발생하는 소음·진동·분진을 없애는 데 발벗고 나섰다. 구는 ‘그린관악 만들기 건축공사장 관리계획’을 마련, 이달부터 시행한다고 8일 밝혔다. 우선 건축허가를 내줄 때 소음 저감 가이드라인을 조건으로 붙이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건축공사장의 소음·진동은 주간 65㏈ 미만, 야간 55㏈ 미만을 넘을 수 없다. 또 휴일·공휴일·새벽에는 소음이 발생하는 공사를 중지해야 한다. 비산먼지의 경우 공사장 도로변에 1.8m 이상의 가설 울타리를, 토사가 들어오고 나가는 곳에 고정식, 이동식 살수기를 설치해야 한다. 또 ‘쾌적한 주거환경과 그린과학을 지키기 위해 건축허가 조건을 준수하겠다.’는 건축주 서약서를 제출해야만 공사 착공을 신고할 수 있다. 공사장 소음 실명제도 시행할 방침이다. 소음 저감 가이드라인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건축주는 강력한 행정처분을 받는다. 민원이 발생했는데도 개선하지 않으면 구는 민원제기 2회에 공사중지 2일, 민원 3회에 공사중지 5일을 처분할 계획이다. 지시사항을 개선하지 않으면 상습위반 공사장으로 파악, 고발 조치한다. 김효겸 구청장은 “쾌적하고 살기 좋은 고장을 만들기 위해 건축공사장 소음·진동을 대폭 줄이려 한다.”면서 “공사장 관련 민원이 발생하지 않을 까지 행정처분을 강력히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Local] 대전지하철 서비스 수준 낮아

    대전지하철의 고객서비스와 안내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 대전시도시철도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개통 10개월을 맞아 대전발전연구원에 의뢰해 고객 600명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조금 만족’ 수준인 평균 74.3점을 얻었다. 조사대상 33개 항목 가운데 안정성이 80점을 얻어 가장 높았고 요금지불체계 76점, 열차내 환경 75점, 열차운행 74점 등을 얻었다. 하지만 고객서비스는 73점, 안내체계는 71점에 그쳐 비교적 낮은 수준을 보였다. 운행 중 소음도 62점을 얻었고 역사내 문화공간 이용의 편리성이 59점으로 가장 낮았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롯데월드 한달째 배짱영업

    국내 최대 규모의 실내 놀이시설인 서울 잠실동 롯데월드 어드벤처의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안전진단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롯데월드가 이를 무시하고 한달여 동안 영업을 강행, 안전 불감증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5일 건물 구조진단업체인 ㈜동양구조가 롯데월드의 용역을 받아 한국재난연구원과 함께 지난해 10월부터 2개월 동안 벌인 ‘정밀 안전진단 종합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놀이기구인 환상의 오딧세이와 크레이지범퍼카, 영상모험관 등 3곳의 영업장을 즉시 폐쇄하고 보수공사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시설들은 천장 구조물에 일부 균열이 발생, 즉시 보수하지 않으면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보고서는 또 혜성특급과 범퍼카의 천장에도 균열이 나타났고, 스포츠센터 수영장도 부식돼 영업장 폐쇄 뒤 보수공사를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시설 내부 곳곳에 전선이 노출돼 있고 허용 전류 기준에도 못미치는 전선을 사용하고 있어 감전이나 화재발생 위험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어드벤처의 대형 천장과 벽체 일부가 놀이기구 진동으로 인한 고정장치 불량으로 보수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1989년 7월 개장한 롯데월드에서는 지난해 6월 천장에서 가로 세로 30㎝ 크기의 마감재가 떨어져 놀이기구를 타던 아이가 머리를 다치는 등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계속 제기돼 왔다. 지난 달 초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롯데월드를 다녀왔던 김모(41)씨는 “회전놀이 기구 아래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놀이기구가 지나가자 큰 소음과 진동이 발생해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면서 “건물이 진동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롯데월드는 지난달 5일 업체로부터 이 같은 결과를 통보받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계속 영업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롯데월드는 개보수의 필요성은 있다고 보지만 영업장을 즉시 폐쇄할 정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롯데월드 관계자는 “우리 스스로 외부업체에 안전진단을 맡겼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자체 전문가들이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면서 “다음달부터 수영장을 리노베이션하는 등 계획적으로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건축가의 생활 탐험] 야외의 발견

    [건축가의 생활 탐험] 야외의 발견

    글 황두진 건축가 몇 년 전 나는 ‘공극율’이라는 것에 대한 작은 논문을 쓴 적이 있다. 공극율이란 어떤 물체 전체에 대한 비어 있는 부분의 비율을 말한다. 예를 들어 숯이나 스펀지는 대표적으로 공극율이 높은 것들이다. 그 논문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공극율의 개념을 건축에 적용하는 문제에 대해서였다. 건축에서 공극에 해당하는 부분은 실내, 즉 바닥과 천장, 벽과 창호로 둘러싸인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다. 발코니와 필로티(천장과 기둥만 있고 벽이 없는 공간)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옥은 매우 공극율이 높은 건축이다. 앞뒤로 열린 대청마루, 깊은 처마 밑, 대문간, 심지어 마당도 넓은 의미에서 모두 공극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한옥의 아름다움은 사실상 대부분 이러한 공극의 존재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한옥은 매우 여유 있고 자유로운 공간의 흐름을 갖는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야외를 실내처럼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사찰에서 큰 행사를 할 때 야외에 커다란 단을 쌓는다는 뜻에서 야단법석(野壇法蓆)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마당극이라는 단어 또한 일상화된 야외활동의 증거다. 겨울이 매섭도록 추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야외활동이 성행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농업국가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김장철의 한옥 마당처럼 우리에게 야외란 작업장이었고, 실내의 연장이었으며, 그 안에서 삶의 많은 부분이 영위되는 기능성 공간이었다. 결코 집이 들어서고 난 나머지 부분은 아니었다. 우리는 공극을 즐기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근현대에 들어 이러한 공극은 서서히 우리의 생활에서 사라져 갔다. 아니, 공극을 가치 있게 여기고 즐겁게 사용하는 마음가짐이 점차로 없어졌다. 그 결과가 가장 한탄스럽게 나타난 것이 바로 한옥이다. 우선 사람들은 대청을 앞뒤로 막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처마 끝까지 방을 내달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당을 덮음으로서 한옥이 갖는 모든 공극을 제거했다. (한정식 식당 등에서 대표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변화다.) 이렇게 되면 솔직히 말이 한옥이지 단순한 상자에 한옥의 겉모양을 붙인 것과 같은 집이 된다. 현대건축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아파트 발코니를 바닥면적에 산입한다, 안 한다가 아직도 신문기사에 종종 등장하는 현실이다. 발코니는 당연히 막아서 사용하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신혼 초에 살던 작은 아파트에서 우리 집만 발코니를 막지 않았었다. 그런데 밖에서 볼 때 미관이 나빠지고(!) 집값이 떨어진다고(!!) 주민들이 은근히 막을 것을 강요한 경험도 있다. 발코니에서 책도 보고 가끔 식사도 하던 나로서는 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로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환기나 채광, 적절한 공간적 여유, 무엇보다 흥미로운 생활의 가능성 등을 위해 건물의 여기저기에 공극을 만들어 놓으면 집주인들이 준공 즉시 죄 막아버릴 계획을 세우곤 하는 것이다. (심지어 담당 공무원이 ‘이거 나중에 다 막아서 쓰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묻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아예 미리 공극이 없는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 그나마 건물의 외관이라도 잘 유지하는 방법이 아닌가라는 다소 비관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 결국 상대를 봐가며 설계하는, 별로 원치 않는 직업의 지혜를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전반적 상황은 희망을 갖게 한다. 마치 우리 사회 전체가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야외라는 개념을 다시 발견한 듯하다. 어느 순간부터 야외 카페라는 것이 인기를 끌더니 여기저기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기 시작했다. 비워져 있던 빌딩의 옥상에 정원을 꾸미는 경우도 많아졌다. 심지어 잘 만든 옥상정원에 대해 관청에서 상을 주는 제도도 생겼다. 한편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마당을 가꾸고 그곳에서 이런저런 삶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아파트가 도저히 제공할 수 없는 소중한 삶의 가치로 생각하는 경향도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아파트에서도 한동안 가장 인기 없었던 최상층이 펜트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상종가를 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랫동안 생활이란 실내에서만 하는 것으로 생각해왔던 사람들이 밖에서도 삶의 많은 부분이 이루어질 수 있고, 심지어 더 즐거울 수 있다는 아주 평범한 사실을 다시 깨달은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조건이 따른다. 무엇보다 먼지와 소음의 문제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점차로 초고속 개발의 시대를 지나면서 이런 문제들은 점차로 완화될 조짐이 보인다. 심지어 시장 선거에 ‘깨끗한 공기’라는 슬로건이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겐 무엇보다도 혜택 받은 한반도의 자연과 기후가 있다. 특히 요즘 같이 상쾌한 가을, 약간의 겉옷을 준비해서 어디 호젓한 곳에 앉아 책이라도 읽으면 ‘럭셔리 라이프’가 따로 없다. 다시 발견한 야외, 그 소중한 가치를 실컷 즐기게 하는 건축을 만들고 싶다.     월간 <삶과꿈> 2006.12 구독문의:02-319-3791
  • 젊은 ceo의 조건

    젊은 ceo의 조건

    한나패드 장영민 대표(26세)의 말에 따르면 소상공인지원센터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두 부류가 있다. “내가 지금 돈이 얼마 있는데 어떤 사업을 하면 잘되겠느냐?”고 묻는 부류와 “내가 이 사업을 하고 싶은데 돈이 얼마나 필요하느냐?”고 묻는 부류. 이 중 누가 성공할 가능성이 있을까? 그의 대답은 후자이다. 하고 싶은 일에서 즐거움과 가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대학시절 생리통이 심했던 여자친구 때문에 처음 면 생리대를 접하게 되었다. 피부질환으로부터 안전하고, 환경오염을 줄이는 면 생리대의 장점을 발견하고는 머릿속엔 온통 생리대 생각뿐이었다. 원단을 구입하기 위해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고, 벽장에 숨겨둔 공업용 재봉틀 소음이 새어나갈세라 이불을 뒤집어쓰고 샘플을 만들었다. 변태가 아니냐고 오해하는 친구도 있었고, 사업에 미쳐 여자친구와 이별도 했지만 끝내 창업자금 4백만 원을 모아 회사를 차렸다. 어차피 입사해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면 젊은 시절에 창업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하지만 열정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닐 터. “한 조직의 책임자는 무수한 고민과 번뇌 속에 있습니다. 직원들은 비전을 제시해주기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때로는 그들의 생활과 자녀 문제까지 생각해야 하죠. 단순히 일거리를 끌어오고, 월급만 잘 준다고 CEO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는 젊은 예비 CEO들에게 당부한다. 돈과 명예만 추구한다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고. 기꺼이 병사들의 목숨을 돌보는 전쟁터 사령관이 되어야 한다고. 자신의 열정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CEO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취재, 글_ 강성봉 기자.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그들만의 식탁/황시운

    뼛조각을 쥔 남자의 손가락에 양념이 엉겨 붙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댔다. 엄마는 간혹, 맨밥만 끼적이고 있는 내 쪽으로 슬며시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밀어주었다. 그러나 꼬리찜의 기름이 둥둥 뜬 나박김치, 허연 밥풀이 앉은 겉절이, 되는 대로 헤쳐 놓은 나물들까지, 어느 것 하나 남자의 흔적이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된장찌개로 수저를 가져가려다 또다시 멈칫했다. 밥풀이 잔뜩 묻은 남자의 숟가락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찌개냄비를 휘젓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남자의 수저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봤다. 내 시선을 의식한 엄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양 볼이 메어져라 우겨 넣은 음식들을 우물대다 말고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남자의 수저를 흘끔댔다. 남자도 쥐고 있던 자신의 수저를 내려다봤다. 수저엔 여전히 밥풀과 음식의 양념들이 지저분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커다란 식탁 앞에 둘러앉은 우리 세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흔치 않은 순간이었다. 남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러나 남자는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엄마 역시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찌개를 떠먹었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맞은편의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기엔 우리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커다란 식탁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와 엄마의 얼굴이 차츰 흐릿해졌다. 나는 잠시 멀거니 찌개 위에 뜬 기름기를 바라보았다. 찜 그릇이 다 비워지자 남자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남자의 시선은 엄마가 덜어놓은 내 접시 위 꼬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속이 울렁댔다. 나는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왜, 좀 더 먹지 않고…….” “그러지 그러냐. 이거, 오늘 고기가 유난히 단데 말이다.” 엄마의 걱정에 남자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남자의 손은 이미 내 접시 위의 꼬리를 덥석 집어 들고 있었다. “전 다 먹었어요. 마음 쓰지 말고 더 드세요.” 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향해 짐짓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집안 가득 밴 음식냄새 때문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뼈에 붙은 고깃점을 다 훑은 남자가 크게 트림을 하며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엄마는 급히 남자에게 물수건을 건넸다. 그러나 남자는 건네받은 물수건으로 손가락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닦는 대신 땀이 흐르고 있는 얼굴과 목덜미를 훔쳐냈다. 남자는 엄마의 네 번째 남자였고 내게는 세 번째 저기요였다. 엄마의 남자들에게 나는 단 한번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내게 아버지는 엄마의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흰 피부의 키가 큰 남자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흰 피부와 큰 키를 가진 엄마의 다른 남자들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호칭을 생략하려 애썼지만 부득이한 경우 나는 늘 그들을 저기요, 라고 불렀다. 저기요, 식사하시래요. 저기요, 전화 받으세요. 저기요……. 코끝을 쏘는 고추냉이의 냄새와 생선 비린내를 감지하는 순간, 경화제를 섞은 실리콘을 휘젓던 팔에서 힘이 쑥 빠지고 말았다. 독한 경화제 냄새 속에서도 용케 부품들의 생생한 냄새를 찾아내고야 마는 유난스러운 후각에 진저리가 쳐졌다. 모두들 퇴근하고 난 토요일 밤, 휑한 제작실의 공기가 후각을 한층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충분히 저은 실리콘을 골판지 틀 안에 천천히 붓자 후각을 자극하던 부품들의 냄새도 실리콘 반죽 속에 갇혀 버렸다. 드라이어의 온도를 최대한 낮춰 틀 위에 가져다 댔다. 원칙적으로 실리콘 틀은 자연건조시켜야 하지만 납품기일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제작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쯤 그는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는 아내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별스러운 걸 기대했던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소박한 식탁에 마주 앉아서 대수로울 것 없는 잡담이나 나누며 함께 밥 먹는 일상을 원했던 것뿐이라고.” 오 년여의 시간을 정리하던 날 그가 말했다. 시종일관 차분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했던 나와 달리, 그날 그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들을 두서없이 쏟아놓았다. 도저히 널 이해할 수가 없어, 라고 말할 땐 눈물이 그렁하게 맺히기도 했다. 그 뒤로도 서너 번쯤 더 그를 만났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막막한 심정으로 마주 앉아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다 헤어졌다. 나는 누군가와 식탁 앞에 마주 앉아서 잡담이나 늘어놓으며 보내게 될 일상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얼마 후, 그는 결혼을 했다. 드라이어를 내려놓은 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빼 물었다. 그러나 곧 담배를 담뱃갑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제작실 문에 걸린 금연 푯말을 일별한 후 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를 서성이다 빈 사무실로 들어섰다. 책상 위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과식 소화불량에 파라나 정―변비 식욕부진에 카이셀 과립’. 맞은편 건물 위에 세워진 전광판의 글자들이 색깔을 달리하며 우르르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애초부터 자신들 사이에 괴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불을 켜지 않았지만 좁은 사무실은 전광판이 뿜어내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다. 볕에 널어뒀던 북어껍질을 거둬들이는 엄마의 손이 붉게 빛났다. 노을은 엄마의 손뿐만 아니라 부엌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엄마는 나무 도마 위에 북어껍질을 뒤집어 올려놓고 절굿공이로 타닥타닥 두드렸다. 좁고 동그란 엄마의 어깨가 유연하게 들썩였다. 엄마는 편편하게 다듬어진 북어껍질을 물에 담가둔 뒤 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살짝 데친 숙주를 잘게 썰고 으깬 두부를 면포에 싸 꼭 짜냈다. 핏물을 뺀 소고기까지 다져낸 엄마는 준비해둔 재료들을 한데 그러모아 양념하고 치대기 시작했다. 얇은 면 티셔츠가 등에 들러붙어 있었다. 엄마의 뒷모습엔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음식을 만드는 순간의 엄마는 다른 어떤 때보다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뒷모습이 만들어내는 표정은 언제나 그늘져 있었고, 그늘 속의 엄마는 날이 갈수록 창백해졌다. 엄마는 물에 불린 북어껍질을 건져 비늘을 긁어냈다. 물에 분 북어껍질은 탱탱하게 되살아나 있었다. 그러고는 반듯하게 잘라낸 북어껍질에 소를 넣어 아물린 뒤 계란 옷을 입혀 지져냈다. “너무 기름지면 개운한 맛이 덜하니까 주의해야 해. 소고기 대신 북어대가리로 육수를 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지.” 지져낸 전은 한 김이 빠지자마자 냉동실에 넣어 식혔다. 잠시 뒤 엄마는 북어대가리와 무, 그리고 파만으로 우려낸 육수에 나박나박 썬 호박과 함께 식혀뒀던 전을 넣었다. 엄마는 국물이 한소끔 끓자 된장을 풀면서 다시 말했다. “된장은 마지막에 풀어라. 처음부터 장을 풀고 끓이면 떫은맛이 나기 십상이거든. 맑게 끓이려면 국간장으로 간을 해도 괜찮고.” 엄마는 썰어놓은 파와 미나리를 끓고 있는 탕 속에 집어넣으며 처음으로 내 쪽을 돌아봤다. “지금이야 쓸데없는 소리 같겠지만 들어둬라. 들어두면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있겠지.” 신문을 뒤적이던 저기요가 엄마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식구가 쓰기엔 너무 큰 식탁은 곧 엄마의 음식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저기요는 벌써부터 커다란 식탁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뒀지만 어글탕의 비릿한 냄새는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또다시 위가 저릿대기 시작했다. 엄마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엄마보다는 엄마가 만든 음식에 홀려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언제나 엄마가 야물게 차려내는 음식에만 열중할 뿐, 엄마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엄마의 남자들이었지만 솜씨 좋은 요리사를 찾는 단골손님들 같기도 했다. 엄마 역시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 틈에서 나는 맛깔스러운 음식을 차려내는 요리사의 딸로서 그들 모두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엄마의 남자들과 엄마 사이에 음식 이상의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 따위도 문제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마치 잘 차려진 음식상에 어울리지 않게 놓인 이 빠진 종지 같았다. 나는 날마다 타들어 갔다. 엄마가 만들어내는 온갖 맛깔스러운 음식들도 나를 살찌우진 못했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이렇게 대단하신데 어떻게 넌 그렇게 비쩍 마를 수가 있었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어머니, 한영이 얘, 다이어트 한답시고 걸핏하면 굶고 그러죠?” 처음 인사를 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날 그가 말했다. 엄마는 말없이 엷게 웃어 보였고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서글서글한 성품의 그는 식사를 하는 내내 감탄 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엄마와 나의 세 번째 저기요는 흐뭇한 얼굴로 그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음식 타박 없이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날, 두 남자가 게걸스레 먹어댄 음식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나는 저녁 내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야, 어머니 음식 솜씨 정말 대단하시더라. 나 완전히 횡재한 기분인 거 있지? 어머니 닮았으면 너도 보통 솜씨는 아닐 거야. 그렇지?” 그 뒤로도 그는 종종 벌쭉벌쭉 웃어가며 만족스러워하곤 했다. 자신의 예상이 완벽하게 빗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 실망하는 기색은커녕 넉살 좋게 객쩍은 농담을 던지며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딸은 엄마 닮는다는데, 그 피가 어디로 가겠냐? 안 해봐서 그렇지 너도 했다 하면 보나 마나 끝내줄 거라니까.” 그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그의 말이 사실이면 어쩌나 싶어 한동안 몹시 불안했다. 엄마는 그 유난스러운 손맛 때문에 한순간도 자신의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손가락까지도 어쩌면 그렇게 쭉 고르고 하얗던지, 처음 봤을 땐 꼭 멀미라도 치밀 것처럼 속이 다 울렁댔더랬지. 그렇게 훤칠한 양반이 매번 앉은 자리에서 해장국을 두 사발씩이나 뚝딱뚝딱 비워내는데,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던 건지 볼 때마다 속이 짠한 게….” 결국 나는 솜씨 좋은 해장국집 외동딸이 자신의 가슴을 짠하게 한 남자를 위해 뚝배기에 아낌없이 퍼 담아줬던 선지 덩어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었다. 한번도 묻지 않았고 엄마 역시 이후의 일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었지만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멀미기가 치밀 만치 하얀 피부를 가졌던 그 훤칠한 양반은, 사실 선지 해장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혼기 놓친 해장국집 외동딸 따위가 눈에 찰 리 만무했을 것이다. 입에 맞는 해장국을 먹기 위해 일생을 걸 남자가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엄마의 첫 번째 남자이자 나의 아버지였던 양반은 머지않아 해장국보다 더 나은 먹거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끝. 통속적이지만 명쾌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가정식 백반으로 식당의 메뉴를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음식 장사에 매달렸다. 타고난 손맛 때문인지 식당은 언제나 손님들로 붐볐고, 덕분에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리 생각해 보려 해도 엄마는 그때 음식 장사를 시작해선 안 되는 거였다. 선지 덩어리를 퍼 담아 주다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를 들쳐 업고 기껏 다시 시작한 일이란 게 음식 만드는 일이었다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는 해도 엄마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무책임했다. 생의 대부분을 음식 냄새 속에 갇혀 지내는 동안, 엄마는 요리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점점 무관심해져 갔다. 엄마가 찾아낸 새로운 삶이었을 저기요들조차 모두 엄마의 백반 집과 갈비 집의 단골손님들이었다. 이를테면 엄마는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온 셈이었다.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마다 엄마는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행동했다. 간혹 내 의견을 물어오기도 했지만 내가 보이는 반응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물론, 단 한번도 엄마의 결정에 반대하거나 돼먹지 못한 심술을 부려 엄마와 저기요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사실, 엄마의 방으로 옷가지 몇 벌을 옮겨왔을 뿐인 단골손님들에게 내가 불손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각자 어딘가 조금씩 불편하고 거북하긴 했지만 우리들의 동거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만만한 게 뭐라고, 아무튼 제작팀을 무슨 개똥대가리로 안다니까! 납품기한 하나 제대로 조절 못하는 즈이 놈들 책임은 간데 없고 허구헌날 나만 들볶으면 안 될 일이 된대? 에이, 썅!” 작업가운을 벗어 던진 제작팀장이 담배를 빼물었다. 그러고는 서너 번쯤 신경질적으로 빨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진 뒤 제작실을 나가버렸다. 부서져라 닫은 문에 걸린 금연푯말이 덜렁댔다. 팀장은 종종, 자신이 늘 하는 말처럼 제작팀을 개똥대가리 취급하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를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말 기세로 성깔을 부려대곤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지, 그는 덜렁대는 금연푯말이 채 멈추기도 전에 다시 제작실 문을 기세 좋게 열고 들어와 나머지 팀원들을 몰아치곤 했다. “다들 들었지? 개 썅! 드럽고 치사하지만 어쩌겠어, 까라면 까는 수밖에. 자, 분발들 하자고!” 결국 그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퍽 유능한 관리자인 셈이었다. 예열 된 오븐 안에 모형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타이머를 조절한 뒤 새로 작업할 음식의 부품들을 정리했다. 팀장은 조금 전 오더가 넘어온 열한 가지나 되는 스테이크의 메뉴와 자료들을 내게 넘기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까지는 완성해야 된다고 지레 숨넘어가는 소리를 해댔다. 물컹대는 스테이크의 표면을 마른 수건으로 세심하게 닦아낸 뒤 작업판 위에 접착했다. 골판지로 스테이크와 부품들의 주변을 두르고 파라핀으로 테두리를 마무리했다. 온갖 음식 부품들과 화공약품의 냄새가 뒤섞인 작업실은 마치 거대한 냄새창고 같았다. 종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환풍기 소음 때문에 골이 지끈거릴 지경이었지만 이 지독한 냄새를 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테이크의 틀을 완성한 뒤 성형이 끝난 초밥 부품들의 착색 작업을 시작했다. 날 생선을 주로 쓰는 일식은 무엇보다도 색감의 표현이 중요하다. 각각의 생선부품들에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간단한 스프레이 작업 후, 보다 세밀한 표현을 위해 붓을 들었을 때 작업대 위에 올려뒀던 핸드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발신번호를 확인한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램프는 한참을 더 깜빡이다 꺼졌다. 칠 개월 만이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망설임 없이 뛰어넘어도 괜찮을 만큼 달라진 상황들이 단순한 것도 아니었다.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머리가 무거워졌다. 잠시 후, 다시 램프가 깜빡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붓을 쥔 채로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붓에 묻은 물감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시너 통에 붓을 헹군 뒤 천천히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 나야.”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낯설었다. “좀 만났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전보단 확실히 낮아진 목소리도 조심성 없는 그의 성품을 감춰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달라진 상황들로 인해 망설이고 있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결국, 아직은 서로의 목소리를 잊어도 좋을 만큼 멀리 오진 못한 셈이었다. 모형음식이 필요한 이유와 그것의 가치는 일맥상통한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량생산으로 맞춘 듯이 찍어내는 싸구려 모형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모형음식의 예술적 승화 운운하며 걸핏하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릴 해대는 제작팀장이나, 직원들 보너스조차 변변히 챙겨주지 못하면서 소규모 주문제작만을 고집하고 있는 회사의 오너조차도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모형음식은 신기한 볼거리도, 획기적인 전시 아이템도 아니라는 점이다. 가짜들에 대한 환상 따위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환상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모로 열악한 여건들을 감수하면서까지 뒤늦게 이 일을 시작한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모형음식은 음식을 포함한 모든 환상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유일했고 완벽했다. 착색을 마친 모형에선 금방이라도 물기가 비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붓을 내려놓은 뒤에야 참았던 숨을 조심스레 몰아쉬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전화에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언제고 그가 연락을 해오리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그가 나를 떠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을 쏘이자 딱딱하던 생선 모형들이 노골노골해졌다. 고추냉이를 표현한 초밥 위에 접착제를 바른 뒤 부드러워진 생선을 얹었다. 손으로 초밥을 꼭 감싸 쥐었다. 따뜻했다. 헛헛하던 속이 비로소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는 음식 따위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엄마가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과 헤어질 때 역시 나는 별다른 감응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헤어짐의 원인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그럴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저기요가 짐을 꾸리며 내뱉은 말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저놈의 자식이랑 같이 밥상머리에 앉아 있다 보면 내가 무슨 개, 돼지가 된 것 같단 말이야! 더러워, 아주 더러운 기분이야!” 그는 순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랬다. 식당근처의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남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의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곤 했다. 엄마도 단 음식을 유난히 싫어하는 그를 위해 음식의 간을 따로 할 만큼 그에게 각별한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또, 엄마와 살림을 합친 후부터는 나에게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나는 그가 엄마 모르게 쥐어줬던 약간의 용돈을 매번 무척 요긴하게 쓰곤 했다. 물론 그런 그에게 특별한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와 함께 한 밥상머리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을 만큼 별나게 굴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지만, 사춘기를 무기 삼아 공연한 심술을 부려댈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아저씨는 그저 엄마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이야.” 엄마의 위로도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언제나 웃었다. 엄마에게도, 저기요에게도, 심지어 엄마의 음식들에게조차 나는 웃어 보였다. 엄마의 집으로 많지 않은 짐들을 옮겨오던 날, 세 번째 저기요는 말했다. “너랑 불편하게 지내게 될까봐 은근히 마음이 쓰였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보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응?” 나는 그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함께 산 지 오 년이 넘도록 그는 내가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헛웃음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그도 어쩌면, 그것이 헛웃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런 거라면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유가 뭐냐? 오 년씩이나 잘 만나던 사람이랑 느닷없이 헤어졌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냔 말이다. 집에 인사까지 시켜놓고 이제 와서 결혼 못하겠다고 나자빠진 이유가!” 뒤늦게 그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다그쳤다. 하고 싶은 말도 해줄 말도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엄마와 엄마의 남자들에게 담담했던 것처럼 엄마도 내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게 알고 싶은 거죠? 엄마가 그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왜냐구요? 도무지 결혼이라는 게 현실 같지가 않아서 싫었어요. 당연한 일 아니에요?” 엄마의 삶을 비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삶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나에겐 엄마의 삶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비록 엄마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내 지난 시간들이 상한 음식처럼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그늘 속에 방치되어 왔다 해도 말이다. 그때, 엄마의 선택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엄마 혼자만의 탓이 아니었다. 게다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가장 괴로웠을 사람은 누구보다 엄마 자신이었을 테니, 나까지 거들지 않는다 해도 엄마는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의 문제였을 뿐이다. 엄마도 그걸 이해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초밥모형의 주문처는 확장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회전초밥 집이다. 주문량은 회전용 접시 스물두 개 분량이다. 모리작업을 위해 색색의 접시들을 꺼내 깨끗이 닦았다. 회전초밥 샘플의 경우엔 특별한 데커레이션이 필요 없다. 자료사진과 비교해가며 각각의 접시 위에 초밥모형들을 접착했다. 그러나 업체 쪽에서 넘겨준 자료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초밥 집에서 판매되는 음식들은 모형에 훨씬 못 미칠 것이 뻔했다. 그런 지경으로 어떻게 가게를 확장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접착제 튜브를 내려놓고 뻣뻣해진 뒷덜미를 꾹꾹 주물렀다. 잠시 후 그를 만나면 함께 식사를 할 것인지 얼른 결정을 해야 했다. 그와 마주앉아 음식을 먹는 일은 보나마나 고역일 것이다.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음식을 먹든 안 먹든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코팅작업을 위해 클리어래커에 래커시너를 배합하고 있을 때 휴대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작업실을 가득 메운 시너냄새를 뚫고, 이미 휘발되었던 그가 온전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순간, 약속장소를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던 장소이기도 한 레스토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긴, 채 일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달라질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난 칠 개월은 그와 나, 우리 두 사람을 변하게 하기에만도 벅찰 만큼 짧은 시간이었을 뿐이다. 점심시간인데도 레스토랑은 한산했다. “네가 만드는 음식모형쯤으로 생각하면 돼. 어차피 너에게 실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잖아?” 그는 빈정대고 있었다. 앞에 놓인 음식이 다 식어빠지도록 끼적대고만 있는 내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널 다시 만나고 싶어, 라고 말했다. 나는 칠 개월 만에 다시 연락을 해온 그가 조금쯤은 초췌해졌거나, 적어도 이전보다는 깊은 눈을 갖게 되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전보다 훨씬 부예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의 디자인에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음 직한 동창생 아내의 흔적까지 덕지덕지 바르고 나타났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빈정거리고 있었다.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 스테이크의 붉은 속살을 포크로 쿡쿡 찔러대고 있던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아직도 내게 기대하는 게 남았다는 뜻이야? 도대체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게 뭔지, 전혀 모르겠어.” 부지런히 음식을 씹고 있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양손에 쥔 채 말했다. “화가 나면 그냥 화를 내. 차라리 쥐고 있는 포크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버려. 제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사람 좀 질리게 하지 말란 말이야! 넌 늘 그런 식이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이미 결정해 놓고도 망설이는 척……. 그런 식으로 너 자신을 방어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나본데, 웃기지 마. 넌 그냥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뿐이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나는 딱딱한 음식모형을 만드는 여자에게 가장 잘 어울릴 만한 표정이 뭘지 항상 궁금했다. 회사를 나서기 전에 한 움큼이나 되는 약을 먹어뒀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목구멍을 타고 신물이 역류했다.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물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주말에 전화해. 주중엔 당신뿐 아니라 누구와도 잘 수 없을 만큼 바빠. 그리고 다시 만날 땐, 제발 그 타이핀이랑 커프스버튼은 빼고 나타나 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이 흔들렸고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동시에 뺨이 얼얼해졌다. 아프긴 했지만 화가 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다. 나이프의 날엔 스테이크소스가 지저분하게 엉긴 채 굳어 있었다. “진정해. 혹시 포크로 내 얼굴을 찌르고 싶더라도 참아 줘. 우린 칠 개월 만에 만났어. 그 사이 당신은 결혼을 했고, 당신 말대로 난 여전히 마주앉아 함께 음식을 먹으며 사소한 잡담이나 나눌 만큼 편한 상대가 못돼. 당신도 알잖아.” 나는 천천히 일어서서 레스토랑을 나왔다. 그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다시 연락을 해올 것이다. 그때 가서 그를 다시 만나건 만나지 않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일을 두고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제대로 봉합해두지 않았던 탓에 꾸덕꾸덕해진 클리어래커에 시너를 다시 배합해 접시 위에 가지런히 데커레이션 된 초밥의 코팅작업을 했다. 래커의 양을 조절해가며 최대한 얇고 고르게 펴 발랐다. 실제 음식이건 모형음식이건 간에 실없이 번쩍대는 음식이 입맛을 돋울 리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음식모형도 그렇고, 그와의 관계도 그렇고, 엄마나 저기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 자칫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그 모든 것들은 대책 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오후엔 사무실에 다녀온 제작팀장이 다시 한번 작업가운을 벗어 던지며 길길이 날뛰었고 망할 놈의 환풍기는 아예 규칙적인 박자까지 맞추며 덜덜 돌아갔다. 나는 완성된 초밥모형만을 간신히 넘긴 뒤 서둘러 퇴근했다. 한번 뒤집힌 속은 다시 약을 먹어도 쉬 가라앉지 않았다. 어둠에 잠겨 있는 방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눈을 뜨자 침대 끝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주무시지 않고, 무슨 일이에요? 이 시간에…….” 묵직한 머리를 흔들어 남은 잠을 털어내며 물었다. “아저씨가 들어오지 않으셨다.” “겨우 그것 때문에 이 밤에 주무시지도 않고 그러고 계신 거예요? 곧 들어오시겠죠. 좀 늦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며칠 전부터 꽃게가 잡숫고 싶다고 하셔서 수산시장에 다녀왔다. 새벽부터 서둘렀는데도 점심때가 다 돼서야 돌아왔지 뭐니. 돌아와선 또 한참이나 게를 손질하고 찜통에 쪄냈지. 그런데 아직까지도 들어오지 않으시는구나.” 그러고 보니 미처 맡지 못했던 비린내가 나는 것도 같았다. 순간 비어 있던 위가 저릿해졌고 동시에 신물이 올라왔다. 처음엔 그저 감전된 것처럼 저릿하기만 하던 위의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렸다. 허리를 구부린 채 통증을 참아내고 있는 나를 향해 엄마는 말했다. “어쩐지 영 안 들어오실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하긴, 오 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 그동안 너나 그 양반이나, 참 용케도 견뎌내는구나 싶었다.” 웅크린 몸 구석구석에서 식은땀이 배어났다. 한동안 말없이 이불을 덮어쓴 내 몸을 토닥이던 엄마가 이불을 걷어내고 나를 바로 눕혔다. “약 어디 있니. 하루 이틀 이런 것도 아닌데, 어디 약이 있을 거 아니냐.” 엄마는 비칠비칠 일어나 약을 찾아 먹고 다시 누운 내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만 하면 됐지 않니. 그게 다 뒤숭숭한 에미 팔자 같이 겪어내느라 얻은 병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만, 너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만 마음을 풀었으면 좋겠구나. 도대체 내가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네가 먹어줄는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네게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덥혀 줄 음식이야. 이런 약 따위로 나아질 일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잖니.” 엄마는 전에 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이 뒤틀리던 속도 차츰 가라앉았다. 배를 쓸어주던 엄마가 이불 속을 더듬어 내 손을 찾아 쥐었다. 목구멍이 따끔댔다. 딱히 뭐라 단정지을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식탁을 바꿔야 해요. 지금 건 너무 커……. 너무 커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엄마가 도무지 보이질 않아요. 그 커다란 식탁 앞에 앉아 있으면 온통 엄마의 음식들만 보여. 나뿐만이 아니라 거기선 누구도 엄말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거예요.” 엄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엄마는 땀으로 끈적이는 내 얼굴을 한번 더 쓸어준 뒤 방을 나갔다. 나는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사위는 여전히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림자만 가득한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빛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그림자마저 묻어버릴 만큼 완벽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은 끊임없이 사물을 굴절시키고 왜곡한다. 속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굴절된 삶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피곤이 밀려왔다. 다시 잠들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몸으로 익힌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사소하기만 한 몸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그는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낯설었다. 망설이듯 주춤대는 손길이나 어딘지 불편한 듯한 신음을 내뱉는 목소리까지. 하지만 어쩌면 그는 줄곧 같은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손은 차가웠고 가슴을 그러쥔 아귀의 힘은 너무 강했다. 삽입 전의 행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태도는 지루했다. 서너 차례 타이밍을 놓치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조급해하기까지 했다. 삽입 이후의 상황은 더욱 나빴다. 치골이 부딪힐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고 유난히 건조하고 까슬까슬한 그의 피부가 불편했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연속되는 천장의 무늬와 삐걱대는 매트리스의 소음에 몰입했다. 마치 커다란 식탁 위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기분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는 순식간에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마지막 타이밍만은 놓치지 않고 정확히 페니스를 빼낸 그는 내 아랫배 위에 사정했다. 끈적끈적한 정액을 뒤집어 쓴 아랫배가 환한 형광등 아래서 번들대고 있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앙다문 입술을 파고드는 그를 힘껏 밀쳐냈다. 쫓기듯 욕실로 들어간 그는 비누의 향이 너무 강하다며 한참동안 투덜댔고, 결국 비누를 사용하지 않은 채 샤워를 마쳤다. 어쩌면 그는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조금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함께 있는 내내 우리는 아귀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걱댔다. 지난 밤, 샤워를 마친 그는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는 셔츠에 물을 뿌리고 단정하게 걸어놓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천연덕스레 잠들어 있는 그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방을 나오기 전, 화장대 위에 놓인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을 가져다 변기 속에 빠뜨리고 물을 내렸다. 그의 동창생 아내의 세심한 배려를 단숨에 삼켜버린 변기는 크릉크릉 거친 숨을 토해냈다. 아마도 그는 사라진 타이핀과 커프스버튼 때문에 한동안 몹시 곤란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내게 연락을 해오지 않을 것이다. 간혹 단순한 몸의 문제가 마음을 건드리기도 하므로 어쩌면 나는 그런 그가 조금쯤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래 전의 내게 그러한 사실은 분명히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이미 흉터로 남은 일은 더 이상 상처가 될 수 없다. 잊혀졌던 흉터를 확인하는 일이 괴롭긴 하겠지만 역시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엄마의 짐작대로 세 번째 저기요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네 번째 남자의 귀가를 포기한 엄마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다.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굳이 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엄마는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엄마는 더 이상 음식을 만들거나 권하지 않았다. 그것은 식당에서조차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과거와는 달리 최종적으로 음식의 간을 보는 일 외엔 주방 일에 일체 참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진 엄마가 네 번째 저기요를 찾는 일까지 그만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케이크 전문점에서 주문한 케이크 모형은 총 열세 가지이다. 생과일주스를 비롯한 음료까지 합하면 모두 스물다섯 가지나 된다. 나는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음료를 만들 젤라틴에 첨가할 색을 결정하기 위해 색상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테스트용 물감을 풀어 샘플을 여러 개 만들어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아내지 못했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중탕한 젤라틴이 끓고 있었다. 감색 수채물감에 흰색을 약간 섞어 젤라틴과 혼합했다. 역시 너무 들떠 있었다. 견본의 색과 별 차이는 없어 보였지만 여름 음료의 색감이 힘없이 들떠 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심해(深海)와도 같은 색을 만들고 싶다. 한여름, 뜨겁게 달궈졌던 머리꼭지까지 서늘해질 만큼 강한 색감이어야만 한다. 완성된 샘플들을 모두 버리고 또다시 불려둔 젤라틴을 중탕했다. 건조 테이블 위에선 케이크의 틀이 천천히 굳고 있었다. 엄마는 끝내 커다란 식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설사 엄마가 다섯 번째 남자를 만나, 그를 다시 커다란 식탁 앞에 앉힌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끝내 엄마가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건 엄마 몫의 삶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다. 어차피 그 모든 것들은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음은 한 곳을 향해 있게 마련이고 그걸 흔들어놓을 만한 몸의 문제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불필요한 갈등은 몸의 균형마저 깨뜨리고 말 뿐이다.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거른 탓인지 비어 있던 속이 다시 저릿해졌다. 또다시 한 움큼의 약을 삼키며 엄마의 말을 돌이켜봤다. 엄마는 내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데워줄 음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내 속을 데워 줄 수 있는 것은 혀를 홀리는 음식이 아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얼려버릴 만큼 차가운 색감의 음료모형이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고 배를 채워주는 음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으므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밖의 것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 나를 지배하고 있는 주문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저릿하던 속이 가라앉고 포근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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