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一防 一廣 一創 /오영호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2009년도 거의 저물고 곧 2010년을 비출 태양이 떠오를 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종종걸음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새해를 향한 질주가 벌써 시작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되돌아보면 올 한 해 우리는 꽤나 긴 침체의 터널을 지나왔다. 작년 9월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번지기 시작하면서 성장률은 뒷걸음질쳤고 무역규모는 축소됐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어둠의 통로에는 아직 확실한 빛이 비쳐들지 않고 있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우리 경제의 앞길을 비춘 것은 수출이었다. 수출은 지난 11개월간 3275억 달러를 기록, 작년 이맘때보다 17.1% 감소하는 데 그쳤다. 감소율이 커 보이지만 일본·타이완 등 경쟁국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고, 감소세도 시간이 흐를수록 완화되고 있다. 미국의 세계적인 경제분석 기관인 글로벌 인사이트는 오히려 우리나라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이 사상 최초로 3%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할 정도다.
문제는 내년이다. 많은 경제기관들은 금융시장 안정과 경기 부양책에 힘입어 2010년 세계 경제의 완만한 회복세를 점치면서도 여전히 더블딥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수출 부문 역시 원화가치, 국제유가, 금리가 오르는 ‘3고(高)’로 인해 우리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해외수요가 회복되더라도 중국·인도 등 브릭스(BRICs)와 동남아·카자흐스탄 등으로 대표되는 포스트-브릭스가 급성장하면서 시장확보 경쟁도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그래도 믿을 것은 수출뿐이다. 우리는 지난 1964년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한 지 불과 42년 만에 2000억 달러, 다시 2년 뒤 3000억 달러 고지에 올라섰다. 2000억 달러에서 3000억 달러까지 미국·독일 등 선진국이 6년, 일본이 12년이 걸렸던 것을 불과 2년 만에 해냈다.
2010년에는 수출이 41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고, 이런 추세라면 ‘교역액 1조 달러 시대’도 멀지 않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회복하고 경제성장률이 4%를 넘으려면 절대적으로 수출의 힘을 빌려야 한다.
경인년 새해는 굳히고(防), 넓히고(廣), 만드는(創) 한 해가 되어야 한다.
첫째, 굳혀야 한다. 수출 저변을 확대하고 수출 인프라를 강화함으로써 세계 수출 10강,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3%, 중소기업 수출비중 40%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
둘째, 넓혀야 한다. 지난 상반기, 중국 내수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한 여세를 몰아 앞으로는 자유무역협정 체결국인 인도와 아세안 진출을 확대해야 한다. 남아공 월드컵, 상하이 엑스포, 광저우 아시안 게임 등 지구촌 이벤트를 십분 활용하고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개최에 따른 ‘코리아 프리미엄’을 경쟁력 제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셋째, 만들어야 한다. 정보기술(IT)·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더해 전기차·비휘발성 메모리·원전·항공 등 차세대 산업을 육성하고 바이오·LED·로봇 등 신성장동력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특히 지구온난화, 포스트 교토 체제, 고유가에 대비해 녹색산업을 새로운 경쟁 패러다임으로 설정해 해외시장에 진출하고 의료·관광, 한류·IT 등 융·복합 서비스 산업과 제품·서비스가 결합된 복합시스템 서비스산업의 수출길을 닦아야 한다.
원고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바라보는 2009년의 밤은 도로를 밝히는 가로등과 자동차 불빛, 그리고 도시를 점령한 어둠의 힘겨루기 속에 점점 깊어만 간다. 문득, 환하게 제 몸을 밝힌 남산 타워가 눈에 들어온다. 부디 내년에는 수출이 굳히기·넓히기·만들기에 성공해 우리 경제가 저 남산 타워처럼 세계 속에 우뚝 서기를 소망한다.
오영호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