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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단이기」 자제해야 선진국 도달”/김영삼대통령 국정연설 전문

    ◎정치개혁엔 자기희생 반드시 필요 존경하는 국회의장,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작년 10월13일 저는 9선의 국회의원으로서 마지막 연설을 마치고 제 정치역정의 애환이 배어 있는 이 국회의사당을 떠났습니다.오늘 저는 의회민주주의를 신봉해온 대통령으로서 여러분과 더불어 국정을 논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저는 그동안 성심을 다해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해 왔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하루하루가 고뇌의 나날이었습니다.중요한 결단을 할 때마다 무서운 책임감으로 더 할 수 없는 고독을 느껴야 했습니다.오직 이 나라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저는 온갖 형태의 권위주의적 규제와 제한을 풀었습니다.안기부와 기무사의 기구를 축소하고,정치사찰을 중지시켰습니다.문민시대에 걸맞게 군의 개혁을 단행했습니다.이제 군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고 있습니다.국민의 신뢰받는 군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습니다.이렇게 저는 문민시대의 정치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또한 대통령의 재산을 먼저 국민앞에 공개했습니다.그것이 공직자윤리법의 개정으로 이어져 공직자의 재산공개를 제도화하게 되었습니다.법에 따라 공직자의 재산공개가 이번에 최초로 이루어졌습니다.이제 공직자는 국민앞에 투명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입니다. 공직자의 재산공개는 우리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입니다.저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또 그렇게 실천하고 있습니다.이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참다운 권위와 강력한 지도력은 지도자의 솔선수범과 도덕성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저는 지도자의 도덕성이야말로 건강한 사회,건강한 나라의 밑바탕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저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헌정사의 정통성을 확립했습니다.상해 임시정부 요인 다섯 분의 유해를 봉환하여 국립묘지에 모셨습니다.조선총독부 건물과 그 관저를 철거키로 했습니다.5천년 민족문화의 정수를 보전,전시할 박물관을 새로 짓기로 했습니다. ○나라운명과 직결 새 정부가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4·19,5·18 그리고 6·10 민주항쟁의 연장선위에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그리하여 문화민족의 긍지와 자존심을 회복하고 있습니다.잃어버린 애국심을 되찾아 신한국 창조를 향한 열정으로 승화시켜 나가고 있습니다.선열들의 피가 우리에게 광복을 안겨주었다면,우리는 피와 눈물과 땀으로 제2의 광복,제2의 건국을 이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30년이상 쌓인 부정부패를 척결해 나가고 있습니다.권력으로 재산을 만들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뿌리뽑힐 때까지,그리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관행이 우리의 생활과 의식속에서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우리 자신에 대한 채찍질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것은 우리가 다함께 새로운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겪어야 할 아픔입니다. 저는 지난 8월12일 금융실명제를 실시토록 하는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표했습니다.금융실명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근절하고,깨끗한 사회,맑고 힘있는 사회로 가는데 절대로 필요한 제도입니다.금융실명제 없이는 건강한 민주주의도,활력이 넘치는 자본주의도 꽃피울 수가 없습니다.자유로운 시장경제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금융실명제야 말로 총체적 개혁의 중추요 핵심입니다.개혁중의 개혁입니다. 금융실명제 아래서만 성실한 기업,땀흘려 일한 사람들의 부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깨끗한 부와 땀흘려 모은 재산은 국민의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신성한 노동에 허무감을 안겨주는 놀고 먹는 풍조가 사라질 것입니다.성실하게 일하면,일한 만큼 보상받는 정직한 사회가 이루어질 것입니다.실명제는 나라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우리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도 실명제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합니다.저는 실명제가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여러분께서 대통령 긴급명령을 동의해 주신 데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합니다.앞으로도 실명제 정착에 끝까지 협력해 주시기 바랍니다.국민 여러분께서도 다소의 불편이 따르더라도 실명제에 적극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우리 국민의 이익,국가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실명제에 대한 일부의 오해와 염려가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실명제의 진정한 목적은 실명제 문화의 정착에 있습니다.실명제는 미래지향적으로 운영될 것입니다.실명자금의 비밀은 반드시 보장될 것입니다. 국회의원 여러분, 이제까지 대통령의 책임아래 이루어진 변화와 개혁은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에 따른 것이었습니다.대통령으로서 역사와 국민앞에 떳떳하게 그리고 양심에 비추어 한점 부끄러움 없이 내린 결단이었습니다.그리고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저는 국회가 입법기관으로서 개혁의 역사적 소임을 다해 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국회 스스로 일련의 개혁적 입법을 통해,우리의 정치를 일신시켜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정치개혁은 깨끗한 선거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부정선거,타락선거가 발붙일 수 없도록 선거혁명을 이룩해야 합니다. 정당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자생력을 가져야 합니다.정치자금은 투명해야 합니다.이러한 정치개혁을 이룰 때,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이 국민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정치개혁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치지도자 여러분의 자기희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저는 국회의원 여러분이 부정과 타락이 없는 선거제도는 물론 대담한 정치개혁을 통해서 참다운 민주주의를 이 땅에 정착시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국민과 더불어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될것 저는 또한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제 문민시대가 열렸습니다.국력을 소진시키는 대결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정당은 창조와 정의를 위해 경쟁해야 합니다.우리 국민의 생명력과 우수성을 최대한 신장시키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분출하는 집단이기주의에 맞서 당당하게 안될 것은 안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우리는 과거를 청산하되,과거에 매달려서는 안됩니다.지난날의 갈등과 반목으로 세계와 미래를 향한 민족의 진운을 멈추게 해서는 안됩니다.우리는 이제 과거에 대해 화해하고 미래를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국회가 달라져야만 합니다.국회는 국가발전 전략을 수립하고,창조적인 토론을 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세계와 미래를 내다보는큰 정치를 해야만 합니다.저는 30년이상 계속된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대를 정치인으로 살아왔습니다.이제 저는 여와 야를 떠나 우리 공동체의 현실에 대해 함께 고뇌하는 정치,21세기 위대한 신한국의 창조를 향해 함께 달려가는 정치를 해나가자고 제안하는 바입니다.우리 함께 정치다운 정치,멋진 정치를 펴 나갑시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우리에게는 지금부터 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안으로 우리사회의 인간화,민주화로 정의로운 화해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밖으로 우리의 활로를 세계와 미래로 넓혀 나가야 합니다.우리는 전진하면서 개혁하고 개혁하면서 전진해야 합니다.우리가 대전엑스포의 성공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앞으로 건설될 고속전철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세계속의 한국」의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영종도 신공항의 건설은 아시아 태평양시대의 중심으로 가는 민족웅비의 대역사입니다. 세계는 지금 냉전의 시대를 지나 경제전쟁,기술전쟁,정보전쟁의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우리는 이 경쟁을 이겨내야만 합니다.세계 문명의 중심 축에 우뚝서야 합니다.우리의 지나온 역정과 현실은,우리가 극복할 과제의 어려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 민족은 새로운 문명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겸비하고 있습니다.우리에게는 민족의 독립과 나라의 민주화를 향해 달려온 도덕적 힘이 있습니다.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경제적인 저력이 있습니다.이 두가지 힘을 하나로 합해서 신한국을 창조해야 합니다. 신한국은 선진국의 위상과,도덕국가의 위상을 함께 갖는 조국입니다.부강한 민족국가의 틀과 새로운 문명이 결합된 사회입니다.우리는 자율과 창의의 신경제를 통해 반드시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민족정기와 높은 문화로 도덕국가를 이 땅에 건설할 수 있습니다.전통문화와 첨단문명을 창조적으로 결합하여,새로운 문명의 모델을 이 땅에 이룩할 수 있습니다.한국은 분명 새로운 세계문명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시작된 변화와 개혁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미국 대통령을 비롯하여 세계의 정상들이 잇따라 한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며칠전에는 프랑스의 미테랑대통령이 다녀갔습니다.세계인들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개혁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습니다.이제 우리는 도덕적으로,떳떳하게 세계속에서 어깨를 겨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한국인으로 태어난데 대하여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한국은 유엔의 요청에 따라 소말리아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함으로써 세계평화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앞으로도,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더 적극적으로 세계평화와 인류의 안녕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우리 외교는 이러한 자신감에 따라 민주·자유·복지·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신외교로 전환하고 있습니다.우리 외교는 세계속의 한국으로,그리고 미래지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그러나 세계가 변하고 있는데,한반도만이 유일한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습니다.우리는 안보문제에 결코 방심할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평화는 그것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화해와 협력을 거쳐 남북연합 그리고 1민족 1국가로 가는 3단계 통일방안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민주적 절차,공존공영,민족복리라는 세가지 통일정책의 기조를 설정해 놓고 있습니다.북한의 핵 의혹이 해소된다면 우리는 남북사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우리는 이스라엘과 PLO사이의 숙명적 적대가 위대한 평화로 바뀌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왜 우리는 같은 민족으로서 무기를 버리고 화해하지 못하는지 실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저는 북한이 하루속히 민족의 공멸을 가져올 핵 의혹을 씻고,공존공영과 민족복리의 마당으로 나올 것을 촉구해 마지 않습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저는 경제를 살리는 일이 대통령이 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믿고 있습니다.우리는 신경제 5개년 계획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합니다.이를 위해 정부는 재정·금융·행정의 개혁과 더불어 성장잠재력을 강화할 것입니다.국제시장기반을 확충해 나갈 것입니다.성실한 기업이 마음놓고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 보장할 것입니다. ○북 핵의혹 씻어야 저는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말합니다.우리 모두 공동체 의식으로 먼저 경제를 살립시다.근로자가 살아야 기업이 살고,기업이 살아야 근로자가 살 수 있습니다.온 세계가 미래를 향해 뛰는데,우리만 내몫 찾기로 서로 다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내 몫만을 요구하는 집단이기주의야 말로 한국병중의 한국병입니다.이 한국병을 고치지 않고는 결코 선진국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노사분규를 비롯하여 내 몫만을 요구하는 집단이기주의를 자제해 줄 것을 호소합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우리나라는 좀 덜한 편이지만,세계적인 기상이변으로 농사가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냉해 때문에 노심초사하신 농민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우리는 냉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정신으로 농업의 국제경쟁에서 이겨내야 합니다.우리는 오늘의 고통분담으로,내일 꿈과 희망의 신한국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국민여러분,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인간을 필요로 합니다.우리 사회의 병폐를 고치기 위해서는 우리의 교육이 개혁되어야 합니다.인간교육,공동체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창의력을 키우는 교육,과학기술교육이 바로 그것입니다.앞으로 정부는 교육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저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말합니다.여러분은 오늘의 현실에 굳게 서서 세계와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이제 거리에서 학교로 돌아가 도서관의 불을 밝혀야 합니다.여러분이 공부해야만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여러분의 미래와 우리 민족의 미래가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변화와 개혁은 때로 고통스럽고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개혁정책에 기꺼이 협조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우리의 변화와 개혁은 체제의 안정과 강화를 위한 것입니다.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기정비의 과정입니다.제도개혁과 의식개혁으로 자기 정비를 향한 노력이 각계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기를 기대합니다.하루 속히 자기 정비의 기틀을 마련하고,국민과 더불어 이제부터는 오직 전진만을 선언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저는 이 땅에 선진국가,도덕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바랄 뿐입니다.저에게 꿈이 있고 소원이 있다면,오직 자랑스러운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 뿐 입니다. ○교육개혁에 박차 저는 임기 마지막 날까지,헌법에 명시된 대로,「국가를 보위하며,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시키고,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해야 하는」 대통령의 직무를 혼신의 힘을 다하여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조국에 대한 애정과 정열을 남김없이 바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이 나라를 일으켜 세웁시다.큰 이익을 위하여 작은 이익을 양보합시다.우리 모두 꿈과 희망을 가집시다.마침내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집시다.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민족입니다.더 멀리 더 크게 내다봅시다.21세기는 바로 6년 앞에 있습니다.앞으로 몇년이 우리 민족의 진운을 결정할 것입니다.힘을 합하여 세계로 미래로 나아갑시다.새 역사를 창조합시다. 1993년 9월21일 대통령 김영삼
  • 소유의 의미/이성은 원불교 기획실장(굄돌)

    통속의 철학자로 알려진 고대 아테네의 「디오게네스」는 가난하지만 부끄러움이 없는 자족의 생활을 실천하였다.거기에서 그는 행복을 느꼈다. 그가 통 속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어느날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알렉산더」대왕은 그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그는 아무 것도 필요없으니 햇볕을 가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는 말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 「디오게네스」에게도 소중하게 아끼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그것은 물을 떠먹기 위하여 항상 허리에 매달고 다니는 표주박이었다. 한번은 우물가에서 표주박으로 물을 떠먹고 있었다.그런데 한무리의 어린이들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오더니 맨손으로 우물물을 떠먹는 것이었다.그리고는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디오게네스」는 표주박이 없어도 물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그래서 그는 그 아끼던 표주박을 멀리 던져버렸다.표주박을 버린 그의 마음은 한결 후련했을 것이다. 「디오게네스」의 이러한 삶에서 두가지 느껴지는 것이 있다.하나는 소유가 행복의 충분조건이 될수는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거기에 집착하면 마음이 구속을 받는다는 점이다. 사람은 맨주먹으로 태어나 살면서 재화도 모으고 인연도 맺는다.하지만 떠날 때는 역시 빈손이다.이 세상에 진실로 「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사는동안 나에게 잠깐 위임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인생은 마치 어린 시절의 병정놀이나 땅빼앗기 놀이와 흡사하다고 생각된다.대장도 되고 졸병도 되면서 놀이를 즐긴다.그러나 영원히 대장이라거나 졸병이라는 생각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땅빼앗기를 해서 승리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나 내 땅이라고 고집부리지 않는다.다만 놀이하는 동안 규칙을 지키면서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할 뿐이고 또 관리할 따름이다.그러면서 대장도 졸병도,승자도 패자도 함께 즐기는 것이다. 공직자 재산공개에 관한 보도에 접하면서 착잡한 마음을 갖는 것은 교묘히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과 경기를 했다는 점 때문이다.반칙을 즐기는 사람은 놀이에서도 끼워주지 않던 어린시절을 생각해 본다.
  • “헌재서 입법절차 심의할수 있나”/국회현장검증 싸고 뜨거운 논란

    ◎민자/하루늦게 “국회권위에 도전”/민주/“날치기 방지… 3권분립 합치”/헌재/“정치시비 말려들지 않겠다” 헌법재판소(소장 조규광)가 지난 24일 실시한 국회 현장 검증을 계기로 「3권분립 체제하에서 광의의 사법부인 헌재가 입법부의 입법절차를 심판할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민자당은 25일 조용직부대변인을 통해 『3권분립체제하에서 국회에서의 의결절차가 헌법소원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따라서 헌재의 국회 검증은 적법하지 못하다』고 강력한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당연히 검증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고 헌재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그러나 이만섭국회의장이 본회의장 검증에 대해 끝까지 반대한 사실에서도 나타났듯이 국회 주변에서는 현장조사에 대해 불만이 팽배해 있는 상태이다. ▷경위◁ 3당합당 6개월뒤인 90년 7월 제1백50회 임시국회에서 국군조직법 개정안등 26건의 법률안이 날치기로 통과되자 당시 평민당의원 79명은 8월 국회의장을 상대로 의원들의 입법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국회에 대한 현장검증은 입법권 침해에 대한 헌법소원건의 청구인인 야당의원들의 요구로 이뤄지게 된 것이다. ▷현장검증◁ 관심사였던 국회 본회의장 검증과 관련,청구인 자격으로 배석한 강철선의원(민주)등은 『날치기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도 본회의장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조규광헌재소장이 『국회의 권위를 존중하고 헌재의 국회에 대한 예양의 뜻에서 검증하지 않겠다』고 밝힘에 따라 일단락. 그러나 본회의장을 검증치 않겠다며 헌재가 밝힌 이유는 「예양」으로 권한행사를 자제한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민자당◁ 민자당은 25일 하루 늦게 헌재의 현장 검증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조부대변인은 이날 『헌재가 의회 민주주의의 본산인 국회를 검증한 것은 국회의 권위를 위해서도,의회민주주의를 위해서도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며 『3권분립체제하에서 국회 의결절차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지 의문이며 따라서 헌재의 조사는 적법하지 않다』고 단언. ▷민주당◁ 민주당의 박지원대변인은 이에 대해 『3권분립은 견제와 균형을 위한 것』이라고 전제한 뒤 『대법원의 예산을 국회가 심의하듯 사법부가 국회에 대해 현장검증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반박. ▷헌법재판소◁ 민자당의 주장에 대해 즉답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 헌재 신중철공보관은 25일 『재판소는 결정문으로 모든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히게 될 것』이라며 『정치적 시비에 말려들지 않겠다』고 밝혔다. 헌재는 통상 헌법소원에 대해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되는 지정재판부에서 사건의 각하여부를 결정짓는데 이번 사건은 지정재판부가 각하결정을 내리지 않고 전원재판부로 넘겨 일응 헌법소원 대상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헌정사상 보기 드문 이번 사건은 입법절차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매우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김대통령, 취임후 첫 고향방문/조상묘소 둘러본 뒤 생가서 오찬

    ◎주민들 손잡고 불편한점 묻기도 김영삼대통령이 7일 고향마을을 찾았다.김대통령내외는 이날 경남 거제군 옥포조선소에서 열린 해군잠수함「최무선함」진수식에 참석한 길에 고향인 장목면외포리 대계마을을 방문. 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후 고향을 찾았으나 대통령취임후에는 이번이 처음.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속에서 마을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마을어귀에 위치한 모친 박부연여사와 조부모등의 묘소에 차례로 성묘하고 생가에서 수행원및 마을대표들과 오찬.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묘소앞에 국화꽃을 놓은 후 묵념을 올리고 묘소를 돌며 잡초를 제거한 김대통령은 한참동안 눈앞에 보이는 마을과 앞바다를 바라보며 회상에 잠겼다. 이 묘소는 김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뒤 들러 당선통지서를 내놓고 울었던 곳이기도 하다. 김대통령은 이어 생가에서 있은 오찬자리에서도 모친 박씨의 묘소에 얽힌 내력등을 참석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그자리는 원래 할아버지묘소로 쓸 자리였으나 어머님이 먼저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님묘소가 됐다』며 『많은 사람들이 좋은 자리라고 하더라』고 설명. 김대통령은 오찬자리에 참석한 윤한도경남지사에게 냉해피해에 대해 물은뒤 『최선을 다해 피해가 적도록 하라』고 당부. 이날 점심은 쌀밥과 해초된장국. 점심을 마친 김대통령은 방을 나서며 생가안내원으로 일하고 있는 아가씨에게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는데 얼마나 오느냐』고 관심을 보였는데 안내원은 『주말이면 4천∼5천명이 몰려온다』고 답변. 김대통령이 도착한 마을입구에는 마을주민·관광객등 2백여명이 기다리고 서있다 대통령이 승용차에서 내리자 일제히 박수로 환영했으며 김대통령은 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또 일부 마을주민들은 「소원이 있습니다」란 플래카드를 들고서있다 김대통령이 다가가자 『관광객이 몰리는데 화장실등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며 『편의시설을 설치해달라』고 부탁하기도. 대통령당선이후 관광명소가 된 이곳 생가에는 여름방학과 휴가철을 맞아 하루평균 2천∼3천명의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생가입구에는 「이집이 김영삼대통령이 태어난 집입니다.김대통령은 1928년 4월4일(음력)이집에서 아버지 김홍조옹과 어머니 박부련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란 입간판이 서있었다. 마을주민 배인실씨(61)는 이날 『지난번 대통령에 당선된직후 왔지만 대통령에 취임한 후로는 처음으로 들러 참으로 기쁘다』며 『우리마을에서 대통령을 냈다는 자부심속에서 살고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생가에서 나온 김대통령은 입구에 기다리고 있던 관광객들에게 『어디에서 여기까지 왔느냐』면서 또한번 일일이 악수를 한후 1시간반동안의 짧은 고향방문을 마쳤다.
  • 국제그룹 해체 위헌판결(사설)

    헌법재판소의 국제그룹 해체에 대한 결정은 한마디로 권위주의시대의 부당한 통치행위에 대한 위헌판결이다.이번 결정은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해석이외에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사유재산권이 침해되어서는 안된다는 헌법상의 기본정신을 재확인해주고 있다. 재판부는 그 결정문에서 『법에 근거하지 않는 대통령의 자의적 조치는 금지되어야 하며 법적근거가 없이 공권력이라는 힘으로 사영기업을 해체한 것은 기업의 자율과 경영권 불간섭원칙을 위배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의 경우 세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수 있다.첫째 민주주의국가는 인치가 아닌 법치국가라는 사실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공권력은 어디까지나 법률에 의해 발동되어야 하며 그 행사에 있어서도 합법적인 절차의 준수가 존중되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그러나 과거 권위주의 정부는 국제그룹 해체에서 공권력이라는 미명아래 물리적인 힘을 사용한 것이 이번 헌재 결정으로 명백히 드러났다. 둘째 헌재의 결정은 헌법상의 재산권 보장뿐이 아니고 자본주의국가에서 사유재산권의 보장이 성장과 발전의 동인임을 재확인하고 있다.사유재산권의 보장이 없이는 개인이나 기업이 열의와 창의를 최대한 살려 경제활동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따라서 헌법은 국방상·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업경영에 국가가 간섭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하고 있다.(헌법 제 126조) 다음으로 이번 결정이 관계인이 헌법소원을 제기한지 4년여가 지난 단계에 나왔다는 점을 유의하게 된다.소원인은 6공정부가 들어서고 국회에서 청문회가 개최되자 89년 헌법소원을 제기한바 있다.그러나 6공정부 집권기간에는 아무런 결정이 나지 않았다.문민정부가 들어서서야 비로소 결정이 나온 것은 정통성을 인정받는 정부이고 진정한 민주정부라야 국민의 소원이 올바로 받아들여 진다는 사이를 일깨워 주고 있다. 이번 헌재의 결정을 계기로 우리는 정경유착의 폐해를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권력과 돈이 결탁한 정치는 결국은 「역사적인 심판」에 의해 그 진실이 밝혀진다는 교훈이다.「권력의 힘」이사기업을 「강압」으로 해체하는 불행한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민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경유착의 청산은 물론 정치와 경제,정부와 대기업간의 관계가 투명하게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이번 결정이 경제계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권위정부시대 정경유착을 청산하기 위한 불가피한 대가일 수밖에 없다.
  • 창을 위한 기도/박정자 연극배우(굄돌)

    나는 소원이 그다지 많지 않다.보석반지·좋은 집·좋은 옷·좋은 차….그런 종류의 소유욕은 나와 철저히,구체적으로 무관하다.내가 가지고 싶은 게 정말 있다면 그건 창이다.나무로 된 작은 창. 나는 자라면서 내 방을 가져본 기억이 없다.그러니 「창」이란 건 언감생심이었다.그 창을 나는 시집 가서 처음 가져봤다.우리 부부의 방은 별채 윗층에 있었는데 여름엔 해를 머리에 인 것처럼 뜨겁고,겨울에는 석빙고보다 더 추웠다.그러나 방안으로 감나무 가지가 쳐들어올 듯하고,하늘과 청정한 공기의 냄새가 밀려오는 그 창 때문에 그 여름과 겨울을 나는 견딜 수 있었다.나는 가지를 자를 생각도 못하고 내 창으로 들어온 나뭇가지를 그립게 맞이하곤 했다. 1년이 지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베란다가 달린 내 문간방에서는 더이상 해도 달도 보이지 않았다.나는 꼭 커다란 창을 원하진 않았다.그러나 아무리 작아도 해가 지는지,비가 오는지,눈이 오는지만을 알기 원했을 뿐이다.「웬일이세요 당신」을 할 때도 그랬다.충분히,실컷 가져보지 못한 창을 무대에서라도 가져보고 싶었던 나는 무대미술 하는 이에게 부탁해 창 하나를 얻었다.연극 속에서 독백을 하는동안 괴로운 상념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 창 때문이었다.창은 나의 기도였다. 그리고 다시 논현동의 한 단독주택으로 이사왔다.시부모님이 안방을 쓰시고,아이들은 방 하나씩 써야 하니까 우리 내외는 반지하로 밀려났다.남향으로 반듯하게 나 있는 창을 가지고 싶은 것 뿐인데 내 나이 오십이 넘도록 아직도 나는 내 창 하나 없구나,인생 참 헛살았다.실망이 지나쳐 거의 비관적이었다.아이들이 대학교에 들어가자 내 안의 파쇼가 폭발했다.고3때나 저희들 위해 방을 내줬지.얼마전 집수리를 하면서 나는 남편과 아들을 한 방으로 몰고,딸 아이를 조금 환한 방으로 옮겼다.그리고 나자 딸이 쓰던 방을 차지할 수 있었다.나는 감격했다.북향이었지만 그 창으로 보일 건 다 보였다.가끔 조그만 외등이 달려 있는 대추나무엔 새도 와서 울었다. 나는 나의 창밖에 제라늄 화분도 줄줄이 늘어놓고 싶다.그건 내 마음의 창이다.창 하나 가지지 못한 채 오랫동안위로받을 길 없었던 나는 이제서야 바람이 통하는 내 마음의 통로를 얻었다.나혼자 좋자고 남편과 아들을 지하실 속에 처박았다는 가해자 의식과 함께.
  • 1회용 의료용기 쓰레기 “홍수”

    ◎의원 1곳서 하루평균 주사기 78개·바늘 81개 소모/거의 소각않고 버려… 세균감염 위험 최근들어 의료용품의 대부분이 1회용품으로 바뀌면서 의료쓰레기가 크게 늘고 있다. 특히 1회용품의 의료쓰레기의 경우에는 사용한뒤 병균에 오염되거나 유해물질이 들어있는 그대로 버려지고 이들중 상당량이 일반쓰레기와 함께 처리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최근 대한의학협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의원급 의료기관에 1곳에서 하루평균 소모되는 1회용 의료용품의 경우 주사기는 78개 주사바늘은 81개 수액세트는 10개 철제바늘 또는 주사침이 39개 장갑은 11개에 이른다. 이밖에 거즈는 한달에 3포 면붕대는 33롤 탄력붕대는 34롤 흡인카테터는 11개 요도카테터는 8개나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비해 재활용률은 의사들의 위생상의 이유와 환자들의 기피로 극히 낮아 주사기는 7.5% 수액세트는 1.7%거즈는 종류에 따라 12­18%만이 소독하여 다시 쓰이고 있을뿐이며 나머지는 그냥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기관은 종합병원과 병원급을 제외한 의원급만도 1만여개에 이르고 있어 1회용 의료용품의 폐기물양만도 엄청난데다 이들 대부분은 소각되지 않고 그냥 버려지고 있어 이들 폐기물에 의한 감염우려마저 높다고 관계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특히 주사바늘이나 수액세트의 유리병등은 청소원이나 처리업자들에게 부상의 위험마저 안겨주고 있으며 피묻은 거즈 주사기 비닐튜브등은 일반쓰레기로 처리하는게 습관화 되어있는 형편이다. 1회용품 사용으로 소모되는 비용이 의원급만해도 1년에 4백20여만원에 이르고 있으며 전국적으로는 약 5백억원이나 되고 있다. 그래서 대한의학협회에서는 우선 1회용품가운데 소독을 하면 별문제가 없는 주사기등은 환자들을 설득,다시 사용하도록 의사들이 노력해줄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에따라 1회용품의 사용를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인다면 경영이 어려운 의료기관의 원가절감과 경영합리화에도 큰도움을 줄것으로 기대된다. 또 사용하더라도 병균감염 유해물질등은 위험도에 따라 분리처리한다면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게 도움이될뿐만 아니라의료기관으로서의 사명이라고 할수있겠다.
  • 「재산공개」 위헌론 제기/헌재 사무총장,“사생활침해 가능성”

    정치권에서 공직자윤리법 제정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헌법재판소가 공직자에 대한 일률적 재산공개 강제규정은 위헌소지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김용균헌법재판소사무처장은 지난 22일 민자당정치관계법심의특위 제1분과위 회의에 참석,『공직자에 대해 일률적으로 재산공개를 강제하는 것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제17조등의 규정에 어긋날 수도 있는만큼 헌법소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24일 알려졌다. 김처장은 또 『따라서 재산공개로 피해받은 공직자가 헌법소원을 낼 경우 헌법재판관은 사생활침해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되므로 스스로 재산을 공개,사생활을 침해받았다는 인상을 주지않기 위해서라도 헌법재판관은 재산공개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관 비공개 안될말/강 민자대변인 반박 그러나 이와 관련,민자당의 강재섭대변인은 『사생활침해에 관한 헌법규정은 그사람이 처한 신분이나 생업유지방법과 연계돼 탄력성있게 적용돼야 한다』며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복이나 인기로 생활하는 탤런트등이 보통사람보다 사생활이 더 노출됐다고 해서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얘기할 수없다』고 이같은 위헌론을 반박했다. 강대변인은 『헌법재판소가 독립된 헌법기관의 신뢰저하를 이유로 재산공개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국민이 뽑은 엄연한 독립기관인 국회의원도 신뢰저하를 무릅쓰고 재산을 공개하고 있는 마당에 논리상 맞지않다』고 말했다.
  • 금복주회장 김홍식씨(“어둠속 햇살” 미담 2제)

    ◎5만6천평 땅 시에 헌납/대구 화원유원지… 수영장도 갖춰 김홍식 대구시의회의장(65·금복주 회장)은 24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4백억원 상당의 경북 달성군 화원읍 구라·성산리일대 5만6천여평의 화원유원지를 대구시에 헌납한다고 밝혔다. 화원유원지는 지난 72년 김의장이 시로부터 3만8천9백77평의 시유지를 불하받아 개발에 착수,지난해까지 인근지역 1만7천98평을 추가로 매입해 모두 5만6천75평의 규모에 수영장·동물원·주차장 등 각종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김의장은 『당초 시와 화원유원지를 국내 굴지의 유원지로 개발키로 약속했으나 개인의 힘으로는 이제 땅매입 및 시설개발에 한계를 느껴 행정당국에서 직접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대구시는 김의장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내달 대구시의회 승인 등 시재산으로의 소유권확인절차를 밟아 화원유원지를 시차원에서 본격 개발할 예정이다. ◎삯바느질할머니 이순옥씨/평생모은 30억 “장학금으로”/“무학설움­숨진 교사딸 한 풀었다”부정척결을 위한 사정태풍이 사회전반에 몰아치는 가운데 80세의 삯바느질 할머니가 평생 모은 30억원의 재산을 장학금으로 희사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국민학교도 다녀보지 못한 이순옥할머니(서울 종로구 삼청동 11)가 바로 그 주인공이 이다. 이씨는 서울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안에 있는 자신소유의 시가 30억원짜리 상가건물(대지 1백평,건평 1백20평)을 외손녀의 출신고교학교법인인 대원학원에 기증했다. 『학교설립이 죽기전 소원이었는데 그것을 이루기에는 너무 늙었고 그동안 모은 재산이나마 교육발전과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데 쓰고 싶었습니다』 이씨는 스스로 배우지 못한 설움과 여고교사로 있다 숨진 외동딸의 한을 달래기 위해 그 딸의 「분신」처럼 여겨온 외손녀 출신고교에 기증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이씨는 6·25전쟁중 남편이 인민군에 의해 학살당한 뒤 38세때 홀몸이 되어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것이 삯바느질. 남대문시장에 1평짜리 쪽방가게를 얻어 삯바느질로 딸을 이화여대에 진학시켰고 어렵게 모아현재의 상가건물도 구입했다.
  • 「패션박물관」 건립됐으면…/신혜순(여성칼럼)

    멀리 보이는 산의 빛깔이 어느새 연두색의 은은한 봄빛으로 바뀌고 있다.군데군데 색색으로 물든 봄꽃들과 어울려 한폭의 수채화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다. 한평생을 패션산업에 종사해오신 어머니.이때만 되면 봄이 주는 색감을 놓칠세라,여든셋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감흥을 스타일북에 찬찬히 옮겨 놓곤 하신다.또 외할머니와 엄마의 뒤를 이어 뉴욕에서 패션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의 딸.그애 역시 계절이 주는 아름다움에 매혹돼 캠퍼스에서 자신의 넘쳐나는 벅찬 정서를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다는 서신을 보내온다.그리고 나. 우리 모계 3대가 한집에서 살면서 어떤 일에 대해 거의 같은 느낌을 가졌던 일을 떠올려보면 패션의 대를 잇는 일이 어쩐지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주변 사람들이『너무 부럽다』고 하는 말이 어색하게 여겨질 정도로. 아직도 학원일과 자신의 손길을 거쳐간 패션계 후배들을 챙기느라 늘 바쁘신 어머니와 햇병아리 후배로 힘든 유학생활을 택한 나의 딸,그 사이에서 나는 실무를 맡고 있는 탓에 가장 힘들어 해야겠지만오히려 넉넉함과 평온함이 느껴진다.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안도감과 뿌듯함 때문일까. 흔히 패션인을 가리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디자이너의 시선이나 감각이 남보다 앞서야하고 남과 다른 각도에서 미를 포착할 수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새것」이란 결코 무에서 탄생된 전혀 생소한 그 무엇은 아니다.오히려 많은 옛것과 경험들이 쌓여 있는 그 가운데서 새로운 것이 하나 어우러져 생겨나는 것이다.그런점에서 나는 이「새로움」의 근원을 물려준 나의 어머니에게 그지없이 고마워하고 내가 살아온 경험을 물려줄수있는 딸의 존재에도 감사한다. 손때묻고 정이 든 오래된 물건들이 유난히도 좋은 것이 그때문인가 보다.우리나라의 패션의 역사를 정립하는 「의상박물관」건립이 어느새 떨치지 못하는 소원이 돼버린것도.
  • 상해 임정 74년(외언내언)

    상해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의 치열한 독립혼은 이러하다.『우리의 시체로 성벽을 삼아서 우리의 독립을 지키고 우리의 시체를 발등상 삼아서 자손을 높이고 우리의 시체로 거름을 삼아서 우리 문화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해야 한다』 또 있다.『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할것이요 또 『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는 세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모두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에 나오는 대목이다.백범일지는 그가 53세때 중국 상해의 법조계 마랑로 보경리 4호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에서 1년여동안 기술한 것이다.그것이 상권이다. 3·1독립운동 이후 국내외에는 모두 6개처에 크고 작은 이른바 임시정부가 생겼다.이는 일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국민들의 독립의지가 정치적으로는 군주제에서 민주공화체제로,즉 통치왕조 구조에서 국민국가로의 지향으로 모여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이런 의지와 욕구에 부응하듯 몇개의 임시정부는 적잖은 우여곡절을 거쳐 상해 임정으로 흡수된다.상해임정은 국민적 통합의 의지를 받들어 개헌의 형식으로 러시아령의 대한민국의회 정부를 흡수한뒤 서울의 한성정부와 통합함으로써 정통유일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이다.19 19년 9월이었다.물론 이에앞서 고국을 떠나 중국각지 특히 상해에 모여든 독립지사들은 19년 4월 13일 정식으로 임정수립을 내외에 선포했던 것이다.74년전 오늘의 일이다.그리고 해방이후 거의 방치돼왔던 그 임정청사가 현지에서 복원됐다는 소식이다. 26년부터 32년까지 김구주석이 기거하며 백범일지를 집필했던 곳이다.감개가 새롭다.
  • 중국 대구장마을 “대륙의 낙원”(특파원코너)

    ◎평범한 농촌서 최고부촌으로 탈바꿈/주민들,향진기업설립 고소득 일궈/벤츠에 1백평 아파트 “초호화생활”/거리 상가엔 구치 등 서구유명상품 즐비 중국의 한 시골 마을에 벤츠가 50대나 굴러다닌다.캐딜락이나 링컨 컨티넨탈도 눈에 띈다.인구 4천명에 8백여 세대가 살고 있는 이 마을에는 대부분 고급차종인 자가용이 3백대가 넘는다. 이곳이 개혁개방이후 중국에서 최고 부자마을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대구장이다.중국사람들은 천진시에서 남쪽으로 50여㎞ 떨어진 정해현에 자리잡은 이 마을이 아시아의 농어촌 지역중 최고 부자마을이 아니겠는가고 자랑하고 싶지만 정확한 비교자료가 없어서 망설이고 있을 정도이다. 이곳에는 중국에서 흔해빠진 개인기업이 하나도 없다.국영기업도 없다.모두가 마을 주민 공동소유라 할 수 있는 향진기업들이다.농업분야를 전담하는 화대총공사와 공업생산에 전념하는 만천총공사등 5개의 기업그룹 산하 각 공장들에는 외지에서 들어온 7천여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이들 농공업회사들을 비롯,마을 전체업무를 총괄 지휘운영하는 조직으로 대구장기업집단총공사가 있다.마치 종전의 인민공사를 연상케 하는 이 총공사는 마을 어린이들의 학비를 전액 부담하고 정년퇴직자들의 연금을 지급할뿐 아니라 주민전체의 의료비용도 전액 부담하고 있다. 이곳 주민들의 주택은 대부분 2층 양옥이거나 50∼1백평 정도의 고급아파트들이다.전화 냉장고 에어컨 컬러TV 스팀난방 양탄자 등은 집집마다 기본으로 갖춰놓고 있으며 학교 교실들도 모두 에어컨이 설치돼 있다. 이처럼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골 마을이 불과 10여년만에 어떻게 중국내 최고 부자마을로 자라날수 있었는가.그들은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이 실시되자마자 가난의 한풀이라도 하듯 농사일들을 집어던진채 주로 향진기업체를 많이 세웠다. 지금 이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맞이하는게 90여채의 양옥집들이다.아스팔트 길 양편 숲속에 자리잡은 50∼1백평의 이들 가옥은 외부에서 초빙해온 전문가 기술자 경영관리인들이 살고 있다. 기량만 있으면 그 대가는 엄청나다.예를들어 91년에 1억원(약 1백50억원)이상 생산고를 올린 4개기업 책임자들에겐 약속대로 1백만원(1억5천만원)의 연봉을 지불했다.이 마을의 총책인 대구장기업집단총공사의 사장인 우작민도 연봉이 1백만원이다. 전체면적이 7.5㎦에 불과한 이 마을에 어느새 6개의 호텔이 들어서 관광객을 받고 있으며 지난해 9월에는 1천만원을 투자해 4백m의 거리에 1백여개의 상점을 세웠다.「홍콩거리」로 명명된 이 상가에는 피에르 가르뎅 구찌 등을 비롯한 첨단 유행상품을 파는 가게들도 들어섰다. 이곳의 또다른 특징은 일을 많이한다는 것이다.하루에 11시간 정도 근무하지만 일요일이나 공휴일도 거의 쉬지 않은채 구정때나 15일 휴가를 즐기는게 보통이다. 이곳의 모든 기업과 가게들은 대구장기업집단총공사와의 계약에 따라 일정액의 소득을 올리면 책임자는 물론 각급 직원들이 모두 높은 보수를 받게된다. 『인재치고 괴벽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괴벽하지 않고서는 인재가 될수 없다』고 말해온 이 마을 대표 우작민은 소원이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구장을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마을로 꾸미는 것』이라고줄곧 말해왔다.
  • 총리와 소년(외언내언)

    총리 할아버지야 물론 고골리의 작품 「외투」의 주인공과는 다르다.관청에서 정서(정서)의 일을 보고 있는 「아카키 아카키에비치 바쉬마취킨」은 9등관의 하급관리지만 총리 할아버지는 관리중에서 가장 높은 어른이시다.「외투」의 주인공은 그 추운 고장에서 외투 하나 해입는게 대단한 일이고 큰 소원이었지만 시대가 흐른 오늘의 우리 총리할아버지에게 있어서의 코트(외투)는 아무리 청빈한 학자생활을 해온 처지라 해도 「외투」주인공의 외투 같을 수는 없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의 어린이 박경렬군(그때는 국민학교 6학년)은 어느날 아버지가 갖다준 신문을 읽고 감명을 받는다.총리할아버지가 20년이나 된 낡은 코트를 세탁소에 맡겨 수선했다는 것이 아닌가.아버지의 직업이 버스 기사이고 더구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집안이고 보면 그렇게 유족한 편이라 할수는 없다.이 어린이는 그래도 그 사이 푼푼이 모은 돈 1만5천원을 총리할아버지에게 보냈다.코트 수선하는데 보태 쓰시라고. 편지와 돈을 받은 총리할아버지는 감격했던 듯하다.엊그제 대덕연구단지로 일보러 간 김에 박군을 불러 만나고 있다.그자리에서 말한다.『내가 코트 해입을 돈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다만 하나도 해지지 않아서 그랬을 뿐이야.그러고보면 네가 나보다 더 훌륭하구나』.총리할아버지는 「몇십억원보다 값진」 그 돈에다 컴퓨터를 얹어 선물한다.하도 어수선하고 정떨어지게 하는 사건 많은 세상이라서일까,새하얀 눈밭에 핀 빨간 장미 한 송이의 인상이 망막을 스쳐간다.은연중에 근검 절약의 미덕을 찬양하는 교훈적인 시사도 주고 있고. 스테픈 C 포스터의 「올드 블랙 조」는 어린날의 추억에 뿌리를 두고 있는 곡이다.오갈데 없이 거리에서 눈을 감는 앨라배마 출신 흑인노인을 생각하면서 예술혼을 불어 넣은 것이다.경렬군은 『검소한 보통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어떤 삶이 되건 총리할아버지와의 20분은 그의 삶에 보람과 영양소로 되는 것이리라.
  • 수녀의 소원/안필준 보사부장관(굄돌)

    전남 고흥반도에 연해 있는 1백38만평의 섬.그 모습이 사슴처럼 생겼다고 해서 「소록도」라는 이름을 얻은 이 섬은 녹동부두에서 손에 닿을 듯 가깝지만,지난날 강제수용시절 나환자들의 한많은 애환이 서린 천형의 고요도,천길 만길 소외되어 있었던 섬이다. 1916년 설립된 국립소록도병원은 한때 7천명 가까이 나환자들을 수용했던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불과 1천3백여명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소록도는 자연경관이 무척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특히 환자거주지역 한 가운데 자리잡은 중앙공원에는 3백66종의 나무들이 제각기 그 자태를 뽐내고 있고 봄에는 갖가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이곳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안식을 안겨주고 있다.또 이 공원에는 일제시절 나환자들이 강제노역으로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 옮겨온 큰 바위위에 이곳에서 치료를 받았던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라는 애절한 시가 새겨져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있다. 이곳 방문이 세번째인 필자는 지난 1월27일 나환자들의 고단한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는데 32년이란 긴 세월을 바쳐온 오스트리아태생 마리안느 스퇴거수녀와 얘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전라도 사투리로 우리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스퇴거수녀는 월급을 모두 환자들 뒷바라지에 쓰고 있었다.이곳 나환자들의 대모인 스퇴거수녀는 59세의 노처녀인데도 친근함의 표시로 모두에게 「할머니」로 불리고 있었는데,필자가 보기에도 참으로 따뜻하고 열정적인 심성을 가진 사람같았다. 중앙공원을 거쳐 환자마을로 같이 걸어가는 도중 그녀는 몇그루의 나무를 가리키면서 자신이 이곳에 처음 와서 심은 나무들이 이렇게 크게 자랐노라고 설명하며 깊은 감회에 젖은 듯 잠시 말문을 멈추었다.「오스트리아 공적비」라고 쓰여진 조그만 기념비앞에 이르자,그녀는 『장관님,소원이 하나 있습니다.제가 이곳에서 생을 마치면 저의 유골을 수습해 이 비석아래에 묻어주세요』라고 필자에게 부탁하였다. 사실,공원안에 기념비는 있어도 무덤은 아직 하나도 없고 우리나라의 관습이나 국민정서상 공원에 유골을 안치한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그러나 평생을이곳에서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물을 쏟아부어온 그녀의 따뜻한 영혼을 그녀의 소원대로 이곳에 쉬게 해 주는 것이 당연한 도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도덕성의 회복/김상복 할렐루야교회 목사(굄돌)

    우리 민족 반만년의 역사중 이 시대 지금 살고있다는 사실을 나는 대단히 즐겁게 생각하고 있다.삼국시대,신라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일제시대나 해방 전후 시대도 아니고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가 민족역사에서 가장 좋은 시대라고 믿는다.우리 부모님들은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시면서 고생만 하시다가 떠나셨거나 떠나실 날들을 며칠 안남기고 계시다.그 분들은 우리 민족의 고난기에 고통을 뼈속까지 체험하시고는 시련의 씨가 우리 때에 와서 드디어 꽃피는 것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가셨다.그러나 우리 세대는 일제말기와 6·25를 지나며 가난의 고통을 경험했으나 그 고통을 딛고 일어나 오늘과 같은 새 시대를 맞게되는 그 과정에 깊숙이 참여해왔고 사실상 이 시대를 일으키는 한 원동력으로 살아왔던 것이다.그리고 그 수고의 열매를 다소나마 맛보며 살고있다.오늘 우리는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가장 좋은 때에 살고 있다. 입고 있는 옷만 하더라도 반만년 역사 속에서 어느 시대에 우리 보다 더 좋은 옷들을 입고 산 적이 있었는가? 얼마전 어느 작은 시골 동네에 갔던 적이 있었다.마침 길거리는 퇴교하는 어린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활짝 웃으며 장난을 치는 아이들은 하나 같이 아름다운 갖가지 색깔의 옷들을 귀엽게 입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시골인지 서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우리들이 어렸을 때를 상기하며 「아,참 좋은 시대가 왔구나!」나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렸다.최근 북쪽의 김주석은 백성들에게 「이밥에 고기국」을 먹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는데 남쪽에서는 「이밥에 고기국」시대를 지나 건강식을 찾아 주부들이 애를 쓰고 있다.미국 백악관 앞에서는 집없는 사람들이 어쩌다 겨울에 굶거나 얼어죽는 사람도 가끔 나타나지만 이 나라에서는 지금 굶어 죽지는 못한다.알려지기만 하면 정부든 사회든 이웃이든 간에 도움의 손길이 오기 때문이다.어디를 가도 자가용들이 너무 많이 길에 깔려있어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언제 우리 역사에서 지금처럼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아본적이 있었나? 경제,사회,교육,문화,예술,체육,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해왔다.놀라운 일이다.이나라에서는 죽도록 공부하지 않고는 대학을 떨어질 자격조차 갖지 못한다.그동안 정치와 도덕성 이 두가지가 큰 문제였는데 지난번 선거를 통해서 이제는 정치 세계마저도 또 한단계 전진할 수 있게 되었다.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정치와 함께 도덕성의 회복을 통해 우리가 내적 변화를 한번만 창출해 낼 수 있다면 우리 민족의 최선의 날들은 다가오게 될 것이다.이런 날들이 우리 시대동안에 오기를 바란다.
  •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요덕15호 북한정치범수용소:8)

    ◎생과 사의 경계선:다/배급 「강냉이쌀」엔 쌀한톨 없어/옥수수알 빻은것… 하루 3백50g씩/입자 굵어 설사병 일쑤/부식은 시커먼 소금뿐 우리들이 남한에 귀순하여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일은 끼니마다 「흰쌀밥」을 실컷 머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북한주민들의 최대 소원이 「이팝(흰쌀밥」에 고깃국 먹으며 좋은 옷 입고 기와집에 한 번 살아 보는 것」이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고 언제나 굶주려야 하는 곳.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흰쌀밥과 고기는 물론 갖가지 음식을 마음껏 골라먹을 수 있는 남한의 생활상을 보고 놀란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바깥의 주민들의 생활이 그렇다면 「정치범 수용소」의 실정은 어떠하겠는가. 귀순한뒤 여러번 국내외 기자들과 회견을 가졌다.그때마다 우리들은 답답했다.기자선생들이 북한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수용소의 「강냉이 쌀」 이야기만해도 그렇다.어떤 기자는 『강냉이 가루와 쌀의 혼합비율이 얼마 쯤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그 질문을 받았을때 오히려 무슨 말인지 몰라어리둥절했다. 「강냉이쌀」이란 옥수수 가루와 쌀을 섞은 것이 아니라 강냉이 알맹이만을 굵게 빻은 것을 말한다.「쌀」에 대한 그리움탓에 북한주민들은 밥을 지어먹는 어떤 곡식에도 「∼쌀」이라고 이름 붙인다.남한서 말하는 쌀은 「입쌀」이라고 구분 지어부른다. 요덕 정치범수용소측이 죄수들에게 주는 주식은 하루 1인당 3백50g의 강냉이쌀이 전부이다.부식은 시커먼 천일염과 밀기울로 만든 된장 뿐이다. 이 강냉이 쌀은 입자가 굵은데다 겉부분에 있는 딱딱하고 끈매끈한 멜라민 성분때문에 잘 익지도 않고 소화도 잘 안된다.수용소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이 거의 모두 목숨까지 잃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용소 사람들은 설사병을 피하고 소화를 돕기위해 쑥·씀바귀·두릅·가죽나무잎을 비롯한 먹을 수 있는 풀잎은 모두 뜯어와 강냉이 쌀과 함께 섞어 죽을 쑤어 먹는다.그러나 봄부터 가을까지는 풀을 뜯어 먹을 수 있지만 겨울철 5개월여동안은 그나마 구할 수 없다.수용소 사람들은 가을철 무·배추밭 노역을 서로 맡으려고 혈안이 된다.무·배추를다듬을 때 버리는 잎파리를 확보,시래기로 말려 겨울철에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미처 시래기를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남의 집 처마에 걸린 시래기를 밤에 훔쳐다 먹는다.들키는 날엔 주인 가족들로부터 뭇매를 맞거나 보위원에게 넘겨져 심한 구타를 당하거나 강냉이쌀 급식량이 한 달씩 절반으로 줄어드는 벌을 받는다. 일년 열 두 달 풀잎을 넣고 끓인 시퍼런 강냉이쌀 죽을 짠 된장 반찬과 함께 먹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끼친다. 수용소 사람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도룡용·개구리·개구리알·뱀·쥐등을 닥치는대로 잡아먹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일년 내내 고기 한점 목먹는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펠라그라병에 걸려 죽지 않기 위해서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본능만이 있을 뿐이다. 독신자세대들에게 제일 난감한 일은 강냉이 알곡이 통째로 삶아져 나오는 때였다.특히 애벌로 적당히 삶은 설익은 강냉이 알이란 정말 먹기 힘들었다.때문에 독신자세대는 식사하러 갈때 손수건같은 헝겊을 반드시 갖고 갔다.강냉이 알이나 갱냉이쌀밥을 이헝겊에 싼뒤 바닥에 놓고 발로 짓눌러 으깨어 먹기위해서였다. 남한에서는 우리가 먹던 종류의 강냉이를 사료로만 쓰고 식용 강냉이는 따로 있다고 한다. □특별취재반 김만오(정치부차장) 양승현(정치부) 최철호(사회1부) 문호영(정치부) 송태섭(사회1부)
  • 무용가 정재만씨(이세기의 인물탐구)

    ◎힘차고 광활한 춤사위… 남무의 대가/벽사에 사사한 승무,만개앞둔 꽃망울 연상/“생활이 춤”… 삶의진실 담은 전통 재현 노력/작품구상땐 무작정 거리 헤매… 「구두한켤레」 별명도 □연보 ▲948년3월 경기도 화성출생 ▲72년 경희대 무용학과 졸업 74년 동 대학원 졸업 ▲73∼79년 국립무용단단원 ▲80년 국립국악원 수석무용 ▲80∼87 세종대 무용과 조교수 현재 정재만무용단,남무단대표(정기공연),벽사 춤아카데미 대표,서울예술단 무용감독,한국무용가협 부이사장 「92 춤의해」운영위원,숙명녀대 무용과 교수 국립무용단 무용극 출연 「별의 전설」「왕자호동」「꿈꿈꿈」「시집가는날」등서 주연 해마다 대한민국 무용제·무용예술큰잔치·무형문화재 공연참가 「춤소리」「□」「춤 그 신명」「먼길」「홰」「비천무」「바라춤」「학춤」「승무」「살풀이굿」「학불림굿」「춤4319」「달맞이」「비단타령」「빛과 소리」(88서울올림픽)「자화상」「한량무」「꿈」「광대의 꿈」「북소리사위」「태극선의메아리」「길놀이 마당놀이」뮤지컬 「옹고집전」「양반전」「지신밟기」안무 84년부터 미국·유럽각지역·동남아·호주·남미·이스라엘·연변·북경·상해 백두산 등 각지역 순회공연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중요 무형문화재평가회의 「학무」최우수상,82대한민국 무용제 안무상,84대한민국 무용제 대상,제45회 디종 국제민속예술제 금상 수상 정재만의 춤은 힘차고 광활하다.수평의 폭이 넓고 수직은 하늘로 솟구친다.긴 장삼 얼기설기하여 공간으로 획 뿌리치는 무태에는 비구름이 묻어있다.그리고 움직임 움직임마다에 기쁨과 슬픔,고통과 오뇌가 휘몰아치다 잦아든다. 신라시대 화낭을 연상케 하는 씩씩한 기상과 자신감 넘치는 풍모가 정재만 춤의 특징이다.그가 한번 춤추기 시작하면 그 주술적인 힘에 매료되어 관객은 어깨춤이 절로 나거나 한동안 숨을 멈추게 된다. 특히나 그의 「승무(승무)」는 날이 갈수록 깊은 맛을 더하여 푸른 못속에 뜬 연(연))꽃 봉오리가 만개하려는 찰라다.이제 그는 춤을 알게된 나이다. 15∼16년전쯤 어느 사석(사석)에선가 정재만의 스페인춤을 본적이 있다.그때만해도 조택원이후 송범씨가 그 맥을 이어받았을뿐 남성무용수는 다섯손가락이 넘지않았고 그중에서 정재만은 첫째 둘째를 다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살풀이」며 「산조」를 한자리씩 추는 자리에서 유독 구둣발로 바닥을 울리며 등장하더니 그는 「투우사의 노래」를 허밍하면서 정열적인 스탭으로 「투우사의 춤」을 밟아나갔다.한국무용을 하는 사람답지 않은 힘찬 스타카토의 리듬이 돋보이는 춤이었다. 테이블의 붉은 카네이션을 양복주머니에 꽂고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물레타처럼 휘두르며 이리저리 소를 유인하는 동작은 마치 영화 「바렌티노」에서 누레예프의 탱고춤이 어울리듯 그늘진 구석없는 화려한 스페인춤이 더없이 어울려보였다. 춤추기 시작한지 어느덧 30년.그의 이력에는 「송범 문하생·벽사 한영숙전수생·김백봉사사」가 자랑스럽게 따라다닌다. ○가난했던 소년 시절 그는 일찍이 송범문하에 들어가 전통무의 발디딤새를 배우고 벽사의 「승무」「살풀이」「학무(학춤)」를 전수하여 중요무형문화재 27호인 「승무」 전수조교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기전 그는 경기도당굿이 성했던 화성에서 태어나 동네에서 벌어지는 굿판에 몰두한 시절이 있었다.하루종일 굿구경에 빠져있다가 배고파 집에 돌아오면 가난이 기다렸다. 옹기를 굽는 집안에서 9남매중 다섯째인 그는 어쩔 수 없이 불우한 소년기를 보내야했고 그래서 차라리 굿판에나 따라다녔으면 하는게 소원이었다. 본래는 부농이었으나 아버지 정수환씨(70세로 82년 작고)가 남의 빚보증을 서는 바람에 집안이 망해 광성국민학교를 졸업하던해 서울로 이사,위로 큰형과 세 누나와 뿔뿔이 헤어져 그는 부모와 동생들과 함께 방배동 단칸방에 정착했다. 그때는 어머니(김순림여사·78)가 동작동 국립묘지 앞에서 꽃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아직 중학교에 가지못한 그는 낮에는 집안을 치우고 동생들을 돌보다가 저녁밥까지 지어놓고 동작동까지 나가 어머니의 꽃 모판을 받아이고 돌아오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그런중에도 틈틈이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거나 소설책을 읽었다.하루는 헌잡지에서 본 조택원씨의가사를 떨쳐입고 춤추는 사진과 일대기를 읽고는 막연하나마 조택원씨처럼 되고싶은 꿈을 꿨었다. 『저앤 공부도 잘하고 재주도 많은데 어디 양자라도 보내어 공부를 계속하게 했으면』 어머니는 설거지에 밥하고 동생이나 돌보는 아들의 고생이 보기 안쓰러운 나머지 동료 꽃장수들에게 그렇게 하소연하곤 했다. 그후 인천으로 출가한 큰누나의 집에 얹혀살면서 여기서도 낮에는 조카들을 봐주고 밤에는 인천대건중학교,다시 서울로 올라와 서라벌예고에 진학하면서 가정교사,그러다가 가정교사로 있던 주인집의 소개로 필동에 있던 송범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잔심부름과 청소로 학교에 다니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뚜렷한 이목구비에 재빠른 동작을 눈여겨본 송범씨가 그에게 조금씩 춤을 지도했고 그는 한 동작 한 동작을 혼신을 다해 익히면서 스승이 귀가한 후에도 혼자서 밤새도록 마루바닥을 뛰었다.발바닥이 얼얼하게 부어 성할 날이 없었다. ○송범씨 만나 춤과 인연 벽사 한영숙씨의 제자가 된 것은 벽사가 71년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면서였다. 폐쇄적인 당시의 무용인맥에서는 좀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송범씨는 자신의 문하생을 선뜻 벽사에게 허락해주었다.고 한성준옹으로부터 그의 따님이던 한영숙씨에게 전수된 문화재급의 주옥같은 춤들을 남자무용수로서 전수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벽사의 유일한 남자제자가 된 그는 「승무」「학무」를 비롯,「살풀이」「산조」「훈령무」「태평무」를 차례로 전수받았고 벽사로서도 부친의 춤의 맥을 잇는다는 일념외에도 그를 친아들처럼 믿고 의지했다. 89년 10월 벽사는 눈을 감으면서 그의 춤의 사군자로 일컬어지던 승무·학무·살풀이·태평무의 보존과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한 「살풀이」「태평무」에 대한 당부를 그에게 녹음유언으로 남겼다. 그는 요즘도 공연을 앞두거나 해외에 나갈땐 경기도 남양주군 남한강가에 모신 스승의 산소를 찾아 돗자리를 펴놓고 춤추는 성묘로 보고하기를 잊지 않는다. 지난해엔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승무·학무 보존을 위한 벽사춤아카데미를 청담동 그의 무용연구소에 개설,6월에는 「나의 춤모(모)에게 바친다」 추모공연을 가져 무용계에 훈훈한 미담을 만들어 주었다. 그는 송범의 춤의 특징인 수직과 대학·대학원의 지도교수였던 김백봉의 수평,벽사의 곡선을 두루 망라하여 춤에서의 원의 완미를 이룬다는 목표를 세우고있다. 스승이 남긴 승무·학무의 보존을 위해서는 고유의 특성을 훼손·변질시키지 않는데 그치기보다 「삶의 진실에 대한 표현,삶에 대한 유기적 통찰」의 의미를 담아 전통을 재현해낸다는 자세다. 한때 초기의 춤에서 환희와 힘을 과시하면서 극적표현을 서슴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그의 외롭고 초췌했던 성장기를 은폐하고 싶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창작무용에 손대기 시작한 80년에 접어들어 그는 씩씩한 우조에서 벗어나 높은 것을 한층 난춰 감동이 배제된 은은한 계면조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춤소리」와 「□」은 화려함속에 비감이 느껴지는 수작으로 그는 한작품 작품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시대를 뛰어넘는 불후의 빛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역시 그런 각오로 빚어진 「북소리사위」는 북을 한곳에 고정시키지 않고 춤추는 사람이 5북에서 9북을 다루는 파격적 춤사위로 「거동이 정한(정한)하면서도 흥과 멋이 섬화처럼 빛나는 쾌작」으로 손꼽힌다. ○해마다 전국순회 공연 무용계에 남성무용수가 적은 것을 안타까워한 그는 세종대교수시절 졸업생들을 모아 정재만 남무단을 발족,87년 국립극장에서 창단기념공연을 가진이래 숙명녀대로 옮겨와서도 해마다 방학이면 이들을 이끌고 대전·대구·부산에서 당진·서산·합덕에 이르기까지 지방 구석구석을 찾아 순회공연하는등 안성들만의 「훈령무」와 「학무」 「북소리사위」를 펼치고 있다. 73년부터 6년간 국립무용단의 주역으로 뛸때의 파트너이자 경희대 후배인 박순자씨와 75년에 결혼,박순자씨는 무용극 「시집가는 날」의 여주인공을 끝으로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 무용단을 떠났다.자녀는 용진(남·국악고2)형진(여·국민교1)남매. 요즘도 그는 스승들을 사사하던 시절과 똑같이 새벽4시에 일어나 5시부터 연구소에 나가 3시간연습,낮에는 대학강의와 무용감독으로 있는 서울예술단에 출근했다가 하오 6시부터 밤10시반까지 연습,춤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연구소로 달려간다.춤구상을 할때면 무작정 거리를 방황하는 버릇 때문에 「구두 한켤레」란 별명이 붙어있다.한두달에 보통 구두한켤레씩을 해뜨린다는 얘기다. 그의 생활모두는 춤이다.춤과 관련되지 않는 것은 흥미도 관심도 없다.그의 춤의 한 단면만을 본 사람이라면 씩씩하고 남성다운 용모로 인해 그들 솔직하고 사교적인 인물로 착각하기 쉽다. 더구나 「한량춤」에서 보이는 「끼」와 가락은 한량기질이 넘쳐보이기도 한다.물론 아직은 40대중반이어서 그의 춤이 달통의 경지라고는 미리 말할순 없을 것이다.다만 견제가 심한 무용계에서 일관된 침묵과 양보,남과 다투지않는 화합의 마음으로 자신의 일에만 파고든다. 이따금 옹기장이이던 가난한 부친과 그의 굽던 옹기생각에 온몸이 뜨거워지고 아버지 그리움에 곧잘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그래서 요즘은 아버지를 위한 창작무 「사금파리」를 구상하고 있다. 남모를 추억과 슬픈 그리움 때문일까.그의 춤추는 손가락 끝에선 피가뚝뚝 흐르는 절규,비스듬히 미끌어지듯 내딛는 보법에는 메마른 눈물과 싱그러운 꽃가루가 동시에 흩날린다. 깊이 숙여쓴 고깔과 백합같은 정화,허공 한끝을 헤매는 속눈썹엔 부세의 번뇌가 향연처럼 타오르고 그의 승무는 지금 속절없는 방황을 헤뜨린듯 하얀 소매끝에서 장한이 적멸된다.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합장)인양」 동중정을 극도로 자제하여 그속에는 탄식 같은 흐느낌을 소리없이 감추고 있다.
  • “「장선거 연기」관련 헌법소원/12월15일 이전에 결정”

    ◎국감 사흘째 국회는 17일 법사·외무·내무·재무·문공등 15개상위별로 소관부처및 산하기관에 대한 사흘째 국정감사를 계속했다. 국회는 이날 헌법재판소·서울경찰청·국세청·공보처·LA총영사관등 31개 부처및 기관에 대한 감사에서 ▲단체장선거연기에 대한 헌법소원결정지연 ▲경찰중립화방안및 민생치안대책 ▲신도시개발문제등을 집중 추궁했다. 법사위 국감에서 김용균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은 단체장선거연기와 관련한 헌법소원결정이 늦어지고 있는데 대해 『종합적인 심리준비가 지연돼 판결이 다소 늦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재판소로선 가능한한 판결시한인 1백80일을 지켜 오는 12월15일까지는 결정을 내리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사무처장은 『헌법소원이 제기된 것은 6월18일이지만 이해당사자인 내무부의 의견서가 8월26일에,피청구인인 대통령의 답변이 9월7일에야 접수돼 본격적인 심리는 그 이후에야 가능했다』고 말했다. 전날 내무위의 서울시에 대한 감사와 마찬가지로 국회 교육위의 서울시교육청에 대한 감사에서도서울시의회의 국감방해로 감사시작이 2시간여동안 지연됐다.
  • 신공항예정지 위장매입 정밀추적(국감중계 :17일)

    ◎요인 경비병 청원경찰로 대체 검토/토초세 저항 최소화할 대책 세워라 ▷법사위◁ 헌법재판소에 대한 감사는 단체장선거의 연기와 관련한 헌법소원 결정이 지연 되고 있는데 대해 민자당과 민주·국민당의원들간에 치열한 공방전. 17일의 감사는 조규광 헌법재판소장이 인사만하고 자리를 뜬데다 김용균사무처장도 『나로선 재판소의 행정사항에 관해서만 답변할 수 있다』고 한계를 밝혀 감사시작순간부터 분위기가 저기압.민주당의 허경만의원은 『노태우대통령의 단체장선거일공고 위반은 국민이 다 아는 단순 사안인만큼 조속히 심리를 결정해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이원형의원도 『재판소가 변론을 여는 등의 방법으로 판결기일을 연장하는 것은 외압에 의해 독립된 심판성을 잃은 처사』라고 가세. 민자당의 함석재·정상천의원등은 이에맞서 『단체장선거문제는 정치권의 문제로 이를 헌법소원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못하다』면서 『현행법상 선거일 공고시한에 앞서 정부가 지방자치법개정안을 제출했음에도 국회가 이를 심의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정치권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대응. 김용균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은 이에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된 것은 지난 6월18일이지만 이해관계자인 내무부의 의견서가 8월26일에,피청구인(대통령)의 답변서가 9월4일과 7일에 각각 접수돼 그 이후부터 본격적인 심리가 시작될 수 있었다』면서 『재판부는 법정처리 기한인 오는 12월15일까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무위◁ 서울 경찰청 감사에서 의원들은 민자당 서울시지부 도난사건,수사기관의 전화도청의혹,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전·의경동우회를 결성한 이유등에 대해 집중추궁. 의원들은 또 민자당 서울시지부의 도난사고 수사진전사항과 허위신고여부,지난 8월 범민족대회 개최예정지인 중앙대에 대한 과잉진압을 사과하고 피해보상을 해줄 용의는 없는지등을 집중질의. 답변에 나선 김효은 서울청장은 『올해만 해도 민자당사등에 대한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면서 『경찰이 민자당사와 김영삼총재자택에 대해 경비를 하는 것은특정정당과 정당인에 대한 배려때문이 아니고 범죄예방과 위험발생방지차원에서 대비하는 것』이라고 해명. 김청장은 또 시위위험성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배치된 경비경찰을 철수,민생치안에 투입하겠으며 경비병력을 청원경찰로 대체하는 문제는 발전적으로 연구·검토하겠다고 답변. ▷재무위◁ 국세청에 대한 감사에서는 대부분 의원들은 토지초과이득세(토초세)의 과세 불균형에 따른 조세저항과 문제점보완등을 집중거론. 유준상의원(민주)은 『개별적으로 조사해본 결과 인천 영종도일대의 신공항 개발예정지에는 한진·대우그룹등이 엄청난 규모의 땅을 위장분산시켰다』고 주장하며 『토초세를 포탈했거나 위장전입·위장분산해 매입한 사람들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이라』고 촉구. 김덕용의원(민자)은 『토초세 시행의 골격을 이루는 유휴지및 공시지가 기준설정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고 『토초세가 부동산투기 억제등 본래의 목적을 달성키 위해서는 부득이한 유휴토지에 대한 과세를 완화하고 조세불복및 저항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 추경석청장은 이에대해 『대우그룹의 경우 91년 신공항개발예정지 12만1천평에 대해 3억4천2백만원의 토지초과이득세를 과세했다』고 밝혔으나 『한진그룹의 경우는 위장매입여부등에 대해 정밀조사를 하고있어 아직 토초세가 부과되지 않았다』고 답변. ▷문공위◁ 공보처감사에서 중립내각의 언론정책과 장기 파업중인 MBC사태등을 집중 추궁. 민자당의 강인섭의원은 『언론사가 크게 늘면서 언론의 역기능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며 사이비기자 단속용의등을 물었고 MBC기자출신인 김기도의원도 『현재의 MBC사태는 사장의 주인의식 결여와 사원의 소속감 과잉으로 발생된 것으로 판단하는데 MBC의 장기적 위상에 대해 검토해본 적이 있느냐』고 질문. 유혁인공보처장관은 이에 대해 『사이비기자나 저질잡지단속등 제도적 보완문제에는 적극 개입해 언론의 질적향상에 노력하고 언론의 공정보도문제에 대해서는 되도록 적게 개입,자율성과 책임성을 신장토록 노력하겠다』고 답변. ▷농림수산위◁ 수원 농촌진흥청 감사에서 의원들은 외국농산물 수입에 대한 대처방안과 추곡수매량과 수매가에 대해 집중 질의. 이영문의원(민자)은 『농산물 수입개방에 대비해 생산성이 높은 인공 씨감자의 보급이 왜 미진하냐』며 『국민들의 기호에 맞는 한오개량사업과 유기농업의 활성화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김영진의원(민주)도 『농수산물의 전면개방에 대비한 대체작목 개발·보급이 시급한데도 정부의 대책이 전무하다』며 『이는 농진청등 정부 농업관련 부처들의 농정에 대한 무책임,무대책,무계획성을 여실히 입증하는 것으로 계속되는 농정부재로 농민들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고 주장. 김의원은 이에앞서 감사가 시작되기 직전 『양곡유통위원회가 지난 16일 추곡수매와 관련,대정부건의안에서 밝힌 금년도 추곡수매가 7∼9%인상,수매량 8백50만∼9백50만섬은 저곡가 정책으로 회귀하는 5공식 발상으로 7백만 농민과 함께 분노를 금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문을 배포. ▷보사위◁ 대전지방환경청에 대한 감사는 대북방교역 전초기지로부상한 충남서산 대산유화단지의 공해배출로 인한 환경피해문제를 집중 추궁한뒤 충남 서산군 대산석유화학단지로 현장검증에 나서 눈길. 이해찬의원(민주)은 『대산석유화학단지가 각종 공해로 제2의 울산이 될 조짐』이라고 지적하고 『공해의 직접 영향권(반경 5백m∼1㎞)인 3백여명의 주민들을 조속히 이주시키고 근본적인 피해원인을 명백히 규명하라』고 촉구. 이에대해 윤창원 대전지방환경청장은 『인근 농작물및 주민피해가 나타나고 있는 대산유화단지에 대해서는 관계기관에 용역조사를 의뢰,원인규명을 하는 한편 가동업체에 대한 지도점검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힌후 『도심에 위치한 대전피혁도 대전시가 조성중인 제4공단으로 이전하도록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고 답변. ▷노동위◁ 부산지방노동청에 대한 감사는 (주)삼화근로자 60여명이 정문에 몰려와 『체불임금 즉각 청산하라』며 시위를 벌이는등 어수선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됐는데 의원들은 삼화의 도산사태와 근로자들의 체불임금 대책에 대해 집중질의. 김말용의원(민주)은 『삼화가 체불임금 지급을 위한 방안으로 범일공장 7천여평(3백50억원)을 매각해 해결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은행채무 1백90억원을 먼저 갚고나면 체불임금 2백30억원은 어떻게 청산하느냐』며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해결노력이 시급하다고 주문. ▶건설위◁ 토지개발공사에 대한 감사에서 의원들은 토개공의 엄청난 개발이익회수와 함께 설립취지에 어긋나는 이권사업개입문제등에 관해 중점 추궁. 오탄의원(민주)은 『토개공이 택지보유·관리·공급보다도 개발이익의 취득에 치중해 지난 79∼91년까지 무려 1조7천억원의 개발이익을 남겨 「땅장사」라는 불명예를 씻지 못하고 있다』고 추궁했고 김옥천의원(민주)도 『토개공이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양동 재개발지역에 신축중인 빌딩의 분양가격이 사업비보다 1.5배가량 높아 개발이익이 1천억원이나 되는데 이렇게 많은 개발이익을 챙기려 하는 것은 부동산투기가 아닌가』라고 질문. 이에대해 권령각 토개공사장은 『지난 87년이후 5년간 연평균 투자수익률이 13·6%로 은행금리 10%보다 높으나 연평균 지가상승률 21·5% 수준보다는 낮다』며 『지가상승과 개발에 의한 부가가치 발생에서 나오는 개발이익은 모두 토지개발·간선시설설치·개발부담금 납부 등에 사용된다』고 답변.
  • 헌재4돌 생일날의 주심사퇴/최철호 사회1부기자(오늘의 눈)

    헌법재판소가 개소 4주년을 맞은 지난 19일은 헌재 로선 우울한 생일날이었다. 탄생의 의미를 축복받고 어제의 공과를 거울삼아 오늘과 내일을 설계하며 존재의 기쁨을 흠뻑 만끽해야 했으나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예기치 않은 「생일선물」을 받음으로써 생일의 의미는 완전히 퇴색돼버렸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연기 헌법소원 심리라는 무거운 짐을 안고 있던것은 그렇다하더라도 사건주심 4명 가운데 한사람인 변정수재판관이 하루전날 돌연 주심사퇴서를 냈기 때문이다. 변재판관의 주심사퇴는 그동안 이 사건을 두고 헌재내부에서 겪던 갈등이 어떠했으며 이로인해 헌재의 앞날 또한 순탄치않을 것이라는 예감을 헌재의 존재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던져 줬다. 지난88년 헌재가 부활돼 이룩해 놓은 성과는 우리 사회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헌재는 그동안 국가보안법중 일부죄(찬양·고무및 불고지)의 구속기간연장 위헌판결등 굵직한 위헌판결 28건을 비롯해 헌법불합치 2건,한정위헌 3건등의 결정으로 주목을 받았다.지금까지위헌법률심판2백46건과 헌법소원1천94건등 모두 1천5백여건을 접수,각각 2백32건과 7백85건을 처리,78.7%라는 높은 처리율을 보여준 것은 헌재의 활동이 왕성했음을 방증해 주는 것이다. 자치단체장선거연기 헌법소원이 접수됐을때만해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같은 헌재의 활동에 비추어 어떤 판결이 나올까에 관심을 집중했다. 이런 시점에서 내부의 갈등을 극복하고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정당한 결정을 이끌어 내야 할 주심 한 사람이 사퇴서를 던지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다고 본다. 물론 변재판관의 주심사퇴가 다른 주심들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줘 객관적인 판단을 게을리하거나 정치편향적인 결정을 내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헌재가 한 사람에 의해 흔들리는 기관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9명으로 구성된 재판관중 3당합당이후 「유일한」야당몫으로 남은 재판관이 주심을 사퇴한 배경에는 정치적인 것 외에 동종사건을 다른 주심에게 배당한 개인적 불만도 작용했다는 뒷얘기가 있는 것 자체가 안타깝게 하는 것이다. 헌재의 참모습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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