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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대생 된 막내에게/김호기(일요일 아침에)

    사랑하는 우리 막내에게. 너의 대학입시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돌이켜 보면 지난 1년은 그야말로 우리 모두 벽없는 감옥생활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할머니를 여의고 쓸쓸해 하시는 할아버지께 하루도 가뵙고 위로해 드리지도 못할 정도였으니….유난히 정이 많으신 할아버지는 지척에 있는 귀여운 손녀를 그토록 오래 보지 못하시는 것을 내내 섭섭해 하셨단다.그동안 할아버지께서는 그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으시면서 『자식을 그렇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개성을 살리면서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어머니 아버지를 수없이 나무라셨다.할아버지 말씀이 백번 옳은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어쩔수 없이 세속적인 부모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부끄러운 사람들이었다.선거유세에서 인종차별을 열띠게 공격하고 나서 귀가해 보니 저녁상에 외동딸이 흑인남자 친구를 데려온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던 어느 미국 영화속의 정치가와도 같이….네가 더 멋있는 처녀로 자라날 수 있었다고 후회해 보아도 부질없는 일이겠지.그것이 다 우리 어른들 탓임을 아프게 느낀다. 사랑하는 나의 딸아.이제 대학에 들어갈 만큼 다 자란 네가 대견하면서도 어린 너희들을 데리고 6년동안 파리에서 근무하던 때의 추억이 아버지의 뇌리를 아련히 스친다.유난히도 초롱초롱한 눈에 윤기가 흐르는 까아만 머리는 프랑스 아이들 가운데 돋보인데다 총명하고 상냥하여 모든 이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너였단다.사람들은 너를 아예 너의 이름 남연대신 비슷한 발음의 민연(Mignionne)이라고 불렀었다.『귀엽다』라는 뜻이지.우리가 귀국한지 어언 십여년이란 세월이 흘러가서인지 모르지만 그토록 밝고 아리따웠던 너였는데 별로 「이유없는 반항」도 아닌것 같은데 애비앞의 너의표정은 어딘가 굳어 있는 것 같고,함께 지내는 시간도,함께 나누는 마음도 아버지에게는 무언가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네가 특차로 합격했을 때 아버지의 마음은 이제는 너와 함께 지낼 시간이 많아질 것이라는 행복한 기대감으로 가득찼었다.요즈음 일찍 퇴근하는 이유를 네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솔직히 말해 섭섭하다고 느껴지니 어쩔수 없이 아버지도 나이를 먹어가는 모양이지. 불문과에 진학하게 된 너와 함께 보들레르의 시를 읽고,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별나라를 찾고,콩쿠르 수상작의 독후감을 나누는 즐거움을 바란다면 이 소박한 애비의 소원이 늙은이의 주책이겠느냐? 네가 「오빠부대」나 「로데오거리」같은 데가 있는 것 조차 모를 정도로 건실한 것은 물론 고맙기 그지 없다.그리고 대학입학 때까지 긴긴 시간을 외국어,컴퓨터,운전교육 등으로 알차게 보내고 있는 것도 말할 수 없이 대견하다.그래야 요즈음 사람마다 얘기하는 세계화시대의 주역으로서의 준비가 될 수 있을 것이다.옛 이집트의 파라오의 묘비에 씌어진 상형문자를 프랑스의 고고학자 샹폴로와가 해독하였는데 그 가운데 『요즈음 젊은이들 버릇이 나빠져서 인류가 한 세대만 지나면 멸망해 버릴것이다』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그후 수백세대가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인류는 건재하고 있으니 아마도 젊은이에 대한 기성세대의 우려는 하릴없는 노파심일지도 모르겠지.그러나 요즈음 세상이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보다 훨씬 가난하던 옛날보다 좋아보이지 않는 것을 어찌하겠느냐.외국어와 컴퓨터와 운전은 꼭 배워야 할 생활의 방편이므로 열심히 계속해야 한다.그러나 너희가 암기식 교육으로 대학입시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인생에서 공부만으로는 성공이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을 슬기로운 네가 더 인식해 주었으면 한다. 젊은이다운 패기로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우리의 강산을 즐기고 그동안 하지 못한 독서를 통하여 선인들의 슬기와 경험을 배우며 문화의 향기에 젖을 수 있는 알차고 보람된 나날을 보내기를 바란다.그렇게 하여 그동안 입시용 암기교육으로 잃어버렸을 지도 모르는 인성을 되찾기를 바란다. 입학시험지옥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너희 또래끼리만 한껏 만끽하고 싶으면서도 가끔 팔순의 외로우신 할아버지를 찾는 너의 고운 마음이 아버지는 너무 고맙다.틀림 없이 나의 사랑어린 충고의 말을 너는 잘 받아들여 멋쟁이 대학생이 될거야. 이 좋은 일요일 아침에 사랑하는 나의 딸에게 세상에서 가장 참되고 멋있고 아리따운 여대생이될 것을 하느님께 기구드린다.
  • 독 초콜릿박물관 어린이들로 “북적”(세계의 사회면)

    ◎제조공정 한눈에… 관람객에 「초콜릿샘」 맘껏 먹도록 허용 독일 어린이들은 초콜릿 박물관을 구경하는게 큰 소원이다.93년 11월 문을 연 초콜릿 박물관 「임호프 스톨베르크」에서는 어린이들이 온갖 종류의 초콜릿을 구경하고 먹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쾰른의 라인강변에 자리잡은 이 박물관은 초콜릿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달콤한 맛은 어떻게 나는 것인가를 재미있게 보여주고 박물관 중앙에 코코아 열매 모양의 초콜릿 샘을 만들어 어린이들이 마음껏 초콜릿을 먹도록 했다. 박물관 설립자는 독일에서 초콜릿 판매로 억만장자가 된 한스 임호프(72).임호프는 초콜릿 사업에 손을 댈 때마다 성공을 거둬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초콜릿 왕으로 불린다.1838년 스톨베르크가(가)가 지금 박물관 자리에 세운 초콜릿 제조공장을 70년대 사들인 임호프는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벨기에·스위스·헝가리에까지 판매망을 확보했다.그는 20여년간의 성공을 바탕으로 주소비자층인 어린이들을 위해 5천3백만마르크(약2백70억3천만원)를 들여 이 박물관을 열었다. 94년 한해만 해도 이곳을 찾은 사람은 70만명에 이르렀다. 연면적 1천9백70평인 이 박물관을 들어서면 우선 초콜릿의 기원인 열대지방 식물인 코코아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그 뒤를 이어 박물관의 1,2층을 차지하는 초콜릿 생산라인이 펼쳐져 있다.생산라인에서는 코코아 콩을 말리는 과정,버터를 추출해내기 위해 콩을 볶고 설탕,분유,바닐라 등 각종 재료를 첨가해 반죽하는 과정 등이 재연된다.마지막으로 이 반죽물은 여러가지 모양의 틀에 부어지는데 주로 넓적한 모양의 판 초콜릿이 많지만 요즘에는 산타클로스 모양의 초콜릿이 인기다. 이와 함께 초콜릿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전시관에서는 유럽이 초콜릿을 발견하게 된 동기가 되는 마야·올멕·아즈텍 문명의 유적들 50여점이 전시돼있다.또 18세기 당시 귀족들이 음료수 대용으로 초콜릿을 부어 마실 때 쓰던 값비싼 은그릇과 20세기 들어서면서 보편화된 초콜릿 자동판매기 등도 볼 수 있다.이밖에 초콜릿 알을 낳은 뒤 돈을 달라고 우는 황새는 이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전시물로 꼽힌다.
  • 노조「95지방선거 참여」무산/헌재,「정치활동 금지」 위헌소원 각하

    노동조합의 정치활동과 정치자금 징수 및 사용을 금지한 노동조합법 제12조는 위헌이라며 제기된 헌법소원이 각하됐다. 헌법재판소전원재판부(주심 김문희 재판관)는 29일 한국노총(위원장 박종근)이 낸 헌법소원심판사건에 대해 『청구기간이 지났다』며 각하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내년 6월로 예정된 지방자치제선거를 계기로 각종 정치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설 움직임을 보여 왔던 한국노총 및 재야 노동계의 정치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특히 그동안 일부 노동운동단체를 중심으로 공공연하게 이뤄져 왔던 불법적인 선거개입행위도 명분을 잃게 돼 재야 노동계의 정치활동이 전면 봉쇄되게 됐다. 그러나 헌재가 이 사건의 청구시점을 문제삼아 각하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내년에 새로 발족될 예정인 제2노총 등 제3의 노동조합이 적법절차에 따라 헌법소원을 낼 경우 또 한번의 위헌시비 재연이 예상된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헌법소원심판의 청구기간은 대상법률이 시행된 사실을 안 날로부터 60일이내,법률이 시행된 날로부터 1백80일이내에 청구해야 한다』며 『그러나 이 사건 심판대상인 노동조합법 제12조는 63년 4월에 제정·시행됐고 청구인인 한국노총도 61년 8월에 설립됐는데도 헌법소원을 91년 1월에 제기했으므로 헌법재판소법 제69조 1항에 정한 청구기간을 경과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청구기간을 경과해 제기한 부적법한 것이므로 다른 적법 요건이나 본안에 대해 더 심리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특히 『88년 9월 헌법재판소가 출범하기 이전의 공권력행사에 의한 기본권침해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의 청구기간은 헌재의 발족시점에서부터 기산한다는 것이 확립된 판례이므로 이 사건 제기일은 청구기간을 2년이상 넘긴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조승형재판관은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 청구기간의 기산점을 헌재가 구성된 88년으로 보는 다수의견에 반대한다』면서 『문제의 노동조합법은 5·16직후에 제정됐으며 유신과 5·6공 등 권위주의적 정권때문에 개정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만큼 헌법소원심판은 청구기간내에 청구된 것으로 봐야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 윤이상씨,“정치활동 포기”/도쿄서 기자회견

    【도쿄 연합】 세계적 음악가로 독일에서 반정부운동을 벌여왔던 작곡가 윤이상씨가 17일 앞으로는 통일운동 등 정치활동을 중지하고 음악활동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에 체류중인 윤씨는 이날 숙소인 도쿄 게이오플라자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년전에 사임한 범민족대회 해외본부의장직은 사퇴한채 일체 활동을 중지하며 비슷한 어떤 단체에도 가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또 『어떤 현실정치적인 행동에도 관여하지 않고 현실정치에 이용될 우려가 있는 활동에서도 손을 떼겠다』고 덧붙였다. 윤씨는 이밖에 재야에서의 통일운동에 대한 기대와 관련,『나의 심경과 건강을 유지하기에는 이제 한계선에 도달했기 때문에 아무도 나에게 그런 기대를 갖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윤씨는 이어 『남은 힘과 정열을 음악에 쏟을 것이며 절대적 이상인 민족사랑과 통일에 대한 충정은 앞으로 내 음악이 대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그러나 북한에 윤이상음악연구소가 있기 때문에 건강이 허락하면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면서 고향 충무를 방문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소원이지만 국가보안법이 철폐되지 않는한 한국을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12·12」공소시효 연장 될까/오늘「15년」만료… 헌재결정 전망

    ◎수사기록 방대… 내란·반란죄 판단 불가능/대통령 재임·심리기간 시효정지 여부 논의 검찰의 「12·12사건」 기소유예처분및 내란죄불인정 결정에 불복,정승화 전육참총장등 고소·고발인측이 낸 헌법소원사건을 심리중인 헌법재판소가 공소시효 만료일인 12일까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헌재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내란죄는 무혐의처분이 정당하고 반란죄에 대한 불기소처분도 정당하다』며 검찰의 손을 들어주는 각하결정과 『군사반란죄에 대한 기소유예처분은 부당하다』며 불기소처분을 취소하는 2가지중 하나다. 그러나 헌재가 12일 이같은 판단을 내릴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지난달 24일 사건을 접수한 헌재가 1만7천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검찰수사기록을 9명의 재판관이 나눠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결론을 내리기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날 헌재가 공소시효 정지사유를 인정해 시효를 연장시킬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고소·고발인들의 헌법소원 청구취지는 ▲12·12 군사반란이 내란죄에 해당하는지 ▲검찰이군사반란으로 인정한 12·12사건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내린 것이 옳은지 ▲군사반란의 주역인 전두환 전대통령의 대통령재임기간이 공소시효 정지사유에 포함되는지 여부이다. 지난 9일 열린 제2차 평의에서 검찰측의 『94년 12월12일 자정을 기점으로 공소시효가 만료된다』는 주장과 이 사건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공소시효 정지사유에 대한 해석을 놓고 재판관들 사이에 5시간동안의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도 이때문이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평의에서 『12일까지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공소시효를 넘기는 것이 아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점이 공소시효 연장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재판관들의 대체적인 의견은 이 사건이 내란죄냐,군사반란죄냐의 결정여부에 따라 공소시효가 달라지기 때문에 공소시효 문제와 사건 본안을 서로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내란죄로 인정될 경우 내란행위가 끝난 시점으로부터 15년 뒤가 공소시효 만료일이 되며 반란죄로 인정되더라도 「대통령 재임기간중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결정을함께 내리면 공소시효는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또 내란죄냐 반란죄냐에 관계없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계류중인 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것으로 결정이 나면 헌재는 시간의 부담없이 심리를 할 수 있게 된다.헌재는 지난해 9월 『헌법소원 계류중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5대4로 내린 바 있으나 판례 변경필요성에 대한 검토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12일 열리는 제3차평의에서는 12·12의 주역인 전두환 전대통령의 재임기간및 헌법소원 심리기간을 공소시효 정지기간으로 봐도 되는지 여부가 집중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 시효 연장·내란죄 인정여부가 초점/「12·12」헌재처리 어찌 될까

    ◎고소인 이겨도 「기소유예」 안바뀔듯 12·12사건의 고소인들이 검찰의 항고및 재항고기각에 불복,24일 헌법소원을 제출함에 따라 검찰의 12·12사건 불기소처분에 대한 최종 법률적 판단은 헌법재판소에서 가려지게 됐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공소시효만료일인 12월 12일안에 결정을 내릴 것인지와 고소인측이 『12·12는 군사반란이 아니라 내란』이라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헌법소원사건에 대한 법정처리기간은 접수일로부터 3개월.최단시일에 사건을 처리한 기록은 14대 총선을 앞두고 이기문씨가 무소속후보의 연설기회를 제한한 국회의원선거법 규정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이 13일만에 처리된 사례이다.12·12 사건의 경우 공소시효만료일이 앞으로 19일 남아 있으므로 시간상으로는 처리가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강제규정이 아닌 훈시규정에 불과하기 때문에 헌재가 심리도중에 『공소시효가 지나 소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해도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이 경우 여론의 눈총과 정부및 검찰에 지워 줄 부담을 피할 수 없으므로 헌재 스스로 공소시효 연장문제를 거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18일 대검의 재항고 기각이후 고소인측이 시간에 쫓기면서도 곧바로 헌법소원을 내지 않은 것은 전두환 전대통령과 12·12가담자들의 공소시효만료일및 내란죄성립여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비장의 무기」로 제시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공소시효의 경우 「대통령재직 중에는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84조에 따라 대통령재임 중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에따라 군형법상 반란죄가 적용된 전전대통령의 공소시효는 대통령에 취임한 80년 9월1일부터 임기가 끝난 88년 2월25일까지를 제외한 오는 2002년 4월 4일까지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또 12·12사건의 전개과정에 비추어 내란행위는 81년 4월에 개최된 국가보위입법회의 제25차 본회의까지 계속된 것으로 보아야 하기때문에 내란죄 공소시효의 기산점도 81년 4월부터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헌재가 이들의 헌법소원을 받아 들인다고 해도 검찰이 반드시 관련자를 기소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헌법소원의 인용결정은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한다』는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검찰이 재수사에 나선다 해도 처음 결정대로 기소유예 또는 「공소권없음」결정을 내린다면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헌재에 접수된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사건은 모두 7백42건으로 이 가운데 22건만이 받아 들여져 인용률은 2.9%에 불과했다.특히 헌재의 인용결정에 따라 검찰이 재수사를 통해 당초의 불기소처분을 뒤집고 기소한 사건은 7건에 불과한 통계는 인용결정이 곧 기소가 아니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 장애인 의상 전문 디자이너 조윤숙씨(인터뷰)

    ◎“사회 적응하게 유행에도 신경”/장애인용 토털컬렉션점 열고 싶어 『배가 유난히 나오거나 팔이 긴 사람이 옷맞춤에 신경을 쓰는 것처럼 신체적 불편이 큰 장애자들이 색다른 옷을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하지요.기능을 보강하는 것은 물론,유행경향에 뒤지지 않는 멋있는 옷을 만드는데 디자인의 초점을 맞춥니다』 지난 90년 원광대 의상학과를 졸업하고 「조윤숙컬렉션」이라는 맞춤복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디자이너 조윤숙씨(29·서울 종로오피스텔).두살때 소아마비를 앓은 그는 자신과 같은 장애자들에게 맞는 의상을 개발하는데 온힘을 쏟고 있는,우리사회에서 그리 흔치 않은 이웃이다. 『옷은 제2의 피부이고 입기에 따라 생활태도가 바뀌지요.특히 장애자들에게 옷은 삶의 의욕과 사회적응능력을 불어넣어주는 큰 역할을 합니다』조씨는 의복의 중요성이 이토록 큼에도 장애자들은 기성복을 고쳐입거나 값비싼 맞춤복을 입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대학시절 개량한복을 직접 만들어 입고 다녔을 때 다른 장애친구들이 같이 만들어달라고 주문,그때부터 조금씩 디자인을 해왔다. 『친구들이 찾아와 불편한 부위를 이야기하는데 다양한 신체적 장애 만큼이나 신경을 써야할 곳이 이만저만한게 아닙니다』 목발을 짚은 사람은 겨드랑이 쪽 옷감이 쉽게 헤어져 둥글게 마름질하고 덧대거나 박음질을 몇번 더해야하고 휠체어 탄 사람은 앞부문을 짧게,엉덩이부분은 길게 디자인한다.또 의족을 댄 사람은 바지 양옆 솔기에 지퍼를 다는 것 등등…. 91년 한때 장애자복지정책연구회등에서 일하기도 했던 그가 의상디자인에 발벗고 나선 것은 친구의 웨딩드레스를 빌려 드레스집에 따라갔을 때.몸이 왜소한 친구에게 빌려주면 수선후 다시 복원하기 힘들기 때문에 폐기처분하는 드레스를 거의 강압적으로 권하는 것을 본뒤다. 『결혼식날 화사한 신부가 되려는 것은 모든 여성들의 꿈이지요』그래서 한복과 양장에다 웨딩드레스까지 두루 취급하는 그는 자신의 드레스를 입고 화사한 신부로 변한 모습을 볼때 보람을 느낀단다. 형편이 넉넉치 못하고 다 알음알음으로 오는 장애인들이라 이것저것 빼고나면 「돈되는장사」는 못된다.한국장애자 재활기능연구원에서 디자인에 솜씨를 보이는 장애학생 5명을 특별지도하는 조씨는 작은 공장을 하나 갖는 것이 소원이다.애써 디자인한 것을 봉제 하청업체에 들고가면 성의없이 일반인의 옷처럼 박음질해버리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 장차 옷 신발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장애인들이 자신에 맞게 한자리에서 고를 수 있게 「토털콜렉션점」을 여는 욕심도 갖고 있다.
  • 「사전따로 말 따로」 발간/배우리씨(인터뷰)

    ◎“토박이말 써야 존경받는 사회 됐으면”/언어오염 심각… 현재 통용되는 말20% 사전에 없어 한글 사람이름,토박이 땅이름을 찾고 퍼뜨리느라 지난 24년을 보내온 배우리씨(56·한국 땅이름학회 부회장)가 최근 곱고 바른 우리말 쓰기를 다룬 책 「사전 따로 말 따로」를 냈다(토담 펴냄).이 책은 「우리 땅이름의 뿌리를 찾아서」「고운 이름 한글 이름」들에 이은 그의 다섯번째 저서다. 배씨는 이 책을 쓴 이유를 『지금 사회에서 널리 쓰는 말과 사전에 올라 있는 말이 너무 달라 그 틈을 메우기 위해서』라고 밝혔다.곧 청소년층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은어·비속어와 유행어들을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바람에 같은 뜻을 가진 「좋은 말」들이 오히려 「죽은 말」(사어)이 돼버린다는 지적이다. 그는 현재 통용되는 말 가운데 20%쯤이 사전에 오르지 않은 말로 추정된다면서 이는 우리 사회의 「언어 오염」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다고 개탄했다.그러면서 그 책임이 언론,그 가운데서도 방송에 있다고 꼬집고 우리말·우리글을 살리는 책임도 언론에 있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일본어의 영향이나 한자투 문장에서 벗어나 토박이말(고유어)과 우리글을 적극 발굴,사용해야 합니다.방송에서도 출연자들이 마구 내뱉는 말들을 걸러내야 할 뿐만 아니라 한때의 인기를 좇아 유행어를 만드는 짓을 그만둬야 하구요』 그는 앞으로 외국어·한자어를 자주 쓰는 사람은 무시당하고 토박이말(고유어)을 제대로 써야 「유식한 사람으로서 존경받는」사회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70년 친구에게서 딸이름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운 우리말을 찾기 시작해서 어느덧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직장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우리말 찾기에 나서게 됐다는 게 그의 얘기다. 한글이름보급운동이 가장 보람찬 일이었다고 말하는 배씨는 앞으로 북한의 우리말 사용실태를 연구해 남북한의 언어통일을 이루는데 기여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그는 『말과 글이 통일돼야 얼이 통일되는데 벌써 남북한에서 달리 쓰는 말이 많이 생겼다』면서 하루빨리 말과 글을 합치지 않으면 「남 따로 북 따로」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걱정했다.
  • 로마/광장과 분수들(아랍서 지중해까지:17)

    ◎빼어난 조각 트레비분주 “압권”/저마다 소원빌며 샘에다 동전 던지는 모습은 진지하기만… 로마의 아침을 보려고 5시쯤에다 시간을 맞춘다. 바로크풍의 둔중한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에는 간밤의 불빛들이 아직 명멸하고 있어도 사방을 에워싸고 다가들던 그 거창한 명소나 유물들은 채 잠이 깨지 않았는지 희뿌연 모습들인 채 산책을 방해하는 것같지가 않다. 숙소근처를 두어블록 걷자 골목에서 새벽장이 서고 있다.인근 농장에서 직접 왔는지 캡을 쓰고 멜빵바지차림으로 웃고 있는 주인들 곁의 열어젖뜨려진 소형트럭과 좌판위에 늘어놓인 갖가지 야채와 이름모를 과일들이 싱싱하다.여기 오렌지는 쪼개면 핏빛으로 넘치는 즙과 함께 톡 쏘는 단맛이 유난스럽다.정말로 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이런 사소하고 일상적인 현실의 풍경이어서 지리멸렬한 여독이 어느새 가시고 있다. ○하찮은 것도 소중히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무리 보잘 것 없고 하찮은 것이라도 그럴듯한 이름을 거기 붙이기를 좋아하고 또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재주가 있는 것같다.구멍가게나 문방구에서 파는 작은 기념품,펜대 하나의 모양새가 그렇고 별의별 이름을 다 붙여놓은 거리들이 그렇다.별 두개짜리 속소인 「셀렉트」호텔만 해도 우리식으로는 장급여관수준밖에는 안돼 보였으나 주위공간을 하도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아 좁다는 불평을 할 수가 없다.정갈한 욕조,앙증맞은 비누곽,출입문과 바로 이어지는 통로를 간결한 탁자와 꽃들로 장식해 아늑한 공동정원으로 꾸며놓고 있다.거기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올려다보노라니 서울 필동의 어느 후진 곳을 연상시키는 그 뒤쪽의 낡은 건물이 오히려 고소를 자아낸다. 좁아터졌으나 역시 아늑하기 짝이 없는 지하식당에서 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시내나 한바퀴 둘러보자고 나선 길에 운좋게도 산 피에트로광장에서 교황을 만난다.운좋게라고는 하지만 카톨릭신자가 아니므로 그저 먼빛으로 구경이나 한 셈이 되어버린 이 수요일 오전의 알현은 필자에게는 사실 뜻밖이었다. 바티칸시국은 64번 버스종점으로 테르미니역과는 반대편끝이다.산 피에트로사원은 카톨릭미술의 보고인 바티칸박물관,라파엘로관,기타 미술관들과 미켈란젤로의 저 유명한 「천지창조」가 천장화로 장식된 시스티나예배당으로 바로 이어진다.높이 25m가 넘는 장대한 오벨리스크와 분수와 1백40인의 성인상이 주위의 열주지붕위에 버티고 선 더 넓은 광장에는 세계 도처에서 모여든 듯한 수천명의 신자들이 웅성거리고,사원정면 계단 아래쪽에 차양을 치고 마련된 대좌 위의 요한 바오로2세는 시종 웃음을 띠고 있는 것 같았다.각 나라말로 한마디씩 은총을 내리는 모양으로 그때마다 해당되는 나라의 신자들이 환호하며 몸들을 일으켰다. 뭐라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으나 물론 우리말의 은총도 환호도 있었다.조말의 병인사옥이라든가 서강쪽의 절두산 같은 것이 제풀에 생각나 감개가 없을 수 없다. ○광장서 교황 만나 테베레강을 건너 베네치아광장으로 빠지는 길목에서 버스를 버리고 걷는다.로마는 웬만한 길들이 그대로 모두 쇼핑타운이 되어 있어 은근한 디자인과 태깔의 그런 길가 가게들 모습은 유별나다.무드를 연출하고 집중적인 포인트로 상품을 진열해놓는 품새부터가 그렇고,묘하게 접혀서 제자리에 걸려 있는 그저 그런 옷가지 하나가 무슨 첨단디자인의 최고제품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필자의 눈에까지 그 지경이라면 입성에다 목을 매다는 여성들의 눈에는 오죽하겠는가.사심없는 눈요기야말로 하나의 풍경의 중심에 도달하는 첩경이고 일종의 쾌락에 가까운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는데,그래서 그런지 가게로 들어간 일행 두사람이 좀처럼 나올 염을 않고 있다. 천사가 모는 사두마차의 지붕 좌우끝머리 조각과 중앙의 기마상이 인상적으로 금방 눈에 들어오는 에마누엘레2세기념관의 베네치아광장은 사통팔달로 연결되는 주위의 한다 하는 로마명소나 유명한 분수들의 그 중앙통쯤 되는 지점이 된다.트레비분수는 그 바로 다음인 콜로나광장에 있다.로마근교의 미남 홀아비 로사노 브리지가 관광온 미국처녀를 죽어라 쫓아다니는 얘기인 왕년의 영화 「애천」이 생각나서도 그렇지만,이 분수는 그 웅장한 규모로나,바로크양식의 걸출한 조각으로나,사철 거기 몰려 와글대는 사람들로나 역시 이곳 볼거리의한 압권이랄 수밖에 없다. 샘 주위는 그대로 온갖 피부색 인종들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고,그런 격의없는 꿈의 무슨 도피처로도 보인다.사뭇 진지하게 소원을 빌면서 저마다 한번씩 샘에다 등뒤로 동전을 던져보고 있대서가 아니라 그 소박하고 치기어린 제스처가 또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빨리 통일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지고한 소망보다는 한푼이라도 돈을 더 벌게 해줍시사 하는 현실적인 소원이,그래서 여기서는 더 비현실적인 뉘앙스를 띠면서 제대로 먹혀들 것도 같다.권태와 욕구불만에 고주망태가 된 글래머 스타 애니타 에그버그가 심야에 이 분수에 뛰어들어 난동을 부리는 장면이 있는 예의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생활」이 떠오른다. 기적이라고까지 불린 이탈리아의 눈부신 경제성장이 시작되던 60년대를 배경으로 소위 로마 상류층의 무위와 타락한 일상을 신랄하게 비꼬면서 고발하고 있는 이 필름은 스페인광장 저쪽의 베네토거리가 로케이션의 주무대였던 걸로 알고 있으나 트래비분수를 슬쩍 삽입한 예의 장면의 효과는일탈한 것이었다. 펠리니는 이 관광명소의 또다른 상징적 의미를 거기서 끌어내고 싶었을지 모른다.배는 불러도 삶의 공허를 어쩔 도리가 없어 카페에서 남녀가 말타기놀음까지 벌이는 유한계급의 그런 지리멸렬한 속성이나 같은 이유로 그들의 스캔들이나 고작 뒤쫓고 팔아먹으면서 파행을 자초하는 어떤 잡지사 기자의 행각이 이 작품에서는 스토리가 되고 있다. 펠리니도,「길」에서 젤소미나역을 절묘하게 해내던 그 부인 줄리에타 마시나도,단발머리로 이이스크림을 빨면서 계단을 깡충거리고 내려오던 왕녀 오드리 헵번도 얼마전에 모두 타계했다.윌리엄 와일러의 「로마의 휴일」로 더 유명해지고 지금도 여일하게 그대로인 그 스페인광장의 계단은 그래서 새삼 감회를 자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낱 스크린속의 선남선녀들이 벌이던 그런 운명의 무상감 때문이 아니라 화면에서는 그렇게도 정답고 낯이 익던 공간이 실제로는 도무지 현실감으로 오지 않는 그 생뚱함 때문일 것이다. 이 스페인광장의 끝에서부터는 구치니,발렌티노니,페라가모니 하는 소위 유명상표의 가게들과 부티크타운의 콘도티거리가 바로 이어지지만 별볼일이 없는 것같아 그냥 지나친다.동행과도 헤어져 어디를 어떻게 해맸는지 알 수가 없다. ○요상한 청년들 배회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고대로마의 건축물인 만신전 「판테온」앞을 어설렁거리다 나보나광장으로 다시 빠져나와서야 맥이 쭉 빠졌다.뭘 보려고 헤맨다는 것이 사실은 한 뼘의 쉴 장소를 찾으려고 여태 긴장해온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마실 것을 갖다놓은 야외카페 탁자위로 겁도 없이 비둘기 서너마리가 날아 앉는다. 차가 들어올 수 없는 이 광장에는 「사대강」 「무어인」 「넵튠」의 이름이 붙은 유명한 세개의 분수가 있다.도리없이 또 필자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그런 축조물 주위에 앉거나 아무렇게 드러누워버린 요상한 차림의 젊은이들이다.로마건 어디에서건 가장 흔하게 보아오던 비슷비슷한 무리들인데,어디서 왔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베낭족들도 있고 어설픈 인디언 목걸이니 열쇠고리니 하는 것을 팔면서 움직이는 젊은이들도 있다.60년대의 히피즘이 다시 도래하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눈여겨봤으나 행색만 비슷할뿐 그것도 아닌 것같다.기타를 끼고 있는 녀석도,헝겊으로 이마를 묵은 녀석도,민대머리도 있다. 왜 이들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가고 새삼 생각한다.우선 그들은 이념적인 색채가 전혀 없어 보인다.항문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해는 보이지만 돈의 위력쯤 똥으로도 안 여기는 눈치들 같기도 하다.집도 절도 냉장고도 지니고 있지 않아 거칠어는 보여도 그만큼 어딘가가 탁 틔어 있다. 21세기는 아마 그들의 몫일 것이다.
  • 클린턴의 세가지 소원(특파원수첩)

    19일 하오 1시30분 백악관에선 클린턴미대통령의 쿠바난민정책 전환에 관한 기자회견이 있었다.근 30년동안 유지해온 쿠바 해상탈출자에 대한 정치적 난민지위 자동허용조치를 1백80도 전환,입국을 일체불허키로 한다는 내용이었다.TV로 생중계된 이날 회견 분위기는 딱딱하고 엄숙한 것이었다. 그러나 회견말미에 한 여기자가 이날 만48세가 되는 생일을 맞은 소감과 함께 「생일소원 세가지」를 말해달라고 하자 장내분위기는 일순 가볍고 밝아졌다. 클린턴은 소원 3가지를 하나하나 열거해나갔다. 첫째 소원은 「범죄방지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장내에 까르르 웃음이 일었다.둘째는 서로가 마음의 문을 열고 당리당략을 조금만 떠나면 의료개혁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지난주 여당인 민주당소속의원 58명의 반란표(?)로 무참히 부결된 범죄방지법안을 다시 수정하여 재상정하려는 클린턴대통령이 반격작전의 성공을 비는 소원인 것이다. 취임후 18개월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챙겨오다시피한 의료개혁법안이 아직논란속에 정식 상정이 되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범죄방지법안이나 의료개혁법안은 클린턴대통령의 최대 선거공약이자 내정현안 제1·2호로 치부되고 있지만 의회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때문에 「진짜 소원」일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이 셋째 소원을 말했을때 장내는 축제분위기처럼 일렁거렸다.그는 『이번 여름휴가를 포기하지 않아도 됐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다.왜냐하면 나이 50이 되기 전에 골프 스코어 80대를 깨는 것이 꿈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대통령 클린턴」이 아니라 「인간 클린턴」의 「진짜 소원」이 나오자 분위기는 『해피 버스데이 투 유』로 바뀌었다. 사실 클린턴대통령의 생일을 우리 식으로 풀면 8월 복더위의 개(견)띠 팔자니 두들겨 맞아도 한창 두들겨 맞아야할 괘다.그래서 그런지 범죄방지법 부결로 클린턴의 내정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대두되기도 했다. 그러나 클린턴이 생일소감을 얘기하면서 『나는 불굴의 투혼을 좋아한다』고 밝혔듯이 그는 한판승부를 가리다 안되면 「원칙을 손상하지 않는 타협」을 통해서라도 끝까지 목적을 달성하는 스타일이다.드라이브 샷을 2백75야드나 날리는 「장타 골프광 대통령」의 공인핸디캡은 80대 중반을 치는 16정도인데 임기말(50세가 되는 96년)전에 기어코 싱글이 되보겠다는 그의 집요한 인간적 체취가 왠지 친밀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 문충일씨,“여기가 그리던 조국”/북출신 일가4명 어제 입국

    ◎41년 만주이주후 미얀마·태국 전전/“아버지 찾아라” 모친유언에 한국행 북한출신으로 태국의 마약왕국 쿤사지역을 탈출,최근 한국정착을 희망한 무국적 난민 문충일씨(56) 일가족 4명이 12일 상오 8시55분 대한항공편으로 입국했다. 문씨는 이날 부인 이순선씨(45)와 아들 철군(19),딸 미령양(13)과 함께 환한 모습이었다. 문씨 일가족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태극기를 꺼내들고 오랜 숙원이던 한국정착의 기쁨에 감격해했다. 문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조국의 품에 안기니 대륙보다 더 광할하고 편안하다』며 『또한 한국정착이 소원이던 어머니의 유언을 마침내 이루게 기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평북 용천이 고향인 문씨는 3살때인 41년 부모를 따라 만주로 이주해 중국국적을 취득,평범한 생활을 해 왔다.그러나 부친이 43년 남한으로 떠나는 바람에 홀로 남은 모친을 모시면서 남편이 그리워 한국으로 가고 싶어하는 평소 어머니의 유언이 계기가 돼 한국정착에 꿈을 키워왔다. ­어머니의 유언으로 한국행을 결심했다던데. ▲아버지가 해방전 몽골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뒤부터 어머니는 물론 온 가족이 한국행을 소원해 왔다.어머니는 돌아가시면서 「아버지를 찾아가라」는 말을 남기셨다. ­지금까지 겪었던 역정을 간단히 말해달라. ▲중국은 내가 반백년을 산 곳이다.처와 아이들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그곳에서 고향삼아 살려 했으나 중국 공산당이 우리 가족들을 오해했다.60년 친구와함께 한국으로 도주하려다 10여년 감옥생활을 하고 나왔다.그뒤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살기가 나아졌으나 89년 천안문사태이후 외국인과 관계있는 기독교인에 대해 대대적 탄압선풍이 불어 더 중국에 있을 수 없었다.그래서 미얀마를 거쳐 태국의 마약왕 쿤사지역으로 들어가게 됐다. ­신앙은 어떻게 갖게 됐나. ▲개혁개방정책이 시행된뒤 아시아 극동방송 유모목사와 연락이 돼 기독교에귀의했다. ­쿤사에서 탈출하게 된 경위는. ▲쿤사에 관해 한국인에 정보를 흘린다는 오해를 받았다.그래서 방콕으로 탈출,주방콕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7평짜리 방에 온 가족 반년간 은신해 살았다.
  • “소송 폭증할것”… 법원 인원보강 분주/“불합치” 결정 언저리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토초세법 입법과정만큼이나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번 결정은 위헌이냐,합헌이냐를 둘러싸고 재판관들뿐 아니라 연구관들까지 합세해 뜨거운 논쟁을 벌인 끝에 막판에 재판관들이 위헌쪽에 손을 들었다는 후문이다. ○…91년이후 지금까지 19건의 토초세관련 위헌제청 및 헌법소원이 접수됐으나 이중 1건은 기각,1건은 취하됐으며 17건이 계류중인 상태에서 29일 3건에 대해 헌재의 결정이 남으로써 나머지 결정은 별다른 의미가 없게 된 셈. ○…헌재는 결정을 내리면서 관례에 따라 국회에 대해 해당 법조항의 개폐시한을 못박자는 의견이 제시됐으나 국회에서 난색을 표명해 시한을 명시하지 않았다고. 국회는 헌재의 결정내용을 비공식적으로 통보받고 『입법권자인 국회에 언제까지 법을 고치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헌재측에 유감을 표시했다는 것. ○…정부를 상대로 하는 행정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서울고법 특별과는 토초세관련 소송이 폭증할 것에 대비,인원을 보강키로 하는 한편 11개인 특별재판부를 1개 더 늘리는등 발빠르게 대응.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헌재 결정이 소급적용이 안된다지만 세금을 내고 가만 있을 사람이 있겠느냐』며 앞으로 토초세관련 소송이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 ○…이날은 공교롭게도 헌재 창설이래 가장 독보적인 결정으로 유명한 「국제그룹해체는 위헌」 결정이 내려진 지난해와 같은 날이어서 화제. 헌재 관계자는 『일부러 날짜를 맞춘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국제그룹 결정이후 헌재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는데 이번에도 국민들의 관심이 쏠린 토초세 결정을 해 7월29일은 헌재의 제2창립일이나 다름없게 됐다』고 자평. ○…헌재측은 결정이 내려지기도 전인 이날 아침 모신문에 「토초세법 위헌결정」제하의 예고기사가 보도되자 『헌재의 권위를 무시하는 몰상식한 행동』이라며 극도로 흥분했다는 후문. 재판에 앞서 일부재판관이 『결정문발표를 연기해 예측보도의 나쁜 버릇을 고쳐야 한다』는 극약처방까지 주장하는 등 논란이 벌어져 헌재 창립이래 유례없이 재판이 35분이나 늦게 시작되는 파행을 겪기도. ○…토초세 마련에 앞장섰던 경실련은 이날 상오 20여명의 회원들이 사무실로 나와 우려스러운 모습으로 헌재의 토초세 결정이 앞으로 미칠 영향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 일부참석자은 이자리에서 『경실련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입법인데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니냐』며 우려. 한 관계자는 『이번 결정에 무척 놀랐다』며 『앞으로 많은 땅을 나대지로 갖고 투기를 노리는 땅투기꾼을 어떻게 제재할지 의문』이라며 못마땅한 목소리.
  • 국토­상처받기 쉬운 갈대/지명관(시론)

    요즘 서울과 춘천 사이를 자주 오가면서 나는 이상하게도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 파스칼의 말을 되씹곤 한다.그는 「자연속에서 가장 연약한 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말을 했다. 그가 살고있던 17세기에는 아직 자연이란 거대한 힘을 가지고 인간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그러니까 자연을 한번 정복하고 싶다는 것은 인간의 간절한 소원이었다.나는 경춘선 차창에 기대어 소양강 강물을 내려다보고 그너머 병풍처럼 이어지는 검푸른 산들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저 강물 저 산들,그리고 춘천을 감싸고 있는 호수들이 언제까지 저렇게 깨끗하고 시원하게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정말 오늘에 있어서는 최대의 자원이란 자연그대로의 산과 물과 공기가 아니겠는가. 지금은 자연이 인간들 앞에서 그지없이 무력하게 놓여져 있다.인간보다 연약한 것이 자연이다.또는 인간이나 자연이나 우리 국토나 다같이 「하나의 갈대」처럼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것이라고 해야한다.그러므로 이 모두가 정답고 부드러운 손길을 필요로 하고있다. 우리 정부는 2001년까지 8년간에 걸쳐 1조1천5백억원을 들여 「백제문화권」의 「대개발」을 서두른다고 하더니 이제는 또 마찬가지로 2001년까지 총7조3천9백1억원을 들여서 「제주도 국제관광지 개발」에 힘쓴다는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역균형개발법」을 시행하여 서해안도 남해안도 동해안도 그야말로 거의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개발을 하고 각지역을 대도시와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국토개발」이 이번에는 지방자치단체의 구상과 실천노력을 중심으로 해서 전개된다고 하니 가히 「획기적인 변화」라고 자화자찬할만 하다.이렇게 21세기를 향하여 밝은 구상을 보여주면서 한걸음 한걸음씩 건설해 간다고 하니 정부관리의 복지불동도 이제는 끝난 것인가 하고 기대를 걸게된다.그러니까 그 정책에 대해서 여기에 이것저것 따져보자는 것이 아니다.다만 우리의 자연,우리의 국토는 우리의 몸과 같이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것이라는 현대적인 자연관을 가져달라고 부탁하고 싶다.자연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몸보다도 상처를 받으면 영원히 또는 오랫동안 아물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지방자치단체의 이니셔티브로 그러한 개발이 진행된다고 하니까 우리의 지방자치가 어느정도의 권한과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고 묻고 싶어진다.일본에서는 스스로 「삼할자치」라고 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가 공해없는 기업을 유치하기 위하여 토지를 제공해주고 사립대학인데도 부지를 제공하며 교사건축비마저 마련해주는 예가 적지않다. 그리고 이번의 국토개발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민자를 유치한다고 했는데 일본의 동북지방에 있었던 한가지 예를 소개하고 싶다.어떤 대건축업자가 20여만평에 고급주택지를 조성하려고 했다.그러나 그 지역이 외진 곳이라 시내에 있는 여자대학에 8만평이라는 토지를 제공해서 그 지대를 밝은 지역으로 만들었고 고급주택지를 조성하는데 성공했다.이처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아름다운 지역을 함께 만들수 있는 마음가짐과 지성이 아쉽다고 말하고 싶다. 끝으로 일본이 경험한 좀더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만 더하려고 한다.1970년대초 토건업자 출신인 다나카 가쿠에이총리때 얘기다.그는 고도성장에 의한 도시집중을 피하려고 「일본열도 개조론」을 전개했다.초과밀도시에서 공장을 지방으로 재배치하고 여러지방에 25만인구의 도시를 건설해가며 전국을 1일 행동권으로 하는 교통망으로 연결한다는 것이었다. 그 주장에 일본국민도 상당히 흥분했었다.그러나 한해에 물가가 16%나 뛰고 지가는 42%나 폭등했던 것이다.거기에다가 그러한 국토개조론의 전제가 되었던 고도성장이 사실은 끝나가고 있었고 오일쇼크등 대외적인 조건도 악화되었다.이리하여 그 거대한 토건업자적인 꿈은 그야말로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전국에 그 상처만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2백만가구 아파트건설은 좋았지만 그것으로 임금이 폭등하고 농촌에서 노동력을 구하기 어렵게 된 쓰라린 경험도 있지 않았던가.건설도 개발도 좋다.그러나 복잡한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탁상공론이 돼서는 안된다.국민도 자연도 국토도 무리하게 거칠게 다루면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진노하는 법이다.그렇지만 문민정부의 국토개발은 그런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싶다.
  • 월하스님(조계종 개혁회의장)의 종풍혁신 설법

    ◎“청규실천의 불교로 환골탈태해야”/종단분규 오랜 권력독점이 빚은 결과/불타의 이상은 무애… 첨예대립 피해야/절에선 중아닌 부처님 찾도록… 사부대중도 개혁 동참을 경남 양산군 하북면 신평리 영취산.석존이 법화경을 설했다는 산 이름이다.만법을 통달하여 일제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의 통도사가 그 산자락에 있고,절 안쪽 깊숙한 정편전에는 월하스님(81)이 주석한다.불교 조계종 소용돌이 속에서 개혁회의를 이끌고 나온 노장이다.평상시 대로 대중들과 더불어 아침공양(식사)을 마친 참이니까,노장을 만난 시간은 상오6시반을 좀 비켜섰다. 『어디 세상일에 관심을 가질 나이인가요.개혁을 하겠다고 앞장선 새 사람들이 명분을 앞세워 내 이름을 써 넣고 불러낸 것이지요.그래서 이 늙은이 얼굴 한번 내 비추고 오자,하는 생각에서 서울을 다녀왔습니다.산중에만 산 사람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틀을 묵는데도 퍽이나 혼이 났어요』 노장이 털어놓는 개혁회의 의장식 수락 동기속에는 스스럼이 없다.표정이나 말솜씨가 여느시골 할아버지다.원로종교인에게 카리스마적 권위는 물론 베일에 가린 신비가 어느정도는 배어있어야 할텐데,그런 구석이 도무지 찾아지지 않는다. ○평범한 촌로의 모습 『괜찮습니다.사시사철 문을 열어 놓고 사는걸요.별 사람들이 다 찾아옵니다.문을 열어놓고 살다보니 거북한 일도 있지요.젊은 여신도들이 내왕할 때 남보기가 안 좋더라구요.그렇다고 오지말라는 말은 못하겠고….절집에서는 연세가 높은 모친도 같이 못 사는걸 법도로 여기니까요』 본래 시자도 없이 사는 노장앞에 불쑥 나타난 점을 사과드렸더니 농담 반에 진담 반을 곁들여 정편전만큼은 대문에 빗장을 걸지 않는 거처임을 애써 강조했다.노장을 가리켜 「열려진 고승」이라고 하는 까닭이 이제사 들여다 보였다. 『이번 시비는 한 사람이 오래 종단의 권력을 거머쥔데서 나온 당연한 소리로 들어야 합니다.지금까지 종단풍토는 총무원장한테 손을 번쩍 안들어주면 다 적이 되었지요.그 장본인은 하지말라고 말려도 들어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이제 그 사람이 종단을 자진 탈퇴했다니까 파행의 세월이 끝난 것으로보아주시오.새 사람들이 더 이상 지탄받지 않게 노력할 겁니다.그런 일을 생전에 보는 것이 기실 소원이기도 했어요』 이번 개혁이 종단의 종풍을 바로잡는 파사현정의 기회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서의현 전총무원장을 「그 사람」으로 지칭하는 가운데 개혁세력인 「새 사람들」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그리고 대화내용을 곱씹으면 노장은 「새 사람들」이 불러서 업힌 것이 아니고,스스로 앞장을 섰다는 결론이 나온다. ○파야현정의 기회삼아 『정치적 독재자들은 국가 존립과 통치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조차 떡 주무르듯 하지않습니까? 총무원을 장기적으로 차고앉았던 그 사람도 예외로 볼 수는 없어요.종헌·종법을 맘대로 고쳤지만 종당에는 치욕적 말로를 자초하는 꼴이 되고 말았지요.권불십년이라고나 할까요.탐욕이 승했던 탓이 아닌가 합니다.운거선사가 남긴 선문답의 참뜻을 일찍 새겨들어두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테지만….그 사람 종단을 떠났더라도 마음 고쳐먹길 바라요』 ○종단떠나 거듭나길 노장은 중국 운거선사(?∼902년)의 선답구절을상기시켰다.평소 솥하나에 떡을 쪄서 세 사람이 먹어도 모자라는데 천 사람이 먹으면 남는 까닭,그것은 「다투면 부족하고 사양하면 남는다」는 해답으로 귀결된다.탐욕과 다툼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노장은 「사람은 열번 된다」는 우리 속담을 빌려 전서원장이 거듭 태어나는 것도 희망사항이라고 했다. 『누가 중 보러 절에 오랬나요.부처님 뵈러 오시오.그러다 보면 중도 그럴싸하게 보이고 절도 절로 좋아질 겁니다.이번 사태로 불심이 시들해졌다면 신도님들 다시 힘내셔야 합니다.불교는 이타종교이고 또 스스로 깨우침을 가르치는 자아의 종교여서 바로 여러분의 종교입니다』 조계종사태로 불자들의 불심이 떨어지고 특히 초발심자들이 불교를 외면하고 있다는 말에 대해 비관론 보다는 낙관론 쪽에 비중을 실었다.「승려가 아니라 부처님 뵈러 절에 오라」는 노장의 표현이 오히려 해학적일 뿐이다. ○자기정진 진력 촉구 『승풍의 진작은 정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정진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아야 된다는 것이지요.이번 사태를 몰고온 종단 파행운영도 정진보다는 잿밥에 눈이 먼 탐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헛된 망념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농사도 자경을 하고 있습니다.돈이 되는 것은 아니나,일일불작일일불식의 청규를 실천해보고자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이번에 우리 불교가 생산종교로 환골탈태하는 모습도 보여주어야겠다는 욕심도 부려봅니다.그것이 다 개혁이 아니겠습니까…』 통도사 스님들이 직접 짓는 농사는 논만도 2만평에 이른다.스님 모두가 트랙터나 경운기를 몰고 나서면,노장은 감농이다.그러는 동안 통도사의 영취총림 학인 60여명은 학풍을 일으키는데 전념한다.그 총림의 방장이기도 한 노장은 아직도 행자시절 처럼 웬만한 옷가지는 손수 빨아입는 지극히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 『둥글둥글하게 한데 어울리는 것이 좋아요.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첨예한 대립은 아무쪼록 피해야 됩니다.그래야 막히는데가 없는 법(무애)입니다.우리 불교가 바라보는 이상의 한가지도 거기 있고…』 불교를 평화의 종교로 해석한 노장은 더불어사는 사회상 정립도 원융무애정신에 기초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말씀을 더 드리자면 이번 개혁을 제2정화 불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따라서 사부대중이 개혁작업에 함께 참여할 때 개혁이 실현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앞으로 불교가 할 일은 참으로 많아요』 노장은 비구와 대처승을 가리는 지난 54년 시작된 불교정화 당시 대표 다섯비구 가운데 마지막 남은 인물이다.동산,김오,청담,소봉은 이미 입적했다.지난 70년대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었다는 이후락씨가 권력형 전국신도회장으로 있을무렵 노장과 얽힌 일화 하나.그가 종단 일에 사사건건 뛰어들자 『그러려면 머리를 깎고 오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어떻든 노장은 덕과 지혜,용기를 겸비한 이 시대의 큰 스님임에는 틀림이 없다. 법랍 61세.충남 부여에서 보낸 소년시절 청정비구가 우러러 보여 18세에 출가,금강산 유점사에서 사미계를 받았다.그이후 통도사 주지,조계종 감찰원장,동국학원이사장,총무원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 미 허블망원경/8천만광년거리 별까지 관측

    ◎5천억원 들여 수리후 성능향상/1천배 선명해진 사진 보내와/우주나이·블랙홀 규명길 열릴듯 우주공간에서 고장났던 허블우주망원경의 수리로 한동안 침체에 빠져있던 미항공우주국(NASA)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지난해 8월 「마르스 옵서버」위성의 손실을 비롯해 몇년간 불명예스러운 실패를 거듭해 왔던 미항공우주국은 수리된 허블망원경에서 새로운 사진을 전송해 옴으로써 권위를 찾게됐다. 지상에서 6백10㎞높이의 궤도를 돌고 있는 1조3천억원짜리 우주망원경은 지상에 설치된 망원경에 비해 적어도 열배의 선명도를 갖도록 제작됐다. 허블은 발사당시 예상대로라면 지상망원경을 통해 관찰할 수 있는 공간보다 적어도 1천배 가량을 더 상세히 볼 수 있는 사진을 보내와야 했다. 그러나 허블망원경은 발사되자마자 주거울에 1.3㎜의 오차가 발견되어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이때문에 허블망원경이 보내오는 사진은 선명도면에서 지상망원경과 별 차이가 없었다.허블은 곧 버블(거품)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되고 우주계획은 천문학적 예산을 낭비했다는 비난을 받았다.그러나 지난해 12월 총 5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대수술로 망원경의 성능은 두가지 면에서 큰폭으로 향상됐다.그중 하나는 「코스타」장치.허블망원경의 주거울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상을 열개의 버튼 크기의 거울이 보정해 주는 장치다.또하나는 「코스타」의 도움이 없이도 주거울을 보정해주는 「광각위성카메라­2」장치다. 이 두가지 장치의 보완으로 우주론적으로 가장 중요한 매개변수의 하나인 허블상수를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매우 높아졌다.허블상수란 우주팽창론에 결정적 기여를 한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의 이름을 딴 천체의 속도와 거리를 연관시켜주는 물리상수다.허블상수가 결정되면 우주의 나이도 알 수 있다.현재는 천문학자들 사이에도 이 상수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상태이다.우주의 나이는 학자들에 따라 1백억년에서 2백억년정도의 의견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주의 나이를 측정하는 방법의 하나로 은하계밖에 멀리 떨어져있는 케페우스형 변광성을 관찰하는 법이 있다. 수리되기 전의 「광각위성카메라­1」은 1천2백만광년(1광년은 빛이 초속 30만㎞의 속도로 1년동안 달려 도달할수 있는 거리) 정도 거리에 있는 케페우스형 변광성군만을 관찰할 수 밖에 없었다.그러나 허블망원경에 장착된 「광각위성카메라­2」가 3천5백만광년과 8천만광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변광성을 깨끗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천문학자들의 오랜 소원이었던 블랙홀의 정체규명과 함께 우주의 근원과 나이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생수/5일 지나면 변질 우려/시판앞두고 알아본 실태

    ◎절반이 음용수기준 2배 세균 검출/무허업체 100여곳 난립… 불량품 많아 생수는 대법원이 지난 8일 「생수시판금지무효」판결을 내리며 「깨끗한 물」로 규정한 것처럼 과연 인체에 해가 없을 정도로 안전하고 믿을 만한가. 생수시판이 곧 양성화됨에 따라 생수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음료·주류업체를 중심으로 참여업체들도 우후죽순처럼 급증할 것으로 보이면서 생수의 수질문제가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생수수질에 대한 공인기관의 본질적인 검사결과는 아직 없지만 보사부 음용수관계자및 전문가들은 14개 허가제조업체의 생수는 『믿을 만하지만 방심은 금물』,1백여개의 무허가제조업체의 것은 『예상보다 형편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허가업체의 생수도 보관기간및 방법등에 따라 얼마든지 변질될 수 있어 안심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최근 한 민간연구소가 국내 5개 유명생수제품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8ℓ용량 생수 대부분이 섭씨 3∼18도의 상온에서 처음에는 세균이 거의 없는 양호한 상태였으나 5일이 지나면서 절반이상이 음용수수질기준(일반세균 1㎖당 1백마리이하)의 두배 가까이 (1백70∼1백90마리)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7일이 경과한 뒤에는 최고 4배(4백마리)까지 늘어났으며 10일후에는 1개사 제품을 제외하고는 최고 5배(5백10마리)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사부의 공식자료에서도 지난해 허가제조업체 가운데서 산수음료·한국청정음료·크리스탈정수·스파클·진로종합식품·풀무원샘물·고려종합등 7개 업체가 일반세균이 과다검출돼 1∼6차례 과징금을 물었다. 이중에는 암모니아성 질소(0.5ppm이하)·철(0.3ppm이하)·불소(1ppm이하)·수소이온농도(ph 5.8∼8.5ppm이하)등이 초과돼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생수의 수질검사는 각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이 음용수수질기준에 따라 검사하고 있는데 시험인력및 장비의 부족으로 일반세균·대장균군등 미생물검사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나마 형식에 치우치고 있는 실정이다. 생수 자체에 대한 수질및 시설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음용수수질기준인 37개 항목으로 검사하고 있는 것도 시급히 개선해돼야 할 부분이다. 생수의경우 수돗물과는 달리 마그네슘·칼슘등 무기물질과 질소성분및 탄소원이 많이 함유돼 미생물이 급속히 번식할 가능성이 많아 이에 대한 예방조치도 함께 강구돼야 한다. 보사부는 현재 18ℓ짜리 대형용기에 담긴 생수의 경우 보관상의 이유로 폐지할 것을 검토하고 있으나 음식점및 접객업소등에서의 사용불편등으로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보사부는 생수업체의 난립으로 생수채수가 지금보다 더욱 무질서해지고 지하수가 오염되면서 생수의 질이 떨어져 「생수파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관련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 햇볕론과 통일심리학/이재근(서울광장)

    이 시대의 변화는 너무나 급격하고 전면적이다.과거의 경험이나 모델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그 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통일문제에 간단없이 접근해야 하는 우리 입지의 어려움 또한 여간 큰것이 아니다.불확실성,예측불가능성,온통 미경험 투성이의 시험과제가 바로 통일문제이다.그러나 그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며 당위라는데에 더 큰 어려움이 있다. 독일통일에 대해서는 지금에 이르러 그들 언론조차 『우리가 통일을 이룬 것이 아니다.통일이 우리에게 닥쳐온 것이다』라고 쓴웃음마저 짓는다.「통독」은 마치 엎질러진 잉크에 흡수제를 들이대듯 어느날 갑자기 한쪽이 흡수되는 것으로 귀결됐다.남북예멘 또한 체제이념의 수렴이나 통합과정없이 통일이 됐다.통일이 우리에게 있어 염원이요,당위이기 이전에 아직도 외경의 대상인 것은 이들 두 예에 비추어 그러한 것이다.그럴수록 현재로서는 북한변화의 양상만을 지켜보게 된다.그런데 그것이 우리 생각대로 안된다. 지난해말 정기국회의 외무통일위간담회에서 있었던 한 대목은 「북한변화」문제와 관련해 대단히 시사적인 내용이었다.북의 대남전략목표에 대한 그쪽 정치엘리트들의 진짜 속마음이 어떤 것이라고 보는가라는 한 의원의 물음에 연전에 귀순한 전북한외교관 고영환씨는 이렇게 대답했다.『북한주민중 1천9백만명은 보다 잘살기 위한 현실적 욕구에서,나머지 1백만명(엘리트)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통일문제를 보고 있다』,『아직도 북한주민의 70∼80%는 오로지 수령때문에 밥을 굶지 않는다고 감읍한다.그리고 일단 (남북간에)「이판사판」이 되면 그 주민 1백%가 총과 창을 들고 나설 것이라고 본다』 물론 고씨 개인의 생각이고 판단이겠지만 그것이 별로 틀린게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주민들은 그런대로 먹고 살기 위해,소수지배층은 「자리유지」를 위해 변화보다는 현상유지를 원하지만 일단 그것이 위협받는 사태가 일어나면 그들 모두가 이른바 「통일성전」에 총칼을 들고 나서게 돼 있는 것이다. 북한변화의 어려움이 바로 이런 것이다.지금은 물러난 한완상씨가 통일부총리로서 내건 접근방략은 한마디로 냉전적관변통일론및 감성적 통일지상주의의 극복이었다고 나는 본다.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놓고 북한의 현실을 모르는 턱없는 진보적 통일론이라고 비판도 했다.그러나 그의 의견은 다르다.그에 의하면 북한을 아예 모르는 쪽은 오히려 냉전론자들이다.북한은 비유컨대 의사종교집단적인 국가라는 특성을 갖고있는 까닭에 그 체제와 현실을 위협하는 강박적 접근은 집단자살과 같은 극한대응을 초래할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런 시각으로 보면 크게는 북한을 흡수통일할 수 있는 가능한 장황까지도 피해야한다.그리고 더나아가 흡수할수밖에 없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쪽이 접근해야 한다.새로운 의미에서의 「상황의 이중성」이다.적극적인 탈냉전인식아래 북한이 개방·변화되도록 유도하고 삶의 질을 높여주자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햇볕론이다.강한 바람으로 옷을 벗기기보다는 따뜻한 햇볕을 주어 스스로 벗게함으로써 군확과 핵의 투명성을 확보할수 있다는 논리이다.진정한 햇볕임을 알게해 흡수의 거부감으로 하여 충동적으로 질주할지도 모를「사회주의 통일성전」이나 자기붕괴같은 극한적 대응등의 두 측면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한씨는 이런 햇볕론아래 자신은 합리적인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수준높은 현실주의자라고 항변하는 것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통일은 소원이되 염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또 사실 어느날 북쪽의 김씨네가 막말로 폭삭하여 수백만명이 남으로,서울로 내려온다고 할적에 과연 이쪽 동포 가운데 얼마나가,또 얼마동안이나 그들을 새로 만난 한겨례로 여기고 돌봐줄것인가도 생각해봐야 한다.오랫동안 굳어버린 동포간의 깊은 이질화가 얼마나 무겁고 서로 부담스러운가는 통일독일의 오늘실상이 말해주고 있다. 최근 「통일 한국의 미래상」이라거나 「통일 심리학」연구가 활발한 것도 이런 저런 통일이전의 사회문화적 통합을 경험해야겠다는 필요의 소산일 수 있다.모든 일에 있어 목표에 접근하는 과정은 목표자체보다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 안병무씨 작 「사랑에는 연습이 없다」/신학자의 여성에 대한 메시지

    ◎현실속에서 진정한 사랑방식 제시 민중신학자의 여성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이 어울릴 것 같지않은 만남이 이루어졌다. 한국의 대표적인 신학자 안병무씨(72·한신대명예교수)가 펴낸 「사랑에는 연습이 없다」(베틀간)가 그 것.이 책은 그동안 무게있는 저술로 교계는 물론 전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온 그가 처음으로 펴낸 수상집이기도 하다. 그동안 여성론 혹은 사랑론에 대한 깊이있는 접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그러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여성들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사랑을 위한 사랑론」이나 「대증적 요법에 불과한 여성론」이 대부분.현실속에서 진정한 여성의 갈길 혹은 사랑하는 방식을 가르치기보다는 이기심과 공상속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사랑에는…」은 그런 책들과 비교하면 물론 딱딱한 문체로 씌어있다.그럼에도 단숨에 읽힌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여성과의 대화」라기 보다는 「여성에 대한 질책」이라는 쪽에 가깝다.또 이 책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남성들에게도 여자가 하나의 「인간」으로 설때같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해준다. 「사랑에는…」은 작은 책이기는 하지만 안교수가 남는 시간을 이용해 쓴 것이 아니다.지금까지 6권이 나온 「안병무전집」은 앞으로 14권이 더 나온다.이 전집 가운데 제16권으로 예정하고 있는 것이 「여자,생명의 담지자」이다.따라서 「사랑에는…」은 그의 필생의 작업인 이 전집에 담길 깊은 사색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안교수는 『내게 비친 여성은 지루하다』는 표현으로 여성들에게 눈치를 보는 사람들은 하기 어려운 말을 하고 있다.그는 『이 작은 글에서 (여성이)고인물에 도랑을 내어 아래로 쏟아지며 크고 작은 에너지로 변하는 것을 기대한다』며 『이 소원이 맞아 떨어지면 지루하게 느껴졌던 여자앞에 무릎을 꿇고 합장할 것』이라고 적었다.
  • 조각가 유영교씨(이세기의 인물탐구:39)

    ◎돌로 빚어내는 생명력… 인간미 “물씬”/풍만한 인체·단순화된 형태의 구상 즐겨 표출/연속 국전특선… 완벽한 조형술로 정상의 명성/요즘은 고난·번뇌 초월한 「평화의 표정」 형상화에 집착 「인생은 석재다.그것으로 신의 모습을 조각하든가 악마의 모습을 새기든가 모든것은 자유다.그러나 다만 생명이 깃든 조각인가?」이는 영국철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말이다. 유영교는 강한 석재로 생명이 깃든,살아있는 사람의 표정을 만드는 작가다. 알찬 마스(양괴)와 신선한 정감표출의 단아한 나부상,예술가가 품은 그 어떤 상념도 돌이라는 재료에 의해서 표현되지 않는것은 없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그는 작품화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끊임없이 데생하고 데생한다.또는 수채화로 그리거나 유화나 파스텔로 그린다.그리고 하나의 회화로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보였을때 이번엔 점토로 이를 빚는다. ○실패확률 거의 없어 형태의 완성과 완벽성을 석고 모형으로 경험한다음 비로소 돌작업에 들어가기 때문에 실패의 확률은 거의 없다.표정조차도 이미 모형에서 이미지를 또렷하게 살려내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린 그림이 조각에 닮아있으면 그것은 대부분 성공적인 것이지만 만일 조각이 그림에 닮아있을땐 이건 낭패일수밖에 없을 것이다.작품에 관한한 완벽추구자이며 영원히 만족을 모를수도 있다. 작품에서 그가 중점적으로 파고드는 테마는 언제나 인간의 이야기다.인간의 고뇌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여러형태의 모습을 어디서 찾느냐는 것과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조각으로 표현하느냐는 것이 과제다. 같은 고뇌라도 성자의 고뇌인가 범상한 인간의 가족애적인 것인가.사랑도 신의 사랑과 남녀의 사랑,자비는 베풀때와 베풀음을 받은 은총일때가 다르듯이. 한때는 구도자나 수도자의 얼굴을 만들기도 했다.또는 어둡고 그늘진 어부나 농부의 삶에 찌든 표정이 그의 작품의 한 구릉을 이루기도 한다.그러나 「삶의 이야기」시리즈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아들을 보고 기절한 어머니의 모습,가톨릭의 고통과 고난과 수난은 끝이 없음을 그는 새삼 느낄수밖에 없었나보다. 이에비해 경주 불상에서 온화한 평정의 모습을 발견했다.미술이론을 모르는 이름모를 석공이 원만함과 무심과 풍요를 그려낸 것이다. 이때부터 헤르만 헤세의 「싯달타」를 다시 읽고 노자·장자에 심취하면서 초탈·초월의 경지를 갈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풍만감이 넘치는 인체에다 반가사유상의 양식을 적용한 극기와 무상,번뇌를 떨쳐버린 초월적 명상,마음의 갈등씻긴 평화로운 표정을 작품마다에 햇살처럼 아로새겨 나갔다. 유영교는 데뷔때부터 지금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일류작가의 대열에서 한치도 뒤처진 적없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예술가의 한 사람이다. ○첫 개인전 찬사 일색 아직 대학2학년때인 66년 국전 3회 연속 입선,이어서 목우회 공모전서 문공부장관상 국전 국무총리상 국회의장상 국전 연속특선으로 삼십을 갓넘긴 나이에 국전추천작가·초대작가등 남보다 배나 빠른 정상가도를 똑바로만 달려왔다. 추천작가가 되던해인 77년 첫개인전과 함께 수많은 찬사·호평에 둘러싸여 다음해 이탈리아로 유학,국립로마미술아카데미와 르네상스 조각의 본고장으로 일컬어지는 카라라에서도 거장 에밀리오 그레코와 페레클레 파시니를 사사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때 「지중해」 「일드 프랑스」의 작가인 마욜과 아르프,오슬로의 후로그넬 공원에 있는 비게란드의 화강암으로 된 「조각군」을 보고 그는 자신의 구상조각에 대한 집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부조에서 환조에 다다른 아르프의 아르 콩쿨레(구체예술)를 수용하면서 구상·추상 사이를 넘나들다가 차츰 추상의 경지를 뛰어넘어 그만의 구상인체에 망설이지 않고 정착할수 있었다.진위를 가릴수없는 모호한 추상의 세계보다 손으로 만져지는 구상세계가 그의 투명한 성격에도 거부감이 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가 아끼는 재질인 대리석도 인체의 아름다움과 당당함,사유와 풍요를 표현하는데 어떤 부족감도 없었다. 2년전 선보인 성숙·풍요·동반 시리즈에 이어 최근에는 점점 더 불교적으로 된 작품의 표정들이 무심을 지나 열반의 경지를 보이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더구나 밑그림이 철저하게 뒷받침된 표정들은 하나하나가 서로 다르고 하나하나마다에 생동감이 담긴다.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텅빈 무심이 아니라 청순이라든가 순백·환희가 눈부신 것도 특징이다.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이미 다른 작가가 그려온 소재를 그는 그 나름대로의 천진무구를 강조하여 행복의 꽃다발로 재창조한 경우도 있다. 미술평론가 김복영은 이를 「회고」와 「번안」의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유홍준은 『살아숨쉬는 듯한 생명체의 덩어리』라든가 자신의 작품을 되물으며 의식을 심화시켜 나가는 자세는 『예술의 성실성』내지 『예술의 진지함』이라 평하고 있다. 그의 작업장은 금강 남쪽,충남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에 자리잡고 있다.그가 살고 있는 대전시내에서 버스로 20분거리.많은 조각가들이 교외별장과도 같은 아기자기한 건물을 지닌 것과는 달리 야산을 깎아 만든 2천평 대지에 세운 이 간이작업장은 거대한 석물공장을 방불케한다. 10t의 무게를 들어올릴수 있는 빔설치,돌을 썰거나 마광할수 있는 전기모터와 체인 블록,바이트와 드릴과 리머와 탭 등 수백가지의 절삭공구들과 마당구석구석에 사람의 키만한 대리석 화강암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는 이리나 문경,여수를 돌며 자연석을 직접 사오기도 하고 이탈리아 대리석을 현지에서 주문해다 쓰기도 한다. 남들이 직장에 출근하는 것처럼 아침8시에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데생에서 흙반죽,석고 뜨고 돌자르고 드릴로 뚫고 다듬고 깎고 하루종일 돌가루와 흙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채 중노동에 시달리다 밤9시가 넘어서야 귀가한다. 사방이 청명한 가을인 요즘,드넓은 벌판엔 외딴 작업실에서 내는 그의 기계소리 돌을 다듬는 소리외엔 주변은 온통 적막강산이다. 간간이 브론즈나 나무를 다루기도 하지만 돌만이 갖는 차갑고 강한 느낌,정발 하나하나로 확실하게 작가의 손에서 작업이 끝나는 확인은 돌이 아니고서는 맛볼수 없는 희열의 하나다. 유영교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그 어떤 경우에도 세속에 물들거나 부당함에 타협하지 않는 결벽증이다. 일찍이 그가 국전추천작가가 됐을때 화단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평론가 원동석씨는 「평론가 10인이 추천하는 신예작가」의 한 사람으로 유영교를 추천하면서 「아집이나 고집때문이 아니라 그의 천성적인 순결과 자신감은 세파에 쉽사리 물들거나 외세에 섣불리 휩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대로다. 스승·선배들에게 예의 바르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끝까지 관철하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엉뚱한 말을 들으면 그의 의도를 명료히 제시하여 시정을 요구한다. 또 대학의 전임강사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가르치는데 시간을 뺏기다보면 그의 예술을 할수 없기 때문이다. ○세속의 욕망을 거부 돈이 될수 있는 모뉴망이나 설치미술등의 주문에도 응하지 않는다.건물주의 몰취미에 억지로 맞추기도 싫고 번거로운 계약과정이나 브로커들이 중간에 끼는 것도 마땅치 않다. 그는 언제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온 몸과 마음으로 몰두할수 있는 대상에만 철저하게 파고든다. 그는 충북 제천군 청풍면장이던 유상종씨와 정효옥여사의 5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다.면소재지이긴 하지만 국민학교 3학년때 마을에 들어온 버스를 처음 볼만큼 산골동네에서 투박하게 자라났다. 국민학교때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하고 충주고 2학년때 홍대가주최한 전국고교미술실기대회에서 1등상 수상.그날 조각실에서 작업복을 입고 흙을 만지는 선배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조각과를 지망하게 됐다. 이탈리아 유학중 그곳의 조각가들이 야외작업장을 가진 것을 부러워한 나머지 고향청풍에다 작업장을 짓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고향이 수몰되어 목원대교수인 부인 이은기씨(서양미술사)를 따라 86년 대전에 정착했다.슬하엔 3남매. 유영교조각은 양감의 풍요에서는 마욜,극도의 단순한 형태추구면에서는 때때로 아르프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그가 다다르고 싶은 것은 순연한 조각이다. 그러나 연전에 그의 작품전을 보고 이탈리아 카라라 아카데미 교수이자 평론가인 피에르 카를로 산티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형태면에서는 영혼의 영원과 가치에 대한 신념』,『작업의 전과정에서 보여주는 것은 투명한 영감의 세계』라고. 남보다 빨리 화단에 입문해서 일사천리로 예술의 정상에 이른 것처럼 그는 남보다 빠르게 그가 원하는 순정한 순연의 경지에 이미 이르고 있음을 산티니는 예고하고 있는것 같다. □연보 ▲1946년 충북 제천 출생 ▲1964년 충주 고교졸업 ▲1965년 홍대 미대조각과 입학 ▲1966∼68년 국전연속3회 입선(대학재학중) ▲1969년 홍대 미대졸업 ▲1975년 국전 특선 ▲1976년 국전 특선,홍대대학원 졸업 ▲1977년 국전 추천작가및 초대작가,전국조각가초대전 목우회초대전출품 ▲1977년 제1회 개인전(미술회관) ▲1978년 제2회 개인전(진화랑),이탈리아 로마 미술아카데미 유학 ▲1980년 제3회 개인전(로마) ▲1980년 제4회 개인전(진화랑) ▲1982년 제5회 개인전(미라노),국제청년작가 야외전(미라노) ▲1983년 제6회 개인전(현대화랑) ▲1984년 이탈리아 로마 미술아카데미 조소과졸업(거장 에밀리오 그레코 펠리클레 화시니 사사),한국조각가 13인전 한·이조각가교류전,재이한국조각가전출품 ▲1985년 재이한국조각가15인전,토스카넬로의조각전,국제청년조각가전 ▲1986년2월 귀국개인전(제7회·강남현대화랑) ▲1986년10월 제8회 개인전(현대화랑) ▲1987년 이탈리아 문화원개원기념 초대전,재이 한국조각가초대전(갤러리 현대및 이탈리아 뤼기 루소) ▲1988년 제9회 개인전(현대화랑),현대조각 초대전 ▲1991년 제10회 개인전(현대화랑) ▲1992년 제11회 개인전(갤러리 신현대)홍대및 목원대 서울교대강사 현재 충남대 예술대 출강 미술회관 개관기념초대전·한국 현대조각초대대전·목우회초대전·평론가10인이 추천한 신예작가초대전·한국구상조각회 로마전 주관·국제청년작가 야외전·한이조각가교류전·한국조각가협회전및 해마다 홍익조각회전·한국구상조각회전·국전초대작가전·현대미술초대전·원로중진조각초대전·MBC구상조각대전·대한민국 미술대전초대작가 국내외 그룹초대전에 수십차례 참가 목우회공모전 동아일보사장상·목우회공모전 문교부장관상·국전국무총리상·목우회공모전 최고상·국전 국회의장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어린이대공원 워커힐미술관 럭키·금성사옥 제천시청 한일은행본점 한흥증권본점 남해화학 대전교구장 아라리오미술관 신라호텔 야외조각 전시장
  • 리무진/운전석과 칸막이 있는 최고급 차(자동차백과)

    ◎왜건/실내 뒤에 짐칸… 다목적형/쿠페/차체 낮은 2도어 2인승 얼마전 알 파치노 주연의 할리웃영화 「여인의 향기」가 개봉돼 인기를 끌었다.죽기전에 고급스포츠카 「페라리」를 한번 타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알 파치노가 자동차 딜러의 배려로 페라리 카브리올레를 시승하던 장면이 인상깊은 영화다. 카블리올레란 독일과 프랑스·이탈리아 등에서 윗덮개가 없는 무개차를 지칭하는 용어다.미국에서는 이를 컨버터블이나 오픈카라고 한다.단 포르셰·벤츠·BMW·페라리 등 유럽의 명차들은 그 자부심을 나타내듯 세계 어디를 가도 카브리올레라고 불려지며 미국땅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듯 자동차산업이 일찍부터 발달한 서구는 차의 구조에 따른 명칭이 매우 다양하다.그러나 국내의 경우 자동차 생산이 거의 세단형 위주여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의 타입별 명칭을 잘 모르고 지나친다. 우선 가장 일반적인 것이 앞뒤 2줄로 좌석을 놓은 상자형 승용차 세단이다.세단보다 차체가 길어 마주볼수 있는 좌석을 두고 이를 유리칸막이로 운전석과 분리한형태가 리무진.롤스로이스·벤츠·캐딜락 등 이른바 최고급 승용차의 대명사로 사용된다. 그다음 요즘 수요가 늘고있는 지프형이 있고 세단의 실내를 뒤로늘려 좌석이나 짐칸을 설치한 다목적형 차가 왜건이다.미국에서는 서부 개척시대의 역마차에 비유해 스테이션 왜건,영국은 부호들의 농장 저택용이란 뜻에서 에스테이트 카라고 한다.서양 주부들이 제일 좋아하는 차종이나 국내에서는 별다른 인기를 끌지못하고 있다. 쿠페는 2도어 2인승의 비교적 차체가 낮은 승용차며 국산차종으로 치면 현대의 스포티와 스쿠프,대우의 르망 레이서 등이 이와 유사하다.덮개를 자동 또는 수동으로 열고닫을수 있는 컨버터블처럼 뚜껑이 없는 점은 같으나 차체 앞부분이 긴 고전적 스타일의 2인승 스포츠카는 로드스타가 정식 명칭이다.쌍용자동차가 판매하는 칼리스타가 로드스타형 승용차라고 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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