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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 헌소 제기에 침묵 보수紙 태도 눈길끌어

    삼성이 헌법소원을 냈다. 개정 공정거래법에 대한 것이다. 개정 공정거래법의 핵심은 금융회사를 끼고 있는 대기업집단의 대주주가 고객이 맡긴 금융회사의 자산으로 이른바 ‘딴짓’을 못하도록 막겠다는 것. 개정법은 금융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 허용범위를 현재 30%에서 3년 동안 단계적으로 축소해 2008년에는 15%까지 줄이도록 하고 있다. 삼성생명을 통해 그룹 지배권을 유지해 오고 있는 삼성으로서는 위기감을 느낄 법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언론의 반응이 싸늘하기 때문이다. 삼성의 입장에서 기사를 다룬 곳은 몇몇 경제지에 불과하다. 이들은 헌법소원 관련 기사를 1면 등 주요면에 전진배치한 데 이어 사설 등에서는 삼성의 입장만 반영해 노골적으로 삼성 지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경제지들 입장이야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그러나 그동안 현 정권을 성공한 기업의 뒷덜미를 잡는 좌파·포퓰리즘 정부쯤으로 몰아붙여 왔던 주요 보수언론들마저 기초적인 사실보도 외에는 침묵을 지키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가장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언론은 한겨레신문. 검찰조차도 삼성 등 재벌그룹은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의 시리즈물을 연재하고 있는 한겨레신문은 1일자 사설 ‘방향 잘못 잡은 삼성의 헌법소원’을 통해 삼성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헌법소원이야 누구든 낼 권리가 있다.”라면서도 “삼성이 힘써야 할 일은 시계를 되돌리려 하기보다 누구한테도 떳떳한 지배구조를 갖춰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같은 날짜 경제면 1개면을 할애해 삼성측 주장의 허와 실을 분석했다. 그러나 이전부터 관련 기획기사나 기고문 등을 통해 공정거래위원회와 공정거래법에 대해 칼날을 겨누어 왔던 보수언론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삼성과 공정위 양측의 주장을 공평하게 실어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 한 흔적이 역력할 정도다. 특히 조선일보는 지난달 29일 ‘삼성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정부’라는 사설을 통해 “삼성의 기여는 충분히 평가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그것과 삼성이 ‘법위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라고 통렬히 비판했었다. 사설 말미에는 “삼성 앞에만 서면 자꾸만 작아지는 정부도 비정상이지만 으레 그런 대접과 특권을 당연시하고 기대하는 삼성의 태도 역시 정상은 아니다.”라고 직격탄까지 날렸다. 그러나 헌법소원 뒤 후속 기사나 별도 사설은 없다. 다른 언론들 역시 대체로 간략한 사실보도 수준에 그치거나 별도의 기사를 쓰더라도 사안의 본질에 접근하기보다는 양측 주장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다. 사설을 게재한 곳도 거의 없었다. 몇몇 언론은 재판에 참여하는 한 헌재 재판관이 예전에 삼성과 인연이 있었다는 보도를 냈지만, 국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조대현 헌법재판관 후보와는 달리 정색하고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흥미에 초점을 맞춘 게 전부였다. 언론들의 이런 냉담한 반응 때문에 ‘이번 헌법소원은 삼성의 판단 실수 아니냐’는 평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비록 승소한다 한들 삼성에 대한 반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왜 삼성이 굳이 벌였는지 알 수 없다는 관측이다. 언론들이 ‘좌파정부’운운할때 한걸음 물러서 있다가 물밑작업을 통해 해결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었다는 냉소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대학이전허용외 새내용 없다”

    서울시와 경기도·인천시는 27일 정부가 당정협의를 통해 밝힌 수도권 종합대책에 대해 “대학이전허용 외에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기존의 서울시와 경기도 정책을 짜깁기한 것”이라며 평가절하했다. 경기도는 “정부가 말장난으로 수도권 시민을 우롱하고 있다.”고 맹렬히 성토했다. 도 관계자는 “접경지역 대학이전 계획은 듣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이론상 어느 대학이 접경지역에 개교를 하겠느냐.”면서 “도내 7개 권역별 개발 등 발표 내용은 경기도가 이미 실행 중인 것”이라고 맞섰다. 여인국 과천시장도 “행정도시 건설과 관련해 제기된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져 정부청사 이전을 비롯해 공공기관 이전 등이 전면 백지화될 게 확실하므로 언급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김병일 대변인도 “동북아의 거점도시로 개발하고 권역별로 나누어 국제업무지구, 금융허브지구, 정보통신(IT) 거점, 바이오 클러스터 등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은 이미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이라면서 “시내·외로의 대학교 이전허용을 빼면 새로울 게 없다.”고 깎아내렸다.최근 이명박 시장이 정부의 행정복합도시 추진에 따른 서울 발전계획을 발표한 데 대해 ‘서울시 정책을 토씨까지 복사한 것’이라고 표현했던 일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원세훈 행정1부시장도 당초 공기업 이전방침이 현실과는 한참 어긋났다는 점을 전제한 뒤 “수도권이 (공기업들을) 뺏겼으니 뭔가를 줘야 한다는, 나눠먹기 식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기업 등 기존 인프라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 등 현실적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헌재 재판관 전원 與, 인사청문 추진

    열린우리당이 16일 국회에서 정책 의원총회를 열어 헌법재판소 재판관 9인 전원과 중앙선관위원을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헌재의 행정수도 위헌 결정 이후 여권과 사법부간 냉기류가 흐르고 있는 데다 최근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태에서 헌재 재판관 전원을 대상으로 하는 인사청문회를 추진할 경우 적지 않은 반발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오영식 공보담당 부대표는 브리핑을 갖고 “인사청문회 대상을 국회 선출직 이외에 대통령이 임명하거나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헌재 재판관과 중앙선관위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행 법은 헌법재판관 9인 가운데 국회가 선출하는 3인에 대해서만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이와 함께 ▲체포동의안 본회의 보고 후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 표결 의무화 ▲상임위원의 직무관련 영리행위 금지 ▲국회 윤리위원회 내 민간자문위 설치 등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또 법안 등과 이해관계에 있는 의원이 소관 상임위 재적위원의 과반수를 넘을 경우에는 국회의장이 해당 의안을 다른 위원회에 회부해 심사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사설] 다시 위헌심판 청구된 행정도시법

    공주·연기 지역에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특별법이 위헌 심판대에 올랐다.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특별법을 위헌이라고 결정한 뒤 국회가 새로 법을 만들었음에도 다시 헌법소원이 제기된 것이다. 신행정수도특별법은 청와대가 옮겨가는 등 사실상 천도(遷都)를 추진하는 내용이었다. 국민적 공감대가 미흡한데도 여권이 밀어붙인 측면이 강했다. 이번에 헌소가 제기된 행정도시특별법은 여야 정당과 정부가 헌재 결과를 감안해 절충점을 찾은 결과다. 때문에 신행정수도특별법 논란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본다. 헌법소원 청구인단은 행정도시법이 국무총리와 행정의 중추 기능을 이전하는, 사실상의 수도분할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헌재 결정까지 행정도시 추진 일정을 중지하도록 촉구했지만 무리한 요구다. 헌소가 제기됐다는 이유로 국가사업을 중단할 수는 없다. 행정도시 건설이 또 표류한다면 국가적 손해가 클 뿐 아니라 입법 무용론까지 나오게 된다. 정부는 대통령과 외교·안보 부처가 잔류함으로써 수도이전이 아니라는 일반론에 안주하지 말고 정교한 대응논리를 갖추어야 한다. 행정도시 건설을 놓고 지역별로 이해가 갈리고, 찬반 의견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이제는 법리논쟁에 그쳐야 한다. 한번 걸러진 사안으로 다시 국론 분열 양상이 심각해져서는 안 된다. 헌소를 제기한 측이나, 그를 불쾌하게 여기는 측이나 모두 헌재 결정을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시위·집회를 통한 과도한 여론몰이, 상대편에 대한 협박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헌재는 되도록 빨리 위헌 여부를 결정해 사회 혼란을 줄여주는 게 바람직하다.
  • ‘행정도시법 위헌’ 헌법소원

    ‘행정도시법 위헌’ 헌법소원

    수도이전반대국민연합 대표 최상철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등 222명은 15일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행정도시특별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지난해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이석연 변호사와 김문희·이영모 전 헌재 재판관, 한기찬 전 국회입법처장이 이번 심판의 청구인측 대리인으로 나섰다. 이들은 청구서에서 “행정도시특별법이 규정하는 예정지역인 연기·공주 지역은 지난해 위헌결정이 내려진 신행정수도특별법에 의해 지정된 곳”이라면서 “이 법률은 신행정수도특별법의 이름만 바꾼 대체입법이다.”라고 주장했다. ●주요쟁점 및 전망 청구인들은 행정도시특별법이 ▲수도분할 및 해체 의도를 갖고 있고 ▲국민투표권을 침해했으며 ▲국무총리 등 중앙행정기관의 분리로 인해 국정운영에 차질이 우려되고 ▲공공기관 이전에 따른 종사자의 거주이전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등 총체적 위헌성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를 비롯해 6개부는 서울에, 국무총리 등 12개 부처는 충청도 연기·공주 지역에 두는 안이 사실상 수도분할이라는 것이 청구인측 설명이다. 이들은 또 177개 공공기관을 충청권 이외의 지역에 분산시키는 것은 해당 공무원의 거주이전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구인단에는 공기업 근무자도 있다. 헌법소원이 제기되면서 지난해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 당시 근거가 된 관습헌법에 대한 논란이 다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청구인들은 “수도가 사실상 2개로 쪼개지는 것과 국무총리가 대통령과 120㎞ 떨어진 지역에서 국정을 수행한다는 것은 관습헌법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지 않고 입법한 데 대한 위헌소지 논쟁도 재현될 전망이다. ●정부측 반응 정부는 헌법소원과 관련 “지난해 헌재의 위헌결정 취지를 충분히 반영한 만큼 위헌소지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행정도시특별법 소관 부처인 건설교통부는 이날 배포한 자료를 통해 “법률적 검토를 거쳤고 여야 합의에 따라 특별법이 만들어진 만큼 이번 소송에서는 기각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또 “수도의 결정적 요소인 국회와 대통령이 서울에 잔류함에 따라 행정도시 건설은 수도분할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행정도시특별법이 신행정수도특별법의 대체입법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지난해 위헌결정때의 핵심적인 사항을 수정했으므로 엄연히 다른 법률”이라고 반박했다. ●향후 일정 헌재는 사건을 윤영철 헌법재판소장과 전효숙·김경일 재판관으로 구성된 제1지정재판부(주심 김경일 재판관)에 배당했다. 재판부는 30일 이내에 사건을 전원재판부로 넘길지 여부를 가리게 된다. 지난해 신행정수도 위헌 심판의 경우 헌재는 변호인단 공개변론 등의 절차를 거쳐 접수된 지 3개월여 만에 전원재판부에서 8대1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김성곤 홍희경기자 sunggone@seoul.co.kr
  • “개정 국적법 헌법소원 제기”

    병역을 마치지 않고서는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없도록 한 개정 국적법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된다. 12일 이중국적자의 모임 등에 따르면 이들은 이번주 중 거주이전의 자유와 행복추구권 제한 등을 이유로 지난달 24일 발효된 개정 국적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기로 했다. 이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A(50·부산)씨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 10명 정도면 충분하며 회원들이 각각 100만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할 것”이라고 말했다.A씨는 “현행 국적법은 헌법에 보장된 거주이전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을 제한하고 있다.”면서 “특히 국적포기를 아직 하지 않았는데도 자녀나 당사자들이 병역기피를 모의하는 예비범죄자로 취급받는 현실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대한축구협회 이회택 기술위원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대한축구협회 이회택 기술위원장

    ‘축구, 그분이 오셨다.’ 우선 2006독일월드컵 본선진출 여부가 곧 판가름난다. 네덜란드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도 이달에 열린다.3년전 한반도를 뒤흔든 ‘6월의 함성’이 다시 들려온다. 축구는 가장 스펙터클한 스포츠다. 감동과 환희, 좌절과 한숨…. 남녀노소를 동시에 한곳으로 집중시키는 거대한 응집력은 차라리 신화요, 전설이다. 누가 태극전사의 내달림을 보면서 웃고 울고, 마음 졸이지 않을 수 있으랴. ●축구인생 50년 ‘그라운드 풍운아’ 추억의 방송멘트가 있다.“고국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메르데카배 축구대회가 열리는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입니다.” 1970년대초였다. 농촌의 여름밤,TV는 물론 라디오조차 귀했기에 저녁밥 일찍 먹고 서둘러 라디오가 있는 이웃집으로 속속 모인다. 이어 중계방송이 시작되고 아나운서의 “슛, 아깝습니다. 슈∼웃, 골인!”하는 목소리에 탄식과 환호가 교차한다. 상상속에서 슛동작을 흉내내는 모습은 저마다의 흥분이요, 잊지 못할 추억거리였다. 맞다. 그때의 우상이었다. 아시아의 표범, 그라운드의 풍운아로 표현된다. 네살 때 아버지가 월북해 ‘고아’나 다름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버려진 깡통과 길가의 돌멩이들을 속절없이 걷어차기 일쑤였다. 파란과 곡절의 축구인생 50년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회택(60)씨.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맡아 대표팀의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 그를 만났다. 키 173㎝, 짧은 머리에 어깨가 딱 벌어져 다부진 체격, 왕년의 스트라이커를 연상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 역시 그대로였다. 독일월드컵 본선진출을 장담한 그는 먼저 한국축구에 대해 “월드컵 4강에 오른 팀이다. 다만 월드컵 4강 당시 수비수 3명, 즉 홍명보 최진철 김태영 가운데 한 명이라도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박주영 골결정력·패싱·순발력 3박자 겸비 공격라인에 대해서는 “박지성 차두리는 힘과 스피드가 좋아졌고, 안정환도 부상에서 회복됐다. 최근에는 박주영까지 가세했다. 경쟁이 아주 치열해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박지성의 경우 공수에 걸쳐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패싱기술이 뛰어난 선수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박주영을 가리켜 골 결정력, 패싱력, 순발력 등 3박자를 모두 갖춘 선수라고 치켜세웠다. 여기에 이천수와 설기현이 들어오면 경쟁은 정말 가열된다고 부연했다. 송종국 선수를 거론하면서 “(송 선수가)사경을 헤매는 것처럼 슬럼프에 빠져 있어 정말 아쉽다. 빨리 회복해 이들과 경쟁대열에 합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본프레레 감독의 전술과 리더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히딩크 감독도 처음에는 욕을 먹었다. 결국 월드컵 4강에 올려놨다. 선수들도 죽어라 뛰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선수들은 자만심에 차 있고, 상대국가들은 우리나라를 반드시 꺾으려고 한다. 수비수를 더욱 보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현실속에서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승부세계에서는 이기는 방법밖에 없다. 응집력과 투지가 관건이다.” 화제를 돌렸다. 현역시절인 70년대와 지금의 축구를 비교해달라고 했다.“당시에는 태클을 잘 하는 선수, 개인돌파가 좋은 선수 등 개인기술이 특징이었지만 지금은 체력과 체격이 아주 좋아졌다.”면서 “그때만 해도 잔디구장에서 축구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지금은 운동장 사정도 매우 좋아졌다.”고 말했다. 게다가 요즘에는 4-4-2,3-4-3 등 포메이션이 다양하고 국제정보에도 밝지만 그때는 전술과 정보가 보잘 것 없었다고 회고했다. ●67년 중앙정보부서 징발 ‘양지팀’ 창단 #에피소드 1.67년 2월. 이회택은 연세대 입학을 일주일을 앞두고 축구부원들과 동계훈련 중이었다. 검은 지프 한 대가 훈련장에 도착했다. 한 사내가 내리더니 “이회택이 이리 나와.”라고 했다. 사내는 중앙정보부 감찰실의 임경옥씨. 당시 ‘중정’은 누구도 거역 못할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이회택이 사내와 함께 도착한 곳은 이문동 중정 본부. 사연은 이러했다. 북한이 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강호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오르자 박정희 대통령이 크게 충격받았다. 김형욱 중정부장이 팔을 걷어붙였다. 축구깨나 한다는 사람들을 모두 징발했다. 감독 최정민, 골기퍼 이세연, 이회택 김호 김정남 김삼락 등 이른바 ‘양지팀’이 곧바로 조직됐다. 김 부장은 팀 창단식 때 이들을 불러모아 “모든 것을 지원해 줄 테니 빛을 보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훈시했다. 아울러 팀에서 뛰는 동안 군복무를 인정해주고 매달 2만원씩(쌀 한 가마니 4000원) 월급을 약속받았다. 잔디구장과 기숙사도 제공됐다. 갑작스러운 호강이 오히려 술과 도박을 가깝게 했다. 전적도 보잘것없었다.68년 5월 바그다드에서 열린 세계군인선수권대회에서 3전3패의 수모를 당했다. 이씨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그전까지만 해도 축구가 인생의 전부였으나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양지팀 시절은 인생의 전환점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회고했다. ●메르데카배 내기건 교민 비기기 작전 주문 #에피소드 2.68년 여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메르데카배 축구대회에 참가했다. 양지멤버가 주축인 대표팀은 패전을 거듭해 5,6위전으로 밀려났다. 상대는 인도. 당시만 해도 교포들이 거의 없어 외교관 부인들이 김치를 들고 와 응원할 정도였다. 그런데 말레이시아 교포라는 사람이 찾아와 고참선배를 만나고 갔다. 잠시 후 고참선배는 이회택 등 공격수들만 불러 비기는 작전을 주문했다. 교포가 비기는 쪽으로 상당액의 돈을 걸었으며 그럴 경우 배당액의 절반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것. 이회택은 말이 되느냐며 출전했다. 하지만 경기내내 그 말이 떠올라 혼란스러웠다. 영문을 모르는 수비수들은 몸을 날리며 열심히 뛰었다. 그날따라 이세연 골기퍼는 인도선수들의 슛을 잘도 막아냈다. 경기 종료 직전. 이회택은 상대의 공을 뺏어 김기복 선수한테 슬쩍 패스를 했더니 그냥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결과는 1대0으로 이겼다. 이씨는 국민가수 조용필씨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72년 어느날 저녁. 서울 퇴계로의 라이온스 나이트클럽에서 기타 연주를 하는 조용필(보컬그룹 25시 멤버)과 처음 만났다. 이씨는 밴드를 무척 좋아했다. 이후 이씨는 조용필의 매니저 역할까지 했다. 잘 아는 킹레코드사의 박성배 사장에게 레코드 취입까지 부탁했다.‘돌아와요 부산항에’‘너무 짧아요’ 등을 이때 취입했다. 또 방송국 PD 등에게 연락해 조용필의 노래를 자주 내보내 줄 것을 부탁했다.‘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뒤에는 바로 이씨가 있었다. 이와 관련, 이씨는 “2년여전 조용필씨의 부인 장례식 때 만난 이후로 서로 바빠서 잘 안 만나게 된다.”면서 “언젠가 골프 라운드도 한번 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골프실력은 이븐파를 기록할 정도. ●한때 국민가수 조용필 매니저 역할도 축구인 이회택. 비록 키는 작았지만 빠른 몸놀림과 날카로운 슈팅과 드리블, 그리고 대담성을 가진 천부적인 골잡이였다. 김포가 고향인 그는 어릴 적 돼지 오줌보와 깡통 등으로 축구놀이를 즐겼다. 초등학생때는 동네 형의 손을 잡고 조기축구회에 나가기도 했다. 중3 때 축구를 좋아하는 학생끼리 축구부를 조직, 대회에 출전했다. 고등학교 진학은 축구부가 있는 한양공고에 먼저 원서를 냈다. 퇴짜맞았다. 빠르지만 기술이 없다는 이유에서. 마음을 돌려 얼른 영등포공고에 진학했다. 고교 2년 때였다.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전국고교 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첫시합은 부산상고였고 두번째는 광주상고. 연거푸 2골씩 넣어 이겼다. 축구신동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어 동북고로 스카우트됐다.65년 청소년대표에 이어 이듬해 국가대표에 뽑혔다.75년까지 10년 동안 한국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다. 이후 86년 프로리그의 포항 아톰스의 감독을 맡아 두 차례 우승을 이끌었다.90년 대표팀 감독으로 이탈리아월드컵 본선에 참가해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최고의 명예를 얻었다. 74년 결혼한 그는 결혼한 딸(사위는 농구선수)이 얼마전 손자를 낳아 할아버지가 됐다. 아들은 한양대 1학년에 다니다 해군복무 중이다. 부인은 현재 방이동에서 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다. 북한에 살던 부친은 2년전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 1946년 경기 김포 출생 ▲ 65년 서울 동북고 졸업 ▲ 65년 청소년 국가대표팀 선수 ▲ 66∼76년 국가대표팀 선수 ▲ 69년 한양대 졸업 ▲ 83∼85년 한양대 감독 ▲ 86∼92년 포항제철 감독 ▲ 90년 이탈리아월드컵 대표팀 감독 ▲ 93∼2003년 대한축협회 이사 ▲ 2003년 전남드래곤즈 상임고문 ▲ 2004년∼현재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기술위원장
  • 통일 안되면 50억이 날아가?

    영화의 이미지를 포스터 속에서 먼저 만나게 된다면,9일 개봉하는 ‘간 큰 가족’(제작 두사부필름)은 엽기 코미디쯤으로 감잡히지 않을까 싶다. 도회감각의 진지한 이미지를 다져온 배우 감우성이 ‘뽀글이’ 아줌마 파마머리에 꾀죄죄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 충격적(?)이다. 거기다 한국영화판의 감초 배우들이 줄줄이 가세했다. 김수로, 신이, 성지루에다 출연 자체가 ‘의미심장한’ 중견배우 신구, 김수미까지. 통 큰 코미디를 예감케 하는 영화는, 한 가족의 울타리 속으로 카메라를 들이댄 뒤 도입부에서부터 본론을 꺼낸다. 죽음을 눈앞에 둔 김 노인(신구)은 한평생 오매불망 그려온 북의 아내와 딸을 만나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다. 사업이 어려워져 궁지에 몰린 큰아들 명석(감우성)은 아버지에게 50억원 상당의 숨겨둔 땅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 기대에 부푼다. 그러나 생전에 통일이 되지 않으면 유산을 몽땅 통일부로 돌려버리겠다는 아버지의 유언이 문제다. 다급해진 명석과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통일 자작극’을 꾸미게 된다. 많은 등장인물들을 한 사람도 놀리지 않고 골고루 써먹으며 영화는 코믹 상황극의 면모를 드러낸다.3류 감독인 명석의 동생 명규(김수로)의 활약상은 드라마의 또 한 축. 형의 속셈과는 달리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풀어주겠다는 효심에서 비롯된 명규의 해프닝이 코미디의 질감을 살린다. 명석-명규 형제에 대책없이 맹한 3류 에로배우 춘자(신이), 명석의 카드빚을 받으러 왔다가 가족의 모의극에 얼떨결에 합류한 사채업자(성지루) 등이 함께 상황극을 굴려간다. 정부의 통일담화문 발표, 남북단일팀 탁구대회, 평양 교예단 서커스 등으로 거짓말은 걷잡을 수 없이 몸집을 부풀리고 그 사이사이로 코믹양념이 뿌려지는 얼개다. 꼬이고 또 꼬이는 해프닝의 그물망은 그러나 팔딱팔딱 선도 높은 웃음을 건져올리기엔 너무 허술하고 성글다. 혈육애의 휴머니티를 보여주려 했음에도, 명석 일가족이 북을 직접 방문한 후반부는 관객의 동조를 불러내지 못하는 맨송맨송한 신파극으로 그쳤다. 시쳇말로 ‘쿨’한 코미디가 되기엔 애당초 소재의 한계도 컸다. 영화는 ‘타이밍’을 한참이나 놓쳤다. 이 작품으로 데뷔하는 조명남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는 1997년 영진위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 그 사이 영화보다도 몇 배나 더 극적인 실제상황(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이미 몇번이나 경험해버린 관객들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佛心 in 山寺] 만불사서 평안 빌다

    [佛心 in 山寺] 만불사서 평안 빌다

    오는 15일은 부처님오신날. 굳이 불제자가 아니더라도 두 손을 맞대고 고개라도 숙이고 싶어지는 요즈음이다. 이토록 많은 죄를 씻어달라고, 마음과 육신의 병을 좀 고쳐달라고, 상처받은 영혼에 안식을 달라고 대롱대롱 매달려보고 싶은 존재. 부처! 그는 절대자이면서 또한 절대자가 아니다. 저멀리 관념의 언덕이 아닌 바로 우리 곁에 바싹 다가와 있는 부처, 나의 눈물을 함께 울며 닦아주는 부처가 여기에 있다. 경북 영천시 북안면 고지리 만불산 만불사. 속없는 이들이 구복(求福)이라 하면 어떻고 또 기복(祈福)이라 하면 어떠랴. 만불사는 쌍사자의 위용처럼 당당하게 자리행(自利行) 이타행(利他行)을 실천해가는 그런 절이다. 이제 만불의 세계에 들어 우리 모두 나를 이롭게 하고 또 남을 이롭게 하는 삶을 살아보자. ●하늘의 복문 열리는 계좌터 경북 영천시 북안면 고지리 산46번지. 만불산 기슭 10만여평 너른 부지에 자리잡은 만불사는 들어가는 초입부터 예사롭지 않다. 일주문 자리부터 도량 전체를 극락정토 아미타부처님이 장엄하고 있다. 깨달음 이후 중생교화의 길을 떠난 부처님, 한평생 길 위에서 거룩한 삶을 산 부처님의 뜻을 기려 이곳에 황금빛 아미타부처님이 서 있는 것이다. 만불산은 풍수지리상 하늘의 복문이 열린다는 계좌(癸坐)터다. 남산·사룡산·구룡산·치악산·오봉산 등 5대 명산에 둘러싸여 있는 종요로운 곳으로, 부처님이 누워 있는 와불상의 형세까지 띠고 있으니 가히 ‘불국정토’라 할 만하지 않은가. 재단법인 만불회(회주 학성 스님) 만불사. 거대한 토목공사 끝에 이곳에선 지난 1992년 역사적인 만불보전 기공식이 열렸다. 이어 1998년 마침내 발원 10여년만에 만불보전 일만 옥불을 모시는 점안 대법회가 봉행돼 도량의 기초를 닦았다. 화엄불국토를 현세에 이루기 위해 실천하는 불교, 열린 불교, 대중불교를 표방하는 만불사는 전국 주요 도시에서 법회를 열며 ‘만불회 운동’을 전개, 현재 등록 가구수만 37만에 이르는 대찰로 성장했다.87년 대구,88년 부산, 그리고 89년에는 서울 서초동에 포교원을 열어 도심 포교의 새로운 장을 펼치고 있다. ●미소짓는 용천지 석가모니부처님 기자가 영천 만불산 만불사를 찾은 것은 지난 3일. 만불산 참배는 일반에 잘 알려진 코스대로 만불보전을 시작으로 관음전, 극락도량, 아미타대불, 대웅전 터 등의 순으로 이뤄졌다. 만불산 입구 오른 편엔 만불사가 들어서기 이전부터 자연적으로 생겨난 용천연못이 있다. 당시 청도 용천사 주지이던 학성스님이 용천골에 자리잡은 것부터가 깊은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용천은 부처님 감로의 가르침이 샘물 솟듯 솟아오른다는 뜻. 정신과 물질이 둘이 아닌 해인삼매의 깨달음을 이 시대에 구현하기 위해 개산한 만불사의 대역사는 이렇게 아주 조그만 인연에서 비롯됐다. ●법신·보신·화신의 삼존불 만불보전은 만불산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각종 법회가 봉행되고 있다. 보전에 들어서면 먼저 그 휘황함에 압도당한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단아한 부처님의 모습. 층층이 칸칸이 모셔진 부처님의 광휘가 보전을 찾는 이들을 두루 비춘다. 보전 상단에는 청전법신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원만보신 노사나불과 천백억 화신 석가모니불을 좌우에 모셔 놓았다. 높이 3m의 거대한 세 분 부처님의 인자함이 법당을 온화하게 이끈다. 만불보전 안에는 삼존불과 함께 약사여래부처님이라 불리는 유리광여래불도 봉안돼 있다. 유리광여래불을 친견하거나 만지면 병으로 고통받는 이는 건강을 회복하고 무병장수를 누린다는 경전 말씀 따라 이곳 만불산에서는 수정 유리광여래를 조성했다. 수정 유리광여래를 세 번 만지는 것은 부처님을 손수 매만져 보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보전 안에는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보살님들은 공양미를 머리에 이고, 처사님들은 그것을 어깨에 멘 채 수정구슬에 비친 유리광여래를 간절히 어루만지는 모습이 처연하기까지 하다. 차라리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지 말것을…. 스치는 상념에 어느새 하얗게 정화되는 자신을 느끼는 것은 이곳을 찾는 이들만의 조촐한 행복이다. ●1만여 옥불에 원력 넘쳐 만불보전에는 현재 1만 7000분의 부처님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부처님을 한자리서 만나다니 다생겁(多生劫)의 인연이 아니고 무엇이랴. 경전에 따르면 부처님을 위해 불상을 조성한 이들은 모두 성불한다고 했다. 그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다고 했던가. 옥으로 빚어져 금옷으로 갈아 입은 부처님을 불자들은 저마다의 인연과 근기에 따라 선택해 모실 수 있다. 깨달음의 상징인 비로나자부처님, 정죄하는 이를 위한 석가모니부처님, 병고자를 위한 약사여래부처님, 고통받는 이를 위한 관세음보살, 보살행을 위한 보현보살, 부모님을 위한 아미타불, 내세를 위한 미륵부처님, 수험생을 위해선 지혜의 문수보살, 돌아가신 영가를 위한 지장보살, 사업하는 이를 위한 대일여래불.200평 남짓한 법당 가득 모셔진 옥불 하나하나에 불자들의 원력이 넘쳐 흐른다. ●화엄세계 형상화한 이상향 만불보전 참배를 마친 뒤 오른쪽 뒤편 입구로 들어서면 해인화장(海印華藏)의 세계가 펼쳐진다. 화엄의 세계를 형상화한 이상향이다. 다함없이 크고 넓은 연화장 세계를 체험하며 걷는 길이라니. 부처님과 중생이 둘이 아니고 번뇌와 지혜가 둘이 아니며 나와 남이 둘이 아님을 말없이 일러주는 현장이다. 만불보전 벽에는 수만의 원력으로 조성된 인등불이 봉안돼 있고, 외벽 기둥에는 화엄사상이 응축된 신라시대 의상 스님의 법성게를 새긴 주련(柱聯)이 걸려 있어 눈길을 끈다. 법성게를 친견하면 묵은 업장이 눈녹듯 사라지고 커다란 공덕이 된다고 했으니 화엄의 진리를 되새겨볼까나…. ●21세기 장묘문화 선도 도량 만불사 황동와불열반상 옆에는 또 하나의 전각이 세워져 있다.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극락정토원이다. 극락정토원은 다른 절의 명부전과 같은 곳으로 저승의 유명계를 상징하는 전각이다. 이곳에는 국내 최초의 불단식 납골당인 왕생단이 자리잡고 있다. 왕생단은 화장한 뒤 나오는 유골을 지장보살이 상주하는 법당에 안치해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도록 한 곳이다. 지장보살은 모든 인간을 구제할 때까지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육도 중생을 낱낱이 교화하는 보살. 왕생단에는 하나의 왕생기마다 아미타부처님이 조성돼 있고 옥으로 조성된 왕생함에도 지장보살상이 새겨져 있어 영가를 극락으로 이끈다. 왕생단은 개인단과 부부단으로 구분해 안치할 수 있으며, 각각 6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관리비는 무료. 한가족이 하나의 단을 지정해 안치하면 선산을 준비한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묘지법 개정으로 2001년부터 납골이 의무화됨에 따라 왕생단은 불교적 납골문화의 유력한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영가들의 극락왕생 기원 극락정토원에는 또한 만년위패가 봉안돼 있다. 만년위패는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영가를 극락으로 천도하기 위한 불사다. 위패를 모시는 것은 유교적 관습이지만 불교에서 이를 받아들여 신앙생활의 하나로 정착시켰다. 만년위패는 관세음보살이 새겨진 판에 영가의 위패를 붙이도록 돼 있으며, 위패마다 옥수정으로 조각한 지장보살이 인등으로 불을 밝히고 있다. 집안 사정으로 집에서 제사를 모실 수 없는 사람들이 만년위패를 봉안하면 사찰에서 영구히 조상의 영가를 모시고 극락왕생하도록 축원을 올린다. ●스님들의 부도 일반에 분양 불교 장묘문화를 선도하는 만불산 만불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부도탑묘다. 만불산에서는 1996년 재단법인 만불지장회를 구성해 부도탑묘 공원인 극락도량을 조성했다. 부도는 스님들의 육신을 다비한 뒤 나온 사리나 유해를 안치한 탑. 만불산에서 조성해 분양하는 부도탑묘는 스님들만 쓸 수 있던 부도를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부도탑묘에 안치될 유골함은 천년 동안 보존되는 화강석을 사용한다. 전면에 지장보살을 조각해 영가를 극락으로 천도하도록 했으며, 상판 뚜껑엔 불법수호의 상징인 쌍룡을 새겼다. 생전에 미리 묘터를 마련하듯 부도탑묘를 예약하면 매장의 경제적 부담과 이장의 번거로움, 관리의 어려움을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다.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한 보살은 “부도탑묘는 일반 납골시설과 달리 사찰 경내에 있어 영가들이 부처님 품안에서 영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특히 설이나 백중, 추석같은 명절 때는 무료로 합동제례를 올려줘 좋다.”고 말했다. 부도탑묘가 조성된 만불산 극락도량으로 가는 호젓한 숲길은 삼림욕을 하기에도 제격이다. 문의 전국 대표전화 1600-0101.(054)335-0101. ■ 100개 석등 밝은 관세음 33m 아미타불 높은 뜻 이제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를 느껴보자. 관음전에는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이름 그대로 관세음보살은 중생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듣고 그 고통을 삼키시는 분이다. 관음전에는 중생의 괴로움과 고뇌를 두루 살펴 극락으로 이끄는 아미타부처님도 함께 봉안돼 있다. 스라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치(齒)사리가 모셔진 사리탑도 만날 수 있다. 관음전에서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관세음보살 좌우로 모셔져 있는 복주머니다. 어느 절에도 법당 안에 복주머니를 모셔놓은 곳은 없다. 이 복주머니는 만불회 회주 학성 스님의 영험담과도 같은 기인한 현몽에서 비롯됐다. 꿈 속에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화현인 복주머니를 본 스님은 이내 은행나무를 깎아 관세음보살 양편에 상징적인 복주머니를 조성토록 했다. 서로서로 복을 많이 짓고 베풀라는 뜻이다. “자연이 그대로 설법하고 있는데 따로 이야기할 게 무엇이 있겠느냐.”며 인터뷰를 극구 꺼리던 학성 스님이 유독 강조하는 견성성불, 자리(自利) 이타(利他)의 상생 정신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하기야 부처님도 자리와 이타가 둘이 아닌 대원(大圓)의 삶을 살도록 우리에게 가르치지 않았던가. 만불보전에서 관음전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5m 높이의 석조 관세음보살상이 무수한 관세음보살 석등으로 에워싸여 있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석등은 기존의 화사창으로 이뤄진 석등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연꽃 좌대 위에 관세음보살을 모셔 놓은 점이 이채롭다.8각의 기둥은 부처님의 성스러운 진리인 팔정도를 상징한다. 관음전 바깥에는 유자(幼子)영가동자상, 법성게 법륜 등이 놓여 있다. 유자영가동자상은 낙태나 유산 등으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어린 생명을 천도하기 위한 것이다. 부모로서의 죄업을 참회하고 원한맺힌 영가들을 지장보살의 서원으로 극락왕생토록 하는 자리다. 동자상마다 빨간 색 모자와 턱받이, 가방 등이 씌워져 있다.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린 꽃 같은 생명을 저 세상으로 보낸 숙업을 이렇게나마 풀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관음전 앞에 가면 법성게가 조성된 원통형 법구를 돌리며 옴마니반메훔 진언을 외우는 불자들을 볼 수 있다. 법성게 법륜은 티베트의 기도 용구인 마니차에서 유래한 것. 티베트인들은 마니차 안에 경문이 들어 있어 이것을 한번 돌릴 때마다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연신 법륜을 돌리며 진언을 외운다. 그러면 흩어진 마음이 모아지기라도 할까. 그들은 진정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관음전을 둘러보고 비스듬한 윗 길로 올라갔다. 거대한 황동와불열반상이 객을 맞는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이 열반상은 길이가 13m, 높이가 4m로 어른 키의 두 배가 넘는다. 열반상의 모습을 곽시쌍부(槨示雙趺)라 한다. 세존이 쿠시나가라 사라쌍수 아래서 입멸하자 입관했는데, 가섭이 다른 지방에서 이 소식을 듣고 그곳에 이르러 슬피 우니 세존이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보여 자신의 마음을 가섭에게 전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됐다. 이 모든 진리를 깨친 정각자의 발바닥에 새겨진 형상이 바로 천폭륜상이다. 천폭륜상은 모든 법이 원만함을 나타낸다. 이 부처님 발바닥을 세 번 만지고 절을 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만불산 꼭대기에는 극락세계에서 삼천대천 세계로 친히 나투신 33m의 아미타대불이 조성돼 있다. 금빛 가사를 두른 아미타대불의 팔각좌대에는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불자들이 서원을 담아 소불을 만들어 놓았다. 좌대 가운데에 놓인 관세음보살과 남순동자에게 기도객들이 뭔가 소원을 빌고 있다. 밤에 불을 밝히면 멀리 경부고속도로에서도 올연히 서 있는 아미타대불의 모습이 보인다. 만불산 극락도량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 대웅전 터가 자리잡고 있다. 만불산 전경을 굽어볼 수 있는 자리다. 현재 대웅전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사찰측 한 관계자는 “대웅전 건물은 최첨단 공법이 동원된 유리 건축물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순수 기도공간으로 쓰일 이곳에는 또한 10만 석불전이 조성될 계획이어서 또 하나의 ‘성역’을 예고하고 있다. 만불사 앞마당을 훤히 밝히는 인등대탑과 4층 범종각 안에 안치된 4m 높이의 황동만불대범종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특히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인도 부다가야 마하보디사원의 대탑을 본뜬 인등대탑에는 한 기마다 1만 4000분의 관세음보살 인등이 봉안돼 있어 시종여일 진리의 불을 밝히고 있다. 만불사에서는 누구든 성물과 친숙해질 수 있다. 부처님도 만져보고 범종도 직접 쳐볼 수 있다. 만불사는 대중과 함께 하는 만발공양에도 열심이다.1000여 명이 한자리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공양소가 24시간 무료로 개방돼 있다. 정토세계를 구현하는 불사와 참배를 통해 신행과 전법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만불사는 이제 세계 불교를 이끌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 불교네트워크의 중심역할을 할 만불총림과 함께 만불세계불교회관 건립도 추진중이다. 만불사는 고속도로로 대구, 부산, 울산 등지에서는 1시간 미만, 서울에서는 4시간 정도 걸린다. 영천 인터체인지나 건천 인터체인지에서 10분이면 갈 수 있다. 글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길섶에서] 효도 관광/이용원 논설위원

    내년이면 어머니가 팔순이 되신다. 팔순 생신을 어떻게 치를지 형제들이 그동안 의논해 왔다. 그 계획 가운데 하나가 ‘성지 순례’를 보내드리는 거였다. 어머니는 신앙심이 두터운 분이어서,‘신앙의 동지’인 맏며느리와 함께 성지순례를 하는 게 소원이었다. 지난 어버이날 다 모인 자리에서 성지 순례를 다녀오시는 게 어떤지 여쭤 보았다. 의외로 “싫다.”는 말씀이 쉽사리 나왔다. 그동안 논의에 끼지 않은 여동생과 형수도 어머니의 성지 순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강조했다. 연세가 높아 장기간 해외여행을 하시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아들·사위들은, 어머니가 연배에 비해 활동적이신 것만 생각했지 그 연세의 활동력이 일정 기준을 넘어섰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앙코르 와트를 취재하던 때가 생각났다. 평원 지대인 앙코르 와트의 중심부에는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 하나 있다. 그런데도 백발의 서양인 부부는 현지 어린이에게 팁을 주고 등을 밀게 하며 그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효도관광에도 때가 있다. 부모님께서 너무 연세가 드셔 해외여행을 가기 어렵게 되면 그도 후회로 남을 것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家家好好 가족여행 가평에 가볼까

    家家好好 가족여행 가평에 가볼까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부모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어 본 것인 언제인가요. 참 무심한 자식이지요. 당당하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작아졌다는 느낌이 들면서 ‘한 번 모시고 여행이라도 가야하는데‘라고 몇 번을 되뇌곤 했지요. 하지만 떠나기 쉽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과 우리 부부, 아이까지 3대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꼭 멀어야 여행일까요. 서울에서 2시간 거리의 가평으로 말입니다.“참 좋다, 정말 좋다!”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뵈면서 제 마음은 죄송하다못해 쓰라렸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아이에게 조부모님과의 여행이란 더할 수 없는 선물을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건강이 좋지 않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떠나는 여행이라 가깝지만 운치있는 가평 쪽으로 여행지를 잡았다. 근처에 북한강과 수목원이 있어 가족나들이로 좋다는 것도 이점이다. 출발은 일찍, 아침 7시로 잡았다. 경기도 마석일대는 차량정체로 유명한 곳인 만큼 출근시간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곤하게 자는 아이를 안고 자동차로 옮기자 다섯살배기 아들이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어, 할아버지 할머니!!”얼굴을 비비며 반가워하는 손자의 재롱에 아버지도 오랜만에 너털웃음을 터뜨리셨다. “아침 먹고 성주가 제일 좋아하는 아자(아이스크림의 준말)사 줄게.”할아버지의 제안에 아이는 “아∼싸 뵤오. 다섯 개 사주세요.”라고 한 손을 펴며 환호성을 질렀다. 제일 먼저 아침고요수목원으로 향했다. 수목원 입구가 좁아 차가 몰리기 시작하면 몇 시간이고 꼼짝 못하기 때문이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새순을 보면서 벌써 고부간에도 이야기꽃이 피었다.“정말 봄이네요, 어머니.”“그래, 참 아름답다!” ●울긋불긋 꽃대궐 아침고요수목원(031-584-6702)은 수도권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중 하나다. 청평검문소에서 좌회전해 37번 국도를 타고 달렸다. 꼬불꼬불 거의 차 한대 정도 다닐 수 있는 도로를 30분쯤 달려 도착했다.10시다. 서둘러 왔는데 주차장은 복잡했다. 어른 6000원. ‘울긋불긋 꽃대궐∼’노래가 절로 나왔다. 목련과 벚꽃나무 밑에는 쌓여있던 하얀 꽃잎들이 바람에 춤을 추고 형형색색 이름 모를 야생화와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했다. 잘 꾸며진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공기 좋다∼”“저 봐라, 저 수줍게 피어있는 꽃!”아버지 어머니는 시인의 감성을 표현하셨다. 신명이 나 달음박질하는 아이의 웃음소리와 아이더러 천천히 가라고 소리치는 아내의 목소리에도 행복이 담겼다. 돌다리를 건너 분재정원과 매화정원을 지나 청국화, 유리오프스 사이를 거닐며 봄날의 흥취에 젖었다. 수목원의 들꽃향기(584-7282)에서 먹기에 아까울 정도로 예쁜 식용꽃이 있는 비빔밥(6000원)과 청국장(7000원)을 먹었다. 벌써 오후 1시가 넘었다. 수목원을 빠져 나오는 길에 차들이 꽉 밀려있다.“역시 빨리 다녀가길 잘했다!”오랜만에 아버지가 어깨를 두드려주셨다. ●환한 웃음이 묻어나는 수목원에서 빠져 나오는 길에 취옹예술관(585-8649)에 들렀다. 전시실과 야외조각 등이 있는 이곳은 무료. 전시관에서 한국화전을 감상하고 정자에 올랐다. 갑자기 아이의 개다리춤 공연에 온가족이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아궁이에 톱밥을 깔고 장작을 쌓은 후 라이터로 불을 댕겼다. 이번에는 풍로를 돌린다. 풍로에서 바람이 나오며 불길이 거세지자 아이가 “앗 뜨거.”라고 소리친다. 이젠 오후 3시, 숙소로 가자. 취옹예술관에서 나와 신청평대교를 건너 북한강을 끼고 달렸다.30분쯤 달렸을까. 청평타워라는 건물이 나오고 왼쪽에 화야산펜션(585-5841)이라는 간판을 따라 500m 들어가자 그림 같은 집이 나온다. 하룻밤에 10만원. ●가족의 사랑이 묻어나는 보금자리 유럽의 궁전을 연상시키는 하얀 기둥과 뾰족지붕이 인상적인 펜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깨끗하게 정돈된 거실을 보자 아이가 “아빠 우리 여기서 다섯 밤 자고 가자, 알았지.”라고 말한다.‘만족’의 아이식 표현이다. 부모님도 흡족하신 눈치다. 어느새 아이가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를 따라 올라가 보니 다락방이었다. 어른 3∼4명이 누워도 될 만한 공간이 있는 이곳은 주방 위쪽 지붕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햇빛이 거실까지 그대로 들어온다. 펜션에 있는 바비큐 그릴에 불을 피워 삼겹살을 굽고 주인 아주머니가 준 상추, 깻잎과 신 김치를 반찬 삼아 저녁을 먹었다. “고기는 내가 굽지.”하며 집게를 드는 아버지. 며느리가 상추쌈을 싸서 시아버지의 입에 넣어드렸다. 꿀맛 같은 저녁을 먹고 부모님은 화야산으로 산책 가시고, 아이와 아내는 책을 보며 저녁을 맞는다. 밤하늘 가득 쏟아질 듯한 별들을 보며 아들이 불쑥 말했다.“아빠, 나는 외나로도가 될 거야. 그래서 별에 갈거야.”갈 때 아빠도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낸 후 외나로도가 뭐냐고 아내에게 슬며시 물어봤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선 발사기지가 만들어지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는 우주선 조종사가 된다는 의미로 외나로도가 된다고 한다. 이튿날 오전 11시쯤 펜션을 나왔다. ●칭기즈칸의 정기를 느끼며 수동면쪽에 있는 몽골문화촌(590-2739)으로 향했다. 입장료 1000원. 몽골 전통가옥인 ‘겔’ 10동이 곳곳에 설치돼 있어 사뭇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그 중 입구에서 곧장 올라가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가장 큰 겔에는 칭기즈칸을 비롯한 몽골의 역대지도자들의 인물사진과 몽골의상 등 생활용품이 전시돼 있다. 해지는 방향으로 돌면서 깡통을 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후르드’에서 소원을 빌어본다.‘부모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건너뛰기도 아쉽고 해서 간단하게 몽골문화촌에 있는 전통음식점(592-0749)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기로 했다. 다양한 메뉴가 눈길을 끈다. 물만두, 군만두(9000원)부터 볶음국수, 물국수(7000원), 당나귀 고기 전골(3만원) 등 이다.‘당나귀 고기 한첩 먹는 것이 보약 한첩 먹은 것과 같다.’는 문구를 보고 전골과 양고기, 쇠고기에 다진 야채를 소로 한 군만두를 시켰다. 아버지가 특히 좋아하셨다. 할아버지가 맛있게 드시자 손자도 고기타령을 했다. 커다란 군만두는 한국인 입맛에 맞게 변형을 했다. 당나귀 고기는 부드럽고 씹는 맛이 쇠고기 같다. 돌아오는 길에 차가 막혀 힘은 좀 들었지만 3대가 떠난 여행,‘자주 이런 기회를 만들어야겠다!’는 기약없는 약속을 하면서 돌아왔다.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딸들에 상속포기 강요하는 아버지

    저는 3남2녀 중 둘째딸로서 시집가서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친정아버지가 저를 비롯한 출가한 언니에게 아버지 재산에 대한 상속포기를 하라고 강요하고 계십니다.“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를 가지고 와서 상속포기서에 도장을 찍어라.”고 요구하십니다. 아버지는 3명의 아들들에게 집을 사주었고, 조그마한 건물도 이미 주었는데 딸들에게는 재산이라고는 전혀 주지 않고 이제는 상속포기만을 고집하고 계십니다. 공증까지 받자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박신덕(가명)- 아버지의 소원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게 포기하더라도 법률상 무효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농업경제 시대의 가부장적 가족제도 하에서는 호주 겸 가장의 권한이 너무 막강해 가족이 그 명령에 안 따르면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가장은 가족구성원들의 일상생활은 물론, 혼인·입양 등에 관한 신분상의 행위에 대해 모든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아무리 싫어도 아버지가 정한 혼인에 따라 시집가고 장가가야 했습니다. 신덕씨의 친정아버지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장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가족제도에서는 재산문제도 가장의 마음대로 처리했던 것입니다. 그 대신 가장은 가족의 부양책임을 떠맡고 있었습니다. 현재의 상속법에는 피상속인인 아버지가 생전에 자기 명의의 재산을 처분하는 것은 아버지의 자유이고 그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식들이 아버지의 재산처분에 항의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자유이지만, 딸들이나 특히 시집간 딸에게 미리 상속포기를 강요하는 것은 오늘날의 법을 잘 몰라서 하는 고집일 뿐입니다. 상속포기는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상속받은 재산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상속채무를 면하기 위하여 상속포기 신고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경우이든 시간적 선후관계에 따라 이를 다시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아버지 사망(상속개시) 이전의 포기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 사망 이후의 포기입니다. 원래 상속인의 권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고, 아버지가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생길 수 없는 권리입니다. 굳이 표현한다면 상속받을 가능성이 있는 하나의 추정적 지위 혹은 자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아버지가 돌아가시기도 전에 아들·딸이 상속을 포기한다.’는 말은 아직 생기지도 아니한 권리, 즉 없는 권리를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포기할 것이 없는 것을 포기한 꼴이니 이는 무효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상속포기는, 일단 상속이 개시된 후에 생긴 구체적인 재산에 대한 상속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권리의 포기는 포기로서 법률상 유효한 것입니다. 상속개시 후의 상속권을 포기하려면 공동상속인인 형제자매 등에게 포기한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거액의 채무(債務)를 지고 있어서 그가 남긴 상속재산으로는 도저히 이를 갚을 수 없는 상태, 즉 채무초과 상태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는 상속인들은 누구도 빚을 물려받기 싫어하고, 상속채무를 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그 방법의 하나가 바로 상속포기 신고입니다. 포기신고는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사망사실, 상속인 스스로 상속인이 된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가정법원에 상속포기 신고를 하여야 합니다. 상속포기신고는 상속인 각자의 인감증명서를 첨부하여 인감도장을 찍어서 신고하여야 하고, 상속인이 미성년자·한정치산자·금치산자인 경우는 후견인 등 법정대리인이 위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안에 신고해야 합니다. 포기신고의 경우는 상속재산목록을 첨부할 필요는 없고, 단순히 “청구인은 피상속인(주민등록번호와 주소도 필요)의 상속재산에 대한 모든 상속을 포기한다.”고 기재하여 신고합니다. 아버지가 생전증여로 모든 재산을 아들에게만 주었을 경우, 딸들은 아버지 사망 후 1년 안에(사전의 상속포기와 무관하게) 아들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가족클리닉의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열린세상] 생명복제,희망인가 재앙인가/임현진 서울대 사회학 기초교육원장

    지구 최초의 복제동물로 세인의 관심을 끌었던 돌리가 사망한 지 2년이 넘었다.1997년 2월에 태어나서 2003년 2월에 죽었으니 여섯 살에 일생을 마감한 셈이다. 양의 평균 수명이 12년 안팎이라 하니 오래 살지 못했다 할 수 있다. 돌리의 사인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다. 공식적으로는 폐질환으로 인한 안락사다. 복제양을 탄생시킨 이언 윌마트 박사가 속해 있는 영국의 로슬린연구소는 돌리의 죽음이 실내에서 사육되는 늙은 양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폐질환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불과 여섯 살에 지나지 않는 돌리가 ‘늙은 양’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이달 초 한국을 방문한 윌마트 박사는 돌리의 사인을 묻는 질문에 폐질환이라는 사실 외에 그 이상도 이하도 확인하기를 거부했다. 사실 복제양 돌리는 세인의 기대와 달리 불행한 일생을 살았다. 태어난 지 3년도 안돼 성인병인 비만·관절염·류머티즘 등으로 고생을 했다. 특히 노화가 급속히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밝혀진 대로 돌리가 세살 때, 세포노화의 지표로 알려진 테로미어가 정상보다 짧은 아홉 살에 해당하는 길이였다. 바꿔 말해, 돌리는 이미 태어날 때 여섯 살된 어미양의 나이를 안고 태어난 것이다. 돌리가 복제되기까지 무려 2777번의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동물 복제의 경우 성공률이 아직도 많아야 10%라고 한다. 인권만 있고 양권(羊權)이나 돈권(豚權)은 없는가. 생명복제 기술은 아직도 불완전하다. 그럼에도 인간은 생명복제를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생명복제가 인간으로 확대되는 것에 대한 반대가 적지 않다. 나는 이미 인간복제가 인류에게 희망보다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서울신문 2002년 10월1일자). 사람의 질병 치료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생명복제가 인간재생으로 이어지지 말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생명창조의 권한을 가진 신에 대한 모욕이기 전에 인간사회의 질서와 윤리를 부정하는 자멸을 의미할 수 있다. 인간복제로 인해 부모가 자식이 되고 자식이 부모가 되는 사회에서 생명윤리와 인간질서는 똑바로 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인간복제로 가고 있다. 복제기술의 발달에 따라 마음만 먹으면 어떤 동물도 복제가 가능하다. 복제양 돌리(1997년)를 필두로 쥐(1997년), 소(1998년), 염소(1999년), 돼지(2000년), 고양이(2002년)가 복제되었다. 인간과 DNA구조상 친화성을 갖는 원숭이 복제도 시간문제다. 이러한 생명복제의 중심에 한국이 있다. 서울대 황우석 박사와 문신용 박사가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윌마트 박사가 한국에 온 연유도 황우석 박사와 인간배아줄기세포의 배양을 통해 난치병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분명 인간줄기세포의 복제는 간경화·당뇨병·척추마비·파킨슨씨병으로 시름하는 환자들에게 큰 희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줄기세포 복제가 질병치료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줄기세포를 장기의 세포로 키우고, 동물실험을 통한 안전성 점검을 거쳐야 하고, 임상결과를 통해 인간에 대한 유무해 여부를 최종 결정해야 한다. 나라마다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미래산업의 성장동력을 얻으려 한다.10년안에 실용화를 위해 국가간 경쟁이 치열하다. 영국이 가장 적극적이고 아시아권 국가들이 이를 뒤따르고 있다. 이 와중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훼손되고 있지 않은지 성찰을 요한다. 우리의 경우 ‘생명윤리법’이 인간배아 연구를 허용함으로써 생명존중 가치관을 침해하고 있다는 헌법소원이 이미 제기되어 있다. 인간배아 복제가 지니는 생명공학적 가능성 못지않게 인간윤리적 한계를 조화시키는 것이 지난하면서도 중차대한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 기초교육원장
  • 학교용지 주민부담 위헌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경일 재판관)는 31일 지방자치단체가 300가구 이상 공동주택 입주자에게 학교용지 부담금을 부과토록 한 ‘옛 학교용지 확보에 관한 특례법’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헌법은 국민 모두가 초등교육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부담금 등 별도의 재정수단을 동원해 특정 집단에 의무교육 비용을 충당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의무교육이 아닌 중등교육에 관한 부담금을 징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요건을 갖춰야 한다.”면서 “분양입주자의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학교용지 부담금은 2001년 처음 제정된 이후 위헌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정부는 지난 24일부터 학교용지 부담금을 100가구 이상으로 하향조정하고, 부담 주체도 개발사업자로 변경했다. 그러나 이날 헌재가 학교용지 부담금 자체가 위헌이라고 인정함에 따라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한 변호사는 “학교용지 부담금을 고지받은 뒤 90일 안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부담금을 내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에 따르면 전국의 지자체는 2001년부터 2004년 6월까지 3370억원의 부담금을 징수했고,2431억원을 사용했다. 인천지법은 2003년 인천시 서구청으로부터 학교용지 부담금을 부과받은 인천 서구 P아파트 등 3개 아파트 주민 150명의 신청을 받아들여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 만들기] 재혼 후 딸아이 성(姓) 바꾸고 싶은데

    저는 1999년 12월 전 남편과 이혼하고 지금은 재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아이를 데리고 있는데, 이 아이의 성은 ‘김(金)’이고 새로운 남편의 성은 ‘이(李)’입니다. 딸의 성을 바꿀 수 없나요. 조금 있으면 딸을 초등학교에 입학시켜야 하는데, 가능하면 빨리 아이의 성을 바꾸고 싶습니다. -홍명희(가명)- 명희씨, 지금의 법률로는 불가능하지만,2008년 1월1일부터는 가능하게 됐습니다. 지난 2일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 민법에 따라 호주제도가 폐지되고, 동시에 자녀의 성(姓)과 본(本)은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혼인신고 시에 부부의 합의에 따라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성과 본을 아이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게 되었어요(제781조 제1항). 이는 남자 중심의 우리나라 전통 가족제도에 있어서 중대한 변화라고 말할 수 있지요. 예를 들면, 홍길동과 이영자가 혼인하면서 “아이를 낳으면 아이의 성은 이(李)로 본은 인천(仁川)으로 하자.”고 합의한 경우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는 아버지의 성인 홍을 따르지 않고 어머니의 성을 따라 출생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부모가 합의를 한 일이 없다면 아버지의 성을 따라 홍모씨로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버지가 외국인인 경우 자녀는 생모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고,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자녀는 당연히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자녀의 복리를 위하여 자녀의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는 부(父), 모(母) 또는 자녀, 자녀의 친족이나 검사가 법원에 청구해 허가를 받아 이를 변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외도를 해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 아이를 출산한 경우에도 호적에 출생신고를 할 경우, 그 아이의 성과 본은 생부모의 협의에 따라 종전의 성과 본을 계속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부모가 협의할 수 없거나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는 자녀가 법원의 허가를 받아 종전의 성과 본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홍길동이 성춘향과 간음하여 아들을 낳고, 생모인 성춘향은 아들의 이름을 성동식으로 지어 출생신고를 했다고 해보죠. 성동식이 성장해 성공하자, 홍길동이 나타나 성동식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라면서 홍길동의 호적에 출생신고 또는 인지신고를 하였다고 가정합시다. 이 경우 현행법에 따르면 ‘성동식’이 하루아침에 ‘홍동식’으로 바뀌어 버려요. 그래서 개정민법은 이러한 아이의 인격과 그 동일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나아가 아이의 복리를 위하여 홍길동과 성춘향의 협의에 따라 종전의 성과 본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그러한 협의를 할 수 없으면 자녀가 가정법원에 종전의 성과 본을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고 청구하면 허가를 받을 수 있고, 그러한 허가를 받으면 성동식은 계속 성동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재혼한 부부의 일방이 이미 아이를 낳아서 데리고 있을 경우, 이 부부가 새로 아이를 출산하면, 데리고 있던 아이와 새로 태어난 아이는 성이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에 아이의 성을 동일하게 할 수 있을까. 현행법 하에서는 불가능하지만, 개정민법은 자녀의 복리를 위하여 부·모 또는 자녀가 청구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를 변경, 동일한 성을 사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2008년부터는 부자간에, 또는 형제자매 간에 성이 달라서 곤란을 겪는 경우는 이를 바꿀 수 있으니 조금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여자가 전 남편의 자녀를 데리고 재혼한 경우 그 아이를 새로운 남편의 아이로 입양할 수 있고, 이 경우 전 남편의 동의를 얻어야 입양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의 성을 변경할 경우도 역시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으면 됩니다. 우리나라의 어머니처럼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엇이든지 다 해주려고 하는 어머니는 세상에 없습니다. 아이 기죽지 않게 키우려는 엄마들의 소원이 곧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가족클리닉의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길섶에서] 집단기원/이목희 논설위원

    미국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주인공 짐 캐리는 별 볼일 없는 방송 리포터다. 일상에 불만이 많던 그에게 어느 날 신(神)의 힘이 주어진다. 자신을 업신여겼던 이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할 때까진 좋았다. 수많은 기도 중 들어줄 것을 고르는 게 귀찮아진 그는 모든 이의 소원이 성사되게 한다. 복권 당첨자가 무더기로 쏟아지는 등 세상은 엉망이 돼버린다. 세계 인구는 60억이다. 신이 전지전능하다해도 개인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기가 쉽지 않을 듯 싶다. 그 때문인지 어느 종교모임에 가더라도 ‘집단기원’이 중시된다. 되도록 많은 인원이 한 목소리로 갈구해 신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자는 취지일 것이다. 아내는 집단기도의 힘을 굳게 믿고 있다. 아줌마들이 공통주제를 정해 함께 기도한다. 가족들에게도 기도 제목을 알려준다. 요즘은 ‘큰 아이의 장래’가 대상이다. 형과 자주 다투는 둘째에게 형을 위한 기도를 닦달한다. 둘째는 “기도는 시킨대로 했지만, 마지막에 ‘내 진심은 아닙니다.’고 고백했다.”며 엄마 눈치를 살핀다. 아내는 “솔직한 게 좋다.”고 넘어갔지만, 집단기원의 효험은 어찌 되는 건지 궁금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스포츠라운지] LPGA 비즈니스 코디네이터 심규민씨

    [스포츠라운지] LPGA 비즈니스 코디네이터 심규민씨

    “한국 선수 28명이 리더보드 상단을 꽉 채우면 좋겠습니다.” 미여자프로골프(LPGA)에서 ‘비즈니스 어페어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심규민(25)씨의 올해 소원이다. 지난해 3월부터 LPGA에 몸을 담았으니 내일 모레면 일년 째가 된다.90명 직원 가운데 유일한 동양인이자, 한국인. 이를테면 LPGA에서 뛰고 있는 한국의 ‘청일점’인 셈이다. 투어가 열리는 곳이면 무전기를 들고 진행 상황을 체크하며 이곳 저곳을 누비는 그는 최근에 한국 갤러리를 끌어 모으기 위한 마케팅 전략을 짜는데 여념이 없다. 해마다 늘어나는 한국 루키들의 적응을 돕는 것도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다. ●한국 골퍼 스코어에 가장 눈길 11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온 그는 대학에서 정보통신과 비즈니스 경영을 전공했고, 디즈니랜드 호텔에서 일하다가 ‘변화를 바라는 시점’에 친구의 소개로 직장을 ‘덜컥’ 옮기게 됐다. 스타들과 함께 하는 마냥 즐거웠던 일년은 아니었다.LPGA 본부가 있는 플로리다 데이토나비치가 집이지만 머무는 시간은 일년에 채 절반도 안된다. 지난해에는 28주 동안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를 돌아 다녔다. 한국 선수들이 많다 보니 한때 이런 저런 일로 새벽까지 시간을 가리지 않고 걸려오는 한국발 전화에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솔직히 박봉에 육체적으로 고되기도 해서 “일을 계속해야 되나.”는 고민도 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이 선전하는 모습을 보면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라고 털어 놓았다. 모든 선수들에게 공평해야 하지만 한국 선수들의 스코어에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심씨는 “여기서도 박세리 박지은 김미현 한희원 등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한국 골퍼의 인기가 좋다.”면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과 보람이 생긴다.”며 미소를 지었다. ●한국 돌풍 이상무! 유명 스포츠 스타들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지만,‘고향 누나’들을 접하면서 싹 바뀌게 됐다. 객지에서 서로 돕고 격려하는 모습은 언제라도 보기 좋다. 싹싹한 성격으로 선수 부모 사이에서도 인기만점. 한국 여자 골퍼들과는 ‘누나, 동생’할 정도로 벌써 막역한 사이가 됐다. “혹시라도 실수할까봐 세리 누나 같은 왕언니들은 아직도 무서워요.”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미국 생활 5∼6년이 넘는 고참급들은 사실 신경이 덜 쓰이는 편. 하지만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르는 루키들에게는 상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올해도 전경기 출전권자만 8명이 늘었다. 미국에서는 준비해야 할 서류가 많아 신참들이 자주 골탕을 먹는다고 한다. 올 시즌 개막전인 SBS오픈에서도 일부 선수들은 대회 폐막을 하루 앞두고서야 상금을 수령할 은행 계좌를 트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은행 계좌가 없어 지난해 12월에 끝난 퀄리파잉스쿨 상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선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단지 선수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치열한 연습에 연습으로 시간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일상 소사의 빈틈을 그가 채워줘야 할 부분이다. LPGA에 ‘코리안 돌풍’이 괜히 이는 것이 아니다. 한국 골퍼들만큼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는 선수들도 없다는 것.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해가 질 때까지 연습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면 골프 칠 생각이 싹 가시기도 한다.”며 고개를 저으면서도 “성실성을 바탕으로 올해에도 한국 돌풍은 거세게 불 것”이라고 자신했다. 글 카후쿠(미 하와이주)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오대산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오대산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

    그곳엔 특별한 ‘숲’이 있다. 천년 세월이 숨쉰다. 모진 비바람, 크고 작은 전쟁을 무수히 겪었음에도 그저 묵묵히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일까. 태고의 정적에 금방 압도당한다. 미묘한 향에 취한다. 부드럽다. 청정해진다. 일념(一念)의 문턱에 선다. 숲이 말했다.‘알면 얼마나 안다고, 네가 알고 있는 것, 죄다 비워버려.’라고. 1300여년 전이었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중국불교의 최고 성지인 산시성(陝西省)의 오대산을 처음 다녀오면서 역사는 시작됐다. 이윽고 강원도 오대산, 동·서·남·북·중대 오대(五臺)가 생겼다. 바로 ‘문수(文殊)성지’다. 맞다. 월정사(月精寺)…. 산사(山寺)는 일반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기댈 숲이 있기에 바람쐬러 가기도 하고, 속세의 풍진을 씻어내기 위해서 발길을 옮긴다. 지난주 초였다. 월정사 입구에는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살을 에는 바람, 영하의 차가운 날씨였지만 정월대보름을 맞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들은 월정사에서 예불한 뒤 한결같이 상원사로 연결되는 20여리의 숲길을 걸었다. 다름아닌 천년의 숲길, 양 옆에는 하늘높이 솟은 전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문득 생각해본다. 사노라면 소원이 있을터, 나름대로 절박하고 소중하지 않을까. 월정사 안으로 들어갔다. 정념(正念·50) 스님. 월정사 주지로 취임한 지 1년째. 국내 처음 속세인을 대상으로 ‘단기 출가학교’를 열어 기대 이상으로 ‘출가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때문에 불교계는 물론 그를 주목하는 세인들이 많다. 지난해 5월 ‘오대산 천년의 숲길 걷기 대회’를 시작으로 ‘산사영화제’(달마야 서울가자),‘월정사 주지배 평창군민 족구대회’, ‘오대산 불교문화축전’ 등 파격행사를 연이어 열었다. 이때마다 수만명의 인파가 몰려 호황을 이루었다. 이뿐만 아니다. 올 상반기 중 월정사 산문 안의 모든 도로포장을 뜯어낼 작정이다. 숨쉬는 땅, 살아 있는 미생물, 빼앗긴 자연의 권리를 자연에 되돌려주기 위해서다. 때문에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파격’과 ‘개혁’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닌다. 천년의 고요를 한꺼풀씩 걷어내겠다는 의욕이다. 지난해 여름 그는 중국의 최고 불교성지인 오대산을 방문, 한·중 오대산 불교끼리 만나는 역사적 장을 열었다. 이는 자장율사 이후 천년을 뛰어넘는 ‘대사건’으로 불교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몇달 뒤에는 중국 고승들이 한국의 오대산을 답방, 양국간의 불교문화 교류를 재차 다짐하는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눈이 하얗게 쌓인 절간 앞마당이 보이는 주지 집무실에서 정념스님과 2시간동안 마주앉았다. “스님, 요즘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런가요.” “만사천래막강구(萬事天來莫强求)” “무슨 뜻입니까.” “만가지 일을 억지로 구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억지로 하면 일도 잘 안 풀릴 뿐더러 세상도 어지러워져 결국 다사다난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꼴이지요. 평상심과 심청사달(心淸事達)의 맑은 한 생각이 시비장단의 모든 일들을 가지런히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만사를 순리에 의하지 않으면 사회는 양극화로 치닫게 되며 결국 투쟁과 대립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시대일수록 오직 지혜만이 필요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일등능제천년암(一燈能除千年暗) 일지능멸만년우(一智能滅萬年愚)라는 말처럼 한 등불이 천년의 어둠을 다 걷어버리듯, 한 지혜가 우리의 우매함을 한순간에 타파해버릴 수 있다고 제시했다. 또한 지혜란 일심(一心)이 청정해야 하며 이는 곧 다신(多身)이 청정해지고 ‘시방세계’가 청정해지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스님, 정월대보름입니다. 다들 소원을 빌곤 합니다. 올해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목계(木鷄).” “무슨 뜻이지요.” 스님은 장자(莊子)의 ‘달생편’에 나오는 이야기 한토막을 들려준다. 싸움닭을 만들기로 유명한 기성자(紀誠子)가 있었다. 그는 왕의 부름을 받아 싸움닭을 조련시킨다. 열흘이 지나자 왕이 “다 되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기성자는 “닭이 지금 한창 허장성세를 부리는 중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또 물었다. 기성자는 “아직 덜 됐습니다. 다른 닭의 울음소리나 그림자만 봐도 덮치려고 난리를 칩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반복되길 40일째 되던 날, 왕이 묻자 마침내 기성자는 “이젠 됐습니다. 나무로 만든 닭과 같습니다. 망지사목계의(望之似木鷄矣), 기덕전의(其德全矣). 다른 닭들이 감히 대응하지 못하고 도망쳐버립니다.”라고 대답했다. 스님의 설명은 계속된다.‘목계’는 이기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재능이 있어도 ‘무심(無心)’으로 살아 사람들을 감화시키기 때문이란다. 이는 곳 ‘덕(德)’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덕이란 무엇입니까.”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주역의 첫장에 나옵니다. 선행이 쌓이면 반드시 집안에 경사가 온다는 뜻이지요. 인간은 각자 살아가는 팔자가 정해져 있습니다.60살에 죽는 팔자,80살까지 살 팔자, 그러나 이 팔자가 아무리 기구해도 선행이 쌓이면 운명이 바뀝니다. 일찍 죽을 팔자도 80∼90살로 바꿀 수 있지요. 살면서 화(禍)가 적어지고 축복받는 삶의 최선은 선행입니다.” 화두를 떠올릴 때 벽산(碧山)을 생각한다고 했던가. 스님이 뱉어내는 화두는 거침없었다. 깊은 수행의 내공, 일심(一心)과 즉심(卽心)에서 우러나오는 것 같았다. 월정사 관계자에 따르면 정념 스님은 좌복에 앉은 지 10년만에 공부의 묘한 경계를 맛봤다. 평소 즐겨 독송하던 원각경이 온몸에 전율로 다가왔다. 이후 개미 한마리까지 환희로 보이고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 넘쳐났다고 귀띔해줬다. 정념 스님은 이른바 불교계의 개혁파로 꼽힌다. 그는 올해로 법랍 26년. 경남 고성 출신으로 고등학교 졸업 직후인 18살에 출가했다. 이후 종교계에서는 처음으로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탄허 스님의 맏상좌(세속의 맏아들격)인 만화희찬 스님을 은사로 모셔 승려가 됐다. 월정사 주지를 맡기 전 그는 12년 동안 상원사에서 주지 소임을 맡았다. 그가 상원사 주지를 맡을 때 아직 젊고 공부의 묘미에 푹 빠져 있어 처음엔 거절했지만 소임과 수행, 이판과 사판이 따로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에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는 지난해 2월 나이 마흔아홉에 현해 스님이 동국대 이사장으로 떠나면서 제4교구 본사 주지로 발탁돼 주목을 끌었다. 월정사 문중서열상 여전히 젊은 편이지만 어른 스님들은 “시대적 흐름에 맞게 젊고 유능한 사람이 일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삶과 수행은 일치돼야 합니다. 과거의 수행은 정태적이었지요. 이젠 대중의 가치와 열심히 호흡해야 합니다. 종교는 역사를 주도하고 문화를 창달하는 것이 본질이며 예언자적 길을 걸어야 합니다.21세기의 문화가 놓여 있습니다. 수행자적 삶을 살 수 있다면 사회 전체가 행복해집니다. 출가학교를 개설한 것도 바로 이같은 취지입니다.” 지난 1년 동안 단기 출가학교 졸업생은 165명. 평균 10대1의 경쟁률에 이를 만큼 점점 인기를 끌고 있다. 올 4월에 여는 제4기 출가학교 응모자만 하더라도 60명 정원에 현재 400여명이 몰리고 있다. 정념 스님은 다음달 14일 기존 졸업생들과 함께 미얀마 등 남방불교 순례를 떠난다. 그는 “지금까지 ‘출가’라는 어휘 자체가 부정적이었지만 이제는 무상(無想)의 경험을 통해 인생을 슬기롭게 사는 길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올해에는 웰빙타운(명상센터)과 생태·문화마을을 조성해 대중들과 더욱 친숙하게 만나겠다.”며 문수동자처럼 환하게 웃었다. km@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탑골의 따뜻한 맛집들

    [뒷골목 맛세상] 탑골의 따뜻한 맛집들

    지난 해 11월에 열린 민족문학작가회의 30주년 기념식에서는 약간 색다른 공로상이 발표되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한 술집 주인에게 공로상을 주기로 한 것이었다. 이 공로상은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아 끝내 시상을 하지 못하고 말았는데, 기념식에 참석한 문인들은 한결같이 안타까운 빛이 역력했다. 공로상의 주인공은 한복희라는 이로 탑골이라는 카페의 주인이었다. 카페 탑골은 이름 그대로 탑골공원 뒤편 골목에 자리해 있었는데,1980년대부터 주로 문인들을 위시한 예술인들이 마치 제집 안방처럼 무람없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탑골을 드나들던 문인들로는 위로는 시인 신경림·민영·김지하, 작가 황석영을 비롯해서 시인 이시영, 작가 박범신·김성동이며 나를 거쳐 아래로는 시인 강형철·이영진·박철·김사인, 작가 김영현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작가회의에 적을 둔 문인들로서는 한두 번 이곳을 드나들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술집 주인에 공로상… 한가닥 미안한 마음 달래 미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문인들이 드나들었다고 해서, 작가회의가 굳이 탑골 주인에게 공로상까지 마련한 것은 아닐 터이다. 지금에 와서도 1980년대의 탑골시절을 돌이키면, 저 암흑 같은 시절을 과연 탑골이 없이 제대로 견딜 수 있었을까 하고 의구심이 들고는 한다. 이를테면 탑골이야말로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져 허우적대는 문인들에게는 참으로 제집 안방처럼 아무 때나 무람없이 찾아들어 술이며 안주로 배를 채우고, 더 나아가 지친 몸을 기대고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15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문인들이 한낱 술집 주인에 불과한 한복희씨에게 기꺼이 공로상을 주기로 한 데에는, 너나없이 그이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한 가닥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랬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한 문인들이 얼마든지 외상으로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고, 게다가 술청의 아무데나 쓰러지는 식으로 잠자리까지 해결할 수 있는 곳은 탑골 말고는 달리 없었으리라. 탑골이 문을 닫은 후에, 오죽하면 문인들 때문에 결국 탑골이 망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을까. 1980년대의 탑골 풍경에 대해서는 시인 이시영이 ‘김사인의 흰고무신’이라는 산문시에서 다분히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날 밤은 모든 것이 예정된 것처럼 보였다. 폭우 속을 뚫고 김사인이가 왔었고 흰고무신을 신고 있었고, 새로 막 시작된 술자리가 새벽으로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천둥소리 속에 밖에서 누가 희미하게 나무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설연이가 귀를 쭝긋 세우고 달려가 문을 열었더니 송기원과 나의 처가 거센 빗줄기 속에서 기세등등 들이닥치고 있었다.“복희년 나오라고 그래!” 바로 그때였다. 나와 송 사이에서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있던 사인이가 갑자기 일어나 문밖으로 내빼는데 흰고무신 신은 발이 비호처럼 빨랐다. 그리고 빗속을 번개처럼 가르며 사라졌다. 복희씨가 졸린 눈을 뜨기도 전에, 송과 나의 처가 시퍼렇게 걷어붙인 팔을 풀기도 전에 일어난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다.’ 1980년대라면 개인적으로는 30대에서 40대로 접어든 언저리의 나이이다. 그리고 이미 살아낸 삶은 물론이려니와 또한 앞으로 살아내야 할 적잖은 부피의 삶이 너무 무거워서 비단 술에 취하지 않아도 거의 날마다 어쩐지 걸음이 비틀거리던 나이이다. 그렇듯 비틀거리는 걸음은 때로는 지극히 퇴폐적인 행태로, 때로는 황폐한 스캔들로 나타나 탑골 주변에 숱한 에피소드를 남겼다. 그러나 스스로 돌이켜보면 그렇듯 퇴폐적이고 황폐한 나이에 내가 그나마 사람냄새를 풍길 수 있었다면 그것은 순전히 탑골 덕분이었다. 나의 사람냄새 속에는 분명히 탑골의 따뜻하고 넉넉한 분위기와 주인되는 이의 너그러운 품성이 깃들어 있을 터이다. ●골목 어느집이든 2000~3000원이면 한끼 해결 기이하게도 탑골공원 주변에는 카페 탑골 비슷한 분위기의 식당들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돈을 버는 장사라고 여기기에 앞서, 우선 배고픈 손님에게 자신이 만든 음식을 베푸는 즐거움이 앞서는 식당들이다. 탑골공원 담벼락을 끼고 돌아 낙원상가가 시작되는 어름에서 카페 탑골로 들어가는 바로 입구에 있는 유천식당(02-764-2835)은 아예 간판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영업합니다’ 하고 무슨 구호처럼 써놓았다. 식당에 들어가서 한 그릇에 2500원짜리 설렁탕이나 돼지머리국밥을 시켜보면 그 구호가 결코 빈말이 아닌 것을 알 수가 있다. 설렁탕이며 돼지머리국밥은 양도 양이지만 맛 또한 여느 5000원이나 6000원짜리 식당보다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한 그릇으로 양이 부족한 이라면 시쳇말로 얼마든지 리필이 가능하다. 밥보다 술이 우선인 손님이라면 한 접시 수북이 쌓아올린 3000원짜리 돼지고기에 소주 한 병이나 막걸리 한 주전자면 충분하다. 이 유천식당이 탑골공원 뒷골목에 한 그릇에 1500원짜리 추어탕의 소문난추어탕집이나 2000원짜리 황태해장국의 황태식당이나 2000원짜리 선지해장국의 고향집 등을 있게 한 원조격이다. 유천식당의 주인되는 문용춘씨는 80이 가까운 나이인데, 여전히 정정한 몸으로 주방을 맡고 있다. 벌써 40년이 넘게 한 자리에서 설렁탕과 돼지머리국밥만으로 식당을 해온 그이는 평안남도 덕천에서 1·4후퇴때 월남한 피란민 출신인데, 어릴 적부터 하도 배고프게 자라서 자신만이 아닌 남들까지 실컷 배불리 먹이는 것이 소원이었고, 그 소원이 자연스럽게 식당을 하게 했다. 일찍이 할아버지로부터 비롯하여 자신은 물론 자신의 아들까지 벌써 4대째 독실한 천도교 집안인 그이는 자신이 만드는 음식 속에는 ‘사람이 하늘이다’는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사상이 들어있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이로서는 식당을 처음 열었을 때 한 그릇에 500원이었던 설렁탕 값이 4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2500원으로 오른 것이 못내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한 모양이었다. 그런 그이는 평생토록 집 한 채 마련해본 적이 없이 지금도 일산의 백석동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10년동안 가정식 백반 한상에 2500원 고수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에서 내려 4번 출구를 나와 낙원오피스텔 쪽으로 20m쯤 걸어오면 길 건너편에 낙원장모텔과 세느장모텔 골목이 있다. 이 낙원장모텔 골목을 굽어돌면 수련집이니 찬미식당이니 남양식당이니 하는 난데없는 2500원짜리 가정식백반집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 끝에 바로 이 골목에 2500원짜리 가정식백반집이 있게 한 원조격인 부산집(02-744-2331)이 숨어 있다. 부산집 또한 돈 버는 장사에 앞서 배고픈 손님에게 자신의 음식을 베푸는 즐거움이 우선인 집인 것은 마찬가지다. 가정식백반에는 병어조림이며 조기조림에서부터 미역무침, 김, 콩나물, 갓김치, 배추김치 같은 반찬들이 수북수북 나오고 미역국에 고봉밥까지 곁들여 한 상을 이루는데, 이 푸짐한 한 상에 2500원이라는 사실이 전혀 믿어지지 않는다. 이 집 또한 밥이며 반찬이 손님의 양에 따라 얼마든지 리필이 된다. 부산집에는 가정식백반 이외에도 3000원짜리 돼지갈비탕이 있는데, 만일 몸은 물론 마음까지 함께 허한 이라면 마땅히 돼지갈비탕을 권하고 싶다. 돼지갈비탕도 반찬은 가정식백반으로 나오는데, 주인의 인정이 함께 전해 와서 허한 마음이 저절로 채워질 터이다. ●국수보다 해물이 더 많이 들어간 칼국수 얼핏 주방을 올려다보면 전통 한옥의 대청마루에 떠억 하니 자리잡은 주방 한 가운데에서 주인되는 이영자씨가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걸어온다.“뭐 좀 더 드려?” 환갑 언저리에 이른 그이의 넉넉한 자태와 반말 비슷한 말투가 어쩐지 마음 한 쪽에 따뜻하게 스며오는 것을 느끼며 수저를 들면, 자칫 목이라도 멜 것 같은 기분이 되고 만다. 그이는 10년 전에 이 골목에 2500원짜리 가정식백반집을 차린 후에 단 한번도 값을 올린 적이 없이 그대로 지켜내고 있는 고집불통이기도 하다. 모르기는 해도 단골손님들의 이제 그만 밥값을 올리라는 주문은 한마디로 내칠 것이다.“올려서 뭐하게?” 역시 지하철 5호선의 종로3가역 4번 출구를 나와 낙원오피스텔 앞으로 오면 건너편에 희망상회가 있는데, 바로 그 골목에 찬양집(02-743-1384)이라는 칼국수집이 있다. 찬양집 또한 돈 버는 장사에 앞서 배고픈 손님에게 자신의 음식을 베푸는 즐거움이 우선인 것은 당연하다. 주인되는 김옥분씨는 환갑 언저리에 이른 고운 자태인데, 어쩌다 반가운 단골손님이라도 오면 처녀같은 수줍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진한 표정이기도 하다. 나로서는 카페 탑골 시절부터 비롯하였으니 20년 가까운 단골이기도 한데, 나보다 오랜 단골손님들 중에는 800원부터 시작한 칼국수값이 지금 3500원으로 올랐다는 것에 대해 누구 하나 토를 다는 이가 없다. 오히려 칼국수 한 그릇에 국수보다 더 많이 들어가는 듯한 갖은 해물들을 대하다 보면, 이것을 정말로 3500원만 받아도 장사가 될까 하는 걱정을 앞세울 뿐이다. ■사랑의 칼국수 ‘찬양집’ 찬양집에 가면 1990년대 초에 내가 어느 일간지 칼럼에 썼던 이 집에 대한 기사가 그대로 스크랩되어 벽에 걸려있다. 이제 노랗게 빛이 바래 글씨조차 제대로 알아보기 힘든 기사를 힐끔거리다 보면, 비틀거리던 40대 언저리의 내가 그대로 되살아오는 기분이기도 하다. ‘종로3가에서 낙원상가로 빠지는 한옥 뒷골목에 내가 잘 가는 칼국수집이 있다. 좁은 공간을 최대한 살리느라고 벽을 빙 둘러가며 송판을 붙여 탁자를 대신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행인들이 지나다니는 골목길에까지 탁자를 마련하였다. 내가 이 칼국수집을 다니기 시작한 지도 5년 남짓 되었다. 주로 몇 십년을 다니는 이 집의 단골들의 경력에 비하면 나는 어쩌면 단골이랄 수도 없을지 모른다. 내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병적인 감정 중의 하나로, 이따금씩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싫어서 못 견디는 순간이 있다. 한편으로는 어디 발길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에라도 정을 쏟고 싶은 마음 여린 순간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이 칼국수집을 찾는다. 그리하여 칼국수가 마련되는 동안 주인아주머니가 밀가루반죽을 밀어 칼국수를 만드는 것을 구경하다가 마침내 칼국수를 먹는다. 그렇게 칼국수를 먹으면서 이따금씩 한두 방울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나는 언제 그렇듯 못견뎌 했냐 싶게 기분이 좋아져 있다. 스스로는 역시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고까지 생각한다. 물론 칼국수 만들기에 바쁜 주인아주머니는 손님에게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터럭만큼도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나 혼자서 칼국수 한 그릇에 그렇듯 감동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집이 지니고 있는 선의(善意)이다. 자, 우선 칼국수 한 그릇에 들어가는 재료 좀 보아라. 화학 조미료는 일체 사용하지 않은 채 멸치를 끓여 우려낸 국물에는 커다란 대합 한 마리에, 맛살조개에, 미더덕에, 미역에, 호박에, 감자에, 깻잎에, 김가루에… 이런 건더기들이 오히려 수제비보다 많을 지경이다. 그리고 2000원만 내면 양은 먹을 수 있는 한두 그릇도 좋고 세 그릇도 좋다. 독실한 신앙인인 주인아주머니는 살아가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죽을까 하던 어느 날 기도 중에 예수님이 나타나 바로 칼국수집을 해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라고 일렀다는 것이다. 나 같은 무신론자 비슷한 사람에게도 이런 경우 예수는 참 재미있는 분이다.’
  • 이번 정월대보름엔 간월도로

    이번 정월대보름엔 간월도로

    섬사이로 달이 뜬다는 간월도의 간월암은 예로부터 ‘기도발’이 센 사찰로 유명한 곳. 이 곳에서 대보름달을 향해 두손을 모으면 소원이 이뤄질 것만 같다.23일에는 이색적인 대보름 축제인 굴부르기 축제도 열린다. 봄방학을 이용해 가족과 함께 더 크고 밝은 달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떠나자. 소원이 더 빨리 이뤄지도록. ●소원도 빌고, 경치도 감상하고 상상해 보라. 바다와 접해 있는 임해사찰 간월암에서 달빛에 물든 서해바다를 바라보는 감동을…. 생각만 해도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흐르지 않는가. 특히 이 곳은 조선시대 고승인 무학대사가 ‘달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화가 있어 대보름 달맞이 여행에 제격이다. 대보름을 앞두고 찾은 간월암은 역시 달을 보기엔 최고의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서산 방조제 공사와 매립으로 육지가 가까워지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곳. 물이 빠져 생긴 50m 남짓한 자갈길을 걸어 간월암에 들어서자 탁 트인 서해바다가 시원하게 가슴을 파고 들었다. 암자가 있는데는 100평 남짓한 사찰 하나가 겨우 들어앉을 만한 크기의 새끼섬. 밀물과 썰물에 따라 섬이 됐다가 육지가 된다. 사전에 물때를 알아보는 것은 필수. 법당에는 무학대사 등 이곳에서 수도한 우리나라 고승들의 인물화가 걸려 있고,200년 된 팽나무 등이 암자의 운치를 더해준다. 해가지고 구름 사이로 둥근달이 환하게 내려 비취자 사람들은 저마다 한가지씩 마음에 품은 소원들을 풀어냈다. 서울에서 친구들과 놀러 온 김숙자(52)씨는 “군대에 간 아들이 건강하게 군복무를 마치는 것”이라며 둥근달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였다. 박영희(52)씨는 “올해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되게 해달라고 빌었다.”며 활짝 웃었다. ●“석화야! 달빛따라 모여라!” 이색적인 대보름 행사도 볼 만하다. 이 곳에서는 매년 대보름 용왕에게 굴 풍년을 기원하는 ‘굴부르기 군왕제’라는 해양 민속행사가 열린다. 어리굴젓 기념탐 앞에서 진행된다. “황해바다 석화야! 석화야! 물결타고 간월도로 모여라 황해바다 석화야!굴밥 먹으러 달빛 따라 모여라 석화야!” 올해는 바닷물이 만조할 때인 오후 2시에 제가 시작된다. 제는 마을 부녀자들이 굴부르기 군왕제 깃발을 따라 소복을 입은 여인이 대바구니를 머리에 인 채 풍물에 맞춰 춤을 추며 기념탑에 마련된 고사장으로 향한다. 다른 마을 풍어제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여자들이 주최가 된다. ●매콤·짜릿한 별미 어리굴젓 넓은 개펄에서 생산되는 굴은 맛과 향에서 단연 으뜸이다. 이곳의 굴은 검은 색깔을 띠고 있고, 몸에 터럭(미세한 털)이 많아 특유의 맛을 낸다. 제조과정 또한 재래식 방법을 고집한다. 생굴을 소금에 삭힌 후 고춧가루를 버무리면 짭짤하고 톡 쏘는 뒷맛이 일품인 어리굴젓이 된다.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어촌계에서 만든 무학표 어리굴젓이 유명하다. 맛과 향이 뛰어나 다른 반찬 없이도 밥 한그릇을 쉽게 비울 수 있다. 간월암 주차장 입구에 있는 원조 항구할머니집(011-9807-9858)은 직접 담근 어리굴젓 등 각종 젓갈류를 판매한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직접 맛을 보며 판매를 권유하는 주인 이해성씨는 “굴 특유의 맛과 향이 살아나도록 천일염과 고춧가루로만 간을 내고 항아리에 숙성을 시켜야 제맛이 난다.”고 자랑했다. 굴밥도 유명하다. 포구로 가는 길에는 굴밥집들이 즐비하다. 이 가운데 맛동산(041-669-1910)은 주말에 1000여명이 찾을 정도로 유명하다. 대추와 호두를 넣어 굴을 조리해 굴 특유의 비린 맛이 나지 않는다. 함께 나오는 청국장은 구수한 전통의 맛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다. ●가는길 간척사업으로 방조제가 생겨 서해안고속도로 홍성인터체인지(IC)에서 나와 서산 A방조제를 지나면 10분도 안 돼 도착한다. 볼거리도 많다. 간월도는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인 천수만에 위치하고 있어 철새들의 장관도 볼 수 있다. 서산시청 (041)660-2224, 부석면사무소 (041)664-8684. ■ 여기서도 달맞이 어때요 전국에서 정월 대보름 잔치가 열린다. 달맞이 행사를 비롯해 쥐불놀이, 소지 기원제, 제기차기, 윷놀이 등 각 자치단체 특색에 맞는 다채로운 행사가 벌어진다. ●문경 소지 기원제 과거길 선비들이 넘나들던 전통의 고장 경북 문경에서는 새해 소망을 적어 새끼줄에 매다는 ‘소지’(燒紙) 기원제’가 한창이다. 문경새재 도립공원의 제1관문인 주흘관 앞 광장 앞에 위치한 장승공원에는 하루 2000여명이 찾아와 한지에 소망을 적은 뒤 장승 사이에 새끼를 꼬아 만든 소지줄에 매달고 있다. 문경시는 정월 대보름인 23일 오후 2시 장승공원에서 소원을 빈 사람들의 모든 소망들이 이뤄지게 해달라는 뜻으로 제사를 지낸 뒤 매달려 있는 소지를 모두 불에 태우는 소지 기원제를 올릴 예정이다. 문경시청 (054)550-6393. ●강릉 망월제 영동지역의 독특한 민속문화를 축제화한 망월제에서는 대보름 축제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다.23일 남대천 단오공원에서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펼쳐지는 행사에서는 윷놀이와 대보름 떡메치기, 두렁쇠 풍물단 공연, 연날리기, 망우리 만들어 돌리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강릉시청(033)640-5114. ●제주 들불제 제주고유의 세시풍속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현한 대보름 들불축제가 17∼19일 북제주군 애월읍 봉성리 서부관광도로변 새별오름의 10만평 초원에 불을 놓는 들불축제가 열린다. 불과 말, 달, 오름을 소재로 펼쳐지는 축제에서는 오름 생태체험을 비롯해 새해 소원기원 돌탑쌓기, 소원기원 및 기원띠 달기, 집줄놓기, 불깡통 돌리기, 강강술래 등이 열린다. 부대행사로는 올해의 운세코너와 가훈써주기 등도 함께 진행된다. 북제주군청 (064)741-0544. ●월출산 달집을 태우며 한해의 액운을 털고 소원을 비는 행사가 달맞이 명소인 전남 영암군 월출산에서 열린다. 수석 전시장을 연상케 할 정도의 바위능선 위로 은은히 빛나는 보름달의 모습이 일품인 곳이다. 오후 7시 월출산의 달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도갑사와 왕인박사유적지, 도기문화센터 등에서 정악, 민속음악, 농악, 전통무용 등 계절별 특색에 맞는 공연을 선보인다. 영암군청 (061)470-2242. ●달맞이고개 부산 해운대에서 송정으로 넘어가는 달맞이 고개는 달맞이 명소. 고개 정상에 있는 해월정에 오르면 시원한 해운대 앞바다의 모습이 절경이다. 달빛과 어우러진 잔잔한 바다의 경관이 황홀하다. 특히 이 곳은 사냥꾼 총각과 나물캐는 처녀가 사랑을 불태우다가 정월보름달에 기원해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전설이 있어 젊은 연인들이 소원을 비는 명소다. 고개 입구에서부터 해월정 부근까지 달맞이 하기에 좋은 카페들이 즐비하다.22일과 23일 해운대 해수욕장에서는 달집태우기와 연날리기 등 민속공연이 열린다. 해운대구청 (051)749-4061. 간월도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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