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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니퍼 로페즈, 새해 공연 ‘파격 의상’ 화제

    제니퍼 로페즈, 새해 공연 ‘파격 의상’ 화제

    제니퍼 로페즈는 남성들의 ‘지니’? 지난해 마지막 밤 ‘새해맞이 행사’에 참석한 팝스타 제니퍼 로페즈가 팬들에게 깜짝 놀랄만한 눈요기를 선물했다.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서 로페즈는 몸에 착 붙는 ‘캣 수트’(Cat suit)를 입고 등장했다. 로페즈의 매력적인 피부색과 비슷한 색상의 이 옷은 ‘할리우드 최고의 엉덩이’를 유독 돋보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 무대 조명에 따라 빛을 발하는 비즈는 그녀를 더욱 화려한 ‘캣 우먼’으로 변신시켰다. 스킨스쿠버 복장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캣 수트와 로페즈의 열정적인 무대는 현장에 모인 75만 명의 사람들을 열광하게 했다. 이날 행사의 진행을 맡은 MC도 카메라가 도는 것을 깜빡 잊은 채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로페즈의 의상 때문에 올해 소원이 벌써 이루어 진 것 같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파격적인 의상과 파워풀한 무대 덕분에 제니퍼 로페즈는 야후의 새해 첫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는 ‘행운’도 거머쥐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서울신문 보도-그후] 쪽방촌 민성이에게 희망이 도착했어요

    “산타 할아버지는 착한 어린이 소원은 반드시 들어주신다고 할머니가 그러셨거든요….” 세 살 때 부모님과 헤어져 할머니와 살면서 크리스마스 때마다 집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일곱 살 민성이의 안타까운 사연이 본보를 통해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민성이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고 싶다.”는 연락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 불황으로 여느 해보다도 팍팍한 한 해였지만, 세밑을 맞아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기꺼이 작은 나눔을 실천하려는 손길이 겨울 추위를 무색케 하고 있다. ●독자·구청 “돕고싶다” 연락 줄이어 충남에 사는 권혁진씨는 이메일을 통해 “쪽방촌에 살면서 크리스마스에 작은 기적을 꿈꾸는 민성이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읽게 됐습니다. 저도 생활이 여유롭지 않아 큰 것은 보낼 수 없지만 민성이를 위해 작은 과자세트라도 보내고 싶습니다.”라며 주소를 문의해 왔다. 서울에 거주하는 박필석씨도 전화로 “이번 겨울은 유독 춥고 눈도 많이 오는데 방바닥에 불도 제대로 안 들어오는 쪽방촌에서 고생하는 민성이가 너무 안쓰럽다. 크리스마스 소원으로 4년 전 헤어진 아빠를 기다린다는 안타까운 얘기에 눈물이 났다.”며 “올겨울 민성이의 소원이 반드시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쪽방촌을 관할하는 영등포구청도 민성이를 적극 돕겠다고 팔을 걷었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담당 직원들을 통해 민성이네를 비롯해 비슷한 사정의 쪽방촌 사람들의 어려운 사정을 파악한 뒤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을 하면 도움이 될지 적절한 방안을 강구해 보겠다.”고 밝혔다. ●민성이 “이대호형처럼 될래요” 서울 하늘에 눈이 펑펑 쏟아지던 28일 오후에도 민성이는 쪽방촌 근처 놀이터를 맴돌았다. “롯데의 이대호 선수를 좋아해 야구선수가 되는 게 꿈”이라는 민성이는 쌓인 눈을 뭉쳐 던지며 야구놀이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민성이의 할머니 홍정희(63)씨는 “어린 마음에 제 부모가 이혼한 것인지, 엄마가 살아 있는지 아무것도 모를 텐데…. 그저 구김살 없이 잘 자라줘서 고맙다.”며 “연말이나 명절 때 사고 싶은 것도 많고, 놀러 가고 싶은 곳도 많은데 형편이 어렵다 보니 못해 줘서 마음이 불편했다. 도와주겠다는 분들이 연락을 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홍 할머니는 “애를 버리고 나간 것 때문에 아직도 맘 속으로 아들을 용서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민성이를 위해 꼭 돌아와 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민성이를 돕고 싶다는 독자 여러분들의 요청으로 계좌번호를 알려드립니다. 계좌번호:010108-02-368431(우체국), 예금주:홍정희
  • 크리스마스 트리에 알레르기 있는 英여성

    흰 눈이 내리고, 저마다 집 안 한 구석에 조명이 반짝반짝한 트리를 들여놓은 채 낭만적인 밤을 보내는 크리스마스에, 희귀한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 런던에 사는 리사 스미스(26)는 어렸을 때부터 연말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미스터리 알레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재채기와 기침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지는데다, 계속 콧물과 눈물이 흐르고 엄청난 두통이 찾아왔다. 매년 크리스마스날에는 트리 아래에 놓인 선물을 열어보기도 전에 재채기에 시달려야 했고, 심지어 이런 증상 때문에 낭만적인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을 보낸 적도 없다. 스미스가 26년 만에 찾아낸 이 증상의 원인은 다름 아닌 크리스마스트리 즉 구상나무였다. 소나무과의 구상나무는 수액이 많고 향기가 강하다. 여기에 먼지로 뒤덮인 장식물까지 더해져 호흡기에 알레르기를 일으킨 것. 그녀는 “어렸을 적 크리스마스 용품을 파는 가게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이런 증상을 보인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저 겨울감기로만 생각했다.”며 “기침과 콧물, 재채기 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항알레르기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스미스는 예년보다 훨씬 ‘차분하고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맞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은 “미국에서는 7명 중 한명이 리사 스미스처럼 크리스마스트리 때문에 호흡기 질환을 앓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간절곶 ‘소망우체통’ 갈수록 인기

    간절곶 ‘소망우체통’ 갈수록 인기

    #“아버님, 사랑합니다! 돌아가실 때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해 너무 후회스러웠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이 뭐 어렵다고…. 이렇게 편지로 대신해서 너무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랑해요.”(울산 동구에 사는 43세 김은선씨가 지난여름 세상을 떠난 아버지께 보내는 그리움의 편지) #“어머니! 창춘은 많이 춥죠. 힘들더라도 제가 돌아갈 때까지 조금만 참으세요. 어머니와 함께 살 날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돈 벌고 있어요.”(중국 지린성 창춘시 출신으로 경주 외동공단에서 근무하는 23세 외국인 근로자 리우빙) #“고3 우리 막내아들, 마무리 잘하자. 3년 내내 책과 씨름한 우리 아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를 기원합니다.”(경남 밀양에 사는 48세 주부 최선미씨가 대입을 앞둔 아들의 합격을 기원하는 엽서) 경인년 새해를 10여일 앞둔 17일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울산 울주군 간절곶에 설치된 세계 최대의 ‘소망우체통’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모곡’, 아들의 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엽서, 고국의 부모를 걱정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애절한 사연, 희망찬 새해를 기원하는 메시지 등으로 넘쳐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세계적인 경기불황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불황의 2009년’을 보내고 ‘희망의 2010년’ 새해를 맞으려는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해돋이 명소 간절곶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보내는 편지와 엽서에는 저마다 가슴속에 간직해온 꿈과 절절한 소망들이 가득하다. 소망우체통은 2006년 12월22일 간절곶 해맞이 행사를 앞두고 세계에서 가장 큰 높이 5m, 무게 7t으로 만들어졌다. 해마다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올 들어 지난달 현재 15만여장의 엽서와 편지가 접수됐다. 이 가운데 80%는 희망과 소원, 애틋한 사연을 담은 수취인이 없는 메시지다. 나머지 20%가량은 받을 사람이 있어 배달된다. 시민과 관광객들은 우체통 내부에 준비된 소망엽서에 가족이나 연인, 친구, 친척 등에게 소식을 담아 전할 수 있다. 시와 남울산우체국은 내년 경인년 해맞이 행사에 참석하는 이들을 위해 당일 3만장의 엽서를 현장에서 나눠줄 예정이다. 김대우 남울산우체국 소포실장은 “전국 각지의 관광객들이 이용하고 있다.”면서 “소망우체통을 이용하는 모든 분들의 희망과 소원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간절곶 소망우체통이 전국적인 관광 명소로 자리를 잡으면서 최근 대전시, 충북도, 충남도, 부산 서구청, 경북 영덕군, 제주해운항만청 등 전국 지자체와 관공서의 벤치마킹도 이어지고 있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무슨 영화 볼까]

    ■ 웰컴(드라마/15세 관람가) 감독 필립 리오레 줄거리 17살 쿠르드인 청년 비랄(피랫 아르베르디)은 그의 연인이 영국으로 떠나자 그녀를 만나기 위해 영국행을 결심하지만 밀항 도중 체포돼 추방된다. 수영으로 도버해협을 건너기로 결심한 그는 수영강사 시몬(뱅상 랭동)을 만난다. 불법체류자들을 돕는 자원봉사를 하는 시몬의 아내는 시몬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집을 떠난 상태. 시몬은 아내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비랄을 돕는다. 하지만 시몬은 사랑을 위해 목숨걸고 도전하는 비랄을 보면서 진심으로 그의 소원이 이뤄지길 바란다. 감상 잔잔한 감동 ■ 마이 마이 신코 이야기(애니메이션/전체 관람가) 감독 가타부치 스나오 줄거리 풍요로운 자연으로 둘러 싸인 조그만 마을의 말괄량이 소녀 신코. 상상 하기를 좋아하는 신코의 머리 속엔 천년 전의 마을과 그곳에 사는 공주가 늘 함께 한다. 그녀에게 기이코라는 전학생 친구가 생겼다. 둘은 산과 냇가와 바람과 나무 등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 속을 뛰어다니며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돼 간다. 이들은 함께 강가 댐도 만들고 빨갛고 예쁜 금붕어도 키우며 즐겁고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간다. 감상 엄마랑 아빠랑 손잡고 ■ 엘라의 계곡(드라마/15세 관람가) 감독 폴 해기스 줄거리 아들이 명예로운 군인이 되길 바랐던 퇴역 군인 행크 디어필드(토미 리 존스)는 아들이 외출 뒤 부대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한다. 헌병 수사관 출신 행크는 탈영 처리될 위기에 처한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러 직접 군부대로 향하고 단순 마약 사건으로 실종 처리하려는 군수사대와 마찰을 빚는다. 아들 죽음의 실체를 알게 된 행크는 그 동안 조국에 충성했던 자신의 가치관에 혼란을 겪게 되고 오랫동안 간직해온 신념과 갈등한다. 감상 긴박감은 없지만 소소한 교훈
  • [엄마와 읽는 동화] 난쟁이나무가 되어도 괜찮아/유효진

    [엄마와 읽는 동화] 난쟁이나무가 되어도 괜찮아/유효진

    미루나무의 꿈은 키 큰, 아주 큰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변한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요. 소원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머리 꼭대기 저기 먼 곳에 하늘을 코옥, 찔러 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미루나무는 생각합니다. ‘가지 끝으로 파란 하늘을 톡 건들면 아주 신기한 일이 일어날 거야.’ 미루나무는 또 생각합니다. ‘분명히 파란 물이 조르르 새어 나와 내 몸을 파랗게 물들일 거야.’ 파란색을 좋아하는 미루나무는 자기 가지 끝에 나온 연둣빛 이파리도 하늘처럼 파란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미루나무는 마을 사람들 중에 우로를 제일 좋아합니다. 우로의 커다란 눈도,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은 꾹 다문 입도, 고개를 푹 수그리고 걷는 모습도 다 좋아합니다. 숱이 많은 새까만 눈썹도 좋아합니다. 꼬마 녀석들은 미루나무의 다리를 가끔은 걷어차고 연필로 낙서를 하는데, 우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요. 우로가 여섯 살 되던 해였습니다. 그때는 미루나무도 작은 나무였어요. 우로는 구겨진 도화지를 들고 나와 미루나무를 보고 말했습니다. “너를 그리겠어.” 미루나무는 그때 우로가 잔뜩 화가 나 있는 줄 알았어요. 얼굴에 웃음기도 없는 아이가 빤히 쳐다보다가, 그것도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너를 그리겠어!” 단호하게 말하고는 그림만 그렸거든요. 미루나무는 우로가 어떻게 자기를 그릴지 궁금해서 졸지도 않았습니다. 우로가 조는 모습을 그려 놓으면 어떡해요. 미루나무는 바람이 미루나무 가지를 마구 흔들거나 나뭇잎을 팔랑팔랑, 흔들면 눈을 크게 뜨고 속삭였어요. “고양이처럼 지나 가. 살금살금. 제발 살금살금.” 우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림만 그렸어요. “어? 내가 저렇게 생겼단 말이지!” 정말로 우로는 미루나무를 그렸습니다. 그런데 우로가 그린 미루나무는 키가 큰 새파란 색 나무였어요. 미루나무는 그때부터 꿈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소원이 생기고 말았어요. 키가 큰 새파란 색 미루나무가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은 우로가 열 살이 된 지금까지 변한 적이 없습니다. 우로가 옵니다. 미루나무 곁으로 자박자박 걸어옵니다. ‘또 나를 쳐다만 보다가 돌아갈 건가?’ 미루나무는 제발 한 마디라도 좋으니 우로가 말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안녕, 미루나무’ 라든가 그것도 하기 싫으면 ‘안녕’ 소리만 해줘도 무척 반가울 것 같아요. 그런데 도무지 말을 안 해요. 입술을 꾹 다물고는 쳐다만 봐요. “우로, 안녕. 잘 잤니?” 우로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미루나무가 인사를 하든가 말든가 우로는 관심도 없는 표정이에요. 아, 물론 알아들을 수도 없겠지만요. 미루나무가 우로 목소리를 들은 건 여섯 살 그 해, “너를 그리겠어.” 가 처음 들은 목소리이자 마지막입니다. 미루나무는 우로를 보고 반가웠으나 곧 시무룩해집니다. ‘저 애는 말을 하지 않으니 속을 모르겠어. 날마다 나를 쳐다만 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꿈이 무엇인지, 소원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난 저 애의 고민이 무엇인지도 몰라. 아아!’ 우로는 미루나무를 쳐다만 봅니다. 하염없이 쳐다만 봐요. 미루나무도 뚫어져라 우로만 쳐다봅니다. 미루나무 가지에 앉았던 작은 새가 중얼거립니다. “저 꼬마 목 아프겠다. 저 꼬마가 너와 친구가 하고 싶은 게야.” 미루나무는 작은 새 말이 제발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맞을 거라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아요. ‘치. 난 친구하고 싶은데 왜 쳐다만 보는 거야. 왜 말을 안 하는 거야.’ 그러다가 미루나무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말을 못하게 되었을까? 목소리를 잃어버렸을까?’ 미루나무는 시무룩해지다 못해 슬픈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미루나무가 기억하는 한 우로의 목소리는 매우 똘똘한 목소리였어요. 그런데 그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건 우르르,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큼 엄청난 일입니다. ‘아휴, 감기에 걸려서 기침소리라도 해 보지. 아니 감기는 우로를 괴롭힐 테니……. 그래, 재채기라도 해 보지.’ 하지만 우로는 미루나무 앞에서 기침도 재채기도 하질 않아요. 어젯밤에 미루나무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땅 속에서, 땅 위에서 온갖 것들이 잎눈을 틔우느라, 싹을 틔우느라 속닥속닥, 톡톡톡, 틱틱 얼마나 소리를 내는지 잠을 잘 수 없었어요. 미루나무는 쿨쿨 낮잠이 들었다가 축축한 느낌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어, 뭐지?” 미루나무는 부스스 눈을 뜨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흐흑. 흑흑…….” 우로가 자기 둥치를 부둥켜안고 훌쩍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아아! 미루나무는 우로의 목소리를 여섯 살 이후 처음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지? 왜지?’ 미루나무는 영문을 몰라 속이 탔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내 부러진 가지가 떨어지면서 우로 눈을 찔렀을까? 저기 꼭대기에 있던 새 둥지가 우로 머리를 때리고 떨어졌을까?’ 미루나무는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해 얼굴 노란 새가 지어놓고 간 빈 둥지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미루나무는 숨도 크게 쉬지 않고 우로만 빤히 내려다보았습니다. 우로가 너무 슬픈 표정으로 울고 있었기 때문에 숨을 크게 쉴 수가 없었어요. “난 네가 키 크는 게 싫어. 네 키가 크는 게 제일 싫어. 내가 부지런히 자라도 네 키를 따라가지는 못해. 내가 크면 너도 커서 할머니가 그려 놓은 빗금이 자꾸만 올라가잖아. 이젠 빗금이 내 눈에 보이지도 않아. 내 맘도 모르고 너는 날마다 키만 커. 그러니까 내 엄마가 되어 줄 아줌마는 나타나지 않을 거야.” 대체 몇 년 만에 다시 듣는 목소리인지요. ‘깜짝이야! 목소리를 잃어버린 게 아니었어. 그런 게 아니었어.’ 미루나무는 좋아서 하하 웃으려다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미루나무는 우로가 금방 했던 말을 똑같이 중얼거리다간 곰곰 생각했습니다. ‘빗금?’ ‘빗금?’ ‘아! 아아! 저기 아래 그려진 내 빗금!’ 미루나무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우로가 자신의 둥치에 그어진 빗금만큼 키가 크면, 마음씨 고운 아줌마가 나타나 새엄마가 되어 줄 거라는 것을요. 누가 그려놨을까 궁금했는데 우로 할머니가 그린 빗금이었습니다. 미루나무는 가만가만 골똘히 옛일을 더듬었습니다. “우로야, 우로가 이만큼 키가 크면 꼭 예쁜 아줌마가 나타날 거야. 그래서 다른 엄마들처럼 우리 우로한테 맛있는 음식도 해 주고, 옷도 깨끗이 빨아서 입혀 주고, 그리고 다른 엄마들처럼 학교도 따라가 줄 거란다. 그러니까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씩씩하게 기다려야지.” 미루나무는 자신의 머리를 마구 쥐어박고 싶었습니다. ‘아, 맞아 그랬어. 그때 할머니가 그랬어. 우로가 파란색 크레파스로 나를 그리기 바로 전 날이었잖아. 난 그때 작은 새가 내 이파리에 똥을 싸고 지나가는 바람에 작은 새 꽁지를 쳐다보고 있었어. 그러느라 그 순간 할머니가 내 몸에 빗금을 그었는데도 몰랐던 거야. 그렇지만 분명 그렇게 말한 기억은 나. 왜 이제야 생각이 난 거지? 어쩌면 나는 그것을 이렇게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지? 바보, 바보.’ 미루나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늘어뜨리고 걸어가는 우로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마구 퍼붓는 소낙비에도 지워지지 않는다고 빗금을 나는 참 싫어만 했는데…….’ 미루나무는 우로한테 너무, 너무나 미안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미루나무는 이제 그만 자라고 싶어졌습니다. 아니 앉은뱅이 나무가 되어도 좋으니 키 작은 나무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미루나무는 간혹, 아니 자주 키 작은 나무가 되는 꿈을 꿉니다. “봐라. 내 머리가 빗금 위로 올라갔어. 이제 새엄마가 오시겠지?” “우리 새엄마가 학교에 오셨어. 친구들이 예쁜 엄마를 보고 부러워했지. 난 기분이 좋았어.” “새엄마가 해 주는 밥은 너무 맛있어. 너도 우리 새 엄마가 시장에 가는 거 보았니?” 우로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뜨면 자기 키는 그대로인 채, 우로가 타박타박 걸어오는 길만 눈앞에 보입니다. 우로도 보이지 않는 좁다란 빈 길만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요. 미루나무 가지마다 돋았던 새 잎이 이제 제법 큰 잎이 되었습니다. 포르르, 작은 새 한 마리가 미루나무 가지를 떠났습니다. 미루나무는 금방 떠난 새를 바라봅니다. 작은 새의 모습이 푸른 하늘에서 사라지자 미루나무가 휴우, 한숨을 쉽니다. 그러곤 뭉게구름 몇 점 지나가는 하늘을 향해 중얼거렸어요. “나는 이제 코옥, 하늘을 찔러보고 싶지 않아. 내 꿈은 이제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는 거야. 키 큰 파란색 나무가 안 돼도 괜찮아. 난쟁이나무가 되어도 괜찮아.” ●작가의 말 새엄마 새아빠라는 말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사회 속에서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따라서 이제 콩쥐 팥쥐, 장화홍련 속에서 등장하는 나쁜 새 부모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 가고 있고, 달라져야 한다. 달라져야 하는 것만큼은 순전 어른들의 몫이다. 그 몫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리고 한결같이 난쟁이 나무가 되어도 괜찮은 미루나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루나무가 많은 세상은 등불이 없어도 밝을 것이다. ●약력 경기도 남양주에서 나고 자랐다. 계몽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고 단편동화 ‘고물자전거’는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 읽기에 수록되어 있다. 저서:뜸부기 형, 쇠똥구리 까만 운동화, 키가 작아도 괜찮아, 나는 문제없는 문제아 등 다수
  • 지드래곤, 악동 ‘지니’로 파격 변신

    지드래곤, 악동 ‘지니’로 파격 변신

    빅뱅의 지드래곤이 패션지 ‘보그’ 화보를 통해 소원을 이뤄주는 지니로 파격 변신했다. 보그 코리아 측은 “동화 속 지니가 부르면 나타나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는 지니였다면, 지드래곤이 21세기 버전으로 재해석한 지니는 반항적이고 시크한 이미지”라고 설명했다. 이번 화보에서 지드래곤은 터번을 대신해 펑키한 헤어에 깃털로 장식해 색다른 느낌을 연출했고 레이어드, 믹스매치 등 락적인 요소를 가미한 패션 스타일링을 선보였다. 지드래곤의 화보 촬영 모습과 인터뷰가 담긴 동영상은 오는 25일부터 보그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보그 코리아’ 12월호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언더그라운드 싱어송라이터 모임 ‘트리 하우스’ 운영 김마스타

    언더그라운드 싱어송라이터 모임 ‘트리 하우스’ 운영 김마스타

    타마 앤 배가본드를 이끄는 타마(본명 장기영)가 말레이시아에서 평소 인연이 있었던 피트 테오의 공연을 봤다 .말레이시아 포크 음악의 아이콘이자 배우인 피트 테오를 비롯한 싱어송라이터 4명이 시내 중심가 카페와 와인바 등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보통 합동 공연과 차이가 있었다. 뮤지션들이 순서에 맞춰 무대에 올라가 자기 노래만 부르고 내려오는 게 아니었다. 4명이 함께 공연하며 한 뮤지션이 노래를 부를 때 다른 뮤지션들은 코러스나 하모니카, 기타 등으로 반주를 넣었고, 서로 노래를 바꿔 부르기도 했다. 깊은 인상을 받은 타마는 한국에 돌아와 뉴욕물고기(본명 김종윤), 김마스타(본명 김성민)와 마주 앉아 술 한잔을 곁들이며 의기투합했다. “우리도 한 번 피트 테오 같은 공연을 해볼까?” 트리 하우스 공연은 지난해 12월 이렇게 시작했다. 첫 무대에 150여명의 관객이 몰릴 정도로 호응이 좋았고, 이제 매월 정기적으로 4명씩 무대에 올라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세 명이 의견을 나누기 위해 열었던 인터넷 카페에 지금은 내로라하는 숨은 고수 50여명이 함께하고 있다. 오는 28일 홍대 앞 클럽 오뙤르에서는 김마스타, 하이미스터메모리, 옥상달빛, 무중력소년 등이 나서는 열한 번째 공연이 열린다. 회원들이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어 아직까지 모두 모일 기회가 없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1주년을 앞두고 첫 정모(정기 모임)를 갖는 터라 더욱 의미가 있다. ●28일 홍대 앞 클럽 오뙤르서 열한번째 공연 국내 언더그라운드 싱어송라이터 모임인 트리 하우스의 운영을 맡고 있는 네오 포크 뮤지션 김마스타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에게 가장 힘든 점은 대중적인 인지도가 없다는 점이죠. 음악을 알리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요. 실력 면에서는 쉽게 소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인지도가 없어서 못 하는 경우가 많지요. 트리 하우스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만든 모임”이라고 설명했다. 각자 인지도가 낮고 홍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좋은 음악을 선물하는 음악 상가(商街)를 차려 시너지를 얻자는 취지다. 트리 하우스는 힙합 신으로 치면 ‘크루’에 해당할 듯. 김마스타는 “전례가 없던 일이라 처음에는 오래 못 간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1년을 꾸준히 하니 어느 정도 신뢰감도 생기고 같이 움직일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되고 있죠.”라고 뿌듯해했다. 현재 언더와 언더를 잇고 소통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 앞으로는 언더와 오버를 잇는 모임으로 꾸려갈 생각이라고 한다.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위해서, 뮤지션들이 40~50세가 넘은 뒤에도 오랫동안 음악을 하기 위해서 서로 교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마스타는 “12월25~26일 1주년 공연을 대대적으로 열 계획인데 (이)한철이 형이나 하림 형을 초대해 무대를 꾸리려고 해요.”라면서 “내년부터는 국내 싱어송라이터들이 직접 힘을 모아 선배들이 후배를 끌어주고 후배들이 선배를 밀어주는 교류 페스티벌을 열고 싶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사라 맥라클란이 꾸리는 ‘릴리스 페어’처럼 전반적인 사회 이슈를 공유할 수 있는 자리로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김마스타는 트리 하우스가 단순히 인지도만 높이려는 목적은 아니라고 했다. 서로 경쟁하고 자극을 받는 모임이라 뮤지션들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 또 음악 팬들은 트리 하우스 공연을 통해 뮤지션들의 진검 승부를 맛볼 수 있다고 자부했다. “자기 노래를 연주하며 부를 수 있는 뮤지션이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어요. 포크 뮤지션이 대부분이지만, 장르를 가리지는 않죠. 실력이 없으면 설 수 없는 무대라 음악팬들은 120%의 공감으로 진짜 가수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40~50세 넘어도 오랫동안 음악하기 위해 교류 이쯤 되니 외모부터 범상치 않은 김마스타의 음악 세계가 궁금해진다. 그는 독집 앨범만 4장을 발표한 언더그라운드 신의 베테랑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88년 엘가의 음악을 듣고 부모님에게 첼로를 사달라고 졸랐다가 기타를 선물받고는 소리가 다르다며 칭얼댔다는 김마스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대구에 있는 음악 카페 무대에 올라 연주를 시작했다. 2001년 대학 졸업 뒤 함께 음악을 하던 친구들이 대거 서울로 올라와 덩달아 상경했다. 그는 이 시기를 그동안 수집했던 기타 17대를 팔아가며 연명했던 어려운 시절이라고 돌이켰다. 2002년 포크듀오 선글라스 1집으로 정식 데뷔했고, 2004년부터 독집을 내기 시작했다. 최근 소니뮤직에서 나온 ‘르네상스’ 앨범은 개인 통산 4집. 낭만을 기타에 담는 허스키하고 나지막한 목소리의 김마스타는 10대에 포크를, 20대에 블루스를 연주했다고 한다. 30대에 들어서는 포크와 블루스를 섞은 음악을 하고 있다고. “리듬은 힙합이고, 기타는 블루스고, 보컬은 포크 같은 음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어요.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시끄러운 것은 빼고 제가 좋하는 장르를 끌어와 쓰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잠이 안 오는 포크라고 할까요? 하하하.” ●칼럼니스트로… 라디오 3개 고정 출연하며… 입담 과시 시간이 남아 돌아 트리 하우스의 살림을 맡게 됐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사실 무척 바쁘게 지낸다. 칼럼니스트로 언론 매체에 글을 연재하기도 하고, 라디오 프로그램 3개에 고정 출연하며 입담을 과시하고 있다. 두부세모라는 인터넷 대담 방송을 꾸려 주목받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언더그라운드에서 할 수 있는 부업은 모두 하고 있다며 웃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봄여름가을겨울의 2장짜리 라이브 앨범을 듣고 “사람이 하는 일 가운데 정말 괜찮은 것이 음악”이라고 느껴 뮤지션의 길을 결심했다는 그는 10여년 뒤 20집 정도 나왔을 때는 ‘김마스타 시어터’의 주인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음악가가 되는 꿈을 이뤘기 때문에 제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더 그럴싸한 음악가가 되고 싶은 게 지금 소원이죠. 하하하.”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원걸’ 유빈 “‘애프터스쿨’ 유이가 부러웠다”

    ‘원걸’ 유빈 “‘애프터스쿨’ 유이가 부러웠다”

    ‘월드스타’를 향한 첫 발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딛은 원더걸스가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눈물겨운 미국 진출기를 털어놓았다. 국내에서도 열풍을 일으킨 원더걸스의 ‘노바디’는 한국가수사상 최초, 아시아 가수 중에서는 약 30년 만에 ‘빌보드 핫100’에 진입해 화제를 모았다. 박진영과 함께 출연한 원더걸스는 조나스 브라더스와의 합동공연 에피소드를 비롯해 미국 진출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고백했다. 원더걸스와 박진영은 “미국 투어 내내 간이침대가 달린 버스에서 생활해야 했다.”면서 “흔들리지 않는 침대에서 자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말해 그간의 고생을 짐작케 했다. 박진영은 “원더걸스는 세계에서 가장 노래를 잘 하는 가수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예쁜 가수도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춤을 잘 추는 가수도 아니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가수임에는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는 아이들(원더걸스)에게 기회밖에 준 것이 없다. 아이들이 매 순간 최선을 다 해왔고 거기에 운이 더해져 마침내 길이 열렸다.”면서 “조나스 브라더스에게 애초 계약한 13회를 넘어서 48회 전 공연을 함께하자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모두들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맏언니 유빈은 “친한 친구인 유이(애프터스쿨)가 한국에서 잘 나가는 것을 보고 부러웠다.”면서 “‘우리도 한국에 있으면 저랬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한편 원더걸스는 ‘빌보드 핫100’에 이어 조딘 스팍스, 핏불, 제이션, 저스틴 비버 등이 출연하는 ‘징글볼 콘서트’에 오르는 겹경사를 맞았다. 이 콘서트는 미국 LA의 메인 라디오채널인 KIIIS-FM 주최로 열리는 공연으로, 브리트니 스피어스, 비욘세, 에이브릴 라빈 등 월드스타들이 참여해 온 대규모 행사다. 지난해에는 보아가 무대에 올라 관심을 받았다. 징글볼 콘서트는 12월 9일(현지시간)에 열린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헌재, 학원 심야교습 제한 5:4 합헌

    학원 심야교습을 금지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는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29일 지난해 서울시와 부산시가 학원의 심야교습을 제한하는 조례를 만들자, 서울과 부산의 학부모와 학생, 학원장, 학원강사 등이 학습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면서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5대4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학원 교습시간 제한이 학생들의 자유로운 인격 발현을 침해하는지, 학원장 및 강사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해치는지, 서울과 부산에 거주하는 청구인들이 다른 지방에 비해 평등권을 침해받고 있는지 등이 쟁점이었다. 이강국·이공현·김종대·민형기·목영준 재판관은 “학원의 교습시간을 제한해 학생들의 수면시간 및 휴식시간을 확보하고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며,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려는 이 사건 조례의 입법목적은 정당하다.”면서 “학원의 교습시간을 제한하게 되면 학생들이 보다 일찍 귀가해 여가와 수면을 취할 수 있으므로 수단의 적합성도 인정된다.”고 합헌 의견을 밝혔다. 이들은 또 “이 조항으로 인해 제한되는 사익은 일정한 시간 학원이나 교습소에서의 교습이 금지되는 불이익인 반면 조항이 추구하는 공익은 학생들의 건강과 안전, 학교 교육의 충실화, 부차적으로 사교육비의 절감이므로 법익 균형성도 충족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조대현·김희옥·이동흡·송두환 재판관은 “학교 밖의 교육 영역에 있어서 교습시간 자체를 규제함으로써 학교 교육의 충실화를 유도한다는 것은 정당한 입법목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현 입시체제 아래에서 학생들은 학교나 독서실에서의 자율학습, 개인과외교습 및 심야에 이뤄지는 인터넷 교습 등으로 인해 여가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으므로 학원 등에서 교습시간을 제한하더라도 학생들의 건강과 안전보호 및 학교 교육의 충실화라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헌법재판소의 이 같은 결정에 따라 불법 및 편법으로 운영하는 학원에 대한 단속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교과부 이동호 평생학습정책과장은 “그동안 헌법소원이 제기돼 다소 미온적이었던 학원 단속을 이번 헌재 결정을 계기로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갑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대전 보내주오” 376명 “충남 전입희망” 2명뿐

    “대전 보내주오” 376명 “충남 전입희망” 2명뿐

    2007년 7월 충남경찰청에서 대전경찰청이 분리된 뒤 충남에서 대전으로 전입하려는 경찰들이 줄을 서고 있다. 대전이 충남보다 교육여건이 낫고, 근무지를 옮겨도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등 근무 여건이 좋기 때문이다. 16일 충남 및 대전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충남청에서 대전청으로 전입을 희망하는 경찰은 376명에 이르는 반면 대전에서 충남으로 가려는 직원은 단 2명에 불과하다. 지방청간 인적 교류는 1대1이 원칙이다. 결국 올해 충남청에서 대전으로 전입할 수 있는 경찰은 2명뿐이다. 지난해도 352명의 충남 경찰이 대전청 전입을 희망했으나 5명만 소원이 이뤄졌다. 대전 전입을 바라는 것은 생활여건이 좋아서다. 반대로 대전에서 충남으로 가려는 경찰도 이유는 있다. 고향인 충남에 사는 부모가 아프거나 공무원인 아내나 남편이 충남에서 일하는 경우가 주원인이다. 이 같은 고충사항을 기준으로 심사, 전입 순서가 매겨져 있다. 이시준 충남경찰청 인사계장은 “전입 순서가 공개돼 아무리 애를 써도, 이른바 ‘백’을 써도 선순위자를 앞지를 수 없다.”면서 “전남에서도 대전청과 같은 시기에 분리된 광주청으로 가려는 경찰이 많기는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17일 TV 하이라이트]

    ●과학카페(KBS1 오후 7시10분) 2003년 완공된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에 이어 2009년 10월13일 가거초 해양과학기지가 완공되었다. 31가지의 첨단 관측장비가 설치된 가거초 해양과학기지는 앞으로 종합 해양·기상관측소 역할을 하면서 기상 및 해양, 대기환경 파악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우리나라 해양과학기지의 요충지가 될 가거초 해양과학기지를 최초 공개한다. ●다큐멘터리 3일(KBS1 오후 9시40분) 부산항이 바라다보이는 산동네 산복도로.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의 집단 정착지로 자리잡으면서 처음 산복도로가 생겼다. 현재 부산에는 모두 78개 동에 걸쳐 6곳의 산복도로가 있고,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거대한 언덕 산동네의 40년 삶이 만들어낸산복도로의 3일을 걸어본다. ●수상한 삼형제(KBS2 오후 7시55분) 막내아들 이상이 모범경찰상을 받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 홀로 나타난 큰아들 건강 때문에 김순경은 못마땅해하고, 과자는 남편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한다. 시어머니와 남편의 눈치를 보며 분가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둘째 며느리 도우미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고뭉치 엄마의 방문에 기겁을 한다. ●인연만들기(MBC 오후 7시55분) 서로에 대한 첫인상이 좋지 않은 여준과 상은은 티격태격하며 집에 도착하고, 가족들은 상은을 환영한다. 옥란은 상은에게 날 잡고 혼사 치르자고 하지만 상은은 아직은 결혼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여준은 상은과 함께 집을 나서지만 두 사람은 각자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천만번 사랑해(SBS 오후 8시50분) 길을 걷던 은님은 금자를 우연히 보게 되고, 은님은 자신을 알아보고 도망가는 금자를 필사적으로 쫓는다. 기획안 끝낸 기념으로 봉피디와 남산 레스토랑에 간 청자는 세훈과 비슷해 보이는 남자가 젊은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는 선영에게 비슷한 사람을 본 것 같다며 전화를 해주는데…. ●효도우미 0700(EBS 오후 5시10분)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황순학 할머니의 가장 큰 소원이다. 지적장애인 큰아들과 아들의 부족함을 그대로 물려받은 큰아들의 자식 셋까지. 지적장애인 넷을 품고 있는 할머니. 작고 여린 품이지만, 품고 살아야할 새끼들 넷이 있기에 세상과의 이별을 미루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황순학 할머니의 사연을 만나본다. ●토마토(YTN 오전 8시25분) 우리나라 부부 7쌍 중 1쌍이 불임 부부다. 그 중 남성으로 인한 불임이 전체 불임의 3분의1을 차지한다고 한다. 정자의 운동성이 떨어지거나 정자 자체에 이상이 있는 경우 불임의 원인이 된다. 남성불임의 가장 큰 원인인 정계정맥류에서 무정자증까지 남성불임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알아본다.
  • [18일 TV 하이라이트]

    ●SBS 스페셜(SBS 오후 11시20분) 중세 유럽, 인류 3분의1의 목숨을 앗아갔던 흑사병. 1918년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스페인 독감. 그리고 이 순간에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하며 인간에 대한 더욱 위협적인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전염병 대유행이 닥쳤을 때를 대비해 우리가 해야 할 준비는 무엇인지 점검해 본다. ●영상앨범 산(KBS1 오전 7시)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의 산자락에 연결되는 쓰구냥산은 청장고원 동쪽, 쓰촨성 서북부에 위치해 있다. 최고봉을 중심으로 싼구냥산, 얼구냥산, ●인연만들기(MBC 오후 7시55분) 서로에 대한 첫인상이 좋지 않은 여준과 상은은 티격태격하며 집에 도착하고, 가족들은 상은을 환영한다. 옥란은 상은에게 날 잡고 혼사 치르자고 하지만 상은은 아직은 결혼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여준은 상은과 함께 집을 나서지만 두 사람은 각자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천만번 사랑해(SBS 오후 8시50분) 길을 걷던 은님은 금자를 우연히 보게 되고, 은님은 자신을 알아보고 도망가는 금자를 필사적으로 쫓는다. 기획안 끝낸 기념으로 봉피디와 남산 레스토랑에 간 청자는 세훈과 비슷해 보이는 남자가 젊은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는 선영에게 비슷한 사람을 본 것 같다며 전화를 해주는데…. ●효도우미 0700(EBS 오후 5시10분)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황순학 할머니의 가장 큰 소원이다. 지적장애인 큰아들과 아들의 부족함을 그대로 물려받은 큰아들의 자식 셋까지. 지적장애인 넷을 품고 있는 할머니. 작고 여린 품이지만, 품고 살아야할 새끼들 넷이 있기에 세상과의 이별을 미루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황순학 할머니의 사연을 만나본다. ●토마토(YTN 오전 8시25분) 우리나라 부부 7쌍 중 1쌍이 불임 부부다. 그 중 남성으로 인한 불임이 전체 불임의 3분의1을 차지한다고 한다. 정자의 운동성이 떨어지거나 정자 자체에 이상이 있는 경우 불임의 원인이 된다. 남성불임의 가장 큰 원인인 정계정맥류에서 무정자증까지 남성불임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알아본다.
  • 감귤수확·승마… 제주여행에 장애는 없다

    감귤수확·승마… 제주여행에 장애는 없다

    울산에 사는 장애인 박모(35)씨는 동료와 함께 다음달 처음으로 제주도 여행에 나선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이 집 근처도 아니고 바다 건너 멀리, 그것도 며칠씩 여행을 떠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박씨는 장애인의 제주 관광을 도와주는 해피누리 서비스를 통해 꿈에도 그리던 제주 여행을 떠나게 됐다. 박씨는 “친구들과 함께 감귤도 따고 올레길을 마음껏 다녀보고 싶은 소원이 이제야 이뤄지게 됐다.”고 말했다. ●20가지 유형의 관광상품 내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여행실태조사에 따르면 15세 이상 국민의 국내 여행경험은 92.3%로 조사됐다. 그러나 지난해 보건복지부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국내 여행경험은 26.8%에 불과한 실정이다. 사람들의 부담스러운 시선과 교통 제약, 장애인 여행편의 시설 부족, 장애인 관광정보 부재 등으로 장애인이 자유롭게 여행을 즐기기엔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 더구나 제주는 비행기나 선박을 이용한 장거리 여행에다 며칠씩 숙박을 해야 하는 특성 등으로 장애인들에겐 가보고 싶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여행지다. 이를 위해 서귀포시장애인종합복지관이 장애인 맞춤 제주여행 서비스인 ‘해피누리’를 개발했다. 해피누리사업단은 관광 전문가와 여행업계 등의 자문을 거쳐 지적장애인을 비롯해 시각·청각·지체·일반 장애인과 사회복지 종사자 등을 위한 20가지 유형의 관광상품을 개발했다. 장애 유형에 따라 제주민속촌, 농촌테마마을, 감귤박물관 등을 돌아보는 ‘제주전통문화체험’과 유람선 관광, 승마, 사회복지시설 방문 등으로 꾸며진 ‘장애인웰빙투어’, 직업재활, 레포츠, 생태 및 자연을 체험하는 ‘특수학교 수학여행’ 등으로 다양하다. 해피누리는 이를 토대로 장애인의 요구에 따라 일정과 코스 등을 조정하는 맞춤형 관광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 제주의 3개 여행사와 15개 숙박시설 등과 협약을 맺어 장애인들이 아무런 불편 없이 제주여행을 즐길 수 있게 했다. 2~3일 만에 투석해야 하는 만성신부전증 환자들도 제주여행이 가능해졌다. 서귀포시 신효동에 들어선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라파의 집’에 투석기 25대가 설치돼 환자들이 제주에서 투석을 받으면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투석기 25대 마련… 응급 상황 대비 해피누리 서비스는 제주에 사는 지적 장애인이 직접 관광가이드로 나선다. 장애인들이 더욱 편안하게 제주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이들의 장애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장애인이 직접 제주여행을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이들은 그동안 관광가이드 교육을 통해 여행객 인솔과 행사진행 등의 기본적인 가이드 능력을 갖췄다. 현재 해피누리사업단에는 장애인 이동지원 서비스 제공과 관광지 안내, 주요관광지 환경미화 클린서비스 등의 분야에 20여명의 장애인이 자신만의 일자리를 꿈꾸며 교육을 받고 있다. 해피누리사업단 유순희 사회복지사는 “해피누리 서비스는 전국 장애인의 제주여행을 지원하는 한편 지역 장애인의 일자리도 창출하는 일석이조의 사업”이라며 “지체장애인이 여행할 때 이들의 관광지 이동 등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도 알선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年 4000만명 순례… 마오는 여전히 神이다

    年 4000만명 순례… 마오는 여전히 神이다

    │사오산(후난성)·선전(광둥성) 박홍환특파원│중국 건국 60년,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사람을 꼽는다면? 중국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지구촌 사람들 모두에게서 나오는 일관된 대답이 있다.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 마오는 신중국의 전반 30년을,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덩은 후반 30년을 관통하는 도도한 물길이다. 둘 다 세상을 떠났지만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그들의 실체를 좇아 현장을 찾았다. 지난 23일 마오의 고향인 후난(湖南)성 사오산(韶山)을 찾아가는 길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 후난성 성도인 창사(長沙)에서 서남쪽으로 100여㎞ 떨어진 사오산까지는 이미 깨끗하게 왕복 4~6차선 고속도로가 깔려 있었다. 1998년 완공됐다고 택시기사 탕웨이(湯偉·33)가 귀띔했다. 차 안에 마오의 사진이 담긴 기념품 여러 개를 부적처럼 주렁주렁 매단 탕은 사오산으로 가는 도중 “마오신(神)이 평안을 가져다 줄 것”이라며 연신 싱글벙글했다. 마오의 고향에는 건국 60주년을 앞두고 ‘성지’를 방문하려는 사람들을 가득 태운 관광버스와 자가용, 관용차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마오(毛)’투성이다. ‘마오○○식당’ ‘마오자(毛家)기념품’…. 마오쩌둥의 손자와 한자까지 이름이 똑같은 마오자식당 주인 마오신위(毛新宇·25·여)는 “연간 3000만~40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며 “이 때문에 사오산의 마오씨 집안 사람들은 연간 수만위안의 소득을 올려 샤오캉(小康·먹고살 만하다)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운터 뒤편에 잘 모셔진 마오의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평안신으로 모시고 있다.”며 “사오산, 아니 후난성에서는 가게마다 집집마다 다 똑같다.”고 말했다. 마오 신격화 현상은 마을 중심 둥팡훙(東方紅·마오쩌둥을 지칭)광장에서도 바로 확인됐다. 5~6m 높이의 마오 동상 앞은 기도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일부는 큰절을 하기도 했다. 허베이(河北)성의 바오딩(保定)에서 왔다는 리쥔제(李俊傑·73) 노인은 “아무래도 죽기 전에 한번은 다녀와 봐야 할 것 같아 가족들과 함께 왔다.”며 “마오 주석은 중국의 오늘을 있게 한 위인”이라고 말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존경과 숭배의 기운이 느껴졌다. 국경절을 앞두고 베이징에서 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대학생 천청(陳城·21)은 “빈부격차와 공직부패 등 중국 사회에는 아직도 많은 모순이 남아 있다.”며 “마오 주석이 살아 있다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신격화된 마오에게서 오늘의 답을 구하려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덩샤오핑의 도시인 광둥(廣東)성 선전은 비교적 차분하게 국경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덩의 고향은 쓰촨(四川)성 광안(廣安)이지만 고향에도 없는 동상이 중국 전역에서 유일하게 선전에만 있다. 지난 24일 오후 멀리 홍콩 앞바다가 바라다보이는 선전시 푸톈(福田)구의 롄화산(蓮花山)공원. 해발 150여m의 체육공원 정상에 마련된 덩의 동상 앞에는 10여명만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덩의 동상은 생전의 소원이었던 홍콩을 향해 나가려는 듯 홍콩 방향으로 힘차게 발길을 떼고 있는 모습이다. 산책을 나왔다는 부근 주민 판웨이민(范偉民·40)은 “샤오핑 동지가 없었다면 선전, 아니 중국의 지금은 없다.”며 “그는 ‘홍콩을 배우자’고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홍콩이 ‘선전을 따라가자’고 한다.”고 말했다. 덩이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하고, 2년 뒤 맨 처음 경제특구로 지정했을 당시 선전은 인구 3만명의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주민들은 바다 건너 홍콩섬의 휘황찬란한 ‘백만불 야경’을 지켜보며 부러워만 할 뿐이었다. 그랬던 선전이 불과 30여년 만에 천지개벽을 했다. 상주인구 1200만명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달러(약 1180만원)를 넘는다. 연평균 20%가 넘는 고속성장을 통해 중국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선전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 서커우(蛇口) 지역은 마치 홍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배를 타면 30여분 만에 홍콩 중심부에 닿을 수 있고, 교육 등 주거환경도 좋아 최근 들어 홍콩인들의 인기 주거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곳이다. 덩은 개혁·개방 정책이 위기에 봉착했던 1992년 선전을 방문, “개혁·개방 정책은 100년 동안 흔들림 없이 지켜야 한다.”는 남순강화(南巡講話)를 남겼다. 그래서일까. 글로벌 금융위기의 와중에도 선전의 2기 지하철 공사는 계속되고, 각종 건축 공사장의 크레인 역시 멈추지 않고 있었다. 글 사진 stinger@seoul.co.kr
  • [뉴스다큐 시선] 병상침대서 바라본 루게릭병 환자

    [뉴스다큐 시선] 병상침대서 바라본 루게릭병 환자

    사람들의 삶과 죽음 사이에는 인생이 있다. 갓 태어난 손자의 울음소리, 저녁때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된장찌개 같은 희로애락이 그 속에 녹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2000여명의 인생엔 오로지 고통만 있다. 정신은 멀쩡한데도 온몸이 마비되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두눈 뜨고 지켜봐야 하는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환자가 그들이다. 루게릭병 환자의 사투와 사랑을 그린 김명민·하지원 주연의 영화 ‘내사랑 내곁에’가 24일 개봉하면서 루게릭병 환자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루게릭병 환자 2명과 그 가족들을 만나봤다. 글 사진 동영상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침대 #1 나는 침대다. 세로 2m, 가로 1m. 한 사람이 눕기엔 나무랄 데 없다. 내 양옆엔 접이식 난간 두 개가 달려있다. 나는 서울 대조동의 한 단독주택에 놓여 있는 의료용 침대다. 내 주인 황인필(34)씨는 이곳에 8년째 누워 있다. 26살이던 2001년 10월 왼쪽 팔꿈치를 다쳐 병원에 갔다가 느닷없이 루게릭병 선고를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필씨는 큰 제과회사 케이크부에서 케이크를 만드는 제빵사로 일하면서 여자친구와 알콩달콩 연애도 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을 비롯해 3남매의 맏아들로 엄마 생일마다 자신이 만든 케이크를 집에 갖고 오던 속 깊은 아들이기도 했다. 활동적이라 퇴근 후 취미생활로 격투기를 했는데, 운동을 하다 팔꿈치를 다쳐서 52일간 깁스를 한 것뿐이었다. 이상하게 두 번째와 세 번째 손가락이 저리기 시작했다. 정형외과에 갔더니 이런저런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자기공명영상(MRI)을 본 의사는 “이 병은 젊은 사람한테 오는 게 아닌데…”라며 머리를 내저었다. 인필씨의 어머니 이순자(62)씨는 지금도 이 순간을 회상할 때마다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했다. “2002년 3월 말 루게릭병이란 최종 ‘확진결과’가 나왔어요. 그럴 리가 없다고 병원 바닥에 앉아 울었어요. 오진이 확실하단 생각에 다른 병원으로 갔죠. 그해 5월, 다시 한번 루게릭병이란 얘기를 들었어요.” 22일 오전 7시30분. 어머니 이씨가 내게로 다가온다. 내 위에서 인필씨는 눈을 꿈뻑거리며 혀로 “딱, 딱” 소리를 낸다. 그게 인필씨가 엄마를 부르는 방법이다. 처음에 왼쪽 팔에서 시작된 마비는 2004년 왼쪽 다리를 거쳐 2006년 10월부터는 입과 혀까지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인필씨는 안정된 호흡을 위해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아 그때부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달싹거리는 입술과 눈짓만 보고도 어머니 이씨는 인필씨가 뭘 원하는지 단박에 알아차린다. “TV 켜달라고? 이제 밥도 먹어야지.”라며 이씨는 인필씨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어머니 이씨와 간병인은 하루종일 인필씨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오후 1시와 저녁 7시 밥 대신 특수 의료용 식품을 줘야 하고, 수시로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에 낀 가래를 빼줘야 한다. 그나마 인필씨는 마비 속도가 더딘 편이다. 2001년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는 “환자들 평균 수명이 2.7년쯤 된다.”고 했다. 3년 뒤면 아들을 영영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어머니 이씨는 그 뒤 한두 달 동안은 밥도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고맙게도 인필씨는 8년이나 버텨줬다. 2002년 5월과 2004년 10월에는 일주일에 두 번씩 집 근처 재활병원을 다니면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2006년 8월 말에는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처음으로 호흡곤란이 왔다. 그해 9월 재활병원에 아예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10월부터 전신에 마비가 와 스스로 호흡하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 2007년 1월엔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았다. 그때부터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집에서 생활한다. 나는 안다. 가족들이 없었더라면 인필씨는 내 위에서 이렇게 오래 머무르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3총사 같이 꼭 붙어 다니던 여동생들은 오빠의 발병 소식을 듣자마자 “우리 둘 다 시집 안 가고 오빠 옆에 있겠다.”고 선언했다. 쌍둥이인 지연(34)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오빠 병간호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를 대신해 97살 할머니의 식사와 빨래도 도맡아 했다. 허리가 아픈 아버지(70)와 어머니 대신 집안의 생활비와 오빠 약값을 책임지는 것은 지연씨와 손아래 동생 미연(31)씨의 몫이다. 오후 1시. TV에 나오는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인필씨가 입을 벌려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화장해.” 누워있는 아들 때문에 너무 많이 늙어버린 엄마가 안쓰러웠을까. 인필씨는 가끔 엉뚱한 말을 꺼낸다. 어머니 이씨는 “너 나으면 엄마가 화장하지. 너만 나아 봐, 엄마가 화장만 하겠니.” 나는 이런 장면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본다. 도저히 희망을 말할 수 없는 곳에서 어머니 이씨가 ‘너 나으면’이라고 희망을 얘기하는 장면을. “소원이요? 하나밖에 없죠. 기적이 일어나서, 치료약이 개발돼서 우리 인필이가 일어나는 거죠.” 그때 인필씨가 더듬더듬 입술을 떼었다. “나 너무 아파서,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루게릭병으로)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 내 옆에 있어준 친구 용선이하고 재활병원 홍승표 팀장님 이름도 신문에 실어주면 좋겠어요.” 침대 #2 나는 인천 용현동의 한 아파트에 놓여있는 침대다. 나는 2005년 10월부터 내 주인 부영옥(67·여)씨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어느날 갑자기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독감예방주사를 맞았는데 가래가 끊이지 않고 계속 기침을 하는 등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다. 그래봤자 독감 정도일 거라고 딸 조은희(35)씨는 생각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병원에서는 “오늘 당장 입원하라. 언제 호흡곤란이 올지 모른다.”고 했다. 할머니가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거다. 은희씨는 난생 처음 듣는 ‘루게릭병’이 무슨 말인지 몰라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나오는 루게릭병의 전조 증상은, 부씨가 그해 봄부터 보이던 증상과 완전히 똑같았다. 음식을 먹으면 잘 흘렸고 엉뚱한 곳에서 히죽히죽 웃어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대뇌 신경세포가 파괴되고 입과 혀에 마비가 오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은희씨는 “내가 조금만 일찍 알았어도 마비가 덜 빨리 왔을텐데…”라며 자주 가슴을 친다. 그런 은희씨를 바라보는 게 안쓰럽기 그지 없다. 내 주인 부씨는 나이도 많은 편이고 폐렴도 자주 걸려 마비 속도가 빨랐다. 발병 4개월 만에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는 신세가 됐다. 2006년 가을에는 전신마비가 왔고 지난해 10월부터는 눈 깜박임도 없었다. 운영하던 제과점을 그만두고 중국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은희씨는 짐도 미처 챙기지 못하고 황망히 귀국해 엄마를 돌보기 시작했다. “넌 시집가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엄마 옆에 있어.”라면서 4자매 중 막내인 은희씨를 끔찍이 예뻐했던 엄마 부씨였다. 1983년부터 운전면허를 따서 자동차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던 활달한 성격의 엄마가 서서히 온 몸이 마비되어 가는 것을 바라봐야 하는 딸 은희씨의 마음은 헤어날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중국에 가 있던 은희씨를 내내 그리워했다는 엄마 부씨가 간신히 입을 떼 말했다. “몸은 아파도 네가 옆에 있으니 좋다. 어디 가지 마.” 은희씨는 결심했다. 내가 엄마를 끝까지 모시겠다고. 그때부터 4년간 응급실-중환자실-일반병실-퇴원을 반복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1년에 절반은 병원, 절반은 집에 머물렀다. 은희씨는 오전 6시30분에 일어나 부씨의 소변을 받아내고 의료용 유동식을 공급한다. 세 끼 식사에 매 시간 혈압, 체온, 소변량 등을 기록용지에 적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40년간 당뇨병을 앓아오던 은희씨의 아버지까지 쓰러졌다. 그래서 은희씨는 속으로 결심했다. 결혼 같은 건 하지 말자고. 어차피 병든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오지도 않을 거라고. 결심은 그렇게 했지만 혼자 몸으로 부모님 두 분을 보살피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속으로 눈물을 흘리는 나날이 늘어갔다. 지난해 9월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 박동진(40)씨를 만났다. 동진씨는 “첫눈에 반하진 않았지만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고 했다. 둘은 연애를 시작했다. 남들처럼 영화보러 가고 교외로 나들이 나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동진씨가 병원으로 찾아오면 둘이 나가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시고 얘기 조금 하다가 은희씨를 집으로 데려다 주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12월 크리스마스 이브 동진씨는 용기를 내 작은 반지를 준비했다. 근사한 곳에서 프러포즈를 하려 했지만 길이 막혀 두 시간 만에 돌아왔다. 외출하고 두 시간이 지나면 은희씨는 온통 마음이 병원으로 쏠린다. 결국 다음날인 크리스마스날 “우리 같이 살자.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라는 말로 은희씨의 마음을 얻어냈다. “혼자 하던 걸 이젠 둘이 하는데 뭐가 힘드냐.”는 말은 이제 은희씨의 입버릇이 됐다. 지난달 7일 어머니 부씨가 호흡곤란으로 인해 급기야 뇌사 상태에 빠졌을 때도 남편이 옆에 없었더라면 도저히 견뎌낼 수 없었을 터다. 나이가 많아 불임을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지난 4월 임신을 확인했다. 임신 5개월째의 무거운 몸으로 병간호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엄마에게 아기 얼굴을 꼭 보여주리라는 희망으로 은희씨는 하루를 살아낸다. “지금도 제 배에 엄마 손을 갖다 대면 가끔 턱을 부르르 떨면서 반응을 하세요. 희망이 있는 한 불치병은 없대요. 엄마가 눈을 뜰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라며 은희씨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 루게릭병은 온몸 근육 서서히 위축·마비 호흡근 마비로 수년내 사망 루게릭병(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은 운동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파괴되는 질환으로 사지가 서서히 위축·마비되면서 결국 호흡근 마비로 수년 내에 사망에 이르게 되는 질병이다. 1941년 이 병으로 사망한 미국의 유명한 프로야구 선수 루게릭(Henry Louis Gehrig)의 이름을 따 루게릭병으로 불리게 됐다. 인구 10만명에 1.5~2명에게서 발병하는 루게릭병은 60~80대에서 주로 발병하고 남성이 여성에 비해 1.5배가량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2000~3000명의 환자가 있다고 한다. 루게릭병의 발병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신경영양인자 결핍설, 글루타민산 과잉설, 유전설, 환경적 독소의 작용 등 여러 가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 따라서 치료제도 아직은 개발돼 있지 않다. 시중에 나와 있는 릴루텍(Riluzole)은 생존 기간을 수개월 정도 연장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삶의 질을 개선하거나 근력을 회복시키는 데는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 루게릭병 환자의 수명은 평균 3~4년이지만 10% 정도는 증상이 점차 좋아지는 양성 경과를 보이며 10년 이상 생존하기도 한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스티븐 호킹 박사는 1963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도 수십 년째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루게릭병 환자와 가족들이 가장 고통받는 것은 간병인 문제다. 간병인 바우처제도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지원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24시간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루게릭병의 특성상 전문적인 간병인이 절실하다. 한국ALS협회 회장인 이광우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병이 생기면 환자를 돌보느라 가정마저 황폐해져 버린다.”면서 “이를 막기 위해 루게릭 환자들을 위한 전문 요양소 설립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도움주실 분 ●황인필 국민은행 024-21-0738-345 ●조은희 하나은행 8479100-36-17407
  • [명배우 명무대] 강부자

    [명배우 명무대] 강부자

    2009년 설날 즈음에 있었던 초연 당시 폐막 3주 전에 이미 전석이 매진되어 일주일 간 공연기간을 연장했던 〈친정엄마와 2박 3일>(고혜정 원작/각색, 구태환 연출)이 3개월 간의 지방 순회공연 이후 다시금 같은 극장(동국대 이해랑극장)에서 재공연에 들어갔다. 이 역시 7월 4일부터 8월 30일까지의 대장정이다. 이와 같은 흥행 성적은 단연 강부자라는 배우에 힘입은 바 크다. 1962년 KBS 탤런트 제2기로 연기 인생을 시작한 강 배우는 데뷔 첫 작품부터 21세의 나이에 중년의 ‘중매쟁이’역을 맡았고, 명동국립극장 무대에서도 역시 그 비슷한 역이었다. 심지어 TBC 개국 드라마 <로맨스 가족>에서는 작고한 김동원 선생이 아들, 도금봉 선생이 손녀딸이었을 정도이다. 요즈음 특히 TV드라마를 이야기하는 중에 ‘전문배우’라는 이상스러운 호칭이 유행어처럼 떠도는 모양인데, 그런 의미에서라면 강 배우는 단연 아줌마를 비롯해 온갖 나이 든 여성 역할 전문배우인 셈이다. 나는 이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칫 연기자들의 개성을 짐짓 무시하게 만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와 같은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더러 천편일률적인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불륜전문배우도 있다던가? 그러나 적어도 무대 위에서 본 강 배우의 경우를 그렇게 도매금으로 넘긴다면, 실로 크나큰 결례가 아닐 수 없다. <친정엄마와 2박 3일>에서 친정엄마는 자녀들을 모두 서울로 떠나보내고 남편도 없는 시골집을 혼자 지켜낸다. 후에 외동딸이 하소연하고 싶을 때 찾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그 사연이 밝혀진다. 그러던 어느 날 외동딸이 불현듯 찾아온다. 유난히 똑똑해서 모진 살림 형편에도 명문대학까지 공부시킨 보람이 있어 유명회사에 취직했고, 잘나가는 남편도 얻었으나, 무지렁이 출신이라고 유난히 유세가 심한 시어머니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한 딸이 불쑥 나타나니 엄마는 반가우면서도 겁부터 난다. 2박 3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 드디어 그 딸이 간암 말기로 회복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친정엄마는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진다. 딸과 함께 찍은 둘만의 사진이 그야말로 영정사진이 될 줄이야. <심판> <고곤의 선물> 등으로 꾸준하게 짜임새 있는 연출 솜씨를 보이고 있는 구태환의 연출은 이 평범한 이야기에서 감동과 재미를 뽑아내기 위해 기본적으로 사실주의적인 연출 기법에 다소간 이질적인 요소들의 삽입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대의 경우, 특히 집 주변 나무들처럼 생략적인 것이라든지, 주 출입구가 사립문인 것에 비해 소슬대문 형의 대문은 그냥 모양으로 남아 있는 것이라든지, 주 무대인 방과 부엌을 분리시켜 배치한 것 등은 사실주의적 기조에서 벗어났을 뿐더러 별로 기능적이지도 못해 보였다. 그러나 자칫 침울해지기 쉬운 분위기를 바꿔놓기 위해 삽입된 각설이 장면 등은 다분히 이윤택적인 발상 같아 보이지만, 기능적이었다. 연출의 노력으로 많이 가려지긴 했지만, 자칫 뻔한 이야기로 지루해질 약점을 지닌 원작과 각색은,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강부자의 연기력으로 상당 부분 가려졌다. 물론 이에는 딸 역의 전미선과 아버지 역의 정상철 등의 호연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부자가 없는 이 연극은 상상하기 힘들다. 배운 것 없기에 자식들에 대한 사랑은 더욱 절실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의 기꺼움이나 받아들여졌을 때의 기꺼움이 배가되는 그 감정 기복을 그처럼 절묘하게 표현해 낼 배우를 떠올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각설이와 어울려 슬쩍 곁들이는 곰배탈이 연기에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지러진다. 그러나 이 연극은 마지막 대사가 보여주듯 비극적이다. “내 새끼, 보고 싶은 내 새끼. 너한테는 참말 미안허지만 나는 니가 내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 니가 허락만 헌다믄 나는 계속 계속 너를 내 딸로 낳고 싶다.” 이 마지막 장면이 마치 눈물을 강요하듯이 다소간 길어진 것은 그의 연기력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겠지만, 절제가 아쉽게 느껴진다. 그 점에서 나로서는 강부자의 모노드라마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공연은 1994년에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박완서의 동명소설을 그대로 무대화한 것이다. 7년 전에 목숨을 잃은 아들로 인한 통한의 심정을 어머니가 동서에게 전화로 호소하는 형식은 모노드라마로 전환되기에 알맞다. 시위 도중 쇠파이프로 맞아 죽은 아들의 어머니가 민가협의 일원이 되어 의식화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1980년대의 사태를 무리 없이 반영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를 받았거니와, 백치 아들을 간병하면서 ‘웬수’를 되뇌이는 한 어머니를 보면서 비록 식물인간일 망정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실체가 부러워 통곡하는 마지막 대목은 이길 수 없는 슬픔을 이기기 위해 기를 쓰고 스스로 민주투사가 된 장한 어머니의 모습조차 거짓임을 드러냄으로써 뜨거운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 모든 것을 생생하게 살려낸 강부자의 연기는 오래오래 기억될 만하다. 강부자는 1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 연기상(1977), KBS 연기대상 대상(1966), KBS 연기대상 공로상(1999) 수상이 말해주듯이 주로 TV 드라마를 통해 잘 알려진 연기자이지만, 그가 쌓은 내공의 실상은 무대에서 더욱 빛난다. 그것은 특히 이윤택이 쓰고 연출한 <오구>에서 넉넉히 입증되었다. 이 작품은 1989년 서울연극제에서 <잘 가세요>(이윤택 작, 채윤일 연출)라는 제목으로 첫선을 보였지만, 그 이듬해부터 이윤택이 직접 연출을 맡아 무대에 올려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왔다. 원래 남미정이 맡았던 노모 역을 1997년부터 강부자가 맡으면서 더욱 빛을 발하였다. 무대는 한적한 시골 마을의 한가로운 오후, 어느 날 꿈속에서 염라대왕과 남편을 만나면서 죽음을 예감한 떡장수 노모가 저승 갈 준비를 해야겠다면서 자식들에게 산 오구굿을 해달라고 조른다. 오구굿이란 죽은 사람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소원이나 원한을 풀어주고 극락왕생을 바라는 무속의식이다. 소원대로 오구굿이 신명나게 펼쳐지는 중에 같이 흥을 내던 노모가 갑자기 세상을 떠 굿판은 초상집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초상집은 또 하나의 굿판이다. 떠들썩하게 초상이 치러지는 중에 저승사자들이 내려와 산 자와 인사하고 촌지를 받는가 하면, 자식들 간에 유산상속 싸움이 벌어지는 중에 노모가 되살아나 자식들을 꾸짖어 이승의 문제를 해결하고 난 후 남편의 손을 잡고 저승사자들과 함께 먼 길을 떠난다. 이처럼 떠들썩한 굿판에서 이윤택과 오랫동안 함께 해온 배우들, 더군다나 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의 예능보유자인 하용부(박수무당 석출 역)의 익숙한 춤사위와 노랫가락에 못지않게 강부자의 익숙한 연기가 흥을 돋운다. 논산 출신으로 강경여고 시절에 이미 노래와 연극에 끼를 보이면서 한때 가수를 지망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1998년 국인당의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을 이수하기도 했지만, 배우가 천직임을 깨닫는 소득 이외에는 여기에서 얻은 바는 별로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적 관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웰컴 투 코리아 시민협의회 공연단’ 단장을 비롯한 봉사활동은 한국 해비타트의 사랑의 집짓기 건축기금 마련을 위한 모금 패션쇼로까지 이어진다. 그 패션쇼에는 KBS동기생인 남편(이묵원)이 함께 출연해서 화제였다. 그와 함께한 드라마에서 모자로 출연하기도 한 에피소드도 있는데, 그 때문인지 연상의 남편을 서슴치 않고 ‘연하’라고 부르기도 한다. <친정엄마와 2박 3일>에서 딸이 엄마에게 해주고 싶은 일들을 나열하는 중에 ‘성경 읽어주기’라는 대목이 있지만, 강부자는 소문난 불자이다. 법정 스님을 회주로 모신 길상사가 개최한 석가탄신 기념 산사음악회에서 열창을 아끼지 않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글_ 김문환 서울대교수, 연극평론가
  • [헌재 공개변론 2제] 미디어법·혼인빙자간음죄

    [헌재 공개변론 2제] 미디어법·혼인빙자간음죄

    ■ 미디어법 “절차 정당성 어겨서 무효” “국회 자율성 폭넓게 인정” 10일 국회 미디어법 의결 과정의 위헌여부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공개변론이 열린 헌법재판소에서 청구인인 야당 측과 피청구인인 국회의장단 측은 쟁점마다 정면으로 충돌했다. ●청구인측 “일사부재의 원칙 위배” 이번 사건은 7월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이 방송법 수정안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지만 부결 선언을 하지 않고 투표를 종료한 뒤 재투표를 하면서 비롯됐다. 이날 공개변론의 주요쟁점은 ▲재투표의 일사부재의 원칙의 위배 여부 ▲설명없는 법안상정의 위법 여부 ▲대리투표발생 여부였다. 청구인 측 대리인으로 나온 박재승 변호사는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법안을 직권상정해 밀어붙인 것은 국민주권주의에 반한다.”면서 “특히 표결 당시 재적 의원 과반수인 148명에 미치지 못한 145명만 표결에 참여한 채 투표가 끝나 부결된 것인데 이를 재투표로 통과시킨 것은 국회법과 헌법이 명시한 일사부재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말했다. 최성용 변호사도 “국회의 자율권이라는 것은 법치주의 원칙의 한계에서만 인정되는 것”이라며 “입법형성 역시 절차의 정당성이 확보돼야 하는 것으로, 피청구인들의 가결 선포행위는 실질적 심사권한 박탈 및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에도 반해 무효”라고 강조했다. ●국회의장단측 “대리투표는 추측” 국회의장단 측 대리인으로 나선 강훈 변호사는 “정상적인 회의 진행을 방해한 야당 의원들은 처음부터 법률안에 대한 심의·표결권을 포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권리를 포기한 사람들의 권한쟁의심판은 부적법하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국회부의장이 투표를 종료한다고 한 것은 야당 의원들의 방해에 의한 착오였다.”고 주장했다. 김치중 변호사는 “헌재는 국회의 자율성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면서 “대리투표는 추측이며, 당시 야당 의원들이 투표 방해를 위해 여당 의원의 전자투표기에 손을 댄 것이 남아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혼인빙자간음죄 “형법 사생활 규제 안된다” “女 성적결정권 보호 마땅” 10일 서울 안국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혼인빙자간음죄의 위헌성 여부에 대한 공개변론에서 위헌의견을 낸 청구인측과 합헌의견의 법무부측이 팽팽한 법리공방을 벌였다. ●청구인측 “가부장적 사고 강요안돼” 이번 사건은 “부모님께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이라고 소개하겠다.”고 거짓말을 한 뒤 수차례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임모(33)씨가 낸 헌법소원이다. 사건의 쟁점은 남성만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와 헌법상 보장된 행복추구권과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였다. 임씨의 대리인으로 나선 황병일 변호사는 “진실을 전제로 한 혼전 성교의 강제는 도덕과 윤리의 문제에 불과할 뿐 아니라 형법이 개인의 사생활 영역까지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혼전 성교에서 이미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에 따른 판단을 했기 때문에 이후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처벌하는 것은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취지다. 전문 참고인으로 나온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는 “혼인빙자간음죄는 가부장적·도덕주의적 성이데올로기를 강제하며 이를 따르지 않는 시민에게 형벌을 가해 형법의 보충성 원칙을 거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측 “피해자 엄존 현실 봐야” 하지만 법무부측의 의견은 달랐다. 법무부는 “이 조항이 다소 가부장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 “엄연히 피해자가 있는 현실에서 도덕적 영역에 관여한다고 해서 곧바로 위헌이 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법무부측 참고인으로 나선 고려대 법대 김일수 교수는 “남녀 사이의 성적 피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하면 혼인빙자간음으로 침해될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섬마을 400년 갈증 풀었다

    섬마을 400년 갈증 풀었다

    “물 걱정 없는 세상에서 살아봤으면 하는 숙원이 풀렸습니다.” 경남 남해군 미조면의 조도와 호도, 이 섬마을에 남해 본섬에서 바다 밑으로 관로를 설치해 상수도를 공급하는 공사가 10일 준공됐다. 조도와 호도, 2개 섬 주민들은 이날 통수식과 함께 집마다 수돗물이 펑펑 공급됨에 따라 400년전 이들 섬에 조상들이 처음 이주한 뒤 지금까지 시달려온 지긋지긋한 물 부족 고통에서 벗어나게 됐다. 조도에는 큰섬에 9가구 20명과 작은섬 28가구 63명, 호도에는 11가구 20명 등 모두 48가구 10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우물과 저장해 놓은 빗물 등을 식수와 빨래·샤워 등 생활용수로 써야 했고, 일년 내내 물 부족에 시달렸다. 가뭄이 심한 겨울에는 본섬에서 배를 이용해 수시로 식수를 실어 날라 썼다. 이날 남해군 미조면 미조리 마을회관에서는 김태호 경남지사와 정현태 남해군수, 2개 섬마을 주민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통수식을 갖고 기념비 제막식도 했다. 주민들은 마을회관 앞 수도꼭지에서 통수식 순간에 수돗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자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3개 섬 마을에 상수도가 공급된 것은 지난 2월 김 지사가 가뭄 현장인 조도마을을 방문한 자리에서 주민들의 식수고통을 전해듣고 사업비 12억원을 긴급 지원한 덕분이다. 이에 따라 남해 본섬까지 공급되는 남강댐물을 조도와 호도까지 보내기 위한 상수도 관로 설치 공사를 도비 12억원과 군비 3억 3700만원을 들여 지난 5월 착공했다. 남해 미조항에서 조도를 거쳐 호도까지 수심 20~35m 깊이의 바다 밑 1.96㎞와 땅위 2.39㎞에 지름 50~75㎜ 크기의 관로 한쌍을 설치했다. 준공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주민들은 수도꼭지를 틀어 콸콸 쏟아져 나오는 수돗물을 몇번씩 확인하기도 했다. 조도 이창수(44) 이장은 “물을 실컷 써 봤으면 하는 주민들의 소원이 풀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을 주민들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남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故 장진영 남편 인터뷰 “결혼을 선물하고 싶었다”

    故 장진영 남편 인터뷰 “결혼을 선물하고 싶었다”

    지난 1일 위암으로 요절한 영화배우 장진영(37)씨의 남편 김영균(43·사진)씨는 장씨가 결혼식을 할 때까지도 자신의 병세에 대해 잘 몰랐다고 밝혔다.   죽음 앞에서도 사랑을 지켜낸 순애보로 대한민국을 감동시킨 김씨는 5일 중앙SUNDAY와 단독으로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중앙SUNDAY에 따르면 김봉호 전 국회부의장의 차남인 김씨는 서울 경성고와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그동안 인터뷰를 고사해 온 김씨는 고등학교 동창인 중앙SUNDAY 기자의 설득에 결국 심경을 밝혔다고 한다.  김영균씨는 지난해 1월 장진영씨와 처음 만났으며 당시 자신은 42세, 장씨는 36세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교제한 지 9개월 만에 장씨가 암이란 진단을 받았고 김씨는 1년여의 투병 생활 내내 장씨의 곁을 지켰다. 지난 7월 26일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김씨는 죽음을 목전에 둔 연인과의 결혼을 감행한 이유에 대해 “진영이의 병이 결코 나아지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기에 이번 기회가 아니면 면사포를 씌워 줄 수 없었다. 결혼을 선물로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42살까지 운명적인 사랑을 찾지 못했고 결혼을 전제로 사귄 것은 장씨가 처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장진영씨가 사망하기 나흘 전 혼인신고를 마친 김씨는 자신의 혼인신고를 세인이 곱지 않게 보는 것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혼인신고를 한 이유는 “단지 장씨와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싶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장진영씨와의 만남에 대해 김씨는 “처음에 진영이는 암에 걸린 줄 모르고 있었다. 진영이가 충격받지 않게 조금씩 사실을 알게 해 줬다.”고 그간의 과정을 밝혔다.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유에 대해서는 “진영이의 병이 결코 나아지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기에 이번 기회가 아니면 면사포를 씌워 줄 수 없었다. 결혼을 선물로 주고 싶었다. 그런데 진영이가 스타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치료차 LA에 갔다가 진영이에게 ‘너랑 나랑 여기서 결혼식을 하자’고 했다. ‘오래전부터 너와 부부의 연을 맺는 게 나의 소원이었고 이제는 네가 답해 줄래’라고 말했다. 진영이는 ‘결혼은 병 다 나았을 때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진영이는 병이 호전되는 줄로 알고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소원이라고 하고 여기서 몰래 먼저 하고 나중에 한국에서 다시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결혼식을 할 때만 해도 장진영씨는 전성기 때의 미모를 유지하고 있었고, 치료를 받고 있던 상태라 5㎏ 정도 체중이 빠져 있었다고 한다.  결혼식 장면은 6일 오전 9시 유해가 안치된 경기도 광주시 분당 스카이캐슬 추모공원에서 비공개로 열린 삼우제에서 동영상으로 유족들에게 공개됐다. 장진영씨는 남편 김씨와 미국 네바다주 클라크 카운티에서 하객 없이 단 둘이 결혼식을 올리며 이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겼다. 이날 삼우제는 고인의 가족과 남편 김씨, 소속사 관계자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암투병 중에 두사람은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 병간호도 하고,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하고, 등산도 다녔다고 한다. 남편 김씨는 장진영이가 실의에 빠질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계속 스케줄을 잡았고 그 선상에서 결혼식도 해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혼인신고를 한 과정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정식 결혼을 하고 당당하게 혼인신고를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허락하질 않았다. 병은 점점 깊어지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내 호적에 올려 가는 길 외롭지 않게 해 주고 싶었다. 결혼을 했으니 신고는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다만 아프니까 안 한다는 것은 왠지 내가 기회를 보는 비겁자가 되는 것 같아 괴로웠다. 그래서 진영이에게 내 의견을 말하니 내게 짐이 될까 봐 처음엔 부담스러워하면서 ‘다 나으면 그때 하자’며 망설였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혼인신고를 하기까지 많이 망설였으며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긴 올렸지만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안 하면 단순한 남자친구였던 사람으로 남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럼, 진영이랑 남남이 되는 것 아닌가. 도저히 못 참겠더라.”라고 결심한 계기를 밝혔다.  장진영씨는 혼인신고를 결심할 무렵 상태가 더 나빠졌고 잠깐이나마 의식이 돌아왔을 때 ‘저승에서 만나더라도 너랑 부부로 만나고 싶다, 내가 지금까지 너를 지켜 줬는데 앞으로 가는 길에도 김영균의 아내로서 외롭지 않게 하고 싶다. 이건 내가 널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란 김씨의 말에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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