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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불 ‘초비상’, 강풍타고 강원 ‘초토화’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전국에서 산불이 잇따르고 있다. 강원 영동지역은 야간 산불로 이어진 데다 강풍을 타고 확산되면서 피해가 속출했다. 정부는 5일 오전 9시 강원지역에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4일 하루에만 전국적으로 18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이중 4건이 야간에 발생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식목일 오전 0시와 2시쯤 강원 강릉과 부산 기장에서도 야간 산불이 나 영동선 열차 운행에 차질이 빚어졌다. 피해는 강원에 집중됐다. 5일 오전 9시 현재 고성 250㏊, 강릉 110㏊, 인제 25㏊ 등 385㏊로 잠정 집계됐지만 진화가 마무리되지 않아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축구장 면적(7140㎡)의 539배에 달하고 여의도 면적(290㏊)보다 넓은 규모다. 4일 오후 8시 20분쯤 고성 토성의 도로에서 A(58)씨가 연기에 갇혀 숨지는 등 1명이 숨지고, 11명 부상당하는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주민과 관광객 등 4000여명이 대피했고, 주택과 창고 등 300여채가 소실되거나 화마 피해를 당했다. 강원도에서는 2017년(강릉·삼척), 2018년(삼척·고성)에 이어 3년 연속 대형 산불(100㏊ 이상)이 발생했다. 정부와 산림청은 날이 밝자 동해안지역에 헬기 45대와 진화 차량 77대, 1만 300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진화에 나섰다. 앞서 소방차량과 산림청 헬기 등을 전진 배치했다. ‘재난사태’가 선포된 지역은 강원 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 일원이다. 선포지역에는 재난경보 발령, 인력·장비·물자 동원, 위험구역 설정, 대피명령, 응급지원, 공무원 비상소집 등의 조치와 범정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진다. 한편 전국적으로 산불위험지수가 ‘높음’ 수준(66이상)인데다 대형산불주의보가 전국에 100여건 발령되는 등 동시다발 산불위험이 높아진 상태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영상) ‘국가재난사태’ 선포된 강원도 고성 속초 산불

    (영상) ‘국가재난사태’ 선포된 강원도 고성 속초 산불

    정부는 4일 발생한 강원도 산불과 관련해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했다. 행정안전부는 5일 오전 9시를 기해 강원도 고성군과 속초시, 강릉시, 동해시, 인제군에 재난사태를 선포했다고 이날 밝혔다. 재난사태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국민 생명 및 재산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긴급 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중앙안전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행정안전부 장관이 선포하게 된다. 행안부는 피해 현장을 방문 중인 김부겸 행안부 장관이 조기수습을 위해 피해를 최소화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선포했다고 설명했다. 재난사태가 선포되면서 이 지역에는 재난경보가 발령되고 인력과 장비, 물자 동원이 이뤄진다. 또 대피명령과 응급지원, 공무원 비상소집 등 조치를 범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게 된다. 추가 피해 방지를 위해 위험지역에 대한 출입제한과 통제도 강화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 등의 조치가 이뤄진다. 행안부는 이 지역에 재난안전 특별교부세 40억원과 재난 구호사업비 2억5000만원도 긴급 지원한다. 산불진화를 위한 인력과 장비 동원, 소실된 산림 및 주택 잔해물 처리, 이재민 구호에 필요한 비용을 지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교세 지원규모는 과거 지원 사례를 고려해 40억원으로 정해졌다. 한편 이날 오전 8시 고성산불의 경우는 진화가 거의 완료된 상태지만 강릉 옥계·동해 망상산불과 인제산불은 50% 이하의 진화율을 보여 피해지역이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정부, 강원 고성·속초 일대 재난사태 선포…특별교부세 40억원 지원

    정부, 강원 고성·속초 일대 재난사태 선포…특별교부세 40억원 지원

    정부는 지난 4일 강원 동해안 일대 발생한 대형 산불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자 범정부 차원의 총력대응을 위해 5일 오전 9시부터 강원 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군 일원에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행정안전부는 강원 산불 피해를 조기에 수습하고자 재난안전특별교부세 40억원과 재난 구호사업바 2억 5000만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이번 재난사태 선포는 김부겸 행안부 장관이 피해 현장을 방문해 대처 상황 등을 파악했고 조기 수습을 위해 가용 자원을 신속하게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뤄졌다. 선포지역에 재난경보 발령과 인력, 장비, 물자 동원을 비롯해 위험구역 설정, 대피명령, 응급지원, 공무원 비상소집 등의 조치가 시행된다. 범정부 차원의 지원을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재난 수습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재난선포란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중앙안전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행안부 장관이 선포한다. 2005년 4월 강원 양양산불이나 2007년 12월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 유출사고 때 선포된 바 있다. 추가적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위험지역에 대한 출입제한과 통제가 강화된다. 대피명령에 응하지 않거나 위험구역에 출입하는 등 제한행위를 하면 벌금 등의 조치를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이번 사고를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 산림청·소방청·경찰청 등 전 행정력을 동원해 산불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산불로 피해를 입은 지역주민에 대해서는 이재민 임시주거시설을 마련하고 재해구호물품 지급 등 긴급 생활안정 지원 대책을 마련한다. 사상자에 대해서는 장례지원과 치료지원, 재난심리지원서비스 등을 시행할 계획이다. 한편 재난안전 특교세 40억원과 구호사업비 2억 5000만원을 긴급 지원해 산불진화를 위한 인력과 장비 동원, 소실된 산림과 주택 잔해물 처리, 이재민 구호 등에 쓸 예정이다. 특교세 지원 규모는 과거 지원 사례와 피해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됐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이번 특교세와 구호비 지원이 산불 피해 조기 수습에 기여하고 이재민께서 하루라도 빨리 정상적인 일상생활로 돌아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면서 “강원 산불이 완전히 진화될 때까지 범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강원산불] 산불 키운 바람, 얼마나 강했길래 알고보니…

    [강원산불] 산불 키운 바람, 얼마나 강했길래 알고보니…

    사람 걷기 힘든 ‘센바람’부터 건물 손상입힐 수 있는 ‘왕바람’ 수준식목일을 하루 앞둔 4일 오후 7시경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된 불이 강풍을 타고 속초까지 번지면서 250㏊(헥타르)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고 1명의 사망자를 , 주택 125동 소실 등 인명과 재산상 피해를 입혔다. 산불 발생 11시간이 지난 시점인 5일 오전 8시 경 큰 불길이 잡힌 것으로 알려져 안도의 한숨을 쉬게 만들고 있다. 이번 강원 영동지역을 덮친 산불의 가장 큰 원인은 ‘비 없는 태풍급 강풍’ 때문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산불이 발생한 지역들의 경우 4일 오후 8~9시 사이에 최대 순간풍속(초속)은 미시령 27.6m, 고성 26.1m, 대관령 21.7m, 속초 16.4m, 강릉 14.2m 등을 기록했다. 영동 지역에 불어닥친 태풍급 바람의 속도는 대략 초속 15~30m, 시속으로 계산하면 54~108㎞ 수준이다. 4일 저녁 고성과 속초 일대를 강타한 바람을 육상용 보버트 풍력계급 12단계로 분류해보면 7단계인 ‘센바람’~11단계인 ‘왕바람’ 수준에 달했다. 7단계 센바람은 나무 전체가 흔들리고 바람을 안고 걷기 힘들 정도이며 11단계인 왕바람은 바람만으로 건물 전체가 곳곳에 손상을 입는 수준이다. 시속 75~87㎞의 9단계 ‘큰센바람’만으로도 굴뚝 덮개, 타일, 안테나가 날아가는 수준이며 10단계인 ‘노대바람’은 건물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정도이다. 바람의 세기는 ‘보버트 풍력계급’으로 나눠 보기도 하는데 19세기 초 주로 해상의 풍랑 상태를 보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졌지만 20세기 들어서 육상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육상용 보버트 풍력계급이 만들어졌다. 특히 이번 강한 바람은 한반도 주변 기압 배치가 ‘남고북저’가 되면서 만들어 졌다. 한반도 북쪽에 강한 저기압이 형성되고 남쪽 제주도 지역에 강한 고기압이 만들어지면서 기압차 때문에 바람의 강도가 세진 것이다. 특히 강한 서풍 기류가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강도가 더욱 세진 것이다. 산 때문에 좁은 바람길을 지나가면서 강한 바람이 만들어진 것이다. 마치 뻥 뚫려있는 큰 길보다 좁은 빌딩숲 사이나 골목길에 바람이 거세게 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이 때문에 태백산맥 동쪽 강원 양양, 고성, 강릉, 속초 일대에 국지적으로 강한 바람이 불게 된 것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바람의 강도는 산불이 발생한 4일보다 약해졌지만 여전히 순간 풍속은 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5일 오전 9시 기준 최대순간풍속(초속)은 미시령 26.7m, 속초 10.5m, 고성 7.6m 등으로 측정됐다. 또 오전 내내 순간풍속이 동해안 일대는 초속 20m(시속 72㎞), 강원 산지는 초속 30m(시속 108㎞)의 강한 바람이 불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봤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국방부 “고성 산불 진화에 장병 1만 6500명 투입”…부대 일부 시설 소실도

    국방부 “고성 산불 진화에 장병 1만 6500명 투입”…부대 일부 시설 소실도

    국방부가 강원 고성 지역 산불과 관련해 군 장병 1만 6500명을 투입해 진화작업에 나섰다. 또 산불로 해당 지역 부대의 일부 시설도 피해를 입은 것으로 밝혀졌다. 국방부는 5일 “강원도 산불 관련 일출과 동시에 군 장병 1만 6500여 명과 군 헬기 32대, 군 보유 소방차 26대를 투입해 진화작업을 실시 중”이라고 밝혔다. 또 군 당국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요청에 따라 긴급 대피 중인 국민을 위해 식사용 전투식량 6800명 분도 지원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군 장병들의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해당 지역 부대의 일부 피해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산불 발생지역에 위치한 부대의 생활관, 창고 및 일부 장비, 탄약 등에 대한 소실이 확인됐다”라며 “정확한 현황은 화재진화 후 파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국방부 긴급 재난대책회의를 주관해 ‘산불 지역 군 장병 및 시설의 안전확보 선제적 조치’, ‘국가 총력 대응이 가능하도록 군 가용전력을 총 동원해 지원’, ‘산불진화 임무 수행 간 인원 장비 안전에 만전’, ‘중앙 재난안전대책본부 및 지자체와 유기적인 협조하에 필요한 조치 적극 지원’ 등의 사항을 지시했다. 앞서 국방부는 지난 4일 오후 9시를 기해 국방부 재난대책본부를 운영해 산불 대응에 나서고 있다. 국방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실시간으로 상황을 공유하며 조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산림청 “고성산불 11시간만에 큰 불 진화 완료”…인제 50% 진화

    산림청 “고성산불 11시간만에 큰 불 진화 완료”…인제 50% 진화

    250㏊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든 강원 고성산불이 11시간여 만에 큰 불길을 잡았다. 산림청은 5일 오전 8시 15분을 기해 고성산불의 주불 진화를 마무리하고 잔불 정리 중이라고 밝혔다. 고성산불은 지난 4일 오후 7시 17분께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한 주유소 개폐기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이 나 산으로 옮겨붙었다. 밤사이 강풍을 타고 번진 산불은 고성과 속초지역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 불로 1명이 숨지고 250㏊의 산림이 불에 탔다. 또 주택 125동과 창고 및 비닐하우스 11동 등이 소실됐다. 초속 20∼30m의 강한 바람을 타고 밤사이 산불이 확산하면서 인근 주민 4085명이 대피하기도 했다. 또 6315가구에 대한 가스공급이 한때 차단되기도 했다. 산림당국은 이날 날이 밝자 산림청 등 진화 헬기 21대와 1만 698명의 진화인력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다만 큰 불길은 잡았지만 바람이 거세 긴장을 늦출 수는 없는 상황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주불 진화했다는 것은 산불의 추가 확산 우려가 크게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진화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잔불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25㏊의 산림을 태운 인제산불은 50%의 진화율을, 110㏊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든 강릉 옥계산불은 20%의 진화율을 각각 보인다고 산림청은 설명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고성 산불 이틀째 헬기 24대 투입…“오전 중 진화 목표”

    고성 산불 이틀째 헬기 24대 투입…“오전 중 진화 목표”

    강원 고성 산불 이틀째인 5일 진화헬기 24대와 진화인력 6000여 명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 초속 5.1m의 바람이 불어 전날보다 진화 활동이 수월할 예정이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전날 발생한 고성 산불로 이날 6시 현재 속초 주민인 50대 남성 1명이 숨지고 4011명이 대피했다. 대피자들은 고성에서 2250명, 속초 1523명 등이다. 임야 250㏊와 건물 125채가량이 불에 타고, 3개 통신사 기지국 59곳과 중계기 65개가 불에 타면서 인터넷 180여 회선에 장애가 발생했다. 배전선로 1km가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166가구가 정전됐다. 고성 산불현장대책본부 관계는 “오전 중 진화를 목표로 가용 장비와 인력을 총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4일 밤 강릉 옥계에서 발생해 망상으로 번진 산불에도 헬기 22대, 진화 인력 2000여 명이 투입됐다. 옥계 산림 피해면적은 110ha로 집계됐다. 지상 인력은 밤새 산불현장에서 저지선을 구축하고 불길 확산을 막았다. 산불 지역마다 대책본부가 꾸려져 산불 진화 지휘를 하고있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와 구호협회, 적십자사 등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구호세트와 구호키트 등 긴급구호물자와 3500인분 생필품을 지원했다. 문 대통령은 0시20분 긴급회의를 주재해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돼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산불이 번질만한 우려 지역은 주민대피 등 선제조치를 취할 것 △인근 항구에 정박 중인 선박도 유사시 대피할 수 있도록 하고 학교 휴교령 등 아이들의 보호방안을 강구할 것 △언론에 산불발생 및 진화, 피해상황을 공개하고 산불 관련 행동요령을 구체적으로 알릴 것 등을 지시했다. 강원도 지역은 현재 산불 위기경보 ‘심각’ 단계가 발령된 상태다. 강원 지역에서는 속초 25곳, 고성 20곳, 강릉 2곳 등 47개 학교가 이날 휴업한다. 산불 확산에 대비해 6315가구 도시가스가 전날 오후 11시45분부터 차단됐다. 정부는 이날 오전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한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강남 피부과에서 필러 맞고 실명한 중국인···법원 “5911만원 배상”

    강남 피부과에서 필러 맞고 실명한 중국인···법원 “5911만원 배상”

    피해자 15억원 손해배상 청구했으나 법원은 4%만 인정“근로 수입보다는 자본적 수입이 커 그대로 인정은 무리”“중국 강소성 근로자 하루 평균 임금 3만원 기준으로 계산”국내·외 수십 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강남의 한 대형 피부과에서 필러를 맞다가 한쪽 눈이 실명된 중국인 여성에게 병원 측이 5911만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부장 심재남)는 중국인 정모씨가 A피부과 원장 박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15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5911만 665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정씨는 2013년 A피부과를 방문해 볼, 이마, 콧등 부위에 필러 시술을 받았다. 박씨가 직접 정씨의 콧등 부위에 캐뉼라(주사침)를 삽입해 필러를 넣는 과정에서 정씨가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고, 시술 중단과 함께 시야 검사를 했더니 정씨의 왼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정씨는 그날 곧바로 분당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좌안 중심망막동맥 폐쇄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지만 왼쪽 눈의 시력은 소실돼 ‘교정 불가’ 진단을 받았다. 또 미간과 콧등 주위 피부가 괴사하기도 해 성형외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재판부는 “끝이 뭉툭한 캐뉼라로 필러를 주입하더라도 혈관벽이 약한 등의 경우에 혈관을 손상시켜 혈관 내에 필러가 유입될 수 있고, 혈관 바로 옆에 국소적으로 집중 투입되면 혈관을 폐색시킬 수도 있다”면서 “피고가 시술 과정에서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아 캐뉼라로 원고의 눈 주위 혈관을 찌른 과실로 필러가 혈관 내로 주입됐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정씨에 대한 시술에 쓰인 필러의 사용설명서에는 ‘본 제품을 눈 주위와 미간 부위에 주입하지 마시오’, ‘혈관에 주입 신열관 폐쇄, 허혈, 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기재돼 있었다. 정씨는 재판에서 “중국에서 액세서리 영업점 38개를 운영하는 개인사업으로 인한 소득과 건물 임대소득을 합치면 월 평균 약 1억원이 된다”고 주장하며 일실수입 계산 결과 모두 15억원의 손해배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개인 사업주인 원고의 수입이 자본적인 수익에 의존하는 바가 크고, 사업주 개인의 노무에 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경우에는 추정 통계소득을 기초로 장래 상실 수입을 산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결국 재판부는 “임대소득은 그 운영에 사업주의 육체적·정신적 활동 내지 근로를 요한다고 보이지 않는다”면서 일실수입을 중국 강소성의 사영기업 근로자 평균 임금(하루 약 3만원)을 기준으로 배상액을 정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아하! 우주] NASA 뉴허라이즌스가 밝히는 ‘울티마 툴레’의 미스터리

    [아하! 우주] NASA 뉴허라이즌스가 밝히는 ‘울티마 툴레’의 미스터리

    인류가 탐사한 가장 먼거리 천체 ‘울티마 툴레’의 미스터리가 하나씩 풀리고 있다. 2015년 7월 명왕성을 방문한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심(深)우주탐사선 뉴허라이즌스가 3년반 동안 16억㎞(11AU)를 더 날아 카이퍼벨트의 울티마 툴레에 도착한 것은 2019년 새해를 알리는 종이 친 직후였다. 울티마 툴레는 ‘알려진 세계를 넘어서’라는 의미의 중세시대 용어로 공식 이름은 ‘2014 MU69’다. 뉴허라이즌스가 초기에 보내온 데이터에 의하면, 지구로부터 지구-태양 간 거리의 44배인 65억㎞나 떨어져 있는 카이퍼벨트의 소행성 울티마 툴레는 처음에는 눈사람 모양으로 파악됐다. 이는 두 천체가 충돌로 인해 눈사람 모양으로 붙은 것으로, 큰 것은 울티마, 작은 것은 툴레로 각각 명명됐다.그러나 뉴허라이즌스가 플라이바이 직후 찍은 영상을 분석해본 결과, 울티마 툴레가 구형보다는 납작한 팬케이크처럼 편평한 모양임이 밝혀졌으며, 크기는 35x15㎞, 폭 15㎞임을 알아냈다. 울티마는 19.5㎞, 툴레는 14.2㎞이다. 이처럼 NASA 과학자들은 뉴허라이즌스의 데이터로 울티마 툴레의 퍼즐을 하나씩 풀어가면서 태양계 형성기의 진화와 조성 그리고 지질학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이제껏 밝혀진 바에 따르면, 울티마 툴레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인류가 최초로 탐사한 연성(連星)이다. 이 천체의 접근 사진은 눈사람 같은 이상한 형태를 보여줬지만, 최근접 촬영된 이미지를 분석해본 결과, 뉴허라이즌스는 울티마 툴레로부터 불과 3,500㎞ 거리 이내까지 접근했다. 이 소행성은 놀랄만큼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울티마 툴레는 크고 납작한 판형(울티마)에 작고 둥근 판형(툴레)이 연결된 형태로 이뤄져 있다.​ 이런 특이한 형태는 과학자들에게 커다란 놀라움을 안겨줬다. 미국 콜로라도주(州) 볼더에 있는 사우스웨스트연구소(SwRI)의 앨런 스턴 뉴허라이즌스 수석연구원은 “우리는 태양계 어디서도 이런 형태의 천체를 본 적이 없다”고 밝히면서 “이 발견은 행성을 형성하는 벽돌인 미행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 행성과학자들을 행성 연구의 원점으로 되돌려보내는 사건”이라고 논평했다. 울티마 툴레는 원시 태양계의 물질이 완벽하게 보존돼 있는 천체로, 태양계가 탄생될 때 행성들이 어떻게 형성됐는가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울티마와 툴레는 처음에는 분리된 소행성으로 카이퍼벨트에 있는 다른 연성계처럼 서로의 둘레를 공전하고 있었을 것이며, 무엇인가의 힘에 의해 ‘부드러운’ 합체를 이뤘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이 같은 추론은 우리 태양계의 형성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미국 워싱턴대학의 윌리엄 매키넌 뉴허라이즌스 공동연구자는 “울티마 툴레의 상호 공전 모멘텀이 대부분 소실된 나머지 두 천체가 이처럼 합병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 합병의 증거는 울티마 툴레의 연결부인 목 부분에 증거를 남기고 있다. 뉴허라이즌스 과학자들은 울티마 툴레의 표면에서 메탄올, 물얼음 그리고 다른 유기 분자의 증거를 발견했다. 이 같은 발견은 과학자들에게 원시 태양계 천체 연구에 커다란 기회를 줄 것으로고 기대되고 있다. 울티마 툴레의 데이터 전송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2020년 여름이 돼야 모든 데이터 전송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뉴허라이즌스는 여전히 카이퍼벨트 지역을 여행하고 있으며, 카이퍼 벨트 천체들에 대한 관측을 계속하는 한편, 카이퍼벨트 우주먼지 환경과 하전입자 방사선 지도를 작성하고 있다. ​2019년 4월 현재, 뉴허라이즌스는 지구에서 약 66억㎞(44AU) 떨어진 지점에서 초속 14.7㎞로 궁수자리 방향으로 항해하고 있는 중이다. 이는 빛이 6시간 달려야 하는 거리로, 지구와 교신을 주고받는 데 12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과학계는 지금] 나노막대 활용 디스플레이 필름 개발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이도창, 김신현 교수팀이 반도체 나노막대가 일렬로 배열된 나노미터(㎚) 두께의 편광필름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기술은 나노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나노 레터스’ 최신호에 실렸다. 반도체 나노막대는 막대의 방향에 따라 편광을 내는 독특한 광학 특성을 갖고 있다. 반도체 나노막대를 활용한 디스플레이 필름 제작 시도는 많았지만 표면이 불균일해지고 두꺼워져 대부분 실패했다. 연구팀은 공기와 제조용액 계면과 나노막대 간 인력, 나노막대들 사이의 인력을 순차적으로 조절함으로써 균일한 단일층 두께의 나노막대 필름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번 기술을 활용하면 빛의 소실을 최소화해 디스플레이의 효율과 화질을 높이고 디스플레이의 두께를 얇게 만들 뿐만 아니라 제작비용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전란에 소실된 왕들의 초상화는 어떻게 되살아났을까

    전란에 소실된 왕들의 초상화는 어떻게 되살아났을까

    조선 16대 왕인 인조의 생부 ‘원종’을 그린 국립고궁박물관의 ‘원종어진’은 한눈에 보기에도 깔끔하다. 보존을 잘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사실 이 그림은 1872년 작품과 1935년 작품을 디지털로 합성해 완성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조선시대에 그린 왕의 초상화 ‘어진’의 복원 과정을 담은 ‘어진, 왕의 초상화’를 발간했다고 20일 밝혔다. 책은 2012~2017년 어진 보존처리 과정에 참여한 ‘국내 1호 미술사학자’ 조선미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어진 연구 집대성이다. 한국전쟁 때까지만 해도 함경도 영흥 준원전과 전라도 전주 경기전의 태조어진을 비롯해 창덕궁 신선원전에 12명의 임금 어진 48점이 봉안됐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피해 부산에 옮겨졌다가 1954년 화재로 거의 다 타버려 겨우 몇 점만 남았다. 정부는 2012~2017년 홍룡포본 태조어진을 시작으로 원종, 숙종, 순조, 익종, 철종, 고종, 순종어진을 보존처리했다. 태조와 원종, 순종 어진 등 원형 모사가 가능한 어진은 새롭게 모사작업을 병행했다. 작업 모든 과정에 참여한 조 명예교수는 남은 어진은 물론 복원 후 모습과 모사를 위한 디지털 합성 과정, 얼굴·손·귀 등 각 부분 복원에 참고될 관련 비교 이미지 등을 책에 수록하고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조 명예교수는 “어진 제작은 당대 최고의 화사가 모여 만든 협업의 산물이자 그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품으로 한국학 및 미술학적 의미가 크다”면서 “책을 통해 새롭게 복원된 어진이 (관련) 연구에 이바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국가 권력이 부풀린 서훈등급…사상·이념 족쇄 풀고 재평가를”

    “국가 권력이 부풀린 서훈등급…사상·이념 족쇄 풀고 재평가를”

    24일 서울신문 심층 설문조사에 참여한 역사학계 전문가들은 “이제부터라도 사상과 이념의 족쇄에서 독립운동가들을 풀어 줘야 한다”고 밝혔다 민족주의자, 자유민주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여부를 떠나 ‘한국의 독립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최우선 기준에 놓고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남북 화해 분위기를 반영하고 통일에 대비하고자 우파 독립운동사 위주로 진행됐던 연구 범위도 넓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독립 위해 무엇을 했는지 평가해야 역사학계는 김원봉(1898~1958)과 박헌영(1900~1956)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계열 활동가들을 독립운동사에서 복권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원봉은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스무 살이던 1918년 중국 난징의 진링대학(현 난징대학)에 입학한 뒤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이 조선 같은 약소국을 돕지 않을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고 무장투쟁가의 삶을 선택했다. 이듬해 ‘의열단’을 창단하고 광복을 맞아 한국에 돌아온 1945년까지 26년간 일제와 끊임없이 맞서 싸웠다. 조선총독과 친일파, 한국인 밀정을 처단하고자 의열투쟁을 진두지휘했고, 1938년 중국 국민당 정부로부터 첫 한인 무장세력으로 인정받은 ‘조선의용대’도 세웠다. 서울신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 작가는 “만약 그가 해방 뒤 ‘친일 경찰’ 노덕술(1899~1968)에게 치욕스런 고문을 당하지 않았다면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노덕술의 고문은) 일부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보다 우위에 섰던 당시 대한민국의 현실을 상징하는 뼈아픈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김원봉은 해방 뒤 북한 정권 수립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배제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후대에 만들어진 시각으로 역사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라면 그가 어떤 사상을 가졌든지 상관없이 해방을 맞은 1945년까지 무엇을 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학계 “임병직 서훈은 5등급이 적당” 학계에서는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고평가된 인물로 임병직(1893~1976)과 이승만(1875~1965)을 지목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정권을 쥔 이들이 자신과 측근의 공적을 지나치게 부풀렸다는 지적이다. 임병직은 이승만이 미국에 머물던 시절 그를 보좌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위원을 지냈고 해방 뒤 외무부 장관과 주인도 총영사 등을 맡았다. 박정희(1917~1979)의 5·16 쿠데타를 지지했고, 사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에 추서됐다. 그에 대한 서훈등급을 두고 ‘정치적 처세의 결과물’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홍선표 하나역사연구소장은 “임병직은 이승만의 비서 일을 한 것 말고는 한국 독립에 크게 기여한 게 없다. 학계에서는 ‘5등급 정도가 적당하다’는 평가가 많다”며 “그럼에도 그가 김구, 윤봉길 등과 같은 반열의 유공자가 된 것은 1976년 서훈 심사 당시 (임병직이 지지선언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 권력에 의해 포상 체계가 흔들린 대표적 사례로 반드시 거론돼야 할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역사학계는 우리 독립운동사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로 김구(1876~1949)와 안창호(1878~1938), 안중근(1879~1910)을 꼽았다. 외국인으로는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와 장제스(1887~1975), 후세 다쓰지(1880∼1953)를 들었다. 스코필드는 영국 태생의 캐나다 감리교 선교사로 1919년 일제의 제암리 학살사건 참상을 전 세계에 타전해 일제의 만행을 알렸다. ‘석호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3·1 운동 민족대표 제34인’으로도 불린다. 후세는 일본의 인권변호사로 박열(1902~1974) 등 항일운동가들을 변론하며 한국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제대로 된 독립운동사 연구 풍토 마련해야 학계에서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을 맞아 정부가 우리 역사학계의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진단해 제대로 된 독립운동사 연구 풍토를 만들 수 있게 노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언론 역시 일회성 100주년 기획들로 끝내지 말고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방안을 강구해 달라고 주문했다. 홍 소장은 “역사의 성과는 (국가나 언론의) 각종 기념행사나 기획기사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찾지 않던 자료를 어렵게 발굴해 밤새워 연구하는 외로운 학자들에 의해 피어나는 것”이라며 “우리 역사학계 연구 수준은 매우 미약하다. 인문학이 고사 위기인데 역사학계 역시 마찬가지다. 밤낮 없이 연구실에 처박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연구에 몰두하는 이들에게 희망과 열정이 피어오르게 할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문서가 1932년 윤봉길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와 한국전쟁 등으로 대부분 소실됐다. 아직도 행방을 모른다. 정부는 (일본이나 북한 등과 교섭해) 이것부터 찾아야 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도 “독립유공자 포상이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그사이 상당수 자료가 사라져 지금도 연구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아직도 3·1운동, 독립운동과 관련해 포상을 못 받은 분들이 다수다. 보훈처 등에서 연구를 지원한다면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무질서한 서훈 체계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이번 기회에 독립운동가 서훈 체계를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대한민국 건국훈장은 국가 수립에 뚜렷한 공을 세웠거나 국기(國基)를 다지는 데 공적이 있는 자에게 수여한다. 대한민국장(1등급)과 대통령장(2등급), 독립장(3등급), 애국장(4등급), 애족장(5등급) 등 5단계로 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가보훈처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남성 1만 5180명, 여성 357명 등 모두 1만 5537명이다.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가산을 모두 팔아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1867~1932),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1858~1932) 등이 3등급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이승만은 대통령 재임 중 자신을 1급으로 ‘셀프 서훈’해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서훈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며 “정부는 독립운동 주동자 가운데 거사를 벌이다가 죽지 않은 이는 알아주지도 않는다. 이건 정말 아니다. 단순 정량 평가가 아닌 정성 평가를 통해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설문응답자 명단 기유정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김삼웅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 김형목 독립기념관 선임연구위원, 노상균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원,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 백옥진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이양희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 연구원, 이원규 역사소설가, 장규식 중앙대 사학과 교수, 장석흥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위원, 전성현 동아대 사학과 교수, 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최기영 서강대 사학과 교수,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 홍선표 하나역사연구소장, 익명 요청 2명(가나다순)
  • 그 기억, 콕 찍어 지워드립니다

    그 기억, 콕 찍어 지워드립니다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100대 영화에 포함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1976년 작품 ‘택시 드라이버’와 1978년 마이클 치미노 감독이 만든 ‘디어 헌터’의 공통점은 뭘까.우선 주인공이 로버트 드니로라는 점. 그리고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인해 삶이 망가져 버린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처럼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전장이나 예상치 못한 지진해일(쓰나미), 지진, 화산 같은 자연재해와 대형 사건사고에 노출된 사람들은 단 한 번의 경험으로 새겨진 트라우마 때문에 남은 삶을 정상적으로 영위해 나가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광유전학이나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삶 자체를 위협하는 고통스러운 기억만을 족집게처럼 콕 찍어 없애는 방법들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기초과힉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신희섭 단장팀은 시각자극을 통해 PTSD를 치료하는 방법의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공포기억과 관련한 새로운 뇌 회로를 발견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14일자에 실렸다. 현재 신경정신과에서는 트라우마를 치료할 때 환자가 공포기억을 떠올리도록 한 뒤 빛을 이용해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도록 시각자극을 주는 ‘안구운동 민감 소실 및 재처리요법’(EMDR)을 활용하고 있다. EMDR은 트라우마로 남은 공포기억을 회상하면서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도록 함으로써 뇌의 정보처리 기능을 활성화시켜 두려웠던 기억을 저 멀리 사라지게 만드는 기법이다. 실제로 2001년 미국 9·11테러, 2004년 발생한 태국 쓰나미 사태, 1995년 일본 고베지진 때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포기억을 치유하는 데 EMDR이 활용된 바 있다. EMDR이 트라우마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것은 알려져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작동돼 공포기억을 제거하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생쥐에게 특정 소리와 함께 전기충격을 줘 소리에 대한 공포기억을 심어 줬다. 공포기억이 생긴 생쥐는 소리만 들려도 몸이 얼어붙는 공포반응을 보이게 된다. 연구팀은 생쥐가 소리에 공포반응을 보일 때 좌우로 반복해서 깜박거리는 LED 빛을 보도록 하면 몸이 얼어붙는 공포반응이 빠르게 감소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시간이 지난 뒤나 다른 장소에서 똑같은 상황에 맞닥뜨려도 공포반응이 나타나는 비율이 낮다는 것도 확인했다. 사람의 트라우마 치료에 사용되는 EMDR의 치료 효과가 생쥐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빛과 유전공학적 기법을 결합해 특정 세포를 조절하는 광유전학을 통해 뇌에서 안구 운동과 주의집중을 담당하는 상구와 중앙 내측 시상핵을 거쳐 기억이 저장되는 편도체에 이르는 신경회로가 공포기억을 관장하는 새로운 통로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신희섭 단장은 “PTSD는 단 한 번의 충격적인 경험으로 형성되지만 기존의 약물과 심리치료 방식으로는 치유기간이 오래 걸린다”며 “이번에 발견한 공포기억 억제회로를 조절하는 약물이나 기술을 개발해 PTSD를 좀더 손쉽게 치료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IBS 신희섭 단장팀 연구 이전에 카이스트 생명과학과와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컬럼비아 의대 공동연구팀은 뇌의 흥분성 신경세포에서 포도당과 유사한 물질을 대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이노시톨 대사효소를 제거하면 공포기억이 빠르게 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해 미국 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PNAS’ 1월 28일자에 발표하기도 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그 기억, 콕 찍어 지워드립니다

    그 기억, 콕 찍어 지워드립니다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100대 영화에 포함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1976년 작품 ‘택시 드라이버’와 1978년 마이클 치미노 감독이 만든 ‘디어 헌터’의 공통점은 뭘까. 우선 주인공이 로버트 드니로라는 점. 그리고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인해 삶이 망가져 버린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처럼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전장이나 예상치 못한 지진해일(쓰나미), 지진, 화산 같은 자연재해와 대형 사건사고에 노출된 사람들은 단 한 번의 경험으로 새겨진 트라우마 때문에 남은 삶을 정상적으로 영위해 나가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광유전학이나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삶 자체를 위협하는 고통스러운 기억만을 족집게처럼 콕 찍어 없애는 방법들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기초과힉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신희섭 단장팀은 시각자극을 통해 PTSD를 치료하는 방법의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공포기억과 관련한 새로운 뇌 회로를 발견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14일자에 실렸다. 현재 신경정신과에서는 트라우마를 치료할 때 환자가 공포기억을 떠올리도록 한 뒤 빛을 이용해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도록 시각자극을 주는 ‘안구운동 민감 소실 및 재처리요법’(EMDR)을 활용하고 있다. EMDR은 트라우마로 남은 공포기억을 회상하면서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도록 함으로써 뇌의 정보처리 기능을 활성화시켜 두려웠던 기억을 저 멀리 사라지게 만드는 기법이다. 실제로 2001년 미국 9·11테러, 2004년 발생한 태국 쓰나미 사태, 1995년 일본 고베지진 때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포기억을 치유하는 데 EMDR이 활용된 바 있다.EMDR이 트라우마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것은 알려져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작동돼 공포기억을 제거하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생쥐에게 특정 소리와 함께 전기충격을 줘 소리에 대한 공포기억을 심어 줬다. 공포기억이 생긴 생쥐는 소리만 들려도 몸이 얼어붙는 공포반응을 보이게 된다. 연구팀은 생쥐가 소리에 공포반응을 보일 때 좌우로 반복해서 깜박거리는 LED 빛을 보도록 하면 몸이 얼어붙는 공포반응이 빠르게 감소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시간이 지난 뒤나 다른 장소에서 똑같은 상황에 맞닥뜨려도 공포반응이 나타나는 비율이 낮다는 것도 확인했다. 사람의 트라우마 치료에 사용되는 EMDR의 치료 효과가 생쥐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빛과 유전공학적 기법을 결합해 특정 세포를 조절하는 광유전학을 통해 뇌에서 안구 운동과 주의집중을 담당하는 상구와 중앙 내측 시상핵을 거쳐 기억이 저장되는 편도체에 이르는 신경회로가 공포기억을 관장하는 새로운 통로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신희섭 단장은 “PTSD는 단 한 번의 충격적인 경험으로 형성되지만 기존의 약물과 심리치료 방식으로는 치유기간이 오래 걸린다”며 “이번에 발견한 공포기억 억제회로를 조절하는 약물이나 기술을 개발해 PTSD를 좀더 손쉽게 치료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IBS 신희섭 단장팀 연구 이전에 카이스트 생명과학과와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컬럼비아 의대 공동연구팀은 뇌의 흥분성 신경세포에서 포도당과 유사한 물질을 대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이노시톨 대사효소를 제거하면 공포기억이 빠르게 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해 미국 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PNAS’ 1월 28일자에 발표하기도 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전북에서도 홍역환자 발생

    전북지역에서 홍역환자가 발생했다. 전북도는 12일 익산시에 거주하는 정모(15)양이 홍역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정 양은 지난 6일부터 발열, 기침, 구토, 설사 증상을 보여 전북도 보건환경연구원 검사 결과 홍역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정 양은 2차에 걸쳐 홍역 예방주사를 맞았으나 항체가 소실 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 양은 지난 1월 21일부터 25일까지 가족과 함께 캄보디아를 여행하고 돌아온 뒤 열흘 정도 지난 뒤부터 홍역 증상을 보였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일본인 극장 몰려 있던 충무로… 조선 영화관 각축장 된 종로

    일본인 극장 몰려 있던 충무로… 조선 영화관 각축장 된 종로

    1903년 6월 한성전기회사가 주최한 동대문 기계창에서의 활동사진 상영회가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 공간은 동대문활동사진소로 자리잡는다. 한국에서 관람료를 내고 들어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화를 상영했다는 가장 첫머리의 기록이다. 그리고 1919년 10월 조선인 거리의 영화 상설관 단성사에서 연쇄극 ‘의리적 구토’를 상영해 조선인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는 한국 최초로 만들어진 영화가 다중이 모인 극장에서 공개된 가장 첫 번째 사건이다.이번 주제는 활동사진이 상영됐던 공간, 바로 ‘영화관’에 관한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처음 활동사진을 보기 위해 동대문활동사진소에 운집했던 1903년부터 조선인 거리의 연극장 단성사가 영화 상설관으로 새롭게 태어난 1918년까지 서울 도심에는 어떤 영화관들이 생겨났고, 영화관 거리는 어떤 모습으로 형성됐을까. 우리가 이 시기 영화관의 설립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제작·배급·상영으로 이어지는 영화산업의 기초적인 형태가 구축되기 시작했음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영화관 설립 이전의 상영 공간 한성전기회사가 운영하던 동대문활동사진소는 1908년 흥행 단체인 광무대(光武臺)가 인수하며 ‘광무대’라는 이름으로 재출발한다. 전통 연희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사진까지 상영했던 공간으로 1914년까지 이어졌다. 운영은 조선인 흥행사 박승필이 맡았는데, 이후 그는 단성사를 경영하고 연쇄극을 제작하는 등 초창기 한국 영화의 기반을 만든다. 아직 본격적인 영화 상설관이 설립되지 않았던 시기 활동사진을 상영하던 공간은 또 어디에 있었을까. 서대문 정차장 근처 프랑스인 마르탱이 운영하던 호텔 애스터하우스에서 1907년 프랑스에서 가져온 필름들을 상영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즈음 영화 상설관은 아니지만, 무대 공연을 중심으로 한 극장들이 생겨났다. 상설 극장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902년 대한제국 황실이 국가 경사를 위해 설립한 ‘희대’(戱臺)다. 지금의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 자리에 있었다. 사실 이전의 조선은 건물 안에서 공연하는 극장문화가 없었으므로 최초의 근대식 극장으로 기록되는 곳이다. 희대는 협률사(協律舍) 또는 원각사(圓覺社)로도 불렀는데, 이곳을 빌려 연희를 하던 단체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렀다. 가장 먼저 협률사가 운영했던 희대는 1904~1905년 러일전쟁 때 폐지됐다가 1907년 2월부터 관인구락부(官人俱樂部)라는 이름의 사교회장으로 활용됐고, 1908년 7월부터 작가 이인직이 ‘원각사’라는 이름의 연희장으로 운영하며 연극과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볼거리들을 상연했다. ●북촌과 남촌의 극장가 일제강점기 서울 장안은 청계천을 경계로 북한산 아래 북촌의 조선인 거주지와 남산 아래 남촌의 일본인 거주지가 분리돼 있었다. 자연스럽게 극장가 역시 민족별로 구분해 형성됐다. 조선인 극장들은 조선인들의 전통적인 상권인 종로통을 중심으로 들어섰고, 일본인 극장들은 지금의 충무로인 본정(本町)의 일본인 상권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북촌에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종로 2가의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1907년부터 단성사(團成社), 연흥사(演興寺), 장안사(長安社)와 같은 민간 극장이 설립됐다. 조선인들을 위해 전통 연희, 신파극, 활동사진 등 다양한 볼거리가 상연됐던 공간들이다. 조선인 극장의 형성과 프로그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남촌의 일본인 극장들이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대한제국 시기 한국으로 많은 수의 일본인이 건너왔고, 자연스럽게 일본인 거류민들을 위한 극장이 생겨났다. 1907년을 전후한 시점 욱정(旭町) 1정목 쪽의 가부키자(1906년 설립·이하 설립연도), 본정 2정목의 혼마치자(1906년쯤), 본정 3정목의 고토부키자(1907년쯤), 본정 4정목에 이르면 게이조자(1906년쯤)가 있었다. 명동 방향으로는 나니와부시(浪花節)를 공연하는 나니와칸(1909년), 그리고 남대문 앞에는 신파극을 공연하는 이나리자(1910년)가 있었다. 영화 상영을 중심으로 하는 첫 활동사진 상설관은 1910년 지금의 을지로인 황금정 2정목에 세워진 경성고등연예관이다. 목조 건물로 1층에는 긴 의자, 2층에는 다다미를 배치해 600여명이 앉을 수 있었다. 당시 개관 광고를 보면 프랑스 파테사의 영사기를 도입해 세계 각국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세계 제일 활동사진관’임을 거창하게 선전한다. 당시 관객은 조선인과 일본인이 각각 절반 정도였다. 초창기 영화감독 이구영의 기록에 따르면 서양인 권투선수와 일본인 유도선수가 겨루는 단편영화를 상영하던 중 조선인 관객들이 서양 선수를 응원하는 바람에 일본인 관객들과의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후 일본인 거리의 황금정 3정목에는 다이쇼칸(1912년), 고가네칸(1913년)이 들어섰다. 본정의 가장 번화가인 1정목과 2정목의 교차점에는 1915년 유라쿠칸이 설립돼 남촌의 대표적인 활동사진관으로 자리잡았다.●서양 영화를 상영한 조선인 영화관 북촌에는 1912년 우미관(優美館)이 영화 상설관으로 처음 등장한 후 1907년 설립된 단성사(團成社)가 1918년 영화관으로 재개관했으며, 1922년 조선극장이 설립되면서 조선인 영화 상설관으로는 3대 극장이 각축전을 벌이게 된다. 종로통에 세워진 우미관은 조선인을 대상으로 처음 설립한 영화관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주로 유니버설의 연속영화(serial film·지금의 텔레비전 드라마처럼 20분 분량의 필름을 1주일에 1편씩 상영하는 방식)와 유니버설의 자회사인 블루버드와 레드페더 등에서 제작한 5권 분량의 장편 영화를 상영한 서양 영화 전문관이었다. 1907년 세워져 복합 연희장으로 운영되던 단성사는 조선인이 소유한 유일한 극장이었다. 1914년 1월 안재묵이 수용 인원 1000명의 대형 극장으로 신축했으나 1년 만에 화재로 소실된 후 1917년 2월 고가네유엔(黃金遊園)의 소유자 다무라 기지로가 인수했다. 다무라는 조선인 흥행사 박승필에게 단성사의 운영권을 주었고, 그는 1918년 12월 활동사진관으로 신축해 흥행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조선인 영화 상설관이 서양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외화전문관’이었고, 일본인 영화 상설관은 일본 영화를 기본으로 상영하는 ‘방화관’(邦畵館)이면서 서양 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병영관’(映館)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1920년대 들어 경성의 영화관 거리는 조선인 영화관의 경우 조선인 변사가 해설하는 서양 영화를 상영하고, 일본인 영화관은 일본인 변사가 해설하는 일본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구도가 굳어졌다. 이즈음 서울 장안 극장가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활동사진 수입 초기에 선보이던 뤼미에르 형제나 미국 바이타스코프의 백 피트짜리 짧은 필름이 아니었다. 움직이는 사진을 보고 신기해하고 달려오는 기차를 피하던 구경꾼들은 이미 지난 얘기였다. 이야기 전달을 위한 구성력을 갖추어 가는 미국과 유럽의 장편 극영화들은 활동사진을 좋아하던 ‘애활가’(愛活家)들을 본격적인 ‘영화관객’으로 훈련시켰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5·18 그때 그 모습으로… 옛 전남도청 복원

    5·18 그때 그 모습으로… 옛 전남도청 복원

    총탄 자국도 재현… 2022년 완공 목표5·18민주화운동 최후 항전지였던 광주 동구 광산동 옛 전남도청이 항쟁 당시 모습으로 복원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9일 옛 전남도청 별관 1층에서 용역 최종 보고회를 갖고 내용과 일정 등을 공개했다. 복원 대상은 옛 도청 본관·별관·회의실, 옛 전남경찰청 본관·민원실, 상무관 등 모두 6개 건물이다. 용역은 조선대 민주화운동연구원이 맡았다.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민주평화교류원으로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옛 전남도청 본관 1층 서무과와 2층 부지사실 등을 재건축한다. 이를 위해 현재 이 자리에 설치된 엘리베이터와 화장실을 제거해야 한다. 1층 서무과는 5·18 당시 시민군 상황실과 방송실이, 2층 부지사실은 수습대책위가 있던 곳이다. 상황실·경비실·정문 기둥에 있었던 총탄 자국 등도 재현할 방침이다. 문화전당 입구로 사용하기 위해 헐어버린 도청 별관 일부 건물도 복원돼 본관과 이어진다. 다만 1·2층은 전당 입구로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실제 복원작업은 3·4층 위주로 진행된다. 현재 일부 전시물이 있는 옛 전남경찰청 본관은 전면 출입구와 내부 공간을 복원한다. 리모델링이 중단되면서 빈 건물로 남아 있던 도청 민원실과 회의실 등도 지붕과 내부공간 등을 예전대로 복원한다. 이철운 문체부 옛전남도청복원전담팀장은 “이번 용역은 건물 외형 복원에 중점을 뒀고, 내부 전시 등 공간 구성은 추가적인 자료 수집과 검증, 5월 단체 등의 의견 수렴 과정 등을 거쳐 완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체부는 이번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공사 설계용역 등을 거쳐 2022년까지 복원을 마칠 방침이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국내 최초 사진기 제작한 ‘동남사 사진기 전시관’ 개관

    국내 최초 사진기 제작한 ‘동남사 사진기 전시관’ 개관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기 제작사인 ‘동남사 사진기 전시관’이 전남 순천에서 문을 열었다. 25일 순천시에 따르면 국내에서 가장 먼저 사진기를 만든 옛 ‘동남사’가 있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동남사 사진기 전시관’이 25일 중앙동 랜드로바 건물 지하 1층에서 개관했다. 순천시 도시재생 선도사업 과정에서 발굴된 ‘동남사’는 1950년 전후 국내 최초로 사진기를 제작·판매한 장소다. ‘동남사’ 회사 로고가 새겨진 각종 사진기자재를 납품했었다. 1950년대 중반 국산장려산업박람회에 출품해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전국에서 사진기를 제작하는 기계공업사는 ‘동남사’가 유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남사’에 대한 관련 자료는 안타깝게도 1976년 대형화재로 소실됐다. 이후 창업주의 아들 김중식 동남사사진기보존위원회 위원장의 기억으로 ‘동남사’ 제품과 자료를 수집하고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등 열정을 쏟아왔다. 최근에는 지역사회에서 동남사 재생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사진기 복원과 보전을 위한 단체도 결성됐다.전국을 대상으로 2년여 동안 활동한 끝에 색이 바래고 먼지가 쌓인 채로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던 그때의 사진이나 사진기를 찾아냈다. 이같은 노력끝에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이야기하는 장소로 거듭났다. 도시재생사업과 지역문화유산인 동남사진기를 연결시킨 것으로 주민이 제안하고 시에서 지원해 만들어진 사진·역사문화 공간이다. 전시관에는 대한민국과 순천의 역사 변천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사진과 함께 기록해 놓았다. 옛 동남사 사진기를 비롯한 근·현대 사진기를 전시해 체험도 할 수 있다. 김중식 위원장은 “앞으로 사진 관련 포럼과 고증확보, 체험프로그램 등을 펼쳐 사진의 역사·문화를 선점해나가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조태훈 시 도시재생과장은 “후대에 죄인이 되지 않기위해 귀중한 과거 유산을 되살리게 됐다”며 “사진 애호가들뿐 아니라 시민 누구나 호기심을 갖고 찾아와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는 역할이 되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이따금 풍경 소리만… 그리고 고요

    이따금 풍경 소리만… 그리고 고요

    경남 산청군 대성산 절벽에 절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산허리를 도는 길을 자동차로 20분쯤 오르면 모습을 드러내는 절, 정취암입니다. 누군가는 정취암을 ‘절벽 위에 핀 연꽃’이라 칭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거친 절벽의 끝에 어찌 이리 다소곳한 암자를 세웠을까요. 절은 속세의 시끄러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습니다. 소란스러움은 이곳에서 사치입니다. 셋보다 둘이, 둘보다 혼자가 어울리는 절이지요. 한겨울인지라 자연은 색을 잃었고, 깊은 산중인지라 절은 소리를 잃었습니다. 이따금 풍경 소리가 꿈결인 양 아스라하게 들려올 뿐입니다. 색과 소리를 내려놓은 절에서 마음이 고요로 차오릅니다.정취암의 역사는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신라 신문왕 6년(686) 동해에서 부처가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발하니 한 줄기는 금강산을, 다른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 이때 의상대사가 두 줄기 서광을 쫓아 금강산에는 원통암을, 대성산에는 정취사(지금의 정취암)를 세웠다고 한다. 고려 말에는 공민왕을 위시하는 개혁세력의 거점이었고 현대에 들어서는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고암 대종사나 성철 대종사가 머물며 정진했다. 정취암이 이름난 것은 절이 품은 풍경 때문이다. 자그마한 절이지만 산중 높은 곳에 자리해 산청의 산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깊은 산속, 자연을 벗하며 혼자만의 적요를 즐기기에 이보다 좋은 절이 어디 있을까. 옛날에 정취암에 가려면 산길을 오르며 고생깨나 했겠지만, 2010년 도로가 닦이며 지금은 입구까지 자동차로 편히 갈 수 있다.●기암절벽에 매달려 산청을 굽어보는 절, 정취암 절 옆은 까마득한 절벽이다. 겨울바람에 댕그랑 울려 퍼지는 풍경이 이곳의 유일한 소리다. 정취암 입구에 서자 전각과 그 뒤의 바위 봉우리가 회화적인 구도를 이룬다. 절은 전각이 올망졸망 모여 아담하다. 사람을 긴장하게 하는 웅장함 대신 시골집 앞마당 같은 포근함이 맴돈다. 입구를 지나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은 정취암의 주전인 원통보전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정취관음보살을 본존불로 모신다. 오늘날 원통보전에 자리한 산청 정취암 목조관음보살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3호)은 조선 효종 3년(1652) 때 화마로 소실되었던 것을 2년 뒤 새로 만든 것이다. 50cm 정도 크기의 인상이 부드러운 관음보살이다. 네모진 얼굴에 가느다란 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하다. 원통보전 뒤의 돌계단을 오르면 왼쪽에 응진전, 오른쪽에 삼성각이 있다. 삼성각에서 볼 것은 석조 산신상 뒤에 봉안된 산청정취암산신탱화(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3호)다. 일반 탱화에는 산신이 호랑이 옆에 앉아 있는데 비해 이 그림은 호랑이에 올라탄 산신을 협시동자가 보좌하고 있다. 우리나라 토속신앙인 산신과 불교의 융합을 보여주는 예다.관음보살좌상과 산신탱화를 봤다면 절이 품은 더 큰 보물을 만나러 갈 차례다. 응진전 옆에 난 등산로를 10여 분 올라 절 뒤의 너럭바위로 향한다. 등산로 곳곳에 먼저 다녀간 이들이 쌓은 돌탑이 이정표가 되어준다. 편평한 너럭바위에 서자 위로는 하늘이요, 아래로는 산청의 산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산수화는 정취암이 간직한 더 큰 보물이다. 첩첩이 밀려오는 산 능선, 색을 벗은 산청의 들녘, 산허리를 휘감은 도로가 펼쳐진다. 장관이다. 바위 아래에는 정취암 전각의 지붕이 정답게 이웃한다. 하계를 내려다보는 신선이 된 양 풍경 놀음을 즐기느라 겨울바람의 매서움도 잊는다. 일행과 함께 왔더라도 너럭바위에서만큼은 잠시 혼자일 것을 권한다. 이토록 고요한 순간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절 처마에 매달린 풍경 소리가 이따금 적막을 깰 뿐 고요 뒤의 또 다른 고요가 한없이 이어진다. 너럭바위에서 보이는 풍경의 또 다른 매력은 ‘시선의 교차’에 있다. 도로에서 정취암이 보이고 바위에서 지나온 도로가 보인다. 목적지를 올려다보거나 온 길을 돌아보게 되는 여행지는 많지만 시선이 양방향으로 오가는 곳은 드물다. 앞으로 가야 할 자리와 지나온 길을 확인할 수 있는 곳, 그렇게 여행의 궤적이 선명해지는 곳.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실존적 감각이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라면 정취암은 분명 근사한 여행지다. ●따뜻한 꽃 목화가 뿌리내린 땅, 목면시배유지 ‘붓 대롱 속에 숨긴 목화 종자가 조선으로 들어온다. 목화 씨앗 10여 개가 산청에 뿌려진다. 그로부터 3년 뒤 목화가 전국적으로 재배된다. 한겨울에도 삼베옷을 입고 추위에 떨던 조선 백성들은 포근한 솜옷을 입게 된다.’ 문익점의 목화 이야기가 목면시배유지에서는 사뭇 새롭다. 고려 말, 문익점과 장인 정천익이 목화 재배에 성공한 곳이기 때문이다. 목면시배유지는 전시관, 면화시배사적비, 삼우당 유허비, 부민각, 효자비각으로 이뤄진다. 목면시배유지 전시관은 올해부터 무료로 개방해 발 디디기가 더 쉬워졌다. 규모가 아담해 30분이면 충분히 둘러본다. 전시관은 우리나라 의복 발전사, 목화 재배·성장 과정, 목화솜이 무명베가 되기까지의 과정 등을 소개한다. 무명베 만드는 과정이 특히 실감 난다. 목화에서 씨앗을 거르고, 솜을 부풀리고, 물레질로 실을 뽑아내고, 베 짜기를 위해 실 가닥을 모으는 등 일련의 과정을 모형으로 보여준다. 목면시배유지를 둘러싸고 330㎡(100평) 남짓한 목화밭이 있다. 목화는 4월에 씨를 뿌려 9, 10월에 꽃이 핀다. 목화가 거두어졌을 계절이지만 관광객을 위해 일부는 따지 않고 남겨두었단다. 눈송이가 내려앉은 듯한 풍경에 마음도 덩달아 포근하다.●옛 담이 아름다운 마을, 남사예담촌 옛 담이 아름다워 ‘예담촌’이다. 남사예담촌은 어른 키만 한 돌담과 18~20세기 초에 지은 한옥 40여 채가 조화를 이루는 마을이다. 그 풍경이 볼만해 한 민간단체에서 마을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지정하기도 했다. 마을에는 전통 한옥이 잘 보존되어 있다. ‘경북에는 안동, 경남에는 산청 남사’라고 할 정도다. 이씨 고가, 최씨 고가, 사양정사 등 고색창연한 집들이 모여 있는데, 마을의 진정한 멋은 고가를 에두르는 옛 담장에 있다. 담장은 마을을 휘감아 도는 남사천의 강돌을 주민들이 손수 날라 쌓은 것이다. 큰 막돌을 2~3층으로 덤벙덤벙 쌓고 위에 더 작은 돌과 진흙을 올렸다. 그렇게 쌓은 돌담 길이가 3.2㎞다. 마을을 둘러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발길 닿는 대로 돌담길을 타박타박 걸어보는 것. 돌담에 어룽지는 겨울 햇살, 집 안에서 넘어오는 맵싸한 연기, 옛집만큼 나이 들었을 고목이 호젓한 정취를 자아낸다. 이씨 고가 입구에는 남사예담촌의 상징인 X자 회화나무 한 쌍이 있다. 줄기가 구부러져 서로 어깨를 다독이는 듯한 모양새다. 다정한 자세 때문인지 나무에는 ‘부부 나무’라는 별칭이 붙었다. 부부가 나무 아래를 지나면 백년해로한다는 말도 전해진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300살 먹은 노거수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근사하다.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마을안내소를 마주했을 때를 기준으로 마을 왼쪽을 둘러보는 편이 낫다. 이씨 고가 앞 회화나무를 본 뒤 남성천 물소리에 발걸음을 맞추며 돌담길을 산책할 수 있다.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사진 장명확(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 : 서울에서 자동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통영대전고속도로, 정곡척지로를 지난다. 한남IC에서 부산 방면 우회전 후 경부고속도로를 2시간가량 달린다. 통영대전고속도로 비룡분기점을 지나 산청 방면 좌회전한 뒤 덕계로에서 ‘진주, 사천’ 방면우회전한다. 정곡척지로에서 ‘외송, 정취암’ 방면 우회전 후 둔철산로를 따라가면 정취암이다. →맛집 : 산청한방테마파크 주차장 옆에 자리한 약초와 버섯골 식당(973-4479)은 ‘약초와 버섯 샤부샤부’가 대표메뉴다. 보통의 샤부샤부와 달리 약재 우린 물을 육수, 약초를 채소로 쓴다. 동의약선관(972-7730)은 약선한정식을 코스로 낸다. 지리산에서 채취한 송이를 넣은 신선로, 전복구이, 갈비찜 등 한 상 차림이 푸짐하다. →잘 곳 : 남사예담촌에 있는 월강고택(973-2454)은 남부 지방의 전통적인 사대부 한옥이다. 경남 문화재자료 제117호에 지정된 한옥 내부는 화장실, TV, 에어컨, 인터넷 등 현대적 시설을 갖췄다. 너와나펜션(973-3322)은 야외 테라스, 바비큐장, 수영장이 딸린 펜션이다. 바로 옆에 단성묵곡생태숲이 있어 산청의 수려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 [단독] 靑, 3·1절 김정은 서울 답방 추진한다

    [단독] 靑, 3·1절 김정은 서울 답방 추진한다

    金 안되면 고위급 대표단 초청 검토 평화 가속화·관계 진전 동력 살리기 북·미정상회담 개최 일정 ‘최대 변수’청와대가 올해 3·1절을 계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남북이 공동으로 기념하고, 그를 위한 실무적 방안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한 바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16일 “문 대통령이 ‘선(先) 2차 북·미 정상회담-후(後) 답방’ 프로세스를 밝힌 만큼 북·미 회담 일정이 최대 변수지만, 3·1절 답방이 이뤄진다면 북한 최고지도자의 첫 방문이라는 의미에 100주년을 남북이 함께 기념한다는 역사적 무게를 더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 정상이 함께 3·1절 기념식에 선다면 답방 자체도 역사상 처음이지만 3·1절에 양 정상이 함께 기념사를 밝히는 것도 초유의 일이란 점에서 의미가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강조하고 지난해 대통령 직속기구로 100주년 기념사업회를 출범시켰다. 정상회담 당시 3·1운동 공동기념 구상을 적극 설득한 것도 문 대통령이었다. 북한도 ‘3·1 민중봉기’로 부르며 역사적인 날로 기념하고 있다. 청와대로선 북·미 관계와 남북대화의 보폭을 맞춘다는 대전제에는 변화가 없지만, 남북관계를 한 단계 진전시키고 불가역적 평화 기반을 다지려면 답방의 동력이 소실돼서는 안 된다는 판단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답방은 그 자체로 남북관계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대전환의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직까지 남북 간 구체적 협의는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17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워싱턴행 등 최근 무르익는 북·미 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답방 추진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3·1절 답방 성사 여부는 북·미 정상회담 일정과 맞물려 있다. 북한의 제한적 대남·대미관계 인력풀, 특히 의전·경호에 어느 때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미 회담과 답방을 동시에 준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북·미 정상회담이 2월 중순 이후라면 답방도 늦춰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 관계자는 “북·미 회담이 늦춰져 3·1절 답방이 여의치 않더라도 ‘플랜B’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고위급 대표단이 내려온다면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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