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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잊혀진 독립유공자 찾기

    지난주 제57주년 광복절 경축행사가 성대히 열렸다.정부에서는 이 자리에서 208명의 독립유공자를 포상했다.올해 포상자 중에는 정부에서 일제시대의 재판기록 등 관련자료를 확인해 공적이 인정된 139명의 잊혀져 있던 독립운동가도 포함됐다. 일제 강점기 국내외에서 의병과 독립군 활동,3·1운동,군자금 모금,항일 외교활동 등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원이 얼마나 됐는지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일부 문헌에 따르면 약 300만명으로 추정되고 순국한 분도 20여만명에 이른다고 한다.하지만 이중 공적이 확인돼 포상된 경우는 9174명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독립유공자 포상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서,독립된 조국에 살고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된다. 독립유공자 포상이 부진한 원인은 해방 직후의 사회적 혼란,6·25전쟁으로 인한 자료의 소실,관련 인사의 사망 등으로 공적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해외 독립운동의 주요 활동무대였던 중국·러시아 등지에서의 자료수집이 근래에 와서야 이루어진 것도 포상이 더딘 이유 중 하나다.행형(行刑) 기록 등 일제측 자료의 경우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사례도 많아 역사적 사실 규명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분들 중에는 후손이 없는 분과 후손이 있으면서도 선대의 독립운동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의 애국지사 묘역에는 유해를 찾지 못하고 후손도 없는 순국선열 132분을 위패로 모시고 있는 무후선열제단(無後先烈祭壇)이 있다.또한 강북구 수유리의 북한산 기슭에 있는 후손 없는 광복군 17분을 모신 합동묘소와 충남 홍성에 있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수백명의 시신을 수습해 모신 홍주의사총 등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설물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다. 이렇게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분들의 공적을 과연 우리 후손들이 정확히 평가하고 역사에 올바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은 자신과 가족을 돌보지 않고 오직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를 찾아 포상하고 그분들의 공적을 역사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에서는 많은 인력과 재원을 투입,독립운동 관련 사료를 수집하고 분석함으로써 알려지지 않은 독립유공자를 찾아내는 사업을 전개해 왔다.이러한 일들은 정부는 물론 사회 각계각층 모두가 열의를 갖고 조그마한 사료라도 소홀히 하지 말고 독립운동사 정립의 역사적 자료로 소중히 활용해 나가야만 성과가 더해지리라 생각한다.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나 광복을 이룬 지도 어언 60년이 가까워 온다.시간이 흐를수록 지난날 조국 강토에서,만주벌판에서,미주대륙에서,심지어 일본열도에서까지 독립항쟁을 전개한 애국선열들을 발굴하는 일이 시급하다.잊혀진 과거를 찾아 내일의 좌표로 삼아 나가는 일은 어떻게 보면 경제적 측면에서 간과하기 쉽지만 미래의 국가 발전을 위해 어느 일보다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성원이 절실한 때다. 이재달/ 국가보훈처장
  • [씨줄날줄] 무덤과 부도

    국보 4호인 여주 고달사터 부도가 도굴꾼에 의해 윗부분을 크게 훼손당했다.부도 안에 유물이 들어 있을 것으로 생각한 도굴꾼들이 옥개석을 나무로 받쳐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상륜부 보주 보개가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부도(浮屠)는 스님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묘탑,즉 탑 형식을 빈 승려의 묘,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이 세상 한 모퉁이에서 뜻없이 일었다가 사라지는 바람인 양 인간 삶을 초탈하고자 하는 스님들이 보배 구슬(寶珠)과 덮개(寶蓋)를 씌운 무덤이 필요했을까. 부도는 또 사찰 입구에서 흔히 보듯 부도의 주인공 행적을 기리는 커다란 비석이 같이 건립되어 있어 불자가 아닌 사람 눈에 거슬릴 수도 있다.그러나 부도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비판적 시선이 유치한 안목임을 깨닫게 된다.그리스도교는 예수의 부활로 무덤 형식이 애초부터 필요없게 되었지만,부활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석가는 사라쌍수 밑에서 ‘바람처럼’열반하면서 유해를 남겼다.제자들은 당시 풍속에 따라 다비 화장하였는데,8만 4000개의 사리가 거둬졌다.예수의 부활과 맞먹는 이 진신 사리의 수습은 부활과 마찬가지로 사상과 예술의 거대한 수원이 됐다.그래서 불교 사찰의 한가운데에 불신골(彿身骨)의 봉안 묘로서 탑이 어김없이 서 있다. 그 간결하고 정제된 미와 추상성은 탑파의 기원이 묘,무덤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없게 한다. 이 탑파의 뜻을 따르고 있는 부도는 그래서 결코 도에 넘치는 스님들의 묘 탑이 아니다.고달사터 부도를 훼손한 도굴꾼들이 노린 유물은 사리함일 가능성이 높다.국내 사찰에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곳도 여러 곳 있고,얼마 전 서울 조계사 탑파에서 일제시대 스리랑카에서 보낸 진신사리 수정 사리함이 수거되었지만 국내 석탑이나 부도에서 나오는 사리는 대부분 고승들의 대용 사리다.부도가 아니지만 불국사 석가탑에서는 해체·복원 공사가 진행되 던 1966년 탑신부 2층에서 사리함을 발견했으며,특히 750년 이전 작품인 다 리니경 두루마리 1축이 수거되어 국보로 지정되기도 했다. 고달사 부도는 탑비가 소실돼 어떤 고승의 묘탑인지 모른다.국보로 지정된 1962년 이전에 이미도굴되었다고 한다. 비록 그 안에 고승의 사리나 유골이 없다 하여도,불도의 추상성을 아름답게 육화하고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 문학계간지 ‘통일문학’ 창간한 김주팔씨

    “문학을 통해 남·북한간 언어와 문화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분단 극복에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개인 소장가로는 북한도서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김주팔(金柱八·61·대훈서적 대표)씨가 7·4남북공동선언 30주년을 맞아 320쪽의 문학계간지 ‘통일문학’을 창간했다. 이 문학지는 북한을 비롯해 중국,러시아,중앙아시아,미국,일본 등 해외거주 교포 문인들의 작품을 담고 있다. 창간호에는 북한의 문예지 ‘조선문학’ 최근호에 실린 김상조·최광조·장원준·이영삼 등의 시와 카자흐스탄의 원로작가 정상진(84)옹의 회고록,중국 조선족 문인들의 글이 실려 있다. 문학평론가 권영민(서울대 인문대학장) 교수가 평북 정주 출신인 김소월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북한에서 소월을 논평한 글을 엮은 350쪽 분량의 단행본 ‘평양에 핀 진달래꽃’은 특별 부록으로 발간했다. 대전역 앞 등에서 45년째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씨가 북한도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90년.그는 “당시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가했다 독일인들이 ‘통일이되니 동독 사람들이 통일후 불이익을 우려,책을 파기하는 바람에 동독 책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말을 듣고 북한 책을 수집하고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귀국후 김씨는 중국 조선족들이 운영하던 옌볜(延邊)문화사를 통해 북한도서의 반입을 추진했다.대신 이 문화사가 발행하다 문화혁명때 소실된 한글잡지 ‘천지’의 1951∼90년 발행분을 2억원을 들여 복원해 줬다. 그는 “지난 99년 당국의 수입허가가 나올 때까지 수집한 북한도서를 옌볜문화사 창고에 보관해 왔다.”며 지금까지 4800여종 10만여권의 북한도서를 반입,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이 가운데는 ‘리조실록’(전 400권)을 비롯,1947년 창간호부터 현재까지 발간된 ‘조선문학’,지난해 말 완성돼 최근의 북한 현황을 담은 ‘조선대백과사전’(전 30권),북한의 유물·유적을 체계적으로 분류한 ‘조선유적유물 도감’(전 20권) 등이 있다.김씨는 “국내 문학지 가운데 북한문학의 원전을 그대로 실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번 창간호에는 시를 주로 실었지만 앞으로 북한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담은 소설도 많이 게재하겠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특별기고/ 축구와 밀레의 만종

    나는 이역만리 파리에서 텔레비전 중계로 8강 진출을 놓고 벌인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에서 나의 조국이 승리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가슴 벅찬 감격에 싸였다.그리고 내가 서울에 있던 36년 전 1966년 여름,영국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북한팀이 이탈리아팀을 1-0으로 격파했던 감격을 되새겨 봤다. 당시 나는 이 뉴스를 듣고 너무 좋아서 다음 경기인 북한과 포르투갈의 준결승전 실황중계를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들었다.당시에는 청취가 금지된 북한방송을 몰래 들은 것이다.잡음과 울림이 있어 수신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북한의 박(朴)이라는 선수가 신기(神技)를 발휘하며 골을 넣었던 순간의 감격과 흥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그러나 이 경기에서 북한은 포르투갈팀의 스타플레이어 에우제비우 때문에 5-3으로 석패했다. 18일 경기에서 한국의 골든골이 터지는 순간 운동장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하는 이탈리아 선수들을 보며,그 순간 이탈리아 국민들이 받았을 쇼크를 생각하며 나는 조금은 엉뚱하게 프랑스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 ‘만종’을 머리에 떠올렸다.1974년 바르비종 마을회관에서 ‘밀레의 만종’이라는 전시회가 열렸다.수많은 만종의 인쇄물과 이 작품을 풍자적으로 패러디한 그림들을 모아서 보여주는 전시였다.그 중에서 나의 시선을 끈 것은 1966년 피가로지에 실린 삽화였다.밀레의 만종을 그려 놓았지만 자세히 보니 농부의 발 밑에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있고,라디오방송은 이탈리아 축구가 방금 북한한테 졌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그것은 가난하고 평온한 농사꾼 부부가 밭일을 멈추고 저 멀리 소실점 교회첨탑으로부터 울려오는 만종을 들으며 저녁 기도를 올리는 장면이 아니라,축구에 져서 고개를 숙여 슬퍼하는 이탈리아인들을 풍자한 것이었다.이탈리아인들에게 36년 후 똑같은 악몽이재현된 것이다.이탈리아인들의 머릿속에는 코리아가 깊이 각인됐으리라.두 번씩 아픈 패배를 안겨준 저 먼 아시아의 나라 코리아를 어찌 잊을 수 있을 것인가. 이곳 프랑스에서는 믿을 수 없는 ‘코레’의 승리에 모두가 놀라고 있다.서울을비롯한 각 도시 거리와광장에 500만명이 넘는 응원단이 몰려나와 열광하는 모습은 일찍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광경이다.프랑스 신문과 방송은 이를 ‘월드컵 사상 처음 보는 많은 군중’이라며 놀라워하고 있다.서울 도심의 응원단을 공중촬영한 화면을 보니 그 엄청난 붉은 물결이 4년전 프랑스가 월드컵 챔피언이 된 날 샹젤리제를 꽉 메운 인파는 댈 것도 아니게 보인다. 패한 이탈리아 감독은 “우리 팀은 결코 약하진 않았지만 한국팀이 승리한 것은 강한 정신력으로 싸웠기 때문”이라고 했다.한국팀을 조련해 마침내 8강에까지 올려놓은 히딩크 감독이 “한국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사실 때문에 나는 행복하다.”고 말한 것도 인상적이다.누가 우리 국민을 이만큼 기쁘게 만들 수 있겠는가. 우리 선수들이 22일 스페인과도 끝까지 잘 싸워 내 조국 대한민국이 4강의 대열까지 오르기를 기원한다.그날 다시 전국의 거리를 메울 수백만의 붉은 인파가 내뿜을 환호와 열기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몸이 짜릿해 온다.남북이 통일되는 날이면 틀림없이 이보다 더 많은 인파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환호속에 거리를 누비겠지만…. 오천용/ 在佛 서양화가
  • “폭탄파편상 한국전 참전 증거”

    한국전쟁 때 부상했지만 증거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한 70대 노병이 몸에 남아있는 파편상 흔적으로 재판에서 승소,50여년 만에 유공자로 등록될 수 있게 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 白春基)는 6일 한국전쟁에 참전,폭탄 파편상을 입은 김모(76)씨가 서울북부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등록거부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전문의의 의견을 조회한 결과 원고의 골절상은 고속 이물질에 의한 전형적인 폭탄 파편상이며 파편이 몸 속에 남아 있는 점 등으로 미뤄볼 때 국가유공자로 인정치 않은 피고의 처분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김씨는 한국전쟁 당시 김포 고촌지구 전투에 참전,폭탄 파편에 오른쪽 다리를 다쳤으나 관련 병원 기록 등이 소실돼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자 소송을 냈다. 조태성기자 cho1904@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秘史] (7)불꽃튀는 러,日 첩보전

    러시아 문서보관소 서고속에 묻혀있다 100년만에 햇빛을본 제정 러시아시대의 비밀문서중에는 군사첩보와 관련된전문이나 보고서들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대한제국과 만주에서의 주도권다툼에 열을 올리고 있던 러시아와 일본은 외교라인과 군부를 총동원,첩보전을 전개한 것이다.러시아는 모든 면에서 불리했지만 연해주지역에 이주해 있던 한인들을 첩보요원으로 활용하는 이점이 있었다.러시아의 대일(對日) 첩보전은 러·일전쟁(1904∼1905)을 전후한 시기에 가장 첨예했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보호국화한 이후 일본군의 동향 관찰과 대한제국군의 개편 상황을 감지하기 위한 상주 군사첩보원의 필요성이 긴박해지고 있다.이 비밀첩보 임무로 제2시베리아 보병사단 포병여단의 비류코프 대위를 일본주재 군사무관의 부관으로 임명하여 보내기로 되어 있다.비류코프는 10년간 대한제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다.(1906년 2월13일 러시아군 총참모부장이 외무장관에게 보낸 공문) 비류코프가 군사무관 사모일오프의 부관으로 부임하게 되면 일본이 바로 의심하게 되어 첩보활동이 어렵게 될 것이다.(1906년 7월14일 도쿄주재 바흐메티예프 공사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두 건의 비밀문서에 등장하는 비류코프는 대표적인 군사첩보원이었다.1907년 그가 서울로 오자 당시 서울주재 총영사였던 플란손은 이토(伊藤博文) 통감에게 “서울에서러시아학교교사로 일하던중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현역에 소집돼 근무했으며 포츠머스 평화회담후 다시 예비역으로 편입돼 정들었던 서울에 다시 와 교사직을 알아보려고 왔다.”고 소개했다.이토는 비류코프에게 동정적으로 대해주었다고 전하고 있다. 비류코프는 서울의 러시아학교 교사 신분으로 국내에서 10년동안 암약하면서 알게된 한인학생 10여명을 러시아의하사관학교 등에 국비유학생으로 입교시켰고 전쟁이 나자소집해 예하의 비밀첩보원으로 활용했다.이후 1911년까지4년동안 원산주재 영사로 근무하면서 첩보수집활동을 했다.그는 1904년 1월 “한국어를 말하고 한복으로 변장한 일본인은 전쟁이 나면 러시아군을 감시할 것이며 또 통역이나 안내원으로 봉사하겠다고 자청할 수 있다.일본인은 용모 등이 한인과 비슷하기 때문에 구별하기가 대단히 어렵다.그러나 걷는 모습을 잘 관찰하면 한인은 성큼성큼 걷는 반면 일본인은 촘촘히 걷는다.”는 첩보를 공사관에 올릴 정도로 한국과 한국인에 정통했다.또 러시아군이 만주와남우수리지방에서 대한제국으로 진격할 수 있는 3개의 길과 그에 관련된 상세한 정보를 보고하기도 했다. 그는 한인생도 출신들의 첩보활동에 대해 “생도들은 고종황제와 조국을 위해 열심히 첩보활동을 하고 있다.한군과 강군은 나와 함께 활동하고 있고 이군은 북청에서,현군은 노보키예프스크,구군은 경성(鏡城)에서 각각 정찰임무를 맡고 있다.”고 1904년 10월19일 보고했다. 서울 불어학교교사로 고종의 헤이그밀사파견 사실을 러시아 극동총독부에 알렸던 프랑스인 마르텔과 프랑스 신문‘저널’지의 도쿄특파원 발레,블라디보스토크주재 프랑스상무관 플라르 등 프랑스인들이 러시아의 비밀첩보원으로활약했던 사실도 흥미롭다. 발레가 페테르부르크에 왔다.그는 전쟁중의 일본의 정세에 관해 흥미있는 정보를 러시아에 전해 주었으며 이제 외무부에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해 왔다.(1905년 5월22일외무부에서 육군장관에게).발레의 정보제공 제의는 수락되었다.정보비로 그에게 매월 600루블이 책정되었다.(1905년 6월15일 육군장관이 외무장관에게). 러시아는 일본과의 첩보전에서 대단히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첩보의 통로인 우편 및 전신시설과 전달수단인 철도등 교통시설을 일본이 선점,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02년 니콜라이2세가 외무장관 람즈도르프에게 “서울주재 파블로프 대리공사의 보고서가 늦게 상신되는 이유가무엇이냐.”고 묻자 람즈도르프는 “파블로프의 보고는 비밀스런 성격이 있기 때문에 일반 우편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믿을 만한 기회(인편)나 아니면 가끔 대한제국 항구에입항하는 러시아 선박을 통해 발송해 오기 때문”이라고해명하기도 했다.다음 문건은 러시아측의 애로사항을 잘보여준다. 고종황제가 소장하고 있는 러시아 외무부와의 연락용 암호 통신문이 궁정(덕수궁)화재로소실됐다.혹시 일본이 훔쳐 보관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미리 방비하라.(1904년 5월16일 서울주재 파블로프 공사가 외무부에 보낸 보고서) 서울에서 파블로프 공사가 보낸 전문을 받았지만 내용이훼손돼 읽을 수가 없다.일본전신국이 조직적으로 교묘하게 비밀전문을 파손시켜 배달하고 있으며 이는 우연한 왜곡이라고 볼 수 없다.일본은 통신문을 제때에 배달도 하지않는다.모든 우편,전신국은 러시아에 적대적인 일본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제국과의 교신도 불가능하다.배달과정에서 내용을 알 수 없도록 손상시켜 놓은 몇통의 전보문을 첨부한다(1903년 12월7일 일본 나가사키 주재 가가린영사가 도쿄주재 공사에게 보낸 보고문) 대한제국의 우편시설을 장악한 일본이 서울의 러시아공사관에서 보내는 외교행낭을 손상시키거나 배달을 지연시키는 일이 잦아지자 러시아는 임시방편으로 제물포에서 상하이노선을 운항중인 동청철도(東靑鐵道) 소속 여객선을 이용해 외교문서를 발송하고 수신하기도 했다.2주에 1회 왕복운항하는 이 여객선도 비밀문서 수발에는 지장이 많았다.두만강 인접 도시 노보키옙스크지역과 한국간의 전신선을 육상으로 연결하려고 계획했으나 일본의 끈질긴 방해로실패했다.러·일전쟁 이후 한-러간의 통신은 일본 나가사키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해저선을 통했다.러·일전쟁의승패는 통신을 장악한 일본쪽으로 이미 기울어져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앞으로 러·일간에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대한제국에서 러·일은 사활을 건 혈전을 벌일 것이며 영국이 가담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대한제국이 전쟁터가 될 경우 러시아의 남우수리지방은 후방작전 기지가 될 것이다.일본의 병력을 고려할 때 러시아는 10만명이상의 병력과 2만명분 이상의 식량을 확보,비축해야 한다.연해주,아무르주,자바이칼주에는 1년간 공급할 식량을 비축해야 한다.일본군의 병력현황은 다음과 같다.(1899년 3월9일 알프탄 대령이 ‘러·일충돌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작성,보고한 문서) 이 보고서는 4년후 러·일전쟁 발발을 이미 예측하는 등러시아측 정보의 정확성과 뛰어난 분석력을 보여준다.이후 육군장관에 오르는 사하로프 중장이 1902년에 작성한 보고서도 일본 수비대의 주둔지와 규모,철도 및 전신성 공사 현황,저탄장,거주자들의 취득부동산 등 세세한 항목에 이르기까지 보고하고 있다. 무기도입 및 밀수와 관련된 첩보도 자주 등장한다.일본이 대한제국을 경유해 만주로 무기를 밀수출하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일본이 고물 함정을 거액에 대한제국에 팔았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일본은 사용하지 않는 구형 총기를 만주로 수출하고 있다.어느 지방을 통해 어디로 보내고 있는지 추적하라.청국에무기를 공급해 주는 사람에게서 받은 정보에 의하면 일본이 청국의 여러 성(省)에 18만정의 구식 소총을 매입하라고 제의했다고 한다.(1902년 3월29일 하바로프스크의 그로드스키 장군이 서울공사관에 보낸 비밀전문) 주한공사관 쉬테인 공사의 보고에 의하면 미쓰비시사는 8문의 함포가 장착되고 200명의 해군을 태울 수 있는 순양함을 대한제국 정부에 납품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1903년 2월3일 람즈도르프 외무장관이 도쿄주재 이즈볼스키 공사에게 보낸 전문). 순양함은 오는 4월 고종황제 즉위 40주년 기념행사때 축포를 발사할 목적으로 석탄선을 개조해 함포만 탑재시킨 것으로 외형만 해군함정으로 보일 뿐이라고 한다.일본의 고무라(小村) 외무상은 고종황제의 순양함 도입계획이 일본에 유익하지 못하다는 말을 했다.(같은해 2월9일 람즈도르프 외무장관이 서울공사관에 보낸 전문) 모스크바와 서울,도쿄를 오간 이들 비밀전문을 보면 순양함을 도입하려던 대한제국 정부가 일본의 국제무기거래 사기극에 속은 것을 알 수 있다.당시 자료에 따르면 이 순양함의 가격은 55만엔이었고 3년 분할상환 조건이었다.대구경 대포 4문과 소구경 대포 4문이 장착되고 장교 25명과해군 200명이 승선하게 돼 있었다. 일본의 첩보망도 만만찮았다.1903년 제물포 부영사 팔야오프스키의 서북지역 출장보고서에는 “평양에는 일본의첩보기관이 있다.일본인들은 시내의 모든 약국을 운영하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살피고 있다.이곳에는 약 300명의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는데 지방행정권은 일본영사의 수중에 있다.”고 보고하는 등 일본첩보조직의 촉수가 대한제국의 정부는 물론 지방에 이르기까지 거미줄처럼 뻗어있음을 알리고 있다. 간도의 일본 총영사관에는 비밀첩보과가 있다.그 과에는일본인,청국인,그리고 한인이 암약할 것이다.통감부와 헌병사령부 소속의 밀정만도 약 760명에 이른다.이들의 주요 임무는 의병을 추적하는 것이다.밀정중에는 여성도 있는데 대부분 기생이다.벌써 많은 의병을 경찰에 밀고하였다.(1909년 10월23일 소모프 총영사가 외무장관에게 보낸 비밀보고서) 새로 발굴된 문서에는 이밖에 러시아 극동지방에서 일본비밀첩보원으로 활동한 한인 명단(1898년),대한제국내 비밀첩보망 구축안(1905년),흑룡강지방의 조선인 첩보원 명단(1912년) 등도 들어있다. 대한제국을 독식하기 위해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스파이전쟁에 이용당하거나 희생된 한국사람들의 이름이다. 노주석기자 joo@ ■러 문서에 나타난 대한매일 보도 인용 전 서울 불어학교 교사 마르텔을 비밀첩보원으로 대한제국에 파견했다.그는 일어에도 능통하다.그에게 첩보임무와개인암호를 주었다.그에게 The Korea Daily News(대한매일신보의 영문판 제호)를 늘 잘 살피라고 지시했다.(1904년12월4일 중국 상하이에서 파블로프 서울주재 대리공사가그루세스키장군에게 보낸 보고서) 러·일전쟁(1904∼1905)의 패배로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대부분 상실한 러시아는 이후 2∼3년동안은 그동안 심어놓았던 첩보망과 청,일주재 외교라인 등을 통해 극동정세를 그럭저럭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다.하지만 한일합병시기를 전후해서는 ‘정보부족증’에 걸렸다.그래서인지 1908년 이후에는 국내 언론과 일본 신문 기사를 발췌해 본국에 보고하고 있었다. ‘00년 00일부터 00년 00일까지의 일지’‘대한제국내 폭동에 대한 신문스크랩’ 등 러시아문서보관소에서 발굴된수백건의 정보보고가 그것이다.이중 80% 이상 인용된 신문이 당시 한국의 대표적인 항일민족지 ‘대한매일신보’(1904년 발간)였다. 서울주재 공사관이 폐쇄된 이후 만주로 건너가 극동지역첩보수집총책임자로 일한 파블로프가 프랑스인 비밀첩보원 마르텔에게 “대한매일신보를 잘 살피라.”고 지시한 것도 그때문이었다. 26일 하얼빈역에서 5명의 한인이 이토에게 권총을 발사,이토는 곧 절명했다.전 고종황제는 식사중에 이 소식을 듣고 수저를 상에 떨어뜨렸다.(1909년 10월28일자).안응칠(안중근의사의 아호)은 항일운동을 하며 이강,유동설 그리고안창호와 비밀연락을 했다.(1909년 10월30일자).오늘 관보에 지난 9월4일 청·일이 간도에 대해 체결한 조약문이 발표됐다.(1909년 11월9일자) 대한매일신보는 러시아와 중국,그리고 일본인의 간담을서늘하게 한 안중근 의사의 이토 저격사건을 “고종이 수저를 떨어뜨렸다.”는 촌철살인의 한 문장으로 전달하고있으며 고구려와 발해의 옛땅 간도를 청국에 통째로 넘긴일본의 외교술책도 간도협약 체결 기사를 통해 짚어내고있다.무엇보다 대한매일신보의 의병활동 보도는 러시아문서가 인용하고 있는 국내외 신문의 보도를 내용이나 횟수,정확도 면에서 압도하고 있다. 경기도에 군사훈련을 받은 2000명이상의 의병이 집결해 있다.(1908년 2월19일자).대한제국에는 모두 5만명의 의병이 있다고 한다.결정적인 의병소탕을 위해 일본군이 또다시상륙한다고 한다.(1909년 7월29일자).이토가 사살된 이후러시아로 한인이주가 급증하고 있다.(1909년 11월27일). 대한매일신보 1911년 2월15일자와 2월21일자에는 의병장강기동(姜基東)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기사 2건이 실려있다. 지난 2월12일 원산의 한 일본식당에서 의병대장 강기동이체포됐다.(1911년2월15일자)그는 4년동안 경기도에서 의병 200명과 함께 항일투쟁을 했다.강기동은 여객선편으로 서울로 이송된 이후 지금까지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체포당시 주머니에는 일본돈 2엔 밖에 없었으며 손과 발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1911년2월21일자) 노주석기자
  • [대한광장] ‘월드컵용 +α’ 스타디움 되게

    월드컵이 이제 50일도 안남았다.20세기 서울올림픽에 이어서 21세기 초두에 세계인의 관심과 주목을 받는 국제행사가우리나라에서 열리게 된 것은 행운이자 기회라고 할 수 있다.다방면에서 불리·불편한 여건임에도 불구하고,이미 결정된 국가적인 대사를 ‘우리문화의 선양과 더불어 문화시민으로 성숙하는 행운의 기회’로 삼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좋은 결실을 거두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어떻게 문화를 선양할 것인가.개최지마다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어서 관광객을 유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그래서 많은 예산과 투자유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실제로 문화행사를 위해 문화관광부나 지자체에서 이미 적지않은 예산이 집행되고 있는 실정이다.경기장 건설에만 2조원을 투입하고,그 비용이 모두 국민들의 세금(빚)으로 충당되어야 할 지경인데도,‘특별’‘대형’‘국제적’이라는명분으로 이벤트의 제작비를 얻어 내려는 ‘철새문화인’들의 욕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별한 것보다는 평소실력으로,과대포장보다는솔직한 실질로,예산낭비보다는 근검절약으로,승부욕망에 앞서는 문화시민의식으로,일회성보다는 미래의 유산으로서 모든 문화행사가 마련되고,아울러 문화시설이 운영되어야 한다. 이런 원칙에서 보면 특별·대형 이벤트보다는 지역마다 평소에 축적한 실력을 기반으로 하여 작고도 알찬 문화행사·이벤트를 내실 있게 하는 것이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좋은반응을 일으킬 것이 자명하다.우리처럼 ‘내실부재의 국제행사’를 많이 하는 나라가 지구상에는 없다는 점을 상기해주기 바란다.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문화시민의식이다.동방에서 예의 바르기로 소문난 국민들이 바로 우리들이 아닌가.멀리서오는 손님들에 대한 친절과 안전,편리와 정직, 청결한 환경과 정확한 안내,맛 있는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이렇게 별로어렵지 않은 사항들을 두고, 우리는 국제행사를 치를 때마다 온통 야단이고 망신을 당하곤 한다.세계적인 문화시민으로서의 자각이 부족하고 저마다 공공·공익성보다는 사적인욕심이 지나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어느 개최지든지 스타디움의 건설을 시민공원내지는 문화환경단지의 조성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대회가끝나면 스타디움은 경기장 이외의 다용도 문화공간이 되도록 설계했고 동시에 스타디움이 들어 있는 공원과 단지는쾌적하고 넓게 만들어 새로운 시민문화공간 혹은 문화관광지로 사용할 계획이다.말하자면 월드컵을 계기로 지역의 문화환경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대업을 진행하고 있다.이것만으로도 일본의 월드컵은 이미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있다. 또한 대회기간 중에는 지역 출신의 유명한 전통예능인 및탤런트들을 초빙하여 향토색 짙은 지역축제를 준비하고 있다.이 기간에 농수산물 판매점을 개최하여 판매를 촉진시키는 한편,지역의 대표적인 먹거리를 홍보하여 수익을 증대시키고자 한다.한글판 컬러관광안내서와 지도는 지역마다 이미 완성해 놓은지 오래다.이처럼 대회를 지역경제발전의 계기로 삼고 있다.개최지마다 외국어 통역을 포함해서 각종분야의 자원봉사가 가능하도록 대대적으로 훈련시키고 있다.대회를 국제적인 시민참여봉사운동으로 이끌어 보겠다는정신이 스며 있는 것이다. 때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대회가 끝나면 스타디움 및 주변환경을 경제적으로,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에 대하여구체적인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공공시설로서 항구적으로활용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유지·보수비가 필요하다. 이를위하여 입장료를 받는 수영장,전시장,각종 연습장,유스호스텔,강의실,스포츠센터,레스토랑,공연장 등으로 다양하게 대관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도 있다. 이번 월드컵이 우리의 지나친 사욕과 허례의식,그리고 무지를 반성하는 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우리가 문화시민의식으로 거듭나지 않으면,현재는 물론 미래의후손들에게도 좋은 나라를 남겨주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16강에 진출하여 축구강국으로 도약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세계인들에게 우리가 문화인,문화국가라는 인식을 분명하게심어 주어야 할 것이다. 지금 세계인들은 우리를 주시하고있다. 서연호 고려대교수·연극평론가
  • 꽃피는 봄날 ‘복병’ 알레르기 조심

    봄철의 복병,알레르기성 질환.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는 자칫 중병으로 발전하고 목숨을 잃을 가능성도 있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실제로 요즘 각급 병·의원에는 겨울철에 비해알레르기성 질환을 호소하는 환자가 30%에서 많게는 두 배이상 늘어나고 있다. 알레르기성 체질인이 원인 물질과 접촉할 때 나타나는 이봄철 질환은 아무래도 꽃가루 알레르기,비염,알레르기성 피부질환 등을 대종으로 꼽을 수 있다.원인 물질은 집먼지진드기,꽃가루,동물 털,곰팡이,곤충,음식물 등 다양하다. 먼저 바람이 불 때 공중으로 날린 꽃가루가 코와 기관지로들어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꽃가루 알레르기.오리나무소나무 느릅나무 자작나무 단풍나무 버드나무 참나무 일본삼나무의 꽃가루가 주 원인이다. 이 가운데 기관지천식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심하다.기침,천명(喘鳴·숨을 쉴 때 쌕쌕하거나 가랑가랑 소리가 나는 증상),호흡곤란이 주 증상.심한 발작을 일으킬 때는 응급조치를취해야 하며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있다. 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민경업 교수는 “원인이 되는 꽃가루를 찾기 위해서는 거주지역,발병시기,피부반응검사,혈액검사 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하며 원인 꽃가루를 멀리하는 회피요법이나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제를 사용하는 대증요법이 효과가 있으며 이같은 방법으로 치료되지 않을 경우 원인항원에 대한 저항성을 키워주는 면역요법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발작적으로 코 안이 가려우면서 연속적으로 재채기를 하고맑은 콧물이 쉴새없이 나오다가 코가 막혀 숨이 답답해지면일단 알레르기성 비염을 의심해볼 만하다. 눈이나 목안이 가렵거나 눈물이 나고 머리가 아프며 냄새를맡지 못하기도 한다.집먼지진드기가 가장 중요한 원인물질이며 꽃가루,곰팡이 포자,동물과 사람의 배설물·털 등도유발한다. 최근 부쩍 많이 번식하는 바퀴벌레도 질환을 일으키며 기온과 습도의 급격한 변화는 증상을 악화시키므로 주의하는 게좋다.코가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이므로 모든 종류의 자극을멀리해야 하며 담배연기,방향제,스프레이 등을 피한다. 가려움증 콧물 재채기 등의 증상이라면 항히스타민제로 쉽게 치료할 수 있으나 조금 심하면 원인항원을 투여해 저항력을 키우는 면역요법을 써야 한다. 알레르기성 피부질환 중 가장 흔한 것은 두드러기,접촉피부염,아토피피부염 및 곤충·식품·약물 알레르기.피부가 일시적으로 부풀어오르며 가려움증을 동반하는 두드러기는 대체로 서너 시간 지속된 뒤 소실되었다가 다른 부위에 다시 생기는 증상을 보인다.심한 경우 피부병변 외에 숨이 차거나복통 등 소화기 증상도 나타난다. 가려움증을 동반하는 만성 습진 아토피피부염은 꽃가루나 황사로 인해 악화되며 곤충알레르기는 대체로 개미 벌 등에 물린 자리의 가려움증이 심해지고 심한 경우 전신 피부발진이나 호흡곤란 등 전신증상이 동반될 수도 있다. 대체로 이같은 피부질환은 항히스타민이나 스테로이드제를복용하면 호전되나 전신에 피부발진이 심하거나 호흡곤란 등의 전신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응급실을 찾아 적절한 치료를받아야 한다. 김성호기자 kimus@
  • 봄가뭄에 식수난·산불 비상

    봄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전국에 산불 비상령이 내려졌다.또 다목적댐과 농업용 저수지의 저수율이 크게 낮아지면서 수돗물 제한급수가 이뤄져 식수난을 겪는 주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28일 산림청과 전국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올들어 26일까지 전국에서 모두 129건의 산불이 발생해 93.26㏊의숲을 태웠다.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2억 5600여만원에 달한다. 이같은 산불 피해는 지난해 같은 기간 40건의 산불로 23. 01㏊(피해액 3800여만원)의 숲이 소실됐던데 비해 발생건수는 3배 이상,피해면적은 4배 이상으로 각각 늘어난 것이다. 산불 피해가 급증한 가장 큰 원인은 강우량이 평년 대비37.2%로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이로인해 한강 금강 낙동강 섬진강 등 4대강 수계 13개 다목적댐의 저수율도 35.6%로 봄가뭄이 극심했던 지난해 같은 기간 39.5%보다 3.9%포인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예년 평균 저수율 42.4%에 비해 6.8%포인트 낮은 것으로 올해도 심한 봄가뭄이 우려되고 있다. 상수도 및 간이상수도가 공급되는 곳 가운데 시간제 급수를 받고 있는 지역 주민도 경기도 파주시와 안성시 등 14개 시·군 94개 읍면에 9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간이상수도를 사용하고 있는 여주군 강천면 걸은리 52가구는 지난 초겨울부터 수돗물이 하루 5∼6시간만 공급돼주민 200여명이 불편을 겪고 있다. 전국종합·정리 김병철기자 kbchul@
  • 서초동 지하 전력구내 화재

    8일 오후 1시40분쯤 서울 서초구 우면동 17 한국통신 연구개발본부앞 도로 맨홀 지하 전력구내에 원인을 알 수 없는불이 나 220V와 380V짜리 송전 케이블선 등이 일부 소실됐다. 불이 난 맨홀에서는 전선 등이 타면서 발생한 유독성 연기가 저녁 늦게까지 흘러나와 진화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전력측은 “불이 난 케이블은 신성남 변전소에서 신양재 변전소간 9㎞ 가량의 지중 송전케이블”이라면서 “곧바로 다른 케이블로 전력을 우회공급시켜 정전 피해는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그러나 불이 난 시간 근처 서초구 반포동 센트럴시티 건물이 8분쯤 정전된 점을 중시,정확한 화인과 피해상황을 조사중이다. 한준규기자 hihi@
  • 2002 우수기업 우수상품/ 기아자동차 카니발Ⅱ

    기아자동차가 국내 최초의 정통 미니밴으로 RV(Recreational Vehicle)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지 3년만에 혁신적인 디자인과 최첨단 사양의 ‘카니발Ⅱ’를 선보였다. ‘카니발Ⅱ’는 지난 99년부터 1200억원의 개발비를 들여 20개월만에 만들어낸 기아차의 야심작이다. 기아차는 ‘카니발Ⅱ’의 연간 판매 목표를 내수 6만대,수출 10만대 등 모두 16만대로 정했다.특히 5월부터 국내업계에서는 처음으로 미니밴의 본고장인 미국시장에 연간5만대를 수출한다는 복안이다. ‘카니발Ⅱ’는 ▲남성미와 볼륨감 넘치는 외관 ▲기능성을 강화한 실내 인테리어 ▲신기술을 대폭 적용한데 따른편의성 ▲세계적 수준의 안전성 ▲최고급 최고 성능의 엔진 및 변속기 ▲안락한 승차감과 뛰어난 정숙성 등이 강점이라고 기아차는 설명한다. 특히 안전성에 있어서는 교통안전공단이 주관하는 미니밴충돌테스트에서 운전석 별 다섯,조수석 별 네개로 동급 최강의 안전성을 확인받았다. 최근 미국에서 실시된 안전도테스트에서도 별 다섯개를 획득,‘명차’의 성가를 높였다. 엔진도 국내 처음으로 직접분사방식인 2900㏄ DOHC 터보인터쿨러 디젤엔진을 장착,130마력의 동급 최고 성능을 확보했으며 연소실 및 연료분사장치를 최적화해 동급 최고의연비(13.5㎞/l,수동기준)를 실현했다. 이코노·파워·홀드 등 3가지 모드기능을 갖춘 4단 전자제어식 자동변속기도 기능성과 안전성에 있어 동급 최강이라는 게 기아측의 설명이다. 카니발의 경우 지난해 국내 대형 미니밴시장에서 70%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기록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그런 카니발보다 기능·품격·성능 등이 한층 좋아진 카니발Ⅱ는 지난 1월 말 현재 내수시장뿐 아니라 미국시장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차 관계자는 “카니발Ⅱ는 내수시장뿐 아니라 세계시장을 겨냥해 개발해낸 기아의 야심작”이라며 “미국·유럽·동남아·중국 등 전세계 판매망을 확보,조만간 본격적인 마케팅에 돌입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춘향이가 담배를 피운다?

    ◆춘향전-성현경 옮김/열림원 펴냄. 여인의 절개와 신의,사필귀정 등 인간사의 편린과 해학을고루 담고 있는 ‘춘향전’.다양한 해석,각색을 거친 소설과 영화가 쏟아졌지만 여전히 얼마든지 색다른 시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고전작품이다. 그런 차원에서 열림원이 펴낸 ‘춘향전’(성현경 풀이·옮김)은 독특한 맛과 재미를 함께 건질 수 있는 또다른 춘향전으로 눈길을 끈다. 우선 백여 종이 넘는 여러 이본(異本)가운데 ‘이고본(李古本)’을 택한 점이 파격의 재미를 안겨준다. ‘이고본’ 춘향전이란 ‘조선문학사'(1948·조선문학사)를서술한 국문학자 이명선이 1940년 ‘문장’ 지에 발표한 것으로 흔히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춘향전’으로 불린다. 정본의 춘향전이 양반 서얼 출신의 춘향을 열녀로 인상지우는 것과는 달리 기생 명부에 오른 춘향이 방자에게 음담패설로 대꾸하고 담배를 피우는가 하면 이 도령에게 포악을 부리기도 한다. 종말도 이 도령의 소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임금의 윤허를받아 정실부인으로 승격되는 차이점을보인다. 책은 이처럼 튀는 춘향의 모습과 함께 이 도령이 방자에게농락당하고 어사또가 농민에게 박대당하는 등 신분체계를 뛰어넘는 해학이 곳곳에 담겨있다. 책의 또다른 특징은 풍속화와 민화 등 옛그림을 삽화격으로 곁들인 점이다.민중의 솔직한 생활 모습,특히 남녀 관계의생생한 묘사로 도화서에서 쫓겨난 혜원 신윤복을 비롯해 김홍도,정선,김윤보,김득신의 골계미와 해학이 넘치는 풍속화·민화 24컷이 소설의 재미를 한껏 배가시킨다. 책 말미에 주석을 단 원본을 함께 실어 고전문학 연구자들이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한국고소설학회와 판소리학회 회장을 지낸 역자 성현경 교수가 책의 출간을 보지 못하고 석달 전 타계,안타까움이 남는 책이기도 하다.1만2,000원. 김성호기자 kimus@
  • [씨줄날줄] 선술집

    선술집은 서양에서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식사를 밖에서 하는 일이 거의 없던 우리나라에서도 유통경제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술집들이 생겨난 것으로추정된다.일제식민지 시절에는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등 선술집을 배경으로 서민의 애환을 그려낸 문학작품들이등장한다. 해방과 전쟁, 근대화와 민주화의 힘든 길을 걸을 때도 한잔 술과 간단한 안주를 즐길 수 있는 선술집은 서민들의 벗이었다.주머니가 가벼운 주당들은 골목길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선술집을 찾아들 때면 고기 굽는 냄새,찌개 냄새와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이끌려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여기저기서 홍조 띤 얼굴로 폭소를 터뜨리는가 하면 목소리를 높여 세상 일들을 이야기한다.자리를 일어설 때면 세상이 외롭고 고달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위안을 얻게 되기 마련이다. 헤픈 돈 펑펑 쓰고 국민들 바람은 아랑곳하지 않던 정치인들이 표를 얻어야 할 무렵이면 선술집이나 시장 어귀를 돌아다니는 것도 ‘서민의 벗’이라는 이미지를 빌려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월초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평양에도 선술집이 등장했다고 보도,눈길을 끌었다.창광거리의 ‘네거리 꼬치안주집’ 등에서는 소주 두 잔에 닭발쪽 튀기(튀긴 닭발) 2개,닭내장 꼬치 1개를 북한 돈 7원60전(4,300원 상당)에 파는데 인기라고 한다.담배를 못 피우게 하는 게 남쪽하고 다르지만 한 잔 술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회사 이야기,직장상사 골탕먹이는 이야기를 즐긴다고 하니 서민들의 삶은 여기나 저기나 비슷한가 보다. 서울 시민들과 50여년 동안 애환을 같이하던 마포구 최대포집이 지난 19일 겨울 화마(火魔)에 소실되고 말았다.1951년 개업해 1974년 지금의 신공덕동 철길 밑으로 이사해 최근에 이르면서도 1960∼7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온대표적인 선술집이었다.연탄불 위에 굽는 돼지고기 맛도 독특했지만 2,000원쯤 하는 돼지고기 껍데기 구이는 다른 곳에서 맛보기 어려운 별미였는데 한동안 맛볼 수 없다니 서운하기 짝이 없다. 지난 11월 영국에서는 찰스 왕세자가 선술집 살리기에 적극 나섰다고 한다.값비싼 양주와 ‘미희(美姬)’들로 무장한 요란한 술집들이 검버섯처럼 번창하고 있는 서울이야말로 선술집 살리기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강석진 논설위원 sckang@
  • 독자의 소리/ 작은 불 점검 큰 재앙 막자

    날씨가 추워지면서 난방기구 및 열기구의 사용이 급증하고있다. 얼마전 지역내 중심 번화가에서는 화재로 상가점포 6동이 소실되고 인근 상가에서 잠을 자던 주민들이 대피하는소동이 벌어졌다. 이곳은 심야에도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곳이어서 주민들이 화재에 대한 관심을 조금만 기울였더라면 신속한 진화로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는데,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날 관내를 돌던 순찰자가 뽀얀 연기와 매캐한 냄새를 수상히 여겨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일대를 집중 순찰했지만경찰이 화재현장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조그마한 연기가 큰불로 변해 상가가 불길에 휩싸인 뒤였다. 작은 불이 큰 화재로 번지기 쉬운 계절이므로 미리미리 화재를 막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아무리 사소한 화재 징조라도 무시해 넘기지않고 점검,신고해 큰 재앙을 막는 지혜가 절실한 때다. 최홍준 [전남경찰청 광주동부경찰서]
  • 2001하반기 히트상품 본상/ 불스원 불스원샷

    자동차용품 전문회사 불스원(bullsone.com)이 내놓은 자동차 엔진 전용 세척제.97년 출시 당시만 해도 1회용 제품뿐이던 엔진세척제 시장에 대용량 개념을 도입해 큰 호응을얻었다.번거롭게 매번 연료를 첨가해야 하는 기존 제품과달리 5,000㎞마다 한번씩만 주유하면 되는 농축형 대용량제품이다.엔진 내부의 연소실까지 세척이 가능해 매우 실용적이고 편리하다.시장진입에 앞서 해외시장을 조사한 결과,1회용 대신 농축형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데 주목한것이 성공을 이끌어냈다.
  • [공무원 Life & Culture] 국사편찬위 박한남 연구관

    “승정원일기는 우리에게도 오래 전부터 기록문화가 중시됐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기록물입니다.승정원일기를데이터베이스화함으로써 귀중한 사료의 활용가치를 높이고,우리의 높은 역사·문화콘텐츠 수준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됩니다.” 경기도 과천에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연구편찬실 편사연구관 박한남(朴漢男) 박사(44·4급)는 요즘 사학자로서 공무원의 길을 택하기를 참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자주 말하곤한다.현존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역사기록물이자,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현장에서 쓰여진 통치기록물인승정원일기의 전산화 작업이 국고지원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보 제303호로 지난 6월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지정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는 조선시대 왕명을 출납하던 승정원이 매일 작성한 기록물.조선 개국 초부터 작성됐으나 일부가 화재와 전쟁 등으로 소실돼 현재는 1623년(인조 1년) 3월∼1910년(순종 4년) 8월까지 288년간의 기록이 남아 있다.분량은 총 3,245책,2억4,250만자로 총 888책,5,400만자로구성된 조선왕조실록의 5배에 달한다. 상당한 정도의 한문해독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매일 8시간씩 읽는다고 가정했을때 전체를 읽는데 26년이 걸릴 만큼방대한 사료다. 승정원일기 정보화사업은 총 100억원을 투입,올해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승정원일기 전문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이다.한문으로 된 고전을 한글세대와 외국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쉼표·마침표·가운뎃점·의문부호 등 문장부호를 표시하고,초서체인 원전을 알기 쉬운 해서체로 바꾸며,사건별로 핵심내용을 인터넷으로 서비스하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 원년부터 철종 14년까지 472년간의역사기록물인데 비해 승정원일기는 조선후기 288년간의 기록에 그치고 있지만 왕실 의례와 정치·경제·외교 등 주요 정책결정과정,관리들의 출퇴근 및 인사이동,매일의 날씨,별자리 등 천문기록도 담겨 있는 승정원일기의 사료적가치는 실록의 그것과 비교할 바 아니라고 박 박사는 강조했다. 박 박사는 “실록은 선왕 사후에 설치된 실록청에서 작성하기 때문에 곡필의 가능성을 안고 있지만 승정원일기는왕의 최측근에서 왕실의 모든 일들을 기록한 것이어서 사실성과 객관성이 실록과 비교할 수 없다”면서 “디지털사업이 완료되면 조선후기 역사뿐 아니라 인문학·천문학 등 인접학문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박사는 “한문코드도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초서로쓰인 것을 영인본과 대조하며 해석하는 어려운 작업이지만 마치 그 시대 왕궁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생생함과 사료로서의 매력 때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작업하게 된다”며 밝게 웃었다. 함혜리기자 lotus@
  • 구한말 외교명소 ‘손탁호텔’ 전경 첫 공개

    구한말 독일여성 손탁(Sontag·孫鐸·1845∼1925)이 건립,‘조선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당시 서울 정동(貞洞) 외교가의 대표적 명소였던 손탁호텔의 화려했던 전모가 처음으로 공개됐다.그동안 손탁호텔에 대해서는 건물의 정면일부 사진 정도만 전해질 뿐 구체적인 자료는 전무하다시피 했다.손탁호텔은 현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서지학자인 이종학(李鍾學·74) 사운연구소장이 18일 본지에 단독공개한 자료에 따르면,중구 정동 32-1번지(건립당시는 정동 29번지·현 이화여고 동문 일대)에 위치한 손탁호텔은 러시아풍의 2층 양옥건물로 부지가 1,184평에 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 이번에 이 소장이 공개한 자료는 손탁호텔의 대형 홍보용엽서에 실린 호텔 전경사진을 비롯해 토지대장, 지적도면,그리고 건립자 손탁의 사진 등으로 모두 처음 밝혀지는 것이다.건축전문가들은 한국 근대건축사의 미비된 부분을 보충해줄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국적이 독일인 손탁은 프랑스 태생으로 구한말 주한 러시아공사 웨베르를 따라 1885년 조선에 왔다.손탁은고종이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俄館播遷·1896년) 전후 고종을 측근에서 모신 공로로 고종으로부터 궁궐의 일부를 하사받아 1902년 그 자리에 서양풍의 호텔을세우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손탁호텔로 명명했다.1905년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한 직후 손탁은 호텔을 프랑스인에게 팔았으며,손탁호텔은 1910년 한일병합 후 유럽풍으로 개조돼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1918년 이화학당에 팔려여학생 기숙사로 쓰이던 손탁호텔은 4년뒤인 1922년 새 건물을 짓기 위해 완전 헐리고 말았다.새 건물(‘프라이홀’)도 지난 75년 화재로 소실됐다. 김정동(목원대·건축학) 교수는 “당시 손탁호텔은 일본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로쿠메이칸(鹿明館)과 같은 급의 격조높은 호텔로 건축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건축물이나그간 관련자료가 부족해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했다”면서 “이번에 공개된 자료들은 기존 한국건축사를 보완해줄귀중한 자료”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손탁호텔은 화려한 외양에 걸맞게 전체 규모 및 내부·부대시설 또한 당시로선보기 드물게 크고 고급이었다. 우선 토지대장을 보면 손탁호텔의 부지는 이제까지 알려진 184평이 아니라 이보다 1,000평이나 많은 1,184평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또 건물 역시 본관 1개동이 아니라 모두 3개동이었으며,부속건물에는 바와 당구장 등 고급 오락시설도 딸려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배재학당,독립문 등을 시공한 것으로 알려진 심의석(沈宜錫)이 시공한 이 호텔은 2층 벽돌건물로 1층은 보통 객실과 식당,다방으로 사용되었고,2층은 왕과 귀빈들의 특별 객실로 사용되었다.객실 수는 모두 25개. 한편 손탁호텔은 건립 당시에는 ‘정동 29번지’였으나,중구청 지적과에 확인한 결과 현재는 ‘정동 32-1번지’로지번이 바뀌어 있었다. 땅주인 명의도 명치45년(1912년)에손탁에서 ‘감리교회 부인(婦人)외국선교부’로 넘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정운현기자 jwh59@. ■손탁호텔 사연과 인물들. 조선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손탁호텔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그리고 손탁은 어떤 내력을 가진 여인인가. 목원대김정동(건축학과) 교수는 “구한말 당시 손탁호텔은 각국 외교사절들과 국내 개화파 인사들의 사교장으로서는 물론 1900년대 서양문물을 소개하는 대표적 창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시내 유일의 최고급 호텔이었던 이곳에는 외국의 명사들이 종종 투숙하기도 했다.‘톰소여의 모험’으로유명한 미국작가 마크 트웨인이 러일전쟁 취재차 한국에들렀다가 이곳에 묵었으며,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따님인 앨리스 루스벨트 양도 숙박한 적이 있다.또 한국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조약’ 강제체결에 앞서 1904년 3월,1905년 11월 두 차례 방한했다가 머무르기도 했다.조선 국내 인사로는 친미 개화파들의 모임인‘정동구락부’소속 민영환·서재필·윤치호·이완용 등이수시로 이곳을 찾기도 했다. 한편 손탁호텔의 건립자인 손탁은 당시 서울(한양) 정동외교가의 ‘프리마돈나’라 할 수 있었다.4개국어에 능통했던 데다 조선 황실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1845년 프랑스 알사스 로렌 지방 출신인 그녀는 1885년초대 주한러시아공사로 부임한 웨베르를 따라 한국에 처음왔는데 웨베르의 처제, 혹은 처형이라는 등 신분에 대해서는 설이 엇갈린다. 당시 국내정세는 친러파가 득세하던 시절이어서 그는 황궁을 자주 드나들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고종황제 내외의 총애와 신임을 받게 됐다.‘아관파천’으로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머물 당시 그는 고종황제의 수라상을 차리는 등 측근에서 모셨으며,나중에 고종이 덕수궁으로 환궁한 후에는 웨베르의 추천으로 궁궐에서 사용하는 서양 집기 관리업무를 맡기도 했다.이같은 신임으로 1897년 고종으로부터 현 덕수궁 맞은편의 궁궐 땅 일부를 파격적인 값에 할양받은 손탁은 1902년 구옥을 헐고 그 자리에 러시아풍의 2층 벽돌건물을 짓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손탁호텔’로 이름지었다. 그러나 1905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자 손탁은 호텔을 프랑스인 보엘(J.Boher)에게 판 뒤 호텔 주방에서 일하던 이(李)씨 성을 가진 한국 어린이를 양자로 입양,프랑스 니스로 귀국,그곳에서 죽었다.양자로 데리고 간 한국인이씨는 후에프랑스 여인과 결혼,프랑스 이씨의 시조가 됐다. 정운현기자
  • 국내최대 생명공학연구소 착공

    미래기술로 각광받고 있는 생명공학(BT) 분야의 국내 최대규모 민간 연구소가 탄생한다. 포항공대(총장 鄭盛基)는 분자·생명과학 분야의 우수한 연구인력과 잠재력을 바탕으로 세계적 수준의 생명공학 연구와 국내 관련산업 발전을 선도하기 위한 ‘생명공학연구센터’를 건설키로 하고 19일 연구동 착공식을 갖는다고 18일 밝혔다. 오는 2003년 2월 개관 예정인 생명공학연구센터는 연면적 4,000평 규모로 주 건물인 일반실험실(5층)과 보조 건물인 동물실험실(2층)로 구성된다.이 안에는 ▲연구교수 및 연구원실 ▲실험실 49모듈 ▲동물실·온실·동위원소실 등 특수실11개 ▲원심분리기·세포배양실 등 공공기기실 21개 ▲단백질분석·유전자분석 등 핵심기술실 16개 ▲소강당·문헌정보실 등 교육시설 12개 등 모두 111개의 각종 연구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이 사업은 포항제철과 산학협동 일환으로 추진되며,건설자금 320억원 전액을 포항제철이 지원한다.연구성과에 대해서는 포항공대가 일정 지분을 갖고,포항제철은 우선적으로 사업화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포항공대 생명공학연구센터(센터장 蔡治範 생명과학과 교수)는 분자의학·신기능작물·나노바이오텍 분야를 중점 연구분야로 정하고 ▲간염 DNA 백신 개발 ▲신기능 펩타이드 선도물질 개발 등 7개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센터 건물이 완공되면 인근의 포항방사광가속기·포항테크노파크 등과 연계,국내 최대규모의 생명공학 연구단지를 형성해 우리나라가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함혜리기자 lotus@
  • 만성변비·지나친 음주…치질 부른다

    평소 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연구하느라 앉아있는 시간이 많은 대학원생 K씨(31). 그는 일주일 전부터 항문이 묵직한 느낌이 들었고 며칠 전부터는 그런 느낌이 더 커졌다. 뭔가 이상해서 항문 옆을 만져보니 콩알만한 혹이 생겼다. 항문도 전체적으로 조금 볼록하게 나온 것 같았다. 혹이 생긴 첫날은 통증이 없었으나 다음날부터 따가움과 함께 약한 통증이 느껴졌다.좌욕을 하니 아픔이 사라지고 혹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K씨는 항문에 뭐가 났다는 게 찜찜해 빨리 없애고 싶기만하다.그러나 변비나 설사가 없이 변을 정상적으로 보는 만큼 그대로 놔두는 게 더 나은지 수술을 하는 게 좋은지 걱정이 돼 인터넷으로 의사에게 문의했다. 항상 업무에 바쁜 40대 중반의 회사 임원 S씨는 배변 때 가끔 출혈이 있었으나 별 통증이 없어 인근 약국에서 연고를구입해 발랐다. 약을 바르면 며칠 동안은 상태가 좋아지지만 다시 출혈이생겼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통증도 약간씩 느껴졌다.수술이 두려워 주변 사람 소개로 주사를 맞아봤지만 그것도 효과가 잠시였다.결국 전문의의 진찰을 받은 뒤 항문 안쪽에 생긴 혹 덩어리를 잘라냈다. 한원곤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일반외과 교수는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등 이런저런 원인으로 항문 주위에 분포된정맥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해 울혈(鬱血)이 생기고 이것이덩어리로 굳어지는 병이 치질”이라고 말했다. 그는 “덩어리가 항문 안쪽에 생긴 것을 암치질,바깥쪽에생긴 것을 수치질,항문 안팎에 모두 생긴 것을 혼합치질이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서성옥 고대 안암병원 일반외과 교수는 “치질을 일으키는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다”면서 “만성 변비와 설사,임신과출산,항문 주변 위생 불량,폭음(暴飮),자극성 음식 과다 섭취 때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출혈 증상이 있을 경우 혹시 직장암 등 다른 병일수도 있으므로 반드시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조언했다. 아울러 “통증이 심하거나 튀어나온 덩어리가 커 생활에 불편을 느낄 때는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치질 기미가 있는 것 같이 느껴지면 아침에 대변을 보는 습관을 기르고 너무 오랜 시간동안 앉은 자세를취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고 충고했다.그는 “적절한운동으로 혈액순환이 잘 되도록 하고 변비 및 설사는 그 즉시 치료해야 한다”면서 “목욕과 좌욕은 치질의 특효약이므로 배변후 좌욕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치질 예방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변기에 오래 앉아 있을수록 항문충혈이 심해지면서 항문 피부가 조금씩 늘어나 항문주변이 지저분해진다”면서 “5분이내의 짧은 시간에 배변을 하고 남은 느낌이 있어도 끝내고 나온 뒤 가능하면 다음날 아침에 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한 교수는 “항문 밖의 혹 덩어리(치핵)가 저절로 항문안으로 들어가는 단계에서는 온수좌욕만 해도 항문의 청결과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다”면서 “연고나 좌약을 삽입하는 보조적 치료 방법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손으로 치핵을 밀어 넣어야만 항문내로 들어가거나 항상 치핵이 항문 밖으로 나와 있는 경우는 외과적 수술을 한다.한교수는 “최근 레이저 수술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나 레이저를 이용한 수술이 일반 절개술보다 효과가 크게 좋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유상덕기자 youni@. ■치질상식- 치루 10년이상 방치땐 암 우려. [수술 후 통증이 심해 겁난다] 과거 마취기술이 다소 떨어져 통증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최근에는 수술 후 3일간 항문부를 무통 상태로 만드는 마취술이 개발되어 통증을거의 느끼지 못한다. [치질이 장기간 지속되면 직장암이 된다?] 치질과 직장암은완전히 다른 질환이다.따라서 치질이 직장암으로 발전하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출혈,잦은 변의(便意) 및 배변 이후에도 변이 남아있는 것 같은 느낌,변의 굵기가 갑자기 가늘어지는 등 치질이 심할 때 나타나는 증상이 직장암과 유사하기 때문에 전문의로부터 정확한 진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 전문의라면 5분이내의 간단한 검사로 비교적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다만 항문 주위에 고름이 생긴 뒤 터져 흘러나오고 고름이 있던 자리에 구멍이 생기는 질환인 치루를 10년 이상 방치하는 등 만성화할 경우 치루암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재발이 잘된다고 하던데] 보통 수술치료 후 재발률은 5% 정도이다.재발하는 경우는 수술 전 환자가 가졌던 치질의 발생요인이 소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끄러워 어떻게 병원가요.그냥 참지 뭐] 특히 여성의 경우 치질은 병이 생긴 곳을 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그러나 항문병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에게서도 많이 걸리는 병으로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충고이다.한편 대항병원이 항문질환 증상을 느끼고 수술을 받기 위해 이 병원을 찾은 남여 2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결과,증상을 느끼고 병원에 가기까지 10년 이상 걸렸다는 응답 비율이 42.7%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34%)보다는 여자(55.8%)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10년이상 항문질환을 조금씩 느끼면서 취한 행동은 ‘그냥 참았다’ 55.8%,‘민간 요법을 썼다’ 11.9%인데 비해 ‘병원을찾았다’는 18.8%에 불과해 발병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은비율이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10년 이상 참았다가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출혈 86%,통증 86.8%,탈항 82.6% 등의 증세를 보였다. 유상덕기자
  • 구례 화엄사에 ‘華嚴石經’ 복원된다

    불교 화엄경(華嚴經) 국내 전래의 모태로 여겨지는 ‘화엄석경(華嚴石經)’이 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전남 구례화엄사에 복원된다. 18일 조계종과 화엄사 측에 따르면 화엄사가 주축이 돼화엄사 대웅전 뒤에 보존각을 세워 화엄석경 파편들을 보존,2010년까지 화엄석경을 원래의 모습대로 완전 복원한다.이와 관련,오는 26일 화엄사에서는 화엄석경의 제작연대를 비롯해 돌의 출처와 재질,화엄석경의 서체 등을 규명하는 ‘화엄석경 복원 학술세미나’가 개최된다. 화엄석경이란 ‘해동의 화엄종조’로 통하는 신라 의상대사(625∼702년)가 670년쯤 화엄사를 중창하면서 화엄경을석경(石經)으로 조각한 뒤 동시에 지은 장육전(丈六殿) 사면 벽에 두른 것.임진왜란 때 화엄사가 소실되면서 파괴됐으나 1960년대 초부터 파편들을 수습,보관돼 왔으며 90년보물 제1040호로 지정됐다. 현존하는 석경 편은 61년에 수습된 1만4,000여점과 최근수습된 2,000여점 등 1만 6,000여점.이 돌 조각에는 두세자에서부터 50자 이상의 경문들이 새겨져 있으며 부조(浮彫) 선각(線刻)형 두 종류가 있다. 복원을 주도할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년) 인도 스님 연기조사가 창건한 화엄 종찰.2년전 현 주지 종걸 스님 취임 이후 불교계 인사와 문화재위원,불교사학자 10명으로 구성된 자문회의와 ‘화엄석경 보존복원 연구팀’을 구성해 화엄석경 보존·복원을 위한 기본 연구조사를 진행해왔다. 화엄사 화엄석경 도감인 종서 스님은 “화엄석경은 대승경전 중에서도 교학·사상적으로 불교의 핵심을 가장 깊게 담고 있는 경전을 돌에 새겼다”며 “화엄 사상은 또 삼국통일을 이루어내는 데 일조한 만큼 석경 제작과 조각의의의를 되살려 남북의 화해와 평화정착,통일의 원력을 세우고자 한다”고 복원 의미를 강조했다. 김성호기자 ki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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