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인맥 열전](55)국가보훈처.상
“교육이 백년대계이고 문화가 천년대계라면 보훈은 만년대계다.” 국민들에게 보훈 업무의 중요성을 설명하거나 강조할때국가보훈처 직원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한·일합방과 6·25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생긴 순국선열및 애국지사,전몰 순직 및 전공상 군경,참전군인,제대군인,월남전 고엽제 피해자,4·19혁명 희생자 등 800만여명에이르는 보훈대상자(본인 및 유족)의 기본생활을 보장하고국민들의 애국정신을 함양하며 참전 및 제대군인들의 명예와 복리를 증진하는 ‘엄청난’ 업무를 감안하면 과장이아니다.
국가보훈처는 61년 군사원호청으로 발족한 이후 62년 원호처로 승격됐다가 85년 국가보훈처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98년 ‘작은 정부’ 방침에 따라 차관급 부서로 격하됐지만 예산규모나 직원수,기구는 장관 부처에 못지않다.올해세출예산은 1조4,220억원으로 정부 48개 부·처·청 가운데 11위의 규모다.본부는 2관,3국,11과,7담당관으로 구성돼 있으며 서울·부산·대구·대전·광주 등 5개 지방청과 시·도청 소재지에 20개의 지청이 있다.
아울러650만 회원을 자랑하는 재향군인회를 비롯,광복회와 상이군경회 등 9개 보훈단체 중앙회 및 1,000곳 이상의 전국 지부·지회를 산하 단체로 두고 있다.
육군 중장 출신의 이재달 보훈처장은 보스 기질과 소탈함으로 위 아래로부터 두터운 신임과 신망을 받고 있다.특히 국방부 특명검열단장(중장)때 소신발언을 많이 해 출입기자들의 인기가 높았다.고향인 경기도 파주에서 국회의원(16대)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든 덕분에 정치감각까지 터득했다는 게 본인의 변이다.
김종성 차장은 77년 당시 원호처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한 우물을 판 정통 ‘보훈맨’.99년 최규학 전 처장때 차장에 발탁돼 2인자의 자리에서 모두 3명의 처장을 실무적으로 보좌해왔다.기획관리관 때는 21세기에 대비한 중장기 보훈정책 발전방안을 수립,보훈처의 비전을 제시하고 업무 골격을 가다듬었다.기획예산담당관 때는 당시 이상연처장이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옮겨갈때 데려갈 정도로 신임을 얻었다.다른 국장들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업무의 중심을 잡고 흐름을 주도해 직원들이 보훈처의‘보배’라고서슴없이 말한다.
보훈공무원 재직 35년째를 맞은 임무평 보훈심사위원장은 국가유공자나 보훈지원 대상자가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심사·확정하는 보훈심사위원회를 무리없이 이끌고 있다.한달에 2,000여건을 심사할 정도로 폭주하는 업무량에 시달리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보훈처의 맏형이다.6월 정년을 앞두고 있다.
김영욱 기획관리관은 국민의 정부 출범 당시 기획예산담당관으로 대통령직인수위에 파견될 정도로 ‘일 잘하는 충청도 양반’이다.차분하고 꼼꼼하면서도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이다.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재 정부예산의 1.5%에 불과한 보훈예산을 3%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소신을 펼치고 있다.
노주석기자 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