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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번국도-국토를 가로지른다

    36번국도-국토를 가로지른다

    국토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는 아직 없다. 그래서 충남 보령∼경북 울진을 잇는 36번 국도에는 멋과 맛이 남아있다. 시발점은 보령, 점점이 박힌 섬과 아스라한 낙조에 누구에게나 고향같은 푸근한 곳이다. 숨가쁘게 내달린 36번 국도가 내륙의 바다 충주호에서 긴장을 푼다. 푸른 하늘을 담은 충주호를 따라 단애절벽의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연이어 36번 국도는 국토의 등뼈 백두대간으로 내달린다. 클라이맥스는 봉화. 인간의 발길에 의해 유린되지 않은 자연의 순수를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석천계곡,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 계곡과 바위를 굽이치며 휘돌아 백두대간을 넘은 36번 국도는 울진 불영계곡을 따라 동해로 곧장 치닫는다.289㎞ 대장정은 환호성을 내지르다, 자연의 경외에 고개를 숙이게 되고 결국엔 겸허한 인간의 자세까지 가르친다. ■ 초록이 넘실대는 보령·충주 ●대천해수욕장과 다보도 무더운 한여름이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대천해수욕장이 기다린다. 서해안에서 백사장 길이(3.5㎞)가 가장 길다. 특히 조개껍데기 가루가 모래와 섞인 패각해수욕장이 자랑거리다. 석양이면 백사장이 반짝반짝 빛난다. 해수욕장앞 4㎞쯤에 있는 무인도인 다보도는 바다낚시터로 이름난 돌섬. 유람선이 2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대천해수욕장에는 생선회와 꽃게탕, 홍합구이 등으로 유명한 충남수족관(041-933-8077)과 부산횟집(041-933-9898) 등이 있다. ●성주사지와 보령냉풍욕장 성주산은 석불과 최치원, 신도비와 성주사지, 백운사, 휴양림, 활공장 등 보고 즐길 거리가 많다. 한낮에도 깜깜할 정도로 울창한 산림과 맑고 깨끗한 화방골, 삼연동계곡 등이 어우러진 절경이다. 성주사는 백제 법왕 때 창건돼 신라시대에는 9대 선문 가운데 하나로 번창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 지금은 석탑, 석등, 돌계단 등만이 옛날을 말해준다. 인근의 보령냉풍장(041-934-8154)은 폐광을 이용한 것으로 한여름에도 섭씨 영상 12도의 찬바람이 불어나와 땀방울을 식혀준다. ●칠갑산과 한치고개 보령에서 36번 국도를 따라 쉬엄쉬엄 한 시간가량 나오면 칠갑산이다.‘충남의 알프스’로 불린다. 칠갑산자연휴양림(041-943-4510)은 맑은 공기와 울창한 숲이 자랑이다. 휴양림에서 7㎞ 남짓 떨어져 있는 냉천계곡은 아무리 더운 여름날에도 발을 담그면 채 5분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시원하다. 청양에서 공주로 넘어가는 한치고개는 터널이 뚫리기 전까지 주통로였다. 꾸불꾸불한 옛길을 따라가는 드라이브코스로 그만이다. 산책하기에도 좋다. 정상에는 구한말 의병장 만암 최익현선생과 콩밭 매는 아낙네 상이 있다. 별미로 칠갑산장(041-942-3298)에서 멧돼지 숯불구이를 먹을 수 있다. ●충주호 남한의 중심부에서 굽이치는 산줄기를 따라 나라의 강줄기 맥이 모인 곳이다. 백두대간의 장엄한 산자락과 유유한 물줄기가 잠시 긴장을 놓는 곳이다. 충주호는 청명한 하늘을 담고 푸른 산을 닮아 더없이 푸르다. 낙조 하면 서해를 떠올리지만 충주호 유람선에서 맞는 일몰도 그만이다. 하늘에 맞닿은 산자락을 붉게 물들이고 강물을 고스란히 붉게 물들이다가 슬며시 사라지는 해를 품는다. 대형 유람선을 타고 뱃길을 따라가면 옥순봉, 구담봉, 만학천봉, 제비봉 등 호수를 둘러싼 수많은 기암괴석들이 굽이굽이 펼쳐진다. 충주호는 충주, 제천, 단양을 연결한다. 면적은 97㎢. 국내에서 담수 면적이 가장 넓다. 댐 나루터에서 운행하는 쾌속관광선을 이용해 단양권을 관람할 수 있다. 이런 까닭으로 충주호의 수상관광을 즐기는 이들이 끊이질 않는다. 충주호유람선(043-851-5771) ●단양팔경 단양군 남쪽에 위치한 상·중·하선암을 비롯해 사인암 등 8곳의 절경이 영동의 관동팔경과 쌍벽을 이룬다. 으뜸은 한폭의 동양화와 같은 도담삼봉. 예부터 시인묵객들이 많은 시와 그림을 남겼다. 단양에서 북쪽으로 12㎞지점에서 남한강 수면을 뚫고 솟은 세 봉우리.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이곳에서 은거하며 도담삼봉에서 자신의 호를 본떠 삼봉이라고 했다고 한다. 삼봉 중에서 가운데 봉이 남편봉이고 그 옆에 다정한 작은 봉이 첩봉, 좀 떨어진 곳에 딸들을 품에 안고 돌아앉듯 자리한 봉이 처봉이란다. 남편이 딸만 낳은 아내를 내쫓고 첩과 다정히 앉아 있는 모습이라는 옛날이야기도 전한다. 단양관광협회(043-423-5044,421-7114). ●탄금대 신라 진흥왕 때 가야에서 망명한 악성 ‘우륵’이 망국의 한을 달랬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충주에서 서북쪽의 3㎞에 있으며 달천이 남한강과 합류하는 곳에 있다.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배수진을 치고 왜적과 격전을 벌였던 곳. 탄금대의 12대는 당시 계속된 전투로 뜨거워진 활의 열기를 식히고자 12번이나 오르내렸다는 바위들이다.30∼40분 발품을 팔면 모두 둘러볼 수 있다. ■ 절로 넘어가는 봉화·울진 ●석천계곡과 닭실마을 36번 국도를 타고 들어가 봉화읍에서 조금만 빠져가면 석천계곡이다. 울창한 소나무 원시림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맑고 시원하다. 기암괴석으로 자연경관은 수려하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물소리, 산에서 부는 솔바람소리에 잡념이 확 씻기는 듯하다. 계곡 입구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바로 옆에서는 봉화의 춘양목(금강송)으로 조선 중종때 문신 청암 권동보(1518∼1592)가 지은 석천정자가 계곡과 절경을 이루고 있다. 석천계곡을 들어서면 바로 나오는 절벽 바위에 신선이 사는 곳 이란 뜻의 ‘청하동천(靑霞洞天)’이란 글이 새겨져 있다. 석천계곡에서 나와 36번 국도를 따라 울진방향으로 2㎞정도 가다보면 왼쪽에 단아한 한옥마을이 나온다. 마을이 풍수지리상 금닭이 알을 품은 형상 즉 ‘금계포란’이라 하여 닭실마을(酉谷里)로 불린다. 닭실마을의 압권은 청암정. 충재가 도학연구에 몰두했던 곳으로 특이하게도 머리가 동쪽으로 향한 거북 형상의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청암정을 지어 방에 불을 넣자 바위가 울었단다. 지나던 스님이 “거북 등딱지 위에 불을 피우면 거북이 죽는다.”며 “거북에겐 물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뒤 아궁이를 모두 막고, 둘레에 인공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정자에는 퇴계 이황의 글도 남아있다. 닭실마을엔 이외에도 유적지와 박물관도 있다. 개인 박물관인 까닭에 잠긴 경우가 많다. 한국전쟁때 집안에 전해오던 각종 자료들을 항아리에 넣어 땅속에 몰래 묻어 보관해왔던 것들이다. 박물관과 청암정 등을 들어가는 입장료는 없다. 닭실마을에는 식당은 없다. 하지만 가을이나 겨울에는 전통방식대로 만드는 한과를 살 수 있다. 여름철엔 한과가 쉬 눅눅해져 만들지 않는 게 아쉬움이다. 봉화문화원(054-673-2350) ●청량사와 청량산 봉화에 갔다면 들를 만한 곳으로 청량산을 들 수 있다. 봉화읍에서 40분 정도 걸린다.918번 국도를 따라 가는 드라이브 코스도 그만이다. 논길을 가다가 운곡천을 따라간다. 운곡천이 깨끗해 수달이 사는 수달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계곡이 낙동강과 만나는 곳은 천애절벽의 장관이 파노라마친다. 청량산은 12개 봉우리들이 있다. 정상에서 거대하게 솟아오른 암봉으로 수려한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일명 ‘소금강’이라고도 부른다. 청량산 일주 산행은 4시간 정도. 청량사 일주문을 지나자 나오는 청량폭포가 시원하기 그지없다. 청량산도립공원(054-679-6321) 봉화에서 꼭 맛봐야 할 음식인 재래종 검은 돼지로 만드는 돼지구이. 봉성면 가는 초입에는 돼지구이를 하는 집이 20여집 몰려있다. 이 가운데 원조는 아니지만 현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상봉숯불회관(054-672-9783)이다. 숯불구이(180g·5000원)는 돼지고기에 소금만 뿌리고 솔잎을 얹혀 찌듯이 구워냈다. 기름기가 쪽 빠지고 솔향이 은근히 배였다. 텃밭에서 기른 야채에다 돼지구이를 싸 먹으면 정말 일미다. 매콤한 맛을 원한다면 양념구이(6000원)도 괜찮다. 이외에도 봉성숯불식당(054-672-9130)도 유명하다. 불고기가 조금 곁들여 나온다. ●불영계곡과 불영사 36번 국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불영계곡이 아찔하다. 올려다 보면 천애 같은 절벽과 그 위에 곧게 뻗은 소나무가 위태위태해 보인다.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하다. 물은 너무 차서 발이 금방 시려진다. 더위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불영계곡이 끝날 즈음이면 불영사(054-783-5004)가 나온다. 진덕여왕 5년(651년)에 의상대사가 세운 고찰이다. 대웅전 앞 연못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친다고 하여 불영사라 이름지었다고 전한다. 뒤로는 오밀조밀한 경관이 펼쳐져 있다. ●소수서원과 부석사 봉화를 조금 못미친 영주시 풍기에서 시간이 있다면 유·불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소수서원과 부석사가 있다. 울창한 숲속의 소수서원(054-633-2608)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이곳 출신 유학자 안향을 배향하기 위해 주세붕이 세운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입장료는 어른은 3000원, 어린이는 1000원. 주차료는 없다. 소수서원에서 10분 남짓이면 부석사(054-633-3464)에 닿는다. 풍기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우리나라 전통 건물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한 사찰.‘부석’이란 돌이 떠 있다는 뜻으로 무량수전 뒤편에 실제로 땅과 약간 떨어져 있는 바위인 뜬돌 즉 부석이 있다. 글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사진 최해국기자 seaworld@seoul.co.kr
  • 儒林(373)-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儒林(373)-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훗날 대문장가였던 안축과 안보(安輔)를 추가 배향하였으며, 퇴계가 요청하여 임금으로부터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이름을 사액받는다. 이곳이 전국에 서원이 설립되는 기폭제가 되었으며, 조선시대 사학의 중심이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원래 숙수사란 절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 주세붕이 절을 헐어내고 서원을 건립하던 중 불상들을 모두 바위 아래 못 속에 던져버리자 한이 맺힌 불상들이 밤이면 첨벙거리며 뛰어올라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한다. 이를 전해들은 주세붕은 못 위의 바위에 ‘경(敬)’자를 음각하였더니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경은 바로 주자가 주장하였던 ‘거경궁리’의 철학. 공경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데, 이로써 불상들의 한이 위로받았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퇴계는 풍기에 이르자 백운동서원이야말로 앞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이상향임을 깨달았다. 주세붕의 뒤를 이어 자신도 고향에 서원을 지을 것을 결심한 후 그런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특히 한시라도 경건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경’자가 새겨진 바위는 퇴계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만 1년 동안 풍기의 군수로 있었던 퇴계는 경상도 감사에게 병을 이유로 사직원을 낸다. 그러나 이 사직원은 경상감사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다.3개월에 걸쳐 세 번이나 사장을 올려도 회답이 없자 퇴계는 더 이상 회보를 기다리지 않고 그해 12월, 해를 넘기기 전에 고향으로 떠나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퇴계의 행동으로 보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단호한 태도였다. 다음해 정월 허락 없이 임지를 떠났다고 해서 감사로부터 2계급 강등을 받았으나 개의치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토계( 溪)라고 불리던 골짜기에 봉진암(奉眞庵)이란 작은 암자를 짓고 ‘토( )’자를 ‘퇴(退)’자로 고친 후 그곳을 퇴계라 부르고 이를 자신의 호로 삼았던 것은 ‘퇴거계상(退居溪上)’의 뜻을 관철하려는 확고한 결심 때문인 것이다. 이후 퇴계는 임종하는 70세 되던 해까지 선조에게 마지막으로 최후 사장을 올린다.20여년에 걸쳐 무려 53회에 걸쳐 사퇴원을 올리는 것이다. 특히 최후 사장의 이름은 ‘걸치사장(乞致辭狀)’, 풀어 말하면 ‘물러가기를 구걸하는’ 애절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원래 ‘걸치사’란 말은 ‘걸해골(乞骸骨)’에서 나온 말로,‘해골을 빈다.’는 말의 뜻은 ‘신하란 본디 온몸을 모두 임금에게 바친 것이니 사퇴를 원하고 나올 때에는 오직 썩어버린 해골만 남아 있으므로 그것을 돌려달라는’ 하소연인 것이다. 이 말은 항우의 충신이었던 범증(范增)이 항우가 유방의 모함에 빠져 자신을 믿지 못하자 ‘이미 천하의 대세는 정해졌습니다. 이제부터는 전하가 알아서 하십시오. 신은 내리시는 해골을 받아 옛날처럼 이름 없는 병졸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말하였던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퇴계의 최후 사장이었던 ‘걸치사’는 이처럼 늙은 신하가 ‘해골을 비는’ 간절한 호소로,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죽령고개를 넘을 때 퇴계는 임금에게는 이미 ‘썩어버린 해골’만 남아 있는 병든 신하였으나 학문으로는 소향무전(所向無前)의 대용사였던 것이다.
  • [13일 TV 하이라이트]

    ●활력충전 36.5(MBC 오전 8시10분) 50대에 접어들면 특별한 이유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오십견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요즘에는 장시간 앉아서 일하는 20∼30대 젊은이들도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오십견과 구분이 어려운 어깨 유사질환의 종류를 살펴보고 구별법을 알려준다. ●라이프n조이(YTN 오전 9시20분) 전통마을 고유의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선비촌과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고등교육 기관인 소수서원이 있는 곳. 선비의 높은 기개와 깊은 학문의 열정이 살아 숨쉬는 경북 영주를 소개한다. 매력 만점의 이색체험장, 타조와 함께 추억을 만드는 경기도 화성의 타조사파리를 소개한다. ●꿈은 이루어진다(EBS 오후 5시10분) ‘미래사회로 가는 열쇠’라 불리는 RFID(무선 전자인식태그)를 알아본다. 생활의 편리함을 두 배로 느낄 수 있는 IT신기술 RFID를 정보통신연구진흥원 이윤덕 연구원과 한양대학교 정보통신학부 강민수 교수,IT체험단(숭문고, 영상고 고등학생)과 함께 집중 분석해 본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스페셜 (북극해의 라이벌)(iTV 오후 10시20분) 알래스카의 케이프 피어스. 몸집이 육중한 바다코끼리 두 마리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며 패권다툼을 하고 있다. 칼처럼 뾰족한 이빨이 서로의 두꺼운 피부 속을 꿰뚫기도 한다. 더불어 북극지방의 동토에서 살아가고 있는 북극곰, 범고래 등을 만나본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SBS 오후 9시45분) 현우는 집에서 수진과 약혼을 발표하고, 그 시간 은수는 집에서 현우를 그리워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은수는 현우가 있는 회사 주주총회장에서 현우를 발견하고는 쫓아가 아는 척을 하지만, 현우는 은수를 알아보지 못한 채 경비원들에게 제지를 당해 헤어진다. ●공개수사 실종(KBS2 오후 10시5분) 지난 9월, 여섯살 난 정선이가 사라졌다. 정선이는 큰엄마 식당 앞에서 혼자 놀고 있었고, 옆에서는 동네 아저씨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술병을 따던 한 아저씨 얼굴에 막걸리가 튀자 눈물로 오인한 정선이는 휴지를 갖고 아저씨에게 달려갔다. 그 후 정선이를 다시 볼 수 없었다. ●불멸의 이순신(KBS1 오후 9시30분) 순신은 지과라는 검명에 담긴 스승의 뜻을 가슴에 새기며 곤양마을 사람들 속에 젖어든다. 원균은 그런 순신을 찾아와 힘이란 무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도 있는 것이라며 순신에게 무과를 볼 것을 권한다. 그러나 순신은 무관이 되기에 앞서 진정한 무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 “솔이 좋아 전국 돌아다닙니다”

    “솔이 좋아 전국 돌아다닙니다”

    ‘이 몸이 주거 가서 무어시 될고 하니/봉래산(蓬萊山) 제일봉(第一峯)에 낙락장송(落落長松)되야 이셔/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 단종때 사육신 중 한 사람인 성삼문이 읊은 절의가(絶義歌)다. 세상이 이롭지 못한 것으로 가득 차도 ‘낙락장송’처럼 꿋꿋하게 절개와 의리를 지키겠다는 뜻이다. 사라져 가는 소나무를 지키기 위해 똘똘 뭉친 이색모임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솔바람 모임’. 지난해 6월 소나무를 좋아하는 문화·언론·학계의 인사 40여명이 영주 소수서원의 솔밭, 청도 운문사의 솔밭, 대관령 자연휴양림의 소나무 숲을 둘러본 것이 계기가 됐다. 이어 지난해 10월 제3회 춘양목 문화축제 참관과 함께 울진 소광리, 평해 월송정의 소나무 숲에 다시 모이게 됐다. 또 올 2월 경복궁과 삼청공원,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백송 등을 같이 만나며 자연스럽게 시동이 걸려 지난 3월22일 ‘솔바람 모임’ 현판식을 서울 종로구 원남동 시사일본어사 사옥에서 가졌다. 여기에는 회장직을 맡은 전영우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를 비롯, 김동석 전 인하대교수, 박희진 시인, 이호신·이영복 화백, 이애주 서울대 무용과 교수, 엄호열 시사일본어사 사장 등 1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회원들은 주말 등을 이용해 버스 한 대에 동승, 전국의 소나무 숲을 찾는다. 비용은 십시일반으로 모으기도 하고 간혹 산림청의 지원을 받는다. 엄호열 사장의 아낌없는 지원이 ‘소나무 사랑’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솔밭 나들이 때면, 화가는 소나무 그림을 그리고 무용가는 소나무의 번창을 기원하는 즉석 춤을 춘다. 학자들은 소나무의 생태계를 관찰한다. 이호신 화백의 경우 지난 4월 서울 금호미술관에서 ‘소나무야 소나무야’라는 그림 전시회를 열었다. 아울러 소식지 ‘솔바람 통신’을 계절마다 펴낸다. 회장인 전 교수는 “소나무 사랑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각계 인사들이 모였다.”면서 “직업과 연령은 다르지만 우리 정서에 자리잡은 소나무의 상징과 정서, 가치를 알리고, 또 점차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가는 소나무를 지키기 위한 모임”이라고 설명했다. ‘솔바람 모임’은 오는 10월말 서오릉에서 ‘소나무 사랑하기’ 한마당을 펼칠 예정이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儒林(유림) 한자이야기

    작가 최인호씨의 연재소설의 제목 의 儒(선비 유)자는 사람 인(人)과 모름지기 수(需=須)의 결합이다. 사람들에게 모름지기 있어야 할 道(도리 도)를 닦는 선비를 뜻한다. 儒라는 한자는 집단을 뜻하는 林(수풀 림)자와 결합되어 공자 등 聖賢(성현:성인과 현인)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하는 經典(경전:성인의 글이나 언행을 기록한 책)과 그에 관련된 학문을 연구·실천하고 국가사회에 구현하고자 했던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이러한 구조의 어휘로는 선비의 무리를 뜻하는 士林(사림)과 道敎(도교)가 유행이었던 고려시대에 盲人(맹인)들이 杖(지팡이 장)을 짚고 무리를 지어 다니며 운수를 보아 주고 숙식을 해결했다고 해서 생긴 杖林(장림),그리고 학자 또는 文人(문인)의 모임이라는 뜻의 翰林(한림) 등이 있다. 유림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본다면 유학이 삼국시대에 정착된 후 조선왕조 건국이념의 기반이자 주 학문 및 이념으로 정립되면서 특정 學者(학자) 또는 서원 및 향교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서원은 주세붕이 설립한 경북 영주에 있는 백운동서원(지금의 소수서원)을 시초로 각 지방마다 세워져 사립교육기관의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향교는 국가가 관장하는 일종의 국립교육기관이었다. 서원과 향교에서는 유학 경전과 유교의 儀禮(의례) 내지 행동지침을 공부하는 한편,성현들을 기리는 祭享(제향)을 통해서도 그들의 가르침과 정신을 기르는 동시에 직접 교육을 맡아 참다운 유교인을 양성하였다. 중앙의 성균관은 文廟配享(문묘배향)과 함께 국립대학의 기능을 하면서 유교교육의 중심이 되어 국가 동량을 길러냈다. 서원이나 향교를 중심으로 한 인맥이나 學風(학풍) 형성은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고 덕을 쌓아 완전한 유교인으로서의 인격을 닦은 후 성현의 도를 국가사회에 구현한다는 면도 있었으나,출세의 한 방법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고종 21년(1884) 과거제도의 폐지로 儒者(유자)들의 一身榮達(일신영달)과 현실참여의 통로가 봉쇄되면서 향교와 서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유림은 해체의 길로 접어들고,일부 인사들에 의해 명맥만을 유지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儒學(유학)에서 중요시하는 仁(인),義(의),禮(예),智(지),名分(명분),淸廉(청렴) 등은 조선시대 내내 선비정신의 중추를 이루었다.이러한 선비정신은 丙子胡亂(병자호란:丙子年에 오랑캐가 우리나라를 침입해 일으킨 난)과 壬辰倭亂(임진왜란:壬辰年에 왜구,즉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입한 난)때에는 우리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의병들의 정신적 기조가 되기도 했다. 義(의)와 名分(명분),正道(정도) 등을 중요시하다 보니 옳고 곧은 말을 서슴지 않아 유배 등의 벌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조선 중종 반정 이후 연산군의 폐정을 개혁하려다 반대파의 모함을 받고 전라남도로 유배(중종14년인 1519년)된 후 1개월 만에 賜藥(사약:賜 줄 사,藥 약 약,임금이 죄인에게 먹고 죽을 독약을 내려 주는 것)을 받고 죽은 조광조도 그 중의 하나였다. 박 교 선 교육부 연구사
  • 社告/ 최인호 장편소설 새해부터 연재합니다

    대한매일이 서울신문으로 새로 나면서 새달 5일부터 최인호(58)씨의 장편소설 ‘유림(儒林)’을 연재합니다.‘유림’은 공자의 사상에 담긴 참된 ‘정치와 권력’의 의미를 조선 시대의 풍운아 조광조와 대학자 퇴계 이황,율곡 이이의 사상과 삶을 통해 되짚어 보는 대하 서사시입니다. ▶작가 인터뷰 6면 자칫 딱딱하게 생각하기 쉬운 성인의 삶과 사상을 ‘탁월한 이야기꾼’의 감수성으로 현대화하여 깊이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풀어나갈 것입니다. ‘유림’의 세계는 과거에 갇혀 있지 않고 정치와 권력의 본질을 파헤치면서 현재적 의미로 되살아납니다.이는 개혁이란 대의를 내세워 정쟁에 사로잡혀 있는 혼탁한 현대 정치판에 청량제 역할을 하면서 참된 정치의 의미가 무엇인지 냉철하게 되돌아볼 객관적인 거울이 될 것입니다.아울러 옛것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길어 올리면서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은 물론 독자들에게도 혼돈의 시대를 헤쳐갈 슬기를 제시할 것입니다. 작가는 늘 공부하는 자세로 시대를 앞서가는 감수성을 벼리면서 문제작을 터뜨려 왔습니다.그 저력을 바탕으로 ‘유림’에서도 특유의 탁월한 상상력과 재기 넘치는 문체로 연재소설의 새 장을 열 것입니다.“재미있으면서도 ‘만고 불변의 지혜’가 담긴 작품”이라고 밝히는 작가는 15년 전 이 작품을 구상했고 공자의 고향인 중국의 취푸(曲阜)를 비롯,조광조의 유배지 전남 화순의 능주,퇴계 이황의 경북 안동 도산서원과 풍기의 소수서원 등을 빈틈없이 취재하면서 ‘유림'의 형상화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 최인호씨는 고교 2학년 때인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한 뒤 1967년 ‘견습환자’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일찍이 문재를 알렸습니다.소설 ‘타인의 방’‘잠자는 신화’‘별들의 고향’‘도시의 사냥꾼’‘지구인’‘잃어버린 왕국’‘길 없는 길’‘왕도의 비밀’‘상도’‘해신’ 등 주옥 같은 작품으로 현대문학상,이상문학상,가톨릭문학상,현대불교문학상 등을 받았습니다. 소설의 삽화는 최씨와 ‘바보들의 행진’ 이후 20여년 동안 호흡을 맞춰온 이우범(60) 화백이맡습니다.62년 삽화 작업을 시작한 이 화백은 세심하고 정감 어린 화풍으로 소설의 품격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난세의 지혜를 문향(文香)으로 들려줄 ‘유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 바랍니다.
  • 최인호가 들려주는 작품세계/ 서울신문 재탄생 특별기획 연재소설 儒林

    “조광조·이황 삶에 공자 정신 연결 시공 초월한 빠른전개로 재미줄것” “작가는 시대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입니다.요즈음 우리 정치는 개혁과 보수를 내세워 공론(空論)을 일삼으며 상생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가파른 대치만 거듭합니다.이런 혼돈의 현실에서 공자의 정신,즉 ‘정치와 권력’을 조선시대의 정치개혁가 조광조,불세출의 사상가 퇴계 이황,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율곡 이이 등의 삶에 연결지으면서 세상을 비출 지혜를 찾고 싶습니다.” 올해로 문단에 등단한 지 꼭 40년이 되는 최인호씨는 숱한 베스트셀러를 발표하면서 늘 시대를 앞서간 소설가 답게 서울신문에 게재할 연재소설 ‘유림(儒林)’으로 혼탁한 현실을 걸러주는 한 줄기 빛을 찾고 싶다는 의욕으로 말문을 열었다.‘유림’은 내년 1월 대한매일이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바꾸면서 연재하는 첫 소설이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73년 스물여섯살에 신문에 쓴 첫 연재소설 ‘별들의 고향’ 때 처럼 두렵고 불안하면서도 설레고 기쁘고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는 소설에 대한 자신감을들려주면서도 설렘과 불안감 등을 비치면서 항상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온 ‘초심(初心)’을 떠올린다고 했다. ●작가는 시대에 질문 던지는 사람 연재소설을 쓰는 심정을 ‘링’에 오른 권투 선수에 비유한 작가는 “아주 지치거나 힘들 때 호흡을 고르며 간혹 클린치를 할 수는 있지만 링에서 내려가지는 못하는 복서처럼 고독한 일입니다.그러나 저에게 연재소설은 각별한 의미가 담긴 작업이었습니다.저 처럼 신문에 연재소설을 많이 쓴 사람은 드물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문단에서 ‘한발 앞선 감수성’의 작가로 통한다.늘 젊은 감성을 유지하면서 다가오는 시대와 문화의 기류를 남보다 먼저 포착해 작품으로 빚어냈다.당연히 연재하는 작품마다 ‘폭풍의 눈’이었고 인기를 몰고 다녔다. “쓸 때마다 시대에 어울리는 소재가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그러다보니 늘 얘기를 준비해 두었다고 할 수 있지요.‘유림’도 15년 전쯤에 구상했습니다.‘불교의 세계를 다룬 소설 ‘길 없는 길’을 쓰고난 뒤 써봐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우리 민족의 정신적 원형질에서 불교와 유교를 뺄 수가 없지요.머리 속에서 품었던 생각을 연재소설로 풀 수 있게 돼 제 가슴도 두근두근거립니다.” 작가에겐 인기가 ‘독(毒)’이 되기도 한다.특히 매일매일 애를 끓이고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연재소설은 충전하기보다 계속 갉아먹는 듯한 면이 있다.숱한 문제작을 터뜨리며 살아온 가파른 길에서 쉬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은 없냐고 물었더니 뜻밖의 답이 흘러나왔다.“운동 선수들도 쉬는 게 더 어렵다고 말하잖아요.작가도 마찬가지입니다.늘 일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젊어질 수 있었지 않나 싶어요.한 작품이 끝나면 몸은 쉬고 싶은데 머리 속은 끊임없이 꿀벌 떼가 실어오는 ‘상상력의 밀랍’으로 가득찼습니다.” 예술은 구원이자 고통이라고 하지 않던가.그러니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그는 그런 고통과 어려움을 사랑하고 있었다.그러면서 자신의 ‘달램 비법’을 공개했다.“글이 안나가서라기보다는 앞이 캄캄하고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글쓰기라는 업보가 ‘원수같다.’고 느껴지는 그런 순간엔 간혹 골방에들어가서 ‘못 쓰겠다.’고 나 속의 나에게 절규합니다.때론 울기도 하는데 한 30분 그러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충일해지고 기쁨이 찾아와 다시 원고지가 사랑스럽게 다가옵니다.” 어린애같은 천진스러움이 절로 우러나오는 말이다.그만큼 뜨겁고 열정적이기 때문일 것이다.이런 품성은 창작 과정에도 오롯이 반영된다.천주교 신자인 그는 ‘길 없는 길’을 쓸 때에도 3년간 수덕사에 머물면서 ‘출가를 할까.’ 고민할 정도로 작품에 몰두했었다. ●첫 연재소설 쓸때처럼 두렵고 설레 솔직 담백하면서도 맛깔스러운 이야기 솜씨가 다시 소설 ‘유림’으로 넘어왔다.앞 쪽만 보면서 속도만 찾는 현실에서 그는 왜 ‘유림’으로 돌아가려고 할까? “중국의 엘리트들이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유교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뜻에서 퇴계 이황이 풍기 군수 시절 관리했던 소수서원(紹修書院)에 와서 우리의 유교 유산과 정신을 확인한 사례를 주목해야 합니다.유교의 본산인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뿌리를 찾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왜 다른 곳으로만 눈을 돌릴까요.물론 유교의 폐단도 있지만 ‘선비 정신’과 충·효·경의 미덕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독일의 사상가 피히테가 ‘독일 국민에게 고함’을 썼듯이 ‘조선 국민에게 고함’을 ‘유림’이라는 소설을 통해 옮겨보겠다는 심정입니다.” 오랜 구상을 거친 작품이어선지 그의 말은 막힘이 없다.“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어떤 시대라도 진정한 혁신과 변화를 하려면 그 중심에는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저는 그 원칙을 유교에서 목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그 가능성을 조광조의 정치개혁 시도,퇴계와 율곡의 정치와 학문관에서 찾겠다는 생각입니다.” 자칫 딱딱하고 재미없을 지도 모른다는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재미가 없으면 작가인 제가 견디지 못하고 쓰지도 못해요.광속(光速)의 시대에 ‘오늘날 공자와 조광조,이황,이이 등의 얘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지 모르지만 그것은 미시적인 생각입니다.요즘처럼 과도기로 인한 혼돈의 파고가 높을 때일수록 근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원칙에 따른 개혁’을 파고들면서 ‘조광조나 퇴계라면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살 것이다.’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쉴때도 머리속은 상상력의 밀랍 가득 맛보기 삼아 밑그림도 들려주었다.“현대와 공자가 활동했던 2500년 전,중국과 한국 등 시·공을 초월하는 빠른 전개 방식으로 재미있게 이어갈 계획입니다.아울러 공자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소크라테스 이야기 등도 곁들이면서 성인의 출생이 지닌 시대적 필연성도 다뤄 볼 생각입니다.옛날 얘기도 아니고 케케묵은 교훈적 내용만을 담은 것도 아닌,재미있는 현대 이야기입니다.교훈적이고 학술적인 얘기는 제가 견디지 못합니다.” 작가는 유교를 과거에 가둬두지 않고 현대적 의미로 되살려 현시대를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왜 사는가,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싶은 듯이 보인다.나아가 굳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거창한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들려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다시 들려주는 작가의 다짐은 한국의 대표적 거유(巨儒) 퇴계 등의 삶에 공자의 사상을 실어갈 화려한 문재가 발할 빛을 예감케 했다. “도망가지 않고 정통 기법으로 ‘진검 승부’를 할 것입니다.제게는 어려운 소설이 될지 모르지만 그 동안 작가로서 쌓은 역량을 모아서 가장 정통적인 소설을 펼쳐 보이겠습니다.물론 흥미 진진하게 엮어 나갈 것입니다.” 이종수기자 vielee@
  • 99칸 한옥서 바흐~비틀스 느껴보세요/ ‘칼 오르프 앙상블’ 14일 콘서트

    독일의 칼 오르프 앙상블은 한국을 방문하여 가장 특별한 경험을 한 연주 단체로 기록될 것 같다.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은 경상북도 청송 사람들도 마찬가지.해외 연주단체가 청송에서 연주회를 갖는 것은 처음이다. 서로에게 잊혀지기 어려운 경험이 되는 것은 음악회가 아주 특별한 장소에서 열리기 때문이다.흔히 청송 심부잣집이라고 불리는 아흔아홉간 송소고택(松韶古宅)은 14일 하루만큼은 운치있는 공연장으로 탈바꿈한다. 이 앙상블은 ‘카르미나 부라나’로 알려져 있는 독일 작곡가 칼 오르프(1895∼1982)의 이름을 딴 것.독일 하노버음악학교 부설단체인 이 앙상블은 최근 한국에도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 오르프의 음악교육 프로그램 ‘슐베르크’에 따라 교육받은 28명의 청소년 단원으로 이루어졌다. ●수도권서 이미 4차례 자선공연 이 앙상블은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서울과 경기도에서 4차례 자선 연주회를 가졌다.12일에는 경북 영주로 옮겨 소수서원과 선비촌을 돌아보고,오후 5시 시민회관에서 한 차례 공연한 뒤 천년고찰 부석사에서 하룻밤을묵으며 참선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13일 안동 하회마을을 둘러보고 송소고택에 여장을 풀며 저녁에는 기악합주와 민요,사물놀이,판소리,살풀이로 이루어진 대구지역 국악인들의 한국전통예술을 관람한다.칼 오르프 앙상블의 한옥 콘서트는 14일 오후 7시30분에 열린다.큰 사랑채와 안채에 면한 뒤뜰이 연주회장.뒤뜰 한가운데는 오래된 감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는데,이 감나무를 중심으로 임시 무대가 마련된다. 칼 오르프 앙상블의 악기구성은 실로폰과 하모니카와 플루트,아코디언,클라리넷,기타와 각종 타악기 등이다.레퍼토리는 바흐부터 비틀스까지 다양하다.지휘자 울리히 리스타우가 이 앙상블을 위하여 특별히 편곡한 곡들이 주류를 이룬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등도 들려줘 오르프의 ‘슐베르크’ 가운데 몇곡과 루마니아와 세르비아의 민속음악,탱고 ‘라 쿰파르시타’,테오도라키스의 ‘희랍인 조르바의 춤’,바흐의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인 마이 라이프’ 등 비틀스의 히트곡과 ‘사랑은 아무나 하나’ ‘그리운 금강산’ 같은 우리 노래들도 들려준다. 한편 영조 시대 2만석지기였다는 심처대(沈處大)의 후손 송소 심호택(松韶 沈琥澤)이 1880년경 지은 것으로 전하는 송소고택(경상북도 민속자료)은 최근 일반인들이 묵을 수 있는 한옥체험관으로 개방됐다.한국수입업협회와 뉴코리아진흥이 초청한 칼 오르프 앙상블의 연주회는 무료.송소고택 (054)873-0234,songso.co.kr. 서동철기자 dcsuh@
  • 경북 영주 부석사/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1000년 세월을 듣는다

    경북 영주시 부석면에 있는 부석사에 가려면 귀찮더라도 예습부터 할 일이다.여느 사찰에 가듯 뒷짐지고 두어 바퀴 거닐다가,학창시절 국사 교과서에 나왔던 그 유명한 무량수전 앞에서 기념사진 몇 컷 찍고 나오기엔 부석사 나들이가 너무 허망하다.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왕명에 의해 창건했다는 부석사는 한국전통건축의 고전(古典)으로 꼽히는 사찰이다.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도 법등이 끊이지 않았던 역사성,독특한 공간구조와 장엄한 석축단,당당하면서도 우아한 기품을 갖춘 세련된 건물들. 부석사엔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석등,조사당,소조여래좌상,조사당벽화 등 5점의 국보와 3층석탑 등 4점의 보물이 있다.이중 부석사를 대표하는 것은 대웅전격인 무량수전이다.고려 현종 7년(1016) 원융국사가 중건했다.무량수전의 압권은 부드럽고 탄력적인 곡선미를 보여주는 배흘림 기둥과 팔작지붕이다. 거칠게 다듬어진 주춧돌 위에 세운 기둥의 지름 사이즈는 34-49-44㎝.기둥머리에서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오면서 굵어졌다가 다시 가늘어지는 배흘림은 팔작지붕과 어우러져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일직선이 아닌 정사각모양으로 돌려 쓴 무량수전(無量壽殿)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다.특이한 것은 무량수전에 오르려면 누구나 ‘극락’의 뜻이 담긴 ‘안양루’란 누각 밑 계단을 걸어올라야만 한다는 것.불자들은 부처님을 만나거나 극락에 오르는 길은 신분의 고귀함이나 미천함에 관계없이 평등하다는 깊은 뜻이 담겨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안양루는 무량수전 앞마당 끝에 놓인 누각이다.이 건물은 위쪽과 아래쪽에 달린 편액이 다른 데 무량수전 앞마당과 이어진 위쪽엔 ‘안양루’,위로 오르기전 입구엔 ‘안양문’이라고 씌어 있다.무량수전에 오르기 전엔 ‘문’이고,오르고 나서는 ‘누각’인 이중의 기능을 부여했다.안양루에 서면 발아래 엎드리듯 모여 있는 경내 건물들의 지붕들,그리고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부석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이다.그래선지 옛부터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 오르면 끓어오르는 시심(詩心)을 참지 못하고 적지않은 시문을 남겼다.그중 방랑시인 김병연 등 몇몇이 지은 시문은지금도 누각 안에 걸려 있다. ‘평생에 여가없어 이름난 곳 못봤더니/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백년동안 몇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세월도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안양루에서 발 아래 경치를 감상하며 김병연의 시구를 읇조려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부석사 나들이는 보람이 있다. 영주 임창용기자 sdragon@ ■여행 가이드 *가는 길= 풍기를 들머리로 잡는 것이 편하다.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빠져나와 931번 도로를 타면 된다.30분 정도 달리면 소수서원,순흥향교 등을 지나 부석사에 닿는다.풍기서부터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일단 버스나 기차를 타고 영주 또는 풍기로 간 다음 부석사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숙박 및 먹거리= 주차장 인근에 명성식당(054-633-3262) 등 민박을 겸한 식당이 몇 군데 있다.좀더 깨끗한 곳에 묵으려면 부석사 입구의 코리아나호텔(633-4445),또는 풍기,영주시내 호텔이나 모텔을 이용하면 된다. 부석사 인근 식당에선 산채비빔밥을 주로 낸다.조금만 시간을 내 풍기로 가면 인삼정식,인삼갈비 등 인삼을 재료로 쓴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인근 가볼만한 곳= 신라 선덕여왕 때 두운조사가 창건한 희방사,조선 중종때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소수서원,의상대사가 부석사 터를 구할 때 초막을 지어 기거하던 자리에 지었다는 초암사 등이 찾아볼 만하다.소백산 옥녀봉 기슭에 자리잡은 자연휴양림에선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문의 영주시 관광담당(639-6062). ■둘러 볼만한 곳/ 벽화·불상… 예술혼에 감탄 꼭 문화유적 답사가 아니라도 일단 부석사를 찾는다면 무량수전과 안양루 이외에도 아래의 몇가지는 눈여겨 둘러보자. 먼저 부석사 창건 당시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무량수전 앞 석등.화려한 귀꽃 장식과 세련된 보살상 조각이 감탄을 자아내는 통일신라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대표적 석등이다. 조사당은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조사의 초상을 안치한 곳이다.정면 3칸,측면 1칸 규모의 작은 전각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느낌을 준다.희귀하게도 건물내부 입구 좌우에 보살상,사천왕상이 남아 있다. 조사당 앞엔 이중 철창 속에서 보호받는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이 나무가유명한 ‘선비화’다.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은 뒤 가지와 잎이 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선비화 잎을 따 삶은 물을 마시면 아들을 얻는다는 믿음이 생겨 뭇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철창으로 보호하게 되었다. 조사당 벽면에 그려졌던 조사당 벽화는 고려 회화사에 귀중한 연구자료로평가되는 작품이다.불명(佛名) 미상의 보살상과 다문천왕상 등을 담은 이들벽화 6점은 고려조 예술이 지니는 아름다운 선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무량수전에 모셔져 있는 소조여래좌상은 신라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걸작으로 꼽힌다.소조(塑造)상으로는 최대,최고의 불상으로,두꺼운 입술에서 고려불의 특징이 엿보인다.특이한 점은 불상이 정면이 아닌 측면,즉 동쪽을보고 앉아 있는 것으로,호국을 기원하는 뜻으로 서라벌을 향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 중앙고속도 개통 이후 효과 ‘톡톡’

    중앙고속도로 개통 이후 경북 북부지역이 경제적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경북도에 따르면 중앙고속도로가 완전 개통된 지난해12월14일부터 올 4월 말까지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결과영주,풍기,남·서안동,예천,의성,군위 등 북부지역 IC의 통과 차량이 4만 523대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6.8% 증가했다. 이로 인해 부석사·소수서원·소백산 등 영주지역을 찾은관광객은 39만 2707명으로 예년보다 250%나 증가했고,안동지역도 58만 2699명으로 53.6% 늘었다. 관광객 증가에 따라 지역 특산품의 매출액도 급증해 풍기인삼의 경우 올들어 3월 말까지 32억 4500만원어치를 판매,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나 많았다. 또 군위종합유통센터는 올들어 4월 말까지 294억 2200만원의 매출을 올려 지난해에 비해 67.6% 늘어났다. 이와 함께 중앙고속도로 인근 11개 시·군의 농공단지 평균 가동률은 IMF 직후인 98년 1·4분기 78.9%에서 올 같은 기간에는 89.1%로 10.2%포인트 상승했다. 이밖에 우등고속버스 노선 등이 신설돼 안동과영주버스터미널 이용객이 8% 가량 증가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중앙고속도로 개통 뒤 관광수입 증가로지역 주민들의 경제적 격차가 크게 해소되었을 뿐만 아니라유교문화에 따른 보수폐쇄주의적 주민사고도 개선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
  • 소수서원에 개인공적비 말썽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사적 제55호인 경북 영주시의소수서원에 특정인의 공적비가 세워져 말썽이다. 14일 경북 영주시 순흥문화유적관리소에 따르면 문화유적 관련단체와 영주지역 유림 일부가 지난달 24일 소수서원내 충효교육관 옆 빈터에 서모씨(77)의 공적을 기리는 높이 3.2m,너비 1.1m,두께 1.8m 크기의 대리석 비를 세웠다. 유림 일부는 서씨가 소수서원에 충효관을 세우는 등 그동안의 노고가 컸고 소수서원의 명성을 드높인 것을 기려 공적비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적지인 소수서원에 공적비 등 각종 시설물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도록 돼 있으나 이공적비는 이러한 행정절차를 전혀 밟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영주시는 이 공적비가 설치되는데 허가를 받지않아 문화재 보호법을 위반했다며 이 공적비에 천막을 둘러싸고 자진 철거를 종용하고 있다. 또 비문에 기획위원으로 이름이 오른 일부 유림도 명의가 도용됐다며 이름을 지워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순흥문화유적관리소 관계자는 “서씨의 업적에 대해서도지역 유림 사이에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면서 “문화유적지인 소수서원에 검증도 안 된 인사의 공적비를 불법으로 세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영주 한찬규기자 cghan@
  • [기고] 퇴계철학은 희망이다

    하회마을의 돌담과 소수서원의 풍광,수많은 서원과 누(樓)와 정(亭),시간도 멈춘 듯한 고가(古家)들은 우리에게 마음의 안식을 안겨주는 따뜻한 공간이다.그 사이로 한국인의숨결과 전통문화가 흐르고 있다.안동을 비롯한 경북 북부지역은 가장 한국적인 것들이 한데 모여 있는 보고(寶庫)이다. 세계적 석학들이 퇴계(退溪)의 21세기적 가치에 대해 토론하면서 전통 고택에서 옛 선비들의 생활을 그대로 체험한다. 이들은 한복 차림에 한국식 이부자리, 반상기에 정갈하게차려진 전통 음식상,고풍스럽게 꾸며진 사랑채에서 한국의전통문화를 즐길 것이다.일반인들도 문화적 정취를 몸으로체험하면서 유교와 퇴계의 향기를 마음껏 느껴 볼 수 있는공간이 마련돼 있다. 퇴계 탄신 500주년을 맞아 세계 유교문화축제가 5일부터개막된다. ‘새천년 퇴계와의 대화’를 주제로,퇴계를 우리 곁에 모셔와 인간적,정신적 숨결을 함께 느껴보는 체험의 장이다. 이는 시대와 나라를 걱정했던 큰 선비 퇴계를 통해 희망의단초를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유교문화의 핵심인 선비정신의 원형을 발견해 보고 현대인의 생활 깊숙이 뿌리내려 있는 전통 유교문화를 세계화하려는 새로운 시도이기도 하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우리나라를 ‘동방의 빛’이라 했다.유학에 바탕을 둔 우리 정신문화의 위대성을 타고르는 일찍이 간파한 것이다.그러나 21세기를 향해 초일류,초현대를꿈꾸며 달려 온 오늘의 한국인의 모습은 어떠한가. 산업화에 이어 지식정보화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사회구성원간의 신뢰가 상실되고 전통적인 도덕성도 약화되었다. 개인 이기주의의 성행으로 남에 대한 배려도 사라지는 부작용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말았다. 첨단 과학의 하이테크 문명이 만들어낸 인간 소외와 정신적 가치 상실의 그늘 속에서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고 더불어 함께 사는 윤리도덕의 사회를 강조했던 퇴계철학이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퇴계 이황의 삶과 사상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그가 뛰어난 것은 위대한 사상을 일구었다는 것 이상으로 삶 속에서사상을 직접 실천했다는 것이다. 이미 중국과 일본에서,지금은 바다 건너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도 21세기의 사상적,실천적 대안으로 퇴계가 연구되고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동과 영주를 비롯한 경북 북부지역은 유교문화와 사람과자연이 한데 어울려 생기를 뿜어내는 곳이다. 가을 여행을 꿈꾸는 분들이라면 유교문화 축제의 현장에서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느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될 것이다.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맘껏 감상하고 자부심을 갖는 기회를 가질 것을 권하고 싶다. 21세기 우리의 미래가 거기에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의근 경북도 지사
  • 경북 봉화 청량산 “육육봉 비경…”

    속리(俗離)란 그렇게도 힘들고 벅차기만 한 것일까. 경상북도 내륙 깊숙히 웅크린 봉화의 청량산.백두대간에 걸친 죽령을힘겹게 넘어 봉화에 닿은 뒤 한참을 내달려야 비로소 청량산 자락에이를 수 있다.서울을 등진 지 5시간만이다. 등산로 들머리에서 보면 산 몇부리밖에 보이지 않는다.도대체 어디에절이 숨어있을까. 원효와 의상 같은 큰 스님들은 어찌하여 이 산자락을 찾아들었을까.신라의 최치원과 김생 같은 대문장가들은 말할 것도없고 한 시대를 호흡하며 첨예한 논쟁을 벌였던 주세붕과 퇴계 이황이 이곳을 찾아든 인연은 또 어떻고…. < 원효·최치원·이황 인연 깃들어 >이곳은 태백산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청량산자락을 휘감아돈다.강을건너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다소 가파른 길이 나온다.절에 쉽게 닿는길이긴 하지만 이 산자락의 온전한 멋에 흠뻑 빠져들기에는 부족함이많다. 조금 더 오르면 입석이란 등산로 들머리가 나온다.건너편 축융봉의 결기찬 능선을 ‘꾸욱’ 누르며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15분쯤올랐을까. 축융의 봉우리가 발밑에 이르렀다고 느낄 때쯤 바람이 마중나오는 산모퉁이를 만난다.고려말 공민왕의 아내 노국공주가 기도를 올렸다는응진전(應眞殿)이다. 간간이 눈이 쌓여 미끄러운 벼랑길을 조심스레 옮기다보니 주변 풍광을 헤아릴 여유가 없다.그러다 천길 벼랑끝,어풍대(御風臺).문득 탄성이 터져나온다.“청량이다!” < 기암·노송 천길 벼랑끝 어풍대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곳 청량의 비경을 ‘밖에서 바라보면 다만 흙묏부리 두어송이 뿐이나 강건너 골 안에 들어가면 사면에 석벽이 둘러있고 모두가 만길이나 높으며 험하고 기이한 것이 이루 형용할 수가 없다’고 했다. 청량은 여섯봉우리 내산과 여섯봉우리 외산으로 나뉘어있다.금탑과축융 등 외산에 가려 자소를 주봉으로 한 내산의 아름다움은 밖으로드러나지 않는다. 한뼘 땅뙈기도 없을 만큼 가파른 협곡이 여섯 봉우리아래 펼쳐지고기암과 노송,흰 눈발이 어우러진 일대 파노라마가 펼쳐진다.억,숨이막힐 지경이다.퇴계는 이 절경을 두고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흰기러기뿐”이라고 읊었다.이 골짝에 깃들었던 암자만37곳이 넘었다고 하니 경읽는 소리 또한 대단했으리라. < 도산십이곡 지어진 오산당 >그 소리를 찾아 오솔길을 내려온다.아이젠을 깜빡 잊고 온 길손들은엉덩이로 썰매를 탄다.이윽고 오산당.퇴계가 은거하며 도산십이곡을지었고 성리학 체계를 다듬은 곳으로 알려져있다.오산당 옆에 원로산꾼 이대실씨(62)의 초막이 있다.천명(天命)을 안다는 나이 오십에그는 아들내외와 아내에게 번듯한 예식장 빌딩 등 온 재산을 물려주고 산에 들어왔다. 중3때 청량산을 처음 찾아 홀딱 반해 비구니스님밑에서 나무를 하며한달을 버텼다.아예 스님이 되겠다고 했더니 “이 썩을 놈아,도회지나가서 잡질이나 해”라고 쏘아붙였단다. 산을 울며 내려가며 ‘언젠간 꼭 이산에 들어와 살겠다’고 다짐을했는데 말이 씨가 돼버렸단다. 하모니카도 불고 대금도 불고,산막을 오가는 이들에게 아홉가지 약초를 달여 끓인 약차를 대접한다.돈은 받지 않는다.험한 산비탈을 오르다 조난당한 이를 구하는 일도 그의 몫. < 청량사 유리보전 종이 부처님 >다시 오산당을 나와 두갈래 길을 만난다.위로는 김생이 은거하며 공부했다는 김생굴을 거쳐 경일봉에 오르는 길이고 아래로 내려가면 청량사다. 청량사 본전격인 유리보전에는 특이하게도 종이로 만든 부처님이 모셔져있다.유리보전 앞 삼각우총.절을 처음 세울 때 뿔 셋 난 큰소가이곳에서 비탈을 골랐고 불사가 끝나자마자 이 자리에 죽어 묻혔다는전설이 전해온다. 유리보전 아래 범종루가 있고 그아래, 주지인 지현스님이 절을 찾아온 이들의 쉼터로 지었다는 전통찻집 안심당이 있다.이 집 기둥에는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란 화두가 적혀 있다. 여기서도 찻값은 보시로 받는다.바람은 무얼 뜻하고 소리는 무얼 뜻할까.겨울바람이 차다.돌아오는 길에 청량사가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은 또 어떤 인연일까. 봉화 임병선기자 bsnim@. * 봉화 청량산 가는길. 영동고속도로 남원주 나들목을 거쳐 중앙고속도로 서제천 나들목으로빠져나와 단양을 거쳐 영주,봉화에 이른다. 봉화읍으로 들어가지 말고 좌회전해 삼계사거리에서 직진한다.철길아래를 지나 오른쪽의 주유소를 보고 918번 지방도로로 우회전하면청량산 도립공원 이정표가 나타난다. 봉성토속음식단지를 지나 35번국도와 만나면 다시 우회전하고,11㎞쯤 직진하면 매표소가 나온다.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안동이나 봉화로 간 뒤 수시로 운행되는 시내버스를 이용한다.청량산 자락은 워낙 비탈진 탓에 눈이 조금만 내려도 미끄럽다.아이젠을 꼭 챙길 것.한겨울에는 유리보전이 있는 자소봉 외에는 오를 수 있는 봉우리가 거의 없다. 솔잎에 얹어 소나무숯불로 구워낸 암퇘지고기가 맛깔난 봉성 숯불돼지구이 마을에 꼭 들러야 한다.1인분에 4,000원인데 푸성귀와 토하젓,밑반찬들이 푸짐하다.대처에선 맛볼 수 없는 넉넉한 인심으로 한 상그득하다. 오시오식당(054-672-9012) 등 8곳이 성업 중이다. 절을 나와 남쪽으로 8㎞쯤 가면 온혜온천이 나온다. 겨울산행으로 얼어붙은 심신을 녹일 수 있는 작은 온천이다. 7㎞쯤 더 남하하면 안동호가 나오고 그 곁에 도산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영주 부석사와 주세붕의 소수서원을 들러도 좋다. 청량사(054)672-1446,응진전(054)673-5275,오산당옆 산꾼의 집(054)672-8516청량산휴게소(054-672-1447)에선 잠도 잘 수 있고 간단한 식사도 가능하다.
  • 서원에 깃든 한국사상의 숨결

    최근 안동대 안동문화연구소가 출간한 ‘서원,한국사상의 숨결을 찾아서’는 유학 전공자들이 전국의 서원(書院) 12곳을 답사,일반대중용으로 출간한책이다. 기존 출간된 서원 관련 책자들은 대개 기행문 형태를 띤 채 서원의 위치나건축물의 외적인 면을 설명한 정도에 불과하였다.즉 정작 중요한 서원의 정신사적인 면이 배제된 것이 보통이었다. 반면 이 책은 서원을 중심으로 한 조선시대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따라서 이 책은 조선시대 사상의 흐름을 바탕으로 배향된 인물을 고려하고,학맥의 요처에 자리잡은 대표적인 서원을 골라 배향된 인물과 그들의 사상,그리고 그 서원이 사상의 흐름속에서 자리한 위상·전개를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한국 성리학의 원조인 안향의 소수서원,충절의 대명사인 야은 길재의 금오서원,남명 조식의 덕천서원,퇴계 이황의 도산서원,하서 김인후의 필암서원,서애 유성룡의 병산서원,율곡 이이의 자운서원,학봉 김성일의 임천서원,김상용·김상헌의 석실서원,우암 송시열의 화양서원,노사 기정진의 고산서원,수암권상하의 황강서원 등 12곳. 도서출판 예문서원,값 1만원. 정운현기자
  • 경북 영주시청 ‘문화행정’ 서비스

    ‘언제나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예술품을 관람할 수 있는 민원실…’ 경북 영주시(시장 金晋榮)가 시청 민원실을 고급 갤러리수준의 분위기로 꾸며 민원인을 맞고 있다.월별로 테마를 정해 미술품 건축모형 등을 전시한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 이달의 테마는 ‘창조’로 정해 경북전문대 시각디자인학과 학생들이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디자인작품 26점을 전시중이다.클래식 영화음악 가곡 등 다양한 쟝르의 음악도 들려줘 즐거운 마음으로 민원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7월은 ‘여성’으로 테마를 정해 시 여성복지회관 취미반 수강생들이 만든종이접기와 꽃꽂이,생활공예품 등 30여점을 선보일 예정이다.또 8월에는 ‘자연’을 테마로 농업기술센터가 제공한 자생식물 30여점을,‘젊음’이 주제인 9월에는 동양대 동아리연합의 도움을 받아 건축모형과 패션디자인 등 40여점을 전시하기로 했다. 가을인 10월에는 ‘향기’란 테마로 영주 국향회가 키운 국화 20여점을,11월에는 농업경영인연합회와 ‘흙’을 주제로 농·특산물 33종을 민원인들에게홍보할 계획이다.12월에는 ‘선비’를 주제로 소수서원측이 소장하고 있는 각종 문화재 사진 40여점을 전시한다. 김광기(金光起) 부시장은 “21세기 문화자치시대를 앞두고 문화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민원실을 새롭게 꾸몄다”며 “행정자치부에서도 우수사례로 정해 전국 지자체에 권장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영주 김상화기자 shkim@
  • 서원/이상해 지음(화제의 책)

    ◎64곳 연혁·건물 소개 맑은 바람이 불고 달이 비치는 누각,마음의 문을 열고 동학들과 격의없이 토론하는 강당 대청. 서원은 유생들이 모여 강당에서 학문하는 강학(講學)의 기능과 사우(祠宇)에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드리는 제향(祭享)의 기능을 갖춘 조선시대의 사회문화적 공간이다. 서원 역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여백의 미가 강조되는 한국건축의 기본정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건축학자와 사진작가인 두사람이 지난 93년부터 전국 서원을 누비며 소수서원 등 64곳을 선정,정리했다. 각 서원의 연혁·봉향(奉享)인물·건축공간·배치도와 함께 550여컷의 컬러사진이 계절별로 곁들여 졌다. 안장현 사진/열화당 5만원
  • 정부소장 서화 3만여점/시가 335억 추정…1억이상 고가 23점

    ◎청전의 동양화 ‘추경’ 5억원대 최고 정부가 소장하고 있는 서화류는 총 3만135점으로 추정가격은 3백35억에 이른다.조달청이 정부수립 후 처음으로 조사해 10일 발표한 정부소장 예술품 가운데는 1억원을 넘는 고가품도 23점이나 된다. 이 가운데 최고가품은 경기도 군포시 철도청 부곡박물관에 소장된 청전 이상범 화백의 동양화 ‘추경’으로 5억원을 홋가한다.감사원이 갖고 있는 서양화가 김형근 작 ‘공방의 노장들’도 1억5천만원이 넘는다.문화적 가치가 높은 작품으로는 조선 13대 명종이 쓴 경북 소수서원의 현판과 대원군의 서예도 포함돼 있다. 전체적으로는 동양화가 1만1천333점(9백86억원)으로 가장 많고 서예 8천761점(31억원) 서양화 5천603점(99억원) 조각 593점(70억원) 도자기와 공예품 등 기타 3천845점(35억원) 등이다.부처별로는 우체국 때문에 정보통신부 소장품이 3천92점으로 가장 많다. 조달청은 전문가 14인으로 「정부 서화류 관리자문위원회」를 구성,그동안 관리대상에서 제외됐던 정부 소장예술품에 대한 관리를 철처히 해나가기로 했다.
  • 2차5개년 문화권 유적 정비계획 확정

    ◎국난극복·유교문화 유적 집중정비/다도해·강화·안동권 포함 7개지역 세분화/1,811억 투입… 1차 미완료 사업도 마무리 문화체육부는 지난 88년부터 추진해온 제1차 문화권유적정비 사업이 올해 완료됨에 따라 내년부터 2002년까지 실시할 제2차 5개년 문화권유적 정비계획을 수립,발표했다. 2차 5개년 문화권유적 정비계획에 따르면 1차 사업이 대상 권역을 백제 신라 가야 중원 및 영산강 유역으로 나눈 것에서 세분화해 백제 신라 가야 중원 다도해 안동,영주 강화 문화권 등 7개로 늘였으며 백제 신라 가야 중원 문화권은 2차 5개년 문화권 정비사업으로 연계 추진하면서 전남 해양과 경기도 강화등 국난극복 현장과 주요 유교 문화유적 분포지역을 집중 정비하기로 했다.이에따라 총 1천8백11억원(국비 1천1백40억,지방비 6백3억,자부담 68억)을 투입해 공주 송산리 고분군 등 48개 유적을 보수 정비하는 것.▲1차 사업기간중 정비가 완료되지 않은 유적가운데 백제 신라 가야 중원지역의 황룡사지,왕궁평 유적,함안 도항리,말산리 고분군 등 29건의 문화유적과 ▲강화지역의 강화산성,다도해역의 전라병영성지,남도석성 등 14건의 해양호국관련 유적 ▲안동·영주 지역의 소수서원과 도산서원 등 5건의 문화유적을 복원 정비하는 내용으로 짜여져 있다. 각 문화권 유적정비 계획은 다음과 같다. ▷백제문화권◁ 1차 정비사업에서 주로 공주·부여 중심의 유적 정비에 그쳐 논산·익산지역 유적정비가 시급한 과제로 남아 1차 정비사업중 미완료된 중요 유적과 논산·익산지역 문화지역을 지속적으로 보존 정비해 백제사와 그 전후의 역사를 재조명하는데 역점을 둔다.모두 4백63억원을 들여 공주 공산성,부여 부소산성,부여 라성,모질메산성,공주 석장리 구석기유적,정림사지,관촉사,미륵사지석탑,궁남지,공주 송산리 고분군,계백장군 유적 등을 정비한다. ▷신라문화권◁ 1차 정비사업에 이어 대표적인 불교·왕조 문화유적을 집중적으로 정비한다.3백17억원을 들여 황룡사지에 신라·통일신라 불교문화의 참모습을 선양하도록 유물전시관을 건립하고 포석정의 모형을 제작 설치하며 경주 남산 일원과 숭혜전을 정비한다. ▷가야문화권◁ 가야유적은 주로 고분으로 이루어져 1차 정비에 이어 김해 금관가야와 고령 대가야,함안 아라가야 유적을 중심으로 추진한다.2백84억원을 들여 김해 대성동·양동리,의창 다호리,고령 지산동,합천 옥천,선산 낙산,함안 도항리,말산리,고성송학동 고분군을 정비한다. ▷중원문화권◁ 산성과 불적을 중점 정비하면서 삼한·삼국시대의 정치·문화·사회상 연구에 빼놓을수 없는 고분군과 초기 백제의 토기생산 과정을 보여주는 유적을 추가로 정비한다.1백48억원을 들여 보은 삼년산성과 법천사지,거돈사지,진천 삼용리 백제요지,청주 신봉동 백제고분군을 정비한다. ▷다도해문화권◁ 국난극복의 해양 호국유적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며 지역개발 사업을 정비계획과 연계 추진하면서 해양 호국유적의 교육도장 및 문화관광자원 활용가치를 높이도록 한다.2백70억원을 들여 여수 충민사,용장산성,남도산성,장도 청해진유적,검단산성지,연천선소 유적,전라병영성지,전라우수영성지를 정비한다. ▷안동·영주문화권◁ 경북 안동의 문화유적을 집중 정비해 국민교육도장으로 조성한다.1백75억원을 들여 도산서원,소수서원,순흥향교,금성단,안동하회마을을 정비한다. ▷강화문화권◁ 1백52억원을 들여 외규장각을 복원하고 강화산성,고려왕릉,강화선원사지,진·보·돈대,삼랑성을 복원 정비한다.
  • 고려시대 안향 초상화(한국인의 얼굴:99)

    ◎기품어린 눈매에 인본주의 향한 열정이 고려시대 책에는 그림에 대한 기록이나 그림에 붙여놓은 글월인 제화시가 꽤 전해오고 있다.그럼에도 실물의 그림이 흔치 않아 그 흐름이나 화풍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기는 어렵다.부처나 보살을 그린 종교화 성격의 불화를 빼고나면 고려회화는 몇 점에 지나지 않는다.공민왕이 그렸다는 두 점의 수렵도 이외에 신선과 학을 그린 그림,초상화 등이 고작이다. 초상화로는 안향(1243∼1306년)의 영정이 있다.경북 영주시 순흥 내죽리 소수서원이 소장한 이 초상화는 고려시대에 그린 그림을 조선 명종때 그대로 베껴 그린 모본이다.그러나 고려 초상의 전통을 보여주는 그림이어서 국보111호로 지정되었다.세로 37㎝,가로 29㎝ 크기의 비단 바탕에 물감을 써서 그린 본격 초상화다.누가 그렸다는 기록은 전혀 남기지 않았다. 요새 사람들이 마치 독사진을 찍는 것처럼 포즈를 잡았다.관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이지만 모자까지 갖추었다.모자는 천으로 만든 문라건인듯 한데,요즘 역사드라마에 나오는 문라건 보다는 춤이 좀낮았다.그리고 고려인들의 일상적인 겉옷 수포를 입었다.눈 높이를 약간 비켜서 위쪽에다 눈길을 준 초상의 주인공은 전체적으로 단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고려의 선비다.어떤 볼룸이 들어가지 않은 평면의 초상화일지라도 사실적으로 보인다.눈썹과 눈,수염 등을 가느다란 선으로 꼼꼼이 처리했기 때문인 것이다.눈썹과 수염은 터럭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그렸다.은행알을 닮은 눈매에는 쌍꺼풀이 지지 않아 눈이 더 없이 깔끔했다.그리고 동자가 맑아 기품이 어렸다.길어 보이는 코는 옅은 묵선을 그어 표현하고 입술은 얼굴색보다 더 붉은 색깔을 입혔다.맞물린 입술사이에 진한 묵선을 가로 그었다.그래서 과묵한 표정이 되었다. 이 초상화에서 만난 고려인 안향.고려불화에서 보아 온 불·보살들과는 달리 인간적인 얼굴로 다가왔다.그가 살았던 고려 후기는 위기의 시대였다.무신집권에서 비롯한 정치의 불안정,불교의 타락과 무속의 성행,몽고의 침탈 등이 위기의 실마리가 되었다.그러한 시대상황속에서 안향은 불교보다 주자학을 받아들여 이상을 실현코자 했다.특히 인재양성을 통해 인간이 지배하는 인본주의 사회를 꿈 꾸었던 것이다.그러고 보면 이 초상에는 자기수양의 그늘이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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