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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소주의자 반대속 곳곳서 충돌/소 사상 첫 국민투표 이모저모

    ◎국민들,투표성격 모른채 “우왕좌왕”/「보이콧주도」 리투아국방 한때 연금/신원확인 않고 중복투표 묵인등 부정도 속출 전세계의 이목을 모은 17일의 소 국민투표가 당초 우려와 달리 큰 충돌없이 치러졌다. 초기 개표결과는 현행 연방제 존속을 지지하는 쪽의 표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연방제 지지표가 과반수는 무난히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국민투표 이후의 소 정국 전망은 여전히 밝지가 못하다. 투표 불참을 선언한 6개 공화국에서는 투표율이 극히 저조,일부 지역에서는 민족주의자들의 투표저지사태까지 일어났고 발트해 3국은 투표결과와 관계없이 독립의사를 거듭 다짐하고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17일 모스크바의 자택 부근 투표소에서 투표한 뒤 기자들에게 자신은 『주저없이 표를 던졌다』고 말하고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과 토지 및 재산에 관한 문제는 국민 스스로가 결정해야할 문제이며 누구나가 자신들의 몫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투표에 들어가기 전 『소 연방의분열은 소련뿐 아니라 유럽,나아가 전세계의 재난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나는 유권자들이 연방의 단합을 유지하고 새로운 연방제를 창설키 위해 나의 노력을 지지해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은 이날 모스크바의 프룬젠스키 지구 투표소에서 부인과 함께 투표를 한 뒤 기자들에게 자신의 급진적인 권력 분산계획의 일환으로 소련은 앞으로 15개 공화국 수반으로 구성된 집단 지도부에 의해 통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소련 일반시민들은 이번 국민투표가 왜 치러지는 것인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었으며 심지어는 고통스럽게까지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모스크바 북부의 한 투표소에서 받아든 투표용지를 한참 쳐다보던 한 노파는 옆에 있던 청년에게 『여보게,이게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어떻게 해야하나』고 곤혹스럽게 묻는 모습이었다. ○…소 연방당국은 투표거부를 선언한 에스토니아·라트비아 등을 비롯한 6개 공화국에서는 지역내 군기지나 공산당 시설내에 투표소를 설치,투표를강행했다. ○…아우드리우스 부트카비치우스 리투아니아공화국 국방장관이 18일 아침(현지시간) 리투아니아 주둔 소련 내무부 특수부대에 의해 수시간동안 연금됐다고 리투아니아 라디오가 보도했다. 아우드리우스 아주발리스 리투아니아공화국 의회 대변인은 부트카비치우스장관이 아르투라스 파우라유스카스 리투아니아 검찰총장과 내무부 특수부대간의 협상끝에 이날 정오경에 풀려났다고 전했다. 리투아니아 의회의 한 소식통은 부트카비치우스장관의 체포가 17일 실시된 소련연방제의 장래에 관한 투표도중 한 투표소에서 일어난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으나 더 이상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몰다비아 공화국의 수도 키시네프에서는 몰다비아 민족주의자 수백명이 현지 경찰의 지원아래 투표소로 가는 길목을 가로 막고 투표하러 가는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을 공격했다. 경찰도 민간인과 군인들을 위한 투표소들이 설치된 소련 군사기지들로 통하는 시내 주요도로를 차단,투표 저지에 나섰으며 몰다비아인들은 투표소주변에 몰려들어 투표하러 나온 러시아인 등에게 욕설을 외쳐댔다. 이날 하룻 동안 몰다비아인들과 러시아인들간 수십건의 충돌 사태가 벌어졌으며 현지 경찰도 몰다비아인들 편에 선 까닭에 러시아인들이 심하게 얻어맞는 모습이었으나 큰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투표 거부를 선언한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아르메니아·그루지야·몰다비아 등 6개 공화국에서는 현지 소수민족들이 민족주의자들의 투표 방해에도 불구,대거 투표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 연방존속 여부에 주민들간 이해가 상충되고 있음을 드러내 보였다. 한편 레닌그라드와 리가에서는 투표인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투표를 허용하거나 복수투표를 묵인하는 부정이 저질러지기도 했다고 인테르팍스통신 등이 전했다.
  • 경찰 폭력 LA 발칵(세계의 사회면)

    ◎흑인 뭇매현장 시민이 비디오로 찍어 TV에… “인권유린” 여론 비등 지난 3일 0시30분쯤 로스앤젤레스 근교 210번 고속도로선상. 5∼6대의 고속도로 경찰순찰차가 헬리콥터의 지원아래 한대의 흰색 현대엑셀승용차를 뒤쫓고 있었다. 8마일 가량의 질주끝에 순찰차에 진로가 차단된 엑셀승용차는 멈춰졌다. 차를 몰던 흑인 청년 로드니 킹(25·실업자)이 운전석에서 끌어내려지자 경찰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경찰봉과 주먹·발길질로 그를 짓이겼다. 흑인청년은 유혈이 낭자한 채 현장에서 수갑이 채워져 경찰서로 연행됐다. 당시 이 흑인청년은 왼쪽다리가 부러졌으며 얼굴에도 20바늘을 꿰매야하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구타장면이 사건현장 가까이 거주하는 한 아마추어 비디오카메라맨의 필름에 잡혀 TV네트워크를 통해 미국전역에 방영돼 사회문제화됐다는 점이다. 이 필름은 동료 고속도로 순찰대원 1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3명의 경찰관들이 3분여에 걸쳐 경찰봉과 주먹·발길지로 흑인청년을 무자비하고 잔인할만큼 난타하는 장면을담고 있어 시청자들을 전율케했다. 사건현장 인근에 거주하는 조지 헐리데이씨(31)가 찍은 이 필름은 제보를 받은 LA지역 TV 채널의 하나인 KTLA가 5백달러에 사들여 방영,대특종을 했고 곧이어 모든 TV 네트워크들이 이를 복사,방영했다. 만일 이 아마추어 카메라맨이 이 장면을 잡지 못했더라면 이 사건은 억울한 인권유린으로 끝나버렸을 것이라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의외로 파문이 커지자 경찰측은 한때 언론들에 대해 사건의 진상접근을 봉쇄하면서 사건을 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몰아가 매듭지으려 들었다. 그 한 예가 피의자 킹이 현대 엑셀로 1백15마일 속도로 질주했다는 경찰 주장이다. 그러나 LA 현대자동차측은 엑셀의 최대시속은 91마일이라고 밝혀 속도위반이라는 경찰의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했다. 드디어 검찰측과 FBI가 본격수사에 나섰으며 톰 브래들리 LA시장은 LA시 산하 전 경찰관들의 복무자세를 다시 정립하라고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당국은 관련 경찰관 13명 전원해직과 직접관련 경찰관 3명을 기소하는 선에서사건을 매듭지으려 하고있으나 여론은 데릴 게이츠 LA시경국장의 문책까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미국에서 다반사로 자행되고 있는 소수민족과 흑인에 대한 공안기관의 차별대우를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한다는 공론이 수렴될지에 현재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이라크 내전 소용돌이 안팎

    ◎“후세인,곧 비참한 최후 맞는다”… 소문 파다/반군·쿠르드족,남북부 장악 교전/후세인 강경진압령… 부녀자도 사살 이라크에 반후세인 폭등이 급속히 번지고 있다. 이같은 전국적인 소요사태는 후세인의 운명과 함께 패전후 이라크 집권세력 및 정치체제의 향방을 판가름할 최대변수가 되고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반정부 시위는 크게 3가지 부류로 진행되고 있다. 과격시아파 회교 반군들이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바스라시를 장악한데 이어 남부 7개 도시에서 정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고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은 북부 슐레이마니아 지역을 장악하는 등 게릴라전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도 바그다드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일부 이라크 군병사들까지 가세한 반군들은 교도소와 정부관서 차량 등을 탈취하고 바트당 관계자들을 비롯한 정부관리들을 공격하고 있으며 후세인의 장남인 우다이 바스라주 지사도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가 악화되자 후세인은 터키국경에 배치했던 2개 기계화 여단을바그다드로 철수시켜 자신을 보호하는 한편,집권혁명평의회 부의장인 이자트 이브라힘을 소요지역 현지로 급파,동남부 군지휘관들에 대한 규합에 나섰다. 공화국수비대는 반후세인 시위대들에 대한 강경진압에 착수,탱크 등을 동원해 부녀자들에게까지 총격을 가하고 있으며 바그다드 라디오도 반후세인 폭동 발생사실을 최초로 언급,국민단합을 파괴하려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이같은 반후세인 폭동이 확산되는 이유는 후세인의 무자비한 철권통치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당장 끼니도 때우기 어려운 궁핍한 생활에 대한 불만이 겹치면서 이번 기회에 아예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물어 독재자를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인구구성은 수니파에 비해 35대 60으로 많으면서도 줄곧 수니파의 집권을 감수해왔던 시아파의 불만과 쿠르드족의 독립야욕,시리아 이란 등 인접국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도 소요를 확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내전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이라크의 내부폭동이 앞으로 어떻게 진전될지는매우 불투명한 상태다. 아직까지 전력상 우위를 보이고 있는 후세인의 정부군이 반군세력을 진압할 수 있을지,반군들이 후세인을 축출하고 이라크전역을 장악할 것인지,아니면 내전상황이 상당기간 지속돼 「제2의 레바논」이 될지를 예측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정부군진영서 빠져나와 반군에 가담하는 이탈자들이 늘어나 후세인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고 반군들도 제각각 이해관계가 달라 후세인에 반대한다는 사실외에는 공통점을 찾아볼 수가 없는 실정이다. 미국 등 다국적군의 개입여부도 사태진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미국측은 이라크내부의 소요사태로 인해 전쟁포로 송환 및 이라크 영토내에 진주해 있는 다국적군의 철수가 지연되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사태가 매우 심각해지지 않는 한 우리가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사태가 매우 심각해질 경우 미국이 어떠한 태도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이때문에 후세인 정권전복을 위해 다국적군의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는 이라크 반정부단체들은 동맹국들의 비위를맞추기 위해 자신들이 과격파가 아니라 자유선거를 지향하는 온건주의자들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라크남부 시아파 회교 반군세력의 배후조종 집단인 것으로 알려진 이란 테헤란에 본부를 두고있는 이라크 회교 혁명최고회의와 런던에 본부를 둔 회교 알 다와당 등은 『우리의 목표는 무력에 의해 회교 원리주의 정권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유총선에 의한 민주정권 수립』이라고 계속 강조하고 있다. 쿠르드족 단체들은 자치권 확대를 주장하기는 하지만 이라크 북부지역을 분리독립시키려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라크의 장래 및 망명정부 구성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오는 10일쯤 베이루트에서 열릴 전 이라크 반정부단체회의 참가그룹도 시아파와 쿠르드족,공산주의자,전 군부지도자,집권 바트당 이탈인사 등 워낙 이질적 요소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설령 후세인이 제거된다 하더라도 권력쟁탈을 위한 또다른 내전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미국은 감정적으로는 부시 대통령이 후세인은 『거짓말쟁이 사기꾼』이라고 표현할정도로 후세인이 제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이라크가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제3의 레바논으로 전락,중동질서의 새로운 불안요인으로 대두되거나 세력구조 또는 인구구성 비상 가장 강력한 회교시아파 과격분자들의 손에 이라크가 넘어가 이란의 회교혁명 수출의 전진기지화하는 것도 결코 원치 않기 때문에 섣불리 정책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무튼 이라크의 반후세인 폭동은 당분간 더욱 격화돼 후세인이 곧 축출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걸프전 이후 관련국 표정/소도 후세인 비난… 정권교체 지지/서방 보도진 26명 이라크서 실종 ○…암만의 서방관측통들은 이라크측이 3일 개전초 이래 처음으로 후세인이 미소를 지으며 그의 보좌관들과 전후복구문제를 협의하는 모습이 담긴 TV필름을 바그다드주재 외국기자들에게 공개한 것을 끊임없이 나돌고 있는 망명설과 관련,그의 건재를 입증해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휴전후 육로로 생필품 조달을 위해 요르단에 도착한 이라크트럭운전사들은 후세인이 하야하지 않을 경우 루마니아의 전 독재자 차우셰스쿠 처럼 비극의 종말을 고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외교자문인 바딤 자글라딘은 4일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이라크 정권이 확실히 테러리스트집단이며 이 정권이 교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글라딘은 이날 자크 상테르 룩셈부르크 총리와 회담을 가진뒤 기자들에게 이같이 말하면서 그러나 후세인정권이 회교 원리주의자 정권에 의해 교체되는 것은 『전세계에 위협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경고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사드 마디 토마 국방장관과 그의 두 보좌관에게 걸프전쟁의 패배 책임을 물어 이 세사람을 처형했다고 영국에서 발행되는 아랍어 신문 알 아다스지가 4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것이라면서 후세인 대통령이 이들에 대한 처형명령을 내려 이들은 지난달 28일 처형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후세인 대통령이 이들 세사람에 대해 임무를 다하지 못해 『미국과 영국 및 프랑스 군대가 이라크 내륙인 바스라주까지 진격하고 나세리야주까지 도달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을 비난하면서 이같은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으나 두 보좌관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이라크는 지난해 8월2일 쿠웨이트 침공이후 쿠웨이트내에서 빼앗은 쿠웨이트 재산을 반환할 것이라고 바그다드 라디오방송이 5일 보도했다. 니코시아에서 수신된 이 방송은 『유엔결의에 따라 지난해 8월이후 압류한 쿠웨이트 재산을 돌려줄 것』이라고 보도했으며 이러한 결정은 지난 4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주재한 이라크 집권 바트당과 혁명평의회의 한 회의에서 취해진 것이라고 전했다. 이 방송은 반환재산의 내역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이라크가 가져간 재산에는 쿠웨이트 정부재산과 사바왕가의 막대한 재산이 포함된다. ○…쿠웨이트 왕정은 반체제 민주인사들의 명단을 작성했으며 이들을 살해하기 위해 암살범들을 고용했다고 쿠웨이트의 저명 은행가인 압둘 아지즈 술탄 걸프은행장이 4일 주장했다. 쿠웨이트에서 두번째로 걸프은행의 총재인 그는 한 미 TV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사바왕가의 일부 왕족들이 쿠웨이트내에서 암살음모를 계획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아지즈 은행장은 미 ABC TV의 「나이트라인」 프로에 출연 『아랍 모국가에 머물고 있는 일부 사바왕족들이 자신들의 쿠웨이트인 민병대와 용병들을 구성하고 있으며 또 다른 왕정들은 민주인사들을 암살하기 위한 특수대원들을 파견하려 하고있다』고 밝혔다. ○…반후세인 폭동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라크 남부배역에서 취재중이던 프랑스기자 15명 등 서방국기자 26명이 실종됐다고 미국과 프랑스 관리들이 5일 밝혔다. 리야드의 미군 관계자들은 지난 3일 쿠웨이트시를 출발,이라크 남부 바스라시로 향했던 11명의 기자들이 바스라 남쪽 40㎞ 지점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뒤 실종됐으며 이들의 생명이 무척 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밝혔다. ○…해방된 쿠웨이트 시내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쿠웨이트군과 사우디군의 박해가 노골화 되고 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목격자들은팔레스타인인들이 단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유하나만으로 시내 검문소에서 차에서 끌어내려지고 있으며 통행이 저지된채 몇시간씩 기다릴 것을 요구당하고 있다고 설명. 또 50내지 55명의 팔레스타인인의 사우디군과 주둔지 부근의 미군순찰대에 발견되기도 했다.
  • “발트 3국 독립분규/소,평화적해결 희망”/최고회의 민족위장

    【제네바 로이터연합】 소련 중앙정부는 발트해 공화국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길 바라고 있으며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에스토니아공화국 등에 배치된 소련군은 철수를 하고있는 중이라고 소련 최고회의의 소수민족위원회 위원장 아나톨리 데니소프가 11일 밝혔다. 데니소프 위원장은 이날 제네바에서 개최된 유엔 인권위원회 연례회의에 참석,이같이 밝혔다.
  • 페레스트로이카의 과제/조지 캐넌 진단(해외논단)

    ◎“「오도된 평등주의」가 소개혁 막고 있다”/70년 독재로 자유경쟁원리 완전 망각/민족분규는 자율협조로 해결 바람직 소련은 지금 극도의 혼란에 빠져있다. 경제적 혼란도 문제지만 연방체제마저 와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1947년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을 주창,세계적 명성을 얻었던 조지 캐넌교수는 이제 「슈퍼 스테이트」,소련의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외교문제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91∼91년 겨울호에 실린 그의 논문을 요약,소개한다. 러시아는 과거 수세기동안 지리·정치적으로 서구문명과 단절돼 있었으며 그만큼 현대화 과정도 뒤졌다. 그러나 18∼19세기에 들어 러시아사회는 이러한 단절을 극복하고 현대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의욕적인 교육개혁과 농업개혁이 추진됐고 사회전반에 의욕이 엿보였다. 물론 이를 가로막는 체제내 갈등과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절대왕정,의회제도의 부재,민족문제 등 고질적인 문제들이 이 현대화 작업의 장애요소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유혈혁명까지 필요하지는 않았다. 1917년 초에는 의회제도의 토대가 마련됐고 왕정폐지는 무혈로도 가능했다. 1917년 혁명은 이 평화적 변화가능성을 하루 아침에 뒤엎어 버렸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 러시아의 반체제 세력중엔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변화를 반대하는 급진 과격세력이 들어 있었다. 이들은 차르왕정과 러시아 사회를 완전히 파괴시키기를 원했다. 파괴 후의 계획은 극히 모호하고 유토피아적이었다. 이들은 러시아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함으로써 예상외의 호기를 얻었다. 1917년 여름 임시정부는 왕정이 붕괴된 어수선함 속에서 이 전쟁을 계속키로 결정,큰 실수를 저질렀다. 레닌파의 권력장악을 가능케한 것은 2년반에 걸친 전쟁과 1917년초 국내정치의 혼란이었다. 그러면 공산정권 수립이 러시아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레닌은 일차적으로 부르주아 인텔리층을 몰아냈다. 그리고 그후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 인텔리층까지 모조리 제거했다. 이 결과 러시아는 문화적으로 과거와 단절됐고 이 단절은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스탈린은 자신의 개인통치에 장애가 되는 지식층과 레닌의 잔재세력을 모두 몰아내기 위해 무자비한 숙청을 단행했다. 1937년과 38년에 이 숙청은 절정에 달했고 수백만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사회전체가 히스테리 속으로 빠져들었다. 1940년대에 들어 러시아 국민들은 설상가상으로 숙청보다 더 무서운 2차 대전의 공포를 맞게 된다. 소련은 1941년 6월 정식으로 참전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소련국민들 사이에 외부의 적에 대항하는 원초적 민족주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스탈린은 자신을 이 감정과 교묘히 결합시켰다. 정부와 국민은 힘을 모아 나치에 저항했고 국민들은 정부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가졌다. 전쟁이 끝나면 정부의 통치방법에도 변화가 올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스탈린은 이 변화를 단호히 거부하고 예전의 통치방식을 그대로 고수했다. 무서운 전쟁의 공포에서 살아남은 국민들의 간절한 희망을 스탈린은 철저히 무시했다. 국민들은 엄청난 좌절을 맛보았다. 1953년 스탈린의 사망으로 급격한 체제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지배이념으로서스탈린주의에 대한 조직적인 대안도 반대도 러시아사회엔 존재하지 않았다.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잔재세력을 지도부에서 모두 몰아내는데 4년이 걸렸다. 그러나 흐루시초프 자신도 곧이어 밀려나고 말았다. 그후 80년대 중반까지 오면서 소련에는 계속해서 그렇고 그런 지도자들만 번갈아 등장했다. 물론 유리 안드로포프는 예외였다. 고르바초프가 시작한 체제변혁은 이들의 상상 범위를 넘는 것이었다. 전자통신 시대를 맞아 소련내 젊은 지식층들의 체제불만은 점점 더 높아져갔다. 여행과 표현의 자유는 제한돼 있고 경제기술 수준은 19세기 수준에 머물러 국제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 레닌이 물려준 이데올로기로는 더이상 체제유지가 힘들게 됐다. 국민들 가슴속에선 이미 죽어 없어진 이데올로기에 소련 지도자들은 계속 매달려 있었다. 이 체제위기를 감지하고 최후의 일격을 가한 것이 고르바초프였다.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공산주의 이후 러시아의 앞날에는 힘든 3가지의 과제가 놓여있다. 첫째,공산당에 집중돼 있던 권력중심을 선거에의해 선출된 민주정부 체제로 이전하는 것. 둘째,중앙집중적인 경제체제를 자유기업 체제로 전환하는 것. 셋째,지난 3세기동안 지속돼온 다민족체제를 보다 자유로운 관계로 전환시키는 것. 이 3가지 변화들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러시아 국민들의 생활은 분명 크게 도약될 것이다. 그러나 어려움은 상상 밖으로 심각하다. 70여년의 공산독재로 러시아 국민들은 민주통치 원리에 대한 이해를 모두 잊어버렸다. 그 이해수준은 1910년대보다도 더 뒤떨어진다. 경제현실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창의적 영역이 철저히 억압당해왔기 때문에 국민들 스스로가 자신을 체제의 한 수동적인 일부분으로 간주한다. 과장된 평등주의가 만연돼 누구도 선두에 나서려 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생활수준을 남보다 앞세우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이러한 고질적인 병폐들로 인해 고르바초프가 추진하는 체제변화는 신속한 진전을 보이기가 상당히 어럽게 돼있다. 이런 태도들을 고치려면 오랫동안 꾸준한 교육적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이를 담당할 마땅한 교사들도 없다.한편 소련방을 구성하고 있는 제민족간 관계 재조정도 필수적이다. 현재 강력한 추세에 있는 민족주의로 인해 지난 세기의 다민족·다언어 제국 유지는 이제 용납이 안된다. 발트해 3국은 분명 독립할 자격이 있고 결국은 독립할 것이다. 그러나 공화국마다 차이가 있어 일괄적으로 단일모델이 제시되기는 힘들다. 현재 소련인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러시아 공화국의 주권요구에도 상당한 근거가 있다. 러시아 민족은 전통적으로 여타 소수민족에 대한 배타적 감정을 갖고 있다. 그것은 전통·문화·종교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정이 돼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 공화국까지 주권을 내세우면 소련방의 존재 이유가 의문시된다. 그리고 중앙정부와 연방공화국과의 관계도 깊은 역사적 뿌리가 있어 이것이 갑자기 끊어지면 엄청난 혼란이 불가피하다. 경제적 혼란도 클 것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연방공화국 몇몇은 서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공화국내에서 끔찍한 내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현재 연방 수중에 있는 핵무기에 대한 관리책임이 분담됨으로 인해 생겨날 문제도 끔찍하다. 여기에 덧붙여 세계무대에서 강대국으로 막대한 발언권을 행사하던 소련이라는 단일 국가가 갑자기 무대에서 사라진다는 것도 아무래도 불길하다. 현재 소련의 민족문제는 연방과 공화국 모두 양극단만 고집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래선 안된다. 타협이 마련돼야 하고 절제와 인내가 양쪽 모두에게 지켜져야 한다. 완전한 독립도 아니고 과거의 연방체제도 아닌 새로운 관계가 모색돼야 한다. 그것이 소련 자신뿐 아니라 세계의 평화에도 유익하다.
  • “재일한인 법적지위 개선/현 국회 회기중 규제완화 추진”

    ◎신임 일 사토법무상 【도쿄 로이터연합】 사토 메구무(좌등혜) 신임 일본 법무상은 29일 자신은 인권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소수민족 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을 높이기 위한 계몽운동을 펴겠다고 밝혔다. 교도통신은 사토법무상이 소수민족 문제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강연·포스터·심포지엄 등을 포함하는 계몽운동을 펼 것을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여전히 일본에서 외국인으로 분류,취급되고 있는 한국인·대만인들 문제에 언급,사토법무상은 법무성이 현 국회 회기중 관련규제들을 완화하는 방향의 법률안을 상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새 연방조약 통과 의미와 전망

    ◎고르비­탈소 공화국 정면대결 “초읽기”/발트3국,즉각 거부 선언/정부선 비상조치등 경고/현실적 타협점 없어 앞날 “먹구름” 새 연방조약의 인민대표대회(의회) 통과는 이미 예상돼 온 결과이다. 11월초 최고회의에 제출돼 압도적으로 통과된 바 있고 2천2백50명으로 구성된 의회에서도 과반수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이 법안이 저지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표결과정에서 나타난 찬반의 압도적인 표차가 이러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새 연방조약의 의회 통과가 지금 소련이 당면하고 있는 민족적인 제갈등을 해소하는 데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새 연방조약은 의회 통과 후 15개 연방공화국이 개별적으로 이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정식 발효되게 돼있다. 개별 공화국이 이에 대한 서명을 거부할 경우 조약으로서의 효력발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발트해 3개 공화국과 그루지야,아르메니아공화국 등은 이미 표결 전부터 새 연방조약의 서명거부 방침을 공언해 놓고 있다. 예상대로 의회 표결도 이들 공화국 대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진행됐다. 따라서 어느 의미에서 보면 새 연방조약의 강행통과는 크렘린과 이들 공화국간의 대립을 정면대결로 몰아 민족문제라는 소련의 「시한폭탄」을 발화점으로 내몰 가능성이 짙어졌다. 새 연방조약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제시하는 마지노선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각 공화국의 주권을 최대한 양보하되 공화국들도 연방의 테두리내에는 남아 있으라는 것이다. 물론 군사 외교 통화 세제 등은 연방이 직접 관할한다. 새 연방조약도 그 자체로서는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사실이다. 이로써 1922년 레닌이 만든 소비에트연방조약은 소멸되게 됐다. 당시 레닌은 차르왕정 밑에서 러시아민족에게 속박당해온 제소수민족들을 하나의 연방 아래 「해방」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명분과는 달리 발트해 3국을 비롯해서 소련내 많은 공화국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로 소연방에 편입됐다. 그리고 공산체제 70여년간 강력한 중앙통제 체제하에서 거의 주권행사가 중지된 상태로 지내왔다. 새 연방조약은 크렘린과 공화국간의 관계를 거의 대등한 관계로 발전시킨다는 의미에서 크렘린으로서는 대단한 양보를 한 셈이다. 문제는 각 공화국들의 태도이다. 발트해 3국등의 요구는 권한이양 정도가 아니라 과거의 합병자체를 무효화하고 완전한 독립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몇개 공화국에서는 새 연방조약에 대한 서명을 거부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크렘린측의 대응자세는 극히 강경하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각 공화국 의회에서 이 조약을 심사하게 하는 대신 그보다는 승산이 높다고 보여지는 국민투표쪽으로 몰고갈 심산인 듯하다. 하지만 각 연방공화국 의회에서 독립을 전제로 하지 않은 이 조약의 국민투표를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 같다. 결국은 수차례 공언한대로 새 연방조약 가입을 거부하는 지역에 대한 비상사태 선포와 대통령 직할통치 같은 강경대응만이 고르바초프가 쓸 수 있는 남은 카드라고 보여진다. 시한폭탄이 터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현재 독립을 선언한 지역들의 분위기로 볼 때 이러한 강경조치는 엄청난 저항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크렘린과 연방공화국들 누구도 현실적인 타협점을 쉽게 찾아낼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새 연방조약의 의회 통과는 소련의 앞날에 오히려 불길한 예감을 던져주고 있다.
  • 몰다비아공 분규 10일내 미해결땐 고르비,“무력사용 불사”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22일 민족분규를 겪고 있는 몰다비아공화국에 대해 앞으로 10일 이내에 자체적으로 질서를 회복치 않을 경우 모든 권력을 총동원해 이를 진압하겠다고 경고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소요지역에 군대파견 및 대통령 직접통치를 선언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는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는 언급치 않았으나 「필요한 방법」들을 동원하겠다고 다짐했다. 몰다비아공화국은 현재 자체내 소수민족과 분규를 겪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금년초 몰다비아공화국내 터키족과 러시아인들이 임의로 선포한 공화국을 즉각 해체하라는 대통령령도 내놓았다. 그는 이 포고령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소련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을 가지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50만 조선족 힘이 솟습니다”/노대통령을 맞으며…

    ◎멀게만 느꼈던 「뿌리」에 뿌듯한 긍지/핍박받은 소수민족의 한 풀렸으면 엄 빅토르 박사는 소련연방 최대의 농업대학인 타슈켄트 농대 총장으로 지난달 24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청으로 한국에 와 경남대·효성여대·부산대 등에서 세미나 및 강연회를 갖고 7일 출국했다. 타슈켄트 농대는 학생수 2만,교수 1천명 규모의 대학으로 엄 박사는 소련내 유일한 조선족 국립대학 총장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방소를 계기로 소련인의 시각을 조선족인 그의 기고를 통해 살펴본다. 노태우 한국 대통령의 소련방문 소식을 접하는 순간 가슴이 복바쳐오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기구한 역사를 안고 소수민족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온 소련 거주 50만 조선족이 한결같이 갖는 느낌일 것이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낯설고 막연하고 아주 멀게만 생각됐던 한국이 이제는 지척이 되었고 왕래가 많아질수록 우리 조선족의 뿌리가 바로 한국임을 인식하기 시작한 시점이어서 한국 대통령의 소련방문은 조선족으로서는 가슴이메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같은 감상적인 생각에만 젖어있을 수 없는 것은 우리는 조선족에 앞서 소련인이라는 현실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대통령의 소련방문을 우리는 소련인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바른 자세일 것이다. 소련이 한국과 가까이하려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는 불과 20여 년 전까지도 못살고 후진국이었던 한국이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일에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이 점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페레스트로이카를 통해 모든 국가와 가깝게 지낼 것을 주장하면서도 특히 한국을 다른 나라들보다 특별취급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두 번째는 한국은 소련의 좋은 교역상대가 된다는 점이다. 한국은 높은 산업성장을 이루고 있으나 자원이 없고 소련은 자원은 많으나 산업이 낙후돼 있어 양국은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소련내 1백25개 민족 중 29번째를 차지하고 있는 조선족의 모국과 문화교류 등 다양한 형태의 교류에 대한 필요성 때문이다. 네 번째는 중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낙후된 원동(연해주)지방의 개발에 한국을 적극 참여시킴으로써 원동의 발전과 동북아에서의 국제적 위상 고조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련측의 의도는 빠른 시일내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여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양국 정상회담이 열렸고 이어서 한국 대통령의 이번 소련방문으로 경제원조 문제 등 구체적 결실이 맺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국은 아직도 새로 만나기 시작한 지 2년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다 실질적이고 유익한 교류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더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제까지 양국의 교류라는 것을 가만히 보면 그저 서로 다니면서 만나서 인사나 나누고 술이나 먹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교류란 이런 식의 그저 다니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 좀더 가까워지려는 실질적인 노력이 있어야 하고 그 바탕 위에서 서로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교류」의 의의는 바로 「문제해결」에 있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은 세계평화에 큰 기여를 하는 등 국제적으로는 모든 문제가 잘 풀리고 있다. 동구의 자유와 동서독의 통일,그리고 나 역시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모국에 이렇게 올 수 있는 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국내적으로는 오히려 모든 문제가 더욱 복잡해져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모두 마찬가지다. 각 공화국들이 연방에 대해 독립을 꾀하고 있는 정치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문제도 땅 위에나 땅 밑에나 많은 재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두 일할 의욕을 잃고 있어 어렵기 짝이 없다.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하여 이같은 어려운 문제들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솔직한 표현이다. 그러나 더욱 솔직히 말한다면 우리 조선족의 입장에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핏줄을 나눈 사람들로서 소련이 한국과 친선관계를 맺는다 할 때 가장 큰 관심을 갖는 소련인은 조선족이 아닐 수 없다. 1백20여 년 전 고향을 떠나 원동에 온 이래 땀흘려 일궈놓은 생활터전을 빼앗기고 중앙아시아로 집단이주해와 갖은 핍박을 겪으면서도 오늘날 소수민족 중 우수하고 근면한 민족으로 꼽히고 있는 조선족은 다소 들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 조선족들은 어린아이를 나서 귀가 뚫리면서부터 자본주의는 나쁘고 사회주의는 좋고 북조선이 좋다고 들어왔다. 그러나 요즈음은 사정이 달라졌다. 조선족내에서도 아무도 어느 체제가 좋은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좋은 음식 먹고 잘 입고 잘살고 아이들 학교 잘 다니고 싸움없이 살게 하는 주의가 최상의 주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한국에서 많은 사람이 오고 조선족도 서울방문이 많아지고 있다. 또 북조선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으며 평양을 찾는 사람도 더 많아졌다. 현재 조선족의 최대문제는 최근 소련내 고조돼가는 민족문제이다. 자치공화국이 없는 조선족으로서는 각 공화국의 민족차별정책으로 점점 더 불이익을 당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선족들은 부지런하고 교육열이 높아 다른 민족보다 비교적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모국을 떠나 살았기 때문에 조선말이 서툴고 이는 젊은 세대로 갈수록 심하다. 이같은 언어문제는 민족을 단결시키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되기 때문에 한국 대통령의 소련방문을 계기로 우리 조선족이 가장 바라는 것은 조선어교육을 위한 책과 선생의 문제가 해결됐으면 하는 것이다. 또 조선의 극과 노래를 할 수 있는 조선족공연단에 대한 지원문제도 있다. 이같은 문제들은 자치공화국이 없는 우리의 입장에서 연방정부든 공화국정부든 어디에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대통령의 소련방문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포함,양국간의 모든 문제들이 빠짐없이 다뤄지고 앞으로도 양국이 함께 노력하는 자세로 서로 협력을 이뤄나가길 기대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국이 명심해야 할 것은 소련은 크고 그 방대한 국가를 이뤄나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저력이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겠다는 것이다. □엄 빅토르 △1931년 원동(연해주) 출생 △레닌그라드 사라토프대학 졸업(농업경제학 박사)△1986년∼현재 타슈켄트 농대 총장
  • 리슈코프 총리 후임 셰바르드나제 유력

    【모스크바 AFP 연합 특약】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을 새 총리에,그리고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공화국 대통령을 신설되는 부통령에 임명할 가능성이 있다고 타스통신이 11일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나자르 바예프가 소수민족의 대표로서 보다 많은 공화국들을 새 연방에 끌어들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의 부통령 지명은 매우 합리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타스통신은 그러나 나자르 바예프 외에도 알렉산데르 야코블레프 대통령위원회 위원도 부통령직에 거론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통신은 이어 퇴진하게 될 니콜라이 리슈코프 총리의 후임으로는 셰바르드나제와 아르카디 볼스키 전 대통령보좌관,바딤 바카틴 전내무장관이 거론되고 있으며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대통령위원회 위원이 셰바르드나제의 후임으로 외무장관 물망에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 1백여 이민족 연방/오늘의 소련 국세

    ◎2천만㎢ 면적에 인구 2억9천만명/12국과 접경… 한인 50만명 거주 추정/개혁추진속 침체경제·민족분규 몸살 한때는 붉은 곰·철의 장막·동토의 나라를 먼저 연상케했던 소련이 노대통령의 방소를 계기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고 있다. 15개 공화국과 1백개 이상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연방국가 소련은 유라시아대륙의 북부에 위치,세계 육지면적의 6분의 1이나 되는 2천2백40만㎢의 광활한 땅덩어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국이다. 동유럽에서 북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에 걸쳐 동서로는 1만1천㎞,남북으로는 5천㎞에 달하는 광대한 이 나라는 세계 최장의 국경선을 가지고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지역에서 모두 12개국과 접경하고 있다. 인구는 90년 현재 2억8천9백만명으로 중국과 인도 다음의 세계 제3위이며 인구밀도는 1㎢당 13명을 약간 웃돈다. 정식명칭인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연방이라는 국호가 공식채택된 것은 1917년 11월 혁명으로 제정이 무너진후 22년 12월30일에 개최된 제1차 전소련 소비에트대회에서 였다. 처음에는 러시아연방,자카프카즈연방,우크라이나공화국,백러시아공화국 등 4개 사회주의국가 연방으로서 성립했다. 그뒤 일부 연방의 해체에 따른 새 공화국의 탄생,그밖의 공화국의 가입과 통합 등을 거쳐 지금은 15개의 공화국(러시아 우크라이나 백러시아 우즈베크 카자흐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몰다비아 키르기스 타지크 투르크멘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이 소비에트 연방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 15개 공화국의 통치구역내에는 각기 상이한 소수민족들이 자치권을 인정받아 20개의 자치국,8개의 자치주,10개의 민족관구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민족구성은 러시아인(51%)·우크라이나인(15%)·우즈베크인(6%) 등 12대민족이 전체 인구의 89%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개는 유럽계이지만 아시아계도 상당수 혼재해 있다. 현재 소련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의 수는 5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는 1백여개 이상의 소수민족 가운데 수적으로 29위를 차지한다. 소련의 공용어는 러시아어이지만 민족수와 거의 같은 숫자의 언어가 민족어로 사용되고 있다. 소련은 1917년 11월7일의 혁명으로 로마노프왕조를 무너뜨리고 탄생한 최초의 사회주의국가이다. 24년 레닌이 죽자 대권을 잡은 스탈린은 28년부터 2차대전까지 3차례의 5개년 계획을 실시,국민경제의 사회주의화와 공업화를 이룩했으며 농업을 집단화 했다. 오늘날 소련이 가진 강대한 군사력과 경제력은 이때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4년말부터 38년까지 대숙청을 단행한 스탈린은 2차대전 이후 동유럽과 아시아에서 태동한 사회주의국가들의 대부가 됐다. 그후 흐루시초프(53∼64년),브레즈네프(64∼82년),안드로포프(82∼84년),체르넨코(84∼85년) 등을 거치며 가쁜 숨을 몰아쉬던 세계 공산권의 종주국 소련은 85년 3월 현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시대를 맞으면서 개혁과 개방의 탈바꿈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헌법개정을 통해 공산당 일당독재를 포기하고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는 등 일련의 대개혁조치를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소련은 지금 이같은 개혁조치에도 불구하고 침체된 경제문제와 각 공화국의 분리 독립요구,민족문제등 소 연방체제의 운명을 좌우할 양대난제에 직면해 있는 실정이다. 동구 대변혁의 기적을 만들었던 고르바초프는 민족분규의 확산과 군부의 동요로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으며 고르비의 개혁을 지원하려는 EC 등 서방측은 소련의 취약한 경제구조와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구체적 지원을 망설이고 있다. 특히 심각한 생필품 부족현상은 국민들의 불만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는 실정이며 70년대 이후 계속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경제성장률,노동생산성의 저하,낮은 투자효율 등은 86년부터 시작된 제12차 5개년경제계획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 노대통령 방소의 정치·문화사적 의미

    ◎우랄산맥 넘어 동서화해의 새 이정표로/한반도안정·남북통일 앞당길 중요변수/시베리아 자원 발굴·인문과학 교류 기대 오는 12월 중순 있을 노태우 대통령의 소련 방문은 우리나라 국가원수로서는 처음 이루어지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한소 정상회담이 10월1일의 양국 국교정상화로 이어졌다면 이번 노 대통령의 방소 및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의 회담은 양국간의 실질관계를 여는 또 하나의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의 방소를 계기로 한소 양국간 정치·경제·과학분야 등의 협력문제와 재소 한인문제 및 앞으로의 양국관계에 대한 전망 등을 김열규 서강대 교수와 최평길 연세대 교수에게 들어본다. 【대담=김열규 서강대 교수·최평길 연세대 교수】 ▲최평길 교수=노태우 대통령의 이번 소련방문은 지난 6월4일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10월1일 역사적인 양국 국교정상화 등으로 비롯된 양국간 공식적인 관계개선을 대통령이 직접 최종 마무리 짓는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구 한말 당시 러시아와의 관계 이후 80여 년 동안 단절된 양국간 역사를 다시 정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80년 단절의 재봉합 ▲김열규 교수=한소 관계는 1884년 당시 제정 러시아와 조로통상조약을 맺음으로써 시작된 이후 선린우호관계를 유지했습니다. 6·25 등을 겪으면서 양국관계는 단절됐지만 한소 수교와 이번 노 대통령의 방소는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양국관계의 재봉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소련의 국가원수가 한국의 국가원수를 초청했다는 것은 앞으로 양국관계의 순탄한 정상적 관계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최 교수=남북한 분단은 냉전시대의 희생물로 탄생한 것입니다. 노 대통령의 소련 방문은 남북통일의 외부적 변수로 작용,통일을 앞당기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남북 분단의 원인제공자의 하나인 소련이 통일을 위해서도 근본적인 영향을 미쳐야 할 것입니다. 이번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는 노­고르바초프 대통령간 남북통일을 위한 공동 코뮈니케가 있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같은 모스크바 공동선언이 내년초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시 서울선언으로 발전,남북통일에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김 교수=장기적인 측면에서는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북한을 위축시킬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동구국가 등이 사회주의국가 완성에 실패한 이유가 전략의 실패라고 보고 있는 듯 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사회주의 체제의 마지막 보루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 학자들을 만나면 소련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북 영향 고려해야” ▲최 교수=노 대통령의 방소 결과를 낳은 6공 북방정책은 탈 냉전이라는 국제정세변화와 함께 이념체제 측면에서 동구와 극동이 근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앞으로 북한도 이러한 한반도 정세변화에 따라 합리적인 방향으로 기존정책을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군사안보적 차원에서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해 왔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도 동북아에서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에 비해 대소 경제관계 선취권을 획득했다고 분석됩니다. 따라서 내년 3월 고르바초프­가이후(해부) 일 총리회담에 앞선 노­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은 일·소 정상회담의 의미를 희석시켰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김 교수=한반도를 포함한 시베리아 문화권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어야 합니다. 이번 한소 정상회담은 아시아를 포함한 우랄 알타이 산맥의 동서를 잇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3국시대 신라문화는 범시베리아 문화의 완성체였습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방소는 시베리아내의 우리 문화를 발굴하는 커다란 전기가 될 수 있다고 관측됩니다. 즉 문화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최 교수=소련의 자연과학 및 기초수학분야의 권위는 세계적입니다. 장기적으로 소련의 신소재개발을 비롯한 첨단기술을 우리 산업과 접목,응용하면 실질적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김 교수=오늘날 세계인문과학의 어떤 부분은 그 근원지가 소련인 것이 있습니다. 소련문학에서의 구조주의 ·기호주의도 서구문학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소련이 경제적 으로 부유하지는 못하지만 문학·음악 등에 있어서는 세계 문학·음악 등에서 한몫을 해내고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문화학술의 교류야말로 적극 추진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최 교수=노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옐친 등과 같은 이른바 「지방분권론자」들도 포용해야 합니다. 소련연방내 15개 공화국의 자치정부를 주장하는 옐친 러시아공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소련 전국민의 90% 이상입니다. ▲김 교수=노 대통령의 방소는 한소관계 정립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지만 6·25 및 한반도의 분단에 소련이 관련되어 있고 교민들의 강제 이주 및 KAL기격추사건 등의 앙금도 남아 있어,이 문제들의 처리도 중요합니다. ○「KAL격추」 짚어야 한반도는 동서대결의 최첨병기지로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게 된 것이기 때문에 소련은 이에 대한 응분의 정신적 배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반도의 안정에 일조를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한국정부로서도 노 대통령의 방소를 맞아 이 점을 소련정부에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 교수=소련은 현재 심각한 경제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따라서 소련은 노 대통령의 방소기간 동안 경제원조 및 경제문제에 대한 협력을 촉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사실 소련은 21세기의 아시아·태평양시대를 맞아 아·태 경협에 참여하려고 하고 있으며 한국에 경협을 기대할 정도로 심각한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좌초된 경제를 희생시키려는 소련에 대해 진지한 자세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소,경협 촉구할 듯 소련은 한국정부에 대해 생필품수출 및 공동투자,합작 현금차관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은 소련이 획기적으로 국방비를 감축할 때 대소 원조를 한다고 밝히고 있고 일본도 북방 4개 도서 문제로 정부차원에서 대소 경협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정부는 전통적인 우방국가들인 미일과 보조를 유지해야 할 입장에 놓여있는 한편 대소 경제외교도 풀어야 할 형편이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한국정부의 현명한 경제외교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양국의 경제관계는 우리가 소련에 생필품을수출하고 소련으로부터 이에 대한 것을 물품으로 받는 구상무역의 형태를 띨것 같습니다. 소련은 한국으로부터 물품을 받은 후 일정기간이 경과한 뒤 다른 물품을 제공하는 연불수출을 원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이 경우 즉각 현금으로 될 수 있는 금을 비롯한 원유·비철금속 등을 소련으로부터 받을 수 있도록 강력히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한소경협이 진전되면 중기적으로 양국이 신소재개발 등을 통해 빠른 시일안에 상품화가 가능한 것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장기적으로는 대형 프로젝트에 컨소시엄 형태로 한국이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따라서 한국이 빠른 시일 안에 대응할 수 있는 행정협정을 체결해야 합니다. 또한 대외협력기금을 엄격히 관리하여 북방진출에 나서고 있는 기업들이 부당이익을 볼 수 없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김 교수=소련내에는 40만∼50만명의 교민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 교민의 시각은 사실 친북한 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 동안 한소관계가 단절된 상태였기에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재소 한인들은 우리 문화와 소련의 문화를 조화롭게 접목시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봅니다. 교포들은 또한 그들이 속한 공화국내에서 경제·문화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한반도 주위의 다른 4강인 중국·미국·일본내 교포들의 위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들은 이들을 동정어린 눈으로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정부는 이들이 콜 호스에서 생산하는 사탕수수와 콩 등을 모국에 수출하기를 원하고 있는 등 경제유대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한국 정부는 교포교육문제에도 세심한 노력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재소 한인들은 우리들로부터 멀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앙아에 영사관을” ▲최 교수=중앙아시아지역에 총 영사관을 설치하는 것도 검토되어야 하며 한국의 기업이 진출할 경우 재소 한인들을 고용,그들의 수입을 높여 주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김 교수=노 대통령의 방소 기간중 교민대책이 제기되었으면 합니다. 재소 한인들이 현재 있는 공화국내에서 소수민족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전에 교포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문제를 결정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가령 지난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교민들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는 것도 방법일 수 있으며 교포들이 많이 사는 곳이 자치공화국이 되도록 소련정부에 요청하는 등 교민의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는 정치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랍직합니다.
  • 동구판 「보트피플」 사회문제화

    ◎개혁바람 이후 새 일자리 찾아 조국 등져/소 난민이 주류… 유럽국,대책마련 부심 동구 변혁과 함께 새로운 부를 찾아 조국을 떠나는 난민이 급증,유럽의 새로운 근심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기아와 결핍으로부터의 탈출」로 불리는 이들 난민의 대이동은 인종분규,소수민족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유럽국들의 걱정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특히 체코,헝가리,오스트리아 등 중구의 난민수용국들은 국제사회에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파리의 CSCE(유럽안보협력회의) 정상회담에서 이들 「난민」당사국 정상들이 대책마련을 위해 별도 회담을 가질 만큼 난민문제는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들 중구국들의 경우 국내 민주화로 해외의 자국민들이 속속 귀향하는 등 자국민들의 대외이민은 줄어든 상태이나 인근 소련과 루마니아 등지로부터의 난민이 폭발적으로 증가,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페레스트로이카와 루블화 태환결정 이후 소련으로부터 난민유입이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며 과거 동·서 냉전체제하에서 동구 난민의 「휴식처」였던 오스트리아는 난민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순찰을 강화하는 등 중구에 때아닌 이민장벽이 들어서고 있다. 불법입국한 루마니아인들을 강제추방할 방침을 세운 오스트리아 당국은 2천명의 국경순찰대를 6천명으로 증원,국경통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입국비자를 얻어 들어온 1만1천5백명의 루마니아인들에 대해서 재심사를 진행중에 있다. 중동구국들을 「불안」속에 몰아 넣고 있는 소련인들의 대거 이동은 지난 2년간 「폭발적」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88∼89년 2년간 기아를 면하기 위해 조국을 등진 소련인은 34만4천명에 달하고 있는데 이는 45∼89년간 전 해외이주 인구인 81만6천명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이다. 소련은 페레스트로이카 추진이후 해외이주자에 대한 제한이 대폭 완화됨으로써 이같은 합법적 이민이 격증하고 있는데 체코,폴란드,헝가리,오스트리아 등은 기아를 면해 찾아온 소련인들을 「축출」할 수도 없어 딜레마에 싸여 있다. 국제적 인도주의자로 알려진 하벨 체코 대통령도 최근 사태가 심각해지자 제네바의 유엔 난민 고등판무관에 「해결책」을요청했으며 인접 폴란드의 마조비에츠키 총리 등과 공동대책을 협의하기도 했다. 독일도 소련난민의 유입을 경계하고 있다. 콜 총리는 CSCE 정상회담에서 유럽에 새로운 「빈부의 장벽」이 등장할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는데 회담도중 대소 긴급 식량원조를 발표한 것도 간접적으로 소련인들의 독일 「쇄도」를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콜 총리는 결국 서방이 소련을 지원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소련인들의 서방이동을 방지하는 것임을 역설했는데 독일정부 관계자들은 『배가 부르면 뭣때문에 미지의 장소로 모험을 떠나겠느냐』고 소련지원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최근 EC 각료회의에서 이탈리아의 카를로 카틴 사회장관은 가까운 장래에 약 3백만명의 소련인들이 EC역내로 들어올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이들 난민에 대한 긴급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통제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과거 베트남의 「보트피플」을 방불케 하는 소련인들의 서방이동으로 유럽은 자유·개방화의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 「평화의 새유럽」건설 기본구도 마련/파리 유럽안보회의 무얼 남겼나

    ◎정례개최 합의… 지역협의 발판 구축//「대서양서 우랄까지」 통합의 길 열어/의사결정권 없어 실질문제 해결엔 한계 갈등과 대립의 동서 냉전시대를 마감하고 화합과 번영을 향한 새 유럽의 탄생을 선언한 제2차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정상회담이 사흘간의 회의일정을 모두 마치고 21일 폐막됐다. 지난 75년 헬싱키에서 첫번째 정상회담을 가진 뒤 15년만에 열린 이번 회담은 동서간 이념대립을 존치시킨채 긴장속에서 균형을 추구한 첫 회담과는 달리 동서의 가름을 없애버리고 화합을 통한 공동번영을 다짐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채택된 파리헌장은 유럽에서 분열과 대립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믿음과 협력속에 새로운 관계가 수립되었음을 천명함으로써 새 역사의 장이 열렸음을 확인했다. 이에 앞서 동서 양진영 대립의 첨병으로서 서로를 적으로 간주해오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들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유럽재래식무기(CFE) 감축협약을 맺으면서 발표한 정치선언을 통해더 이상 적의 관계가 아니라 새 시대의 동반자임을 선언,새 유럽질서 구축의 기반을 다졌다. 이번 회담은 이같은 다짐과 약속의 효과적인 실천을 위해 구체적인 몇가지 장치를 마련해 냈다. 첫째가 상설 행정사무국의 설치.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세워질 행정사무국은 앞으로 계속될 CSCE의 각종 회담준비와 회원국간의 연락,의제조정 등의 임무가 주어진다. 또 분쟁방지센터(빈),자유선거 사무소(바르샤바)의 설치도 결의됐으며 회원국 의원들간의 모임인 CSCE 의회협의회의 구성도 추진키로 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상설기구들의 설치와 함께 CSCE 정상회담을 정례화,2년마다 열고(92년 헬싱키개최 확정) 장관급회담은 1년에 한차례 이상 개최하기로 합의함으로써 CSCE가 단순한 「회의」에서 지역협의체로의 발전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점이다. 헬싱키협약이 그동안 인권개선이나 환경보호 또는 군축을 통한 긴장완화 노력에 적잖은 기여를 해온 것이 사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CSCE에 제한적이나마 기능과 틀을 부여한 파리헌장도 새로운 유럽건설의 기본설계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CSCE의 장래가 마냥 분홍빛 일색일 수만은 없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실질적인 안보협력이 이루어지려면 군사협력체제로의 변환이나 유사한 기능부여가 따라야 되나 CSCE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소련측은 범유럽군사기구 구축을 희망하고 있지만 미국 영국 등 나토 핵심멤버들이 반대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만프레트 뵈르너 나토연합군 총사령관은 『나토는 현재의 군사 및 전략적 균형을 깨지 않는 상황 아래서 안정된 유럽의 구축을 원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핵을 포함하여 아직도 막강한 군사대국임이 분명한 소련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그래서 고르바초프는 『유럽에 평화가 깃들었다는 판단은 아직 이르다』며 다음 단계의 군축을 위해 한달 이내에 단거리핵 감축협상을 시작할 것을 제의하기도 했지만 미국이 버티고 있는 나토가 쉽사리 자세를 바꾸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어떤 수단으로든지 나토를 해체시키고 궁극적으로 미국이 유럽에서 손을 떼게 하려는 것이 지금까지의 소련의 대 유럽전략이었음을 간파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나토의 약화·해체기도나 CSCE로 하여금 이를 대체케 한다는 발상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으로 「적」이 없어졌음을 선언함으로써 나토가 위상을 재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한계는 마찬가지이다. 회의에 참석한 동구지도자들은 냉전이 끝난 상황에서 부국과 빈국을 갈라 놓는 새로운 경제장막이 유럽에 드리울 위험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에 아랑곳 없이 구공체(EC)는 90년대 중반까지는 신규회원의 가입을 막고 있다. 결국은 CSCE가 아직은 공동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군사협력체제도,실질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경제기구도,의사결정 권한도 없는 단순한 회의체인 것이며 여기에 그 발전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CSCE의 자체적인 취약점 외에도 한치 앞을 점치기 힘든 소련의 내정문제·소수민족문제·추가감축문제 등 CSCE가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들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새 유럽을 출범시킨 CSCE가 이런 과제들을 차근차근 풀어나갈 수 있을 때 유럽인의 숙원인 「대서양에서 우랄까지」(드골)의 유럽대통합의 길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 유럽안보회의 채택 「파리헌장」 요지

    ◎민주주의 강화… 소수민족 독립성 존중/내년 11월 오슬로서 인권옹호 세미나/시장경제 지향… 번영된 통일유럽 건설/화학무기 금지·영공개방조약 곧 체결 동서냉전의 종식을 공식선언한 역사적인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정상회담은 21일 「파리헌장」을 채택하고 3일간의 회의를 마칠 예정이다. 다음은 이번 회담을 결산하는 파리헌장의 요지이다. ▷민주주의 평화 통합의 새로운 시대◁ 우리들 참가국정상은 커다란 변화와 역사적인 기대의 시기에 파리에 모였다. 유럽에 있어서 대립과 분열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의 우리의 관계가 존경과 협력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선언한다. 유럽은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있다. 헬싱키 최종문서의 이념은 유럽에 민주주의와 평화·통합의 새 시대를 열었다. ▲인권·민주주의·법의 지배 우리는 유일한 정치시스템으로서 민주주의를 건설,강화할 의무를 진다. 인권과 기본적 자유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으며 법으로 보장된다. 정부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드러나는 국민의 자유의사에 기초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는 인간과 법의 지배 존중에 기초를 둔다. 우리는 국내 소수민족의 민족·문화·언어·종교적 독자성을 존중한다. ▲경제적 자유와 책임 경제적 자유,사회정의,환경문제에 관한 책임은 번영에 불가결하다. 자유와 정치적 복수주의는 시장경제발전에 필요한 요소이다. 시장경제 이행을 성공시키는 일은 중요하며 번영의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 ▲참가국간의 우호관계 유럽에서 새 시대가 탄생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유럽제국 미국 캐나다 사이의 우호관계 및 협력을 확대,강화하고 제국민간의 우정을 촉진하기로 결의한다. 유엔헌장 및 헬싱키 최종문서에 따라 모든 나라의 영토보전·정치적독립에 대한 군사력에 의한 위협과 그 행사를 금지한다. ▲안전보장 유럽재래식전력(CFE) 조약조인을 환영한다. 일련의 실질적인 새로운 신뢰­안전조성조치의 채택을 시인한다. ▲통합 「독일문제의 최종해결에 관한 조약」에 커다란 만족을 표명한다. 북미와 유럽 각국 양측의 참가가 CSCE의 기본적 특징이다. 공통행동과 협력·연대에 의해서만 직면한 도전에 대처할 수 있다. ▲CSCE와 세계 참가국의 운명은 다른 모든 나라들과 연결돼 있다. 유엔을 지지하고 국제평화촉진에 기여하는 유엔의 역할강화를 희망한다. ▷장래의 지침◁ CSCE의 모든 원칙·조항을 완전 이행하고 나아가 균형잡힌 포괄적인 협력관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인권분야 우리는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불가침한 것으로 존중한다. 이 목적을 위해 1991년 11월4일부터 15일까지 오슬로에서 전문가 세미나를 연다. 소수민족보호가 충실히 되도록 협조하는 일이 긴급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소수민족문제에 관한 전문가회의를 91년 7월1일부터 19일까지 제네바에서 개최한다. ▲안전보장 CFE조약과 신뢰조성조치(CBM)에 관한 협의의 성과를 한층 강화한다. CBM과 CFE를 계속하여 92년 개최예정인 헬싱키 재검토회의때까지 협의를 완료하도록 노력한다. 또 화학무기의 포괄적 금지조약 및 영공개방계획을 조속히 해결하도록 촉구한다. ▲경제협력 시장경제에 기초한 경제협력은 참가국간 관계의 중요한 요소를 구성하고번영된 통일유럽을 건설하는데 유효하다. 시장경제의 확립과 자립경제기반의 창설에 애쓰고 있는 제국에 대해 지원을 계속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환경 참가국은 환경문제 해결의 긴급성과 개별적이고 공동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또 환경파괴에 관한 정보 교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유럽환경기관(EEA)의 설립을 환영한다. ▷CSCE의 새로운 구조와 제도 차기 정상회담은 92년 헬싱키에서 열리는 재검토회의와 함께 열리며 그후 2년에 1번씩 개최된다. 이사회로서 외무장관회담을 적어도 연1회 연다. 이 이사회는 CSCE 정치적 협의의 주요장이 된다. 제1회 회의는 91년 베를린에서 연다. 고급 사무레벨위원회가 이사회를 준비하고 그 결정을 이행하며 참가국의 합의에 따라 긴급현안사항을 검토하는 특별회의 및 각료회의도 개최할 수 있다. 이들 협의사항을 행정지원 하기 위해 프라하에 사무국을 설치한다. 이사회에 의한 분쟁의 위기경감을 지원하기 위해 빈에 분쟁방지센터를 설치한다. 선거에 관한 참가국간의 접촉과 정보교환을 위해 바르샤바에 자유선거사무소를 설치한다. 전가맹국의 국회의원을 포함한 CSCE 의회 협의회를 통해 각국의 회의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모색한다.
  • 중국 한인동포/1백92만여명/올 인구센서스

    【내외】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전체 한인동포들의 수는 90년 1월1일 현재 1백92만5백97명이라고 북경방송이 14일 보도했다. 북경방송은 이날 중국국가 통계국이 지난 13일 발표한 인구센서스의 민족별 구성비 자료를 인용,전체 56개 민족 중 1백만을 초과한 민족이 19개로 지난 82년 센서스시 16개보다 증가했으며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10억4천2백48만2천6백87명)을 제외한 소수민족의 총 인구수는 9천6백20만3백14명으로 8.04%를 차지한다고 전했다.
  • 몰다비아공에 소,군 배치

    【모스크바 AFP 로이터 연합】 터키계 소수민족에 의해 소련 몰다비아공화국으로부터 분리된 독립 의회를 구성키 위한 선거가 추진되고 있는 소련 몰다비아공화국 남부의 콤라트지방에 27일 소련군이 배치됐다고 언론들이 보도했다. 소련 TV방송은 터키계 소수민족인 가가우즈족들이 몰다비아 민족주의자들이 이 지역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이 지역으로 통하는 도로를 봉쇄하고 거리를 순찰하는 등 아직도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가가우즈족과 몰다비아인 대표들은 양측 접경 도시인 치미실라에서 회담을 가졌으나 평화적인 해결 전망이 매우 불투명한 실정이다.
  • 「마르크스ㆍ고르비」의 평화/이재근 본사 논설위원(서울칼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오늘의 세계에서 혜성과 같은 사나이다. 국제 정치무대의 스타플레이어이다. 안으로는 개혁과 개방,밖으로는 세계의 화해를 논하더니 하루아침에 노벨 평화상마저 거머쥐었다. 고르비의 노벨평화상을 서방측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부시 미 대통령은 『세계의 평화적 변혁을 추진한 용감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웠고 통일독일의 콜 총리는 『동서관계의 근본적 개선,유럽대륙분단의 종식,군축,지역분쟁해결에 기여한 공로』라고 찬양했다.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은 『세계와 유럽의 화해 및 민주화 성공에 있어 그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했다. 이밖에 「일­소관계의 근본적 개척자」(가이후 일본총리),「지당한 일」(대처 영국수상),「소련 및 동구의 사회변혁 촉진 공로」(하벨 체코대통령)라는 찬사가 나왔다. 정작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쪽은 소련 내부였다. 그동안 소련인들 사이에는 고르비의 개혁정책이 너무 소극적이고 미온적이며 위선적이라고 하여 불만ㆍ불신의 소리가 높아온 터였다. 평화주의자,개혁의 기수,이 시대의영웅 고르비의 얼굴은 그래서 하나가 아니다. 언젠가 소련과학아카데미는 투표를 통해 고르비가 「레닌이후 최대의 인물」이라는데 동의했다. 반면 전소련 최고회의의장 그로미코(작고)는 고르비를 평하되 「철의 이빨을 가진 사나이」라고 했다. 두얼굴의 사나이 고르비의 관상은 어떤가. 우선 독일의 빌트지가 소개한 그것은 서양쪽의 「눈」이 될 것이다. 훤한 이마(대머리부분을 포함해서)는 지성과 의지력을,날카로운 눈은 탁월한 기억력,눈과 눈 사이의 깊은 골은 냉엄한 현실주의,듬직한 귓바퀴는 집요한 권력에의 의지를 나타낸다. 동양쪽의 고르비관상은 좀더 감칠 맛이 있다. 관상가 C씨에 의하면 고르비는 한세기에 한두사람 나올까 말까한 극귀의 상을 가졌다. 눈ㆍ코ㆍ귀 등 오관은 물론 두상과 체상전체가 둥글다. 북방계에 많은 정수체상으로서 마치 공이 비탈길을 굴러내려가듯 머물지 못하는 성격이다. 대단한 정력가이다. 게다가 아주 멀고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듯한 위력적인 눈은 세상사를 바로 볼줄 안다. 코끝이 굵고 둥글며 산근보다 코허리부위가 더 잘룩한 것은 코믹한 면도 있음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쇼맨십도 풍부해서 대인관계가 부드럽다는 설명이다. 결론컨대 C씨는 『물은 흐르는게 자연법칙이다. 계곡을 타고 강을 이루어 평화의 바다에 이르는 날이 멀지않다』고 했다. 고르비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예언했다고 봐줄 수 있다. 관상얘기가 좀 길어졌다. 어쨌든 고르비가 탁월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견해들이다. 소련은 강대국이다. 마르크스­레닌이념으로 무장된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종주국이다. 그 소련에 대한 침략이나 도발 또는 여타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팽창적인 패권주의는 용납되지 않는다. 소련자신에 대한 보위와 같은 차원에서 그들을 보호할 것이다. 이것이 프롤레타리아혁명 70여년을 일관해온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연방의 세계전략이었다. 80년대초 브레즈네프 독트린개념이 담고 있는 것도 이것이었다. 마르크스­레닌은 전쟁이전에 폭력을 거론했다. 그들에 있어서는 폭력이야말로 피착취자가 착취자를 타도하는 수단으로서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사회관계는 착취자의 폭력과 피착취자의 폭력사이의 계급투쟁이며 그것의 확대가 전쟁이다. 마르크스­레닌은 전쟁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다만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에 있어서는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제국주의가 사회주의를 파괴하기 위한 침략전쟁을 시작할 것이라는 확신에 따른 이른바 「전쟁불가피론」이다. 그러한 논리에 따르면 완전한 사회주의 아래서는 전쟁이 없어지고 따라서 군대의 필요성도 없어진다. 마르크스주의의 그러한 근본적인 사고방식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사회주의 소련은 적대하는 진영에 포위된 사회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아래 현저한 군국화의 길을 걸어온게 사실이었다. 그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에서 희대의 인물 고르비가 천명한 페레스트로이카의 최대의 배경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소련적 사회주의가 막다른 곳에 왔고 소련체제와 그 이데올로기의 권위가 소련내부로부터 붕괴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그렇게 보면 고르비의 개혁과 평화는 어디까지나 권력유지와 국제전략적 필요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고르비는 누가 뭐래도 마르크스­레닌의 후예이다. 그런 고르비가 무엄하게도 「마약」과 같은 자본주의와 타협하여 시장경제ㆍ사유재산제를 도입하고자 한다. 마르크스­레닌에의 반역이지만 그 후예일 수 밖에 없는 고르비가 노벨상을 그것도 평화상을 탄 것이다. 무덤속의 마르크스와 레닌,스탈린 세사람이 만난다면 그들 후예 고르비의 행각을 놓고 무슨 의논들을 할 것인가. 물론 정치인으로서의 고르비의 정책이념과 성과가 세계평화에 기여했다고 인정되어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의 앞날에 있다. 그 앞에는 발트3국 등의 분리독립문제,소수민족의 자치요구,경제재건등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고르비가 국내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으로 회귀하는 사태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것이 본의아니게도 평화파괴나 전쟁도발의 결과가 되지말란 법도 없다. 물론 상상이고 기우이지만 그런 상상해봐서 무익한 것은 없다. 소련과의 수교이후 새 관계를정립해 나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고르바초프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지켜보는 감회가 남다른 것이어서 생각해본 것이다.
  • 조국을 바로 알리는 교육(사설)

    문교부가 단절되었던 지역의 교포 젊은세대를 위해 국민교육의 강화를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소련과의 국교정상화가 예상보다도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늦은감 조차 없지 않다. 소련과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동포는 2백30여만명으로 집계된다. 4백60만 전체 해외동포의 절반에 해당한다. 그들은 비록 소련이나 중국을 제2의 모국으로 삼아 잘 적응해 살고 있지만 소수민족 자치집단을 구성하고 고유한 민족의 삶을 이어가고 있으므로 그들에게 모국에 대한 긍지를 심어주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해주는 노력은 그 나라 국민으로 행복하게 사는 데도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한 국가가 조국 노릇을 수행키 위해서도 해야 할 역할이다. 또한 수십년 동안 완벽하게 단절된 채 이질화해온 해외교포에게 민족교육을 시켜 한민족의 세계화의 근거가 되게 하는 일은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특히 모국어교육은 완벽할 만큼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소련으로 중국으로 뻗어나가면서 태평양 문화권의 중심역할을 다해가야 할 우리의 현실을생각해 보아도 그 나라를 「자기나라처럼」 잘 알면서,한국어를 「사랑하는 모국어」로 구사할 수 있다면 아주 큰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날의 우리는 해외동포 정책을 다소 미흡하게 해온 것이 사실이다. 중소동포 같은 새로 확대된 해외교포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으로 기존지역의 교포교육 정책에도 충분한 보완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교포 자신들도 많이 달라져서 이제는 너무도 당당해진 조국을 잊지 않기 위해 「모국 배우기」에 열의를 보이고 있는 것이 이즈음이다. 이런 변화와 함께 최근 들어 심각하게 지적되고 있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외국의 교과서들에 기술된 「한국」이 너무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와의 사이가 긴밀하지 못하거나 간격이 먼 나라들은 또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미국이나 영국ㆍ일본ㆍ독일ㆍ멕시코ㆍ스페인같은 우방국조차도 언어도단의 내용을 싣고 있는 것이다. 최근까지도 「미개발된 한국은 중국만주의 한 지방이었다」라는 귀절이 미국 교과서에 실려있기도 하고 「5세기경 일본은한국에 식민지를 건설했다」느니,사회주의 국가를 그린 지도에 한반도 전체가 표시된 경우도 있다. 심지어 스페인 교과서에는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이 2백50달러 이하인 나라로 분류된 경우까지 있다. 그밖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잘못된 부분들이 많은데 대체로 부정적이고 평가절하된 상태다. 그렇게 된데는 일본의 고의적인 역사왜곡 기록이 기여한 바가 크고 북한 등 적대적인 세력 등의 역정보도 작용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노력과 바로잡는 작업이 미치지 못한데 있다. 아마도 단절된 시간이 길었던 중 소 지역에서도 그런 현상은 적지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부터 바로잡는 일이 시급하다. 그래야만 해외교포를 위한 민족교육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교과서란 그 나라에서의 「정설」이다. 국가가 채택해서 가르치는 진리가 교과서를 구성한다. 전방위외교의 적극적 입지를 지닌 우리가 아직도 이런 「왜곡」을 바로잡지 못한다는 것은 믿어지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 유고 세르비아공/첫 총선준비 돌입

    【베오그라드 AP 로이터 연합】 유고슬라비아 최대의 세르비아공화국은 28일 신헌법을 공포 2차대전 후 최초의 다당제 자유선거 준비에 들어갔으며 크로티아공화국에서는 소수민족인 세르비아인들이 경찰서를 습격하는등 경찰과 충돌했다. 세르비아공화국 의회는 이날 12월9일로 예정된 다당제 총선의 길을 열어주고 보이보디나와 코소보 등 공화국내 두개 지역의 자치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새 헌법을 공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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