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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영화] 스파이크 리 감독의 ‘그녀는… ’ 새달 2일 개봉

    얌전하게, 혹은 도발적으로 사회문제를 끌어내는 스파이크 리 감독이 이번에는 섹시한 풍자를 선사한다. 2일 개봉하는 ‘그녀는 날 싫어해’는 ‘아내가 필요한 남자, 아기만 필요한 여자’라는 카피로 얼핏 로맨틱 코미디인 듯한 냄새를 풍긴다. 하지만 실제 정체는 미국 사회 속에 숨어있는 문제를 유머와 뒤섞어 털어놓는 블랙코미디다.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 하버드 MBA 출신의 멋진 흑인남자, 성공한 커리어우먼 등 겉모습은 당당하기 그지 없는 조직이나 인간들이다. 그 본모습은? 에이즈 치료제 개발이라는 역사적 사명은 결국 주가를 높여 이득을 챙기려는 포장이고, 남자는 결국 백인사회에서 ‘실직에 불만을 품은 막 나가는 흑인’으로 전락한다. 커리어우먼들 역시 속은 비주류로 분류되는 여성 성소수자(레즈비언)나 소수민족이다. 이들이 얽히고설켜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들은 윤리와 도덕 위에 군림하는 물질만능주의와 백인우월주의를 풍자한다. ‘성격 좋고 능력 있고 똑똑한 하버드 MBA 출신의 아프로-아메리칸’이라는 수식어를 단 ‘존’은 굴지의 제약회사 부사장으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회사 비리를 양심적으로 폭로했다가 배신자로 낙인 찍혀 해고당하기 전까지는. 고위직 백인들은 그를 백인사회의 위협자로 몰아가고, 그는 생계조차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든다. 때마침 그-실제로는 그의 우수한 유전자-를 찾아온 전 약혼녀이자 레즈비언인 ‘파티마’의 제안으로 이들의 ‘유전적 아기 아빠’가 되는 나름의 돈벌이를 시작한다. 열려 있는 듯 포장된 미국 사회에 숨어있는 돈, 성, 인종, 계층 등의 갈등요소를 한꺼번에 범벅해놓은 영화는 곳곳에 유머라는 양념을 고루 쳐놓아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존이 ‘유전적 아빠’가 되는 과정, 다양한 국가의 여성들과 거래를 하는 장면 등은 섹시한 코미디답다. 청순한 레즈비언으로 나오는 모니카 벨루치, 배금주의 신봉자 우디 해럴슨도 재미를 더하는 요소.18세 이상 관람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동북공정 대응책 ‘패러다임 바꿔야’

    2년 만에 다시 불거진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논란은 한국 정부의 외교적 대응 방식은 물론, 제대로 된 연구 축적물 하나 내지 못했다는 질타로 이어졌다. 중국이 동북공정에 깔고 있는 핵심 의도는 뭔지, 앞으로의 한반도의 전략적 관점에서 동북공정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전문가들의 시각을 통해 진단해 본다. 중국이 동북공정이나 백두산 개발을 통해 노리는 의도와 관련,50개 소수민족을 거느린 ‘불안정한’ 중국이 소수 민족의 분리·독립이라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방어적’개념의 역사통합운동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의도적인 거대한 공격 프로젝트란 분석이 더 힘을 얻고 있다 김태호 한림대 교수는 17일 “동북공정은 후진타오 주석이 지난 2000년 당 정치국 상무위원 자격으로 승인한 일”이라면서 “현재 언론·정치권이 사실에 기초하지 않고 두들겨 패기식으로 비판하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중국의 작업은 민족 정체성과 역사적 귀속성을 완전히 깨는 의도임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김기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중국은 한국전쟁때 자신의 코밑 지역을 미국에 내줄 수 없다고 판단, 한반도 무력개입을 단행한 것처럼, 북한의 변고시 자신들의 영토적·정치적 영향력 주장을 위해 전략적으로 던지는 대미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향후 동북공정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김운회 동양대 교수는 ‘패러다임의 전환’ 외에는 동북공정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내다봤다. 바뀐 패러다임이란 ‘범한국인’ 개념을 뜻한다. 북방민족을 포괄하는 전체적인 시야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발해 문제를 예로 들어 “지배층은 고구려계니까 고구려 계승국 아니냐는 유물사관을 내세우는 중국에서 중요한 것은 지배층이 아니라 피지배층인 말갈”이라면서 “그런데 우리 국사학계는 말갈을 무슨 야만족처럼 취급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중국이 북방민족을 불렀던 이름을 소중화사상에 빠져 있던 선조들이 그대로 다 받아들였고, 이 전통이 아직까지 국사학계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얘기다. 신주백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강경대응 방침에 반대했다. 신 책임연구원은 “고대사는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뿌리에 대한 얘기들이기에 폭발력이 더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그렇기에 서로의 주장만 고집하면 더 강한 충돌만 반복될 뿐이다.”고 지적했다. 결국 해법은 오랜 시간을 통한 대화뿐으로,‘최소주의’ 원칙으로 합의할 수 있는 쉬운 문제부터 골라 일단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인 정경희씨는 “통일이 됐을 때를 대비해 중국 정부에 대해 우리 정부는 공개적으로 딱 부러지게 영토주권과 역사적 연고권을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북공정 문제는 학계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대외적인 문제이고 역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실 문제”라면서 “연구자료를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운회 교수는 “동북공정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북방민족 연구자들을 키우는 길밖에 없다고 강조했고, 김태호 교수는 “한국에 고구려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4명뿐이란 황당한 사실부터 극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수정·김재천·조태성기자 crystal@seoul.co.kr
  • 英 19세 법대생 치안판사

    번쩍거리는 구두나 가방 수집이 취미이고 로맨틱 코미디 영화 ‘프리티 우먼’을 가장 좋아한다는 19세 여자 법대생이 영국에서 경범죄나 가족 내 사소한 쟁송들을 심판하는 치안판사(magistrate)로 일하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리즈대학 법대에 다니는 루시 테이트. 영국 역사상 최연소 치안판사인 그녀는 이미 웨스트요크셔 폰터프랙트의 법정에서 다른 2명의 치안판사와 함께 일하기 시작, 피고들을 수감할지 여부를 판결하고 있다고 데일리 메일이 최근 전했다. 치안판사는 보수는 따로 없지만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좋은 품성과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판단력 등을 따져 임용된다. 그녀가 임명될 수 있었던 것은 2년 전 정부가 연령 하한을 27세에서 18세로 대폭 낮춘 덕분이었다. 법무부는 젊은이나 소수민족 출신에 대해 편견 없는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법원 관계자는 테이트가 엄격한 인터뷰를 통과했다고 밝히고 “위원들은 그녀의 성숙함과 판단력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한 경찰 관계자도 “나이가 어리고 판사직 수행에 경험이 꼭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치안판사는 전체 연령 분포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지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동료 치안판사 가운데 한 명은 “19세에 무슨 인생 경험이 있겠느냐.”며 “그녀에게 그런 중요한 결정을 내리도록 한 것은 완전히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했다. 또 일부 언론은 그녀가 구두 쇼핑을 문제삼으며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한 구두 사진을 공개하는 등 자격 논란에 불을 댕기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녀는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밝힌 적이 있지만 치안판사로 일하기 시작한 뒤에는 사생활 대목들을 웹사이트 소개란에서 지워버렸다고 신문은 전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백두산 명칭 사용 간판·광고 없애라”

    중국 지린(吉林)성 정치협상회의(정협)의 한 민주당파가 지난해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등에 대한 조사·연구를 토대로 백두산(중국명 창바이산·長白山)이 만주족 발상지라는 사실을 널리 알려 남북한의 ‘영토적 야심’을 폭로하도록 지린성 정협을 통해 건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민주당파는 또 ‘창바이산(長白山)’이 아닌 ‘백두산’이 들어가는 간판이나 광고 등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 ‘백두산’을 내세운 상표, 간판, 광고 등에 대해서는 등록을 해주지 말고 이미 ‘백두산’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에도 엄밀한 조사를 거쳐 등록을 취소하도록 건의했다. ‘남북한의 창바이산(長白山) 책략에 대한 민주당파의 조사·연구보고’라는 자료에 따르면, 지린성 정협 자오(趙) 모 위원 등 민주촉진회 지린성위원회 전문가팀은 작년 7월 이전 쑹위안(松原)시 첸궈(前郭)현과 조선족 집거지인 옌볜자치주를 방문, 소수민족 문화보호에 대한 조사·연구활동을 진행했다. 이들의 조사·연구기간은 지난해 5월 지린성이 ‘창바이산 보호개발관리위원회’를 신설, 옌볜자치주가 갖고 있던 백두산 관리권을 성 직속으로 이관한다는 결정을 내릴 무렵으로 추정된다. 만주족인 자오 위원은 연구 결과를 토대로 “창바이산은 중국 동북지역의 옛 민족인 숙신족(만주족)의 발상지로 예부터 지금까지 중국 영토였다.”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웃 나라가 계속해서 우리나라(중국)에 대해 영토적 야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강변했다. 베이징 연합뉴스
  • 정부서 공론화땐 기정사실화 우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외교통상부의 접근이 신중하다. 사회과학원의 한국 고대사 왜곡이 중국 중앙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확인되기 전까지는 공식 대응을 삼가겠다는 것이다. 강경대응하라는 정치권의 주문과는 간극이 존재한다. 정부 관계자는 9일 “중국이 정치적 의도로, 연구를 빙자해 전략적으로 역사왜곡을 추진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지만 외교부가 이를 국회에서건, 언론 브리핑을 통해서건 공개적으로 드러내긴 힘들다.”고 말했다. 오히려 공식 정책으로 굳어질 역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004년 8월 한·중이 그야말로 ‘봉합’한 5개항 양해 사항중 ‘정치문제화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우리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는 탓도 있다.5개항은 ▲고구려사 문제가 양국 간 중대현안으로 대두된 데 유념하고 ▲역사문제로 인한 우호협력 관계의 손상을 방지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며 ▲정치 문제화하는 것을 방지한다. 또 ▲중국은 중앙 및 지방 정부 차원의 고구려사 기술에 대해 필요 조치를 취해 나간다고 돼 있다. 당시 최영진 외교부 차관은 ‘정치문제화’와 관련,“동북공정에 대해 중국이 먼저 정부차원에서 언급하지 않는 한 우리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현 논란이 실체보다 증폭됐다고 보는 상황인식 차이도 있다. 한 언론의 보도로 촉발된 중국 사회과학원 홈페이지에 게재된 내용이 2004년 6월 수준에서 사실은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중국측의 노력도 평가한다는 게 우리 정부 입장이다. 합의 이후 중국 외교부와 신화통신 홈페이지의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표현 삭제, 인민교육출판사 홈페이지 왜곡 부분 삭제, 우리측의 수정 요구에 따른 지방 관광지의 왜곡 안내문 다수 철거 등의 실적을 들고 있다. 지난해 9월 완성된 중·고교 시험교과서 역시 우리 정부 항의로 채택이 보류된 상태다. 정부는 “지린성 지안시 지안박물관 머릿돌 등 지방 정부가 관할하는 사안에 대해선 노력은 하지만 잘 되지 않는 게 있다.”고 토로한다. 중국 정부가 중앙이 간여하긴 힘들다고 변명하지만,5개항 마지막 합의 미이행 사항인 만큼 더 공격적인 외교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국이 백두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한다는 의혹에 대해 우리 정부가 해명을 요구하자, 중국측은 “사실과 다르다. 하더라도 백두산 국경을 나누고 있는 북한측과 협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정부 “동북공정 대응 때아니다”

    정부 “동북공정 대응 때아니다”

    정부는 7일 논란을 빚고 있는 중국 사회과학원의 한국 고대사 왜곡과 관련, 중국 중앙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확인되기 전까진 정부 대 정부 차원의 공식 외교 대응을 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지난 2004년 8월 고구려사 문제와 관련, 양국 차관간 합의(5개항)를 중국 정부가 존중하고 지키려 노력해왔다고 평가한다.”면서 “중국의 여러 연구기관들이 진행하는 연구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의 이같은 입장은 중국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는 정치권과 여론의 요구 수준과 상당한 차이가 난다. 또 역사를 왜곡한 시험교과서가 나온 마당에 너무 안일한 현실인식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 당국자는 “현재 논란이 실제 이상으로 과장·증폭됐다.”면서 “변강사지 중심의 동북공정 연구는 학계에서 볼 때는 새로운 사실이 아니며 알고 있던 사항”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4년 8월 합의 이전에 계획 등을 웹사이트에 올려놓았고 이를 업데이트하는 중”이라면서 “왜곡된 내용이 중국 중앙정부의 공식 입장이 된 것으로 확인되면 외교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국자는 그동안 정부 정책이 중국 입장을 두둔했다는 주장(동북아역사재단에 통합된 고구려연구재단의 김정배 전 이사장)과 관련,“고구려연구재단이 정부 지원을 받아 활동을 했지만 문제가 있어 동북아 재단으로 통합·출범했다.”면서 “자신이 있었으면 이런 문제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외교부는 고구려연구재단이 만든 청소년용 교육 홍보자료가 중국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강하게 묘사해 국가전체 득실로 볼 때 적절치 않다는 근거로 자료 배포를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자는 중국 측이 랴오닝성 소재 고구려 산성인 봉황 산성에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는 안내판을 세운 사실을 현지 공관을 통해 확인하고도 중국 측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지난달 29일 선양 주재 총영사관이 랴오닝성 정부에 왜곡된 내용의 삭제를 요청했다.”고 소개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역사연구→대대적 개발→조선족 중국화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동북공정(東北工程)은 어디까지 왔고, 종착점은 어디인가.’ 2002년 2월 국가 비준 프로젝트로 공식 출범한 이래 올해로 계획된 5개년 연구활동이 일단락되지만, 연구결과에 대한 향후 정책 반영 계획 등 공정의 진로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일단 전문가들은 이른바 ‘서북공정’ ‘서남공정’으로 불리는 선례들에 주목하고 있다. 국경 분쟁과 소수민족 문제 등을 동시에 아우르는 대책으로 신장(新疆) 위구르 지역을 대상으로 한 제1기 서북공정, 윈난(云南)성을 중심 대상으로 삼은 2기 서남공정이 이뤄졌다는 시각에서다. 동북공정은 3기 프로젝트인 셈이다. 이들은 중국이 1983년 사회과학원에 ‘중국변강사지 연구중심’을 설립하고 접경지역의 역사·지리·영토 문제를 연구한 것을 공정의 출발점으로 잡고 있다. 1기 서북공정은 1991년 소련의 해체에 영향을 받은 신장(新疆) 위구르 지역의 분리ㆍ독립운동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추진됐다. 티베트와 위구르 지역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이후에도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지는 등 중국 정부의 골머리를 앓아왔으나, 이 공정은 이미 마무리돼 ‘서역 통사’ 등 단행본도 나와 있다. 서북공정은 이후 20조원짜리 초대형 국가사업인 ‘서북대개발’로 이어졌다. 또한 ‘칭짱(靑藏)철도’ ‘서전동송(西電東送)’ ‘서기동수(西氣東輸)’ 등 국책 프로젝트의 근간이 되기도 했다. 서남공정은 인도차이나 지역의 국경 정리와 윈난(云南)성 27개 소수민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정책이다. 서남공정에도 역시 대대적인 개발사업이 뒤따랐으며, 그 결과로 샹그릴라를 비롯한 서남부 지역은 연 2만명 남짓 찾던 관광객들이 10년여사이 100배 가까이 늘어나는 등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동시에 한족(漢族) 자본의 유입과 함께 소수 민족의 자취가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동북공정 역시 출발선과 과정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동북지역의 안정적 통합과 대(對) 한반도 영향력 확보를 위한 포석이 공정의 목적으로 분석된다. 연구에 이어 그 결과의 일부가 교과서 등 교육 교재에 이미 반영되기 시작됐고,‘동북진흥(東北振興)’이라는 국가적 개발 프로젝트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100여개 사업에 10조원이상의 돈이 투입되는 프로젝트다. 특히 최근 백두산에 대한 대대적인 관광개발지화는 서남공정을 떠올리게 한다. 전례로 볼 때 2년내 백두산 관광객을 현재 30만명에서 80만∼100만명까지 늘리겠다는 목표가 무모해 보이지 않는다. 중국 전역에 한글 표지가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백두산 주변에 한글이 사라져가는 점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동북공정은 대상 소수 민족이 ‘조선족’으로, 모국(母國)이 접경지역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북·서남지역 문제와는 성격을 다소 다르게 보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서북공정이 ‘티베트’를 중국화하기 위해 수립한 것이라면, 북한의 붕괴를 염두에 둔 전략으로 ‘동북공정’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미국의 대북특사를 지낸 찰스 프리처드 등 전문가들은 “북한이 붕괴될 때 중국으로의 흡수 통합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jj@seoul.co.kr
  • 중국 10대 명승지 구이린(桂林)

    중국 10대 명승지 구이린(桂林)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달나라에만 있다고 생각했던 계수나무가 가득한 천국 같은 곳, 바로 중국의 구이린(桂林)이다. 중국인들도 이곳 여행을 평생의 소원이며 영혼이 구제 받는다는 신비롭고 복받은 땅으로 여긴다. 말로만 들었던 구이린, 역시 가는 곳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영락없는 한폭의 산수화가 그려진다. 특히 그 중에서도 천년의 모습을 한폭 한폭 내보여지는 ‘자원현의 팔각채’는 깎아지르듯 아득한 발밑 세상이 고개만 떨구어도 금방 빨려들 것 같은 짜릿함에 온몸이 저려온다. 구이린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글 사진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 산과 물, 동굴, 바위가 어우러진 구이린 일상사에 지쳐 있을 때, 중국의 중국 10대 명승지 중 만리장성 다음이라는 구이린을 접한 기분은 ‘가슴뭉클’ 그 자체였다. 한낮의 날씨는 서울 못지않게 더웠지만 눈으로 보여지는 기온은 청명한 가을로 느껴진다. 산수 풍광이 수려하고 역사문화도시인 광서장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구이린은 중국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주민수는 488만여명. 장족, 한족, 묘족, 모한족 등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각기 독특한 생활을 하면서 서로 어우러져 지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어딜 가든 낯선 이방인들을 환영하는 소수민족 쇼가 벌어진다. 화산 폭발로 구이린은 세상밖으로 나왔고, 이때 지상을 절반이상 덮은 석회암이 침식작용을 거치면서 독특한 카르스트 지형을 형성하게 된다. 그 결과로 생긴 기묘한 형태의 산봉우리와 절벽사이를 굽이굽이 흐르는 맑은 강물, 각 산마다 생긴 기이한 동굴 등은 구이린의 중요한 관광유산이다. 아열대기후로 1년 내내 관광이 가능하다. 그중에서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4∼5월 또는 9∼10월이라는 게 이곳 사람들의 귀띔이다. 특히 음력 8월 가을이면 계수나무 꽃이 피면서 그 향기가 사방에 퍼져 여행의 절정을 맛볼 수 있다. 구이린에서 배를 타고 ‘이강(離江)’을 따라 관암(冠岩)동굴을 지나면 서양의 거리라 불리는 ‘작은 구이린’ 양삭(陽朔)에 도착한다. 양삭은 중국 젊은이들도 자전거로 배낭여행을 즐긴다. 숙박비와 물가가 저렴해 여유를 갖고 풍요로움을 즐기려는 외국인들로도 붐빈다. # 중국인들도 모르는 팔각채 구이린에서 자동차로 4시간정도 가면 ‘광서자원 국가 지질공원’이 나온다. 자원현에 있는 전형적인 ‘단하지모(丹霞地貌)’ 유적과 독특한 지세로 중국에서도 최고의 평을 받고 있는 곳이다. 공원 남북의 길이는 33㎞, 동서 너비는 3∼9㎞, 총면적은 여의도 면적의10배 이상이다. 자강은 광서자원-호남신녕과 남북방향의 사암석(沙巖石)으로 조성된 붉은색분지에서 동정호로 흘러 들어간다. 토끼귀같은 구이린의 산봉우리와는 달리 바위산에 흙이 있는 곳에만 나무가 자라 마치 낙타등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팔각채’(높이 814m)가 눈에 확 들어온다. 그동안 개방이 안된 팔각채는 여덟개의 면으로 구성돼 그중 동, 서, 북면은 손을 댈 수 없을 정도의 날카로운 절벽이고 서남쪽으로만 등산할 수 있다. 정상까지는 4시간가량 걸린다. # 여행정보 아시아나항공에서 구이린 직항 노선을 월, 토요일 주2회 운행한다.10월 말쯤에 한편 더 증설할 계획이다. 그 외에는 상하이, 광저우 등 주요 도시를 경유해 국내선으로 연결된다. 업투어(02-775-7979)여행사에서 구이린과 팔각채에 인상유삼제가 포함된 5일 상품을 69만 9000원에 판매한다. 매주 수요일 출발하며 4명이상이면 가능하다.
  • [책꽂이]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들(브린 바너드 지음, 김율희 옮김, 다른 펴냄) 사스 바이러스보다 수천배나 파괴력을 지닌 흑사병, 천연두, 콜레라, 황열병 등 전염병에 대한 입문서. 흑사병은 어떻게 봉건제도를 강타했을까.1331년 몽골 군대에 의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흑사병은 4년도 채 안돼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1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 결과 중세 유럽의 지배계급은 결정적 타격을 받았다.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세계사를 바꾼 보이지 않는 손, 전염병의 기원과 확산 과정 등을 알기 쉽게 설명.1만 2000원.●우주는 안녕한가요?(셜리 앤 존스 엮음, 도솔 옮김, 황매 펴냄) “용기만 있다면, 쥐가 코끼리를 들어올릴 수도 있다.”(티베트 속담) “자기 자신, 지는 태양, 홍수에 쓰러진 나무를 존경하라.”(마오리족 속담) 이 책에는 지도 밖 소수민족들의 삶의 지혜가 가득 담겼다. 호피족, 마오리족, 가리후나족, 키카푸족, 히바로족, 위네바고족 등 200여 종족의 삶의 이야기를 자신들만의 독특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제4세계 원주민들을 위한 단체인 ‘세계원주민연구소’와 ‘위기에 처한 원주민을 위한 프로젝트(EPP)’ 등에 관한 정보도 실렸다.9800원.●뭐라고, 이게 다 유전자 때문이라고?(리사 시크라이스트 치우 지음, 김소정 옮김, 한얼미디어 펴냄) 희귀 질환을 유발하는 우리 몸속 유전자 이야기. 메노파나 아미시 교도들처럼 고립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유전병에 단풍당뇨증이란 게 있다. 단내를 풍기는 유전자 때문에 소변과 땀과 눈물에서도 단풍당밀의 냄새가 난다. 시조들이 갖고 있던 유전자가 자손들에게 많이 발현된다는 점에서 ‘창시자 효과(founder effet)’란 말도 생겼다. 포르피린증을 앓은 조지 3세의 광기,‘켈트인의 저주’로 불리는 혈색소증, 키다리 유전자를 지닌 링컨·라흐마니노프·파가니니·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마르팡 증후군 등의 이야기가 실렸다.1만 2000원.●로버트 카파-그는 너무 많은 걸 보았다(알렉스 커쇼 지음, 윤미경 옮김, 강 펴냄)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건 충분히 가까이에서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토 저널리즘의 신화를 만들어낸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본명 앙드레 에르노 프리드만)는 한 시대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잡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썼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진 오마하 해변에서 쏟아지는 총탄 사이로 들어올린 카메라. 헝가리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41세에 베트남 전장에서 죽기까지 사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모험가였다.1만 6000원.●21세기 한중일 삼국지(우수근 지음, 두리미디어 펴냄) 한·중·일 3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비교 고찰. 일본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가지지 못한 자도 무엇인가는 가졌고, 가진 자도 무엇인가를 가지지 못한 나라’라고 말한다. 그만큼 일본은 엄격한 조세정책과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사회적 부의 불평등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일본보다 빈부격차가 더 심하다. 중국의 빈부격차 또한 심각한 상태. 빈부차, 실업, 부패 문제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제2의 톈안먼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1만 5000원.
  • [세계의 싱크탱크] (6) 中 사회과학원

    [세계의 싱크탱크] (6) 中 사회과학원

    |베이징 이지운특파원|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의 사망과 함께 중국은 극도의 정신적 공황에 휩싸였다. 광풍과도 같던 10년의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린 뒤 인민들은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었다. 국가적 오류가 속속 밝혀지고 국가의 기본 노선마저 의심받던 그 무렵, 당 중앙은 중국사회과학원의 창설을 지시한다. 1978년 5월 중국사회과학원은 중국과학원 소속의 철학사회과학학부를 모태로 탄생했다. 마오쩌둥의 비서 출신으로 당대 최고 이론가로 꼽히던 후차오무(胡喬木)가 초대 원장을 맡았다. 내로라하는 학자와 이론가를 불러들인 것은 물론이다. 사회과학원은 바로 ‘사회주의 시장경제’ ‘사회주의 상품경제’ 등의 용어를 생산해내며 개혁·개방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중국 사회의 길잡이 역할이 시작된 것이다. 사회과학원의 탄생 스토리는 국가 싱크탱크로서의 성격과 역할을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우선 연구의 범위와 성격에서 다른 싱크탱크와 차별성을 갖는다. 같은 국무원 소속의 발전연구중심이나 국가발전개혁위가 국가의 정책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사회과학원은 이론 연구에 치중한다. 예컨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제시한 ‘과학적 발전관’을 어떻게 추동해나갈 것인가, 다른 싱크탱크가 구체적 정책을 준비할 때 사회과학원은 철학과 이론의 토대를 준비하는 식이다. 그 범위도 방대하다.35개 개별연구소의 이름들이 말해주듯, 문학·역사·고고학·철학·법률·정치·경제·금융·국제문제부터 소수민족과 종교, 문화보전 문제에까지 걸쳐 있다.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각 지역 연구소에 라틴어 연구소까지 두고 있다. 다른 곳에선 다루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그렇다고 사회과학원의 연구가 학술과 이론 연구에만 머무를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사회과학원의 고위층과 학자 30여명은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이거나 정치협상회의 위원들이다. 이미 국가 정책의 결정권자요 조정자들이다. 일부 학자들은 매년 전인대에서 총리가 낭독하는 ‘정부공작보고’의 초안 작업에 투입된다. 국가 행정의 밑그림을 구성하는 데 참여하는 것이다. 의료개혁, 사회보장, 부동산, 금융개혁 문제 등 국가현안에 대한 정책 보고서들은 지도자급에 전달되는 것만 연간 270여편이나 생산된다. 일반적 연구의 주제 역시 대단히 구체적이다.‘인터넷 문학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TV광고의 영향과 현상 연구’ ‘호적 문제와 인구의 변화 및 이동 문제’ 등이 연구과제의 제목들이다. 얼핏 일반 대학의 석·박사 과정 논문 제목과 비슷해보이지만, 그 연구결과의 영향력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적어도 한국사람들에게라면 그 위력을 가늠케 할 만한 단적인 사례가 있다. 고구려사의 중국 편입을 시도한 ‘동북공정(東北工程)’이다. 사회과학원의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中國邊疆史地硏究中心)’ 주도로 진행된 것이다. 사회과학원은 최근에는 ‘국민도덕관념’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1995년 1차 조사에 이어 두번째다. 국민들의 관념·행위에 대한 변화를 관찰·조사하는 일종의 국민 의식조사인 셈이다. 이 조사 결과는 향후 각 행정 단위에 세세한 법률, 규정 등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 사회과학원이 다른 싱크탱크와 비교해 특장이 있다면 사회 일반에 대한 영향력이다. 중국중앙TV(CCTV)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약방의 감초’격이다. 각종 신문의 칼럼에도 무시로 등장한다. 사회과학원이 담당하고 있는 대국민 선전의 일환이다. 생산해 내는 엄청난 양의 연구, 조사결과는 인문·사회학의 장서로 그대로 남는다. 연간 300여권의 전문서적이 출간되며 82종의 학술 간행물이 나온다.1000건의 조사연구가 이뤄지고 7000편의 논문과 칼럼이 생산된다. 모두 각종 논문의 각주(脚註)로 활용돼 온 재료들이다. 중국 학술계를 기르는 ‘우물’이라 할 만하다. 실제로 사회과학원의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가 인재 배양이기도 하다. 각 연구소를 한 개의 과(課) 개념으로 운영, 전공별로 직접 교육하고 배양하는 방식으로 대학원(硏究生院)을 운영하고 있다.6개의 교학연구부에 33개 과로 되어 있으며 석·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 1998년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설립 20주년 기념행사에서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은 “중국사회과학원 대학원은 인문사회과학의 일류 인재 배양의 기지가 됐다.”고 치켜세웠다. jj@seoul.co.kr ■ 中사회과학원 왕옌중 부국장 “사회적 문제 장기적 전략 수립”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왕옌중(王延中) 중국사회과학원 연구국 부국장은 “기초 학문에 대한 연구 없이 좋은 정책을 낼 수 없다.”면서 정책 수립의 밑바탕으로서 인문·철학·사회과학적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가정책 수립에 있어 왜 학술 연구가 중요하다고 보나. -철학·이론적 토대 없이는 사회 문제를 관통하는 장기적인 정책을 수립하기 어렵다. 사회가 혼란을 겪게 된다. 또한 이런 연구를 통해서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사회에서 필요한 여러 방면의 사회 인재가 길러진다.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때 관련 전문가가 없었고, 그간 준비해놓은 게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연구의 형태는. -크게 대책 연구와 이론 연구로 나눌 수 있다. 당 중앙에 현안에 대한 보고서를 낸다. 연간 270여편가량인데, 이중 3분의1 정도가 국가 지도층의 주목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연구 측면에서의 장점은. -강의 압박 등이 없으니 연구 환경이 대학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롭다. 사무실에는 주 1∼2회 나오면 그만이다.(3000여명의 연구원을 동시에 수용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또한 전국 각 성·시가 각급 사회과학원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고 학술 교류에 협력하고 있다. 사회과학원은 국가 거시 전략과 여러 지방을 연결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규모는. -35개의 연구소와 3000명이 넘는 연구원이 있다. 여기에 현역 연구원 수보다 많은 퇴역 연구원들이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여전히 사회과학원 연구를 돕고 있다. 그래서 사회과학원의 식구는 7000여명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교류 현황은. -평균 연간 1000차례 외국의 학자 등이 다녀간다.1년 이상 장기 방문자도 많다. 사회과학원에서도 1000차례 이상 각종 학술대회 참석차 해외로 나간다.20개 나라와는 학술교류 협정을 맺었다.84개 나라 및 지역과의 교류가 진행 중이고 200여개 해외 연구기관 학술단체 대학, 정부 부문과 교류를 하고 있다. jj@seoul.co.kr ■ 사회과학원의 ‘맨파워’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모두가 중국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회과학원의 연구소장들은 분야별로 적어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인물들이라고 보면 된다.” 한 관계자가 자랑한 사회과학원의 ‘맨 파워’다. 실제로 중국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회 위원직도 맡고 있는 위융딩(余永定) 세계경제정치연구소장, 장윈링(張蘊嶺) 아태연구소장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이 적지 않게 포진해 있다. 그런 사회과학원이 요즘 도전을 받고 있다. 유력 대학과 민간연구소 등으로의 이탈 때문이다. 왕지스(王緝思) 전 미국연구소장은 베이징 대학으로 옮겼다. 요즘 베이징 대학이나 칭화대학 등이 경쟁적으로 인재 모시기에 나서 대학으로의 이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톈저(天則)경제연구소’를 설립한 마오위스(茅于軾)도 사회과학원 출신이다. 마오위스가 사회과학원 출신들을 불러 모은 톈저경제연구소는 민간연구소이지만, 국가 주요 정책 생산에 깊숙이 관여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연구소 역량의 70∼80%는 소장 개인의 전력에서 나오는 것 같다.”는 한 연구원의 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손실이다. 특히 고위층과의 관시(關系)와 인맥이 중요시되는 중국 사회에서는 소장 개인의 네트워킹 능력이 절대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작 사회과학원측은, 인재 배출이라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사회과학원은 최근 35개 연구소를 5개 학부로 묶고 연구 평가시스템 개발에 나서는 등 개혁 작업이 한창이다. 당 중앙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당 중앙 업무보고 때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비롯한 국가 영도자들로부터 ‘국가와 사회에 대한 더 많은 공헌을 기대하고 있다.’는 지시를 받았다.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혁과 함께 국민 정신 개조를 밀어붙이고 있는 4세대 지도부가 사상·이론적 뒷받침을, 사회과학원의 분발을 요구한 것이다. jj@seoul.co.kr
  • [문화마당]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친밀감/임영균 중앙대 사진학과교수 ·사진작가

    지난 7월말 중국 윈난성 사진가협회와 베이징 민족화보사 초청으로 중국 윈난성 스린, 쿤밍 등지를 10일간 촬영하고 돌아왔다. 현재 윈난성 당국은 그 지역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프랑스·캐나다를 비롯한 7개국의 저명 사진가들을 초청, 모든 경비를 대주면서 촬영하게 하고 저녁마다 현지의 시장 등 주요인사들이 주최한 만찬을 베풀어 주기도 했다. 또한 외국사진가들이 촬영한 사진들을 가지고 ‘외국인의 눈으로 본 스린’이라는 사진전을 열고 출판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행사에는 중국 윈난성 출신 베이징 중앙민족대학 소수민족문화과 황교수도 동행했다. 그는 만찬이 있을 때마다 우리민요인 아리랑과 도라지 등을 부르며 한국에 대한 친근감을 표시했다. 특히 시장 등의 중요한 사람과의 만찬이 있을 때에는 으레 나를 개인적으로 소개시켜 주며, 건배를 하게 하는 등 특별한 배려를 해 주기도 했다. 쵤영여행 중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스린시 공설 운동장에서 열린 ‘횃불 축제’였다. 횃불을 피워 악귀를 쫓아낸다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풍습인데 점점 규모가 커져 이제는 국제적인 행사가 됐다고 한다. 각 지역에서 온 소수민족들이 나와서 저마다 전통무용과 민속음악을 연주했다. 공연이 절정에 이르자 벌판 곳곳에서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민속음악에 맞춰 남녀노소가 하나 돼 손에 손을 잡고 원무를 추는 것이었다. 빠른 템포의 음악에 따라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10여 명에 불과했지만 이내 수백 명으로 늘어 났다. 모닥불을 가운데에 놓고 서로 손을 잡고 돌다 보니, 문득 자석을 돌려서 전기 에너지를 만드는 발전기가 생각났다. 그들의 에너지는 마치 발전 모터처럼 대단했다. 그렇게 불 주위를 몇 시간씩 돌며 춤을 춰도 힘이 들지 않는지 그들의 몸짓은 더욱 격렬해졌다. 주술의 힘이라도 얻은 것일까. 나는 새삼 중국 소수민족들의 용솟음치는 에너지를 느꼈다. 행사가 끝난 다음 날 아침을 먹으면서 동행한 황교수는 한국은 전통적으로 중국과는 ‘형제 나라’이니 앞으로 자주 찾아 오라고 했다. 내가 이번 가을에 베이징 전시 준비를 위해 다시 올 예정이라고 했더니, 그는 언제라도 오면 자기에게 꼭 연락하라며 숙식까지 제공하겠다면서 친밀감을 드러냈다. 그 이후에 만난 베이징의 사진관계 인사들뿐만 아니라, 상하이 푸단 대학의 교수들이나 중국 사진화랑에 관계하는 사람 모두 대단한 친밀감을 표하며 전통적인 우방임을 과시했다. 세계 어느나라를 가도 이런 환대는 미처 받아 보지 못했다. 최근 수년간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중국은 강대국 행세를 하며 주변 국가인 한국이나 일본의 사진가들은 잊어버린 듯했다. 서양의 사진가들만 초청해 중국을 촬영하게 한다는 소식을 이미 들은 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행사에는 한국인 사진가가 찍은 사진을 특집으로 내겠다고까지 했다. 그러면 왜 중국사람은 미국이나 프랑스 등 서양이 아니라 한국인에게 더욱 친밀감을 보이는 것일까. 지난 수천년 동안 한국은 중국에 침략만 받았지 한국이 중국을 침략한 적은 한 번도 없어서이기 때문일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한국은 세계 경제 10위권일 뿐 아니라 과학·문화·체육 등의 분야에서도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중국 지식인들은 대부분 한국은 작지만 강한 나라, 급속한 현대화를 이룬 나라, 그래서 과거와는 달리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내에서 세계 각국의 브랜드 가치를 조사했는데 삼성이 미국 등 각국의 내로라 하는 브랜드를 물리치고 브랜드 선호도 1위에 선정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보이는 친밀감은 어쨌든 반가운 일이다. 우리로서나 그들로서나 그것이 어느 일방에 대한 ‘억지 짝사랑’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임영균 중앙대 사진학과교수 ·사진작가
  • [발언대] 현충기념물 자녀와 함께 체험을/정종기 서울북부보훈지청장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은 “죽으나 사나 나의 소원은 조선의 자주독립이며 그러한 독립된 나라에서 청지기가 되길 소원” 하셨습니다. 침략의 원흉 이토히로부미를 폭살하고 순국하던 순간까지도 의연한 기개와 절개를 지켜 지켜보던 일본인까지도 감동시킨 안중근 의사의 위국·헌신정신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조국과 민족의 위대함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광복 이후 60여년동안 우리는 6·25전쟁의 폐허속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나라사랑 정신이 우리들 가슴속에 면면히 이어져왔기 때문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광복 이후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으며, 북한의 미사일과 핵 개발은 민족 모두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독도분쟁과 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과거 식민지 정책을 합리화하고 있으며, 중국도 우리의 고대사를 중국변방의 소수민족 역사로 왜곡해 중국역사에 포함시키는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면, 지역·계층간 이념대립과 가치관 혼재, 노·사문제,2분법 사고 등 갈등관계로 인한 혼란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원유가 폭등 등 국제적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반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 모두 순국선열·애국지사들의 공헌과 희생에 감사하고, 그 분들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위대한 민족유산으로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진정한 제2의 광복을 위하여 우리 모두의 힘을 결집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여름방학 잠시 시간을 내서 자녀들과 함께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의 묘소, 독립기념관 등 현충시설물을 찾아 올바른 역사인식을 고양하는 소중한 체험의 기회를 갖기를 당부합니다. 정종기 서울북부보훈지청장
  • [100년만의 귀향 항일 허위가문 후손들] (중) 이국 망명생활

    [100년만의 귀향 항일 허위가문 후손들] (중) 이국 망명생활

    의병장 왕산 허위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한 뒤 더 이상 집성촌인 구미에 모여살 수 없었던 왕산의 일가와 후손들은 짐을 싸서 만주로 야반도주를 했다. 만주도 안전하지는 않았다. 왕산의 후손의 목에는 신고보상금이 걸려 있었다. 일본 순사가 눈치챘다는 말이 들리면 자다가도 일어나 국경을 넘어야 했다. 고향을 떠난 뒤부터 그들의 삶은 격동의 시대만큼 흔들렸다. ●술마시면 독립운동 얘기하던 허금숙씨 아버지 왕산의 바로 위 형인 성산 허겸은 만주에 정착했다. 쫓기는 와중에도 허겸은 만주에 조선어 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에서 성산의 아들이며 이번에 귀화한 허금숙씨의 아버지인 허선(1987년 사망)씨도 배웠지만, 상급학교에 다닐 수는 없었다. 허선씨는 배운 게 없으니 헤이룽장성에서 평생 소작농으로 일했다.14살 때 허선씨에게 시집온 어머니는 어렸을 때 친어머니를 여의고 만주 등지에서 생활해서인지 솜씨가 야물었다. 허금숙씨는 어머니가 장아찌와 김치를 담가 일년내 가족들의 반찬을 댔다고 회상했다. 지금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더 짜고 덜 매운 음식이었다. 아버지 허선씨는 말이 없으셨지만, 힘이 장사였다. 친구들과 술이라도 마시면 아버지인 성산보다는 삼촌인 왕산 얘기를 꺼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왜군들에게 호통치며 취조에 응했던 이야기, 의병활동을 하면서 썼던 격문…. 술자리에서 나오던 집안 얘기가 뚝 끊긴 것은 1966년 중국에 문화대혁명 바람이 분 뒤부터다. 아버지가 어딘가 끌려갔다 온 뒤부터 큰 소리로 집안 얘기를 하지 못했다. 그 때만 해도 남조선이라고 부르던 고국은 중국의 최대 적국이고, 독립운동 얘기는 금기가 됐다. 할아버지 허겸은 일본 국적의 호적을 만들 수 없다며 아버지 허선씨를 낳은 뒤 이름을 관청에 등록하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피해를 감수해야 했던 것처럼 장녀인 허금숙씨도 동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했다. 그는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인 소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다.3남3녀 중 다른 동생들은 덕분에 상급학교에 진학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 대해 다시 말할 수 있게 됐지만, 아버지는 서울올림픽이 열린 바로 전 해에 사망했다. 허금숙씨의 어머니도 한국땅을 밟지 못하고 1997년에 숨을 거뒀다. 경상도 출신인 어머니는 “집앞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지금도 그대로일지….”라며 궁금해했었다. 허금숙씨의 한국말은 철저하게 부모의 말투 그대로다.“‘나라말’을 잊어버리면 정신을 잃게 된다.”는 아버지의 경상도 말씨를 집안에서는 꼭 써야 했기 때문이다. ●광복되자 고국으로 보내달라고 스탈린에게 편지썼던 아버지 허국 허위의 직계 후손들은 주로 구 소련 땅으로 도주했다. 허위의 4남 허국의 아들로 이번에 귀화한 허게오르기씨와 블라디슬라브씨는 한국말을 쓸 수 없었다. 쫓는 일제의 눈길이 무서워 부러 집안에서도 러시아말을 쓰게 했다. 허국(1971년 사망)씨는 만주 군경을 피해 연해주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가족들과 함께 떠나야 했다. 기개가 대단했던 허국씨는 고국에 돌려 보내달라고 직접 스탈린에게 편지를 썼다. 나갈 수 있다는 예상 밖의 답장이 왔다. 하지만 나가고 싶다고 한 의도가 뭔지, 당국이 캐고 있다는 말을 지인에게 전해듣고 그날로 허국씨는 가족들과 함께 고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방으로 야반도주를 했다. 정착한 곳이 키르기스스탄이다. 험한 일을 해보지 않았던 허국씨는 여기에서 소작농으로 일하며 육체노동을 했다. 하지만 곧 십장으로·반장으로 직위가 올랐고, 감독일을 맡게 됐다. 교육열이 유달리 강했던 허국씨는 자녀들에게 엄했다. 게오르기씨를 비롯한 자녀들을 모두 대학교육까지 시켰다. 허게오르기씨가 20대 중반이 되던 1971년까지 허국씨가 살았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지는 않다. 머리가 큰 뒤부터 기숙학교에 다녔고, 여름에만 잠시 집에 돌아와 생활했던 탓이다. 허게오르기씨는 고려인과, 허블라디슬라브씨는 연구소 동료이던 러시아 여성과 결혼을 했다. 이들도 동·서 화해무드가 조성되던 1980년대 후반까지 한국에 대해 자유롭게 알아보지 못했다. 김일성대학을 나와 모스크바대 교수를 하는 아저씨뻘 되는 친척과는 연락을 했지만, 남한과는 소통하지 못했다.1988년 텔레비전을 통해 서울을 처음 봤을 때는 충격을 받았다. 소수민족의 비애는 구소련이 해체된 뒤 찾아왔다. 자국민 우선정책을 쓴다며 둘다 직장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일제를 피해다니던 아버지가 이주정책 때문에 다시 쫓겨가 소작농부터 시작한 것처럼 형제도 소작농과 트럭운전사로 일해야 했다. ●만주서 귀국한 허벽씨가 귀화에 도움 줘 왕산의 친척 허벽씨는 이들과는 다르게 광복 직전 만주에서 귀국했다. 허벽씨가 갖고 있던 허씨 일가 사진이 이번에 허게오르기씨 등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40년 전에 찍은 사진을 필름까지 갖고 있었던 이유에 대해 그는 “아버지가 만주에서 도망을 다니느라 사진을 한장도 찍지 않았다. 영정사진으로 쓸 사진 한장 없는 게 한이 맺혀서 중학교 때부터 사진을 배웠다.”고 말했다. 허벽씨는 “한국에 살면서 내가 가장 힘든 시대를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이국에서 온 친척들 모두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시대에 희생당하며 살았다.”면서 “낯선 고국에 돌아온 이들이 어떻게 다시 정착하고 살아갈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전설의 쌍둥이 게릴라’ 기억하나요

    2000년 미얀마 정글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은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군복을 입은 채 궐련을 입에 문 당찬 표정의 소년과 금방이라도 울 듯한 또 다른 소년. 전설의 ‘쌍둥이 게릴라’인 루터와 조니 흐투 형제였다. 그들은 미얀마 군사정부와 맞서 싸우는 반군조직 ‘신의 군대’의 영웅이었다. 아홉살 때부터 총을 들고 전투를 벌인 소년들. 어리기만 했던 루터와 조니의 모습은 폭력과 인권유린으로 고통받는 소년 병사들의 현실을 돌아보게 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현재…. 영국 텔레그래프와 AP통신 등은 27일 쌍둥이 형제 중 한 명인 조니가 미얀마 정부군에 항복했다고 보도했다. 올해 18세가 된 조니는 동료 8명과 함께 이달 초 태국 난민캠프를 빠져 나왔다. 지난 17일과 19일 두 팀으로 나눠 미얀마 군부에 무기를 반납하고 항복했다.현지 언론은 “조니가 ‘가족·친지들과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고 전했다. 또 다른 형제 루터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미얀마 군부는 기독교계 소수민족인 카렌족을 오랫동안 박해했다. 인종청소라는 명목으로 학살도 자행했다. 쌍둥이는 카렌족의 한 무장단체에서 총을 나르던 소년병이었다.1997년 고향 마을이 미얀마군의 공격으로 쑥대밭이 되면서 소년들은 러시아제 AK47 소총을 들었다. 아홉 살이었다. 이후 쌍둥이는 ‘총알도 피하는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으면서 ‘신의 군대’를 지휘했다. 연전연승이었다. 조직원은 한때 700명으로 늘었다. 음악을 좋아한 조니는 언론에 “총을 들 때면 조국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된 전사가 되지만 기타를 치면 너무 기분이 좋다.”며 철부지 소년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쌍둥이는 2000년 태국 라차부리 병원에서 대규모 인질극을 벌이다 동료 게릴라 10명이 사살된 후 이듬해 1월 태국군에 생포됐다.이후 ‘신의 군대’도 거의 소멸됐다. 텔레그래프는 2년 전 루터가 난민캠프에서 결혼해 아이 아빠가 됐다는 게 이들 형제의 마지막 소식이었다고 전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티베트 유목민 ‘말대신 오토바이’

    해발 4300m 이상의 중국 남부 칭하이성 초원지대가 오토바이 천국으로 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5일(현지시간) 5년여 전부터 말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야크를 돌보고 있는 티베트 유목민들의 변화상을 소개했다. “예전에는 말을 탔었는데 오토바이가 더 빠르더라구.”트라시 도르제이는 양과 야크를 치기 위해 오토바이 ‘아시아히어로 알트 150-7’을 사서 320㎞를 몰았다.“진정한 유목민이라면 말을 타야지.”라고 말한 첸도는 텐트 뒤의 오토바이를 슬쩍 보곤 “이젠 저게 우리 말이야.”라며 껄껄 웃는다. 말을 대체하는 오토바이는 대부분의 주민이 티베트 소수민족인 고립된 칭하이성의 미묘한 변화상을 반영한다. 이곳 티베트 유목민들은 여전히 텐트나 진흙집에서 살면서 계절에 따라 야크와 양을 번걸아가며 키운다. 유목 생활에서 살아 남지 못한 일부 유목민들은 지역 정부가 세운 이주 센터로 옮겨가고 있다. 태양열로 전기를 만들어 위성 방송을 시청하기도 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유목민들은 야크와 양을 높은 시장 가격에 팔면서 오토바이 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저렴한 중국제 오토바이가 나와 신형은 600달러, 중고는 50달러면 살 수 있다.1년에 20∼30대의 오토바이를 판다는 쿠 지앙은 “말과 오토바이 값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어떤 티베트 오토바이족들은 달라이 라마의 사진으로 오토바이를 장식한다. 수도원의 라마승 드라부(68)는 지프를 몰고 티베트어로 기도문이 새겨진 돌을 모으러 다닌다. 그의 지프 타이어에 바람이 빠지자 수분 만에 오토바이를 탄 주민들이 몰려 와 타이어를 수리점으로 가져갔다. 드라부는 “사람들이 새 오토바이를 가지고 와서 축복해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삶의 일탈 낯선 세상으로

    삶의 일탈 낯선 세상으로

    북적거리는 도시, 스트레스를 한아름 안겨주던 일에서 뛰쳐나와 “나 이번 휴가에는 정말 푹 쉬고 싶어∼.”라며 울부짖고 있다면. 조금은 독특한 추억과 경험이 담긴 여행을 하고 싶다면. 갈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태국, 그 중에서도 깐짜나부리의 자연에 나를 맡기자. 깊은 산 속, 콰이강가에 걸린 해먹에 누워 좋아하는 음악을 귀에 꽂고 책 한 권 펼치는 순간. 세상만사 모든 시름을 다 벗어버린 ‘나’만이 존재한다. 글 사진 태국 깐짜나부리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태국 콰이강의 깐짜나부리 정글 래프트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수풀이 무성한 밀림 사이를 흐르는 연한 갈색의 강물, 그 위에 둥실둥실 방갈로가 떠있는 그림을 상상해보라. 어둠이 내려앉으면 전등 대신 호롱불에 의지해 길을 밝힌다.TV도, 에어컨도, 컴퓨터도 쓸 수 없다. 완벽하게 세상에서 벗어나 있다. 혹, 그래서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당신이 들어갈 만한 그림이 아니다. 강가에 쳐놓은 흔들거리는 해먹(그물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극도의 한가로움’이 그려지고, 어느 순간 그런 여유를 동경하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이곳에 당신을 던져보라. # 자연 속에 그려넣은 한가로운 나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5시간 남짓 떨어진, 멀지 않은 태국에는 방콕, 푸껫, 파타야, 치앙마이 등 유명한 여행지가 많다. 방콕에서 서북쪽으로 120여㎞ 떨어진 깐짜나부리도 어떤 면에서는 꽤나 잘 알려진 곳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에는 다소 생소한 지명이지만, 면적상으로는 태국에서 3번째로 큰 지역인데다, 그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가 있으니. 이런 곳에서 어떻게 ‘휴(休)’를 즐길 수 있겠냐고? 성급한 판단은 잠시 접고, 깐짜나부리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차를 몰고가자. 태국에서도 손꼽히는 천혜의 밀림, 사이욕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길이다.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연갈색 물이 흐르는 콰이강을 만난다. 이 강변에 있는 작은 선착장에서 롱테일 보트를 타고 달려가면, 바로 그 ‘그림’이 나온다.‘리버콰이 정글 래프트(River Kwai Jungle Raft)’다. # 머리를 비우고, 그냥 자연에 맡기자 콰이강의 연갈색 물은 울창한 밀림, 정글 래프트의 나무 방갈로와 한데 어우러져, 자연스럽고 안정된 그림을 만들어내는 가장 적합하다. 들뜨고 지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연한 베이지톤의 그림이다. 이런 곳에서 누군가 내게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연락을 해야 한다는 걱정은 필요하지 않다. 당장 컴퓨터를 켜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버렸다. 방갈로 기둥 사이에 매달아 놓은 해먹에 누워 MP3플레이어에 가득 채운 음악을 듣는다. 일에 치여 읽지 못했던 책을 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가끔씩 지나는 롱테일 보트가 만들어내는 파도에 해먹이 움직인다. 그네처럼 흔들흔들, 재미있다. 책을 읽다가 눈이 피로해지면 눈 앞에 펼쳐진 울창한 밀림을 바라보며 달래준다. 시력까지 좋아지는 듯하다. 테라스에 누워 선탠을 즐기는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어둠이 내려앉고, 호롱불이 리버콰이 정글 래프트를 은은하게 밝힌다. 저녁식사는 양꿍, 쁘리오 완 등 태국음식으로 차려져 있다. 작은 불빛에 의지해야 하는 어둠이 약간 불편하고, 어색하더니 어느새 적응이 됐다. 오히려 아늑한 느낌이다. 강가에 있어 푹푹 찌던 도심의 더위는 이곳에 없다. 바람이 살랑이며 불어와 에어컨이나 선풍기 따위는 필요 없다. 눈을 뜨는 아침부터 잠자리에 드는 밤까지, 스트레스를 벗어버린 편안함과 시간에 쫓기지 않는 넉넉함, 자연에 동화되는 여유를 그저 만끽하면 된다. # 정글 탐험, 몬족 마을 여행도 좋아 이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활동적인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다면-그럴 일은 없어보이지만 혹 지루해졌다면- 콰이강으로 뛰어들어 보자. 카누를 타거나, 대나무로 만든 뗏목을 타고 조금 더 멀리 나가서 수영을 즐기는 대나무 래프팅을 해도 좋다. 구명조끼를 입고 잔잔한 물결에 몸을 맡겨 흘러흘러 가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물살이 세지 않아 조금만 발장구를 치면 원하는 방향으로 쭉쭉 전진한다. 방갈로 뒤편 밀림 속에 태국의 소수민족 ‘몬족 마을’을 돌아보는 코끼리 트레킹을 해도 되겠다. 전통 생활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이들의 마을을 찬찬히 둘러보는 것도 이국적인 문화를 만끽하는 방법. 단, 모기약은 필수다. ■ 이곳에서 休~ 리버콰이 리조텔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속의 산책, 세상에서 벗어난 여유, 여기에 약간의 ‘문명 생활’을 추가하고 싶다면 ‘리버콰이 리조텔(River Kwai Resortel)’이 딱이다. 사이욕 국립공원 선착장에서 롱테일 보트를 타고 달려가면 밀림을 배경으로 한 목조 건물이 나타난다. 이곳이 리버콰이 리조트다. # 밀림을 정원 삼아 산책하는 맛 선착장에서 보면 그리 넓어보이지 않는 2층 건물이 이 리조트의 본관이다. 롱테일 보트에서 내려 로비로 올라가는 곳곳에 태국 전통 장식품들이 놓여있어 작은 박물관 같다. 로비 한쪽에 맑고 푸른 물이 가득한 수영장과 콰이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레스토랑이 있고, 방갈로로 가는 길에는 ‘매점’도 있다! 확실히 정글 래프트보다는 현대적이다. 50여채의 방갈로가 숲 속에 난 좁은 길을 따라 띄엄띄엄 놓여있다. 함부로 나무를 자르거나 길을 내는 등 밀림을 훼손하지 않고 방갈로를 짓다 보니 이렇게 방갈로들이 멀찍이 놓여졌단다. 자연을 보호하고자 함이었지만, 결국은 울창한 밀림을 리조트의 정원으로 만들어버린 셈이 됐다. 다양한 허브를 재배하는 허브공원이 가까이 있어, 은은한 허브향이 풍겨온다. 밀림을 정원 삼아 산책도 하고, 자연 아로마 요법으로 마음까지 다스린다. 조금 더 걸어가면 태국에서 손꼽히는 규모(길이 280m)의 ‘라와동굴’ 표시가 나온다.107개의 계단을 올라 동굴로 들어갔다. 온갖 기이한 형상으로 만들어진 자연 인테리어로 동굴 안이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동굴 안 햇빛이 들어오는 곳에 불상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도 독특하다. 역시 독실한 신자가 많은 불교국가답다.(어른은 200바트, 아이는 100바트) # 여유 속에서 찾는 알찬 즐거움 평상시에 태국식당에서 먹어본 얼큰한 국물 ‘양꿍’과 볶음국수 ‘팟타이’를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은 이곳에서 준비한 독특한 코스다. 주방장이 직접 나와 태국의 채소, 양념 등을 소개하며 만드는 법을 설명한다. 커다란 팬을 들고 온갖 재료를 넣으며 요리를 직접 만들어 보고, 한끼를 즐기는 재미있는 시간이다. 통돼지 바비큐 뷔페와 캠프파이어가 이어지며 리조트의 밤이 저문다. 연갈색의 콰이강물과 대조되는 깨끗한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거나, 햇살을 즐기는 선탠을 해도 좋다. 콰이강에서 카누, 수영, 대나무 트레킹을 즐기고 온 뒤 피곤함이 밀려온다면 산들바람을 느끼며 태국 전통 마사지를 받아보자. 호사가 별건가. 몸이 노곤해지며 피로가 풀리고 정신이 맑아지는, 여기서 누리는 이것이 바로 호사다. # 여행 정보 ■ 가는 길:태국 방콕의 북부터미널에서 깐짜나부리로 가는 에어컨버스(120바트·100바트는 약 2600원)가 매일 오전 2차례 출발한다.3시간 정도 소요. ■ 여행상품:㈜황금깃털여행(마타하리)는 태국전통안마, 바비큐 파티, 코끼리 트레킹, 뗏목 트레킹(또는 카누), 태국 전통음식을 만드는 쿠킹 클래스 등이 포함된 ‘리버콰이 리조텔’상품을 89만원에 준비했다.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리버콰이 정글 래프트’ 는 79만원. 두 상품 모두 콰이강의 다리, 담넌 사두악 수상시장, 사이욕 너이 폭포, 전쟁박물관 등의 일정이 포함돼 있다.3박5일. 1577-2585,www.goldtravel.co.kr ■ 이곳 뺀다면 아니온만 못하리 # 휘파람이 들려오는 듯, 콰이강의 다리 제2차 세계대전에 지어진 미얀마로 넘어가는 철도용 다리. 영화 ‘콰이강의 다리’(1957년)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푸른 숲으로 둘러싸여 흐르는 연갈색의 콰이강은 전시 상황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고즈넉하다. 다리 위를 걸으면 멀리서 경쾌하면서도 비장한 콰이강의 휘파람 행진곡이 들려오는 듯하다. 다소 허술하게 관리되는 곳도 있어, 발 아래 흐르는 황토빛 강물이 그대로 보이기도 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경우라면 다리 전경만 보는 것이 좋을 듯. 난간의 모양이 아치형이 아닌, 사다리꼴로 된 곳이 폭파 이후 복구된 부분이다. 콰이강의 다리 위를 달리는 기차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운행한다.20바트. 기차가 지날 때에 대비해 곳곳에 대피공간이 있다. 주로 일본인이 많이 오는 편. 적어도 다리를 만들 당시는 일본이 ‘패전국’이 되기 전 ‘점령국’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근처 수상 레스토랑(Floating Restaurant)에서 콰이강을 보며 맛있는 태국음식을 먹을 수 있다. 유명 관광지의 식당인 만큼 다른 곳에 비해, 또 보통 태국의 물가에 비해 약간 비싼 편이다. 대다수의 메뉴가 100바트 이상. # 전쟁 관련 갤러리, 전쟁박물관 콰이강의 다리 근처에 ‘제쓰 전쟁박물관(JEATH War Museum)’이 있다. 세계대전 당시 태국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가했던 일본(Japan), 영국(England), 미국(America), 태국(Thailand), 네덜란드(Holland)의 앞글자를 딴 이름이다. 당시 일본군의 무기와 사진들을 전시해 놓았다. 또 콰이강의 다리 건설 당시의 열악하고 잔혹한 환경을 밀랍인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조악해보이는 인형의 모습이 오히려 더욱 잔인하고 사실적으로 보인다. 입장료 20바트,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 ‘태국스러운’ 시장, 담넘 사두악 서민의 생활을 보고 싶다면 시장을 가라고 했다. 태국인의 순수함이 남아있는, 방콕 근처에서 가장 크고 활발히 움직이는 수산 시장이 바로 이곳. 황토빛 짜오프라야강 곳곳에 나무로 지어진 주택들과 배를 타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모인다. 비좁은 수로를 황야우라는 배들이 부대끼며 다니는 진풍경이 펼쳐진다.1시간 정도 구경을 하면서 싱싱한 과일, 먹을거리, 수공예품들을 즉석에서 구입할 수도 있다. 황야우 빌리는 데 500∼1000바트 정도. # 사이욕 너이 폭포 깐짜나부리 외곽 열대밀림 지대인 ‘사이욕 국립공원’ 안에 있는 폭포. 큰 규모의 폭포가 ‘사이욕 야이’, 그보다 작은 것이 ‘사이욕 너이’다.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는 사이욕 너이가 폭포의 웅장함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경관을 연출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 축제의 천국 말레이시아 말라카 ‘치트라와르나 말레이시아(citrawarna malaysia)’.‘말레이시아의 색깔’이란 뜻의 말레이어로 다인종·다문화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색깔을 한껏 뽐내는 축제다. 지난 8일 개막돼 말레이시아 전역을 뜨겁게 달궈가고 있다. 독립기념일 축제나 메가세일 축제 등 연이은 축제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이 축제의 개막식에서 사이드 시라주딘 말레이시아 국왕은 2007년을 ‘말레이시아 방문의 해’로 공식선포하기도 했다. 내년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 그동안 이룩한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풍요 등의 바탕위에 관광지로서의 명성 또한 한층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것이다. 엄격한 회교율법이 지배하는 말레이시아 여행에 매력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용하고 자연친화적인 분위기속에 다양한 색깔을 숨겨둔 말레이시아의 관광지들에 주목하는 사람들 또한 점차 늘고 있는 추세. 그중의 한 곳이 말라카다. 스펙트럼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빛처럼 동서와 고금을 아우르는 다양한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말레이시아의 심장, 쿠알라룸푸르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 세계적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윈빌딩 등의 현대적 건물이 눈을 부시게 하는가 하면, 도심에서 1시간거리인 부키팅기 같은 고산지역의 원시림이 폐부를 씻어주기도 한다. 그곳에 야자수 늘어진 해변은 없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그네들만의 다양한 전통과 생활상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될 곳이다. 팔색조의 현란한 날갯깃과 같은 다양한 색깔을 가진 나라 말레이시아. 물이랑 열대과일 몇개 싸들고 팔색조의 중심부를 관통해 보자. 글 사진 말레이시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역사의 향기 가득한 말라카 말라카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의 도시.‘말라카의 역사는 말레이시아의 역사’라는 말처럼 옛것과 새것, 동양과 서양이 절묘하게 융화되어 있는 곳이다.14세기말 수마트라섬에서 쫓겨온 한 왕자에 의해 세워진 말라카 왕조는 해상 실크로드의 동방거점으로 성장하며 풍요로운 시절을 구가했지만,1511년 포르투갈의 침공으로 멸망한 이후, 수백년에 걸쳐 네덜란드와 영국 등 유럽열강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이같은 외세 통치기간의 역사가 토착화되면서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게 된 것. 말라카 관광은 현지인들이 에이 파모사(A´ Famosa)요새라고 부르는 산티아고 요새(porta de santiago)에서 시작된다. 포르투갈의 점령 직후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1641년 네덜란드의 침공으로 파괴됐다가 정복자들의 손에 의해 복원된 다음, 다시 영국과 일본 등의 공격을 받아 정문외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질곡으로 점철된 말레이시아 역사를 웅변하고 있는 곳이다. 하모니카를 불며 관광객들의 동정을 자극하는 악사를 뒤로하고 산티아고 요새 뒤쪽 언덕을 오르면 세인트 폴 처치(St.Paul´s church). 포르투갈의 그리스도교 포교 거점지였지만, 이곳 역시 가톨릭을 박해하던 네덜란드와 영국의 공격으로 파괴되어 벽만 남아있다. 요즘엔 ‘밤이면 밤마다’ 말라카 해협을 배경삼아 내레이션 쇼가 진행되고 있다. 세인트 폴 교회앞에 서 있는 프랑스 신부 성 사비에르(St.Xavier) 동상의 왼쪽손이 가리키는 대로 언덕을 내려오면 스태더이스 광장이다. 말라카 왕국부터 외세 통치시절과 현재까지의 유물들이 보관된 스태더이스기념관, 네덜란드 건축 양식의 크라이스트 처치 등이 있는 곳이다. 얼핏 보기에도 유럽의 시골마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받는다. 스태더이스 광장 왼쪽의 존커 스트리트(Jonker Street)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동품 골목이다. 수백년된 골동품을 파는 가게들과 불교·이슬람교·힌두교 사원이 모여있는 평화의 거리, 그리고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 등이 뒤섞여 있다. 이곳 상권을 주름잡는 사람들은 화교. 그래서인지 중세유럽식 건물에 중국식 홍등이 매달려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조그마한 기념품은 이곳에서 준비하는 것이 좋다. 공항 면세점보다도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유적지외에 특별한 관광코스가 없는 이곳에서 말라카 강(강이라기보다는 수로에 가깝다)을 따라 뱃놀이를 즐겨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 강변에 빼곡히 들어선 전통가옥들과 허름한 현대식 건물에 매달린 빨래들, 그리고 개흙을 뒤져 조개를 잡는 사람 등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거리가 다소 짧은 것이 흠. 날은 무더운 데다 이곳저곳 구경 하며 돌아다니느라 다리는 아프고…. 숙소까지 편하게 가는 방법을 찾는다면 트라이쇼(trishaw)가 제격이다. 트라이쇼는 세발 자전거 모양을 한 일종의 인력거. 스태더이스 광장이나 존커 스트리트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꽃으로 장식된 트라이쇼에 앉아 야자수 나뭇가지에 걸린 석양을 바라보자면 남국의 정취가 여실히 느껴진다. # 말레이시아의 심장 쿠알라룸푸르 “자동차 기름값보다 사먹는 식수값이 비싼 나라”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귀를 의심케했다. 휘발유는 1ℓ에 600원-그것도 최근에 올랐기 때문이란다- 정도. 식수는 300㎖가 채 못 되는 페트병에 800원 가까이 된다. 혹시 이 나라 부자들은 물을 낭비하는 자식들에게 “물을 돈쓰듯 한다.”고 야단칠는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 뺨치는 차량숲을 지나 세계적인 랜드마크,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앞에 섰다. 높이가 452m에 달하는 세계 2위의 마천루다. 쌍둥이 건물로는 세계 최고층 건물이다. 이슬람 모스크 형태를 하고 있는 둥그런 지붕을 밑에서 올려다 보자니 뒷목이 뻐근할 지경. 하지만 이 건물 한쪽을 국내의 한 건설업체가 지었다는 설명에 뻐근함은 곧 으쓱거림으로 바뀌어 졌다. 쿠알라룸푸르 전경을 감상하기에는 KL타워만한 곳이 없다. 특히 야경이 아름다워 ‘다이아몬드 인 블랙(diamond in black)’으로 불리기도 한다. 선웨이 라군(sunway lagoon)리조트도 그냥 지나치면 서운한 곳.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와 경기도 용인의 캐리비안 베이를 합쳐놓은 듯한 대형 테마파크다.2m에 달하는 파도풀장과 170m짜리 인공해변, 그리고 공원 전체를 가르는 길이 400m의 초대형 현수교가 이곳의 자랑거리. # 서늘한 고원(高原) 부키팅기 푹푹 삶는 듯한 도심의 열기를 피하고 싶다면 쿠알라룸푸르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는 부키팅기를 찾아가 보자. 말레이어로 ‘높은 언덕’이란 뜻을 가진 곳. 해발 1400m 고원에 위치해 우리나라의 초가을 날씨를 연상케 할 만큼 선선하다. 연평균 기온은 18∼20℃정도. 현지인들이 ‘여름에는 가죽점퍼, 겨울에는 밍크코트’를 입고 찾는단다. 그래서인지 ‘밍크코트’는 몰라도 긴팔옷을 입은 사람들은 간간이 눈에 띈다. 말을 빌려타고 울울창창한 밀림지대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이 권할 만하다. 유의할 점은 음료수나 과자 등의 가격이 쿠알라룸푸르 시내보다 무려 6∼7배에 달할 만큼 비싸다는 것. 또 다른 자랑거리는 골프코스다. 동남아 골프 여행객들 사이에 간간이 회자되는 곳.18홀 규모에 총길이는 6312m다. 페어웨이의 기복이 심해 난이도는 높은 편이다. 하지만 워낙 시원한 곳이니 잘 안 맞는다고 ‘열받을’ 일은 없을 듯하다. # 싱마타이 여행 떠나볼까 10일이상의 동남아시아 배낭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그리고 태국 등 3개국을 돌아보는 ‘싱마타이 여행’을 고려해 볼 만하다.3국을 연결하는 철도와 선박, 버스 등의 교통편이나 게스트 하우스 등 숙박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어 별다른 불편함없이 여행할 수 있다.3개국 모두 우리나라와 비자면제 협정이 맺어져 있는 것도 장점. 체류기간이 30일 이내라면 별도의 비자가 필요없다. 싱가포르(visitsingapore.com), 말레이시아(mtpb.co.kr), 태국(tatsel.or.kr) 관광청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 현지여행사인 FM투어(myfmtour.com)의 윤지환씨, 싱가포르 룩 싱가포르여행사(65-6270-8812)의 정 실장(looksingapore@yahoo.co.kr), 그리고 태국 필그림 여행사(66-1-510-0101)의 임 실장(pilgrimthai@hotmail.com ) 등을 통해서도 현지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엔투어(www.ntour.co.kr) 등의 여행사에서는 ‘싱마타이 기차 배낭여행’ 상품을 팔기도 한다.90만∼120만원선. # 여행정보 ●말레이시아는 차량통행 방향이 우리와 반대. 횡단보도 또한 없는 곳이 많다. 도로를 건널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고온다습한 아열대 기후지만, 호텔 등에 냉방시설이 잘돼 있어 긴팔 옷 하나쯤 준비하는 것이 좋다. ●물인심이 짠 편이다.4성급 호텔인 데도 음료수가 비치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심지어 미니바가 텅 비어 있기도 하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음료수 등은 미리 사둘 것. ●사먹는 식수는 ‘drinking→air mineral→mineral water’ 등 3등급. 물갈이 등에 민감한 사람이면 ‘air mineral’이상을 마시는 것이 좋다. ●욕실에 드라이어나 면도기 등 생활용품이 비치되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전기용품을 사용하려면 국내에서 3핀 어댑터를 준비해 가야 한다. 전압은 220v. ●호텔 등에서 지급하는 영수증은 반드시 확인하고 꼼꼼하게 챙겨둘 것. ●국제전화 요금이 엄청 비싼 편. 출국전에 국제전화 카드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 싸고 재미난 해외여행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이 시작된다.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올여름 가볼 만한 해외 여행지를 소개한다. 유럽, 남태평양 등 좋은 곳도 많지만 시간과 경제적인 여건을 생각하면 동남아나 중국쪽을 권해본다. 동남아를 제집 드나들듯 돌아다녔다는 엔투어(02-775-0900,www.ntour.co.kr)의 김신철 동남아 팀장이 일반적인 패키지 여행이 아닌 저렴하고 새로운 여행 방법과 여행지를 소개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태국, 가이드없이 떠나보자 가족이 함께 해외를 간다면 ‘돈’이 만만치 않게 드는 것이 사실이다. 태국 전지역을 싸게 여행할 수 있는 타이항공의 에어텔 프로그램인 로열오키드 할러데이스(ROH)를 이용해보자. 어른 두명이 ROH를 이용하면 12세미만의 아이 한명은 ‘공짜’로 경제적인 부담이 확 줄어든다. ROH는 패키지 여행이 아닌 전 일정에 가이드나 인솔자가 없이 오붓하게 가족들만이 즐기는 자유여행이다. 옵션이나 쇼핑의 강요도 없고 팁을 요구하는 것도 없다. 미리 가고 싶은 곳과 일정을 정해서 움직이면 된다. 공항과 호텔이나 여행지로 픽업서비스가 포함되어 있어 자유여행을 처음 떠나는 가족이라도 전혀 어려움이 없는 새로운 상품이다. 가능한 도시는 방콕, 푸껫, 파타야, 크라비, 코사무이, 치앙마이 등 태국의 주요 관광지이며 상품가격은 왕복항공료와 조식이 포함된 숙박 2박, 그리고 픽업서비스를 포함하여 1인 45만원부터다.(02)775-0900. # 열차를 타고 떠나는 동남아 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을 잇는 철로를 이용해 이들 나라를 돌아보는 ‘싱마타이.’ 전세계 배낭여행객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동남아 3개국의 관광청이 오랜기간 준비해 온 야심찬 프로젝트다. 유럽여행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야간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기차여행의 낭만을 동남아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됐다. 각국의 서로 다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또 앙코르와트가 있는 캄보디아나 홍콩 등 동남아 전 도시로의 연결이 가능해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여행이다.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싱마타이 simple 푸껫 10일’. 싱가포르나 쿠알라룸푸르 같은 대도시 여행과 야간열차 이동으로 피곤해진 심신을 태국 푸껫의 아름다운 해변에서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상품이다. # 아름다운 자연과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 모여라 깨끗한 산과 바다, 문화 유적지가 어우러진 맥주의 도시 중국 칭다오(청도)는 요즘 인기 상한가. 칭다오가 관광지로 주목 받는 이유는 아름다운 산과 해변·섬뿐 아니라 시내에는 여러 나라의 독특한 문화를 담은 건물들, 다양한 쇼핑거리와 저렴한 해산물 그리고 무엇보다 빠질 수 없는 칭다오 맥주까지 세계적인 여행지로서 모든 조건을 갖춘 곳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표 맥주 칭다오 맥주의 고장인 칭다오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해수욕장인 제1해수욕장에서 물놀이뿐 아니라 칭다오의 상징인 잔교를 걸으며 산책도 하고 저녁엔 시원한 칭다오 맥주 한 잔으로 일상을 잊고 쉬기에 그만이다. 특히 매년 8월에 열리는 ‘칭다오 맥주 페스티벌’은 전 세계 20개 유명 맥주 회사들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 맥주축제.10일이 넘는 축제 기간동안 온 도시에 맥주 파티가 열려 우리를 더욱 즐겁게 한다. 올해는 8월13일에 축제가 시작된다. # 세계 7대 불가사의 앙코르와트로 떠나는 사원여행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 장소로 잘 알려진 앙코르와트는 동남아 전체를 호령했던 크메르 제국의 수도인 시엠리아프, 그리고 그 속에 남아있는 수천 개의 사원들을 가리킨다. 신을 위해 지어진 신전인 이곳은 분명 인간의 세상이 아닌, 신의 세상이다. 유럽과 동남아 여행을 한 사람이라면 이번 여름 꼭 앙코르와트에서 ‘신’들을 느끼며 세속의 때를 벗기를 권한다. 앙코르와트 유적군 외에도 시엠리아프 시내에 있는 올드(old)마켓에서는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엿보고 저렴한 기념품도 살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관심이 있는 여행지 중 하나이다. # 유토피아 ‘샹그릴라’를 찾아서 영국의 작가 젬스 힐턴의 베스트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의 배경이 되었던 중국 윈난성. 태곳적 웅장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실존하는 유토피아’라고 불린다.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윈난성에는 티베트, 리수족, 라오족 등 약 26개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이들이 함께 만들어 가고 있는 독특한 전통과 풍습도 전세계 여행객들이 운남성을 찾게 하고 있다. 윈난성의 대표 도시인 다리와 리장에는 마치 수천년전으로 돌아간 듯한 고성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고, 특히 윈난성의 쿤밍은 세계 배낭 여행자들이 모여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같이 여행을 떠나는 곳으로 변신하고 있다.
  • 구한말 의병장 허위선생 손자2명 60여년만에 모국품에

    일제의 핍박에 쫓겨 조국을 떠나야 했던 의병장의 손자들이 60년 만에 고국 품에 안겼다. 주인공은 구한말 의병대장으로 활약했던 왕산(旺山) 허위(許蔿) 선생(1854∼1908)의 손자인 허 게오르기(62)ㆍ블라디슬라프(55) 형제. 이제는 백발이 된 키르기스스탄의 두 ‘고려인’들은 18일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특별귀화증을 받고 ‘대한국민’이 됐다. 이들은 “소수민족이라고 차별받을 때 마음속에 고이 품고 있던 고국이 60여년 만에 저희를 안아줬다.”며 감회를 밝혔다. 허 선생은 성균관에서 박사를 제수받은 뒤 중추원 의관, 정삼품 통정대부 등 관직을 거쳤다. 그는 일제에 의해 한국 군대가 해산됐던 1907년 의병대를 조직,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항쟁을 이끌었다. 특히 1908년 4월 정미의병 당시 ‘서울진공작전’을 주도했다. 그가 이끄는 의병은 1908년 2월 서울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했으나 일본군의 화력에 밀려 퇴각했다. 현재 동대문에서 청량리에 이르는 ‘왕산로’가 그를 기념하는 곳이다. 그는 같은 해 5월 2차 서울 탈환작전을 준비하다 일제 헌병의 습격을 받고 체포돼 9월 서대문형무소 ‘1호 사형수’로 옥사했다. 허 선생이 옥사하자 가족들의 고난이 시작됐다. 그의 가족들은 1915년 일제의 핍박에 못 이겨 만주로 떠났고 이들 중 4남인 허국 선생은(1971년 사망) 구 소련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 때문에 중앙아시아로 거처를 옮기던 중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게오르기씨와 블라디슬라프씨를 낳았다. 허 선생의 공훈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될 정도로 인정받았지만 그의 가족들은 오랫동안 ‘떠돌이’였다.1991년 키르기스스탄이 분리·독립하면서 키르기스인이나 러시아인도 아닌 ‘고려인’이었던 두 형제는 소수민족으로서 차별받았다. 이때부터 두 형제는 화물차 운전과 소작 농사 등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두 형제는 2003년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을 영상으로 담아 온 국내 모 다큐멘터리 업체 관계자와 만나면서 고국에 돌아올 길을 찾게 됐다. 이듬해 이 업체를 통해 관련 사실이 국가보훈처에 통보됐고 지난해 법무부가 취업비자를 발급해 주면서 두 형제는 한국 땅을 밟았다. 국내 모 의료기기 제조업체에 취직한 두 형제는 1년여 뒤 국가유공자 후손에게 자격이 주어지는 ‘특별귀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 자격을 얻게 됐다.두 형제는 “타국에서 서러운 시절을 겪었지만 한국은 언제나 자랑스러운 나라였다.”면서 “함께 온 자녀가 한국 문화를 배우며 커갈 수 있게 돼 참 만족스럽다.”고 기뻐했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씨티은행의 ‘반격’

    세계 최대 금융그룹인 씨티그룹의 한국시장 공략이 본격화되고 있다. 전세계 100여개국에서 금융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씨티그룹은 2004년 11월 한미은행을 인수, 한국씨티은행을 출범시켰지만 다른 나라에서와는 달리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극심한 노사갈등에다 전산통합도 이뤄지지 않아 시너지 효과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18일 오전 8시를 기해 옛 한미은행과 씨티은행 서울지점의 전산시스템이 완전 통합되면서 상황은 달라질 전망이다. 전산 통합 이전에는 2개 은행의 느슨한 연합체 정도였지만 통합 이후부터는 일사불란한 시장 대응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전산 통합으로 전국 15개 영업점에 불과했던 옛 씨티은행의 고객들은 250여개에 달하는 옛 한미은행 지점을, 옛 한미은행 고객들은 옛 씨티은행 지점을 이용할 수 있다. 6개월 동안 투자상품 판매 등을 거부하는 ‘태업’을 벌여왔던 한미노조가 지난 3월27일부터 태업을 풀면서 한국씨티은행의 영업력은 무서운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3월 3170억원에 그쳤던 투자상품 판매액은 4월에 7600억원으로 증가했다. 개인대출 신규액도 3월에는 890억원에 불과했지만 4월 이후부터는 매월 1700억원 이상씩 늘었다. 한국씨티은행은 국내 시중은행과 달리 금융감독원의 강력한 주택담보대출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대출 자산을 늘릴 여지가 많다. 미국 본사에서 저리의 자금을 거의 무한대로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특판예금, 주가지수연동예금과 같은 고금리 수신 상품 판매에서도 경쟁력이 높다. 한국씨티 노사는 최근 미국 본사를 찾아 씨티그룹 1인자인 척 프린스 회장과 소비자금융그룹 대표, 기업금융그룹 대표 등을 만났다. 한국 시장의 특성에 맞는 전략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노조측은 전했다. 프린스 회장은 지난달 30일 뉴욕 맨해튼 코리아타운에서 열린 씨티은행 ‘한인타운 금융센터’ 개소식에 이례적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이 센터는 씨티은행의 미국 내 특정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한 첫번째 영업점이다. 프린스 회장은 “한미은행 인수는 아주 잘한 것”이라면서 “그동안은 통합작업에 초점을 맞춰 왔으나 이제부터는 지점 수를 늘리는 등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정밀보도’가 필요한 이유/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월드컵과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로 나라 안팎이 떠들썩한 요즈음 그러나 필자가 가장 충격을 받은 서울신문의 기사는 ‘미 유학생의 절반이 마약경험이 있다.’는 증언을 한 한영호 목사의 인터뷰 기사다.‘마약퇴치의 날’을 맞아 서울신문이 이례적으로 6월26일 1면 머릿기사로 올려놓은 로스앤젤레스 한인 청소년 마약중독자 재활센터인 ‘나눔선교회’를 운영하는 한목사의 인터뷰는 그만큼 놀랍고 염려스럽다. 하긴 클린턴 전 대통령조차도 대학시절에 대마초를 ‘피우기는 하였지만, 들여마시지는 않았다.’고 할 정도이니 미국의 마약남용 문제가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은 짐작이 간다. 그렇더라도 유학생의 절반이 마약을 경험하고, 재미교포 2세는 70% 이상이 마약을 경험한다는 것은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행여 미국에 자녀를 보낸 기러기 부모라면 그러한 걱정과 염려는 필자가 느끼는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인터뷰 당사자의 상담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그러한 수치에 대한 정확한 소스를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인터뷰기사를 작성한 기자도 한 목사의 발언만을 인용하였고 다른 소스나 통계수치를 확인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우선 가장 최근 자료인 2005년 청소년과 대학생 이상을 대상으로 한 ‘미래를 모니터링한다(Monitoring the Future)’는 제목의 ‘전미마약복용실태조사’를 살펴보자. 우리의 고3에 해당하는 12학년 학생이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불법마약을 경험한 비율은 2005년도에 50.4%이다. 이 수치는 한목사가 언급한 ‘절반이상이 마약을 복용한 경험이 있다는 것’과 일견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12학년 학생 중 지난 1년간 마약을 복용한 학생의 비율은 38.4%이고 한 달 사이에 복용한 비율은 23.1%로 떨어진다. 비슷한 시점에 남자 대학생의 연간 마약경험률은 40.0%이고 여대생의 경우 이 비율은 35.3%이다. 한 목사가 활동하는 지역이 대도시인 로스앤젤레스라는 점을 고려할 수는 있으나 한국계 소수민족의 마약복용률이 백인이나 흑인의 평균 수준을 크게 상회한다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마약복용률은 여전히 심각할 정도로 높은 수치이기는 하지만 ‘미 유학생 절반 마약경험’이라는 제목과 ‘재미교포 청소년의 70% 이상이 마약 경험이 있다.’는 증언과는 차이가 난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주제에 관한 기사를 작성할 경우에는 설령 인터뷰 기사라 하더라도 정확한 사실의 확인과 전달이 원칙이다.LA지역의 재미교포나 유학생의 마약남용실태에 대한 좀더 정확한 데이터를 인용하기 위하여 현지의 대학교수나 주정부, 시정부의 담당자에게 확인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교회도 아이들이 마약을 접하는 대표적인 장소다.’는 기사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하여 현지의 교회관계자의 의견을 구했더라면 기사의 신빙성이 더했을 것이다.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탐사보도의 경우 동일한 사안을 복수의 취재원에게 확인하는 취재와 보도의 원칙을 지키고 정확한 자료를 인용하는 것은 필수적인 절차다. 인터넷시대에 신문 보도의 방향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깊이있게 파고 들어가는 탐사보도와 그러한 이슈에 대한 사회적 고발뿐 아니라 사회적 해결방안도 같이 제시하는 공공저널리즘(public journalism),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과학적인 방법과 데이터를 활용하여 이슈와 쟁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정밀보도, 이 세가지가 가장 중요한 길이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고교 평준화 이전과 이후의 고시출신 공직자의 분포에 대한 6월27일자 1면 머릿기사나 작년에 급식 식중독사고가 발생한 19개 학교의 사후조치를 파고 들어간 6월29일자 1면 기사는 기사 내용도 다른 매체에서 볼 수 없는 ‘특종감’으로 ‘탐사보도’와 ‘정밀보도’,‘공공저널리즘’의 세 가지 요소를 골고루 갖춘 보도라고 할 수 있다. 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 安의사 항일정신·발자취 ‘오롯이’

    安의사 항일정신·발자취 ‘오롯이’

    |하얼빈 이지운특파원|‘하얼빈에서의 열하루’1909년 10월22일 밤 9시부터 11월1일 오전 11시25분까지. 단 열하루만의 인연일 뿐이었지만,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그 의의도, 빛도 바래지 않고 ‘안중근 의사 기념 전시관’을 비롯한 하얼빈시에 남아 있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하얼빈역에 도착,10월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붙잡혀 다시 기차를 타고 다롄(大連) 뤼순(旅順) 감옥으로 이송되기까지의 시간이었다. 시 관계자는 4일 “안중근 의사와 그 열하루의 인연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전시관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이 전시관 앞에 놓인 안 의사의 흉상은 작지만 ‘큰 변화’를 담고 있다. 하얼빈시와 중국에서 안 의사를 기념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다. 지난해 이맘 때까지만 해도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조차 제대로 기념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외국인에 대한 기념과 상징물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이 있는 중앙정부의 정책 때문이었다. 중국-일본과의 외교 문제나 소수민족 정책상의 문제도 하나의 요인이었다.“‘안중근’을 거론하면,‘중앙정부의 허가 없이는 안된다.’며 먼저 손사래부터 치더라.”는 게 ‘안중근 의사 숭모회’ 등 관계자들의 전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을 연 전시관은 결국 중국 정부가 마련한 나름의 ‘타협안’인 것으로 여겨진다. 별도의 옥외 동상이나 기념관을 허가하지는 않되, 이번에 새로 시 조선족 민족예술관을 짓는 참에 그 안에서 기념전을 열도록 했다. 상황에 따라 항구적인 기념관이 될 수도 있고, 일시적인 기념전이 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하얼빈 기차역 2층에 마련된 ‘하얼빈역에서의 안중근’이란 제목의 전시회 역시 하얼빈의 ‘철도역사전시관’의 일부 행사로 설치된 것이다. 비록 간이시설처럼 보이긴 하지만 “앞으로 계속 전시할 것”이라는 장구이화(張桂華) 부시장의 말대로라면, 역시 상설 시설이 될 수도 있다. 하얼빈역 구내에 있는 안 의사의 의거 현장에 저격과 피격 지점이 각각 화살표와 네모 모양의 색깔이 다른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나, 아무런 안내판이 없는 것도 결국은 일본과의 외교문제를 의식한 조치로 여겨진다. 장구이화 부시장은 안내판 설치에 대해 “검토해 보겠다.”고만 답했다. 중국의 항일전쟁 영웅 리자오린(李兆麟·1910∼1946)의 이름을 딴 자오린 공원 안에는 안 의사의 친필을 새긴 유묵비도 세워졌다. j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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