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소수민족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분노 범죄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호미곶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지역문화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클린턴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864
  • [중국의 아킬레스건 티베트를 가다] 중국의 티베트, 티베트의 중국

    [중국의 아킬레스건 티베트를 가다] 중국의 티베트, 티베트의 중국

    라싸(拉薩)의 대표적 티베트 유적 포탈라궁 앞 광장에는 20여m 높이의 ‘해방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1950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이 봉건주의 농노 상태의 티베트인들을 평화적으로 해방시켰다는 기념물이다. 이 기념탑으로부터 20여m 앞에는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앞 광장과 마찬가지로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게양대가 설치돼 있다. ‘포탈라궁-베이징중로-국기게양대-해방기념탑’ 구도는 베이징 중심가의 ‘자금성(紫禁城)-창안(長安)대로-국기게양대-혁명열사기념탑’ 배치와 닮았다. 작은 베이징이 연상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티베트나 달라이 라마 문제만 거론되면 ‘핵심이익’에 대한 침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2008년말 중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달라이 라마를 면담하자 중국은 프랑스와의 모든 교류를 끊었다. 프랑스가 여러 차례 화해사절단을 보낸 뒤에야 중국은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다. 올 초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긴장된 이면에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달라이 라마 면담 등 티베트 문제가 끼어있다. 중국은 왜 이처럼 티베트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티베트 취재를 떠나기 전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 공산당 중앙통일전선공작부의 한 간부는 “오랫동안 서방 언론들은 티베트의 진실을 왜곡해 왔다.”며 “서방 언론의 티베트 보도와 중국인들의 티베트에 대한 생각은 너무나 다르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티베트의 독립을 원하는 중국인은 0.01%도 안되고, 중국인의 99.9%는 중앙정부의 소수민족 정책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 문제가 타이완, 남중국해 등과 함께 중국의 주권과 영토보존에 관한 ‘핵심이익’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티베트의 독립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티베트 제2도시인 시가체의 상하이실험학교 황융둥(黃永東) 교장도 이 같은 내용을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교육시키며 달라이 라마 등 분리주의 세력의 ‘반(反)애국적인 행동’의 실태를 여과없이 전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티베트인들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지에서 만난 티베트인들은 민감한 질문에 대부분 입을 닫았다. 오히려 중앙정부의 티베트 지원에 대한 기대감을 밝히는 현지인들이 많았다. 물론 취재진이 티베트인들을 만나는 현장에는 어김없이 현지의 사복 기관원들이 눈길을 번뜩이고 있었지만 대체로 현지인들은 그런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강경한 목소리는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 등 해외에서 나오고 있다. 1959년 라싸 봉기 이후 티베트인들을 이끌고 망명한 14세 달라이 라마는 75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해외활동을 통해 티베트 문제를 국제쟁점화하는데 진력하고 있다. 티베트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알리는데 주력하면서 망명정부에 대한 지지와 서방권의 대중국 압력행사를 호소하고 있다. 문제는 티베트 세력간에도 독립과 자치를 놓고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 달라이 라마 등 망명정부 인사들은 독립보다는 ‘고도자치’를 내세운다. 쓰촨, 윈난, 간쑤성 일부분과 칭하이성 등 중국이 쪼개놓은 옛 티베트 땅을 한데 묶어 티베트인들에 의한 자치를 허용하라는 것이다. 중국은 독립이 아닌 자치를 요구하는 달라이 라마에 대해서도 “종교를 가장해 조국을 분열시키려는 분리주의자”라고 힐난하고 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사회의 여론을 의식, 티베트 망명정부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양측의 대화는 서로간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오히려 중국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티베트의 안정에 더 큰 공을 들이고 있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자칭린(慶林) 주석은 7일 베이징에서 열린 티베트 관련 회의에서 “앞으로 일정기간 티베트와 4개 성(쓰촨, 윈난, 간쑤, 칭하이)의 티베트 지역 업무는 경계를 뛰어넘는 발전 및 지원과 사회질서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에 모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주요 2개국(G2)으로 커진 국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여론을 잠재우면서 균형발전을 통해 내부의 안정을 꾀해야 한다는 취지다. 베이징·라싸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중국의 아킬레스건 티베트를 가다] 티베트인-한족 고원지대 상권 갈등

    남초 호수 상가에서 간단한 음식과 음료수 등을 파는 구멍가게 주인 슝자화(熊家華·37)는 티베트와 접해 있는 쓰촨성 출신 한족이다. 10여년 동안 창(長)강 삼각주 지역인 저장성에서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일용직 노동자)으로 일해 번 돈으로 지난해 이곳에 가게를 열었다. 임차료는 연간 1만위안(약 180만원)이다. 추위 탓에 1년에 다섯달만 영업할 수 있지만 한달 평균 1만위안 이상을 번다고 한다. 임차료를 제외하고도 4만위안 이상을 번다는 얘기다. 슝자화는 “가게 문을 닫는 기간에는 고향에 돌아가 다른 일을 한다. 농민공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벌고 있다.”며 흡족해했다. 티베트에 대한 관광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수많은 한족이 몰려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통계는 없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티베트의 상주인구는 256만명에서 290만명으로 34만명 증가했다. 티베트인과 다른 소수민족이 95%를 차지한다는 통계만 있을 뿐 한족이 얼마나 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통계대로라면 한족은 5%, 14만 5000여명인 셈이다. 그럼에도 라싸 등 티베트의 도시에서 한족의 비중은 현지인인 티베트인을 압도하는 듯 했다. 왜, 그들은 해발 4000~5000m의 고원지대로, 숨쉬기조차 힘든 티베트 땅을 밟는 것일까. 역시 쓰촨성에서 왔다는 한 한족 안마사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해발이 높으면 임금도 높다.” 올 초 라싸(拉薩)를 거쳐 인구 10만명의 시가체(日喀則)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고향에서 일할 때보다 임금을 갑절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티베트인들의 불만은 높다. 지난 2008년 3·14 유혈시위 당시 티베트인들은 라싸의 한족 상인들을 표적으로 삼아 폭력을 휘둘렀다. 높은 수입을 찾아 티베트 고원을 찾는 한인들과 고향을 떠나기 힘든 티베트인들 사이의 갈등이 처음으로 표면화된 것이다. 중국 공산당 중앙통일전선공작부 야오마오천(姚茂臣) 부국장은 “모든 국가, 어떤 지역이든 문제는 있다.”면서도 “자유왕래는 국민의 권리”라며 한족의 자연스러운 티베트 유입을 막을 계획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라싸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칭짱철도 서부대개발 상징… 과실 놓고 민족불신 심화

    칭짱철도 서부대개발 상징… 과실 놓고 민족불신 심화

    지난달 29일 오후 3시40분 라싸(薩)역. 전날 오후 2시56분 칭하이성 성도 시닝(西寧)역을 출발한 K9801호 열차가 승객 800여명을 싣고 도착했다. 기차는 만 하루 동안 1972㎞를 달려 칭짱(靑藏) 철도의 종착역인 라싸에 승객들을 내려놓았다. 이미 24시간 이상 해발 3000~4000m의 고원지대를 달려와 적응이 됐는지 승객들에게서 고산증의 힘든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승객 800여명 가운데 순수 여행객은 250여명.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티베트 관광에 나선 젊은 배낭 여행객과 중장년 여행객들이 눈에 띄었다. 미국에서 왔다는 여행객 스티브는 “산시(陝西)성 시안(西安) 관광을 하고 시닝에서 기차를 탔다.”면서 “24시간 여행하는 동안 칭짱고원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고 흡족해했다. 2006년 여름 개통한 칭짱철도는 서부 대개발, 특히 티베트 개발의 상징적인 기반시설이다. 베이징과 상하이·광저우(廣州), 시닝·란저우(蘭州), 청두(成都)·충칭(重慶) 등에서 매일 네 차례 라싸행 기차가 출발한다. 하루 승객은 3000여명으로 이 가운데 1000여명은 국내외 여행객이다. 라싸역 왕둬지(王多吉) 부역장은 “지난 4년간 560만명이 칭짱철로를 이용해 라싸에 왔다.”면서 “칭짱철도는 티베트 관광객 확대의 보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철도만이 아니다. 해발 4718m에 자리해 ‘천국의 호수’로 불리는 라싸 주변의 유명 관광지 남초 호수를 비롯, 티베트 곳곳이 거미줄 같은 도로망으로 엮이고 있다. 티베트 중심도시 라싸에서 250여㎞ 떨어진 제2도시 시가체를 방문한 뒤 라싸로 돌아올 때는 다른 지방도로를 이용했다. 해발 4300m의 마라산(馬拉山) 저수지와 해발 5500m의 카로라 빙하 등 5000m를 넘나드는 고원 오지까지 왕복 2차선 도로가 깔끔하게 포장돼 있었다. 주변 빙하에서 녹아내린 물을 계곡 가득 담고 있는 마라산 저수지에는 수력발전 시설까지 갖춰졌다. 지난 1일에는 인도와의 접경지대인 최서부 아리(阿里) 지역에 티베트 내 네 번째 공항인 아리쿤사(昆沙)공항이 문을 열었다. 고산과 사막으로 뒤덮여 인구가 극히 적은 북서쪽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와의 접경지대를 빼고는 사실상 티베트 거의 전 지역이 거미줄 같은 교통망으로 엮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서부 대개발 10년의 성과를 얘기한다. ‘10·5’(2001~2005년)와 ‘11·5’(2006~2010년) 계획기간에 티베트에서 모두 300여개 항목의 사회간접자본(SOC) 시설 확충에 중점투자했다. SOC 투입자금만 1090억위안(약 19조원)에 이른다. 수력발전 위주의 에너지 기반시설도 대폭 확충해 1999년 80만명에 불과했던 에너지 혜택 주민 숫자가 지난해 말 현재 220만명 선으로 확대됐다. 전체 주민 290만명의 60% 이상이 전기 없는 불편에서 벗어난 셈이다. 농민 및 유목민 지원사업 덕택에 주민 소득도 크게 확대됐다. 1999년 1258위안에 불과했던 농민 및 유목민 1인당 연평균 순소득이 지난해에는 3532위안으로 10년 사이에 2.8배가 됐다. 도시주민 소득은 5998위안에서 1만 3544위안으로 증가했다. 중국 평균 소득에 근접하게 된 것이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서부 대개발 담당 위허쥔(于合軍) 부주임은 “동부 지역과의 격차를 줄이고, 민족단결을 꾀하는 한편 변경 지역 안정을 위해 서부 대개발을 진행했다.”면서 “지난 10년간 티베트를 포함한 서부 지역 성장률은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다.”고 자평했다. 그는 또 “티베트 등 서부 지역을 그대로 방치했을 경우 모든 국민이 비교적 안정되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는 샤오캉(小康)사회 건설의 장애물이 됐을 것”이라며 서부 대개발이 소수민족 등에 대한 ‘당근’ 차원의 정책임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실제 중국의 당과 정부는 올 초 2001년 이후 다섯 번째 티베트업무회의를 열어 티베트 관련 업무가 민족단결, 사회안정, 국가안전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티베트에는 아직 달라이 라마 그룹으로 대표되는 분리주의 세력과 각 민족 주민들 간의 모순이 존재하고 있다.”면서 “티베트에 대한 경계를 뛰어넘는 지원을 통해 티베트의 안정을 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싸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특파원 칼럼]정대세의 눈물 또 볼 것인가/이종락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정대세의 눈물 또 볼 것인가/이종락 도쿄특파원

    기자는 서울신문 2일 자 16면에 조선적(朝鮮籍)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를 취재하면서 남아공월드컵에서 북한팀으로 뛰었던 정대세 선수의 눈물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꿈에서 그리던 월드컵 무대에 올라 흘린 그의 눈물에는 한국인도, 북한인도, 일본인도 아닌 어정쩡한 처지에서 겪은 온갖 설움이 담겨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정 선수는 부친 정길부씨의 국적에 따라 자동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지니게 됐다. 그런데도 북한팀으로 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머니 리정금씨가 조선학교 교사였던 게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라는 게 조선적 동포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그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아이치 조선학교와 도쿄 조선대학교를 다니면서 북한 대표팀에서 뛰기를 원했다. 정 선수의 사례를 보면서 궁금해지는 게 있다. 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정 선수가 한 번이라도 한국학교를 가려고 생각하지 않았겠냐는 의문이다. 하지만 해답은 간단하다. 정 선수가 설령 한국학교를 가고 싶어했다 해도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가 살던 나고야에는 한국학교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 내 한국 학교는 도쿄 동경학교, 교토 국제학교, 오사카의 금강·건국학교 등 세 곳에 네 개교밖에 없다. 2029명이 재학 중이다.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각각 따로 셈을 해도 12개교에 불과하다. 반면 조총련이 운영하는 조선학교는 도쿄 조선대학교를 비롯, 일본 전역에 초·중·고 103개교를 두고 있다. 6000~7000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이처럼 큰 차이가 난 이유는 1945년 광복 이후 동포들이 같이 운영하던 조선학교가 조총련과 민단이 분리되면서 조총련으로 귀속됐기 때문이다. 한국학교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으로 건너온 ‘뉴 커머’ 숫자가 15만~16만명에 이르는 것을 감안할 때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실제로 2년 전 한국학교의 실태가 요미우리신문에 보도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국에서 온 아이들이 동경한국학교에 입학하려 했지만 결원이 나지 않아 인근에 있는 도야마 초등학교에 몰린다는 기사였다. 동경학교에 입학하려는 대기자가 150명에 이르고 1년이 지나야 입학이 가능해 이 학교를 선택해야만 했다. 전체 학생 800명 중 한국 학생이 180명에 이르렀는데 요즘도 사정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요식업을 주로 하는 한국인들이 대거 거주하는 스미타구 긴시초의 일본학교에도 한국 학생들이 많다. 필리핀, 방글라데시 학생들이 한국 학생들과 어울리다 보니 일본어 대신 한국어를 더 자주 사용해 교육청이 긴장하고 있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들린다. 일부 일본학교 내에도 민족학급이 있어 동포 학생들이 한글을 배울 수는 있다. 1990년 이후 소수민족에게도 자기 민족의 글을 쓸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는 유엔의 권고에 따라 생겼다. 하지만 특별활동부 형태로 운영돼 결국 일본교육에 동화되기 싶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동포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 한국학교를 집중적으로 세워야 한다. 동경학교가 위치한 신주쿠 이외에 도쿄 내 분교를 지어야 한다. 한국민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사이타마, 지바, 나고야, 후쿠오카에도 한국학교의 신설이 시급하다. 당장 100~200명이 다니는 소규모 학교라도 지어 동포 자녀들에게 한글교육을 시켜야 한다. 실제로 이들 지역에는 당장 한국 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학생들이 200명 이상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4개 한국학교에 대한 정부의 지원금은 3억 2950만엔(약 42억 800만원)이었다. 2008년의 5억 5420만엔보다 크게 줄었다. 한국에서 오던 파견교사들도 중단됐다. 이쯤 되면 한국어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도록 요구하는 게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 국적의 또 다른 선수가 북한 인공기를 가슴에 달고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교육부, 외교부와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할 시점이다. jrlee@seoul.co.kr
  •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내 이름은 야 인마… 툭하면 맞아도 꿈☆ 포기 못해”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내 이름은 야 인마… 툭하면 맞아도 꿈☆ 포기 못해”

    미얀마에서 온 마웅저(41)가 한국에서 얻은 첫 직장은 인천의 한 도색 공장. 하루 12시간 일하고 한 달에 50만원을 받았다. 한국인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야 인마.” 이게 공장에서 마웅저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결코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함께 일했던 미얀마 친구는 걸핏하면 사장에게 얻어맞았다. 7개월을 일했는데, 월급은 5개월치밖에 못 받았다. 이듬해 경기 부천의 구두 형틀 만드는 공장으로 옮겼지만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한번은 TV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동료가 채널을 돌렸다. “너 같은 건 우리나라 여자 쳐다볼 자격이 없어.” ●힘겨운 난민의 삶 2000년에는 정식으로 난민 신청을 했다. 법무부로부터 신문과 비슷한 인터뷰를 받았지만, 돌아온 것은 ‘불허한다’는 통지. 그것도 신청한 지 5년이 지나서였다. 법원은 다행히 마웅저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법무부는 계속 상소를 하며 ‘발목’을 잡았다. 결국 2008년 대법원에서 승소하면서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하늘의 별을 땄다.” 난민으로 인정된 직후 어떤 기분이 들었느냐고 묻자 마웅저는 이렇게 말했다. 방글라데시 소수민족 ‘줌머족’ 로넨(42)의 삶도 ‘코리안 드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택시를 탔다. 외국인인 걸 눈치챈 기사. “어디 가냐?” “5000원이다. 내놔.” 서른을 훌쩍 넘긴 로넨이었지만, 초등학생 대하듯 했다. 난민 인정에 인색한 정부 탓에 처음 몇 년간은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공장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지리아 선교사 빅토르(가명·46)는 우리나라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입국과 동시에 난민신청을 했지만 불허됐고, 1심 재판에서도 졌기 때문이다. 위협을 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찰이나 무슬림으로 추정되지만 입증할 방법이 없다. 8월 2심 재판이 열리지만, 결과가 바뀐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내 이름은 (나이지리아) TV에도 많이 나왔기 때문에 돌아가면 바로 들킨다. 한국 정부는 내가 죽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미얀마 출신 코와인(42)은 원래 변호사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공장 행을 면할 수 없었다. 사실 그는 일을 해서는 안 됐다. 난민 신청 기간 중에는 취업이 금지돼 있기 때문. 하지만 난민 신청을 한 지 4년이 지나도록 결과를 받지 못했다. “I need too much money for living expenses, so should I work.(생활비 때문에 일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코와인이 눈물을 흘리며 털어놓은 하소연이었다. ●‘꿈’을 안고 대한민국으로 왔지만 1988년 8월8일. 세계사에 ‘8888 버마민중항쟁’으로 기록된 날이다. 수도 양곤의 고등학생이었던 마웅저. ‘군부 독재 정권 물러나라’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갔다. 대학생 형, 스님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목 터져라 “민주주의”를 외쳤다. 항쟁은 서슬 퍼런 군부의 총부리에 밀려 실패했지만, 마웅저의 투쟁은 계속됐다. ‘버마전국학생연합(ABSFU)’에 가입해 ‘지하운동’을 했다. 탄압이 시작됐다. 생사를 함께하기로 결의했던 동료들은 하나 둘 경찰에 잡혀갔다. 이름을 바꾼 채 공사판을 전전해야 했다. 어머니와 다름없던 누나가 마웅저를 부른 것은 1992년. “망명해라.” “여권도 비자도 없는데….” “브로커를 쓰자. 돈은 내가 댈게.” 누나는 푼푼이 모았던 21만차트(Kyat·미얀마 화폐단위)를 내놓았다.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350만원쯤 된다. 큰돈이다. 마웅저는 대한민국을 골랐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 8888항쟁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마음이 끌렸다. 2년 뒤 마웅저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이 미얀마 민주화를 도울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줌머족’ 로넨은 ‘인종 청소’를 하는 정부에 맞서 무장단체에서 활동했다. 산악지대인 치타공에서 종족의 생존을 걸고 싸우다 체포됐다. 3년간 옥살이를 하고 마을로 돌아왔지만, 탄압은 더 심해졌다. 마을에는 1㎞마다 하나씩 검문소가 들어섰다. 대원들은 지나가던 사람들을 ‘심심하면’ 때렸다. 1999년에는 대규모 약탈과 방화가 있었고, 여성들이 집단으로 성폭행당하기도 했다. 로넨은 이듬해 고향을 떠났다. 한 살배기 아들을 품에 안은 채 한국으로 왔다. 한국인이 같은 몽골계고, 불교신자가 많다는 점에 끌렸다. 경제·사회적으로 발전한 중견국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전사(戰士)’가 아닌 ‘시민(市民)’으로 살 수 있다는 꿈이 가슴을 매웠다. 빅토르는 나이지리아 ‘오순절협회(PEN)라는 곳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강연에 나가 나이지리아의 부패한 경찰을 강하게 비난했다. 낯선 남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하고 있는 일 그만둬라.” “누구냐?”고 물으면 끊었다. 험악한 인상을 한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와 가족을 위협했다. 운전기사가 괴한에게 폭행당하고 차를 빼앗기기도 했다. 그는 2005년 한국에 왔다. 처음에는 미국을 생각했지만, 총이 없는 한국을 선택했다. 기독교도가 많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난민으로 인정받으면 가족들도 불러 ‘제2의 삶’을 꾸릴 계획이었다. ●여전히 꿈 키우는 난민들 그러나 난민들은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먹고살려는 게 아닌 신념과 양심, 존엄을 지키기 위해 온 것인 만큼, 다양한 활동을 하며 꿈을 키워가고 있다. 마웅저는 1998년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끌고 있는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를 만들었다. 미얀마 대사관 앞으로 가 시위를 하고, 틈 날 때마다 길거리로 나가 우리나라 사람에게 미얀마의 실상을 알리고 있다. 2004년부터는 우리나라 시민단체에서 활동했고, 다음달에는 자신이 직접 단체를 만들 예정이다. 단체명은 ‘버마민주화를 돕는 단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한국인 동료 100여명이 함께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코와인은 2003년 인천에 작은 미얀마 불교 사찰을 세웠고, NLD 회원들과 민주화운동에 쓸 자금을 모으고 있다. 국내 이주노동자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매주 화요일에는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주한미얀마 소수민족 연합회’ 회장이기도 하다. 한때 대사관이 그를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했다는 트집을 잡아 검찰에 고발했지만,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카카나(27·여)는 얼마 전부터 일요일에는 출근하지 않는다. 공장에서 나오라고 해도 “절대 안 된다.”며 버틴다. 일요일만큼은 ‘재한줌머인연대’ 사무실에 나가 한국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말을 어느 정도 익히면 미용기술을 배울 계획이다. 빅토르는 한남동의 한 교회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강제 송환을 당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할 것이다. 동생이 정치 운동을 하는 바람에 연좌제에 걸려 2005년 한국에 온 쇼네(가명·40·토고)는 8월 둘째를 낳는다. 병원비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최근 난민에게도 의료 혜택을 확대하는 정책을 발표해 시름을 놓았다. 새로 태어날 아이는 한국을 보고 느끼며 자랄 것이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신청자 취업허가 되레 난민 불인정자 양산

    2006년 국내에 입국한 미얀마인 아하일(가명·30)은 석달 전 한국생활을 접었다. 소수민족 갈등으로 미얀마를 탈출해 태국과 말레이시아를 거쳐 한국으로 들어와 난민신청을 했으나 불인정돼 고충이 무척 컸다고 지인이 전했다. 아하일은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해 행정소송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경험도 없고 변호사 등 도움의 손길을 찾지 못해 결국 3월 태국으로 건너가 난민 신청을 했다. 나이지리아 선교사 빅토르는 법무부 난민심사와 행정소송에서 모두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처분을 받았다. 그는 “내 뜻이 (공무원이나 판사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정부가 최근 법 개정 등을 통해 난민의 처우 개선에 힘쓰고 있지만, 난민들이 느끼는 체감 지수는 높지 않은 편이다. ‘법 따로, 현실 따로’라는 게 오히려 맞다. 법무부는 지난해 출입국관리법을 개정, 난민 신청을 한 지 1년이 지난 사람은 난민 인정·불인정 여부가 결정되지 않더라도 취업을 허가하고 있다. 난민 신청자들이 최소한의 삶을 꾸릴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 출입국관리법을 손본 이유였다. 하지만 법 개정은 난민 불인정자를 양산하는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법무부는 지난해 무려 1000건 이상의 난민 신청을 처리했다. 이 가운데 994명에게 불인정 처분을 내렸다. 평년보다 10배 이상 많다. 황필교 변호사는 “난민 신청자에게는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임에도 담당 공무원은 1~2시간 만에 ‘뚝딱’ 처리하고 있다.”면서 “외국처럼 ‘난민법’을 만들고 심사위원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은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소송 기간 중에는 취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도 난민에게는 독소조항이다. 법의 도움을 받고 싶어도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끊기기 때문에 소송을 내는 것이 여의치 않은 것이다. 정부가 2012년 개청을 목표로 인천 영종도에 짓고 있는 난민촌(난민지원센터)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센터 주변에 한국인이 거의 없어 오히려 난민과 한국사회의 교류를 막는 장벽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최악 치닫는 키르기스 민족분규

    최악 치닫는 키르기스 민족분규

    키르기스스탄 남부 지역의 민족 간 유혈 충돌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과도정부가 오시에 이어 13일(현지시간) 인근 잘랄라바드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러시아가 키르기스 내 자국 공군 기지에 공수 부대를 추가로 보내면서 미국과 러시아 간의 긴장도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폭도들 경찰서 장악 무기탈취 오시에서 지난 10일 시작된 민족 분규는 인근 지역으로 확대됐다. 잘랄라바드에 살고 있는 세르게이 김은 AFP 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거리에서 총성이 계속 울리고 있다.”고 말했고 또 다른 시민은 시내 곳곳의 건물들이 불타고 있다고 전했다. 폭도들은 경찰서를 장악하고 지역 군부대에서 장갑차와 무기류를 탈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르기스 정부와 군 발표를 종합하면 지금까지 최소 116명이 숨지고 1247명이 다쳤다. 여기에는 잘랄라바드의 수자크 마을에서 사망한 우즈베크계 주민 30명이 포함돼 있다. 이런 가운데 파키스탄 학생 1명이 살해됐으며 15명이 인질로 잡혀 있다고 파키스탄 외무부가 밝힘에 따라 이번 사태는 키르기스 내부 문제를 넘어서게 됐다. 여성과 어린이 등 수천명의 우즈베크 소수민족이 총격을 받으며 국경으로 피신했고, 국경으로 향하는 길에는 어린이들의 주검 등이 나뒹굴고 있다고 AP통신 등 외신은 전했다. 우즈베크 정부는 지금까지 7만 5000명이 국경을 넘어왔다고 밝혔다. 사태가 확산되자 키르기스 과도정부는 이날 오시와 인근 카라수, 아라반 지역에 통행금지 조치를 내리는 한편 잘랄라바드 등지에 비상사태를 선포, 예비군을 동원하고 특수부대원들을 급파했다. 또 정부군과 경찰에 필요할 경우 폭도를 사살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로자 오툰바예바 키르기스 과도정부 대통령은 축출된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전 대통령의 세력들이 27일 실시될 새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오시에서 이번 소요를 부추겼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하지만 바키예프 전 대통령은 배후설에 대해 “파렴치한 거짓말”이라고 부인했다. 지난 11일 오툰바예바 대통령의 군사 지원 요청을 거절한 러시아가 이날 키르기스 주재 러시아 공군기지의 보안 강화를 위해 낙하산부대 1개 대대를 추가로 파견했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이 보도했다. 키르기스 칸트에 있는 러시아 공군기지는 수도 비슈케크에서 20㎞ 떨어져 있으며 미군 기지와는 30㎞ 거리에 있다. 앞서 미 국방부는 키르기스 과도정부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은 바 없다며 추가 언급을 자제했으나 시위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미국·러시아 긴장 고조 미·러 간 각축은 지난 4월 친미 성향의 바키예프 전 대통령을 유혈시위로 몰아낸 뒤 집권한 오툰바예바 과도정부 대통령이 ‘러시아 접근 카드’를 흔들면서 두드러지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마나스 공군기지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물류 수송 등 전략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CJ오쇼핑, 베트남 어린이 돕기 “신입사원 나선다”

    CJ오쇼핑, 베트남 어린이 돕기 “신입사원 나선다”

    CJ오쇼핑 신입 사원들은 어려운 환경과 교육을 받지 못하는 베트남 소수민족 어린이 돕기에 나선다.CJ오쇼핑은 오는 11일 오전 10시부터 아름다운가게(안국점)에서 ‘베트남 소수민족 아동지원을 위한 아름다운 하루’ 행사를 열고 재고 상품 장터 등을 통한 행사 수익금을 베트남 소수민족 어린이 지원을 위해 기부한다.아름다운 재단과 진행하는 이번 행사는 2009년 입사한 CJ오쇼핑 신입사원들이 봉사자로 참여해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나눔의 장(場)’이 될 것으로 보인다. CJ오쇼핑은 이번 행사를 위해 1,800여 점, 약 1억 원 상당의 물품을 기부했으며 패션, 이미용, 가전, 주방용품, 생활용품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상품들을 약 50~7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할 예정이다.CJ오쇼핑 이해선 대표는 “신입 입사자를 대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의식을 배우면서 나눔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며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베트남 어린이들을 돕고 알뜰 쇼핑을 할 수 있는 기회로 고객님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서울신문NTN 이규하 기자 jud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주말 데이트] 한·중 작가회의 참석 티베트 출신 중국 소설가 아라이

    [주말 데이트] 한·중 작가회의 참석 티베트 출신 중국 소설가 아라이

    “문학의 다양성이 있을 뿐이죠. 중국 문학에서는 물론 세계 문학을 바라볼 때도 중심과 주변의 개념으로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되네요.” 서북부 변방인 티베트 출신이면서 중국 문단 중심에서 활동하는 소설가 아라이(阿來·51)의 대답은 질문이 머쓱해질 정도로 ‘원칙적’이었다. 제4회 한·중 작가회의의 막이 오른 지난 24일 서울 장충동 그랜드 앰배서더 호텔에서 아라이를 만났다. 한국을 처음 와 봤다는 그는 “전체적으로 깨끗한 느낌”이라고 첫인상을 밝혔다. 굳이 중국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때마침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주룩거려 한결 차분하고 정갈한 느낌이 들었다.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주최로 24~25일 열린 한·중 작가회의에는 그를 포함한 중국 문인 18명과 소설가 김주영, 하성란, 천운영 등 한국 문인 20명이 참가해 ‘과거와 현재, 문학과 전통’을 주제로 서로의 작품을 낭독하고 토론했다. ●마오둔 상 받은 ‘색에 물들다’가 대표작 쓰촨성(四川省) 작가협회 주석을 맡고 있는 그는 써 내는 작품마다 티베트의 전통적 가치와 문화, 풍습 등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그곳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오롯하게 드러낸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중국 최고 권위 문학상인 마오둔(茅盾) 문학상을 안겨 준 ‘색에 물들다’(원제 塵埃定) 얘기가 나오자 “지역을 가리지 않고 200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얻었다.”고 자랑스레 얘기한다. 조심스럽지만 원칙을 강조하는 말투 속에 자신감이 물씬 배어 나오는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또한 아름다운 문체와 흥미진진한 서사, 티베트에 대한 핍진한 묘사 등으로 중국을 넘어 외국 문단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으니 당연할 수도 있는 반응이겠다. 그러나 그 역시 베이징, 상하이 등지가 아닌 곳에서 활동하는 주변부 작가들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라이는 “티베트뿐 아니라 중국 내 소수민족 작가들이 자신의 언어가 아닌 표준어(베이징어)로 자신들의 풍속과 생활을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아프리카, 남미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 또는 스페인어로 어떻게 창작활동을 펼치는지 자주 들여다보곤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중 작가회의에서 그가 기조 발표한 주제도 ‘중국어로 다원적 문화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였다. 같은 맥락에서 문학의 다양성 존중과 멸실되어 가는 전통 가치의 보존 등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가 한국과 문학 교류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 역시 명확하다. ●전통과 근대 가치충돌 중국도 비슷 그는 “한국은 중국보다 20년 남짓 빨리 급격한 산업화, 문명화를 가졌고 그 여파로 나타나는 농촌 황폐화, 인간 소외 등 전통과 근대가치의 충돌을 겪었다. 중국도 지금 비슷한 내홍을 겪고 있는 만큼 한국이 이를 문학작품 속에 어떻게 녹여내 왔는지 배우고 싶다.”며 한국 문학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아라이는 “한국과 중국은 근대사 속에서 비슷한 피해를 공유하고 있고, 문화적으로도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문학이 중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3~4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대중 통속 문화의 소개가 대부분이었다.”면서 “한국의 좋은 문학 작품들이 더 많이 소개되고 중국에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내년 제5차 한·중 작가회의는 중국 시안(西安)에서 열린다. 그가 진짜 원하는 것은 작가들만의 교류가 아닌, 한국과 중국의 보통 사람들이 상대를 더욱 잘 알 수 있는 문화적 교류 확대다. “경제적 이해 관계에 따른 교류보다는 문학을 놓고 양국 독자들의 앎과 이해가 넓어지는 것이 더욱 의미있지 않을까요.” 인터뷰 마지막까지 진지함 속에서 원칙을 놓지 않는다. 그의 문학이 품은 옹골진 힘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미디어 통해 한인사회 영향력 늘리고 싶어”

    “미디어 통해 한인사회 영향력 늘리고 싶어”

    │로스앤젤레스 홍지민특파원│“미디어를 통해 미국 내 주류사회에 대한 한인 커뮤니티의 영향력을 늘리고 싶습니다.” 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에서 만난 tvK 대표이사 에릭 윤(48)씨는 “미국 정치에는 3M(Message·Money·Media Power)이 존재한다.”면서 “한인 사회의 정치력 향상을 위한 미디어 파워를 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개국 5년… 2개 채널 24시간 방송 tvK는 미국 케이블TV 방송계의 대표적인 한인 방송이다. 개국한 지 5년 밖에 안됐지만 한인 방송 가운데 최초로 24시간 방송을 하고 있다. 한인 1세대를 겨냥한 뉴스·드라마·스포츠 위주의 tvK1과 1.5세대와 2세대 등 젊은 층을 겨냥한 영화·오락·뮤직비디오 위주의 tvK2 등 2개 채널을 꾸리고 있다. 보도국을 두고 현지 뉴스를 하루 2시간 안팎 내보내는 등 미국 주류사회를 향한 한인사회 목소리도 낸다. 미국 최대 케이블TV방송사인 컴캐스트가 tvK의 2대 주주(지분율 25%)다. 윤씨는 중학교 2학년 때 부모 손을 잡고 태평양을 건넜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뒤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땄다. 메릴린치 등 여러 금융회사에서 일했던 그는 인수 합병 업무를 통해 미디어 분야를 접했다가 직접 뛰어들었고, 소수민족 방송의 유통에 관심이 있는 회사의 투자 제의를 받으며 사업을 본격화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 있어도 유통망이 없으면 소비자에게 전달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5년 동안 케이블 망 확보에 몰두했다. 그 결과 5월 현재 17개주에서 1100만 시청자를 확보한 상태다. 1500만 이상 확보가 올해 목표. ●17개주 시청자 1100만명 확보 윤씨는 “1000만명대는 한국을 알리는 국가 브랜드 사업도 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서 “한국 중소기업들의 미국 진출에 징검다리를 놓을 수 있는 홈쇼핑 채널 론칭에도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윤씨는 한국에서 종합편성채널(종편)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보도 기능이 있어 광고 수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 시장을 보면 디즈니의 스포츠 오락 채널 ESPN이 종편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것. 시청자, 즉 소비자는 결국 질 좋은 콘텐츠를 선택하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미디어가 글로벌 미디어로 성장하기 위한 조언도 곁들였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제휴에 나서는 등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글 사진 icarus@seoul.co.kr
  • [新 차이나 리포트] 중국의 급부상, 위협이 될 것인가

    중국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빠른 속도로 부상하고 있다. 연구기관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명목 국내총생산(GDP)으로는 2030년대, 구매력지수(PPP) 기준으로는 2020년 무렵이면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측된다. 경제력에 있어서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이다.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1989년 이후 매년 두 자릿수의 백분율로 국방예산을 증액하는 등 그 어느 나라보다 군사력 증강에 힘쓰고 있다. 이를 두고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은 중국이 경제대국에 이어 군사대국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해석한다.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중국이 향후 주변국에 위협이 될 것인지, 미국을 능가하는 또 하나의 패권국가가 될 것인지에 대해 전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에 대한 중국 측의 시각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능력도, 의지도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경제력은 규모면에서 커 보이는 것으로 실제 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는 아직 4000달러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내부적으로 소수민족 문제, 빈부격차, 간부부패 등 다양한 사회 불안정 요인을 안고 있을 뿐 아니라, 에너지 부족이나 정체된 농촌 사회 등과 같이 지속성장을 어렵게 하는 문제들도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종합국력’면에서 중국은 아직 한참 열세에 있다는 논리이다. 중국의 지도자들도 기회 있을 때마다 국제사회를 향해 중국이 결코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에서는 끊임없이 중국을 의심의 눈으로 보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중국의 발언권이 커지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적 가치와 규범이 널리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은 현재 전 세계 약 400곳에 공자학원을 설립, 중국어 및 중국문화 보급에 진력하고 있다. 또한 일당지배체제의 유지와 고도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한 ‘중국식 발전모델’(中國模式)은 이를 추종하고자 하는 일부 중남미 및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과의 협력증진의 주요 자산으로 활용된다. 지구 환경, 에너지, 인권 등의 측면에서도 중국은 미국과 다른 전략적 입장과 가치관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기존의 다극화 전략 추구에 이어 최근 조화세계(和諧世界)의 건설을 부쩍 강조하는 것도 미국 중심의 구도를 타파하고 국제질서의 ‘새판 짜기’ 행보에 나선 것이 아닌지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주변국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같은 이런 강대국의 입장과는 달리 중국의 강한 민족주의를 우려하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이룩한 성과는 지식인을 포함해 대부분의 중국 인민들로 하여금 현 체제와 공산당 통치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했다. 이런 높은 체제만족도를 바탕으로 중국인들은 아편전쟁 이후 가장 강한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이런 자긍심이 중화민족주의의 정서와 혼합되어 자칫 공세적 대외 행태로 나타난다면 주변 국가들과 큰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의 부상이 자국의 대내단결과 체제안정을 도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중국 정부가 보다 고민해야 한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동아시아 시대의 개막을 반기는 역내국가들이 중국의 그런 노력 여하를 지켜보고 있다. 전성흥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글로벌 나눔 바이러스 2010]교육 사각 탐디마을에 ‘베트남의 꿈’ 심는다

    [글로벌 나눔 바이러스 2010]교육 사각 탐디마을에 ‘베트남의 꿈’ 심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씨앗은 나눔’ 사회공헌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국내 기업들도 글로벌 나눔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교육환경이 열악한 베트남 농촌 지역에 학교(일명 ‘롯데스쿨’)를 세워주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22일 열린 제2호 롯데스쿨 기공식 현장은 베트남 꿈나무들이 피워내는 배움에 대한 열의로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하노이 강아연특파원│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자동차로 2시간 가까이 달렸을까. 박장에 있는 탐디마을 초등학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2일 오전에 열린 제2호 롯데스쿨 기공식 현장에는 학생과 교사, 주민 등 200여명이 일찌감치 나와 행사장에 앉아 있었다. 행사장이라고 해야 임시로 세운 낡은 천막이다. 뒤로 신축 학교가 들어설 부지가 보였다. 교실이 부족한 탐디 초등학교를 위해 롯데백화점은 이곳 본교 옆 부지에 별도로 교실 8개짜리 2층 건물을 지어주기로 했다. 능 꾸억뜨룽 탐디 초등학교 교장은 “애를 써주신 많은 한국인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면서 “탐디마을은 소외된 지역인데 이렇게 학교를 새로 지어주니 어떻게 감사를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감회를 밝혔다. 주 투이안 탐디 초등학교 학생회장도 “교실이 너무 좁고 더운 데다 비까지 새는데 새 교실이 생기게 돼 기분이 너무 좋다.”며 “열심히 공부해 대학까지 마치면 우리가 뜻을 이어 마을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기공식이 시작되자 탐디 초등학교 아이들이 조촐하게 준비한 공연을 펼쳤다. 의상이나 무대장식이 화려하진 않았지만, 정성껏 준비한 노래와 춤에서는 새 학교에 대한 기대와 흥분이 묻어났다. 응우옌 테빈 인민위원회 서기장, 응우옌 흐으단 탐디마을 회장, 응우옌 쫑잡 탐디마을 부회장, 시공사인 국제건설주식회사의 레 꾸잉안 사장 등 지역 인사들도 한결같이 기쁨에 들뜬 모습이었다. 전교생이 376명뿐인 탐디 초등학교는 모두 19개의 교실이 필요하지만 현재 3개밖에 없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격일로 3부제 수업을 받고 있다. 더욱이 학교 주변에는 교육에서 소외된 소수민족이 많은데, 내년 1월 신축학교가 문을 열면 그들까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밖에도 운동장을 정비하고 울타리도 치는 등 다양한 시설과 기자재가 들어선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9월 베트남에 처음으로 롯데스쿨을 열었다. 광아이에 있는 손 키 중학교가 제1호 롯데스쿨이다. 롯데백화점은 2008년 김중만 사진작가의 ‘에비뉴엘 고객사진전’ 등 자선캠페인을 진행해 모은 수익금 전액을 플랜인터내셔널 한국지부인 플랜코리아에 기증해 학교 설립을 지원했다. 올해도 ‘사진작가 조세현 고객사진전(4월2~7일)’ 등 자선행사를 통해 2호 롯데스쿨 건립기금을 마련했다. 영국에 본사를 둔 플랜인터내셔널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협의기구인 비영리단체(NPO) 국제아동후원기구로 제3세계 및 빈곤 국가의 어린이들을 결연·지역개발 등의 방식으로 돕고 있다. 박제홍 플랜코리아 마케팅 부장은 “한국도 1953년부터 1979년까지 26년간 플랜의 후원을 받아오다가 1996년 세계 최초로 수혜국에서 후원국으로 자격을 전환했다.”며 “베트남은 스스로 발전하려는 욕구가 강한 동시에 잘 유지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어서 도움을 주려는 나라가 많다.”고 말했다. 응우옌 반뉴언 플랜베트남 박장사무소 소장은 “베트남 어린이들은 의료 및 교육, 위생 등에서 아직까지 취약하다.”며 “현재 한국 등 17개국에서 원조를 받아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기공식을 마칠 때쯤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희망에 고무된 모습이었다. 탐디 초등학교 관계자들은 “베트남의 발전을 위해서는 교육 원조를 받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며 “학생들이 학업성취도를 높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바로 기성 세대들의 몫”이라고 입을 모았다. arete@seoul.co.kr
  • [글로벌 나눔 바이러스 2010] “우기때 결석하는 학생 많이 줄었어요”

    [글로벌 나눔 바이러스 2010] “우기때 결석하는 학생 많이 줄었어요”

    │하노이 강아연특파원│지난 22일 탐디마을 초등학교 기공식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눈에 띄었다. 제1호 롯데스쿨인 손 키 중학교의 응우옌 반번(33) 교장과 4학년생 딩 반중(15), 딩 반고이(15)가 2호 롯데스쿨의 탄생을 축하하려고 반갑게 찾아온 것이다. 이들은 “베트남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롯데와 플랜이 계속 도와주는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정중히 인사했다. 하노이 광아이에 있는 손 키 중학교는 롯데백화점의 도움으로 학교 건물을 새로 단장하고 기숙사도 갖추게 됐다. 2008년 5월부터 1년 3개월간 공사를 거쳐 지난해 9월 리뉴얼 오픈식을 가졌다. 롯데는 공사를 위해 플랜코리아를 통해 1억 3000만원가량을 지원했다. 마을에서 유일한 이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공사 전까지 낡은 건물에서 공부하느라 큰 불편을 겪었다. 학교가 집에서 멀거나 9~10월 우기 때에는 학교에 오지 못하는 학생들이 70~100명이나 된다고 한다. 기숙사가 이런 불편을 덜어 준 셈이다. 리뉴얼 이전에 309명이던 손 키 중학교의 전교생은 이제 410명으로 100여명이나 늘었다. 응우옌 반번 교장은 “학교 리뉴얼 및 기숙사 신축으로 교육의 질이 향상됐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학생들이 배움의 혜택을 받게 됐다.”고 강조했다. 현재 기숙사에는 12~15세 학생 76명이 입소해 있다. 딩 반고이와 딩 반중 역시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다. 각각 10㎞와 15㎞ 거리에서 통학을 했던 이들은 거리가 먼 데다 비라도 올라치면 길이 험해 학교를 쉬어야만 했다. 딩 반중은 등굣길에 산이 많아 학교까지 오는데 무려 4시간을 걸어야 했단다. 딩 반중은 “일주일에 잘하면 네 번 듣던 수업을 이제 여섯 번이나 들을 수 있다.”며 “깨끗한 화장실도 생겨서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장래 희망이 의사인 딩 반고이는 “매일 공부를 하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너무 좋다.”며 웃었다. 소수민족 학생들은 베트남 주류 민족의 학생들과 함께 기숙하는 생활에 익숙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응우옌 반번 교장은 “학업에 대한 열의로 소수민족 학생들이 힘든 과정을 잘 이겨나가고 있다.”며 “그들이 다른 학생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더욱 신경을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arete@seoul.co.kr
  • 쿠르드인 인권보호 위해 뛰는 평화운동가 한상진씨

    쿠르드인 인권보호 위해 뛰는 평화운동가 한상진씨

    “터키 남부 한 식당에서 아랍어로 대화하던 아랍계 터키인 손님들이 집단구타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이들이 쿠르드어로 떠든다는게 이유였습니다. 일제시대 우리 조상들이 당했던 일들을 지금 터키에서 쿠르드인들이 겪고 있습니다.” 터키 동부 디야르바키르에서 6년째 쿠르드인 거주지역에서 활동하다 19일 임시 귀국한 한상진(44)씨. 지난 2003년 이라크 파병 논란 당시부터 현지에서 평화운동에 매진해온 그는 2004년 이라크 입국이 금지되자 터키 접경지역에서 이라크에 들어갈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하지만 이내 쿠르드의 매력에 빠져 눌러앉았다. ●터키 동·남부에 쿠르드 1500만명 거주 쿠르드는 독자적인 국가를 갖지 못한 세계 최대 규모의 소수민족이다.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 4개국에 걸쳐 인구가 3000만명에 이르고 그 중 터키 동부와 남부에 1500만명 가량이 거주한다. 한씨는 터키와 쿠르드의 관계에 대해 대뜸 “터키 전체 상황은 80년대 군사독재 시절과 비슷하다.”면서 “거기에 일제 강점기 시절을 덧붙여 놓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터키 정부는 쿠르드 문화를 말살하고 언어사용을 금지했지만 유럽연합 가입을 위해 최근엔 언어사용을 일부 허용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문화통치’가 생각난다.”고 꼬집기도 했다. “터키 서부 한 호텔에서 일하는 쿠르드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영어를 아주 잘합니다. 호텔에 묵던 한 터키 상류층 인사한테 초대를 받았는데 쿠르드 출신이란 걸 알게 되자 대뜸 ‘쿠르드 사람이 어떻게 포크와 나이프를 쓸 줄 아느냐, 쿠르드 사람이 어떻게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어 보더랍니다. 그 이후로는 얼굴을 마주쳐도 그 친구를 철저히 외면했답니다.” 한씨는 “국가주의와 군사주의 성향이 강한 터키 교육 제도가 쿠르드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터키 교육제도가 쿠르드 차별 강화” 과거 나치 정권이 유대인과 프리메이슨, 집시를 희생양 삼았듯 터키 교육은 쿠르드를 희생양 삼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몇 해 전 터키에서 한국인 관광가이드가 쿠르디스탄(쿠르드인들의 땅)이라는 말을 썼다가 동료 터키인 가이드한테 그자리에서 폭행을 당한 일이 있다.”며 쿠르드에 대한 터키인들의 과민반응을 소개하기도 했다. 터키 정치에 직접 연계된 활동을 하면 추방당할 수 있다. 한씨가 선택한 방법은 쿠르드어 보호활동을 매개로 국제사회에 쿠르드의 현실을 알리는 것. 한씨는 수준급 쿠르드어 실력을 자랑한다. 유럽 평화단체들과 연대한 인권탄압 감시활동도 사안이 생길 때마다 적극 참여한다. 한씨는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터키는 워낙 인플레이션이 심하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이 만만찮다.”면서 “나뿐만 아니라 제대로 일하는 후배 평화운동가들이 금전적 어려움 때문에 활동을 접는 일이 없도록 기금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동상을 ‘성추행’하는 20대 남성 논란

    아무리 동상이라지만… 최근 중국의 인터넷 게시판에 여성 모습의 동상을 ‘성추행’하는 남성들의 사진이 올라와 논란이 일고 있다. 게시판에 올라온 수 장의 사진은 전통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소수민족 여성을 표현한 동상의 ‘주요‘부위에 손을 올리거나, 성추행 하는 듯 한 젊은 남성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20대로 추정되는 이 남성들은 동상의 가슴과 엉덩이에 손을 댄 채 즐거운 표정을 하거나,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 제스처를 취해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사진은 또 기타를 치는 여성의 모습을 본 딴 동상 뿐 아니라 어린 여자아이 동상에 ‘몹쓸짓’을 저지르면서도 부끄러움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표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진을 찍은 장소는 광둥성 광저우시의 한 공원으로 알려졌으며, 이를 본 네티즌들의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초로 게시판에 사진을 올린 네티즌은 “수 천 년의 문명을 지닌 중국인이 이렇게 몰지각한 짓을 저질렀다.”며 쓴소리를 냈고, “여러 사람이 함께 즐겨야 하는 예술품을 모독했다.”, “인격이 의심된다.”, “누워서 침을 뱉은 격” 등 비난이 잇따랐다. ”그저 장난일 뿐”이라고 청년들을 옹호하는 발언도 일부 있으나, 예술을 감상하는 지적수준이 심각하게 낮다고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티베트 분리독립 갈등… 당사자별 의미는

    티베트 분리독립 갈등… 당사자별 의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면담하자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왜 미국은 중국과 갈등을 겪는 미묘한 시점에 달라이 라마를 면담하는 것일까. 중국은 왜 그토록 격렬하게 항의하는 것일까. 티베트와 미국, 중국을 둘러싼 정치·경제·안보 맥락을 알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中, 분리독립 도미노 우려 초강경 정치적으로 티베트는 중국에게 아킬레스건이다. 중국은 티베트가 분리독립할 경우 곧바로 신장 위구르자치구와 내몽골자치구로 분리독립 도미노현상이 발생할까 우려한다. 이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전통적으로 ‘분리주의’에 초강경 입장을 고수해 왔다. 후진타오 국가주석만해도 1989년 직접 철모를 쓰고 선두에서 티베트 시위대를 무력진압한 전력이 있다. 그가 권력을 장악할 당시 영국의 BBC는 ‘중국 고위 관료에 오를 수 있는 8계명’을 소개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당에 대한 반동행위는 치명적’이라면서 소수민족분리주의는 금기라고 꼬집기도 했다. CNN은 중국 관리들은 달라이 라마가 독립을 추구함으로써 중국을 파괴하려 한다며 그를 “승복을 입은 늑대”로 폄하한다고 18일 보도했다. 가오 이 베이징대 역사학과 교수는 “중국이 티베트에 관용을 베풀 수 없는 이유는 국가적 통합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라면서 “그들이 자유, 민주주의, 인권 같은 단어로 세계에서 동정을 얻고 있는 것이 특히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美, 타이완과 함께 중국견제 카드 미국에게 티베트는 타이완과 함께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카드다. 미국은 냉전 시절에는 군사적인 수단을 사용했다. 중앙정보국(CIA)을 통해 티베트를 비밀리에 지원했던 것.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하는 계기가 된 1959년 무장봉기도 배후에 CIA의 군수물자와 자금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비밀해제된 CIA 문서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CIA는 티베트와 네팔 접경지역에서 반중국 무장투쟁을 벌이던 티베트 게릴라들에게 1969년까지 군수물자와 자금을 지원했고 군사훈련을 지도했다.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도 1969년까지 CIA한테서 해마다 수백만달러를 지원받았다. 이후 1968년 취임한 닉슨 대통령이 아시아에 대한 직접개입을 자중하기 시작하고 1971년 7월에는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중국을 극비 방문하는 등 미중관계가 급변하면서 CIA는 지원을 중단했다. 군사적 지원의 빈자리는 인권 공세가 차지했다. 미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티베트에서 벌어지는 종교·인권 탄압을 문제삼는다. 이는 역으로 티베트 문제를 중국이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18일 오바마 대통령과 달라이 라마가 면담한 배경에 대해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이 커지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티베트 정체성·경제낙후 심각 티베트에서 티베트인들이 처해 있는 경제·문화적 상황이 티베트 갈등의 근원에 자리잡고 있다. 중국 당국이 달라이 라마를 범죄자처럼 대하는 것도 고유의 역사와 문화, 언어를 갖고 중국과는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는 티베트인들에게는 심각한 모욕이다. 현재 티베트 자치구에서 한족은 대략 5%가 채 안된다. 하지만 이들이 티베트의 상권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풍부한 광물과 천연가스, 삼림, 수자원 등도 티베트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사용되고 있다. 티베트족의 80%는 농업과 목축에 종사하며 대다수가 빈곤층이다. 2006년 칭짱철도 개통 이후 한족 유입이 더 많아지면서 경제력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티베트에 대해 대학입시 우대와 당간부 발탁 등 당근과 함께 중국어를 반강제로 보급하는 등 문화통합정책을 꾸준히 시행하고 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30일 TV 하이라이트]

    ●감성다큐 미지수(KBS2 오후 10시15분) 2010년 호랑이해를 맞아 가장 주목받는 패션, 호피(虎皮). 다양한 호피무늬 의상이 여심을 흔들고 있다. 겉옷과 속옷은 기본. 안경테, 신발, 스카프, 레깅스, 스타킹, 팔찌 등 다양한 액세서리 영역까지 점령한 호피무늬. 2010년 호피 무늬 열풍을 취재하고 그 안에 숨어있는 심리코드와 우리 사회 여성상의 변화를 추적해 본다. ●과학카페(KBS1 오후 7시10분) 게임 속 가상세계를 현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게임 그래픽’. 이용자들이 좀 더 게임에 몰입하여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게임 사운드’. 과연 그 발전 과정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그리고 이처럼 화려한 게임 그래픽과 사운드가 실질적으로 우리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역사 스페셜(KBS1 오후 8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일본, 타이완, 인도 등에 상관을 설치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무역을 했다. 동인도회사의 모든 업무를 세세히 기록한 자료집에 놀랍게도 1669년 3월 건조된 ‘코리아’라는 이름의 선박을 발견할 수 있다. 길이 약 25m, 탑승인원 20명 정도의 소형 크기였던 코리아를 둘러싼 비밀을 파헤친다. ●세계다큐기행 BBC생명과학다큐 생존을 위한 싸움 2부 유년기:싸움의 초보(MBC 밤 12시5분) 어린 생명들의 놀라운 투쟁을 살펴본다. 심장이식 수술을 받는 9살 제임스, 천식 발작을 일으켜 호흡 곤란을 겪는 12세 애런, 기차 객차 사이로 추락해 머리를 다친 2살 가브리엘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유년기 생존을 위한 인간 몸 안의 싸움을 통해 인간 생존 메커니즘의 비밀을 밝혀본다. ●400회 특집 잘먹고 잘사는 법(SBS 오전 9시45분) 400회 특집으로 그간 화제가 됐던 스타들을 다시 찾아가 감사의 선물을 전달하고 방송 뒷이야기를 들어보는 ‘감사합니다’ 스페셜을 준비했다. 7년간 캐나다 이민 생활을 하면서 고향과 한국 음식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던 개그우먼 이성미가 가마솥에 푹 빠진 사연도 공개된다. ●효도우미 0700(EBS 오후 5시10분) 스물넷 여자로서 한창 나이에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고 김육예 할머니의 삶은 끝났다. 자궁적출수술 후 결혼을 포기해 버린 할머니. 더욱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유일한 혈육이었던 여섯 명의 오빠는 모두 6·25전쟁 때 사망하고 말았다. 여든셋, 평생을 혼자 고독함과 외로움으로 지낸 할머니의 사연을 만나본다. ●OBS 스페셜 <아시아건강기행 자연으로 치유한다>(OBS 오후 8시50분) 일상생활 습관 속에 숨어 있는 중국 사람들의 건강비결을 찾기 위해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추적한다. 중국 대도시의 사람들은 콩물과 태극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또한 쓰촨 펑산의 장수마을과 세계 5대 장수촌으로 손꼽히는 광시장족자치구의 소수민족 마을들을 둘러보며 그들의 식사생활 습관을 살펴본다.
  • [동양철학, 그 속에서 길을 찾다] 공자가 신화를 멸시했다고?

    일본 만화가 도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건볼’이라는 작품이 있다. 중국 신화에 크게 기대고 있는 신화 소설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을 모티브로 삼았던 작품이다. 일본과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초반에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드래건볼을 모으러 다니던 손오공은 한 마을에서 나쁜 짓을 일삼는 토끼단을 혼내준다. 그리고는 여의봉을 길게 늘려 토끼 두목을 달에 두고 온다. 토끼 두목은 달나라에서 방아를 찧는다. 익숙한 모습이다. 달나라에 사는 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는다는 것은 어릴적 할머니의 팔을 배고 누워 듣던 우리의 전래 동화가 아니었나. 중국의 신화 학자 위안커(袁珂·1916∼2001)가 지은 ‘중국신화사’(전 2권, 김선자·이유진·홍윤희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를 보면, 중국인들은 원래 두꺼비가 달에 살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중국 고서 ‘회남자’에는 불사약을 훔쳐 달로 도망간 항아가 두꺼비로 변해 달의 정령이 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나라 ‘오경통의’에서는 달에는 토끼와 두꺼비가 있다고 했다가, 진나라 ‘의천문’에는 토끼만 언급된다. 이렇듯 ‘중국신화사’는 동아시아 신화 또는 전설의 원형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위안커는 문화대혁명 등 굴곡진 중국 현대사를 겪으면서도 중국 신화 연구에 평생을 바친 학자다. 그의 연구 덕택에 그리스·로마 신화에 견줘 상대적으로 빈곤하다고 여겨지는 중국 신화, 나아가 동아시아 신화가 풍성해졌다. ‘중국신화전설’ ‘중국신화대사전’과 함께 위안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중국신화사’는 온갖 문헌을 뒤져 신화와 관련한 자료를 찾고 풀이한 학술 서적에 가깝다. 그래서 독자들이 읽기에는 벅찬 부분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네 신화 및 전설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는 재미가 있다. 우렁각시를 떠올리게 하는 백수소녀 설화와 오감 설화, 선녀와 나무꾼과 연결되는 동영 설화와 칠선녀 설화, 견우·직녀 설화와 판박이인 우랑·직녀 등이 그렇다. 유교의 시조로서 신화를 멸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공자를, 위안커는 원래 신화에 흥미를 느끼고 전파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점도 흥미롭다. 옮긴이들이 10여년간 중국을 답사하며 직접 찍은, 신화의 흔적이 담긴 사진 180여컷에 친절한 해설을 곁들였다. 원서에는 없는 것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돕는다. 위안커가 ‘중국신화사’에서 그동안 배척당한 소수민족 신화에 관심을 기울인 점도 주목된다. 53개 소수민족의 500여편 신화를 수집해 주제별로 분류해 공통의 모티브와 신화적 상상을 찾는다. 하지만 중국 고대 신화가 소수민족의 구전 신화에 영향을 줬다는 식의 한족 중심주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게 한계다. 동북공정 논란을 생각했을 때 비판적인 책 읽기가 필요한 대목이다. 각권 3만 2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세계의 창’ 2800여명 취재장벽과 24시간 전쟁중

    ‘세계의 창’ 2800여명 취재장벽과 24시간 전쟁중

    특파원은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린다. 한 나라에 주재하는 외국 특파원의 규모와 취재 영역은 그 나라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 가운데 하나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3대 강국의 수도와 서울에 주재하는 특파원들의 현황을 통해 네 나라에 대한 지구촌의 관심을 비교, 분석해봤다. ■여전한 취재장벽 베이징 초청장·기자증도 무용지물 정보준 취재원 사라지기도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에서 활동하는 외신기자들은 누구나 ‘취재장벽’을 하소연한다. 당·정 고위인사들에 대한 인터뷰는 고사하고, 중간 간부들조차 쉽게 접근이 안된다. 은밀하게 연결이 닿은 정보원조차 소리없이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실제 지난해 초 중국 사회과학원의 일본 전문가 한 명이 갑자기 사라졌다. 외신기자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 건강 문제 등 북한 관련 정보를 제공한 사실이 포착돼 처벌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 그룹의 입은 그후 한동안 굳게 닫혀버렸다. 이름 공개를 꺼린 외신기자클럽의 한 관계자는 “정보와 투명성의 결여가 가장 큰 어려움”이라면서 “정부 관료로부터 정보를 얻기가 매우 어렵고, 북·중 접경지역 등 일부 지역은 여전히 취재하기 곤란한 지역으로 남아 있다.”고 푸념했다. 스위스 국영TV의 바바라 루에씨 특파원도 “지난해말 윈난(雲南)성 댐 공사 현장을 취재하다 지방공무원들에 의해 현장에서 격리됐었다.”며 “초청장도 외신기자증도 모두 무용지물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중국에는 현재 54개국, 434개 매체, 717명의 외신기자가 당국의 허가를 받아 상주하고 있다. 정치 본거지인 베이징이 338개 매체, 582명으로 가장 많고, ‘경제수도’ 상하이(上海)에도 83개 매체, 123명이 파견돼 있다. 광둥(廣東)성 성도 광저우(廣州), 서부대개발 중심지 충칭(重慶), 랴오닝(遼寧)성 성도 선양(沈陽)에서도 일부 외신기자들이 활동중이다. 관심 영역은 권력 변화부터 경제 정책, 소수민족 문제, 사회·문화적 현상까지 다양하다.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취재 대상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기자들은 인권상황과 경제발전, 한국과 일본 기자들은 대북 관련 취재에 큰 공을 들인다. 중국은 최근들어 브리핑 확대 등 서방 국가들의 외신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있지만 티베트 사태나 우루무치 사태 등 민감한 사안이 발생하면 여전히 특파원들의 움직임을 통제한다. 중국내 특파원들은 해킹 공격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stinger@seoul.co.kr ■세계 정치1번지 워싱턴 130여개국 1460명 활동 낮밤없이 취재원과 접촉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세계 정치의 중심지인 미국 워싱턴의 해외특파원들은 24시간 쉼없이 움직인다. 시차가 큰 나라에서 파견된 특파원들은 낮에도 일하고, 밤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다. 워싱턴의 외신기자센터(FPC)에는 130여개국에서 파견한 1460명의 특파원들이 등록돼 있다. 지역별로는 유럽이 가장 많고 아시아가 뒤를 잇고 있다. 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독일이 133명으로 가장 많고, 프랑스(65명)와 영국(54명) 등도 50명이 넘는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함께 중국, 한국의 특파원단 규모가 두드러진다. 한국의 경우 서울에서 특파된 32명을 포함해 59명이 등록돼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중국 기자들이다. 국무부 정례브리핑이나 FPC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에서는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한국보다 많은 66명이 등록돼 있다. 미국과 관계가 껄끄러운 이란과 시리아도 각각 11명과 3명의 특파원이 워싱턴에서 활동중이다. 해외 언론사들은 대부분 FPC가 위치한 내셔널프레스빌딩에 입주해있다. 백악관, 의회, 국무부가 가깝기 때문이다. FPC는 주요 기사들을 스크랩해 센터를 찾는 외국특파원들에게 제공하는데, 수량이 제한돼 있어 일찍 출근하는 기자들 차지가 되는 경우가 많다. 워싱턴 특파원들의 주요 취재 대상은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 재무부 등 행정부처와 의회다. 특히 국무부 브리핑에서는 자국과 관련된 현안들에 대한 미국의 공식 반응을 얻기 위해 기를 쓰고 손을 드는 외국 특파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고마츠 게니치 일본 마이니치신문 워싱턴지국장은 “일본 언론들의 최대 관심사는 미·일관계, 특히 21세기 미·일 신동맹”이라며 “외교, 안보, 군사적인 관계와 급부상한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FPC는 국무부의 지역 담당 차관보와 국방부 관계자, 군 고위장성 등과의 브리핑도 되도록 자주 마련하려 노력한다. 특히 외국 기자들이 만나 질문할 기회가 적은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나 제임스 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도 드물지만 FPC에 들러 외국기자들만을 위한 기자회견을 갖기도 한다. kmkim@seoul.co.kr ■북한 뉴스의 중심 서울 로이터 최다… “브리핑서 종종제외” 불만 서울의 외신 기자들은 새달 8, 9일 이틀간 울진, 월성의 원자력발전소를 둘러보는 프레스 투어에 나선다. 최근 아랍에미리트(UAE)의 원전 수출계약을 성사시킨 한국의 원전 기술에 대한 외국 언론의 관심이 높아지자 정부가 외신 기자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마련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외신기자클럽(SF CC)에 등록된 외신 기자는 225명이다. 이 가운데 본사에서 파견된 특파원은 71명이다. 지국장 43명을 합치면 모두 114명의 외국인 기자들이 서울에서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다. 나머지 110여명은 국내에서 채용된 한국인이나 교포 출신이 대부분이다. 가장 많은 기자를 파견한 매체는 영국의 로이터통신(24명)이다. 일본 NHK(12명)와 미국 블룸버그통신(10명), 일본의 교도통신(8명) 등이 뒤를 잇고 있다. BBC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유력 언론들도 동북아시아 사정에 밝은 1~2명의 특파원을 배치하고 있다. 서울 특파원들이 주로 취재하는 뉴스는 북한 문제다. 외교부 외신담당관실의 임재연 서기관은 “외신들은 북핵문제와 6자회담의 재개 전망을 집중 취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 LG 등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외신들은 재계의 움직임에도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다. 로이터 통신의 조나단 헤르스코비츠 특파원은 “최근 해외 투자자들을 비롯한 독자들이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향에 주목하고 있어 이 분야의 뉴스 제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주재 특파원들은 국내 언론사 기자들과 동등한 취재환경을 보장받기를 원한다. 서울에서 5년을 주재한 헤르스코비츠 특파원은 “공식 기자회견 외에 백그라운드 브리핑에서 외신 기자들이 제외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통’으로 유명한 도쿄신문의 시로우치 야스노부 서울지국장은 “과거에 비해 한국 정부의 보도자료가 양적, 질적으로 좋아졌지만 취재원에 접근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외신 기자들이 상주하면서 취재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외신기자센터가 없는 것도 개선 사항으로 꼽힌다. 문광부 홍보지원정책과 관계자는 “외신기자 지원 예산을 지난해 5000만원에서 올해 3억원으로 늘렸다. 앞으로도 취재 지원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오달란 박성국기자 dallan@seoul.co.kr ■亞 경제정책의 핵심 일본 500명 가입한 ‘외신클럽’ 연결고리 역할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에서 활동하는 특파원들의 친목단체인 외신기자클럽(FCCJ)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신년 하례식을 개최했다. 특파원들을 포함해 기업 홍보 담당 등 250명이 참석,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FCCJ는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11월 설립된 이래 초청 강연, 정보 제공 등을 통해 특파원들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고 있다. 현재 정회원인 특파원은 500여명, 기업의 홍보 및 정부의 홍보담당 등의 준회원은 1200명에 달하고 있다. FCCJ는 지난해 정치·경제 등 현안에 맞춰 무려 170차례의 강연회를 열었다. FCCJ의 정회원과 외신프레스센터(FPC)에 등록된 특파원 수는 다르다. 특파원이 일본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외신기자등록증’이 필요하지만 FCCJ의 가입은 자율적이기 때문이다. FPC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현재 특파원 수는 39개국 및 지역(홍콩 포함)에서 570명이다. 미국은 39개사, 224명으로 가장 많다. 독일은 17개사 35명, 중국은 16개사 39명, 한국은 16개사 33명 등이다. 르몽드, 블롬버그 등 일부 매체들은 일본에 총국을 두고 한국까지 담당하는 탓에 주일 한국대사관이 취재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파원들의 활동은 전방위적이다. 최대 관심은 역시 일본의 정치과 경제다. 정권교체 이후의 정치 향방과 흔들리는 ‘제2의 경제대국’의 위상이 초점일 수밖에 없다. 외신기자클럽 회장인 방글라데시 프로톰 알로신문 특파원 몬주룰 헉은 “일본과 세계 관계도 중요하지만 일본의 동남아, 특히 경제정책에 신경쓰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 취재는 쉽지 않다. 출입기자들의 카르텔인 ‘기자클럽’도 취재의 벽이다. 홍콩피닉스TV의 일본 지국장 이먀오는 “하토야마 정권 이후 개방 원칙을 내세웠지만 외무성 이외에 거의 모든 부처들의 취재는 막혀 있다.”면서 “공식적인 루트보다 인적 네트워크 즉,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접촉하는 게 훨씬 용이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외무성 국제보도관실 고다마 류지는 “외무상의 기자회견은 특파원들에게도 전면 개방해 질문할 수 있도록 한 데다 주 2회 정례브리핑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hkpark@seoul.co.kr
  • 서울시, 찌아찌아족 도시개발 추진

    서울시가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한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의 거주지인 바우바우시를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시는 “바우바우시는 광물과 수산자원이 풍부한 도시이지만 종합적인 도시발전계획을 수립한 적이 없다.”면서 “서울시가 도시발전계획을 세워 주고 한국기업의 진출을 보장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시는 지난해 7월 베트남 하노이시와 협약을 맺고 하노이시를 지나는 홍강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시는 이 홍강개발사업 사례를 분석해 바우바우시의 개발계획에 참고할 계획이다. 아울러 시는 지난해 말 찌아찌아족과 문화예술 분야 협력에 관한 의향서를 체결한 것과 관련해 오는 5월 하이서울축제에 찌아찌아족 민속공연단을 초청하기로 했다. 또 4~10월 서울시 인재개발원으로 바우바우시 공무원 3명을 초청해 전자정부와 도시교통, 환경 등의 분야를 교육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시는 바우바우시 중심가에 한글문화자료관과 도서관, 인터넷 정보실, 영상관람실 등으로 구성된 ‘서울문화정보센터’ 건립도 구상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지역 남동쪽 부톤 섬인 바우바우시에 거주하는 찌아찌아족은 인구 6만명의 소수민족이다. 찌아찌아어를 표현할 문자가 없어 역사와 문화를 기록할 수 없었던 그들은 지난 7월 그곳을 방문한 훈민정음학회의 도움을 받아 찌아찌아어의 발음을 가장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했다. 찌아찌아족이 많은 소라올리오 지구에서 40여명의 초등학생들이 일주일에 4시간씩 현재 60명이 한글 교과서로 수업을 받고 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