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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기는 없다… 이호철판 역사 바로 세우기

    금기는 없다… 이호철판 역사 바로 세우기

    올해 77세의 노(老)작가는 결코 지치지 않는다. 함경남도 원산생으로 젊은 시절 인민군으로 한국전쟁을 겪었고, 1974년에는 ‘문인 지식인 간첩단’으로 몰렸으며, 1980년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기도 했고, 1987년 6월에는 시위대 앞줄 어딘가에 있었다. 그렇게 분단과 독재의 질곡이 고스란히 그 한 몸에 화인(火印)처럼 새겨졌다. 그가 1955년 단편소설 ‘탈향’으로 등단한 뒤 ‘문’, ‘남녘사람 북녘사람’ 등 수십 권의 작품을 쏟아낸 50여년 동안 분단과 통일, 평화와 전쟁의 문제 등 우리 민족의 근원적 모순에 대한 천착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던 이유다. 이호철이다. 1991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된 그가 최근 내놓은 ‘별들 너머 저쪽과 이쪽’(중앙북스 펴냄)은 역사의 복판에 있었던 자신의 인생과 그 치열한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정리한 장편소설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서사(敍事)가 없다. 소설가가 자의로 창조한 캐릭터도 없다. 차라리 장편소설을 표방한 ‘한반도 근현대사 교과서’에 가깝다. ●역사 인물 가상 대담 형식 취해 이호철은 “현 정부 들어 좌우 진영 간에 교과서의 근현대사 기술(記述)에 있어 왜곡 논쟁이 분분한데 이 소설이 어느 것보다 엄정한 역사교과서가 될 수 있으리라 자부한다.”고 ‘실험적 기법의 장편소설’을 쓴 배경을 설명했다. 근현대사의 주요인물인 이승만, 송진우, 김구, 조만식, 최용건, 민영환, 이준 등을 불러내서 ‘별 너머 가상 대담’을 시키는 형식을 취했다. 엄정한 역사적 사료와 함께 역사적 인물의 ‘텍스트 사이’에 대한 방대한 평생의 취재를 바닥에 깔고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물론 작가의 역사에 대한 주관적 평가가 조만식, 최용건 등 누군가의 입을 통해 담겼음은 물론이다. 이는 자신이 1992년에 쓴 소설 ‘개화와 척사’에서 이미 한번 실험한 기법이다. 물론 작가 자신이 밝히듯 슈테판 츠바이크가 소설 ‘마리 앙투아네트’를 쓰며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소설적 기법에서 체득한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고종 말부터 해방, 분단까지 우리네 현대사 통한의 순간, 치열했던 상황을 잔인하리만치 세밀하게 서술한다. ●“시선 치우치면 현재의 문제 푸는 방식도 왜곡” 이호철은 “진보건 보수건 근현대사를 보는 시선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때문에 현재의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 역시 비틀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면서 “우리가 뻔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역사적 사실조차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꼼꼼히 들여다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주장에는 금기(禁忌)가 없다. 애써 에두르지도 않는다. 조만식과 최용건의 입을 빌려 북한 주석 김일성, 그리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갖고 있는 공과를 일일이 나열한다. 일종의 인물 재평가를 통한 ‘이호철식 역사 바로세우기’다. ●이승만·김일성 공과 가감없이 나열 김일성은-최근 학계에서 인정받은 사실이긴 하지만- 항일무장투쟁의 지도자로서 1937년 6월 보천보 전투의 공적, 일본의 공작으로 내부분열이 일 때 모두를 껴안는 통 큰 지도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또한 국부, 또는 분단의 원흉으로 취급받던 이승만에 대해서는 “그만큼 20세기 초반 한반도를 둘러싼 안팎의 정세를 명확하게 인식한 리얼리스트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가 조만식의 입을 빌려 ‘이승만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지켜낸 유일한 지도자’라고 평가한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내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더욱 열심히 소설을 써야겠어요. 날마다 요가하고, 등산하며 건강 챙겨야 할 이유죠. 조만간 단편소설 세 편이 나올 텐데 아흔 살까지는 쓸 겁니다.” 젊은이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정력적인 집필은 물론 몇 사람이 모여 있건 독자를 만나는 독회 활동에 열의를 쏟는 것도, ‘거시기 산악회’와 요가로 건강을 챙기는 것도 모두 자신의 통일론, 남북평화의 중요성에 공감을 얻고자 하는 필생의 소명 때문이다. 좌우도, 노소도 모두 곰곰이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글ㆍ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소설가 이순원씨 출판기념회 축사

    최명희 강원 강릉시장 8일 강릉문화원에서 열린 소설가 이순원씨의 관광강릉 스토리텔링북 ‘강릉에 가고 싶다’ 출판기념회에 참석, 축사했다.
  • “시민들 힘모아 재활병원 세우자”

    “시민들 힘모아 재활병원 세우자”

    국내 최초로 시민이 만드는 장애재활병원 건립에 각계 인사들이 힘을 모으기로 했다. 푸르메재단은 8일 서울 중구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시민과 기업이 함께하는 장애재활병원 건립 선포식’을 가졌다. 2012년 경기 화성시 향남읍 일대에 조성될 ‘푸르메재활병원’ 건립에 필요한 비용을 모으기 위해서다. 선포식에는 김성수 이사장, 강지원 변호사 등 푸르메재단 이사진을 비롯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최영근 화성시장, 박형규 목사 등이 참석, 건립비용 모금에 나서기로 했다. 김민수(서울대 교수)·구성애(아우성소장)·박완서(소설가)씨 등 사회 각계각층 인사 246명도 건립위원으로 동참했다.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인 김용해 신부는 ‘푸르메 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시민 호소문’을 통해 “매년 30만명 이상이 교통사고와 질병으로 장애인이 되고 있지만 취약한 재활프로그램과 정부의 관심 부족으로 재활치료를 받기 힘든 실정”이라면서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푸르메재단은 이날 엄홍길(산악인)·이은미(가수)·나경은(MBC 아나운서)씨와 김세진(12·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 3관왕)군 등을 홍보대사로 위촉했고, 아주대학교 이일영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건립추진위원회도 구성했다. 이 교수는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노트윌재활병원은 지방자치단체가 부지를 제공하고 민간 후원금으로 설립·운영되는 병원으로 100% 무료”라면서 “우리나라에도 이 같은 선진국형 재활전문병원 건립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전체 장애인 400만명 가운데 90% 이상이 후천적 장애인으로 추정됨에도 재활병상을 찾아 전국을 떠돌거나 후진적 재활치료로 희망을 잃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푸르메재단은 오는 2012년까지 건축비 340억원을 투입해 3만 8057㎡(1만 1512평)의 부지에 연면적 1만 6500㎡의 재활병원(150병상 규모)을 건립한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소설가 최수철씨 김유정문학상

    소설가 최수철(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51)씨가 김유정문학촌(촌장 전상국)과 한국수력원자력㈜ 한강수력발전처가 주관하는 제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계간지 ‘작가세계’에 지난해 발표된 단편소설 ‘피노키오들’이다. 시상식은 26일 오전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문학촌에서 열리며 상금은 3000만원이다.
  • [노무현 전격고백 파장] “꿀릴 게 없다”더니… 무너진 청렴 이미지

    [노무현 전격고백 파장] “꿀릴 게 없다”더니… 무너진 청렴 이미지

    7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시 나섰다. ‘돈을 받았다.’는 사과문과 함께였다. ‘박연차 리스트’ 수사 이후 “인터넷을 통해 끊임없이 정치를 해오더니 이번엔 왜 입을 닫고 있느냐.”는 조롱에도 침묵했던 노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과거 대선 자금 시비에서 “내가 만약 한나라당이 받은 불법 대선자금의 10분의 1 이상을 받았다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했었다. 뒤에 탄핵의 빌미가 됐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청렴’의 이미지는 그런 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때도 노 전 대통령은 “노사모가 돈도 많이 모아 주고 돈 없이 선거를 치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줘 상대적으로 돈을 적게 썼다. 그러니까 ‘좋다, 수사 한 번 해보자.’ 웃통 딱 벗고 나갈 수 있었지 않느냐.”고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당당한 태도는 이번 검찰 수사 과정에서 여지 없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깨끗한 정치인’, ‘적어도 도덕성에서는 문제가 없는 대통령’이라는 참여정부의 ‘자존심’이 검찰 수사의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재임 시절 노 전 대통령은 대의(大義)와 대세(大勢)를 얘기했다. 대의가 정치의 최고 가치이며, 여의치 않을 때는 현실적으로 대세라도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대의의 명분이 무너지면서, 대세의 실리조차 좇지 못할 난처한 지경에 빠졌다. 물론 정치권, 특히 여당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고백에 대해 여전히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사과문 발표가 정상문 전 청와대비서관과 조카사위 등 측근세력을 비호하기 위해 검찰수사에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아닌지 분명히 가려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정 전 비서관이 박 회장으로부터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받은 돈까지 자신의 책임으로 뒤집어쓰는 상황을 막기 위해 글을 올린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노 전 대통령은 늘 선제적이었다. 형 건평씨가 공격을 당하려 하자 “좋은 학교 나오신 분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머리 조아리고 돈 주지 마라.”고 공개 경고했다. 측근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자 “언론이 깜도 안 되는 것을 갖고 소설을 쓴다.”고도 했다. 하지만 당시는 ‘살아 있는 권력’ 시절이었다. 지금은 그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절대 ‘백기 투항’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최소한 논개처럼 산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치권이 폭풍 속으로 빨려갈 수도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지운 허백윤기자 jj@seoul.co.kr
  • 이지훈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노래합니다”

    이지훈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노래합니다”

    성장통을 겪는 16살 소녀의 가슴 벅찬 첫사랑을 노래한다. 제14회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역대 최다 노미네이트 기록을 세운 ‘내 마음의 풍금’이 7일부터 앙코르 공연을 갖는다. 7일 오후 서울시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진행된 ‘내 마음의 풍금’ 프레스콜에서 배우들은 설레는 마음과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 섰다. 강동수 역에 캐스팅 된 이지훈은 “솔직히 ‘내 마음의 풍금’이 초연할 당시에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때와 다른 배우가 출연한다는 자체만으로 또 다른 공연이 될 것” 이라며 ”대사전달, 보이스톤, 노래 등을 통해 분명 차이점이 드러날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원작소설 ‘여제자’를 각색, 영화로도 제작돼 많은 사랑을 받았던 ‘내 마음의 풍금’은 시골 학교로 첫 부임한 23살 총각 선생님 강동수와 그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16살 늦깎이 학생 최홍연, 강동수의 마음을 사로잡은 양호선생님 양수정의 아름다운 추억을 그려낸다. 2008년 7월 초연된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은 2008년 제14회 한국뮤지컬 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문을 수상한데 이어 오는 20일 개최되는 2009년 제 3회 더뮤지컬 어워즈 9개 부문 최다 노미네이트됐다.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은 4월 7일부터 5월 24일까지 호암아트홀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 / 사진=유혜정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도시와 산](1) 순천 조계산

    [도시와 산](1) 순천 조계산

    전남 순천의 조계산(해발 884m)은 참 허술하다. 멀리서 내비친 넉넉하고 만만한 산세가 쉽게 보인다. 남녀노소가 오른다. 갖춰 입기보다는 이웃집 마실 가듯 헐렁한 옷이나 운동화 차림새도 그렇다. 등산로에는 노부부와 손자들까지 마치 도시락 싸들고 공원에 놀러나온 차림이다. 이들은 십중팔구 순천시민이거나 인근 여수, 광양 등에서 왔다. ●해발 884m… 남녀노소 마실 가듯 순천시민들은 조계산을 ‘제집 드나들 듯’ 한단다. 선희곤(47·자동차정비업·순천시 조례동)씨는 “조계산을 오를 때는 오이 한 개만 달랑 들고 가도 장군봉까지 쉽게 간다.”고 자신했다. 지팡이를 짚은 정채봉(75·순천시 연향동)씨는 “일주일에 두 번은 이렇게 산에 오르지.”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선암사에서 10분 거리인 야외생태체험장에서 동창생 10여명과 사진을 찍던 정병국(76)씨는 “목요일마다 사범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조계산에 놀러 오는 게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자랑했다. 반면 관광버스 수십대에서 내린 형형색색 복장의 등반객들은 짙은 선글라스에 한결같이 쏙 빼입은 멋쟁이들이다. 외지인들이다. 하나 놀라는 쪽은 오히려 이들이다. 누군가 “야, 저런 신발로 산에 오르나봐.” 하며 신기해했다. 서울에서 온 전인동(60)씨는 “조계산에는 유달리 여성 등반객들이 많다.”고 환하게 웃었다. ●주요 탐방로 5개… 혼자 걷는 명상길 조계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호남정맥의 길목으로 광주 무등산과 장흥 제암산, 보성 일림산을 거쳐 나온 줄기다. 그리고 오성산을 거쳐 광양 백운산으로 가지를 뻗는다. 주요 탐방로는 5개. 1000년 고찰인 선암사와 송광사 앞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게 쉽고 편한 길이다. 일명 스님 오솔길이어서 ‘명상로’로 통한다. 길에 들어서면 잡념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그러나 주봉인 장군봉을 놓치는 아쉬움이 남는다. 2~3부 능선으로 이어진 이 길은 끊이지 않는 계곡물 소리, 굴참나무 낙엽이 바람에 실려 발길 사이로 까끌거리는 소리, 짝을 찾는 새들의 지저귐이 어울린다. 길옆의 산수유처럼 노랗게 꽃망울을 터트린 생강나무는 영락없이 생강 냄새를 풍긴다. 요즘엔 귀한 선물이 더해졌다. 선암굴목재와 송광굴목재 사이 언덕이 은하수처럼 환해졌다. 아름드리 굴참나무 뿌리 사이로 보랏빛 얼레지 꽃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봉긋봉긋 솟아났다. 한 중년 여성이 나팔처럼 생긴 꽃봉오리가 땅으로 숙여진 모습에 “시골처녀처럼 낯가림한다.”고 어쩔줄 몰라했다. ‘조계산 지킴이’인 양회명(55) 순천시청 공무원산악회장은 “조계산 등산의 묘미는 한여름에도 햇볕을 쐬지 않고 흙길을 밟는 명상로에 있다.”고 설명했다. 명상로에서 스친 탐방객들은 혼자이거나 두 명씩이 대부분이었다. 도중에 소설 ‘태백산맥’ 안내판이 나왔다. 빨치산들의 연락로로 쓰였다는 설명이다. 작가 조정래는 선암사에서 자랐다. 반면 주암면 접치재에서 출발하는 탐방로는 순천시민들이 찾아낸 길이다. 1000원 내는 시내버스가 경유해 접근성도 좋다. 두 사찰에서는 탐방객에게 입장료(2500원)나 주차료(1500원)를 받지만 접치재에는 매표소가 없다. 하나 산 좀 타는 이들은 선암사~장군봉~연산봉~송광사에 이르는 종주산행을 즐긴다. 전문 산악인들은 선암굴목재~배바위~장군봉을 타기도 한다. ●선암사·송광사 천년 고찰 향기 ‘순천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마라.’는 속설은 빈말이 아니다. 조계산 자락의 순천이 인심 좋고 경치 좋고 물이 맑은 까닭이다. 진인호(70·향토사학자) 순천문화원 부원장은 “일제 강점기 때 순천에 지주들이 많아 그 자식들이 비단옷으로 치장해 ‘순천에서 옷 자랑하지 마라.’고 했다.”며 “1960년대 세일러복을 입은 순천 여고생들의 인물이 남달랐고 이후 미스코리아가 나오면서 옷 자랑이 미인 자랑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특이하게도 조계산은 동쪽 장군봉 밑에 태고종 총림인 선암사, 서쪽 연산봉 아래에 승보사찰인 송광사라는 가람을 품고 있다. 선암사 전각 스님은 “산 하나에 태고총림(선암사)과 조계총림(송광사)이 있는 곳은 조계산밖에 없다. 총림은 선원·강원·율원 3개 경전 교육기관을 모두 갖춰야 지정된다.”고 강조했다. 다른 스님은 “조계산은 1천년 역사에 바랜 문화재 수천점이 숨쉬는 역사·교육·문화의 도량”이라며 “산에 갔다만 와도 수양을 쌓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요즘 선암사 경내 원통전 담 옆으로 600년 된 매화나무 20여그루가 추위를 이겨내고 활짝 꽃을 피워 볼 만하다. 송광사에는 한꺼번에 500개를 포갤 수 있는 능견난사(能見難思·나무그릇)가 흥미롭다. 공교롭게 선암사 어디서나 휴대전화가 잘 터진다(소통). 하지만 보조국사 지눌 등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에서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다(참선). 조계산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봄 머금은 산사 비빔밥에 홀리고 18명 국사배출 十八公 전설 흐르고 조계산은 천년 고찰을 거느린 품새만큼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사찰 밑에는 식당 20여개, 숙박업소 8개가 성업 중이다. 도시 생활의 찌든 때를 산속의 맑은 공기로 씻어 버린 이들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사찰인 선암사와 송광사 아래를 찾아 휴식을 취한다. 특히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요즘 더욱 많은 등산객이 몰린다. 송광사 아래서 금광식당을 하는 김화영(43·여)씨는 “봄이 되면 손님이 많은데 요즘에는 수학여행 아이들이 몰려들어와 산채 비빔밥을 즐겨 찾는다.”며 웃었다. 학생들은 식당 옆 조계산장에서 하룻밤을 묵어 갔다. 송광사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신라 때는 길상사, 고려 때는 수선사로 불렸으며 조선시대 때부터 송광사로 불렸다. 소나무가 무성해 당시 불렸던 ‘솔개이메(솔강이메)’에서 유래해 솔을 송(松), 갱이(광이)를 광(廣)으로 옮겨 송광산이라고 한 것으로 전한다. 전설에는 ‘송(松)’을 파자(破字)하면 ‘十八公’으로 송광사에서 18명의 국사가 나올 것이라고 풀이된다. 그래서 고려와 조선조에 16명의 국사가 배출되었으니 앞으로 2명의 국사가 더 배출된다는 기대를 가지고 스님들이 용맹정진하고 있다. 송광사에는 목조삼존불감(국보 42호), 고려고종제서(국보 43), 송광사국사전(국보 56), 송광사경패(보물 175), 송광사영산전(보물 303) 등의 문화재 외에 곱향나무(천연기념물 88호)도 있다. ●가는 길 광주~송광사는 광주 광천버스터미널(062-360-8114)에서 오전 8시50분부터 오후 3시45분까지 하루 5번. 광주~순천은 버스터미널에서 오전 5시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10~20분 간격. 순천~송광사는 순천역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45분까지 40분 간격으로 111번 시내버스(061-753-5377). 순천~선암사는 순천역에서 오전 5시50분부터 오후 8시20분까지 수시 운행 1번 시내버스. ●묵는 곳 선암사와 송광사 입구에 모텔과 민박집이 여럿 있다. 문의는 매표소(선암사 061-754-6160, 송광사 755-5308) 조계산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미스·조선호텔」정영선(鄭永善)양-5분 데이트(190)

    「미스·조선호텔」정영선(鄭永善)양-5분 데이트(190)

    조선「호텔」「나인스·게이트」에서 경리를 맡고 있는 정영선(鄭永善)양(23)이 이번주 표지「모델」. 귀염성스럽게 자그만 얼굴과 몸매가 아직「틴·에이저」처럼 앳돼 보이지만 직장생활 5년째인 고참급. 정윽균씨(53)의 2남3녀중 둘째딸, 68년 목포여고를 졸업했다. -조선「호텔」에서 취급하고 있는 외국돈은? 『한국은행에서 인정한 미국 일본「캐나다」영국「홍콩」돈 외에는 다룰 수 없게 돼 있어요』 -많이 찾아오는 손님들은? 『미국인들이 제일 많고 일본인이 두번째, 그 다음은 영국「프랑스」독일인들이 엇비슷하게 찾고 있어요. 대부분「비즈니스」관계로 온 경우고 우리나라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죠』 『제일 비싼 방은 18층, 전망이 좋고 응접실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인가봐요』 『외국인들을 대하기가 더 수월해요. 성의껏 친절을 베풀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니까 상대편이 이상하게 오해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없지요』 취미는 소설책 읽기. 특히「모파상」작품을 좋아한다고. 결혼은 2~3년 후에 하려 하는데 생활력이 강한 남성일 것이 첫째 조건이라고. <원(媛)> [선데이서울 72년 6월 25일호 제5권 26호 통권 제 194호]
  • [깔깔깔]

    ●눈 #상황 1 “의사 선생님! 모든 게 두 개로 보여요!” “우선 그 의자에 앉으세요.” “어느쪽 의자요?” #상황 2 “의사 선생님! 전 안경을 써야 하나 봐요! 시력검사좀 해주세요.” “정말 그래야겠군요. 손님 여기는 식당입니다.” ●공상과학소설 한 남자가 대형서점에 들어가서 여러 곳을 기웃거리며 책을 찾다가 카운터로 다가가 점원에게 물었다. “저, 아가씨,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는 비결에 관한 책이 어디에 있지요?” 그러자 계산을 하고 있던 점원이 퉁명스럽게 쏘아 붙였다. “손님, 공상과학소설 코너는 저쪽입니다!”
  • [엄마와 읽는 동화]불량식품은 맛있어! -이환제-

    [엄마와 읽는 동화]불량식품은 맛있어! -이환제-

    숙제를 하면서도 지금 내 마음은 문구점에 가 있어요. 학교 앞 문구점에서 연필이나 공책, 색종이 같은 문구만 파는 게 아니잖아요. 쫀쪼니, 쫀듸기, 달고나, 짱셔요…. 그리고 여러 가지 색색깔의 새콤달콤 맛있는 사탕들…. 우리 엄마는 용돈을 절대로 안 주거든요. 나하고 같은 2학년 아이 중에 날마다 천 원씩 용돈을 받는 친구들도 있는데 말이에요. ‘나도 용돈을 받았으면….’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날마다 불량식품을 실컷 사 먹을 수 있잖아요. 이상하게 엄마가 사 주는 간식거리는 맛이 없어요. 어른들이 먹지 말라는 불량식품은 어떤 줄 알아요? 그야 뭐 무지무지 먹고 싶고, 엄청나게 달콤하고, 아주아주 맛나지요. 친구들이 불량식품을 사 먹을 때 조금씩 떼어 주어서 잘 알거든요. 숙제는 하기 싫고, 불량식품은 먹고 싶고…. 나는 숙제를 하다 말고 발딱 일어섰어요. 엄마는 오랜만에 친구들 모임에 가고 아빠는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어요. 거짓말을 하기로 마음먹고 나니까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어요. 그런데 하고 싶은 말 대신 엉뚱한 말이 툭 튀어 나왔어요. “아빠, 티브이 보세요?” “응?” “헤헤, 티브이 보시냐고요?” “이 녀석아, 알면서 왜 물어?” “그냥.” 나는 상냥하게 말하며 아빠 어깨를 주물러 드렸어요. “진희, 너 아빠한테 할 말 있지?” “어떻게 알았어요?” “갑자기 아빠한테 존댓말 하며 예쁜 척하는 거 보면 다 알아.” 나는 속으로 흠칫 놀랐어요. 아빠한테 거짓말 하려는 내 마음을 들켜 버린 것 같았어요. 나는 아빠 몰래 숨을 크게 들이 쉬었어요. “아빠, 공책 사게 천 원만 주세요.” 공책 산다는 건 거짓말이고 그 돈으로 불량식품을 사 먹을 생각이에요. 한번 말문이 트이자 거짓말이 술술 나왔어요. “국어 공책도 사야 하고, 알림장도 사야 돼. 공책 때문에 어제는 선생님한테 혼났어. 다 쓴 공책을 모르고 그냥 가지고 갔거든.” “공책 때문에 선생님한테 혼났다고?” 아빠는 뭔가 생각에 잠겼어요. 무슨 말을 할 듯하다 말고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주었어요. “공책 사가지고 민지네 가서 숙제 하고 올게.” 나는 학교 갈 때처럼 가방을 챙겨 나왔어요. 나는 곧장 민지네 집으로 갔어요. “민지야, 우리 문방구에 가서 맛있는 거 사 먹고 숙제 하자.” 내가 돈을 보여 주며 말하자 민지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어요. “와, 신난다! 얼른 가자.” “쉿! 조용히 해. 너네 엄마 다 듣겠다.” “히히, 알았어.” 우리는 문방구에 가서 먹고 싶은 것을 몽땅 샀어요. 모두 다 100원짜리로만요.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학교 운동장 제일 구석진 곳으로 가서 맛있게 먹고 돌아와 얼른 숙제를 했어요. 집에 오자 아빠가 소리 없이 웃더니 말했어요. “진희야, 아까 너 공책 때문에 선생님한테 혼났다고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거짓말한 것 때문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어요. 갑자기 배가 아픈 것 같았어요. 불량식품이 잔뜩 들어가 있는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요. 갑자기 아빠가 말했어요. “진희야, 이야기 하나 해 줄까?” “무슨 이야기?” “들어 보면 알아.” 너처럼 꼭 3학년 때 일이야. 어느 날 아침 나는 학교에 가다 말고 집으로 재빨리 뛰어갔어. 공책을 사야 하는데 깜빡하고 돈을 안 타 갔거든. 삽짝 문을 들어서며 소리 쳤지. “공책 사게 돈 좀 주세요.” 설거지를 하던 엄마가 부엌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어. “공책 한 권이 얼마냐?” “20원요.” 엄마는 젖은 손으로 방에 들어가더니 이내 도로 나왔어. 지금 집에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거야. 내가 울상을 지으며 서 있자 엄마는 얼른 부엌에서 달걀 두 개를 가져왔어. “달걀 하나에 10원이다. 이거 두 개 가지고 가서 공책하고 바꾸어 써라.” 아휴, 달걀하고 공책하고 바꾸어 쓰라니, 난 무척 창피했어. 달걀하고 공책을 바꾸는 걸 누가 보기라도 해봐. 얼마나 창피하겠어. 뭐? 달걀을 공책하고 바꾸고, 재미있을 것 같다고? 그거야 지금 네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렇지. 네가 그때 나였다면 넌 아마 더 창피했을지도 몰라. 전에 우리 반 누가 달걀을 연필하고 바꾸어 쓰는 걸 보고 아이들이 막 놀려 먹었거든. 연필 살 돈도 없는 가난뱅이라고. 학교 정문 앞에 있는 문구점은 언제나 아이들로 붐볐어. 그러니까 아무도 몰래 공책하고 달걀하고 바꿀 수도 없잖아. 누구든 보기만 하면 금방 소문을 내고 말테니까. 달걀을 주머니에 하나씩 나누어 넣고 학교로 가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무거웠어. 느릿느릿 학교로 가던 나는 길에서 벗어나 개울가로 갔단다. 나뭇가지로 개울가 둑을 판 다음 달걀 두 개를 흙속에 묻어 두었어. 그리고 얼른 학교로 갔지. 선생님한테는 공책도 없이 공부하러 덜렁덜렁 왔다고 혼이 났단다. 대나무뿌리 회초리로 손바닥을 다섯 대나 맞았어. 무척 아팠지만 참았어. 친구들한테 놀림 당하는 것보다 선생님한테 회초리 맞는 것이 차라리 나았으니까. 그 달걀은 어떻게 한 줄 아니? 공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하고 구워 먹었어. 어떻게 구워 먹었냐 하면, 먼저 진흙으로 달걀을 두툼하게 싸는 거야. 그래서 그걸 땅속에 묻고, 달걀 묻은 자리에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모닥불을 피우는 거지. 모닥불 열기 때문에 땅 속에 묻은 달걀이 맛있게 잘 익거든. 집에 돌아와서는 거짓말을 했어. 학교 가다가 넘어져서 달걀 두 개를 다 깨버렸다고. 다음날 나는 또 공책 사게 돈을 달라고 했지. “돈 없다. 달걀하고 바꾸어 써라.” 그러면서 엄마는 또 달걀 두 개를 손에 쥐여 주시는 거야. 당연히 오늘은 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어쩔 수 없이 또 달걀 두 개를 가지고 가는 수밖에. 마당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닭들이 미워 보였어. 우리 집에 닭이 없으면 달걀도 없었을 테고, 그러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하고. 어른들 몰래 나는 닭들한테 괜히 심술궂은 발길질을 했어. 지금 생각하면 그 닭들이 너무나 고마운데 말이야. 힘없이 터덜터덜 걷다가 나는 또 달걀을 땅속에 묻어 두고 학교로 갔어. 친구들한테 놀림 받는 것은 정말 싫었거든. 나는 선생님한테 또 매를 맞았지. 이번에는 열대나 맞았어. 얼마나 아프던지, 매를 맞고 돌아서는데 눈물이 뚝 떨어지더라. “와, 많이 아팠겠다. 그런데 땅에 묻은 두 번째 계란은 어떻게 했어?” “어떻게 했을 것 같니?” “또 구워 먹었을 것 같은데.” “아니야. 이번에는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가게에 가서 군것질을 했단다. 계란하고 먹고 싶은 것하고 다 바꾸어 먹었지. 한 개에 5원씩 하는 풀빵하고도 바꾸어 먹고, 쫄쫄이하고 달고나 하고도 바꾸어 먹고….” “어, 쫄쫄이하고 달고나는 지금도 있는데!” “정말이야? 그런 불량식품이 지금도 있다니 놀랍구나.” “달걀로 군것질하고, 집에 가서 안 혼났어?” “네 할머니는 내가 당연히 공책하고 바꾼 줄 알았겠지.” 나는 사지 못한 공책은 어떻게 했냐고 물었어요. “또 공책 없이 학교에 갈 수는 없잖아. 그래서 생각 끝에 달걀을 훔치기로 했어. 날마다 닭장에서 알을 꺼내오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거든. 그날 저물녘에 달걀을 꺼내면서 그 중 두 개를 아무도 몰래 숨겼지. 삽짝 밖 호두나무 아래 풀숲에.” “정말?” “다음날 아침, 숨겨 놓은 달걀을 가지고 아주 일찍 집을 나섰어. 아이들이 없을 때 문방구에 가서 공책하고 바꾸려고. 다행히 아이들 눈을 피해 무사히 공책하고 바꾸었단다.” 아빠가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바라보았어요. 처음엔 배가 많이 아픈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아빠 말을 듣다 보니 배 아픈 것이 가라앉았어요. 그래도 아빠를 속이고 거짓말을 해서 돈을 타 내어 거짓말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렸어요. ‘아빠는 나보다도 더 했는데 뭘.’ 우리 아빠는 거짓말을 하고 달걀까지 훔쳐 냈잖아요. 나는 마음이 조금 놓였어요. 아빠한테 거짓말한 것도 들키지 않았고, 불량식품을 먹었는데도 배가 안 아팠기 때문이죠. ‘불량식품 먹으면 배탈 난다고? 흥, 엄마는 거짓말쟁이. 히히, 난 이렇게 괜찮잖아.’ 그래도 혹시 배 아프면 어떡하나 생각하며 배를 문질러 보았어요.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져도 나한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날 저녁, 민지네 집으로 전화를 했다가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어요. 민지 좀 바꾸어 달라니까, 민지 엄마가 숨넘어가는 소리로 이러는 거예요. “진희야, 우리 민지 지금 막 토하고 난리 났다! 뭘 잘 못 먹어서 그런지, 배 아프다고 데굴데굴 구르고 토한다니까! 얘, 얼른 전화 끊자. 민지 데리고 응급실에라도 가 봐야겠다.” ●작가의 말 몇 년 전 북한강변으로 이사하고 봄부터 아이들하고 닭을 길러 보았습니다. 암탉이 알을 낳고, 그 알을 품어 병아리가 깨어나자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습니다. 이듬해가 되자 닭은 이십여 마리로 불어났답니다. 달걀을 많이 낳아 이웃집하고 나누어 먹었지요. 달걀을 보니, 어릴 적 문방구에 가서 달걀을 공책이나 연필하고 바꾸고, 불량식품하고도 바꾸어 먹던 기억이 났습니다. ●작가약력 ▲1963년 충남 청양 출생. ▲199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동화집으로 ‘여우는 어디로 갔을까?’, ‘잘가라, 산도깨비야’ 등이 있음. ▲지금은 경기도 양평 북한강변에서 가족과 텃밭을 가꾸며 살고 있음.
  • [열린세상] 지하생활에 빛이 있어야 한다/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지하생활에 빛이 있어야 한다/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알 게 된 이래, 싫어했던 책이 있다. 소주 한 두병의 그저 그런 페시미즘에 빠져 들 때, 자꾸만 까만 수렁을 떠올려 잊으려던 소설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속속들이 어두운 글. 출구도 없는 심연으로 끌어 내리는 책. 첫 구절부터 자못 불쾌하다. “나는 병적인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는 남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인간이다.” 병, 심술, 비호감. 마지막부터 이야기해 보자. 이 무명(無名)의 지하 생활자는 확실히 남의 호감을 사지 못한다. 그것도 그저 그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송두리째 무시된다. “나는 그들이 상대해 주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 보이려고 애썼다. 그래서 이따금 일부러 구둣발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그들은 끝내 나한테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나는 여덟시부터 열한시까지 그들이 앉은 맞은편 벽 밑을 쉬지도 않고 왔다 갔다 했다.” 이처럼 “아무런 가치도 없는 더러운 파리” 취급을 받기에, 지하 생활자는 “참을 수 없는 굴욕의 괴로움” 에 젖어 든다. 그는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에 전적으로 매달리며, “웃음가마리가 되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하실에서 40년 동안 당신들의 말을 문틈으로 몰래 엿듣고 있었다.” 하지만 참으로 역겨운 것은 이 ´모욕과 냉소에 짓밟힌 생쥐´의 ´냉랭하고 독기 찬 증오´ 이며 ´악의 가득한 복수심´ 이다. 그는 홍등가에서 만난 여인을 철저하게 파괴한다. 너는 노예라는 둥, 영혼을 팔고 있다는 둥, 싸구려 술집을 전전하다 마침내 홀로 병들어 죽게 될 거라는 둥 연민을 가장한 사악한 말로, 한 여인을 수치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트린다. 그리고 힘들면 찾아 오라는 말을 믿고 자신의 집을 방문한 그 여인을 돈 주어 내쫓음으로써, 그녀의 영혼을 완전히 매장해 버린다. “넌 내가 실제로 원했던 게 뭔지나 알아? 너 같은 건 세상에서 없어져 버리라는 거야!” 읽을 때마다 치미는 구토. ´저주스러운 벌레´ 의 ´형언할 수 없이 메스꺼운´ 이야기. 도 스토예프스키의 책은 분명히 허구의 극단이다. 40년 동안 ´구석진 곳에 틀어 박혀 돈도 없이 모든 현실과 인연을 끊은 채, 지하의 세계에서 증오와 원한을 쌓아 올린´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참으로 섬뜩한 것은 이 책의 실현 가능성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15~29세의 청년 실업자는 36만 명으로, 전체 실업자의 40%를 차지한다. 여기에 취업준비생과 아르바이트생, 일자리 찾기를 포기한 구직단념자 등을 포함하면, 사실상의 ‘청년 백수’는 10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른바 청년실업 대란이다. 이들 대부분이 지하·반지하 생활자라는 것이다. 대학가 주변을 돌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듯이, 수많은 대학생들과 ‘청년 백수’들이 어둡고 좁고 습기 찬 지하·반지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들은 지상으로의 탈출을 꿈꾸며, 공무원시험 공부를 하거나 학비·학원비를 벌기 위해 각종 열악한 아르바이트를 감내한다. 그러나 내일이 없다면! 일할 미래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래서 영원히 지하세계에 머물러야 한다면! 최근 씁쓸한 기사를 읽었다.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라며 딸을 ‘폭행’한 어머니와 이를 ‘가정 폭력’으로 신고한 딸의 이야기. 딸은 “엄마가 대학생활 내내 공무원시험 준비를 강요하고, 최근 취직한 친구들까지 거론하며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며 강력한 처벌과 함께 ‘100m 접근금지 처분’까지 요구했다. 누군가에겐 이 일이 어처구니없는 황당한 사건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딸의 말과 행동에서, 나아가 수많은 청년 실업자들의 한숨과 눈빛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저 음습한 지하 생활자가 시나브로 느껴진다면, 이는 나만의 망상일까. 빛이 있어야 한다. 굴욕감과 자학심이 더 커지고, 증오와 복수심이 더 깊어지기 전에, 단연코 지하생활에 빛이 있어야 한다. 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 [영화리뷰] ‘용의자 X의 헌신’

    [영화리뷰] ‘용의자 X의 헌신’

    ‘갈릴레오’로 불리는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후쿠야마 마사하루)는 말한다.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 문제를 푸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단 정답은 반드시 있어.” 이 대사까지라면 이 영화는 추리극이 맞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있다.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 데쓰야(쓰쓰미 신이치)는 “그 문제를 풀어도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 잊어 달라.”고 호소한다. 이는 추리극을 벗어나 순애보적인 휴먼 드라마로 변신하는 씨앗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기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용의자 X의 헌신’은 두 천재의 뜨거운 두뇌 대결만 기대하며 극장을 찾는다면 김이 빠질 수 있다. 추리극이라면 으레 곁들여지는 스릴러 분위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기하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함수 문제”라는 이시가미의 대사는 영화 자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도시락 집을 운영하는 하나오카 야스코에게 수년 전 이혼한 남편 도가시 신지가 찾아온다. 행패를 부리다가 돈을 뜯어가는 도가시를 야스코와 그의 딸은 우발적으로 목졸라 숨지게 한다. 옆집에 사는 수학교사 이시가미가 모녀에게 완벽한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그의 대학동창 유가와가 트릭에 도전한다. 범행이나 범인, 범행 동기는 초반부에 훤하게 드러난다. 관심은 당연히 경찰 수사를 무력하게 만드는 트릭의 실체가 무엇인지, 나아가 이 수학자는 왜 ‘헌신’을 하며 이웃집 모녀를 돕는지에 쏠리게 된다. 굳이 원작을 읽지 않더라도 곳곳에 뿌려진 ‘친절한’ 실마리를 토대로 유가와가 밝히기 전에 진상을 가늠해 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재미일 듯하다. 트릭의 얼개를 미리 간파한 눈썰미가 있는 관객이라도 쓰쓰미의 연기력을 동력으로 영화 막판에 밀물처럼 다가오는 감정의 반전과 맞닥뜨려야 한다. 설산 등반 등 새 장면을 집어넣고 압축으로 생략되거나 캐릭터 및 설정이 조금 달라진 부분도 있지만 영화는 원작을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다. 전체적으로 담백한 맛이 난다. 입맛에 따라서 그 맛을 진지하게 음미하는 사람도,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시가미나 야스코의 감정이나 행동선이 일부 어색하게 느껴지는 관객이 있다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된 원작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니시타니 히로시가 메가폰을 잡았다. TV 드라마 ‘하얀 거탑’, ‘갈릴레오’를 연출했다는 것보다 영화 ‘도쿄 타워’를 공동연출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9일 개봉.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책꽂이]

    ●도착하지 않은 삶(최영미 지음, 문학동네 펴냄) 시인의 네 번째 신작시집이다. ‘돼지들에게’ 이후 4년 만이다. 중견 시인이 예민한 감성으로 풀어내는 일상의 모습들이 볼 만하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등 데뷔 때부터 즐겨 그린 소재인 혁명과 사랑에 대한 노래는 다소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여전히 시니컬한 듯 발랄한 비유들이 눈에 띈다. 60여편의 시와 일본 시인 사가와 아키의 해설이 함께 실려 있다. 7500원. ●피안에 지다(이한준 지음, 시우출판 펴냄) 서울대를 46년 만에 졸업해 화제가 됐던 지은이의 파란만장한 삶을 엿볼 수 있는 자전적 소설이다. 6·25전쟁을 배경으로 주인공 철준이 겪는 이산의 아픔과 월북자 가족의 고통을 그린다. 철준이 사형수로 복역하는 등 고난의 길을 걷다 결국 목회자로서 북한에서 순교한다는 내용이 주된 서사다. 분단의 질곡을 종교적 구원으로 풀어보고자 한 지은이의 의도가 돋보인다. 5부작, 전체 10권 완결. 각권 1만원. ●발차기(이상권 지음, 시공사 펴냄) 소설의 주인공인 고등학교 2학년 경희가 임신한 뒤 몇 달 동안 겪는 복잡한 심경의 변화와 그를 통해 한 뼘 더 성숙해지는 이야기다. 생태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주로 써온 이상권이 텃밭을 가꾸고 닭을 키우며 익힌 생명의 신비, 생명의 소중함을 때로는 가슴 졸이며, 때로는 당당하게 자신의 처지를 개척하는 청소년의 모습을 통해 보여 준다. 8000원.
  • “나만의 서사를 갖고 싶었다”

    “나만의 서사를 갖고 싶었다”

    한동원이란 이름은 어색할지라도 영화소개 어디선가 봤던 ‘적정관람료’나 ‘결정적 장면’, ‘무규칙 문화칼럼’ 등은 결코 낯설지 않을 것이다. 발칙하고, 발랄한 문화평론 스타일로 유명한 영화평론가 한동원이 이번에는 장편소설을 써냈다. 단편도, 별다른 습작도 없이 대뜸 장편소설에 도전했다.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작가, 칼럼니스트, 또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그이지만 정작 본인은 ‘소설가’라는 호칭 말고 다른 건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말이다. “수없이 남의 서사에 토를 달았는데 이번에는 나만의 서사를 갖고 싶었다.”라고 소설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껏 써온 글은 미디어라는 외부적 요인에 너무 영향을 많이 받아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자유롭게 창작을 하기가 불편했다는 것. 하지만 그는 꽤 오래 소설 쓰기를 준비했다. 이번에 나온 ‘삐릿’은 1년 반 정도를 고심하며 썼다고 한다. 1980년대 유행했던 마이클 잭슨의 노래 ‘Beat It’에서 제목을 딴 이 소설은 명문고등학교에서 밴드를 결성한 문제아 백동광의 이야기다. 지은이는 입학날부터 디스코 패션으로 이미 ‘찍혀 버린’ 주인공 ‘똥광’을 통해 꿈을 가진 청소년이 세상과 만나는 방법, 그리고 억압적인 교육의 문제 등을 거침없는 입담으로 풀어낸다. 곳곳에 등장하는 ‘쌍팔년도’ 문화코드도 볼 만하다. 물론 겁도 없이 문학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하다. 그는 “등단도 않고 습작도 얼마 안 쓰고 무작정 장편을 썼다. 앞으로가 분명 더 어려울 것이다.”라고 걱정했지만, 이내 “소설은 평생을 걸어볼 만한 일”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어쨌든 고통스러운 창작 과정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는 그의 자세만큼은 이미 소설가에 가깝다. 자신의 이번 작품을 두고는 “책 속에서 그저 재미를 찾고, 조금만 생각할 걸 건진다면 좋겠다.”라고 일축했다. 책의 적정 구입료를 묻는 질문에는 그저 “노코멘트”라며 웃어 넘겼다. 수많은 영화의 적정 관람료를 매겨 왔지만, 정작 자신의 소설에 대해서는 가격을 매기기가 곤란한 모양이었다. 출판사에서 정한 가격은 9800원. 첫 작품을 내자마자 현재는 부지런히 다음 작품을 집필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의 집단적인 의식이 개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과정을 그려보고 싶다.”면서 “양념처럼 과거의 문화 코드를 닮으면서도 그 속에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얘기를 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현실의 어두움 적나라하게 그렸죠”

    “현실의 어두움 적나라하게 그렸죠”

    새하얀 생크림 딸기케이크를 흐뭇하게 음미하다가 갑자기 돌조각을 씹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제2 창비청소년 문학상(2009년) 수상작 ‘위저드 베이커리’가 꼭 그랬다. 위저드(Wizard·마법사)의 판타지를 즐기다가 거지반 읽어갈 무렵 화들짝 놀라며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달콤한 마법의 세계에서 고통스러운 현실로 돌아왔지만 책을 덮을 수도 없다. 이 마법의 책이 마저 읽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제2 창비소년 문학상 수상작 지은이 구병모(본명 정유경)를 만난 느낌도 다르지 않았다. 이름처럼 남자 작가를 기대했는데 귀엽고 깜찍한 기미가 사라지지 않은 서른세 살의 여성이 나타났다. 블랙으로 차려입는 것도 위치(Witch·마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청소년 독자들이 받을 당혹감을 두고 “예상하고 있었다.”면서 “현실의 어둠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줄거리는 이렇다. 열여섯 살인 ‘나’는 아주 어릴 때 친엄마로부터 청량리 역에 버려진 경험이 있다. 그후 엄마는 우울증으로 자살하고, 아버지는 초등학교 선생으로 어린 딸이 딸린 배 선생과 재혼을 한다. 어느 날 ‘나’는 아홉 살 의붓 여동생 무희를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쓴다. 그러곤 폭력을 행사하는 계모와 이를 방관하는 아버지에게 절망해 단골 빵집인 ‘위저드 베이커리’로 피신한다. 빵집의 이름처럼 정말 마법사가 운영하는 빵집 말이다. 이 빵집에서는 평범한 식빵 말고도 100% 화해가 가능한 ‘메이킹 피스 건포드 스콘’이나 실연의 상처를 잊게 하는 ‘브로큰 하트 파인애플 마들렌’, 학교를 대신 가주는 ‘도플갱어 피낭시에’,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망신 주는 ‘악마의 시나몬 쿠키’, 그리고 원하는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해주는 ‘타임 리와인더 머랭 쿠키’ 등을 판다. 하지만 이런 환상의 세계에 이어 나타나는 여고생이 자살하는 살벌한 학교생활, 의붓아들에게 저주를 퍼붓기 위해 계모가 부두인형을 주문하는 가정, 의붓여동생을 성폭행한 범인이 ‘나’의 눈에 목격되는 순간 드러나는 혹독한 현실에서 더욱 화들짝 놀라게 된다. ●“청소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쓴 작품” 구 작가는 문제의 대목에 대해 “내 독자인 청소년들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쓴 작품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창비측도 수상작 선정에 참여한 청소년심사단이 이 대목에 두드러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거들었다. 사실 계모가 독사과로 딸을 죽이려는 ‘백설공주’나 친자식을 둘이나 내다버리도록 방조하는 친아버지가 나오는 ‘헨젤과 그레텔’도 덜하지는 않구나 싶기도 하다. 이 책은 남다른 미덕도 있다. 청소년들은 각자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 가장 혹독한 것이라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 견딘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 스스로 선택한 것에는 대가를 치러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 등을 전혀 교훈적이지 않지만 친절하게 이해시키고 있다. 작가는 ‘나쁜 성장 소설’이라고 하지만 ‘친절하고 공감 가는 성장소설’ 같다. 85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엄마·아빠 없는 복동이 슬프기만 할까

    소설가 박완서씨가 가정 해체로 상처 받은 아이들이 늘어가는 요즘 이들을 감싸 안는 따뜻한 성장 동화를 펴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고 아빠마저 떠난 뒤 이모와 외할머니의 손에 커온 초등학생 5학년 복동이. “아이고 이 지지리 복도 없는 새끼”라며 외할머니는 눈물을 훔치지만 기실 복동이는 이름처럼 어느 정도 행복을 누리며 사는 아이다. 시집도 안 가고 복동이만을 바라보며 사는 이모가 있고 겉으로 구박하는 듯하지만 누구보다 복동이를 아끼는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함께 있으면 ‘삼총사’ 부럽지 않은 국일이, 준걸이가 있어 늘 즐겁다. 하지만 한편으론 “나는 버림 받은 아이다. 되는 대로 살아도 뭐랄 사람이 없다.”는 어두운 생각도 품고 있다. 여름 방학 동안 영어를 배울 요량으로 미국에 사는 아버지, 이질적인 새 식구들과 살게 된 복동이는 더이상 상처 받지 않으려는 듯 아버지에게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자신을 다독인다. 하지만 함께한 시간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발견하고 미국 학교에서 만난 한국인 입양아 브라운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 박씨는 작가의 말에서 “아이들이 편견 없는 사람이 되어 태어나길 참 잘했다며 감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이야기를 썼다.”고 밝혔다. 동화의 출발은 지인에게서 건네받은 짤막한 기사였다. ‘송곳에 찔린 것처럼 아픈’ 기사의 내용은 책 속에 브라운 박사의 이야기로 녹아 있다. “나 같은 게 이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하면서 살 때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하면서 사는 세상이 같을 수가 없죠.” 브라운 박사의 입을 빌려 할머니 작가가 손자뻘 아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긍정의 메시지다. 9000원.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새 옷 입은 두 고전… 봄바람 일으킬까

    새 옷 입은 두 고전… 봄바람 일으킬까

    반가운 고전 두 권이 잇따라 출간됐다. 일본의 국민소설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도련님’(이민영 옮김, 평단 펴냄)과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의 대가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박이문 옮김, 문학동네 펴냄)이 오랜만에 새 옷을 입고 나왔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각종 문학상 수상작들이 우후죽순처럼 출간되는 소설시장에서 두 책의 재출간은 일별 뜬금없다. 하지만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두 고전의 출간은 결국 불황속 출판업계가 생존하는 두 방식을 잘 요약해 준다. 1867년작인 ‘테레즈 라캥’은 에밀 졸라가 처음으로 쓴 자연주의 소설이다. 연인들의 삼각관계를 통해 졸라가 그려낸 인간 내면의 욕망과 증오, 분노는 보는 이를 전율케 한다. 주인공 테레즈는 아내 카미유의 친구 로랑과 육체적 관계를 맺다가 결국 야성에 눈이 멀어 아내를 죽인다. 그 후 남은 둘은 죽은 카미유의 유령에 시달리며 서로 증오하게 되고 결국 자살한다. 지난 2003년 출간됐던 ‘테레즈 라캥’은 이번에는 영화의 인기를 등에 업고 같은 출판사에서 개정판을 냈다. 박찬욱 영화감독이 이달 말 개봉할 자신의 영화 ‘박쥐’가 ‘테레즈 라캥’을 모티프로 삼았다고 몇몇 인터뷰에서 언급하자 화제가 됐었는데, 거기에 출판사측이 재고정리를 위해 발빠르게 반응을 한 것이다. 영화 인기에 힘입어 원작소설이 재출간되는 경우는 흔하다. 동명영화의 원작소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스콧 피츠제럴드 지음)는 올해 초 대략 예닐곱 군데 출판사에서 책을 냈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원작소설인 ‘Q&A’(비카스 스와루프 지음)도 마찬가지 경우다. 하지만 이번 ‘테레즈 라캥’ 개정판은 고전과 영화를 함께 보는 재미 말고는 기대할 게 딱히 없다. 개정판이라지만 내용은 전혀 손대지 않았다. 기존 박이문 교수의 번역에 오탈자만 잡는 수준으로 손을 보고, 양장으로 판형을 바꿔 책을 냈다. 물론 가격은 올랐다. 6800원이던 것이 6년 만에 1만 2000원으로 두 배 정도가 됐다. 나쓰메 소세키는 작품 자체에 무게를 실은 경우다. ‘도련님’은 나쓰메의 1906년작으로 그가 한 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당시 경험을 살려 쓴 작품이다. 자전적 인물인 ‘도련님’ 외에도 교장선생 ‘너구리’, 사람 좋은 영어 선생 ‘끝물 호박’, 아부쟁이 미술 선생 ‘알랑쇠’ 등 개성 넘치는 인물 군상들이 나온다. 주인공이 현실에 눈떠가는 과정을 나쓰메 특유의 유쾌한 해학으로 그렸다. ‘도련님’은 국내에서도 지난해까지 몇 차례 출간된 적이 있다. 하지만 논술 시리즈나 청소년용으로 출간된 게 많아 편의대로 일부 누락되고 축소된 번역이 많았다고 한다. 이번에 나온 책은 기생집에서 주인공들이 요란하게 노는 장면 등이 그대로 번역돼 실렸다. 또 현대적 감각의 옷을 입히기 위해 시각적인 부분을 강조해 책 곳곳에 판화 일러스트도 넣었다. 고전 작품의 재발간은 출판사 쪽에서는 비용을 아낀다는 장점도 있다. 사후 50년이 훌쩍 넘은 나쓰메 등은 이미 저작권 보호기간이 지나 저작권료를 따로 지불할 필요가 없다. 대신 그만큼을 책 자체에 투자하는 셈이다. 한 출판 관계자는 “시장에서 신간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전을 잘 만들어 다시 내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대형 출판사가 아닌 경우 값비싼 저작료를 내고 문학상 수상작품의 판권을 마구 사들일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귀띔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여류작가 9인이 본 아홉색깔 서울

    “나는 아직도 서울이 누군가의 고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소설가 윤성희) 그녀의 말처럼 서울은 누구에게도 쉽게 고향의 편안함을 주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곳에는 국내 인구 중 4분의1이 살고 있다. 과연 서울은 우리에게 어떤 도시이며, 서울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아홉 명의 여성 소설가들이 모였다. 현장에서 왕성한 필력을 보여주고 있는 이혜경, 하성란, 권여선, 김숨, 강영숙, 이신조, 윤성희, 편혜영, 김애란이 모여 서울을 테마로 한 소설집을 낸 것.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강 펴냄)는 아홉 작가가 그려내는 아홉 가지 서울의 모습을 담았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중심이다. 편혜영이 쓴 ‘크림색 소파의 방’의 주인공 가족처럼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퍼붓는 비에 고장난 와이퍼’로 서울로 향하고 있다. 길은 평탄하지도 않다. 비가 쏟아지는 날, 정체 모를 사내들이나 짐승들에게 길이 막힌 채 오도가도 못하며 어두운 국도에서 밤을 보내기도 한다. 갖은 고생을 하고 상경해도 그 앞에 펼쳐지는 건 희망뿐이 아니다. 중심을 향해 왔지만, 서울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 앞에는 결국 변두리 인생이 놓여 있다. 하성란은 이곳 사람들이 중심으로 가기 위해 ‘늘 반쯤 뛰고 있으며 어깨나 머리가 채이고 발이 밟히는 일도 허다하다.’(‘1968년의 만우절’)고 썼다. ‘거짓말의 도시’인 서울에서 변두리 인생들이 ‘눈뜨고 코 베이지 않기’ 위해서는 역시 자신들도 거짓말을 무기로 삼아야만 한다. 소설 속 아버지는 상경 직후 남산에 올라 발밑에 서울을 두고 큰소리를 치던 사람이다. 하지만 평생을 아내에게까지 나이를 속여가며 살아온 그는 틀림없는 서울의 변두리 인생일 뿐이었다. 서울 속 변두리 인생들은 북촌(이혜경, ‘북촌’)에도, 망원동 다세대 주택(김숨, ‘내 비밀스런 이웃들’)에도, 한강변 오피스텔(권여선, ‘빈 찻잔 놓기’)에도 살고 있다. 강변북로(강영숙, ‘죽음의 도로’)를 달리고, 한강의 밤섬(이신조,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은’)을 거니는 이들은 서울이 불안하고 초조해도 떠날 수가 없다. ‘서울은 그들과 가장 닮은 도시이기 때문이다.’(편혜영) 작가들 스스로가 자신이 살고 있는 서울이 ‘다른 도시에 비해 비문학적으로 보이는 게 안타깝다.’며 출판 제안을 해 책이 나왔다고 한다. 문학평론가 김영찬 계명대 교수는 “지금껏 서울을 이야기한 작가는 ‘서울, 1964년 겨울’의 김승옥 정도였다.”면서 “아홉 편의 글은 안간힘과 희망, 서울에 대한 안타까운 애증을 잘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영화 같은 인생’ 신상옥 감독을 돌아본다

    한국영상자료원은 고 신상옥 감독의 3주기를 맞아 신 감독과 신필름의 대표작을 상영하는 기획전 ‘사랑 사랑 영화 사랑’을 마련한다. 신상옥감독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8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 KOFA에서 열린다.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신 감독은 아내이자 배우인 최은희와 함께 1978년 납북돼 1986년 탈출하는 등 한반도의 격랑기를 몸소 관통한 분단 한국사의 증인. 이번 기획전에서는 그가 이끈 신필름의 1960~70년대 전성기 영화는 물론 베일에 싸여 있던 북한에서의 2년 반을 보여 주는 작품,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찍은 후기 영화들까지 모두 16편이 상영된다.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전성기 작품 5편. 서울에서만 38만명을 동원한 흥행작 ‘성춘향’(1961)과 60년대 대표적인 사극 ‘연산군’(1961), 디지털 복원을 거쳐 2007년 칸영화제에 출품됐던 ‘열녀문’(1962)을 만날 수 있다. 또 임원식·나한봉 감독의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1965), 신영균·최은희 주연의 ‘무숙자’(19 68)도 함께 찾아온다. 북한에서 만든 작품들도 상영된다. 북에서의 첫 영화 ‘돌아오지 않은 밀사’(1984)는 북한 영화 최초 해외 로케이션 작품으로 체코 프라하에서 촬영됐다. ‘사랑 사랑 내 사랑’(1984)은 고전 ‘춘향전’을 바탕으로 제작된 뮤지컬 영화이며, ‘탈출기’(1984)와 ‘소금’(1985)은 각각 최서해와 강경애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밖에도 탈북 이후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닌자키드 2’(1994), 한국으로 돌아와 만든 유작 ‘겨울이야기’(2004)도 감상할 수 있다. 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 VOD 사이트에서도 4월 한 달간 ‘신상옥 감독 특별전’을 통해 대표작 10편을 무료상영한다. 또 신상옥, 최은희 부부의 사진 70여점이 로비에 전시되며, 11일 오후 5시에는 신 감독의 동료 영화인 및 유가족이 모여 3주기 추모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모든 행사 입장과 관람은 무료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데스크 시각] 불황에도 문화예술의 힘 키워야/이순녀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불황에도 문화예술의 힘 키워야/이순녀 문화부 차장

    국공립 공연장과 공연단체가 초·중·고교생, 교사에게 티켓을 60~80% 할인판매하는 ‘기브(give)티켓’제가 어제부터 시행됐다. 공연장이나 공연단체가 날짜별 미판매 예상 티켓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기브티켓 사이트(www.giveticket.or.kr)에 실시간 알려서 관람 희망자들이 싼 값에 살 수 있도록 하는 통합 할인제도다. 첫날 사이트에 소개된 공연은 24편이다. 가장 비싼 티켓은 뮤지컬 ‘라디오스타’의 R석으로 정상가 7만원짜리를 2만 8000원에 판매한다. 미국 뉴욕 연극발전재단(TDF)회원제를 모델로 한 이 제도는 잠재관객을 개발하고, 공연장과 공연단체의 운영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국립발레단뿐 아니라 LG아트센터, 금호아트홀 같은 민간공연장의 적극적인 동참도 고무적이다. 대상자가 학생과 교사, 예술강사로 제한된다는 점이 아쉽지만 청소년의 감성 지수를 높이고,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선택과 집중’이라고 볼 수 있다. 의정부예술의전당은 관객이 티켓 가격을 스스로 정하는 ‘희망티켓’을 최근 선보였다. 오는 25일 열리는 ‘시가 흐르는 천상음악회’를 시작으로 5월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8월 창무국제예술제, 10월 신나는 국악여행, 12월 송년음악회 등 7개의 공연이 대상이다. 관객은 1000원부터 1만원까지 내고 싶은 만큼만 티켓 가격을 지불하면 된다. 공연이 맘에 들면 공연장 입구에 놓인 ‘행복스폰서’모금함에 따로 기부금을 낼 수도 있다. ‘시가 흐르는 천상음악회’는 벌써 티켓의 60%가량이 팔려나갔다. 공연장 관계자에 따르면 3000~4000원을 낸 관객이 가장 많다고 한다. 여기에 민간단체인 CJ문화재단은 문화나눔 캠페인 ‘위 러브 아츠’를 통해 관객에겐 티켓 가격의 30%를 후원해 주고, 예술단체에는 제작비를 지원해 주고 있다. 금호아시아나재단도 올초부터 금호아트홀의 학생석을 기존 41석에서 전석으로 확대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갑이 얇아지면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손대는 지출 항목이 문화생활이다. 의식주에 필요한 경비나 자녀 교육비, 경조사비는 웬만해선 줄이기 어려우니 여가에 들어가는 비용을 잘라내기 마련이다. 그러니 문화예술, 그중에서도 관람료가 비싼 공연예술은 가계 구조조정 1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문화예술은 우리 영혼의 산소와 같은 것이어서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가까이하고, 여유가 없다고 멀리해선 안 된다는 원론은 빠듯한 현실 앞에서 말 그대로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다. 이럴 때 문화예술 공급자인 공연장과 공연단체가 앞다퉈 내미는 도움의 손길은 가뭄속 단비와 다를 바 없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초 역점 과제로 ‘예술 뉴딜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작가와 지역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소설가 등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 소극장과 문예회관의 상주 공연예술단체 집중 육성, 소외 지역에 우수 공연예술 프로그램 파견 등에 70억원을 투입해 예술가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문화 소비자의 문화 향수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1920년대 미국 대공황기에 루스벨트 정부가 추진해 성공한 문화 뉴딜 프로젝트의 벤치마킹이다. 이에 따라 국립오페라단, 서울예술단 등이 참여하는 ‘사계절 문화 나눔단’이 1일 출범식을 갖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게 된다. 한 나라의 문화예술 수준은 그 나라 정부와 예술가 및 단체, 그리고 국민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어느 한쪽만 뒤처진다고 해도 문화예술 선진국이 되기는 어렵다. 부담없이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지원 활동이 펼쳐지고 있는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국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이다. 이순녀 문화부 차장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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