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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정·도덕·희생의 그리스 로마 영웅들

    이쯤되면 부전여전(父傳女傳)이다. 지난 8월 별세한 소설가 겸 번역가 이윤기(1947~2010)가 기획·감수하고 딸 이다희씨가 번역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플루타르코스 지음, 휴먼앤북스 펴냄) 제1권이 나왔다. 고인은 2000년부터 출간을 시작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로 국내에 새로이 그리스·로마 신화 열풍을 불러일으킨 인물. 그간 출간된 1~4권 모두 200만부 가까이 팔리는 등 낙양의 지가를 올리면서 그리스·로마 신화 전문가로 필명을 날렸다. 이번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딸이 신화와 역사 사이에 자리한 그리스·로마 영웅들의 얘기를 책으로 엮었다. 책은 총 9권으로 예정된 시리즈의 첫 결실로, 고인이 ‘쉽고 친절한 번역’을 원칙 삼아 2003년부터 밑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설명이 필요없는 고전 중의 고전. 서구 사회를 지탱해 온 헬레니즘과 로마 문명의 유산인 정의와 공정, 도덕과 희생이라는 인문학적 가치들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은 위대한 ‘헬라스’(고대 그리스인이 그리스를 지칭하는 말) 사람 1명과 로마인 1명을 짝지어 각 영웅들의 생애를 비교, 서술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1권에는 아테네의 건국자 테세우스와 로마의 건국자 로물루스, 스파르타의 입법자 리쿠르고스와 로마의 입법자 누마, 아테네에서 민주주의의 기반을 만든 솔론과 로마에서 공화국의 기틀을 닦은 푸블리콜라 등 6명의 영웅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역자가 머리글에 “책에는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을, 특히 정치인들이 자주 들먹이는 격언과 일화들이 자주 나온다. 책을 읽고 나면 그 격언과 일화들을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아무 데나 갖다 붙이면 안 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라 적은 것도 그 때문이다. 1만 28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3층 대저택에 188마리 고양이와…

    원뿔 모양의 지붕이 얹어진 옥상 위 세 개의 탑, 프로방스 풍의 돌출 창과 요철 모양으로 마무리된 옥상 난간. 그리고 온통 모래로 뒤덮인 학교 운동장만 한 넓은 마당. 김희진(34)의 첫 장편소설 ‘고양이 호텔’(민음사 펴냄)의 여주인공 고요다가 살고 있는 집은 동화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거대한 성을 연상시킨다. 그녀는 열한 개의 방이 있는 3층짜리 대저택에서 188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작가의 말’에 그녀가 써 놓은 “이 소설은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소설이 될 것이며, 다시는 소설 따윈 쓰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 때문에 작가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이처럼 소설은 자신을 베일속에 감춘 여 작가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그녀를 인터뷰하려고 고군부투하는 남성 기자 강인한이 만나면서 시작된다. 강인한은 고요다가 12인용 식탁 위에 특별 주문 제작한 3단 고구마 케이크를 놓고 서른 번째 생일을 자축하려는 순간 초인종을 누르며 끈질기게 인터뷰를 요청한다. 우여곡절 끝에 고요다의 집에 들어가게 된 강인한은 거짓된 말과 행동을 하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고요다는 조금씩 마음을 움직여 결국 어렵사리 인터뷰에 성공한다. 이야기는 작가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강인한과 이를 거부하는 고요다로 화자를 번갈아 가며 감각적인 심리 묘사와 함께 전개된다. 소설은 고요다가 사는 도시 인근에서 벌어진 25명의 연쇄 실종사건, 나날이 고양이의 수가 늘어나는 미스터리, 고요다 소설의 탄생 비밀 등이 추리와 판타지 요소가 뒤섞여 묘한 분위기로 이어진다. 2007년 소설 ‘혀’로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김희진은 인터뷰를 둘러싼 두 인물 간의 팽팽한 밀고 당기기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어 가는 연쇄 살인 사건을 교차로 보여주며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김형중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소설에서 인터뷰는 성공했지만, 소통은 실패했다.”면서 “작가 김희진에게, 우리 시대는 이제 상처 받은 타인들의 상호 소통에 의한 치유를 바랄 수 없는 시대인 듯하며 그 냉정함이 김희진을 기대할 만한 소설가로 자리매김하도록 한다.”고 평가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책꽂이]

    ●주고받는 병원 경영 이야기(배진호 글, 보는소리 펴냄) 각종 특화병원을 경영하고 병원 경영 자문 업무를 수행해온 저자가 실제 병원 경영 경험과 경영이론을 토대로 병원을 개원하려고 하거나 운영 중인 의사에게 노하우를 전달한다. 특히 병원 운영이나 수익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기존 경영의 문제점과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 업그레이드된 병원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경영 가이드를 제시한다. 1만 5000원. ●아주 사(史)적인 고백(정상호 지음, 동아일보사 펴냄) 수필가로 등단하기도 한 정상호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의 역사여행 수필집. 어린 시절부터 역사책 읽기를 좋아해 세상사를 역사적 관점에서 생각하고 해석해온 저자가 국내외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을 공직자의 독특한 분석을 담아 솔직하게 풀어낸다. 1만 6800원. ●두말할 필요 없이, 인생은 유머러스!(최양락 글, 대림북스 펴냄) 개그맨 최양락이 30년 경력에서 배운 웃음의 노하우를 담은 에세이. 누구나 유머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믿는 그는 남을 웃기기 위해서는 자신감을 갖고 기승전결에 맞춰 간결히 말하고 웃기고 싶은 마음을 잘 숨기라고 조언한다. 1만 2000원. ●자정의 결혼식(한지수 글, 열림원 펴냄) 2006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한 작가의 첫 소설집. 독특하고 실험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소설 일곱 편을 담았다. 표제작은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남자다움을 가진 인물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그러한 자신의 성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한다. 동성애나 성 정체성의 문제를 넘어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 [영화리뷰] ‘가디언의 전설’

    [영화리뷰] ‘가디언의 전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가 익룡 이크란을 통해 웅장하고 역동적인 비행 전투 장면을 빚어낸 뒤 이제 비행 장면은 3차원(3D) 입체영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 것 같다. 미국 할리우드 3D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는 ‘아바타’의 비행 부분을 뚝 떼어놓은 것 같은 내용과 비주얼로 재미를 톡톡히 봤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3D 애니메이션 ‘가디언의 전설’도 경이로운 비행 전투 장면으로 관객의 얼을 빼놓게 될 작품이다. 적재적소의 슬로 모션은 가히 예술이다. 아예 날개 달린 짐승을 의인화했다. 악을 물리치며 올빼미 왕국을 수호하는 전설의 가디언들과 올빼미 세계를 지배하려는 사악한 집단 ‘순수 혈통’의 대결을 그린다. 주인공은 부모와 함께 단란하게 살다가 형 클러드(라이언 콴튼)와 함께 순수 혈통에 납치당하는 가면 올빼미 종의 소렌(짐 스터게스)이다. 소렌은 순수 혈통의 음모를 알려 세상을 구하기 위해 바다 너머 안개 속 세상의 ‘위대한 가훌 나무’에 은둔하고 있다는 가디언들을 찾아나선다. 올빼미판 ‘반지의 제왕’이자 ‘300’인 이 영화를 보다 보면 3D 전환 작업을 시작했다는 공상과학(SF) 영화의 고전 ‘스타워즈’ 시리즈가 기다려진다. 시리즈가 보여줬던 압도적인 우주 비행 전투 장면이 입체화되면 그 결과가 어떨지 자못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디언의 전설’은 여러모로 ‘스타워즈’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소렌의 멘토로 나오는 전설 속 전사 에질리브(제프리 러시)는 제다이 스승 요다와 다름없다. 스스로의 감각을 믿으라는 에질리브의 가르침은 포스가 함께하길 빈다는 ‘스타워즈’의 명대사와 겹쳐진다. 가디언들의 마을인 가훌의 나무는 ‘스타워즈 6-제다이의 귀환’에 나오는 이워크 종족의 마을을, 영화 마지막 장면은 ‘스타워즈4-새로운 희망’의 훈장 수여 장면을 연상시킨다. 대개 애니메이션은 전문 감독들이 많이 만들지만 ‘가디언의 전설’은 이례적으로 실사 영화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300’과 ‘왓치맨’에서 경이로운 비주얼을 보여준 잭 스나이더다. 그래서인지 애니메이션임에도 카메라로 찍은 실사 영화처럼 생동감이 느껴진다. 프랑스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조지 왕의 광기’의 헬렌 미렌과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샤인’의 제프리 러시를 비롯해 ‘매트릭스’ 시리즈의 휴고 위빙, ‘쥬라기 공원’의 샘 닐, 드라마 ‘위드아웃 어 트레이스’의 앤서니 라파글리아 등 명배우들이 펼치는 목소리 연기의 향연도 즐겁다. 같은 종 올빼미가 모습이 비슷비슷해 캐릭터를 구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아서왕의 전설과 고대 스파르타-페르시아의 전투 등에서 모티프를 따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캐스린 래스키의 판타지 소설 시리즈 가운데 앞의 세 권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96분. 전체관람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주말 데이트] MBC라디오 ‘고전열전’ 진행 배한성

    [주말 데이트] MBC라디오 ‘고전열전’ 진행 배한성

    “요즘 배춧값의 폭등으로 서민경제가 말이 아닙니다. 폐하” “그럼 백성들에게 깍두기를 담그라 하시오. 단무지에 고춧가루 뿌려 먹든가…” “폐하, 전셋값이 심상치 않사옵니다.” “대출받아 그냥 사면 될 거 아닌가. 미분양된 아파트도 많은데, 집을 작은 데로 옮기든가…” 살아서 전설을 남긴다. 고독이 몸부림치는 듯 비음 섞인 목소리로 계속 전설을 만들어 나간다. 그러기에 열정이 특별하다. 형사 콜롬보, 가시나무새, 대부, 파피용, 맥가이버, 가제트 형사…. 성우로 출발해 DJ도 했고 MC도 했다. 각종 단체의 홍보대사를 맡아 강연도 하고 대외활동 또한 활발하다. 얼마 전에는 TV드라마에서 ‘사랑과 야망’의 차화연과 열연했다. 요새는 ‘라디오 드라마’의 부흥을 위해 또 다른 열정을 토해내고 있다. 성대 모사의 달인 배칠수와 함께 MBC 표준FM(95.9MHz) ‘고전열전’에서 새로운 장르 개척에 여념이 없다. 앞서 소개한 대화 내용처럼 세태 풍자와 함께 고전을 ‘삼국지 버전’으로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성우 배한성(64)씨는 올해로 데뷔 44년째.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남녀노소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넘나들며 열정적인 목소리로 이리저리 뛴다. 하여, 별명이 ‘배돌이’다. 배씨처럼 다양한 계층의 팬을 확보한 사람도 드물 터. 데이트를 요청하는 전화에 그는 바쁜 일정을 잠시 쪼갠다. ‘고전열전’ 첫 방송이 나가던 지난 18일에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만났다. 청바지에 편한 남방셔츠 차림이다. 따사로운 가을햇살을 맞으며 나무 아래 의자에 앉았다. “(기자 명함을 보자) 중학교 때 신문팔이를 했습니다. 그때(1960년대 초) 서울신문 위력이 대단했지요.” “집안 형편이 어려웠나요.” “아버지는 경기중학을 나오고 어머니는 서울여상을 나왔습니다. 나름대로 엘리트였지요. 그런데 제가 세 살 무렵에 아버지가 월북을 했습니다. 6·25전쟁 직전이지요. 갔다가 월남하신다는 게 아마 전쟁 때문에 못 내려온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는 계속 북한에…” 자연스럽게 슬픈 가족사 얘기가 오고 갔다. “그 이후 아버지 소식은 들었습니까.” “1977년에 간접적으로 아버지가 김일성 대학 교수로 있다는 얘길 전해들었습니다. 명절 때 차례상에 사진 올려놓고 아버지한테 절을 하지요. 몇 차례 이산가족 상봉 때 신청을 했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살아 계시는지, 돌아가셨는지 알 길이 없지요. 어렸을 적에 솔직히 아버지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소년가장이 되셨던 까닭을 알 것 같습니다.” “신문 배달할 때 시계가 없어 집에서 새벽 일찍 나서다가 도둑으로 몰려 뭇매를 맞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웃음) 오늘 주제는 이게 아닌데….” 배씨는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났다. 중학생 때 안암동 주변에서 신문 배달을 하며 탤런트를 꿈꿨다. 그래서 서라벌예술대 영화과에 진학했다. “40년 넘게 목소리 하나로 장수하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아버지 얼굴은 모르지만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게 목소리인 것 같아요. 사람이 살면서 10가지 경쟁력이 있다면, 아마 끊임없이 배우려는 호학 정신과 호기심이 아닌가 싶어요. 배우려고 했고 또 이미지를 어떻게 제고할까 고민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아마 성우만 했다면 1990년대 중반에 그만두었을지도 모르죠. 성우할 때 DJ도 했고, MC도 했고, 신문에 교통칼럼도 쓰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이렇게 활동을 해나가는 것 같아요.” “삶의 철학이 있다면요.” “후배들을 만나면 이런 얘기를 자주 합니다. 우리는 밭 가는 농사꾼이나 똑같다. 사과나무 열릴 때 그걸 기다리지 말고 옆 땅을 개간하라고 하지요. 한 군데 농사만 계속 지으면 지력(地力)이 떨어집니다. 옆 땅, 그 옆 땅에 묘목을 심고 가꾸고 열매를 기다려야 합니다. 또 사과나무의 인기가 떨어지면 다른 과실수를 심어야 하지요. 강의할 때도 그렇습니다. 죽어서 전설을 남기면 뭐하느냐, 살아서 전설을 남겨야 한다고 늘 강조하지요.” 화제를 바꿨다. 라디오 드라마 부흥을 위해 또 한번 열정을 쏟는 얘기를 꺼냈다. “오디오 드라마로 표현하는 것이 어울립니다. ‘고전열풍’의 흐름은, 예를 들어 김치인 경우 ‘삼국지식’으로 접근합니다. 고전과 현대, 그리고 미래를 버무리는 것이지요. 세태 풍자도 곁들여 마치 만화를 드라마로 옮긴 것처럼 유쾌한 내용입니다. 주위 많은 동료분들이 최선을 다해서 새 장을 열라고 주문합니다.” 사실 라디오 드라마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3차원(3D) 영화까지 등장하는 추세에 밀려 과거의 추억이 돼 버렸다. 배씨는 이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라디오 드라마의 르네상스를 만들겠다는 사명감으로 충만해 있다. 700여명의 후배 성우들도 과거의 낭만을 되살려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는다면 어떤 것일까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 역할을 세 번씩이나 했습니다. 아마 적임자가 저밖에 없었나 보죠(웃음). 그리고 파피용에서 드가(더스틴 호프만), 대부에서 알파치노, 사랑의 로망으로 유명한 가시나무새에서 랄프 신부 역할을 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20대에서 80대까지 기억할 수 있는 작품들을 모두 한 셈이죠.” 배씨는 딸 둘과 고3 아들을 두었다. 큰딸 지인씨는 이탈리아 유명브랜드 한국회사의 홍보부장으로 있고 작은딸 우리씨는 소설 ‘에펠탑의 빨간 리본’을 쓴 작가이다. 배씨의 취미는 자동차를 타고 훌쩍 떠나는 것이다. 1년에 한번쯤은 반드시 시간을 내 자동차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진다. 1992년에는 티코와 다마스를 타고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지구를 반 바퀴 도는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올해도 그럴 작정이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배한성씨는 1946년 10월 3일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경북 김천 출신으로 배씨가 세 살 때 월북, 아직 생사 확인이 안 되고 있다. 배씨는 명절 때마다 아버지 사진을 걸어놓고 절을 하면서 어버지를 그리워한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지금은 아버지한테 천의 목소리를 물려받았다고 감사해한다. 현재 한국성우협회 자문위원이다. 서라벌예술대학을 나와 1966년 TBC 2기 성우로 데뷔한 뒤 형사 콜롬보, 대부, 파피용, 가제트 형사 등의 프로그램에서 남녀노소를 넘나드는 활약을 펼쳐 국민 성우로 인정받는다.
  • 비운의 조선 궁중무희 ‘리진’ 실존인물? 허구인물?

    비운의 조선 궁중무희 ‘리진’ 실존인물? 허구인물?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가 만든 용어 ‘팩션’(Faction). 사실(Fact)과 허구(Fiction) 사이의 줄타기를 칭하는 용어다. 그러나 아무래도 긴장은 있다. 역사학자들은 너무 나갔다고 혀를 끌끌 차고, 창작자들은 그 정도는 나가도 된다고 불만이다. 최근 끝난 MBC 사극 ‘동이’도 그랬다. 조선의 왕 숙종을 ‘깨방정’으로 그려내 신선하다는 평을 끌어냈지만, 반대편에서는 엄숙할 숙(肅)자를 쓸 정도로 근엄했던 군주 숙종을 칠칠하지 않게 그린 것을 모독으로 보기도 한다. 이번엔 리진이다. 리진은 구한말 한국 주재 외교관과 사랑에 빠졌다가 자살로 삶을 마감한 비운의 궁중 무희로 알려진 인물이다. 신경숙 등 유명작가의 소설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TV 다큐 프로그램 등으로도 소개되면서 실존인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가공된 허구인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21일 서울 신촌동 연세대에서 열리는 국학연구회에서 논문 ‘파리의 조선 무희 리진의 역사성’을 발표한다. 먼저 헷갈리는 이름부터. 서울대 국문과 출신의 소설가 김탁환은 2006년 소설 ‘리심’을, 베스트셀러 작가 신경숙은 2007년 소설 ‘리진’을 발표했다. KBS가 2007년 내놓은 다큐 프로그램 ‘한국사전’에도 리심이 등장한다. 여인의 이름이 각각 다른 것은 신경숙은 불어 표기 ‘Li-Tsin’을 그대로 읽어서이고, 김탁환은 Li-Tsin 뒤에 붙은 ‘Fleur d’ame’(flower of mind)라는 설명을 ‘梨心’(리심)이라 풀어 읽었기 때문이다. 두 소설가는 프랑스 파리 등 현지 취재를 거쳐 역사적 인물을 복원했다고 주장하지만, 주 교수는 “전혀 근거 없는 얘기”라고 일축한다. 두 소설에 따르면 한국 주재 프랑스 공사였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궁중연회 도중 리진이라는 아름다운 무희를 발견한다. 플랑시는 고종 황제에게 애원한 끝에 이 무희를 하사받아 프랑스로 함께 건너간다. 얼마 되지 않아 플랑시는 다시 조선으로 발령받아 돌아오게 된다. 두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조선 양반 홍종우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리진을 다시 궁중 무희로 일하게 한다. 프랑스의 자유문명을 이미 맛본 리진은 절망하며 괴로워하다 끝내 자살하고 만다. 두 작가를 비롯해 리진을 실존 인물로 보는 진영은 그 근거로 프랑스 외교관 이폴리트 프랑댕이 쓴 ‘한국에서’(En Coree)를 든다. 플랑시와 비슷한 시기 한국에 근무했던 프랑댕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친구의 얘기’라며 이 책을 썼다. 후대 사람들은 이 친구로 실존 인물인 플랑시를 지목했고, 덩달아 리진도 실존 인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주 교수는 이 기록의 신빙성을 전면 부인한다. 우선 기록자인 프랑댕 자체가 신뢰가 가지 않는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고종 황제는 그를 불신임했고, 심지어 한국땅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귀스타브 뮈텔 주교도 “역량 있는 인물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게다가 프랑스 정부가 외교관 신상을 파악해둔 기록에는 플랑시가 미혼으로 나온다. 주 교수는 “외교관이 춤추는 궁중무희에게 반해 여자를 달라고 하는 것 자체도 당시 시대상에 비춰 봤을 때 난센스”라고 주장한다. 남녀분별을 중시했던 조선시대에 남자, 그것도 외국인 외교관 앞에서 여자 무희가 춤 추는 일은 없었다는 게 주 교수의 설명이다. 여성은 오직 내명부 행사에서만 춤을 선보였다는 것. 주 교수는 “자국 이익을 대표하는 외교관이 주재국 기생과 결혼한다면 이는 대형 외교 스캔들”이라면서 “뮈텔 주교는 당시 조선에 머물던 외교관들의 인품과 사생활 등을 낱낱이 기록해 뒀는데 그 어디에도 이런 센세이셔널한 스캔들 얘기는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공직 경력에 치명상을 입게 될 플랑시가 여자를 요청했다는 것도, 고종 황제가 이를 허락했다는 것도 상식 밖의 얘기”라고 덧붙였다. 리진을 궁중 무희로 되돌려 놓아 자살로 몰고 갔다는 사람이 홍종우라는 대목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주 교수는 지적한다. 홍종우는 개화파 김옥균을 중국에서 암살한 인물이다. 리진이 활동했다는 시기에 홍종우는 프랑스 유학비용을 벌기 위해 일본에서 일하고, 수도원에서 불어를 배운 뒤 김옥균 암살을 위해 중국까지 따라간다. 이 긴박했던 때에 ‘품행이 방정치 못한 궁중 무희’를 응징할 여유가 홍종우에게 있었을까. 조선을 아둔한 미개인의 나라로 간주했던 프랑스인답게 프랑댕은 여자 하나쯤은 외국인에게 아무렇게나 내주는 나라로 조선을 그렸고, 이를 오늘날의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는 게 주 교수의 결론이다. 한마디로 19세기 프랑스의 오리엔탈리즘과 21세기 한국의 센세이셔널리즘 간의 잘못된 만남이 허구 인물 리진을 실존 인물로 둔갑시켰다는 것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비, LA법원에 피소

    비, LA법원에 피소

    가수 겸 배우 비(28·본명 정지훈)가 빌려간 돈 15만 달러(약 1억 7000만원)를 갚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국 LA법원에 피소됐다. 18일 비의 소속사 제이튠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비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벨라지오 호텔 카지노 VIP룸에서 재미교포 앤드류 김에게 빌린 돈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다. 앤드류 김은 “지난 2007년 6월 비에게 15만달러를 빌려줬는데 벨라지오 호텔 카지노에서 돈을 빌려 도박을 했고,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갚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비는 심각한 도박습관이 있었는데 최대 1만 달러를 베팅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비의 소속사측 은 “터무니없는 얘기다. 앤드류 김이 소설을 쓰고 있다.”며 일축했다. 소속사 관계자는 이어 “앤드류 김은 2007년 비의 LA 공연 취소 사태 당시 현지 프로모터로, 그동안 자신의 준비 소홀로 인한 공연 취소 책임을 비에게 전가해 왔던 인물”이라며 “돈을 빌린 것도, 도박이 습관이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천체투영영화 보며 우주탐험 공상과학 세계에 빠져보세요

    천체투영영화 보며 우주탐험 공상과학 세계에 빠져보세요

    과학관에서 영화제가 열린다. 세계 11개국 37편의 공상과학(SF) 영화가 소개되는데, 영화제 기간 동안 과학관이 SF영화의 무대처럼 변신할 예정이다. 국립 과천과학관은 오는 28일부터 과천국제SF영화제를 개최한다고 18일 밝혔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데 이어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일본·벨기에·캐나다·미국 등에서 온 저예산 영화 ▲1988년작인 ‘제로 시티’와 2005년작인 ‘최초의 달여행’과 같은 러시아의 SF 걸작 ▲1927년에 상영된 무성영화 ‘메트로폴리스’와 같은 고전 ▲일본 SF 애니메이션의 양대산맥으로 평가받는 오시이 마모루의 ‘패트레이버’와 안노 히데아키의 ‘에반게리온’ 등의 작품이 잇따라 상영된다. 이상희 과학관장은 “영화제 프로그램의 원칙 가운데 하나가 ‘기본으로 돌아가자’로 과거·현재·미래의 걸작 SF영화를 소개함으로써 SF의 기본 정서를 느끼는 동시에 이번 축제의 대전제인 ‘우주와 생명’의 가치를 다양한 방향으로 고민해 볼 수 있다.”고 기대했다. 과학관이 주도한 이번 행사에는 과천시·한국마사회·국립현대미술관·서울대공원·서울랜드 등 문화 단체가 힘을 모았다.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기관이 협력한 문화축제 모델로도 가치를 지닌 셈이다. 실험도구와 전시물이 밀집한 과학관에서 영화제를 열면서 영화를 본 뒤 과학적인 상상력을 전시물을 통해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부대 효과도 기대된다. 실제로 과학관은 영화제 기간인 28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11일 동안 다양한 부대행사를 마련, 영화제를 종합적인 과학문화 페스티벌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과학관의 전공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전시부문에서는 SF관련 특별전시 10가지가 마련된다. 과학관 초입에는 초대형 미확인비행물체(UFO) 형태의 매표소가 설치되고, 가족 단위 관객을 위한 SF놀이 체험전, SF 피규어 전시, SF 미디어갤러리, SF 코스프레 등의 행사가 무료로 전시된다. 일본 최초의 우주인 모리 마모리 박사·물리학 박사인 정재승 KAIST 교수·소설가 김탁환 등이 연사로 나서는 강연회 ‘톡! 오디세이’도 인터넷 신청을 통해 예약한 뒤 들을 수 있다. 과학보다는 영화에 관심이 많다면 아이언맨·트랜스포머·캐리비안의 해적 등의 컴퓨터그래픽(CG)을 담당한 홍재철 특수효과 감독이 연사로 나서는 ‘SF 마스터 클래스’를 들어도 좋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신동일·민병천·이응일·장준환·조원희·이명세 감독의 강연은 29일과 30일 오후 5시 영화 상영 뒤와 31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오후 8시 상영 뒤에 하루에 한 명씩 준비돼 있다. 영화 한 편을 본 뒤 무료로 ‘감독, 감독을 만나다’ 행사에서 대면할 수 있다. 과학관 시설을 최대한 활용한 행사 가운데 하나가 ‘천체투영관 영화제’이다. 과천과학관이 보유한 직경 25m의 풀돔 스크린 위에 천체투영관 상영을 목적으로 제작된 신작 돔 영화를 출품받아 공개 상영하는 행사이다. 천체투영관 전용 작품이다 보니 별과 우주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지만, 고대의 신화·생명의 진화·SF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도 있다고 과학관 측은 설명했다. 과학관 홍보협력과의 황병훈 주무관은 “천체투영관에 앉는 순간 외계의 지적생명체를 찾아나서는 우주 탐험가나 새로운 종을 찾아나서는 지구별 여행자, 놀이동산의 기구를 타듯 태양계를 누비는 이름 모를 행성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천체투영관 영화제 예매는 14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온라인(www.maxticket.com)에서 할 수 있다. 영화제 기간 동안 현장 예매도 가능하다. 과학관·영화제·천체투영관 영화제는 각각 표를 구매해야 한다. 성인 기준으로 전시 관람 티켓과 영화 관람 티켓이 각각 4000원씩인데 묶어서 사면 7000원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연극리뷰] ‘내 심장을 쏴라’

    [연극리뷰] ‘내 심장을 쏴라’

    문학을 비롯한 예술작품은 대개 성장기다. 결과가 좋건 나쁘건, 그 성장이 키 큰 나무건 불과 한뼘이건, 어쨌든 뭔가 깨치고 나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24일까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무대에 오르는 ‘내 심장을 쏴라’(김광보 연출, 남산예술센터 제작)는 그런 의미에서 낙차 큰 성장기다. 마침내 세상과 정직하게 대면하려는 정신병자 얘기를 담았다. 정신병이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종의 회피기동. 두눈만 똑바로 떠도 큰 성장이다. 어느 한적한 산골의 수리희망병원에서 만난 정신병자 이수명(김영민)과 류승민(이승주)의 얘기다. 정신병이란 게 으레 그렇듯 이 둘은 가족과의 관계 설정에 실패한 인물들. 수명은 그것을 자신의 죄의식으로 치환하는 데 반해 승민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환경에 투사한다. 수명이 스키조(정신분열증)이고, 승민이 파이로매니아(방화광)인 이유다. 수명은 미쳤지만 안 미친 것처럼, 승민은 안 미쳤지만 미친 것처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황은 정반대인데 의외로 이들은 서로를 꿰뚫어보기 시작한다. 부정하고 떨쳐내고 싶은 자신의 반쪽을 상대에게서 찾아내게 되는 것. 승민은 눈 멀기 직전 마지막 소원이던 패러글라이딩을 하게 되고, 승민의 병원 탈출과 패러글라이딩을 돕는 과정에서 수명은 스스로 인생에 맞설 수 있다는 희망을 얻게 된다. 연극 제목은 마침내 세상에 뛰어들 준비가 된 수명이 내놓는 선전포고다. 무대에서 가능할까 싶던 자동차와 보트 추격 장면을 직사각형 조명으로 재밌게 처리한 것은 뛰어나다. 패러글라이딩 장면은 무대 뒤 배경그림으로 처리했다. 마지막 감동의 순간을 표현하는 데는 다소 부족한 감이 있지만, 독특한 그림체가 신선한 느낌을 준다.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수명은 긴 머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스 리’라 불릴 정도로 안으로만 기어들어가는 무기력한 캐릭터. 배우 김영민은 이를 충분히 즐기며 소화해낸다. 정신병자, 간호사, 병원직원으로 나오는 앙상블도 좋다. 다만, 긴장감을 주지 못하는 스토리가 아쉽다. 지난해 세계문학상을 받은 정유정 소설이 원작이다. 장르상 차이를 감안하면 모든 캐릭터를 무대 위에 풀어낼 수는 없다. 일종의 선택과 집중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다양한 인간군상을 너무 일찍 포기해버린 감이 있다. 그 때문에 한편으로는 저 좋은 배우들을 저렇게 소모해버리나 싶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는 극이 착하게만 느껴진다. 전석 2만 5000원. (02)758-215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38)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고전 톡톡 다시 읽기] (38)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금각사’(金閣寺)는 할복자살로 삶을 마감한 일본 전후(戰後) 문학의 대표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1956년 쓴 소설이다. 주인공 미조구치는 못생긴 데다 심한 말더듬이다. 이 열등감투성이인 소년이 사랑하는 것은 금각사 안의 금빛 누각이다. 전란과 불안, 엄청난 피와 시체 속에서도 오히려 금각의 아름다움은 더욱 돋보인다. 정통 양식과의 절충 형식을 띠고 있다는 미술사가의 말과는 달리 미조구치가 보기에 금각은 설계 자체가 불안한 양식이다. 그러니 전쟁이라는 위험한 상황이야말로 금각의 아름다움과 진정한 한쌍을 이룬다는 것이다. 문제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이다. 미조구치는 전쟁이 끝난 뒤 자신과 금각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고 느끼게 된다. 전쟁 중에는 금각도, 자신도,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는 동일한 차원의 존재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미조구치 자신만 못생기고 일그러진 초라한 소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금각은 여전히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있는데 말이다. 견고하고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존재로 돌아간 금각이 미조구치는 못마땅하기만 하다. 그리고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인식의 대변자, 가시와기 일본의 패전 선언과 함께 미조구치를 찾아온 친구 가시와기는 심한 안짱다리이다. 함께 걷는 게 부끄러울 만큼 추한 인물이다. 못생긴 주제에 아름다운 미인 여러 명과 교제했다가 이내 걷어차 버리는가 하면, 자신의 안짱다리가 삶의 유일한 목적이며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말하고 다니는 희한한 녀석이다. 그런데도 가시와기는 미조구치에게 조언한다. “더듬어라 더듬어!” 세상을 향해 자신의 수치심을, 부족하고 비정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숨기지 말고 드러내라는 것이다. 가시와기의 이런 자신만만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인식의 힘에서 온다. 인식이란 주어진 상황에서 대상을 파악하는 힘이다. 국화꽃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가시와기는 또한 아름다움을 보호해주는 것이야말로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답다’고 인식해야만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보호할 것이고 함부로 부숴버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가시와기의 안짱다리가 그의 존재 이유가 된 것도 그 인식 덕분이다. 즉, 보통 사람들은 죄다 똑같이 생겼지만 가시와기가 가시와기라고 인식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증표가 그의 안짱다리이니 과연 자신만만할 만하다. 그래서일까. 가시와기와 있을 때 미조구치는 위안을 받기도 한다. ●아름다움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그러던 어느 날 미조구치는 부엌에서 국화와 꿀벌을 관찰하면서 진정한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해 깨닫게 된다. “국화는 그 형태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이 막연히 부르고 있는 ‘국화’라는 이름에 의하여, 약속된 아름다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벌이 아니었기에 국화에게 유혹당하지 않았고, 나는 국화가 아니었기에 벌에게 사랑받지도 않았다. 내 눈이 그 금각의 눈으로 변할 때 세계는 이처럼 변모한다는 사실을, 이 이상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겠다.” 국화가 정말로 아름다울 때는 국화를 바라보는 우리가 꿀벌이 되었을 때이다! 미조구치와 금각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금각의 진짜 아름다움은, 금각은 아름답다는 책 속의 말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화의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꿀벌이 되어야 하고, 강물의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물고기가 되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내가 꿀벌이 되거나, 물고기가 되거나, 새가 될 때 그 모든 곳에 존재한다고도 할 수 있다. 아름다움이 고정된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흘러 다니고 변화한다면, 그 아름다움을 알기 위해서는 그 흐름 속에 들어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인식의 힘을 믿었던 가시와기는 아름다움을 고정된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미조구치는 아름다움이 변화하고 흘러다니는 것임을 알아냈다. 이제 미조구치는 자신을 그토록 혼란스럽게 했던 금각의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깨닫고 경험하기 위해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나 아닌 존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 아닌 다른 존재 되기 위해 금각사에 방화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미조구치가 선택한 것은 금각에 불을 지르는 것이다. 그래야만 금각이 있는 세계에서, 금각이 없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의 주도면밀한 준비는, 오로지 행위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최후의 인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 행위는 나에게 있어서 일종의 잉여물에 불과하다. 여기까지가 나고, 그 다음부터는 내가 아니다. 어째서 나는 굳이 내가 아니려고 하는 것일까?” 미조구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행위하는 순간에야말로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또한 나 아닌 것이 될 때에야 끝없이 변화하는 아름다움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미조구치의 방화를 단순한 파괴적 행위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의 흐름은 죽음과 삶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것이다. 세계의 흐름, 즉 생성의 차원에서 미조구치의 행위는 정당하다. 무언가를 파괴하지 않고는 창조가 시작될 수 없다. 미조구치는 자신의 인생 전반을 차지하고 있던 금각을 파괴해버렸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세상 자체를 완벽하게 다른 세계로 변모시켜 버린 셈이다. 미조구치의 행위는 세계 변모의 흐름 중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며, 나 아닌 것이 된다는 의지이며, 고정된 주체, 이미 결정되어 버린 개체로 살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미조구치의 방화사건은 사소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조구치가 발견한 아름다움은 그렇지 않다. 유동하는 흐름 속에 들어가는 것, 끊임없이 바뀌어 나가는 생성 그 자체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미조구치가 발견한 아름다움의 실체가 아니었을까. 박혜선 영상글밭 사하 연구원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이윤기 유작 ‘그리스 로마 영웅열전’ 나온다

    이윤기 유작 ‘그리스 로마 영웅열전’ 나온다

    지난 8월 별세한 소설가이자 번역가 이윤기씨의 유작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열전’(가제)이 나온다. 민음사 이미현 홍보부장은 17일 “고인과 생전에 출판 계약을 했으며 고인이 원고를 마무리한 상태에서 안타깝게 별세하셨다.”면서 “총 2권으로 구성돼 있으며 올해 안에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베스트셀러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신화 속 영웅들의 모험담을 다뤘다면 이번에 출간되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열전’은 실제 존재했던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민음사는 이윤기의 유고 소설집과 에세이집도 낼 계획이다. 유고 소설집에는 고인이 생전에 정식 발표했던 2편의 단편소설과 콩트 등 총 4편이 실린다. 에세이집에는 고인이 잡지 등에 기고한 글을 담을 예정이다. 이 부장은 “소설집에 실리는 4편 가운데 콩트와 단편소설 1편은 잡지에 실린 적은 있지만 책으로 정식 발표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와 ‘장미의 이름’ ‘그리스인 조르바’ 등 고인의 번역서들이 잘 알려져 있지만 고인은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기도 했다.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하얀 헬리콥터’로 입선해 등단한 고인은 1998년 중편소설 ‘숨은 그림찾기’로 동인문학상을 받았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소설집 ‘두물머리’, ‘나비 넥타이’ 등을 내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가슴 먹먹한 감동·희망 담아

    가슴 먹먹한 감동·희망 담아

    11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본 시인의 언어는 ‘단순하고 단단하고 단아’(시 ‘3단’ 중에서)했다. 얼굴 없는 시인이었으며 스스로 ‘실패한 혁명가’라 부르는 박노해(53)씨가 1999년 ‘겨울에 꽃핀다’ 이후 처음으로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 펴냄)를 출간했다. 10년 넘게 쓴 5000여편의 시 가운데 304편을 추린 시집은 560쪽으로 웬만한 소설책보다 두껍다. 시는 쉽고 소박한 언어로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감동적이고 희망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 신문로 ‘나눔문화’(박노해 시인이 이끄는 시민단체) 사무실에서 시집 출간을 기념해 기자들과 만난 박씨는 “1984년 첫 시집인 ‘노동의 새벽’ 발간 후 긴 수배 길과 지하 밀실 고문장, 사형 선고, 무기 교도소를 살아 나왔다. 시인다운 운명의 길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군사 정부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부 가까이 팔린 ‘노동의 새벽’으로 박씨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1988년 자유의 몸이 된 그는 지난 10여년간 지구 곳곳의 가난과 분쟁의 현장을 찾아다녔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후 전쟁터로 날아가 시작한 평화활동은 지금까지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인은 시가 출판되지 않은 지난 11년간에 대해 “슬프게도 길을 잃어버렸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고 싶지 않았다.”며 “하지만 10년의 침묵 정진 세월 동안 단 하루도 시를 쓰지 않은 적은 없다. 시가 없었다면 미치거나 자살했을지도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깊은 밤 홀로 앉아 꾹꾹 눌러 쓰다 보면 숨죽인 통곡처럼 펜 끝을 통해 시가 흘러나왔다며 죽는 날까지 처절하게 시를 쓸 것이라고 말했다. 시인의 언어가 가 닿은 지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참혹한 전쟁과 테러의 현장에서 고대문명의 근원까지 거슬러 오르지만 그 말들이 결코 거대하거나 무겁지만은 않다. “나는 눈을 감고 스윽슥/ 아이폰 모니터를 벗기고 들어간다// 공돌이로 살아온 내 기억의 속살을/…아이폰 속의 반도체와 하드웨어와 모니터를 만드는/ 가난한 나라 가난한 공돌이 공순이들/ …유독한 화학물질과 방사선을 다루며/ 헥산 중독과 백혈병과 암에 걸려/ 스마트하게 버려지는 젖은 눈동자들”(시 ‘아이폰의 뒷면’ 중에서)처럼 잠깐 빌린 휴대전화의 뒷면에서 시인은 ‘보이지 않는 살인자들의 세계화’를 본다. “저 차가운 삼성 블루/ 일그러진 돈의 원 안에 들어가면/ 생명도 양심도 영혼도/ 우리들 살아 있는 미래도/ 하얘져/ 쌔하얘져”(시 ‘삼성 블루’ 중에서)와 같이 세계화된 자본 권력에 대해서는 비판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시 대부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난 아이들의 눈동자,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것, 동네에서 열린 한국-베트남 돌잔치 등 생활에서 소재를 구한 ‘희망의 노래’ 들이다. 시인은 신간 시집 ‘그러니 그대’에 대해 지구 시대의 ‘노동의 새벽’이라고 정의했다. “지금 우리는 ‘주체의 실종’ 시대를 살고 있다. 돈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삶이 없고 내가 없다. 40~50대는 언제 정리해고가 될지 모르고, 20~30대는 일다운 일자리가 없어 잉여인간이 되고 있다.”며 “달릴수록 영혼이 증발되고 ‘살아남기’가 삶을 잠식해 가는 ‘저주받은 자유’의 시대에 우리에겐 축적이 아닌 혁명이 필요하다.”고 시인은 강조했다. 이어 “2014년 출간을 목표로 삶의 총체적 진보 이념을 담은 책을 집필 중”이라며 “이 책을 내면 실패한 혁명가로서 마음의 빚을 다 갚고 자유롭게 행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를 들고 분쟁 현장을 누빈 시인의 ‘빛으로 쓴 또 다른 시’들은 오는 25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는 사진전 ‘나 거기에 그들처럼’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소설가들의 경험·추억 엿본다

    작가 자신의 전기적 사실과 체험을 밑그림으로 빚어낸 작품을 일컫는 자전소설. 김사과, 하성란, 김연수, 박민규, 전성태, 김애란, 성석제 등 우리 시대의 작가들은 어떤 속 이야기를 풀어낼까. ‘자전소설’(도서출판 강 펴냄)은 문예지 ‘문학동네’의 ‘젊은 작가 특집’ 시리즈에 실린 단편들을 모은 것으로 작가들의 자전소설을 한데 묶은 책이다.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의 작가 정이현이 쓴 ‘삼풍백화점’에서는 대학 졸업 후 백수 신세로 취업 준비를 하던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나’가 백화점 여성복 매장에서 일하는 고등학교 동창 ‘R’를 우연히 만나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또 영원히 멀어진 이야기를 담았다.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기 10여분 전 그곳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온 작가의 경험과 당시 막막했던 시절을 함께 보냈지만 지금은 잊힌 친구와의 아련한 추억은 묘하게 오버랩된다. “지금도 가끔 그 앞을 지나간다. 고향이 꼭, 간절히 그리운 장소만은 아닐 것이다. 그곳을 떠난 뒤에야 나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당시를 회상하는 정이현은 20대의 다양한 경험들이 작가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에둘러 말한다. 천명관의 ‘이십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도 못 가고 취직도 못한 채 음악다방에서 ‘시간을 죽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록밴드를 꿈꾸던 스무살 청춘은 ‘디제이 형’을 존경하고, 여종업원 ‘개구리’를 사랑한다. 작가는 갓 스무살의 나이였던 자신이 “이미 수십년을 굴러다닌 자동차처럼 덜그럭거렸다. 털이 다 빠진 늙은 개처럼 아무런 의욕도 없었고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배 속이 늘 휑한 기분이었다.”며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다. “전생엔 메릴린 먼로였다.”는 독특한 서두로 시작되는 박민규의 ‘축구도 잘해요’는 먼로와 아서 밀러·조 디마지오와의 결혼과 결별, 문학평론가 김현과의 만남 등을 넘나들며 작가가 문학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한다. 이처럼 40여명의 작가들이 개성 있게 녹여낸 자신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흥미를 넘어 작가와 독자의 거리감을 좁힌다. ‘자전소설’ 시리즈는 모두 4권으로 출간될 예정으로 1권 ‘축구도 잘해요’와 2권 ‘오, 아버지’가 먼저 나왔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루브르박물관 복원연구소를 가다] 상상 그 이상의 루브르

    [루브르박물관 복원연구소를 가다] 상상 그 이상의 루브르

    대영박물관, 바티칸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이자 영화와 소설 ‘다빈치 코드’의 주무대였던 루브르의 뒤편은 상상 이상이었다.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루브르박물관 내 ‘프랑스 복원 및 보존 연구소´(C2RMF) 곳곳에 최고의 작품과 유물들이 즐비했다. 무궁무진한 이 ‘보물창고’에 공개된 곳보다 감춰진 곳이 많으니 ‘성배’나 ‘프리메이슨’ 같은 수많은 음모론의 온상이 된 이유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루브르는 프랑스 전체 박물관 소장품의 60%를 보유하고 있다. 복원이나 연구가 루브르를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루브르 지하에는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촘촘히 연결돼 있습니다. 이 지하 통로 덕분에 작품들은 건물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않게 되고, 운반과정은 외부에 철저히 숨길 수 있습니다.” 소피 르페르는 복원 과정을 설명하기에 앞서 작품이 옮겨지는 과정부터 털어놓았다. 지하도로와 작품을 옮길 수 있는 대형 엘리베이터들은 1983년부터 1989년 사이에 진행된 루브르 대보수 기간에 설치됐다. 이때 함께 조성된 것이 그 유명한 666개의 조각으로 만들어진 루브르의 입구, 유리 피라미드다.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 주도로 이뤄진 루브르 대보수에는 30억 프랑이라는 거액이 투자됐고, 이는 오늘날 루브르의 명성으로 이어졌다. 프랑스 전역에서 옮겨진 소장품들 역시 지하통로를 통해 C2RMF로 운반된다. 작품이 C2RMF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카메라다. 이틀 이상 가시광선·적외선 투사, 특수 촬영 등을 거치면 과거에 복원된 부분이나 덧칠된 부분이 그대로 나타난다. 복원 이전과 이후를 기록하는 목적도 있다. 엑스레이 촬영을 이용하면 화가가 작품을 그리던 당시의 기법과 생각까지도 읽을 수 있다. 루브르가 최근 매입한 17세기 화가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의 작품을 보고 있던 엑스레이 판독팀 관계자는 그림을 보여 주며 “처음 그릴 때는 작품 속의 바이올린이 없었고, 트럼펫이 2개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면서 “19세기 말 뢴트켄의 엑스레이 발견은 복원 기술의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복원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에 손상을 입히지 않는 것인데, 엑스레이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탄소연대측정실과 재료분석실 등 다양한 연구실을 지나 커다란 방에 들어서자 박물관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원통형의 첨단장비가 눈에 들었다. C2RMF의 자랑인 루브르선형입자가속기(AGLAE)다. 이온빔을 쏘아 훼손 없이 작품의 연대는 물론 성분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는 AGLAE는 박물관에 있는 세계 유일의 가속기로, 1000억원을 호가한다. 훼손된 이집트 파피루스 글자를 해독하거나, 각종 고대작품의 연대를 세밀하게 측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AGLAE실 관계자는 “세계 각국 연구진들이 가속기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지만, 미술품만을 위해 이런 장비를 구비하는 건 루브르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과학의 힘이 인류의 유산을 보존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작품들 가운데 무엇을 먼저 연구하고, 복원할까. 그 순서를 어떻게 정하는지 궁금했다. 복원사 파스칼 프티는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은 작품을 만든 사람의 명성”이라며 “한 사람의 방이나 소장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기 때문에 소장자도 주요한 고려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복원에 들어가는 돈을 해당 박물관에서 지불할 수 있느냐도 우선순위에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지하 연구소 위에는 ‘에콜 드 루브르’로 불리는 세계 최대의 복원학교와 C2RMF 복원실이 있다. ‘밀라노미술품복원학교’와 함께 두 개뿐인 복원전문학교이자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에콜 드 루브르는 학생 수가 적고 입학시험이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가구 분야의 경우 매년 5명의 전문가만이 배출된다. 복원기술 이외에 역사학, 박물관학과도 있고 역사·문화적 배경을 우선적으로 가르쳐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소양을 갖춘 장인을 양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 학생은 “입학에만 300~400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면서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에서 학교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실제 입학에 성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복원실은 5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1~3층은 미술품·장신구 복원실, 4층은 섬유·카펫 복원실, 5층은 가구 복원실이다. 미술품 복원실에 들어서자 크고 작은 작품들이 마치 도서관의 책처럼 산더미로 쌓여 있는 장관이 펼쳐졌다. 각 창가마다 커다란 그림 하나씩이 세워져 있고, 복원 전문가들이 확대경을 쓴 채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정성스럽게 붓칠을 하는 그들의 모습에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주인공 준세이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복원사들은 실제로 작업을 하는 시간보다 그림을 쳐다보고 고민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붓칠 한 번을 위해 여러 각도에서 작품을 지켜보고, 앞뒤로 오고 가는 일을 반복했다. 작업 중인 작가 이름과 작품명을 알려줄 수 없다는 한 복원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작품의 가치가 내 붓칠에 달려 있다는 점 때문에 항상 어깨가 무겁다.”면서 “맡은 작품을 그린 작가의 생각이나 당시 시대적 배경을 느끼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엄숙한 분위기의 그림 복원실과 달리 4층 가구복원실은 활기가 넘쳤다. 황실가구에 많이 쓰였던 거북이 등껍질 물량이 세관을 통해 오랜만에 확보됐기 때문이었다. 루이 15세가 사용했던 시계 받침대를 복원하고 있던 마크 앙드레 파울린은 “예전에 사용했던 소재들 중 상당 수가 요즘 시대에 유통이 금지된 경우가 많다.”면서 “가치가 떨어지는 작품에서 꺼내 사용하곤 하는데, 종종 세관에서 압수된 물건이 이쪽으로 넘어올 때도 있다.”고 말했다. 복원사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과 실제 복원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19세기 후반 화가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예술사 프레데릭 르블락은 “가장 중요한 것은 원형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지만, 처음 그림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난 흔적까지도 살리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형을 아무리 재현한다고 해도 원작자가 그린 것은 아니지 않으냐.”면서 “복원에 사용되는 모든 것들은 다시 원래대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파리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 도둑맞아서 유명해진 모나리자, 예술을 보는 인간심리 왜 그럴까

    ‘모나리자’가 유명해진 까닭은. 답은 도둑맞았기 때문이다. 1911년 8월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도난당했다. 이때만 해도 ‘모나리자’(가로 53㎝·세로 77㎝)는 루브르를 대표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오늘날처럼 신비의 미소를 상징하는 여인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도난당한 ‘모나리자’를 찾기 위한 수사인력이 대대적으로 동원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현상금이 걸리고 심령술사까지 등장했으나 2년 동안 행방이 묘연했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모나리자’가 걸려 있는 텅빈 벽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또 ‘모나리자’는 관광지의 각종 상품부터 커피잔, 심지어는 미국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에 의해 대량으로 복제되기 시작했다. 독일 평론가 발터 베냐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말하기 전에 이미 ‘모나리자’는 문화적으로 대량복제되는 최초의 미술작품이 됐다. 지금처럼 회화의 역사 속에서 가장 흔하게 복제되고 소비되는 이미지가 됐던 것. 이 절도 사건의 범인은 결국 2년 만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향인 피렌체에서 잡힌다. 그림을 팔려고 내놓자 한 화상이 경찰에 신고했던 것이다. 범인이 백만장자일 것이라는 추측과 달리 루브르 미술관에 ‘모나리자’를 내걸었던 노동자였다. 현장에 지문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음에도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노동자와 명화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다들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고전문학을 전공한 후 프랑스 정신분석학의 대가 자크 라캉 밑에서 정신분석 학위를 받고 현재 영국 런던에서 임상의로 재직 중인 저자 다리안 리더. 그는 모나리자의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잃어버리고서야 비로소 어떤 것을 찾게 되고, 그것의 진가를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 여기서 시각 예술을 보는 이유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그러고 쓴 책이 ‘모나리자 훔치기’(박소현 옮김, 새물결 펴냄)이다. 저자는 책에서 파블로 피카소의 주치의였고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는 평생 지기로 이론적으로 폭넓게 교류했던 라캉의 이론을 중심으로 정신분석학적으로 현대 사회와 시각 문화의 관계를 설명한다. 다빈치와 윌렘 드 쿠닝, 마르셀 뒤샹, 피카소, 현대 미술가 마크 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술가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끄집어내고 있다. 여기서 재미있게 인용된 한 토막.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도둑맞은 편지’의 내용이다. 도둑맞고 다시 훔쳐오는 편지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놓여져 있는 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모른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 수 있듯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다는 것은 실제로 우리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의 표현일 수도 있다고 책은 말한다. 1만 6500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개헌-4대강 빅딜 없다”

    “개헌-4대강 빅딜 없다”

    “개헌은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마는 것이지, 4대강 사업과 맞바꿀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여야가 개헌을 둘러싸고 혼란에 빠진 가운데 개헌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이재오 특임장관이 15일 ‘개헌-4대강사업 빅딜 불가’ 입장을 밝혔다. 이 장관은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로 출근하는 길에 동행한 기자에게 “개헌과 4대강 사업은 서로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주고받을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여당이 4대강 공사 기한을 늦추는 대신 야당이 개헌특위를 수용하기로 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를 언급하자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양당 원내수석부대표들 사이에 ‘빅딜’이 오갔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데 대해서는 “수석(부대표)들이야 정기국회 원내전략을 짜야 하니까 전략상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여당은 여당대로 원하는 것이 있고, 야당은 야당대로 원하는 것이 있으니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있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이 장관은 또 “일부 언론에서는 ‘(한나라당)이군현 원내수석부대표가 이재오 직계’라고 하고, 그러니까 내가 그런(빅딜을 하려는) 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그렇지 않다).”라고 부정적으로 답했다. 그는 이어 “내가 원내대표를 두번이나 해봤는데 뭐가 가능하고 아닌지 모르겠느냐.”면서 “개헌은 하면 하고 말면 마는 것이지 다른 정치적 사안과 딜(주고받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장관은 야당이 요구하는 4대강 검증특위와 관련해서도 “실익이 없을 것”이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씨줄날줄] 중국의 한글공정/노주석 논설위원

    중국은 툭하면 공정(工程)이란 용어를 쓴다. 대표적인 것이 동북공정. 엄연히 한국사인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지방정부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작업이다. 여기서 공정이란 일이 진척되는 과정이나 정도를 가리키는 우리 말 의미보다 영어의 프로젝트 개념이 강하다. 거창한 사업에만 공정이란 용어를 쓰는 것은 아니다. 체면을 세워주는 ‘면자(面子·체면)공정’, 지방관료의 치적을 알리는 ‘수장(首長)공정’, 외관의 치장에만 매달리는 ‘형상(形象)공정’ 같은 사소한 데도 붙인다. 중국정부가 추진하는 ‘한글공정’이 누리꾼들로부터 난타당하고 있다. 사태는 중국이 조선어국가표준워킹그룹을 구성해 스마트폰과 태블릿PC 같은 휴대형 기기와 PC 키보드용 한글입력 표준 등 4가지 한글표준 마련에 착수했다는 한 매체의 보도에 의해 촉발됐다. 중국 측은 조선족 등 자국 내 56개 소수민족에 대한 자판입력방식의 표준화 작업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동북공정에 놀란 반(反)중국 정서가 또 한 번 자극을 받았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트위터에서 “진실로 귀한 것을 귀한 줄 모르면 도둑이 그것을 훔쳐 간 뒤에도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중국이라는 도둑이 이를 훔치려는 마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면서 원색적으로 쏘아붙였다. 트위터 팔로어 수 37만명으로 1위를 달리는 이씨는 역사에 이어 고유문자까지 빼앗길지도 모른다고 통탄했다. 딱한 일이다.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우리 정부와 기업은 무얼 했다는 말인가. 전문가들은 한글 종주국인 우리가 중국이 정한 표준에 맞춰 한글을 입력해야 하는 비극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표준화된 단일 한글자판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휴대전화는 국내에 2000만대, 북한에 18만대가 보급돼 있다. 200만 중국 조선족도 잠재적 소비계층이다. 현재 국내 모바일기기 한글 자판시장은 삼성(55%), LG(15%), 팬택(13%) 등으로 삼분사열돼 있다.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어제 한글공정은 ‘중국, 네 탓’이 아니라 ‘한국, 내 탓’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관련 특허가 400여개에 이르는 등 제조업체 간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때문에 15년째 표준화가 미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반중국 캠페인으로 몰고 가는 것은 오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한글자판 국가표준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정부도 화답했다. 여당이 오랜만에 할 말을 하고, 할 일을 한 것 같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영화리뷰] ‘스토커’

    [영화리뷰] ‘스토커’

    한국에서만 한달에 수십편의 영화가 개봉된다. 영화에 개성이 없으면 딱히 리뷰 대상에 오르기가 쉽지 않다. 기자들의 ‘의무 낙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외국 영화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다지 개성도 느껴지지 않는 데다 국내 개봉조차 불투명한 ‘스토커’(원제: expose)의 리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딱 하나. 바로 여배우 제인 마치(37)에 대한 반가움 때문이었다. 아, 하나 더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세계 첫 시사회)로 영화를 먼저 봤다는 자부심(?). 제인 마치는 부산영화제 개막 전부터 꽤나 이름이 거론됐던 배우다. ‘연인’(1992), ‘컬러 오브 나이트’(1994) 등에 출연하며 나름대로 1990년대를 풍미했다. 오랜만의 복귀작과 함께 부산을 찾는다는 소문에 많은 영화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스토커’는 0시에 상영이 시작되는 ‘미드나잇 패션’ 부문에서 소개됐다. 사정 때문에 방한은 취소됐지만 영화 속 그녀의 아련한 과거 모습만으로도 충분했다. 간간이 화면에 잡히는 얼굴 주름이 안쓰럽기는 했지만 고혹적인 자태는 여전했다. 한층 성숙해진 모습의 그녀가 풀어나가는 ‘스토커’는 공포물이다. 새 소설을 준비 중인 베스트셀러 작가 폴라(애너 브레콘). 또다시 히트작을 써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던 끝에 한적한 별장을 찾는다. 폴라의 악몽은 자신을 도와줄 비서 린다(제인 마치)가 오고난 뒤부터 시작된다. 공포도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영국 록그룹 ‘스펜다우 발레’ 베이시스트 출신인 마틴 캠프의 감독 데뷔작이다. 굳이 총평을 하자면 ‘글쎄올시다’다. 7년 전 개봉한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아이덴티티’(2003)와 소재가 유사한데, 오히려 퇴보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재탕을 하려면 조미료라도 독특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다. 고풍스러운 옛집에서 흘러나오는 싸늘한 분위기는 식상하기 그지없는 공포 코드다.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라며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았건만, 예상했던 반전이 펼쳐지며 ‘설마가 사람 잡을 때면’ 극장엔 한숨 소리만 가득하다. 뭔가 특별한 게 없다. 그나마 정색하고 관객을 놀라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 요즘 공포물 소재가 고갈되다 보니 놀라게 하는 것을 반복하며 관객을 짜증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스토커’는 적어도 그런 짜증은 주지 않는다. 오묘야릇한 분위기로 무섭게 만들려고 줄기차게 노력할 뿐. 한마디로 고립된 공포와 정체불명의 동거인이 주는 불안감에 ‘올인’하는 영화다. 이런 분위기가 무서운지 아닌지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다. 물론 영화가 개봉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하루 아침에 외국어 술술…의료계도”불가사의”

    하루 아침에 외국어 술술…의료계도”불가사의”

    한 번도 영어책을 읽거나 영어 TV프로그램을 접한 적이 없었던 세르비아 소년이 하루 아침에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이례적인 현상을 보여 현지 의료진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세르비아 니스에 사는 디미트리제 미트로비크(11)는 7년 여 전 독특한 경험을 했다. 가족 모두 세르비아 원어민으로 모국어만 줄곧 사용해오던 어느 날 아침부터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기 시작한 것. 소년의 어머니인 드라가나는 “영어를 할 줄 아는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영어 책이나 TV프로그램을 보여준 일도 없는데 유창한 영어를 말하기 시작했다.”고 놀라워 했다. 당시 미트로비크는 감정을 소상히 설명할 수 있을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다. 소년의 입에서는 가족이 세르비아어로도 한번도 가르친 적 없는 영어 단어와 표현도 술술 나와 주위를 놀라게 했다. 5세 때 영문소설인 해리포터를 모두 외운 소년은 11세가 된 현재, 더욱 유창하고 풍부한 어휘의 영어를 구사했다. 영어로 꿈을 꾸고 혀를 깨물어 ‘아얏’이란 감탄사도 영어로만 튀어나온다고 미트로비트는 말했다. 세르비아어로 말하는 것보다 영어를 쓰는 것이 더욱 편해졌다는 것. 의료진은 소년을 검사해 봤지만 하루 아침에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게 된 특이 현상에 대해서 아직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소년이 언어에 대한 어떤 자폐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소년의 부모는 일상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에 자폐증과는 거리가 멀다고 선을 그었다. 니스대학 영어학 타트자나 파우노비크 교수는 “소년과 한 시간 동안 영어로 대화를 나눴는데 원어민 수준으로, 인위적으로 영어를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들 보다 더 뛰어나다.”고 감탄했다. 사진=미트로비크와 어머니 드라가나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이문열씨 “북한의 실상 소설로”

    고(故) 황장엽(87)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13일에도 하루 종일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오전 국가보훈처가 황 전 비서를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빈소를 지키던 유가족과 탈북자들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유가족·탈북자들 ‘환영’ 장례위원회 대변인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유가족과 탈북자 단체 등이 상의해 통일이 될 때까지 현충원에 안장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며 “평소 선생님께서 늘 평양에 가겠다는 말씀을 해왔기 때문에 통일이 되면 바로 평양으로 묘역을 옮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황식 국무총리, 전두환 전 대통령, 정운찬 전 총리,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 조현오 경찰청장, 소설가 이문열씨 등이 빈소를 찾았다. 김 총리는 “탈북자들을 깊이 껴안아 준 귀중한 분이신데 돌아가셔서 애석하다.”면서 “평안히 잠드시고 통일이 된 뒤 고향으로 돌아가시길 빈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황 전 비서의 현충원 안장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정부에서 다양한 여론을 수렴해 신중하게 결정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전 전 대통령은 “황 선생님 같은 용기 있는 분이 북한의 실정을 알려 북한에 대해 희망을 품고 있는 일부 계층에 좋은 교육이 됐다.”면서 “고인의 명복을 축원하고 북한에 많은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문열씨는 조문을 마치고 나와 “황 선생과 종종 만나 그만 아는 북한에 대한 것을 많이 들었다.”면서 “작품을 계획한 적이 있는데 앞으로 쓰게 되면 (들은 것을)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의금, 장례비용·탈북자 지원 등에 쓰여 조문객들이 낸 부의금의 향후 용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확한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3일 오후까지 3200여명의 조문객이 다녀가 부의금 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전날 정병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을 포함한 전경련 임원진이 1억원의 부의금을 전달했다. 황 전 비서의 수양딸이자 상주인 김숙향(68)씨는 법적 대리인 조원룡 변호사를 통해 “부의금 일부는 장례 비용에 쓰고 나머지는 고인의 뜻을 받들어 탈북자 지원, 북한 민주화 사업 등에 쓰겠다.”고 전했다. 조 변호사는 “남는 부의금은 북한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쓰겠다.”고 덧붙였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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